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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 EBS, 매주 월·화 방영

    EBS ‘TV 평생대학 - 역사이야기’는 2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매주 월, 화요일 밤 12시 35분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을 방영한다. 정병설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사도세자는 미친게 아니라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소장 역사학자 이덕일의 주장을 정면 비판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정 교수는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1737~1815)가 쓴 회고록 ‘한중록’을 기반으로 왜 이덕일의 주장이 틀렸는지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 22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22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월하 김달진(1907~1989) 선생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김달진문학상이 어느덧 22회를 맞았다. 올해 수상자로는 시 부문에 오세영, 평론 부문에 최현식이 각각 선정됐다. 상금은 각각 2000만원. 심사위원단은 자신의 문학 세계를 경계 짓지 않은 채 삶과 세계를 유기적으로 관조하고 아우르면서 이뤄낸 두 사람의 성취에 주목했다. 3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국제관에서 수상 기념 시 낭송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수상자들을 만났다. ◆ 시 부문 오세영 “가능하면 말을 줄이고 이미지로 메시지 전달” 시(詩)는 시인이 겪어온 삶 자체다. 시가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삶을 언죽번죽 풀어내기란 참 겸연쩍은 일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노()시인 오세영(69)에게 이르면 조금 달라진다. 그의 삶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곧이곧대로 드러난다. 네 살의 오세영(왼쪽)과 예순아홉 살의 오세영(오른쪽)은 놀랍도록 똑같다. 굳이 다른 점을 꼽는다면 네 살에는 오히려 짓지 않은 동심(童心)의 미소를 일흔 목전에 품고 있다는 정도다. 오세영의 시를 읽으면 확신은 더욱 굳어진다. 그의 시는 언뜻 동시를 닮았다. 무람없이 노래되는 시어들은 순수함과 동심 안에서 질펀하게 한바탕을 펼친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자리를 ‘순수의 서정시인’ 즈음으로만 못 박아둠은 그의 다양한 면모를 놓치는 일이다. 시인에게 제22회 김달진문학상을 안겨준 열아홉 번째 시집은 최근 나온 ‘밤 하늘의 바둑판’(서정시학 펴냄)이다. 관조 속에 깨달음이, 깨달음 속에 자연과 사람, 사물이 함께임을 보여주는 오세영 시 미학의 결정판이다. 삶과 사회, 자연, 우주의 관계에 대한 관조 너머에 동심이 있음은 드러내지 않아도 번연하다. ‘지구는 우주의 거대한 사파리’(‘마사히 마라’ 중)라거나 ‘구름은/ 하늘 유리창을 닦는 걸레’(‘구름’ 중), ‘하늘은 항상 미끄러운 빙판길’(‘팽이’ 중) 등의 비유는 아이의 눈높이에 머문 듯하면서도 시인의 눈이 일상의 소소함과 우주의 광대무변함이 만나는 지점에 머물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나 순수의 시선이라고 세상의 참담함을 외면하거나 삶의 진실 바깥에 머문 채 박제화될 일은 없다. ‘비정규직’은 거리에 나뒹구는 일회용 종이컵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불러낸다. ‘…커피 한 모금 훌쩍 빨아 마시고 내팽개친/ 그 새하얀 순정’이라는 안타까운 시선과 함께 ‘깨지면 칼날이 되는/ 유리병과는 다르다’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눈에 비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박한 저항의 몸짓을 외치건만 세상은 위협조차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무기력한 존재다. 시상식장에서 만난 오세영은 “가능하면 말을 줄이고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되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아보고자 했다.”면서 “이미지와 메시지가 상충한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식이 아니라 사물의 내면에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오세영 시인이 보여온 자본주의의 반생태적 경향에 대한 성찰은 물론, 생태적 상상력의 시적 성취도에 주목했다.”면서 “그는 전통적 서정시의 혈통을 고집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사회 속에서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일깨우려는 시적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평론 부문 최현식 “서정주에서 진은영까지 세대 아우른 비평 할 것” “미당 서정주에서 진은영, 김민정 등에 이르기까지 아래위 세대 시인들을 모두 아우르는 비평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새로운 목소리와 실험적 형식에도 주목해야겠죠.” 평론가인 최현식(44) 경상대 국문과 교수는 미당 서정주를 연구하는 대표적 소장학자 중 하나다. 연세대 석·박사 논문을 모두 미당에 대해 썼다.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세 권의 평론집을 내는 동안에도 미당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았다. 공간으로서 만주 땅이 미당에게 미친 의미를 비롯해 미당이 왜 ‘천지유정’, ‘안 잊히는 일’ 등 유독 자서전을 반복해서 펴냈는지 등에 대해 연구했다. 학술적 측면의 접근과 문학비평적 접근을 혼재시킨 셈이다. 수상작은 지난 4월 펴낸 평론집 ‘시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 펴냄)이다. 진은영의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 펴냄)에서 제목을 빌려와 살짝 비틀었다. 진은영은 자신의 시집 표제작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고 남겼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우리는 매일매일’ 다음에 명사형이건 형용사형이건 동사형이건 뭔가 서술어가 와야 하고, 또 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자리에 ‘시는’을 넣어보게 됐다.”면서 “다양성을 포괄하고 다양한 음역을 주목한다는 측면에서 젊은 시인이나 중견 시인, 특정 시인이 아니라 폭넓게 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평론집의 백미는 조금은 느릿한 문체 속에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일괄하는 1부에 있다. ‘추보(醜甫)씨의 비가 혹은 연가’, ‘노동의 시, 시의 노동’ 등은 각각 서정주에서 김혜순, 이민하까지, 또한 임화에서 백무산, 송경동에 이르기까지 시의 현재를 짚고 내일을 전망한다. 아울러 황동규, 마종기 등 원로 시인의 시 세계를 조망하고, 허수경, 정끝별, 채호기, 정호승, 김기택, 박라연, 차창룡, 장석남 등의 개별 시집들이 현실과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애정 있게 들여다본다. 심사위원들은 “시가 터져 나오면서 겪는 만큼의 고통스러운 글쓰기가 팽팽한 긴장으로 비평집을 채우고 있다.”(정현기 연세대 명예교수), “시를 새롭게 보려는 시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평문들, 기왕에 보기 힘들었던 낯선 목소리를 가진 비평”(김선학 동국대 교수),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시를 대하는 따뜻한 마음”(이숭원 서울여대 교수)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최근 평론도 소설과 시의 영역으로 나뉘어 전문화되는 추세”라면서 “여러 평론상 중 김달진문학상이 시론(詩論)을 대상으로 하는 유일한 상인 만큼 시 평론을 하는 사람으로서 수상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제19회 공초문학상] “시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 가질 수 있죠”

