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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 나비 日서남부 상륙 1600㎜ 폭우 22만명 대피

    |도쿄 이춘규특파원|대형 태풍 ‘나비’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채 6일 오후 2시쯤 일본 서남부 규슈 나가사키현에 상륙, 오후 11시 현재 서일본지역에서 5명이 숨지고,15명이 실종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22만여명은 하천범람 등을 우려, 일시대피했다. 부상자도 40명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인명피해 규모는 늘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피해범위가 광범위하고, 통신이 두절된 곳이 많아 피해집계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야자키현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 3일간 무려 13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는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우량과 비슷한 양이다. 일본 기상청은 규슈 남부의 경우 4일부터의 누적강우량이 1600㎜를 넘는 곳도 있을 것으로 보고 도로와 토사붕괴, 산사태 등에 신속히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비는 상륙후 속도가 빨라진 채 진로를 북동쪽으로 바꿔 7일 중 일본열도를 따라 동해를 빠져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야자키현은 미처 피신하지 못한 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위대에 재해긴급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자위대 선발대를 피해지역에 파견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산요신칸센 히로시마∼하카다(후쿠오카) 구간 상·하행선 운행이 중단된 것을 비롯,JR규슈,JR시코쿠가 정오까지 모든 열차운행을 중단해 철도가 마비됐다. 규슈와 다른 지역을 잇는 항공기와 배 등 하늘과 바다의 교통편도 끊겼다. 또 규슈에서 2만 7000가구, 시코쿠에서 2만가구가 각각 정전됐다고 현지 전력회사가 밝혔다.taein@seoul.co.kr
  • [광복60-청산하지 못한 과거] 日홋카이도 비바이탄광 매몰 한국인 64년째 방치

    [광복60-청산하지 못한 과거] 日홋카이도 비바이탄광 매몰 한국인 64년째 방치

    1941년 3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미쓰비시 비바이탄광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사망한 한국인 징용자 32명의 신원이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의 현지조사 결과 처음으로 확인됐다. 경북에서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국인들은 막장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돼 희생이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패전 전 최대의 탄광사고로 기록되는 이 사고에서 일본인도 145명 숨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6월부터 홋카이도 일대에서 조사를 벌여 조선인 희생자 명단이 수록된 사고수습 일지와 비바이 탄광의 갱도 지도 등 관련자료를 입수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이 진상규명위에 조사를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매몰된 조선인 17명 발굴 불가능 진상규명위가 입수한 자료는 탄광회사인 미쓰비시측이 직접 작성한 ‘통동변재도’와 ‘통동변재일지’로 일본인 학자가 소장하고 있던 문서다. 생존자 구출과 시체 수습을 위해 사고 후 작성된 막장의 지도인 통동변재도는 동서로 4㎞, 깊이 2㎞의 탄광 내부에 거미줄처럼 얽힌 100여개 이상의 갱도들이 ‘1200분의1’ 축척으로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일수록 탄광 입구에서 가장 먼 막장에 집중 배치된 점이 뚜렷했다. 한국인 사망자 중 15명은 수습이 됐으나 17명은 폐광처리되면서 아직도 막장에 묻혀 있으며, 수습된 한국인 유해가 한국에 송환됐는지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에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현지 조사에 나선 한혜인 북해도 팀장은 “유골 발굴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데다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당초 계획했던 유해 수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망자 32명 경북 출신,19∼38세 분포 사고 이후 그해 7월31일까지 시체 수습과정 및 사망자 명단이 기재된 일지에는 날짜별 구조 기록과 조선인 사망자의 본적지, 생년월일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10∼30대의 희생자 32명은 경북 의성군·달성군·영천군과 대구·구미·안동에서 끌려온 고향 사람들이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일지를 토대로 국내 유족의 증언 청취,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장례비 및 위로금 지급 사항, 유골 송환 및 당시 노동현장의 차별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토목 노동자 강제징용 명부도 첫 발견 진상규명위의 현지조사에서는 토목 노동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노동자연명부’를 처음으로 발견하는 개가도 올려, 그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토목 징용자의 피해를 조사하는 길도 열었다. 1945년 8월29일 홋카이도 오비히로 토목현업소장 나카타 가즈이치가 작성한 이 명부는 오비히로 경찰서장에게 제출됐다. 명부에는 조선인 148명의 이름, 나이, 본적지 등이 기록돼 있다. 이로써 일본측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토목공사 관련 강제징용자 명부가 일본 각 경찰서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비바이탄광 폭발사고 1941년 3월18일 오전 2시40분 탄광 내 쓰도갱에서 발생했다. 당시 일왕에게도 보고된 이 사건 이후 모든 탄광사고의 보도통제가 이뤄졌다.44년 5월에도 폭발사고가 발생해 조선인 71명이 사망했다.‘사고 당시 조선인이 갱도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며 사고 원인을 조선인에게 떠넘기려는 소문도 나돌았다. 강제동원이 시작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홋카이도 지역에서 숨진 조선인 희생자는 2300여명에 이른다. ■ 1941년 비바이탄광 사망자 (출신군별, 연도는 출생연도, 일본식 이름은 창씨개명한 것) ●경북 달성 △천태수(옥포면·22년) △양금수(〃·18년) △신사봉(〃·16년) △전명조(화원면·18년) △新井杉根(월배면·22년) △김서학(안평면·13년) ●경북 의성 △전용수(비안면·16년) △松山德出(〃·21년) △김두봉(단촌면·15년) △박춘하(신평면·19년) △이유구(성서면·11년) △윤병철(봉양면·13년) △김두칠(〃·17년) △박규진(가음면·20년) △安本碩文(금성면·16년) ●경북 영천 △固本道□(금호면·11년) △金本令岩(자양면·11년) △永本鎭星(임호면·22년) △金子元出(〃·17년) △金山成煥(북안읍·20년) ●경북 안동 △유삼원(풍천면·04년) △松本德伊(〃·12년) △임진섭(임하면·09년 3월12일) △정학준(길안면·14년) △이수룡(〃·13년) ●경북 칠곡 △강수석(왜관면·18년) ●경북 대구부 △이팔수(내장동·12년) ●경북 구미 △井本寅用(고로면·11년) ●주소불명 △박판근(03년) △김규식(18년) △김삼진(19년) △김기수(15년)
  • 단가로 日열도 울린 손호연 여사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8·15가 성큼 다가오면서 방송사마다 내놓는 이런 저런 특집물들이 눈에 띈다. 우선 아리랑국제방송이 마련한 ‘일본 열도를 울린 무궁화’가 시선을 끈다.15일 오전 9시에 전파를 타는 이 방송은 ‘단가(短歌)’라는 일본 전통 정형시를 통해 일본인들을 울린 한국인 손호연(1922∼2003) 여사를 다룬다.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높은 이 시점에 한·일관계의 긍정적인 측면을 다룬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손 여사는 일본어에 익숙했기에 일본 전통시인 단가의 형식을 빌려 시심을 쏟아냈다. 단가는 31자의 응축된 단어로 표현하는 시. 그렇기에 일본인들조차도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5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운 시다.그럼에도 손 여사는 단가의 대가 나카니시 스스무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그녀의 단가는 일본근대사를 단가로 정리한 ‘쇼와 만엽집’에 5수나 실렸다. 그러나 광복 뒤의 극심한 반일감정은 손 여사를 죄인으로 만들었다.‘조센징’이어서 일본이 내친 게 아니라, 일본시를 했다며 한국인들이 그를 내친 것이다. 제작진은 단가가 백제의 시가였다는 사실을 들어 손 여사 구출에 나선다. 일본인들에게 문자와 표기법을 전해주면서 백제의 단가가 그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4000여수의 단가가 실린 고대 일본의 ‘만엽집’ 자체가 백제인들의 시가집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판독이 어려운 대목이 곳곳에 있는데 이는 고대 한국어로 풀어내면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구출방식이 꼭 이래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손 여사는 이제 한·일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은 아직도 곳곳에 엉겨붙어 있는 일제의 흔적을 들추어내는 ‘전통적’인 방식의 특집을 마련했다.15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방영되는 ‘일제 문화잔재 60년’이 그것. 올해에는 4부까지만 제작·방영하고 내년에 6부를 추가, 모두 10부작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번에 제작된 4부의 주제는 각각 음악·건축·미술·생활문화이다. 익숙하게 듣고, 봐왔던 노래와 건축물과 위인 영정 등에서 일제의 흔적을 찾아낸다.“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로 시작하는 동요에서도, 지난 5월 ‘친일파가 그린 논개 영정’으로 불붙은 논란에서도, 우리가 쓰는 일상용어와 학술용어에도 일제의 흔적은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런 청산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일본은 침략자인 동시에 근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로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이 두 측면을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넘쳐나는 일본 관련 프로그램을 조망하는 또 다른 관점으로 참고할 만하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제플러스] 러 잠수함 캄차카해역서 좌초

