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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용공 아닌 노동자” …물타기 나선 아베 정부

    “징용공 아닌 노동자” …물타기 나선 아베 정부

    강제 노동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한 일본 아베 정부가 징용에 강제성이 없었다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나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국회에서 기존의 ‘징용공’이라는 단어 대신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의 국가총동원령법의 국가징용령에는 모집과 관 알선, 징용이 있었는데, 이번 재판의 원고는 모집에 응했다고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전날 관련 부처들에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대법원 판결의 원고 4명이 형식상 ‘징용’이 아닌 ‘모집’에 의해 일본에 건너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징용 피해자들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고인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은 일본 정부의 통제 하에 노동자를 모집을 했다. 당시는 군국주의 일제의 압제가 극에 이른 상황이었기에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것은 몰염치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원고 이춘식 씨는 대전 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돼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사실상 감금 당한 상태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처음 6개월간은 외출도 하지 못했고 임금은 저금해준다는 말만 듣고 구경도 못했다. 헌병들은 보름에 한번 노역장에 와서 인원을 점검했다. 상황은 야하타 제철소에서 노역한 다른 원고 김규수 씨도 마찬가지였다.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돼 일본에 온 그는 일체의 휴가나 개인 행동을 허락받지 못한 채 임금도 못받고 노역을 했다. 그는 도주하다 발각돼 7일간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오사카 제철소에서 일한 여운택 씨와 신천식 씨는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된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했지만 실제로는 죽도록 노역만 해야 했다. 한달에 1~2회 외출만 허용됐고 2~3엔의 용돈만 지급받고 월급은 받지 못했다. 원고들의 재판을 지원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아베 총리의 발언이 대내외적으로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징용 피해자들이 실제 노역 현장에서 겪은 일은 공고 내용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며 일본 정부가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기는 중국] 아이 학대해 식물인간 만든 계모, 징역 16년 논란

    계모의 끔찍한 학대에 6살 남자아이가 1년 7개월째 혼수상태에 빠졌다. 최근 중국 법원은 계모 손 씨에게 징역 16년을 구형했지만,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계모의 학대가 드러난 것은 지난해 3월 말 의식불명에 빠진 아이가 웨이난시(渭南市) 제일병원에 실려 오면서다. 심장이 멈춘 상태였던 아이는 응급조치를 받고 살아났다. 하지만 의사들은 아이의 신체 곳곳에서 학대받은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즉각 수사에 나선 경찰은 계모 손 씨를 체포했다. 아이는 지난 2015년 12월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함께 지냈다. 양육권 소송에서 진 친모는 전남편이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면서 더는 아들을 볼 수 없었다. 지난해 남편은 손 씨와 재혼했다. 하지만 장기간 외지로 나가 일을 해야 했고, 아이는 오롯이 손 씨의 손에 맡겨졌다. 이때부터 손 씨의 끔찍한 아동학대가 시작됐다. 조사 결과, 손 씨는 지난해 3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무릎을 꿇게 하고, 손, 발을 묶은 뒤 몽둥이로 구타했다. 또 아이가 침대보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이의 머리를 수차례 내려쳐 아이를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었다. 아이가 병원에 실려 왔을 당시 아이는 심장과 호흡이 멎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가망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아이는 5시간의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났다. 하지만 아이는 두개골의 75%가 손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다. 또한 두 눈의 망막 분리, 2개의 갈비뼈 골절, 치아 손실 등 온몸이 상처투성인 채였다. 이후 아이는 580일 동안 반혼수 상태에 빠져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병원에서는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손 씨는 “아이가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손 씨에게 고의상해죄와 학대죄를 적용해 유기징역 16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아이의 변호사는 검찰 항소나 상급법원에 심판 감독 절차를 신청해 손 씨가 무기징역 이상의 형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항소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 사건이 전해지면서 끔찍한 학대를 받은 아이에 대한 동정과 가해자에 대한 형벌이 가볍다는 비난 여론이 뜨겁게 일고 있다. 아이의 치료비를 위해 7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281만 위안(4억5900만원)을 기부했다. 지금은 친모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사진출처=이투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계엄군 총 겨누며 집단 성폭행”…38년간의 악몽

    “계엄군 총 겨누며 집단 성폭행”…38년간의 악몽

    여고생·주부… 10~30대 여성 짓밟아 피해자 “얼룩무늬 보면 울렁” 호소 임산부 성추행·속옷차림 성고문도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10~30대 여성을 총으로 위협해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임산부 성추행과 성고문도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38년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다. 31일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가 합동으로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은 모두 17건이며, 성추행과 성고문, 목격담 등이 다수 발견됐다. 대다수의 피해자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2인 이상의 군인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은 주로 민주화운동 초반(5월 19~21일) 발생했다. 장소는 초기 광주 시내(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에서 중·후반엔 광주 외곽지역(광주교도소 인근, 상무대 인근)으로 바뀌었다. 공동조사단은 “범행 장소가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 속 병력 배치와 부대이동 경로와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면서 “특히 피해자 진술과 당시 작전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일부 피해 사례는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당시 성폭행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으며, 다른 피해자는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췄다”며 줄곧 제대로 된 치료 없이 고통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대부분은 과거에 심리치료 등을 받은 이력이 있으며, 지금까지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치료가 필요한 2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심리치료센터로 연계해 추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로 특정되진 않았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진술도 나왔다. 한 목격자는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태워져 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으며, 사망한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교도소나 상무대(군부대) 등으로 연행된 여성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 속옷 차림으로 성고문 등에 노출됐다. 일부 여성 피해자들은 대검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지난 5월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을 받다가 석방 전날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모씨도 성폭행 피해 사례로 인정받았다. 당시 김씨의 증언은 공동조사단이 출범한 계기가 됐다. 공동조사단에 직접 접수된 피해 사례는 모두 12건이었다. 이 중 상담 종결된 2건을 제외한 10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다. 7건이 성폭행이었으며, 1건 성추행, 2건은 관련 목격 진술이었다.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서는 성폭행 12건, 여성 인권침해 행위 33건이 발견됐다. 그 외 5·18민주화운동 자료총서(61권)와 광주오월민주항쟁사료전집(500명 구술 채록), 광주지검 검시조서 등에서 성폭행 4건, 유방과 성기 등에 자창(찌른 상처) 3건, 고문 2건, 구타와 성적 위협 2건을 비롯한 다수의 목격 증언이 확인됐다.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 대표는 “5·18 당시 성폭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고, ‘광주 청문회’ 때도 증언했지만 한 번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조사를 계기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들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조사 결과를 추후 출범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인계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5·18 특별법에 조사 범위를 성폭력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진상규명조사위에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스무살 그 꽃다운 나이에 내 인생은 멈췄다”

