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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중급유기, 국군전사자 유해 송환 이어 파병부대 수송 투입

    공중급유기, 국군전사자 유해 송환 이어 파병부대 수송 투입

    미국 하와이에서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를 송환했던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KC330)가 첫 해외 파병부대 수송 임무에도 투입됐다. 30일 국방부에 따르면 KC330 1호기는 이날 아크부대 17진 130여명과 10t가량의 물자를 싣고 인천공항을 출발해 약 7000㎞를 비행한 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리프 군 공항에 도착했다. 기존 16진 130여명은 17진이 탑승했던 KC330을 타고 오는 3일 서울공항으로 복귀한다. 이번에 투입된 KC330은 첫 해외수송 임무를 맡고 지난 24일 하와이에서 147구의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를 싣고 돌아온 기종과 같은 KC330 1호기다. 민항기 기반으로 제작된 KC330은 공중급유 작전 외에도 유사시 재외국민 이송, 해외 파병부대 수송지원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항속거리 1만 2500㎞로 중간 기항지 없이 바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승객 좌석도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을 구분하는 등 민항기와 비슷한 형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열일’하는 공중급유기…유해송환 이어 파병부대 수송도 첫 투입

    ‘열일’하는 공중급유기…유해송환 이어 파병부대 수송도 첫 투입

    미국 하와이에서 국군전사자 유해를 송환했던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KC330) 1호기가 해외 파병부대 수송 임무에도 투입된다. 국방부는 30일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된 아크부대가 해외 파병부대 최초로 공중급유기를 활용해 교대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해외 파병부대 수송 임무에 공중급유기가 투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크부대 17진 13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인천공항을 출발해 UAE 아부다비 알리프 군 공항에 도착한다. 공중급유기는 17진 병력과 10t가량의 물자를 싣고 아부다비 군 공항까지 직항으로 약 7000㎞를 비행한다. 16진 130여명은 17진이 탑승했던 공중급유기로 다음달 3일 오전 9시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할 계획이다. 그동안 군 당국은 해외 파병부대 수송에 전세기를 활용해 왔으나 최근 코로나19로 전세기 항공편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빠른 투입이 가능한 공중급유기를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아크부대 교대에 공중급유기를 이용함으로써 예산 절감뿐 아니라 작전수행능력 향상과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안전한 교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공군이 지난해 말까지 총 4대를 도입한 공중급유기는 최근 각종 해외 수송 임무에 투입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모습이다. 이번에 파병부대 수송에 투입되는 공중급유기는 지난 24일 하와이에서 국군전사자 147구의 유해를 싣고 돌아온 공중급유기와 같은 KC330 1호기다. 당시 정부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예우 차원에서 유해 송환에 공중급유기를 투입했다. KC330의 첫 해외 수송 임무였다. KC330은 유해 송환 임무를 끝내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병력 수송 임무에 투입됐다.공군은 공중급유기 도입 당시 공중급유 작전이라는 원래의 임무 외에도 유사시 재외국민 이송, 해외 파병부대 수송지원 등 다양한 임무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중급유로 공군 주력인 F15K나 KF16의 작전반경을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항공기 기반으로 제작돼 긴 항속거리를 가져 먼 거리에도 한 번에 도착할 수 있다. KC330은 항속거리 1만 2500㎞를 가져 별도의 기착지 없이 한 번에 목적지 도달이 가능하다. 좌석 구성도 일반 민항기와 비슷한 형태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국군전사자 유해 송환 장면에서도 유해 상자는 공중급유기 화물칸이 아닌 승객 좌석에 안치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약 300명 탑승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아크부대 17진 출국 전 2주간의 격리와 전원 유전자 증폭(PCR) 검사 등 예방조치를 취했다. UAE에 도착한 이후에도 외부와 접촉없이 별도의 차량을 이용해 아크부대 주둔지로 이동할 예정이다. 귀국하는 16진은 귀국 즉시 전원 PCR 검사 후 2주간 자가격리를 실시할 방침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북한 지역 국군 유해 239구 모두 송환… 靑 “25년간 노력”