    러시아 해군 소형 잠수함이 5일 북태평양의 캄차카 반도 인근 해역에서 미확인 물체에 걸려 좌초돼 7명의 승조원을 24시간 안에 구출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해군이 함정 등을 급파했다. 러시아측은 사고 직후 양국 해군에 도움을 요청해 이날 밤 8시쯤 일본 자위대 해군 함정 4척이 긴급 출동했다. 미 태평양함대 사령부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수송기를 보내 무인 조종 잠수정 2척을 실어 사고 해역으로 날아와 구조작업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와 북방 4개섬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구출 작전에 370여명의 병사를 동원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토 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일본 해군의 대대적 투입 소식을 전해들은 러시아 해군은 일본 함선이 도착하기 전 구조작업이 완료되기를 바랐다고 이타르타스는 전했다. 빅토르 드미트리예프 제독은 “일본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없이 먼저 구조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기고] ‘한미동맹’ 다시 생각해보자/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태프트-가쓰라 각서’(Taft-Katsura Memorandum)가 미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지 지난달 29일로 100년을 맞았다. 태프트-가쓰라 각서는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함으로써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미국은 1904년 2월10일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국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유지하고 러시아의 만주지배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했으나, 일본의 계속된 러·일전쟁의 승전으로 인하여 미국의 식민지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우려하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5년 7월27일 태프트 육군 장관(Secretary of War)을 일본에 보내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의향을 타진하고 대응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1925년 드네트(Tyler Dennette)에 의해 최초로 알려진 태프트-가쓰라 각서의 주요 내용은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침략적 의도가 없으며,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극동지역의 평화유지를 위해 미국, 영국, 일본은 협력하며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3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은 태프트-가쓰라 비밀각서 체결을 시작으로,1905년 9월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우월권을 인정받았다. 이어 9월27일 제2차 영·일동맹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확보한 후,11월17일 조선(이하 한국)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으며,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로 병합했다. 태프트-가쓰라 각서가 체결된 직접적 요인은 루스벨트의 친일 성향과 반한 감정의 결과였다. 루스벨트가 친일성향을 갖게 된 계기는 1900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의화단(義和團) 사건으로 포위된 외교관을 일본 군대가 구출함으로써 싹트기 시작했다. 그후 일본 정부가 1904년 2월 루스벨트와 하버드 법대 동기인 가네코 겐타로를 미국에 보내 루스벨트가 친일정책을 전개하도록 설득했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야 중국에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외교조언자인 스프링 라이스(Spring Rice)의 건의를 받은 것이다. 루스벨트가 반한감정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친구이자 아웃 룩(The Outlook) 신문 기자인 조지 케난이 러·일전쟁의 종군기자로 취재한 한국에 대한 나쁜 기사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케난은 1904년 10월22일자 기사에서 “일본의 농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으나, 한국의 농촌은 부패한 쓰레기통 같이 더럽고, 사람들은 게으르며, 하수구 물은 인도로 넘쳐나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가 아플 정도다.”라고 혹평했다. 미국의 반한 정책은 1882년 5월22일 제물포에서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에 위배된 처사였다. 조약 제1조는 “만약 제3국이 조약국의 일방에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 타방은 이를 통보받은 즉시 개입하거나 거중조정(good offices)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해 수차례나 통보받았으나, 한국을 돕지 않고 반대로 일본을 지원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일곱 차례나 루스벨트에게 특사를 파견하여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루스벨트는 한국의 특사가 정식 외교문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접견조차 거절했다. 루스벨트는 한국 문제에 철저한 중립과 비개입정책으로 한국과의 신의를 무시함으로써 국가이익은 국가친선에 우선되는 교훈을 주고 있어 우리에게 한·미동맹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 산사나이들의 ‘목숨 건 우정’

