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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구속형벌권 지속… 인권 강화 빛바래

    형사절차에서의 인권보장 강화와 불구속 수사·재판 확대를 목표로 추진됐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대부분 수정돼 빛이 바래고 말았다. 특히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소외계층도 형사 절차에서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조건부 구속 영장 발부제’의 다양한 조건이 대폭 삭제됨에 따라 “구속을 형벌로 삼으려는 검찰의 관행이 계속되게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17일 “미국의 보증금 납입조건부 석방제도를 모델로 삼으면서도 더 다양한 석방 경로를 열어주려던 사개추위의 의도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면서 “차라리 피해액을 공탁하는 방법보다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일정 부분 보증금을 납입하도록 하는 방안이 남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인 한상의 건국대 법대 교수도 “국회 법사위가 다양한 석방 조건을 마련하고 불구속 수사 원칙을 확대하려는 사개추위의 취지를 왜곡했다.”면서 “검찰 출신이 많은 법사위가 구속을 형벌권으로 생각하는 검찰의 입장을 들어줌으로써 돈 있는 사람들만 도와주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사개추위 논의 과정에서도 검찰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검찰은 “유전석방·무전구금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또 속내에는 구속 수사가 주는 장점이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미 사개추위 논의과정에서 다 합의를 본 사항에 대해 검찰이 법안 심사 과정에 딴지를 걸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이 관계자는 검찰 측이 조건부 구속 영장발부제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사개추위에서 받아주기로 한 ‘영장항고제’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전했다. 법원의 영장 기각에 대해 항고라는 불복절차를 두는 제도인데 조건부 석방제가 사실상 물거품이 난 상황에서도 전원회의 상정을 요구하며 심의를 요청해 결국 18일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개추위가 정부를 통해 제출한 형소법 개정안은 이날 논의를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위한 규정들이 통과됐고 재정신청 대상 사건을 모든 고소사건으로 확대한 것도 큰 성과로 꼽힌다.이와 함께 국민의 사법 참여를 통한 사법절차의 투명성을 높인 것도 높이 평가된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中유학생 35%가 한국인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에 유학온 외국인 학생들 3명 가운데 1명은 한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16일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한·중·일 3개국 교육부 국장회의가 열렸을 때 이같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에 온 유학생은 16만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0.3%,1만 5000명 증가했다. 특히 한국 유학생은 5만 7000명으로 전체의 35.6%에 달했으며 일본 출신 유학생은 1만 800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jj@seoul.co.kr
  •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12) 서울시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12) 서울시

    극성스러운 치맛바람, 꿈나무의 산실, 넘치는 경기장, 명문 체육학교…. 서울시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부러움과 시샘이 섞여 있다. 하지만 다른 자치단체처럼 서울시 체육 환경도 그다지 내세울 처지가 못 된다. 재원은 항상 부족하고, 아마추어 선수들이 이용하는 경기장들은 노후화가 심각하다. 또 기초 종목이나 비인기종목은 오히려 지방보다 선수 수급이 더 어렵다. 성적에서 잘 나타난다. 서울시의 전국체전 우승은 1995년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최근 10년간 준우승에 머물렀고, 지난해는 경북에도 뒤진 3위에 그쳤다. 서울시의 명성과 덩치를 감안하면 아주 평범한 성적들이다. 일선 체육담당 장학사들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부를 정도다. 겉보기와 달리 알차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은 1980년대의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최근 학교체육 활성화에 ‘올인’하고 있다. ●전임 코치·운동부 지원 점차 확대 우선 종목별 시범학교 운영을 통해 취약종목 육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 3년간 초·중·고교를 포함해 모두 167개교가 시범학교로 선정됐다. 육상(25개교)과 수영(23개교), 태권도(22개교), 체조(14개교) 등 일선 학교에서 육성하기 어려운 기초·취약 종목에 집중했다. 또 경기력 향상을 위해 전임 코치를 점차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서울시 학교운동부 수는 모두 775개교. 하지만 전임 코치는 지난해 기준으로 266명만이 배치됐다. 경기도(456명)와 견줘 절반을 겨우 넘는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수년간 전국체전에서 경쟁 상대인 경기도에 뒤진 요인을 효율적인 선수육성 부족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학교 운동부 지원도 점차 늘리고 있다.2003년 시교육청 지원금은 전체 예산의 0.02%인 8억 6500만원이었지만 2004년에는 9억 3000만원,2005년은 13억 4500만원으로 늘렸다. ‘맞춤형 선수’ 육성에도 열심이다. 수영 우수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각종 수영 대회에 초등학교 저학년부 출전을 유도하고 있다. 수영장 보유학교는 수영부 창단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육상과 수영, 다이빙, 체조, 역도 등 ‘1인 다메달 획득 종목’은 특별 관리하고, 육상과 수영은 ‘상비군제도’를 두기로 했다. 게다가 장학사별 담당종목 책임관리제를 운영하고, 교육감배 경기대회를 활성화해서 체육 특기학생을 적극 발굴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소년체육대회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2004년,2005년 전체 메달 수에서 경기도에 뒤졌지만 금메달 수는 각각 62,59개로 경기도보다 많았다. ●‘부자가 망해도 스타는 있다’ 전국대회 성적은 항상 준우승권에 머물렀지만 스포츠 스타들은 즐비하다. ‘국민 남동생’ 박태환(수영) 선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5년 전국체전 4관왕,2006년 전국체전 5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최근에는 멜버른 세계수영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내 ‘세계의 별’로 우뚝 섰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수영의 새역사 창조가 기대된다. 여자 수영에서는 최혜라 선수가 기대주다. 그녀는 도하 아시안게임 접영 200m에서 세계 2위인 나카니시 유코를 제치고 은메달을 따냈다. 이 밖에 체조의 김한솔과 육상(투창)의 정준용 선수도 유망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정신여중 핸드볼팀 15일 서울 송파구 정신여중 체육관. 선수들의 몸놀림이 문병욱 감독의 호령 소리에 맞춰 민첩하다.‘하나, 둘…파이팅’ 선수들의 기압 소리는 체육관을 쩡쩡 울린다. 지난해 전국 핸드볼 대회 2관왕인 정신여중은 손꼽히는 ‘핸드볼 명가’. 특히 정신여중·여고의 핸드볼 역사는 국내 여자 핸드볼이 걸어온 발자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 핸드볼계를 주름잡았던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1988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경순 선수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민혜숙 선수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전국대회 2관왕인 정신여중의 올해 목표는 소박하다. 선수층이 워낙 얇다 보니 이번에는 전국대회 중위권만 해도 성공이라는 분위기다. 문 감독은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선수를 전혀 받지 못했다.”면서 “일단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입 선수들을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신여중의 선수는 올해 모두 7명. 한 명이라도 부상을 당하면 경기 출전 자체가 어렵다.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는 셈이다. 이는 정신여중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교가 비슷하다. 이른바 ‘한데볼’의 비애다. 서울시 여자중학교 핸드볼 팀은 정신여중과 휘경여중 두 곳이다. 초등학교 핸드볼팀도 신정·성산초등학교 등 두 곳이다. 지원도 열악하다. 문 감독은 “서울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지방보다 사정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지방 공립학교의 사정이 훨씬 더 좋습니다. 시교육청 지원과 학교 지원이 전부인데 전국대회 출전 경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합니다. 때로는 출전 경비를 아껴서 동계·하계 훈련 식비로 사용할 정도에요.”라고 푸념했다. 선수들의 학교 수업 참석은 의무적이다. 평소에는 6교시 정규 수업이 끝난 뒤부터 연습한다. 문 감독은 “운동 선수가 아니라 아직은 학생입니다. 특기 적성으로 핸드볼을 하고 있을 뿐 학생이라면 당연히 수업을 받아야죠. 지방은 운동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수들의 진학 문제, 개인 발전, 또래 학생들과의 교류를 생각하면 대회 성적보다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더 중요합니다.”고 설명했다. 목표는 전국대회 중위권에 뒀지만 훈련 강도는 방학 때보다 세졌다. 하루 연습량은 3시간30분 정도. 첫 주전 골기퍼를 맡은 방민지 선수는 “선수 7명 가운데 지난해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는 2명밖에 없어요. 그래도 길고 짧은 것은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이 멤버로 최선을 다할 겁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문 감독은 베이징·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2003년 3월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우승 2번, 준우승 3번이라는 값진 성적을 올렸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전국체전 10년연속 우승 서울의 대표종목은 체조” “기여도를 따진다면 서울시의 대표 체육종목은 사실상 체조입니다.” 김대원 서울시 체조협회 부회장은 “비인기 종목으로 서러움도 많았지만 성적 만큼은 다른 어떤 종목보다 월등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체조협회는 46개 서울시 종목협회 가운데 순수 체육인들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성적이 뛰어난 것일까. 서울시 체조는 전국대회에서 다양한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1992년 이후 전국체전 준우승 2번을 빼고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또 10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으며, 점수 합산으로 달성한 5400점은 여전히 넘볼 수 없는 대기록으로 남아 있다. 서울시 체조의 뛰어난 성적에는 체조협회의 ‘보이지 않는 손’ 덕분이다. 협회의 ‘지원 사격’속에 출범한 남·여 실업팀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김 부회장은 “7년간 조르고, 조른 끝에 서울시청 남자 체조팀과 강남구청 여자 체조팀이 만들어지게 됐다.”면서 “협회에서 금전적인 지원은 힘들더라도 제도적, 기술적인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꿈나무의 조기 발굴도 체조 명성을 10년간 유지한 원동력이다. 김 부회장은 “학년별 체조 대회를 열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이를 벤치마킹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초·중·고 체조팀은 30여개 정도. 선수는 200명에 불과하다. 김 회장은 “체조가 비인기 종목인 데다 스포츠 가운데 ‘3D 종목’이다 보니 초등학생 선수발굴이 쉽지 않다.”면서 “이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협회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재원 부족을 꼽았다. 체조협회는 보통 기업인을 회장으로 두는 다른 종목과 달리 15년 이상 회장이 공석이다. 그는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지만 때로는 개인 갹출이나 스폰서로 해결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불협화음없이 단합해서 잘 이끌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국가 대표선수로 활동한 체조인이다.1992년 바르셀로나 체조 대표선수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는 국제심판으로 활약했다. 현재 대한체조협회 남자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교환학생 ‘열풍’ 알고보니 ‘허풍’

    교환학생 ‘열풍’ 알고보니 ‘허풍’