    북한 지역 국군 유해 239구 모두 송환… 靑 “25년간 노력”

    1990년 北이 처음 발굴 사업한 지 25년 만북미 공동 발굴한 92구는 세 차례 걸쳐 송환북한 단독 발굴 147구 25일 봉환돼 마무리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6·25 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239구가 국내로 전원 송환됐다고 청와대가 26일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6·25 70주년 기념식에서 열린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 봉환식과 관련, “25년간의 지난한 노력과 북미 간의 대화, 북미 간 유해발굴사업, 한미 공동 감식을 통해서 70년 만에 조국의 품에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북한 지역에서 확보할 수 있는 북한 내 사망 국군 전사자의 유해는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인했고 송환을 모두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는 북한이 단독으로 발굴한 147구, 북미가 공동으로 발굴한 92구 등 총 239구다.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개천시, 장진호 등 4곳에서 단독 발굴 사업을 해 208개 상자를 미국에 송환했다. 이에 미국은 1996년 6·25 전쟁 전사자를 찾고자 북한과 공동으로 발굴 사업을 시작해 2005년까지 진행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유해발굴감식국(DPAA)은 2010년 전담팀을 구성, 이듬해 북미가 공동 발굴한 유해를 한국과 공동 감식했다. 같은 해 북한에서 발굴된 유해 중 처음으로 국군 전사자가 12구가 확인돼 국내에 송환됐다. 이를 포함, 2018년까지 4차에 걸친 한미 공동감식과 세 차례 국내 송환을 통해 총 92구가 귀환했다. 아울러 북한이 1990~1994년 단독 발굴해 미국에 보낸 유해에서도 국군 전사자가 있을 수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미국과 공동감식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북한이 2018년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단독 발굴한 유해 55개 상자를 미국에 송환했고, 이 유해에 대해서도 한미가 공동 감식을 하기로 했다.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북한이 단독 발굴한 유해에서 국군 전사자 147구를 확인했고, 전날 6·25 기념식에서 봉환됐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1만 500여 구의 국군 유해를 발굴했지만,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49분뿐”이라며 유가족의 DNA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가족들이 유해감식발굴단(☎1577-5625)에 적극적으로 연락해 DNA 시료 채취가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정부는 70개 지역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을 추진 중”이라며 “마지막 한 분의 유해를 찾을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민자야 오빠 간다”… 70년 만에 돌아온 김 일병

    “민자야 오빠 간다”… 70년 만에 돌아온 김 일병

    文, 서울공항서 유해 직접 맞아 최고 예우 트럼프 “여러분 승리 축하” 영상 메시지“민자야, 오빠 간다. 엄마 아버지 잘 모셔라.”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정용 일병은 1950년 8월 부대로 향하기 전 여동생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고인은 “흥남부두에 앉아 바다를 쳐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편지를 쓴다. 부디 답장을 길게 보내다오”라고 쓴 편지를 끝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열아홉 나이로 참전했던 김 일병이 25일 70년 만에 전우 146명과 함께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날 ‘영웅에게’라는 주제로 경기 성남의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는 오후 8시 40분 고 하진호·김정용·김동성·최재익·박진실·정재술(이상 일병)·오대영 이등중사 등 국군 전사자 7명의 유해 봉환으로 시작됐다. 이날 행사는 고령층 참석자의 안전을 고려해 처음으로 일몰 이후 개최했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가족 6명과 함께 입장해 공군 항공기에서 내리는 유해를 예를 갖춰 맞이했다. 가수 윤도현이 이들을 추모하며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6·25 당시 미 7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예비역 이등중사 류영봉씨가 70년 만에 돌아온 전우들을 대신해 복귀신고를 했다. 류 중사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등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 25일 기하여 조국으로 복귀 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을 외치며 거수 경례했다. 참석자 300여명의 가슴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기억하는 ‘122609 태극기’ 배지가 빛났다. 조포 21발 발사와 함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조포 21발 발사는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예우로, 이 역시 6·25 행사 처음으로 이뤄졌다. 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 등 22개 유엔 참전국 정상들도 영상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면서 “우리가 합심해 이룬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번 유해 봉환은 한미 공동 감식작업으로 이뤄진 것으로,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번 유해봉환은 남북미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라며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 유해발굴 사업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면서 북한 지역 내 전사자 유해인계 관련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돌아온 전우 147명… 가슴에 묻은 12만명