    히말라야 등반 도중 중상을 입은 동료를 포기하지 않고 사투 끝에 구출해온 등반대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전 11시쯤.35년 만에 세계 최대, 최고 난이도 거벽인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의 루팔벽(4500m) 도전에 나선 루팔벽 원정대 공격조 김미곤(사진 왼쪽), 송형근(오른쪽), 주우평, 이현조 대원은 7550m 지점까지 로프 설치 작업을 마쳤다. 정상을 500m 가량 눈앞에 두고 막 일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돌조각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백m를 수직낙하한 돌파편 하나가 중력의 힘을 빌려 비수가 된 채 김미곤 대원의 왼발등과 오른 어깨로 날아들었다. 김 대원은 발등이 골절되고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지난 14일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정복이라는 세계 산악사에 남을 쾌거를 달성하고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원정대는 상기된 얼굴로 산악인들의 뜨거운 우정을 확인한 그날의 상황을 털어놨다. 김 대원은 “나 하나 때문에 모두를 죽게할 수 없었고 2차 낙석의 위험도 있어 자일을 끊으려고 칼을 찾았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자일 파트너인 송 대원이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송 대원은 “같이 올라 왔으면 같이 내려가야 한다.”면서 동료들과 김 대원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캠프4(7150m)가 7550m지점에서 밑으로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지만 움직일 수없는 동료를 데리고 경사 70도 가까운 암벽과 빙벽을 통과하는 데 6시간이나 걸렸다. 캠프4에서 1차 안정을 취한 뒤 비교적 안전한 캠프1(4900m)까지 김 대원을 옮기는 데 다시 3일이 더 걸렸다. 고락끝에 김 대원을 안전하게 병원으로 옮긴 산악대는 내려온 길을 다시 뚜벅뚜벅 걸어올라가 쉽게 넘보기 힘든 발자취를 남겼다. 송 대원은 “2차 낙석이 올 확률이 거의 90%를 넘었지만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는 것은 산악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담담히 당시 구조 작업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서정환 ‘잠든 호랑이’ 깨우나

    올 것이 왔다. 시즌전 우승후보로 꼽히다 바닥에서 헤매며 지리멸렬했던 기아의 사령탑이 결국 소문대로 바뀌었다. 기아는 성적부진을 책임지고 물러난 유남호(54) 감독 대신 서정환(50) 1군 수비코치가 올시즌 남은 기간 동안 감독대행을 맡는다고 25일 발표했다. 지난해 7월 김성한(현 군산상고 감독) 전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유 감독은 한시즌을 못 채우고 불명예 퇴진하는 셈. 유 감독은 당분간 쉰 뒤 내년시즌 2군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이날 아침 8시쯤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았다는 서 감독대행은 “우선 선수단을 추스르고 팀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 감독은 원년인 1882년 삼성에 입단한 뒤 프로야구 1호 트레이드로 ‘호랑이군단’에 몸을 담았다.89년 해태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2루수로 5번의 우승을 맛봤고,90∼95년 코치를 역임하면서도 우승 헹가래(91년)를 경험했다. 이후 삼성으로 유턴,98년부터 2년 동안 감독을 지냈다.2000년 11월 코치로 기아와의 인연을 다시 맺는 등 선수와 코치로 올해까지 18년째. 그 누구보다 ‘타이거즈’의 생리에 밝다. 9회 우승의 명가 해태를 2001년 인수한 이후 성적을 내지 못한 기아는 설상가상 올시즌(25일 현재 34승1무49패)엔 24년 팀 역사상 최초로 꼴찌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4강 커트라인인 5할 승률에 도달하기 위해선 남은 42경기에서 8할 이상의 승률을 거둬야 해, 올시즌 포스트시즌행은 힘들어졌다. 서 감독이 ‘기아호’를 꼴찌의 오명에서 구출해 낼지 주목된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성원 신작 ‘우리는 달려간다’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니나가 잡혀 있는 마왕의 소굴로∼’라는 노래를 기억하시는지? 70년대 인기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폴’의 주제가다. 다음 구절은 이렇다.‘어른들은 모르는 4차원 세계, 날쌔고 용감한 폴이 여다’ 소설가 박성원(36)의 신작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문학과지성사)는 용감한 폴이 니나를 구하려고 친구들과 떠나는 4차원 세계로의 여행만큼이나 기이한 이야기다. 마술봉, 요술차 같은 마법은 등장하지 않지만 현실과 상상, 진실과 거짓,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독특한 서사구조는 독자를 단번에 낯선 세계로 끌어들인다.94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소설집 ‘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1996),‘나를 훔쳐라’(2000) 등을 통해 평범한 일상 저 너머에 잠재해 있는 삶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품세계로 주목을 받았다.5년 만에 발표한 세번째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에서도 그의 실험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소설집에 실린 9편의 단편들은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난처한 상황에 처하거나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환경변화에 속수무책 당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긴급피난’에서 폭설에 차 사고를 당한 주인공은 어떤 남자의 도움으로 구출되지만 엉뚱하게 살인혐의를 뒤집어쓸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방화를 한다. 후속격인 ‘인트라망’은 불을 지르고 도망가던 주인공이 바위에 부딪혀 기절했다가 69일 만에 깨어나 보니 자신이 죽이려 했던 여인의 아들이 병수발을 들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펼쳐지는 이같은 황당한 사건들 속에서 주인공은 아무 대처도 못하고 그저 악몽에서 깨어나기만을 바라는 허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밖에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에 십수년간 속아 진짜와 거짓이 모호해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 퇴근길에 과거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는 ‘데자뷔’ 등이 실렸다.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英 ‘이슬람 증오범죄’ 경계령

    런던 연쇄폭탄 테러의 여파로 영국 내에서 이슬람교도에 대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이번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인 것 같다.”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언급이 나오면서 마치 ‘9·11’ 직후를 떠올리는 방화와 투석 등의 공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이에 따라 영국 내 최고 이슬람기구가 이슬람혐오증(Islamophobia) 확산 경보까지 발령하기에 이르렀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1일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주(州) 브래드퍼드의 파키스탄 영사관이 방화범들의 공격을 받았고 10일엔 머지사이드주 버컨헤드의 이슬람사원이 같은 테러를 당해 사원 안에 있던 이맘(이슬람의 예배인도자)이 불길 속에 갇혀 있다 가까스로 구출됐다. 앞서 9일과 8일에도 웰링턴과 브리스틀, 리즈 등 곳곳에서 괴한들이 이슬람사원에 불을 지르거나 돌과 유리병 따위를 던졌다.특히 9일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출신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모여 사는 런던 동부의 이슬람사원과 학교에 쇠몽둥이와 망치를 든 무리가 난입해 유리창 19개 등 기물들을 파손한 뒤 공격이 더욱 과격해지는 양상이다. 영국에서는 과거 9·11 직후에도 이슬람사원에 대한 테러로 거의 대부분의 사원들이 쇠창살을 설치할 정도로 이슬람혐오증이 심각했었다.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자 영국이슬람위원회(MCGB)는 영국 전역의 이맘들에게 이슬람혐오증이 확산되고 있다며 사원 등의 경계를 강화하라는 서한을 일제히 발송했다.MCGB의 이크발 사크라니 사무총장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슬람 기관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40년 전 이민 와 영국에서 아들을 대학원까지 공부시켰다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압둘 무님은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영국 시민이며 영국인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이슬람공동체는 지금보다 더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경찰은 11일 밤 “비극적인 사건을 악용해 증오를 키우는 무리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범죄가 일어나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발표했지만 이슬람혐오증이 쉽사리 수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이슬람교도들은 걱정하고 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44명의 처녀를 찾아라

