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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러진다. 정부 분향소가 서울역 광장과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곳곳에 설치되며, 유해는 유족 뜻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4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유가족측으로부터 장의 형식을 국민장으로 하고 유가족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하자는 의견을 전달받았다.”면서 “추모를 위해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서울에는 외국의 조문사절 등의 편의를 위해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광장에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장지는 유족의 뜻에 따라 봉하마을로 잠정 결정됐다. 국민장 거행을 위한 장의위원회 위원장은 유가족 협의과정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외에 유가족 대표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장의 기간은 23~29일까지 7일간이다. 영결식은 오는 29일 김해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되며 당일 조기를 달기로 했다. 화장 절차에 대해서는 논의가 늦어져 25일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장은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의식 가운데 하나로 전·현직 대통령이나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장의비용은 일부만 국고에서 보조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장은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장례방식이 결정됨에 따라 정부는 본격적인 장례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행안부는 장의 부위원장을 맡을 인사로 국회부의장과 감사원장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달곤 행안부 장관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강희락 경찰청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인평 행안부 의정관 등으로 장의 집행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또 행안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작업단’을 구성, 의전·안내·운구·식장준비 등 실질적 장례 업무를 담당케 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지가 봉하마을로 최종 확정되면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별도의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안장식을 위한 제반 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또 서울시와 협의해 옛 서울역사 앞 시계탑 부근과 신문로 시립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성북·서대문·구로·강동구 4개 구청 내 등 서울에 6곳의 분향소를 마련키로 했다. 지방에도 권역별로 수십곳 이상의 분향소를 설치한다. 해외 한국 대사관·총영사관 등의 재외공관에도 조문장소가 마련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재외공관마다 조문록을 비치, 주재국 인사 중 원하는 사람은 조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장례식 당일에는 전 재외공관에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거 이튿날인 24일 하루에만 봉하마을 임시 빈소에 10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리는 등 전국에서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도 애도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한승수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25일 오전 9시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합동 분향할 예정이며, 오전 10시엔 주한 외교사절이 분향소를 찾는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현지 특별취재팀 ●정치부 홍성규 김지훈 ●사회부 이재연 장형우 유대근 박성국 ●사회2부 김정한 한찬규 김상화 강원식 박정훈 ●사진부 김명국 도준석 정연호
  • [나눔 바이러스2009] “국가유공자 낡은집 고쳐드려요”

    대한주택건설협회가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가운데 지난 16년 동안 단 한번도 거르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국가유공자의 노후주택을 개·보수해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IMF 외환 위기로 주택건설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올해도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협회가 팔을 걷었다. 전국의 56개 중견 주택건설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국가유공자가 살고 있는 낡은 주택 59동을 무료로 보수해주는 데 동참했다. 이호상 협회 홍보부장은 “건설업체들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국가유공자를 돕는 일만은 거를 수 없다고 판단해 적극 나섰다.”면서 “생각보다 낡은 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국가유공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지원대상은 국가보훈처로부터 추천을 받아 생활형편이 어려운 유공자 위주로 선정했다. 대도시보다는 지방으로 갈수록 낡고 오래된 집이 많다. 개보수사업은 집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도배와 장판을 다시 까는 것은 기본이고 지붕교체, 내외벽 도색, 방수공사, 화장실 보수까지도 한다. 