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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화제] 삼국지 장수중 누가 가장 셀까

    [주말화제] 삼국지 장수중 누가 가장 셀까

    ‘삼국지’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누구일까. 삼국지를 학술적 차원에서 연구해 일명 ‘삼국지연구소’라고 불리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의 조성면(39) 연구원은 “단순 무력으로만 봤을 때는 여포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어 관우-장비-조자룡-마초-황충-위연 등의 순이다. 그러나 종합적인 장수적 자질에 있어서는 관우를 최고로 꼽았다. 연구소측은 또 지략이 뛰어난 책사(策士)를 제갈량-방통-사마의-육손-순욱 순으로 평했다. ●인하대 삼국지硏 ‘국내본 300종’ 분석 인류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가 해부된다. 연구소는 지난해 9월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2년 기한으로 ‘삼국지 역본 및 서사변용 연구’라는 색다른 책무를 부여받은 뒤 조선 중기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400여종의 삼국지 한국어 번역 판본을 발굴·조사 및 해석하는 작업을 펴고 있다. 정학성 인하대 국문과 교수와 중문학과 국문학 등을 전공한 5명의 연구원이 맡고 있다. 현재 수집한 삼국지 판본 300종에 대한 학술적 해제작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내년에 연구성과를 논문과 단행본 등으로 발표한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사서에 삼국지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선조 2년(1569년)으로 성리학자 기대승의 상소문에 “삼국지가 널리 읽혀 풍속의 괴란이 우려된다.”는 문구가 나온다. 이때 이미 삼국지가 유행했다는 증거다. 당시 원본을 손으로 옮긴 필사본을 비롯해 목판본·납활자본 등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에서 석판본이 수입됐다. ●지략은 제갈량·방통·사마의·육손順 조선 정조 이후는 삼국지가 상업적 측면에서 출간되다가 1904년에 근대화 판본인 구활자본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되었다.1929년에는 양백화에 의해 최초로 신문(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1945년에 현대화된 판본인 ‘박태원 삼국지’가 등장했다. 해방 이후에는 삼국지 출간이 본격화돼 지금까지 370여종이 발행됐으며, 삼국지 처세학·경영학·논술 등 실용서도 50여종 등장했다. 최근에는 비디오·컴퓨터게임·애니메이션 등 ‘읽는’데서 ‘보고 즐기는’ 형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1800여년 전의 일이 첨단 문명시대를 사로잡는 ‘삼국지 신드롬’에 대해 윤진현(37) 연구원은 “삼국지 만큼 인물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이 세계적으로 드문데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역사연구에 일반인의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근대 이후에 발간된 삼국지 판본은 중국 ‘모종강류’와 일본 ‘요시가와 에이지류’가 양대 산맥이다. 모종강은 1494년 나관중이 펴낸 ‘삼국지연의(삼국지 원전)’를 소설 성격으로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삼국지연의가 서기 285년 진나라 역사가 진수가 3부 65권으로 펴낸 정사(正史) ‘삼국지’를 참고하고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종합정리한 것이라면 모종강은 서사적 구성을 완결지었다. 우리나라의 박태원, 최영해, 박종화, 김구용 등이 쓴 삼국지가 모종강류인데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적 묘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반면 김동리, 김광주, 양주동 등이 쓴 삼국지는 1939년 요시가와 에이지가 현대적 기법으로 재창작한 것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다. ●7은 사실,3은 허구 삼국지 최대의 논란은 역사적 사실과의 괴리. 내용 가운데 70%는 사실이고 30%는 허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나 오히려 허구가 더 많다는 분석도 있다. 대부분 성인군자로 묘사하고 있는 주인공 유비에 대해 연구소측은 “유비는 ‘쪼다’이면서도 ‘음흉’한 측면을 지닌 이중인격자였다.”고 주장한다. 제갈량은 비바람까지 부르는, 신에 가까운 전략가로 등장하지만 실제론 재정 등 내치를 담당하는 참모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여포는 정원과 동탁 등 양아버지를 잇따라 죽이는 ‘배신’의 상징으로 그려졌지만 여포가 정통 한족이 아닌 색목인(위구르족)이었기에 상대적 폄하를 받았다는 시각도 있다. 조 연구원은 “삼국지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촉한 정통론’의 시각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실(史實)과 부합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면서 “작가의 의도가 많이 가미됐다는 것을 알고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부고]

    ●김덕창(전 내외통신 사장)덕자(전 전동중 교장)덕성(전 연합뉴스 상무)덕준(보라매병원 원무과장)씨 모친상 이윤호(서울대 의대 교수)김낙회(제일기획 부사장)씨 빙모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3410-6912 ●김철(연세대 국문과 교수)철화(파이톤 부장)철문(혜능 상무)씨 모친상 설호정(풀무원 홍보담당 상무)씨 시모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3410-6914 ●김재곤(국민은행 마두역지점장)경곤(알파약국 대표)천곤(부흥엔지니어링 대표)씨 모친상 31일 일산병원, 발인 2일 오전 5시30분 (031)905-4599 ●박석주(전 한전 처장)씨 별세 성돈(세원통상 대표)성욱(세원메카 이사)씨 부친상 조성희(미국 거주)씨 빙부상 30일 분당요한성당, 발인 2일 오전 8시30분 (031)780-1158 ●이성주(기업은행 서대전지점장)씨 부친상 31일 여의도 성모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3779-2191 ●박장훈(전 메리츠증권 상무)씨 모친상 31일 보라매병원, 발인 2일 오전 6시 (02)831-2899
  • 여성들 ‘春情’ 근거 있을까