    44명의 처녀를 찾아라

    『44인의 표류된 처녀를 찾아라』- 서해안 일대에 새벽의 비상망이 쳐졌다. 폭풍과 눈보라 속 절해고도에서 44명의 조개잡이 처녀들이 실종된 지 만 1주일. 군경과 미군까지 동원된 합동수색대는 조난 1주일 만에 성냥갑만한 노도(怒濤)속의 한 섬에서 치마를 찢어 흔드는 일단의 처녀군(處女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뭍에서 120km의 무인도, 쌀 두 말로 영하의 연명을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육지에서 120km나 떨어진 작디 작은 무인 고도- 눈보라 속의 그 섬을「헬」기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만도「천우」요「신조」일 수밖에 없었다. 44인의 처녀와 인솔자인 한 사람의 총각이 서해의 외딴 섬인「새뱅이」섬에 표류한 것은 지난 4일. 그들은 구출된 10일까지 쌀 두 말과 고구마 두 말의 식량으로 영하의 조난을 이겼다. 44인의 처녀와 1인의 총각이 엮는「인간개가(凱歌)의 장」은 이러했다. 충남 서산군 소원(所遠)면 모항(茅項)리의 작은 어촌에는 1백여호의 어민들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가난」을 유일한 재산으로 하루 1백원 정도의 굴따기, 조개잡이로 생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어촌의 처녀 44명은 11월 4일 같은 마을 홍은표(洪殷杓)씨(22·남)의 인솔로 모항(茅項)에서 120km나 떨어진「새뱅이」섬이란 무인도로 굴을 따러갔다. 하루 160원의 벌이를 위해-. 이날 아침 인천으로 가는「경문호」(8톤·선장·송응남)에 편승. 쌀 두 말과 고구마 두 말을 동네에서 꾸어가지고 폭풍과 기아와 공포가 기다리는「새뱅이」섬으로 떠난 이들은 출항 4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 경문호는 다음날 귀로에 이들을 마을로 데려가기로 약속하고 인천으로 떠났다. 조개잡이배 태풍만나 구조경비정까지 표류 그러나 경문호가 다음날 인천을 출발하려 할 때 뜻밖에도 태풍주의보가 내렸다. 주의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리기 1주일-. 선장 송씨는 기다리다 못해 10일 육로로 서산에 돌아가 이들의 조난 사실을 경찰과 육군○○사 주둔부대에 신고했다. 서산경찰서는 김태주(金汰株)서장 진두지휘 아래 즉시 경비정「한산호」를 출항, 이들의 수색에 나섰으나 4m의 파고와 짙은 안개로 목적지도 찾지 못한 채 15명의 승무원을 실은 경비정마저 표류하기 시작했다. 김서장은 두 시간에 걸친 파도와의 싸움에 기진, 해군함정에 SOS를 타진했으나 해군함정마저 심한 풍랑으로 출동하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회신만 보내왔다. 미군「헬리콥터」가 구출, 치맛자락 찢어 소리쳐 51사단 이준희대위와 김서장의 끈덕진 설득에 감동된 미44 포병대 4대대 C중대의 중대장「달튼」대위는 평택 ○항공대의 친구의「사빈스」준위에게 사태의 긴박함을 연락, 드디어 하오 5시 미군의 대형「헬」기가「사빈스」준위의 조종으로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30분간이나 현장 상공을 배회한「사빈스」준위는 악천후로「새뱅이」섬을 찾는데 실패, 급기야는 자신의 생명에까지 위험을 느껴 기지로 돌아오고 말았다. 구조본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이 이 눈보라 속의 절해고도에서 1주일을 견딘다는 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론 도저히 불가능하다. 김서장과「달튼」대위는「사빈스」준위를 다시 설득,「헬」기에 동승하여 다시 현장에 출동했다. 하오 6시 30분- 흰 눈보라 속에서 치맛자락을 찢어 목이 메어라고 소리치며 흔드는 44명의 처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공이다!』「헬」기 속에선 세 사람의 함성이 터졌다. 조종사「사빈스」준위는「새뱅이」섬 상공을 5회나 선회한 끝에 결사적인 착륙에 성공, 이들 전원을 구출했다. 정영숙(鄭英淑)(17)양 등 10여명의 처녀들은 이미 동상과 골절의 중상을 입고 있었으며 추위와 기아에 지친 일행은 완전히 아사직전의 초췌한 모습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동굴파고 돼지감자 캐고 눈보라 속에서 동상까지 이 44명의 처녀들이 조난한「새뱅이」섬은 길이 300m, 폭 100m의 작은 무인도. 그들은 예정대로 4일 작업을 마치고 5일 배를 기다렸으나 배는 10일까지도 오지 않았다. 이들이 가지고 온 쌀과 고구마는 45명의 하루 식량 밖에 안 된다. 바다의 기상에 밝은 이들은 배가 오지 못할 것을 예감, 식량을 아끼고 섬의 바위틈에서 나오는「돼지감자」눈을 캐 모으기 시작했다. 일부는 동굴을 팠다. 단 한 사람의 남자인 홍은표씨는 44명의 처녀를 거느린(?) 행복감에 도취할 새도 없이 이들을「리드」하기에 초인적인 안간힘을 썼다. 6일부터는 하루에 밥 1회, 감자 1회씩을 먹었고 8일부터는 날감자를 약간씩 씹어 입의 침이 마르지 않도록 연명했다. 9일부터는 식량이 그나마 다 떨어져 굶기 시작했다. 44명의 처녀들은 주림과 추위 속에서 생을 체념, 가난하나마 단란했던 고향의 식구들을 생각하며 마지막 운명의 순간만을 기다라고 있었다. 10일 하오 6시 30분. 섬 상공에「헬」기가 나타났다. 몰아치는 태풍, 200mm나 쌓인 눈. 그 속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던 처녀들은 순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입었던 치마를 벗어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서산으로 공수된 이들은 미군 C중대의 식당에서 배를 불리고 중상자들은 부대의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번 처녀구출작전에서 수훈을 세운「달튼」대위는 미「인디애너」주 출신의 ROTC장교, 김태주 서산서장은 고시 행정과 출신의 젊은 총경서장이다. <서산=장석호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1/24 제1권 제10호 ]
  • 알카에다 “이집트대사 억류중”

