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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영생활 민주화… “제2의 창군”/복무규율 개정안 마련의 의미

    ◎구타ㆍ폭언금지… 병사인권 최대 보장/정치개입 규제강화로 중립성 확보/42년간의 관행 개선하려는 실천의지가 관건 국군이 창군 42년만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군기중심에서 벗어나 「민주화 군대」「국민의 군대」로 탈바꿈하게 된다. 국방부는 오는 10월1일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따른 새로운 통제형 합참의장제도를 출범시키면서 「군인복무규율」과 「국군병영 생활규정」 등 군관계 법령 76개를 개정,군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조직으로 개편해 나가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키로 했다. 국방부가 제2의 창군정신으로 88년 8월18일 이후 2년간에 걸쳐 변호사ㆍ교수ㆍ학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군복무규율 개정안은 아직도 군내부에 있는 구 일본군대의 악습과 폐단을 근절하고 병사 개개인의 인권과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군의 주인인 사병중심의 생활규범을 담고 있다. 상관의 명령을 「직무상 명령」으로 한정시키고 부하의 복종에 대한 규범도 『절대로 복종해야 한다』는 현행규범에서 「절대로」를 삭제하고 「원인이나 이유를 물을 수 없다」는 문구도 삭제,지난 61년 『불법한 명령은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례의 정신을 살렸다. 명령과 복종에 대한 규정은 80년 광주사태 당시 발포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누구였으며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민간인에게 사격을 한 것을 과연 정당한 자위권의 행사로 보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첨예한 논란을 벌였던 문제인 만큼 군부로서도 앞으로 군이 시위진압을 위해 출동할 경우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절실해진 부분이다. 국방부는 지난 2월7일 국방부장관과 3군참모총장의 군무회의에서 상정한 군인복무규율개정안 시안에서 「무기사용제한 규정」을 넣으려고 했다가 이 조항을 군인복무규율보다 상위인 계엄법에 규정키로 결정했었다. 법조인 대학교수 정훈ㆍ인사관계 현역장성과 예비역장성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군규율개정 연구위원회는 『계엄령하에서 치안유지를 위해 출동한 군인에게 몇가지 예외적인 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신체 및 생명을 위협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중대한 행위이기 때문에 헌법규정에 따라 반드시 법률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 법률로 정하기로 했다. 군의 무기사용제한 조항을 설치하는 것은 군인의 총기사용을 제한,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법과 질서유지를 위해 출동한 군인의 정당한 무기사용행위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하겠다는 군보호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국방관계 대통령령중 무기사용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ㆍ헌병무기사용령이 사용령(대통령령 제4746호) 제3조와 위수령(〃 제4949호) 제15조,군인복무규율(〃 제4923호) 제3조 제123조 초병 근무수칙에 명시되어 있다. 헌병 무기사용령과 위수령ㆍ군인복무규율 등의 무기사용범위는 생명ㆍ신체 또는 재산을 방위함에 있어 그 정황이 급박할 때와 여러 사람이 떼지어 폭행을 할 때 자위권의 발동으로 무기사용권을 규정하고 있다. 군인의 정치행위 금지에 관한 규정은 현행 복무규율에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 이외에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막연히 규정한 조항에 구체적인 금지조항을 추가했다. 즉 ▲정당 및 정치단체 가입 ▲특정정당 및 정치단체 지지 혹은 반대 ▲공식선거에서 특정정당이나 후보자를 당선 혹은 낙선시키는 행위 ▲투표에서 찬성이나 반대를 강요하는 행위 등이다. 이는 과거 군에서 장병들을 상대로 특정정당을 유리하게 하는 교육을 실시하거나 선거에 개입하는 폐단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는 이같은 정치개입을 절대로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대통령령으로 돼있는 복무규율등은 법제처에 회부되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늦어도 오는 10월1일부터는 시행될 전망이나 실제 병영생활과 장병들의 사고까지 바뀌는데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건군이후 42년간 유지돼온 군내의 비합리적인 사고와 관행ㆍ요소들이 한꺼번에 개선될 수는 없기 때문에 실제 병영생활에서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3∼4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것이 군관계자들의 전망이다.
  • 군 치안유지 출동때 무기사용 엄격규제/국방부 개정안

    ◎계엄법에 명시키로/명령은 「직무지시」에 한정/새달 시행 정당지지ㆍ반대 강요 금지 국방부는 계엄령이나 위수령의 발동으로 군인이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출동했을 경우 무기사용을 법률에 의해 엄격히 규제키로 했다. 또 군인에 대한 명령도 「직무상 지시」로만 한정해 직무와 무관한 명령이나 범법행위를 저지르게 하는 부당한 명령은 불법으로 간주,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처벌하며 군인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도록 강요하는 정치행위도 할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국방부는 10일 이같은 내용의 군인복무규율개정안(대통령령ㆍ총6장43조)과 국군병영생활규정안(국방부 훈령ㆍ총12장1백7조)을 확정,10일 법제처에 넘기고 계엄법ㆍ계엄법시행령 등 군관계 법령도 개정키로 했다. 군인복무규율등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는 대로 오는 10월1일 새 합참본부 출범과 함께 시행되며 계엄법등은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계엄법에 신설될 무기사용제한규정은 계엄령 위수령에 따라 군이 질서유지임무를 받고 출동했을 때라도 「무고한 사람이희생될 우려가 있을 때는 무기사용을 금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그러나 ▲지휘관의 명령이 있을 경우 ▲자위상 부득이한 경우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폭행해 올 경우 등에는 제한적으로 무기사용을 가능토록 했다. 무기사용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사용하기 전 적절한 경고조치를 취하고 인명피해를 줄이며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고 사용후에는 그 상황 및 사유를 지체없이 보고토록 하고 있다. 군인복무규율개정안은 병영생활에 자율의 폭을 확대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존중해서 민주적 군대를 만들며 구타나 폭언,가혹행위 등 사적 제재조치를 금지하며 이런 비민주적 행위가 발생했을 때는 지휘관이 그 책임을 지도록 했다.
  • 여대생 변사관련/대학생 3명 영장

