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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 피랍 한달] “석방된 줄 알았는데…” 비보 듣고 눈물만…

    아프간에서 피랍됐던 김경자(37)·김지나(32)씨가 30일 만에 귀국한 17일 인천국제공항으로 마중나간 가족들은 두 사람의 ‘퉁퉁’ 부은 얼굴에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경기 성남시 분당타운 피랍가족모임 사무실에서 석방 모습을 지켜본 피랍자 가족들은 “남의 일 같지 않고 부러울 따름”이라며 기대와 반가움을 표시했다.●귀국길에 배목사·심성민씨 피살 소식 알아 김경자씨 오빠 김경식(38)씨와 김지나씨 오빠 김지웅(35)씨, 피랍자 가족모임 대표 차성민(30)씨 등 3명은 낮 12시20분쯤 비행기 안에 들어가 이들을 맞았다. 이들 3명은 다른 승객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일반석에서 기다리다가 12시45분쯤 1등석에서 여동생을 만나 꼭 끌어 안은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오빠들은 “(밖에 나가면)차분히 인터뷰에 응하고, 너무 겁먹지 말라.”고 동생들을 격려했다. 이들의 만남을 지켜본 차 대표는 “30여일간 같이 지내다 보니 모두 가족 같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눈물이 났다. 생각보다는 건강해 보였다.”고 전했다. 보딩브리지(탑승교) 앞에서 두 사람은 남은 인질들에 대한 죄책감과 일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시선을 밑으로 내린 채 “죄송하다. 고맙다.”며 소감을 간단히 밝힌 뒤 자리를 떠났다. 공항에는 내·외신 기자들과 외교부 당국자 등 100여명의 인파가 몰려 이들의 귀국을 지켜봤다. 인도 뉴델리를 경유해 입국한 두 사람의 얼굴은 부어 있었다. 귀국 길에 오르기 직전에야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된 사실을 알고는 ‘미친듯이’ 울었기 때문이다. 또 혼자만 살아남아 돌아왔다는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두 사람은 기내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뒤척이기만 했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들이 배 목사와 심씨가 탈레반에 의해 살해됐다는 사실을 피랍 당시는 물론 석방된 뒤에도 한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서 “심씨와 같은 그룹으로 분류돼 억류 생활을 함께했던 이들은 심씨가 지난달 30일 탈레반 대원들에게 불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석방된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전했다.●정부 “석방 양보설은 다소 과장” 정부 관계자는 최근 일부 언론이 탈레반 사령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석방 양보설’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지나씨가 풀려날 당시 다른 피랍자의 양보로 석방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부 관계자는 “피랍된 이후 워낙 이동이 잦았던 탓에 두 사람은 당시에도 탈레반이 자신들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줄로 믿고 있었으며 따라서 석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귀국길은 언론과 일반인 접촉을 최대한 막기 위한 정부측의 깜짝 쇼가 잇따랐다. 정부 측은 언론의 취재망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당초 알려졌던 입국 유력 경유지를 변경해 16일 오후 두 김씨를 인도 뉴델리 인디라간디 공항으로 이동시켰다. 또 일반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탑승구 바로 옆의 귀빈실을 통째로 빌려 이들을 ‘대피’시켰으며, 좌석을 비행기 맨 앞쪽으로 정하고 가장 나중에 탑승하는 방법은 물론 두 김씨를 창측 좌석에 앉히고 정부 관계자가 복도쪽에 앉는 방식으로 일반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다.분당타운 피랍가족모임 사무실에서 귀국 장면을 지켜보던 10여명의 피랍자 가족들은 귀국 순간을 지켜봤다. 이날이 이슬람국가의 휴일이어서 많이 나오지 않았으며, 일부 가족들은 TV를 통해 석방자들의 귀국 장면이 방영되자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줄곧 훔쳐냈다.한 가족은 “카메라 플래시가 아무리 터져도 좋고,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쳐도 좋으니 제발 어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성남 국군수도병원 입원 정밀검진김경자·김지나씨는 오후 2시15분쯤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도착, 입원했다. 이들은 병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잠시 안정을 취한 뒤 정밀검진을 받았다. 건강에 큰 이상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간 억류 생활로 면역력이나 정신력이 매우 약화돼 있어 정밀검진이 실시됐다. 정부는 인질로 억류된 19명의 신변 안전을 위해 두 사람을 특별관리하게 되며 취재진과 외부인들의 병원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면회는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이들은 이 병원 7층의 대령급 장교가 사용하는 병실 1개를 배정받아 건강 진단과 함께 안정을 취했다. 한편, 이날 저녁 면회를 끝내고 가족 모임을 방문한 김경자씨의 부모는 가족들에게 “짧은 시간 면회해서 자세한 얘기는 물어보지 못했고, 달래주다 왔다.”면서 “다른 사람들의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임일영 류지영 박건형기자·연합뉴스argus@seoul.co.kr
  • [Metro&Local] 경산 코발트광산 유해발굴 시작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수천명이 집단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 코발트광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유골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진실화해위)와 경산 폐 코발트광산 유족, 시민단체 회원 등 350여명은 8일 오후 폐 코발트 광산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유골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발굴작업은 당시 학살을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5곳 가운데 3곳(수직굴 1곳, 수평굴 2곳)에서 실시된다. 경산 폐 코발트 광산은 1950년 6월 말부터 같은해 9월 초까지 대구·경북지역 국민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등 3500여명이 국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곳으로 추정된다.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숟가락아 말해다오”