    [제19회 공초문학상] “시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 가질 수 있죠”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에 버리고 온 나를 찾아가지 못한다 의상대 붉은 기둥에 기대 울다가 비틀비틀 푸른 수평선 위로 걸어가던 나를 슬그머니 담배꽁초처럼 버리고 온 뒤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제는 봄이 와도 내 손에 풀들이 자라지 않아 머리에 새들도 집을 짓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을 이미 잊은 지 오래 동해에서는 물고기들끼리 서로 부딪치지 않고 별들도 떼지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지 않는데 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부딪쳐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낙산사 종소리도 듣지 못한다 1970~80년대였다. 분노의 언어는 분명히 적의 심장에 날아가 꽂혔건만 가슴이 아리고 피 흘린 쪽은 외려 자신이었다. 엄정한 과학의 언어는 체계적이었지만 이념의 틀 안에서 쉬 헤어나지 못한 채 바싹바싹 메말라 갔다. 공중에 한 뼘쯤 떠 있는 듯한 관념의 언어 또한 사람들의 마음에 정박하지 못한 채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 시절은 그랬다. 그때 정호승(61) 시인의 시(詩) 속 언어들은 더욱 빛났다. 갈갈이 찢긴 시대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고 조심스레 이어 붙였다. 다치고 서러운 마음을 가만히 쓸어 주고 위로해 줬다. 투쟁을 들먹이지 않으며 투쟁을 버팅기게 했고,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 너머를 꿈꾸게 했다. 모든 가치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잘 더듬어 찾아보자고 노래했다.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 등 내놓는 시집마다 모두 그랬다. 시대의 아픔을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이율적으로 사랑을 얘기한 ‘사랑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30일 만난 시인은 정색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제 이미지가 너무 고정됐나 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사랑의 시인’이라며 남녀상열지사나 얘기하는 시인처럼 바라보더라고요. 저, 젊은 시절에 너무 가난해서 데이트 한 번 변변히 못한 사람이에요.” 그렇다. 그는, 그의 시는 많이 변했다. 1972년 등단했으니 벌써 40년 차 시인이다. 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는 세월이다. 그는 “시대가 변하고 삶이 변하는데 그 변화의 마디마디가 없을 수 없다.”면서 “시대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내 눈물 닦기도 버겁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시를 읽고 공감과 위로를 받고 스스로 눈물을 닦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시는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시대를 뛰어넘어야 영속성을 가질 수 있죠. 시대는 지나가지만 시는 영원하잖아요.” 정호승 시인이 제19회 공초문학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점점 선명해진다. 수상작은 지난해 말 내놓은 열 번째 시집 ‘밥값’(창비 펴냄)에 들어 있는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이다. 시가 품은 성찰과 자성, 관조가 두드러지고 시어는 더욱 넉넉해졌다. 그리고 수상작 속에서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표현했듯 스스로 더욱 엄격해졌다. 얼핏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공초 오상순’과 ‘정호승’의 접점이 널찍해지는 지점이다. 그는 “1968년 대학(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하며 대구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공초 선생은 이미 돌아가신 뒤라 뵌 적이 없었다.”면서도 “그 이름으로 남긴 문학상을 받게 된다니 오랜 시간 시를 버리지도, 시로부터 버림받지도 않았음을 감사할 따름”이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나는 아직’ 외에도 시집 ‘밥값’에 깔린 전체적인 심상은 죽음, 특히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죽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삶에 대한 집착, 욕망에 대한 거리두기를 꾀하는 초월의 지향도 함께 밝힌다. “죽음도 인간의 본질임을 인식하며 더욱 천착하게 되네요. 나이 탓인가…. 삶의 본질로서 사랑과 죽음이 품고 있는 무게감이 똑같지 않으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랑의 또 다른 형태겠죠. 더욱 성찰하고 시대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역시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랑의 시인’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 10권의 시집과 ‘항아리’, ‘연인’ 등 동화집, ‘정호승의 위안’ 등 산문집 출간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
  • “대한매일 연재 ‘디구셩미래몽’ 단재 신채호 작품”

