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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 무엇일까 시는 위로일까…답이 흐릿하다 시가 피어나다

    삶은 무엇일까 시는 위로일까…답이 흐릿하다 시가 피어나다

    “모든 사랑은 항문에서 완성된다.” “명사들을 이어 주는 조사 ‘은, 는, 이, 가’에는 삶의 시작과 끝이 담겨 있다.”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인 정끝별(50) 시인이 더욱 예리해진 통찰력으로 돌아왔다. 삶을 관통하는 울림도 더욱 깊어졌다. 다섯 번째 시집 ‘은는이가’(문학동네)에서다. 2008년 시집 ‘와락’ 이후 6년 만이다. 시인은 공백 기간 생활인으로서도 시인으로서도 힘든 고비를 맞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고3, 중3을 거쳤다. 쉰 살이 되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도 맞닥뜨렸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당신은?’(별책부록)이라고 대놓고 자문하기도 한다. 등단 26년에 즈음해 ‘나는 어떤 시인이고 어떤 시를 쓰고 있고 써야 하는가’라는 시인으로서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도 컸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시를 썼다. 이전 시보단 더 나아야 하고 이전 시와는 다른 시를 쓰는 것, 끊임없이 갱신하는 시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힘든 과정을 거치며 일반인으로서든 시인으로서든 회의감이 커서였을까. 이번 시집에선 ‘~일까, ~걸까’ 등 시와 삶에 대해 물음을 많이 던진다. 질문 중엔 답을 찾은 것도 있고, 찾는 과정에 있는 것도 있다. 답을 찾은 작품 중 하나가 표제작 ‘은는이가’다. ‘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중략)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으로 세상을 잰다//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은는이가) 시인은 “은는이가는 삶의 비유”라고 설명했다. “문장은 조사가 있어야 시작된다. ‘은는이가’는 문장의 시작과 끝이다.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하는 동시에 문장의 의미를 완성한다. 새가 난다, 새는 난다에서 보듯 난다는 의미는 같지만 조사가 의미를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완성해 준다.” 은는이가는 보통 사람들로 시작해 그들로 완성되는 우리 사회와 그 속에 부대끼며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도 꿰뚫는다. ‘모든 사랑은 항문에서 완성되는 것이라서 내 깊은 항문을 누군가에게 내맡길 때 그제서야 내 사랑도 완성된다’(항문의 역사)고 봤다. “항문은 몸에서 가장 은밀하고 어둡고 숨기고 싶은 부분이다. 사랑하면 입술부터 떠오른다. 굉장히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랑이 끝가지 가려면 항문까지 용납돼야 한다. 한 사람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포용해야 한다. 그걸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사랑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 ‘서로를 녹이며 서로가 녹아내리는’(펭귄 여인) 사랑의 양면성도 놓치지 않았다. “사랑은 서로를 배려하고 희생하게도 하지만 서로를 갉아먹기도 한다. 사랑은 줄 수 없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한 ‘자크 라캉’의 말처럼 사랑은 절대 완성될 수 없고, 늘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다.” 다음 시집의 얼개를 예고하는 시도 있다. ‘울면 울새도 울까 봐/울새가 울면 울려 했는데/아가야 먼저 울렴 네가 울면/울새도 울 수 있을 테니.’(느릅나무 아래) “쓸 땐 몰랐는데 시집을 내고 보니 ‘느릅나무 아래’라는 시가 볼수록 좋다. 읽을 때마다 묘한 슬픔이 일렁이는 듯하다. 다음엔 짧은 구절 속에 말하지 않는데도 어쩐지 슬퍼지는 그런 느낌이 묻어나는 시를 쓰려 한다.” 시인은 “시는 행복의 근원이자 불행감의 근원”이라며 “30년 이상 키워 온 짝사랑 같은 것이고 평생을 가고 또 가야 할 가지 않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다시 당신께 닿기 위해’(시)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가고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제대로 놀아야 아이다

    제대로 놀아야 아이다

    “학교폭력, 왕따…. 요즘 아이들의 병리 현상 원인 중 하나는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거다. 그 단적인 예가 놀이터가 텅텅 비었다는 거다.” 작가 고정욱(54)의 문제의식은 예리하다. 치유의 힘도 크다. 어린이·청소년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초·중·고 현장에서 연간 300회의 강연을 하며 아이들과 영혼으로 대화해온 덕분이다. 새 청소년 소설 ‘공짜로 놀아주마’(웅진지식하우스)에선 ‘잘 노는 것’과 ‘소명 의식’을 다뤘다. 작품 속 고교 2학년인 ‘원길’은 하루아침에 ‘뺑소니 사고’로 어머니를 잃는다. 그 충격으로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한다. 학교도 그만둔다. ‘슬픔을 지우기 위해 한없이 잠만 자고 싶었다. 잠은 또 다른 작은 죽음이었다. 원길은 차츰 얼이 빠진 사람처럼 변해갔다. 이성적으로는 지금 공부를 해야 하고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질 않았다. 어머니가 없다는 공허함은 원길의 영혼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독벌레와 같았다.’(25~26쪽) 원길은 어느 날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야겠다고 결심한다. 무작정 걸으며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다. 근육에 쥐가 나고 발에 염증이 생겨 천안에서 도보 여행을 포기하고 상경한다. 올라오는 길에 영혼상담가 ‘반헨렐’을 만난다. 그는 원길에게 유년 시절 못 해본 게 무엇인지 묻는다. 원길은 공부하느라 실컷 놀아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순간 원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실마리를 찾는다.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 의해 ‘프로그래밍’돼 있는 삶을 산다. 학교든 학원이든 집이든 공부하라는 말만 듣고 산다. 숨통이 막힐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놀아야 창의성, 모험성이 발현된다.” 작가도 사정은 다르지만 어린 시절 전혀 놀지 못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했고, 교실이나 복도에선 기어 다녔다. 운동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애 탓에 의사의 꿈도 접었다. 의대에선 장애인을 뽑지 않아서였다. 문과로 전향해 국문과에 입학했다. 책벌레였기에 작가가 되고자 했다. 20여년이 흘러 장애를 완전히 극복하고 소명 의식도 자각했다. “‘나는 왜 장애인으로 태어났나, 사람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깔보고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는데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루저‘(패자) 아닌가’ 어릴 때부터 고민과 방황이 컸다. 하지만 장애가 있기에 장애인을 차별과 편견으로 대하지 말라고 말과 글로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장애인이 됐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40대 초반이었다. 삶의 소중함과 내가 유용한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원길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게 된다. “재밌어 게임하고 노는 게”처럼 어순을 뒤바꿔 말하는 장애도 극복하게 된다.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반드시 있다. 그걸 소명이라고 한다. 그 소명을 찾아야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소명을 깨달은 이후 매일 매일이 기적이고 즐겁다.” 작가는 원길처럼 저마다 말 못 할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아픔엔 다 이유가 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아픔을 납득할 날이 온다. 아픔은 삶의 축복이다. 영혼이 깃든 소중한 존재이고 삶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도 자각했으면 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부고]