    “숟가락아 말해다오”

    국방부가 강원도 양구군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전사자 유해의 유가족을 찾고 있다. 유일한 단서는 유해와 함께 발견된 군용 숟가락. 표면에 날카로운 물체로 ‘Lee Tae Yoon(이태윤)’이란 영문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5일 양구군 방산면 DMZ 내 보급로에서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1구를 발굴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유해가 발견된 지역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9월 국군 7·8사단과 북한군 6·12사단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 현장에서는 유해와 함께 M1 소총탄과 영문 이름이 새겨진 미제 군용 숟가락,7사단 마크가 새겨진 원형 동판이 함께 출토됐다. 병적 조회 결과 ‘이태윤’이란 이름의 전사자는 8사단과 7사단에 각각 1명씩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감식단은 유품으로 미뤄 유해가 7사단 소속 전사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유가족 관련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 감식단은 ‘이태윤’이란 전사자의 지인들로부터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02-748-4999). 한국전 당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중동부 전선 비무장지대 일대에는 1만 3000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 발굴을 위해선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사령부와 북한의 협조가 필요해 본격적인 발굴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생사 함께했던 형제

    6·25전쟁 직후 동반 징집된 뒤 같은 날 한 장소에서 전사한 형제의 사연이 뒤늦게 공개돼 전쟁의 비극성을 일깨우고 있다.1951년 4월 전남지역 빨치산 토벌작전에 참가했다 숨진 유석오·석환 형제의 이야기다. 24일 국립현충원에 따르면 유씨 형제는 1950년 12월31일 입대해 국군 8사단 10연대에 함께 배치받았다. 유족들은 입대연령이 안 된 동생 석환(당시 17세)씨가 함께 징집된 형 석오(당시 19세)씨를 의지하며 줄곧 따라다닌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2005년 개봉돼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장동건 분)·진석(원빈 분) 형제의 사연을 떠올리게 한다. 형제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춘계 공세 때 강원도 횡성지구 전투에 참전한 뒤 같은 해 4월6일 전남 화순군의 빨치산 토벌작전에 투입됐다가 화순읍 이십곡리에서 전사했다. 육군 전사(戰史)에는 유씨 형제가 배속됐던 8사단 3대대 10중대가 화순지역 화학산, 밀봉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을 토벌하려고 1951년 4월5일 이십곡리 일대로 파견됐다가 이튿날 빨치산의 기습을 받고 26명이 숨진 것으로 나와 있다. 형제의 유해는 육군이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1년 5월21일 실시한 유해발굴 작업에서 함께 발견됐다. 육군은 유해에서 유전자(DNA)를 채취해 전사자 유가족의 DNA와 일일이 대조한 결과 신원을 최종 확인,2002년 4월26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형제는 죽어서도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나란히 묻혔다.이세영기자·연합뉴스 sylee@seoul.co.kr
  • 자이툰부대 첫 사망자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 중인 한국군 자이툰부대에서 첫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아르빌 현지시간으로 19일 오후 1시45분(한국시간 오후 6시45분)쯤 자이툰부대 영내 의무대 이발소에서 의무행정장교 오모(26) 중위가 총상을 입고 숨져 있는 것을 행정병 양모(22) 상병이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발견 당시 오 중위는 턱 부위에 총상을 입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옆에는 평소 사용하던 K-2 소총과 탄피 1개가 떨어져 있었다고 합참은 전했다. 합참은 현장에 외부 침입이나 다툼의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오 중위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시신이 발견된 곳이 밀폐된 컨테이너 건물 내부인 데다 주변에 전력공급용 발전기 2대가 가동 중이어서 총성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면서 “유서로 보이는 메모나 쪽지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과 총기감식 전문가 등 3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20일 밤 11시 55분 국내 민간항공기편으로 현지에 보냈다. 이들이 탑승한 항공편에는 합참 유해인수팀 2명과 유족대표 3명도 동행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고 윤장호 하사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

