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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다툼 중 여친 구타하면 이렇게 됩니다

    말다툼 중 여친 구타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자친구와 심한 말다툼을 하다가 급기야 손찌검을 하던 남성이 혼쭐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동영상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11년 올라온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이미 3000만 뷰가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상을 보면 학생으로 보이는 흑인 청년이 백인 여친과 말다툼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언성이 차츰 높아지는 듯 하더니 흑인청년이 마침내 여친에게 거칠게 손을 대려 한다.    하지만 남성이 오른손 주먹으로 여성을 때리려 하는 순간, 뒤에서 뻗어나온 거미줄이 주먹을 낚아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복장을 한 남성이 등장한 것. 그는 여친을 폭행하려 한 남성을 주먹과 멋진 발차기로 혼쭐을 내준 뒤 모습을 감춘다. 사진, 영상= 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마이클 제이스 아이들 앞에서 아내 총 쏴 살해…전처 ‘이혼소송’ 당한 이유는

    마이클 제이스 아이들 앞에서 아내 총 쏴 살해…전처 ‘이혼소송’ 당한 이유는

    마이클 제이스, 아이들 앞에서 아내 살해 ‘충격’… “3년 전 파산해…”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제이스(51)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총으로 쏴 살해해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지 언론은 19일(현지시간) 마이클 제이스가 미국 로스엔젤레스 남부 하이드파크 자택에서 아내 에이프릴(40)에게 총격을 가한 뒤 스스로 911에 신고해 체포됐다고 전했다. 자택 문 앞에 서 있던 마이클 제이스는 출동한 경찰에게 자신이 아내에게 총을 쐈다고 자백하고 순순히 체포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 당시 마이클 제이스의 집안에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마이클 제이스 부부가 심하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들의 진술을 확보, 마이클 제이스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마이클 제이스는 3년 전 파산해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마이클 제이스는 20년 전에도 전 부인 제니퍼 비터맨에 대해 가정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었다”고 밝혔다. 마이클 제이스는 지난 1997년 전 부인 제니퍼 비터맨에게 이혼 소송을 당해 2002년 이혼했으며 2003년 에이프릴(40)과 재혼했다. 전처인 제니퍼 비터맨이 이혼법정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클 제이스는 폭력적인 성격에 변덕이 심하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자녀 면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또 소장에는 제니퍼 비터맨을 심하게 구타한 장면을 목격한 이웃 주민의 증언도 함께 들어 있었다. 제니퍼 비터맨의 친구는 “마이클 제이스가 방에서 비터맨의 목을 조르고, 때리고, 벽에 밀치는 것을 봤다”면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8개월 동안 이 부부와 함께 사는 동안 적어도 4번의 폭력을 목격했다” 고 법정에서 증언했었다. 마이클 제이스는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인기 드라마 ‘더 실드’에서 동성애로 고민하는 경찰관 줄리안 로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또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혹성 탈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등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이클 제이스, 아이들 앞에서 아내 살해 ‘충격’…폭행당한 전처 얘기 들어보니

    마이클 제이스, 아이들 앞에서 아내 살해 ‘충격’…폭행당한 전처 얘기 들어보니

    마이클 제이스, 아이들 앞에서 아내 살해 ‘충격’…폭행당한 전처 얘기 들어보니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제이스(51)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총으로 쏴 살해해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지 언론은 19일(현지시간) 마이클 제이스가 미국 로스엔젤레스 남부 하이드파크 자택에서 아내 에이프릴(40)에게 총격을 가한 뒤 스스로 911에 신고해 체포됐다고 전했다. 자택 문 앞에 서 있던 마이클 제이스는 출동한 경찰에게 자신이 아내에게 총을 쐈다고 자백하고 순순히 체포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 당시 마이클 제이스의 집안에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마이클 제이스 부부가 심하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들의 진술을 확보, 마이클 제이스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마이클 제이스는 3년 전 파산해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마이클 제이스는 20년 전에도 전 부인 제니퍼 비터맨에 대해 가정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았었다”고 밝혔다. 마이클 제이스는 지난 1997년 전 부인 제니퍼 비터맨에게 이혼 소송을 당해 2002년 이혼했으며 2003년 에이프릴(40)과 재혼했다. 전처인 제니퍼 비터맨이 이혼법정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클 제이스는 폭력적인 성격에 변덕이 심하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자녀 면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또 소장에는 제니퍼 비터맨을 심하게 구타한 장면을 목격한 이웃 주민의 증언도 함께 들어 있었다. 제니퍼 비터맨의 친구는 “마이클 제이스가 방에서 비터맨의 목을 조르고, 때리고, 벽에 밀치는 것을 봤다”면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8개월 동안 이 부부와 함께 사는 동안 적어도 4번의 폭력을 목격했다” 고 법정에서 증언했었다. 마이클 제이스는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인기 드라마 ‘더 실드’에서 동성애로 고민하는 경찰관 줄리안 로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또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혹성 탈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등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진 찍으며 아픈 마음 치유 팔 어린이들, 자기 관점 표현… 세상 견디는 힘 얻을 것”