    여성들 ‘春情’ 근거 있을까

    봄을 가리켜 ‘여성의 계절’이라고 한다. 옛 말에도 봄을 맞아 설레는 여성의 마음을 표현한 것들이 많다.‘봄바람은 처녀바람이고 가을바람은 총각바람’이라는 속담도 봄엔 처녀 가슴이 설레고, 가을철엔 총각들이 들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성과 봄바람은 실제로 관계가 있을까. ●봄은 여성의 계절 사람과 자연현상이나 사물을 연결짓는 사고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중시하는 동양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음양오행에서 여자는 나무(木)에 속하고 봄은 나무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계절로 풀이된다. 서정범 경희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선조들은 봄을 ‘번식의 계절’,‘여성의 계절’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봄은 식물로 보면 나무(木), 색깔은 청(靑), 방향은 동(東)으로 봄 춘(春)자는 태양이 밑에서 싹을 키우는 모습”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봄바람이란 곧 여성의 생산능력이 왕성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봄XX’가 쇠젓가락을 녹이고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가을X’이 쇠판을 뚫는다.’등 다소 점잖지 못한 속담도 선조들의 사고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춘정(春情), 춘심(春心), 춘풍(春風) 등 봄과 관련된 단어들은 봄을 맞은 여성의 바람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봄바람은 자연스러운 것” 역술인들은 봄이 ‘여성의 계절’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G철학원 엄창용(71)씨는 “역학적으로 여자는 버드나무에 비유되는데, 버드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고 물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면서 “봄이 되면 나무가 물을 만나 파란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여성 역시 봄이 되면 만개한다.”고 밝혔다. 인간 역시 삼라만상의 하나로 봄 기운의 영향은 다른 동·식물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K철학원 김정희(51)씨도 “인(음력 1월), 묘(음력 2월), 진(음력 3월)달에 해당하는 봄은 양기가 강한 시기”라면서 “따라서 봄에는 음양이 조화가 이루어져 여성이 활발해지고 화장도 잘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은 땅(土)에 비유되기도 한다. 봄은 씨앗을 뿌리는 시기인 만큼 많은 남자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김씨는 “나무가 봄기운을 만나서 꽃을 피워 아름다워지면 나비가 달려들게 마련”이라면서 “아름다움으로 시선이 집중되면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만큼 봄이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봄이 여성의 계절인 것 만은 사실이지만 개인차가 있는 만큼 섣부른 일반화는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역술인도 있다.S사 만월(58) 스님은 “남성이면서도 여성의 기운을 가진 사람이 있고, 여성이면서도 남성의 기운을 가진 사람이 있는 만큼 세세히 따져 봐야 한다.”면서 “40% 정도는 이런 부류에 해당하는데, 봄을 맞는 반응이 역술적인 해석과 상당히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르몬 증가와 심리변화가 원인” 의학계에서는 일조량이 늘어나는데 따른 신체변화와 봄이 주는 심리변화가 ‘설레임’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봄이 되어 일조량이 늘어나면 뇌에서 멜라토닌의 분비가 증가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 뇌의 송과선에서 밤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나오는 멜라토닌은 일종의 신경전달 호르몬으로 인간의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하규섭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일부 호르몬은 햇볕을 받으면 분비되는 특성이 있는데 멜라토닌이 대표적”이라면서 “일조량이 늘어나면 호르몬 분비도 왕성해져 기분이 좋아지고 활동량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실제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이면 우울증세를 유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심리적인 변화도 적지않다.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도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 되면 성적인 측면에서 왕성한 활동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사람도 활동적이 되고,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봄을 느끼는데 여성과 남성이 차이가 날까. 아직 검증된 정답은 없다고 한다. 이동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아직은 남녀간 뇌영역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라면서 “남성보다 감성적으로 발달한 여성은 멜라토닌의 분비량 등 변화에 더 민감해 심리적인 반응의 폭이 크다는 것이 의학계의 통설”이라고 전했다. 이 교수는 “그렇지만 현재까지 정신과적 측면에서 가정한 유력한 학설일 뿐 단정하기는 곤란하다.”면서 “특히 남녀의 차이를 명확히 정의내리기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개인 간 차이도 크다.”고 밝혔다. 유영규 박지윤기자 whoami@seoul.co.kr ■ 속담속의 여성 이미지 김소자(51)씨는 똑부러진 성격으로 살림을 알뜰하게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른들은 “여자가 주장이 강하면 집안 일이 되지 않는다.”고 타일렀다. 하지만 요즘 김씨는 주변에서 ‘여자가 나서야 집안이 흥하는’ 대표적 사례로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 속담에서 여성은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곤 했다. 언어학자 김수진(35·경남대 강사) 박사는 “한국속담에서 여성은 대부분 남성보다 열등하게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속담 속에서도 여성이 동물에 비유될 때 더욱 폄하되곤 했다는 것이다. ‘사나운 암캐같이 앙앙 하지 말라.’는 여자는 온순해야 한다는 뜻으로 기가 센 여성을 개에 비유하고 있다. 여성을 닭에 견주면서 비웃는 듯한 표현도 적지 않다.‘양지마당의 씨암탉 걸음’이나 ‘노류장화는 사람마다 꺾으려니와 산닭 길들이기는 사람마다 어렵다.’에서 여성은 각각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씨암탉이나, 자유분방하여 다루기 힘든 산닭으로 비유됐다. 여성을 닭으로 비유한 속담에는 가부장적인 의식이 엿보이는 것도 있다.‘암탉이 울어서 날 새는 일 없고, 장닭이 울어서 안 새는 날 없다.’는 여성과 남성을 각각 암탉과 장닭에 견주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그린다. ‘여자는 사흘을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는 여성을 교활한 특성을 지닌 존재로 그린다.‘여자 속은 뱀창자’라거나 ‘여편네 벌이는 쥐벌이’에서도 여성을 음흉하게 표현하거나 여성의 경제력을 무시한다. 여성의 정조와 관련된 속담으로는 ‘까마귀 학이 되랴.’가 있다. 부정한 여성은 피부색이 검은 까마귀로, 정숙한 여성은 피부색이 하얀 학으로 상징된다. 방운규(47) 평택대 국문과 교수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속담이 남아있다.”며 ‘여자팔자는 시집을 가봐야 안다.’와 ‘여자와 쌀은 칠수록 좋다.’를 예로 들었다.‘여자와 쌀은 칠수록 좋다.’는 속담은 여자는 가꿀수록 보기 좋아진다는 뜻이다. 진민자(61) 청년여성문화원 이사장은 “유교시대에는 여성을 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속담이 이용됐지만 이제는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여성의 지위가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여성비하적인 속담은 설자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종화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는 “속담은 전통사회에서는 하나의 지침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을 낮추는 속담들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나는 생각한다. 고로 독신이다.’라는 신세대 격언처럼 여성은 이제 속담에서 남성과 비교되는 존재로 언급되는 것 조차 혐오하고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20&30] 새내기 사원들 이직바람

    [20&30] 새내기 사원들 이직바람

    ‘취업난을 뚫은 당신, 떠나라?’ 취업난 속에서 어렵게 경쟁을 뚫은 신입사원 사이에 이직 바람이 불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지난 14일 입사 1년 미만의 신입사원 10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무려 75.7%인 768명이 ‘이직을 원한다.’고 답했을 정도다. ●“직장 다녀보니 인생의 가치 깨달아” 사회생활 경력이 채 2년도 되지 않은 이모(29)씨는 직장을 2차례 옮겼다. 그는 서울의 한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하던 2003년 7월 입사한 대기업에 1년 정도 다니다 지난해 9월 증권회사로 이직했다. 증권회사 역시 두 달만에 그만둔 이씨는 이후 공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해 출근을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젊은 시절 회사를 여러차례 옮기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을 나갈 때마다 ‘원하던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합격한 공기업이 그동안의 직장보다 연봉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직장을 다녀보니 내가 바라던 인생의 가치가 높은 연봉보다는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갓 졸업했을 때는 주변에서 하도 취업난이라고 하니까, 합격하면 내키지 않아도 다닐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학 시절에 장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직을 반복하게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아니다.” 싶으면 한 달만에 사표 지난달 대형 정유사에 입사했다가 한 달만에 그만둔 박모(26)씨는 “입사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외부인이 보는 회사와 내부인 눈에 비친 회사는 달랐다.”면서 “폭탄주 문화부터 경직된 사무실 분위기까지 하루도 더 못견딜 것 같아서 사표를 냈다.”고 홀가분해했다. 정유회사는 보험회사 등 3개 업체에 합격한 뒤 고심 끝에 선택한 직장이었고, 출퇴근 시간이나 연봉에도 불만이 없었지만 회사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15일 정도 지난 현재 박씨는 다시 취업 원서를 쓰고 있다. 그는 “그만두었지만 다른 회사를 가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지 않으냐.”면서 “회사 내부 정보를 입사 전에 알 수 없기 때문에 몇 차례 이직을 해봐야 원하는 회사를 고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박씨는 이직에 대한 두려움도, 죄의식도 전혀 내비치지 않았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기대감은 사라진 듯 보였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이같은 이직바람이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의 정체성 위기”라고 진단했다. 심리학적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정체성 위기는 사춘기와 중년에 찾아온다. 곽 교수는 “10년 전 연구에서, 한국인들은 중·고교 시절에 위기감을 경험하는 외국과 달리 대학시절에 정체성을 고민하는 양상이었다.”면서 “몇년 전만 해도 대학생이 직장을 갖게 되면 자아 정체감이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요즘에는 취업에서 오는 갈등이 오히려 정체성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정체성 위기가 변화를 즐기는 신세대들의 특징과 맞물리면서 신입사원의 이직 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업 전문가들 역시 출세에 대한 압박, 구직활동 기간에 겪는 좌절감, 입사한 뒤 생소한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입사원들은 이직충동이 생기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취업 조사기관 헤드헌터포럼의 김재윤 이사는 “인터넷으로 원서를 쉽게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곳에 원서를 낸 뒤 한 곳에 붙으면 무작정 입사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라면서 “이들은 대학 동기 등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연봉이나 대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불만을 터뜨리고 참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원치 않는 이직…좌절감 키워 지난해 대구에 있는 대학의 유전공학과를 졸업한 김모(24·여)씨는 학습지 교사 일을 1년째 하고 있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이 원대하지 않았다.”면서 “결혼할 때까지 착실하게 돈을 벌고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고 구직에 나설 당시를 회상했다. 낙관적인 성격인 김씨는 “한달에 130여만원의 월급은 많지 않지만 교사 일 자체에는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학습지 교사의 신분 문제가 불거지면서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면서 “대학 때도 나가지 않았던 시위에 참가하고 보니 내 처지가 궁색하게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김씨는 결국 직업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사회에 나가면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았지만, 결국 첫 직장에서 실패를 맛보고 있다.”면서 “내가 일에 만족한다고 직장생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곽금주 교수는 “신입사원의 잦은 이직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아 정체감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좌절을 맛본 이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이라면서 “회사 상사나 동료, 가족 등과 함께 이 시기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윤 이사는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3년 이상 해야 경력이 쌓이고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생긴다.”면서 “이직으로 현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은 개인의 업무업적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이직충동 다스리려면 ▲3년은 지나야 경력이 된다.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직장이라면 과감하게 이직하라. 하지만 당장 일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직을 결심해서는 안된다. 직장에 적응하는 1년과 업무에 익숙해지는 1년, 업무를 자신의 능력으로 만드는 1년의 시간을 가진 뒤 차분하게 이직을 생각하라. ▲연봉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연봉보다는 회사에서 쌓을 수 있는 경력에 집중하라. 같은 업계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라면 당장의 조건으로 이직하는 것보다는 처음에 선택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알차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라. -신입사원들끼리 정보를 구하면 처지를 비교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직을 하고 싶다면 구체적인 정보를 줄 수 있는 업계의 선배와 상의하라. ■ 김재윤 헤드헌터포럼 이사 ■ 대학교수들이 권하는 ‘신입생 새출발 이렇게’ 똑같이 출발하고도 결과는 다른 것이 ‘인생’이라는 마라톤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이 중요한 것도 새로운 레이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버릇없는 젊은이가 미래를 연다’(오늘의 문학사)는 인생의 대선배들이 대학 새내기에게 주는 충고이다. 집필에 참여한 한남대 교수 34명은 대학생활에 필요한 조언뿐 아니라 젊은 날의 고통스러운 기억 등도 진솔하게 소개했다. 마치 자네들은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듯…. 이문균 기독교학과 교수는 신입생들에게 ‘미래 이력서’를 작성해 보라고 권한다. 이 교수는 한남대 총장을 지낸 이원설 박사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박사가 대학시절 만든 ‘미래의 이력서’가 지나온 세월과 거의 일치해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졸업은 4학년 때가 아니라 입학하는 순간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곤 유럽어문학부 교수도 “소나무 숲 벤치에 조용히 앉아 미래의 스케줄을 만들어보라.”고 권고했다. 힘들었던 대학생활의 진솔한 회고도 있다. 박영환 국문과 교수는 “30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나를 몰랐다. 나는 모든 것에 무지했다. 술을 달고 다니며 철학과 신학 책을 게걸스럽게 훑고 문화와 예술을 집적거렸지만 마음은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방황하며 번민하고 비애와 고독을 처절히 맛보며 지낸 대학생활을 또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박 교수는 “고통스러운 대학생활을 피하고 싶다면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고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라.”고 일깨웠다. 정기철 문예창작과 교수는 시인 T S 엘리엇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긍정적으로 사고하라고 충고했다. 엘리엇이 공원에서 야구시합을 하고 있는 소년에게 “지금 이기고 있니?”라고 묻자 소년은 “아니오.15대0으로 지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적잖이 당황한 엘리엇에게 소년은 “우리 팀이 아직 한번도 공격을 하지 않은 걸요.”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1회초에 15대0이면 이미 시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지만 소년은 자기 팀의 공격에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어렵거나 힘들어 형편없는 내 모습에 실망할 때 이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선택을 잘못해서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는 드물고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 실패할 뿐”이라고 일깨웠다. 이달 기독교학과 교수는 “희망을 멀리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당부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이 비춰진다는 것이다. 배정열 일문과 교수는 희망과 용기를 얘기했다. 그는 “아기가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나는 것은 하느님께 받은 귀중한 선물을 놓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서 “하나는 희망이며 다른 하나는 용기”라고 말했다. 또 김균태 국문과 교수는 “기왕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미친 듯이 해보라.”고, 미사토 아키코 일문과 교수는 “혼자서 배를 조종하지 말고 함께 할 친구를 찾아 인생의 여행을 떠나라.”고 조언했다. 김용환 문과대 학장은 “젊음의 무모함과 시행착오는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서 “새내기들이 용기와 비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밝혔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대학사회 친일청산 ‘열병’

