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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폭력아빠 피해 나온 꼬마, 경찰은 지옥으로 데려갔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1>폭력아빠 피해 나온 꼬마, 경찰은 지옥으로 데려갔다

    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 2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경찰 손 이끌려 간 형제원, 퇴소 후에도 강제 수용 이어져” 이기홍(48·가명)씨는 12살부터 14살까지 형제복지원에서 ‘85-2XXX’로 살았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갔다가 부산 경찰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그는 1987년 3월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강제 수용됐다. 아동소대부터 야간중학교소대, 악대소대로 옮겨 다녔다. 야간중학교소대에 있을 땐 봉제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고, 다른 소대원의 죽음을 목격했다. 악대소대에서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역할을 맡아 형제복지원이 외부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는 연극에 동원됐다. 여느 때처럼 매질을 당하던 어느 날, 곡괭이로 다리를 잘못 맞아 지금도 왼쪽 다리를 절뚝인다. 형제복지원에서 다른 소대원들로부터 수차례 성폭행까지 당했다. 퇴소 후에도 이씨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부산소년의집, 서울소년의집, 서울갱생원에 강제로 보내졌다가, 갱생원에서 취업 알선을 명목으로 이씨를 공장에 ‘팔아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부산으로 돌아갔지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이씨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이씨의 진술서에는 ‘내 친구 김동식’이 수차례 등장한다. 아동소대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갱생원에서 나올 때까지 줄곧 함께했다. 김동식(46·가명)씨도 이번 소송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진술서를 쓰지 못했다.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김씨의 피해 기록은 이씨의 진술서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래는 이기홍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이기홍 진술 내용 : 1985년 무더운 여름,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소재 충렬사 앞을 지나가던 중 안락파출소 순경 아저씨와 방범대원 두 사람이 “꼬마야 너 어디가니?”라고 물어보시길래 “저요? 왜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집이 어디냐”고 다시 물어보시길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순경 아저씨를 쳐다봤는데 “잠시만 따라와”라는 말에 그냥 파출소로 따라 갔습니다. 순경 아저씨가 우유 조그마한 것 하나 주시면서 “너 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어보시길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너 갈 데 없지?” 물어보시길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좋은 데로 보내줄게”라는 말을 하고 나서 2시간 뒤 파출소 앞으로 파란색 탑차가 왔습니다. 모자와 선도부 완장을 낀 아저씨 2명이 파출소에서 나보고 따라오라고 하고 운동화 구겨 신게 하고 나는 무작정 따라 나섰는데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갔습니다. 부산시 북구 주례2동 산18번지 형제복지원 차 뒤에도 아저씨 한 분이 있었는데, 파란색 줄무늬 츄리닝에 팔에는 ‘선도’, 등 뒤에는 ‘형제원’이라는 하얀색 글이 쓰여 있었고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향한 곳은 당시 주소 부산시 북구 주례2동 산18번지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줄지어 걸어가니 사무실 같은 곳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6명이 같이 신상카드 기록과 번호표를 들고 정면 옆면으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번호가 ‘85-2XXX’ 제 앞뒤는 ‘2XXX’ ‘2XXX’이었습니다. 기록카드에 이름, 주소, 본적, 부친 이름 등 여러가지로 적었는데 저는 당시 본명이 이기홍이었는데 이기형이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이유는 제가 어릴 적 아버님이 머구리(잠수부) 일을 하셨는데 아버지께서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손과 발을 빨랫줄로 묶어 바닷물에 담갔다 뺐다 반복해 집을 나왔고, 다시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두 번 다시 당하기 싫었고, 본명을 말하면 다시 아버지에게 보낼까 두려웠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물을 싫어하고 물만 보면 공포를 느낍니다. 지금은 아동학대라는 법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어 많이 맞기도하고 새엄마에게도 똑같이 겪었습니다. 신상기록 정리 이후 남자, 여자 각자 줄지어서 어두운 시간 각자가 ‘신입소대’라는 곳으로 일렬로 줄지어서 앞사람 등에 양손을 올리고 머리를 숙이고 앞에 한 사람, 뒤에 따라오는 한 사람이 인솔해 남자 신입소대 11소대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문 밖에 철창이 있었고, 안에는 밖으로 볼 수 없게 되어있는 문이 있었습니다. 신입소대 입소 당시 당시 제 나이 12세부터 70세 가량 어른들도 같이 있었고 아동들은 들어가자마자 잠을 재우지 않고 ‘서무’라는 사람이 문 앞에서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열중쉬어 자세로 1시간 넘게 ‘원산폭격’ 기합을 받고 있었습니다.그날 새벽 5시쯤 소대 안에 있는 조그마한 스피커에서 방송소리가 나왔고 모든 사람이 세면대 입구 통로에 줄맞추어 앉아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찬송가 부르지 못한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몽둥이로 목뒤를 때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신입소대에서 3일 교육받은 후 성인은 성인소대, 아동은 아동소대로 전방을 갔습니다. 저는 처음 27소대에 갔었고 4개월 뒤 28소대로 전방을 시켰습니다. 당시 한소대에 80명에서 100명까지 한소대에 있었는데 군대식 제식훈련, 단체기합, 단체 줄빠따가 몇개월 반복되었고… 그때 무릎 뒤(허벅지 종아리 사이) 뼈 있는 부분에 곡괭이 나무로 수십차례 맞다가 너무 아파서 피하던 중 너무 힘껏 맞아 지금까지 나의 왼쪽다리는 장애를 입었고 지금까지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아동소대에서 10소대 야간중학교 소대로 전방되어 야간중학교 공부를 배웠고, 구타, 기압, 단체 군대식 훈련을 강제로 받았고, 낮에는 봉제공장에 나가서 일을 했고, 봉제공장 역시 구타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폭행에 자해한 형, 상처에 굵은 소금 뿌려진채 끌려간 게 마지막 모습 봉제공장에서 나이 많은 형이 구타가 너무 심해서 창문에 유리창을 깨서 본인 배에 유리로 자해를 했는데 공장 책임자 한명이 배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어디론가 여러 사람이 끌고 나갔는데 그 뒤로 그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후 몇 달 뒤 저는 13소대(악대)로 전방되었고, 악대소대에서 아코디언 멜로디를 배웠습니다. 하루에 수십차례를 구타를 당하고 아픈 다리를 또다시 맞아 아직도 다리를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장애로 살고 있습니다. 악대소대에서 부산시민회관·남천교회로 공연 나갔는데 당시 연극부와 같이 공연 했는데, 연극부 사람은 가짜 깁스를 하고 앵벌이 흉내, 거지 흉내, 껌팔이, 신문팔이, 약장사 등 여러가지 역할을 맡아 보여주기식으로 외부인들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여기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식). 당시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건 관중들 중에 부산시민, 경찰서장, 부산시장(왼쪽 가슴에 꽃 다신 분) 등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또한 나와 내 친구 김동식(같은 소대 친구)과 너무 배가 고파 부식창고에서 감자를 1개씩 훔쳐 먹다가 적발돼 왼쪽 귀 부분을 맞아 귀에는 고름과 물이 나왔고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매주 각 소대 별로 내무사열을 했는데 손톱깎이가 없어 이빨로 손톱, 발톱을 물어 뜯어야 했고, 믿지도 않는 기독교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을 외워야 했고 국민교육헌장 등을 외우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소대 전체가 강한 기합과 곡괭이 자루로 무차별 빠따를 맞았습니다. 빠따를 맞으면서 당시 어린 기억에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맞아야 하며 내가 왜 여기서 배를 굶으며 기합과 군대식 훈련을 하고 공장에서 누구 때문에 일을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해보면 안 맞으려고 기합 안 받으려고 그랬습니다. 저녁에 취침시간만 되면 큰 형들이 옷을 벗기고 성폭행을 하였습니다. 1987년 3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난 후 당시 우리 아동소대는 귀가조치가 되지 않고 부산소년의집과 고아원에 이송되었습니다. 나는 부산소년의집으로 갔었고, 부산소년의집에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난동이 있었기에 서울소년의집으로 80명 가량이 강제로 갔습니다.서울소년의집에서 또다시 서울갱생원으로 형제복지원 원생들은 강제로 가야 했고, 갱생원에서 1987년 겨울쯤 매우 추울 때 아동소대, 악대소대, 소년의집, 갱생원까지 동거동락한 친구 중에 김동식이라는 친구와 함께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 소재 XX금속으로 취직해서 같이 나갔지만 3개월 동안 월급도 받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공장 바로 앞 군부대에서 버린 짬밥을 친구와 추운 겨울 같이 울면서 먹었고 3개월 동안 10원짜리 하나 없이 친구 김동식과 같이 공장에서 무작정 걸어서 김포에서 독산동까지 걸어갔습니다. 독산동에 당시 저의 이모가 살았던 기억은 있었지만 주소와 전화번호도 모른 채 무작정 걸어다니다가 신길4동까지 잘 곳을 찾아 헤매던 중 구두(수제화)를 만드는 형들에게 잡혀 반지하 공장에서 월급 없이 일하던 중 월급도 못 받고 너무 억울해서 또다시 도망을 나왔습니다. 내 친구 김동식과 나는 거기서 헤어졌습니다. 나는 서울역에서 정장 입으신 아저씨의 도움으로 다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1989년부터 지금까지 음악하는 DJ로 살고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려고 찾아봐도 다리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사회적응이 불가능하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형제복지원 잡혀간 이후 나는 학벌도 좋지 않아 제대로 취직도 되지 않고 아직도 그때 트라우마로 인해 지금도 사람을 믿지 못하고 다리 장애로 살고 있습니다. “국가의 폭력, 이제는 국가가 말해야할 때” 내무부 훈령 410호? 저는 배운 게 없어 뭔지 모릅니다. (※당시 내무부 훈령 410호는 부랑인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으로 형제복지원 운영의 법적 근거가 됨)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우리는 사회에서 약자인 것이 분명했고 내무부 훈령 410호로 인해 어디론가 이유 없이 잡혀갔고 때리면 맞고 강제로 일하고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고 개처럼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명백한 국가폭력이며, 명백한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합니까? 감금. 폭행. 강제노동. 강간. 인권유린? 이제는 국가가 말을 해주십시요. 이제는 국가가 나몰라라 하지 말고 책임을 피하지 마시고 인정하시고 잘못된 국가폭력에 대해 보상해주시고 우리에게 인권을 찾아주십시요. 우리가 왜? 약자라는 이유로 감금돼야 했는지… 우리가 왜? 약자라는 이유로 누구를 위해 강제로 일을 해야 했는지… 우리가 왜? 약자라는 이유로 잡혀가서 개처럼 맞고 살아와야 했는지… 국가는 인정하시고 억울하게 살아온 우리에게 더이상 냉대하지 마시고 보상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기홍 올림 국가 상대 첫 소송 제기한 형제복지원 생존자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향직 협의회 대표는 “많은 피해자들이 기초생활수급자거나 경제적 어려움이 커 하루 빨리 국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소송 비용조차 부담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후원금 모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삶이 짓밟혔다… 형제복지원, 국가 상대 80억 손배소