    이라크에서 외교관들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라크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무장세력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무장단체 ‘이라크의 알 카에다’는 6일(현지시간) 이라크 주재 이집트 대사 내정자인 이합 알 샤리프를 납치, 억류하고 있다며 웹사이트를 통해 샤리프의 운전면허증과 외무부 직원증 등을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이들은 이어 “이집트가 ‘유태인과 기독교인’과 동맹하는 배교(背敎) 행위를 했기 때문에 납치한 외교관을 전사들에게 넘겨 처형하겠다.”는 성명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샤리프는 지난 2일 바그다드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뒤 연락이 끊겼다. 이집트는 아랍권 국가 중 처음으로 이라크 정부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알 샤리프를 파견했다.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뒤 이라크와 단교했다. 이집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납치된 샤리프의 생사 확인과 구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5일 바그다드에서는 하산 말라라 알 안사리 이라크 주재 바레인 대리대사가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받아 오른쪽 팔에 총상을 입었다. 무하마드 유니스 칸 이라크 주재 파키스탄 대사가 탄 차량도 총격을 받았다. 사흘 새 외교관을 노린 공격이 3건이나 발생하자 이라크 정부 대변인은 “주변국들과 동맹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좌절시키려는 테러집단의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새 이라크 정부가 이슬람권 국가들과 외교관계 강화에 나서자 저항세력이 조직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그 영화 어때?] 새달 7일개봉 ‘어썰트 13’

    스케일을 살리려 요란한 시각효과로 ‘뻥’을 치는 액션영화에 질렸다면 ‘어썰트 13’(Assault on Precinct 13·새달 7일 개봉)을 챙겨봄직하다. 액션의 부피를 키우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시각을 교란(?)시키는 액션물들과는 확실히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실제상황을 보고 있는 듯 사실감 넘치는 영화 속 액션 시퀀스들이 진지한 감상을 보장한다. 악질 죄수들을 호송중인 경찰버스가 디트로이트의 극심한 폭설 때문에 인근 13구역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곳의 경사 제이크(에단 호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수용했으나, 내심 불안하기만 하다. 수년 전 범인검거 현장에서 자신의 실수로 동료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 이후 죄책감으로 소심한 경찰로 전락한 제이크. 그도 그럴 것이 호송 중인 범죄자들 가운데는 디트로이트 최대 마약조직의 우두머리이자 경찰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기로 악명높은 비숍(로렌스 피시번)이 끼어있다. 영화는 배우들과 관객을 폭설로 고립된 허름한 경찰서 안으로 순식간에 몰아넣고는 빗장을 채워버린다. 이내 정체불명의 무장세력들이 경찰서 밖에서 무차별 공격을 해오고, 영문도 모른 채 갇힌 이들은 처절한 생존의 동거를 시작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본의 아니게 ‘한 배’를 탄 경찰들과 죄수들이 의기투합한다는 기발한 설정이 관객의 흥미를 곱절로 부풀린다. 무장세력이 비숍을 구출하려는 그의 조직원들일 거란 ‘상식적’ 추론을 허락하지 않는 영화는 슬쩍 음모론을 끌어들여 액션극의 밀도를 높인다. 비숍을 비호하며 거액을 빼돌려온 비리 경찰 듀발(가브리엘 번)일당이, 비밀을 영원히 은폐하려는 계산에서 아예 비숍을 제거하기로 음모를 꾸민 것. 경찰서를 경찰들이 공격하고, 일군의 범죄자들이 그 공간을 사수하려는 아이로닉한 설정은 이래저래 효력이 크다. 통념적 선악의 역할극에서 벗어난 영화 속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감상의 묘미가 기대 이상이다. 공적을 물리치느라 제이크와 비숍이 ‘기묘한’ 우정을 쌓아가는 몇몇 대목은 실소가 터질 만큼 억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경찰서 안의 내부고발자 등 막판의 짜릿한 반전이 범죄액션의 양감을 풍성하게 살려주기에 별 무리가 없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모피어스 역으로 나왔던 로렌스 피시번이 이 영화에서 대단히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는 점도 특기사항. 무지막지한 근육질 살인범이 됐으나, 중후하고 강렬한 눈빛이 에단 호크보다 더 오래 ‘우리 편’ 영웅으로 잔상에 남는다. 서스펜스 액션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 화제작 ‘분노의 13번가’를 리메이크했다.2002년 그래미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세계적 힙합스타 자룰이 도박사기꾼 스마일리 역으로 나온다. 장 프랑수아 리쉐 감독.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 라이온 걸?

    |요하네스버그 연합|에티오피아에서 사자 세마리가 납치된 12세 소녀를 7명의 남자들로부터 구출한 믿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고 AP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에티오피아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일 수도 아디스 아바바 남서쪽 560㎞ 지점에 위치한 비타 게네트 지역 인근 교외에서 문제의 소녀를 납치한 7명의 남자를 추적중이던 경찰과 친지들이 납치된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세마리의 사자를 발견했다. 사자들은 경찰과 친지들이 다가오자 숲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납치된 소녀를 ‘인계’했다. 문제의 소녀는 7일전 7명의 남자들에게 납치된 뒤 그동안 결혼을 강요당하며 구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티오피아는 여자를 납치해 결혼하는 풍습이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번에도 7명의 남자가 소녀를 납치해 결혼을 강요하며 폭행했다는 것. 소녀를 구출한 원디무 웨다조 형사는 “세마리의 사자들이 우리가 그녀를 발견할 때까지 지키고 있었으며 우리가 다가가자 숲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원디무 형사는 사자들이 납치범들을 추적해 쫓아낸 뒤 소녀를 한나절 보호하고 있었다며 “통상 사자들은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이는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지 야생동물전문가 스튜어트 윌리엄스는 “사자들이 어린 소녀가 구타 당하면서 부르짖은 비명소리를 마치 어린 사자 새끼의 울음소리로 혼동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았으면 사자들이 소녀를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 원작만화 느낌 그대로… 브루스 윌리스 ‘복수의 화신’ 役

