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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보훈·복지회관 개관

    부산지역 보훈대상자들의 쉼터가 될 부산 보훈·복지회관이 24일 준공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23일 부산보훈청에 따르면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 동상 뒤쪽에 위치한 보훈·복지회관은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5,428㎡ 규모다. 지난 2008년 10월 착공에 들어가 이달 초 완공됐으며 85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곳에는 국가유공자 등을 위한 휴게실과 목욕탕, 물리치료실 등 다양한 복지후생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또 그동안 낡고 비좁은 기존의 보훈회관과 상이군경 복지회관 등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11개 보훈단체가 입주해 보훈가족들의 민원 처리 등이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준공식에는 김양 국가보훈처장, 허남식 부산시장,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 각 보훈단체장 및 국가유공자 등이 참석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국가안보 저해 집단엔 강력 대처해야”

    재향군인회 제33대 회장에 박세환(69·학군 1기) 전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학군(ROTC) 출신이 향군 회장에 선출된 건 처음이다. 그동안 육사 출신이 향군회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육사출신 독점 구도 깨고 당선 향군은 25일 박세직 전 회장의 별세로 실시된 재향군인회장 보궐선거에서 박세환 전 국회의원이 당선됐다고 밝혔다.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임시 전국총회에는 전국 대의원 367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접전이 예상됐으나 박 회장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217표(59.1%)를 얻어 비교적 쉽게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는 육군 야전 사령관 출신의 예비역 대장 3명이 후보로 나서 ‘표심잡기’ 경쟁이 뜨거웠다. 박 회장 외에 육사 14기로 육군 2군사령관을 역임한 민경배 전 국가보훈처장, ‘하나회’ 출신인 육사 18기의 조남풍 전 1군사령관이 출마했다. 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엄정한 중립을 지키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를 자행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전 회원이 대동단결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 향군은 새로운 도약을 통해 ‘선진향군’으로 발전하느냐, 과거에 안주해 ‘노쇠한 향군’으로 머물러 있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대한민국 안보의 큰 버팀목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글로벌 시대에 맞는 ‘젊고 힘있는 향군’ 건설을 위해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역전의 용사들의 마음의 고향인 향군의 명예에 상처를 내는 극소수의 반(反)향군 세력을 척결하고 깨끗하고 투명하게 향군을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때 전작권 환수 반대성명도 박 회장은 2006년부터 향군의 육군부회장을 역임해 인맥이 두텁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청와대 국방담당 비서관, 12사단장, 8군단장, 2군사령관 등을 거쳐 제15,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박 회장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9월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반대 성명을 발표해 당시 여권의 사퇴압력을 받기도 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여러분 계셔 선진강군으로 성장”

    “여러분 계셔 선진강군으로 성장”