협회는 보수공사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마가 시작되는 6월 중순 이전에 모든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협회는 대한주택보증의 지원을 받아 무주택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을 대상으로 주택임차자금을 무상지원하고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허동찬(부산시의회 윤리특위 위원장)씨 모친상 13일 경남 거제시 연초면 송정리 634번지 자택, 발인 15일 오전 10시 (055)636-4438●안광호(부산시의회 해양도시위원회 수석전문위원)씨 모친상 13일 부산 한중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8시30분 (051)305-4000●이용순(자영업)용호(한국방송광고공사 기획조정실 차장)용수(원플러스 사장)씨 부친상 최병영(부영컨트리클럽 사장)씨 빙부상 14일 강원 철원길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33)450-3242●박현일(서울지방항공청 관제사)씨 부친상 손형권(FC서울 프로축구단 경영지원팀 과장)씨 빙부상 14일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30분 (02)2072-2011~2●이석중(아시아투데이 산업2부장)씨 부친상 윤호규(고려대 이공대학 기획부학장)씨 빙부상 14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6일 오전 5시 011-9002-6949●이원희(이노비젼 대표)희(용진쉬핑 이사)씨 모친상 권순자(이노비젼 콘택트렌즈연구소장)씨 시모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10시 (02)3010-2231●류대식(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위원)점식(자영업)도식(GS칼텍스 부장)명식(현대중공업)진숙(교사)씨 부친상 14일 울산중앙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52)226-1413●이병용(한영회계법인 매니저)형욱(만도)씨 부친상 송맹규(신한생명)씨 빙부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3010-2230●윤영식(KT 강남네트워크운용단 단장)씨 모친상 14일 경남 밀양한솔병원, 발인 16일 오전 (055)351-1111●김동규(국방대 명예교수)씨 모친상 현철(SBS 도쿄특파원)덕철(금호생명)씨 조모상 14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6일 오전 (02)2227-7594●류종한(네티션닷컴 주임)민정(CLSA증권 과장)씨 부친상 박종호(하나은행 대리)씨 빙부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2)3010-2292
  • [모닝 브리핑] 6·25이후 납북 민간인 첫 국가유공자 등록

    6·25전쟁 이후 납북된 민간인이 국가유공자로 처음 등록됐다. 국가보훈처는 8일 전쟁 당시 미 극동군 사령부 소속 ‘8280 유격부대’(일명 유격백마부대)에서 활동한 최원모씨를 참전 국가유공자로 인정, 등록했다고 밝혔다.최씨는 1950년 11월 평안북도에 진격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하자 오산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돼 창설된 유격부대에 창설 요원으로 합류해 유격부대의 유일한 동력선인 40t급 ‘북진호’의 함장으로서 보급과 포로 수송, 부대원·민간인 대피 등의 임무를 맡았다. 최씨는 57세 때인 1967년 6월 다른 선원 7명과 함께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하다가 납북됐다.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벽안의 이방인으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등 항일 언론투쟁의 선구자였던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식이 선생이 묻힌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8일 열렸다. 배설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영국대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배설 선생은 우리 민족에게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었다.”며 “선생께서는 생전에 ‘신문의 할 일은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워 정의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소개했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가 되던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상을 보고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이 신문사를 항일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근거지로 삼아 일본에 맞서다 일제의 탄압으로 1909년 5월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배설 선생은 임종 순간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유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해공 신익희 53주기 추모식

    임시정부 법무총장 등을 역임하고 광복 후 국회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 선생 53주기 추모식이 5일 오전 11시 서울 수유리 묘소에서 거행된다.해공 신익희선생 기념사업회(회장 류기정)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이종정 국가보훈처 차장과 광복회 승병일 부회장, 이성우 국민대 총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신익희 선생은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국호, 관제, 정부 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 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의장에 선출됐고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당선이 유력했으나 유세 중 서거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재향군인회 유공자 포상