    【광주】 광주 서부경찰서는 20일 하문호(20ㆍ송원전문대 토목과1),조모(19ㆍ재수생ㆍ전남 화순군 화순읍),박모군(19ㆍ재수생ㆍ화순군 도암면) 등 3명에 대해 강간치사ㆍ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달아난 공범 김모(19ㆍ재수생ㆍ화순군 도곡면),조모(19ㆍ무직ㆍ화순군 남면),신모군(19ㆍ무직ㆍ고흥군 금산면)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하군 등은 지난13일 하오11시30분쯤 광주시 서구 광주동 송원전문대 5층 적십자서클룸에서 피서계획을 짜고 있던 김향숙양(19ㆍ식품영양학과) 등 5명의 학생을 각목 등으로 구타하고 김양을 끌고나와 폭행,김양이 이를 비관해 5층 아래로 뛰어내려 숨지게한 혐의를 받고있다.
  • “소란피운다” 꾸짖자 이웃 찔러 숨지게/2명 영장ㆍ1명 수배

    【성남】 29일 새벽 0시20분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630 주택가골목길에서 이모(18ㆍ주거부정),김모(19ㆍ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최모군(19ㆍ태평4동) 등 10대 3명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다 이를 나무라던 이웃주민 박형훈씨(33ㆍ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1630)를 집단구타하고 흉기로 찔러 박씨가 그자리에서 숨졌다.
  • 휴전 37돌ㆍ범민족대회 계기로 본 어제ㆍ오늘

    ◎“냉전ㆍ대화의 장”… 두얼굴의 판문점/화해ㆍ도발ㆍ긴장 엇갈린 「국권의 사각지대」/북측,남북교류 구실로 정치선전장화 기도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7년,그동안 판문점은 동서이념 대결과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뉴스의 초점이 돼왔으며 최근에는 활발해진 남북대화와 함께 개방여부를 놓고 또 한차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53년 7월27일 상오 10시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육군대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발효와 함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휴전회담 회담장을 중심으로 직경 8백m의 원을 그려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삼은 것이 오늘의 판문점이다. 세계 각국의 언론에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기묘한 장소」라고 불리운 판문점은 북위 37도57분20초,동경 1백26도40분40초,한국도 북한도 아닌 국권의 진공지대이다. 휴전이후 37년동안 4백50여차례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렸으나 합의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논쟁과 설전만 계속해왔다. 북한의 선전과 도발,생떼,어거지가 본회담의 주류를이루던 판문점은 때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팽팽한 긴장의 현장이었으나 7천만 민족의 통일의 염원이 결려있는 곳이며 남과 북의 유일한 대화통로여서 늘 뉴스의 초점이 되어 왔다. 당초 휴전회담은 1951년 7월10일 공산군의 통제지역인 개성에서 시작됐다. 공산측의 제의에 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한 유엔군측은 휴게소건물이나 회의장건물이 모두 공산측의 장악아래있어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았다. 1951년 10월25일 유엔군측은 당시 남북군사분계선상에 있던 판문점을 새로운 회담장소로 제의,공산측의 합의를 받아 옮겼다. 초가집과 판잣집 4채 밖에 없던 주막거리 판문점은 일약 유엔군과 공산군의 고위장성을 실어나르는 헬리콥터와 내외신 보도진들이 몰려드는 뉴스의 현장이 되었다. 대형 천막 4개를 급히 세우고 이속에서 회담은 계속 됐다. 2년여동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이곳에는 천막대신 목조건물이 세워졌고 53년 7월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됐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유엔군측의 자유의 집ㆍ평화의 집ㆍ일직 장교실ㆍ초소ㆍ막사 등이 들어서고 공산측에도 판문각ㆍ통일각ㆍ경비본부초소ㆍ막사 등과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실 등 1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남북의 회담장은 군대 막사형인 단층의 목조건물로 20여평밖에 되지 않는다. 회담장 한 가운데 녹색 커버를 씌운 테이블이 놓여 있으며 테이블위로 국토를 양분하는 비극의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앞에 놓고 유엔군과 공산군의 장군급대표 5명이 『안녕하십니까』나 『또 만납시다』라는 인사말도 없이 37년간 수사학적인 말의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단뒤로는 비서장을 비롯한 보좌관과 한국어ㆍ영어ㆍ중국어 통역 등 20여명씩의 수행원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다. 군사정전위가 열릴때마다 유엔군대표들은 서울을 출발,헬리콥터나 차량편으로 임진강의 자유의 다리를 건너 회담장으로 가고 공산측은 하루전에 평양을 출발,개성에서 1박을 한뒤 4천m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대신 북쪽에 새로 놓은 다리를 지나 판문점에 도착한다. 유엔군측의 자유의집은 65년 9월30일 준공됐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공산측도 2층 건물인 판문각을 준공했다. 80년 6월20일에는 자유의 집옆에 연건평 1백40평의 남북총리회담장 건물이 준공됐고 89년 12월20일에는 남북회담장소로 사용할 3층의 백색건물 「평화의 집」을 준공했다. 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과 72년 7월의 7.4공동성명으로 판문점에서 남북조절위원회가 열리면서 판문점은 휴전이후 두절된 남북대화의 통로가 활짝 열리는듯 했었다. 그러나 73년 8월28일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대화중단 선언으로 판문점은 또다시 냉전과 설전의 싸늘한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남북회담이 중단된지 3년뒤인 76년 8월18일 북한의 경비병 30여명이 도끼와 몽둥이 등으로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 판문점은 숨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도끼만행사건이전에도 59년 1월27일 소련 프라우다지 평양특파원 이동준씨 귀순,67년 3월22일 이수근위장탈출,75년 6월30일 미군장교 구타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80년대에 들어 남북대화가 재개되면서 판문점은 남북회담장소로 변해 84년 11월15일 남북경제회담과 85년 7월23일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체육회담 등이 계속해 열렸다. 85년 9월20일에는 남북고향방문단 2백여명이 이곳에서 출입사열을 거쳐 교환방문했으며 84년 수재때에는 북한이 제공한 수재구호물자 쌀 7천1백96t,의약품 7백59상자가 이곳을 통해 전달되기도 했다. 휴전뒤 37년동안 1백55마일의 군사분계선중 유일하게 총칼대신 탁자가 놓여진 이곳에서는 상스러운 욕설에서부터 고도의 이념논쟁에 이르기까지 수억만 단어가 3개국 언어로 구사되면서 때로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는 장소로,때로는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 동전치기로 돈 잃고 경관이 “강도”신고(조약돌)

