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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관들 밥값은 누가 낼까

    #문제1=주미 한국대사관 외교관이 미 국무부 관리와 식사를 했다. 밥값은 누가 낼까. #문제2=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이 한국 외교통상부 관리와 식사를 했다. 밥값은 누가 낼까. 정답은 두 문제 다 ‘한국 외교관’이다. 외교관끼리 밥을 먹으면 보통 대사관 쪽에서 내는 게 ‘철칙’이다. 아무래도 주재국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재국 정부가 갑(甲), 대사관 쪽이 을(乙)인 셈이다. 예컨대 주한 일본 대사관 외교관과 한국 외교부 직원이 밥을 먹으면 일본 외교관이, 반대로 도쿄에서 주일 한국 대사관 외교관이 일본 외무성 직원과 식사를 하면 한국 외교관이 밥값을 낸다. 주재국 정부의 차관급 이상은 주로 대사관저로 초청하고, 그 아래 직급은 외부 식당에서 대접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다. ‘슈퍼 파워’답게 본국에서든, 주재국에서든 갑의 대접을 받는다. 미국으로부터 얻어야 할 정보가 많고 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미국 외교관은 각 나라로부터 밥 먹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식사 제의를 먼저 하는 쪽에서 지갑을 여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이유도 꼽힌다. 미국 외교관은 판공비가 다른 나라 외교관에 비해 빈약한 편이어서 밥을 잘 사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미국도 중국에서는 우리 외교관한테 밥을 산다. 주중 미국 대사관 관계자와 주중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밥을 먹으면 미국 쪽에서 지갑을 꺼낸다. 우리가 특별히 미국보다 정보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정서상 중국의 화법과 심중을 더 잘 이해하기 때문에 한국의 분석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심지어 일본 외교관도 우리한테 만나자고 먼저 제의한다고 한다. 예외는 또 있다. 서울에 주재하는 아프리카 등의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나라 외교관들에게는 갑의 위치에 있는 한국 외교부 관리들이 밥을 산다. 남자 외교관과 여자 외교관이 밥을 먹는 경우 역시 갑·을 관계가 엄밀히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로 남자 외교관이 밥값을 낸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갑·을 관계가 분명치 않은 외교관끼리는 초대한 쪽에서 먼저 밥을 사면 나중에 상대편이 답례로 식사대접을 하는 게 보통이다. 재미있는 것은 ‘더치페이(ducth pay)’의 본산지인 네덜란드 외교관들도 더치페이는 잘 안 한다고 한다. 그들도 일반적인 외교가의 ‘밥 사기’ 관행을 따른다는 것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美 ‘천안함 안보리’ 압박 中 ‘北연계 거부’가 변수

    美 ‘천안함 안보리’ 압박 中 ‘北연계 거부’가 변수

    한국 정부가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회부한 지 한 달이 되도록 돌파구를 열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면 북한과 천안함 침몰을 연관시키는 문구를 포함해선 안 되며, ‘공격’이 아니라 ‘사건’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초기에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결의안’을 자신했지만 이제는 ‘천안함 침몰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문구를 안보리 의장성명에 넣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26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에서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책임있는 자들’을 비난·규탄하고 한국 민·관 합동조사단 조사결과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책임있는 자’가 북한을 지목한다는 것조차 러시아 반대로 실패한 데다가 중국이 G8 회원국도 아닌 점을 고려했을 때 안보리 문안이 G8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조만간 발표할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 보고서도 변수다.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 안드레이 네스테렌코 대변인은 “전문가들이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 조사단은 5월31일부터 지난달 7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조사를 벌였다. 인테르팍스통신은 지난달 초 ‘조사단이 천안함 침몰을 북한 소행이라고 확증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한편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1일 정례브리핑에서 “도발적 행동이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분명히 하는 의미있는 성명이 안보리에서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안보리 천안함대응 시간걸릴 듯”