    “스무살 그 꽃다운 나이에 내 인생은 멈췄다”

    여고생·주부… 10~30대 여성 짓밟아 피해자 “얼룩무늬 보면 울렁” 호소 임산부 성추행·속옷차림 성고문도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10~30대 여성을 총으로 위협해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임산부 성추행과 성고문도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38년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다.31일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가 합동으로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은 모두 17건이며, 성추행과 성고문, 목격담 등이 다수 발견됐다. 대다수의 피해자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2인 이상의 군인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은 주로 민주화운동 초반(5월 19~21일) 발생했다. 장소는 초기 광주 시내(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에서 중·후반엔 광주 외곽지역(광주교도소 인근, 상무대 인근)으로 바뀌었다. 공동조사단은 “범행 장소가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 속 병력 배치와 부대이동 경로와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면서 “특히 피해자 진술과 당시 작전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일부 피해 사례는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당시 성폭행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으며, 다른 피해자는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췄다”며 줄곧 제대로 된 치료 없이 고통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대부분은 과거에 심리치료 등을 받은 이력이 있으며, 지금까지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치료가 필요한 2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심리치료센터로 연계해 추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로 특정되진 않았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진술도 나왔다. 한 목격자는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태워져 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으며, 사망한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교도소나 상무대(군부대) 등으로 연행된 여성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 속옷 차림으로 성고문 등에 노출됐다. 일부 여성 피해자들은 대검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지난 5월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을 받다가 석방 전날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모씨도 성폭행 피해 사례로 인정받았다. 당시 김씨의 증언은 공동조사단이 출범한 계기가 됐다. 공동조사단에 직접 접수된 피해 사례는 모두 12건이었다. 이 중 상담 종결된 2건을 제외한 10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다. 7건이 성폭행이었으며, 1건 성추행, 2건은 관련 목격 진술이었다.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서는 성폭행 12건, 여성 인권침해 행위 33건이 발견됐다. 그 외 5·18민주화운동 자료총서(61권)와 광주오월민주항쟁사료전집(500명 구술 채록), 광주지검 검시조서 등에서 성폭행 4건, 유방과 성기 등에 자창(찌른 상처) 3건, 고문 2건, 구타와 성적 위협 2건을 비롯한 다수의 목격 증언이 확인됐다. 집계된 성폭행 23건 가운데 6건이 중복이었다.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 대표는 “5·18 당시 성폭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고, ‘광주 청문회’ 때도 증언했지만 한 번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조사를 계기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들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조사 결과를 추후 출범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인계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가해자 조사권이 없는 데다 활동 기간도 짧아 모든 사례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면서 “5·18 특별법에 조사 범위를 성폭력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진상규명조사위에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일본 ‘할로윈의 성지’ 도쿄 시부야, ‘광란의 헬로윈’ 초비상

    일본 ‘할로윈의 성지’ 도쿄 시부야, ‘광란의 헬로윈’ 초비상

    ‘무수한 인파가 빚어내는 혼잡함’ 자체가 볼거리인 일본 최고의 번화가 도쿄 시부야가 31일 할로윈 축제를 맞아 질서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도쿄 치안을 담당하는 경시청은 다양한 캐릭터 분장을 하고 축제 기분에 들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림에 따라 각종 범죄와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비상경계에 들어갔다. 이미 지난 주말 한차례 ‘광란의 밤’이 시부야를 휩쓸고 간 터여서 일본 할로윈의 중심이 된 시부야에 우려의 시선이 꽂히고 있다.지난주 주말인 27일 밤부터 시부야는 다양한 분장을 하고 나온 젊은이들로 극도의 혼잡이 빚어졌다. 분위기에 취한 상태에 음주가 더해지면서 28일 오전 1시쯤에는 일부 사람들이 ‘시부야 센터’ 거리에서 트럭 1대를 옆으로 넘어뜨리는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경찰은 기물손괴 혐의로 사건을 조사 중이다. 또다른 20대들은 식당앞 자동판매기에 물을 부어 기계를 망가뜨렸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수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거리에서 사람을 때리거나 여성의 스커트 안을 몰래 촬영한 혐의 등으로 5명을 체포했다.지난 주말과 같은 상황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시청은 지난 30일 밤부터 시위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대규모 기동경찰을 시부야 일대에 배치했다. 교통통제 계획을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 테러에 대비하는 부대까지 모처에 대기시키고 있다. 한번에 건너는 사람의 수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는 정복 경찰관들이 몇m 간격으로 배치됐다. 이들은 지나는 사람들에게 확성기로 “구타나 접촉 등 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안내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시부야 전철역과 스크램블 교차로 등을 중심으로 할로윈 분장을 한 젊은이들이 대거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었다. 이후 시부야의 할로윈 축제 사진이 페이스북 등 SNS에 올라오고 TV에서도 관심을 보이자 이 지역의 혼잡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주최측이 있어 행사를 이끄는 다른 지역의 할로윈 축제와 달리 시부야에 모이는 사람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오는 것이어서 딱히 전체 흐름을 통제할 주체가 없다. 경시청은 이 점 때문에 시부야에서 우발적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경시청 간부는 “모두들 예절을 지키면서 행사를 즐겼으면 좋겠다”며 “불법 행위가 있으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보스턴의 악명 높은 갱스터 화이티 벌저 이감 직후 주검으로