    “대한매일 연재 ‘디구셩미래몽’ 단재 신채호 작품”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에 무기명으로 연재된 계몽소설 ‘디구셩미래몽’(地球星未來夢)이 당시 대한매일신보 주필이었던 단재 신채호가 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디구셩미래몽’은 1909년 7월 15일~8월 10일 19회에 걸쳐 대한매일신보 한글판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디구셩미래몽’은 전편이 다 전해진 단재의 첫 소설이 된다. 지금까지는 1908년 ‘가정잡지’에 발표된 ‘익모초’가 단재의 첫 소설로 알려졌으나, 일부분(2회분)만 전해지고 있다.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지난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38회 한국현대소설학회 학술대회에서 ‘디구셩미래몽의 저자와 그 의미’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 작품의 저자가 단재 신채호라는 견해를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민 연세대 국문과 교수도 “디구셩미래몽의 작가를 신채호로 확정한다.”고 밝혔다. 2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김 교수는 ▲작품 속 화자인 ‘우세자’가 단재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월보와 잡지를 발간했으며 독서가 직업인 인물로 소개한 점 ▲단군을 내세워 민족 주체 의식을 강조한 점 ▲작품 속 문체가 산문 속에 운문을 넣어 리듬감을 살린 단재 특유의 문체와 닮은 점 등을 근거로 저자를 신채호라고 단정했다. 김 교수는 또 19회 연재 중 마지막회가 가장 짧으며, 새로운 인물을 제시하고 서둘러 작품을 마무리한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이 같은 점은 작품이 투고된 것이 아니라 사내 인물에 의해 쓰였다는 증거”라면서 “당시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기자였던 신채호, 양기탁, 이장훈, 장도빈 가운데 단재만 유일하게 소설을 썼던 인물”이라고 부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젊은 평론가상’ 고명철 교수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 김종회)는 25일 제12회 젊은평론가상 수상자로 고명철(41) 광운대 국문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지난해 실천문학 여름호에 실린 ‘민중(적) 서사의 논쟁성과 운동성’이다. 시상식은 다음 달 3일 오후 6시 서울 경희대 청운관에서 열린다.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31년이 흘렀는데 ‘5월 광주’를 말하고 있다. ‘또(혹은 아직도) 광주냐.’란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눈치다. 2년 동안 아내(주로미, 조연출·내레이션·구성작가)와 아들(김상구, 촬영보조)까지 동원해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오월愛’(오월애)를 완성했다. 40여명 무명씨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1980년 5월과 이후 30년의 사적(私的) 기억을 복원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민중의 세계사’란 주제로 10부작 시리즈를 만들겠단다. 20년 가까이 다큐멘터리 한우물을 파고 있는 김태일(48) 감독 얘기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18개관 개봉(12일)을 앞둔 그를 지난 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나선 ‘10대 스태프’ 상구(14) 군도 함께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31년을 살아온 분들이 궁금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데 언제부터 광주항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대학(고려대 국문과 84학번)을 다닐 무렵이 아닐까. 엄청나게 피가 뜨거웠던 시절 아닌가.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화려한 휴가’(2007) 같은 상업영화부터 각종 다큐멘터리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물은 넘쳐난다. 왜 지금, 광주를 다뤄야 했나. -기존 작품들을 대개 5월 항쟁 열흘의 기록이다. 당시 이름 없이 참가했던 분들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통해 30년이 지난 이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서 살았던데. -2009년 3, 4월 두 차례 답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의 방 한 칸을 ‘대인 예술인프로젝트’(시장의 문 닫은 공간에 작가를 상주시켜 예술작업을 지원하고 시장도 활성화하는 사업)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작업·생활공간을 얻었다. 실제 광주에 머문 건 6개월쯤이다. →40명에 이르는 무명씨(항쟁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뭉클했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웃음). 2009년 5월1일 내려가서 처음 만난 인터뷰 대상에게 딱지를 맞았다. 그다음 뵌 게 양동시장 노점상 이영애(항쟁 당시 주먹밥 부대) 어머니다. 거리에서 30분을 혼났다. 매년 5월이면 언론에서 취재를 와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막상 보도는 시덥지 않으니까 화가 나 있던 게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연출(아내)이 나서 아줌마들끼리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르고서 비로소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다. →다큐에 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이 진압될 때 방송실에 3~5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중 3 여학생이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속자나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훈방되면서 기록이 안 남은 걸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맹열하게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분들이 모여 살았다는 월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았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턴가 광주 안에서도 5·18이 우리 안의 타자가 된 것 같다’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관련 단체끼리, 또는 단체와 시민 사이에 골이 깊어진 건 사실이다. 2년을 작업하면서 외부인으로 광주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 갈등은 90년대 중반 이후 보상과 함께 시작됐다. 이분들이 10년 정도를 폭도 취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보상으로 목돈이 생기니까 빚을 갚거나 주식·사업을 한다고 90% 정도는 돈을 날려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고문과 부상으로 막노동할 형편도 안 됐다. 5월의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남았고,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50여명이 자살했다.  현재는 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갈등이 표면화돼 있다.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도청별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하루빨리 (도청별관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남도청 일원의 17만㎡에 2014년까지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 등 완공 예정)을 건설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 있다. 후자 측은 5·18 관련 단체(5·18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유족회)를 통합해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공법단체를 만들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자판기 수익금 등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오랜 갈등을 지켜본 광주시민은 진절머리를 낸다. 결국 ‘5월’은 광주 안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비와 제작비의 경계가 모호해서 제작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웃음).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화제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다. 늘 외환위기 때처럼 살았다(옆에 있던 상구가 “내 통장도 털렸어요.”라고 폭로했다. 김 감독이 “빌린거지, 털었다고 하면 도둑 같잖아”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인과 아들까지 (영화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아내는 빈민촌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문을 닫았다. 40대 중반이면 원장을 할 나이라 재취업이 안 됐다(웃음). 2008년 단편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함께 했다. 이전에도 모든 작품을 가편집 단계부터 보고 상의했기 때문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 동반자다. 10여년 동안 작품이 주목받지 못 해 갈등도 많았지만, 항상 아내가 ‘구애받지 말고 해라. 당신 만의 힘이 있다’고 토닥여줬다. 상구는 촬영보조로 딱히 한 일은 없다(이들 부자의 대화는 친구들끼리 말장난하듯 친근하다). →스태프로 뽑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상구가 “돈이 없으니까.”라며 끼어든다). 중학교를 안 다니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더라. 우리 부부는 거의 광주에 내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와서 경험해 보라고 했다. 안 내려온다고 버티기에 ‘알바비’를 준다고 미끼를 던졌다. 작업일지를 잘 쓰고, 현장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상구가 “아빠 말이 맞긴 한데 아직 못 받았어요. 다 합치면 360만~370만원은 받아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를 전공한 적이 없다. 1993년 ‘원진별곡’부터 다큐에 뛰어들었는데.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더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3개월짜리 기초교육만 받고 바로 연출을 시작했다. 그때 조연출을 한, 두 편이라도 했다면 지금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그때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 10부작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현장답사를 다녀온 인도차이나를 먼저 다룰 거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콩고 등 중앙아프리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동유럽,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등 얼개를 잡았다. →얼마나 걸릴까.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기자가 상구에게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업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전 관심없어요. 너무 무리 아닌가 싶어요. 10편에 집착하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라고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31년이 지난 지금, 광주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를 보니 중고생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 순위로 꼽는다더라.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다. 31년전 광주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연대와 나눔 등의 가치를 우리가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상구는 “5월의 공동체정신을 되새기자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한다.”고 면박을 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리빠똥 장군’ 소설가 김용성씨

    [부고] ‘리빠똥 장군’ 소설가 김용성씨

    소설가 김용성씨가 28일 오후 지병으로 숨졌다. 71세. 장편소설 ‘잃은 자와 찾은 자’ ‘리빠똥 장군’ 등으로 잘 알려진 고인은 1940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잃은 자와 찾은 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로 사회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인류애에 입각한 인간의 본질을 그리는 작업에 주력하던 그는 2004년부터 인하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3년 현대문학상, 1985년 동서문학상,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2004년 김동리문학상·요산문학상·경희문학상을 받았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졌으며, 영결식은 경희문인회장으로 5월 1일 오전 8시 열린다. (02)2258-5940.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소설 이어 연극·뮤지컬·영화로… 다시 부는 ‘맘 신드롬’

    소설 이어 연극·뮤지컬·영화로… 다시 부는 ‘맘 신드롬’

    ‘어머니’라고 하면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엄마’라고 해야 가슴이 먹먹해진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 제목이 ‘플리즈 룩 애프터 맘’인 것처럼 마더(Mother)보다는 맘(Mom)이 울림이 있다. 최근 ‘맘 신드롬’이 다시 거세다. 엄마를 소재로 한 소설, 연극, 뮤지컬, 영화 등이 잇따르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발(發) 인기가 한국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리면서 200만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연극은 전국 순회 공연 중이고, 새달 5일에는 똑같은 제목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 작가 노희경이 1996년에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눈두덩이를 벌겋게 만들더니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 20일 개봉했다. 개봉하자마자 첫 주말에 1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했다. 외국 영화 ‘마더 앤 차일드’도 28일 가세한다. 앞서 ‘친정엄마’, ‘친정엄마와 2박3일’, ‘애자’ 등도 연극·영화 등으로 장르를 바꿔 가며 관객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어떤 작품은 아예 마음껏 울라고 극장 입구에서 휴지를 나눠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신경숙 소설에 대해 미국의 유명 서평가 모린 코리건이 “김치 냄새 풍기는 ‘크리넥스 소설’(눈물을 짜내는 소설)”이라며 “싸구려 위안에 기대지 말라.”고 혹평했듯, 부정적 시선도 존재한다. ●잊고 있던 단어… 힘겨운 삶의 절박한 구원 통로 26일 방북길에 오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마더 릴리언의 위대한 선물’이라는 책을 썼다.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카터 전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평화와 봉사의 삶을 살았던 자신의 어머니(릴리언)에게 바치는 사모곡(思母曲)이다. 그는 1976년 대통령 취임 기자회견에서 “나를 키운 어머니부터 만나 보라.”고 했을 정도로 어머니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히 얘기했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디지털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현대 문화는 인간성 상실과 부성 상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근원에 대한 결핍감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문화예술의 몫”이라면서 “이런 시대에 인간의 존재 비의를 설명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어머니로 귀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동서고금을 아울러 창조적 감성의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는 얘기다. 이는 문화예술 영역에서 무한하게 변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세상이 척박해질수록, 개인의 삶이 힘겨워질수록 편안하고 따뜻한 품을 줬던 어머니는 갈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2009년 서구에서 환호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나 최근 미국에서 각광받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드러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어머니에 대한 인간 본연의 절박함을 보여준다.”며 창작의 감성을 일깨워 주는 존재로서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상(像)이 무한희생의 모성, 헌신과 애정의 주체만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문호 막심 고리키의 장편소설 ‘어머니’ 속의 안나는 유약한 어머니에서 혁명가로 거듭난다. 1960년대 주요섭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속의 어머니는 정절이 아닌 욕망을 표출한다. 어머니의 ‘희생’을 반복해서 보여 주며 눈물을 요구하는 요즘의 추세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드코어 신파… 박제가 돼 버린 엄마 최 교수는 “여성 가치, 모성이 품고 있는 긍정의 힘을 그 이미지만을 소비하며 상업주의적으로 활용하려는 문화산업계의 메커니즘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무한 애정과 헌신의 주체로만 어머니를 박제화시키며 우려먹는 최근의 흐름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다분히 ‘하드코어 신파’라는 냉소다. ‘엄마’라는 상업적으로 검증된 콘텐츠를 문화계가 안이하게 끊임없이 ‘자기복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조용신씨는 “엄마라는 콘텐츠는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젊은 층과 중장년층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라면서 “그 자체로 팔릴 수밖에 없는 아주 상업적인 코드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문화 현장의 창의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다. 연극 ‘친정엄마’에 이어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등을 잇따라 연출해 ‘대학로의 엄마 전문가’로 불리는 구태환 연출은 “흥행 성공의 비결이 단순히 엄마라는 소재에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면서 “사람들이 잊고 있던 정서를 한국적 사실주의로 자극한 때문 아니겠느냐.”고 역설했다. 박록삼·김정은기자 youngtan@seoul.co.kr
  •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 27~28일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 학술대회

