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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감산사/석조보살상(한국인의 얼굴:40)

    ◎살짝 뜬 눈가에 웃음… 온유한 인상/야트막하고 실한 코… 친근감 더 해 신라에서 8세기는 불교미술이 한껏 만개한 시기다.그 꽃봉오리를 8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미 터뜨렸는데,바로 성덕왕(702 ∼ 736년)시대다.특히 화강암을 소재로 한 불상조각은 이 시대의 대표적 조형미술이다.도처에 널린 화강암을 불상으로 다듬어 보려는 신라인들의 불심은 불후의 명작 불상조각들을 남겼다.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감산사석조미륵보살입상이 8세기 초반의 작품이다.경북 경주시 대동면 신계리 감산사에 본래있던 것을 지난 1915년 서울로 옮겨왔다.대좌와 보살상 뒤쪽을 막아준 광배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57m에 이른다.보살상 자체의 키를 재도 1.83m가 나온다.그러고 보면 꽤나 큰 키를 기준한 등신대의 보살상인 것이다. 이 보살은 얼핏 익살스러워 보인다.그리고 눈을 꼭 감지않고 슬며시 웃음 그려내어 눈에도 장난기가 들어있다.그럼에도 온유한 까닭은 보살이기 때문일 것이다.코가 높지는 않으나 콧방울이 실한 보살은 안광이 꺼지지 않아 친근감을더 해준다.작은 입을 다물고 웃는 통에 입가의 주름 법령이 유난히 깊다.그래서 외래적 요소가 없는 신라인일 수 있고,또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얼굴은 풍만하고 몸매는 육감적이다.어깨는 넓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둥글고 통통한 팔뚝으로 이어졌다.특히 육감적 느낌을 주는 부분은 허리와 두 다리의 굴곡을 강조하듯 표현한 옷주름에 있다.허리부분에서 겹친 치마에 띠장식을 매어 가랑이께로 늘어뜨렸다.그리고 탄력있는 다리에 달라붙은 치마가 잔주름을 이루었다.치마의 주름을 두 다리 사이로 모아 허리쪽으로 끌어올려 몸매를 한껏 자랑했다. 이러한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유행한 양식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어딘가 인도 굽타시대의 불상을 닮았다.그 인도의 불상이 당나라에 흘러들어와 더욱 발전한데 이어 이를 신라의 것으로 수용했다. 보살은 머리에 화려한 화관을 썼다.구슬이 달린 머리띠 한 가운데 화불이 있으니 관세음보살이 분명하건만 어인 일로 미륵보살이 되었다.그 연유는 뒷면에 선각으로 길게 새긴 글씨(명문)에 미륵보살이라고 밝힌데 있다.새김글씨 명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의 조상주는 김지성으로 되어있다.그는 통일신라시대 중아찬(신라 17관등 중의 제6위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67살에 관직을 떠나 서기 719년에 자신의 땅 감산장전을 바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그 절이 바로 보살상을 세웠던 감산사다.보살상 새김글씨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은 「삼국유사」남월산조에도 나온다.「삼국유사」는 또 이 보살상이 감산사 금당에 봉안되었다고 기록했다.그러니까 감산사의 주존이 미륵보살이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기록이다.미륵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당시 신라의 법상종신앙이 엿보인다.
  • 조선총독부건물 철거를 보며/안휘준 서울대 박물관장(기고)

    ◎이마에 박힌 못 이제야 뽑히는구나!/일제잔재 청산은 국민적 합의… 뒤늦은 철거반대 안될일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초청을 받아 7일 상오10시쯤에 시작된 구 총독부건물의 첨탑절단작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참관인사 모두 숙연 높이가 8.5m나 되는 이 첨탑은 7일과 8일에 걸쳐 다이아몬드 줄톱으로 잘려진후 오는 15일 광복50주년을 기하여 3백30t급 크레인에 의해 광장에 내려질 예정이다.이로써 내년까지 이어질 구 총독부건물의 철거작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일제의 잔혹한 통치로부터 벗어난지 무려 50년만에 이루어진 실로 의미심장한 일이다.이 행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모두 숙연한 가운데 매우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각자의 가슴속에 오가는 만감을 어찌 일일이 다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이 구 총독부건물의 철거문제에 관해서는 문민정부 출범이후 줄곧 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 논의의 결과 철거키로 결정이 되었던 것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또한 철거를 계기로 일제에 의해 마구훼손된 경복궁을 복원하고 용산 가족공원에 제대로 된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짓기로 결정이 나서 이에 따른 모든 일들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용산박물관 설계안의 국제공모와 우수작품의 선정,구 총독부건물철거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임시로 사용할 왕궁박물관의 건설,경복궁복원의 착수,그리고 7일 시행된 첨탑절단작업은 그 뚜렷한 증거들이다.이러한 모든 일들은 국내외에 널리 공표되었으며 이미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서 있다.「국민의 혈세」도 많이 투입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단계에서 또다시 구 총독부건물 철거반대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어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반대론자들의 주장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아끼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며 애국심의 발로로 생각된다. ○국민혈세 대량 투입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도 겸허하게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마찬가지 이유로 그들도 철거찬성론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할 당위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 일도 시비가 엇갈리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때문에 그동안 찬반양론이 개진되었고 그에 따라 결론이 났던 것이 아닌가.그렇다면 이제는 그렇게 맺어진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주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하물며 일들이 본격 추진되어 궤도에 올라 있고 또 상당한 예산이 투입된 상황에서 중단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그것이야 말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또한 철거작업을 중단하거나 철회할 경우 그 국제적 망신과 국민적 좌절감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 여기에서 일생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온갖 고난과 피해를 감내한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왜 한결같이 철거를 갈망하고 있으며 수많은 일본인들이 왜 그 문제의 건물앞에 허겁지겁 몰려와 기념촬영을 하는지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원폭의 피해만 강조하고 자신들의 범죄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더이상 분열되고 못난 「조센징」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뜻을 모으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작업을 중단하라니 그러면 그 흉측한 건물의 철거에 따른 의의는 무엇일까.첫째,그 건물의 제거는 우리 이마의 한복판에 박힌 못을 뽑아내는 것과도 같다.이 건물의 정곡과도 같은 지리적 위치와 일제의 불순한 건축배경이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더이상의 사족은 필요하지 않다.둘째,민족사와 전통문화를 되찾아 복원하게 된다.경복궁이 복원되어 옛모습은 물론 역사와 문화를 되찾게 된다.셋째,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제대로 된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지게 된다.현재의 세배가 되는 위풍당당한 박물관이 널찍한 공원에 자리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넷째,그 총독부건물을 볼때마다 짓눌리던 국민들의 암울함이 걷히고 밝은 희망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이는 국민의식의 긍정적인 변화와 새로운 발전에 큰 촉진제가 될 것으로 믿어진다.다섯째,한·일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일본인들은 한국민들을 보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될 것이며 한국민들은 좀더 밝고 자신에 찬 입장에서 일본인들을 보게 될 것이다.따라서 양국관계는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한일관계 새 전기로 그 흉물스러운 건물의 철거는 투철한 역사인식,일제 잔재의 불식에 대한 확고한 의지,민족문화에 대한 돈독한 이해와 돈후한 배려,굽힘없는 실천력,뜻을 펼 수 있는 경제력,국민들의 높은 문화적 긍지가 고루 갖추어졌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그 때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더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고 본다.우리 모두가 소모성 시비를 거두고 뜻과 힘을 합칠 때인 것이다.
  • 총독부청사에 「일제 지하감방」/4개실 20평