    “사진 찍으며 아픈 마음 치유 팔 어린이들, 자기 관점 표현… 세상 견디는 힘 얻을 것”

    “사진은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혼란한 세상을 견뎌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과 인연을 맺고 재능기부를 하는 사진작가 유별남(42)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에서 아이들을 직접 보면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2008년부터 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세계 곳곳을 누벼온 유씨는 지난해 11월 월드비전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벌인 ‘평화나눔 사진교실’에 참여했던 아이들을 직접 만났다. 사진교실은 잦은 분쟁으로 불안해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유씨가 지켜본 아이들은 티없이 순수했지만 분쟁으로 인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유씨는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 중에는 집단으로 한 아이를 구타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도 있었다”면서 “사진을 찍은 이유를 물어보니 ‘폭력이 싫지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런 상황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이 생기고, 스스로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한 장의 사진이 어려움에 부닥친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찍게 된다”면서 “개인적으로 후원을 하는 해외 어린이도 생긴 만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꿋꿋하게 살아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역색(하)

    ●이중도시 서울, 북촌·남촌에서 강북·강남으로 양분화 조선 내내 사대문 안 북촌과 남촌의 양촌 체제가 공고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기 고종이 중국의 천자나 일본 천황과 같은 황제에 오르는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고서 북촌 체제의 중심인 경복궁을 버리고 서촌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정궁을 옮겨 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건국 500년 만에 나라의 중심이 백악(북악)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서 종로를 넘고, 청계천을 건너 서울시청 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이러한 정치권력의 공간이동은 이후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시대에는 없던 태평로를 서울의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경복궁 안에 건립돼 정치권력은 북촌으로 회귀했지만, 자본주의의 꽃인 경제권력은 태평로에 남았다. 확장된 경제권력이 1970년대 한강을 넘어 강남과 여의도를 향해 중심이동하기 전까지. 강남으로의 팽창과 더불어 서울은 2000년 전 한성백제의 수도 한강 이남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강북에 남았지만, 자본주의 권력의 원천인 경제자본과 대의기관인 국회가 강을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의 서울이 강북 사대문 안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서울은 강남이 됐다. 사대문을 남북 체제로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던 개천(청계천)이 복개되면서 남·북촌이 하나로 통합되는가 했더니 급기야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돼 버린 것이다. 서울의 남북 경계선이 청계천에서 한강으로 옮겨 간 셈이다. 도시사학 분야에서 ‘이중 도시’(Dual City)의 개념은 식민지를 경험한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식민지 도시는 토착 집단에 대한 외래 집단의 지배 공간이었고 양자의 문화적 이질성은 사회적, 공간적 격리로 나타났다. 대체로 토착민들의 자생적 주거지는 전통적·전근대적 성격을 띠었고, 식민권력에 의해 개발된 새로운 주거지는 근대적·서구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식민지 권력은 외래 식민집단의 주거지를 토착민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분리시켜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주거지로 만들어 식민권력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문명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양분 정치적 기획의 산물인가, 체제경쟁의 산물인가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북악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를 잡은 북촌, 낙산 아래 동촌, 인왕산 아래 서촌 그리고 남산 아래 남촌과 청계천변 중촌이 서로 아우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식민 시기 경성은 일제의 의도적인 정치적 기획의 산물로서 남·북촌 체제로 양분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서·남·북촌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어울린 사색붕당(四色朋黨)이 식민지 사관의 혐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다른 풀이도 있다. 안창모(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계천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명을 수용하는 계획도시로 출발한 한양이 60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강을 품에 안고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외견상 인구는 100배 이상 증가했고, 면적도 30배 이상 확대됐다. 600년 시차를 가진 조선의 한양과 한국의 서울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서울은 계획됐다기보다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려는 방편으로 확장됐고 결과를 추인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도시의 물리적 성장과 변화 배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북 분단과 강남 개발은 서로 얽혀 있다. 