    삶이 짓밟혔다… 형제복지원, 국가 상대 80억 손배소

    “우울 등 후유증 시달려… 국가는 왜 외면하는가”감금·강제노역·성폭행 등 인권 유린… 513명 사망폭로 34년 지났지만 조사도 보상도 갈 길 멀어진화위 조사로 피해 입증할 자료 규명이 관건“형제복지원에서 보낸 유년기 시절을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우울증과 불면증 때문에 죽으려 한 적도 많아요. 국가는 왜 이런 고통을 외면하는 겁니까?”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20일 국가를 상대로 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소속 13명은 “대한민국은 짓밟힌 우리 인생을 배상하라”고 요구하며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소송에는 형제복지원 입소·퇴소를 증명할 증빙자료가 준비된 피해자 13명만 먼저 참여했고, 향후 참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안창근 변호사는 “이 사건은 국가권력이 부랑자 단속을 명분으로 무고한 시민을 강제 수용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라며 “이번 소송에서 국가 책임이 인정돼 다른 피해자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1975~1987년 내무부 훈령 410호에 따라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매년 20억원씩 국가 지원을 받아 시민을 감금하고 폭행, 강제노역, 성폭행을 일삼았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만 현재까지 513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 A씨는 법원에 낸 진술서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집에 돌아가던 중 경찰에게 잡혀갔다”면서 “구타는 기본 일상이고 소대장한테 성폭행을 수차례 당해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호소했다. 7살 때 동생과 함께 입소한 피해자 B씨는 “하루는 도망가다 붙잡힌 남자를 사람들이 포대 자루에 말더니 5~6명이 한참을 때리다가 ‘애 죽었다, 치워라’며 질질 끌고 가더라”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고 증언했다. 2018년에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1989년 무죄가 확정된 고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에 대한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으로 규명된 진실에 따라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로 접수받아 검토 중이다. 피해 회복이 조속히 이뤄지려면 위원회 조사를 통해 피해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향직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많은 피해자들이 생을 마감했거나 어렵게 살고 있어 끝없이 삐걱대는 위원회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만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형제복지원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악몽이라 진술서를 끝내 쓰지 못한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해고 통보드립니다^^”…경비원은 마지막까지 ‘을’이었다

    “해고 통보드립니다^^”…경비원은 마지막까지 ‘을’이었다

    “갑질을 당해도 살아남으려고, 휴가도 안 쓰며 열심히 일만 했는데….”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 중계그린아파트에서 근무하던 16명의 경비원은 근로계약 갱신을 이틀 앞두고 일방적인 해고 통보가 남긴 문자를 받았다. 새로운 경비 용역업체는 44명 중 16명을 해고하면서 “애석하게도 같이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드립니다^^ 행복하세요^^”라며 웃음 이모티콘이 다섯 개나 포함된 문자를 보냈다. 아파트 관리주체인 입주자대표회의와 신규 용역업체에 해고 이유를 문의했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답을 하지 않았다. 경비업체는 ‘해고가 아닌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알게 된 아파트 입주민들은 복직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입주민들의 인터넷 카페에도 “다시 와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응원 댓글이 달렸다. 주민들은 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에게 서명 내용을 전달하고 경비용역 업체와 아파트입주자대표를 부당해고로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에 고발하기로 했다. 경비원들은 지난 14일 노원구청에 진정을 냈다. 진정서에는 아파트와 입주자대표회의가 오랜 시간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부당한 업무지시와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해고가 두려워 연차 휴가도 쓰지 못하고, 휴게 시간에도 일을 하고, 빗자루 같은 소모품도 자비로 썼다는 내용이었다. 경비원들은 이는 공동주택관리법과 서울시 주택관리규약을 위반한 행위인 만큼 구청에서 아파트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해달라고 요청했다. 노원구청장은 지난 17일 경비업체와 아파트 관리업체,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를 불러 면담을 진행하며 중재에 나섰다. 오승록 구청장은 업체들이 관리하는 아파트단지가 많으니 경비인력에 결원이 생기거나 추가로 필요할 경우 해고경비원을 우선 채용하는 방안을 요구하는 한편, 법적 하자가 없더라도 업체 측이 정서적으로 접근해 관련 문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반복되는 경비원들 부당 해고 이유는 ‘2019년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참여 경비원 3388명 중 94.1%가 ‘1년 이하 계약’을 맺고 있었고 ‘3개월 계약’도 21.7%나 됐다. 간접고용 형태인 경비원들은 길어야 1년에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해야 하고, 2~3개월의 단기 계약으로 일하는 경비원들도 많기 때문에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갑질을 당해도 참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노원구의 사례처럼 아파트 입주자대표자회의가 새로운 경비용역업체가 계약을 맺을 경우 이전 업체 소속 경비원들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가 없어 집단 해고가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입주자 대표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지자체에서 관리를 강화하는 등 고용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제2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게 도와달라 지난 10일 강북구청 앞에서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갑질로 고통받다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경비원 최희석씨의 1주기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최희석씨는 지난해 4월 21일부터 계속해서 아파트 입주민 심모씨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 심씨는 최씨를 경비원 화장실에 감금한 채 12분간 구타하고 사직을 종용하기도 했다. 최씨는 “더는 나와 같은 사람이 없게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심씨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해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최희석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경비원들의 갑질 피해와 부당해고는 계속되고 있다. 최씨의 형은 유족 대표로 참여해 “사회적 문제가 되도록 이슈화에 나서준 아파트 입주민들께 감사하다. 더는 제2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분께 도와주십사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영상] “왜 말 안들어!” 묘기 훈련중 벨루가 구타한 러 조련사