    “안보리 천안함대응 시간걸릴 듯”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9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천안함 사태의 대응 수위를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또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대북비난 공동성명을 안보리 논의에 활용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위 본부장은 국무부에서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 동아태차관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 성 김 6자회담 특사 등과 만나 안보리 대응 방안을 협의한 뒤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위 본부장은 ‘안보리 논의에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느냐.’는 질문에 “현재 진행 중인데 진전이 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느낌”이라고 답변했다. 천안함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인식 차에 대해서는 “외교적 노력이 계속 경주돼야 할 것으로 본다.”면서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기다려 주는 게 좋겠다.”고 신중론을 폈다. 안보리 대응이 늦어질 때 발생할 외교적 동력의 저하 가능성과 관련, “우선 G8을 계기로 우리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이 충분한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응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며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놓았다. 안보리 대응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평가를 공개하기는 어렵다.”면서 “G8 공동성명에 러시아가 포함된 만큼 그 부분을 활용해서 안보리 협의 때도 노력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美 “천안함공격 국제테러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28일(현지시간) 북한의 천안함 공격이 상대방 국가 군대에 대한 공격행위로서 이 사건 자체만으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차관보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은 국제 테러리즘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그 사실만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 제기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취해온 국무부가 명시적으로 천안함 공격을 테러로 규정할 수 없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롤리 차관보는 “천안함 침몰은 도발적 행동이지만, 한 국가의 군대에 의해 다른 국가의 군대에 대해 이뤄진 도발”이라며 “그 자체로는 국제적 테러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천안함 침몰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행위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과 협의를 모색하고 있지만, 북측이 응하지 않고 있다.”면서 “비무장지대에서 정전협정 위반 사안을 협의하는 것은 정전협정상 규정된 절차”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캠벨 “한·미 ‘北 안보리 제재’ 완전일치”

    캠벨 “한·미 ‘北 안보리 제재’ 완전일치”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7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응조치와 관련,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매우 강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캠벨 차관보는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오찬회동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은 한미동맹에 있어 결정적 순간”이라며 “양국은 긴밀한 공조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보리 대응에 있어서 한·미 양국의 입장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비롯한 적절한 양자적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참여연대가 우리 측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데 대해 “북한이 명백한 침략자”라며 “과학적이고 기술적으로 이뤄진 합조단의 조사결과를 면밀히 읽었다면 누구나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캠벨 차관보는 ‘중국을 설득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한국과 미국 모두가 앞으로 중국과 긴밀히 협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용준 차관보는 앞서 “미측은 천안함 문제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 문제에 관해 한국 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확고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안보리에서의 전략과 한미 연합훈련 등 군사적 사항에 대해 깊이 있게 협의했다.”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젠 6자” 환승외교

    “이젠 6자” 환승외교

    한국과 미국, 중국 등 북핵 6자회담 관련국들이 ‘포스트(post)천안함’, 즉 천안함 사태 해결 이후의 구상을 일찌감치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좁혀 말하면, ‘천안함 사건→북핵 6자회담 재개’로의 환승(換乘) 외교다. 정부 소식통은 “6자회담 관련국 사이에는 천안함 사건을 조속히 정리하고 ‘천안함 이후 국면’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면서 “이달 안에 안보리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엔 이런 기류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정부의 조사결과 검증 요청을 거절했던 중국이 15일(한국시간) 유엔에서 진행된 민군 합동조사단의 브리핑에 참석한 것도 안보리 결론이 빨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했다. 또 “뉴욕의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이 이번 주말부터 1주일 동안 아프가니스탄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우지만, 이사국 외교부 채널로는 협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안보리 결론이 급선무이지만, 안보리에서 대북 징계에 대한 결론이 나오면 본격적으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노력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리 결론에 따라 기존에 우리 정부가 천명한 대북 제재안을 적절히 실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참가국들간 움직임이 병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외교가에서는 안보리에서 중국의 대북 징계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반대급부로 한·미가 6자회담 재개 카드를 제시했다는 관측도 있다. 나아가 ‘안보리 대북규탄 의장성명 채택→6자회담 재개→북한의 천안함 사태 유감 표명’ 같은 시나리오도 회자되고 있다. 이른 바 ‘천안함 연착륙론’이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반대급부를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촌스러운 일”이라며 “대신 이심전심으로 중국과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교감이 있는 것은 맞다.”고 확인했다. 천안함 조기 연착륙론은 6자회담 관련국 모두에게 매력적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가 더 깊숙이 걸린 북핵 문제로 과녁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중국은 천안함 사태로 상실한 동북아의 주도권을 자기네가 의장국인 6자회담을 복원시킴으로써 회복하고 싶어한다. 한국 입장에서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천안함 사태를 질질 끄는 게 유리하지 않다. 16일 밤 방한한 커트 켐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우리 정부와 물밑으로는 환승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한편에서는 현재 남북관계가 극도로 험악하다는 점에서 당분간 6자회담이 재개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상반된 관측도 나온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러, 키르기스 군사 개입 초읽기

