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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에 맞아 학생 사망” 괴문자 확산

    고교생의 촛불집회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집회에 참가한 학생이 교사에게 맞아 숨졌다는 내용의 근거없는 ‘괴문자’가 학생들 사이에 번지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9일 “특정 학교와 학생의 실명을 거명하며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문자메시지가 돌고 있다는 학교측의 신고에 따라 발신자를 추적하는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괴문자가 돌기 시작한 것은 8일 오후 11시 55분쯤.‘돌리세요!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구타당해 숨진 ○○여고 김별아양을 추모’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고등학생들 사이에 무차별로 퍼졌다. 이어 9일 오후까지도 문자메시지는 이어졌다. 경찰은 “확인 결과 실명이 거론된 서울 J여고 1∼3학년을 통틀어 ‘김별아’라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고 사망학생도 없었다.”면서 “이 학교 학생들이 한 반에 20명 이상씩 이런 문자를 받았다는 진술에 따라 학교측이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J여고 이모 교장은 “교사에 의한 구타 사망이라는 문자의 내용이 매우 악의적”이라면서 “학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해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존재하지도 않는 학생의 이름과 학교명을 거론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 고의적으로 퍼뜨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은 “발신번호가 ‘12345’‘89898989’ 등으로 되어 있어 PC방 등에서 웹투폰 방식으로 대량으로 발송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발신자 추적과 IP추적 등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지만, 근거없는 루머로 학교측이 큰 타격을 받은 만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유포 등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효용 나길회기자 utility@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기준은 재민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인영이 힘찬의 선물을 챙겨준 사실을 알고는 인영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갖는다. 인영은 인영이 대로 옹졸하게 구는 기준에게 짜증이 나 마침내 두 사람은 부부싸움을 한다. 선미와 인철은 데이트를 나갔다가 인영에게 들켜 찜찜해 하고….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의 직업관도 바뀌고 있다. 사자·호랑이 등 맹수들을 돌보는 스물여섯살 처녀 엄마 이민영 맹수 사육사, 한강 위의 유람선을 책임지는 스물다섯의 박혜성 항해사. 색다른 직업에 도전하는 박혜성 항해사와 이민영 사육사를 초대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정부가 부동산 값, 특히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강남의 집값을 잡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부동산을 안정시킬 수 있는지를 진단해 본다. 서종대 건설교통부 주택국장, 고철 주택산업연구원장이 패널로 참석한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최근 수많은 부부들이 오해하고 갈등하며 끝내는 헤어짐을 선택하고 있다. 이혼율이 급증하는 현실의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잘못된 남편상과 아버지상이 자리잡고 있다. 아버지 학교의 김성묵 본부장을 초대해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구체적 활동 등에 대해서 들어본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MBC 오후 7시20분) 남편의 잦은 구타를 못견뎌 어린 딸과 함께 집을 나온 신옥자씨. 신씨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자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딸을 큰집에 맡겨둔다. 이별을 위한 외출이 딸과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였다는 옥자씨.21년간 눈물로 그리워한 딸을 만날 수 있을까.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 밤 12시15분) 영원한 발라드의 지존 조성모.‘러브레터’에서만 볼 수 있는 그의 커플 이벤트. 소울 발라드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찾아온 슈퍼 가창력 BMK, 멤버 교체 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 온 플라워, 무공해 순수 음색을 자랑하는 신인 가수 모세와 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 “중정에서 고문 받을때도 ‘인혁당’ 한마디도 안나와”

    “조사과정에서 ‘인혁당’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대표적인 반유신운동의 제물이자 광복 이후 최대 ‘사법살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던 인혁당 사건. 당시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소속으로 반독재 운동을 벌였던 강창덕(77·대구시 북구 동변동)씨는 2일 “인혁당 사건은 명백한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고 단언했다. 야당과 언론계(그는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다)를 중심으로 유신반대 운동을 주도하던 강씨는 1974년 5월6일 체포된 뒤 다음날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로 압송됐다. 강씨는 “남대구경찰서로 끌려가 밤새도록 자행된 구타와 물고문을 이기지 못해 조서에 도장을 찍었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경찰·검찰 조사를 거치고 중정 지하 고문실에서 조사받을 때도 수사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인혁당’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고 강씨는 항변했다. 강씨는 “중정에서 조사받을 때 차출된 경찰관들이 원고를 갖고 들어와 그 내용대로 신문했다.”며 조작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강씨는 긴급조치 1호(유신헌법에 대한 부정적 논의금지)와 긴급조치 4호(민청학련 관련활동 금지) 위반, 국가보안법(반국가단체 조직)·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의 중죄가 씌워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1차 인혁당 사건과 같은 목적의 반국가단체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공소장을 보고 나서야 강씨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공소장도 2시간여 만에 뺏겼다고 한다. 당시 대구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며 반유신운동을 벌이다 15년형을 구형받았던 임구호(57·대구)씨는 “공소장에 ‘자생적 공산주의자’로 적혀 있었다.”며 인혁당 사건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수사당국의 발표를 부인했다. 임씨는 “서대문구치소 부소장실에서 조사받을 때 검찰 수사관이 책상 밑의 종이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읽고 서기가 받아 썼다.”며 짜맞추기식 수사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수사 총책임자였던 이용택(74·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장) 당시 중정 6국장은 “수사당국이 고문에 의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려고 작정했다면 북한과의 관계를 왜 못 캐냈겠냐.”며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반박했다. 그러나 이 전 국장은 대법원 선고 20여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실에 대해 “1차 인혁당 사건 뒤 간첩 3명이 잡혔는데도 10년 후 다시 불법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인혁당 관련자들을 좋지 않게 봤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세번째 소설집 ‘꽃게무덤’ 펴낸 권지예