    1950년 6·25전쟁에 참전했던 청년 김 일병이 70년 만에 전우 146명과 함께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는 6·25전쟁 당시 미 7사단 소속의 고 하진호·김정용·김동성·최재익·박진실·정재술(이상 일병)·오대영 이등중사 등 국군 전사자 7명과 미군 6명의 유해 봉환으로 시작됐다.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와 함께 유해가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묵념했다. 참전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등 300여명의 참석자 가슴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기억하는 ‘122609 태극기’ 배지가 달렸다. 이날 국가보훈처가 개최한 70주년 행사는 참전 유공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대한 경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유해가 확인돼 70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 국군 전사자 147구를 최고의 예우를 다해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유해 봉환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되면서 이뤄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호주·네덜란드 등 22개 유엔 참전국 정상들도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보훈처는 6·25 당시 매봉고지 전투에서 적의 거점을 파괴하는 등 공을 세운 공호영 하사 등 2명과 유족 12명에게도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또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6·25 당시 유엔참전국이 사용했던 수통, 탄피, 철모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패’를 참전국 대표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전달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정부 개최 6·25 전쟁 기념식에 첫 참가

    문재인 대통령, 정부 개최 6·25 전쟁 기념식에 첫 참가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오후 8시 20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개최되는 6·25 전쟁 7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정부가 개최하는 6·25 전쟁 기념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행사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 무한책임 의지가 반영됐다”고 밝혔다. 행사는 참전 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전쟁 당시 헌신한 이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경례)’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특히 미군 ‘전쟁포로 및 유해발굴 감식국’(DPAA)을 통해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귀환하는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자리한다. 147구는 1990년대 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뒤 미국에 건너갔다가 이후 한미 양국의 신원 확인 과정을 거쳐 국군 전사자로 판명된 것이다. 이 중 7구는 장진호 전투 전사자로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21일 박재민 국방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봉환유해인수단을 미국 하와이 현지로 보냈고, 유해는 최신 공중급유기인 시그너스 승객 좌석에 안치돼 24일 오후에 도착했다.행사에는 147구 외에 국내에서 발굴돼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 6구도 함께 자리한다. 유해는 가수 윤도현 씨가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행사장에 들어섰다. 문 대통령은 이들 유해를 직접 맞이한 뒤 147구 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가족과 함께 입장했다. 문 대통령은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신원이 확인된 국군 및 미군 전사자 13명에게 참전 기장을 6·25 전쟁 당시 공적이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가족 및 전사자 유족에게 각각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행사에서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6·25 전쟁에 참전한 국가의 정상들이 보내온 우정과 평화의 영상 메시지도 상영됐다. 한편 정부는 무더위로 인한 고령층 참석자들의 건강을 배려해 6·25 전쟁 기념행사 가운데 처음으로 해가 진 뒤 행사를 개최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선명하게 기록된 ‘미군이 촬영한 6·25 피란민’