    ○…20대 청년 3명과 동전치기를 하던 경찰관이 이들 청년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뒤 「강도를 당했다」며 파출소에 허위신고,경찰이 권총까지 쏘며 이들 청년들을 검거하는 소동을 벌여 물의를 빚고 있다. 25일 인천시경에 따르면 지난24일 상오3시쯤 이천시 북구 계산동 988 신명약국앞길에서 이 동네 김동윤씨(28) 등 3명과 함께 동전치기를 하던 인천시경 기동1중대소속 길상봉순경(29)이 이들 청년과 말다툼 끝에 집단구타당해 전치2주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길순경은 곧바로 인근 부평경찰서 부내파출소로 찾아가 강도를 만나 폭행당하고 현금 1만7천원을 빼앗겼다고 허위신고,부근파출소인 작전파출소 소속 황선룡순경(26) 등이 출동해 이날 상오11쯤 북구 계산동 삼보세탁소 앞길에서 황순경이 38구경 권총으로 공포 3발을 발사하는 소동끝에 김씨 등 2명을 붙잡았다.
  • 쿠바경찰 공관난입 쟁점화

    ◎미국 치외법권 지역 침범 격렬 항의/스페인 대사 소환… 피신자 체포 맹비난 【아바나ㆍ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쿠바경찰이 17일 미대표지역내에서 쿠바인 1명을 체포한 사건으로 미­쿠바간 새로운 외교분쟁이 일고 스페인이 18일 아바나주재 대사를 소환한 가운데 쿠바당국은 외국 대사관 피신자들에 대한 초강경 입장을 천명,관련국간 외교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무부는 17일 아바나주재 스위스대사관 지역내에 위치한 미대표부에 망명을 요구하려던 것으로 보이는 쿠바인 1명을 경찰이 쫓아 들어와 구타한후 체포해 갔다고 밝혔다. 국무부 리처드 바우처대변인은 미치외법권지역에서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존 테일러 미대표가 쿠바 외무부 당국에 항의를 제기했으며 피체포자의 신원등은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편 스페인측은 아바나주재 스페인대사관에의 쿠바인 망명희망자 피신사건과 관련,안토니오 세라노 데 아로 쿠바 외무장관이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즈 오르도네즈 스페인 외무장관을 비난한데 대한 대응조치로 18일 아바나주재 대사를소환했다. 스페인 외무부 대변인은 아로 장관이 오르도네즈 장관에 대해 「무지」「식민지배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비난한 것은 국제관계상 요구되는 최소한의 준거마저도 저버린 것이라고 비난하고 아바나 주재대사를 협의차 소환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상급자들이 집단 구타/의경 병원후송중 숨져