    세번째 소설집 ‘꽃게무덤’ 펴낸 권지예

    “대학 강의를 그만둔 뒤 직장다니듯 글을 쓴다.”는 소설가 권지예(45)가 ‘폭소’이후 2년 만에 세번째 소설집 ‘꽃게 무덤’(문학동네 펴냄)을 냈다. ●신작 8편과 ‘뱀장어스튜’ 묶어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그해 문예창작론을 강의하던 동해대 교수직을 작파하고 창작에만 오롯이 매달렸다. 그사이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트’와 ‘폭소’,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전 2권),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등 숨돌릴 틈 없이 작품을 쏟아낸 걸 보면 어지간히 창작에 배가 고팠나 싶다.‘꽃게 무덤’은 2003년 봄부터 올 봄까지 계절의 순환에 호응하듯 주기적으로 발표한 신작 8편과 ‘뱀장어 스튜’를 묶었다. “첫 소설집은 프랑스에 체류하는 30대 이방인 여성의 정체성에 주력했고,‘폭소’부터는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인 갈등을 다뤄보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소설집을)묶어놓고 보니 아줌마의 삶, 음식의 상징, 죽음에 대한 응시 등 참 다양하더군요.” 표제작 ‘꽃게 무덤’은 간장게장을 탐식하는 여자와 그녀를 추억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석모도 해변에서 홀연히 남자 앞에 나타났던 여자는 살을 발라먹고 남은 꽃게 무덤처럼 텅 빈 자리만 남기고 사라진다. 남자는 여자의 자취를 따라 석모도 갯벌을 다시 찾지만 그녀에게 중독된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한다. “간장게장은 참 지독한 음식이에요. 살아 있는 꽃게의 발톱을 잘라 간장에 삭힌 음식이니 얼마나 지독해요. 살을 탐하고 텅빈 속내로 남는 꽃게를 통해 삶과 사랑의 비극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지독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간장게장 탐식하는 女·그리고 男 ‘뱀장어 스튜’도 그렇고,‘꽃게 무덤’도 그렇고, 유난히 음식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있는 걸까. 짐작했던 대로 프랑스에서 8년간 유학한 경험을 들려준다. 학생 신분이라 돈이 궁했던 부부는 외식은 꿈도 못 꾸고 늘 값싼 재료를 사다 요리를 해먹었다. 한국에서 요리를 거의 안해본 그녀도 날마다 요리책과 씨름하다보니 나중엔 도가 트일 정도가 됐다.“먹고 살기 위해 요리하는 과정이 삶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통찰도 생기더라.”며 웃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물의 연인’은 지난해 여름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숙소 앞에 펼쳐진 강(江)에서 영감을 얻어 쓴 글이다.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면서도 평생 단 며칠밖에 함께 지내지 못한 두 노년의 사랑이 물의 이미지를 통해 잔잔하게 그려진다. ●“당분간 단편 접고 장편에 매진” 남편에게 구타당하면서도 우렁각시처럼 집에 숨어들어 집안일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인 ‘우렁각시는 어디로 갔나’, 뚱뚱한 몸을 활용해 모델일을 하는 여자가 주인공인 ‘여자의 몸-Before&After’등은 속도감있게 읽히는 재미와 함께 단번에 세태의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쾌감을 맛보게 한다. 그는 “서사 위주의 글은 입담을 풀어놓듯 편하게 쓸 수 있지만 만족감은 덜한 편이다. 이미지가 강하고, 은유가 많은 글에서 만족감을 느끼는데 그런 건 아무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꽃게 무덤’이나 ‘뱀장어 스튜’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야행성이라 일주일에 두번씩 작업실에서 1박2일 코스로 글을 쓴다는 작가는 당분간 단편을 접고, 장편에 매진할 계획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7년 한솥밥’ 신치용·신영철 감독 28일부터 격돌

    ‘신-신의 대결, 양보는 없다.’ 17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삼성화재 신치용(50) 감독과 LG화재 신영철(41) 감독이 프로배구 원년 플레이오프라는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쳤다. 현대캐피탈이 선착해 있는 챔프전 진출을 놓고 28일부터 3전2선승제의 피말리는 격돌을 벌이게 된 것. 두 감독은 1988년 한국전력에서 각각 코치와 선수로 만나 1996년 삼성 창단 때 감독과 코치로 함께 자리를 옮겼고, 이후 지난해 신영철 감독이 LG화재 사령탑에 취임할 때까지 17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제지간’. 아직까지 제자가 스승을 꺾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올해 삼성을 가장 괴롭힌 건 LG였다. 삼성이 현대캐피탈과 챔프전 직행표를 놓고 막판 피말리는 ‘소수점(세트득실률) 전쟁’을 벌일 당시 한 세트를 빼앗아 플레이오프로 밀어낸 것도 LG였다. 정규리그 팀 성적을 따져보면 양팀의 전력차는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득점력에선 LG가 앞선다. 무엇보다 구타 파문 속에서 ‘비온 뒤 굳어진’ 조직력이 삼성의 걱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신치용 감독은 “최근 폭행사태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LG의 결속력과 전력 때문에 장기전은 불가피하다.”고 털어놓았다. 신영철 감독은 “삼성의 수비와 조직력을 높이로 깨뜨려 챔프전 진출은 물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거포 김세진(삼성)과 이경수(LG)의 맞대결은 두 감독의 대리전 양상. 출장 기회가 적어 득점에서는 이경수에 한참 뒤지지만 김세진의 공격 성공률은 51.25%에 달한다. 체력이 되살아난 ‘득점왕 0순위’ 이경수는 삼성·현대와의 최종전에서 양팀 감독을 혼쭐내 “향후 이경수가 제대로 터지면 대책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게 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큐! 아름다운 노년] ④ ‘사각지대’ 학대받는 노인