    최근 국제화 추세에 발맞춰 대학가에 ‘교환학생 열풍’이 불고 있지만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환학생 지원율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한 비용과 시간 낭비로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표 없이 해외 경험이나 해보자는 식으로 막연하게 교환학생을 선택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는 게 다녀온 학생들의 조언이다. ●“영어 집중학습 차라리 어학연수 다녀올걸” 9일 대학가에 따르면 교류협정을 체결한 외국대학에서 연수를 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어학 연수와 달리 학점이 인정되는 이점이 있어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이화여대는 교환학생 규모가 2005년 536명에서 지난해 590명으로 크게 늘었다. 경쟁률도 2005년 1.32대1에서 올 1학기에는 284명 모집에 446명이 지원해 1.57대1로 증가했다. 연세대도 파견 규모가 2005년 465명에서 지난해 587명으로 122명이나 확대됐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지난해 1월 스웨덴의 한 대학에서 1학기 동안 지낸 아주대 김모(24)씨는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가는 어학연수와 달리 교환학생은 학점을 따기 위한 것으로 차이가 있다.”면서 “영어로 진행되는 토론식 수업과 세미나가 무척이나 버거웠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지만 조별 토론이 익숙하지 않아 수업에서 왕따를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미국의 한 주립대를 다녀온 교환학생 출신 단국대 오모(23)씨도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교환학생 생활을 했는데 언어가 약해 조별 활동에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면서 “차라리 영어라도 중점적으로 배우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더라면 하는 후회도 했다.”고 말했다. ●준비에만 수백만원… “신중 판단을” 2004년 9월부터 1년간 홍콩의 한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연세대 원모(25)씨는 졸업이 1년 이상 늦어졌다. 그는 “교환학생에 선발되기 위해 토플 고득점을 받으려다 보니 휴학기간이 길어졌고, 유학중 외국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학점도 3분의1밖에 따지 못했다.”면서 “이 때문에 귀국해서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돌아온 연세대 박모(25)씨는 준비를 위해 한 달에 수강료가 50만원인 토플 단과 수업을 받았다. 또 응시료가 13만원인 토플시험을 세 차례 치르고, 집이 지방인데 서울에 있는 학원을 다니느라 생활비도 월 70만원가량 들어갔다. 준비 과정에서만 수백만원대의 비용이 들어간 셈이다.2005년 2월 프랑스로 5개월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서울대 정모(25)씨는 기숙사비가 한국보다 3∼4배 정도 비쌌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연세대 하연섭 국제처장은 “학교마다 교환학생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추진은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학생들은 무작정 해외에 나가고 본다는 생각보다는 교환학생 목적과 취업 방향을 신중하게 판단해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아연 이경원기자 arete@seoul.co.kr
  • 397세대 “올 대선은 우리가”

    ‘올 대선에서는 ‘397세대’를 주목하라.’ 지난 대통령선거 이후 사회 주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386세대’의 그림자에 가려 있던 ‘397(30대,90년대 학번,70년대생)세대’가 올 대선 정국을 맞아 독자적인 세력 결집에 나섰다. 1일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30대들이 최근 ‘진보와 개혁을 위한 전국 청년세대 네트워크’(청년세대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현재 시민운동가와 국회의원 보좌관, 언론인, 직장인, 종교인 등 우리 사회의 허리를 형성하고 있는 30대 100여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올 대선에서 적극적인 목소리 낼 것” 청년세대 네트워크는 오는 19일 ‘청년세대 4·19인 선언’을 통해 공식 활동을 선언한 뒤 올해 대선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청년세대 네트워크는 90년대 초반 학번이 주축이 돼 움직이고 있다.91학번인 안진걸(35)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은 “이번 대선에서 창조한국미래구상 등과 적극 연대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가치와 부합하는 후보를 지원하고 이 가치를 부정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공세적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 세력화가 아닌 사회 세력화를 내세우는 등 386세대와는 구분을 명확히 했다. 정을호(35) 미래구상 팀장은 “386세대와 단절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정치적 진출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386세대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시민사회의 가치에 기반한 사회세력화를 추진하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며 신자유주의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밝혔다. 청년세대 네트워크 참가자들은 새로운 세대답게 기존 단체들과는 달리 상근 인력이나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고 모든 의사 소통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할 계획이다.‘포괄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또 지역 및 부문별 연락책임자와 운영위원회를 빼고는 지도부도 따로 구성하지 않을 방침이다.●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활동 청년세대 네트워크는 지난해 말 90년대 학번 출신 시민운동가를 주축으로 한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에서 처음 제안됐다. 이 모임은 오광진(35) 서울흥사단 사무국장, 윤법달(35) 원불교청년회 평화의친구들 사무국장, 문치웅(35) 마포개혁연대 간사, 최양현진(35·벤처기업 회사원)씨, 권영태(35·동국대 북한대학원)씨 등 91학번들이 주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변화와 개혁의 동력으로서 새로운 세대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젊은이들의 역량을 결집해 한국사회 진보와 개혁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국악인] 과천 ‘찬 우물’에서 울려 퍼지는…

    [국악인] 과천 ‘찬 우물’에서 울려 퍼지는…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요즘은 국악을 배우는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있고 대학에도 국악과가 있어서 그런 학교 제도를 통해 국악을 공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런 학교를 통해 국악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국악 가문에 태어나면 자연스레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국악을 배우고 국악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 경기소리의 예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임정란도 그런 옛날식 제도를 통해 국악인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국악인들과 다른 출신 배경과 학습 이력을 가지고 있다. 임정란은 경기민요도 잘하고 12잡가도 잘하고 선소리 산타령도 잘한다. 경기소리라면 어떤 소리든 막힘없이 척척 잘하는 명창이다. 음악 가문 출신으로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많은 음악 가문 출신의 국악인들이 호남 출신인데 임정란은 경기 출신이다. 임정란은 과천 ‘찬 우물’이라는 마을 출신인데 지금 그 고향마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태어난 마을에 살면서 국악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임정란이 살고 있는 ‘찬 우물’이라는 마을은 과천에서 인덕원 쪽으로 가는 길 중간쯤의 오른편에 위치한 마을이다. 지금은 군부대와 드문드문 들어선 몇 채의 집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꽤 여러 집이 모여 살던 예인들의 집단촌이었다. 임씨네가 제일 많이 살았고 김씨네도 여러 집 살았었다. 모두 음악에 종사하거나 줄타기나 땅재주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옛날 우리나라 법은 그런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땅을 가질 수 없게 했기 때문에 모두 예능으로 밥을 벌어먹었었다. ‘찬 우물’ 사람들은 관아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 광대로 동원되고 어떤 마을에서 도당(都堂)굿을 하게 되면 부인과 함께 가서 부인들은 무녀가 되고 남자들은 산이가 되어 굿의 음악을 하거나 굿을 직접 하곤 했다. 일제 무렵 공연단체를 만들어 여러 지방으로 다니며 흥행을 하던 시절, 임정란의 당숙되는 임선문은 줄타기 명인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한때는 ‘대동가극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단체에는 많은 국악인들이 소속되어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가 알 만한 박동진, 이충선, 김광식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활동했었다. 그래서 임정란이 박동진을 만났을 때 임정란이 임선문의 당질(5촌 질녀) 된다고 말했더니 “국악인 치고 임선문 선생의 단체에 안 있었던 사람이 별로 없으이”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임상문은 줄타기로도 유명했었는데 형제간인 임종선은 가야금으로, 임세근은 쇄납과 피리로 명인이었다. 임정란의 아버지 형제도 세 분 모두 악기를 잘하는 명인들이었다. 이네들은 혼인도 같은 계통의 예인들끼리 하기 때문에 줄타기의 인간문화재였던 김영철도 같은 마을 출신이면서 친척이 된다. 말하자면 임씨네는 김씨 집으로 시집가고 김씨네 여자들은 임씨네로 시집오는 식이었다. 다른 지역으로 혼인하더라도 역시 그렇게 예인촌 사람들끼리 혼인했다. 이네들은 대대로 세습하면서 기능을 이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예능 수준은 대단히 높았다. 당시에는 이런 마을을 재인촌이라 했는데 한 군에 몇 개의 재인촌이 있을 정도로 드문드문 있었고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지역에 있었다. 재인이란 악기를 하거나 소리를 하거나 줄타기나 땅재주를 하는 등 예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악기 하는 사람들은 주로 피리나 젓대 해금 같은 삼현육각의 악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야 관아에서 연회를 할 때 무용 반주를 하거나 귀인이 행차할 때 행진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인들이 하는 예능은 국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은 그들이 하던 다양한 음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능인이 거의 사라져 안타까운 실정이다. 임정란은 그런 재인들, 요즘으로 치면 예술인들이 모여 살던 예술인촌 즉 재인촌 출신이다. 그래서 대대로 세습해 온 예능의 소질도 이어받았지만 삶의 역정도 어느 정도 옛날 예인들처럼 살아 온 부분이 많다. 말하자면 상당 부분 예술인촌 출신다운 삶을 살아왔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과천에서 학교 다닐 때에는 음악도 잘하고 무용도 잘하고 무엇이든지 예능을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소녀티를 벗을 때쯤 되었을 때에는 갑자기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워졌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임정란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요정에도 나가고 소리판에도 나갔다. 젊음과 예능을 무기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하기 위해 63년 이창배·정득만이 운영하던 청구고전학원에 나가 경기소리를 배웠다. 본래 어느 정도 경기소리를 알고 있었지만 큰 선생님 밑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니 일취월장 무슨 소리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얼마 뒤부터는 국악공연무대에 자주 서게 되었고 국악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방송도 하고 공연도 하고 무슨 연회에도 참석하는 등 소리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가서 활동했다.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긴 후 1975년에는 인간문화재가 된 묵계월(본명 이경옥)의 전수 장학생이 되었고 83년에는 전수조교가 되었다. 90년에는 보유자 후보로 지정받기도 했지만 그런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99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 경기소리 보유자라는 지방의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다. 그 동안 음반도 취입하고, 대학 강의도 많이 하고, 상도 많이 받고, 국내공연도 많이 했다. 96년부터 경기도립국악단 단원으로 또는 민요악장으로 있으면서 무수한 공연을 감당하며 많은 활동을 했다. 무엇보다 제자를 많이 길러내었다. 옛 고향마을 ‘찬 우물’에 연습실이 있는 멋진 건물을 짓고 전수 활동을 열심히 해왔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제자도 50여 명에 이른다. 정말 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도 연수원을 지어놓고 여름철이면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2003년 회갑을 맞았을 때에는 그렇게 길러 놓은 제자들과 함께 회갑기념 공연을 했다. <낙시대장 서얼>이라는 경기소리극을 만들어 공연했는데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05년에는 <과천 딸 부잣집 경사 났네>라는 경기소리극을 만들어 공연했는데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앞으로 2년에 한 번씩 새 작품을 만들어 공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임정란은 행복한 음악가의 삶을 살고 있다. 경기도의 인간문화재가 되어 고향 땅에서 활동하니까 옛날 동창들을 비롯한 과천 사람들이 귀히 여겨주어 멋진 전수관을 짓게 되었다. 과천시 문원동에 건평 400평의 경기민요 전수관을 짓는다는 것이다. 국비와 도비로 짓게 되는데 다 짓게 되면 그곳에서 임정란의 꿈을 마음껏 펼칠 작정이다. 국악유치원도 해보고 싶고 조그만 공연장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발표회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제자들도 잘 가르쳐 무대에 자주 서게 하고 싶지만 일반 주민들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도 많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문화센터 역할을 하게 가꾸어 볼 예정이다.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미국에 가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하고 있으니 전혀 불만이 없고 본인은 제자들과 행사에 둘러싸여 딴 생각할 틈이 없으니 바쁜 생활 그 자체가 임정란의 행복인 셈이다. 늘 건강하기를 빈다.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스포츠 라운지] 야구감독 출신 ‘초보 해설자’ 김성한·이순철