    한민족학회가 27~2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근대 100년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한민족학회는 식민사학 타파에 앞장섰던 고 손보기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1987년 창립한 학회다. 2006년 들어 윤명철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다시 만들었다. 두 인물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주류 사학계의 실증사학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과녁은 우리 역사를 밝히는데 왜 중국, 일본이 펴낸 관찬(官撰) 사료만 참조하는 문헌 사학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윤 교수가 “일본을 통해 도입된 근대 역사학은 문자 중심의, 그것도 지배계급의 관찬 사료, 그중에서도 우리와 경쟁했던 중국, 일본의 사료만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비판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옛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면 정치 경제사에 대한 문헌 사료만 뒤적일 게 아니라 “지리학, 기후학, 지형학, 생태학, 생물학, 천체물리학 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신(新)사학’이라 불렀다. 때문에 첫날인 27일 과학, 정치학, 신화학, 민속학 등 다른 인접 학문을 끌어들인다. 이튿날인 28일에는 중국뿐 아니라 몽골, 거란, 여진 등 주변 민족들이 남긴 기록도 함께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거란사 전공자인 김위현 명지대 교수, 몽골 연구자인 박원길 몽골학회장 등이 나선다. 유행하는 말을 붙이자면 ‘통섭’이랄 수 있는데, 한마디로 역사학에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선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학제 간 학회(SIS)와 새로운 역사 연구 전망’이라는 찬조 강연을 통해 서구 학계가 제기하고 있는 ‘외계 충격설’을 상세히 소개한다. 서구 학자들이 조직한 SIS는 1997년 학술대회에서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크고 작은 운석들이 지구를 덮쳤다는 결과를 제출했다. 바로 이즈음, 그러니까 하늘에서 뭔가 중대한 변고가 발생했을 때에 신이라는 관념이 전 세계적으로 출현했고 뒤이어 신화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거인족 티탄의 카오스 신화 뒤에야 제우스의 12신을 등장”시켰고, 단군신화 역시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을 천둥번개신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불교의 법화경에도 수많은 천신(天神)들이 등장해 “꽃비를 뿌리고 수백, 수천의 악기와 큰 북을 울렸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화 자체가 외계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인류의 선언이라는 얘기다. 이 위원장이 17세기 조선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소빙하기(小氷河期)로 설명하려는 이유다. 김헌선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그래서 신화학의 복권을 요구한다. 역사학의 입장에서 신화학은 허풍쯤에 불과하지만 신화학이 보기에 역사학은 풍부한 이야기들을 다 잘라내 버려 ‘메말라 비틀어진 뼈다귀’다. 김 교수는 “일본의 실증주의는 부분을 전체에서 떼어내고 부분에 대한 증명이 전체인 것처럼 해서 스스로 지리멸렬했다.”고 주장한다. 토론자로는 고대 별자리 연구를 통해 역사 천문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과 교수가 나선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도 비슷한 입장이다. 민속학을 상상력의 보고로 보기보다 미천한 연구쯤으로 취급해 버린다는 것이다. 가령, 고구려 유민 20만명 가운데 10만명이 남방으로 이주해 지금의 먀오족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 사학계가 단 한마디의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 연구관은 “기록에 의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차가운 시선만 보낼 뿐 해석과 논리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준거가 오류인지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국내 문단에 작가 부부는 꽤 된다. 얼핏 떠올려 봐도 구중서(평론)-김윤희(시), 조정래(소설)-김초혜(시)부터 시작해 남진우(시)-신경숙(소설), 홍용희(평론)-한강(소설) 등을 거쳐 김도언(소설)-김숨(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금세 여러 쌍들이 꼽아진다. 그렇다면 형제 작가는? 김원일(소설)-김원우(소설), 황현산(평론)-황정산(시), 박용재(시)-박용하(시) 등 흔하지는 않지만 드문 것 또한 아니다. 여기 쌍둥이 자매 소설가가 있다. 희귀한 예다. 스스로 “우리는 싱크로율(일치율) 95%예요.”라고 깔깔거리는 서른다섯 살의 장은진, 김희진이다. 30분 먼저 세상에 나와 언니가 된 장은진이 200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먼저 등단하면서 혹여 헷갈리지 말라고 성을 ‘김’에서 ‘장’으로 바꿨다. 문장(文章)의 ‘장’이거나 장편소설의 ‘장’(長)이라는 뜻이란다. “장이라는 성도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천연덕스레 거드는 동생 김희진은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들은 지난해 같은 인터넷 웹진(인터파크)에서 나란히 연재했던 작품을 나란히 같은 출판사(자음과모음)를 통해 내놓았다. 언니의 작품은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동생의 작품은 ‘옷의 시간들’이다. 지난 20일 책이 나온 직후 쌍둥이 소설가들과 만나 나눈 유쾌한 대화를 옮겨 본다. 장은진(이하 은진) 광주 집 한방에서 같이 살고, 같이 소설 써요. 속옷하고 신발 빼고는 다 함께 쓰죠. 소설 구상과 창작 과정조차도 나누죠. 김희진(이하 희진) 그래도 소설 쓰는 장소는 달라요. 얘-두 사람의 호칭은 ‘야’, ‘너’다. 자매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난 안 써져서 괴로운데 그 소리까지 들으면 더 기분 나빠져요. 그래서 얘는 방에서 쓰고, 저는 거실에서 써요. 은진 제가 좀 세게 치는 편이긴 해요. 헤헤. 희진 얘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좀 엉뚱해요. 학교(목포대 국문과)에서 단편소설 써 오라는 과제가 있어서 끙끙거리는데, 얘가 쳐다보더니 ‘꼴 같지 않은 짓을 하고 있네.’ 하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래서 “너도 써봐.”라고 권했죠. 은진 전공(전남대 지리학과)은 달랐지만 바로 그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희진 여차저차 설명한 뒤 그 소설을 대학 교수님(유금호)께 보여 드렸더니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보니까 제가 쓴 것보다 낫더라고요. 위기감을 느꼈지요. 은진 지금도 위기감 느끼는 것은 아니고? 하하. 장은진은 소설집 한 권과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등 세 권의 소설을 이미 낸 상태다. 2009년에는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김희진은 등단이 늦은 만큼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이 유일한 작품이다. 뼈 있는 농담으로 들린다. 진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까. 희진 지난해 연재하는 동안 숫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댓글 숫자, 조회 수 등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라고요. 은진 서로 눈치 보고 했죠. 하나라도 제 댓글이 많으면 희진이는 기분 안 좋아했고, 저는 조금 미안하고 그랬고요. 희진 얘는 이미 책을 3권 냈으니까, 뭐, 그럴 수도…. 그래도 속으로는 쟤 소설이 내 것보다 뭐가 낫다고 그래 하는 생각은 여전했지요. 은진 초기 작품들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각자 길을 찾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진 (상대방의 장점은 뭐냐고 묻자) 은진이는 문장이 맛깔스럽고, 작품이 단정해요. 은진 희진이는 에피소드가 신선하고, 대사도 유머러스하고, 사유하는 스타일도 저보다 나아요. 저희는 소설 창작 과정에 대해서도 늘 상의해요. 서로 첫 독자죠. 희진 설령 내가 쓴 게 아무리 형편없어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근데 우리끼리는 가차 없이 말해도 괜찮아요. 상대방 컴퓨터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있어요. 은진 성장과정도 같고 성격, 취향, 심지어 좋아하는 이상형까지 같으니까요. 싸울 일은 없겠다. 과연 그럴까. 희진 한번 다투면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서로 말도 안 하곤 해요.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노트북에 있는 소설을 몽땅 지워 버리면 쟤는 끝장이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화해하고 난 뒤 내가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더니 바로 말을 가로채더라고요. 은진 제가 그랬어요. “너, 내 소설 다 지워 버리려고 했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동글동글한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 까만 뿔테 안경, 전라도 사투리 담긴 음색까지 거의 비슷하다. 외모만으로는 영 구별이 쉽지 않다. “그냥 복제인간이 다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라고 김희진이 말하자 “공동 창작 소설은 쉽지 않겠지만 나중에 영화 시나리오는 한번 같이 써보려고요.”라고 장은진이 덧붙인다. 서로 거들고 다투며 성장하는 사이가 분명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세계문학 유럽중심 틀에서 벗어나자”