    14일 하오6시40분쯤 서울 마포경찰서 219중대소속 차경남의경(19)이 이 경찰서지하 구내식당에서 위성전의경(19)과 안경모의경(19)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 한편 마포경찰서는 위의경 등 2명을 폭행치사혐의로 입건,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15일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미성년 애인 술집취직/주인협박 금품을 갈취/폭력배 5명 구속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일 한재환씨(24ㆍ서울 용산구 동자동 14의92) 등 폭력조직 「한수파」일당 5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5월초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S다방에서 폭력조직을 만든뒤 같은달 10일 한씨의 애인 김모양(20)을 중구 봉래동 거상룸살롱에 취직시켜 놓고 주인 정진호씨(53)에게 『미성년자를 고용해 퇴폐행위를 강요한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고 위협,3차례에 걸쳐 1백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또 지난달 27일 이 술집 종업원 안재남씨(33)가 김양을 구타하자 앙심을 품고 안씨를 이웃 여관으로 끌고가 흉기로 위협하고 마구 때린뒤 김양의 치료비명목으로 1백만원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 과민증 불감증(사설)

    작은 시비가 큰 시비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시비가 사실은 그렇게 작은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아이싸움이 어른싸움 동네싸움으로 번지고 세르비아인 학생이 쏜 사라예보의 총 한방이 1차 세계대전을 빌미로 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작은 시비가 너무 자주 그것도 신경질적으로 일어나면서 과격한 데로 발전하고 마는 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 현실이다.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전 지하철이 좀 연착한다 하여 기다리던 승객들이 유리창 등 기물을 부수면서 난동부린 일을 기억한다. 젊은이가 나이든 이에게 담뱃불을 붙이자고 하는 것을 나이든 이가 나무라자 그를 구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일도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엊그제 서울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우를 살해한 사건도 그 맥락이다. 뛰어가면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을 못참고 시비를 벌인 끝에 흉기로 찔러 죽이고 있다. 잔뜩 화가 나있고 무엇엔가 쫓기는 상황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 세태이다. 자그만 일에 금방 분통들을 터뜨리면서 사단을에스컬레이트시켜 나간다. 너나없이 과민반응 증후군속을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근래 부쩍 늘어나고 있는 존비속 살해사건도 그것이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닌데,조금만 이성을 찾는다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인데 신경질적으로 그 존비속을 살해하고들 있는 것이 아니던가. 각박해진 사회현실이 심어가고 있는 심리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사회는 너무들 극기와 인내의 덕목을 망각하고 잇다. 못견디고 못참는 것이다. 조급해지고 성급해져 있는 것이다. 학교성적 떨어진다고 자살하는 경우를 놓고 보자. 학우를 살해하는 경우와 나타난 현상은 다르지만 심리상태로 보자면 다를 것이 없다. 못견디고 못참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공격의 대상이 타냐 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살하고 타살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와같은 과민증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대도시의 건널목 풍경을 보자. 파란불이 켜졌다 해도 전후좌우를 살핀 다음 건너간다 해서 크게 늦을 것은 없다. 그렇건만 파란 불이 켜질 무렵 해서 뛰어건넌다. 자동차들도 역시 그렇다. 고층건물의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들에게도 이 건널목 건너기 심리는 그대로 나타난다. 2∼3초만 기다리면 문은 자동으로 닫히련만 그걸 못기다리고 버튼을 두번 세번 신경질적으로 눌러댄다. 우리가 정작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사회적인 불감증이다. 사소한 일로부터 고교생이 고교생을 살해한 사건만 해도 그것이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것인 만큼 대단히 중시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냉담한 채이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들이 거푸거푸 일어나면서 우리의 정상한 감각이 면역을 심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심리의 일반화가 범죄현상 못잖은 악성의 사회병리라고 하여 잘못이 없을 것이다. 이제 여름이다. 계절적으로 불쾌지수라는 것이 다른 때보다 더 높아지는 철이다. 이런 때일수록 좀 느긋해지는 심성들을 기르기로 하자. 사람이란 이성을 지녔기에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던가.
  • 루마니아,반정시위 무력진압/군,탱크앞세우고 진입… 관공서등 탈환

    ◎친정광원 도심 장악ㆍ야당사 난입 수색/내무장관 인책해임 【부쿠레슈티 AP AFP 연합】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반정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빚어진지 하룻만인 14일 루마니아 보안병력이 부쿠레슈티 주요관공서를 점령하고 1만여명의 친정부 광원들이 시내 중심가를 장악했으나 이들 친정부 지지자들이 반정부시위 용의자들을 구타하고 야당 본부를 수색하는등 긴장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한 이에 앞서 탱크를 동원한 중무장 군병력이 13일 밤 과격 분자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 주요지점에 배치됐다고 부쿠레슈티라디오 방송이 국방부의 발표를 인용,보도했다. 이들 친정부 광원들은 「반정부 폭력사태」의 분쇄를 지원해 달라는 일리에스쿠 대통령의 호소를 듣고 이날 새벽 앞서 시위대들의 가두 폭동이 발생한 곳인 마그헤루거리에 집결,출근하던 시민들의 신분증을 검사했으며 시위 용의자를 구타,경찰에 넘기기도 했다. 한편 루마니아 보건부 관리들은 이날 하오 2시(한국시간 하오8시)현재 앞서 시위대와 군경의충돌로 7명이 사망하고 2백77명이 부상했으며 80명이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말했다. 친정부 광원들은 또 취재기자들을 공격하고 사진촬영을 방해했는데 인터콘티넨탈호텔에 있던 기자들에게 사진촬영등 취재를 중지하라고 위협했으며 AP통신의 크리스티나 피르불레스쿠 기자는 곤봉에 얻어맞고 프레스카드를 빼앗겼다. 또한 친정부 지지자들은 야당 건물과 부쿠레슈티 대학 외국어학과 건물등을 수색했으며 이중 일단의 군중들이 대표적인 야당인 민족농민당 당사에 난입,지하실에서 탄약을 발견했다고 관영 롬프레스통신이 전했다. 루마니아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보안 병력들이 13일밤 1시간 이상동안 반정부 시위대들에 의해 점령됐던 국영 TV방송국 일대로부터 반정부 시위대들을 몰아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어 루마니아 군병력은 이와 함께 과격 시위대들이 화염병 공격을 기도한 내무부 청사도 점령했다고 말하고 후퇴하던 「과격단체들」이 내무부에서 탈취한 무기로 군인들에게 총격을 가해왔다고 밝혔다. 루마니아보안군은 또 라디오 방송국을비롯,정부 본부건물,주요 전화교환소 및 여타 주요 건물들을 장악했다고 국방부는 덧붙였다. 【부쿠레슈티 로이터 연합 특약】 페트레로만 루마니아총리는 14일 경찰의 반정부시위 진압실패의 책임을 물어 미하이 치탁내무장관을 해임하고 후임에 군법무관인 도렐 우르수(37)를 임명했다고 정부 소식통들이 말했다.
  • 아버지살해 자매/「보호자 위탁」처분/“정상참작… 가정 선도바람직”