    ◎애국지사 고문장소로 이용한듯 일제가 항일 애국지사들을 고문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조선총독부의 지하공간이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7일 처음으로 공개한 이 지하공간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물품창고밑 지하1층 지하실로 20여평 규모에 4개의 방으로 돼있다. 중앙 통로로 통하게 돼있는 이 지하실에는 두께가 14㎝나 되는 문이 8개 달려 있으며 각 문은 20㎝ 두께의 나무 문틀에 모래가 채워진 나무와 철판으로 돼 있다.또 모든 문에는 세로 10㎝,가로 5㎝크기의 유리창문이 달려있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오래전부터 박물관 지하에 지하감방이 있었다는 소문에 따라 지난 93년부터 이 지하실에 대한 실측및 점검작업을 벌여왔다』면서 『그동안 서울교도소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이 건물의 유일한 지하공간인 이 지하실이 일제하 임시감방이나 고문장소로 쓰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달라진 일인 관광행태(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

    ◎역사·문화탐방 늘어… 하루 3천명 입국/민족감정 표현 자제… 불신은 여전 지난달 27일 하오 3시쯤 김포국제공항 신청사에 한 중년 신사와 고만고만한 세 어린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북해도 신문기자로 13년간 일하고 있다는 일본인 준 수가와라씨(37·일본 홋카이도 히로시마타운 거주)는 휴가를 이용,한국땅을 처음 밟았다며 함께 데리고 온 국민학교에 다니는 세자녀를 차례로 소개했다. 수가와라씨 가족은 김포공항에서 잠시 머물다 같은날 하오 부산발 비행기에 올랐다.한·일간의 특수했던 역사를 더듬어 보기 위해서는 옛날 일본의 한국관문이었던 부산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그는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처음 들어온 부산주변의 여러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식민통치를 옹호한 와타나베 전일본외상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탄한 한국언론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밝힌 그는 백제문화유적물이 비교적 많이 있는 부여·공주등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6일 하오 3시30분쯤 김포국제공항 신청사 관광공사 종합안내 데스크 앞에서는 고도리씨(33·회사원)등 일본관광객 2명이 서울지도를 펴놓은 채 숙박업소 명부를 뒤적이고 있었다.나흘동안 값비싼 호텔에 투숙할 만한 여력이 되지않아 저렴한 숙박업소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관광공사 안내원의 권유로 TV와 에어컨시설이 모두 구비되어 있고 하루숙박비가 2만원 하는 종로1가 P여관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즐겼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하루 평균 4천여명.이 가운데 75%인 3천여명이 일본인 관광객이다. 한국관광의 해였던 지난해 정부가 일본인관광객에게 무사증(노비자)입국을 허용하면서부터 부쩍 늘고 있다. 관광형태도 다양하다.일본문화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백제,신라의 유적지를 찾는 역사·문화유적 관람등의 「문화관광」,제주등지에서의 골프관광 등은 꾸준한 관광상품.피부마사지를 받으려는 속칭 「때밀이 관광」도 적지않다.최근들어서는 엔고에 편승,서울 남대문·동대문 시장등지에서 쇼핑을 하기위한 「장사형 관광」도 성행하고 있다.특히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서 일본의 온천 휴양지등은 한산한데 비해 경주등 우리나라 관광지는 일본인들로 북적대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을 마치고 귀국한 일본 교직자 한국수학여행시찰단 일행 29명은 백제문화유적지가 많은 부여·공주권 역사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니가타 상업고교 가치야마 교장(59)등 일행은 한강유람선을 타고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한국의 발전한 모습에 감탄했으며 공주박물관과 부여국립박물관 견학에서는 도자기등 전시유물을 보며 『아! 우리 것이랑 똑같다』고 일본문화가 백제에서 유래됐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견학에서는 「왜 이것을 철거하는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독립기념관 4관인 「3·1운동관」을 둘러볼 때에는 일본군의 잔인한 탄압장면에 잠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가치야마 교장은 『일본에 돌아가면 학생들에게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알려,앞으로 한·일관계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홋카이도비라토리 고교 미야치 료이치 교장(55)도 『양국의 인적교류가 더욱 많아져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때 우리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던 일부 일본 관광객들의 기생관광은 크게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관광객들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한 안내원은 『입국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본관광객을 기다리다 허탕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 경우 대부분 마중나온 현지처와 함께 미리 빠져나갔다고 보면 틀림 없다』고 귀띔했다. 일본관광객들은 한국관광에서 바가지요금을 의식,대부분 모범택시를 이용하고 수돗물은 마시지 않는다.또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말을 하지않고 공산주의 관련 서적도 갖고 다니지 않으며 「조선」이라는 말도 좀처럼 꺼내질 않는다. 일본 관광협회에서 이렇게 교육을 받은 탓이다.한·일 국민간의 마찰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일본인 역시 우리를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올해를 「한국 재발견의 해」로 정하고 3백9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이 가운데 절반인 1백85만명을 일본관광객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부 일본부의 김응상(37)과장은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면서 『일본관광객들과 가장 먼저 부딪치는 여행사 가이드·호텔 종업원·택시기사 등은 물론 시민들의 친절한 안내와 따뜻한 미소가 불편했던 한·일 두민족간의 감정의 앙금을 없애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부 강철수(31)과장대리도 『날이 갈수록 우리와의 접촉이 늘어나는 일본인들을 감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다 냉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할때』라고 강조하고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서 양국민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일본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경복궁 점거 70년만에 사라지는 일본총독부