    ●이종은(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씨 별세 영원(HMC투자증권 이사)씨 부친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95 ●남극우(전 코리아CC 대표이사)씨 별세 동윤(KFG 부장)씨 부친상 오훈(사업)씨 장인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30분 (02)3410-6915 ●나현수(경기도 교통연수원 교수팀장)현문(엘아이엔지 대표이사)숙희(JW생명과학 경영기획실장)씨 부친상 손기홍(충북 괴산군청 주민복지과 근무)씨 장인상 21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31)787-1508 ●남용우(자영업)성학(자영업)씨 부친상 21일 서울 하월곡동 뉴타운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9시 (02)909-4444 ●정규남(통계청 차장)씨 장인상 21일 순천향대 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50분 (02)797-4444 ●박태수(파주시 부시장)씨 장모상 21일 천안의료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41)570-7279 ●안차수(경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씨 모친상 21일 마산연세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30분 (055)223-1059 ●김현준(충북도체육회 상임부회장)씨 부친상 21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30분 (043)298-9200
  • [열린세상]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가을 연휴를 맞아 모두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만큼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으로 공항은 북적거린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 국내 여행만큼은 복 받은 존재라고 자부하기에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매년 제자들과 함께 전국 곳곳으로 문학 답사를 가니 그렇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가을이면 문학기행을 떠나니 그 얼마나 행복한가. 이번 한글날에도 시인 목월의 생가를 찾아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서울을 출발해 경주의 목월 문학관과 시비를 둘러보고 목월 생가를 방문하는 여정이었다. 목월 시인의 장남이자 나의 스승인 박동규 선생님과 선생님이 이끄는 ‘심상 시우회’ 회원들과 경주로 내려가는 길은 눈부신 황금빛 들판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오래전 스승을 모시고 목월 시인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스승은 50대 후반이었고 나는 30대 중반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스승은 정년퇴임을 했고, 나는 50대의 중년이 됐다. 스승 앞에 머리가 허옇게 센 제자로 서 있는 것이 송구스러웠다. 세월은 참 빨리도 흐른다는 생각과 더불어, 스승과 함께했던 지난 추억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스승과 담소를 나누면서 관광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머리를 아프게 하던 시끄러운 세상사 모든 일이 거짓말처럼 차창 밖으로 쓸려 내려갔다. 동행한 회원들은 대부분 연로했다. 직장에 젊음을 바치고 이제는 퇴직해 뒤늦게 시를 배우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늦었지만 시를 가까이 하게 되면서 비로소 인생과 삶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들 누구도 돈에 대해, 주식에 대해, 아파트 가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목월 시인의 시에 대해,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목월의 시에 노래를 붙인 ‘이별의 노래’를 부르자 다들 조용히 따라 불렀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이 깊었네”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은 시와 황금빛 들판과 함께 이 가을을 호흡하고 있었다. 불국사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생가에 도착했다. 생가는 깔끔하게 복원돼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목월 시인이 어린 시절 생가에서 소학교까지 십리 길을 걸어서 등교하는 모습을 보았고, 청년이 된 목월 시인이 역시 생가에서 걸어 경주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시인이 그렇게 걸어 간 인생의 여정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시로 탄생됐다. 그 시가 ‘나그네’다. 스승은 목월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시인의 육필 시집을 내고자 한다. 목월 시인의 육필 원고를 보면서, 세속적인 욕망을 뒤로하고 맑고 순수한 시심으로 서정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나는 떠올렸다. 그런 시인이 존재하기에, 사리사욕을 채우려 이전투구(泥田鬪狗) 식으로 싸우고, 타락한 물질적 욕망에 휘둘려 아귀 같이 살아가는 우리의 황폐한 삶을 조금이나마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런 세속적 욕심 없이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그렇게 무욕의 경지에서 평화로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그네’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삶의 한 자세가 아닐까. 목월의 시를 비롯한 서정시가 아직도 절절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유를 나는 목월 시인의 생가에서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귀경길의 버스 안에서 어떤 회원의 말이 지금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시를 배우게 되면서 바뀐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손으로 지폐를 세다가, 지금은 손으로 시집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돈을 셀 때는 끝이 있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것은 끝이 없었습니다. 계속 다른 시집을 보게 되니까요. 그리고 예전에는 텔레비전만 봐도 잠이 왔는데, 이제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시집을 봐도 잠은커녕 정신이 맑아집니다.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훗날 제 손자에게 시집을 읽어줄 수 있고, 또 제 시집을 선물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 [열린세상]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지난여름 무더위가 한창일 때 2주가량 공적인 일로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생활을 했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방에 홀로 기거를 하면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주어진 일을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완료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을 받았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이가림의 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를 계속 떠올렸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 본다/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음을/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라는 시구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시는 사랑하는 이를 깊은 땅에 묻고 돌아오는 날 밤, ‘나’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모래알 같은 이름을 불러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떠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며칠 밤을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했던 일, 혹은 누군가와 다투었던 일, 또 무엇인가 소홀히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모래알 같은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나’라는 존재는 홀로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내 삶이 결코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면 나에게 인연의 끈을 허락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 어떤 이해타산적인 측면을 개입시키지 않고 진심을 다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 결심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그때의 각오를 지금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동안 소원했던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가끔 그때의 다짐을 떠올리면서 마음속으로나마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긴 한다. 또 학생들에게 공부 안 한다고 화를 내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열심히 하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려 한다. 학생들 발표문을 집어던지면서 불같이 화를 내던 평소의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본 때문인지 학생들은 나의 그런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추석 연휴를 맞아 학생들에게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가르친다. 밤마다 돋는 달처럼 임이 늘 내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는데, 임과 ‘나’와의 거리가 저 달처럼 멀어지자 그때야 임이 사무치게 그리운 대상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임과 함께할 수 없기에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는 내용이다. 시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추석날 엄마 일 도와드리고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배부르게 먹으라고 당부한다. 엄마가 “우리 딸 많이 먹어”라고 말할 때 ‘살찌면 어쩔 거냐’면서 짜증 부리지 말라고. 엄마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고맙습니다, 정말 맛있어요, 하면서 볼이 미어터지게 먹으라고. 부모님 살아생전에 섬기길 다하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 돌아가신 뒤에 상다리가 휘도록 차례 상을 차린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은 저 달처럼 멀리 계시는 것을. 그러니 부모님 살아생전에 어깨 한 번 더 주물러드리고, 추석날 엄마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효도 아니겠는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후회를 되풀이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듯하다. 그러나 가끔씩 ‘모래알 같은 이름’을 불러보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그들이 가까이 있을 때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그런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하게 될 듯하다. 이번 추석날도 풍요로운 보름달이 환하게 세상을 밝힐 것이다. 나 또한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부모님의 은혜를 새삼 떠올리고,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팔순 노모의 어깨도 시원하게 주물러드리면서 모든 이들의 평안을 달님에게 두 손 모아 기원 드리고 싶다.
  • [열린세상] 애틋한 사랑이 그립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애틋한 사랑이 그립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최근 우스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중년 부부가 있는데, 동창회 갔다 온 아내가 집에 와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자 남편이 불안해하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내는 남편을 째려보면서 다들 남편이 없는데 자신만 남편이 있다면서 이제부터 집안에서 숨조차 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함께 듣던 내 또래의 남자들은 웃기는커녕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의 일 아니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한 끼도 안 먹으면 ‘영식님’, 한 끼 먹으면 ‘일식이’, 두 끼 먹으면 ‘두식놈’이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한마디씩 덧붙였다. 농담 속의 살벌한 중년 부부도 젊은 시절엔 애틋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길을 걸으면서 남자는 애인에게 꽃보다 예쁘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말했을 것이고, 노을 지는 여름 바다를 보면서 서로 마음속으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을 것이고,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짓는 애인의 어깨를 감싸면서 남자는 여린 여인을 평생 지켜주리라 다짐했을 것이고, 눈 내리는 겨울날 남자는 여인의 어깨에 자신의 외투를 둘러주고 혹시나 여인이 미끄러질까 봐 손을 꽉 쥐고 조심조심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틋한 사랑을 나누던 젊은 연인이 살벌한 부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세파에 찌들었기 때문이리라. 돈을 벌기 위해, 승진을 위해, 자식 교육을 위해, 집을 장만하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젊은 시절의 애틋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리라. 애틋한 사랑의 자리에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자리 잡게 되고, 그 무관심이 두 사람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을 것이리라. 박목월의 시 ‘가정’에는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 나타난다. 가난한 시인인 아버지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가면서 살아간다. 그런 힘든 삶이지만 아버지는 ‘아홉 마리 강아지’ 같은 자식들을 위해 ‘아랫목’을 내어주면서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목월 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베푼다. 그런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식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뿐이다. 그런데 부모 자식 간의 애틋한 사랑도 이제는 사라져 가는 듯하다. 오늘날의 부모도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지만, 그 베풂 속에 세속적 욕망을 개입시킨다. 곧 내 자식은 남의 자식보다 공부 잘하고, 일류 대학 가고,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부모 스스로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있으니, 자식은 반드시 부모의 그런 노력에 보답해야 한다고 여긴다.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라는 세속적 가치가 부모 자식 간의 애틋한 사랑까지 밀쳐 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자식을 망치는 ‘학대’로 변질된다. 남의 자식보다 공부를 못하면 혼을 내고, 남의 자식보다 좋은 대학 가지 못하면 창피해한다. 부모의 혼탁한 욕망을 자식의 삶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자식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가 설계한 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로봇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그럴 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애틋한 사랑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살벌한 부부 관계도 세월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지독히 경쟁적인 이 사회의 논리와 그 논리에 편승한 부부의 잘못된 욕망의 결과일지 모른다. ‘다른 집 남편은 이러한데 내 남편은 왜 이렇지’ 하면서 남편을 구박하는 심리나, ‘다른 집 자식은 이러한데 내 자식은 왜 이렇지’ 하면서 자식을 구박하는 심리는 동일한 것이 아닐까.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리적으로 대단히 가까워졌다. 언제 어디서든지 마음만 먹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음과 마음의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그런 풍속은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린 듯하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도, 서로를 분신처럼 여기고 아끼는 젊은 연인의 애틋한 사랑도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애틋한 사랑만이 각박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 [부고]