비록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이지만 1976년 건설된 잠수교로 말미암아 한강은 서해 뱃길이 끊어지면서 자연 울타리가 됐다. 유사시 30만~4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요새화 차원에서 뚫린 3개의 남산터널과 정부청사의 과천이전 등은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 서울의 도시구조 변화에 남긴 대수술 자국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한남대교(제3한강교)의 건설로 강남이 개발돼 현대 서울의 모습이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 두 개의 도시로 나뉜 것도 결국은 남북 체제경쟁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울은 어떻게 분열됐을까 서울은 식민시기 어떤 분열과정을 거쳤을까. 일본인의 서울 진출과 일본인 거류지의 형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일본공사관은 1880년 서대문 밖 천연동 청수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임오군란 때 소실되자 1884년 교동 박영효 저택에 공사관을 지어 사대문 깊숙이 진출했으나 같은 해 갑신정변 와중에 또 타버렸다. 1885년 남산 아래 예장동으로 옮긴 뒤부터 식민지배 권력의 본거지가 됐다. 남산과 일본을 잇는 역사의 끈은 질기고도 질겼다. 일본 사신이 묵었던 왜관(동평관)이 조선 초 자리 잡았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7년 동안 진지를 구축한 왜장대가 있었다. 개항기 조선과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공사관을 사대문 안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개천을 건너지 못하도록 했다. 삼강오륜에서 부부유별(夫婦有別) 따지듯 북남유별(北南有別)을 따졌지만, 결과는 남북 역전으로 나타났다. 남촌은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메인스트리트였다. 조선 신궁(남산식물원)이 일본 정신을 상징했고, 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헌병사령부(남산한옥마을)가 무력통치를 상징했다. 일본인 거주 지역인 충무로, 진고개 일대는 본정통(本町通)이라고 하여 조선의 유일한 동서 간 대로인 종로를 대신했다. 일제는 황토마루(黃土峴)를 광화문통, 구리개(을지로)를 황금정(黃町), 명동을 명치정(明治町), 소공동을 장곡천정(長谷川町), 다방골(茶洞)을 다옥정(茶屋町)으로 멋대로 바꿔 버렸다. 남촌에는 조선은행(한국은행)과 경성우체국(중앙우체국)이 들어서고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과 히라타(平田)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해 상권을 장악했다. 2~4층의 현대식 상점 진열대에는 일제와 서구 외제 상품이 휘황찬란한 전등불 아래 진열됐다. 도로는 포장되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식재됐다. 광고탑과 마네킹,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뤘다. 본정통은 식민지 서울이 아니라 도쿄를 여행하는 듯했다. 지금의 강남 격이다. 한국인이 상권을 쥐고 있던 종로통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1935년 시인 임화는 ‘다시 네거리에서’라는 시에서 “번화로운 거리여/내 고향 종로여/웬일인가/너는 죽었는가/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라고 외쳤다. 별건곤 1930년 6월호에서 김화산은 “달리는 차, 매연, 여자의 스커트, 자욱한 연애, 주머니 속의 1전짜리 동전, 비애, 주점, 여자에 대한 증오, 정거장, 잡다한 사상을 가진 군중, 쇼윈도, 밤의 샹들리에와 카페의 홍수, 길에 버려진 영화광고지…”라면서 남촌의 화려함을 묘사했다. 당시 경성은 전차 120여대, 자동차 250여대(관용차와 자가용 제외), 승합차 70대, 버스 40대가 뒤섞여 달리는 혼잡한 대도시였다. 식민지 통치권력과 외국 자본에 의해 서울 사람은 서울의 객이 돼 버렸다. 1936년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과 시흥군, 김포군이 서울로 각각 편입됐다. 고양군 용강면(오늘의 공덕동, 아현동)과 연희면(신촌), 은평면(홍제동), 숭인면(성북동, 청량리), 한지면(이태원, 서빙고)이 서울 땅이 됐다. 시흥군 영등포와 노량진, 상도동이 서울에 포함됐다. 서울의 팽창은 인구 집중과 더불어 지역 분화를 재촉했다. 동소문 일대 주택지대를 문화촌이라고 했고, 광희문 밖 신당동에는 달동네가 형성됐다. 정동 일대에는 서양인촌이, 용산 일대에는 공업촌, 서울역과 봉래동 일대에는 노동촌, 다동·청진동·관철동 일대에는 기생촌 등 특수촌이 형성됐다. 홍제동, 돈암동, 아현동에는 경성부가 운영하는 토막 수용 시설이, 종로와 본정통, 명치정, 장곡천정에는 다방과 카페, 영화관 같은 유흥업소가 밀집했고, 쌍림동에는 유곽이 있었다. ●서울·지방 나누듯 서울도 신분 따라 거주지 나눠져 전우용은 ‘서울은 깊다’에서 “서울(사대문)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오촌(동·서·남·북·중촌)과 양대(윗대·아랫대), 자내(성밖 거주지)와 오강(한강변 거주지) 지역의 문화가 달랐다. 18~19세기 양반문화만 놓고 보아도 동서남북 사촌이 다 달랐고, 그들 사이에는 쉬 해소될 수 없는 차별의식과 적대감이 가로놓여 있었다”고 분석했다. 서울은 조선 500년 내내 유일한 도시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한양이라는 도시와 나머지 지방으로 나눠졌다. 중엽 이후 서울과 지방의 인적 교류가 막히면서 경인(京人)과 향인(鄕人)의 차이가 벌어졌다. 지방 출신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다. 말씨와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골 선비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영조 대 이후 지방 출신을 과거급제자에 할당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종 때 서울내기 군관이 시골뜨기 예조좌랑(교육부 사무관급)을 멸시하고 구타하는 하극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라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졌듯 서울도 나눠졌다. 궁궐 주변인 북촌과 동촌, 서촌에는 고관대작과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전, 겸인배(집사)들이 살았다. 남산 아래에는 쇠락한 양반이나 무반이 거주했고, 인사동과 청계천 주변에는 역관이나 의관, 화원 같은 중인들이 중촌을 이뤘다. 상민은 윗대나 아랫대 혹은 사대문 밖 자내, 오강에 터전을 잡았다. 거주 지역에 신분과 지위, 직업 정보가 새겨졌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프로축구] 폭행 논란 박종환 “신체 접촉 있었다”