    [영상] “왜 말 안들어!” 묘기 훈련중 벨루가 구타한 러 조련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들여 세운 러시아 최대 규모 ‘프리모르스키 수족관’에서 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17일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프리모르스키 수족관 조련사가 훈련 도중 고래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폭로돼 수족관 측이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조련사 드리트리 바친스키(32)는 지난 5일 돌고래쇼 훈련 도중 흰고래 벨루가 2마리를 학대했다. 고래들이 지시에 따르지 않자 거칠게 폭행을 휘둘렀다. 공개된 CCTV에는 조련사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고래들을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모습이 담겨 있다.동물보호단체는 즉각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입맞춤 묘기를 가르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조련사는 주먹을 휘둘렀다. 영상에서 왼쪽은 12살짜리 닐, 오른쪽은 13살짜리 리어라는 수컷 벨루가다. 문제의 사육사가 그런 식으로 구타를 일삼은 게 처음은 아니라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지 동물전문가도 “짝짓기 시기라 고래가 예민해졌을 수는 있다. 조련사가 고래의 관심을 돌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명백한 동물학대다. 훈련이 아니라 구타였다.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수족관 측은 자체 진상 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래들은 다치지 않았으며, 건강에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지언론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역 검사가 수족관 실태 점검에 나섰다고 전했다.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 자리잡은 프리모르스키 수족관은 러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에게는 연해주 수족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카자흐스탄 수족관에 매료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는 왜 번듯한 수족관 하나 없느냐며 건설을 지시, 오랜 공사 끝에 2016년 개장했다. 총면적 3만7000제곱미터, 수족관 전체 수조 용량 1만 톤이며 800석을 갖춘 고래 공연장 수조는 1만5000톤 바닷물을 담고 있다. 해양생물은 물론 담수생물까지 500종에 달하는 생물이 전시돼 있으며 운영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가 맡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광주 꼭 닮은 미얀마에 가슴 아려 ‘연대의 주먹밥’이라도 보냅니다”

    “광주 꼭 닮은 미얀마에 가슴 아려 ‘연대의 주먹밥’이라도 보냅니다”

    오월어머니회 성명·기부 이어 도시락 응원“마음으론 미얀마 가서 함께 싸우고 싶어”5·18부상자회 등도 미얀마 사태 알리기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에게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5·18 41돌인 올해는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미얀마인들을 위한 주먹밥이 빚어졌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오월어머니회 등 오월단체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재한 미얀마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담아 주먹밥을 보냈다. 17일 서울신문과 인터뷰한 박행순(71)씨는 지난 2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미얀마인들에게 따뜻한 주먹밥을 건넸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고 박관현 열사의 셋째 누나다. 옥중 고문을 견디며 단식투쟁을 하던 동생이 1982년 숨지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그는 2014년 미얀마를 찾기도 했다. 그곳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역사에 기록된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유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박씨는 최근의 미얀마 상황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미얀마 어머니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어루만지며 ‘너를 대신해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강인한 여성들이었다”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전두환의 사과를 촉구하고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모습과 꼭 닮았다고 느꼈는데, 또 쿠데타가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를 비롯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미얀마 시민과 연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쌈짓돈을 모아 100만원을 광주 미얀마인들이 모인 ‘광주 미얀마 네트워크’에 기부했다. 광주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단체들이 모인 미얀마 광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명자(71) 오월어머니회 관장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석 달째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로 같이 가서 싸우고 싶다”고 전했다. 오월 단체들은 오는 23일 광주에서 회의를 여는 재한미얀마인들에게도 주먹밥 도시락을 전할 예정이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을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잃은 정성희(67)씨도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면 애기 아빠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떨린다”면서 “주먹밥이라도 보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이날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주먹밥을 나눠 주기도 했다. 부상자를 옮기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복부에 맞은 뒤 기적처럼 살아난 김광호(61)씨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씨는 “1980년 광주 경찰들은 시민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도 군인의 본분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시민들을 위해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머리채 잡고 변기물 먹였다” 하동 ‘서당 폭력’ 원장 구속 “증거인멸 우려” [이슈픽]

    “머리채 잡고 변기물 먹였다” 하동 ‘서당 폭력’ 원장 구속 “증거인멸 우려” [이슈픽]