    ●김창웅(전 서울신문 TV가이드 부장·전 한국야구위원회 홍보실장)씨 별세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2227-7500 ●임영석(신한은행 부행장)씨 부친상 김동수(삼성전자 부장)씨 장인상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4일 오전 (02)2227-7580 ●원용기(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장)씨 부친상 11일 강원 횡성삼성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33)342-4444 ●오세태(전 대한투자신탁 이사)세익(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씨 모친상 이재홍(전 USB 한국 대표)씨 장모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410-6912 ●양찬규(전 연합통신 논설위원실장)씨 별세 11일 중앙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2)860-3500 ●김동준(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씨 부친상 강혜선(성신여대 국문과 교수)씨 시부상 우영식(연합뉴스 경기북부취재본부 기자)씨 장인상 11일 원자력병원, 발인 13일 오전 5시 (02)970-1550 ●김태우(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주식투자부문 대표)정옥(올리브앤컴퍼니 대표)씨 부친상 고준원(인천 해맑은치과 원장)이혁원(이제이컴퍼니 대표)박진수(한림대 의대 교수)씨 장인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2)3410-3151 ●신경철(삼정KPMG 전무)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2)3010-2230 ●오제세(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씨 장인상 11일 일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31)900-6938
  • 통영문학상 시·시조·소설 부문 뽑혀

    통영문학상 시·시조·소설 부문 뽑혀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는 27일 올해 통영문학상 수상자 3명을 발표했다. 김춘수 시 문학상에는 박판식(41) 시인의 ‘너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가 뽑혔다. 김상옥 시조문학상에는 박옥위(73) 시조시인의 ‘조각보 평전’, 김용익 소설문학상에는 조용호(53) 작가의 ‘떠다니네’가 선정됐다. 박 시인은 경남 함양 출신으로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밤의 피치카토’와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등을 펴냈다. 박 시조시인은 부산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감을 지냈으며 ‘현대시조’와 ‘시조문학’에 추천된 뒤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으로 ‘유리고기의 죽음’, ‘숲의 침묵’ 등이 있다. 조 작가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발표, 등단했다.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로 있으며 장편집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와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다. 수상자에게는 창작지원금 1000만원씩을 준다. 시상식은 다음달 5일 오후 6시 30분 문화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열린세상] 필부필부에게서 거인을 보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필부필부에게서 거인을 보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사회적으로 이른바 ‘존경’ 받아오던 법조인, 교수, 언론인, 기업가가 그동안 숨겨 왔던 파렴치한 행위들이 폭로되면서 하루아침에 위선자가 돼 버리는 요지경 같은 세상이다. 아마도 이들은 ‘존경’이라는 단어를 앞세운 채 뒤에서는 출세욕, 물욕, 지배욕 같은 온갖 탐욕을 부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하찮은 수단 내지 도구로 여겼을 것이다. 팔순의 장인을 모시고 동서와 동해안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해 밥을 먹으며 동서와 나는 백담사에 유배 왔던 대통령과 요즘 청문회 건으로 도마에 오른 인사들의 이야기를 했다. 어른은 대화를 듣고 나서 모든 것이 사람의 과한 욕심 때문이라면서 혀를 찼다. 어른이 살아온 삶을 알고 있는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른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장사를 하면서 어른은 한 번도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운 적이 없었다. “아버님, 그렇게 해서 돈 버시겠어요”라고 웃으면서 묻자 어른은 그저 욕심부리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숙소인 금강산 콘도로 가는 도중, 어른은 거진 항구에 꼭 들러야 한다고 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어시장 한구석 좌판에서 회를 뜨는 할머니가 반갑게 어른을 맞이했고, 어른은 서울에서부터 준비해 간 옷 한 보따리를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사연인 즉, 어른은 지난 20여년 동안 거진항에서 친목 모임을 해왔고, 그때마다 할머니에게서 회를 샀다는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할머니는 매년 어른에게 감사의 인사로 횟감을 보냈고, 어른은 할머니에게 답례로 옷을 부쳤다는 것이다. 내가 근사한 횟집으로 어른을 모시려 하자, 어른은 할머니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할머니 좌판에서 꼭 회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가 내놓은 회는 물기가 덜 빠져서 그런지 동서와 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사실, 어른은 몸이 불편해서 회를 가능하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어른은 진귀한 회를 대접받은 듯이 맛있게 먹으면서 할머니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숙소로 와 잠을 자고 새벽에 한국 대 러시아의 축구 경기를 보았다. 어른은 한국이 축구를 잘한다면서 마냥 즐거워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른은 조기 축구회 회원으로 젊은 사람 못지않게 90분 시합을 거뜬하게 소화해 냈다. 그렇게 건강했던 어른이 요즘 기력이 많이 쇠약해졌다. 숙소를 나올 때 어른을 부축하기 위해 손을 잡았는데, 살집도 예전 같지 않았다. 통일전망대에 도착해서 어른은 망원경으로 철조망 너머 북녘 땅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른은 6·25전쟁 참전 용사다. 아마도 어른은 젊은 시절 체험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면서 죽어간 전우들을 위로하고 분단된 나라의 통일을 간절히 염원했을지도 모른다. 어른은 전쟁 때 통일전망대 부근 고지에서 치른 전투를 이야기하면서,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른은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었다. 여행 내내 사람들은 장인과 두 사위가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에 대해 매우 신기해했다. 그런데 동서나 나는 그런 시선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아마도 어른의 평소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어른은 자식들에게 돈보다, 권력보다, 명성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늘 가르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 구성원 간의 참사랑이다. 그러면서 그 사랑이 사회와 나라의 참사랑으로 연결되도록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가르쳐왔다. 동서와 내가 장인을 친아버지처럼 여기는 것도 그런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정한 아버지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진정한 아버지의 상이 무엇인지를 그동안 나는 찾아 헤맸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그런 아버지를 비로소 만나게 된 것이다. 어른을 마냥 평범한 분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어른은 거인이었다. 자동차 뒷거울로 어른의 모습을 보면서 몸가짐, 마음가짐, 그 모든 것에서 나는 어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버지가 될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났다. 많은 제자를 둔 스승으로서,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나는 과연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반문해 본다.
  • [문화단신]