    “세계문학 유럽중심 틀에서 벗어나자”

    세계문학의 중심은 어느 한 지점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과 하버파크호텔에서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열리는 ‘제2회 인천 알라(AALA,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은 유럽에 편중된 세계문학의 흐름을 다양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비서구권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럽 중심주의적 틀에서 벗어나 세계문학에 대해 논의하는 것. 올해 주제는 ‘평화를 위한 상상력의 연대’. 아르헨티나 소설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왼쪽), 팔레스타인 소설가 파크리 샬레(가운데), 네팔 소설가 나라얀 와글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시인 다이아나 퍼러스(오른쪽) 등 해외 문인 12명과 문학평론가 최원식, 시인 도종환, 소설가 김별아 등 한국 문인이 참여한다. 아랍권 작가들이 최근 중동 정세 흐름에 관해 토론하는 ‘아랍 작가들이 말하는 중동의 민주화’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 발표 및 토론의 장(場)이 마련된다. 작품 낭독회, 노래와 시 콘서트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열린다. 루이사 발렌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중 한명으로,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폭압을 폭로해 왔다. 나라얀 와글레는 지난해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팔파사 카페’ 등으로 네팔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포럼 기획위원장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현재진행형인 아랍 민주화투쟁과 연평도 포격 등에서 보듯 비서구는 여전히 분쟁과 독재에 고통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불리한 여건이 오히려 비서구 문학의 역동성을 가능하게 한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면서 “유럽 중심에서 벗어난, 진정한 의미의 세계문학을 정립하는 데 알라 문학포럼이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현대문학사의 가까운 지점에 김홍신의 ‘인간시장’,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도 마찬가지 영역에 머물러 있다. 대중소설, 혹은 상업소설이다. 역사, 추리, 판타지, 연애 등을 다루는 소설을 흔히 ‘장르 소설’이라 일컫는다. 본격소설(혹은 순소설)과 대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간소설’(middlebrow fiction)이란? 말 그대로 본격소설과 상업소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다. 문학의 예술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을 모두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현대문학이 판타지와 팩션(팩트+픽션), 칙릿(젊은 여성을 뜻하는 chick+literature의 조어) 등을 주 대상으로 삼는 풍조 속에서 중간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장르적 경계가 상당 부분 허물어진 상황에서 장르를 규정짓는 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으로 비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현실을 딛고 나온 발언이 있다.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사뭇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문제 제기다.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내놓은 문학평론집 ‘언어의 그늘’(서정시학 펴냄)을 통해 중간소설이 품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는다. 문 교수는 “한 나라의 문학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이 서로의 경계선을 확실히 유지하면서 상호 비판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면서 “중간소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선 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고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곧바로 “중간소설 옹호론자들이 본격소설의 본령과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할 때에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며 논의의 장(場)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몇 년 전 거액의 고료를 걸고 제정된 뉴웨이브 문학상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기존의 중간소설 옹호론 핵심을 ▲중간소설은 세계문학의 큰 흐름이며 서사의 재미와 함께 문학의 품격도 겸비한 만큼 과거 대중문학에 비해 한 차원 높다 ▲기존의 본격소설 역시 중간소설의 다양한 자양분을 수용해야 그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최첨단 정보기술(IT) 수준에 맞춰 생산된 보편적 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가져 보자 등으로 정리했다. 문 교수는 ▲소설은 사회의 모순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고독한 투쟁의 여행임에도 이를 외면하며 멀티미디어적 상상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본격소설을 위축시키며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업화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만큼 민족적 특수성에 기반해 세계 인류가 공감하는 내용이 더욱 필요하고 ▲최첨단 IT 기술을 접목해 만드는 중간소설은 인간적 향기가 없는 문화 상품일 뿐이라고 조목조목 반박 논리를 곁들였다. 그는 “과거 현대문학의 흐름 속에서 이뤄진 실험과 파격이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응전력이 그 속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문학은 지배 담론의 논리에 오염된 일상 언어를 비판하고 그 논리에 의해 추방된 그늘을 감싸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치 중간소설을 우리 문학의 미래인 양 표현하는 풍토가 만연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면서 “굳이 순문학이니 본격문학이니 하며 경계 짓지 않더라도 세상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문학이 지켜야 할 가치만큼은 엄연히 존재함을 주장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엘리트주의를 앞세워 문학의 성벽을 굳건히 높이고자 하는 문단 주류 연구자의 고루한 아집인지, 아니면 흥미로움과 경박함이 문학의 외피를 쓰고 범람하는 풍조에 대한 외로운 저항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판단은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TV 비평] ‘출생의 비밀’ 안방극장 점령 왜?