    [스포츠 라운지] 야구감독 출신 ‘초보 해설자’ 김성한·이순철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섬진강의 유장한 물길을 닮은 ‘라도 사투리’의 출렁임에 대한 기대가 지나쳤던 탓일까. 매끄러운 방송 진행 솜씨가 얄밉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1980∼90년대 프로야구판의 호남 강타자를 대표하는 두 거목, 김성한(49) 전 군산상고 감독과 이순철(46) 전 LG트윈스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처음치곤 잘한다.”는 격려가 자자하다고 했다. ●“사투리 나올까 조심조심” 지난 17일,2007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시작된 제주 오라구장. 케이블채널 MBC-ESPN 중계석에선 이순철 전 감독이 방송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이 전 감독은 팔꿈치 수술 후 올해 부활을 노리는 삼성의 선발투수 임창용에 대해 “팔꿈치 각도가 예년보다 많이 내려와 공의 무브먼트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이걸 눈여겨 보셔야 합니다.”라고 안내했다. 마치 집안의 큰형님이 형제들을 한번 쓱 둘러본 다음 한 수 가르치는 느낌이 짙다. 본인이 생각하는 해설자의 위상은 어떤 것일까. 그는 “상황을 빠르게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정리한 뒤 “미국 연수 중 그쪽 해설자들이 말을 줄이며 팬들이 경기를 최대한 즐기도록 배려하는 걸 본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MBC-ESPN의 이경천 PD는 “매일 현장에서 살벌한 프로 세계를 경험하신 분들이라 깊이있는 시각을 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따라서 준비된 이들에게 별도의 훈련조차 필요없었다.”고 설명했다. 두 전 감독 모두 중계 요령에 대한 설명을 가끔 전화로 전달받은 것 말고는 리허설 없이 곧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두 해설자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사투리와 억양. 국어책을 소리내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따라 그대로 해봤다는 김 전 감독은 20·21일 마산에서 열린 기아-LG전에서 해설 ‘입봉’을 했다. 첫날 방송 직후 100통 넘는 전화를 받았다는 그는 완연한 사투리로 “전 기억두 안 나는디, 사람들이 ‘글쎄요’,‘인자’처럼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을 하더라고 막 꼬집더라고요.”라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시야 넓혀야죠.” “더많은 팬 불러모으도록 노력” 이 전 감독은 “서울 사람들은 지나치겠지만 이쪽 사람들은 다 알아듣고 지적하는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시야가 넓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더니 “상황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하는데 어느 한쪽에 몰입해 다른 부분을 놓친 게 많았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또 시범경기라 차분하게 해설에 임했더니 톤이 낮아 너무 잔잔한 느낌을 주더란 얘기를 들었다며 공식 시즌이 시작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 전 감독은 18일 방송에서 “어제 제가 멀리 대구에서 삼성을 응원하러 온 여고생 팬들을 ‘많은 제주도민이 찾아주셨네요.’라고 했다가 엄청 혼났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방송 중 “김인식 감독님”이라고 했는데 해설자라면 역시 피해야 할 표현이었다. 중계팀과 통하는 이어폰을 꽂은 채 마이크에 대고 “뭐가요?”라고 대꾸한 것도 귀여운(?) 실수 중 하나. 이 PD는 “케이블 채널이어서 공중파와 달리 조금 실수를 해도 괜찮은데 두 분이 너무 신중한 게 즐거운 불만”이라며 “자신들이 현장에서 느꼈던 불만, 여러 생각들을 마음껏 펼쳐보였으면 하는 게 솔직한 기대”라고 말했다. 두 전 감독은 일주일에 이틀씩 해설을 맡을 예정이지만 시즌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이승엽의 요미우리 원정경기 일부를 허구연 위원과 나눠 맡을 가능성도 있다. 두 사람 모두 피하고 싶은 건 입담으로 하는 해설. 김 전 감독은 누군가를 깔아뭉개는 해설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야구는 팬들의 성원을 먹고 사는데 잘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게 팬들의 소망 아니겠느냐.” ‘초보 해설자’치곤 핵심을 잘 짚고 있다는 평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성한 프로필 ●출생 1958년 5월18일생 ●학력 군산상고-동국대 ●경력 82∼95년 해태(프로 원년 타점왕)85·88년 정규리그 MVP, 92년 올스타 MVP, 1337경기 출장, 4849타수, 1389안타, 통산 타율 .287, 홈런 207개, 타점 781점, 2000년10월∼2004년7월 기아감독, 2004년9월∼군산상고 감독 ■ 이순철 프로필 ●출생 1961년 4월18일생 ●학력 광주상고-연세대 ●경력 85∼98년 해태, 92년 최다안타(191개), 85·88·91∼93년 골든글러브, 1388경기 출장, 4775타수, 768안타, 통산 타율 .262, 홈런 145개, 타점 612점, 도루 371개, 2000년12월∼2003년10월 LG 작전코치, 2003년10월∼2006년6월 LG 감독
  • [손학규 탈당 파장] ‘제3세력’ 규합… ‘전진 코리아’ 모태될듯

    [손학규 탈당 파장] ‘제3세력’ 규합… ‘전진 코리아’ 모태될듯

    ■ 孫의 행보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범여권 단일후보로 연말 대선에서 나선다.’는 김진명씨의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쉽사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손 전지사측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짓지는 않은 것 같다.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의 노림수는 범여권 단일 후보? 19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는 회견에서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선도할 정치질서를 창조하고, 미래·평화·통합의 시대를 경영할 창조적 주도세력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겠다.”고 말했다. 무능한 극좌세력과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보수세력을 배제하는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주장하는 셈이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 드림팀을 만드는 데 밀알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일문일답에서 “정 전 총장은 서울대 경영을 통해 교육에 대한 훌륭한 비전과 경영능력을 보여줬고, 진대제 전 장관은 미래 산업의 상징이다.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 선진화와 미래의 중요한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드림팀을 확대해 나가서 새로운 정치질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손 전 지사는 올초 “손학규·정운찬·진대제가 함께 하면 대한민국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말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통합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로 인해 손 전 지사의 이날 탈당은 이미 오래 전 짜놓은 ‘시나리오’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는 관측을 자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손 전 지사가 정 전 총장이나 진 전 장관 등에게 당장 손을 내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현재로서는 이들 세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세를 규합한 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통해 ‘범여권 단일후보’로 나서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 관측이다.‘나비야 청산가자’에 등장하는 손 전 지사의 행보와 흡사한 행보다. ●범여권 일부 인사도 참여할 듯 손 전 지사가 신당 창당에 나설 경우,‘전진 코리아’가 모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도개혁 성향의 전진코리아는 ‘비(非)열린우리당-반(反)한나라당’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 15일 출범했다. 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장, 김 윤 세계경제화포럼 대표,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각계 30∼50대 386운동권 출신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전진 코리아’는 오는 6월까지 정강·정책을 완비한 뒤 8월까지 16개 광역시·도 전체에 지부를 세워 오는 연말 대선에 독자 후보를 내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잇다. 손 전 지사가 제3세력 통합에 나설 경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범여권의 일부 인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제3지대론’ 논의에 참여했던 범여권 의원들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손 전 지사측에선 한나라당내 일부 개혁성향 의원들과도 접촉을 벌일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孫의 결단 왜 19일 탈당을 선언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한나라당의 무엇에 실망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이명박 전 서울시장(지지율 40%대)과 박근혜 전 대표(지지율 20%대)의 높은 벽을 절감한 것이 결정적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손 전 지사는 최근 지지율이 상승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10%를 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 개발독재시대의 잔재가 주인”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나오는 정치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탈당선언문을 통해 또다른 ‘손(孫)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손 전 지사는 탈당선언문에서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일컫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좀체 오르지 않는 당내 지지율에 대해 손 전 지사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14년을 몸담았지만 지금처럼 한나라당의 ‘본성’과 맞대면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동안은 ‘개혁적 보수’로 한나라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귀한 존재’로 대접받았지만,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당으로부터 철저히 소외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초선의원들 줄서기에 여념없어” 에둘러서 표현했지만 당내 젊은 소장파에 대한 실망도 주요 원인으로 해석된다. 그는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일부 의원들과 당원들조차 대세론과 줄 세우기에 매몰돼 시대적 요청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 전 지사가 출마할 경우 목소리를 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진보·개혁 초선 의원들이 싸늘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손 전 지사가 칩거 첫날 머물렀던 낙산사 정념 스님 등에 따르면 손 전 지사가 “초선 의원들이 목소리를 낼 줄 알았는데 줄서기에 여념이 없다.”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 경선준비위원회에 투입할 자신의 대리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초선 의원들이 일제히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범여권 반응은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범여권은 일단 환영했다. 한나라당의 수구·보수 색깔이 짙어질 것이란 전망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파별·대권예비주자별로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이제 한나라당엔 냉전 향수병에 휩싸인 사람들만 남았다.”고 했고, 탈당파인 통합신당모임은 “영남당, 수구보수당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은 군부독재와 개발독재의 잔존세력들이 여전히 주인 노릇하는 수구보수세력의 본거지임이 증명됐다.”고 했다. 이번 탈당이 범여권에 미칠 파장을 놓고는 계산법이 달랐다. 열린우리당은 추가 탈당을 경계했고 탈당파와 민주당 등은 탈당을 종용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해석하거나 행동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통합신당모임의 양형일 대변인은 “열린우리당 내 중도개혁 통합에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내에서 당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인사들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주요 대권예비주자들의 입장도 달랐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손 전 지사가 밝힌 새로운 질서의 구축을 위해 큰 길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크게 반겼다. 일각에선 정 전 의장이 손 전 지사의 탈당을 계기로 자신도 탈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근태 전 의장측은 복잡했다. 김 전 의장은 “손 전 지사가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역사적 책임을 다해 나갈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한 측근 의원은 “당초 왜 한나라당쪽으로 정치에 입문했는지 그 해명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손 전 지사가 탈당회견문에서 범여권을 향해 ‘무능한 진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손 전 지사는 유능한 진보를 하기 위해 한나라당으로 갔었느냐.”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은 “한나라당이 3공화국·5공화국 잔재의 낡은 정당임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 역시 김 전 의장과 마찬가지로 손 전 지사의 역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中 사유재산 인정·외자기업 혜택 철폐