    [프로축구] 폭행 논란 박종환 “신체 접촉 있었다”

    선수 폭행 논란에 휩싸인 박종환(76)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성남 감독이 선수들과의 신체 접촉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박 감독이 지난 16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균관대와의 연습 경기 도중 소속팀 김남건과 김성준의 얼굴을 때렸다는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인 구단은 17일 “박 감독이 해당 두 선수에 대한 신체적 접촉을 인정했다”며 “박 감독이 선수에게 사과했고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 선수들은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구단 측은 신체 접촉이 심한 구타였느냐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박 감독은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잘하라고 머리를 살짝 쳤을 뿐이다. 꿀밤이라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해명했다. 김성준은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맞지는 않았지만 한두 차례 쥐어박힌 적은 있다”고 말했다. 폭행 장면을 목격했다는 팬은 17일 성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폭행 감독 박종환 퇴출시켜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박 감독이) 하프타임 때 그라운드에서 2명 선수의 안면에 수차례 주먹질을 해 댔다”고 썼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아동은 票 없다고… 아동복지 공약도 없나요

    아동은 票 없다고… 아동복지 공약도 없나요

    호남권 A시(市)의 김민지(11·가명)양과 연지(8)양 자매는 외삼촌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는 방패막이가 돼 주지 못했다. 모두 38개 시·군이 있는 전남·북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6곳뿐. A시에는 없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난해 12월 김양 자매에게 도움을 줬지만 보호기관까지 한 시간 넘게 떨어진 탓에 2주에 한 번 방문도 버거웠다. 반면 수도권 B시에 사는 박초롱(11)양의 사정은 조금 낫다. 알코올의존증인 아버지에게 몇 차례 구타를 당했는데 지역 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발 빠른 도움을 받았다. 서울·경기권에만 19개의 보호기관이 집중된 덕이다. 박양은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증세를 보였지만 보호기관의 도움으로 치료 중이다. 경북 칠곡과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아이 2명이 숨지는 등 아동 안전·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동복지정책은 2005년 이후 지방자치단체에서 도맡고 있어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나 단체장의 철학에 따라 정책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6·4 지방선거에서 아동 안전·건강 등에 관심 있는 후보를 고르면 우리 아이들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15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아동복지지출 비율은 전체 예산의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2위에 그쳤다. 올해에는 국내 전체 예산 중 아동복지 예산 비율이 1.4% 수준이었지만 이 중 95.7%는 5세 미만의 보육 예산이다. 5~18세 아동·청소년의 안전·건강 등을 챙길 돈은 거의 없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예산이 적은 데는 여러 이유가 얽혀 있지만 아이들이 투표권이 없는 데다 아동 권익을 지켜 주려는 목소리가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 약자를 위한 복지 예산 중 대부분이 ‘표’가 되는 노인 복지 분야로 쏠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지자체별 아동복지 환경도 큰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꼭 지자체 내 아동 수에 비례해 예산이 편성되는 것은 아니며 단체장의 의지 등에 따라 예산편성이 들쭉날쭉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며 학대 피해 아동을 보살피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경우 아동인구(18세 미만) 12만 4000명인 제주도에는 모두 2곳이 있다. 한 곳당 아동 6만 2000명을 책임지는 셈이다. 반면 경남(아동인구 63만 7000명)은 2곳에 불과해 1곳당 31만 8500명을 담당하고 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18세에 퇴소하며 받는 자립지원정착금도 제각각이다. 울산이 600만원, 서울·경기·충남 등은 500만원을 지원하지만 경남과 강원 등은 300만원에 그친다. 아동급식비나 아동보호시설 간식비 등도 천차만별이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과천시장이 지난 선거 때 ‘학교마다 사회복지사를 배치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실제 학교 10곳 중 9곳에 배치했다”며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아동복지가 달라진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최근 각 정당에 보낸 ‘6·4 지방선거 정책 제안서’에서 아동기금 조성 등을 통해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아동복지 재원을 도울 것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 아동복지정책의 최소 기준을 마련해 강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순천 금당고 교장 ‘뇌사 고교생’ 등 잇단 교사 구타 사태에 사임