    서울신문사가 초대한 국군 모범용사 60명과 배우자 등 119명이 22일 이상희 국방부장관에 대한 신고식을 시작으로 4박5일간의 초대행사 일정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날 청와대를 예방,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김백준 총무수석비서관, 김병기 국방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을 가졌다. 정 실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고 있어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여러분이 잘 버텨주시고 대통령께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강국들과 협조를 단단히 해서 국민들이 안심하게 살아가갈 수 있다. 모두 여러분의 도움”이라고 치하했다. 정 실장은 이어 “이 대통령께서 ‘군의 역할과 기여에 걸맞은 예우를 갖춰야 한다. 군의 명예를 지키고 군복입은 것을 자랑스럽게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여러분이 전방에서 고생하면 후방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선진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여러분들은 평소 투철한 사명감과 군인정신으로 국토방위에 임하고 있는 호국의 용사이며, 맡은 바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여 모든 장병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분들”이라며 “여러분과 같은 모범용사들이 계셨기에 우리 국군은 선진 강군으로 성장·발전했다.”고 강조했다. 모범용사들은 이어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를 방문한 뒤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주최한 초청만찬에 참석했다. 모범용사들은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국가정보원을 둘러보는 데 이어 25일까지 KT&G 영주제조창, 오죽헌, 설악산, 통일전망대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한편 서울신문사는 지난 1964년부터 국군 장병들의 사기와 자긍심을 고취하고,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각군에서 선발된 부사관급 이상 국군 모범용사를 초대하는 행사를 매년 주최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안장될 듯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國民葬)’으로 치러진다. 정부 분향소가 서울역 광장과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곳곳에 설치되며, 유해는 유족 뜻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4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유가족측으로부터 장의 형식을 국민장으로 하고 유가족 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하자는 의견을 전달받았다.”면서 “추모를 위해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서울에는 외국의 조문사절 등의 편의를 위해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광장에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장지는 유족의 뜻에 따라 봉하마을로 잠정 결정됐다. 국민장 거행을 위한 장의위원회 위원장은 유가족 협의과정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외에 유가족 대표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장의 기간은 23~29일까지 7일간이다. 영결식은 오는 29일 김해 진영공설운동장에서 진행되며 당일 조기를 달기로 했다. 화장 절차에 대해서는 논의가 늦어져 25일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장은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의식 가운데 하나로 전·현직 대통령이나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장의비용은 일부만 국고에서 보조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장은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장례방식이 결정됨에 따라 정부는 본격적인 장례절차 마련에 들어갔다. 행안부는 장의 부위원장을 맡을 인사로 국회부의장과 감사원장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달곤 행안부 장관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강희락 경찰청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인평 행안부 의정관 등으로 장의 집행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또 행안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작업단’을 구성, 의전·안내·운구·식장준비 등 실질적 장례 업무를 담당케 할 계획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장지가 봉하마을로 최종 확정되면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별도의 실무추진단을 구성해 안장식을 위한 제반 준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또 서울시와 협의해 옛 서울역사 앞 시계탑 부근과 신문로 시립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성북·서대문·구로·강동구 4개 구청 내 등 서울에 6곳의 분향소를 마련키로 했다. 지방에도 권역별로 수십곳 이상의 분향소를 설치한다. 해외 한국 대사관·총영사관 등의 재외공관에도 조문장소가 마련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재외공관마다 조문록을 비치, 주재국 인사 중 원하는 사람은 조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장례식 당일에는 전 재외공관에 조기를 게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거 이튿날인 24일 하루에만 봉하마을 임시 빈소에 10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몰리는 등 전국에서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도 애도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한승수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25일 오전 9시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합동 분향할 예정이며, 오전 10시엔 주한 외교사절이 분향소를 찾는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현지 특별취재팀 ●정치부 홍성규 김지훈 ●사회부 이재연 장형우 유대근 박성국 ●사회2부 김정한 한찬규 김상화 강원식 박정훈 ●사진부 김명국 도준석 정연호
  •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벽안의 이방인으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등 항일 언론투쟁의 선구자였던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식이 선생이 묻힌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8일 열렸다. 배설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영국대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배설 선생은 우리 민족에게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었다.”며 “선생께서는 생전에 ‘신문의 할 일은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워 정의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소개했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가 되던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상을 보고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이 신문사를 항일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근거지로 삼아 일본에 맞서다 일제의 탄압으로 1909년 5월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배설 선생은 임종 순간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유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재향군인회 유공자 포상

    정부는 27일 서울 성수동 향군회관에서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김영일 전 제주 향군회장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는 등 재향군인회 관계자들을 포상했다. 안승관 경북 안동 향군회장과 김동헌 6·25참전유공자회 경남지부장은 국민 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또 김동욱 향군본부 복지부장 등 5명은 국민포장, 박소봉 서울시 향군 사무처장 등 9명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또 드러난 봉하대군의 위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국세청장 인사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봉하대군’의 위세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시골에 계신 어수룩한 분”이 아니라 4대 권력기관장의 자리까지 ‘입김’을 불어 넣은 또 다른 권력자라는 의미다. ‘형님정치’는 그동안의 검찰수사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검찰은 24일 건평씨가 노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찾아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씨를 국세청장으로 앉혀 달라고 부탁했다고 공개했다. 비록 실패한 청탁이었지만 이후 김씨는 국가보훈처 차장, 국가보훈처 처장으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 인사와 관련해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박 회장에게서 백화점 상품권 1억원어치씩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건평씨는 박 회장을 등에 엎고 지역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후원자’로도 활동했다. 건평씨가 지원 대상자를 골라 “마음을 크게 먹고 도와 주라.”고 지시하면 박 회장이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 갖다주는 식이었다. 일면식이 없는 후보한테 박 회장이 수억원을 줬다는 점에서 건평씨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005년 4월 재·보궐선거 때 경남 김해갑에 출마한 이정욱 열린우리당 후보가 5억원을, 2004년 6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때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이 8억원을 이렇게 받았다. 검찰은 이런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건평씨는 ‘박연차 구명 로비’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태광실업 세무조사로 박 회장이 어려움에 처하자, 그는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연락해 “서로 대통령 패밀리는 건드리지 않기로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박 회장의 돈 2억원을 받은 추 전 비서관은 이런 이야기를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게 전했다. 그러나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은 강행됐고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건평씨도 서울구치소에서 박 회장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광용씨 형제와 함께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 로비 명목으로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 4월에 고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한테서 사장직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배설선생 “나 죽을지라도 한국 동포를…”