    中 사유재산 인정·외자기업 혜택 철폐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제10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5차회의가 16일 오전 ‘물권법’과 ‘기업소득세법’을 통과시킨 뒤 공식 폐막했다. ●사유재산 인정으로 빈부격차 커질 듯 물권법은 이날 표결에서 전체 참석 대표 2878명 가운데 찬성 2799표, 반대 52표, 기권 37표로 통과됐다. 중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국·공유재산과 사유재산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내용의 이 법안은 오는 10월1일부터 시행된다. 물권법은 1993년 논의를 시작해 2002년 12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심의한 이후 8차례의 심의과정을 거쳤다. 중국 입법 사상 가장 많은 심의가 이뤄진 법안이다. 법안은 주택용 토지 사용기한이 만료된 뒤 사용권을 자동 연장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거래가 더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되지만, 사유재산 인정으로 중국이 당면한 빈부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기업 소득세법은 찬성 2826표, 반대 37표, 기권 22표로 통과돼 내년 1월1일 발효된다. 내·외자기업의 소득세를 25%로 통일하되, 첨단기술 등 일부 외자기업에 대해서는 종전의 우대세율이 일정기간 적용된다. 외자우대 세제는 5년간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2013년에 완전히 폐지된다. ●내년부터 여성대표 22%이상 선출 이날 함께 통과된 ‘제11기 전인대 대표 정원 및 선거문제에 관한 결정’은 내년 1월 실시하는 제11기 전인대 대표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정한 수의 ‘농민공(농민 출신의 도시근로자)’ 대표를 뽑고, 여성 대표를 22% 이상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이로써 제10기 전인대는 다섯차례의 연례 회의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이번 전인대는 올 10월 중국공산당 제17기 전국대표대회를 위한 양호한 환경 및 조건 마련,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에 목표가 맞춰졌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이날 전인대 폐막 후 인민대회당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일·북 양국간의 일”이라면서 이 문제와 6자회담을 연계하는 것을 경계했다. 원 총리는 “일본인 피랍자 문제에 대해 중국이 앞으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느냐.”는 일본 기자 질문에 “중국이 일본인 피랍사건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동정과 이해를 표시한 바 있으며, 양국이 교류와 담판을 통해 순리적으로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 총리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만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의 개인적인 미래에 관한 대화와 협상의 문호는 항상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달라이 라마가 국가통일과 티베트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국가분리 기도를 포기한다면 대화와 협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j@seoul.co.kr
  • 김병현 부진 늪 탈출

    미프로야구의 김병현(28·콜로라도)이 세번째 시범경기에서 삼진을 6개나 솎아내며 부진에서 벗어났다. 추신수(25·클리블랜드)는 타이완 출신 왕첸밍(뉴욕 양키스)을 상대로 또 안타를 빼냈다. 김병현은 12일 캔자스시티전에서 두번째 투수로 5회에 나와 4이닝동안 1안타 2볼넷 1실점(비자책)하고 삼진을 6개나 뽑았다.1실점도 수비진의 실책 탓이었다. 또 지난 8일 밀워키전(4볼넷)에서 남발했던 사사구가 절반으로 줄어 제구력도 안정감을 되찾았다. 콜로라도가 5-4로 이겼다. 추신수는 양키스전에 우익수 겸 5번 타자로 선발 출장,1타수 1안타 2볼넷 1득점했다. 특히 추신수는 베이징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고 맞설 가능성이 있는 왕첸밍에게 지난 7일에 이어 또 안타를 빼앗아 한국대표팀 차출에 청신호를 드리웠다. 클리블랜드의 4-3 승. 한편 일본인 투수 마쓰자카 다이쓰케(보스턴)는 볼티모어전에 두번째 선발 등판해 4이닝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 6안타 4실점, 패전의 수모를 당했다. 보스턴이 3-5로 졌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非음대 출신 국악인 서울대 음대교수 됐다

    비(非)음대 출신 국악인이 처음으로 서울대 음대 교수에 임용됐다. 11일 서울대에 따르면 KBS 국악관현악단 악장 등으로 활동하며 ‘거문고의 1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대석(56)씨가 이번 학기부터 이 대학 음대 교수로 강단에 선다. 음대를 졸업하지 않고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된 것은 정 교수가 처음이다. 그는 국립 국악양성소(현 국악중학교) 3학년때 처음 거문고를 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졸업한 뒤 경주 시립국악원에 국악 강사로 취직했다. 이후 단국대에서 장학생 제의를 받고 1970년 국문과에 진학해 국악 동아리에서 독학으로 작곡과 연주를 계속했다.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75년 동아 국악 콩쿠르에서 거문고 자작곡 ‘열락(悅樂)’으로 대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이듬해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들어가 거문고 주자 겸 국악 작곡가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만든 창작 국악곡은 40여곡에 이른다. 그는 뒤늦게 99년 용인대 예술대학원 국악학과(거문고 전공)에 진학, 석사학위를 딴 데 이어 지난달 경북대에서 거문고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악 마니아인 권두환 서울대 대학원장이 국문과 교수 시절 동료 교수 10여명과 함께 직접 그를 찾아가 ‘그룹 과외’를 받았을 정도로 거문고 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아버지의 ‘끼’를 물려 받아 큰딸(23)은 서울대 음대에서 가야금을 전공해 지난달 졸업했다. 작은딸(20)도 서울대에서 해금을 전공하고 있다. 임용되더라도 정년이 9년 밖에 남지 않은 그가 제자뻘 되는 국악도들과의 경쟁을 무릅쓰고 서울대 교수 채용 원서를 낸 것은 거문고의 세계화와 고구려 홍보를 위해서다. 그는 “거문고야말로 양악을 앞세운 한류보다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우리 브랜드”라고 강조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9) 울산시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9) 울산시

    울산은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 24개를 획득해 10위를 했다.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늦게 광역시로 승격된 것에 비춰보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울산이 학교 체육의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소년체전에서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소수 정예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시교육청의 학교 운동부 육성 전략의 힘이 컸다고 분석한다. ●소년체전 금메달 절반이 체조·수영에서 울산시가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획득한 전체 금메달 가운데 절반인 12개는 체조와 수영에서 나왔다. 체조가 8개, 수영이 4개다. 체조와 수영 종목은 초·중·고교 단계별로 연계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소질이 보이는 학생을 중심으로 선수를 발굴해 집중 지도한다. 지난해 소년체전 체조종목 남자초등부에서 금메달 4개를 따 4관왕이 된 양사초등 김진석(신정중 진학) 선수는 체조 꿈나무다. 신정중 김찬송(대현고 진학), 울산여중 김다은(3년) 선수도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각각 남·여 중학부에서 2관왕을 차지한 기대주다. 울산여중 조현주 선수는 체조 국가대표 선수로 태능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수영 종목에서는 올해 부산체고로 진학하는 이희완(범서중 졸업)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갖춘 기대주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선수와 겨뤄도 뒤지지 않았던 이군은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평형 50m와 100m에서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말 도하 아시안게임 사이클에서 금메달을 딴 강동진(울산시청 소속) 선수도 농소고(사이클부) 재학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일찌감치 재목감으로 꼽혔다. ●“운동선수 하기 싫어요” 울산시교육청은 각 학교마다 학교장 책임 아래 한 개 이상 운동부를 만들어 육성토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부를 창단해 운영하려고 해도 운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운동을 하다가 상급학교로 진학하면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다. 이 때문에 자질있는 선수 발굴은 고사하고 운동부 인원수를 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초·중·고 연계 육성도 어렵다. 일선학교 체육교사들은 출산율이 낮아지고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힘들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운동선수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선수 부족으로 운동부 명맥 잇기에 급급하다고 한다. 울산시 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이길배 장학사는 “학생들이 운동을 안하려고 할 뿐 아니라 부모들도 한두명뿐인 자녀에게 운동은 시키지 않으려 한다.”면서 “기초종목을 비롯한 학교 체육이 운동선수 절대 부족으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운동선수를 구하지 못해 운동부가 해체되는 일도 생긴다. 중구의 한 초등학교 정구부는 선수를 확보하지 못해 2005년 말 해체됐다. 강남중학교도 여자하키부를 운영하다 선수가 없어 결국 2005년 팀을 해체했다. 탁구 남자 중·고와 핸드볼 남자 초·중·고등부 등도 선수가 없어 운동부를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현중학교 안성택(46) 체육교사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운동에도 소질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거의 공부를 택하는 데다 운동을 시작했더라도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결국 운동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월봉초등 수영부를 지도하고 있는 박세진(여·울산시 수영연맹 이사) 코치는 “초등학교에서 수영 선수를 발굴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코치 월급 현실화해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울산의 일선학교 운동부 코치들은 월 평균 12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시교육청은 월급은 전국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각종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단체종목은 200만원, 개인종목은 80만원의 격려금을 주는 것이 전부다. 시교육청측도 이같은 보수로 생계를 꾸리기에는 부족하다고 인정한다. 학교 체육교사들은 학교 운동부 코치의 보수를 최소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글 사진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울산여중 체조부 울산여중(교장 이상철) 체조부 기량은 전국 여중 체조부 가운데 상위권으로 꼽힌다. 해마다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단체종합과 2단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땄다. 선수는 1∼3학년에 걸쳐 모두 6명이다. 국가대표인 3학년 조현주 선수와 같은 학년 김다은 선수는 국내 정상급 기량으로 평가받는다. 울산여중 체조부는 올해로 창단 23년째다. 학교에서 1.5㎞쯤 떨어져 있는 울산초등학교 체육관을 지금까지 훈련장소로 쓰고 있다. 평일에는 수업을 마친 뒤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일요일은 오전 연습, 여름·겨울 방학 때에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을 한다. 국가대표 출신인 임군기(40)씨가 1996년부터 코치를 맡아 가르치고 있다. 임 코치는 “체조는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지고 특히 여자선수들은 몸 형태가 금방 무너지기 때문에 일년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울산여중과 울산초등 2개 학교 체조부가 연습장소로 쓰는 울산초등 체육관은 일제시대 때 지어졌다. 몇 차례 개·보수를 했지만 낡아 창고나 다름없다. 냉·난방시설은 아예 없고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선풍기와 난로로 버텨야 하는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가 연습보다 더 힘들다. 임 코치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에는 난로만으로는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난방을 할 수 없어 체력훈련만 하고 기술연습은 못한다.”고 말했다. 연습기구도 대부분 오래됐다. 착지 연습을 할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시설은 낡아 쓸 수가 없다. 코치가 안전시설을 대신해 선수들을 받아준다. 마루 기구는 10년이 넘어 수명이 다됐지만 그대로 쓰고 있다. 교육청 형편상 3000여만원이나 되는 새 기구를 구입할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다. 월평초등학교에 체조전용 최신 체육관이 있지만 울산 학교 체조부 전체가 사용하기에는 비좁다. 울산여중 체조부 연간 운영비는 2000여만원이다. 학교예산 1500만원에, 교육청에서 500여만원을 지원한다. 동문회나 기업 등 외부 지원은 한 푼도 없다. 울산여중 정금섭(41) 체육교사는 “2000만원을 갖고 선수 훈련복에서부터 대회 참가경비에 이르기까지 1년동안 체조부를 운영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체조선수는 체중이 늘지 않도록 음식섭취 등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식단도 단체로 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지만 예산 때문에 제대로 못한다.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대회도 골라가며 참가한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꿈나무 가꾸기 기업 지원 ‘큰 힘’ 학교체육을 교육청 예산만으로 육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일선 학교와 교육청 체육 관계자들은 공통된 의견이다. 예산을 학교 체육에만 여유있게 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등이 사회공헌사업의 하나로 여건이 열악한 학교 체육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이면 유망한 체육 꿈나무 육성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울산지역에서는 한국동서발전㈜울산화력과 롯데재단이 학교 체육 육성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을 한다. 롯데재단은 롯데그룹에서 기금을 출연해 설립된 장학재단으로 신격호 회장의 고향인 울산을 비롯해 전국에 걸쳐 다양한 장학·복지사업을 한다. 울산화력과 롯데재단은 울산시교육청에 의뢰해 열악한 여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학교 체육부를 선정, 운영비나 운동기구 구입비를 지원한다. 울산화력은 지난해부터 체육꿈나무 가꾸기 사업으로 학교체육 지원을 시작했다. 전국소년체전이 끝난 뒤 반천초 여자 배드민턴, 덕신초 여자 배구, 연암초 여자 농구, 송정초 남자 농구부 등 울산지역 4개 초등학교 체육부에 각 1000만원씩을 지원했다. 올해는 소년체전이 열리기 전에 같은 학교에 비슷한 금액을 지원할 예정이다. 2001년 창단된 덕신초 배구부는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비롯해 해마다 좋은 성적을 낸다. 연암초 여자 농구부도 창단 2년 만인 지난해 전국 소년체전에서 우승했다. 롯데재단은 성적이 우수한 울산지역 학교 운동부에 2000년부터 해마다 체육교재 구입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성고와 언양중 카누부, 천곡중 사이클부에 장비구입비로 각 1000만원씩 모두 3000만원을 지원했다. 천곡중학교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강동진 선수의 출신학교다. 롯데재단은 또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울산지역 초·중·고 체육선수들에게 해마다 체육특기자 장학금도 준다. 지난해에는 15명에게 1인당 초등학교 20만원, 중학교 40만원, 고등학교 70만원 등 모두 650만원을 전달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이해찬 방북 ‘정상회담용’ 5가지 징후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부인에도 불구, 이 전 총리의 7일 방북이 ‘남북 정상회담용´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의문들을 추적해 본다. 1.공식문건 작성 준비? 여권 일부에선 직업외교관 출신 정의용 의원이 방북단에 포함된 점에 주목한다. 남북간 공식문건 작성을 위해 전문가 정 의원이 동행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정 의원은 일을 공식화하는 데 필요한 인물이다. 방북 목적이 달성돼 문서를 작성할 경우를 대비, 정 의원을 일행에 포함시킨 것이다.”고 말했다. 이화영 의원 등과 달리 정 의원은 최근에야 방북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 北과 사전 비밀접촉? 이 전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지난해부터 북한측과 비밀 접촉해 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전 총리와 이화영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베이징 한국대사관 국정감사 때 특별한 이유 없이 국감장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시기 안희정씨는 베이징 등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과 비밀리에 만났다는 소문도 있다. 이 전 총리 등도 북한 고위층과 접촉했을 것이란 관측이 당시 국감 참여 의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3. 黨빠진 黨직함 방북 열린우리당은 2·14 전당대회 직후 동북아평화위원장 직함을 새로 만들어 이 전 총리에게 맡겼고, 그는 이번에 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북측에서 이 전 총리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그 때문에 직함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과는 관련 없이 진행해온 것”이라는 이화영 의원의 말처럼 당은 이번 방북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 청와대측 요청으로 직함만 만들어 줬다는 얘기가 된다. 노 대통령의 ‘투명한 대북협상’ 원칙에 흠이 나지 않도록 이 전 총리에게 공식 직함을 달아준 셈이다. 4. 당·청 엇갈리는 진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진술도 엇갈린다. 정세균 의장은 이번 방북에 대해 “청와대와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했지만, 청와대는 “협의는 없었다.”고 했다. 서로 말도 맞추지 못할 만큼 사안이 민감하단 뜻으로 풀이된다. 5. 통일부는 왜 몰랐나 통일부도 모르게 극비리에 추진됐다는 점도 정상회담용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근거다. 통일부측은 “5일 저녁 8시 온라인을 통해 접수됐다.”고 했지만,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초 방북신청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통일부측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해도 ‘5일 신청→6일 승인→7일 방북’은 극히 이례적이다. 소식통은 “정상회담과 같이 극비사안의 경우 관할 부처인 통일부는 왕따를 당해 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베어벡호 신예 김민호·최철순 ‘승선’