    고려대 총학생회가 일제 강점을 합리화한 한승조 명예교수의 기고문 파문과 관련, 전·현직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조사·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사 기간이 너무 짧고 검증 기준이 명확치 않아 자칫 성급한 여론몰이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한승조 명예교수 기고문 파문계기 고려대 총학생회는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행적이 뚜렷한 교수들의 명단을 이달 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학생회장을 위원장으로 ‘일제잔재청산위원회’를 만들어 14일부터 전·현직 교수와 교직원 등 친일 인물에 대한 고발을 접수하기로 했다. 이어 친일문제 전문가와 전문연구소의 자문을 얻어 행적을 조사한 뒤,28일 1차로 친일인사 명단과 친일 활동 내용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총학생회는 “학교측은 한승조 개인의 소신 문제로 학교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 잔재를 파헤치고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훈(국문과 4학년) 집행위원장은 “최대한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다. 먼저 조사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8월 친일파 명단 발표를 앞두고 있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도 아직 친일파의 개념과 범주를 확정하지 못했다.”면서 “2주일이라는 조사 기간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검증절차도 결정된 것이 거의 없는 데다 학문·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난도 예상된다. 그러나 유지훈 집행위원장은 “학문·사상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이 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일 행적까지 확인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신중하고 지속적인 검증으로 국민의 공감과 타 대학의 연계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유정화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학내 과거사 청산 계획은 없지만 논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한울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논의해볼 가치는 있다.”면서도 “구성원의 공감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면 갈등만 증폭될 수 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자유게시판·교수들 의견 분분 구성원의 의견은 분분하다.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글과 댓글이 잇따르고 있다.‘daybyday’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며 발전의 계기”라며 환영했지만 ‘law-son’은 “친일에 대한 개념 정의는 제대로 하고 있으며, 명단에 포함된 교수들의 명예훼손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꼬집었다. 교수들은 상당히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경영학과의 한 교수는 “과거 청산 문제가 학생회 단위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인가 의구심이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법학과의 한 교수는 “문제점도 보이고 학생들의 열정도 이해는 되지만 일단 지켜볼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언젠가는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를 학내에서 본격 토론하게 된다는 긍적적 효과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충분한 조사나 검토 없이 일방적인 공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하 한 사람의 행적을 추적해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근대사에 대한 충분한 근거와 논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진정한 토론과 논쟁,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내는 발전적 자세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책꽂이]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실비나 오캄포 지음, 김현균 옮김, 열림원 펴냄) 라틴 환상문학 계보의 선두에 선 아르헨티나 여성작가 실비나 오캄포의 대표단편선집. 아직 국내엔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문학적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여성과 어린이 등을 중심에 내세워 독특한 서사형식을 구축한 작가로 평가된다. 라틴 페미니즘 문학의 전형을 확인해볼 수 있다.1만원. ●춘향전(조경남 지음, 설성경 옮김, 책세상 펴냄) 남원부사의 아들인 실존인물 성이성을 주인공 이몽룡의 모델로 삼은 ‘원춘향전’. 지은이 조경남은유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가상인터뷰를 통해 원작자 조경남이 직접 ‘춘향전’의 집필배경과 성이성이란 인물에 대해 밝히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성이성이란 인물을 모델로 ‘원춘향전’을 창작했다는 것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의 학설이다.5900원. ●어디서나 보이는 집(이동순 외 지음, 선 펴냄) 체제경쟁이 치열했던 1970년대 북한문학의 좌표를 추적한 책. 시와 소설, 관련 논문, 낱말풀이 등이 실렸다. 영남대 북한문학연구팀이 엮었다.1만 8000원. ●꽃인 듯 눈물인 듯(김춘수 지음, 예담 펴냄) 지난해 타계한 김춘수 시인이 생전에 직접 가려뽑은 대표시 53편에 화가 최용대의 그림들이 나란히 실렸다. 초기작부터 타계 직전에 쓴 미발표작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화집.1만 1000원. ●은빛낚시(이순원 지음, 이룸 펴냄) 소설가 이순원의 첫 수필집.2003년부터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주제별로 ‘손바닥 소설’처럼 간추려 묶었다. 가족, 추억, 이웃, 세태 등 4개 주제 아래 엮인 글들에서 작가의 소박한 생활철학이 읽힌다.1만 1700원. ●한국현대작가의 시야(조남현 지음, 문학수첩 펴냄) 개화기 이후 지금까지 국내 소설가들의 모습을 ‘글을 써서 생업을 도모하는 직업인’‘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니거나 알리는 이데올로그’‘사상가를 지향하는 지식인’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저자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1만 5000원.
  • [책꽂이]