    보스턴의 악명 높은 갱스터 화이티 벌저 이감 직후 주검으로

    미국 보스턴을 무대로 암약했던 갱스터 제임스 ‘화이티’ 벌저(89)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연방 교도소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동료 수감자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주의 감옥에서 이감된 30일 아침(현지시간) 1385명의 중죄인들이 수용된 해즐턴 교도소의 집중 감시시설에 수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진 채 발견됐다. 살인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연방수사국(FBI)의 16년 집요한 추적 끝에 2011년 캘리포니아주에서 검거된 그는 2년 뒤 11건의 살인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었다. 보스턴 남부 윈터힐 갱조직의 리더였던 벌저는 여러 편의 영화 줄거리를 제공한 것으로도 이름 높다. 자니 뎁이 주연한 ‘블랙 매스’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이 주연해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한 ‘디파티드’가 모두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보스턴 언론들은 그가 이감 직후 동료 수감자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며 마피아에 연결된 수감자들이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연방교정국은 벌저를 왜 이감하도록 결정했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일간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벌저는 애리조나주의 한 교도소에서 자신을 카운셀링한 여성 정신과 상담의와 너무 가까워졌다는 판단에 따라 플로리다주 교도소로 이감된 적이 있다. 아일랜드계 가정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으로 1929년에 태어난 그는 아일랜드 카톨릭의 영향력 아래 양육됐지만 샴록이란 갱조직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자동차를 훔치다가 나중에 은행을 털었다. 10대 때 청소년 비행으로 처음 체포됐다. 그 뒤 돈 갈취, 도박, 고문, 마약 거래와 살인 등 온갖 범죄에 발을 들였다. 무장 강도 및 납치 혐의로 1959년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알카트라스에 수감됐다. 그는 그곳을 특히 좋아해 FBI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인데도 여자친구와 함께 그곳을 관광하며 버젓이 죄수복을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무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일화도 전해진다. 두 여성을 목졸라 살해한 적도 있고 기관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리기 전에 몇 시간째 남성을 고문한 적도 있었다. 또 유난히 밝은 자신의 은발 머리 때문에 붙여진 별명 화이티를 싫어해 지미라고 불리길 원했다. 다른 갱조직에 대한 정보를 FBI 요원에게 흘려주고 대신 자신의 활동을 보장받는 교활함도 보였다. 동생 윌리엄은 1978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의장이 되고 나중에 매사추세츠 대학 총장에 오를 정도로 지역사회에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동생이 형의 범죄 행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당국에 고변하지 않았던 것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1995년부터 FBI의 추적이 시작돼 무려 16년을 숨어 지내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검거됐는데 여자친구 캐서린 크레이그와 함께 숨어 다닌 것으로 드러나 그녀는 미네소타주 여자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국 정부는 그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들에게 200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2015년 그는 역사 공부를 위해 편지를 보내온 학생들에게 쓴 답장을 통해 “인생을 낭비했고 어리석게 흘려 보냈다”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집단 성폭행 확인..“진상규명위 조속히 출범해야”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집단 성폭행 확인..“진상규명위 조속히 출범해야”

    정부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의 성폭행 피해 내용 17건을 발견한 가운데 향후 출범 예정인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관해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인권침해행위에 관한 추가조사를 진행한다.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가 합동으로 출범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31일 활동을 종료하고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17명을 비롯해 연행·구금된 피해자 및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침해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이 지난 6월부터 10월 말까지 피해 접수와 면담, 광주시 보상심의자료, 5·18 관련 자료 분석 등으로 통해 중복된 사례를 제외한 17건의 성폭행 피해사례를 확인한 결과 성폭행은 시민군이 조직화되기 전인 민주화운동 초기(5월 19~21일)에 광주 시내에서 주로 발생했다. 피해자의 나이는 10~30대, 직업은 학생, 주부, 생업 종사 등 다양했다.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착용한 2명 이상의 군인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증언 중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울렁거리고 힘들다”,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도 말할 수 없었다”,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상처가 크다” 등 트라우마(정신적 후유증)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공동조사단을 통해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12건이었다. 이 가운데 상담종결된 2건을 제외한 10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으며 7건은 성폭행, 1건은 성추행, 2건은 관련 목격 진술이었다. 사건 발생 장소는 초기에 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 광주 시내였으며 중후반엔 광주 교도소 인근, 상무대 인근으로 광주 외곽 지역이었다. 공동조사단은 당시 계엄군 상황일지를 통해 분석한 결과 병력배치와 부대 이동 경로과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선 성폭행 12건과 연행·구금 시 성적 가혹행위 등이 33건으로 나타났다. 구타나 욕설 등 일반적인 폭력 행위는 검토 범위에서 제외했다. 다만 광주시 자료 상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열람이 제한돼 면담 등 추가적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향후 진상조사위의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소장중인 자료총서(61권)과 발간물(22권), 500여명의 구술자료 외에 보고서, 방송·통계자료 등을 분석해 성폭행 4건 등 총 12건의 직접적인 피해사례도 발견했다. 12건 중 4건은 성폭행이었으며, 3건은 유방·성기 등이 자창, 2건은 상무대 등에서의 고문, 3건은 구타 및 성적 위협과 관련된 것이었다. 한편 공동조사단은 피해자 면담과정에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5·18에 대한 이해와 상담경험을 동시에 가진 전문가를 대동했다. 피해자가 원하면 전문 트라우마 치유기관에 심리치료를 연계하기도 했다. 공동조사단은 5·18 특별법의 조사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하도록 법 개정을 촉구했으며, 진상규명위에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별도의 소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진상규명위의 출범이 늦어지고 있어 그 전까진 광주시 통합신고센터(062-613-5386)에서 신고 접수를 받는다. 인권위는 피해자 면담 조사를, 여가부는 피해자 심리치료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씨줄날줄] 매 맞는 아이돌/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매 맞는 아이돌/이순녀 논설위원

    만 열다섯 살에서 열여덟 살. 2016년 11월에 데뷔한 보이밴드 ‘더 이스트라이트’ 멤버 6명은 모두 미성년자다. 어린 나이지만 ‘동방의 빛’이란 이름으로 뭉치기 이전에도 저마다 기타, 드럼, 베이스 연주와 보컬에서 두각을 나타낸 촉망받는 ‘영재 아이돌’이었다. 김건모, 신승훈, 박미경, 클론 등 쟁쟁한 톱 가수들을 키운 제작자 김창환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회장의 후광 아래 이들의 성공은 순풍에 돛 단 듯 보였다. 그런데 화려한 빛 이면에 짙은 어둠이 있었다. 소속사의 상습적 구타와 폭언이라는, 믿기 어려운 충격적 사실이 멤버의 입을 통해 폭로됐다.리더이자 연장자인 이석철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2015년부터 프로듀서한테 연습실, 녹음실, 옥상 등지에서 야구방망이와 철제 봉걸레 자루 등으로 상습적으로 맞았다”고 밝혔다. 그가 구체적으로 증언한 내용은 차마 옮기기조차 끔찍하다. 프로듀서는 연주가 틀리면 기타 케이블을 목에 감아 잡아당겼다고 한다. 친동생인 이승현은 스튜디오에 감금돼 온몸을 맞는 등 폭력과 협박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방관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석철·승현 형제 가족은 어제 서울경찰청에 프로듀서 문모씨와 김 회장을 폭행·폭행 방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수사 촉구 게시물에는 벌써 18만명이 동의했다. 기획사에 철저히 예속된 한국형 아이돌 양성 시스템은 양날의 칼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과 관리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대형 스타들을 배출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노예계약과 폭행, 협박 같은 인권유린적 관행이 암암리에 자행되는 폐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2009년 ‘고 장자연씨 사건’을 계기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인들을 위한 표준전속계약서를 마련하면서 개선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당 대우를 받고도 기획사의 슈퍼 파워에 숨죽이며 지내는 연예인들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이석철은 멤버들 모두 피해 상황을 신고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사실을 밝히면 진짜 저희의 꿈이 망가질까 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가 음악 하는 걸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악물고 맞으면서 버텼다.” 이들 형제 외에 4명의 멤버들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해외을 누비며 청소년들에게 “나 자신을 사랑하라”(Love myself)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때 정작 우리나라의 케이팝 새싹들은 꿈을 볼모로 폭행에 멍들고 있었다니 가슴이 무너진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길섶에서] JSA의 추억/이종락 논설위원