    고 윤장호 하사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

    ‘부디, 편안하게 잠드소서….’ 5일 이른 아침부터 흩날리던 진눈깨비가 영결식이 시작될 무렵인 오전 8시 쯤부터 거센 바람과 눈보라로 변했다. 장례식장에는 스물일곱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낮은 곡(哭)소리만이 울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숨을 거둔 고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 및 안장식이 이날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졌다.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은 부모인 윤희철·이창희씨 부부 등 유가족, 정·관계 관계자 및 군 장병 등 600여명이 참석해 조사, 종교의식, 헌화, 조총 및 묵념, 폐식사의 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엄숙함마저 감돌던 영결식은 특전사 동기인 엄선호(22) 병장의 조사가 낭독되자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엄 병장이 “6개월 뒤 복귀 환영회식은 이 엄선호가 쏘겠다던 약속을 기억하냐.”고 말한 대목에서 동료 장병들은 어깨를 들썩거렸다.“장호야!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넌 멋진 동기였고 훌륭한 아들이었으며 자랑스러운 군인이었다는 것을…”이라는 말로 전우들은 고인을 마음 속에 묻었다. 고인이 입대전 근무했던 HB어드바이저스 직원들은 ‘장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은 하늘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세요. 전 잘 있어요.’라고 위로하는 걸 알지만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놀랄 정도로 침착하던 유족들은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가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옛 성남화장장)로 옮겨지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유해가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못내 아들을 떠나 보낼 수 없다는 듯 관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버지 희철씨도 “장호야,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을 잇지 못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아들 같은 장병들이 몸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생사업소에 도착한 유해는 운구차에서 곧바로 2층에 있는 화장로로 향했다. 화장로 앞 관망실에서 유족과 군 관계자 등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윤 하사의 부모는 차마 화장로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지 자리를 피했다. 분골작업이 끝난 유해가 국방부 헌병대의 호위 속에 영생사업소를 떠나자 거짓말처럼 하늘에 흩날리던 눈발도 그쳤다. 고인은 오후 3시 대전 국립현충원 전사자 묘역의 차가운 땅 속으로 돌아갔다. 지난 2일(현지시간) 고인이 유학시절 다녔던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한인감리교회에서도 지인과 교민, 현지 언론관계자 등 100여명이 모여 추모예배를 열었다. 고인의 절친한 친구인 김준엽씨는 “장호를 생각하면 웃고 싶다. 하지만 (장호를 앗아간) 이 세상에서는 웃을 수가 없다.”며 슬퍼했다. 한편 이날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에서는 시민 300여명이 ‘고 윤장호하사 추모와 아프간-이라크파병 한국군 즉각 철수’ 촛불문화제를 열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대전 이천열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다신 이런 희생 없게…” 끝없는 애도 물결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27) 하사의 빈소에는 궂은 날씨 속에도 주말 내내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성남 국군수도병원 분향소에는 4일 오전 일찍부터 고인의 희생을 애도하는 조문객들이 늘어섰다. 분당에 사는 최윤환(11·탄천초 4)군은 아버지와 함께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시민 고성혁(40)씨도 “장하고 대단한 아들을 조국으로 보내주셨다.”면서 유족들을 위로했다. 3일에는 윤 하사와 초등학교 때부터 ‘삼총사’ 친구였던 백현준·이호승(이상 27)씨가 찾아와 어머니 이창희(59)씨와 슬픔을 나눴다. 친구 이씨는 “지난해 파병 전에 휴가나왔을 때 앞으로 볼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 잠깐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미국에서 2일 밤 도착한 백씨도 “파병 전날 통화할 때 너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는데 ‘미군과 같이 있고 전투병이 아니어서 안전하다.’고 안심시켰다.”며 고개를 떨궜다. 정계 및 군 고위관계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4일 허평환 국군 기무사령관과 트롬비타스 주한미군 특전사령관이 유족들을 위로했다. 허 사령관은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와 안타깝다. 윤 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 방위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트롬비타스 사령관도 “용감한 사람이었다. 미군과 미 정부를 대신해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고 윤 하사의 아버지는 이에 대해 “아들이 한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전사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답했다.3일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이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영결식은 5일 오전 8시 국군수도병원에서 특전사부대장(葬)으로 치러지고 유해는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옛 성남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 전사자묘역에 안장된다. 한편 고인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5일 저녁 광화문에서 열린다.3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국민행동은 4일 “영결식에 맞춰 윤 하사의 희생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파병 한국군의 철군을 촉구하는 추모 촛불 문화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은 또 이라크전 발발 4주년에 즈음한 17일 국제공동반전행동의 날에 맞춰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뒤 광화문까지 거리행진을 할 예정이다.성남 윤상돈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근혜 ‘지지율 비책’ 찾나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이틀째 잠행 중이다. 지난 1일 뉴라이트전국연합과 성우회 등 보수단체가 주최한 친북좌파종식대회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정국구상에 몰두하고 있다.2일에도 고 윤장호 하사의 유해가 안치된 분당 국군수도병원 분향소에서 조문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대신했다. 당내에서는 박 전 대표의 난데없는 칩거를 두고 여러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의 지지율 격차를 좀처럼 좁힐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구도를 깰 수 있는 비책을 마련 중이라는 ‘설’이 제법 설득력있게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지난 1월 말 당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자택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또한 지난해 이후 잠잠하던 ‘DJ(김대중 전 대통령)-박 연대설’이 정치권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어 박 전 대표가 이와 관련된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핵심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DJ는 박 전 대표를 늘 마음에 두고 있다.”고 전제한 뒤 “박 전 대표도 그동안 일관되게 민주당, 호남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해왔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캠프내에서는 박 전 대표의 잠행이 경선 준비를 위한 철저한 ‘대비 모드’라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하다. 경선 시기에 대해 ‘6월 실시’라는 원칙론을 이미 천명한 만큼 잠행 역시 6월 경선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적 숨고르기라는 해명이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그대 조국애 영원하리”