    정부는 27일 서울 성수동 향군회관에서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김영일 전 제주 향군회장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는 등 재향군인회 관계자들을 포상했다. 안승관 경북 안동 향군회장과 김동헌 6·25참전유공자회 경남지부장은 국민 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또 김동욱 향군본부 복지부장 등 5명은 국민포장, 박소봉 서울시 향군 사무처장 등 9명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광주 무등 경기장 “시민 품으로”

    광주 북구 임동 무등경기장이 건립 44년 만에 광주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27일 광주시에 따르면 ‘국가·지방자치단체간 상호 점유재산 교환’<서울신문 4월8일자 25면>에 따라 국유지인 무등경기장 부지와 시 소유인 국립5·18묘지, 광주 정부통합전산센터 부지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시는 이를 위해 최근 국가보훈처, 행정안전부와 계약을 체결해 이달 말까지 소유권 이전을 마칠 계획이다. 시는 토지감정평가에서 무등경기장 국유지 8만 4582㎡의 가치가 274억 500만원, 시 공유재산인 국립5·18민주묘지 16만 6734㎡와 광주정부전산센터 3만 3805㎡가 각각 156억 6000만원, 85억 1800만원으로 확정됨에 따라 차액인 32억 2700만원을 추가 지급해 국·공유재산 교환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무등경기장의 소유권이 광주시로 이전되면서 매년 정부에 지급했던 임대료 6억~7억원을 물지 않아도 된다. 특히 재산 활용 가치가 없었던 국립5·18민주묘지와 광주정부통합전산센터 부지를 무등경기장 부지와 맞교환함으로써 240억여원의 지방재정을 확충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시유지로 전환된 무등경기장 부지에 ‘민주광장’을 조성할 방침이다. 시는 이를 위해 최근 타당성 및 기본구상 연구용역을 발주, 11월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또 드러난 봉하대군의 위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국세청장 인사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봉하대군’의 위세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시골에 계신 어수룩한 분”이 아니라 4대 권력기관장의 자리까지 ‘입김’을 불어 넣은 또 다른 권력자라는 의미다. ‘형님정치’는 그동안의 검찰수사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검찰은 24일 건평씨가 노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씨를 국세청장으로 앉혀 달라고 부탁했다고 공개했다. 비록 실패한 청탁이었지만 이후 김씨는 국가보훈처 차장, 국가보훈처 처장으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 인사와 관련해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박 회장에게서 백화점 상품권 1억원어치씩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건평씨는 박 회장을 등에 엎고 지역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후원자’로도 활동했다. 건평씨가 지원 대상자를 골라 “마음을 크게 먹고 도와 주라.”고 지시하면 박 회장이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 갖다주는 식이었다. 일면식이 없는 후보한테 박 회장이 수억원을 줬다는 점에서 건평씨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005년 4월 재·보궐선거 때 경남 김해갑에 출마한 이정욱 열린우리당 후보가 5억원을, 2004년 6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때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이 8억원을 이렇게 받았다. 검찰은 이런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건평씨는 ‘박연차 구명 로비’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태광실업 세무조사로 박 회장이 어려움에 처하자, 그는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연락해 “서로 대통령 패밀리는 건드리지 않기로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박 회장의 돈 2억원을 받은 추 전 비서관은 이런 이야기를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게 전했다. 그러나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은 강행됐고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건평씨도 서울구치소에서 박 회장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광용씨 형제와 함께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 로비 명목으로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4월에 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한테서 사장직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배설선생 “나 죽을지라도 한국 동포를…”

    배설선생 “나 죽을지라도 한국 동포를…”