    32년 전인 1986년, 이 무렵 JSA(공동경비구역)는 신병 충원을 두 가지 방법으로 했다. 한번은 논산훈련소에서 무술 유단자들을 뽑아 신병으로 채웠다. 또 다른 방식은 미군과 부대생활을 함께한다는 점을 감안해 영어에 능통한 카투사(KATUSA) 신병 중에서 신체 건강한 훈련병을 착출했다. 논산훈련소를 거쳐 평택 신병교육대에서 미군부대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받던 카투사 신병들에게는 JSA 부대원으로 선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JSA는 어느 곳보다 위험한 근무지였기 때문에 군기가 셌다. 어느 날 불시에 들이닥친 JSA 부대원들이 신병들을 키 순서로 세우더니 몸 상태를 점검한 뒤 6명을 데려갔다. 전역 이후 JSA부대원으로 착출된 동기생 중 한 명을 만났다. 그는 24세의 건장한 나이에도 지네 피를 담은 물통을 들고 다녔다. JSA부대원으로 근무 중에 너무 많은 구타를 당해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피멍을 빼는 데는 지네 피가 최고’라는 얘기가 있어 수시로 마신단다. JSA가 민간인과 관광객들도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로 바뀐다고 한다. 해병대와 공수부대보다 군기가 셌던 JSA시대도 막을 내리고 있다. jrlee@seoul.co.kr
  • 육군학생군사학교 사병 숨진 채 발견

    충북 괴산군에 위치한 육군학생군사학교 사병이 숨진 채 발견돼 군 헌병대가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16일 이 학교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전 6시 55분쯤 근무지원단 소속 A(22) 일병이 영내 야산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대원들이 발견했다. 이 야산은 부대 막사와 1㎞ 가량 떨어져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군사학교는 A일병이 전날 오후 8시 30분쯤 부대를 이탈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색작업을 벌여왔다. 군사학교 관계자는 “시신을 검안했을 때 구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군 헌병대가 소속 부대원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부마항쟁 39주년] “역사 앞에 부끄럽다…기억 않고 기록 않는 부마의 함성과 열정”

    [부마항쟁 39주년] “역사 앞에 부끄럽다…기억 않고 기록 않는 부마의 함성과 열정”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는 1960년 4·19혁명에서 시작해 1979년 부마(부산+마산)항쟁,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항쟁을 거쳐 촛불혁명으로 완결됐습니다. 이 가운데 부마항쟁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진상 조사와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지방자치 4선인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16일 부마항쟁 39주년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유신 독재에 맞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학생들이 선도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이끈 민중항쟁인데도 전두환 시대와 함께 독재의 사슬을 끊지 못해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 구청장은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는 등 관심과 평가가 미흡하다며 항쟁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답을 통해 과제를 짚어 봤다.→항쟁 발발 계기는. -5·16 군사쿠데타로 최고 권력을 쥔 박정희 정권은 영구 집권을 위해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한 뒤 긴급조치를 수시로 발동해 민주 인사를 탄압하는 등 탄압 정치를 이어 갔다. 그러던 중 당시 야당인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YH여성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대해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9년 10월 4일 국회에서 제명되자 ‘전제군주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부산 지역 민심이 동요했다. 이를 기화로 10월 16일 부산대 학생 중심으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번지면서 10월 17일 부산 전역으로 번졌다. 물론 단순히 야당 총재 한 사람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이나 야당 탄압에 대한 항거라기보다 오래 짓눌린 민주화에 대한 민중의 목마름이 분출된 것이다. →직접 시위대를 이끌었는데. -당시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복학생이었다. 학교 후문 100m 인근에 있던 내 하숙집은 학우들 사랑방이었다. 그곳에서 유신 독재의 부당성에 대해 토론과 비판을 하던 중 16일 부산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동아대 학생들도 17일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분위기를 달궜다. 오후 법학과, 행정학과, 정외과 2학년 합동 교련 수업 시작 전에 제가 단상에 올라 “청년 학도를 탄압하고 민주 인사를 구속하는 참상 앞에서 교련 수업이나 받을 게 아니라 운동장으로 함께 나가 시국과 인권 문제에 대해 토론하자”고 외쳤다. 금세 500~600명 이상으로 늘어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경찰 진압대가 들어와 최루탄을 발사해 저녁 6시 남포동에서 다시 만나자며 흩어졌다. 그리고 저녁에 시가에서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0시(10월 18일)를 기해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1058명이 경찰에 끌려갔다. 20일엔 위수령이 발동됐다.→시위 주도로 어떤 불이익을 받았나. -주동자로 찍혀 피신 생활을 하던 중 ‘10·26’으로 유신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항쟁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사실상 부산과 마산의 시민,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12·12사태가 발생했고 부산에서도 총 검거령이 내려져 다시 서울로 피신했으나 5·18민중항쟁으로 계엄이 확대됐다. 결국 도피 생활 7개월 만인 1980월 5월 28일 은신 중이던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친구 집에서 체포된 뒤 부산 망미동 보안대로 끌려가 36일간 각종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7월 2일 구속영장 집행으로 부산 제15헌병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참혹한 수감생활을 겪었다. 헌병대에서 다시 부산 사상구 학장교도소로 이감된 데 이어 군법회의를 통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마침내 석방됐지만 대학에서 제적돼 졸업장을 받는 데 12년이 걸렸다. →당시 함께 항쟁을 주도한 이들은. -헌병대 영창 한 막사에 40~50명 수용됐는데, 원래 있던 군인 죄수와 부마항쟁을 주도한 대학생 8명 등 20여명, 그리고 얼마 후 사회 폭력배들이 잡혀 왔다. 대학생은 부산대 조태원, 신재식, 정광민, 김종세, 김영, 이상경과 진주 경상대 김문규와 동아대 유덕열 등 8명이다. 조태원은 긴급조치로 이미 두 번 투옥된 바 있고, 신재식은 부산에서 사업을 한다. 정광민은 부마항쟁연구소장이다. 김영은 7~8년 복역했는데 김하기란 이름으로 소설을 쓴다. 김종세는 올해 초까지 부산민주공원 관장을 지냈다. 우리는 아직도 가끔 서로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한다.→DJ(김대중 전 대통령)와 노무현 정부 때도 부마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DJ가 1997년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의 연대라는 한계에 부딪혔고, 이어진 노무현 정부는 각종 개혁 작업으로 탄핵 등 집권 초반부터 계속 흔들리면서 부마항쟁 재평가를 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3년에 걸친 부마항쟁 진상조사 기간이 종료됐는데. -2010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 기관으로 처음 부마항쟁 기간 중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인정한 바 있지만 전체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부마항쟁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진상규명위가 형식적으로만 구성돼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부마항쟁의 의의는. -부마항쟁은 18년이나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을 끌어내린 민주화운동이다. 군부의 집권 야욕으로 곧장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5·18항쟁이라는 참혹하면서도 위대한 시민항쟁으로 이어졌지만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 군사정권을 축출하는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8년 뒤 이어진 6월 항쟁으로 신군부가 항복 선언을 하면서 군사독재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발붙일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철저히 짓밟혀 온 노동자와 농민의 기본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제도적 과제가 있다면.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부마항쟁의 이념이 명시되는 등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각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에 더해 우선 항쟁 당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인권을 침해받았음에도 숨죽이고 살았던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등의 보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4대 민중항쟁으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조치가 따라야 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김균미의 세계는 지금] 사선에 선 언론인…“사고사보다 피살되는 경우 더 많아”