    “그대 조국애 영원하리”

    하늘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에서 무장세력의 폭탄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27) 하사의 유해가 2일 오전 7시 아시아나 전세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장례식장 지하 1층 4호 분향실에 차려진 빈소에는 오전 9시부터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윤 하사의 아버지 윤희철(65)씨와 어머니 이창희(59)씨는 금쪽 같은 아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슬픔과 왕복 20여시간의 비행 탓인지 눈이 충혈되고 침통한 표정 속에 조문객을 맞았다. 특히 윤씨는 추도 예배중 복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 윤씨는 “쿠웨이트에서 아들의 얼굴을 봤는데 잠만 자고 있더라. 오랫동안 못 봤으니 화장터에 가는 순간까지 영안실에 가서 보고 또 볼 생각이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어머니 이씨도 “국민들이 장호를 아껴 주셔서 고맙다. 하루라도 더 곁에 두고 보고 싶다. 오랫동안 같이 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인과 함께했던 다산부대원들이 먼저 빈소를 찾았다. 조재식(28) 대위는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국가여서 음주가 금지돼 있다.(한국으로) 복귀하면 옛날 다니던 회사 근처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약속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두 달간 함께 통역병으로 근무한 유성관(22) 상병은 “최고 선임병으로서 항상 밝은 얼굴로 도와주려 했다.”면서 “이렇게 돼서… 조금만 있었어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기 전에 특전사령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엄선호(22) 병장은 “아직도 안 믿긴다. 동기라기보다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앞장서 부대원을 감싸 주는 큰형 같은 존재였다.”면서 “4월에 돌아오면 단골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기로 했는데 (다음 세상에서라도) 다시 만나 꼭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인디애나대 경영학과 동창인 박철환(28·회사원)씨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최근까지 이메일로 연락해 왔다.”면서 “그 친구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다시 만나 얘기 나눌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밝혔다. 대학친구 구충희(27)씨는 “아프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다고 계속 말했다.”면서 “내가 말렸지만 가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빈소에는 한명숙 국무총리와 윤병세 통일외교안보수석, 김장수 국방부장관 등이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정치권의 발길도 이어졌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미 정부가 순직한 외국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동성무공훈장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평화활동가 20여명은 낮 12시37분부터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횡단보도에서 윤 하사의 나이를 나타내는 27분간 ‘플래시 몹’ 퍼포먼스를 펼쳤다. 참가자들이 ‘죽음의 저글링 파병을 멈춰라.’라는 구호를 외칠 때마다 군복 차림의 사람이 일어나 “사람의 목숨은 저글링 놀이가 아니다.”라며 저글링을 펼쳤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추모의 글이 쇄도했다. 아이디 ‘nalsenne’는 “하늘마저 우는가 봅니다. 님의 고귀한 정신 후세에 기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이 땅에 전쟁이 없는 그날을 기다리며…”라고 적었다. 아이디 ‘원미애’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가족분들 모두 힘내세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성남 윤상돈·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윤병장 유해 2일 서울로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의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병장의 유해가 2일 전세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들어온다고 합참측은 지난달 28일 밝혔다. 한편 이날 윤 병장이 지난해 12월 3일 어머니 이창희(59)씨에게 보낸 24초 짜리 ‘영상편지’와 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윤 병장의 형 장혁(33)씨에게 보낸 이메일이 공개돼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2억원대 보상금 유해는 국군 수도병원에 안치될 예정이며 장례 일정과 절차는 유가족 의사를 존중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숨진 윤 병장에게 전사자 처리와 함께 1계급 특진과 무공훈장 추서를 건의할 방침이다. 군인연금법시행령상 전사자에게는 일정액의 보훈연금과 함께 2억원대의 사망보상금이 주어진다. 윤 병장의 유족에게는 매달 89만5000원의 연금과 2억3100여만원의 보상금이 주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윤 병장의 사인과 관련, 합참은 후폭풍으로 인한 쇼크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검시결과 파편에 의한 외상이나 과다출혈보다는 폭발로 발생한 공기압박이 원인으로 보인다.”면서 “옆구리와 둔부에 파편상이 있지만 출혈이 적어 직접사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현장통제로 시신확인 늦어져 윤 병장은 또 당초 알려진 것처럼 병원 후송 뒤 숨진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신확인이 늦어진 것과 관련, 합참 관계자는 “현장과 다산부대의 거리가 3㎞나 되고, 사건 직후 미군 경계병들이 차량과 인원의 현장접근을 철저히 통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철군일정 앞당겨질까 국방부는 윤 병장의 희생으로 해외파병부대에 대한 조기철군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대책을 고민중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파병에 대한 여론이 호전되던 상황이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1명 사망