    ●내 아내의 모든 것(김연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미성년’ 등을 내놓았던 여성작가 김연경의 새 소설집. 올해로 등단 10년째인 작가는 러시아 유학 중에 써모은 새 작품집에서 진부함과 범속함을 가장해 우리 삶의 지리멸렬한 통속성을 에둘러 까발렸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자의 고통이 환상문법으로 묘사된 표제작 등 9편의 단편이 묶였다.9000원.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신대철 지음, 창비 펴냄) 국민대 국문과 교수인 신대철 시인이 제4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이후 5년 만에 시집을 냈다. 군 복무 시절 최전방에서 북파공작원을 북으로 보냈던 기억을 구체적으로 풀어놓는 등 아픈 체험을 술회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영남대 독문과) 교수는 “그의 시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듯한 극한의 지점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고 평했다.6000원. ●왜 쓰는가?(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어린 시절 열렬히 좋아하던 야구선수를 우연히 만났으나 연필이 없어 사인을 못 받은 게 한이 되어 늘 펜을 지니고 다녔고 그 습관 때문에 작가가 됐다는 폴 오스터. 도회적이고도 감성적인 언어로 미국 문학을 대표한다는 그가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작가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털어 놓은 자전적 에세이집. 생활 속 경험담 위주여서 부담없이 그의 작품세계에 접근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듯하다.6500원. ●잔혹한 계절, 청춘(다자이 오자무·오에 겐자부로 외 지음, 이유영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오에 겐자부로, 다자이 오사무, 이시하라 신타로, 마루야마 겐지 등 일본 대표작가 10인의 단편 묶음. 청춘을 주제로 한 10편의 단편소설들에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두운 내면의식이 투사됐다. 무라카미 류, 사카구치 안고, 후루야마 고마오 등 11명의 성(性)을 주제로 한 단편집 ‘슬픈 집착, 성애’도 함께 나왔다. 각권 9500원.
  • “넉살로 괴로움 넘는 동화적 상상력 담아”

    “달마 그림의 근본은 동화적 상상력입니다. 하늘의 별을 손짓해 불러낼 수 있는 그런 상상의 힘이 필요한데, 워낙 거칠게 살아온 인생인지라….” 3월2일부터 서울 관훈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지는 꽃 피는 마음, 김지하의 달마’전을 여는 시인 김지하(64)씨는 “새벽에 눈을 뜨면 자동적으로 먹에 손이 갈 정도였는데 이제 힘겨운 내 붓끝을 보니 권태가 찾아온 것 같다.”며 이번 달마전이 마지막임을 암시했다.25년 넘게 난과 달마를 그려온 김씨는 “난초 그림은 선비가 되는 훈련이고, 달마도는 스님이 되는 훈련인 만큼 거기엔 한 갈래 권태의 기미도 스며들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달마도는 원래 선승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로 선화(禪畵)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한국 달마 그림의 전형으로는 흔히 달마의 강렬한 인상과 고도로 응축된 내면세계를 간결하고 힘찬 필치로 그려낸 연담 김명국의 달마도를 꼽는다. 이번 전시에서 김씨는 이와는 사뭇 다른 파격의 달마상을 선보인다.“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식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정형화한 달마를 어떻게 깨부수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씨는 자신의 달마 그림의 특징은 “붓끝을 동글동글 말아가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내놓을 작품은 최근 그린 달마도 60여점. 슬픔을 기쁨으로, 아픔을 익살로, 괴로움을 넉살로 이겨내게 하는 ‘서정적인’ 달마의 형상을 담았다. 특히 춤추는 달마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샛바람 불면 매화춤 추리’는 스님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정에서 부대끼며 아옹다옹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에 가깝다. 김씨는 군사독재시절 옥고를 치른 뒤 지친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생명운동가 무위당 장일순 선생으로부터 난 치는 법을 처음 배웠다. 그 뒤로 지금까지 그린 난초와 달마 그림은 무려 4000∼5000점. 하지만 김씨는 이제 ‘언필칭 달마’ 그림을 그만 그리려 한다.“나의 달마도가 혹시나 ‘만화’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내 글씨가 약하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쓴 자작시 서예 쪽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김씨는 사실 철저한 국한문혼용론자다. 서양미학 책에 라틴어가 자연스레 등장하듯 우리도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공동 창조물인 한자를 반드시 섞어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현재 월드컵을 뜨겁게 달군 붉은 악마를 소재로 한 동화책도 쓰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월13일까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다시 교단에 서는 양성우 시인 7시간 격정 토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다시 교단에 서는 양성우 시인 7시간 격정 토로