    부실한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에 공격수 김민호(22·성남)와 수비수 최철순(20·전북)이 수혈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14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내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 2차전 원정경기를 치르는 올림픽대표팀(22세 이하) 명단(23명)을 6일 발표했다. 핌 베어벡 감독은 당초 약속대로 새 얼굴을 뽑았다. 김민호와 최철순이다. 예멘전에서 깜짝 출전한 연습생 김창훈(고려대)에 이어 ‘무명 반란’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예멘전에서 보복 행위로 퇴장당한 박주영(FC서울)은 1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확정돼 이번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고명진(FC서울)이 제외됐다. 나머지 선수는 예멘전 엔트리와 같다.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로 성남에 지명돼 올해 K-리그에 데뷔하는 김민호는 건국대 출신으로 2004년 청소년대표 상비군과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아대회 대표를 지냈다. 키(179㎝)는 크지 않지만 스피드가 있고 개인기가 좋다. 대학 시절 한·일 정기전에 줄곧 발탁될 정도로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프로 새내기이지만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김민호는 성남의 일본 전지훈련을 직접 지켜본 홍명보 코치의 추천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프로 2년차 최철순은 지난해 전북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는 데 한몫한 수비수. 지난해 K-리그에서 23경기를 소화했고, 올해 광주와의 개막전에서도 후반 막판 김정겸을 대신해 투입됐다. 체구(175㎝)는 작지만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8일 오후 1시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소집되는 올림픽팀은 이튿날 오후 11시30분 UAE로 출국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프로축구] 외인 삼총사 신경전 불뿜다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미드필더인 이청용(19·FC서울). 그는 2004년 데뷔했지만 지난해에야 뛰기 시작해 4경기 출장이 고작인 새내기. 그러나 이청용은 지난달 터키 전지훈련 기간, 세뇰 귀네슈(55) 감독 눈에 들어 4일 프로축구 K-리그 대구 시티즌과의 개막전에 선발 출장하는 기회를 부여잡았다.90분 풀타임을 뛴 그는 후반 4분, 아크 앞에서 수비수의 공을 재치있게 끊어낸 뒤 침착하게 밀어넣어 선제골이자 자신의 프로 데뷔골을 뽑아냈다. 귀네슈 감독에게 한국에서의 첫 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긴 것은 물론이다. 개막전 한 경기로 예단할 순 없지만, 앤디 에글리(49·스위스) 부산 감독이나 세르지오 파리아스(40·브라질) 포항 감독에 더해 귀네슈 감독이 펼칠 ‘외국인 사령탑 삼국지’가 불을 뿜게 됐다. 부천SK(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를 이끌던 러시아 출신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을 제외하고는, 트나즈 트르판 전 부천 감독이나 이안 포터필드 전 부산 감독 등이 쓸쓸히 보따리를 쌌던 전례에 비춰 이들 감독의 K-리그 안착은 올시즌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 한·일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로 끌어올려 한국대표팀 사령탑 후보로도 오르내린 귀네슈 감독은 1987년부터 터키 트라브존스포르 지휘봉을 잡은 뒤 리그 6회 우승과 컵대회 5회 제패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날 2-0 완승에도 “대승을 이끌지 못해 아쉽다.”며 ‘수비수도 골을 넣는 화끈한 공격축구’가 아직 완성되려면 멀었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았다. 최진한 동북고 감독은 서울의 가장 뚜렷한 변화로 수비-미드필더-공격진 간격이 좁혀진 점과 신인을 과감하게 기용, 주전들과의 경쟁 구도를 형성한 점을 꼽았다. 귀네슈 감독이 활짝 웃은 반면 지략과 식견을 갖췄다는 파리아스 감독은 ‘엷은 미소’, 지하철에서 K-리그를 홍보하는 등 튀는 언행으로 주목받은 에글리 감독은 ‘울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파리아스 감독은 ‘짠물 축구’ 인천을 맞아 대형 스타는 없지만 꽉 짜인 조직력과 화끈한 공격축구라는 팀 컬러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여기에 결승골 주인공 고기구의 기량을 한층 원숙하게 끌어올린 점과 그의 단짝 황진성을 폭넓게 움직여 상대의 얼을 빼놓는 모습 등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그는 “전반전에는 패스 연결과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이 빨라 만족스러웠는데 후반 인천의 공세에 밀린 점이 안타깝다.”고 돌아보았다. 반면 에글리 감독은 이날 약체 제주와의 안방 개막전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지난해 통합 득점 1위 뽀뽀까지 내보내고 새로 구축한 공격라인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제주 전재운에게 결승골을 헌납한 것. 그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8)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8) 일본 만선사가들이 본 병자호란, 누르하치, 그리고 만주 Ⅱ