    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1명 사망

    한국군 공병·의료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 앞에서 27일 오전 10시20분쯤(현지시간) 폭탄테러가 발생, 우리 병사 1명이 숨졌다. 해외파병된 한국군이 외부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숨지기는 베트남전 종전 후 처음이다. 합참은 “바그람 기지 정문 쪽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임무를 수행중이던 공병 다산부대 윤장호(27) 병장이 사망했다.”면서 “당시 윤 병장은 부대 안에서 기술교육을 받으러 온 현지인들의 출입증을 발급받기 위해 위병소 앞에서 대기중이었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이번 테러로 윤 병장과 미군 1명, 현지인 등 20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작전부장 박정이 소장은 “한국군을 겨냥한 테러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테러범들이 기지 정문을 노리고 자폭을 감행하던 당시 윤 병장이 불행히도 그곳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는 “테러에 이용된 폭탄은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s)로 불리는 급조폭발물이며,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 있던 테러범이 몸에 두른 폭발물을 직접 격발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참은 “우리 군이 주둔중인 북부 바그람 지역은 최근 남부지역의 치안악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양호한 치안상태를 보였다.”면서 “부대의 활동지역도 미군기지 영내에 국한돼 위해요소는 없다고 판단, 최근까지도 특별한 경계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었다.”고 밝혔다. 합참은 해외 파병부대에 부대 방호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한편, 류홍규 인사부장 등 군 관계자 3명과 유가족 3명으로 구성된 영현인수단을 28일 현지에 보내 조속한 시일 안에 유해를 송환해 오기로 했다. 아프간 현지에는 다산부대 147명, 동의부대 58명 등 200여명의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한편 참여연대, 경실련, 민주노총 등 3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8일 오전 긴급모임을 갖고 모든 해외파병 한국군의 즉각 철군과 레바논 파병계획 철회를 요구키로 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씨줄날줄] 유해발굴감식단/황성기 논설위원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유지하는 은밀한 영적(靈的)장치였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유족의 슬픔을 “죽어서 신이 된다.”는 기쁨으로 바꾸어 젊은이들을 전장에 내보내는 통치 기제로 이용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진보 지식인이 쓴 야스쿠니 관련서 중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야스쿠니에 ‘감정의 연금술’이 내재한다고 분석했다.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 개입에 이어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고, 이 시각에도 사상자를 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미국이 30년 된 육군중앙감식소 등을 통합해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를 하와이에서 창설한 것이 2003년이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라는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전사자건 실종자건 전쟁포로건 최후의 1인까지 고국으로 귀환시킨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미국은 한국 전쟁 당시 북한 땅에 두고온 미군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처음에는 북측이 발굴한 유해를 감식한 뒤 사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북한에 들어가 유해를 발굴하며 그 대가로 2500만달러를 지불했다. 북핵 문제로 2005년 5월 중단하긴 했어도 미국이 전쟁 희생자에 쏟는 집착은 유별나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보증을 JPAC는 유형무형으로 보여준다. 연중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 유일의 국가인 미국에 이 같은 보증은 전장에 나가거나 내보내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기제로 작동한다. 정치적 안경을 벗어 던진다면 유해든 포로든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국방부가 그제 JPAC를 본뜬 ‘유해발굴감식단’의 창설행사를 가졌다. 한국전쟁의 전사·실종자 13만여명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낙동강변,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진 철의 삼각지를 포함한 중부전선이 주 대상이다. 서둘러 퇴각했던 평북 운산을 비롯한 북한 내 유해발굴도 장기과제다. 다만 생존한 국군포로의 귀환은 업무 밖이라는 점이 아쉽다. 이 점만큼은 미국을 본뜨지 않은 모양이다. 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하나 더 덧붙인다.“발굴이 군만의 일이 아닌데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없다.”고. 새겨들었으면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정부, 美에 자이툰 감축계획 통보