    할리우드 터줏대감 브루스 윌리스와 로버트 로드리게스감독. 머릿속에서 대번 이미지의 틀이 그려지는 액션 히어로와, 스크린에서 무슨 일을 낼지 도무지 감잡기 힘든 ‘악동’ 감독. 아무래도 부조화한 만남 같은데, 이들이 작당하고 일을 냈다.30일 개봉하는 ‘씬 시티’(Sin City)에서 두 사람은 부조화의 편견을 뚫고 빚어내는 화음이 어떤 맛인지를 여보란듯 펼쳐보인다. ‘씬 시티’의 원작은 ‘그래픽 소설’이라 불리는 코믹스(만화) 장르를 개척한 프랭크 밀러의 동명만화.‘데어 데블’(2003년)의 원작을 맡기도 했던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공동감독으로도 참여했다. 제목에서 풍기듯 영화는 누아르를 연상시킬 만큼 어둡고 장렬한 액션 시퀀스가 인상적인 스릴러물. 범죄와 음모, 관능이 득시글거리는 도시 뒷골목을 누비는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은 누아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다크 히어로’(어둠의 영웅)의 이미지를 뒤집어썼다. 그 자신 만화원작의 열렬한 팬이었던 감독은 원작의 상상력을 최대한 다치게 하지 않고 스크린에 옮기는 데 주력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두꺼운 원작의 마니아층을 만족시키려면 강도높은 자극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까. 흑백에 포인트 컬러를 넣는 방식의 독특한 화면부터 유별난 액션을 예고한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번에도 오랜 ‘전공’인 형사 역이다. 은퇴를 하루 앞둔 나이 예순의 형사 하티건.11세 소녀를 인질범에게서 구출하는 마지막 임무를 혼자 수행하다 오히려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소녀의 유괴범 로크는 다름아닌 막강파워로 도시를 주무르는 상원의원의 아들이었던 것. 브루스 윌리스를 SF애니메이션 속 영웅처럼 변신시킨 화면은 디스토피아적 음울한 화면에 쉼없이 인물 만화경을 풀어낸다. 별볼일 없는 자신을 하룻밤 따뜻이 품어준 여인 골디(제이미 킹)가 살해당하자 막무가내로 복수에 나서는 뒷골목의 ‘주먹’ 마브(미키 루크). 타락한 전직 형사로 양아치들을 몰고다니며 웨이트리스 애인 셜리(브리트니 머피)에게 주먹질이나 일삼는 재키 보이(베네치오 델 토로), 비열한 재키에게 총을 겨누는 셜리의 새 애인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언). 줄줄이 나열되는 캐릭터들을 직렬 혹은 병렬로 정리하는 데 헷갈릴 관객도 있을 듯싶다. 복잡하게 사건들을 꼬아놓고 수수께끼를 풀어보라며 키득키득 장난을 거는 로드리게스 감독 스타일이 드러나는 설정이다. 딱히 기둥줄거리가 없어 보이는데, 복잡다단한 인물구도를 갖춘 영화가 요령껏 굴러가는 품새가 신통하다. 누명을 쓰고 8년을 감옥에서 썩고나온 하티건의 장렬한 복수와 어느새 19세가 된 낸시(제시카 알바)와의 사랑, 골디를 죽인 살인마 케빈(엘리야 우드)을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마브의 이야기는 묘하게 순애보의 낭만까지 뿜어낸다. ‘씬 시티’의 액션이 만화적 상상력의 결정체인 흔적은 이뿐이 아니다. 음모에 뒤덮인 창녀촌을 지키는 여전사같은 여인 게일(로자리오 도슨)이 있는가 하면, 사무라이 여전사(데본 아오키)가 ‘킬빌’의 우마 서먼과 닮은꼴로 귀신처럼 칼을 놀려댄다(실제로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을 도왔다.). 아이디어가 많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백화점식 스토리 나열로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할 뿐,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한 두름에 꿰는 드라마의 힘은 아무래도 약하다. 요란한 시각장치가 아니었다면 관객들을 흥분시킬 대목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의심스러운 까닭이다. 만화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감쪽같이 가면을 쓰고 나온 듯한 스타들의 변신은 빼놓을 수 없는 감상포인트. 뽀빠이와 헐크를 뒤섞어 고대전사의 이미지를 덧칠한 듯한 미키 루크, 표정없는 사이코 살인마가 된 엘리야 우드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이야깃감’이다.18세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씨줄날줄] 활자문화 진흥법/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최초에 문자를 발명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이집트 타무스왕의 이야기를 보면 부정적이다. 타무스왕은 발명의 신인 테우스를 초청해 그의 발명품들에 대해 얘기를 듣는다. 테우스는 그가 발명한 문자를 소개하며 “문자를 널리 보급한다면 이집트인들의 지혜와 기억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추천한다. 그러나 타무스왕은 즉각 반대한다.“문자를 습득한 사람들은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이 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위해 내적 자원보다 외적 기호에 의존하게 돼 실제로는 무지하면서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고, 그 결과 진정한 지혜 대신 지혜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차 장차 사회에 짐이 될 것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타무스왕의 생각은 틀렸다. 그는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자체만 주목했지, 문자를 통해 ‘무엇’을 기록할까 하는 문제는 전혀 고려치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문자를 통해 지식과 생각을 기록한다. 축적된 지혜의 엄청난 힘을 타무스왕은 간과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학 교수 닐 포스트먼은 인쇄물은 인간에게 논리, 순서, 역사, 설명, 객관성, 중립, 규칙 등의 가치를 전수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TV는 현재성, 동시성, 친밀감, 즉각적 만족, 빠른 정서적 반응을 주는 매체다. 최신의 매체인 컴퓨터는 영상매체의 특성에 개별성, 자기중심주의의 성격을 더한다. 그런데 TV와 컴퓨터의 문제점은 중독성으로 인해 매체 고유의 특성이 인간에게 극단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TV를 많이 보는 사람이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공격적이며 즉흥적이고 스트레스가 높다는 조사결과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TV안보기 운동이 일어나고 컴퓨터 게임의 중독성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급기야 ‘문자·활자문화진흥법안’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문자·활자가 ‘보호대상’이 될 정도라니 씁쓸하다. 그러나 남의나라 얘기가 아니다. 법안제정 근거가 되고 있는 젊은층들의 신문 이탈현상은 국내도 일본 못지 않다. 국어능력 저하현상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자각만으로는 부족하다.‘지혜’의 구출을 위해 우리도 행동할 때가 되었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yshin@seoul.co.kr
  • EBS “드라마로 우리 역사 지킨다”

    EBS “드라마로 우리 역사 지킨다”