    서울 시민 대상 ‘남산 시 학당’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남산 시 학당’ 강좌가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서울에서 열린다. 최동호 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의 ‘시 읽기반’(7월 3일~9월 18일)과 한분순 시인의 ‘시조 읽기반’(7월 4일~9월 26일)이 각각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30분씩 진행된다. 반별 수강 인원은 20명 내외이며 수강료는 9만원이다. 수강 일정은 홈페이지(www.imhs.co.kr) 참조. (02)778-1026~7. 미주 한인 대상 ‘LA문학아카데미’ 단국대 부설 국제문예창작센터에서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LA문학아카데미’를 개설한다. ‘창작과 글쓰기로 한국문학 사랑하기’라는 주제로 이론과 창작을 병행하는 1기 강의는 오는 7월 18~29일 LA한국교육원에서 열린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수업을 이끈다. 인터넷 카페(cafe.daum.net/ICWC) 수강 신청서를 다운받을 수 있다. 현지 문의 323-544-7677.
  • [6·4 지방선거 D-4] 여야 부산시장 후보 표심 르포… 부산 경제·일자리 활성화 핫이슈

    [6·4 지방선거 D-4] 여야 부산시장 후보 표심 르포… 부산 경제·일자리 활성화 핫이슈

    초여름 햇살이 따가운 30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제주도산 낚시 갈치를 좌판에 내놓던 ‘대호수산’ 50대 여주인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금 오가는 손님 있나 쫌 보소. 경기도 안 좋은데 세월호 사태 때문에 매출이 딱 절반으로 줄었다. 당최 주머니에 돈이 안 들어온다”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제 싸움 그만하고 ‘생업으로 돌아가자’고 왜 안하나”라며 따끔하게 야단쳤다. 옆 가게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생멸치를 다듬던 ‘남해횟집’ 상인 이숙이(65·여)씨가 기자를 불러 세웠다. “정치인들이 여당이고 야당이고 부산을 너무 안이하게 본다. 부산을 물 먹이는 거 아이가”라고 삿대질을 했다. 이씨는 “지난해엔 여자 해수부 장관이 해수부가 부산 오는 걸 반대하더니, 신공항도 가덕도에 만들기로 합의했다 하더만 이제 와서 ‘되니 안 되니’ 한다”고 정부·여당을 답답해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새누리당 시장 후보가 됐으면 카는데 과연 기대만치 일을 제대로 하겠나”라며 미심쩍어했다. 두 블록 건너 생선구이 골목 안 ‘대선횟집’,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40대 남성 주인은 “(부산시장이) 누가 되든 침몰하는 부산을 다시 살려낼 사람이 필요하다. 아무리 힘 있는 여당 후보가 된다 해도 일개 시장이 부산 경제·일자리 회생시킬 능력이 있나.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거돈 무소속 부산시장 후보를 가리켜 “여기선 사거돈인지 오거돈인지 육거돈인지 관심없다. 야권 단일화했으면 2번 달고 나와야지 왜 굳이 ‘아무데도 안 속하는 척’ 4번으로 나오나”라고 진정성을 의심했다.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서도 “중앙 정치는 오래 했다는데 본인이 자신이 없으니 자꾸만 박근혜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 아닌가”라고 못마땅해했다. 그러면서 “예전에야 무조건 당 보고 찍었지만 여태껏 살아온 행적과 공약을 보고 찍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4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부산 민심은 자조적이었다. 유권자들의 ‘여당 피로도’가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야권 후보에게 친밀감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침체된 지 오래된 부산을 살려낼 ‘9회말 구원투수’를 찾지 못한 무언의 불만이 높았다. 이런 기미는 이미 지난 2010년 민선 5기 지방선거 때 표출됐다. 당시 3선에 도전한 한나라당 소속 허남식 시장이 민주당 김정길 후보를 55.4% 대 44.6%로 눌렀지만 영남지역 한나라당 광역단체장 중 최저 득표율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풍’에 대한 역풍이 컸지만 무엇보다 한나라당 독주 체제에 대한 불만, 남강댐 물 공동 사용·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등 정책 갈등으로 시민들의 소외감이 커진 탓이었다. 이번 선거도 서 후보가 초반 여유 있게 앞서 나가다 표심이 요동을 치면서 야권에 반격을 당하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공표 시한인 지난 29일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오 후보는 오차범위 내인 0.8~2.9% 포인트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다. 선거 막판 오 후보와 김영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단일화, 통합진보당 고창권 후보 사퇴 등으로 야권 결집이 가시화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새누리당 지도부는 뒤늦게 부산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1976년부터 운전대를 잡았다는 개인택시 기사 정영수(61)씨는 “내가 20년 넘게 한나라당을 찍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몰라도 1번 공천받은 사람 찍는 동네지만 이번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전했다. 정씨는 “역대 정권에서 국회의장·부의장, 원내총무 등 수두룩하게 부산에서 배출했는데 그동안 발전된 게 뭐 있나”라고 반문했다. “여당 소속 시장이 10년 해먹었지만 하나 변한 게 없다. 여당 찍어줘 봤자 별거 없다 카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시민분향소가 설치된 부산역 앞에서 주차 업무를 하고 있는 장대현(55)씨는 “며칠 전에 오 후보가 요 앞 광장에 와서 연설하고 갔다”면서 “어느 후보건 선거 때만 되면 찾아와서 ‘잘봐 달라’고 인사하고 가는 꼬락서니가 괘씸해 죽겠다. 그래서 아직 찍을 후보를 못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인구가 500만이 넘었는데 지금 350만을 겨우 넘는다. 경제가 안 좋으니 양산, 창원, 울산 타 지역으로 나가버리고 이래 갖고 사람 살겠나”면서 “힘 있는 여당 후보 뽑아주면 그 사람이 위(정부)에서 다 지원받아 준다는 보장 있나”라고 했다. 역 앞 공사장 너머를 가리키며 “산복도로나 우리 동네인 진구 범천동 같은 데는 주거환경도 낙후되고 개발도 뒤처졌다. 도시개발 잘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부산대 캠퍼스 안에서 만난 학생들은 절반 이상이 “후보는 잘 모르지만 일단 여당은 싫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강의를 끝내고 몰려나오던 국문과 여학생들은 이번에 투표권을 처음 행사하는 새내기 유권자들이라고 했다. 2학년 김민지(21)씨는 “이번 선거가 여당을 심판하는 자리라곤 생각하지 않고 우리 동네를 잘 발전시켜 줄 후보를 뽑고 싶다. 그래도 보수적인 새누리당은 싫다”고 못 박았다. 같은 과 최진아(22)씨는 “세월호 사태로 인해 오히려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커졌다”면서 “정부 정책이 임기응변식이다. 세월호 사태 터졌다고 해서 ‘수학여행 가지 마라’ 이런 정책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문창회관에서 만난 학보사 소속 이예슬(21·여)씨는 “부산 젊은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일자리다. 졸업한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연봉 1800만원을 주는 데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청년들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다 보니 오죽하면 ‘부산엔 노인과 바다뿐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온 지 오래됐다”면서 “매번 여당 후보만 찍어주다 보니 부산 발전이 정체된 거 아닌가. 