    훈장 A씨, 수차례 학생 체벌·폭행 혐의서당 내 광범위한 학폭, 증거인멸 정황도서당 기숙사서 피해 학부모, 학폭 靑청원“변기물에 얼굴 담그고 청소솔로 이 닦여”“옷 벗겨 찬물 목욕 뒤 세워 놓고 물세례”“은폐 서당·학생 엄벌 촉구” 경찰 수사최근 잇단 학교폭력 폭로로 충격을 준 ‘서당 학교폭력’과 관련해 하동 한 서당 훈장 A씨가 아동복지법상 상습학대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A씨가 학생들을 체벌한 것은 물론 각종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서당은 올해 1월 후배 머리채를 잡아 변기에 밀어 넣고 명치와 어깨 등을 때리는 등 11차례에 걸쳐 선배들에 의한 상습 폭행이 벌어져 공분을 산 곳이다. 경남경찰청 아동학대특별수사팀은 17일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면서 “나머지 서당 관계자 및 학생 간 폭력 사안에 대해서도 신속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하동 서당 일대에서 학교폭력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는 폭로가 이어지자 하동군, 경남도교육청 등과 합동으로 20여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 추가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했다. 이번 구속은 전수조사에 따른 첫 결과로 A씨는 수차례 서당 학생들을 체벌하고 폭행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남 하동의 해당 서당 기숙사에서 엽기적인 학대를 당한 피해 초등학생의 학부모는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 학생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얼굴을 변기물에 담근 뒤 실신할 때까지 변기물을 마시게 하고 청소솔로 강제로 이를 닦게 하는 등 끔찍한 학대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학교폭력 신고에도 가해 학생들에 대해 출석정지 5일 처분에 그치자 학부모는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엽기적 성적고문·폭행·갈취로 괴롭혀”“가슴 꼬집고 상식 밖 성적 고문 가해” 초등생 3명 “딸 실신할 때까지 변기물 먹여”“세제·샴푸 먹인 뒤 목 아파하자 변기물 줘” 청와대에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 3월 ‘집단폭행과 엽기적인 고문과 협박, 갈취, 성적고문으로 딸아이가 엉망이 됐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9만명이 넘게 청원에 동의했다. 학부모로 추정되는 청원자는 “하동 지리산에 있는 서당(예절기숙사)에서 딸아이가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 초 까지 같은 방을 쓰는 동급생 한 명과 언니 2명 등 총 3명에게 말이 안 나올 정도의 엽기적인 고문, 협박, 갈취, 폭언, 폭행, 성적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딸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 변기물에 얼굴을 담그고 실신하기 직전까지 변기 물을 마시게 하고,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는 솔로 이빨을 닦게 했다”고 적었다. 청원인은 또 “세탁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텀블러에 따라 억지로 먹게 하고 샴푸와 바디워시를 입에 넣은 뒤 고통스러워 목이 너무 아프다며 물을 달라는 딸에게 변기 물과 수돗물을 마시게 했다”고 학대 행위를 상세히 기술했다. 이어 “옷을 벗겨 찬물로 목욕하게 만들고 차가운 벽에 열중쉬어 자세로 등을 붙이라고 한 뒤 찬물을 계속 뿌리는 고통을 주었으며 가슴과 등을 꼬집고 때리는 등 상식 이상의 성적인 고문을 하거나 엽기적인 행동으로 딸을 괴롭혀왔다”고 했다.“소변 먹이고 얼굴에 뜨거운 물 부어”“얼굴에 바디스크럽, 눈에 향수 고통”“은폐하려 한 서당, 강한 조사 필요” 청원인은 “딸이 고통스러워하는 숨소리(신음)를 내면 더 강도를 높였다”면서 “펀치를 날리듯 손목 잡고 달려가며 아이의 가슴 명치를 주먹으로 때리고 가래침을 뱉고 여기저기 마구 밟았다”고 기술했다. 청원인은 가해 학생들이 자신들의 소변을 아이에게 먹였다고도 했다. 특히 “피부 안 좋아지게 만든다며 얼굴에 바디 스크럽으로 비비고 뜨거운 물을 붓고 눈에는 못생기게 만든다며 향수와 온갖 이물질로 고통을 주는 등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짓을 저희 딸한테 행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청원인은 서당측이 사건을 덮기 위해 가해 학생 부모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청원인은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서당내 구타, 고문, 폭행 사건이 심각하다 인지해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열게 됐지만 보호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딸이 학교에서 죽으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죽지 못했다고 말했을 때 제 자신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청원인은 “가해자들과 서당에 강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하다. 가해자들과 은폐하려는 서당 측이 처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하동교육청, 학폭위서 가해 학생 3명출석정지 5일, 서면 사과 처분 앞서 하동교육지원청은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열고 가해 학생 3명에게 출석정지 5일, 서면사과, 본인 특별교육, 보호자 특별교육 등 처분을 내렸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는 하동교육지원청의 처분이 약하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가 광주에게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했다. 전남 나주·화순·담양·장성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려고 광주에 모인다. 1980년이 아닌 2021년 오늘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터미널이 있는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촛불을 켠다. 본국 미얀마에서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촛불 시위의 물꼬를 튼 것은 묘네자(38)다. 지난 2006년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광주에 정착한 그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초부터 홀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묘네자의 소식이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300여명이 모였고 ‘광주미얀마네트워크’가 결성됐다. 매주 적어도 50명이 넘는 미얀마인이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팻말과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킨다. 그렇게 3300㎞ 떨어진 미얀마에서 군부가 저항하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모두의 마음속에 41년 전 5월 광주의 풍경을 소환 중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전남대에서 공부 중인 양곤 출신 미얀마 유학생 A(26)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미얀마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면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광주 사람들은 깊이 공감하고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아들은 얼마 전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친구의 가족들은 체포됐다. 나도 고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까 두렵지만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 대표인 묘네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관련 도서를 읽었다. 그는 “광주 시민들이 연대의 의미로 주먹밥을 나눴듯 미얀마에서도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함께 버티기 위해 음료수와 라면 등 먹을거리를 나누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이 수월해졌고, 유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군부의 무력 진압이 거세지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지쳐 가고 있다. 묘네자는 “5·18 진압 작전 때 시민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유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화해의 포옹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미얀마에선 41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그는 “포스코 등 외국 기업과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면 미얀마인들을 하루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에에자(57)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광주처럼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되뇐다. 양곤대학교에 다니던 그와 함께 8888항쟁(1988년 8월 8일)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교수와 교사가 됐고,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에 동참해 도피생활 중이다. 군부가 은행을 장악해 돈줄이 끊긴 친구들을 돕기 위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미얀마인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태국 등 국경을 거쳐 송금한다. 더에에자는 “88년만 해도 지금처럼 군부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영아를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의 상황이 훨씬 어렵지만 젊은 미얀마 세대는 강하고 슬기롭다. 광주가 이겨냈듯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가 미얀마에게…“같이 싸우고픈 마음 담은 주먹밥 보냅니다”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에게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5·18 41돌인 올해는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미얀마인들을 위한 주먹밥이 빚어졌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오월어머니회 등 오월단체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재한 미얀마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담아 주먹밥을 보냈다. 17일 서울신문와 인터뷰한 박행순(71)씨는 지난 2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미얀마인들에게 따뜻한 주먹밥을 건넸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고 박관현 열사의 셋째 누나다. 옥중 고문을 견디며 단식투쟁을 하던 동생이 1982년 숨지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그는 2014년 미얀마를 찾기도 했다. 그 곳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역사에 기록된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유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박씨는 최근의 미얀마 상황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미얀마 어머니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어루만지며 ‘너를 대신해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강인한 여성들이었다”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전두환의 사과를 촉구하고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모습과 꼭 닮았다고 느꼈는데, 또 쿠데타가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를 비롯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미얀마 시민에 연대하는 성명을 내고, 쌈짓돈을 모아 100만원을 광주 미얀마인들이 모인 ‘광주 미얀마 네트워크’에 기부했다. 광주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단체들이 모인 미얀마 광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명자(71) 오월어머니회 관장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석달째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로 같이 가서 싸우고 싶다”고 전했다. 오월 단체들은 오는 23일 광주에서 회의를 여는 재한미얀마인들에게도 주먹밥 도시락을 전할 예정이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을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잃은 정성희(67)씨도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면 애기 아빠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떨린다”면서 “주먹밥이라도 보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이날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주먹밥을 나눠주기도 했다. 부상자를 옮기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복부에 맞은 뒤 기적처럼 살아난 김광호(61)씨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씨는 “1980년 광주 경찰들은 시민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도 군인의 본분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시민들을 위해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드 미얀마…“예술로 미얀마를 지지합니다”군홧발에 짓밟힌 채 피를 흘리는 청년, 쓰러진 사람을 품에 안고 군부에 맞서는 시민들…. 이처럼 1980년 5월의 광주와 2021년 5월의 미얀마가 공유하는 참상과 저항정신을 그려낸 전시와 공연이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 전남대에서 진행되는 ‘위드 미얀마’ 전시회가 그중 하나다. 미얀마 작가 20명을 포함해 국내 작가 43명, 영국·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해외 작가 7명을 포함해 73명의 작가가 작품 98점을 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정숙(58)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에 합류한 오빠를 찾으러 집 밖으로 나섰다가 계엄군을 피해 골목으로 뛰어든 순간이 생생하다.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진압하기 전날 스피커에서 나오던 “죽어가고 있다. 살려 달라”는 어느 소녀의 외침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깊은 부채감을 남겼다. ‘상처 속에 핀 꽃-민주화’처럼 5·18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얀마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기록한다는 소식을 접한 노 작가는 지난 3월부터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새 미얀마 군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수배를 받거나 연락이 끊긴 작가도 생겼다. 한국의 작가들은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작품 전시에 매달렸다.작가들은 시민들의 연대와 예술의 힘이 총칼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노 작가는 “한 미얀마 작가는 민주화 운동의 피가 다음 세대의 물방울로 바뀌는 작품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굳센 의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고경일 작가는 고 이한열 열사와 세 손가락을 들고 있는 미얀마 시위자를 연결해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미얀마를 살려내라’로 재탄생시켰다. 주최 측은 미얀마를 응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아카이브로 남길 계획이다. 올해 5·18 전야제도 미얀마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1부에는 광주가 아닌 도움이 절실한 미얀마의 이야기를 배치했고, 유튜브로 중계되는 공연에는 미얀마어 자막이 달린다. 총연출을 맡은 남유진(48) 감독은 “1980년 광주가 해외 교포나 외신 기자들의 도움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미얀마 시민들이 외롭지 않도록 광주에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싸움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한 미얀마 작가는 노 작가를 통해 하고픈 말을 전해 왔다. “우리 작품들은 매우 어렵게 전시됐고,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계속 지지해 주기를 바랍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나우뉴스] 방역 수칙 어겼다고…시민에 ‘몽둥이질’ 하는 인도 경찰