    ◎중앙돔 첨탑부터 헌다/광복 50주년 맞는 오는 「8·15」기념행사/석조건물 내년까지 모두 해체/첨탑 다이아톱으로 둘로 절단/9월 독립기념관에 옮겨 보관 일본 식민지 통치의 상징인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오는 8월 15일 중앙돔 첨탑 철거를 시작으로 해체되기 시작한다. 문화체육부는 29일 제50주년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 상오 9시,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조선총독부의 중앙 돔 첨탑을 철거,건물의 해체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날 철거식에서 주돈식 문체부장관이 건물의 해체를 조상에 알리는 고유문을 낭독한뒤 첨탑을 제거하게 되며 제거된 첨탑은 박물관 광장에 보관했다가 오는 9월중 독립기념관으로 이관 보존된다고 문체부는 설명했다.첨탑 철거행사는 50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의 하나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다. 첨탑 철거는 현대건설 계열사인 철거전문회사인 산천개발이 시공을 맡는다. 산천개발은 첨탑 철거를 시작으로 현 박물관이 조선왕궁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한 후인 내년 상반기부터 건물에 대한 본격적인 철거작업을 벌여 내년말까지는 완전 철거할 예정이다. 산천개발의 해체방법에 따르면 전체 돔을 두 부분으로 절단해 대형크레인으로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는 것. 직경 3·5m,높이 8·5m의 첨탑은 전체 구조가 철근 콘크리트와 동합금으로 돼 있어 총무게가 35t에 이른다.이 가운데 해체되는 부분은 최상층부 10·5t과 중하단부 15t등 모두 25·5t.산천개발은 첨탑이 설치된 지점의 높이가 지상 35m나 되어 첨탑무게를 고려해 2개 부분으로 절단한후 안전하게 따로따로 철거할 방침이다. 절단에 쓰이는 다이아몬드 줄톱은 직경 1㎝의 강선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입힌 기계로 산천개발은 이를 모터에 연결,고속회전시켜 첨탑을 두동강낸다. 그 후 본관 석조 건물은 압쇄식으로 6개월에 걸쳐 철거된다. 철거에 앞서 8월 1일부터 5일까지 건물위에 절단 기계인 다이아몬드 줄톱을 설치하며 5일부터 10일까지 시운전을 거쳐 10∼14일중 실제 절단작업을 벌인다.광복절인 8월 15일 상오 기념식장에서는 이 절단된 돔을 들어내 역사적인 종말을 알리는 셈이다.구 조선총독부건물은 일제가 1926년 건립한 석조건물로 계획대로 작업이 진행되면 오는 96년말 70년만에 지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게 된다. 문체부는 이 건물을 철거하기 전 완벽한 실측을 실시하고 기존 모습과 해체과정을 영상물등 다양한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또 건물의 이오니아식 원주,중앙홀 대리석,2층계단등 보존가치가 있는 10여개 부분의 자재는 용산부지에 오는 2010년까지 건립될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전시·교육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 문체부,휴가철 「움직이는 문화프로그램」 실시

    ◎관객 찾아 산으로… 바다로…/해변유물 전시·도서대출 서비스/청소년 위한 우리영화 상영회도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변등 휴양지와 청소년 수련시설,산업현장등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진다.문화체육부는 8월말까지 전국의 해수욕장등에서 미술전시와 국악강습,영화감상등 이른바 「움직이는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해 건전한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하거나 마련해줄 계획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서관,국악원은 해변에서 유물전시를 비롯해 해변도서관 국악교실을 열어 문화재 감상 뿐만 아니라 도서대출 서비스,그리고 국악이론과 실기 강습을 통해 휴양객들의 문화참여 욕구를 충족시킬 계획이다. 또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휴양지에서의 야외영화감상회도 열고 청소년을 위한 전국 순회 우리영화 상영회도 마련한다. 여름 휴가철 전국에서 열리는 이동 문화행사 및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문화체육부 시민 근로자를 위한 「푸른 음악회」=8월 31일 전북 전주학생회관,9월 1일 전남 광양제철아트홀.MBC오케스트라 서울팝스오케스트라 가수 성악가등 출연.▲문화체육부 어려운 청소년 자연체험활동=24∼26일 경북 구룡포 경대수련원,27∼29일 충남 공주학생종합야영장,31∼8월 2일 경기 연천 보개산야영장·강화청소년 심신수련원. ▲국립중앙박물관 움직이는 박물관=8월 1∼4일 부산 해운대.선사인의 생활재현,문화관련 유물,유적발굴사진,만화로 보는 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해변도서관=25∼8월 7일 전북 명사십리해수욕장,8월 20일까지 속초·삼척·경포대 해수욕장,8월 23일까지 경남 남일대 해수욕장. ▲국립현대미술관 움직이는 미술관=8월 8∼11일 경기 양평프라자,8월 29∼9월 1일 보람은행 대치지점.한국의 풍경 사군자등 50여점. ▲국립국악원 해변국악교실=8월 1∼4일 강원도 망상 해수욕장.태평소와 봉산탈춤등 국악강습. ▲국립국악원 움직이는 국악원=8월 30일 강원도 춘천 종합문화예술회관.수제천등 국악연주. ▲영상자료원 청소년을 위한 우리영화 순회강연회=26일까지 강원도 정선문화회관,28∼30일 경북 포항문예회관,8월 3∼5일 경남 마산 올림픽국민생활관,8월 11∼13일 충남 서산문화회관. ▲영상자료원 한 여름밤의 야외영화감상회=8월 18∼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야외광장.「영원한 제국」「티라노의 발톱」「우연한 여행」상영.
  • 구미 출토 신라 관세음보살입상(한국인의 얼굴:37)

    ◎가는 눈·도톰한 입에 신비의 미소/화관드림·흘러내린 머리칼 소담스러워/통통한 볼 받치고 있는 목엔 세가닥 주름 신라의 불교가 관음신앙을 받아들인 시기는 7세기 초로 보인다.「삼국유사」를 보면 이 시기에 소판무림(소판무림)이 1천의 관음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아들을 얻기위해 관음상을 조성했는데,바로 자장을 낳았다는 것이다.자장의 탄생설화는 신라가 관음신앙을 본격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반영한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신라의 관음신앙은 신라인들의 예술적 감각을 자극시켰다.그 결과 국보 184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과 같은 조형미술이 창조되었다.지난 1976년 경북 구미시 고아면 봉한2동에서 다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함께 출토된 이 관음보살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얼굴(상호)이 지극히 아름다울 뿐 아니라 여러 치레걸이가 호화롭기 그지 없다.7세기께 작품이다.머리에 쓴 화관부터 찬란하다.백제 관음보살상들의 소박한 화관과 사뭇 달라 꽃장식이 어여쁘거니와 이마를 살짝 덮은 주름진 천이 부드럽다.화관 정면에 돌출한 원형장식 안쪽에는 화불이 자리잡았다.보살의 이름을 관세음으로 일러주는 화불은 앉은자세를 했다.화관에 달린 드림이 엄청 길어 어깨를 걸치고도 더흘러내려 팔꿈치께에 와서 멈추었다.드림과 겹쳐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칼도 소담스럽다. 얼굴은 한마디로 너무 예쁘다.오목조목한데가 없이 매끄러워 보이는 얼굴 윤곽 전체에는 애티가 가득 들어있다.그래서 귀여운 얼굴이 되었고,결국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분명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다.그런데 어디에 웃음을 담았다고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이 관세음보살상에 어린 엷디엷은 미소의 묘미를 말하라면,웃음을 지어낸 구석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든 관세음보살의 웃음은 신비롭다.하기야 풍진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헤픈 웃음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눈매가 가늘어 보이나 사실은 눈을 유난히 강조했다.입을 작게 표현하여 앳된 관세음보살이 되었다.통통한 볼을 받치고 있는 목에 세가닥의 주름(삼도)이 졌다.어리게 보이는 얼굴에 비해 몸은 당당하다.전혀 빈약하지 않은 목을 아래로 약간 비켜 구슬목걸이를 걸었다. 그 당당한 체구에 걸친 옷자락이 유연하게 흘러내려왔다.옷 위에다는 온갖 작은 구슬과 커다란 보주를 꿰어만든 여러가닥의 치레걸이를 덧 입었다.치레걸이는 작품의 우수성을 더 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그토록 아름다운 걸작의 조각을 창조한 신라인들의 내면세계에는 물론 깊은 신심이 깔려있다. 신라불교에서 관음신앙을 본격적으로 퍼뜨린 고승은 의상(625∼702년)이다.그와 인연을 가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건전리 낙산사가 신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이다.낙산사에는 근래 만든 해수관음상이 있고,삼국유사에 기록한 서기 482년 설화속의 인물 조신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 백제 금동관세음보살입상(한국인의 얼굴:36)