    [김균미의 세계는 지금] 사선에 선 언론인…“사고사보다 피살되는 경우 더 많아”

    살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의 실종이 미국과 유럽, 중동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2일 터키에서 실종된 사우디의 유력 언론인이자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60)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됐다는 보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터키 정부는 실종 사건 직후 캬슈끄지가 총영사관 안에서 사우디에서 급파된 암살 요원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터키 “카슈끄지 살해 음성, 영상 증거 있다” vs 사우디 “관련 없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는 11일(현지시간) 터키 정부가 미국 관리들에게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살해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음성녹음과 영상을 갖고 있다고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 음성녹음과 영상에는 카슈끄지를 아랍어로 신문하고 구타하는 소리들이 녹음된 것으로 WP는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 특히 최고 권력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서방 언론에 기고하고 인터뷰에 응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사우디 정부에서도 수년 동안 일했던 카슈끄지는 지난해 7월 사우디를 떠나 미국에 거주하면서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신병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미 언론들은 빈살만 왕세자가 눈엣가시인 카슈끄지를 ‘손보기’ 위해 그를 사우디로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해왔다고 보도하며 연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현재까지 사우디 당국은 터키 정부와 언론 보도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가 지난 2일 결혼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총영사관에 온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를 본 뒤 곧바로 떠났다며 그의 실종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터키 정부가 제안한 공동조사에 참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의혹은 전혀 가시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논란이 커지자 사우디 정부에 카슈끄지의 실종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영국과 미국 기업들도 사우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은 카슈끄지 살해 의혹이 제기된 뒤 사우디 정부와 10억 달러(약 1조 136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논의를 중단했다. 브랜슨은 또 사우디 정부가 이끄는 홍해 관광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문이사직도 그만뒀다. 뉴욕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영미권 주요 언론사들도 오는 23~25일 사우디 리야드 리츠칼튼에서 사우디의 국부펀드인 PIF 주최로 열리는 글로벌 투자 콘퍼런스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혀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올해에만 숨진 전세계 언론인 43명 중 27명 살해당해 카슈끄지의 실종, 살해 의혹을 계기로 날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는 언론 주변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I)에 따르면 올 들어 세계 곳곳에서 숨진 언론인은 45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27명이 살해당했다. 사고로 숨진 언론인은 16명이었다. 과거에는 종군 기자로 참전했거나 오지 취재를 갔다가 사고로 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비리를 취재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언론인들이 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분쟁지역이나 멕시코 등 중남미의 범죄조직이 경찰 등 공무원은 물론 언론인까지 살해했다는 외신을 종종 접하는데 최근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 내에서도 기자를 공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 6일 EU 자금 비리 의혹을 취재하던 불가리아의 지역TV방송 소속 탐사보도 전문기자 빅토리아 마리노바(30)가 살해된 것을 비롯해 최근 1년 새 기자 4명이 숨졌다. 이 중 3명이 탐사보도 전문기자였다고 한다. 언론사가 테러의 공격이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살해 위협까지는 아니지만 최고 권력자와 측근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언론인이 구속되는 경우도 여전하다.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가 실권을 잡고 있는 미얀마의 얘기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 학살을 취재하다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린 기자들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데 이어 이번에는 수치의 측근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언론인들이 구속돼 언론탄압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의 신변에 대한 위협 논란은 미국에서도 일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수와 진보, 친(親)트럼프와 반(反)트럼프로 극명하게 갈린 미국에서는 유세현장에서 경호원들과 함께 취재를 하는 기자들이 늘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기존 언론들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보다는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더욱 천착하고 있다. 탐사보도, 기획 취재에 인력과 재원 투입을 늘리고 있다. 비판의 날을 세울수록 언론인들에 가해지는 유·무형의 위협은 커지고 있다. 김균미 대기자 kmkim@seoul.co.kr
  •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불면 집유, 버티면 징역”… 없는 죄도 만들어 불었습니다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불면 집유, 버티면 징역”… 없는 죄도 만들어 불었습니다