    ‘내일일까, 모레일까, 눈물 맺힌 30년 세월∼’. 누군가 말했다, 기다림은 차라리 고통이라고. 그렇게 30년을 지냈다. 이제 돌아가려 한다. 그곳은 어머니의 품이다. 태어나 뒹굴었다. 함께 울고 웃었다.‘품’을 떠난 뒤 강산이 세번 변했다. 파란과 곡절, 무수한 격동의 그림자를 관통했다. 돌이켜봐도 손바닥만한 가슴으로 꽁꽁 부둥켜안아야 했던 세월이었다. ●75년 시 ‘겨울공화국’으로 광주중앙여고 파면 2월 초였다. 그날따라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한 시인이 학교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게 덮인 눈, 서산대사가 걸어갔듯이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그렸다. 시계바늘을 30년 전으로 돌렸다. 농성하던 3학년 학생들이 거울처럼 투영됐다.‘겨울공화국’이 뇌리에 생생하게 스친다.‘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영화 ‘일 포스티노’의 마지막 대사.‘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며 읊었다. 시인 양성우(62). 요즘처럼 설렌 적이 있을까.30년만에 찾아온 ‘아주 특별한 귀향’을 맞이하고 있다.1975년 2월12일 ‘겨울공화국’이란 저항시를 낭독, 광주중앙여고에서 파면당했다. 이후 온몸으로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투옥·고문·도피의 세월을 보냈다.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광주중앙여고측에 양씨에 대한 복직권고 결정을 통보했다. 학교 측도 복직 절차에 들어갔다. 늦어도 한달 이내에 다시 교단에 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 마포에 위치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양씨를 만나 7시간 동안 ‘격정’의 인터뷰를 했다. 그는 먼저 1월말 학교측에서 연락이 와서 2월초 광주에 내려가 재단(금호·아시아나)이사장과 교장, 그리고 행정실무자 등을 만났다고 했다. 다들 흔쾌하게 양씨의 복직의사를 받아들였다고 귀띔했다. 특히 30년전 같이 근무했던 동료 교사들이 아직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고 부연했다. 또 이같은 사실이 언론 등에 보도되자 당시 제자들로부터 많은 축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광주중앙여고의 ‘총각 시인 선생님’이었던 그는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학생들로부터 ‘오빠’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장남이 해직기자였던 당시 교장은 양씨를 파면할 때 “(아들 생각으로)내가 차라리 감옥에 가고싶은 심정.”이라며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학생·학부모 선동 이유 사찰로 유폐 양씨는 그해 4월15일 학교측으로부터 파면통고를 받자마자 중앙정보부(중정) 광주지부로 연행됐다. 중정 요원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를 선동했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장시간 조사를 받은 양씨는 구례군 지리산 ‘천은사’로 유폐된다. 경찰 2명이 보초를 세워 출입을 통제했다.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면회객들이 줄을 이었다. 광주중앙여고 학생은 물론 서울의 대학생들까지 단체로 면회를 왔다. 양씨는 그해 연말 시인 고은씨한테 ‘사람 많은 곳에서 숨어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고은씨는 곧장 천은사로 내려와 한밤중에 양씨와 함께 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서울에 온 양씨는 흑석동 중앙대 정문 입구에 2평짜리 쪽방을 얻었다. 쪽방 벽면 너머는 다방이었다. 때문에 날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들어야만 했다. 또 다방은 동료문인들이 모이는 아지트였다. 황석영·이문구·고은·이시영씨 등이 찾아와 문학을 얘기하고 군사독재를 비판했다. 중앙대 문창과 학생들도 단골로 찾아왔다. 그러던 하루는 한양대 이영희 교수가 불렀다. 중국문제연구소에서 촉탁직원으로 일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춥고 배고팠던 양씨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구소 소속 교수들의 논문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 일이었다. 양씨는 이 무렵 장편시집인 ‘노예수첩’을 썼다. 이는 당시 재야권 인사들에게 수천부씩 복사되어 언더그라운드 페이퍼로 읽혀졌다. 얼마후인 1976년 남산(중정)의 4국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재야권에 음성적으로 떠돌던 ‘노예수첩’이 일본의 ‘세계(世界)지’에 게재된 것. ●한달간 고문 국제 간첩단으로 몰려 한달간 고문 끝에 양씨는 ‘양성우 국제간첩단 사건’의 장본인으로 발표된다. 양씨와 만났던 미국인 캐서린 엘리자베스(여성민권운동가)와 폴 슈나이스(독일인 목사), 일본의 다카사키 소지 교수 등이 입국금지됐다. 양씨는 곧 재판에 회부됐다. 죄목은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9호 위반’이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그는 6개월간 재판을 받는다. 이때 옥중에서 박정희 정권타도에 앞장섰다는 죄목이 더 추가됐다. 결국 5년형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됐다. 면회는 절대금지였다. 때문에 변호를 맡은 홍성우 변호사와 고은씨 등 지인들은 옥중결혼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마침 양씨는 수감되기 전 정정순(현재의 부인)씨와 사귀고 있었다. 반대할 것으로 예상됐던 정씨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했고 유일하게 면회를 할 수 있는 직계 가족이 됐다. 양씨는 농섞인 말로 “결혼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깨갱’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집사람은 그 일로 고향인 광주집에서 쫓겨났다.”면서 (부인이)처녀의 몸으로 옥바라지한 경험담을 ‘때가 오면 그대여’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했다고 귀띔했다. 결혼식은 출소 후 이문구씨의 사회와 박형규 목사의 주례로 올렸다. 양씨는 수감 중 찬 감옥방에서 지내느라 하반신에 악성종양을 얻어 영등포시립병원에서 수술대에 누웠다. 이때 이문구·조태일·박태순씨 등 문인들이 단체로 몰려와 “저항시인 양성우를 석방하라.”며 연일 데모를 벌였다. 탄원도 계속됐다. 양씨는 2년6개월 만에 출소했다. 수감생활 중 성경책의 여백에 못으로 꾹꾹 눌러 옥중시집 ‘북치는 앉은뱅이’를 썼다. 5·18 때에는 지명 수배돼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시인 신경림씨의 도움으로 가끔 서울에 올라와 세종문화회관 뒤쪽 ‘항아리집’에서 동료들과 비밀리에 만났다. 모이는 사람은 주로 염무웅·백낙청·이호철씨 등이었다. 항아리집 여종업원들은 프랑스의 물랭루즈처럼 운동권 인사들에게 음성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고 양씨는 회고했다. “고은·조태일씨, 그리고 이영희 교수 등도 저를 돕다가 옥살이를 했지요.5·18후에는 문단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됩니다. 또한 자유실천문학인협의회를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꾸는 등 민주화 운동에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지요.” ●87년 잠시 정치권 외도 그는 6월항쟁 때 이한열군이 사망하자 ‘꽃상여 타고 그대 잘가라’는 추모시를 써 민주화운동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후 87년 대선 때 “법과 제도를 민주적으로 고치기 위해선 현실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주위의 끈질긴 권유로 정치무대로 잠시 외도한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철길’이라는 소설로 ‘학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때 4·19시위를 주도하는 등 일찍부터 민주화 운동에 가담해 파란많은 인생역정의 길을 걸었다. 요즘 시작(詩作)에 전념하고 있다는 그는 “정년이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역사에 떠밀려간 30년의 세월을 매듭짓고 싶다.”면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보약이 되는 얘기를 많이 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 하반기에 신작 시집을 출간한다. 그의 시 가운데 ‘혼자 떠나는 새’ 등 10여편은 이미 가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3년 전남 함평 출생. ▲60년 조선대부속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 4·19시위 주도 ▲61년 민통련 호남지역 고등학생 총연맹 회장으로 활동.5·16 직후 광주교도소 수감 ▲62년 학다리고등학교 편입. 학원문학상 소설당선 ▲63년 전남대 국문과 입학 ▲70년 ‘시인’에 ‘발상법’과 ‘증언’으로 등단. ▲71년 전남대 국문과 졸업 ▲71∼72년 학다리고 교사 ▲72∼75년 광주중앙여고 교사.‘겨울공화국’ 사건으로 교사직 파면 ▲76년 대한성서공회 문장위원 ▲77년 ‘노예수첩’으로 투옥 ▲79년 8월 가석방 ▲84년 자유실천문학인협의회 대표 ▲85년 서울민통련 중앙위원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 ▲88년 제13대 국회의원(평민·서울 양천구) ▲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 시집 발상법, 신하여 신하여, 겨울공화국, 북치는 앉은뱅이,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넋이라도 있고 없고, 노예수첩 등 km@seoul.co.kr
  • 문신, 예술이냐 혐오행위냐

    문신, 예술이냐 혐오행위냐

    ‘개성을 표현하는 예술인가, 불법 의료행위인가.’온라인 상에서 문신(文身)작가 100여명이 버젓이 활동하고, 신체의 한 부위에 문신을 한 사람이 50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신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을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다. 문신작가들의 합법화 주장과 문신에 대한 편견, 외국의 사례와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조금 아프죠.” “…아니요. 참을 만한데요.” “오른쪽 종아리에 유난히 신경세포가 쏠려 있네요.1시간만 더 하면 끝나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16일 오후 서울 시흥동 문신작가 이모(28·여)씨의 스튜디오.3시간째 ‘윙’ 하는 문신 기계 타투건의 굉음이 경쾌한 랩 음악과 함께 인체해부도와 탱화들 사이로 날아다니고 있다. 대학생 홍모(24)씨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수술대 옆에는 잉크와 피가 섞인 검붉은 솜이 수북하게 쌓였다. 잠시 뒤,‘넓고 진실되게 살겠다.’는 뜻의 ‘진홍(眞弘)’이라는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을 마친 이씨는 소독약과 바셀린으로 소독을 끝낸 뒤 ‘작품’을 랩으로 쌌다.“내가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그럼 제가 대모(代母)가 되는 셈이네요.” 10평 남짓한 스튜디오는 홍씨와 이씨의 웃음으로 가득찼다. 홍씨가 문신을 새기기로 결심한 것은 1년 전.‘편협한 자아를 버리고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삶을 지향하겠다.’는 신조를 평생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지난해 봄에 인터넷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문신은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문신의 형태와 시기를 조율했다. 결국 지난 연말 초안이 탄생했다. 홍씨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는 스스로의 신조와 의지를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면서 “문신이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문신 인구 50만명 넘을 듯 문신은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와 의료법 제25조에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신은 이미 일반인들 가까이에 있다. 온라인에서만 100명이 넘는 문신작가가 활동하고 있다. 문신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싸이월드(cy world.com)에는 100여개의 문신 관련 미니홈피가 개설돼 있을 정도다. 문신은 몸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그만큼 종류도 다양하다.▲명암의 차이를 극대화한 ‘블랙앤그레이’ ▲파란색과 주황색 등 보색의 대비를 극대화한 ‘뉴스쿨’ ▲빨강과 노랑, 파랑 등 원색을 주로 사용하는 ‘올드스쿨’ 등 10가지가 넘는다. 가격은 손바닥만 한 크기가 20만원선. 등에 하는 큰 문신은 수백만원대를 호가한다. 그러나 문신 기법이 세밀할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기간도 문신의 크기와 기법에 따라 짧게는 서너시간에서 길게는 십수년까지 걸린다. 문신작가는 보건범죄특별법으로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의료법으로는 5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정도로 과중한 형벌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경의 단속은 전혀 없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 관계자는 “지난해 구속된 문신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면서 “대부분 구속 사안도 아니어서 단속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불법 의료행위인가 예술인가. 문신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3년 6월 김건원(본명 김유미·30·여)씨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후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 가수 신해철씨 등 많은 이들이 탄원서를 내고 ‘타투법제화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추진위는 의료법과 보건범죄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안으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여 또다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추진위가 주장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헌재에 낸 의견을 통해 “문신은 국소 마취한 채 색소침윤술로 색소를 피부에 착색하는 의료행위”라고 밝혔다. 추진위는 이에 대해 문신은 마취를 하지 않고, 색소침윤술이 의료행위라면 머리카락의 염색도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반박한다. 범죄와 형벌을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의사만이 문신을 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최경일 사무관은 “문신이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사회적 통념이 굳어지고, 헌재에서 그런 결정이 나면 모르겠지만 다른 대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합법화 전망 밝지 않아 문신이 합법화될 전망은 지금으로서는 밝지 않다. 헌재가 ‘소수’의 ‘문화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보다는 의료계 ‘다수’의 ‘공중 보건’에 손을 들어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문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일반’의 통념도 걸림돌이다. 이에 대해 많은 문신연구자들은 별다른 단속도 안 하면서 문신을 금지하기만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국처럼 일정한 위생 기준을 마련하고, 자격이 있는 시술자에게 면허를 부과하는 게 표현의 자유와 공중 위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문신연구가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법으로 묶어둔다고 해서 문신이 안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사들이 현재 문신 시술을 하는 것도 아니다.”면서 “문신 시술가들에게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게 해 양성화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 외국선 어떻게 문신(tattoo)은 말 그대로 몸에 글씨나 그림, 무늬 등을 새겨넣는 행위를 말한다. 피부나 피하조직에 상처를 내서 물감을 넣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그리기만 하는 보디페인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기능이 아닌 예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형 문신과도 구별된다. 문신은 종교의 기원과 그 궤를 같이한다. 원래 주술적이면서도 전투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청동기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문신은 1991년 알프스 산에서 냉동된 채 발견된 사냥꾼에서 확인됐다. 기원전 3300여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집트에서 번성한 문신은 크레타 섬을 통해 유럽으로, 페르시아를 통해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됐다는 게 통설이다.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다. 삼한시대에 문신의 풍습에 대한 기록이 있을 정도다. 문신이 부정적으로 낙인찍힌 것은 기독교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기독교는 공식화되자마자 민간 신앙에서 널리 행해지던 문신을 ‘악마의 상징’으로 배척했다. 구약성서 레위기 19장 28절에 “너희 몸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지 말라.”고 기록됐을 정도다. 이후 문신은 폴리네시아와 북미 지역을 제외하고 노예나 중범죄자들에게나 행해지는 치욕의 상징이었다. 문신이 다시 등장한 것은 17세기 이후. 다른 대륙 ‘원주민’들과의 접촉이 계기가 됐다. 이후 직업적 타투이스트들이 등장하고,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문신을 받을 정도로 어느 정도 보편화됐다. 일본에서는 17세기 말 이후 범죄자들 사이에서 장식용 문신이 유행하면서 퍼졌다.‘조폭=문신’이라는 등식도 여기서 나왔다. 현재 문신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문신은 유럽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서도 예술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에서도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오클라호마 등 2개 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합법화돼 있다. 뉴욕주 등 11개 주는 면허제도와 위생 기준 등으로 규제를 하고 있고, 나머지 주들은 제한을 전혀 두고 있지 않다. 미국공중보건부(DPH)나 미국식품의약청(FDA) 등 위생당국에서도 문신이 위생적으로 이뤄지면 에이즈나 B형·C형 간염 등에 감염될 위험이 “매우 적다.”고 밝히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유신비판 파면 양성우 시인, 교사 복직신청