    [나우뉴스] 방역 수칙 어겼다고…시민에 ‘몽둥이질’ 하는 인도 경찰

    인도의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여전히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만 명대를 기록하는 가운데, 현지 경찰이 방역 규칙을 위반하는 시민들을 구타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NDTV 등 현지 언론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동북부 아삼주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이후 통금시간이 포함된 봉쇄령을 내렸으며, 현지 경찰은 통금 규정을 위반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구타하는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이 도시는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사람과 차량의 모든 이동을 금지하며, 마스크 착용 등 기존의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을 뒀다. 현지 경찰은 이 규정을 어긴 시민들을 거리에서 적발하는 즉시 몽둥이 등을 이용해 시민들을 구타했고, 일부 시민은 구타를 피하기 위해 도피를 시도하는 등 충격적인 장면이 잇따라 공개됐다.인도 경찰이 코로나 방역 수칙을 어긴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등나무로 만든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구타하는 처벌을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에도 뉴델리 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맨손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인도 경찰의 폭력행사는 시민들에게 공공연하게 당연시되는 행태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일각에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시민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예컨대 일부 힌두교도들은 신성시하는 동물인 소의 오줌을 마시고 대변을 몸에 바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고, 정부가 권고하는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한 후 갠지스 강변으로 시신들이 떠밀려오자, 경찰은 확성기를 이용해 시신을 아무렇게나 유기하거나 강둑의 얕은 모래에 아무렇게나 시신을 매장하는 행위를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현지 경찰은 순찰을 돌며 버려진 시신을 찾고 있으며, 수습된 시신은 의식을 갖춰 화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6일 기준으로 31만 1000여명, 사망자는 4077명으로 집계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방역 수칙 어겼다고…시민에 ‘몽둥이질’ 하는 인도 경찰

    방역 수칙 어겼다고…시민에 ‘몽둥이질’ 하는 인도 경찰

    인도의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여전히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만 명대를 기록하는 가운데, 현지 경찰이 방역 규칙을 위반하는 시민들을 구타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NDTV 등 현지 언론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동북부 아삼주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이후 통금시간이 포함된 봉쇄령을 내렸으며, 현지 경찰은 통금 규정을 위반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구타하는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이 도시는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사람과 차량의 모든 이동을 금지하며, 마스크 착용 등 기존의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을 뒀다. 현지 경찰은 이 규정을 어긴 시민들을 거리에서 적발하는 즉시 몽둥이 등을 이용해 시민들을 구타했고, 일부 시민은 구타를 피하기 위해 도피를 시도하는 등 충격적인 장면이 잇따라 공개됐다.인도 경찰이 코로나 방역 수칙을 어긴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등나무로 만든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구타하는 처벌을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에도 뉴델리 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맨손으로 얼굴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인도 경찰의 폭력행사는 시민들에게 공공연하게 당연시되는 행태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일각에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시민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예컨대 일부 힌두교도들은 신성시하는 동물인 소의 오줌을 마시고 대변을 몸에 바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고, 정부가 권고하는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한 후 갠지스 강변으로 시신들이 떠밀려오자, 경찰은 확성기를 이용해 시신을 아무렇게나 유기하거나 강둑의 얕은 모래에 아무렇게나 시신을 매장하는 행위를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현지 경찰은 순찰을 돌며 버려진 시신을 찾고 있으며, 수습된 시신은 의식을 갖춰 화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인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16일 기준으로 31만 1000여명, 사망자는 4077명으로 집계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칭총(동양인 비하)”…美 아시아계 15세 소년 집단 구타 당해

    “칭총(동양인 비하)”…美 아시아계 15세 소년 집단 구타 당해

    아시아계 증오범죄 연령이 낮아지는 모양새다. 14일 abc뉴스는 뉴욕 퀸스의 한 공원에서 아시아계 청소년이 집단 구타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일 아시아계 청소년 레팅 카이(15)는 친구 2명과 퀸스 레고파크에서 놀다 봉변을 당했다. 카이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또래 청소년 2명이 다가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한 명은 나를 ‘칭총’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칭총은 아시아계 미국인을 비하하는 은어다. 카이는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맞섰고, 가해 청소년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다른 청소년 3명이 싸움에 합세했다. 카이가 물러서지 않자 가해 청소년들은 후퇴했다. 상황이 종료됐다고 판단한 카이가 뒤를 돌아 현장을 벗어나려던 그때, 가해 청소년들이 등 뒤에서 공격을 가했다. 카이를 넘어뜨리고 머리에 가차 없는 주먹 공세를 퍼부었다. 카이는 “걔들은 정말로 내가 죽기를 바랐던 거 같다. 무서웠다”고 설명했다. 일면식도 없는 또래 5명에게 두들겨 맞은 카이는 몇 주간 심한 두통을 앓았다.신고를 접수한 뉴욕경찰(NYPD)은 사건을 증오범죄 전담반으로 이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14살 2명, 18살 1명 등 가해 청소년 5명 중 3명이 체포된 상태다. 경찰은 가해 청소년들을 경범죄처벌법 상 폭행과 괴롭힘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사건 이후 뉴욕주의회 레베카시라이트 의원은 증오범죄자들이 교육상담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시라이트의원은 “퀸스 15살 소년에게 일어난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한편 사건에 대해 침묵할 생각이었다는 카이는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등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카이는 “어머니는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아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면, 모든 피해자가 나처럼 침묵한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인종차별 증오범죄가 근절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미국 사회에 만연한 아시아계 인종차별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급증했다. 범죄 양상도 언어폭력을 넘어 신체 폭력으로까지 확대됐다. 아시아계 인권단체인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Stop AAPI Hate)에 따르면 작년 3월 19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미전역에서 접수된 아시아·태평양계 대상 증오범죄는 3795건에 달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율은 6% 감소했으나, 유독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만 149% 급증했다. 범죄 연령대도 낮아지는 모양새다. 지난 8일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80대 노인을 상대로 폭행 및 강도 행각을 벌여 논란이 일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30년 전 빼앗긴 경대의 봄, 아직도 찾아주지 못했다