    배설선생 “나 죽을지라도 한국 동포를…”

    구한말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선생과 함께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을 한 배설(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이 서거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 된다. 서울신문사와 사단법인 배설 선생기념사업회는 24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천상기 경기대 초빙교수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날 대회에선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가 배설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이어 이병국 한서대교수, 황우권 대진대 학장, 안종묵 청주대 교수, 이용원 서울신문 기획위원이 토론을 한다. 개회식에선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이 축사를 할 예정이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배설은 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일본 고베에 와서 머물다 1904년 3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 특별 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곧 회사를 떠나 같은 해 7월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Korea Daily News’를 창간, 을사보호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고종황제와 우국지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의 계속되는 언론 탄압과 외교 마찰을 우려한 영국 정부의 압력, 신문사 간부진의 구속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1909년 5월1일 37세의 나이로 숨졌다. 배설은 숨을 거두기 전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정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배설은)국운이 다하여 나라가 위급하던 때에 신문을 통해서 민족진영의 항일운동을 지원했던 항일 언론인이었다.”고 업적을 기렸다. 배설은 신문을 항일투쟁의 발판으로 삼아 일본의 침략을 통렬히 비판했고, 신문사를 국채 보상운동의 본거지로 활용했다. 1907년 9월 무렵에는 국한문, 한글, 영문 세가지 신문의 발행부수를 합쳐 1만부가 넘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에서 발행되는 여타 신문 전체의 부수를 합친 것보다 배가 넘는 것이었다. 학술대회에 이어 5월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추모기념대회가 열린다. 주한영국대사관과 배설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서울신문사 등이 후원한다.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김형오 국회의장, 김양 보훈처장, 김영일 광복회장 등이 참석한다. 이 자리에선 배설 선생의 자유언론사상을 기리고자 제정된 ‘배설 언론상’시상식이 함께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정상문, 박연차 돈 받고 ‘사업편의 봐주기’ 로비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정상문, 박연차 돈 받고 ‘사업편의 봐주기’ 로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일맥 상통한다. 고향 친구로 40년 지기인 데다 4년간 청와대에서 함께 일한 터라 검찰은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건넨 100만달러(2007년 6월)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을 포괄적 뇌물죄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때문에 22일 검찰이 밝힌 정 전 비서관의 ‘범죄 사실’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겨눈 칼날을 가늠할 수 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서 상품권 1억원어치(2005년 1월)와 현금 3억원(2006년 8월)을 받고 그를 위해 열심히 뛴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해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씨가 2004년 중부지방국세청장, 2005년 6월 국가보훈처 차장, 2007년 4월 국가보훈처 처장에 임명되도록 힘썼다는 것이다. 2006년 박 회장이 경남은행을 인수하려고 할 때 경제부처 공무원을 소개하고, 30억달러 규모의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수주할 때 경제정책 비서관에게 영향력을 행사, 외교부 등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도록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과 대통령간 연락 또는 만남을 주선하는 소통업무를 담당했다.”고 밝혀 정 전 비서관의 ‘편의 봐주기’가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비쳤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국정 활동에 들어가는 예산인 특수활동비를 현금을 보관하며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시로 집행했다. 정 전 비서관은 쓰지 않고 남은 ‘불용액’을 국고로 반납하지 않고, 지인 3명의 명의를 빌려 주식과 무기명 채권을 구입하고 서울 서초동 상가를 빌렸다. 2005년에 2억원, 2006년에 7억 5000만원, 2007년에 3억원을 6차례에 걸쳐 빼낸 것으로 검찰은 확인했다. 