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학생인권,더이상 외면 말아야/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 교수
중·고등학생 두발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학생들이 1년 만에 또 거리로 나섰다. 작년 이때쯤 학생들이 두발규제 완화를 외치며 처음 거리 시위를 벌였는데, 그 사이 학교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학생시위를 겪은 뒤 교육부는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규정은 시정하도록 권고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인권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나 보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서 학생들의 두발자유는 기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그것마저도 학교 현장에서는 ‘소귀에 경 읽기’였는가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리 교육현장이고 피교육생이라고 하지만 두발 길이까지 학교가 정해 강제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의 긴 머리를 이발 기계로 싹둑 잘라버리는 일까지 있다고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생들도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인격체다. 학생의 인격도 어른들 못지않게 존엄하다. 하물며 신체를 구속당하는 일에 있어서는 피치 못할 사유가 있어야 한다. 교육을 위해 불가피하다거나 단체생활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등의 적극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두발이 단정해야 학생답다, 두발을 기르려고 하는 학생은 문제아다, 두발에 신경쓰면 공부에 도움되지 않는다, 학생에게는 마땅히 통제가 필요하다, 성인과 구분하기 위해 필요하다, 심지어 학교 규칙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 등, 흔히 제기되는 이유들은 두발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로는 미흡하다. 신체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구속해도 좋을 사유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두발 규제의 부당성은 우리 교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만 인정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아동 청소년의 인권 기준이 되고 있는 유엔 아동청소년 권리조약도 “아동 청소년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과 학대,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학생들이 두발 규제를 문제삼아야 하는 학교 상황은 인권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우리도 인격체’라는 절규가 인권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터져 나오는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두발 규제는 풀어야 한다. 사회의 민주화 속도와 비교해 학교는 너무 더디다. 두발 규제도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교육부도 두발 규제가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으면, 학교장에게 단순히 권고하는 것으로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마땅히 강력한 지도와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두발 규제 문제로 불거지긴 했지만, 실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두발 규제는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는 학생 인권 침해의 한 사례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상 폭력에 가까운 체벌, 인격을 짓밟는 심한 욕설, 나아가 0교시에 강제 심야학습 등도 학생 인권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할 사안들이다.
이참에 두발 규제 문제를 포함해 학생 인권 전반이 사회적 토론 주제로 다뤄져야 한다. 학교 현장에 널리 퍼져 있는 반인권적 사고와 관행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얼굴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200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며 교육부 지침과 학교 교칙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제 어른들은 학생의 말과 절규에 허심탄회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육이나 지도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학교와 교실과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교사와 교육부와 학부모가 학생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할 때인 것이다.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