    ◎점잖은 웃음… “백제인의 모습”/전래 서역의 흔적 벗은 7세기 작품/두터운 눈꺼풀·부드러운 콧날… 원만한 성품 엿보여 우리나라 불교에서 「관음경」만큼 널리 퍼진 불경도 드물다.「관음경」은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별개의 경으로 만든 것이다.관세음보살의 영험은 현세의 이익적 공덕과 맞물려 많은 신도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이에 따라 관세음보살상은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에 크게 유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195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은 그러한 신앙을 뒷자락에 깔았다.머리에 쓴 화관에 화불이 들어있기 때문에 관음보살이라는 사실이 금새 드러난다.7세기께 백제인들이 만든 작품인데,원만한 얼굴과 화관이 어울려 아주 보살다운 모습을 했다.이 보살의 얼굴과 화관은 바로 작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얼굴에서 외래적인 요소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그래서 백제의 얼굴로 보아도 좋을 만큼 지극히 동양적이다.6세기말 관음신앙이 뿌리를 내렸으니까,7세기가 되면 그 경배대상으로서의 관음상은 백제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졌을 것이다.백제에 관음신앙이 들어온 시기는 백제승려 발정이 서기 502∼519년 사이 중국에 머물다가 월주의 관음도량을 참배하고 돌아온 이후로 보인다. 이 7세기의 백제보살상 얼굴에는 은근한 미소가 어렸다.부여 군수리 출토 6세기 후반의 백제금동보살입상(서울신문 5월19일자 13면) 웃음에 비해 퍽 점잖다.눈꺼풀이 약간 두텁고 눈자위는 꺼지지 않았다.이른 시기의 불상에 흔히 나타나는 서역의 요소가 없는 골상이다.코도 날카롭지 않다.더 작아보일 수도 있는 입이 웃음을 머금은 탓인지 좀 커졌다.이 보살상의 미소가 엷기는 하나 입과 눈에서 웃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보살이 몸에 걸친 윗옷(천의)과 치마(군의)는 곱고 부드럽다.구술을 꿰어만든 영락을 어깨로부터 길게 늘어뜨려 배에 와서 ×자로 교차시키고 나서 다시 늘어뜨렸다.팔꿈치를 굽혀올린 오른손의 엄지와 인지가락으로 큰 구슬(보주)을 쥐고 어깨위로 쳐들었다.왼손은 내려 어린 아이들이 마치 꼬까옷을 자랑하듯 율동적 자세로 천의자락을 잡았다.참으로 아름답고 섬세한 보살상이다. 이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구한말인 1907년에 출토되었다.규암면은 부여읍 낙화암에서 바라다 본 백마강 대안의 땅이다.사비시대 백제의 영특한 군주 무왕(재위 600∼640년)이 즐겨 찾았던 왕흥사가 거기 있었다.야심만만한 정복군주로 불교에 심취했던 무왕은 서기 634년 2월 백마강 건너 오늘의 규암면 지역에 왕흥사를 세우고 몸소 찾아가 예불을 올렸다는 것이다. 일본쪽 사료를 보면 백제는 서기595년에 백제의 공장을 시켜 관음상을 일찍 만들어 주었다.그런데 규암면에서 1907년에 출토된 또다른 백제의 금동관음보살이 일본에 유출되었다고 한다.애석한 일이다.
  • 신라 금동미륵보살상(한국인의 얼굴:35)

    ◎내리뜬 눈·작은 입가에 조용한 미소/윗입술까지 뻗은 선명한 인중선이 매력/네모꼴 얼굴에 화려한 장식의 보관 독특 신라 불교미술에서 걸작은 국보 78호 금동보살반가사유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이 반가사유상은 백제의 반가사유상(서울신문 5월26일자 13면)보다 날렵한 인상을 안겨준다.그 이유는 얼굴 윤곽에도 있지만 장식이 화려한 높은 보관을 머리에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 보살의 얼굴은 둥글다기 보다는 네모꼴에 가깝다.얼핏 근엄해 보인다.그러나 가만히 옆 얼굴을 지켜보면 치깔은 눈매와 작은 입가에 약간의 웃음을 머금었다.근엄해 보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어디까지나 앳된 보살이어서 웃음을 참는데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미간에서 부터 높게 시작한 코는 오뚝하다 못해 예리하다.인중한 가운데를 세로로 지나가는 홈이 너무 선명하게 윗 입술에 맞물려 매력으로 작용했다.그 매력 포인트는 턱에도 나 있다. 보살이 어깨에 걸친 천의자락이 흘러내려와 무릎에서 교차되었다.윗옷에다는 끈을 달아 허리에 매었다.그 매듭은 요새 서양식의 리본 보다 더 아름답다.네모꼴 대좌에 천을 덮어 늘어뜨린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부드러운 느낌 마저 우라난다.보살은 그 대좌에 걸터앉았다.그냥 걸터 앉은 것이 아니고 왼발을 세워놓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왼손을 발에 얹었다.오른손 검지와 무명지를 슬며시 펴 뺨에 댔으니,생각하는 보살이다. 이 보살은 미륵이다.생각에 잠긴 앳된 미륵을 보노라면 문득 화랑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꽃처럼 아름다웠다는 신라의 사내들 화랑으로 환생하여….사실 불교의 미륵신앙과 화랑은 무관한 처지가 아니다.신라 사람들은 여섯 하늘(육천)의 하나인 도솔천(두률천)에서 내려온(하생)미륵이 화랑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미륵을 따르는 집단이 화랑이었다는 사실은 김유신의 화랑집단을 일러 미륵이 건설한 이상세계의 향내나는 무리라하여 용화향도로 불렀다는 기록에서 입증할 수 있다. 신라에서 화랑을 공식화 한 것은 진흥왕(서기 540∼576년)때다.그 목적은 군조직의 보충 수단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에 있었다.그래서 교육 및 군사 기능 이외에 사교단체 구실도 했다.노래와 춤도 화랑도 수련의 필수과정이었다.화랑을 풍월주라고 했던 까닭도 바로 여기 있지않나 한다.이들은 6세기 중엽 부터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7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존속한 청소년 공동체였던 것이다. 어떻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화랑들이 가장 활기를 띠었던 서기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제작되었다.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도 10여점에 이르고 있다.물론 삼국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즐겨 만들었으나 신라의 작품 만큼 많이 전해내려오지 않고 있다.그래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야 말로 화랑들이 찾고 있던 미륵의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6∼7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동식물·지질·광물·화석의 표본 전시