    1970년대 유신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직을 떠나야 했던 양성우(61) 시인이 교사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복직요구서를 제출해 결과가 주목된다. 양씨는 14일 “최근 학교법인 죽호학원(광주중앙여고)에 ‘복직신청서’를 냈다.”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만큼 부당 파면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꼭 복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단을 떠난 뒤 여러 차례 복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며 “이번에는 국가가 파면의 부당성을 인정한 만큼 반드시 복직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학교측은 “현재 교사 정원에 여유가 없고 30년간의 보상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그의 복직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남 함평 출신인 양씨는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광주중앙여고에 재직하던 75년 2월 광주YWCA에서 열린 시국집회에서 저항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했다가 유신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당했다. 교단을 떠난 양씨는 77년 장편 ‘노예수첩’을 일본 월간지 ‘세카이’에 실었다가 구속됐다.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서 활동하며 창작에 몰두해 ‘북 치는 앉은뱅이’‘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 등 시집 12권을 냈다. 그는 88년 평민당 소속으로 13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갑)을 지냈지만 한때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정치행로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부고]

    ●오윤관(스포츠서울 편집부장)씨 조모상 5일 전남 영광종합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30분 (061)351-1621 ●김종국(전 한국은행 인사부장)종철(전 주택은행 지점장)종원(전 금호석유화학 부사장)씨 모친상 변용성(을지대학병원 치과과장)윤주일(재미 사업)씨 빙모상 6일 한양대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2)2290-9459 ●신현목(성균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현양(삼성물산 건설부문 토목부장)현수(봉은중 교사)현임(대한약사회 약사)씨 모친상 이오봉(월간조선 사진부장)씨 빙모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1 ●유덕윤(전 덕성화학 전무이사)씨 별세 진용(LG텔레콤 직원)씨 부친상 6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660 ●정만기(약사)찬기(한전 KDN 차장)광용(연합뉴스 월간부 부장대우)씨 부친상 5일 부천 가톨릭성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32)340-7307 ●강민구(문화일보 편집부 차장)씨 부친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2072-2032 ●하윤상(삼성SDS 대리)씨 부친상 종필(포스코 광양제철소 부관리직)종수(LG LNS 부장)씨 형님상 종숙(성신여대 과장)씨 오라버니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64 ●권순호(세명자동차 대표)순일(한나라당 사무총장 보좌역)순우(대한제당연구소 선임연구원)씨 부친상 5일 경북 영천 중앙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4)338-4401 ●최현종(삼진FAN 대표)현생(현대모비스 차장)현태(대한전문건설협회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협의회 사무국장)씨 모친상 오평세(천안여고 교사)이공우(현대금속 대표)신민범(삼진상사 〃)씨 빙모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9 ●전상선(선오건설 상무)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54 ●엄순성(한국지구교역처 구매관)창기(영지기업 대표)씨 부친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5 ●강정일(대신강업 대표)씨 별세 강우성(대신강업 대리)영길(주식회사 씨아이 실장)씨 부친상 고현택(대신강업 부장)김상우(삼일회계법인 S.A)씨 빙부상 강영택(씨아이 대표)씨 형님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4 ●이구연(주식회사 새길로 대표)광연(한국청소년장애인총연합회 총재)무용(오연자원개발 대표)인연(울터두부마을 〃)씨 모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2 ●신덕균(캐나다 거주)창균(호주 〃·의사)철균(로열컨설팅 대표)씨 모친상 김부남(광진제약 대표)이기학(전 로커스디에스 고문)씨 빙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2)3010-2236 ●한기웅(미국 거주·화공학박사)기호(주식회사 엘씨엠 대표)경숙(한경숙안과 원장)씨 모친상 이계용(산부인과 원장)씨 빙모상 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352 ●박귀하·일하(사업)형근(삼보컴퓨터 과장)창수(사업)씨 부친상 김영기(사업)정한주(고양 사랑의교회 목사)정윤용(현대자동차 과장)김용복(한솔화학 〃)씨 빙부상 6일 안산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9시30분 (031)438-4541 ●손희남(KTF 차세대연구소장)씨 부친상 5일 천안 순천향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41)578-1499 ●박동윤(충남도의회 의장)씨 상배 6일 충남 태안보건의료원, 발인 8일 오전 9시 (041)675-3523 ●박찬기(명지대 정외과 교수)씨 모친상 이은우(대거전자 전무)씨 빙모상 6일 대구 보광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53)527-1027 ●이상화(코콜스포츠 대표)미선(추계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30분 (02)3010-2265 ●임종수(저작권협회 평의원)씨 상배 지선(작곡가)지상(학생)씨 모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2)3410-6912 ●이종은(육군 대령)종묵(서울대 국문과 교수)종헌(UPI 지국장)씨 모친상 장문재 이상태씨 빙모상 6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53)959-4441
  • [N언어-제3의 언어인가] “키보드로 얘기하는데 표준말?…띰띰하죠”

    [N언어-제3의 언어인가] “키보드로 얘기하는데 표준말?…띰띰하죠”