이 금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 전 비서관이 4년간 청와대에 근무할 때 집행된 청와대 특수활동비가 900억원에 달하고, 그 절반이 대통령 몫이었기 때문이다. 2006년에 4차례에 걸쳐 횡령한 정 전 비서관이 집권 말기인 2007년과 2008년에 더 큰 ‘도둑질’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전 비서관의 5개 차명계좌를 찾아낸 검찰도, 또 다른 차명계좌에 은닉한 돈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전시회 개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회가 1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서울신문사·사단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전쟁기념관이 후원하는 전시회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는 임시정부가 27년간 국내외에서 펼쳤던 독립운동의 사료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다. 이날 오후 전시회 개막식에는 서울신문사 이동화 사장,한나라당 김성식 의원,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양 국가보훈처장,함세웅 신부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전시는 ‘독립-꿈을 품다’ ‘주권-꿈을 엮다’ ‘미래-꿈을 향하다’ 등 3가지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독립-꿈을 품다’에선 1919~1945년까지 활동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투쟁사를 연대별로 소개한다.‘주권-꿈을 엮다’에선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희생을 마다않던 선열들을 만날 수 있다.‘미래-꿈을 향하다’에선 독립운동가들과 임시정부 인사들이 남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염원하던 나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번 서울 전시는 21일에 끝난다.이어 25~5월5일 부산역광장,5월9~19일 광주 시립민속박물관 야외광장에서 진행된다.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관람료는 없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연차 로비 수사] 與실세 겨누는 사정칼날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현 정권 실세 의원을 통해 실제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의 칼날이 여권 실세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 “추 전 비서관의 통화내역이나 진술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며 ‘실패한 구명 로비’라 판단하고 수사의 한계를 분명히 해왔다. 그러나 추 전 비서관이 정치권과 접촉한 사실이 로비 당사자인 한나라당 J의원을 통해 확인됨으로써 검찰의 수사는 불가피해졌다.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6일 J의원의 소환과 관련, “맡겨 달라.”고 말해 기존 입장을 바꿔 수사할 뜻이 있음을 드러냈다. 추 전 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미룬 채 “드러난 의혹을 다 살펴보겠다.”는 입장에서도 수사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홍 기획관은 또 “추 전 비서관이 J의원에게 박 회장 구명을 부탁한 시점을 전후로 추 전 비서관의 통화내역을 다 확보하고 있다.”고 밝혀 수사에 진전이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추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30일 박 회장한테서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을 막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즉답을 회피하던 추 전 비서관은 열흘 뒤인 9월9일 “알아보고 힘써 보겠다.”고 구명 로비에 나설 뜻을 밝힌 뒤 박 회장한테서 2억원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현 정권의 창업공신인 J의원을 만나 박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이와 관련, J의원은 5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추 전 비서관의 부탁을 받았지만 “흘려버렸다.”고 ‘자복’했다. J의원이 느닷없이 옛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자신을 향한 검찰의 칼날을 감지한 J의원이 방어차원에서 선수를 친 것이 아니냐고 분석한다. 결국 진실은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추 전 비서관은 J의원 외에 김영삼 정부 때 친분을 쌓은 국세청 전 간부를 통해 현직을 접촉하려 했다는 얘기도 꾸준히 흘러 나왔다. 때문에 검찰이 구명 로비를 수사하는 이상 당시 세무조사를 진두 지휘했던 한상률(56) 전 청장과 박 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63) 변호사도 수사 범위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하지만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한 전 청장에 대해 “수사할 단서가 없다.”고 이례적으로 선을 분명히 그었다.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세무조사 직전까지 민정수석을 지낸 이종찬 변호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 이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이 전 수석은 2003년 변호사 사무실을 임대할 때 박 회장에게서 5억 3000만원을 빌렸고, 세무조사와 관련해 전화 자문을 받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63) 전 국가보훈처장이 대책팀을 꾸리고 이 변호사,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65) 세중나모 여행사 대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현 정권을 강타할 초특급 태풍이 몰려 오고 있는 셈이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박연차 노무현 정권때 무슨 특혜 받았나