    [TV 비평] ‘출생의 비밀’ 안방극장 점령 왜?

    요즘 안방극장은 ‘출생의 비밀’을 빼놓고 인기를 논할 수 없다. 시청률 40%를 돌파한 KBS 일일연속극 ‘웃어라 동해야’는 전반부엔 주인공 동해(지창욱)의 출생 비밀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가더니 최근에는 동해 엄마인 안나(도지원)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한 드라마에서 똑같은 코드가 두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 이 방송사의 수·목 드라마 ‘가시나무새’도 유경(김민정)이 친모(親母)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극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월·화극 1위로 올라선 MBC 미니시리즈 ‘짝패’ 역시 운명이 뒤바뀐 천둥(천정명)과 귀동(이상윤)의 이야기가 주요 뼈대다. 신분이 뒤바뀐 귀동이 출생의 진실을 의심받으면서 시청률(17.7%)이 본격 상승해 경쟁 드라마(SBS ‘마이더스’, KBS ‘강력반’)의 추격을 뿌리치고 있다. MBC 주말연속극 ‘반짝반짝 빛나는’도 한순간에 인생이 뒤바뀐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병원 측의 실수로 30년을 다른 부모 밑에서 살아온 여주인공 한정원(김현주)과 황금란(이유리)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시청률이 두 자릿수로 올라섰다. 같은 방송사의 ‘욕망의 불꽃’도 윤나영(신은경)-백인기(서우) 모녀와 김영민(조민기)-김민재(유승호) 부자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 아무리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광속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이처럼 고전적인 소재가 다시 전면 배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드라마는 외국에 비해 유독 혈연 의식이나 가족 코드가 강하고, ´출생의 비밀’이라는 극적인 코드를 통해 신분 상승에 대한 대리만족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과거에는 ‘출생의 비밀’ 자체가 극의 목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초반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서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데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호기심을 건드린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장은 “핏줄 이야기는 통속적이긴 하지만 중·장년층에게 호소력이 있기 때문에 시청률을 감안해서라도 외면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자칫 ‘막드’(막장 드라마)가 될 소지가 다분하고 다양성을 해쳐 드라마 시장 발전을 퇴행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윤 교수는 “인간에 대한 충분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고 말초적인 호기심만 자극한다면 현실 인식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실학은 성리학과 대립학풍 아닌 연장