    정부는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기간을 1년 연장하는 대신 다음해 4월까지 1200명선으로 감축하는 계획을 미국 정부에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5일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정부의 파병연장 동의안 및 감축계획안을 같은 날 주한 미국대사관을 경유해 미국 정부에 정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국무회의는 당시 현재 2300여명 규모인 자이툰부대 병력을 내년 4월까지 1200명선으로 감축하고 파병을 1년 연장하되 내년 중 임무종결 계획을 수립하는 내용의 ‘이라크 주둔 국군부대의 파견연장 동의안 및 감축 계획’을 의결한 바 있다. 소식통은 “우리 정부의 통보에 대해 미측은 아직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미측도 우리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양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첫 귀환 국군포로’ 조창호씨 잠들다

    지난 1994년 한국전쟁 국군포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귀환했던 조창호 예비역 중위가 19일 0시30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 조창호씨의 장례는 첫 향군장으로 치러진다. 지난 3월31일 마련된 ‘향군장 규정’에 따르면 향군 육성과 국가안보에 공로가 큰 사람이 사망할 경우 향군장으로 치를 수 있다. 연세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10월 자원 입대한 조씨는 이듬해 8월 육군 9사단 101 포병대대 관측장교(소위)로 인제지구 전투에 참가했다가 중공군에 포로가 됐다. 장기간 탄광노동으로 규폐증을 앓던 조씨는 1994년 10월 탈북, 중국 어선을 타고 43년 만에 귀환했다. 조씨는 그 해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역식을 갖고 중위로 전역했다.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은 조씨는 경기도 용인에 정착한 후 2005년 미국 의회를 방문해 북한에서의 체험을 증언하는 등 국군포로 송환 촉구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조씨의 유해는 화장된 뒤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영현봉안시설(납골당)인 충혼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장례식은 21일 오전 7시30분 분당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거행된다. 유족은 부인 윤신자(67)씨와 북한에 두고 온 아들 선일·선이씨, 딸 선옥씨가 있다.(031)787-1503.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북핵과 작통권이양 시기는 무관”

    “북핵과 작통권이양 시기는 무관”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29일 북핵 문제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벨 사령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 작통권 환수 시기가 늦춰질 수 있는가.’란 질문에 “작통권 전환은 북한과의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고 한·미 양국간, 그리고 전쟁시 한국에 전개될 국가(유엔군)간의 기능적 문제”라며 “작통권은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고, 전쟁시 한국민을 보호하며, 억지 실패시 신속한 승리 등의 과제와 관련있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TV토론에서 북핵 실험과 작통권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이어서 주목된다. 벨 사령관은 “한국군이 작통권을 완벽하게 행사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군이 ‘교량역량’(bridging capability)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며 그 예로, 패트리엇 방공체계, 공중감시체계, 전투지휘체계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이같은 교량역량을 위해 한·미간 ‘연합정보본부’를 운영, 정보를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벨 사령관은 작통권 환수 시기를 놓고 한·미간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시기보다 중요한 건 한·미 양국이 적의 도발에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교량역량이 있다면 2009년에 작통권을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한·미 양국간 지휘체계는 4∼5차례 변화했듯이, 작통권 전환은 정상적인 과정”이라며 “우려하기보다는 한국의 능력이 신장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축하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화적위우(化敵爲友)/육철수 논설위원