    러, 키르기스 군사 개입 초읽기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 시작된 민족 분규 사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키르기스 과도 정부의 군 지원 요청을 거절했던 러시아가 개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구소련 연방국가들의 안보모임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의를 소집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도 “국제적으로 조율된 대응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는 등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AFP통신은 러시아 언론을 인용,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두 번째 CSTO 가입국 안보장관회의는 물론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날 CSTO 사무총장과의 회의에서 “현 상황은 참기 어려운 수준이며, 이는 (CSTO)지역에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미 성향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정권과 달리 현재 과도 정부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단독으로 개입하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역내 안전을 내세울 경우 개입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CSTO 차원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로자 오툰바예바 키르기스 과도정부 대통령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CSTO의 평화유지군 도입에 대해 “현재로선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키르기스 과도정부, 유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러시아 등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OSCE 틀 안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은 당초 “키르기스 과도 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사태가 확산되는 데다, 러시아까지 개입 초읽기에 들어가자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키르기스 정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170명이 숨지고 1762명이 다쳤다. 폭력 사태는 다소 진정되고 있으나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물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등 또 다른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미 10만명이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넘었고 추가로 10만명이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즈베크 정부가 국경을 폐쇄하면서 목숨을 걸고 국경까지 간 우즈베크계 주민들의 발이 묶였다. 이에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국경을 계속 개방하라고 촉구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모닝 브리핑] 美국무부, 北 최악 인신매매국 재지정

    미국 국무부는 14일 북한을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최악의 국가인 3등급 국가로 재지정했다. 북한은 지난 2003년 이후 8년째 최악의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연례 ‘인신매매실태(TIP)’ 보고서에서 북한을 비롯해 이란, 미얀마(버마), 쿠바 등 12개국을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국가의 관심과 관리가 최악인 3등급 국가로 분류했다. 보고서는 북한 당국이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고, 북한의 열악한 상황이 주민들의 탈북을 촉발시키고 탈북자들은 인신매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신매매 조직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양국의 국경수비대와 공모해 중국에서 결혼이나 매춘을 할 북한 여성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이란 손본 미국 “다음은 북한”