    구한말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선생과 함께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을 한 배설(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이 서거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 된다. 서울신문사와 사단법인 배설 선생기념사업회는 24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천상기 경기대 초빙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대회에선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가 배설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이어 이병국 한서대교수, 황우권 대진대 학장, 안종묵 청주대 교수, 이용원 서울신문 기획위원이 토론을 한다. 개회식에선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이 축사를 할 예정이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배설은 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일본 고베에 와서 머물다 1904년 3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 특별 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곧 회사를 떠나 같은 해 7월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Korea Daily News’를 창간, 을사보호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고종황제와 우국지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의 계속되는 언론 탄압과 외교 마찰을 우려한 영국 정부의 압력, 신문사 간부진의 구속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1909년 5월1일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배설은 숨을 거두기 전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정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배설은)국운이 다하여 나라가 위급하던 때에 신문을 통해서 민족진영의 항일운동을 지원했던 항일 언론인이었다.”고 업적을 기렸다. 배설은 신문을 항일투쟁의 발판으로 삼아 일본의 침략을 통렬히 비판했고, 신문사를 국채 보상운동의 본거지로 활용했다. 1907년 9월 무렵에는 국한문, 한글, 영문 세가지 신문의 발행부수를 합쳐 1만부가 넘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에서 발행되는 여타 신문 전체의 부수를 합친 것보다 배가 넘는 것이었다. 학술대회에 이어 5월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추모기념대회가 열린다. 주한영국대사관과 배설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서울신문사 등이 후원한다.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김형오 국회의장, 김양 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 등이 참석한다. 이 자리에선 배설 선생의 자유언론사상을 기리고자 제정된 ‘배설 언론상’시상식이 함께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정상문, 박연차 돈 받고 ‘사업편의 봐주기’ 로비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정상문, 박연차 돈 받고 ‘사업편의 봐주기’ 로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일맥 상통한다. 고향 친구로 40년 지기인 데다 4년간 청와대에서 함께 일한 터라 검찰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건넨 100만달러(2007년 6월)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을 포괄적 뇌물죄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때문에 22일 검찰이 밝힌 정 전 비서관의 ‘범죄 사실’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겨눈 칼날을 가늠할 수 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서 상품권 1억원어치(2005년 1월)와 현금 3억원(2006년 8월)을 받고 그를 위해 열심히 뛴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해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씨가 2004년 중부지방국세청장, 2005년 6월 국가보훈처 차장, 2007년 4월 국가보훈처 처장에 임명되도록 힘썼다는 것이다. 2006년 박 회장이 경남은행을 인수하려고 할 때 경제부처 공무원을 소개하고, 30억달러 규모의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할 때 경제정책 비서관에게 영향력을 행사, 외교부 등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도록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과 대통령간 연락 또는 만남을 주선하는 소통업무를 담당했다.”고 밝혀 정 전 비서관의 ‘편의 봐주기’가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비쳤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국정 활동에 들어가는 예산인 특수활동비를 현금을 보관하며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시로 집행했다. 정 전 비서관은 쓰지 않고 남은 ‘불용액’을 국고로 반납하지 않고, 지인 3명의 명의를 빌려 주식과 무기명 채권을 구입하고 서울 서초동 상가를 빌렸다. 2005년에 2억원, 2006년에 7억 5000만원, 2007년에 3억원을 6차례에 걸쳐 빼낸 것으로 검찰은 확인했다. 이 금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 전 비서관이 4년간 청와대에 근무할 때 집행된 청와대 특수활동비가 900억원에 달하고, 그 절반이 대통령 몫이었기 때문이다. 2006년에 4차례에 걸쳐 횡령한 정 전 비서관이 집권 말기인 2007년과 2008년에 더 큰 ‘도둑질’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전 비서관의 5개 차명계좌를 찾아낸 검찰도, 또 다른 차명계좌에 은닉한 돈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지경부 등 8개부처 조직개편