    박연차 노무현 정권때 무슨 특혜 받았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지난해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준 500만달러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입은 ‘보은’ 성격이라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박 회장은 어떤 혜택을 받았을까. 박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시도했던 사업과 투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더스의 손’처럼 박 회장이 손을 대는 사업은 무조건 대박을 터뜨렸고, 이에 따른 투자 수익은 막대했다. 때문에 박 회장의 성공가도 뒤에 정권의 비호와 묵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 이런 의혹은 모두 검찰의 수사를 받았거나 현재 수사 선상에 있다. 박 회장은 2005년 6월 ‘묻지마 투자’로 세종증권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세종증권이 농협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폭등한 주식을 되팔아 259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물론 박 회장이 노건평(67·구속기소)씨에게 내부 정보를 들은 뒤 주식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박 회장은 이렇게 남긴 차익을 다시 태광실업의 해외법인인 홍콩 APC로 빼돌려 290억원의 소득세 등 조세를 포탈했다. 당시 세무당국이 이를 묵인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회장은 2006년 1월 고가를 제시한 경쟁자를 제치고 알짜배기 기업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했다. 박 회장 인척도 혜택을 입었다. 박 회장은 사돈인 김정복(63) 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국세청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자 박정규(61·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인사검증을 부탁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은 2007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다. 또 지난 2006년 베트남 화력발전소 국책사업 수주와 관련, 태광비나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한국전력이 참가한 것이 정권 차원의 지원이란 의혹도 제기됐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측 김경수 비서관은 2일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베트남 정부가 발주한 대형공사를 따내기 위해선 오히려 정부가 현지 명예총영사를 지낼 만큼 인지도가 높은 박 회장을 앞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태광실업 계열사인 정산개발이 헐값에 사들인 뒤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400억원 가까운 차익을 남긴 경남 진해시 옛 동방유량 부지에 대한 특혜 의혹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박연차회장 로비리스트 수사] 김혁규 천신일 노건평…세명의 중개인

    [박연차회장 로비리스트 수사] 김혁규 천신일 노건평…세명의 중개인

    세간에 떠도는 ‘리스트’는 힘을 잃었다. 누가 박연차(64·구속기소) 태광실업 회장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는지, 그가 검찰에 불려 나오기 전까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의 돈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스며드는 데 가교 역할을 한 ‘중개인’들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사는 김혁규(70) 전 경남도지사. 김 전 지사는 박 회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달러를 전달한 루트로 알려진 미국 뉴욕 맨해튼의 K음식점 곽모(60)씨를 소개시켜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김 전 지사는 친노(親) 386들이 대거 포진한 신의정연구센터(의정연) 상임고문으로서, 이 모임에 속한 의원들에게 박 회장을 소개시켜 주고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2003년 12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도지사에서 물러날 때까지 박 회장과 한나라당 인사들과의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죽마고우이자 현 정권 탄생에 기여한 천신일(66) 세중나모회장이 박 회장과 현 정권의 중개인으로 도마에 올랐다. 천 회장은 박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위해 추부길(53) 전 청와대 홍보비서관을 박 회장에게 소개시켜 준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천 회장은 또 베트남 명예총영사를 맡고 있는 박 회장이 지난해 3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개최한 베트남 국회의장 환영만찬에서 당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인 한나라당 박진(53·서울 종로) 의원에게 축사를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행사가 끝난 뒤 박 회장이 박 의원에게 돈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구속된 이정욱(60)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장인태(58) 전 행정자치부 2차관 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67·구속)씨가 박 회장에게 소개시켜 줬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지역 어른’으로 통했던 건평씨는 앞으로 이어질 수사과정에서 종종 등장할 전망이다. 검찰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고 있으나 박 회장의 부산·경남 지역 검찰·국세청·경찰 등의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로비의 중개인으로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63) 전 국가보훈처장을 꼽고 있다. 지난 2003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 전 처장은 지역 유력인사들과 박 회장의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공직자 재산공개-청와대·행정부] 눈에 띄는 재산목록

    27일 공개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에는 그림이나 보석, 골프 회원권 같은 재산도 눈에 띄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인 김윤옥 여사 명의로 1.07캐럿짜리 다이아몬드(500만원 상당)를 신고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소녀상과 십자고상 등 조각품 5점(5500만원)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천호 인천시의회 제2 부의장은 도자기와 그림 등 예술품을 39점 소유하고 있었으며, 총 시가로는 10억 4700만원에 달했다. 김석조 부산시의회 부의장은 본인과 배우자, 장남 명의로 벤츠와 제네시스 등 모두 11대의 승용차를 신고했다. 설동근 부산시 교육감은 선박 2척(2750만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최병효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는 서양화 10점(5200만원)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장정은 경기도의회 의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예작품(4000만원)을, 이용준 외교부 차관보는 오원 장승업의 병풍(가격 미상)을 각각 신고했다.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신고한 흑진주(210만원), 이헌석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의 천연루비반지(1000만원)·자수정반지(300만원) 등도 눈에 띄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전국플러스] 15일 3·15의거 49주년 기념 행사