    EBS가 ‘역사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EBS TV는 창사 특집으로 4부작 역사 드라마 ‘독도 장군 안용복’(연출 이주희 극본 정서원·이수현)을 새달 20∼23일 오후 7시30분에 방영한다. 또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역사·어린이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 하고, 일본은 식민 지배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내용의 역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는 역사에 대한 교육이 점점 부실해지고 있는 상황.EBS는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분야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 드라마를 기획했다. 드라마에서는 역사와 팬터지가 만난다.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부의 신분으로 독도를 지켜냈던 민간 외교관 안용복을 만난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역사적 사실을 좇으며, 또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현정·현빈 남매가 적극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며, 한·일간 독도 문제를 짚는다. 초등학생 남매 현정과 현빈은 아버지와 함께 울릉도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시간의 동굴을 통과,1693년 조선 숙종 시대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안용복을 만난 남매는 뇌헌 스님을 설득해 위기에 빠진 안용복과 박어둔을 구출한다. 또 안용복에게 한·일 외교 관계 등을 알려주며 ‘독도 지키기’에 한몫 거들게 된다. 안용복은 ‘토지’에서 송관수로 나왔던 박진성이 캐스팅됐다. 최근 인천 영종도 촬영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탤런트 박진성은 “드라마를 찍으며 안용복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며 “지금 우리에게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이 필요한 시기 같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대일본제국의 애국적 지식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호소이 하지메란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한일합병(1910년)을 전후해 ‘동경아사히신문’과 ‘한일전보통신사’ 기자로 다년간 한국에 체류했다. 갓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호소이는 흥미를 느꼈고 나름대로 많은 ‘연구’도 했다. 그런 호소이에게 1919년의 기미독립운동은 전혀 뜻밖의 사태였다. 무지렁이로 보였던 한국인들이 수백만 명씩이나 길거리로 뛰쳐나와 독립을 요구할 줄 그는 미처 몰랐다. 한낱 정치군인에 지나지 않는 조선총독이 그걸 짐작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당한 한국전문가 호소이 자신도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좌절되자 한국엔 예언서 ‘정감록’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대한독립이 박두했다는 둥, 신천지가 열릴 거라는 둥 갖가지 소문과 예언이 한반도를 뒤덮을 지경이었다. 특히 1921년부터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숱한 신흥종교단체들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다. 겉으론 종교를 표방했지만 은연중 독립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정감록 비상이 걸렸다. 1922년 겨울, 호소이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부탁을 받았다.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동경의 자택 서재에 틀어박혀 호소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는 우리 대일본제국에 무엇인가. 제국의 용맹스러운 장졸(將卒)들이 목숨 바쳐 강적 청나라도, 러시아도 연달아 무찌른 다음 어렵게 얻어낸 제국의 새 영토가 아닌가. 저 버러지 같은 한국 놈들은 천황폐하의 신민이 된 영광을 모른다. 놈들은 감히 독립을 바라고 있다. 훈련된 군대도 총칼도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서려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맨주먹을 쇠뭉치로 둔갑시키는 것은 독립에 대한 부질없는 열망이다. 거기 불 붙이는 부싯돌이 바로 정감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정감록을 처단할 것이다. 나 호소이로 말하면 천황폐하의 뜻에 언제나 기꺼이 순종하고 순수한 대일본제국 신민의 고귀한 혈통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는 위대한 제국의 충량한 신민이 아닌가. 우리 대일본제국으로 말하면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이 천만대를 두고 이어져온 아름다운 나라. 그에 비할 때 이른바 저 한국 놈들은 어떤가. 놈들은 우선 생리학적으로 열등하다. 혈액만 하더라도 한국 놈들의 피는 ‘거무칙칙하고 더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조 5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당쟁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지만 나라꼴은 늘 엉망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 놈들은 유전인자 자체가 불순하고 열등하다. 따라서 놈들에게 밝은 미래란 있을 수가 없다. 오직 천황폐하의 자애로운 품속에 있을 때만 그들은 행복을 바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나는 이미 두 권의 저서에서 명확히 입증했다.‘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과 ‘조선 문제의 근본적 해결(朝鮮問題の根本的解決)’이 그것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전문적인 연구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것이다. 실용성이 없는 학문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위해, 무지하고 악랄한 한국 놈들의 순화를 위해 나의 저술은 두고두고 쓰일 만한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걸핏하면 양심을 들먹이는 비겁하고 위선적인 놈들이 있어 훗날 나 호소이를 대일본제국의 어용학자(御用學者)라고 불러도 좋다. 제국의 영예를 위한 나의 일편단심은 그럴수록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 호소이는 묘안을 찾기 위해 좀더 생각했다.‘도무지 정감록이란 무슨 책이냐. 조선시대 위정자들도 몹시 두려워했던 책이 아니냐. 위정자들은 정감록을 소지하거나 퍼뜨리는 일체의 행위를 범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런데 혹독한 금압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은 널리 퍼져나갔다. 지금 반도의 덜떨어진 한국 놈들이 감히 독립을 바라는 것도 다 그놈의 정감록 때문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하라. 그렇다, 금단의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감록은 신비함을 잃게 된다. 신비성을 잃어버린 정감록이라면 이미 반쯤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또 하나. 기왕에 공개할 바엔 정감록의 정본(正本)을 만드는 거다. 바로 이 호소이가 대일본제국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할 정감록의 정본을 결정한단 말이다. 총독부에서 수집해 놓은 정감록의 이본들을 자세히 살펴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선동성이 별로 없는 텍스트를 골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텍스트에 살짝 손을 댈 수도 있다. 아주 심하게 손을 대면 조작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영악하고 의심 많은 한국 놈들을 상대로 하는 일인 만큼 더욱 주도면밀해야 한다. 나는 정감록을 순화시킬 뿐이다. 이것은 변조나 개작이 아니다. 나는 대일본제국과 천황폐하를 위해, 한반도와 한국 놈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정감록을 편집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잊지 말아야 될 일이 또 있다. 이렇게 교묘한 수단을 부려 김을 빼놓더라도 한국 놈들은 순화된 나의 정감록을 다시 개악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놈들은 워낙 피가 더럽기 때문에 제멋대로니까. 그들의 망령된 행위를 막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까. 그래, 예방주사를 놓자! 정감록은 이래서 진짜 믿을 것이 못 된다. 이런 식으로 계몽적인 비평을 잔뜩 써 가지고 독자 놈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정감록의 대가 호소이가 만든 정감록 정본의 맨 앞에 실린 비판을 읽게 하자. ●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 호소이는 이미 수집된 정감록 이본들을 널따란 책상 위에 펼쳐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일제는 이미 오래 전에 광개토대왕비문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변조했다. 정본이 따로 존재할 리도 없던 정감록을 개작하는 것쯤이야 호소이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솜씨와 애국심은 참으로 대단해 불과 몇 달 만에 ‘정감록비결 집록’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들에겐 억압의 상징인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정감록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결실을 맺은 날은 1923년 2월15일이었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정감록 인쇄본이다. 도쿄판 정감록은 인기가 대단했다. 초판으로 몇 부를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간된 지 약 보름 만에 제3판을 제작할 정도였다. 도쿄판은 아마 일본에서도 상당히 팔렸겠지만 주로는 ‘식민지 조선’에서 소비됐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호소이가 바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도쿄에서 만든 정감록으로 한국의 정감록 세계를 평정한다는 목표는 어쩌면 단시일 내에 달성될 듯도 하였다. 도쿄서 들어온 정감록이 잘 팔려 나가자 한국의 출판계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감록을 찍어내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호소이의 민족성 비판에 강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내놓고 맞싸울 형편은 안 되었지만 정감록까지도 ‘그 잘난’ 일본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책을 봐야 되는가 하는 강력한 반발이 없지 않았다. 