    실학은 성리학과 대립학풍 아닌 연장

    조선시대 실학을 둘러싼 논란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성리학과 그렇게 대립적이었느냐 하는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설사 그렇게 대립적이었다 해도 어쨌거나 정조 때나 잠깐 반짝하고 만 것 아니냐는 부분이다. 즉, 실학이라는 훌륭한 개혁적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했고, 이 때문에 조선이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도식이다. 이는 영·정조, 특히 정조 시대를 다루는 연구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데 반해 19세기 조선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르네상스기를 들여다볼 맛이 나지, 망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게 즐거울 리는 없다.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 2011년 상반기 호에 실린 특집 기획 ‘한국 실학연구 80년’은 이런 통념을 뒤집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학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은 늘 있어 왔다. 유학 자체가 노장 사상이나 불교에서 주는 가르침을 허(虛) 혹은 공(空)한 얘기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은 언제나 삶의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실학’(實學)임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모든 유학자는 실학자라는 얘기다. 때문에 특집의 초점은 기존 성리학과 실학을 단절적이 아닌 연속적으로 파악하고, 그렇기에 실학이 정조 때 반짝 돌출했다가 사라진 게 아니라 조선 시대 내내 은은하게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데 맞춰져 있다.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최근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고종 초기 강관(講官) 박규수(1807~1876)의 복권과 연관 있다. 유봉학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는 ‘실학의 계보와 학풍’이란 글에서 ‘유학:탁상공론, 실학:실제적 학문’이라는 도식을 깨자고 제안한다. “실학은 주자학과 반대되거나 대립되는 학풍이 아니라 그 일각의 특정 학풍을 지칭한 것이고 조선 후기 주자학의 전개 과정과 연동되고 있었다.”는 게 유 교수의 주장이다. 실학의 학문적 뿌리를 추적해보면 결국 서경덕, 조식, 이황, 이이, 성혼 등 16세기 사림파에 맥이 닿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오랜 세월 실학은 성리학의 대척점에 놓였을까. 유 교수는 “일제 강점기 이래 주자학 혹은 성리학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 편견이 실학자들을 ‘정권에서 소외된 재야 지식인’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해외를 바라보는 북학’이란 글을 통해 박규수를 본격적으로 거론한다. 이 위원장은 박규수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손자로 1870년 전후 시기에 고종의 측근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종은 1873년 경복궁 안에 건청궁을 짓고 그 안에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을 나란히 세운다. 이어 청나라에서 수천권의 책들을 들여와 이곳에 갖다 놓았다. 이는 청나라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북학파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김명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실학과 개화사상’에서 박규수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김 교수는 “실학 연구자들은 박지원에서 박규수까지 시야를 확대한 적이 없고, 개화사상 연구자들은 박규수에서 박지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했다.”면서 “이런 연구상의 단절이 실학과 개화사상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가 주목하는 부분은 박규수의 ‘서학중원설’(西學中源說)이다. 서구문명이 압도적이지만 그 과학기술 자체는 중국에서 건너간 문물이니 따서 쓰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서학중원설의 핵심이다. 이는 청나라가 오랑캐이지만 그 문물은 따로 볼 필요가 있다는 박지원의 북학파적 태도와 연결된다. 김 교수는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 박규수의 인맥이다. 고종 즉위 초기에 강관이 된 박규수는 이후 10년 동안 고종의 학문을 지도했다. 최고 권력자의 정치사상적 지도자였던 셈. 그의 제자들은 김윤식(1835~1922), 김홍집(1842~1896), 박영효(1861~1939), 유길준(1856~1914) 등의 개화사상가들이었다. 성리학은 위정척사파(조선 후기에 일어난 사회운동으로 정학인 성리학을 수호하고 성리학 외 모든 사상은 배격)로만 치닫는 게 아니라 실학을 매개로 개화사상과도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중앙亞 ‘고려인 문학’ 찾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민족의 역사는 150년을 헤아린다. 50만명이 넘는 이들은 ‘고려인’으로 불린다. 구 소련 지역에서 살아온 그 후예들은 소수민족으로 살며 벌써 5세, 6세까지 거슬러 내려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도 문학을 누리고 산다. 러시아어가 아닌, 어머니 나라의 언어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 우리 민족 문학사의 지워진 조각, ‘고려인 문학’이다. 국제한인문학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고려인들이 쓴 문학 작품을 발굴, 집대성해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문학’(국학자료원 펴냄)을 내놓았다. 강태수, 리 왜체슬라브, 리시연 등 고려인 작가 8명의 시 46편, 소설 4편, 수필 2편, 희곡3편 등 모두 55편의 새로 발굴한 작품들이 실렸다.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고려인 첫 정착지 우슈토베 등을 방문해 국제학술회의를 갖는 한편 자료 발굴 및 수집한 결과물이다. 그동안 문단에서도 파편적으로나마 개별 작가론, 작품론 등을 통해 고려인 문학이 드문드문 소개되고 다뤄진 바 있다. 반면 ‘…디아스포라문학’은 이것을 뛰어넘어 한민족 문화권이라는 구도 속에서 고려인 문학의 위상과 의의를 총체적으로 살펴봤다는데 의미가 있다. 고려인 문학의 뿌리 역할은 조명희(1894~1938)의 몫이었다. 연해주 한인 신문인 ‘선봉’에 문예면을 마련했고, 카자흐스탄으로 옮긴 이후에는 ‘선봉’의 후신으로 ‘레닌기치’, ‘고려일보’를 창간해 고려인 문단 형성의 화수분 역할을 했다. 강태수, 조기천, 연성용 등 고려인 문인 후배들도 이끌었다. 실제로 이정숙 한성대 국문과 교수, 정호웅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고인환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등 국제한인문학회, 중앙아시아한국학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소속 고려인 문학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이 실린 책의 1부가 고려인 문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면, 발굴 작품들의 원문이 실린 2부는 구체적인 생김을 만지고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김종회 교수는 “현지 고려인들의 연령 분포나 새로운 세대의 의식 변화 등을 감안하면 이번 성과는 아마도 우리말로 창작한 세대의 마지막 유품에 해당할 것”이라면서 “발굴된 작품들이 문학적 성취나 예술적 가치가 다른 디아스포라 문학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부분을 상회하는 역사적 삶의 자료로서 존재 의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숏버스(조너선 무니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저자는 난독증에 시달렸음에도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을 졸업했고, 학습 장애아들을 위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숏버스’는 장애 학생들의 스쿨버스다. 저자는 숏버스를 개조해 넉달 동안 미국 대륙을 누비면서 학습 장애, 지적 장애, 신체 장애를 가진 이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이를 꼼꼼히 기록했다. 1만 3500원. ●정헌배 교수의 술나라 이야기(정헌배 지음, 예담 펴냄) 전공인 경영학보다 ‘술 박사’로 더 잘 알려진 정헌배 중앙대 교수의 책이다. 프랑스로 술 유학을 다녀온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을 딴 ‘정헌배 인삼주가’를 만들었을 정도다. 술에 얽힌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통해 술을 철학적, 역사학적으로 살펴보고, 우리나라 술 산업의 문제점과 과제 등을 진지하게 짚어 낸다. ‘술 박사’는 실제로는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고 한다. 1만 2000원. ●오래된 영혼(강금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쉼 없이 공부하고, 사유하고 성찰하는 강금실 변호사의 이탈리아 성지 순례기다. 바티칸시티에서 피렌체, 아시시 등으로 이어지는 여행 기록이다. 그뿐 아니라 곳곳에서 이뤄지는 2000여년 전 예수와의 교감, 우리 사회 종교의 역할, 믿음과 용서의 가치 등을 담담한 문장으로 적어간다. 7년 전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강 변호사의 믿음의 두터움을 확인할 수 있다. 1만 3000원.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박종현 지음, 컬처그라피 펴냄) 학자이면서 대중적 접점을 넓히며 소통을 꾀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지식인 60명의 삶과, 학문 그리고 세계를 읽는 사상의 정수를 소개한다. 박노자, 이택광, 황상민, 강수돌, 우석훈 등 어지간히 잘나가는 학자들은 거의 다 망라됐다. 2만 3000원. ●아흔 개의 봄(김기협 지음, 서해문집 펴냄) 역사의 의미를 정밀하게 현재화하는 역사학자 김기협이 아흔 넘어 기억이 흐려지는 노모를 돌보며 2년 남짓 동안 쓴 ‘시병 일기’다. 자식으로서 도리, 의무감으로 시작한 간병이었지만 아들에게도, 노모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모두 기쁨으로 다가왔다. 불효자가 효자가 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불화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모자 관계를 내 일처럼 지켜보는 즐거움과 감동이 있다. 김기협의 어머니는 이남덕 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다. 1만 2900원.
  • [한국 드라마 이대로 좋은가 (하) 외국 사례와 해법]드라마 ‘다이어트’…부분 사전제작 확산돼야

    [한국 드라마 이대로 좋은가 (하) 외국 사례와 해법]드라마 ‘다이어트’…부분 사전제작 확산돼야

    국내 드라마 제작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국처럼 ‘사전 제작제’ 정착이 모범 답안이지만 유난히 시청자들의 개입이 센 한국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전체 방영분의 절반 가량을 미리 만드는 ‘부분 사전 제작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시장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드라마의 횟수나 방영 시간도 줄이는 등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아울러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들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드라마를 단순 오락거리가 아닌 예술 산업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전 제작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편성의 확실성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꼽힌다. 주로 외주 제작사들이 드라마를 생산하는 현재의 체제하에서는 사전에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해도 편성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제작 발표회까지 열었던 유이 주연의 드라마 ‘버디버디’처럼 편성이 예정됐다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여러 방송사를 떠돌다가 드라마의 분위기가 ‘올드’하다는 느낌을 주어 흥행에 실패하기도 한다. 2005년 화제작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했던 김윤철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사전 제작을 용인하지 않는 편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전 교수는 “현재 1~2년 전 편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3~4개월 전에 편성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같은 방송사의 편성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외주 제작사의 경우 수익을 올릴 수 없으니 역설적이게도 자국 시청자가 아닌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두어 기획과 캐스팅을 하는 기형적인 제작 방식도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떻게든 사전 편성이 가능할 수 있게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1년 전에 드라마 편성을 완료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사전제작제의 정착은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시간과 자본의 문제에 대한 공동 책임 의식이다. 사전에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1년간 배우들의 스케줄을 빼야 하고, 늘어나는 촬영 시간만큼의 제작비가 보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작품에 매달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이에 따르는 제작 비용도 담보돼야 한다. 한 지상파 드라마국장은 “사전 제작제로 인해 추가되는 시간과 자본에 대해 배우, 작가, 제작진이 함께 부담한다는 공통 인식이 전제된 뒤에야 비로소 사전 제작제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드라마에 대한 인식 변화다. 지금처럼 작품성보다 흥행성만을 염두에 둔다면 사전 제작제는 정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대해 간섭하기를 좋아하고, 드라마가 방영된 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제작진이 드라마의 내용이나 구성 등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사전 제작제 드라마의 경우,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쌍방향 소통’ 제약 때문에 시청률에서 참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전량 사전 제작할 경우 드라마에 대한 탄력적인 구성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제작진은 드라마가 일회성 오락물이 아닌 영상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화제성보다는 완성도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드라마 파일럿(시험방송) 제도가 정착돼 있다. 철저하게 사전 제작 시스템이 정착된 미국의 경우는 1~2회의 드라마를 먼저 제작해 방송사에서 검토한 뒤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방송사 자체 제작이 아예 없고, 네트워크 기능만 있는 것. 모든 것이 외주 체제로 움직인다. 이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는 이에 대한 손실을 외주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서병문 단국대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는 “손실을 보면서도 파일럿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드라마 편수와 1회당 60분씩 내보내는 획일화된 형태도 개선 대상으로 꼽힌다. 김윤철 교수는 “광고시장 규모에 맞게 드라마 편수와 편성 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은 미니시리즈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편씩 방영되는 경우가 많고, 방영 시간도 45분을 넘지 않는다. 서병문 교수는 “앞으로 미디어 빅뱅이 본격화되면 시장경쟁 원칙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은주·김정은기자 erin@seoul.co.kr
  •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 위로… 문단 보듬은 ‘큰 나목’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 같고, 큰누이 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 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 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포토]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 타계●“6·25 없었으면 선생님 됐을 수도”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 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시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쟁·참척의 고통까지 관조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작가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하는 힘을 보여 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깊은 상처 속에서도 늘 글 속에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가장 최근에 쓴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를 다녀왔다.…비석엔 내 이름도 생년월일과 함께 새겨져 있다. 다만 몰(沒)한 날짜만 빠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가 있는 게 저승의 큰 ‘빽’이다.” 이어지는 글. “다만 차도에서 묘지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것이 걱정스럽다. 운구하다가 관을 놓쳐 굴러떨어지면 늙은이가 살아날까 봐 조문객들이 혼비백산(하겠지)…실 없는 농담 말고 후대에 남길 행적이 뭐가 있겠는가.” ●유니세프 활동 ‘한국의 오드리 헵번’ 그는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이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을 찾아다녔다. 암을 발견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 한국위 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안식년 틈타 지리산 산자락서 삶을 돌아보다