    30년 전 빼앗긴 경대의 봄, 아직도 찾아주지 못했다

    밥은 꼭 먹고 가라는 엄마의 메모에 아들은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금방 올게요”라고 답장하고 집을 나섰다. 그는 이날 등록금 문제로 경찰서에 잡혀 있던 총학생회장 구출 시위에 참여했고, 교문 쪽에서 사복 경찰에게 쇠파이프 구타를 당했다. 1991년 4월 26일 대학생 강경대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지금 우리가 만끽하는 자유의 봄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뻗어 왔다. 하지만 어쩌면,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학원 민주화와 노동 해방, 인권 신장을 외치며 국가 폭력에 맞서 몸을 내던졌던 1991년 봄부터 30년 사이, 봄을 맞지 못한 청년들을 되짚었다. ‘1991년, 봄’을 연출한 권경원 감독은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국가폭력 앞에 몸 던져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를 수년간 취재하고 기록했다. 그 결과물로 낸 책에서 권 감독은 1991년 비극의 씨앗이 이때 잉태했다고 설명한다. 사회 각 부문으로 민주화 열기가 번져 나가자 정권은 3당 합당과 공안정국으로 반격에 나선다. 1990년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시위자는 끝까지 추적해 검거한다’면서 강력한 공안 통치로 사회를 옭아맸다.여기에 명지대생 강경대를 비롯해 새파란 청춘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정권의 폭압에 항거했다. 4월 29일 전남대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사망 규탄 집회에서 분신했다. 5월 1일 안동대 학생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 학생 천세용,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그리고 5월 12일 직장민주화청년연합 회원 윤용하, 5월 18일 노동자 이정순, 전남 보성고 학생 김철수, 5월 22일 노동자 정상순이 몸을 던졌다. 5월 6일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가 의문사했고,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시위 도중 사망했다. 모두 20~30대의 나이였다. 젊은이들의 사망 이후 이들이 어떻게 폄훼되고 지워졌는지도 살핀다. 경찰은 애도의 행렬을 폭력으로 막아섰다. 지식인으로 칭송받던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며 변절의 길을 걸었다.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주사파 같은 배후 세력이 있다”며 분열을 부추겼다. 검찰은 검사 9명을 동원해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했다. 저자는 당시의 아픔이 힘없고 이름 없는 이들에게 지금도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17살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이야기에는 꽃다운 나이에 숨진 김용균을 떠올리게 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맨 육우당 이야기에서는 변희수 하사가 겹친다. 승리의 기억으로 남은 1987년을 발판으로 정치권에 등장해 권력을 잡은 운동권 세력은 당시 폭정자들처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고, 내로남불의 구차스런 모습을 보인다. “1991년의 봄을 다시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진 않는다. 30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이강훈 화가가 이들이 ‘꽃 피는 봄날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철쭉 핀 교정, 벚꽃 길, 보성 녹차밭 등을 배경으로 미소 띤 모습으로 애틋하게 그려 냈다. 30년 전 지워졌던 이름을 불러내 애도하고 성찰하기엔 너무나도 찬란한 봄이지만, 우린 그래도 기억해 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악한 영’ 쫓아주겠다” 2살도 안 된 영유아 구타한 서초동 교회

    “‘악한 영’ 쫓아주겠다” 2살도 안 된 영유아 구타한 서초동 교회

    “목사 등 아이들에 상습 폭행·폭언 일삼아”“우는 아이 방치하고 독방에 감금 정서학대”“오후 6시부터 재운다며 난방텐트에 가둬”작년 6월 아이 질식사에도 처벌 안 받아피해아동 신변보호, 가해자 엄벌 촉구서울 서초구의 한 교회가 붋법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며 2살도 안 된 영유아들에게 ‘악한 영’을 쫓는다며 마구 때리고 독방에 감금하는 등 비상식적인 아동학대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회는 아이들을 오후 6시부터 강제로 재우기 위해 난방텐트에 가뒀으며 목사 등은 상습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단법인 두루, 정치하는엄마들 등 6개 단체는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의 생명의샘 교회가 보육·복지 미자격자를 고용해 만 2세 미만 영유아 10여명을 보육해왔다”고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생명의샘 교회가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도 없이 불법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했다고 주장했는데 의혹이 사실이라면 아동복지법과 사회복지사업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들은 “생명의샘 교회는 주거용 건물이 아닌 상업용 건물에서 영유아를 보육했으며 서모 목사와 종사자들이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면서 “우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독방에 감금하는 등 정서 학대를 일삼고 ‘악한 영’을 쫓는다며 때리는 등 비이성적 학대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후 6시부터 아이들을 강제로 재우기 위해 난방텐트, 침대 등에 가뒀다”면서 “장기간 저장이 용이한 백김치와 오이지 등으로만 반찬을 내는 등 영양이 부족한 음식을 장기간 제공했다”고 고발 사유를 설명했다. 해당 교회에서는 지난해 아이가 질식사까지 했으나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단체는 특히 “지난해 6월 교회가 돌보던 아이가 질식사하는 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조사했으나 책임자 처벌 및 미신고 불법시설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서울시와 서초구에 생명의샘 피해 아동의 신변보호와 치료를, 경찰에는 가해자 엄벌을 각각 요구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인·흑인 눈으로 본 美인종갈등

    한인·흑인 눈으로 본 美인종갈등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스테프 차 지음/이나경 옮김/황금가지/404쪽/1만 3800원 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은 흑인을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분노한 흑인들이 한인 상점을 약탈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왜 한인 상점이었나. 이 답을 알려면 1년 전 일을 돌아봐야 한다. 한국계 상점 주인 두순자씨는 열다섯 살 흑인 소녀를 강도로 오인해 목숨을 빼앗았지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흑인 사회에선 두 사건이 하나가 되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한인 이민자들에게는 치열한 생존이 미국 주류사회 편입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억척스러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외받는 흑인들에겐 ‘어글리 코리안’으로 비칠 수도 있다.재미 교포 작가 스테프 차(한국명 차영애)의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이런 한인과 흑인 가정의 시선을 모두 담아 미국 인종갈등의 실상과 딜레마를 그렸다. LA타임스 도서상을 받은 이 책은 1991년과 2019년을 넘나들며 인종갈등을 부추긴 구조적 문제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짚는다. LA 한인 마켓에서 약사로 일하는 교포 그레이스 박은 최근 경찰에 의해 사망한 10대 흑인 소년 추모 열기에 불편해하는 부모를 보고 의아해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정체 모를 괴한의 총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28년 전 어머니가 한 흑인 소녀를 사살했던 일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어릴 때 누나 에이바를 눈앞에서 잃은 숀은 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사촌 레이를 대신해 남은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왔지만,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레이가 불안하기만 하다. 독자는 그레이스의 어머니에게 총을 쏜 범인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증을 품으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작가는 ‘두순자 사건’의 비극적 진실을 최대한 살리되 인종, 가족, 폭력, 용서의 문제를 모두 파고들었다. 뒤늦게 어머니의 잘못을 알게 된 그레이스가 숀을 찾아 용서를 구하지만, 숀에게는 알량한 자비를 구걸해 위안을 구하려는 행위로 보일 뿐이다. 그레이스는 어머니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한인 교회 사람들에게 “세상을 더 나쁜 곳으로 만들고, 하느님에게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226쪽)라고 일침을 가한다.성공 지향적이고 한국식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부모 세대와의 갈등 등 2세대 한인 교포 여성의 시점에서 그리는 이민자 사회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방인’으로 남은 이민 가정의 애환에 그치지 않고, ‘가해자’로서의 한인 사회도 균형 있게 조명해 ‘인종의 용광로’에 융합될 것을 촉구해서다. 아울러 현재에도 진행되는 인종차별과 동양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30년 전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고발한다. 한 한인 가정의 ‘아메리칸 드림’이 인종차별의 악몽으로 변모하는데도 이를 방치하는 미국 언론과 공권력의 무지함도 폭로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모든 역경에 저항하는 인간 존엄의 힘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한 짓을 용서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용서해요. (중략)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어떤지 저도 아니까요”(382쪽)라는 숀의 이모에게서 화해를 통한 변혁의 가능성을 엿본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인종 차이를 넘어 소통해야 한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소설을 덮고도 곱씹게 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4ℓ 물 먹이고 속옷 벗겨 소변 강요” 경북 고교기숙사 후배 집단폭행