    사단법인 3·15의거기념사업회(회장 백한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인 3·15의거 제49주년을 맞아 15일 오전 10시 국립 3·15민주묘지에서 김양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는다. 김 처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식 메시지를 대독한다. 17일 오후 7시30분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국가기념일 제정 기원 음악회’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2·8독립선언 90주년 7일 도쿄서 기념식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자 재일 유학생들이 도쿄에서 독립을 선언,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독립선언 제90주년 기념식이 7일 오전 11시 재일본 한국YMCA(이사장 김용성) 주관으로 도쿄 한국 YMCA에서 열린다. 기념식에는 정부대표로 김양 국가보훈처장을 비롯, 김영일 광복회장, 권철현 주일대사, 허맹도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중앙본부 부단장 등 주요 인사와 광복회원, 교민 등 25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2·8독립선언은 한국 학생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재일 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최팔용, 송계백 선생 등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하고 유학생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919년 2월8일 도쿄 한복판에서 조국 독립을 세계 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2·8선언은 국내 3·1운동의 도화선이 됐으며, 1920년대 청년·학생의 항일투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기고] 2·8독립선언 정신으로 국민통합을/김양 국가보훈처장

    [기고] 2·8독립선언 정신으로 국민통합을/김양 국가보훈처장

    올해로 2·8독립선언 90주년을 맞는다. 우국충정에 불타는 젊은 재일 유학생들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해 침체의 늪에 빠져들어 가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 선열들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 2·8독립선언을 선포하기까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이 선언을 전후해 선포한 독립선언서에는 ‘대한독립선언서’, 겨레가 하나 돼 외쳤던 ‘3·1독립선언서’가 있다. 대한독립선언서는 음력 1918년(무오년) 11월에 선포했다고 해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하며, 조선의 독립을 최초로 선언한 문건이다. 이는 직후에 이어진 2·8독립선언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2·8독립선언은 일명 ‘조선청년독립선언’이라고도 한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8년 1월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1919년 2월8일 수백명의 도쿄 재일 유학생들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투쟁의 의지를 선언했다. 적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의 1인까지 영원한 혈전을 불사한다는 대일 항쟁의 자세를 밝혔다. 민족의 자주민임과 조선의 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린 젊은 학도들의 드높은 기상과 굽히지 않는 정신은 국권회복을 향한 애국청년들의 장쾌한 거사라 하겠다. 선열들은 독립선언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 침략 일본에 대한 항쟁의지, 그리고 평화와 국제정의, 민주주의에 대해 강경한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2·8독립운동 정신이야말로 세계화를 지향하는 오늘날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라 하겠다. 2·8독립운동은 거족적 3·1운동의 도화선이 됐으며, 학생 항일투쟁의 효시가 됐다.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도 됐다. 만주 일대에는 수많은 독립운동단체가 조직돼 무장항일투쟁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2·8선열들이 지녔던 그 투철한 민족자결의 정신과 평화공존의 이상이 오늘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특히 한·일간의 관계 속에서 다시 구현돼야 할 우리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다. 정부는 2·8독립운동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인 재일본 한국YMCA에 2·8독립선언기념실을 마련하고 지난해 현판식을 가졌다. 또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조선기독교청년회관 자리인 도쿄의 니시간다 네거리에 기념비를 건립해 독립운동의 역사적 장소임을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전역에 분포한 독립운동사적지에 대한 보존·복원사업지원으로 현지 동포사회 결집과 화합의 구심점으로 활용해 나갈 것이다. 이번 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시기다. 지난 세기의 역사적 질곡에서 벗어나 민족통합과 국가발전의 새 시대를 이뤄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의 국가 목표가 ‘국권회복’과 ‘조국근대화’였다면 지금은 바로 통일된 세계중심국가, 선진일류국가 건설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대내적으론 각계각층의 갈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외적으론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 대립과 국제사회의 무한경쟁을 헤쳐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당면한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과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을 결속시켜 국민통합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발전을 이뤄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선 국권을 회복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계승·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2·8선열들의 용기와 열정을 거울삼아 우리 내부의 불신과 갈등을 벗어버리고 선진일류국가 건설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야 하겠다. 김양 국가보훈처장
  • ‘장한 어머니상’ 19명 선정