    2차 세계대전 때 아프리카 기갑군단에는 피아간 신사도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전통이 있었다. 독일군과 영국군은 전투가 끝나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병들을 구해주었다. 당시 독일의 명장 로멜의 일화는 전쟁사에 회자된다. 그는 전투의 승리만큼 신사도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몸소 실천한 장군이었다. 영국군 야전병원에 식수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식수차에 백기를 꽂아 물을 공급했고, 영국군은 그 보답으로 위스키와 콘비프를 로멜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로멜은 당시 아군은 물론 적군으로부터도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로멜에 대해 “전쟁의 참상을 떠나 그는 위대한 장군”이라고 극찬했다. 영국의 전쟁사학자 리델하트는 적장 로멜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했고,2차 대전에 참전했던 영국의 퇴역병사들은 요즘도 독일을 방문하면 로멜의 묘지를 찾아 거수경례를 붙인다고 한다. 적을 감동시켜 친구로 만든(화적위우,化敵爲友) 로멜의 일화는 오늘날 개인·조직·국가간 관계에서도 소중한 교훈임에 틀림없다. 마침, 방미 중인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의 궈보슝(郭佰雄) 부주석이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에게 그의 절친한 옛 친구의 소식을 전해줘 감동을 샀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럼즈펠드의 친구 제임스 딘 해군대위는 1956년 8월 동중국해에서 첩보수집차 비행중 중국군에 피격돼 동료 14명과 함께 사망했다. 그런데 궈 부주석이 바로 딘 대위의 유해와 관련된 자료를 럼즈펠드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럼즈펠드는 반가움을 이기지 못했고, 덕분에 미·중 공동 수색·구조 훈련은 손쉽게 성사됐다고 한다. 실로 ‘화적위우’라 일컬을 만한 외교수완이다. 화적위우는 손자병법에서 상책으로 여기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부전이굴, 不戰而屈)보다 몇수 위의 전략이다. 적을 이기기도 쉽지 않은데 친구로 만들기가 보통 어려운가. 그건 그렇고, 한국과 국제사회가 어떻게든 ‘친구’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에 6자회담 불참과 미사일 발사, 이산가족상봉 중단으로 맞서는 북한의 속내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아직도 ‘감동´이 부족한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사설] 김영남씨 가족의 이유있는 분노

    납북 고교생 김영남(45)씨의 어머니 최계월(82)씨가 내일 금강산에서 꿈에 그리던 막내아들 김씨와 상봉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전북 군산의 선유도로 놀러간 뒤로 소식이 끊긴지 28년. 새파란 고교생에서 어느덧 중년의 가장으로 바뀐 아들이건만 익사한 줄 알고 제사까지 지내온 최 할머니의 그 벅찬 심경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수면제로 잠을 청해야 하는 그 흥분과, 아들이 좋아했던 약밥을 챙기는 그 설렘은 비단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가 아니어도 충분히 헤아리고 남을 일이다. 최 할머니의 아들 상봉은 납북자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제기된 상황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북측이 공개적인 납북자 상봉을 받아들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2000년 2차 상봉 이후 14명의 납북자 가족과 14명의 국군포로 가족,1명의 전시납북자 가족이 만났지만 모두 비공개였다. 북측의 태도 변화는 물론 나름의 정치적 계산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인도적 차원의 이번 만남을 가로막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하겠다. 또한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김영남씨의 처 요코다 메구미씨 가족을 비롯한 일본의 납북자단체가 보인 자세는 유감이다. 북이 전한 메구미씨의 유해를 인정치 않는 이들은 자칫 메구미씨의 사망이 확인됨으로써 대북 압박의 고삐를 놓칠까봐 김영남씨 가족 상봉을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이 단체의 부회장이 역사왜곡 교과서를 주도하는 모임의 핵심인사인 점을 감안할 때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동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납북자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는 북한뿐 아니라 일본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동병상련임에도 사돈의 모자 상봉을 함께 축하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 6·25전사자 유해발굴 13만여위중 0.8% 불과