    만선사관(滿鮮史觀)의 등장은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대륙 침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만선사가였던 이나바 이와기치는 1937년 자신의 회갑을 맞아 쓴 글에서 ‘자신은 학문을 위한 학문을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지나 문제’에 자극을 받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고 만주와 청의 역사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시대적 요구’란 다름 아닌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조선과 중국 침략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만선사가들은 ‘일본이 옛날부터 만주와 맺었던 각별한 인연’을 거론하고, 일본의 대륙 침략은 ‘침략’이 아니라 ‘새로운 동아시아를 건설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강변했다. ●일본과 만주의 인연 강조 이나바 이와기치를 비롯한 만선사가들에게 대부(代父) 역할을 했던 인물은 나이토 고난(內藤湖南)이었다. 아키타(秋田)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오사카 아사히(朝日)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내는 등 주로 언론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1903년 만주를 시찰하고 돌아와 러시아와 일전(一戰)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고,1905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에는 외무성의 촉탁으로 만주에서 행정조사 업무를 담당했다. 이어 외상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의 고문이 되어 대륙 경영의 방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나이토는 교토(京都)제국대학에 사학과가 개설된 1907년부터 동양사 담당교수로 강의하는 한편 정세파악과 사료수집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조선과 중국을 방문했다.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일본의 만주침략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관학자(官學者)이자, 이른바 ‘교토 지나학(支那學)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의 영향 아래서 이나바 이와기치와 같은 만선사가가 나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이토는 1905년, 이나바가 ‘만주발달사(滿洲發達史)’를 출간하자 서문을 써주었다. 그는 그 글에서 “부여는 남만주철도의 종점인 창춘(長春) 서쪽의 눙안(農安) 지역에 있었으며” “고구려가 멸망할 당시 일본과 지나의 세력이 처음으로 조선과 만주 방면에서 접촉했고, 그때부터 일본은 만주에 대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고 썼다. 나이토는 또한 발해가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부여가 남만주철도 종점 부근에 있었던 사실, 고대 일본이 고구려·발해와 접촉했던 사실 등을 일본과 만주 사이의 ‘인연’으로 강조했던 것이다. 만선사가들은 또 다른 ‘인연’도 끄집어냈다. 임진왜란 중인 1592년 12월, 함경도를 점령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을 공격했던 적이 있다.1936년,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는 이 사실에 주목하여 ‘가토의 공격은 흉포한 야인들에게 일본의 무위(武威)를 과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나바 또한 이 사례를 일본이 만주와 맺은 각별한 인연으로 강조한다. ●만주사변과 이나바의 청(淸)찬양 1931년 9월18일, 봉천(奉天-선양)에 있던 일본 관동군은 중국 군벌 장학량(張學良)의 병영을 기습하여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관동군은 순식간에 창춘, 지린 등지를 점령하고 이듬해 2월까지는 진저우(錦州), 치치하얼(齊齊哈爾), 하얼빈 등 만리장성 바깥의 만주 전체를 손에 넣었다. 관동군은 1931년 11월, 톈진(天津)에 머물던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宣統帝)를 비밀리에 뤼순(旅順)으로 옮겼다. 푸이는 1932년 3월1일, 만주국(滿洲國)의 집정(執政)이 되고,1934년에는 황제로 즉위했다. 관동군은 치밀한 각본에 의해 만주를 탈취,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만주국이 건국되자 이나바도 바빠졌다. 만주를 탈취한 데 대한 국제여론이 나빠지자 이나바는 새로운 명분을 만들어냈다.1934년, 이나바는 ‘만주의 역사가 경(經·날줄)과 위(緯·씨줄)가 맺어지면서 전개되어 왔다.’고 전제한 뒤, 역사상 만주에서 ‘경(-주체)’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몽골족과 만주족이지 결코 한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나바는 특히 청을 만주 역사의 주역으로 평가했다. 이나바는 또한 청의 강희대제(康熙大帝)야말로 ‘300년 동양평화’의 기초를 다진 성군(聖君)이라고 찬양했다. 강희제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견제했던 것을 들어 그를 ‘대제’ ‘성군’으로 치켜세웠다. 만주의 안녕, 나아가 동양 평화의 기초는 만주족이 놓은 것이지 한족과는 관계가 없다는 인식이었다. 여러 민족의 ‘경위(經緯)작용’을 통해 발전해 온 만주의 역사에 이제 새로운 주체가 나타났다. 이나바는 그것이 바로 일본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만주국은 만주의 역사에 새롭게 등장한 ‘경’이므로 ‘위’에 불과했던 한족의 지나는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일본은 더욱이 강희대제의 핏줄을 이은 푸이를 황제로 앉혔으므로, 만주국의 등장은 ‘침략’이 아니라 ‘동양평화를 위한 대업의 계승’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나바, 중일전쟁 그리고 한국사 이나바는 만주사변 직후 교토제국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논문은 통과되어 1934년 서울에서 출판되었다.‘광해군시대(光海君時代)의 만선관계(滿鮮關係)’가 바로 그것이다. 400쪽에 이르는 이 책에서 이나바는 조선과 만주의 관계사를 개관하고, 임진왜란 직후 명·청이 대립하던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 애썼던 광해군을 찬양했다. 나아가 서인(西人)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킨 것을 비판했다. 이나바는 왜 광해군을 찬양했을까? 물론 명청교체기(明淸交替期)에 광해군이 보인 외교역량은 볼 만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나바가 당시의 조선을 과연 독자적인 주체로 보았을까 하는 점이다. 광해군이, 이나바가 그토록 좋아했던 청과 청의 시조인 누르하치와 사단을 피하려 했기 때문에 찬양한 것은 아닐까? 이나바의 광해군 평가는 조선사를 만선사관의 틀에서 보려는 시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937년 7월, 일본군은 베이징과 톈진, 상하이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다. 중일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주사변 때와는 달리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은 합작하여 항일(抗日)저항을 선언하고, 전쟁은 중원 전체로 확산되었다. 중일전쟁을 일지사변(日支事變)이라 불렀던 이나바는 다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냈다. 역사상 한족이 아닌 이민족들이 중원에 들어가 새로운 왕조를 세웠던 사실과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일본군이 황하와 양자강 유역까지 전선을 넓히자 이나바는 ‘이민족의 중국 통치는 한족의 발달을 촉진시켰다.’는 언설을 들고 나왔다.1939년에 나온 ‘신동아건설(新東亞建設)과 사관(史觀)’이란 책에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북위(北魏)의 예를 들어 ‘이민족의 중국 통치는 퇴폐한 풍조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썼다. 일본군의 침략을 ‘퇴폐한 중원’을 정화시키는 ‘방부제’로 정당화한 것이다. 이나바의 언설은 계속된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군이 조선에 들어왔고, 그 틈을 타서 누르하치가 만주지배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1934년 관동군은,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폐위된 선통제를 만주국의 황제로 앉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누르하치의 ‘은인’이고, 관동군은 푸이의 ‘은인’이 되는 셈이다. 나아가 누르하치의 후손들이 중원으로 진격하여 ‘강희대제의 위업’을 이룬 것처럼 일본군도 이제 ‘새로운 동아시아(新東亞)’를 건설하기 위해 중원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선사관에 의해 한국사의 자주성은 부인되었다. 한국사는 그저 일제가 집어삼킨 만주 역사의 부속물일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만주는 중국으로 돌아갔고, 다시 세월이 흘러 중국은 강대국으로 재림하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사의 범주를 축소시키려 덤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만선사관과 동북공정이 지닌 패권적 아카데미즘을 넘어서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학자들의 분발과 위정자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9) 필운대 풍월과 꽃구경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9) 필운대 풍월과 꽃구경