    순천 금당고 교장 ‘뇌사 고교생’ 등 잇단 교사 구타 사태에 사임

    ‘순천 금당고’ 순천 금당고 교장이 잇따라 발생한 교사들의 학생 구타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 순천 금당고는 교감과 교사도 징계위에 회부하고 학생·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대책위를 꾸려 교장 외부 공모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순천 금당고는 학생체벌근절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를 구성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책임자 처벌을 포함, 교사의 학생 체벌 방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11일 밝혔다. 대책위에는 이 학교 학생·학부모·교사·재단 대표·동문 대표·교육청 관계자 등이 참여할 방침이다. 재단은 일단 현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교장을 사임하도록 하고 참신하고 개혁적인 외부인사를 공모해 학교장에 영입하기로 했다. 또 학교 관리 선상에 있던 교장·교감과 학생을 구타한 교사를 모두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책임을 묻기로 했다. 대책위는 학생 체벌 재발을 막으려면 학내 구성원의 인권의식을 높이고 과열된 입시 위주의 학교 문화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먼저 학사 일정을 학내 구성원들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변화를 주기로 했다. 학생 중심의 학교문화 창출을 위해 학생 스스로 ‘학교규칙’을 만들어 제시하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사제동행프로그램과 봉사활동 등으로 학교 공동체 간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특히 교사들의 인권의식 제고를 위해 자정 결의대회와 함께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교사의 학생지도 방법도 다양한 연수활동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이 학교의 한 관계자는 “만신창이가 된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교사와 학생들이 머리를 모아 노력하고 있다”며 “학교 의사결정구조도 민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 중이다”고 밝혔다. 도교육청도 순천 금당고에 대한 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해당 재단에 관련자 징계를 요구하고 사태 수습 방안을 세워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순천 금당고는 지난 2월 이 학교 학생이 교사 체벌을 받은 후 13시간 지나 뇌사 상태에 빠져 숨진 사건이 발생, 도교육청 감사가 진행 중인데도 교사에 의한 학생 구타가 또 발생해 비난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사랑의 매’의 어두운 그늘/문소영 논설위원

    재미교포가 아니라, 미국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본 한국인이면 가정의 안팎에서 아이를 크게 혼내는 일이 없다. 아이의 머리나 얼굴을 때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아이의 어깨나 팔을 쥐고 거칠게 흔들지도 않는다. 평소 울컥해서 분노조절에 실패하기 십상인 한국인이 미국이란 새 토양에서 변화된 것일까. 절대 아니다. 행인이나 이웃집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자녀(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서에 신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는 최악의 경우 친권박탈과 같은 황당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미국의 범죄 또는 법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죽 허리띠를 풀어서 자녀를 학대하는 망나니 아버지가 자주 출현하지만, 미국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시민적 합의는 과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격하다. 아무리 친부모라고 해도 친권을 제한·박탈하고, 시설에서 자녀(아동)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양부모를 찾아주기도 한다. 모든 생물학적 부모가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부모가 되는 순간 깨닫게 되는 불편한 진실 중 하나가 자녀가 늘 예쁘고 사랑스럽지만은 않다는 사실 아닌가. 최근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20세가 돼 집을 떠날 때부터 부부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지난해 10월 울산에 살던 서현이가 새엄마의 구타 등으로 사망했던 ‘울산 아동학대’ 사건이 채 잊히기도 전에, 친아빠의 방조 속에 새엄마가 자녀를 폭행해 사망한 ‘칠곡 아동학대’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지속력인 폭행으로 그 흔적들이 노출됐고, 그 때문에 친인척뿐만 아니라 교사, 아동센터까지 학대혐의를 신고했지만, 경찰이 심각한 신고를 친아빠 등의 변명을 믿고 쉽게 혐의를 거뒀다는 것이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가해자를 감싼 아이들의 거짓말을 심리분석하고, 전문의사들이 달라붙어 상처를 확인하고, 친아빠 등의 변명을 검증했더라면 울산과 칠곡의 그 소녀들은 아직 살아있지 않았을까. 자녀를 훈육한다, 사랑의 매를 친다 등은 한국이나 유교문화권의 전통교육방식이었다. 그러나 위인전기나 김홍도의 서당도에서 봤던 목침 위에 아이를 세우고 회초리를 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분노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광폭한 어른의 모습이 ‘훈육’과 ‘사랑의 매’의 실체가 아니었나 싶다. 맞고 자란 아이는 커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 폭력은 대를 잇게 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폭력에 굴종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면 매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일병 사망, PX서 사 온 만두 먹고 있었는데..‘갑자기 집단구타 이유는?’