    #1. 2007년 5월 경기 수원에서 십대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듬해 범인으로 지목된 가출 청소년 5명이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상고심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5명이 ‘자백하면 선처하겠다’는 경찰의 회유에 따라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보이고, 자백을 입증할 물증이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준영 변호사가 국선변호인으로 변론했던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이다.#2. 충남 보령에서 2007년 5월 여중생 A양이 집 근처에서 30대 남성에게 납치당해 20여일 동안 감금됐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동안 A양의 형제자매들은 ‘큰언니가 A를 숨지게 했고, 부모가 시신을 숨겼다’는 자술서를 냈다. 큰언니마저 ‘동생들과 다르게 말하면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자신이 A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가족들 간 깊은 상처를 남긴 ‘보령 여중생 피랍 사건’이다. 민주화 이후 최소한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은 사라졌다는 게 대부분의 인식이다. 그런데도 수사·재판 과정에서 ‘허위자백’으로 인한 왜곡·오류 사례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물증보다는 자백으로 범행의 사실관계를 규정하는 데 익숙한 수사 관행, 검찰 수사 단계에서의 자백을 비판 의식 없이 주요 증거로 채택하는 형사재판 관행 때문이다. 1990년 이후 주요 허위자백 사례 46건을 선별해 분석한 이기수 전남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1990년대엔 고문과 폭행 등 물리력 행사가 허위자백 원인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협박, 기망, 회유, 장시간 조사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선별한 46건 중 14건을 심층분석해 2012년 ‘형사절차상 허위자백의 원인과 대책에 관한 연구’란 박사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허위자백의 이론과 실제’란 책으로 발간됐다. 논문에서 분석한 허위자백 사례 백태를 보면 미성년자뿐 아니라 그냥 우연히 범행 현장을 지나던 평범한 시민, 나아가 수사 전문가인 경찰 간부마저 허위자백의 덫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났다.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과 ‘보령 여중생 피랍 사건’에서 허위자백을 한 이들은 미성년자였다. 허위자백 당시 이들은 변호사는커녕 보호자와도 함께 조사를 받지 못했다.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이 형사재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법적 지식이 없고, 수사받는 상황 자체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한 미성년자이기에 허위자백을 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한 지점이다. 하지만 일단 수사기관에서 수사관이 원하는 답을 내준 뒤 법원에서 항변하면 될 것이란 사고체계를 수사 전문가가 작동시킬 때도 있다. ‘옥천경찰서장 뇌물 사건’과 ‘김 순경 살인누명 사건’에서 허위자백을 한 이들은 모두 경찰이었다. #3. 2001년 B 옥천경찰서장은 관내 오락실 업주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부하직원 C씨를 통해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를 부인하던 B서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2심 공판 중 혐의를 시인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후 증거를 보강 제출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C씨가 밤샘조사 등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끝에 B서장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허위자백했고, 재판 중엔 검찰이 C씨 측에 “추징금을 줄여 주겠다”는 식의 회유를 한 녹취를 제출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B서장 역시 항소심 재판 중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위해 허위자백을 한 셈인데, 이는 “일단 실형을 피해 보자”는 변호인의 권유에 따라 이뤄졌다. #4. 서울 지역 파출소에 근무하던 김모 순경은 1992년 함께 여관에 투숙했던 여고생이 사망하자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김 순경은 새벽 근무 때문에 여관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여고생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김 순경이 여관에 있던 시점을 사망 시간으로 추정했다. 김 순경은 5차례 피의자 신문에서 모두 자백했고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는데, 2심이 진행되던 중 진범이 검거되면서 무죄로 풀려났다. 이후 엿새 동안 잠을 안 재운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정황이 폭로된 데다 수사와 1심 재판 과정에서 사망 시간 감정 외 김 순경과 혈액형이 다른 머리카락, 김 순경과 다른 제3의 족적 등의 또 다른 과학적 증거가 무시됐음이 드러났다. 경찰과 같은 수사 전문가들은 최소한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이 이후 처벌에 미치는 효력이나 자신이 허위자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법에 대한 지식이 적은 일반 시민들의 사례에선 일단 허위자백을 해두면 형사재판 과정에서 이를 번복해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점,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신문조서가 자백 형식으로 쓰여지고 있는 점 등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5. 경남 합천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D씨는 2006년 묘지 앞 석상을 기중기로 들어 E씨의 차량에 실어준 특수절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D씨는 범행을 돕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둘은 아예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E씨의 범행 무렵 둘의 차량이 나란히 교차로를 지난 것을 확인한 경찰이 D씨를 공범으로 의심, 교차로를 지난 뒤 묘지가 아닌 주변 다방으로 갔다는 D씨의 항변을 무시한 채 7시간 반복질문한 끝에 허위자백을 받은 것이다. D씨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자필로 범행을 부인하는 취지의 글을 썼지만, 이미 전체적인 조서 내용은 자백(혐의 인정)한 것으로 작성돼 있었다. #6. 2009년 5월 경기 안성의 한 원룸 주차장에서 전신을 구타당한 뒤 숨진 남성이 사망 전에 모르는 20~30대 남성 3명에게 폭행당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담배꽁초 4개를 입수, 근처 우범자들의 유전자와 대조해 고등학생 3명의 자백을 받았다. 이들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허위자백이었다고 호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실제 3명 중 한 명은 범행 추정 시간에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조사 중 서로 ‘억울하다’는 문자를 교환하기도 했다. 3명 중 1명이 ‘범행을 부인하면 감옥에서 평생 썩을 것’이란 경찰관 말에 허위자백을 했고, 다른 2명도 자신만 혐의를 부인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연쇄적으로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다음 회에는 최근 있었던 자백 의존적 수사 사례를 탐색하고, 해외에선 허위자백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알아봅니다.
  • 중국 여기자 홍콩 인권운동가 구타해 영국서 체포

    중국 여기자 홍콩 인권운동가 구타해 영국서 체포

    “나는 현재 중국의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중국에 관해서는 우호적 입장이다. 중국과 영국이 함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홍콩 인권운동가)” “당신은 거짓말쟁이에 중국을 분리하려는 반(反)중국인이다. 심지어 중국인도 아니지 않나. 나머지도 모두 반역자들이다. (중국 관영언론 기자)” 중국 관영매체인 중앙(CC)TV 특파원이 주재국인 영국에서 열린 홍콩 독립활동 행사장에서 취재 도중 주최 측과 언쟁을 벌인 끝에 체포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일 CCTV 영국 특파원인 쿵린린(孔琳琳·48)이 영국 보수당 인권위원회가 버밍엄에서 개최하는 홍콩 독립활동 행사에 참석해 발언 내용과 관련해 언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쿵 기자는 행사장을 떠나달라고 요구하는 자원봉사자의 얼굴을 두 차례 때리며 소동을 벌인 끝에 영국 경찰에 의해 체포됐고 곧바로 풀려났다. 쿵 기자는 “이것이 영국의 민주주의냐?”라며 격렬하게 항의를 벌였고 폭행피해자인 자원봉사자를 ‘홍콩의 꼭두각시’라 부르며 모욕했다.쿵 기자가 소속된 CCTV 대변인은 “영국에서 중국 언론인의 합법적인 권리인 언론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침해받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주영국 중국대사관도 “주영국 대사관의 엄중한 교섭과 여론의 압박으로 영국 경찰은 쿵린린을 곧바로 석방했다”면서 “변호사에 따르면 쿵린린은 ‘혐의 없음’으로 풀려 났고 그의 행위는 정당했지만 주최 측은 명백히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번 행사는 런던 주재 홍콩 인권단체인 ‘홍콩워치’와 영국 보수당이 함께 연 것으로 CCTV 여기자가 반발한 발언을 한 인권운동가는 베네딕트 로저스 홍콩워치 공동설립자이자 부회장이었다. 로저스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홍콩 입국이 금지됐다. 로저스가 언급한 일국양제는 홍콩이 중국에 1997년 반환된 뒤 2047년까지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기로 한 제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홍콩워치와 같은 인권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최근 홍콩인들의 자유와 자치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여기는 남미] 알몸으로 전신주에 묶여 있는 남자들, 대체 무슨 일?