    이란에 대한 유엔 안보리 추가제재 결의안 채택이라는 난제를 해결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행보에 본격 착수했다. 10일(현지시간)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비확산 및 군축담당 특별보좌관에게 대북제재 담당조정관을 겸임토록 한 게 첫걸음이다. 아인혼 특별보좌관은 대이란 제재 조정관도 맡고 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아인혼 신임 조정관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는 물론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안 1718호와 1874호의 완전한 이행을 포함해 북한이 장비 또는 기술을 획득해 이전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재 노력도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인혼 신임 대북제재 조정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시한 효과적인 대북제재를 위해 기존 권한과 정책들을 재검토하게 된다. 아인혼은 북한과의 협상 경험을 지닌 북핵 전문가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진행된 북·미 미사일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냈고,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 방북 때 수행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2008년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캠프에 참여했던 국무부 내 실세이기도 하다.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을 중시하지만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원칙을 강조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위반 사례들이 잇따라 보고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들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 대북 제재의 고삐를 바짝 죌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다음 주 비공개 회의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본격 논의에 착수한다. 이르면 14일 열릴 예정이라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유엔 안보리 의장인 멕시코의 클로드 헬러 대사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다음 주 전체 안보리 이사국을 소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협의 과정은 매우 유익했고, 다음 주에도 논의를 계속해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천안함 사건을 조사한 한국 민·군 합동조사단이 14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전체 이사국을 대상으로 침몰 원인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천안함 논의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안을 안보리 논의 이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달 안보리 의장국을 레바논이 맡기 전에 천안함 논의를 매듭짓는다는 게 한·미·일 3국의 일치된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특파원 칼럼] 2010년 6월 한·미동맹의 현주소/김균미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2010년 6월 한·미동맹의 현주소/김균미 워싱턴특파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2010년 6월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두고 워싱턴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양국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싱크탱크 소속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 같은 평가에 인색하지 않다. 특히 천안함 사태는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 계기가 됐다.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북한이 배후로 굳어지고,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한국 지원은 본격화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전격적인 방한 결정, 양국 정상 간 전화통화, 백악관 대변인 명의의 두 차례 심야 성명 발표, 한·미 연합군사훈련 계획 발표로 이어졌다. 미 의회도 상·하원이 한국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를 전후해 결의안을 채택하며 한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불과 2주 동안 몰아서 일어난 일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일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에 이례적으로 영상메시지를 보내 “같이 갑시다.”며 변함 없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원사격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은 한국에서 6·2 지방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참패,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사건 대응 및 대북정책에 대한 중간평가가 내려진 날이었다. 남은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미 공조가 결실을 맺길 기대해 본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나타난 미국의 이 같은 전폭적인 지지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담담했던’ 한·미관계를 생각하면 의외다. 한·미 관계가 왜 이렇게 좋아진 걸까.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서너 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한국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지도력이다.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선뜻 도와준 나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전략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마저 아프간에서 철군계획을 발표하는 힘든 상황에서 한국이 국내 반대여론을 감내해가며 파병을 결정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다. 또 몇몇 국가들이 대답을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달 2012년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한국이 주최하기로 기꺼이 수락한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일본 변수다. 오키나와현의 후텐마 비행장 이전 등을 놓고 미·일관계가 삐걱거리면서 상대적으로 한·미 동맹관계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셋째, 한·미 정부 간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그동안 주미한국대사는 보통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양국 현안을 협의하곤 했지만, 한덕수 주미대사는 수시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물론 국무부 부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 등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로 양국 현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허심탄회하게 듣기 싫은 소리도 할 정도로 한·미 정부 간 소통이 매우 원활하다고 한다. 미 당국자 발언의 뉘앙스를 놓고 속을 끓이는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천만다행이나 만사는 차면 기울게 마련이다. 한국 외교 당국자들은 좋은 한·미 동맹관계에 만족할 시간이 없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전시작전권 이양, 원자력협정 개정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좋은 한·미동맹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할 때다. “Don´t take it for granted.” ‘당연시하지 마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은 한·미 동맹관계를 얘기할 때 미국 측 관계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한·미 동맹이 저절로 강화되는 게 아니며,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뼈 있는 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발표한 새 국제전략보고서에서 미국이 21세기의 짐을 혼자 짊어지고 갈 수 없다며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글로벌 코리아’와 한·미동맹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지금이야 말로 정말로 ‘창의적인 외교’가 필요할 때다. kmkim@seoul.co.kr
  • 불편·아쉬움… 엇갈린 美·中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사임과 간 나오토 신임 총리 등장을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각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미국에선 신중한 반응 속에서도 미국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해 동아시아로 눈을 돌린 하토야마 전 총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묻어났다. 반면 하토야마 외교노선을 높이 평가하는 중국에선 아쉬움이 드러났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이 일본 외교노선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았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사임 결정을 존중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뺀 다른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았다.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가 하토야마 총리 퇴진을 불렀다는 일각의 곱지 않은 시각을 의식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마자오쉬 대변인은 “하토야마 총리는 양국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추진하는 데 노력했다.”고 논평했다. 