    일병 사망, PX서 사 온 만두 먹고 있었는데..‘갑자기 집단구타 이유는?’

    ‘일병 사망 소식’ 육군 연천부대에서 음식을 먹던 중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해 일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연천지역 육군 모부대 윤모(23) 일병이 의정부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숨졌다. 군에 따르면 윤 일병은 6일 오후 4시 25분쯤 내무반에서 PX서 사 온 만두 등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선임병에게 가슴 등을 폭행당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측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뇌가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내무반에는 병장과 상병 등 선임 4명과 숨진 윤 일병을 포함, 총 5명이 함께 있었다. 군 수사기관은 당시 함께 있던 선임병들을 상대로 한 명이 때렸는지, 집단 구타했는지, 왜 윤 일병을 때렸는지 등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일병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일병 사망..진짜 충격이다”, “일병 사망..무서워서 아들 군대 보낼 수 있겠나”, “일병 사망..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병 사망..너무 안타깝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숨진 윤 일병은 지난해 12월 입대해 최근 진급했으며 군 생활은 평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방송 캡처 (일병 사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육군 일병 사망’ 간식 먹다 선임병들에 집단구타…구속영장 신청키로

    ‘육군 일병 사망’ 간식 먹다 선임병들에 집단구타…구속영장 신청키로

    ‘육군 일병 사망’ 선임병에게 맞고 쓰러진 뒤 음식물에 기도가 막힌 병사가 민간 병원으로 후송된 지 하루 만에 숨졌다. 군 수사당국은 당시 내무반에 함께 있던 선임병 4명에 대해서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군내에서 병사 간 폭행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건 2000년 5월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7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연천지역 육군 모부대 윤모(23) 일병이 의정부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군에 따르면 윤 일병은 지난 6일 오후 4시 25분쯤 내무반에서 PX서 사 온 만두 등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선임병에게 가슴 등을 폭행당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측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뇌가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내무반에는 병장과 상병 등 선임 4명과 숨진 윤 일병을 포함, 총 5명이 함께 있었다. 나머지 분대원들은 휴일이어서 체육 활동을 하느라 내무반 밖에 있었다고 군은 전했다. 숨진 윤 일병은 지난해 12월 입대해 최근 진급했으며 군 생활은 평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해당 부대 대대장 등 지휘관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강력한 구타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선임병 폭행, 선임병에게 가슴을 구타당해 ‘그날 오후 무슨 일이?’

    선임병 폭행, 선임병에게 가슴을 구타당해 ‘그날 오후 무슨 일이?’

    육군 연천부대에서 음식을 먹던 중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해 일병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연천지역 육군 모부대 윤모(23) 일병이 의정부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숨졌다. 군에 따르면 윤 일병은 6일 오후 4시 25분쯤 내무반에서 PX서 사 온 만두 등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선임병에게 가슴 등을 폭행당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측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뇌가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내무반에는 병장과 상병 등 선임 4명과 숨진 윤 일병을 포함, 총 5명이 함께 있었다. 사진 =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피해 증언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피해 증언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당시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대학살)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군사정권이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연고가 없는 장애인, 고아, 일반 시민 등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 암매장한 사건으로 1987년 원장이 구속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호정 기자 hojeong@seoul.co.kr
  • 육군 일병 사망…간식 먹다 선임들에 집단구타 당해

    육군 일병 사망…간식 먹다 선임들에 집단구타 당해

    ‘육군 일병 사망’ 선임병들에게 맞고 쓰러진 뒤 음식물에 기도가 막힌 병사가 민간 병원으로 후송된 지 하루 만에 숨졌다. 군은 선임병들을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7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연천지역 육군 모부대 윤모(23) 일병이 의정부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군에 따르면 윤 일병은 지난 6일 오후 4시 25분쯤 내무반에서 PX서 사온 사 온 식품을 나눠 먹던 중 병장과 상병 등 선임 4명에게 가슴 등을 폭행당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측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뇌가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군 수사기관은 선임병들이 왜 윤 일병을 때렸는지를 포함해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육군 일병 사망’ 간식 먹다 선임병에 구타 당해…음식물 기도 막아 뇌손상(종합)

    ‘육군 일병 사망’ 간식 먹다 선임병에 구타 당해…음식물 기도 막아 뇌손상(종합)