    ●‘장안의 명승´에 사람들 모이다 조선시대의 체제와 제도를 명문화한 ‘경국대전(經國大典)’ 한품서용조(限品敍用條)에 의하면 “문무관 2품 이상인 관원의 양첩 자손은 정3품까지의 관직에 허용한다.”고 하였으며 “7품 이하의 관원과 관직이 없는 자의 양첩 자손은 정5품까지의 관직에 한정한다.”고 규정했다. 양첩 자손은 그나마 한정된 벼슬에라도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천첩 자손은 벼슬할 기회가 없었다. 뛰어난 서얼 지식인들이 늘어나자, 정조는 서얼금고법에 해당되지 않도록 검서관(檢書官)이라는 잡직(雜織) 관원을 뽑았다. 규장각을 설치한 뒤에, 서적을 검토하고 필사하는 임무를 맡긴 것이다. 정무직이 아니어서 기득권층의 반대도 없었고,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서얼 학자들의 불만을 달래주는 효과도 있었다. 1779년에 임명된 초대 검서관은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 네사람이었다. 당대에 가장 명망있는 서얼 출신의 이 네학자를 4검서라고 불렀다. 유득공은 조선의 문물과 민속을 기록한 ‘경도잡지(京都雜志)’ 2권1책을 지었으며, 대를 이어 검서로 활동했던 그의 아들 유본예가 부자편이라고 할 수 있는 2권2책의 ‘한경지략(漢京識略)’을 지었다. 바로 서울의 문화와 역사, 지리를 설명한 책이다. 이들 부자는 필운대 꽃구경을 서울의 명승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유득공은 ‘경도잡지’ 유상(遊賞)조에서 “필운대의 살구꽃, 북둔(北屯)의 복사꽃, 동대문 밖의 버들,(무악산) 천연정의 연꽃, 삼청동과 탕춘대의 수석(水石)을 찾아 시인 묵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기록하였다. 대부분이 인왕산 일대이다. 유본예는 ‘한경지략(漢京識略)’ 명승조에서 이렇게 소개하였다. “필운대 옆에 꽃나무를 많이 심어서, 성안 사람들이 봄날 꽃구경하는 곳으로는 먼저 여기를 꼽는다. 시중 사람들이 술병을 차고 와서 시를 짓느라고 날마다 모여든다. 흔히 여기서 짓는 시를 ‘필운대 풍월’이라고 한다.” 유득공이 어느 봄날 필운대에 올라 살구꽃 구경을 하다 시를 지었다. 살구꽃이 피어 한껏 바빠졌으니 육각봉 어구에서 또 한차례 술잔을 잡네. 날이 맑아 아지랑이 산등성이에 아른대고 새벽바람 불자 버들꽃이 궁궐 담에 자욱하구나. 새해 들어 시 짓는 일을 필운대에서 시작하니 이곳의 번화함이 장안에서 으뜸이라. 아스라한 봄날 도성 사람바다 속에서 희끗한 흰머리로 반악을 흉내내네. 유득공은 역시 검서였던 친구 박제가와 늦은 봄이면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을 했는데, 흐드러지게 핀 살구꽃이 일품이었다. 육각현에서 술 한잔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인은 그렇게 새해를 시작하고, 또 한해를 보내며 늙어간다. ●정조도 필운풍류에 취하다 한세대 앞선 시인 신광수는 도화동에서 복사꽃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필운대에 올라 살구꽃을 구경했다. “필운대 꽃구경이 장안의 으뜸이라.(雲臺花事壓城中)” 하고는,“삼십년 전 봄 구경하던 곳을/다시 찾은 오늘은 백발 노인일세.(三十年前春望處,再來今是白頭翁)”라고 끝을 맺었다. 반악은 진(晉)나라 때의 미남 시인인데, 그도 나이가 들자 흰머리가 생겼다. 자신은 서얼 출신이라 벼슬 한번 못하고 늙었지만, 반악 같이 잘 생기고 재주가 뛰어난 시인도 나이 들자 흰머리가 생기지 않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한 것이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번역하거나 편집하여 간행한 고전들은 모두 검색이 가능하다. 한글로 번역한 책에서 ‘필운대’ 제목을 찾으면 연암 박지원이 지은 시 2편과 이덕무가 지은 시 1편만 나온다. 제목은 아니지만 필운대를 노래한 시는 다산 정약용과 정조대왕의 작품이 더 있다. 모두 유득공 부자가 필운대 꽃구경을 장안의 명승으로 소개한 정조-순조 시대 인물들이다. 이 당시에 필운대 꽃구경이 서울 장안에서 가장 이름난 유흥지였음이 확인된다. 정조가 필운대 꽃구경 시를 지었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백단령 차려 입은 사람은 모두 시 짓는 친구들이고 푸른 깃발 비스듬히 걸린 집은 바로 술집일세. 혼자 주렴 내리고 글 읽는 이는 누구 아들인가 동궁에서 내일 아침에 또 조서를 내려야겠네. ‘필운화류(弼雲花柳)’라는 제목의 시 앞부분은 다른 시들과 같이 필운대의 번화한 꽃구경 인파를 노래했다. 뒷부분에선 그 가운데 시인과 독서인을 찾아내고, 장안 사람들이 모두 꽃구경하는 속에서 글 읽는 젊은이에게 벼슬을 주어야겠다는 왕자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이 시를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왕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번역하지 않아 원문 검색만 가능한 문집 가운데는 위항시인들이 지은 시도 많다. 게다가 문집을 간행하지 못한 위항인들의 시까지 합쳐 60년마다 편집한 ‘소대풍요(昭代風謠)’나 ‘풍요속선(風謠續選)’ ‘풍요삼선(風謠三選)’에는 엄청난 양의 필운대 시가 실려 있다. 젊은 시절부터 늙을 때까지 해마다 수천명이 필운대에 올라 꽃구경하며 시를 짓기에 분량은 많아졌지만, 해마다 같은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운대풍월’이란 말 속에는 천박한 풍월, 판박이 시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영의정 채제공의 화원 구경기 이 시대에 필운대풍월뿐만 아니라, 꽃구경을 하고 산문으로 기록하는 유행도 있었다. 영의정까지 지낸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도성 안팎의 화원에 노닐며 지은 글이 여러편 있다. 필운대 부근의 조씨 화원을 감상하고 ‘조원기(曹園記)’를 지었다. 주인 조씨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심경호 교수는 “조하망(曹夏望)의 후손이었던 듯하다.”고 추측하였다. 계묘년(1783) 3월10일, 목유선과 필운대에서 꽃구경하기로 약속하였다. 저녁밥을 다 먹고 나서 가마를 타고 갔더니 목유선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필운대 앞 바위에 자리를 깔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얼마 있다가 목유선이 이정운과 심규를 이끌고, 종자에게 술병을 들게 하여 사직단 뒤쪽으로 솔숲을 뚫고 왔다. 처음에는 필운대 꽃구경을 하기로 약속하고 모였다. 그러나 인파가 몰려 산속이 마치 큰 길거리 같이 번잡해지자, 채제공은 곧 싫증이 났다. 동쪽을 내려다보자 서너곳 활터에 소나무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동산 안의 꽃나무 가지끝이 은은히 담장 밖으로 나와 있어서 호기심이 일어났다. 목유선에게 “저기는 반드시 무언가 있을 거야. 가보지 않겠나?”고 물었다. 작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널빤지 문이 열려 있었다. 점잖은 손님들이 꽃구경을 하겠다고 들어서자 주인이 집 뒷동산으로 인도하였다. 화원에는 돌층계가 여덟개쯤 깔려 있었는데, 붉은 꽃·자주 꽃·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유항주·윤상동 같은 관원들도 꽃구경하러 왔다가 채제공이 조씨네 화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따라와서 술잔을 돌리고 꽃을 평품하며 시를 지어 즐기느라고 달이 동쪽에 뜬 것도 몰랐다. 이듬해 윤3월13일에도 채제공은 친지들과 함께 가마를 타고 육각현 아래 조씨네 화원에 찾아가 꽃구경을 했다. 석은당에 앉아 거문고를 무릎 위에 눕히고 채발을 뽑아 서너 줄을 튕겨 보았다. 곡조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윽한 소리가 나서 정신이 상쾌해졌다. 얼마 뒤에 조카 채홍리가 퉁소 부는 악사를 데리고 와서 한두곡을 부르게 하자, 술맛이 절로 났다. 채제공은 소나무에 기대어 앉아, 퉁소 소리에 맞춰 노래하였다. “아양 떠는 자는 사랑받고, 정직한 자는 미움을 사는구나. 수레와 말이 달리는 것은 꽃 때문이지. 소나무야 소나무야. 누가 너를 돌아보랴?” 모두들 맘껏 흥겹게 놀다가 흩어졌다. 채제공은 북저동 명승에 노닐고 ‘유북저동기(遊北渚洞記)’를 지었다. “도성의 인사들이 달관(達官·높은 벼슬아치)에서 위항인에 이르기까지 노닐며 꽃구경을 했다.(줄임)국가의 백년 승평(昇平)의 기상이 모두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위항인들의 경제력이 사대부 같이 되자, 유흥문화도 함께 즐겼다는 뜻이다.(화원 이야기는 심경호 교수가 쓴 논문 ‘화원에서 얻은 단상-조선후기의 화원기’를 많이 참조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7)강원도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7)강원도

    ‘부족한 재원, 갈수록 줄어드는 학교와 학생수….’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강원도 체육이지만 강원도교육청 체육담당 장학사들과 일선 체육교사, 지도자들의 열의는 다른 지역을 앞선다. 지금까지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도내 학교는 몇몇 중소도시를 제외하고는 벽오지에 산재해 있어 체계적인 체육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또 적은 인구만큼이나 선수층도 얇고 체육분야에 지원되는 재정은 타 도시의 2분의1에도 못미치고 있다. 하지만 우수선수 조기 발굴을 위해 해마다 12월에 소년체전 평가전을 거쳐 선수를 선발한 뒤 이듬해 4월초까지 동계훈련을 시켜 기초유망주들을 길러내면서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선발된 선수들에게는 월 50만원씩 연간 10억원의 훈련비가 지원되고 있다.5년 전부터 실시한 이같은 평가전으로 강원체육이 중상위권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올리고 있다. 특히 수영·육상·체조 등 기초종목을 바탕으로 사격·역도·레슬링·복싱 등 전략종목을 육성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수영에서 거두는 성적은 대단하다. 소년체전에서 해마다 3개의 금메달을 따내는 괄목할만한 성적을 냈다. 국가대표인 자유형의 정애현(남춘천여중3), 배영의 주니어 상비군인 서희(홍천여중3)선수 등이 든든한 기둥으로 꼽힌다. 이들은 군단위에 하나뿐이고 그나마 정식 풀장의 절반인 25m 레인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섞여 훈련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적을 내고 있다. 홍천초교·홍천여중 수영부는 학부모들과 지도자들이 수영교실을 운영하면서 만든 이익금으로 선수를 육성하고 있다. 특히 시설이 전무한 다이빙에서도 메달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청 소속으로 국가대표선수인 권경민(26)·조관훈(24)의 싱크로다이빙은 지난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냈고 소년체전 금메달 리스트인 윤승은(봉의초교6)도 꿈나무다. 매트 위의 다이빙 훈련이 기적을 일구고 있는 것이다. 강원체고의 수구팀도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값진 우승을 얻었다. 강원도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기본종목으로 채택해 육성하기 시작한 육상종목도 활성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소년체전 등 전국단위 대회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높이뛰기, 경보, 투포환, 중장거리 성적은 기대 이상이다. 지난해 소년체전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딴 김태학(동해 광희중2), 경보에서 금메달을 딴 원샛별(원주 상지여중3), 투포환 전국기록보유자 신보미(강원체육중2·여) 등이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까지 성적이 좋았던 800,1500,3000m 중장거리 종목의 경우 올 들어 기록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 흠이다. 체조는 예년에는 국가대표선수까지 배출했지만 학교규모가 작아지면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같은 기초종목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강원도는 역도·태권도·사격·레슬링 등 비인기종목을 전략종목으로 육성하고 있다. 사격은 강릉 사천중학교 여자부 권총사격팀이 4,5년 전부터 전국을 재패해오고 있다. 지도자의 열정과 과학적인 훈련방식이 먹혀든 결과이다. 사천중학교 사격부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워낙 좋아 모두 국가대표 후보로 올라 있다.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권총)인 진종오 선수도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세계적인 선수인 장미란을 배출한 역도종목도 원주·홍천을 중심으로 걸출한 선수들을 많이 길러내고 있다. 장 선수 외에 사재혁(홍천)선수가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레슬링은 함상진(강원중2) 선수 등이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강원도교육청 노경섭 장학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이 체육분야 전문 지도자들이 불모지 강원도체육을 이끌고 있다.”면서 “행정당국의 꿈나무 체육에 대한 좀더 많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강릉 사천중학교 사격부 “장비도 시설도 열악하지만 사격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전교생이 50명에 불과한 시골 중학교 여학생들이 전국 권총부문 사격대회를 휩쓸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중학교 사격부원 8명이 주인공. 사천중학교는 지난 2003년 전국대회에서 2차례 우승하면서 혜성같이 나타나 소년체전 등 해마다 6∼7회의 전국대회를 휩쓸고 있다. 사실상 권총부문 전국대회를 평정한 셈이다. 사천중 여자 사격팀이 이처럼 전국대회를 석권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이 학교에 부임한 오병옥(44) 교사의 남다른 열정과 과학적인 지도방법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사격을 해왔던 오 교사는 우선 들쭉날쭉한 실탄의 무게를 갖고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 한발 한발의 무게를 달아 연습을 하게 했다. 실탄 한개의 무게가 5.1∼5.5g으로 보통 0.1∼0.2g의 미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1000분의1까지 잴 수 있는 저울을 이용해 똑같은 실탄만을 사용하게 했다. 권총 한발을 쐈을 때 배출되는 공기의 양을 일정하게 하게 했다. 실탄의 속도를 내게 하는 탄속도 항상 일정하게 할 것을 주문한다. 오 교사는 열악한 훈련비도 아낄 겸 이같은 과학적인 훈련을 위해 권총 수리까지 직접 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을 무조건 몰아치며 훈련시키는 방법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동원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훈련을 거친 윤보배(강원체고1·여), 최승희(사천중3·여), 김선아(사천중3·여), 최대한(사천중1)이 국가대표 후보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 최연소 국대대표선수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 최대한 선수는 청일점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대부분이 시골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모범이 되고 있다. 오 교사는 선수들을 아예 자신의 집에서 합숙시키고 손수 밥까지 해 먹이고 있다. 시골학교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이겨보려는 궁여지책이다. 훈련도 수업시간은 피하고 이른 아침이나 방과후에 실시하면서 학과공부도 충실히 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봉사활동과 노래수화발표대회도 갖는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시간도 가지고 있다. 오 교사는 “이번 봄학기부터 정선으로 발령을 받아 사천중을 떠나야 한다.”면서 “그래도 주말마다 선수들을 관리하면서 맥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매트서 다이빙 연습해도 팀워크로 ‘수영 강원’ 빛내” “선수층은 얇지만 수영종목만큼은 전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수영 강원’의 명성을 전국체전과 소년체전을 통해 떨치고 있는 중심에는 강원도수영연맹 이택원(42) 전무가 있다. 이 전무는 2004년,2005년 전국체전에서 금 14∼15개를 따내며 준우승을 이끌고 지난해에는 3위를 기록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소년체전에서도 2005년 금메달 3개를 비롯한 11개의 메달을 따낸 것을 비롯해 지난해에도 금 3개 등 18개의 메달을 따는 데 산파역할을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처럼 강원도 수영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우선 지도자들의 열의를 꼽을 수 있다. 강원도가 고향인 수영 지도자들이 박봉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향토사랑 하나만으로 지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무는 “다른 광역도시보다 재정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다이빙종목은 시설이 아예 없어 매트 위에서 연습하다 경기를 앞두고 겨우 서울 등으로 전지훈련을 가고 있지만 팀워크 하나만큼은 으뜸”이라고 말했다. 수영장 시설도 춘천 단 한 곳에만 50m 레인이 있는 등 열악하지만 강원도교육청이 그나마 수영종목 등 전략종목 지원에 앞장서고 있어 많은 힘이 되고 있다고 귀띔한다. 강원도 대표선수들은 해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도 교육감기 수영대회’를 거쳐 1차로 24∼25명을 선발, 한겨울 동안 집중훈련을 하는 것도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이다. 이 전무는 “11월쯤 동계훈련에 돌입해 이듬해 5월 소년체전 때까지 유일하게 50m 레인이 있는 춘천 국민체육센터 수영장에서 함께 기량을 키우며 경쟁하는 것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대부업 금리 50%대로 내릴 것”