    ◎자연신비 체험하는 “산 교육장”/새 자연사 박물관 어떤 곳인가/영·불등 선진국은 3백여년전에 설립/미국에만 346개… 국내선 이대등서 표본실 운영 정부가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키로 하고 그 추진위원회를 늦어도 7월초까지 구성한다고 밝혔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민정부 출범 후 문화선진국에의 진입을 위한 가시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있다 정부의 국립자연사박물관 설립결정이 이처럼 관심을 끄는 것은 과학기술과 문화수준의 척도로까지 불리는 자연사박물관이 지금까지는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국내에는 현재 이화여대,경희대,강원대등에서 표본실 수준의 자연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을 뿐 본격적인 박물관은 아직 없다. 자연사박물관은 동식물과 지질,광물,화석및 인류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표본의 수집 보관과 더불어 전시 교육의 기능을 갖는다.자연사박물관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자연의 신비를 체험 학습케 해 자연탐구의욕과 자연보호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의 장으로 운영하고 있다.특히 민족지(민주지)입장에서국민의 자아를 일깨워 주는 민족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경향도 보여준다. 그래서 「자연사박물관의 수효와 설립연대는 과학기술과 문화발전의 수준을 실증한다」는 말까지 있다.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1846년 건립됐고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은 1635년,영국의 런던자연사박물관은 1753년,일본 국립자연사박물관은 1871년 건립되는등 선진국은 3백여년 전부터 자연사박물관을 앞다투어 건립해왔다.그 숫자도 미국 3백46개를 비롯,일본 1백98개,프랑스 1백87개,독일 1백74개,캐나다 1백5개,인도도 28개,헝가리29개,핀란드 23개가 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겪었다.따라서 그만큼 심한 공해와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 들여 귀중한 지질 광물자료와 문화인류자료들을 수집 보관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국립자연사박물관 설립추진위 김윤식 회장(61·고려대)은 『한국의 국립자연사박물관 설립은 늦었지만 동·식물,고생물,인류,지질,광물,생태학에 걸쳐 모든 분야별로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와 전시뿐만 아니라 교육을 수행하는 자연에 관한 국가의 중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국립자연사박물관은 현재 이전 설립을 추진중인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해 한국적인 모습의 총체적인 집합체로 가꿔야 하는 만큼 정부 학계의 전문가와 교육전문가로 구성된 설립추진위를 발족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 대한민국의 출범(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3)

    ◎첫 행정부 11부·4처로 구성… 총리에 이범석/국호·헌법전문에 상해임정 법통 승계 명확히 1948년 8월15일 상오10시쯤 중앙청(현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 마련된 정부수립 선포식장.7월24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이 모습을 나타내자 세종로와 태평로를 꽉 메운 독립국가의 백성들은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단상에는 이대통령 부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신익희 국회의장,김병로 대법원장이,왼쪽엔 맥아더 태평양지구연합군사령관,하지 주한미군사령관,외국사절들이 나란히 자리잡았다. ○「한」·「태한」 등도 거론 이대통령은 『이 정부가 변함없이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모범적 정부임이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하겠다』는 말로 경축사를 끝맺었다.일제의 강점으로 끊겼던 민족국가의 맥이 되살아나는 한편 이땅에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 출발하는 대한민국의 성격을 제헌국회 의원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을까.이는 국호를 제정한 과정에서 잘 나타나 있다.헌법 기초위원회는 6월7일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잠정 결정하고 이를 본회의에 넘겼다.본회의 토론에서 몇몇 의원들이 그 의의와 근거를 물었고 일부는 「한」,또는 「태한」으로 하자거나 국민 총의를 모아 참신한 새이름을 짓자는 의견들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기초위원회 서상일 위원장등은 『「대한」이란 국호는 청일전쟁 당시 이미 사용했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다.이와 함께 「3·1운동」을 계기로 상해에서 수립한 임시정부에서도 그 이름을 썼다는 점을 강조했다.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최종 결정했다.상해임정에서 쓴 「대한민국」을 국호로 인정하고,헌법 전문에도 상해임정을 이어받는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새 국가는 그 법통을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또 행정·입법·사법의 3권분립을 확실히 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첫 행정부는 11부,4처,66국으로 짜여졌다.이대통령은 국무총리에 처음 이윤영을 내정하고 국회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되자 이범석으로 교체해 인준을 받는다.이어 8월 1∼7일에 걸쳐 장관과 처장들을 임명했다.입법부에서는 이승만의 뒤를 이어 신익희가 국회의장이 됐으며,부의장은 김동원과 김약수가 선출됐다.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김병로가 맡았다. 11부의 장관과,4처의 처장 명단은 다음과 같다. ▲내무 윤치영 ▲외무 장택상 ▲국방 이범석 ▲재무 김도연 ▲법무 이인 ▲문교 안호상 ▲농림 조봉암 ▲상공 임영신 ▲사회 전진한 ▲교통 민희식 ▲체신 윤석구 ▲총무 김병연 ▲공보 김동성 ▲법제 유진오 ▲기획 이교선 그러나 조각 결과는 제헌국회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한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조각 과정에서 소외된 한민당은 8월8일 『본당은 시시비비주의로 임할 것이며 정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야당 세력임을 자처했다.따라서 한국 정치에 여·야 개념이 이때 비로소 발생했으며 한민당 계열은 이후 야당의 뿌리로 자리잡는다. 대한민국 수립에 앞서 미 군정의 정권이양도 순조롭게 진행됐다.먼저 「5·10 선거」실시 열흘만에 군정은 입법기구 노릇을 하던「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문닫았다.이어 6월1일에는 군정재판을 폐지함으로써 입법·사법 두 기능을 마감했다.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다른 나라들로부터 정통·합법국가임을 인정받는 것이었다.아직 출범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필리핀이 7월4일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사실상」승인한다.8월13일에는 미국과 자유중국도 정부를 「사실상」승인했고 특히 미국은 무초를 외교대표로 임명했다. ○유엔총회 압도적 지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유엔의 승인이었다.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5·10 선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데다 유엔에서 주도권을 쥔 미국이 새 정부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에서의 승인」이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그럼에도 새 정부는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을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해의 유엔총회는 9월21일 파리에서 막을 올렸다.이 자리에는 한국임시위원단의 보고서가 제출됐다.위원단은 「5·10선거」를 『전체 한국민의 3분의2를점하는 선거민들이 자유롭고 정당하게 의사표시를 했다』고 밝혔다.선거결과 구성된 제헌국회의 입법활동과 정부형성 과정도 자세히 소개했다.보고서는 『미군사령부가 한국정부에 이미 정권을 이양했으며 한국정부는 정상적인 정부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총회의 끝 무렵인 12월7일부터 한국문제가 정식의제로 다뤄졌다.12일 총회는 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에 있어 유일한 그러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결의를 통과시켰다.찬성 41,반대 6,기권 1이라는 압도적인 지지였다.이 결의문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역에 걸친 전국적 정부라는 선언을 조심스럽게 피하긴 했으나,대한민국 정부가 실질상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함축한 것이었다.더욱이 국제적 뒷받침이 거의 없었던 북한정권에 비해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확실하고 충분한 국제정치적 근거가 됐다. 유엔총회의 승인으로 자유우방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잇따라 수립됐다.1949년 1월1일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를 정식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4일에는 자유중국이,18일 영국,2월5일 프랑스,3월3일 필리핀이 뒤를 따랐다.1950년 「6·25」가 일어날 때까지 수교국가는 30개국 가까이로 늘어났다.이에 견줘 북한정권을 인정한 나라는 소련권에 한정됐다.더욱이 「6·25」가 발발하자 유엔군 참전의 명문을 제공하는등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은 한국의 국제관계에 초석이 되었다. ◎영 소장 「미 한국승인 성명서」/미 “대한민국은 유엔결의로 세운 합법정부”/“카이로선언 연장선상서 탄생” 천명/이 대통령,즉각 “무쵸파견 환영” 답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대한민국 출범을 3일 앞둔 1948년 8월12일(한국시간 13일)미국 국무부가 새 한국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이를 승인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영국 런던의 공기록보존소에서 찾아냈다.이 성명서는 비록 장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당시의 미국측 입장이 잘 요약돼 있다. 이 성명서에서 미국은 먼저 한국정부 수립이 1943년 12월 미국·영국·중국등 3국이 합의한 카이로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또카이로선언의 원칙은 포츠담선언과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재확인됐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소련과의 협상 끝에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미 정부는 1947년 11월14일 유엔총회 결정에 의해,정당한 과정을 통해 수립된 새 정부를 한국의 합법정부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이와 함께 대한민국 정부 및 유엔한국임시위원단과 협상할 대통령 특사로서 로드 아일랜드 출신인 존 무초(John J Muccio)를 파견하겠다는 내용을 공표한 이 성명은 무초가 초대 주한 미대사를 맡게 될 것임을 일찍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 성명에 대한 답신을 통해 미국이 대통령 특사로 무초를 파견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즉각 찬성한 답신 내용도 런던에서 발굴했다.8월17일 미국에 보낸 답신에서 이승만대통령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한·미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치하했다.
  • 새 국립박물관 국제설계 1단계 공모/46개국 340건 응모