또 “일본 정국에 어떠한 변화가 생기더라도 양국간 호혜관계를 더 깊게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주문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中, 게이츠 美국방 방문 거부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중국이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의 방중 요청을 거부하고, 미국이 이 같은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불쾌감을 나타내는 등 양국 간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천안함 사태 이후 표면화된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이 보다 노골화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는 게이츠 장관이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9차 아시아 안보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중국 방문을 타진했으나 중국 측이 “시기가 적절치 않다.”며 요청을 거부했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베이징에서 개최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역내 안보문제와 군사교류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게이츠 장관의 방중은 양국 간 기본적인 교류의 하나”라면서 “게이츠 장관의 요청이 거부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고 중국 측에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도 최근 중국이 수주 안에 게이츠 장관을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돌연 퇴짜를 놓았다며 중국의 의도와 향후 미·중 관계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중국 정부는 이날 게이츠 장관의 방중 논란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양국 외교가에서는 중국의 게이츠 장관 방문 거절 배경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미국이 지난 1월 타이완에 60억달러 규모의 무기판매를 결정한 데 따른 불편한 입장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또 천안함 사태를 처리하는 미국 방식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 크롤리 대변인은 “역내 안보문제에 대해 (중국 측과) 논의할 의제가 많다.”면서 “특히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상황이 눈앞에 있다”고 말해 게이츠 장관의 방중 의제 가운데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협조를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됐음을 시사했다. kmkim@seoul.co.kr
  • 힐러리 美국무, 한국 적극적 지지 표명 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다녀간 지 닷새가 넘었지만, 외교가에서는 그의 기자회견 내용이 여전히 화제다. 힐러리가 지난 26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넘치도록 드러낸 한국에 대한 지지 입장이 어디에서 비롯됐느냐는 것이다. 당시 힐러리는 “북한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 초강경 어조로 한국 편에 섰다. 우선 9·11테러 이후 변화된 미국의 동맹관(觀)이 이번에 힐러리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는 시각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31일 “미국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만 해도 세계 유일의 강국으로서 결정은 미국이 하고 동맹국은 돈이나 내는 존재로 인식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9·11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동맹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생각이 변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려면 동맹이 위기에 처했을 때 팔을 걷어붙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힐러리가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미 국무부 관리들로부터 들은 내용은 이렇다. 힐러리는 지난해 2월 국무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방한, 이화여대를 찾았다. 그때 접한 한국 여대생 특유의 발랄함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당시 2000여명의 학생들은 연설에 나선 힐러리에게 떠나갈 듯한 환호와 함께 20여 차례나 박수세례를 퍼부어 그녀를 들뜨게 했다. 힐러리가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만난 3국 관료들의 스타일도 호감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 장관은 아랫사람이 써준 것만 앵무새처럼 읽는 데 반해 한국 장관들은 자유스러운 대화로 회담에 임해서 친숙하게 느껴졌다고 하더라.”라고 미국 관리들의 말을 전했다. 물론 개인적인 호감도와는 별개로 철저히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힐러리가 강한 지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천안함 사태를 한·미·일 3각 동맹을 다지면서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호기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남북충돌 우려 쏟아내는 美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쪽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 북한의 추가 도발이나 남북 간 군사충돌과 관련한 시나리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소규모 국지전 가능성을 들어 3가지 충돌 시나리오를 내놓은 데 이어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30일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멀린 합참의장은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단발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없어서 추가적인 행동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는) 우리가 안정유지 면에서 항상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지역”이라면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여전히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멀린 의장은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한국과 같은 동맹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한 뒤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정치·외교·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긴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지난주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의 북한 보고서와 관련,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지도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무기수출을 금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1874호를 어기고 시리아와 이란 등에 무기를 수출해 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멀린 의장의 신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미 국무부 측은 북한의 무기수출 등을 둘러싼 의혹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위한 요건에 충족되는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31일 ‘타임’의 3가지 가설을 포함, 북한이 오판했을 때 천안함 사건이 남북 간 충돌로 커질 수 있는 5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도발, 관련국들의 양보, 협상의 수순이 실질적인 충돌을 막았지만 천안함 사건의 경우에는 미국의 강경 입장과 한국의 대북 강경책, 북한의 권력승계 위기 등으로 과거와는 다른 패턴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해 ▲서해상에서의 충돌 ▲비무장지대 대북 선전전 재개에 따른 충돌 ▲후계문제를 둘러싼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과 쿠데타 ▲북한 내부의 붕괴 ▲북한의 핵무기 관련 도발 등을 꼽았다. IHT는 “서해에서 1, 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과 같은 교전이 일어날 상황이 오바마 행정부의 첫 번째 걱정거리”라고 소개, 심각한 교전이 발생했을 때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비중을 뒀다. 또 한국의 대북선전전에 따른 북한의 대응사격, 나아가 서울 공격 위협이 야기될 수 있다고 가정한 뒤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한국에 투자한 외국자본들이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다.”면서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이 확성기에 의지하는 방안을 재고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고 관측했다. kmkim@seoul.co.kr
  • 천안함 안보리 회부 中변화 유도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을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 카드로 사실상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번 주중 안보리 회부를 위해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이날 미국에 파견했다. 정부 관계자는 “천안함 사태는 우리한테는 비극적이지만,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는 국지전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안 채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한 단계 낮은) 의장성명 채택을 사실상의 목표로 삼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중국, 러시아의 찬성표를 얻고자 표현 수위가 낮은 규탄 결의안을 추진하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나라가 찬성하고 비난 수위도 높은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관계자는 “의장성명은 결의안과는 달리 표결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은 이점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먼저 안보리에 회부해놓고 중국의 입장 변화를 계속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과의 의사소통은)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 문제가 안보리에 회부되면 뉴욕에서도 긴밀한 협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천 차관은 워싱턴에서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등 미 정부 관계자들과 협의를 통해 서한 문구와 제출 시기를 결정한 뒤 뉴욕의 유엔본부로 건너가 안보리 이사국들을 접촉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韓·中 정상회담] 靑 “中 신중모드서 다소 진전된 입장 보여”