    ‘육군 일병 사망’ 선임병에게 맞고 쓰러진 뒤 음식물에 기도가 막힌 병사가 민간 병원으로 후송된 지 하루 만에 숨졌다. 군은 당시 내무반에 함께 있던 선임병 4명을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7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연천지역 육군 모부대 윤모(23) 일병이 의정부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군에 따르면 윤 일병은 지난 6일 오후 4시 25분쯤 내무반에서 PX서 사 온 만두 등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선임병에게 가슴 등을 폭행당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 측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뇌가 손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내무반에는 병장과 상병 등 선임 4명과 숨진 윤 일병을 포함, 총 5명이 함께 있었다. 나머지 분대원들은 휴일이어서 체육 활동을 하느라 내무반 밖에 있었다고 군은 전했다. 숨진 윤 일병은 지난해 12월 입대해 최근 진급했으며 군 생활은 평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수사기관은 당시 함께 있던 선임병들을 상대로 한 명이 때렸는지, 집단 구타했는지, 왜 윤 일병을 때렸는지 등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루에 ‘151회’ 번지점프한 男

    하루에 ‘151회’ 번지점프한 男

    한번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고공 번지점프를 단 하루 동안 100번 이상 해낸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하루 동안 총 151회의 번지점프를 수행해 기네스 신기록을 세운 간 큰 남성의 사연을 26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이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국 출신 모험가 콜린 필립스(33)로 그는 이번 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높이 100m 번지점프대에서 가장 가혹한 미션에 도전, 이를 성공시켰다. 이전까지 최다 번지점프 기록은 3년 전 모험가 케빈 헌틀리가 악명 높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 가든 루트에서 세운 하루에 105회였고 필립스는 이번에 이 기록을 깨보기로 결심한 뒤 두바이로 향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저녁부터 시작된 콜린스의 도전을 안전을 고려해 총 3번에 나뉘어 진행됐다. 진행방식을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점프는 ‘20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두 번째 점프는 ‘21일 오전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세 번째 점프는 ‘21일 오후 3시부터 7시까지’로 중간 중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이는 도전자의 건강과 사고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였다. 21일 저녁 7시 151번째 점프를 끝으로 기네스 신기록을 세운 콜린스는 “하루 종일 구타당한 느낌”이라며 도전이 쉽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그는 “제일 힘든 건 안전 줄에 체중이 실리면서 발목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아팠던 것”이라며 “그 외에 현기증이나 두통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필립스는 애초에 번지점프 200회의 벽을 깨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피로가 누적돼 151회 정도(?)에서 그만뒀다는 후문이다. 사진=데일리메일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법원 “軍 가혹행위 따른 조울증은 국가유공자 요건”

    군 복무 중 당한 가혹 행위 때문에 발생한 조울증은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9단독 노유경 판사는 이모(35)씨가 서울북부보훈지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 등록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23일 밝혔다. 1999년 11월 육군으로 입대한 이씨는 군대에서 선임병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선임병들은 그가 ‘낙하산’으로 연대본부에 배정받았다고 몰아붙이며 그를 따돌리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군기가 강하고 상관의 질책과 폭언, 구타가 자주 벌어지는 상황도 견디기 힘들었다. 전출을 요청해 다른 소대로 옮겨 갔지만 후임병을 때린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져 항소심 끝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02년 2월 만기 전역한 이씨는 전역을 한 달 앞둔 시기부터 조울증 증세를 겪었다. 기분이 들떴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충동적인 언행까지 겹쳐 수년간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했다. 결국 10년간 계속된 증세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군 가혹 행위로 조울증에 걸렸다”며 서울북부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군 직무 수행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불복해 이씨가 낸 소송에서 법원은 보훈지청의 판정을 뒤집었다. 노 판사는 “상관의 폭행 등이 만기 전역 시까지 지속됐다고 보인다”면서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일상화된 폐쇄적인 군 생활 중 겪은 가혹 행위의 내용과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그것이 알고 싶다’ 구타·성폭행·513명 사망 형제 복지원 원장은 지금…