    서울가정법원 소년부 안철규판사는 25일 술에 취해 야구방망이로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한 강모양 자매(13ㆍ중2년,12ㆍ중1년)에게 보호자 위탁과 함께 2년동안의 보호관찰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이들을 소년원에 보내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보다 집으로 돌려보내 어머니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존속살인이라는 엄청난 일이지만 이들은 술만 마시면 행패를 일삼는 아버지가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왔으며 사건당일에도 아버지가 미친듯이 어머니와 자신들을 구타하자 그동안의 감정이 폭발,우발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 경찰,시위 과잉진압 말썽/전주/시위대 각목 구타…항의 시민도 폭행

    ◎부산선 대학유리창등 파손 【전주】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이 쇠파이프와 각목등으로 시위대를 구타하고 이를 항의하는 시민까지 폭행하자 시위현장 주변에 있던 상인과 주민 6백여명이 파출소에 몰려가 농성을 벌였다. 16일 하오6시쯤 전북대생등 대학생 2백여명이 전주시 진북동 모래내 시장 주변에 모여 「민자당 해체」 「노태우정권 퇴진」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1개 중대병력을 출동시켜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에 나섰으나 이과정에서 쇠파이프와 각목등으로 도망가는 학생들을 구타하고 이를 항의하던 일부 시민도 폭행하자 시장 상인과 시민 6백여명은 하오7시30분쯤 인근 진북동파출소(소장 노병호경위ㆍ53)에 몰려가 연행학생석방 및 과잉진압 사과를 요구하며 하오10시쯤까지 농성을 벌였다. 한편 경찰은 시민들에게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자진해산을 유도했다. 【부산】 15일 하오4시10분쯤 부산시 남구 대연동 부산공업대 대연캠퍼스 앞길에서 이 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부산남부경찰서 도보대소속 179중대 등 3개중대 병력 2백50여명이 교내로 진입,학생들을 구타하고 학교기물을 마구 부수는 등 과잉진압을 해 말썽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이 학교 학생 3백여명이 학교앞에서 이 대학 운영개선을 요구,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자 최루탄을 쏘며 후문을 통해 교내로 진입,도서관과 체육관ㆍ교양관 등으로 달아나는 학생들을 뒤따라가 시위진압용 죽봉 등을 마구 휘둘러 유리창등 학교기물을 부수고 학생 5∼6명을 집단 폭행하는등 20여분간 과잉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 베트남인을 한인오인/뉴욕 흑인들 집단폭행

    【뉴욕 UPI 연합】 미 뉴욕 브루클린 지역에서 13일 새벽 약 15명의 흑인 남자들이 한국인등에 대한 인종비난을 외치며 베트남인 3명을 한국인인줄 알고 공격,이중 1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고 뉴욕 경찰당국자들이 밝혔다. 경찰의 한 대변인은 흑인 남자들이 이날 새벽 1시30분경(현지시각) 한국인과 베트남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 창문을 통해 병을 던진뒤 아파트 안에 있던 베트남인 3명이 밖으로 나오자 이들을 한국인으로 오해하고 집단구타해 베트남인 1명에게 두개골 골절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 현대 9개계열사 항의파업/현중농성 진압