    [여기는 남미] 알몸으로 전신주에 묶여 있는 남자들, 대체 무슨 일?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멕시코에서 의문의 사건이 꼬리를 물고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멕시코 할리스코주의 유명 관광지 푸에르토바야르타에선 최근 고문을 당한 남자들이 전신주에 묶인 채 발견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지난달 25일과 27(이하 현지시간)일 등 이틀 동안에만 발견된 피해자는 최소한 10명에 이른다. 상황은 모두 비슷했다. 남자들은 누군가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상태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전신주에 묶여 있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하지만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피해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입을 열어도 진실을 털어놓는 사람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강도들에게 당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에르토바야르테는 악명 높은 마약카르텔 '누에바 헤네라시온'의 근거지 중 한 곳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마약카르텔이 경고 또는 협박을 위해 벌이는 범행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그렇다면 구타나 고문의 수법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 의아스러운 점이다. 27일 전신주에 묶여 있다가 구조된 한 남자는 곤장(?)을 맞은 듯 엉덩이가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 누군가 정교하게 머리털을 잘라 뒤통수에는 알파벳 R자가 새겨져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다는 뜻이라고 한다. 스페인어로 '도둑질을 하다'라는 동사는 R자로 시작한다. 현지 언론은 "유사한 사건이 계속 벌어질 수 있어 경찰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수사가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GDL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여기는 남미] “경찰 못 믿어!”…부패 형사 불태워 살해한 멕시코 주민들

    [여기는 남미] “경찰 못 믿어!”…부패 형사 불태워 살해한 멕시코 주민들

    멕시코 중부 지역의 주민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형사를 즉결 심판했다. 미국 미네소타 지역 매체인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현지시간으로 지난 27일, 이달고 주(州)의 한 마을에 사는 주민 100여 명이 경찰서를 급습해 형사 1명 및 성인 남성 3명을 밖으로 끌어냈다. 주민들은 이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고, 특히 형사의 몸에는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질렀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폭행을 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다른 남성 3명을 구출해냈지만, 몸에 불이 붙은 형사 1명은 결국 사망했다. 주민들이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나쁜 사람들을 대신 응징하는 형사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 것은 그가 최근 발생한 어린이 납치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형사와 함께 구타를 당한 남성 3명은 어린이 납치 사건 용의자로 경찰서에 붙잡혀 있었고, 주민들은 살해당한 형사가 이들 용의자 3명의 납치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소문을 굳게 믿었다. 실제로 해당 형사가 납치 사건과 연관돼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지 검찰은 살인사건에 가담한 주민들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시민이 공권력을 불신해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멕시코에서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공권력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법을 어겼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직접 ‘심판’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달고 주 뿐만 아니라 멕시코시티와 푸에블라 등지의 시민들이 어린이 납치범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붙잡아 살해했고, 이 일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은 이번에 숨진 형사처럼 불에 타 숨졌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라온마→보이스2→손 더 게스트… 떠오르는 장르물 명가 OCN

    라온마→보이스2→손 더 게스트… 떠오르는 장르물 명가 OCN

    장르물을 앞세운 OCN 드라마들이 최근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지난 27일 OCN 수목드라마 ‘손 더 게스트’(손 the guest) 6회는 전국 평균 3.0%(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의 시청률로 4회 방송에 이어 다시 3%대 시청률을 회복했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폭발적인 반응으로 보긴 아직 이르지만 첫회부터 찬사를 이끌어내며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손 더 게스트’는 엑소시즘과 샤머니즘을 결합한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을 표방한 장르물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기이한 힘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에 맞서는 영매와 사제,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분노범죄를 다루는 등 한국적인 공포를 선보이고 있고 감각적인 연출과 영상으로 완성도를 높였다.최근 종영한 주말드라마 ‘보이스2’는 지난해 방송된 전작 ‘보이스’와의 연속성과 차별화에 모두 성공하며 OCN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효자 작품이 됐다. ‘보이스2’ 최종회는 전국 평균 7.1% 시청률을 올려 종전 ‘터널’이 보유한 6.5% 기록을 넘었다.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한 신고센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유지하면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낮은 형량, 성폭행 피해자 2차 가해 등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보이스2’에 앞서 방송된 주말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2.1%로 시작한 시청률이 최종회에 5.9%까지 치솟으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명의 영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복고수사물로 OCN이 장르물 명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정경호(한태주 역), 박성웅(강동철 역) 등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도 매회 화제가 됐다.OCN 드라마들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면서 앞으로 방영될 작품에도 관심이 쏠린다. ‘보이스2’ 후속으로 29일 첫 방송되는 ‘플레이어’는 부패 권력의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머니 스틸 액션’을 표방한다. 송승헌이 천재 사기꾼 강하리를, 정수정이 천부적 드라이버 차아령 역을 맡았다. ‘손 더 게스트’ 후속으로 선보일 예정인 메디컬 범죄수사극 ‘신의 퀴즈 : 리부트’와 메디컬 엑소시즘 ‘프리스트’ 등도 방영을 앞두고 있다. 다만 장르물의 특성상 꾸준히 반복되는 폭력성·선정성 논란 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올 상반기에 방영된 ‘작은 신의 아이들’은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사이비 종교집단의 집단학살 장면, 어른이 아이를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 등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강제노역·가혹행위로 12년간 551명 사망… 대검 비상상고 권고로 진실 규명 ‘한 걸음’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강제노역·가혹행위로 12년간 551명 사망… 대검 비상상고 권고로 진실 규명 ‘한 걸음’