    [큐! 아름다운 노년] ④ ‘사각지대’ 학대받는 노인

    며칠 전 부산 동래구에 사는 안광순(67·가명) 할머니는 아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신세를 졌다. 그동안 전화로 ‘못할 소리’를 하던 아들이 집에 찾아와 재산 명의변경을 요구하며 온갖 협박과 행패를 부렸다. 이에 놀란 안씨는 곧바로 부산 서부 노인학대상담센터 노인 임시보호실로 피신했다. 상담센터에서는 평소 건강이 안 좋은 안씨를 병원으로 인계했다. 산업화,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학대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온갖 정성을 기울여 키운 자식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일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동물과 달리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인간의 윤리·도덕의식이 극도로 엷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24일 “지금 한국사회는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사회”라며 “사회보장제도가 성숙되지 않는 한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해자 85%이상이 친족 노인학대상담센터 김은주 소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노인학대의 가해자도 85% 이상이 친족이다.”고 밝혔다. 아들 며느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같은 노인학대는 부모가 자녀를 가해자로 신고하는 것을 꺼리고 있어 은폐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상황에 비춰 신고되는 노인학대건수는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인학대상담센터가 밝힌 노인학대 가해자 현황(2004년도)을 보면 1477명의 노인학대 가해자 중 아들(701명)·며느리(403명)가 무려 74%를 차지하고 있다. 딸(146명)과 배우자(103명)가 뒤를 잇고 있다. 이처럼 노인학대가 아들·며느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부모를 모시든, 안 모시든 부양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소장은 “아들과 며느리가 특별히 못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부모나 다른 형제로부터 기대와 요구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매 맞는 것만 노인학대가 아니다 노인문제연구소 박 소장은 “구타·내버림만 노인학대가 아니다.”면서 “물질·정신·정서적 학대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인학대는 이외에 언어적, 성적 학대까지도 포함된다. 여성노인은 정서·언어·신체적 학대를, 남성노인은 방임 또는 경제적 학대를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노인들이 농촌노인보다, 질병이 있는 노인이 없는 노인보다 학대에 더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학대 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총 2038건의 학대유형 가운데 정서·언어적 학대가 신체적 학대보다 훨씬 심각했다. 신체적 학대가 390건인 반면 언어적, 정서적 학대는 각각 440건,463건으로 오히려 더 많았으며 경제적 학대도 232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소장은 “노인학대를 광의로 해석할 경우 65세 이상 노인 인구 420만명 중 60∼70%가 이런저런 이유로 학대를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적 독립성을 잃고 자식에게 의지하고 있거나 중풍·치매 등으로 부양을 받고 있을 경우 학대의 위험요소는 더 커진다.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김기웅 교수는 “가족간 역할이 바뀌면서 학대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이런 경우 가족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신이 학대하는 줄 모르고 학대하는 경우도 많다.”며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선진국 높은세금 ‘노후연금’ 으로 인식 노년기에 경험하는 학대는 노인의 삶 자체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피해 노인들이 심한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삶을 포기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박 소장은 “한국은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며 “이는 노인부양기능이 상실됐고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웨덴·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은 현재 노인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지만 30∼40년 전만 해도 노인자살률이 높았다. 완벽에 가까운 사회보장제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자살률을 잡은 것이다. 따라서 노인학대를 예방하는 첩경은 부양문제를 가정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국가사회가 떠맡아야 한다. 박 소장은 “국가가 자녀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떼내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면서 ‘사적 부양’에서 ‘공적 부양’으로 제도를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스칸디나비아는 국가가 봉급생활자 소득의 48%, 의사나 변호사는 60%까지 떼고 있으나 조세저항은 거의 없다. 자신의 소득에서 뗀 돈으로 국가가 자신의 부모를 부양해주기 때문이다. 자신도 늙으면 이런 형태로 노후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하고 있다. ●독립성 유지가 가장 좋은 대안 노인학대는 가정폭력의 하나로 단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진적 발전을 보이며 재발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노인들의 보호쉼터나 그룹홈 등 대안적 주거시설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노인 스스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학대를 방지하는 지름길이다. 노인들이 육체적, 경제적 독립성을 가질 때 노인학대는 사회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의 노동환경처럼 생산성, 효율성 등으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는 기업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 책임이란 컨셉트로 파트타임 등 노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월 30만원이면 노인들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김 소장은 말했다. 노인학대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상담센터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국가에서 지원하는 노인학대예방센터(1389)는 서울과 부산 등 16개 광역자치단체에 1곳씩만 설치돼 있다. 민간단체가 있긴 하지만 폭주하는 노인학대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노인학대는 개인적인 문제나 특정 연령층에만 국한된 지엽적인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고령화·고령사회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반적인 인권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대받는 노인들의 의식전환도 필요하다. 자식에게 어떤 피해가 갈까봐 숨기고 속으로 끙끙 앓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 소장은 “학대를 받고 있는 노인들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쉬쉬해서는 안된다.”면서 “신고·상담 등을 통해 밖으로 끄집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려야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신고·상담 어떻게 하나 Q)노인학대 신고 및 상담 긴급전화는. A)노인학대 신고 긴급전화는 1389번으로 24시간 핫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번없이 1389번만 누르면 관할 노인학대예방센터 상담원과 연결돼, 즉시 상담 서비스가 이뤄진다. 이동전화를 사용할 경우에는 지역번호+1389번을 눌러야 한다. Q)노인학대 신고는 누가 해야 하나. A)학대 피해노인이 직접 신고하거나 가족 및 친지, 이웃, 관련기관 종사자 등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특히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노인복지시설 종사자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장애노인에 대한 상담·치료·훈련 또는 요양을 행하는 자 ▲가정폭력 관련 상담소의 상담원 및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등은 노인학대 의심사례를 발견했을 경우 반드시 신고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Q)노인학대를 신고하면 어떤 서비스를 받나. A)신고접수된 노인학대 의심사례는 상담원(노인학대행위조사원증 발급)의 현장조사를 거쳐 적정한 보호조치가 이뤄진다. 응급한 사례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12시간내에, 단순 노인학대 사례는 48시간내에 현장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다시 도마 오른 ‘선수구타’

    지난 21일 터진 프로배구 LG화재 선수 구타사건은 암담함 그 자체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프로배구를 주저앉힌 꼴이다. 문제가 된 감독은 선수들과 입을 맞춰 사실 은폐에 나서는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물론 인격과 도덕성까지 도마에 오르게 됐다.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감독이 발뺌한 뒤 1시간도 안돼 피해 선수가 “있었다.”고 폭로, 유난히 조직력을 강조하는 배구판의 지도자·선수들간 신뢰와 의리도 허물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배구와 특정팀에만 있을까. 성적 지상주의에 물든 국내 스포츠계의 구타·가혹행위는 방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마와 프로를 가릴 것 없이 심심찮게 불거져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여자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이 상습적으로 체벌과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으로 확인돼 파문을 일으켰다. 최근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가 전국 16개 시·도의 학생 선수 1600명과 지도자 200명, 학부모 120명, 국가대표 선수및 지도자 1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무려 78.1%(국가대표 4.9%)가 구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국내 스포츠계 폭력행위는 여전히 ‘살아있는 불씨’임이 입증됐다. 만연한 국내 스포츠계 폭력행위는 구단과 지도자, 선수들이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스포츠에 대한 존엄성을 바로 세울 때 사라질 수 있다. 마침 대한체육회도 22일 선수 폭력행위 방지를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선수보호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하니 체육계 전체 차원에서의 정화 운동을 기대해 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프로배구 선수도 맞았다

    프로배구 LG화재의 신영철(41) 감독이 선수를 구타했다는 네티즌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 LG화재의 한 선수는 21일 “한국배구연맹(KOVO)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 있는 구타 목격담은 모두 사실이고, 신 감독이 선수 입막음까지 시도했다.”고 밝혔다. 앞서 천안 배구팬이라고 밝힌 김모씨는 “지난 14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 패한 LG화재의 신 감독이 선수대기실에서 선수들에게 기합을 주고 발로 목을 차는 등 폭행했다.”는 글을 KOVO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이 선수는 “선수들이 모두 머리를 바닥에 박는 체벌을 받았고,2명의 신입 선수는 목 뒷부분을 구둣발로 밟혔다.”면서 “신 감독이 선수들에게 ‘15초 동안 얼차려만 받았고 구타는 없었다고 말하라’는 지시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프로배구 원년리그 정규시즌 한 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3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LG화재는 구타 파문에 휩싸이게 됐고, 지난해 11월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의 상습 폭행에 이어 스포츠계의 사라지지 않는 구타 관행이 또 한번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신 감독은 이날 삼성화재와의 경기 후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팀에는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노장 선수도 많은 데 때렸다면 선수들이 운동 안한다고 했을 것”이라면서 “훈계 차원에서 얼차려를 10초 가량 시키긴 했지만 구타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21일 경기에서 석진욱이 부활한 삼성화재가 LG화재를 3-1로 눌렀고, 여자부 도로공사는 KT&G에 3-1로 역전승,11승4패로 창단 35년 만에 첫 우승컵을 눈앞에 뒀다. 인천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키르기스 아카예프 대통령 하야