    ’그것이 알고 싶다’ 구타·성폭행·513명 사망 형제 복지원 원장은 지금…

    ’그것이 알고 싶다’ 구타·성폭행·513명 사망 형제 복지원 원장은 지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의 진실’ 편이 시청자와 네티즌의 공분을 자아냈다. 22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7년 전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형제복지원의 진실이 밝혀져 관심이 집중됐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고,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국내 최대 부랑인 수용 시설로 자리잡았다. 당시 3000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에 숨겨진 검은 진실이 한 검사의 수사로 정체를 드러냈다. 1987년 우연히 산중턱의 작업장에 감금된 수용자들을 목격한 검사가 형제복지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 상황이 낱낱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들은 폭력과 폭언, 감금은 물론 성폭행까지 당했다. 게다가 먹지 못해 영양실조까지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들 중 한 명은 “당근 볶음이 나왔는데 이상한 걸로 볶았다. 석유냄새가 엄청났다. 반찬은 당근 하나, 그 다음에 김치 하나였다. 김치가 이상한 김치였다. 먹지도 못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피해자도 “너무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배가 고프고 영양실조가 있다. 그래서 쥐의 새끼를 보면 보약이라고 산채로 먹기도 했다”며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는 당시 형제복지원의 폭력 때문에 이를 모두 잃었다며 40대에 틀니를 한 자신의 모습을 공개했다.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폭력과 감금, 영양실조는 물론 노동력착취까지 당하며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확인 결과 12년 동안 무려 5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원인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이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원장 박 씨는 징역 2년 6개월의 형량만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심지어 그는 새로운 복지법인을 설립해 ‘복지재벌’로 누구보다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최근에는 불법 대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세상에 드러난 이후 20여 년이 지난 2012년 한 피해자의 국회 앞 1인 시위와 시민단체와 피해자, 정치권의 노력 끝에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오는 24일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공동발의를 앞두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끔찍한 만행이 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처벌이 제대로 안됐네”,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정말 처절한 생활을 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 복지원, 지금도 복지 재벌이라니 황당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형제복지원, 사망자만 513명 “쥐의 새끼를 보고 산 채로..” 도대체 왜?

    형제복지원, 사망자만 513명 “쥐의 새끼를 보고 산 채로..” 도대체 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드러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화제다. 22일 저녁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7년 전 끝내 밝혀지지 않은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파헤치며 당시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박모 원장이 형제복지지원재단을 운영할 수 있던 원인을 추적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고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3000여명의 부랑인을 수용했다. 하지만 1987년 우연히 산중턱에 감금된 수용자를 목격한 한 검사가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세상 바깥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형제복지원은 무연고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마저 납치해 감금하고 폭행 및 강제 노역을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수용된 한 피해자는 “쥐의 새끼를 보고 산 채로 잡아먹기도 했다”고 말하며 열악한 수용환경을 증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군대 같은 조직 구조 아래서 소대장, 중시장의 감시 하에 무자비한 구타와 성폭행까지 발생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사망자는 513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박 원장은 7번의 재판 끝에 업무상 횡령,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만을 선고받았다. 출소 이후 박 원장은 다시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이어나가 ‘복지재벌’로 거듭나면서 시청자들을 격분케 했다. 제작진이 박 원장을 찾아가자 박 원장의 아들은 오히려 “우리 아버지도 인권이 있잖아요. 왜 촬영하고 그래요”라며 화를 내며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접한 네티즌은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 무시무시한 곳이네”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 다시 수사해라”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 전라도 섬노예보다 더하네”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 SBS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감금·구타·성폭행까지 …박원장은 지금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감금·구타·성폭행까지 …박원장은 지금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감금·구타·성폭행까지 …박원장은 지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의 진실’ 편이 시청자와 네티즌의 공분을 자아냈다. 22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7년 전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형제복지원의 진실이 밝혀져 관심이 집중됐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고,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국내 최대 부랑인 수용 시설로 자리잡았다. 당시 3000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에 숨겨진 검은 진실이 한 검사의 수사로 정체를 드러냈다. 1987년 우연히 산중턱의 작업장에 감금된 수용자들을 목격한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 상황이 낱낱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들은 폭력과 폭언, 감금은 물론 성폭행까지 당했다. 게다가 먹지 못해 영양실조까지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들 중 한 명은 “당근 볶음이 나왔는데 이상한 걸로 볶았다. 석유냄새가 엄청났다. 반찬은 당근 하나, 그 다음에 김치 하나였다. 김치가 이상한 김치였다. 먹지도 못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다른 피해자도 “너무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배가 고프고 영양실조가 있다. 그래서 쥐의 새끼를 보면 보약이라고 산채로 먹기도 했다”며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는 당시 형제복지원의 폭력 때문에 이를 모두 잃었다며 40대에 틀니를 한 자신의 모습을 공개했다.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폭력과 감금, 영양실조는 물론 노동력착취까지 당하며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확인 결과 12년 동안 무려 5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원인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이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원장 박모씨는 징역 2년 6개월의 형만 받아 시청자와 네티즌을 경악하게 했다. 심지어 그는 새로운 복지법인을 설립해 또 다른 ‘복지재벌’로 둔갑했다. 최근에는 불법 대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세상에 드러난 이후 20여 년이 지난 2012년 한 피해자의 국회 앞 1인 시위와 시민단체와 피해자, 정치권의 노력 끝에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오는 24일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공동발의를 앞두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박원장, 추가적인 조사는 더 안 할까”,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박원장, 피해자들의 원성이 들리지도 않나”, “그것이 알고 싶다 형제복지원 박원장, 어떻게 했길래 사람이 수백명씩 죽어나가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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