오 후보는 부시장에 해양대 총장 경험도 있고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기계공학과 지모(25)씨는 “대기업만으로는 부산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힘 있는 중견기업을 육성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녁 시간, 사하구 괴정시장 근처 호프집에서 생맥주 잔을 기울이던 40대 직장인 일행은 ‘박근혜식 국정 운영’이 안주거리였다. 부산 토박이로 죽마고우라는 임진태(43)씨는 “지금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문제 때문에 굉장히 예민하다. 대구·경북(TK)에선 밀양을 밀지 않나.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부산이 팽당했다는 소외감이 너무 크다”면서 “우리는 괄시당한 데 대한 보상심리가 큰데 박 대통령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인가. 밑에서 뒷받침을 잘해야 되는데 잘 못하는 것 같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친구 최삼열(44)씨는 “대통령도 이제 인사에서 너무 고집 세우지 말고 국민의 소리도 들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낙마한 안대희 총리 후보자도 적임자라 했는데 전관예우 때문에 무너진 거 아닌가. 이번 선거 때 정신 좀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느 시장 후보를 찍을 건가”라는 물음에 임씨는 “밉지만 그래도 한 표 줘야 되지 않겠나”라고 새누리당을 향했고 최씨는 담배를 피워 물며 “그때 가봐야 안다”고 대답을 미뤘다. 사상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하아름(33)씨는 세 살배기 딸을 카트에 싣고 가다 불만을 터뜨렸다. “부산은 서울보다 작은데 빈부 격차는 더 크게 느껴진다”면서 “잘 모르지만 야당 후보에게 관심 갖고 있다”고 했다. 연제구 아파트 단지 안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던 40대 부부는 “대통령이 열심히 하는지 몰라도 우리 사회 적폐 청산, 해묵은 공무원 개혁은 어림없다. 한 표로 심판할 것”이라고 서운함을 표출했다. 부산 시내 곳곳에선 ‘힘있는 일자리 시장 서병수’, ‘부산의 힘, 시민의 시장’이라고 쓰인 여야의 플래카드가 요란하게 내걸렸지만 퇴근길 시민들은 무관심하게 발을 옮기고 있었다. 부산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열린세상] 금수의 세상에 미래는 없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금수의 세상에 미래는 없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선하다고 답할 것이다. 지천으로 핀 봄꽃 속에서 해맑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뛰노는 유치원 아이들을 보라. 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면서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중고생들을 보라. 또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순수 열정의 결정체인 대학생들을 보라. 그런데 그런 내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제 한몸 건지자고 팬티 바람으로 탈출하는 선장, 기상천외한 불법을 저지르면서 재물을 탐하다가 잡범처럼 도망 다니는 회장 일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싸움질하기에 여념 없는 정치인들, 치유하기 힘든 아픔을 권력을 잡기 위한 기회로 여기는 선전선동꾼들. 하긴 이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금수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금수를 뉴스에서만 접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았다. 동네 근처 천변을 산책할 때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자전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 옆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야외 수업을 나왔는지 선생님과 함께 야생화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꽃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쉴 새 없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탄 무리 중 한 금수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더니 아이들에게 욕설을 섞어 고함을 질렀다. 자전거가 가는데 왜 비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얼굴이 하얘지고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 금수 일행 중 그 누구도 고함지르는 금수를 말리지 않았다. 산책로 바닥에는 ‘자전거 서행’이라는 표지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너무나도 화가 나서 내가 큰 소리로 나무라자, 금수들은 비싼 자전거를 타고 꽁지 빠진 새처럼 황급히 도망을 가버렸다. 바로 이 금수만도 못한 어른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더럽고 추악한 이 어른들도 분명 해맑은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꿈 많은 순수 청년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금수로 만든 것은 그들을 길러낸 또 다른 금수 같은 어른일 것이다. 더러운 어른에게서 더러운 짓을 배워 더러운 어른이 된 우리들이 그 더러운 짓을 순결한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금수로 만드는 이 부끄러운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에는 타락한 현실의 바다에 맞서 소금물에 날개가 젖어 지칠 대로 지쳐가면서도 젊은 시절의 순수한 꿈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나비 같은 남편과, 그 타락한 바다에 안주한 채 돈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면서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어린 자식을 중국에 유학 보내는 아내가 나온다. 이 ‘아내’에게서 금수 같은 어른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금수 같은 ‘아내’보다는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나비 같은 ‘남편’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각종 제도를 뜯어고치고, 인적 쇄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수 같은 어른들이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자각하고 스스로 뼈를 깎는 참회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참회로부터 어른으로서의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함은 분명하다. 참회를 통해 타락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나비 같은 어른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 나비들의 날갯짓이 하나 둘 모여 바다 위를 가득 메울 때, 타락한 바다도 비로소 살 만한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제자들과 진로 문제를 두고 면담을 하고 있는 중이다. 놀란 것은 우리 학생들이 지닌 지극히 소박하고 순수하고 건강한 생각이다.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일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학생들은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회를 위해, 또 남을 위해 뭔가 봉사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젊은이들의 이 아름답고 순수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어른들은 모든 더러운 욕심을 내려놓고 그들을 말 없이 뒷바라지하면 된다. 그래야 우리의 죄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또 그래야 어른이 돼 잊고 있는 인간 본래의 선함을 되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 청나라 문인이 달아준 비평에… 박제가는 감격했네