    키르기스스탄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정부 주요 건물을 점령하면서 옛소련 국가 가운데 그루지야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세번째로 민중혁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야당쪽 발언을 인용,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하야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 기세에 경찰들 도주 24일 수도 비슈케크에서는 전날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5000여명의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와 정부청사 건물을 포위했다. 시위대는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경찰과 대치하다가 건물을 경비하던 수백명의 경찰들이 도주하자 청사 안으로 진입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지난 13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남부지역에서부터 시위가 시작된 지 11일만이다. 시위대는 청사를 완전히 장악한 뒤 공무원들을 구타했으며, 가구와 집기 등을 건물 밖으로 내던지고 서류를 불태우기도 했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전날 케네슈베크 듀셰바예프 내무장관은 “합법적으로 물리력을 이용한 진압을 할 수 있다.”며 강경진압 방침을 밝혔지만 이날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하지는 않았다. 이어 시위대는 키르기스 국영 방송국을 점거했으며, 투옥돼 있던 야당의 핵심 지도자인 펠릭스 쿨로프 전 부통령을 풀어줬다. 지난 2000년 아카예프의 퇴진을 요구하다 투옥된 쿨로프는 석방 직후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위해 조만간 야당 지도자들과 회동하겠다.”고 말했다. ●혼미한 키르기스 정국 정부에서 아무런 공식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아카예프 대통령 일가가 헬기편으로 인근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로 도피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사건 당시에는 관저 밖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키르기스 의회는 이날 밤 긴급 회의를 열고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했다. 한편 러시아는 이날 키르기스 주둔 러시아군에 중립을 지킬 것을 지시한 뒤 “키르기스는 조속히 법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집권·종족갈등이 원인 반정부 세력이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선택하면서 ‘레몬혁명’으로 불리고 있는 이번 시위는 지난달 27일 총선 1차 투표와 이달 13일 결선투표를 통해 야당이 참패한 뒤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남부지역의 오슈와 잘랄아바트 등지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면에는 가난한 남부지역의 우즈베키스탄계와 비교적 부유한 북부지역 키르기스계 주민들간의 종족 갈등이 숨어 있다. 옛소련 시절인 1990년부터 장기 집권해온 북부출신 중심의 아카예프 정권에 대한 분노가 총선을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다. 또 2003년 그루지야,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옛소련 국가들에서 민중혁명이 잇따라 성공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해경4명 억울한 옥살이 12년

    해양경찰 대원이 1955년 중국으로 피랍돼 12년동안 옥살이를 했으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사실이 23일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해양경찰대 소속 경비정인 ‘견우정’ 대원이었던 안영진(80·충북 보은군 수한면), 박래봉(79·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김창호(77·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주시완(81·인천시 남구 봉춘동)씨 등 4명은 지난 6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이같은 사실을 진정했다. 안씨는 당시 계급이 경사였고 박씨 등 3명은 순경이었는데, 이들은 같은해 12월25일 오전 4시쯤 200t급 견우정에서 근무중 야음을 틈타 평화선을 침범해 불법 조업하던 중공 어선을 나포하던 중 오히려 피랍됐다. 견우정의 제1승선조인 이들은 당시 중공 선단중 한 어선에 재빨리 올라탄 뒤 저항하는 어부들을 신속히 제압하고 조타실, 기관실 등을 장악했으나 어둠속에서 추격해온 7∼8척의 중공 어선과 교전중 본선인 견우정과 떨어지면서 피랍되고 만 것. 이들은 피랍 과정에서 총 개머리판과 몽둥이 등으로 유혈이 낭자하게 구타당한 뒤 중공 정부로 넘겨져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와 지난(濟南)시의 감옥에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극한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1967년 4월 중공 정부가 구형한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 홍콩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돌아왔으나 이미 행방불명을 이유로 면직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들이 피랍된 뒤 1961년11월까지 종전대로 가족들에게 임금을 지급해 왔으나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마저도 중단해 가족들 역시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었다. 이들은 다행히 고향으로 돌아온 뒤 7개월만에 복직됐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정년퇴직했으나 중국에서의 옥살이 기간이 복무기간에서 빠져 퇴직금. 연금에서도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특히 이들 중 주씨는 작년 8월 옥살이에서 얻은 지병 등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박씨는 당시 고문으로 청각을 잃었고 안씨와 김씨도 모두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 매일 병원 신세를 질 정도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加법정 선 기러기아빠

    ‘태평양을 건넌 사랑의 매’ 캐나다 밴쿠버에 부인도 포함해 고교생인 딸과 아들을 유학보낸 한국의 기러기아빠가 16세 아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다가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명령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은 12일(현지시간) 이 사건을 ‘한국인 아버지의 회초리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굴지의 기업 최고 경영자인 이 아버지는 2002년 아내와 남매를 밴쿠버에 보내고 자신은 자주 방문해 자녀들 학업을 점검해왔다. 지난 1월7일 그는 아들이 수업을 빼먹고 늦게 귀가하거나 어머니에게 대든다는 얘기에 회초리를 들어 100대를 때렸다. 아들은 ‘한국으로 데려가겠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용서를 빌어 위기를 모면했으나 아버지가 귀국한 지 닷새만에 다시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같은 달 19일 캐나다로 득달같이 날아와 다시 회초리를 들었다. 무려 3시간 동안 ‘사랑의 매’를 맞은 아들은 걸을 때 마치 노인처럼 걸었고 매사에 풀이 죽어 있어 이를 이상히 여긴 학교에서 경위를 묻게 됐고 아들은 “300대 정도 맞았고 아버지가 200대를 더 때릴 것 같아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은 처음엔 무릎을 꿇고 있었고 나중에는 ‘푸시업’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학교 신고로 경찰에 체포돼 법정에 선 아버지는 “사랑의 매일 뿐이었다.”면서 “한국 가정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선 자녀 체벌도 불법으로 처벌된다. 검찰은 6개월 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자녀교육 등 정상을 참작,2년의 보호관찰을 선고하면서 아동학대 구호기관에 2500달러 기부,‘사랑의 매’를 주제로 현지 교민신문에 기고할 것 등을 명령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어린이를 그렇게 구타한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며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한국인의 교육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교민은 “아들 교육비로만 연간 2만 7000달러(2700만원)를 송금했던 아버지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동정론을 폈지만 교민사회도 크게 당황해하고 있다. 현재 남매는 홈스테이 가정에서 학업을 계속 중이지만 이 사건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남편과 함께 귀국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말말말˙˙˙