    선명하게 기록된 ‘미군이 촬영한 6·25 피란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부경근대사료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던 6·25 피란민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됐다. 컬러로 촬영된 사진들은 미군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1951년 남쪽으로 향하는 경북 지역 피란민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진을 통해 어수선한 당시 지역의 상황과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피란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6·25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5일 조국의 품으로 귀환한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를 최고의 예우로 맞이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고자 헌신한 분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경례’라는 주제로 참전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이날 행사에서는 신원이 확인된 고(故) 하진호 일병 등 국군 유해 7구와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 유해 6구에는 참전기장을 수여한다. 또 70년 만에 6․25전쟁 당시 공적이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2명과 유족 12명 등에게는 무공훈장을 수여한다. 각군 대표와 참전용사가 함께하는 헌정 군가와 ‘6․25의 노래’를 제창하고, 국군 유해 147구와 미군 유해 6구를 봉송 차량에 운구하면서 행사는 마무리될 예정이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고국으로 돌아온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와 함께 개최된다. 국가보훈처는 24일 “6·25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유엔참전국의 공헌에 감사하는 70주년 행사를 25일 서울공항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참전유공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대한 경례)’라는 주제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국군 유해 147구를 맞이하는 행사가 먼저 열린다. 147구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됐다. 정부는 그동안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과 송환을 협의했고, 이날 하와이에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KC330)를 이용해 성남공항으로 봉환했다. 행사는 배우 최수종과 국방홍보원 정동미 대위의 사회로 진행된다. 147구 중 신원이 확인된 하진호 일병 등 7구와 국내에서 발굴돼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 유해 6구가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입장한다. 헌화·분향 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 등이 유해에 참전기장을 수여한다. 이어 147구의 귀환 여정이 담긴 영상을 KC330 동체에 비춰 상영하고 배우 유승호가 장진호 참전용사 이야기를 낭독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22개국 유엔참전국 정상들이 처음으로 보내온 메시지도 상영된다. 6·25 당시 공적이 70년 만에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공호영 하사 등 2명과 유족 12명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된다.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6·25 당시 유엔참전국이 사용했던 수통, 탄피, 철모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패’를 참전국 대표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전달한다. 보훈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마지막 한 분까지 찾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담은 ‘122609 태극기’ 배지를 참석자 모두가 착용해 경의를 표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 70년 만에 고국 품으로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 70년 만에 고국 품으로

    23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에서 열린 6·25 참전용사 유해 인수식에서 국군 유해발굴감식단이 북한 지역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진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를 태극기로 관포하고 있다. 147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는 6·25전쟁 70주년을 즈음해 먼 길을 돌아 고국으로 귀환하게 됐다. 국방부 제공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고봉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묶여서 끌려가던 행렬 속 아버지, 금정굴 저승 가는 길이었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 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유해 발굴’ 뉴스 보고 45년 만에야 금정굴을 찾았어.”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 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아직 끝나지 않은 금정굴 사건 “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북한→하와이→한국 긴 여정 마친 147명 영웅의 유해

    북한→하와이→한국 긴 여정 마친 147명 영웅의 유해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70년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진 유해는 공군 공중급유기 시그너스(KC-330)를 타고 돌아온다.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 DPAA에서 보관하는 유해 중 국군 전사자로 판정된 유해 147구가 이날 오후 4시 50분께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북한 평안남도 개천, 평안북도 운산,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된 유해(208개 상자)와 북미 1차 정상회담 후 2018년에 미국으로 보내졌던 유해(55개 상자) 중 2차례의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147구가 국군 유해로 판정됐다.국방부는 발굴지역에서 전투한 미국 7사단, 2사단, 25사단의 전사기록과 전사자 명부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다. 또 6·25전쟁 당시 국군이 미군에 소속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군 기록도 분석할 예정이다. 앞서 한미 공동감식으로 3차례에 걸쳐 국군 전사자 92구의 유해가 봉환된 바 있다. 2012년 12구, 2016년 15구, 2018년 65구가 봉환됐고 이날 147구가 봉환되면 총 239구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 봉환을 위해 지난 21일 박재민 국방부 차관(봉환유해인수단장)과 관계자 등 48명이 공중급유기 시그너스를 타고 하와이로 이동했다.하와이를 이륙한 시그너스는 이날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뒤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게 된다. 엄호기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부대의 후예인 공군 101·102·103 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기 F-5 2대, F-15K 2대, FA-50 2대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70년 만에 먼 길 돌아온 국군전사자 유해…공중급유기로 귀국