    [韓·中 정상회담] 靑 “中 신중모드서 다소 진전된 입장 보여”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다소 진전된 수준’ 28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나온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발언을 보면 이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시시비비를 가려서 그 결과에 따라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는 원 총리의 발언은 원론적인 얘기에 가깝지만, 지금껏 ‘신중모드’를 유지해 온 중국 정부가 다소 진전된 입장을 보인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해석이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 27일 “현 상태에서 중국 정부의 결정된 입장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으나 수면 아래에서는 북한을 천안함의 배후로 인정하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원 총리가 “국제적인 조사와 이에 대한 각국의 반응을 중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결국 국제 여론을 중국도 무시할 수 없고, 국제조사에서 (북한 소행이라는) 객관성이 확보된다면 북한을 더 이상 편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비동맹국가인 인도나 중립국인 스웨덴도 이번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북한의 테러를 규탄하고 있다는 사례를 들며 중국도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단독·정상회담은 당초 예정시간(1시간15분)을 훨씬 지난 2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원 총리에게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문건을 통해 직접 설명하면서, 북한의 이 같은 무력도발은 동북아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북한이 과거에도 그랬지만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응징하지 않으면 그른 행동을 하고도 보상을 받는다는 착각을 할 수 있는 만큼 중국이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목표는 남북대결이나 북한 고립화가 아니라 북한의 잘못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이번 천안함 사태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는 한반도 안전을 원하는 중국의 국익에도 부합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원 총리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담화는 매우 절제되고 균형잡힌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책임론’과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고,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 동참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표명도 없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오늘은 큰 틀에서 논의된 것이며, 앞으로 우리 측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한 만큼 구체적인 이행방안은 장관급에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9~30일 제주에서 열리는 한·일·중 3국 정상회의에서도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함께 원 총리를 다시 만난다. 한·일 공조를 통해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이끌어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이 대통령은 6월4~5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도 참석, 천안함 사태의 국제협력을 위한 외교총력전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국제공조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이 아직까지 눈에 띄는 입장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 우리 정부가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천안함 사태의 국제공조를 통한 해결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對北제재조치 이후] 美, 테러지원국 재지정 영향 주목