    구타·가혹행위와의 전쟁을 선포해서라도 이를 근절해야 한다.-윤광웅 국방장관은 9일 최근 잇단 군내 자살 및 가혹행위 사건과 관련, 전군 지휘관 및 참모에게 보낸 장관서신을 통해 “광복 60주년이자 국군 창설 56주년인 올해를 군내 구타·가혹행위 근절의 원년으로 만들자.”며-
  • 軍자살자 예우·보상 검토

    이르면 내년부터 군에서 구타나 가혹행위,‘왕따’등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병도 보상을 받게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6일 올해 국방개혁 과제의 하나로 자살의 원인이 군 당국으로 귀착되는 일부 자살자에 대해 ‘예우 및 보상책’을 마련하고 필요하면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군 당국은 최근 육·해·공군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의견 수렴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국방부는 군내 자살자에 대해 수백만원 상당의 장례비만 지원해 왔다. 국방부가 보상을 검토중인 대상은 군내 구타나 가혹행위, 왕따 등에 따른 자살로 최근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의 패소가 잇따르면서 제도적으로 추진하게 됐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배경을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1)

    儒林 287에는 ‘割給休書(벨 할/줄 급/놓을 휴/글 서)’가 나온다. 옛날에 夫婦(부부) 간에 헤어질 때는 離婚(이혼)의 徵表(징표)로 칼로 웃옷 자락을 베어서 그 조각을 상대에게 주었다.配偶者(배우자)의 저고리 깃을 자르는 것은 일종의 상대방에 대한 所有權(소유권)의 抛棄(포기) 儀式(의식)이다. ‘割’은 ‘가르다, 자르다’는 뜻으로,‘割鷄焉用牛刀(할계언용우도: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대책을 쓰는 어리석음),割半之痛(할반지통:형제자매가 죽어 느끼는 슬픔),鉛刀一割(연도일할:자기의 힘이 없음을 겸손하게 이르거나 우연히 얻게 된 공명이나 영예를 이름)’ 등에 쓰인다. ‘給’은 실을 한 타래 한 타래 묶은 모습을 그린 象形(상형)과 뚜껑을 덮어놓은 그릇의 상형을 결합하여 ‘충분하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후대에 派生(파생)된 ‘주다’라는 뜻이 보다 일반화되었다.用例(용례)에는 ‘給料(급료:노력에 대한 보수),供給(공급:요구나 필요에 따라 물품 따위를 제공함),俸給(봉급:어떤 직장에서 계속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그 일의 대가로 정기적으로 받는 일정한 보수)’이 있다. ‘休’는 ‘사람이 나무 옆에서 쉰다’는 뜻을 나타내는 會意字(회의자)다. 그 뜻에는 ‘그치다, 편안하다, 기뻐하다, 좋다, 기쁨, 넉넉하다’도 있다.用例로 ‘休暇(휴가:학업 또는 근무를 일정한 기간 쉬는 일),休名(휴명:좋은 평판),休學(휴학:질병이나 기타 사정으로, 학교에 적을 둔 채 일정 기간 학교를 쉬는 일)’이 있다. 書자는 ‘오른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양’인 ‘聿(붓 율)’과 먹물이 담긴 벼루의 모양에서 변화된 ‘曰’을 합한 會意字에 해당하며 본래의 뜻은 ‘글쓰다’임을 알 수 있다.‘覺書(각서:약속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적은 문서),大書特筆(대서특필:신문 따위의 출판물에서 어떤 기사에 큰 비중을 두어 다룸)’등에 쓰인다. 조선시대 班家(반가)의 사대부들은 七去之惡(칠거지악)과 같이 극히 제한적 경우에만 離婚(이혼)이 허락되었다.七去之惡이라 함은 ‘시부모에 대한 不遜(불손), 자식이 없음, 행실이 淫蕩(음탕)함,妬忌(투기)가 심함, 몹쓸 병을 지님, 말이 지나치게 많음, 도둑질’을 일컫는다.七去之惡을 범한 아내일지라도 三不去(삼불거), 즉 부모의 삼년상을 같이 치렀거나, 장가들 때 가난했다가 나중에 부자가 되었거나, 쫓겨나면 오갈 데가 없는 경우는 내칠 수가 없었다. 女性(여성)도 남편이 國法(국법)으로 정한 悖倫(패륜)을 범하였거나 3년 이상의 行方不明(행방불명), 아내를 심하게 毆打(구타)하는 경우에는 法廷(법정)에서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班家의 여성이 이혼을 신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再婚(재혼)이 不可能(불가능)하였고 여성의 社會(사회)·經濟的(경제적) 活動(활동)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상민들 사이에는 일종의 合意離婚(합의이혼)에 해당하는 事情罷議(사정파의)나 割給休書(할급휴서) 등의 방법이 비교적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었다. 여기서 事情罷議란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부부가 서로 마주앉아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사정을 말하고 결별하는 것’을 말한다.割給休書는 冒頭(모두)에서 밝힌 것처럼 離婚(이혼)의 표시로 서로 마주앉아 칼로 웃옷의 자락을 베어서 상대에게 주는 의식을 말한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美인권보고서“中·러·사우디 인권상황 열악”