    70년 만에 먼 길 돌아온 국군전사자 유해…공중급유기로 귀국

    美 하와이서 147구 국군전사자 유해 70년 만에 귀환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로 신원 확인예우 차원에서 최초로 다목적 공중급유기로 이송참전조종사 손자가 F15K 엄호 비행6·25전쟁 국군전사자 147구의 유해가 70년 만에 먼 길을 돌아 고국으로 돌아온다. 박재민 국방차관을 단장으로 구성된 정부 봉환유해인수단 48명은 지난 21일 공군의 최신 공중급유기 시그너스(KC330)편으로 출국해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DPAA)로부터 국군전사자 유해를 인계받아 귀환 중이다. 이번에 봉환되는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는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 DPAA로 이송해 한미 간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앞서 북미는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 묻힌 유해 송환에 합의했다. 봉환 유해는 북한의 개천시 및 운산군, 장진호 일대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된 유해 208개 상자와 미국으로 송환됐던 유해 55개 상자 중 2차례의 한미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이에 따라 147구의 국군전사자는 70년만에 먼 길을 돌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인수식 행사는 한측에서는 박 차관과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6·25전쟁 70주년 사업단장과 하와이 총영사가 참석했다. 미측에서는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과 DPAA 부국장, 현지 참전용사와 UN사 참모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철저히 준수되는 가운데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행사는 인도태평양사령관과 국방차관의 추념사를 시작으로 인계·인수 서명식에 이어 유해인계의 순으로 진행됐다. 유해인계는 성조기로 관포되어 있던 유해 1구에 대해 유엔사령부 참모장이 유엔기로 교체하고, 마지막으로 국방차관이 태극기로 관포해 유해발굴감식단장에게 전달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봉환되는 유해는 다목적 공중급유기 KC330을 타고 24일 오후 4시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전사자 예우 차원에서 최초로 공중급유기로 유해를 송환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국방부는 “6대의 엄호기는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부대의 후예들인 101·102·103 3개 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기 F5 2대, F15K 2대, FA50 2대를 혼합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F15K 조종사 중 강병준 대위는 6·25전쟁 참전 조종사 고 강호륜 예비역 준장의 손자로, 대를 이어 영공 방위 임무를 수행 중이다. 박 차관은 “6·25전쟁 발발 70년이 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유해송환은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숭고한 소명을 다하기 위한 한미간 공동 노력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탈북민단체 “밤늦게 파주에서 대북전단 살포”주장…경찰 “흔적없어”

    탈북민단체 “밤늦게 파주에서 대북전단 살포”주장…경찰 “흔적없어”