    대한민국 전몰군경 미망인회(회장 유영숙)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제30회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 19명을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장한 어머니상’은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남편을 나라에 바치고 역경 속에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전몰군경 미망인들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1979년 제정됐다. 올해는 1973년 1월 베트남 투이코아 전투에서 남편 유재문(당시 육군 백마부대 29연대 대대장) 대령을 잃은 뒤 행상, 보모 등을 하며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허필순(70·서울 중랑구)씨 등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전몰군경 미망인회는 1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 대강당에서 김양 국가보훈처장과 강달신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상식을 개최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기고] 현충일 아침에 생각한다/김양 국가보훈처장

    [기고] 현충일 아침에 생각한다/김양 국가보훈처장

    호국·보훈의 달 6월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무엇을 딛고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었나를 생각해 보는 달이다. 우리에게는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외세의 침략으로 불안에 떨었던 때가 있었으며,6·25전쟁으로 더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던 때가 있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만주의 거친 벌판이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름 없는 산기슭에서 장렬히 산화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와 번영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흘린 땀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부작용, 즉 도덕성의 상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급격한 서구화에 따른 정신적 빈곤 속에서 이기주의 만연과 세대, 계층간 갈등의 벽이 높아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금주의 풍조와 사회적 통합 해이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국가보훈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가보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애국지사나 호국용사들의 위상이 바로 서지 않고는 국민의 가치관과 사회정의가 바로 설 수 없음은 너무 자명한 이치다. 이분들이 국권회복과 국가수호의 주인공으로서 응당히 평가받고,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영예로운 것으로 존경 받을 때 국가안보가 튼튼해지고 우리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선진국들이 하나같이 확고한 보훈의식과 발달된 보훈제도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로 광복의 기쁨을 안은 지 63년,6·25전쟁 발발 5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나라없는 설움과 전쟁의 참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다.58세의 초로가 6·25전쟁 발발 당시 겨우 태어났다. 민족의 비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6·25를 단지 ‘역사’로만 객관화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이산가족과,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상군경과 유가족들이 많이 있다. 그동안 많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발전 수준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국가보훈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약해지고 국민들의 호국·보훈의식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정신이 없는 민족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세계의 역사 속에서 보아왔다. 그리고 한 민족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민족정신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는 것은 국가라는 삶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생존은 곧 나의 생존이며, 그 무엇도 이 생존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보훈정신을 잊지 않는 국민만이 새로운 시대가 주는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현충일 53주년을 맞는다. 전에는 현충일이면 국민들이 경건하게 머리 숙여 호국영령들께 묵념도 함께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틀만 연휴가 되면 필리핀이나 호주로 골프여행을 계획하고 행락 일정을 세우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현충일에는 국립묘지나 가까운 현충탑을 찾아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져보자. 주위의 보훈가족을 찾아보고 조국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면 더욱 좋겠다. 김양 국가보훈처장
  • 항일 언론인 배설 선생 100주기 추모식

    항일 언론인 배설 선생 100주기 추모식

    구한말 박은식·양기탁·신채호 선생과 함께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을 한 배설(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의 100주기 추모식이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 1묘역에서 열린다. 광복회와 배설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 한국언론재단 등이 후원한다. 행사는 배설 선생 항일 언론투쟁 보고와 추념사, 진혼무, 헌화 등 순서로 진행된다. 진채호 기념사업회장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김국주 광복회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김명서 서울신문사 상무이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배설 선생은 1904년 3월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지 특별 통신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일제의 만행을 보다 못해 회사를 사직하고 같은 해 7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 일제의 국권 찬탈 음모를 고발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당시 고종황제와 우국지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일제의 계속되는 언론 탄압과 외교 마찰을 우려한 영국 정부의 압력, 신문사 간부진의 구속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1909년 5월1일 37세의 나이로 숨졌다.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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