    미 국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 인권보고서는 ‘폭정의 전초기지’로 분류된 북한, 쿠바, 미얀마, 이란, 벨로루시, 짐바브웨 외에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상황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지적했다. 북한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가장 잔인한 정권의 하나’로 지목됐다.15만∼20만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중이며, 주민들은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채 언론자유나 공식 재판을 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여성 수감자들은 강제로 낙태를 당하거나, 출산 직후 신생아들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얀마는 보안군이 수감자를 상대로 강간을 저지르거나 고문, 구타를 일삼는 등 “인권이 극도로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은 지난 2002년 미·중간 인권협상에서 합의된 내용들이 이행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체포 남발, 사법부의 독립성 결여 등 지난해 중국의 인권 신장은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다. 한국은 대체로 인권 상황이 개선됐지만 경찰 및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국가보안법 등이 지적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6)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6)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신도안 사람 김씨 김철호(가명) 노인(78세)을 다시 만난 것은 금년 초였다. 옛날 신도안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 거기 살던 이를 수소문하던 참에 그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1988년 봄, 먼지가 풀썩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소형차를 몰고 간 곳이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였다. 나는 종교사회학적 입장에서 신도안을 조사할 계획이었다. 부남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유독 김씨가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았다. 차분하면서도 다부진 말씨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집안 내력도 독특했다. 김철호씨는 3대째 신도안에 살고 있는, 이를테면 신도안 토박이였다.19세기 말 그의 조부 김병선이 평안도 정주에서 문전옥답을 다 처분하고 식구를 인솔해 들어온 곳이 바로 부남리였다. 밥술이나 먹던 김씨의 조부가 하루아침에 고향을 등진 것은 ‘정감록’의 예언을 좇아서였다.‘머지않아 난리가 난다. 조선이 망하고 새 왕조가 계룡산에 들어선다.’ 김씨의 조부는 신도안에 들어가면 난리도 피하고 새 세상에서 벼슬도 할 수 있단 말에 귀가 솔깃해 마침내 고향을 등졌다고 했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간섭이 심해지고, 각종 민란과 갑오동학농민운동 등으로 사회가 몹시 혼란했다. 그 시절에 신도안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본격화됐던 것인데 이주민 중엔 수 백 년 동안 지역차별에 희생됐던 서북 출신이 많았다. 본래 살림살이가 유족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정감록’이 처음 출현한 곳도 서북지역이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김철호씨의 조부는 전형적인 초기 이주민이었다. 신도안의 토착인구는 19세기 초까지 수십 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이주민이 점증한 결과,1918년 말 총 584호에 남녀 2667명으로 불어났다. ●신도안의 여러 뜻 ‘정감록’의 신봉자들은 누구나 새 도읍지를 신도안이라 믿었다. 이 태조가 대궐 터를 닦던 곳이고 계룡산에서 가장 빼어난 명당이기 때문에 거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신도안이란 지명엔 흥미로운 유래가 있다. 신라 때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계룡산에 왔는데, 그는 신라 사람들이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 아래 있는 제자봉(帝字峰)을 제도(帝都)라 일컫는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 엄연히 중국에 황제가 있는데 신라같이 작은 나라에 제도(帝都)란 말은 당치 않으니 당장 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제도’의 ‘제(帝)’ 자에서 양편 획(劃)을 떼 신(辛)자로 고쳐 ‘신도(辛都)’라 불렀다 한다. 신도안이란 지명을 둘러싼 해석은 제각각이다.1988년 조사 당시 내가 현지서 만난 계통불명의 어느 신종교단체 교주는, 새 세상을 가져다줄 구세주가 도읍할 곳이므로 ‘신도안(新都案)’ 즉, 신도읍 예정지라고 했다. 단군을 모신다는 어느 신종교단체의 사제는 이곳은 신정(神政)이 베풀어질 곳이라 ‘신도안(神都案)’이라 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동학 계통의 어느 신종교인은 정감록에 예정된 정씨(鄭氏)의 도읍인 때문에 조선왕조의 도읍은 아니라는 뜻이 있어 ‘新都안’이라고 했다. 그는 ‘안’은 아니라는 부정의 뜻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김철호 씨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은 ‘새로운 도읍지의 안쪽’ 즉, 신도내(新都內)로 이해했다.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 김씨는 21세기엔 드디어 신도안 시대가 열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 했다. 그는 아직도 3대를 품어온 희망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지명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달랐지만 신도안이 장차 일대변화를 불러올 중심지여야 한다는 믿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정감록’의 신봉자들은 세상이 그냥 이대로 지속돼선 안 된다, 뭔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따지고 보면 이런 믿음은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이른바 모든 고등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정감록’ 신봉자들은 질적 변화의 진원지를 신도안이란 구체적인 장소로 못 박은 점이다. 신도안의 지리적 범위를 묻는 내 질문에 김철호씨는 이렇게 답했다.“계룡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한참 내려오면 암용추와 숫용추 두 폭포가 있어. 바로 그 아래 한 자락이 신도안이지.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석계리, 용동리, 정장리에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를 더한 5개 마을이 신도안이란 말이여. 일제 때부텀 행정구역으론 그랬어.” 지도를 펴놓고 보니 대략 동서 6㎞, 남북 7㎞ 정도 공간이었다. ●3·1운동으로 조성된 신도안 열풍 1919년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신도안을 향한 이주 물결이 한층 거세졌다. 엄밀한 의미로 독립만세운동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 영향으로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졌고 식민당국도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정책’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수십만 명이 일경의 체포, 구속, 구타로 시달림을 겪은 터라 후유증이 몹시 컸다. 상당수 민중은 일종의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심리적 위안을 받는 일이 시급했다. ‘정감록’이 그 문제를 떠맡았다. 알다시피 정감록은 현재의 평안과 미래의 성공을 기약하는 길지(吉地)를 선사했다. 정감록을 믿었던 민중은 가족을 거느리고 이주대열에 섞였다. 무엇보다도 신도안이 가장 인기 있는 길지였다. 거기서 기도하면 소원성취 할 수 있다, 암수 폭포수가 흐르는 신도안 개울물에 서식하는 올챙이를 복용하면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김씨가 부친 김연수에게 들은 바로,1920년쯤 3·4월이면 올챙이를 잡으러 개울가로 몰려드는 인파가 수천 명이나 됐단다. 김씨도 개구쟁이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올챙이를 꽤 많이 잡았다고 한다. 실제로 1919년 이후 4∼5년 동안 신도안의 인구는 급성장했는데 이 점은 통계로도 입증된다.1923년 말 1570호에 7008명으로 5년 전인 1918년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났다. 신도안은 이미 사람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 주변 마을로 이주민이 몰려들 지경이었다. 그들은 대개 ‘정감록’을 신봉하는 신종교단체들에 속했다. 아예 그런 신종교단체가 수백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이주해온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금강교가 그랬다.