    ‘대국대과(大局大課)’를 지향하는 중앙부처 비상경제체제 조직개편이 8부 능선을 넘었다. 지식경제부, 식품의약품안전청, 농림수산식품부 등 8개 부처가 한꺼번에 조직개편 직제개정을 단행하면서 지금까지 모두 6국 201개 과·팀이 축소됐다. 남은 부처들은 이제 ‘밀고당기기’가 극심한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부처 4곳을 포함한 11개 부처뿐이다. 외청들은 전문성 저하 논리가 먹혀들면서 용두사미식 소폭 개편에 그쳤다. ●정부부처 조직 개편 70% 마무리 정부는 21일 국무회의에서 농식품부, 지경부, 식약청,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 국가보훈처, 산림청, 기상청 등 8개 부처의 직제 개정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35개 조직개편 대상 부처 가운데 70%에 달하는 24개 부처의 직제가 완료됐다. 대과제에 따라 과·팀 수는 ▲본부 131개 ▲소속기관 70개 등 201개가 통폐합되거나 사라졌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경제살리기·녹색성장·민생안정·대민접점 현장서비스 지원 등을 중점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겪은 농식품부는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기 위해 ‘소비안전정책관’을 신설하고, 수산동물 검역제도를 새롭게 만들어 검역인력 13명을 지원하는 등 공통부서를 포함한 11개과 ·팀, 센터 2곳을 감축하기로 했다. 또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연계 ‘금수강촌 프로젝트’와 녹색성장 전담을 위해 ‘녹색성장정책관’을 신설했다. 멜라민, 석면탤크 파동 등을 겪은 식약청은 위해물질 사전예방과 조기대응 차원에서 위해예방정책국, 위해사범중앙단을 신설했다. 아울러 식·의약품 안전관리, 유해물질 안전관리 기준 강화 등에 77명을 보강했다.<서울신문 4월16일자 23면> 횡령 사건이 터져 곤욕을 치렀던 복지부는 8개과·팀을 줄이는 대신 사회복지 전달체계 개선에 인력 5명을 보강하고 미래 복지생활을 기획하는 ‘사회정책선진화기획관’을 신설했다. 이와 함께 녹색성장, 기후변화대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경부는 녹색에너지정책과, 산림청도 산림분야 녹색일자리 창출 등 기후변화대책 관련 부서를 만드는 반면 각각 10개과·팀, 2개과·팀을 감축했다. 기상청도 국가기상위성센터 등을 신설하는 대신 3개과·팀을 축소한다. 여성부는 취업지원과를 만들었다. ●중소기업청은 증원문제 맞물려 난항 하지만 정부대전청사의 각 기관들은 대과체제에 맞춰 조직개편을 실시했을 경우 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소폭 개편에 머물렀다. 산림청은 본청 ‘21과 1팀’에서 ‘19과 1팀’으로 줄었지만 인력은 229명에서 243명으로 14명이 증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등 4개과를 폐지하기로 한 중소기업청은 증원 문제가 맞물리면서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반면 관세청은 ‘21과 5팀’에서 ‘19과 5팀’으로 2개 과가 통폐합됐고 업무조정도 마무리됐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서울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4·19혁명 ‘마산의 잔 다르크’ 노원자 할머니의 소회

    4·19혁명 ‘마산의 잔 다르크’ 노원자 할머니의 소회

    1960년의 봄은 온통 암흑투성이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장기 집권을 꿈꾸며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당시 경남 마산제일여고 학생회장이었던 노원자(66·당시 17세) 할머니는 친구들과 함께 책을 덮고 교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해 이른 봄 마산시내 거리는 “부정선거 물리치고 공정선거 다시 하라.”는 구호로 넘쳤고 17세 소녀는 숨겨서 가져 나온 플래카드를 펴들고 마산경찰서 앞까지 진격했다. 경찰은 낮에는 최루탄과 물대포로 응수했고 밤에는 총탄을 쐈다. 하지만 학생들의 행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노 할머니는 “그렇게 내 친구가, 선배들이 총탄에 쓰러졌다.”며 50여년 전을 아프게 돌아봤다. 그해 4월11일 마산 중앙동 앞 바다에서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시체 한 구가 떠올랐다. 마산상고 1학년생 김주열군이었다. 분노한 마산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뛰쳐나왔고 소녀도 합세했다. 경찰 기동대가 붙잡아 가는 와중에도 소녀는 “경찰은 학생 학살을 책임져라.”라고 외쳤다. 이 사건은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함성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정치인을 꿈꾸던 소녀는 항상 시위대 선봉에 섰고 장면을 찾아가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횡포에 맞서 싸워줄 것을 부탁했다. 고은 시인은 시집 ‘만인보(萬人譜)’에서 그런 그녀를 ‘마산의 잔 다르크’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렇게 불꽃 같은 고교 시절을 지낸 그녀는 1961년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과에 들어가 졸업하면서 모교인 경남 마산 제일여자중학교에서 2년간 영어교사도 했다. 결혼을 하면서 학교를 그만뒀고 지난주 남편과 사별했다. 10대 소녀에서 이제 60대를 훌쩍 넘긴 할머니이지만 가슴에는 암울했던 역사와 독재 정권의 총칼 앞에서도 당당했던 피끓는 청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노 할머니는 “지난해 촛불집회 때 경찰 물대포에 맞서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그때의 아픔을 우리 손자 손녀들이 아직도 겪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서글펐다.”며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 “요즘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정부가 펴낸 학습동영상 자료에 4·19를 데모로 표현한 것을 예로 든 것이다. 그러더니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4·19혁명의 승리자가 누구였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당부했다. 2006년 국가보훈처에 4·19혁명 유공자로 신청했지만 ‘활동 소명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노 할머니. 하지만 “역사의 훈장은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웃어 보였다. 