    탈북민단체가 22일 밤 11시~12시 경기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날려 보냈다고 밝혀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섰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23일 낸 보도자료에서 “6명의 회원들이 22일 밤 11~12시쯤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서 ‘6.25 참상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대북전단 50만장과 ‘진짜용 된 나라 대한민국’ 소책자 500권, 1달러 지폐 2000장, SD카드(사진·동영상 등의 저장 장치) 1000개를 20개의 대형애드벌룬으로 북한에 기습 살포했다”고 밝혔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경찰의 감시를 피해 아주 어두운 곳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면서 “나는 경찰에서 계속 추적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대북전단 살포에 아마추어 회원들을 교육시켜 실행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수소가스 구입이 어려워지고 갖고 있던 수소가스도 모두 압수당해 17배 비싼 헬륨가스를 구입해 대북전단을 날렸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접경지역에서 24시간 경비 체제를 가동한 경찰 측은 이들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사실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군 관계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 살포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 등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보도자료에서 “약자이고 피해자인 탈북민에게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마저 박탈하려는 여기가 서울인가 평양인가“라면서 “2000만 북한인민의 자유해방을 위한 투쟁이기에 죽음도 감옥도 두려움 없이 대북전단은 계속 북한으로 날려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아래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전단을 날린 후 낸 보도자료 전문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 6명의 회원들은 6월 22일(월요일) 밤 11~12시경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서 “6.25 참상의 진실”라는 제목의 대북전단 50만장과 ‘진짜용 된 나라 대한민국’ 소책자 500권, 1$지폐 2000장, SD카드 1000개를 20개의 대형애드벌룬으로 북한에 기습 살포했습니다. 얼마전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북한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쓰레기, 민족반역자 ‘탈북자’를 거론하며 노동신문 전면에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을 ‘최고 존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패륜망동’이라며 비난했습니다. 21세기 지구촌 어디에 백주대낮에 고사기관총으로 인민을 공개처형하고 정치범수용소에서 때려죽이고 굶겨 죽이는 극악한 만행을 즐기는 김정은 같은 야만이 존재하는가? 이런 인간백정과 4.27 판문점 합의니 9.19 비무장지대 선언이니 김정은이 마치 핵을 포기하는 듯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위선자 문재인, 정의용, 서훈! 굶어죽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민 한성옥, 김동진 모자 아사에 사람이 먼저니 인권변호사니 하는 문재인이 단 한번 사과라도 했는가? 목숨 걸고 자유 찾은 탈북청년들을 살인자들로 둔갑시켜 눈 가리고 북한으로 보내 공개처형 시킨 세기의 야만이 언제 대한민국에서 있었던가? 잔인한 가해자 위선자에겐 그토록 비굴하면서 약자이고 피해자인 탈북민들에겐 악마의 비위에 거슬린다고 입에 자갈물리고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마저 박탈하려는 문재인 종북좌빨독재정권, 여기가 서울인가 평양인가? 현대판 수령의 노예로 전락한 무권리한 북한인민이라지만 진실을 알 권리마저 없단 말인가? 눈과 귀를 3대세습 수령에게 빼앗기고 거짓과 위선에 속고 있는 북한의 부모형제들에게 사실과 진실만이라도 전하려는 탈북자들의 편지 대북전단이 어떻게 남북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단 말인가? 대북전단에 독약이 묻었는가? 폭탄이 들어있는가? 우리 국군장병들의 GP에 고사기관총을 쏴 갈기고 4.27 평화공조의 결과물이라고 치장된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야만이 김정은 인가 박상학 인가? 대북전단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부흥발전 알리고 거짓과 위선으로 온갖 살육만행을 저지르는 악마 김정은을 비판하는 대북전단이 어떻게 우리의 안보를 위협한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졌다 도적이 경비원의 목을 잡고 도적이야 고함치고 살인강도가 경찰을 고소하고 잔인한 거짓위선자에게 사실과 진실을 말하는 탈북자들이 저주받고 있다. 인권변호사,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대통령은 악마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변호사, 수령독재의 가장 가혹한 피해자 탈북자들은 북한이 싫어서 온 이방인일 뿐이다. 우린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나치 히틀러와 영국 체임벌린 수상이 평화협정 맺었다고 평화가 왔는가? 김씨왕조와 대한민국 통치권자들이 그토록 많은 평화공조, 협약을 맺었는데 단 한 번도 지켜진 적 있고 단 한순간도 평화가 왔단 말인가? 우리의 앞에는 김정은이라는 잔인한 원수가 있고 주적의 시다바리로 전락한 문재인정권이 뒤에서 협박하고 있지만 거짓과 위선에 사실과 진실로 싸우는 탈북자들의 외로운 싸움은 이천만북한인민의 자유해방을 위한 정의의 투쟁이기에, 우리는 죽음도 감옥도 두려움 없이 내일도 사실과 진실의 편지 대북전단을 계속 북한으로 날리고 또 보낼 것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파병부대 교대에 공중급유기 첫 투입…‘멀티 플레이어’ 본격화