    부랑인 관리 지침 근거로 3만명 입소 행정부 조직적 은폐로 원장 ‘면죄부’ 계류 중인 특별법도 제정 탄력받을 듯부산 형제복지원 참상은 정부가 원인을 제공했다. 1975년 부랑인 관리 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발령했고, 복지원은 이를 근거로 경찰과 공무원들이 부랑인으로 낙인찍은 이들을 입소시켜 선도라는 미명 아래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참상이 세상이 알려져 폐쇄된 1987년까지 12년간 3만여명이 입소했고, 12년간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리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연행되거나 기술을 배우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입소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형제복지원의 실상은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근무 중이던 김용원 검사(현재 변호사)가 울산의 한 공사장에 동원된 원생들의 노역 현장을 우연히 발견해 수사를 시작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법 감금과 강제 노역, 구타와 학대, 성폭행 등이 자행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권력층의 외압과 행정 당국의 조직적인 은폐·축소로 복지원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최근 시의 관리 감독 소홀로 무고한 시민이 불법 감금돼 폭행과 강제 노역 등 참혹한 인권유린을 당했다며 복지원 사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사과했다. 당시 김용원 검사가 외압을 받으면서도 박인근 복지원장을 체포해 재판에 넘겼지만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고, 핵심 혐의인 불법 감금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따른 적법한 수용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 훈령 자체가 위헌·위법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에 대검 검찰개혁위원회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대법원 비상상고를 권고한 것이다. 비상상고가 받아들여져 대법원이 재심의 절차를 밟게 되면 당시 불법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피해 생존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탄력을 받게 됐다. 특별법은 2014년 처음 발의됐지만, 심의를 미루다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6년 다시 발의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돼 있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돼야 진상 규명과 가해자 처벌, 피해자 지원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 이향직씨는 “특별법의 가장 큰 목적은 당시 야만적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라며 “피해자 보상 등 금전 문제로 초점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sdragon@seoul.co.kr
  • 부산시, 30년 만에 ‘형제복지원 사건’ 사과…피해자들 “행동으로 보여달라”

    부산시, 30년 만에 ‘형제복지원 사건’ 사과…피해자들 “행동으로 보여달라”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부산시가 16일 공식 사과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정부가 시민들을 당시 부산 북구 주례동에 있었던 사회복지시설인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연행하고, 복지원이 시민들을 감금해 국가의 방조 아래 강제노역·구타·학대·성폭력·살인 등 인권 유린을 자행한 사건이다.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인원만 최소 3164명이었고, 12년 동안 확인된 사망자 숫자만 최소 551명이다. 1980년 삼청교육 과정에서 사망한 54명의 열 배에 가까운 숫자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부산시는 복지시설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함으로써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면서 “부산시를 대표하는 시장으로서, 너무나 늦었지만, 시민여러분과 누구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면서 “피해 사실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위로하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나아가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당시 검찰과 부산시는 이 사건을 축소·은폐시켰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검사(김용원 변호사·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지금의 울산지검) 검사)는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씨를 구속한 다음 날인 1987년 1월 18일 당시 부산시장(김주호)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아 “박 원장을 구속하면 안 된다. 바로 석방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원생들을 조사하기 위해 부산지검 차장검사(송종의 전 법제처장)에게 승인을 받으러 갔지만 “뭘 수사를 해. 당장 철수시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국회 앞 1인 시위(2012년 5월~2013년 2월)와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통해 이 사건의 실상을 알리면서, 사회의 무관심에 눌려 숨죽이고 살던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어렵게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피해 생존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안’(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과 ‘과거사정리법안’(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안은 지난 19대 국회 때 발의된 법안임에도 지금까지 공포되지 못했고, 과거사정리법안도 답보 상태다. 오 시장은 “진상규명과 피해 보상의 핵심은 특별법 제정이다. 부산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 드린다”면서 “이를 위해 부산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소관 (국회) 상임위(상임위원회)인 행안위(행정안전위원회) 위원, 그리고 특별법 제정을 공동 발의해 주신 모든 의원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오 시장은 “형제복지원 사건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며, 피해자와 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도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박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시민을 대표하는 부산시의회 의장으로서 피해자분의 오랜 고통과 기나긴 싸움에 힘이 돼 드리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면서 “시의회 차원에서 참혹한 진상을 밝혀 피해 생존자들과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피해보상, 명예회복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억울함과 생존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비단 피해자,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생명, 인권의 존엄함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은 “사과라는 것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강요이자 또 다른 폭력이다.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은 아직 그 어떤 누구도 용서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서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피해 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일체 시민들의 세금을 추모 사업, 위령제에 쓰지말 것 △부산시에 흩어져 있는 형제복지원 사건 자료를 모두 찾아 줄 것 △당시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게 거의 무상으로 지원했던 땅의 가치를 현시세에 맞게 돌려받을 것 △부산에 있는 피해생존자들의 현 실태 조사를 시 차원에서 지원할 것 △피해 생존자들이 모여 기록하고 증언할 수 있는 상담 창구를 열어줄 것 △부산에 인권조례를 만들어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릴 수 있는 인권교육의 장이 될 수 있게 현장의 기관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이밖에도 △시장 직속의 추진위를 꾸려 피해생존자 모임과 같이 회의를 하고 뜻을 공유할 것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형제복지원 사건 특별법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부산시 차원에서 강력하게 전달할 것도 요구했다.앞서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라고 지난 13일 권고했다. 비상상고란 형사사건 확정판결에 법령 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비상 절차다. 박인근(2016년 사망 당시 85세)씨는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1987년 6월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 8178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89년 징역 2년 6개월형이 최종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은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오늘(15일) 강제징용 피해자의 절규-국가는 왜 날 버렸나

    ‘그것이 알고싶다’ 오늘(15일) 강제징용 피해자의 절규-국가는 왜 날 버렸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겪은 고초와 피해보상 문제를 두고 은밀히 행해진 사법부와 청와대의 ‘재판 거래’ 의혹을 다룬다. 15일 방송되는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화태(樺太)에서 온 편지-국가는 왜 날 버렸나’ 편으로 꾸며진다. “일본의 종으로서, 매도 많이 맞고 죽을 뻔도 여러 번 당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故 여운택 할아버지는 지옥의 시간으로 회상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구타와 굶주림, 임금 착취 등,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참혹한 시간을 보낸 한국인 피해자는 103만여 명. 그들의 피해는 보상을 받았을까.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앞에서는 사람들의 만세 소리로 가득 찼다. 이날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 패소 판결을 깨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것이다. 그간 일본과 한국 법정에서의 잇따른 소송 패소 후에 피해자들이 얻어낸 소중한 결실이었다. 하지만 파기 환송된 재판은 고등법원에서의 승소 이후 2013년 다시 대법원으로 재상고 되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에서는 최종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연일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법 농단의 그늘 뒤에서,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거래의 대상이 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사법부와 청와대가 은밀한 거래를 하는 사이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생을 달리하고,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은 오늘도 재판의 결론이 나기만을 염원하며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왜 대한민국 국민이 희생당한 강제징용 재판을, 그들이 겪은 지옥을 부당 거래한 것일까. 한편 이날(15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오후 11시 5분 SBS에서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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