    6·25전사자 유해발굴 13만여위중 0.8% 불과

    한국전쟁의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2000년 처음 시작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유해발굴 및 신원확인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유기적 협조체제가 미흡한 데다 사회적 관심이 낮기 때문이다. 25일 육군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기준으로 지금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1090위다. 이는 전국 주요 격전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13만 5000위의 0.8%에 불과한 것이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 51위 가운데 20위는 유가족까지 확인됐다. ●유해발굴 예산은 3억 5000만원 육군의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예산은 연간 불과 3억 5000만원. 그나마 해당 지역의 군부대에서 30∼40명의 보조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사업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6·25 참전 자국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북한측에 달러를 지불하는 등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제보해 줄 것으로 기대할 만한 사람들이 고령화로 기억력이 떨어져 확실한 증언을 받아내기 어려운 것은 물론 신도시 개발 등 급속한 도시화로 격전지의 지형도 변해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신원을 확증해 주는 군번(인식표)이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고 수통이나 옷가지, 군화, 철모, 숟가락 등 개인소지품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목도장과 버드와이저 맥주 캔 등도 유해와 함께 발굴되고 있지만 신원확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4년 경북 안동에서 ‘김학겸.4259.7.12’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도장까지 발견됐지만 군적(병적)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주인을 찾지는 못했다고 육군은 전했다. 땅 속에서 발견된 만년필만 가지고 유가족을 찾는 일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발굴된 유해 감식에 많은 시일이 소요되고 있는 것도 신원확인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사자 유가족의 유전자와 대조하는 감식 절차를 밟기 때문에 보통 4∼5개월가량 소요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국군 1090위, 미군 8구, 북한군 142구, 중공군 69구 등이며 유류품은 4만 1212점이다. ●보완책은 육군은 발굴사업 자체가 홍보되지 않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경찰청, 보훈처, 행정자치부,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군 자체 사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과 지자체가 신원확인을 주도하는 등 유관기관별로 역할과 책임을 명시하고 주요 격전지에서 공사 도중 유해가 발견되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전사자 유해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더욱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비무장지대(DMZ) 지역,2016년 이후부터는 북한지역의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육군측은 강조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월드컵 앞서 호국영령 기억하자

    6·25전쟁때 전사한 국군장병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인 현충일(6일)을 맞아 EBS가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달 10일 개막하는 월드컵으로 들썩이는 상황에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도 현충일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 눈길을 끈다. EBS는 6일 오후 8시5분부터 50분간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사업 관계자들의 편지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특집 다큐멘터리 ‘다섯 통의 편지’를 방영한다. 현충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1인칭 편지 5편을 통해 현충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다. 20대 초반의 심규일 상병에게 현충일은 그저 ‘쉬는 날’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름도 생소한 발굴부대로 차출된 뒤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 유가족의 품에 안겨주면서 현충일은 심 상병에게 더이상 공휴일의 의미가 아니다. 발굴부대는 최근 6주간 대구 다부동 전투지역에서 반세기가 넘게 가매장돼 있던 105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다부동 전투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심 상병을 비롯, 함께 싸웠던 전우의 시체를 하나라도 더 찾아서 유족에게 안겨줘야 한다며 발굴사업에 참여한 팔순의 황대형 할아버지,50년 전 남편을 잃은 김영조 할머니와 딸 추옥분씨, 전쟁터에서 잃은 친구를 잊지 못하는 재미교포 최창호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 할머니는 당시 3살배기 딸을 키우고자 재가할 수밖에 없었지만 질곡의 세월, 그래도 모녀에게 ‘아빠’와 ‘남편’은 잊지 못할 그리움의 대상이다. 교포 최씨는 미국으로 이민간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전쟁터에서 만난 친구의 주검이었다. 후퇴하면서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것이 괴로웠다는 그는 국방부로 편지를 보내왔다.현충일에 띄우는 다섯 통의 편지는 “50년 동안 조국에 의해 잊혀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 누군가에게,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부고] 김용배 前육군참모총장

    제17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용배 예비역 대장이 13일 오전 9시4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1946년 임관한 김 전 총장은 7사단장과 5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2군사령관 등을 거쳐 1965년 4월부터 1966년 9월까지 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예편한 뒤 대한중석사장, 선주협회 이사장, 재향군인회 고문 등도 지냈다. 태극무공훈장과 1등보국훈장, 자유중국 보정훈장, 미국 공로훈장, 태국 1등왕관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종한씨와 무원, 문옥 두 딸이 있다. 영결식은 15일 오전 9시30분 국군수도병원에서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된다.(031)725-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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