    [對北제재조치 이후] 美, 테러지원국 재지정 영향 주목

    │워싱턴 김균미특파원│AP통신이 입수해 28일 공개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유엔 제재를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원장에 품목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가짜 레이블을 붙이고, 원산지와 목적지도 허위로 작성하는 수법을 썼다. 또 이를 위해 기업활동이나 자산이 없는 유령회사와, 심지어 해외 범죄조직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무기류의 수출 최종 목적지를 숨기기 위해 여러 유령회사들을 동원했다. 지난해 12월 태국 방콕에서 압수된 35t의 북한산 재래식 무기류를 싣고 있던 화물 여객기는 아랍에미리트연합 회사 소유로, 그루지야에 등록돼 있고, 뉴질랜드에 등록된 유령회사에 리스된 뒤 다시 홍콩에 등록된 회사가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또 무기류 수출을 숨기기 위해 부품들을 분해해 수출한 뒤 북한 전문가들을 해외로 파견, 현지에서 조립해 구매자에게 전달했다. 일례로 북한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항에서 압수된 무기류를 조립하기 위해 기술자 수십명을 콩고공화국에 파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 그룹은 북한의 수출화물의 첫 기항국 항구와 북한발 화물기에 대한 검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이 상당수의 무기류 등 불법거래를 위해 해외의 범죄조직과 연계해 이들로 하여금 수송과 배송을 담당토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란과 시리아, 미얀마에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관련 기술 및 부품을 수출한 사실이 유엔 조사 결과 밝혀짐에 따라 이같은 사실이 향후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 국무부가 특정 국가를 테러지원국에 지정하려면 최근 6개월내에 테러행위를 감행했거나 국제적인 테러리스트단체나 테러지원국을 지원한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이란과 시리아는 현재 미 국무부에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가 금지한 대량살상무기를 이들 국가에 수출한 사실만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수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이란에 수출된 탄도미사일 부품과 기술이 테러단체로 지정된 헤즈볼라 등에 전달됐거나 수출하려 했던 사실이 확인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지만 보고서는 방콕에서 압수된 무기류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여하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 이번 보고서와 제재위의 최종 결정이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kmkim@seoul.co.kr
  • [對北제재조치 이후] 남북충돌 3가지 시나리오

    [對北제재조치 이후] 남북충돌 3가지 시나리오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발적인 충돌이나 교전이 벌어질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모두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26일(현지시간)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한반도에서의 전쟁 -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기’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천안함 사태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3가지 교전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타임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한반도의 전쟁에 대해 ‘죽음의 교향곡이 될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듯이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57년 만에 다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타임은 가장 먼저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에 주목했다. 서해는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1·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등 세 차례 남북한 간 교전이 벌어진 곳이고,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걸려 있어 유사한 충돌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측이 북한 선박의 서해 통행을 금지한 만큼 북한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서해를 공략할 수 있다고 타임은 분석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DMZ 주변에서 남한이 대북 심리전 방송을 시작하고 북한이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국지적인 교전이 벌어지는 경우다. 관건은 확성기다. 타임은 “북한이 남한의 대북 심리방송에 대해 북남 군사합의 파기이자 군사적 도발이라고 공언한 만큼, 남한의 확성기를 파괴하고 남한이 이에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 세 번째 시나리오는 사실상 전면전으로 치닫는 것. DMZ 부근에서 우발적인 충돌이나 교전이 발생할 경우에 남북한이나 주변 당사국 누구도 통제할 수 없이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한국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적극적 억제 원칙을 천명한 만큼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타임은 전망했다. 타임은 남북한 간 소통수단이 모두 단절되면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중국이 한국 정부가 이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적절하게 북한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8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이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주목받고 있다고 타임은 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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