노 할머니는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4·19혁명 49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50여년 전 못다 이룬 세상을 다시 한번 꿈꿔 볼 생각이라고 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장애인고용률 외교부 꼴찌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장애인 고용률이 가장 낮은 곳은 외교통상부로 조사됐다. 지자체 중에서는 서울시가 최하위를 기록했다. 장애인 정책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가족부의 장애인 고용률도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중간 정도 수준에 그쳤다. 15일 노동부가 발표한 ‘2008년 국가·지자체 장애인 고용 현황’에 따르면 외교부의 장애인 고용률은 0.65%였다. 복지부는 2.47%로 전체 중앙행정기관 43곳 중 20위에 머물렀다. 대통령실의 장애인 고용률은 1.75%로 35위였다. 중앙행정기관 평균치는 2.18%다. 중앙행정기관에서 장애인 고용률이 가장 높은 곳은 국가보훈처로 5.95%였다. 금융위원회(3.89%), 국민권익위원회(3.48%)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중앙행정기관에서 장애인 의무 고용률인 2%에 미달하는 곳은 14곳이었다.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27조 및 29조에 따르면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은 지난해까지는 2% 이상이다. 올해부터는 3% 이상으로 상향 조정됐다. 16개 지자체 중에는 서울시가 2.04%로 가장 낮았고, 광주광역시는 3.41%로 장애인 고용률이 가장 높았다. 79개 공공기관 전체 고용률은 1.76%로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룹별 평균을 보면 지자체가 평균 2.68%로 장애인 고용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중앙행정기관 2.18%, 사법기관 1.67%, 교육청 0.98% 순이었다. 특히 교육청 가운데 고용률이 2%를 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교육청의 경우 교원 양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고용률이 낮은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장애인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4일 국무회의에서 오는 2012년까지 장애인 고용률을 3%까지 달성하기로 결의하고, 올 하반기에 노동부·교과부·민간 전문가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특별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단재 가족의 끝나지 않은 슬픔

    단재 가족의 끝나지 않은 슬픔

    ‘신채호(申菜浩),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56번지, 1880년 출생, 1936년 여순감옥 사망.’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65)씨는 13일 시아버지 앞으로 발급된 가족관계등록부 증명서를 마냥 쓰다듬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은 이날, 단재 선생은 97년만에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씨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100여년만에 회복된 가족관계등록부에 단재 선생의 아내와 자식은 없었던 것. 아내인 김자혜 여사는 물론 아들(수범씨·91년 작고)을 비롯해 며느리인 자신과 손자, 손녀가 모두 누락된 것이다. 이씨는 “반쪽뿐인 가족관계등록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1967년 당시 23살 나이로 시집올 때만 해도 남편이 외가에 입적된 ‘사생자’인 줄 몰랐다고 한다. 슬하에 딸과 아들을 낳은 후 1972년 뒤늦게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법무부는 지난 2월부터 시행된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해 독립유공자의 직계비속이나 법정대리인에게 인지 청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30년 넘게 시아버지의 국적 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온 이씨는 이번 주에 친자 인지소송을 낼 예정이다. 그러나 첩첩산중이다. 단재 선생이 독신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는데다 광복 이전에 사망한 시어머니의 가족관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마땅치 않아서다. 이씨는 “정부가 이제라도 시아버지의 호적을 만들어 준 점은 감사하지만 시어머니도 유족으로 인정 못받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른 척했던 정치권과, 법률 논리만을 들이대며 냉담했던 법원이 이번엔 독립운동가들의 인륜을 이어주길 바랄 뿐이다.”며 애끓는 심정을 드러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특별법이 시행돼 호적 없이 사망한 경우에도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할 수 있지만 사인간 관계까지 정부가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유가족들에게 혈족 입증자료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발언대]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발언대]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9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혹독한 일제의 탄압 아래에서 자주독립을 향한 희망의 등불을 높이 든 3·1운동의 가장 커다란 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로 항일투쟁의 통일적인 구심점을 갖기 위해 국내외에서 여러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중 가장 뚜렷한 것이 4월13일과 23일에 각각 수립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성정부’이다. 한달 전 3월17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 의회정부’가 수립됐다. 