    “4ℓ 물 먹이고 속옷 벗겨 소변 강요” 경북 고교기숙사 후배 집단폭행

    고교기숙사서 ‘선배 뒷담화 했다’ 이유로 학생부 소속 고3 선배 여럿이 후배 2명에흡연 검사 명목으로 강제 추행·집단 구타피해학생, 소변 못 보자 기숙사 끌고가 폭행학교 조사 착수…교육청 “상황보며 대처” 경북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후배 학생들을 집단 폭행하고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벗겨 소변을 보도록 강요하는 등 강제 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교육 당국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 29일 경북도내 모 교육지원청에 따르면 A고등학교 학생부로 생활하는 3학년 학생 다수가 지난 11일 오후 10시 30분쯤 2학년 학생 2명을 고3 기숙사로 불러 집단 폭행했다는 신고가 최근 접수됐다. 폭행 이유는 ‘선배 뒷담화를 했다’는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가해 학생 일부는 피해 학생 1명을 화장실로 끌고 가 흡연 검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벗게 해 소변을 보도록 강요하고 4ℓ가량 물도 강제로 먹였다고 피해 학생들은 진술했다. 그러나 해당 피해 학생이 소변을 보지 못하자 가해 학생들은 욕설하며 다시 기숙사로 끌고 가 폭행했다. 피해 학생 측에 따르면 당시 피해 학생 2명은 1시간 반 동안 괴롭힘을 당한 뒤 자정쯤 풀려났다. 또 현장에는 집단 폭행 및 강제 추행을 한 학생들 외에 다른 학생 다수도 이를 지켜봤다고 한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에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상황을 지켜보며 사안에 대처할 방침이다”고 밝혔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가위로 코 끝을…미얀마 군부의 고문 받다 살아 돌아온 19세 청년

    가위로 코 끝을…미얀마 군부의 고문 받다 살아 돌아온 19세 청년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 2월부터 이어지는 가운데, 군부에게 체포돼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다 살아 돌아온 19세 청년의 증언이 공개됐다. 안전상의 이유로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19세 청년은 지난 2월 1일 시위가 시작된 뒤 미얀마 군부에 의해 구금된 4400명의 시민 중 한 사람이다. 이 청년은 군사 구금 수용소에서 3일을 보내며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4일, 이 청년은 오토바이를 타고 양곤 시내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때 군경이 양곤의 한 마을로 들이닥쳐 총격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80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군인들은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을 수색하던 중 방패를 들고 있는 이 청년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체포해 끌고 갔다. 군부대에 끌려간 이 청년은 손이 묶인 채로 케이블과 유리병, 총 등의 물건으로 반복적인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그는 “사령관이 작은 가위로 귀나 코 끝, 목 등을 잘라냈다. 유리병으로 머리를 치고, 총구를 겨누며 위협했다”면서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3일 밤낮을 고통 속에 보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 청년은 3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제대로 걷거나 혼자 단추를 채우기 어려울 정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그는 CNN과 한 인터뷰에서 “모든 게 끝이고, 나는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꿔먹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여기서 살아나가야만 다시 시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참가했다가 끌려가 고문을 당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이 위의 19세 청년 한 명만은 아니다. 일부는 지독한 고문으로 얼굴이 망가져버렸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다수다. 다만 이번 인터뷰는 고문을 받다 풀려난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지난 17일, 한 여성이 한밤중 집으로 쳐들어 온 군경에 의해 체포됐는데, 이후 이 여성의 어머니는 고문으로 입술이 터지고 눈에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딸의 사진을 확인하고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충격적인 체포·고문 전후의 사진을 공개한 주체가 다름 아닌 군부 측이라는 사실이다. CNN은 “미얀마 군부는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이런 사진을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총선에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지난 2월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됐고, 군부는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진압을 가하고 있다. 28일 기준,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최소 756명, 구금된 사람은 4500여 명에 이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판문점/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판문점/박홍환 논설위원

    한국 현대사에서 판문점만큼 많은 슬픔과 감격의 기억이 공존하는 장소가 또 있을까. 경기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개성특별시 판문구역 판문점리. 남북의 상이한 행정구역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굳어진 지 벌써 68년이다. 정전협정 이후 판문점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헤집는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았다. 1976년 8월 여름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유엔군 장병과 작업자들을 북한군이 무참하게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은 한반도를 다시 한번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뻔했다. 트럭 피습 사건(1968년 4월), 헨더슨 소령 구타 사건(1975년 6월), 소련 특파원 망명 사건(1984년 11월), 대성동 주민 납치 사건(1997년 10월) 등이 판문점에서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11월 북한군 병사 오청성이 총탄 세례를 뚫고 판문점을 통해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CCTV 영상을 통해 그가 개성 방향에서 지프를 몰고 ‘72시간 다리’ 등을 질주하며 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들어선 뒤 김일성 친필비와 통일각을 통과해 남측 지역으로 넘어오는 전 과정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북한군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그의 남행을 막는 모습은 판문점이 언제라도 한반도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인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줬다. 판문점에는 평화의 씨앗도 뿌려져 그 싹도 시나브로 고개를 내밀곤 했다. IMF 외환위기로 고통을 받던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은 장중한 서사 드라마만큼이나 극적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1001마리의 소를 태운 트럭들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측으로 향하는 모습은 남북 화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고, 결국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설로 이어졌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남북, 북미 데탕트의 역사도 판문점에서 시작됐다.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손을 맞잡았다. 직박구리 등이 조율해 낸 차분한 배경음악을 뒤로한 채 남북 정상은 도보다리에서 단독회담했고, 그날 오후 발표된 ‘판문점선언’은 한반도의 봄을 세상에 알렸다. 이듬해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까지 포함한 남북미 정상이 한날한시에 판문점에 모여 한반도 평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판문점선언 3년, 지금 남북 및 북미 관계는 언제 그런 봄이 있었냐는 듯 차갑기만 하다.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3년 전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판문점에는 소수의 관광객 외 인적도 끊겼다고 한다. 판문점에서 만들어지는 희망과 감격의 드라마는 또 언제쯤 볼 수 있을까. stinger@seoul.co.kr
  • 홍콩판 ‘정인이’ 사건…딸 학대한 부모 종신형 선고