    ◎문체부,입선작 10점 20일 발표 문화체육부가 새 국립중앙박물관건립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국제설계경기의 1단계 아이디어 설계공모에 세계 46개국 3백40건의 응모작품이 접수됐다. 참가국가로는 한국이 78건,프랑스 26건,이탈리아 23건,영국·미국이 각 18건,독일 15건,홍콩 11건 등이며 캐나다·핀란드·아르헨티나·말레이시아·스페인·네덜란드·이란 등이 5건이상씩을 출품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제건축가연맹(UIA)공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되는 국제설계경기에 이처럼 많은 세계 건축가가 응모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라며 『특히 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등 건축선진국의 유명건축가가 대거 참여한 것은 새 국립중앙박물관에 세계적 관심이 쏠려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1단계 아이디어 설계경기에 응모한 작품은 기술심사(6월1∼10일)를 거쳐 본심사위원회(12∼16일)에서 총 10점의 작품이 선정돼 오는 20일 발표된다. 10명의 입선자중 상위 5명에게는 미화 각 5만달러의 상금과 2단계 계획설계에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고 하위 5명에게는 미화 각 5만달러의 상금만 지급된다.
  • 국립미술관 지하 수장고/일 근대미술품 백94점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근대일본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1백94점과 김홍도의 「인합루도」등 10점의 우리 미술품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1일 밝혀졌다. 일본 미술품은 1920년부터 40년사이에 작품활동을 하던 70여명의 일본화가들의 작품으로 서양화 35점,일본화 96점,조각 16점,공예 47점등으로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다.
  • 박수근 화백 30주기 회고전/사간동 갤러리 현대/20일부터 한달간

    ◎미공개작 10점·토속성 짙은 대표작 30점 전시 박수근 화백의 30주기를 기념하는 회고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734­8215)에서 오는 20일부터 한달간 열린다.이번 전시회에는 미공개작 10점을 포함해 박화백의 대표작 30점이 선보인다. 한국적 토속성이 짙게 배인 두터운 마티에르,간결한 구성과 극도로 단순화된 선으로 서민들의 생활을 정감있게 그려냈던 박화백(1914∼1965)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민족화가로 꼽힌다. 황토빛 기저 위에 그려진 헐벗은 나무,어린 동생을 업고있는 소녀,잠시 일손을 놓고 쉬고있는 아낙네,행상하는 여인,노인과 시골집 등 그의 그림은 우리 민족의 삶속에 자리잡은 선함과 진실함을 표현하고 있다. 현대갤러리는 이번 전시회를 열면서 일반인을 위한 특별강연(20일 하오 2시 국립중앙박물관 강당)과 박수근화백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6월 3일 하오 2시 출판문화협회 강당)를 개최하며 그의 전작품을 수록한 화집과 자료모음집을 발간한다.또 그의 작품세계와 친밀하게 만날 수 있도록 그의 대표작가운데 「나무와 두 여인」「행인」「고목과 두 여인」등 5작품을 아트포스터로 제작하고 그의 예술세계를 CD­ROM에 담아낼 예정이다.
  • 보물 「조선 철화병」 기증/소장자,국립박물관에

    국립중앙박물관은 31일 개인사업가인 서재석옹(82·서울 종로구 명륜동2가 160의3)이 지난 91년 보물 1천60호로 지정된 조선전기 철화병 백자철화승문병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높이 31.4㎝,구경 7㎝,저경 10.6㎝의 이 백자철화승문병은 담청 회백색 백자의 대표적인 것으로 그동안 국립박물관이 특별전및 해외전에 여러번 대여받아 전시했던 문화재다.
  • 원통형 몸뚱이 남녀인물상(한국인의 얼굴:21)