    청나라 문인이 달아준 비평에… 박제가는 감격했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정민 지음/문학동네/720쪽/3만 8000원 지난해 2월 27일 낮 12시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세미나실에서 한문학자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조촐한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그가 방문교수로 와서 지난 6개월간 발굴한 ‘하버드 옌칭도서관의 후지쓰카 컬렉션’에 대해서였다. 제임스 청 옌칭도서관장과 사서 등 도서관 관계자들과 한국학, 일본학, 중국학 연구자 등 세미나실에 모인 사람들 중 후지쓰카가 누군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는 훗날 국보 180호가 된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소장하다 태평양전쟁 끝 무렵 서예가 소전 손재형에게 아무 대가 없이 넘겨줬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다. 청(淸)조의 학술과 문예가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는지, 두 나라의 학자들이 어떻게 교유했는지를 연구하는 데 푹 빠져 평생 엄청난 양의 서적을 중국과 조선에서 수집한 인물이다. 나고야 대학의 전신인 제8고등학교 교수를 거쳐 베이징 파견 연구학자,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특히 추사에 매료돼 18~19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와 관련된 자료는 고서부터 메모, 그림까지 무엇이든 수중에 넣었다. 1940년 정년을 맞은 그는 수집한 사료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모으거나 베껴 쓴 책들의 일부가 우여곡절을 거쳐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까지 흘러들어 갔다. 60여년간 옌칭도서관 선본실 서가에 잠들어 있던 이 책들은 2012년 8월 방문학자로 옌칭연구소를 찾은 정 교수에 의해 빛을 본 것이다. 이날 발표는 “중국에 대해 연구하다 조선에 빠진 일본인 학자가 소장하고 연구했던 책들이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오게 된 경위와 그 자료의 가치를 한국인 학자가 미국에서 설명하는 다국적 주제였다”고 정 교수는 요약한다. 신간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정 교수가 열정적 자료 탐구와 남다른 지식 생산력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지식의 바다에서 길어 낸 한·중 지식인의 교류사다. 문학동네가 펴내는 ‘우리 시대의 명강의’ 6번째 책으로, 정 교수가 지난해 3~12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매주 연재한 글 40편을 모았다. ‘문예공화국’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유럽 각국 인문학자들이 라틴어를 매개로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서로 소통하던 지적 공동체를 일컫는다. 물리적 국경을 초월한 상상 속의 문예공화국 안에서 글이 오가며 토론하는 가운데 지식인들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싹텄고, 이는 실질적인 계몽주의의 토대가 됐다. 18세기 청나라와 조선의 지식인들은 공통 문어(文語)인 한문을 사용해 필담으로 시와 학문을 나누고 우정을 다지며 또 다른 문예공화국을 형성했다. 동심원을 그리듯 점점 깊어지고 넓어진 지식 네트워크의 시초는 북학(北學)의 기틀을 다진 담헌 홍대용(1731~1783)이다. 그는 숙부 홍억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사(燕行使)가 되어 1765년 베이징에 갔다가 향시를 보러 온 절강의 선비인 엄성, 육비, 반정균 등과 우연히 만나 사귀며 천애지기를 맺는다. 정 교수는 옌칭도서관에서 후지쓰카가 자신의 전용원고지에 베껴 쓴 엄성의 ‘철교전집’과 엄성·육비·반정균의 향시 답안지를 따로 모아 묶은 ‘절강향시주권’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조선과 청조 지식인의 교류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홍대용이 막을 열고 박제가가 발전시킨 18세기 한·중 문예공화국은 당시 양국 간 정치적 위계와 무관하게 평등한 지식 네트워크의 모습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했음을 후지쓰카가 수집한 필사본 ‘한객건연집’ 등 사료들은 증명하고 있다. 1776년 11월 연행길에 오른 유금(柳琴,1741~1788)은 연암 그룹의 문우인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의 시를 모은 ‘건연집’(巾衍集) 을 가지고 ‘월동황화집’이라는 시집을 쓴 청 조정의 관리 이조원을 찾아가 서문과 비평을 부탁했다. 이조원은 우연히도 홍대용이 오래전 우정을 맺은 반정균과 가까운 사이였다. 이조원·반정균 두 사람은 조선문인 네 사람의 시집에 ‘한객건연집’이라는 제목을 달아주고 각 시에 정성껏 비평을 달아주었다. 청색, 적색 글씨로 우아하고 정중하게 쓰인 비평을 받아든 박제가 등은 감격을 금치 못한다. 상대방의 지적 역량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만남이 만남을, 우정이 우정을 낳는 과정을 그들의 후학인 정 교수는 방대한 지식과 치밀한 자료 탐색,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한 장면씩 되살려낸다. 옌칭도서관을 뒤져 후지쓰카 컬렉션을 하나둘씩 찾아내고,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가면서 어떤 때는 “좋아 펄쩍펄쩍 뛰며 연구실을 뱅뱅 돌았다”는 정 교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공자가 논어 첫머리에서 말했던 학문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교육은 백년대계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교육은 백년대계다/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산수유, 벚꽃, 살구꽃, 개나리꽃, 진달래, 철쭉 등 온갖 봄꽃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자태를 뽐내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를 환하게 채우고 있다. 그야말로 싱그러운 봄이다. 대학에도 새내기들로 활기가 넘친다. 신입생들은 한껏 멋을 부리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쾌활하고 발랄한 웃음을 꽃망울처럼 터뜨린다. 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느라 찌들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청춘(靑春)은 푸른 봄이라더니, 봄을 맞아 교정은 새내기 청춘들의 뜨겁고 신선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들을 마주 보는 것이 봄꽃 보는 것보다 더 황홀하다. 나는 새내기들에게 실컷 젊음을 만끽하라고 한다.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연극도 보고, 늦도록 잠도 자고, 수업 시간도 빠져 보고, 그야말로 하고 싶었던 것 다 해보라 한다. 그래서 하루빨리 입시에 시달렸던 고등학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학생답게 스스로의 꿈을 펼치면서 알차게 생활하라고 한다. 가끔 외국의 고등학생들이 방과 후 활동을 통해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예체능 등의 다방면에서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자신의 재능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인교육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그런 활동은 사치다. 학교 수업도 모자라 방과 후면 학원으로 곧장 달려가 밤늦도록 문제집과 씨름한다. 그들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배운다. 그렇지만 그 시를 읽고 자신의 시를 창작해보고, 또 그 시를 음악이나 미술에 창조적으로 활용해 보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오로지 대학 입시에 맞추어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암기하고 문제를 풀고 또 풀 뿐이다. 가히 문제 풀이 기계다. 그런 그들이 어찌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개성적인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획일화된 입시 제도에 길들여지고 희생된 조화(造花)일 뿐이다. 학생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해마다 바뀌는 입시 제도다. 하도 바뀌다 보니 학생도 학부모도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대학에 갈 수 있는지 헷갈린다. 대입수능시험 과목도 해마다 바뀌고, 전형 방법도 해마다 바뀐다. 국사가 홀대를 받다가 정치인의 한 마디에 어느 날 홀연히 필수과목으로 바뀐다. 자기 계발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도대체 세울 수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교육 제도에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노예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물론 교육제도의 변화가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입장에서 학생들의 자기 계발을 위한 쪽으로 진행된다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교육제도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 찰나적이고 즉흥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문제다. 사리사욕에 눈먼,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 나부랭이들이 오로지 한 표를 얻기 위해 신성한 교육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제도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제도를 급조해낸다. 학부형이 반발하면 또 고치고, 교사들이 반발하면 또 고치고, 여론이 들끓으면 또 고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엉터리 정책의 실험 도구로 전락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문을 익히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 제도는 진정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나 또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만 이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편협한 이해관계를 절대 교육 제도에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진정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우리 학생들이 그런 나라를 이끌어나갈 주역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바람직한 교육제도가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널뛰는 교육제도에 이제는 더 이상 우리 학생들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뽐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그 꽃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봄의 축제를 연출하는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보고 싶지 않은가. 그 생기 넘치는 세상, 살 만한 세상을 위해 기성세대 그 누구도 교육제도에 대해서만은 어떠한 사욕도 품어서는 안 된다.
  • [부고]