    파병부대 교대에 공중급유기 첫 투입…‘멀티 플레이어’ 본격화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기 ‘KC330’이 처음으로 병력 수송 작전에 투입된다.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KC330은 이달 말 파병 예정인 아크부대 16진과 17진의 교대를 위해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할 계획이다. KC330은 17진 약 170여명과 10t 가량의 물자를 싣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한다. 파병부대 교대를 위해 공중급유기가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C330은 공군 전투기 급유작전 뿐만 아니라 국외 재해·재난 사고 때 국민 수송, 국외 파병부대 병력 수송 등의 임무도 고려해 도입됐다. 본래 전세기를 이용해 파병부대를 교대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전세기 마련이 어려워진 탓에 공중급유기 파견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중급유기를 이용하면 기착지 없이 한 번에 직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번에도 KC330은 약 7000㎞를 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KC330은 다음달 초 아부다비 공항에서 16진 병력과 물자를 싣고 성남 서울공항으로 복귀한다. 2018년 공중급유기가 최초로 도입된 이후 올해 비군사적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달 25일쯤 미국 하와이에서 국군전사자 유해를 송환하며 KC330을 활용할 계획이다. 비군사적 임무에 KC330이 투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까지 4대가 도입된 KC330은 지난해 1월 1호기가 처음으로 실전 배치됐다. 다음달 중 나머지도 작전 운용된다. 백조자리를 뜻하는 ‘시그너스’(Cygnus)로 명명된 KC330은 전폭 60.3m, 전장 58.8m, 전고 17.4m다. 최대 속도는 마하 0.86, 최대 순항고도는 약 1만 2600m이며, 최대 항속 거리는 약 1만 5320㎞에 달한다. 최대 연료 탑재량은 약 111t이다. 공군 주력인 F15K 전투기의 경우 최대 10여대, KF16 전투기 경우 최대 20여대에 급유할 수 있다. 최대 300여명의 인원과 47t의 화물 운송이 가능하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꼭 찾아야 할 ‘122609’

    6·25전쟁에 참전했지만 끝내 가족의 품으로 오지 못한 국군전사자가 태극기 배지로 돌아온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8일 “유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전사자 12만 2609명을 기억하는 태극기 배지 달기 대국민 캠페인 ‘끝까지 찾아야 할 122609 태극기’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가 처음 제작한 태극기 배지는 유해 발굴 작업 시 유해가 발굴되고 이를 담은 유골함에 태극기를 덮은 모습을 형상화했다. 광운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직접 시민에게 배지 증정 활동을 했다. 사업추진위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를 대국민 공식 캠페인으로 확대 추진했다. 태극기 배지에는 아직 발굴되지 못한 국군전사자를 상징하기 위해 1번부터 12만 2609번까지의 고유번호가 부여됐다. 1번 태극기 배지는 9일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서병구 일병의 외동딸 서금봉(70)씨에게 전달된다. 서씨는 갓난아이 시절 6·25전쟁이 발발하며 아버지가 입대한 탓에 태어나 한 번도 아버지를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투 현장에 묻힌 서 일병의 유해는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다가 전사 통지서를 받았던 서씨의 어머니는 남편의 유해를 찾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2016년 세상을 등졌다 . 태극기 배지는 9일부터 캠페인에 참여한 국민을 대상으로 배부를 시작한다. 김은기 사업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남녀노소 모든 국민과 함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웅들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표할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文대통령 “봉오동전투, 코로나 극복…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

    文대통령 “봉오동전투, 코로나 극복…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코로나19 때문에 늦어졌지만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 예우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항일 독립전쟁도) 100년이 지난 오늘 코로나 국난극복의 원동력도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인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독립군을 기리는 일은 국가의 책무”라며 이렇게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 국빈방문 당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가 협조를 약속해 양측이 실무협의를 해 왔다. 문 대통령은 전날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봉오동전투를 ‘독립전쟁 첫 번째 대승리’로, 청산리대첩을 독립전쟁 사상 최고의 승리로 꼽으며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의 뿌리가 독립군이었고, 2018년 국방부는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기원으로 공식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SNS에서 “100년 전 오늘 홍범도 장군과 최진동 장군이 이끈 독립군이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을 벌여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며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감을 얻고, 고통받던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의 희망을 갖게 됐다”며 “의병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 등 평범한 백성들로 구성된 독립군의 승리였기에 겨레의 사기는 더 고양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너도나도 가난한 살림에 의연금을 보태 독립군의 무기 구입을 도왔고, 식량과 의복을 비롯한 보급품을 마련하는 데 나섰다”며 “승리와 희망의 역사를 만든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을 가슴에 새긴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코로나 국난극복의 원동력도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라며 “국민들은 나의 안전을 위해 이웃의 안전을 지켰고 연대와 협력으로 코로나 극복의 모범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국가, 모든 희생·헌신에 보답해야”

    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국가, 모든 희생·헌신에 보답해야”