‘금빛 병풍 산기슭에 만 명이 살 수 있다’는 ‘정감록’의 구절을 근거로 금강교도들은 신도안에 근접한 충남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에 터를 잡았다. 하루아침에 100호도 넘는 큰 마을이 들어섰다. ●신도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대한독립의 꿈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지만, 신도안 이주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맞물려 있었다. 이미 1910년대 중반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증산교의 일파인 음치교와 태을교 측은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돌아간다. 정진인이 한국 출신 장교를 거느리고 독일편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세계전쟁이 끝나면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 인류가 모두 사멸하게 돼 있으나 음치교나 태을교를 믿는 신도들만은 재난을 면한다. 어쨌거나 세계전쟁을 마무리지은 정진인은 대한독립을 이룬 다음 계룡산에 도읍한다. 이때가 되면 음치교나 태을교 신도들은 신앙심과 포교성적에 따라 관직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흥미롭게도 그들 신종교단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할 것으로 점쳤고, 그 이유를 정진인에게서 찾았다. 당시 독일은 일본과 적대관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심정적으로나마 독일편을 들었다고 풀이된다. 음치교나 태을교도 그랬지만 신종교의 대부분은 정감록을 믿었다. 그들은 진인왕의 등극을 기다렸는데 그것은 나라의 독립을 뜻하기도 했다. 진인왕은 어떤 경우에도 일본의 꼭두각시일 수가 없었다. 여러모로 허황된 예언이었지만 신종교 단체가 퍼뜨린 유언비어에는 대체로 독립을 열망하는 민중의 마음이 얼마간 담겨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부터 민중은 국가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일단 나라를 되찾아야 개인의 평안과 출세도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식민지 당국은 이들 ‘위험한’ 신종교단체를 탄압했다. 일제는 그런 단체들에게 사기, 폭력, 금품 갈취, 음란행위 따위의 죄목을 씌워 마음대로 탄압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들 단체의 특징이었던 민족주의 성향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빌라도 총독이 신종교 지도자 예수를 처형할 때 파렴치범과 나란히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도 그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1920년대에도 신도안 이주를 부추기는 유언비어들이 계속해서 나돌았다.1921년쯤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유행했다.‘정감록’에 왜왕(倭王) 3년을 지내고 가도(假都) 3년이 되면 참된 정씨 왕이 나타나 계룡산 신도에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왜왕 3년이란 총독 삼대(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요, 가도 3년은 상해임시정부 3년이다. 요컨대 1921년쯤 계룡산 신도안에 임시정부가 도읍을 세운다는 예언이었는데, 그 말이 퍼지자 신도안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1921년 한 해 동안 모두 610호에 2443명이 신도안에 정착했다. 김철호씨는 고향마을 선배 중에도 그 때 이주해온 집안이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경기도 교하 지방에도 조선독립에 관한 유언비어가 널리 퍼졌다. 계룡산 바위틈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었다.‘음력 2월15일은 독립을 외치는 날이다.10번을 외치면 일가를 보존하게 되며,20번을 외치면 독립을 회복한다. 이 취지를 쓴 종이 두 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자기 한 몸이 보존되고,8장을 전하면 충신 효자가 된다. 만일 이를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했다. 주술적 효과를 가진 종이 쪽지가 계룡산 바위틈에서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어느덧 계룡산은 독립을 실현해 줄 희망의 등잔이요, 신도안은 그 불꽃이 타오를 심지가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느덧 신도안은 민족의 성지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신도안의 명물 칠성교의 ‘지푸라기 북’ 1920년대 민중의 관심사는 신도안이 과연 언제 도읍이 되는가, 달리 말해 나라가 독립될 시기를 점쳐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24년 신도안 사람들은 지푸라기 북(草鼓) 하나를 만들었다. 그 북은 김철호씨의 고향 부남리의 칠성각에 안치되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 마을에 있던 칠성교란 신종교의 보물이었다. 부남리에 관한 일이라 나는 김씨에게 그 북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김씨의 부친과 평안도 박천에서 내려온 부친의 친구 분이 모두 칠성교를 믿었다고 한다. 김씨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칠성교당에 다녔단다. 1928년 그 북을 쳐 만약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면 한국 종교계의 우두머리로 삼는다는 소문이 원근에 파다했다. 이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든 구경꾼만 해도 무려 2만 5000명이었다. 당황한 식민지 경찰은 서둘러 지푸라기 북을 불태워버렸다. 그러나 민중의 아쉬움은 수그러지지 않아 2년 뒤 북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지푸라기 북이 소리를 낼 리는 없다. 하지만 ‘정감록’ 속의 정진인이 나온다면 그 정도 기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민중의 믿음이었다. 1989년 김씨를 포함한 신도안 주민들은 신도안에서 쫓겨났다. 이른바 6·20 사업으로 신도안 일대에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제5공화국의 시퍼런 서슬에 누구도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알고 보면 신도안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신앙이 약화되었다. 상당수는 생계의 어려움과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로 떠나갔다. 김씨는 고집스럽게 신도안에 눌러앉았지만 그의 두 자녀만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서울로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지푸라기도 북도 없고,‘정감록’의 예언에 목을 매는 이들도 많지 않지만 때로 간절한 소망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팔순을 바라보는 김철호 씨가 아직 신도안 시대를 꿈꾼다 해도 그 허망함을 탓하기만 해야할지 모르겠다.(푸른역사연구소장)
  • [사설] 강이병 사망진상 철저히 규명해야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인 가혹행위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또다시 육군에서 강 모 이병이 구타당한 뒤 목을 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육군측은 부검 결과 자살로 잠정결론을 내렸지만 유족들은 타살의혹을 제기했다. 진상을 철저히 밝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가혹행위 관련자 및 지휘책임자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가혹행위가 재발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군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훈련을 끝내고 전방부대에 배치된 지 2주만에 사망한 강이병의 유품에서는 군의 폭행과 욕설행위를 폭로한 유서가 나왔다. 조사결과 선임 상병이 경계근무를 서던 강이병에게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머리를 때리고 군홧발로 정강이를 걷어찬 사실도 밝혀졌다. 육군은 ‘인분사건’발생 이후 인권개선위원회를 설치하고 소원수리 신고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등 가혹행위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이번에 사망에까지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인분사건’때 솜방망이 징계로 일벌백계 의지가 전달되지 않은 때문인가, 아니면 가혹행위 근절대책이 신병훈련소 안에만 국한된 때문인가. 사망한 강이병이 현역면제 자격을 거부하고 자원입대를 한 젊은이였다는 사실은 듣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군은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가혹행위 근절대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또한 이번에만은 분명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실추된 군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7개 과거사 진상규명] 7개 과거사 개요·쟁점