    ●최병길(서울랜드 대표)병열(다다하우징 대표)병권(수도군단 부군단장)씨 모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410-6919 ●유장환(목원대 신학과 교수)씨 부친상 7일 논산 강경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9시 30분 (041)745-1842 ●김윤환(LS자산운용 주식운용팀 차장)씨 부친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2258-5940 ●홍현석(평화엔지니어링 부사장)희선(프리랜서)씨 부친상 이원균(한국수출입은행 석유산업금융부 팀장)씨 장인상 7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30분 (031)787-1506 ●김영웅(캐나다 거주)영종(전 중앙일보 덴버지사장)영철(G1강원민방 사장)미영(캐나다 거주·한국무용아카데미 회장)씨 모친상 3월 30일 캐나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02)3410-3151 ●박헌기(전 국회법사위원장)씨 부인상 병배(법무법인 대교 대표변호사)환배(경북대 자연과학대학장)씨 모친상 6일 경북대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53)200-6149 ●전광현(단국대 명예교수)씨 부인상 승훈(삼덕티엘에스 대표이사)상훈(자영업)씨 모친상 정승철(서울대 국어국문과 교수)김승목(전 브랜드이미지 라가 한국지사장)씨 장모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2227-7500 ●이대형(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선수)씨 조부상 6일 광주 금호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062)227-4382 ●신영훈(스탠다드차타드은행 검사부 이사대우)영숙(극동대 교수·뮤지컬 배우)씨 부친상 전명식(현대해상 부장)임관구(도시철도공사 과장)임영재(현대해상 팀장)씨 장인상 7일 서울대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2)2072-2091 ●김경건(전 HMC투자증권 법인사업본부장)씨 모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02)3010-2237 ●강수관(전 동아일보 사진기자)씨 별세 7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2)923-4442 ●전용필(대전상공회의소 비서실장)씨 장모상 7일 충남대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42)257-4861 ●오상윤(에코마이스터 대표이사)윤아(SK텔레콤 차장)윤정(미국 거주)윤이(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씨 부친상 정의탁(감사원 감사관)이동균(법무부 형사기획과 검사)이태호(미국 거주)씨 장인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02)2258-5940
  • “청각장애인도 강의 수강에 불편 없어요”

    “청각장애인도 강의 수강에 불편 없어요”

    “탁, 탁, 탁.”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캠퍼스의 한 강의실에서는 수업 내내 작은 타이핑 소리가 퍼졌다. ‘현대시 강독’ 수업 중 담당 교수의 강의 내용을 강의실 한편에 앉은 속기사가 쳐서 칠판 옆 스크린에 자막으로 실시간 중계한 것이다. 이곳은 모든 수업 내용을 실시간 기록해 보여 주는 ‘속기록 강의실’로 청각장애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를 지원하기 위해 미술대학 건물에 특별히 설치한 공간이다. 24일 숙명여대에 따르면 학교 측은 미대에 속기록 강의실 2곳을 마련해 21일 첫 정식 수업을 진행했다. 이번 학기 이 강의실을 이용하는 수업은 현대시 강독 외에 현대공예론, 예술치료 등 모두 세 과목이다. 이날 현대시 강독 수업을 들은 학생 100여명 중 청각장애인은 조민희(20·한국어문학부 2년)씨 한 명뿐이었다. 국문과 수업인 까닭에 문과대학 건물에서 해야 하지만 조씨를 위해 속기록 강의실이 있는 미대 건물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장애 학생들은 조금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조씨는 수차례 “학생들을 먼 곳까지 오게 해 미안하다”면서 양해를 구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속기록까지 볼 수 있어 더 집중이 된다”고 오히려 반겼다. 속기록 강의실은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청각장애 학생 13명 중 6명이 미대생인 터라 미대 건물 안에 마련됐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비록 장애학생 수가 비장애 학생보다 절대적으로 적지만 ‘배움에는 장애와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 호주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해 속기록 강의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속기록 강의실은 장애인을 위한 복지대학 등에 설치돼 있지만 일반 대학에선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숙명여대 측은 설명했다. 지금까지 청각장애 학생들은 수업 때마다 비장애 학생들이 옆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로 대필해 주는 수업 내용에 의지해 공부했다. 하지만 내용 자체가 생소하거나 이해가 어려운 전문적인 강의일 때 비장애 학생의 대필 내용이 부정확한 일이 많았다. 이날 강의 중계를 맡은 오지원(35) 속기사는 “강의 속기록은 수업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수업 전에 미리 자료를 검토해 본다”며 “속기록 자료는 강의가 끝나고 나서 장애 학생에게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는 장애가 있는 학생이 캠퍼스에서 불편함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늘릴 방침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친절을 디자인하다(코마쓰다 마사루 지음, 최문용·황인석 옮김, 군자출판사 펴냄)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직원 교육을 담당한 저자가 서비스 노하우, 친절 포인트, 조직 운영 방법 등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168쪽. 1만 2000원. 좌충우돌(김종엽 지음, 문학동네 펴냄) 사회학자인 저자가 2003년부터 10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세태를 진단한다. 그동안 쓴 칼럼을 정리한 뒤에 경험에 근거한 가벼운 고찰을 덧붙였다. 604쪽. 2만원. 아버지 그림자 밟기(한일수 지음, 유리창 펴냄) 강압적인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리라 했건만 자신도 똑같은 아버지가 됐음을 깨달은 저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회한을 써내려 가며 아들을 향해 소통과 화해를 시도한다. 아버지의 역할과 존재감에 대한 반성문이자 조언이다. 한의사인 저자는 학습장애 치료에 대한 임상 경험도 수록했다. 288쪽. 1만 4000원. 한국어 기본어휘 의미 빈도 사전(서상규 지음, 한국문화사 펴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15년 동안 언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단어 빈도를 분석했다. 이를테면 ‘바람’이라는 단어는 ‘바람이 불다’로 89% 사용되고 ‘감원 바람이 불다’는 2.9%, ‘바람이 나다’와 ‘바람을 쐬다’는 각각 2.1%씩 사용된다. 수록된 7203개 기본 어휘를 알면 한국말 85%를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 한국어교육에 특히 유용하겠다. 623쪽. 4만원.
  • 이솜, 정우성과 촬영한 흑백사진 공개