    홍콩판 ‘정인이’ 사건…딸 학대한 부모 종신형 선고

    친부와 계모가 5살 소녀를 학대해 사망케 한 이른바 ‘홍콩판 정인이’ 사건에서 부모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일 5살 난 딸을 학대해 3년전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에게 2심 판결에서 종신형이 선고됐다고 보도했다. 5살 소녀였던 천루이린은 친부와 계모에게 약 5개월간 끔찍한 학대를 당하다가 2018년 1월에 사망했으며, 홍콩 역사상 가장 심각한 아동 학대 사건으로 일컬어졌다. 홍콩에서는 처음으로 아동 학대에 살인죄가 적용된 사례이기도 하다. 루이린의 부모는 루이린과 그의 8살 난 오빠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리고, 장시간 벽을 보고 있게 하거나 침낭에 넣어 묶어두는 등의 학대를 가했다. 경찰이 집에서 압수한 회초리, 슬리퍼, 칼, 가위 등 도구에서는 아이들의 혈흔이 발견됐고, 루이린의 몸에서는 133군데의 상처가 있었다. 수시로 아이들을 굶겨 루이린의 오빠는 나흘 동안 밥을 못 먹은 적도 있다고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루이린은 사망 전날까지도 구타에 시달렸다. 루이린의 오빠에 따르면 친부는 여동생을 천장에 닿을 정도로 세게 던졌고, 구타로 생긴 멍과 부기를 빼야 한다며 억지로 밤새 집안을 걷게 했다. 루이린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는데 사인은 패혈증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겨우 학대에서 벗어난 오빠의 몸에서도 128개의 상처가 발견됐다.29살의 아버지는 운수 노동자이며 30살의 계모는 가정주부였다. 홍콩 고등법원의 판사는 루이린 사건의 최악의 아동학대 사례라며 조부모들이 아이를 방치하지만 않았더라도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판사는 기독교도로 알려진 계모에게 성경에서 요한복음을 인용해 죄를 고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계모는 법정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재판의 관람석에서는 “부끄러운줄 알라” 등의 고함이 터져나왔다. 재판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서 법원은 더 넓은 법정으로 바꿔야 했으며, 로비에서 재판 과정이 생중계됐다. 경찰은 법정 밖에 분홍색의 슬리퍼와 아이를 학대하는데 사용한 가위와 막대 등을 전시했다. 루이린이 생전에 그린 그림에서도 아이가 느낀 고통이 드러나 있었다. 집 바닥과 벽이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불안감을 표현하며 도움을 호소했던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판결을 환영하며, 단 하나의 신고가 아이들을 더 큰 상처로부터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변호사는 사상 최악의 아동 학대가 아니라 훈육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며, 가족끼리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아이들의 끔찍한 삶 중에 잠깐의 위로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홍콩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가 가정에서의 학대 사실을 발견하고 아이들을 잘 보호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가 더 많이 근무하게 됐으며, 정부는 아동학대에 대한 기준을 수정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공원서 한국계 노부부 얼굴 가격한 美 남성, 증오범죄 혐의로 체포

    공원서 한국계 노부부 얼굴 가격한 美 남성, 증오범죄 혐의로 체포

    미국의 20대 남성이 한국계 미국인 노부부를 폭행하고 일본계 미국인 운동선수를 구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된 남성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25세 마이클 비보나로, 협박 및 노인학대, 증오범죄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지난 1일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공원에서 일본계 미국인이자 가라테 국가대표 선수인 사쿠라 코쿠마이와 언쟁을 벌였다. 그는 공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일본계 미국인 여성에게 다가가 “쳐다보지 말아라”, “당신은 패배자다”, “집으로 돌아가라”, “중국인” 등의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코쿠마이는 당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SNS에 공개하며 “누구에게나 이런 일(인종차별과 혐오발언)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아니었다면 누군가는 다쳤을 수 있다”며 분노섞인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보름 여 후인 지난 18일, 문제의 남성은 같은 공원에서 또 다시 증오범죄를 저질렀다. 이 공원에서 산책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부부(각각 79세, 80세)의 얼굴을 가격한 것. 이 일로 노부부는 얼굴을 크게 다쳤으며, 땅바닥에 내쳐지면서 다리에 찰과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한국계 노부부를 이유없이 가격한 남성이 10여일 전 코쿠마이가 SNS에 공개했던 영상 속 남성과 같은 차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둘러싸기 시작했고, 이후 도착한 경찰은 곧바로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코쿠마이는 “아시아계 노인 부부를 돕기 위해 애써 준 모든 분들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면서 “처음에는 (혐오발언을 들었던) 내 경험을 나누는 것에 긴장을 느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사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고 전했다. 체포된 남성은 경찰에 자신의 혐오발언 및 폭행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체포된 비보나는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 3월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증오범죄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현지시간으로 19일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 의원은 법무부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아시아 증오범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코로나19 증오범죄법’을 발의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인 노부부 다짜고짜 구타…미국 20대 남성 증오범죄로 체포

    한인 노부부 다짜고짜 구타…미국 20대 남성 증오범죄로 체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한국계 노부부를 공격한 20대 남성이 체포됐다. 그는 한국계 노부부뿐만 아니라 일본계 미국 올림픽 국가대표도 폭행한 것이 드러났고, 스스로 인종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해 증오범죄 혐의가 적용됐다. 2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와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오렌지카운티 오렌지시 경찰은 마이클 비보나(25)를 증오범죄와 노인 학대 혐의로 붙잡아 구금했다. 경찰에 따르면 비보나는 지난 18일 오렌지 공원에서 산책 중이던 79세 한국계 할아버지와 80세 한국계 부인에게 접근해 이들의 얼굴을 마구 때리고 땅바닥에 넘어트렸다. 당시 비보나는 한인 노부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유도 대지 않은 채 다짜고짜 ‘묻지마 공격’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비보나를 붙잡아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인계했다. 경찰은 사건 당시 구급대원들이 노부부를 응급 치료했고, 함께 출동한 경찰관이 노부부에게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이들 부부는 경관의 제안을 사양하고 혼자 힘으로 귀가했다고 전했다.조사 결과 비보나는 이번 폭행 사건에 앞서 도쿄올림픽 가라데 종목에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일본계 미국인 코쿠마이 사쿠라도 공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보나는 지난 1일 공원에서 운동을 하던 사쿠라에게 다가가 “역겨운 중국인,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등 인종차별 발언과 욕설을 하며 20여분간 집요하게 괴롭혔다. 경찰은 한인 노부부 폭행 사건과 함께 이 사건에도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성명에서 “가해자가 두 사건 모두 인종적 동기에서 저질렀다고 말했다”면서 “비보나는 아시아 커뮤니티에 일종의 집착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절대 뚱뚱해지지 않겠다’ 딸에게 각서쓰게 한 英 아버지 유죄

    ‘절대 뚱뚱해지지 않겠다’ 딸에게 각서쓰게 한 英 아버지 유죄

    딸에게 절대 살찌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하는 등 세자녀를 상습 학대한 영국 50대 남성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17일(현지시간) BBC는 영국 레딩크라운법원이 자녀 학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라키드 카들라(56)의 유죄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버크셔주 윈저 출신인 카들라는 지금은 성인이 된 세 자녀를 상습 폭행하고 학대했다. 재판부는 그가 세 자녀를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조종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무자비한 아버지의 학대는 2019년 10대였던 막내아들 히캄이 경찰에게 아버지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했다고 털어놓으면서 드러났다.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목을 졸라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큰아들 카림은 지난 16일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아버지의 신체적 학대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까지 얻었다고 진술했다. 카림은 “5살 때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학대가 나를 장기적인 정신건강 문제로 몰아넣었다”고 밝혔다. 큰아들은 “어린아이였던 나를 아버지는 심하게 구타했다. 집을 나오기 전 마지막 기억은 아버지에게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었던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아버지의 학대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겨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학대에 비하면 친구들의 괴롭힘은 즐거울 정도였다”고도 말했다. 큰아들에 따르면 카들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두들겨패고 모든 일상을 통제했다. 자녀들 체중 관리에도 집착했다. 특히 자녀 중 유일한 딸인 아미라에게는 “절대 뚱뚱해지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게 했다. 역시 16일 재판에 증인으로 선 딸 아미라는 2012년 아버지 강요로 각서에 서명했으며 섭식 장애를 얻게 됐다고 밝혔다. 아미라는 “아버지의 다이어트 강요로 자신감을 잃었고 섭식장애까지 얻었다. 어리석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었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흐느꼈다. 모든 정황을 근거로 아버지의 유죄를 인정한 크리스티 리얼 판사는 판결문에서 그를 ‘깡패’라 묘사했다. 판사는 “수년에 걸쳐 여러 잔인한 사건들을 벌여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철저히 망가뜨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깡패나 다름 없었지만, 스스로 범행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더불어 그에게 가족에 대한 무기한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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