    ◎연행 4백99명중 50여명 구속방침/마창노련도 동맹파업 결의 【울산=임시취재반】 혼미를 거듭하던 울산 현대중공업사태는 파업 4일째인 28일 새벽 공권력개입으로 일단 끝을 맺었으나 현대자동차ㆍ현대중장비 등 울산지역 현대계열사 9개 노조원 등 1만여명이 공권력투입에 반발,현대자동차 정문앞 등 시내 곳곳에서 격렬한 동조파업농성을 벌이고 있어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또 마산ㆍ창원노동조합연합회(회장직대 정상철ㆍ29)산하 40개 노조도 동맹파업을 결의하고 나서는 등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와함께 강제해산 과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현대중공업 근로자 1백여명은 비상식량을 휴대하고 노조사무실 부근 높이 80m의 대형 골리앗 크레인 위로 올라가 저항을 계속하는 등 이날 하오 현재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날 상오 강제해산된 현대중공업 근로자와 현대계열업체 근로자등 1만여명은 현대자동차 정문앞 도로를 완전 점거,농성을 벌이다 경찰차량 7대를 불태웠으며 대치하고 있던 경찰병력 2개 중대 2백50여명을 포위하고 경찰을 집단구타,박성실순경(27ㆍ경기 706전경대) 등 9명에 중경상을 입혔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 6명도 부상했다. 현대자동차ㆍ현대중장비 등 현대계열사는 노조원들의 이같은 동조파업농성으로 이날 하루 일제히 휴무에 들어갔으며 현대강관 등 2개 회사는 조업이 중단됐다. 이에앞서 경찰은 이날 새벽 6시에 73개 중대 1만여명의 병력을 농성장에 투입,4백99명의 파업근로자를 연행,이중 50여명을 구속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울산 곳곳 화염병시위/현대중진압 항의/근로자들 도심서 경찰과 충돌

    ◎어제 22개교 휴업… 밤들어 평온 회복 【울산=임시취재반】 현대중공업에 공권력이 투입된이후 울산시내는 이를 규탄하는 현대계열사의 동맹파업농성과 연행되지 않은 근로자들이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산발적인 시위농성을 벌이고 있어 이번사태의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다. 울산지역 9개계열사 노조원등 1만여명은 28일 상오부터 하오늦게까지 현대자동차 정문앞 도로를 완전점거,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경찰4개중대 6백여명과 차량7대 소방차9대를 한때 고립시킨채 농성을 벌이다 하오1시쯤 정문과 후문에서 경찰병력 2개중대 2백50여명을 에워싸고 경찰을 집단구타,1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이시위로 버스등 경찰차량 7대가 전ㆍ반소되고 10여대의 차량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이날 강제해산된 근노자들은 하오2시쯤 현대자동차 회사안으로 밀려들어가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며 농성을 계속했다. 이에따라 현대그룹 계열업체들은 경찰에 병력배치를 요청,5개중대씩을 배치받아 주변일대를 차단함으로써 소강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계열사노조원들의 동조농성이 늘어나고 도로가 차단됨에 따라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에 이르는 7㎞의 4차선도로등 1백여개 도로가 완전히 불통됐으며 이들의 점거가 계속될 경우 이 일대 전화ㆍ남목ㆍ양정동등 5개동 주민들이 외부와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날 근로자들의 잇단 시위와 농성으로 울산시내와 방어진간도로의 차량통행이 차단되고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주변지역이 온통 최루가스 냄새로 가득해 현대중고교ㆍ서부국교등 시내 22개 학교가 28일 하룻동안 임시휴업하고 회사와 점포들이 문을 닫는등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현대중공업 사태는 밤이 깊어지면서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으며 현대자동차노조는 30일 상오 회사내에서 조합원 임시총회를 개최,동맹파업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이날 상오부터 공권력 투입에 반발,울산시내 곳곳에서 화염병투척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근로자 1만여명은 하오6시쯤 대부분 해산하고 4백여명만이 회사노조 사무실앞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한편 경찰에 쫓겨 회사내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중인 근로자 1백여명은 하오7시10분쯤 크레인 위에서 횃불을 켜들고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며 『경찰의 진압작전에 대비,분신조를 편성했다』고 주장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 처음 공개된 마쓰시로 「제2대본영」