    이솜, 정우성과 촬영한 흑백사진 공개

    16일 배우 이솜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한 장 게재했다. 사진에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정우성과 이솜의 모습이 담겨 있다. 흑백 사진 속 두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정우성과 이솜은 영화 ‘마담 뺑덕’ 촬영 중이다. 현대판 심청전으로 불리는 영화 ‘마담 뺑덕’에서 정우성은 성추행 논란으로 인해 지방으로 좌천된 국문과 교수 심학규 역을, 이솜은 불륜녀를 연기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은주 기자의 컬처K] 사투리로 뜬 그대… 다음 작품 고민되네

    [이은주 기자의 컬처K] 사투리로 뜬 그대… 다음 작품 고민되네

    요즘 사투리는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에 있어 최고의 명약이다. 고고했던 여배우도, 잘나가는 아이돌 스타들도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도나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예전에는 강한 억양 때문에 이미지 문제로 사투리 사용을 기피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특효약이 됐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기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5일 첫 방송한 SBS 월화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 출연 중인 조승우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는 단연 화제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전직 강력계 형사 기동찬 역의 그는 맛깔난 사투리로 유쾌하고도 능글맞은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고 있다. 배우 정우는 사투리로 부활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8월까지 KBS 주말연속극 ‘최고다 이순신’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중고신인에 불과했던 그는 두 달 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에서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개성을 부각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로 출연했던 임시완도 극중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열연해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뗐고, 트렌디 드라마 ‘상속자들’로 인기를 얻은 김우빈도 영화 ‘친구2’에서는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무게감을 더했다. KBS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에 출연 중인 그룹 2PM의 택연은 데뷔작인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이어 또다시 사투리 연기에 도전하고 있다. 여배우들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털털한 이미지를 덧입히는 데도 사투리는 제격이다. ‘참 좋은 시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김희선도 새침한 만년 캔디 이미지를 벗는 데 성공했고 ‘응사’에서 경남 사투리를 구성지게 구사했던 고아라는 10년간의 부진에서 단박에 벗어났다. 최근 만난 부산 출신 여배우 손여은도 “이제 배우들에게 사투리는 하나의 장기가 된 것 같다. 꼭 사투리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투리 연기로 너무 크게 각인된 경우 전작의 그늘을 벗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실제로 ‘응사’에서 해태 역으로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선보였던 손호준은 요즘 KBS 월화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 출연하고 있지만 전작의 폭발력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다음 달 SBS 새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출연할 고아라와 영화 ‘쎄시봉’을 차기작으로 정한 정우도 이전의 사투리 연기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해당 지역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프로그램이 예기치 않은 시비에 오르기도 한다. 경주가 배경인 ‘참 좋은 시절’의 홈페이지는 요즘 연일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경주 지역의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이 구사하는 극중 사투리가 경주 사투리가 아니다”라며 항의성 지적을 하고 있는 것. 드라마 관계자는 “로케이션 장소가 당초 경남 지역에서 갑자기 경주로 바뀌는 바람에 빚어진 문제”라고 해명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사투리는 캐릭터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에게 긍정적인 요소”라면서도 “하지만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리얼리티 부재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rin@seoul.co.kr
  • [열린세상] 벼락 맞을 신입사원 모집공고/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벼락 맞을 신입사원 모집공고/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일 때, 팔순 노모를 모시고 식사를 했다. 피겨를 잘 모르는 노모가, 김연아가 훨씬 잘하는 것 같은 데 왜 이상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느냐며, 노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일정(일제강점기) 때 소학교 운동회에서도 꼭 왜놈들이 이기도록 해놓고 경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정 때나 자행되던 그런 잘못된 일이 대명천지에 아직도 일어나느냐며 혀끝을 찼다. 개강 준비로 한창 바쁜 삼월 초, 졸업한 제자가 찾아왔다.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제자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취직 시험에 떨어졌다고 했다.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텐데, 도통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제자의 취업추천서를 써 주었기에 제자의 능력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학점도 매우 좋고, 토익 점수와 한국어 능력 점수, 한자 능력 점수 등도 거의 만점에 가깝다. 그 외 각종 자격증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다. 재학 중에는 활발하게 봉사 활동도 했다. 또 사교성도 좋고 예의도 바르며 품행도 흠잡을 데가 없는 학생이다. 그래서 나도 제자가 자신이 가고 싶은 직장에 꼭 취직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청년실업 대란이라더니, 과연 취업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제자보다 실력이 출중한 인재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혹시나 제자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선발 과정으로 인해 취직이 되지 않은 것이라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때의 소학교 운동회처럼 미리 우승자를 정해놓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세우는 일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가 간부로 있는 회사에 자식이 부정한 방법으로 취업하는 경우나, 권력을 동원해 뒷문으로 공공 기관에 입사하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접한다. 만약 제자가 그로 인한 희생자라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전혀 없다. 소치 올림픽에서 피겨 부문 금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이름도 모른다)야말로 앞으로 피겨 하는 것이 고문일 것이다. 분에 넘치는 금메달을 땄으니 어떻게 다음 대회에 나올 수 있겠는가. 실력을 하루아침에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마도 전전긍긍하다가 일찌감치 은퇴하지 않을까. 결국 소치 올림픽에서 편파 판정을 한 심판들은 러시아 선수에게 금메달을 준 것이 아니라 독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연아 선수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수 스스로의 피나는 훈련과 선수의 재능을 알아본 지도자의 선견지명이 합쳐져서일 것이다. 내 제자가 훗날 김연아 선수만큼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 부당한 방법으로 신입 사원을 뽑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뽑힌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을 뽑은 기업이나 회사 또한 그 참혹한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길게 볼 때, 그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도태될 것이다. ‘소치’ 올림픽이 ‘수치’ 올림픽이라고 조롱받는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모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과 관련해 대학총장추천제를 실시하려다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대학을 서열화해 대학별로, 또 지역별로 추천 인원을 할당하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그런 황당한 발상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압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황당함에 기초해, 벼락 맞을 신입사원 모집공고를 내 보자. 부모 연봉이 상류 계층의 기준에 부합할 것. 부모가 고위 관직에 있으면 가산점을 듬뿍 줌. 특정 대학 이외에는 일절 서류를 내지 말 것. 남성은 환영. 여성은 키가 170cm 이상이고 늘씬할 것, 따위로. 김연아 선수의 결과에 대해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분하고 있을 때, 한국 사회는 도처에서 김연아 선수 같은 또 다른 희생자를 양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노력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제대로 된 사회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이 행해지고, 그 결과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때 그 사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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