    서울서 지내는 이라면 바닷가 항구도시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갈하고 과묵하게 시(詩) 쓰는 선비에게는 시의 서정을 다듬기에 그마저도 번잡스러웠나 보다. 허형만(66) 시인이 내놓은 열세 번째 시집 ‘그늘이라는 말’(시안 펴냄)은 목포대 국문과 교수이면서 안식년을 틈타 구순 어미의 품으로, 지리산 산자락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시어(詩語)로 풀어낸다. 시의 시선은 땅으로, 낮은 곳으로, 작은 것으로, 침묵으로 향한다. 39년째 접어든 시력(詩歷)이 궁극적으로 머무는 지점은 자기 자신이다. 시편 ‘절하다’에서 어머니가 밭에서 캐낸 ‘줄줄이 딸려 나와 세상을 밝히는/ 저 붉은 고구마’에게도 두손 모아 절하고, ‘우루루 쏟아지는’ 어머니의 독경 소리에도 절하는 시인의 섬김의 뜻이나, ‘야생의 바람을 껴안고 잠든 강을/ 이리 무심히 바라보고 있느니’(‘겨울 노래’ 중)라며 자연으로 침잠함은 한결같은 성찰의 몸짓이다. 지리산으로 들어선 이유 또한 시로 설명했다. ‘…들어서는 안될 소리 듣고 말았으니/…/아예 귀 자를 수밖에, 그래 자른 귀 염(殮)하여/ 솔바람소리 맑은 양지 바른 곳에 묻기 위해’(‘귀를 염하다’ 중)였다고 부끄러이 고백한다. 연작시 ‘산거’(山居)에 이르러서는 산중에 묻힌 여유로움과 기쁨,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정수가 느껴진다. ‘말 잊은 지 이미 오래’인지라 ‘졸참나무 숨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갓밝이 닭울녘/ 동녘 하늘로 아스라이 번지는/ 저 빛살 참 곰살갑다’고 소박하게 노래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발문을 통해 “허형만 시인은 우리 시단의 세 흐름인 서정, 실험, 참여 가운데 서정의 적자로 꼽힌다.”면서 “이번 시집에서 선보인 서정의 간단 없는 심화는 자기 성찰과 타자 발견의 시학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고 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부의금 받지 마라” 가는 길까지 ‘서민과 시대의 작가’

      늘 수줍어하던 문학소녀였다. 가까운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탔다. 하지만 마음 속엔 살가움 한가득임을 알기에 후배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늘 그를 찾곤 했다. 친정 어머니같고, 큰 누이같던 그의 마음 씀씀이 한 자락을 살며시 내비친 것이 빈소 입구에 붙여진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글귀다. 생전에 했다는 “나 죽으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말이 뒤늦게 전해지며 후배들을 더욱 사무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것들을 위로해주던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80세. 지난해 뒤늦게 발견된 담낭암으로 투병해오던 그는 지난 22일 새벽 서울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꼬박 40년을 한결같이 써온 글쓰기도 함께 끝냈다. 지난해 여름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 같은 박완서 특유의 넉넉한 성찰과 위안의 글은 이제 활자로만 남게 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유해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25일 오전 경기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 분열의 문단 어머니처럼 보듬어 안던 ‘큰 나목’  한국현대사의 굴곡은 그 시대 누구에게나 그러했듯 그에게도 굵직한 생채기를 남겼다.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그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져 곧바로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간 오빠는 부상을 입고 돌아온지 여덟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학교 중퇴 이후 미8군 PX에서 일하다 박수근 화백을 만나 등단작 ‘나목’(裸木)의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상처는 쉬 가셔지지 않았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는 일관되게 한국전쟁을 들여다 봤다. 전쟁이 보통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어떻게 억압이자 상처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탐구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계간문예지 ‘문학의문학’과 나눈 대담에서 그는 “6·25가 없었으면 글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특유의 부드럽고 다독이는 문체 속에 급속한 산업화 속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단으로 본격 호출한 것이다.  ● 전쟁·참척 고통까지 관조“내 나이 새삼 징그럽다”  1988년 남편을 폐암으로 잃었다. 석달 뒤 외아들마저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통해 개인적 상처마저 관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  “경인년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늘 내면의 상처에 주목해왔기에 그의 문장은 섬세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았다.    ● 암 발견 직전까지 유니세프 한국위 친선대사 활동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호암상 예술상, 보관문화훈장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은 소설가로서 삶에 내려진 작은 상일 뿐이다. 소설 바깥의 활동도 소홀하지 않았다.  1993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은 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몽골, 인도네시아 등 곤경에 처한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몸 속의 깊은 병을 확인하기 직전인 지난해 9월에도 부산까지 내려가 유니세프 후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유니세프한국위 평직원들은 ‘한국의 오드리 헵번 모습을 발견했다. 고귀한 이상을 가지신 분임을 새삼 확인했다.’라며 그 웅숭깊은 속내를 기렸다.  이제 지상에서 글쓰기는 끝났다. 그는 천상으로 자리를 옮겨 밤하늘 별로 반짝거리며 또 다른 소통과 위로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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