    “국가유공자 보훈은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독립·호국이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뿌리전쟁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 국가의 책무” 문재인 대통령이 6일 “모든 희생과 헌신에 국가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보훈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라면서 “보훈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일 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이어 “독립과 호국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뿌리”라면서 “나라를 지켜낸 긍지가 민주주의로 부활했고, 가족과 이웃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의인을 낳았다”고 언급했다. 독립 호국 민주 영령들의 희생과 헌신이 새로운 시대정신과 역사를 만들었고, 현재의 코로나19 사태에서 양보와 타협, 상생과 협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립 호국 민주의 역사를 일군 애국 영령들에 존경을 표하고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보답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생활조정 수당과 참전명예 수당을 지속적으로 인상해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의 명예로운 삶을 지원하고, 의료지원도 한층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4만 9000기 규모의 봉안당을 건립하고 있다고 소개한 데 이어 “내년에는 전국 35만기의 안장 능력을 44만기까지 확충하고, 2025년에는 54만기 규모로 늘려 예우를 다해 국가유공자를 모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6·25 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닿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라면서 “평화는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두 번 다시 전쟁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유해 발굴 사업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면서 “정부는 호국용사들을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발굴한 호국용사의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들이 유전자 검사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다.문 대통령, 애국영웅들 일일이 호명하기도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식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영웅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국가를 위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나라를 위한 희생을 국가가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6·25 참전 영웅 중 한강 방어선 전투를 지휘하며 북한군의 남하를 막아낸 광복군 참모장 김홍일 장군과 기병대 대장으로 활동한 광복군 유격대장 장철부 중령을 거명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딸의 돌 사진과 부치지 못한 편지를 품고 강원도 양구 전투에서 전사한 임춘수 소령에 대해서도 감사함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6·25 전쟁에 참전한 간호장교 3명도 소개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 극복에 앞장선 간호장교들에 대한 감사함도 함께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이자 국군간호사관학교 1기 출신으로 참전한 이현원 중위를 거론하며 “자신의 공훈을 알리지 않았지만 2017년 러시아 동포 간담회에서 뵙고 오늘 국가유공자 증서를 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현원씨는 추념식에 직접 자리했다. 또한 6·25 전쟁 때 백골부대 간호장교로 복무한 ‘독립군의 딸’ 고 오금손 대위, 역시 간호장교로 6·25 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고 김필달 대령도 언급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육군 39사단, 6·25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유해발굴 진행

    육군 39사단, 6·25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유해발굴 진행

    육군 제39보병사단은 오는 8일 부터 다음달 3일까지 경남 창녕군 본초리·산지리 일대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6·25전쟁 70주년인 올해 유해발굴을 하는 지역은 6·26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최후 방어선으로 북한군 제4사단 공세에 맞서 미 2사단과 국군 장병들이 북한군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 곳이다.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승전의 역사 현장이다. 육군 39사단은 지난해 유해발굴 작전을 진행해 완전 유해 2구와 부분 유해 21구 등 모두 23구의 유해와 탄피를 비롯한 유품 15종 669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39사단은 앞서 지난 4일 창녕군 박진 전쟁기념관에서 ‘2020 6·25 전사자 유해발굴 개토식’을 개최했다.박안수 39사단장은 개토식 추념사에서 “지금도 이름 모를 산야에서 미처 수습하지 못한 호국용사들의 유해가 우리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며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내 부모, 내 가족을 찾는 간절한 심정으로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끝까지 찾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발굴 유해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시료 채취가 매우 부족한 상태여서 유가족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6·25 휴전 2주 남기고 전사 ‘김진구 하사’… 67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 휴전 2주 남기고 전사 ‘김진구 하사’… 67년 만에 가족 품으로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김진구 하사의 유해가 67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가보훈처는 3일 “고인의 위패가 모셔진 대구 남구 충혼탑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김 하사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내와 세 살 아들을 남겨 두고 24세의 나이로 입대했다. 1953년 7월 13일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전사했다. 지난해 발굴된 김 하사의 유해는 지난 3월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부인 이분애(90)씨는 “생전 남편의 다정한 면모와 함께한 애틋한 추억을 간직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김 하사의 유해는 향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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