    ◎들창코에 눈·입·귀 뚜렷이 표현/남자 머리에 상투·여자인형은 맨머리/팔·다리 생략… 풍요·다산 상징 성기강조 신라 흙인형을 살펴보노라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남녀인물상 한쌍을 만나게 된다.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이들 인물상은 출토지가 밝혀지지 않아 유물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다만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다. 이 남녀인물상의 몸뚱이는 원통형을 이루고 있다.그러나 얼굴과 성기는 극명하게 표현했다.남자상은 머리에 둥근 상투를 틀었지만 여인상은 그냥 맨머리다.귀와 눈,코와 입을 모두 뚫어 놓아 그야말로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하다.콧구멍 두개가 휑하니 드러나 들창코라는 인상을 풍긴다.눈과 입에 장난기가 어려 천진스러울 정도로 무구(무구)한 표정을 짓고있다.거기에는 선각으로 둘러놓은 눈썹이 한몫을 크게 거들었다. 그 얼굴은 의인화한 순둥이 동물로 보이기도 하고,욕심 없는 어린아이 모습으로도 다가온다.눈 내리는 겨울날 아이들이 솜씨를 부려 만들어놓은 눈사람 모양일 수도있다.또 얼핏 러시아의 전통공예품인 목제인형 마트료쉬카를 연상시킨다.마트료쉬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신라와 중앙아시아쪽 시베리아문화가 서로 연관성을 갖고있다는 학설은 일찍 부터 제기되었다. 이들 남녀인물상의 원통형 몸뚱이에 팔다리를 생략하고 유독 성기를 강조한데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고대 주술신앙에서 비롯된 성기숭배사상에 뿌리를 두고있다는 해석이다.남녀 생식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생명창조의 주체로 어머니(태모)를 의미하는 여성의 생식기는 때로 대지(지모)로도 비유된다.남성의 것은 생명의 흐름을 주도하는 가운데 재생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 신라의 흙인형에는 성애를 묘사한 것도 있다.별도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떤 그릇(토기)에 붙여놓았던 것을 따로 떼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다.이러한 흙인형들이 붙었던 토기는 씨앗 갈무리용 그릇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와있다.그러니까 신라토기에 나타난 남녀 결합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것일뿐 관능적 교합과는 거리가좀 멀다는 것이다. 원통형 몸뚱이의 흙인형 키는 남자상이 17.8㎝,여인상이 18.5㎝에 불과하다.신라인들은 그 작은 공간에다 남녀의 성을 통해 우주관을 담았다.세계의 고등종족들은 아주 까마득한 옛날부터 남녀의 성을 우주의 생성원리로 여겼다.인도에서는 일찍 남자의 성 링가(Linga)와 여자의 성 요니(Yoni)의 결합은 곧 우주이자 생명창조라는 등식으로 힌두철학을 정립했다. 그렇다면 신라의 흙인형 중에 몇점 인물상의 남녀성기를 과대하게 표현한 것도 외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들 흙인형 인물상은 깊은 사고가 깃든 정신문화유산인 것이다.
  • 우리전통문화 해외에 본격소개/영문판시리즈/「한국의문화유산」첫권출간

    ◎국제교류재단기획 결실…「FINE ARTS」 펴내/국내외 학자 27명 집필… 136개국에 무료배표/2편 「전통사상과 종교」 예정… 7∼8권으로 완간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한국 문화를 해외에 본격 소개하는 영문판 고급 학술시리즈가 나왔다.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최창윤)은 「KOREAN CULTURAL HERITAGE」(한국의 문화유산)시리즈 첫권으로 「FINE ARTS」(전통미술)편을 최근 발간했다. 이 책에는 국내외 유명 학자 27명이 쓴 논문 33편을 한국화(화),전통공예,건축미술 등 3분야로 분류해 수록했다.한국화 부문에서는 고려불화를 비롯해 조선시대 풍경화,문인화,설경,초상화,민화들을 다루었다.또 공예품으로는 고려청자·분청사기·조선백자·한지들을,건축물은 경복궁 부석사 석굴암과 하회마을들을 소개했다. 책머리에 개론으로 고 김원룡박사가 「미술과 미술사:한국의 화법」을,언론인 피터 현이 「한국 미술 5천년」을 썼다.이와 함께 황수영 전동국대총장,정영호 교원대교수,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안휘준 서울대박물관장,윤용이 원광대교수,에벌린 맥쿤 전 미국 버클리대교수등 쟁쟁한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여기 실린 논문들은 국제교류재단이 지난 87년부터 발행한 영문 계간지 「KOREANA」(코리아나)에 실린 것 가운데 가려뽑은 것들이다.논문집이기는 하지만 우리 문화 소개가 목적인 만큼 쉽고 부드럽게 쓴데다 대형 원색사진 4백11장을 곁들여 3백쪽에 이르는 화려한 책자로 꾸몄다. 국제교류재단은 이 책을 세계 1백36개국의 한국학연구기관과 학자,도서관,문화예술기관들에 무료배포하며 국내에서도 그 일부를 시판한다(값 3만원,연락처 752­6171). 국제교류재단은 올해 시리즈 2편인 「전통사상과 종교」를 펴낼 예정이며 앞으로 매년 한권씩을 보태 시리즈를 모두 7∼8권으로 완간할 계획이다.이 시리즈는 지난해 5월 손주환 당시 재단이사장이 한국문화를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해외에 소개하려면 기존의 홍보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기획·출간하게 됐다. 이 시리즈 발간에 대해 관련학계에서는 『이제껏 우리문화를 제대로 소개한 영문책자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한국의 문화 유산」시리즈가 나옴으로써 오랜 숙원이 해결됐다』고 반기고 있다. 한편 국제교류재단은 지난 87년 영문판 계간지 「KOREANA」를 창간,전세계 1백52개국에 배포해 왔으며 현재 일어·스페인어·중국어판도 함께 내고 있다.또 올 봄에는 불어판 「KOREANA」를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 중앙박물관 설계 국제공모/59국서 8백43건 접수

    문화체육부가 새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을 위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전 세계 건축가를 대상으로 국제설계경기 참가등록을 마감한 결과 총 59개국 8백43건(국내 2백33건,해외 6백10건)이 접수된 것으로 밝혀졌다.주요 국가별 등록현황은 국내 2백33건을 포함해 프랑스 81건,이탈리아 54건,미국 45건,스위스 40건,영국 34건,일본 34건,독일 31건,홍콩 27건,멕시코 26건 등이다.
  • 78세 미테랑 이례적 공항 마중/파리 첫날(김대통령 유럽순방여로)