    다음달부터 대부업계 대출금리가 50%대로 내려갈 전망이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 양석승(59) 회장은 지난 23일 기자와 만나 “3월중 현재 60%대 금리를 50%대로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이자제한법 논란에 대해 방어적 자세를 취한 셈이다. 금리상한선을 기존 66%에서 40% 또는 25%로 내릴 것이냐와 등록 대부업체를 규제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가 이자제한법을 둘러싼 논란이다. 양 회장은 대부업체중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아프로에프씨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말 현재 대출잔액 6089억 업계1위 양 회장은 “아프로의 업계 영향력 등을 고려할 때 대형사는 따라올 것이고 중소형사는 수익구조상 현 60%대를 유지할 것이다.”고 했다. 신용대출만 하는 아프로는 국내에 등록된 대부업계 중 러시앤캐시, 프로그레스, 파트너크레디트 등 8개 회사로 구성돼 있으며 2005년말 현재 대출잔액 6089억원으로 업계 1위이다.2위는 산와머니로 2464억원이다. 지난해 말 대부업계 신용대출 이용자 49만명에 대출잔액 1조 3000억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시장점유율이 절반에 가깝다. 그러나 시장을 담보대출, 어음할인시장 등 40조원으로 추정되는 사(私)금융 전체로 넓히면 1.5% 수준이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에 따르면 신용대출 이용자들은 평균 180만원 정도를 6개월간 빌린다. 아프로의 경우는 254만원을 2년 정도 빌린다. 대부업에서 신용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신용등급 5∼8등급이다. 대출을 신청해도 받을 수 있는 비중은 35%에 불과하며 빚을 갚지 않는 비율은 7%다. 금리를 내린다 해도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높다. 양 회장은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금리 인하가 가능한 시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 영업하는 대부업체들이 저금리가 가능한 것은 협조융자단, 주식시장 상장 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대부업 금리는 30% 미만이며 지난해 말 유예기간 3년을 거쳐 20%로 내리는 법안도 통과됐다. 협조융자단은 1984년 일본장기신용은행, 스미모토신탁은행, 일본생명 등이 만든 단체로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 준다. 양 회장은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이 대부업체와 거래할 경우 신용·평판 위험을 다각적으로 분석·평가하고 대출을 매분기 보고토록 하는 등 사실상 대출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은 대부업체 중 상장사가 11개이지만 국내는 리드코프가 유일하다. ●“일부 상호저축은행 50%대 금리 더 큰 문제” 그는 “금리는 자금의 긴박성, 소액에 신용대출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더 큰 문제는 대부업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조달하면서도 신용대출에 대해 50%대 금리를 매기는 일부 상호저축은행이라고 반박했다. 아프로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국신용평가나 한국신용정보의 개인신용정보를 참고하며 대출자가 자신의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시할 수 있으면 5분 이내 대출도 된다. 직장인이라면 매월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내역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피자배달보다 빠른 대출’이라는 광고문구가 나왔다. 일본식 광고기법이다. 광고가 너무 공격적이고 많이 방송된다는 지적에 대해 “돈이 진짜 급한 사람은 어디서 돈을 빌려야 할지 헤매다 생활정보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광고를 봤다면 생활정보지의 불법 사채업자를 찾지는 않을 것”이라며 순기능을 강조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달간 대부업체 광고는 1만 7694회로 전년도 같은 기간 7069회에 비해 2.5배가 늘어났다.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리드코프 등의 공격적 방송 탓이다. ●토종·외국계협회 통합후 윤리교육 강화 대부협회는 지난 1년간 쪼개져 있었다. 토종계와 아프로를 중심으로 한 외국계가 각각 회장과 사무실을 가지고 운영돼 왔다. 지난달 말 두 협회가 통합에 합의했고 28일 열리는 총회에서 통합 회장에 양 회장이 선출될 예정이다. 양 회장은 협회가 합쳐지면 회원사들에 대한 윤리교육 등을 강화할 계획이다. 양 회장은 옛 재무부에서 7년간 공무원(비고시 출신) 생활을 하다 19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재일교포 자금과 인연을 맺었다. 신한은행 상무와 신한생명 상무를 거쳐 2004년부터 아프로그룹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돈이 다급하게 필요한 저신용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일이라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대부업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불법 사채업자에게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말했다. 글 전경하 정연호기자 lark3@seoul.co.kr
  • [국악인] 거문고 악성 옥보고 맥 이으려는 김무길 명인

    [국악인] 거문고 악성 옥보고 맥 이으려는 김무길 명인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민속악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어야 잘 할 수 있다. 세습적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야 피에 음악이 흐르고 몸에 음악이 녹아 있어 조금만 배우면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전설적인 명인 명창들 대부분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다. 송흥록 명창이나 박종기 명인이 모두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간혹 음악가 집안 출신 아닌 사람이 음악가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비가비’ 또는 ‘비개비’라 하여 좀 낮추어 보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비가비’란 비갑(非甲)에서 온 말인데 ‘갑이 아니다’ 즉 ‘동류가 아니다’는 뜻이고 그 반대말인 동류를 가리킬 때에는 ‘관동’이라 한다. ‘관동’이란 양반들이 쓰는 ‘동관(同官)’이란 말을 뒤집어 그렇게 쓰는 것이다. 김무길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고 부인인 박양덕 역시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부부가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 남편은 거문고의 명인이고 부인은 판소리 명창인데 자녀들도 모두 국악을 전공하여 식구가 모두 음악을 하며 살고 있다. 김무길은 지금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고 박양덕은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판소리의 예능보유자로 남원시립국악단 지도위원을 하고 있다. 부부가 지리산 자락의 폐교를 인수하여 ‘운상원 소리터’를 만들었는데 ‘운상원(雲上院)’은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공부했다는 그 운상원이다. 우리네 공부하는 방법이 산에 들어가 혼자 연습하며 공력을 쌓는 것인데 그런 독공(獨工)을 통해 깨닫고 또 깨닫고 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에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공부했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있는 옥보고의 기록을 보면 남원은 거문고의 성지(聖地)이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공부한 지 50년에 새로 30곡을 지었고 그것을 속명득(續命得)에 전했는데 속명득은 그것을 귀금(貴金) 선생에게 전했다. 귀금 선생은 다시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에게 전했는데 이때 신라왕은 혹시 금도(琴道)가 끊어질까봐 그 음악을 잘 전승하도록 하라고 남원공사에게 부탁하기까지 했다. 극장(克上)과 극종(克宗) 이후에 신라에서는 거문고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니까 고구려에서 발달한 거문고 음악이 남원 땅인 지리산 운상원에서 재창조되어 신라의 음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김무길과 박양덕이 가꾸고 있는 ‘운상원 소리터’는 역사적 사건과 맥이 닿는 대단한 곳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 한국 최고의 거문고 명인이 서울을 마다하고 이곳을 택하여 소리 터로 가꾸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옛날 옥보고가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김무길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무길은 1962년 서울국악예술학교를 졸업했다. 그 당시의 국악예술학교는 고등학생 또래가 다니는 학교이긴 했지만 그야말로 국악을 모두 배우는 예술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배운 국악 실력으로 국악단체나 연주자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었다. 김무길도 국악예술학교를 졸업한 다음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거문고 산조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한갑득 명인에게 배웠다. 당시의 수업방식은 완전히 옛날식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법이어서 악보도 없이 매일매일 배운 것을 구음으로 외우고 충분히 익힌 다음 그 다음을 배우는 식으로 배웠다. 김무길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매일 구음을 외웠다. 지금도 학생들을 지도할 때 구음을 척척 해가면서 지도하는 것은 다 그때 그렇게 무한히 외고 열심히 거문고로 탔기 때문이다. 한창 열심히 배우던 시절 한갑득 선생에게 “저는 선생님과 똑같이 탄다고 타는데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선생님과 같이 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선생께서는 “이 놈아 수만 독(數 萬讀; 수만 번) 하면 돼”라고 했다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한다. 김무길은 한갑득을 철저히 사사했다. 거문고도 배우고 음악에 대한 태도나 생각도 배우고 술도 배웠다. 특히 거문고산조를 타면서 그 음악이 그려내고 있는 자연의 경치나 타는 사람의 심성에 따라서 음악이 변하는 것에 대한 한갑득의 설명은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거문고 소리가 온 우주의 것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한갑득과 쌍벽을 이루던 신쾌동 선생까지 사사했다. 최고의 거문고 명인 두 분 밑에서 철저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김무길은 한국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이자 최고의 사범이 될 수 있었다. 김무길은 지리산 운상원 소리 터에 있지만 전국에서 많은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 배운다. 국공립단체에서 활동하는 전문 연주가들 다수가 그의 문하에서 거문고 산조를 배우고 있다. 한갑득류나 신쾌동류의 긴 산조는 김무길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어 그런 큰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김무길과 박양덕이 서울에 있으면 훨씬 많이 활동하고 돈도 잘 벌 텐데… 왜 그런 산골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 내외의 생각은 다르다. 꿈이 있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좇는 꿈이 아니다. 정말 순수한 인간 순수한 음악가로서의 꿈이다. 무엇보다 어려서 가졌던 꿈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건물과 시설도 토요일과 일요일에 몰려오는 제자들과 두 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클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시설에 공연장 하나를 더 지어 정말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본인들의 음악도 더욱 공력을 쌓고 싶고 다음 세대를 위한 더 좋은 작품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옥보고가 운상원에서 득음하고 새 음악을 많이 만들었던 것처럼 김무길도 운상원 소리 터에서 거문고 음악의 새 장을 열고 싶은 것이다.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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