    N시대에는 ‘말짱’이 뜬다. 서울신문은 N세대에게 인터넷에서 N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인식되지만 반대로 표준어를 쓰는 사람은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지난 10∼14일 대학생 20명을 대상으로 MSN메신저로 실험을 했다. 참여한 대학생들은 실험 의도를 모른 채 20분 동안 N언어 사용자, 표준어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나눈 뒤 10개 항목을 놓고 친밀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각 평가 항목은 5점 만점으로 측정했다. “구어(口語)와 문어(文語)가 다르지만 함께 사용되고 있듯이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인터넷 언어를 이제는 제3의 언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N언어를 한글 파괴라고 보는 몇몇 한글학자들과는 달리 언어·사회·커뮤니케이션학자들은 또 하나의 언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어란 한 시대의 생각과 문화를 반영하는 만큼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변하면 언어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언어가 1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면 문자는 이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말과 글은 서로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국에서 붓글씨가 발달한 것도 종이가 생겨난 이후”라면서 “문자는 무엇으로 어디에 기록하느냐에 따라 기록 형식이 변한다.”고 설명했다. 컴퓨터가 의사소통 도구로 사용되는 시대에는 문자 형태가 키보드로 기록되기에 적합하게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박동근 한글학회 연구원은 인터넷에서 기존의 언어체계가 변하는 것은 문자로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와 달리 미묘한 감정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글자를 소리나는 대로 적거나 이모티콘을 사용해 자신의 느낌을 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언어의 출현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는 학자들은 이를 N세대만의 독특한 놀이문화와 또래문화로 해석한다. 김광해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기성세대와 N세대가 컴퓨터라는 뉴미디어를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가 인터넷 언어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40∼50대에게 컴퓨터는 일의 능률을 올려주는 신기술이자 공부해서 익혀야 하는 신매체로 인식된다. 그러나 N세대에게 컴퓨터는 생활이고 놀이터이다. 김 교수는 “N세대에게 인터넷 환경은 놀이공간이며 여기서 사용되는 언어는 놀이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미인데 N세대는 인터넷 언어를 만들어 쓰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재미로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최정은정 사이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인터넷 언어 때문에 세대간의 단절이 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또래집단을 형성하고 문화적으로 기성세대와 분리되길 원하는 상황 때문에 의사소통이 단절된다.”고 강조했다. N언어를 N세대의 청년문화로 보기도 한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는 N세대는 장발과 미니스커트로 상징되는 70년대 청년문화와, 활발한 사회참여 의식을 보였던 80년대 386세대의 문화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강옥미 조선대 국문과 교수는 인터넷 언어의 출현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본다. 강 교수는 “인터넷 언어에서는 일정한 규범 없이 문자가 분리되고 해체되는 현상을 볼 수 있으며 탈규범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효연 나길회기자 belle@seoul.co.kr
  • [N언어-제3의 언어인가] 한글, 인터넷언어에 강하다

    훈민정음은 N시대에도 강하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의 언어가 변형되는 현상은 한글뿐만 아니라 기타 언어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한글은 영어나 일본어보다 문자의 형태 변화가 더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문자의 독특함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박동근 한글학회 연구원은 인터넷 언어가 활발하게 변화하는 것은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강조한다. 영어의 a는 때에 따라 ‘(아)’,‘(어)’,‘(애)’로 읽히지만 한글의 모음 ‘ㅏ’는 항상 ‘아’로 소리 난다. 박 연구원은 “한글은 하나의 문자가 하나의 발음만 갖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소리나는 그대로 글자를 쓰기가 영어보다 훨씬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초·중·종성 구조… 변형해도 의미통해 한 음절이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루어진 한글의 특징이 언어 유희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하다는 견해도 있다. 박현구 창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영어는 알파벳 하나하나를 나열해 단어를 만들기 때문에 철자가 하나만 틀려도 완전히 다른 뜻의 단어가 된다.”면서 “반면 한글은 초·중·종성이 모여 한 음절을 이루기 때문에 여기서 나타날 수 있는 오타는 일탈이나 재미로 받아들여져 또래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어서 비슷한 글자 차용 쉬워 시각 커뮤니케이션 시대에도 한글은 매우 우수한 문자로 활용될 수 있다. 강옥미 조선대 국문과 교수는 “인터넷 언어가 보편화되면 문자는 읽혀지기 위한 것이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어의 인터넷 언어는 ‘가능한 빨리’의 의미인 ‘as soon as possible’을 앞 글자만 따서 ASAP로 표현하거나 ‘너를 위해’라는 뜻의 ‘for you’를 ‘4U’로 소리와 일치되는 다른 문자나 숫자를 사용하는 정도다. 그러나 한글은 자음 ‘ㅅ’ 대신 한자의 사람 인(人)자를 넣거나 자음 ‘ㄱ’ 대신 일본어의 ‘つ’를 사용하는 등 그 변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효과를 다양하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학자금 신용불량자 급증

    “졸업이 코앞인데 취업은커녕 빚만 쌓이고 있어 막막합니다.”새달이면 K대 국문과를 졸업하는 김모(27)씨는 ‘750만원’이 찍힌 ‘학자금 대출내역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자금 대출, 신용불량 부메랑 아버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가정형편이 기울자 김씨는 3학년 2학기부터 대출로 등록금을 메웠다. 재학 중에는 몇 만원의 이자만 갚다가 졸업 이후에는 원금을 상환해야 하지만, 김씨는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 학자금대출을 받은 대졸자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금융거래정지 등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2004년 한해 29만 8212명의 대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장기불황을 반영하듯 연체금이 불어나고 있다. 연체율은 상대적으로 취업이 더 힘든 지방일수록 높다. ●연체율 일반 대출에 비해 최고 5배 넘어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대학생 학자금대출의 연체율은 3.1%, 누적 연체금액은 200억원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조흥은행은 같은 기간 연체율이 3.0%, 연체금액은 16억원대에 이른다. 지역 대학생이 이용하는 경남은행의 지난해 학자금 연체율은 5.8%나 된다.8000여명에게 등록금을 대출해준 광주은행은 연체율 4.4%에 연체금액은 19억 5400만원에 이른다. 전북은행의 연체율 3.6%를 비롯해 다른 지방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일반 대출의 연체율 1∼2%보다 지나치게 높다.”면서 “지역 경기악화와 지방대생의 실업난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체율이 치솟자 최근 교육부는 ‘졸업 전 6개월’까지 학생이 미취업 사실을 신고하면 원금상환을 1∼3년 동안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이같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은행과 학교가 많다. 경남 창원대 취업담당과 직원은 “미취업을 확인해 주는 서류는 있지도 않고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대출심사 엉성해 돌려막기에 사용되기도 1985년 도입된 ‘학자금 융자제도’는 서민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학자금이 아쉬운 학생과 정부가 이자를 나눠 부담하도록 한 제도. 그동안 350만명이 혜택을 입었다. 졸업 후 취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재학 중에는 이자만 지불해도 되지만 졸업 이후에는 원금상환에 들어간다. 하지만 연리 4% 정도로 이자가 낮은 학자금대출을 받아 긴급 가계자금으로 돌려쓰는 사례도 많아 대출심사가 엉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곽모(48)씨 가족은 파산신청을 했다. 곽씨와 부인(49), 딸(20)은 1998년 50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28평 아파트에 입주했으나, 구조조정으로 곽씨가 해고당하자 빚 갚을 길이 막막해졌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급한 김에 대학에 입학한 딸의 이름으로 학자금 700만원을 대출받아 등록금 150만원만 빼고 나머지는 카드 빚을 막는 데 썼다. 하지만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곽씨는 “딸마저 신용불량자로 내몰리는 것을 볼 수 없어 파산을 신청했다.”고 한숨지었다. 김·박 법률사무소 김관기 변호사는 “학자금대출로 급한 불을 끄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적지 않다.”면서 “대출자가 학생 명의로 돼 있어 심하면 개인파산에 이르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학자금 융자의 규모를 확대하고 이자율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출금이 실제 학자금으로 쓰이는지 확인하는 등 대출심사 강화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2학기부터 융자제도를 변경, 상환기간을 20년 이상으로 늘리도록 했지만, 이미 대출을 받은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에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최명희 ‘혼불’의 배경 남원