    ◎출국직전까지 “가뭄대책 차질없게”당부/불 언론,“미·일 외교축 탈피 「세계화」 시동” 김영삼 대통령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참석및 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벨기에 등 5개국을 방문하기 위한 13박14일의 유럽순방여로에 올랐다. 김 대통령은 2일 상오10시20분 대통령특별기로 서울공항을 떠나 13시간40분 비행 끝에 2일 하오4시(한국시간 2일 밤12시)파리 오를리공항에 안착,공식환영을 받은 뒤 엘리제궁에서 미테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프랑스에서의 국빈방문일정에 들어갔다. ○엘리제궁서 1시간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파리의 대통령관저인 엘리제궁에서 1시간남짓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엘리제궁 현관에서 미테랑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김 대통령은 미테랑대통령과 함께 사진기자들을 위해 밝은 모습으로 잠시 포즈를 취한뒤 정상회담장인 2층 대통령집무실로 직행.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전통적인 두나라의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북한핵문제 해결,한국의 유엔안보리 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두나라의 교역및 상호투자증진과 과학기술교류 증대 등에 대해 폭넓게 협의. 두 정상은 또 한국과 유럽연합(EU) 의장국인 프랑스가 한국과 EU가 추진하고 있는 기본협력협정과 공동정치선언의 조기체결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대한민국과 유럽연합 의장국간 공동성명」을 채택.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부장관과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프랑스측에서 쥐페 외무장관과 바이잘 대통령외교특보 등이 배석. ▷오를리공항◁ ○…김 대통령은 이날 하오4시(현지시간)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2박3일의 프랑스방문 일정을 시작. 김 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장선섭 주프랑스대사와 주안 프랑스측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특별기 트랩을 내려와 영접나와있던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반갑게 악수. 미테랑 대통령이 『먼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환영합니다』라고 말하자 김 대통령은 『이렇게 공항까지 직접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답례. 올해 78세의 고령인미테랑 대통령이 이처럼 공항까지 직접 나와 외국정상을 영접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오는 4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미테랑 대통령은 김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자신으로서는 마지막 국빈영접이라는 점을 감안,의전과 경호 등 모든 면에서 최선의 준비를 다했다는 것. 김 대통령은 미테랑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주안 의전장으로부터 프랑스측 영접인사들을 소개받은뒤 미테랑 대통령과 잠시 환담을 나누며 곧바로 공식 환영식장인 공항안 「국빈각」으로 이동. 김 대통령은 두나라 국가연주와 의장대 사열에 이어 미테랑 대통령의 환영사를 들은뒤 답사를 통해 『나는 오늘 위대한 문화와 예술의 나라,그리고 민주주의 사상의 요람국인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프랑스방문 소감을 피력. 김 대통령은 오를리공항 도착행사가 모두 끝난 뒤 부인 손 여사와 함께 프랑스측이 준비한 승용차편으로 영빈관인 마리니호텔로 출발. ▷현지 분위기◁ ○…김 대통령의 유럽순방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유럽에서 새로운 상대를찾으려는 한국정부의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프랑스의 일간 르 몽드지가 2일 보도. 이 신문은 김 대통령이 유럽 6개국순방의 첫 방문국인 프랑스에 도착한 이날 『한국의 유럽에 대한 관심 증대』라는 도쿄발 기사에서 『지난 연말 김 대통령이 야심적으로 내건 「세계화」라는 구호에는 미국의 정치적및 상업적 지배와 일본의 경제및 기술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협력상대를 다양화하려는 한국의 의지가 숨어 있다』고 해석. ○… 한국의 경제발전은 오는 2010년까지 과거 점령국인 일본으로부터 동북아시아지역의 최강국 위치를 탈취하겠다는 집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프랑스의 일간 르 피가로지가 2일 보도. 르 피가로는 김 대통령이 이날 파리에 도착하는 것과 때맞춰 보도한 「한국,일본에 복수」라는 제목의 서울 발신 기사에서 한국이 비극의 상징인 국립중앙박물관의 해체를 시작한 것은 「역사에 대한 복수」라면서 그같이 언급. 한편 경제전문지인 라 트리뷴은 김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두 나라사이에 에너지,우주 및 군사분야에서 새로운 계약이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 ▷특별기◁ ○… 김 대통령은 특별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한 직후 가벼운 스웨터차림으로 갈아입고 기내를 돌며 공식 비공식 수행원및 수행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기내를 한바퀴 돈 뒤 김 대통령은 조종실에도 들러 김상록 기장(57)을 격려하고 「우리가 어느 코스로 유럽에 가느냐」고 묻자 김 기장은 항로가 표시된 지도를 펼쳐보이며 「시베리아를 거쳐 첫 기착지인 파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곧 개설되는 한·중직항로를 이용하면 비행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설명. ○국력신장 보여줄 것 ▷서울공항◁ ○…김 대통령은 2일 상오 10시 서울공항 옥내 행사장에서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환송식에 참석한 뒤 특별기편으로 출국. 김 대통령은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서 우리의 발전경험을 널리 소개하고 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힐 것』이라면서 『선진국과 개도국간 입장을 조정할 수 있는 우리의 중간자 입장을 강조하고 개도국 사회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에 적극 동참할 뜻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출국인사. 김 대통령은 또 『유럽 5개국 순방에서는 이들 나라 지도자들과 만나 우리의 통일문제와 통상 과학 기술 문화 등 다원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나눔은 물론 민주화과정을 통해 활력 넘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천명. 이날 환송행사에는 민주당에서 최락도 사무총장과 신기하 총무도 출영.
  • 신라 흙인형 여인상(한국인의 얼굴:18)

    ◎얼굴 형태 단순… 가늘고 긴 눈 인상적/젖가슴·성기 과장… 풍요·다산 상징 우리나라 고대 흙인형 가운데는 성징을 빌려 남녀인물상을 만든 경우가 있다.주로 성기를 과장해서 남녀를 구분했다.다만 여성은 성기 이외에 젖가슴이나 엉덩이에도 초점을 맞추었다.수적으로는 성기를 노출한 남성상이 더 많다. 신라 유물로 전해지는 성징표현 흙인형 여성상의 얼굴은 대체로 간략하게 제작되었다.어떤 여인상은 아예 얼굴 윤곽만을 뭉뚱그려 놓은 것도 있다.그러나 젖가슴과 성기,임산부를 강조한데서 여성을 빚고자 한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몇가지 여인상 특징을 살펴보면 젖가슴 만을 드러낸 것,젖가슴과 성기를 함께 드러낸 것,임산부를 표현하면서 성기를 드러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윗옷을 벗어 젖가슴만 내보인 여인상의 눈과 입은 가느다랗다.마치 엄지손가락 손톱으로 꾹꾹 눌러 자국을 남긴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웃음을 살짝 머금은 듯 표정 어딘가가 흐뭇해 보인다.오른팔을 구부려 손으로 봉긋이 튀어나온 젖무덤을 받쳤다.역시 왼팔도 구부려 손으로 아래쪽 허리를 가볍게 감싸았다.여인은 발등까지 내려온 주름치마를 입었는데 히프부분은 꼭 맞게 밀착되었다. 젖가슴과 성기를 다 드러낸 또 다른 여인상은 찢어진듯 가늘고 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커다란 입을 약간 벌렸다.고개를 들고 무릎을 꿇은 여인은 왼쪽팔을 번쩍 치켜올렸다.그리고 오른쪽팔을 내려 손으로 옆구리를 쓰다듬는 자세다.두개의 젖무덤은 별도로 붙이고 성기를 눈에 잘 띄게 새겼다.비교적 정성을 들인 이 여인상은 고운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사람의 지문이 선명히 남아있다. 이들 여인상은 여성의 육체적 성징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과는 달리 머리 매무새는 아주 단조롭다.어떤 형태의 헤어스타일은 물론 아예 머리카락으로 여길만한 아무런 표시도 해놓지 않았다.모자(관모)를 썼거나 상투 튼 머리모양을 한 흙인형 남성상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이렇듯 간략한 여인상의 머리모양은 청동기시대 조각품에도 나타난다. 그럼에도 여인상을 통해 애써 젖가슴과 성기,임신을 강조한 까닭은무엇일까.이는 곧 땅의 풍요성과 다산성을 의미한다.인류는 아득한 옛날부터 여성을 대지로 생각하면서 그 생식기능을 풍성한 수확과 연관시켰다.특히 농경사회에서 여성은 지모신의 위치와 같은 것이었다.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는 남녀가 편을 갈라 외줄을 당기는데 여자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이 역시 여성의 풍요성과 다산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구석기시대 후기의 대표적 여인상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소장의 「빌렌돈프의 비너스상」도 예외가 아니다.양쪽 젖가슴과 성기에 이르는 삼각지대를 과장한 이 여성상은 생산력이 크게 부각되었다.그리고 고대 멕시코 알텍문화유물의 한 여성상은 아이가 세상밖으로 머리를 내민 출산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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