    [7개 과거사 진상규명] 7개 과거사 개요·쟁점

    1. 정수장학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장학회다.5·16 군사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부산의 유력 사업가이던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모태로 5·16 장학회로 출범했다. 삼화고무와 부산일보를 운영하던 김지태씨는 재산해외도피 혐의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두달정도 구금생활을 했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쓰고 며칠뒤 풀려났다. 서류상으로는 김씨가 자진납부한 것으로 돼 있으나, 유족들은 부산군수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수갑을 찬 채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라고 도장을 찍었다면서 명백한 강탈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서류상은 자진납부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나 실재와 다른, 물목(物目·물건의 목록)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는 김씨의 비망록이 발견돼 이런 의혹은 증폭됐다. 군부세력이 김 사장으로부터 부일장학회를 강탈했는지, 아니면 헌납과정에서 강제력이 동원됐는지에 조사의 관건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장학회는 문화방송 주식의 30%와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다. 2. 동백림 사건 1967년 7월8일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사건이라며 이른바 ‘동백림사건’을 발표했다. 고 윤이상씨와 재 프랑스화가인 이응로씨 등 194명이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는 것이다.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을 방문해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발표됐다. 몇몇 독일 유학생들이 북한 또는 동베를린을 구경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북한의 배후 조종에 따른 어마어마한 간첩단인 것처럼 조작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당시에는 3선 개헌을 앞두고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며 대학가 등에서는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이런 점과의 연계성도 조사대상이 될 것 같다. 3.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도예종, 여정남 등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한 이후 불과 20여시간 만인 4월 9일 오전 6시에 이들의 사형은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반 유신체제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한 상황에서 저질러졌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하며 엄중하게 항의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253명 중 유인태 의원, 이철 전 의원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에게 사형, 징역 15년∼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됐지만 국내외적인 압력에 못이긴 박정희 정권은 1975년 2월 대부분을 석방했다. 사건 진실규명의 핵심은 박정희 정권에 의한 용공 조작여부에 있다.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한 사건 조작, 군사법원 재판부의 공판조서 허위 작성 의혹 등도 진실규명이 필요한 대목들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공안부 검사들마저도 피의자들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소장 서명을 거부하는 ‘항명파동’이 일어났고 그 중 3명은 사표를 던졌다. 4. 김대중 납치 사건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치된 사건.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중이던 김대중씨는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반유신 활동을 벌였다. 사건 당일 도쿄에서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 간 김씨는 한국 정보기관원에 의해 납치됐다가 129시간 만에 서울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다. 미국이 이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느냐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또 배를 이용해 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김씨를 수장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5.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청와대 근처 지하실에서 사살됐는지, 센강에 던져졌는지, 아니면….’1979년 10월 7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7일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행방불명됐고 프랑스측이 함께 수사했음에도 아직까지 미제사건이다. 김 전 부장은 박정희 정권 역대 정보부장 중 최장수인 6년 3개월을 역임하는 등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으나 내부 권력 투쟁으로 밀려난 뒤 73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1977년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중이던 미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반(反)박정희’ 행보를 계속했다. 6.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1987년 11월29일 승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3대 대선 투표일을 불과 하루 앞둔 12월 15일 북한 특수공작원인 ‘폭파범 김현희’가 김포공항으로 압송돼 왔다. 대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이 기내에 라디오 시한폭탄을 설치, 아부다비에서 내렸으며 김승일은 체포직전 자살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7. 중부지역당 사건 1992년 10월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터진 ‘초대형 간첩단 사건’.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지목된 황인오씨가 구속되는 등 62명이 구속되고 300여명이 수배됐다. 단순한 남한내 조직이 아니라 북한 권력서열 22위라는 ‘남파 여간첩 이선실’이 등장했고 전국적으로 노동계, 학생, 단체 등에서 300여명의 조직원을 확보한 지하조직으로 발표됐다. 이는 최근 이철우 의원의 ‘간첩 논란’을 통해 다시 한 번 부각된 사건이지만 사건 연루자들은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고문, 사건 조작 여부 등이 풀어야할 부분들이다.
  • [씨줄날줄] 한국인 경계령/김경홍 논설위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은 비루한 근성이다. 마음만 먹으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세상이 된 지는 오래다. 외국여행에서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갔을 때 움츠러들었던 심정이나,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를 갔을 때 다소 우쭐대고 싶은 심정을 가졌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화나 해외여행 자유화는 새삼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된다. 세계속의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모습이나 태도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모습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새삼스럽게 등장한 얘기는 아니지만 ‘어글리 코리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한 방송의 해외르포에서 낯 뜨거운 모습을 목격했다. 동남아 국가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를 구타한 한국인, 술집에서 접대부에게 인간 이하의 요구나 행패를 부리는 한국인,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호스를 꽂는 한국인 등등. 일부 관광객들의 일탈행위에 불과한 것일까. 베트남의 버려진 현지처와 신(新)라이따이한 어린이들, 한국의 사기꾼들에게 물건 값을 사기당해 거리에 나앉은 중국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봤자 어느날 갑자기 꾸며댄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해외 추태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과 국제결혼해 들어온 동남아 여성들의 인권침해 사례도 한두건이 아니다. 최근에는 유독성 환경에서 일하다 ‘앉은뱅이 병’에 걸린 태국 여성근로자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태국 여성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몸과 마음이 망가진 자기나라 여성들을 위로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필리핀 당국이 최근 ‘한국인 경계령’을 내렸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과거 우리의 이민시절, 우리의 해외동포나 해외취업근로자가 겪었던 슬픔을 생각한다면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다. 국적이 어디든간에 지금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도 마찬가지다. 주변국에 짓밟히고 살았던 기억이 도대체 얼마나 됐다고 이런 추태를 보이는가. 쥐뿔도 없으면서 졸부처럼 구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 콤플렉스’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녹색공간] 새로운 정신문명과 자동차/이현주 목사

    때가 돼서 그렇긴 하겠지만, 요가수련을 한다느니, 마음공부를 한다느니, 명상호흡을 한다느니 하는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지난 300∼400년 동안 인류는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 그 속에 잠재된 힘을 사용하여 이른바 살기 좋은 세상,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매달려 왔다. 덕분에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놀라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60년대 초만 해도, 달리는 열차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몇 시에 도착할 테니 밥상 차려 놓으라고 말한다는 건 공상과학만화에서나 그려볼 수 있을 장면이었다. 낮에 교실에서 선생이 아이들을 구타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그날 밤 전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올렸다고 하면 1959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놀라기는커녕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실 것이다. 그 물질문명이 정점에 이르러 바야흐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영성’이라는 말이 종교계 밖에서도 자주 들리고 요가라든가 호흡이라든가 명상 따위 말들이 광고지에 등장하는 현상을 보면 과연 물질문명을 대신할 다른 무슨 문명이 태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친구들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어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할 적에 나는 멀리서 안타까워만 했지 직접 대열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못했다기보다 안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겠다. 사실 그때에 내 주된 관심은 격동하는 사회보다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흔들리는 나 자신에 있었다. 어쩌면 20대 초반에 빠져들었던 실존주의 철학의 경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환갑이 지난 오늘까지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변혁보다 인간변혁, 인간변혁보다 자기변혁 쪽으로 눈길이 쏠렸고 그래서 토머스 머톤 신부나 틱낫한 스님의 말들이 귀에 잘 들어왔다. 그들은 말하자면 사회변혁운동과 수도생활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시대적 경향에 저항하여 둘의 통일이라 할까 조화라 할까를 지향한 인물들이었다. 그러자니 그들이 몸담고 있던 종교의 지도층으로부터는 견제를 당하고 사회변혁운동 활동가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처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매력을 느꼈다. 그들은 내가 가야 할 길의 선구자들이었다. 그동안 인류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중심삼아 기계문명을 일으켜 세우느라고 보이지 않는 비물질을 배척하거나 무시한 일은 진지하게 반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과 악령의 이름으로 사람을 짓누르던 근대 이전의 무지막지한 종교통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가 말했듯이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신령한 말씀도 먹어야 산다. 그러나 사람은 신령한 말씀만 먹고도 살 수 없다. 밥도 먹어야 산다. 물질을 좇느라고 비물질을 홀대하던 시대가 비물질에 홀려 물질을 업신여기는 시대로 넘어간다면,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무너지는 물질문명을 대신할 새로운 정신문명이 생겨난다면, 그 이름이야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멋진 자동차와 컴퓨터를 타고서 나타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컴맹이지만,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컴퓨터와 자동차를 밝아오는 새문명(그런 것이 정말 있다면)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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