같은 해 9월11일 이 세 곳의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통합임시정부로 정비돼 광복에 이르기까지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총본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호와 정치체계에서 광복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주춧돌이 됐다.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한 선열들은 다시 찾을 조국은 물러난 임금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복벽(?)’이 아닌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제’이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현 헌법의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를 바탕으로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우리 국민은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라사랑 정신으로 굳게 뭉쳐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지금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매우 어렵다. 90년 전 선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조국 광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임시정부를 세워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이 있도록 했다. 선열들이 보여준 겨레사랑 정신과 이론과 실천을 함께 아울렀던 용기와 지혜를 되새기고,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의지와 힘을 모아야겠다. 최완근 국가보훈처 기획조정관
  •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전시회 개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1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서울신문사·사단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전쟁기념관이 후원하는 전시회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는 임시정부가 27년간 국내외에서 펼쳤던 독립운동의 사료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다. 이날 오후 전시회 개막식에는 서울신문사 이동화 사장,한나라당 김성식 의원,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양 국가보훈처장,함세웅 신부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전시는 ‘독립-꿈을 품다’ ‘주권-꿈을 엮다’ ‘미래-꿈을 향하다’ 등 3가지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독립-꿈을 품다’에선 1919~1945년까지 활동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투쟁사를 연대별로 소개한다.‘주권-꿈을 엮다’에선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희생을 마다않던 선열들을 만날 수 있다.‘미래-꿈을 향하다’에선 독립운동가들과 임시정부 인사들이 남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염원하던 나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번 서울 전시는 21일에 끝난다.이어 25~5월5일 부산역광장,5월9~19일 광주 시립민속박물관 야외광장에서 진행된다.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관람료는 없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女독립운동가 김 알렉산드라 등 56명 포상

    러시아 이주 한인 2세 출신으로 연해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 알렉산드라 여사 등 56명이 훈장 등 포상을 받는다. 국가보훈처는 9일 “13일 열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제90주년 기념식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56명에게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각각 수여한다.”고 밝혔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 김 알렉산드라 여사는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로 1918년 이동휘 선생 석방 운동을 하고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을 주도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민사령에 의한 호적 등재를 끝까지 거부한 독립유공자에게는 가족증서를 수여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박연차 로비 수사] 與실세 겨누는 사정칼날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현 정권 실세 의원을 통해 실제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의 칼날이 여권 실세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추 전 비서관의 통화내역이나 진술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며 ‘실패한 구명 로비’라 판단하고 수사의 한계를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추 전 비서관이 정치권과 접촉한 사실이 로비 당사자인 한나라당 J의원을 통해 확인됨으로써 검찰의 수사는 불가피해졌다.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6일 J의원의 소환과 관련, “맡겨 달라.”고 말해 기존 입장을 바꿔 수사할 뜻이 있음을 드러냈다. 추 전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미룬 채 “드러난 의혹을 다 살펴보겠다.”는 입장에서도 수사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홍 기획관은 또 “추 전 비서관이 J의원에게 박 회장 구명을 부탁한 시점을 전후로 추 전 비서관의 통화내역을 다 확보하고 있다.”