    ◎한인원혼 떠도는 「일제」발악의 현장/지하호 13㎞… 「본토결전」위해 극비공사/한인노무자 7천명 강제동원… 천여명 사망/맨발ㆍ맨손으로 발파작업… 하루3∼5명 희생당해 【마쓰시로 연합】 일본이 패망 직전 일왕의 임시 거처와 전시최고사령부(대본영) 구축을 위해 한국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극비리에 건설하던 「마쓰시로 대본영」 내부가 22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군의 「제2대본영」으로 불리는 마쓰시로 대본영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 11월11일 상오 11시 대규모 발파작업을 시발로 도쿄 북서쪽 6백㎞지점의 나가노(장야)현 나가노시 마쓰시로읍 일대 3개 야산의 땅밑에 구축하던 지하호로 당시 현지 경찰과 헌병들조차도 공사사실을 모를만큼 철저히 은폐돼 왔던 곳이다. ○3개 야산에 구축 태평양전쟁말기 사이판섬 함락(44년 7월) 등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도쿄 대본영을 폐쇄,이른바 「본토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배수진으로 마련됐던 이 대본영에는 최소한 한국인 노무자 7천여명이 지하갱도굴착,발파작업 등에 강제 동원돼 1천여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기 하루전인 45년 8월 14일까지 9개월동안 계속된 대본영 건설공사에는 당시 돈으로 2억엔이라는 엄청난 예산과 연인원 3백만명이 투입돼 패전으로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총연장 13㎞의 지하호가 완성(공정률75%)됐으며 발파등 가장 위험하고 힘든 막장작업에는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이 동원돼 하루 3∼5명씩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아사히(조일)등 일본 취재진 50여명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한국탐사팀과 취재진에 공개된 대본영지하갱도 안에는 당시 한국인 노무자들의 참혹했던 상황을 짐작케 하는 낙서,유류품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으며 지상에 세운 소위 일왕침실은 완공된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 무학산,상산 등 해발 1백∼2백50m 높이의 3개 야산 지하에 파들어가던 대본영에는 왕궁,참모본부,왕족학습원,군사령부,정부행정기관 및 언론사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한인 유류품 총연장 13km의 지하호는높이 3m,폭 3m의 통로가 바둑판처럼 뚫려 있었으며 지질이 단단한 암반이어서 어떠한 공습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 이곳을 공개한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현재 대본영의 지상건물과 갱도 일부는 지진관측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완공된 상태의 일왕 침실은 10평 크기의 일본 고유 다다미방으로 공습위험이 있을 경우 대피하도록 별도의 지하궁전이 마련돼 있었으나 이곳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본영 부근 시노노이 아시히 고교 지하호 연구회가 펴낸 조사서와 와다 노보루(화전등)의 저서 「송대 대본영」에 따르면 한국인 노무자들은 무학산지하호 부근에 78동,상산 지하호 부근에 1백29동등 모두 2백40여개동의 급조막사(반장)에 20∼30명씩 나뉘어 기거하면서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기계ㆍ노예처럼 혹사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시의 증언자나 자료가 거의 없어 사망자 숫자 등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혹사당해 다만 하루 3∼5명씩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발파사고,갱붕괴사고 등으로 실려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으며 일왕침실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은 특정공사가 끝나면 20∼30명씩 집단으로 한밤중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극소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최소한 1천여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신주대 학생들이 최근 작성한 보고서 등 마쓰시로 대본영에 관한 조사서들은 『특히 일왕의 임시거처에 동원된 한국인의 경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어딘가로 끌려갔으며 이들이 산중에서 총살돼 매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건설현장에 동원됐다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본영 부근에 살고있는 유일한 한국인 생존자인 최태소씨(68ㆍ본적 경남 합천군 가야면 이천리)는 이날 현지 취재에 동행,자신이 직접 굴착했던 곳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최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침목이 깔려있던 흔적과 천장,벽에 무수히 뚫려 있는 다이너마이트 발파용구멍 등을 가리키며 45년전의 공사현장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사담땐 죽도로 구타 최씨가 규수지방에서 거주하다 건설현장에 끌려온 것은 24살 때인 1944년 10월말쯤. 지금은 논ㆍ밭으로 변해버린 상산지하터널앞 광장에는 수백채의 조선인 숙소가 빽빽히 들어찼고 그때부터 최씨는 줄곧 인근 마을에서 건설공사 현장 잡역부로 일하면서 거주해왔다고 회상했다. 최씨등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로 맡았던 일은 하루 12시간씩 맨발 맨손으로 낙반 가능성이 있는 곳이나 막장 등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한창 나이였던 덕분에 죽을 고비를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최씨는 『50∼60대 한국인 노무자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노동이나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일본인 작업반장들은 1개조 4명으로 점조직처럼 구성된 작업반원들이 다른 조 사람들과는 물론 반원들끼리도 사담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키고 이를 어겼을 경우 몽둥이 죽도 등으로 무참히 구타했다』며 『지금 징용자수나 사망자 수가 유곽도 잡히지 않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인력 더 많을듯 지난 87년 8ㆍ15해방 42주년을기념해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다룬 「머나먼 여행」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하루카 나루타비씨(50ㆍ여)는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현장에 동원됐던 한국인 징용자수와 사망자수을 좀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날 현지취재에 동행했던 하루카씨는 『4살때인 1944년 10월초 부모를 따라 마쓰시로로 이사했다』며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로는 하루 평균 한국인 노무자 5∼6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알려진 7천∼1만명의 한국인노무자 투입은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라며 암반 굴착작업이 하루에 1∼5m씩 진행된 것으로 미루어 볼때 9개월동안 동원된 인력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루카씨는 『현재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자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가 다 소각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디엔가 명부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일본정부의 정확한 기록을 찾아내는 것이 마쓰시로 대본영 건설의 진상을 파헤치는 요체』라고 강조했다.
  • 네팔정국 다시 혼미/경찰,시위대에 또 발포… 18명 사망

    ◎카트만두일대에 통행금지령 【카트만두 로이터 AP UPI AFP 연합】 수천명의 네팔인들이 23일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렌드라 국왕의 국외 망명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여 왕궁을 향해 행진하던 수백명의 시위 군중들과 보완경찰이 충돌,경찰관 6명이 시위대들에게 맞아 목숨을 잃고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시민 7명이 숨지는 등 최소한 13명이 사망하고 54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목격자들과 의사들이 밝혔다. 또 카트만두시 남서부지역 칼란키스탄에서도 시위대 5명이 사망한 것으로 현지주민들에 의해 전해졌다. 네팔정부는 이날 카트만두 일원에 현지시간으로 하오 8시부터 10시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고 네팔국영방송이 보도했다. 이날 시위는 2주전 네팔정부가 일련의 민주적 개혁조치들을 단행한 이래 발생한 최초의 주요한 폭력사태로 그동안 국왕에 대한 공격을 가급적 자제해 왔던 네팔국민들이 비렌드라 국왕의 퇴진을 처음으로 요구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목격자들은 경찰이 최소한 4곳에서 왕궁으로 행진하는 수백명의 시위 군중들을 향해 발포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위대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성난 군중들은 경찰관들을 마구 구타하며 격렬히 저항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들은 이날 카트만두 교외에 있는 비하르 병원에 5구의 시체가 도착했는데 이 가운데 2명은 구타로 사망한 경찰관이며 3명은 총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 리투아니아 인쇄공장/소군,또 점거