    [문학이 머문 풍경] 최명희 ‘혼불’의 배경 남원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을 어지럽게 쌓아둔 채 핑계만 있으면 안 써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 달리 거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은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혼을 담은 예술소설 ‘혼불’은 최명희(1947∼1998)가 지난 80년 4월부터 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이다.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혼불’은 일제 강점기인 1930∼40년대 전북 남원시 사매면의 유서깊은 ‘매안 이씨’ 문중의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宗婦)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근대사의 격랑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 나가는 양반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특히 우리 선조들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 민속학적, 인류학적 기록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아름다운 모국어로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혼불이 살아있는 마을 전북 남원시 사매면에서는 작가가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 같다.”고 글쓰기의 힘겨움을 호소했던 ‘혼불’의 주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서도리 노봉마을은 혼불의 주 무대이다. ‘혼불마을’로 이름 붙여진 동네 입구에는 ‘꽃심을 지닌 땅’‘아소 님하’라는 글귀가 새겨진 한쌍의 장승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 옆으로 ‘최명희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노적봉을 병풍처럼 뒤로 하고 자리잡은 혼불마을은 아담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마을 맨 위에는 청암부인, 율촌댁, 효원, 강모가 거주했던 ‘종가’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을 굽어 보는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중마당에 매화고목이 양반가의 기상을 보여 준다. 지난해 마을 옆에 ‘혼불문학관’이 건립됐다. 연못과 잔디밭, 물레방아가 조성된 6000여평의 문학관은 공원을 연상케 한다. 고래등 같은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문학관에서는 작품일지와 유품, 소설속의 주요 장면을 인형극과 디오라마로 볼 수 있다. 몽블랑 만년필로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육필원고와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 대청마루에 서면 소설의 중심무대였던 노봉마을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멀리 남원의 주봉인 천황봉, 임실 성수산, 진안 운장산, 장수 팔공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문학관 옆에는 청암부인이 만든 ‘청호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농사짓는 물이 부족해 청암부인이 실농한 셈치고 2년여에 걸쳐 만든 것이다. ●정겨운 문학적 공간들 노봉마을을 벗어나면 ‘구 서도역’이 눈에 띈다. 서도역은 작품의 중요한 문학적 공간이다. 종손 며느리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고,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면서 이용하던 장소다. ‘신 서도역’은 2002년 새로 역사를 지어 이전했다. 소설속의 서도역은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옛 서도역이다. 녹슨 철로와 수동 신호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남원시는 조만간 이곳을 영상촬영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반촌의 외곽지대였던 ‘거멍굴’과 ‘고리배미’는 매안 이씨의 집성촌인 상신마을이다. 작가가 “소쿠리 안에 들만치 도래도래 모여 앉은 납작한 초가집들”이라고 표현한 거멍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민촌이었다는 사실이 이곳 사람들을 떠나 보냈기 때문이다. 거멍굴은 무산마을, 고리배미는 인화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청암부인이 민촌에 있기는 아깝다고 말한 고리배미 ‘황장목 숲’은 여전히 푸르고 기운차다. 작품속에 강모가 안서방의 등에 업혀 면소재지 보통학교를 다닐 때 소피를 보기 위해 쉬어가던 ‘늦바우고개’ 떠꺼머리 노총각 춘복이가 신분상승을 위해 간절한 소망을 빌던 ‘달맞이 동산’ ‘당골네 집터’ 등도 옛모습을 떠올리며 살펴볼 수 있다. ●꺼지지 않는 혼불 정신 최명희는 1947년 10월 10일 전북 전주시 경원동에서 2남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적은 소설의 주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60번지.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일찍이 빼어난 글솜씨를 인정받았다. 전주 기전여고 3학년때인 65년 전국남녀문예콩쿠르에서 수필 ‘우체부’가 장원으로 뽑혀 학생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고교 작문교과서에 실렸다. 72년 전북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기전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74년 서울 보성여고 국어교사로 부임했다.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등단했다. 이때 작가의 나이 서른세살. 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000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이 당선됐다. 그해 2월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보성여고 교사를 사임하고 이후 17년 동안 ‘혼불’ 창작에 전념했다.84년 서울신문에 단편소설 ‘이웃집 여자’를 발표하기도 했다.96년 12월 대하소설 ‘혼불’ 전5부 10권이 출간됐다. 생활이 어려운 작가를 위해 97년 9월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후원 모임이 창립됐다.97년부터 98년 사이에 단재문학상, 세종문화상, 전북애향대상, 여성동아대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혼불이 완간된 지 2년이 채 못된 98년 12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짧은 유언을 남긴 채 지병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떴다. 향년 51세. 묘지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동물원 입구에 마련됐다. 전주시는 이곳에 문학비를 세우고 ‘혼불공원’이라고 이름지었다.99년부터 전라문화연구소, 혼불기념사업회 등이 매년 ‘혼불문학제’를 열고 ‘혼불학술상’을 제정해 작가의 문학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40대 서울대교수 됐다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의 40대 국문학자가 이례적으로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된다. 서울대는 지난 80년대 전교조 소속 교사로 근무하다 학교에서 쫓겨난 조현설(43)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지난해 12월28일 서울대 교원심사위원회를 통과했다고 4일 밝혔다. 조 교수는 6일 인사위원회에서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임용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조 교수는 지난 89년 8월 전교조 소속 교사 대량해직 사태 때 3년간 근무한 모 여고에서 쫓겨난 후 다른 해직교사들처럼 복직을 위해 투쟁했으며 90년대 초반에는 실천문학·한길문학 등에 시를 발표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이후 90년 가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국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학문에 뜻을 둔 지 15년 만에 대학 교단에 서게 됐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한국은 소설가 되기 가장 쉬운 나라”

    “위기의 한국문학, 재생의 처방이 있을까?”시작도 끝도 없을 해묵은 질문에 누군들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부단히 그 해답의 실마리를 더듬어야 하는 것이 문학인들의 소명일 터.‘문학사상’ 1월호는 ‘한국문학의 위기, 전환점 오는가’란 주제의 신춘방담을 실었다. 문학평론가 이태동(서강대 영문과 명예교수)·김성곤(문학사상 주간), 소설가 윤후명, 시인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등 4인이 ‘문학의 살 길’을 놓고 단소리, 쓴소리를 뱉었다.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만큼이나 작가들의 역량 부족이 무엇보다 먼저 반성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개인사에 치중하거나 이야기 자체에 천착하는 한국소설들은 문학소재의 다양성 면에서 치명적 약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작가들 역량부족 반성해야” 윤후명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는 작가에게 더 이상 칭찬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이야기는 문학의 한 요소에 불과하며, 이야기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문학의 세계화를 저해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넘어 철학을 담는 문학이 절실하다는 데 견해들이 일치했다. 이태동 교수는 “우리문학의 해외진출이 더딘 것은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 ‘연금술사’처럼 보편성 있는 주제를 이슬람·기독교 사상으로 전하는 식의 범세계적 문학관을 가져야 할 때”라고 짚었다. 윤후명씨는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서 신랄한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다.“우리나라는 소설가가 되기 가장 쉬운 나라란 이야기를 듣는데, 그만큼 작가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지적일 것”이라면서 작가들의 자성이 앞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동호 시인도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쓰면서 시대의 문제, 세계의 문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시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생각해봤다.”고 작가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보편적 주제 지닌 작품탄생 절실 문학을 지원하려는 제도에도 허점이 많다는 게 공통견해. 정부의 문예진흥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기초예술로서의 문학에 양적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들이다. 정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문화예산지원액의 대부분이 관광예산으로 쏠리는 것도 재고돼야 할 문제(윤후명)라는 것. ●정부 문학지원 예산 확대 시급 ‘문학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작가들이 문학의 공동현상을 부추겼다는 반성은 거듭된다.“독자들은 디지털 코드를 선호하는데, 작가들은 활자문화 코드를 갖고 있다.”(최동호) 대중문화의 한류열풍을 발빠르게 문학 발전에 접목시킬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성곤 주간은 “한류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 분위기를 본격문학이 따라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후명씨는 ‘문화의 북방정책’이라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다. 차제에 적극적인 번역작업 등으로 서양보다는 중국·러시아를 집중공략하자는 견해다.“경제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문화적 공황’에 빠진 중국을 제치고 동남아권의 문화 헤게모니를 잡을 때”라고 그는 강조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울대 첫 女 총학생회장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여성 총학생회장이 나왔다.30일 이 대학 총학생회는 정화(22·국문과 4년·본명 류정화)씨가 지난 5일 동안 진행된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3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정화씨는 “그동안 여성 총학생회장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배울 상(像)이 없다면 내가 만들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부산에서 태어나 2001년 입학,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낸 정화씨는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성우(22·응용생물화학과 4년·본명 임성우)씨와 ‘Q’라는 이름의 선거본부를 차려 선거에 도전했다. 호주제 폐지를 지지해 ‘부모 성 같이 쓰기’에 동참하던 정화·성우씨는 성을 빼고 이름만으로 입후보했다.Q는 “동그라미라는 폐쇄적인 개념에 획을 긋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화씨는 민중민주(PD)계열 후보로 서울대에서는 3년만에 ‘운동권’이 총학생회장이 됐지만 그는 이제 학생사회에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흘간의 투표와 이틀간의 연장투표 끝에 51%의 투표율을 보인 이번 선거에서 정화씨는 3309표를 얻어 2위를 969표차로 따돌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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