고 밝혀 수사에 진전이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추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30일 박 회장한테서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을 막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즉답을 회피하던 추 전 비서관은 열흘 뒤인 9월9일 “알아보고 힘써 보겠다.”고 구명 로비에 나설 뜻을 밝힌 뒤 박 회장한테서 2억원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현 정권의 창업공신인 J의원을 만나 박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이와 관련, J의원은 5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추 전 비서관의 부탁을 받았지만 “흘려버렸다.”고 ‘자복’했다. J의원이 느닷없이 옛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자신을 향한 검찰의 칼날을 감지한 J의원이 방어차원에서 선수를 친 것이 아니냐고 분석한다. 결국 진실은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추 전 비서관은 J의원 외에 김영삼 정부 때 친분을 쌓은 국세청 전 간부를 통해 현직을 접촉하려 했다는 얘기도 꾸준히 흘러 나왔다. 때문에 검찰이 구명 로비를 수사하는 이상 당시 세무조사를 진두 지휘했던 한상률(56) 전 청장과 박 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63) 변호사도 수사 범위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하지만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한 전 청장에 대해 “수사할 단서가 없다.”고 이례적으로 선을 분명히 그었다.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세무조사 직전까지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 변호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 이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이 전 수석은 2003년 변호사 사무실을 임대할 때 박 회장에게서 5억 3000만원을 빌렸고, 세무조사와 관련해 전화 자문을 받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63) 전 국가보훈처장이 대책팀을 꾸리고 이 변호사,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65) 세중나모 여행사 대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현 정권을 강타할 초특급 태풍이 몰려 오고 있는 셈이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박연차 노무현 정권때 무슨 특혜 받았나

    박연차 노무현 정권때 무슨 특혜 받았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지난해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준 500만달러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입은 ‘보은’ 성격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박 회장은 어떤 혜택을 받았을까. 박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시도했던 사업과 투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더스의 손’처럼 박 회장이 손을 대는 사업은 무조건 대박을 터뜨렸고, 이에 따른 투자 수익은 막대했다. 때문에 박 회장의 성공가도 뒤에 정권의 비호와 묵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의혹은 모두 검찰의 수사를 받았거나 현재 수사 선상에 있다. 박 회장은 2005년 6월 ‘묻지마 투자’로 세종증권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세종증권이 농협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폭등한 주식을 되팔아 259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물론 박 회장이 노건평(67·구속기소)씨에게 내부 정보를 들은 뒤 주식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박 회장은 이렇게 남긴 차익을 다시 태광실업의 해외법인인 홍콩 APC로 빼돌려 290억원의 소득세 등 조세를 포탈했다. 당시 세무당국이 이를 묵인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회장은 2006년 1월 고가를 제시한 경쟁자를 제치고 알짜배기 기업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했다. 박 회장 인척도 혜택을 입었다. 박 회장은 사돈인 김정복(63)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국세청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자 박정규(61·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인사검증을 부탁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은 2007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다. 또 지난 2006년 베트남 화력발전소 국책사업 수주와 관련, 태광비나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한국전력이 참가한 것이 정권 차원의 지원이란 의혹도 제기됐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측 김경수 비서관은 2일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베트남 정부가 발주한 대형공사를 따내기 위해선 오히려 정부가 현지 명예총영사를 지낼 만큼 인지도가 높은 박 회장을 앞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태광실업 계열사인 정산개발이 헐값에 사들인 뒤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400억원 가까운 차익을 남긴 경남 진해시 옛 동방유량 부지에 대한 특혜 의혹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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