    【모스크바ㆍ빌나 UPI AP 연합】 약 50명의 소련군인들이 20일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도 빌나의 한 인쇄공장에 난입,경비원을 구타하고 유리창을 부수는 등 행패를 부려 부상자 2명이 발생했다고 리투아니아 정부의 한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소련군인들이 난입한 인쇄공장은 리투아니아 공산당의 부속시설이며 주로 잡지류를 인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 추락하는 아버지의 권위/황산성변호사(서울시론)

    ◎세태 탓하기전 「가장의 소임」다해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에서의 규범이 파괴되고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심심찮게 표출되고 있다. 한 마디로 아버지의 위치가 흔들리고 그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가정을 보호ㆍ지도하는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이 신뢰를 상실하고 자녀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시대가 변천하여 전통적 유교문화에 대한 절대복종규범이 통하지 않는 세태임을 아직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가 많다는 사실이다. ○사회기초단위마저 흔들 작년 10월 어느날의 사건이다. 두 아들을 둔 40대 부부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고 아들들도 부모에 만족하며 모범 학생들이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돈 많은 과부와 놀아나면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는 출세의 야욕에 눈이 어두워 가정을 저버렸다. 아버지는 두 아들만은 탐이 나서 같이 사냥을 다니며 그 여자를 새엄마라고 소개하였다. 큰아들이 어머니에게 아버지한테 여자친구 생겼으니 조심하라는 귀띔을 했다. 그래도 워낙 단란했던 가정이었기에 어머니는 그말을 예사로이 넘겼다. 아버지는 바람난지 6개월후부터 아예 집을 나가버렸고,아내에게 이혼을 폭력으로 요구하였고,이에 응하지 않자 가정법원에 이혼 심판청구를 제기해 놓고 수시로 집에 와서 아내를 구타하였다. 큰아들은 의협심이 강해 어머니를 때리지 못하도록 아버지를 만류하였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고하여 고아원에 보내겠다,탄광촌에 보내겠다는 막말을 퍼부었다. 사건당일 아버지는 또 나타나서 가재도구를 다 때려부수고 아내를 구타하자 격분한 큰아들은 부엌으로 달려가서 칼을 들고 나와 아버지를 찔렀다. 아버지는 사망하였고 모범생 아들은 응분의 형사처벌을 받는 죄인이 되었다. 엊그제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가 평소에 어머니를 자주 구타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야구방망이로 어머니를 구타하자 중2(여),중1(여),국4(남)3남매가 부엌칼 도마 프라이팬 등으로 벌떼 덤비듯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했다. ○「가치없는 부권」에반항 형사적 책임이 면제되는 14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포악하고 무분별하며 존경할만한 가치가 없는 부권에 대한 아이들의 분노와 도전이었다. 그렇게도 허물허물한 아버지에게 방종의 무대를 마련하는 움직임이 있다. 간통죄 폐지론이다. 간통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입법추세이고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및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형사법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손해배상 또는 위자료청구로 해결할 문제이며 간통자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사회적 기반이 상실되고 충효를 교육의 기본으로 한 자녀들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염려와 가진자와 못가진자 구별에 따른 불평등적 운영과 위자료를 받기 위한 협박 또는 공갈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간통을 저지르는 여성이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여성에게 불리한 법이라는 등의 이유로 간통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보장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분명히 오늘의 우리 가정은 일부일처제를 적법한 가족관계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하는 경우에는 2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봉함된 편지나 문서 또는 도화를 개파하여 비밀을 침해한 행위가 3년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형법규정과 비교해 볼 때 위 두 죄가 고소가 있어야 논하는 바 깊은 사려 끝에 내리는 결론인 간통죄가 큰 무리라고 볼 수 없다. 미국 판례법상 간통죄가 폐지된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의 지위향상과 성개방문화로 인하여 단지 사문화되어 있다. 아직 민법상 아내의 위자료청구나 자녀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선진국과 같이 보장되어 있지않는 현행 제도하에서 비록 공갈 또는 협박의 수단으로 활용되더라도 간통죄는 필요한 최후의 수단이다. ○「작은천국」 소중히 지켜야 간통죄가 폐지되면 아직도 살아 있는 세대가 부첩제도의 특권을 누렸던 경험에 비추어 우리 사회에서 일부일처제는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한편 아내와 자녀들을 천사처럼 착하고소중하게 여기던 아버지가 가장노릇이 힘들다고 하여 동반자살을 하였다. 부권을 절대권이 인정한다 하여도 아내와 어린 자녀들의 생명박탈권까지 부여받지는 않았다. 자녀들은 가장의 전유물 내지 소유물로 착각하는 오만도 버려야 한다. 아버지들이여 작은 천국에 비유되는 가정에서 아버지다운 전인적 소임을 다하지 못하면 거꾸로 자녀들의 징벌에 의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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