동경판의 뚜껑을 열어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경악했다. 호소이는 무지한 한국 사람을 계몽한답시고 무려 50쪽이나 되는 정감록 비평을 썼다. 정감록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한국 사람의 타고난 ‘야만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논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국인들은 태초부터 불합리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련한 한국 민족의 정신적 미성숙은 그들이 정감록과 같은 미신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이렇게 유치하고 야만적인 성격이 한국민족의 본성이다. 국제적으로 저열한 한국의 민족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반도의 역사 및 지리적 조건이 빚어놓은 결과다. 당시 유행하던 지리적 결정론을 빌려 호소이는 ‘미개한’ 한국인을 질타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기를 좋아하는 풍습은 당시 일본사회에서 더욱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민족의 위대성을 맹신한 호소이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야만적’인 한국인까지도 호소이는 마음속 깊이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하루바삐 정감록 신앙에서 한국인을 구출하여야만 된다고 믿었다. 합리적이고 발달된 현대 일본사회의 참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한국인은 정감록 신앙을 포기해야 된다. 이것이 호소이의 변(辯)이었다. 그러나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간행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정감록이라는 정치적 폭탄에서 뇌관(雷管)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동경판이 제3판에 돌입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23년 3월19일 김용주가 편찬한 정감록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편찬에 나선 김용주는 호소이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는 정감록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보태지 않았다. 딱히 정감록을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호소이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었다. 굳이 김용주가 정감록을 신앙하였다거나, 민족주의자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정감록에 대해 아무런 비평을 가하지 않은 데는 호소이의 지나친 악평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김용주에게는 정감록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정감록의 내용을 틀림없는 예언으로 믿고 있었다. 식민지의 힘없는 지식인에 불과했던 김용주로서는 대중의 그러한 열망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었다. 설사 그가 남다른 애국심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한독립이 된다고 믿고 있는 동포들의 기대심리를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잠재적인 독자들의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됐다. 김용주의 편집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소이에 대한 반감을 비롯해, 독립에 대한 기대와 상업적 목적이 골고루 다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김용주는 정감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정감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한성판이라 불릴 만했다. 한성판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동경판과 공통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두 판본이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매사를 곧이곧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민간에 퍼져 있던 허다한 비결 가운데 어느 것은 호소이만, 또 다른 것은 김용주만 수집해서 자연히 그렇게 됐다고 할 것이다. 실제 정감록은 수백 년 동안 필사본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각자의 수집본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동경판과 한성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비결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야 물론 좀 더 널리 퍼져 있던 유명한 예언서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누구나 손쉽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그런 대표적인 예언서 말이다. 나는 이런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동경판을 편집한 호소이가 매우 국수주의적이었단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수집된 정감록을 모두 출판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달리 말해 진인출현이나 대한독립의 메시지가 약한 ‘순화된’ 비결만을 선별적으로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고약한’ 내용의 예언까지 인쇄에 부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용주는 달랐다. 그는 도쿄본의 상당수를 답습하면서도 도쿄본에 실리지 못한 다른 비결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김용주는 호소이가 정감록의 정본을 만들려고 한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쿄판이 정감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진짜 정감록은 훨씬 더 위험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정감록을 출간하지는 못했다. 총독부의 검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당연히 김용주의 정감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의도와 배치된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김용주의 한성본이 딱히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지 않아 조만간 도태되어야만 될 책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식민지 한국의 정세는 한결 경색됐다. 이른바 전시총동원체제가 작동돼 비상시국이었다. 엄격한 사상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정감록에 대한 통제도 한 단계 더 나갔다. 그 무렵 새로운 정감록이 나왔다. 현병주의 ‘비난정감록진본’이었다. 마침 경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경성본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해명돼야 할 문제가 있는 책자였다. 우선 표면상 출간연도가 미상이란 점이 문제다. 책의 간행지를 ‘경성(京城)’이라고 표기해 놓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식민지시기 서울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다. 경성본이 나온 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나는 본문의 표기법을 자세히 분석했다. 문장의 구조와 맞춤법이 현대의 격식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경성본의 간행시기를 1930년대 중반 이후로 확신한다. 경성본은 내용면에서도 앞서 간행된 한성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성본은 정감록이 사실무근의 허망한 책자라는 논설을 싣고 있다. 편자 현병주는 정감록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한 김용주와는 달랐다. 하지만 현병주가 단순히 일본인 국수주의자 호소이를 추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정감록의 허구성을 비판하였을 뿐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한국인의 저열한 민족성에서 찾지는 않았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현병주가 비결의 내용 중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에 대해 일일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결의 본문에 길지(吉地)에 피난을 가더라도 피난 시기에 따라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부분이 있다. 현병주는 바로 그 구절의 끝에 괄호를 치고는 “생명을 건지는 땅 중에도 종종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비꼬는 투로 주석을 붙였다. 이와 같이 조목조목 정감록의 내용을 비판함으로써 현병주는 정감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 했다. 호소이의 정감록 말살 의도는 현병주에 이르러 더욱 공교해졌다. 나는 현병주가 친일파였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정감록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감록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현병주는 호소이의 완벽한 후배다. 현병주는 좀더 중요한 점에 있어서도 호소이의 전통을 계승했다. 나는 지금 경성본에 실린 비결의 내용을 문제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소이는 35종의 선별된 비결을 공개했다. 김용주는 그보다 16종이 더 많은 51종을 간행했다. 그런데 경성본에는 25종만 실려 있다. 현병주는 호소이의 동경본과 김용주의 한성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결로 한정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그는 호소이가 간행한 비결의 일부만이 정감록의 정본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호소이가 공개한 35개의 비결 가운데 25종은 광복 이후 간행된 여러 정감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20세기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정감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호소이의 비결을 정본으로 대접하게 됐다. 그렇게 된 줄이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드로잉을 통해본 한국현대 미술 60년사 5월15일까지 그로리치화랑(02)395-5907. 이쾌대, 이응노, 김환기, 송영수 화백 등 대가들의 인물군상, 산천, 점, 선, 누드 등을 스케치한 경쾌한 작품들. 완성작품에 비해서는 가벼운 느낌이나 작가의 순수한 마음의 세계가 포착돼 매력적. ■ 성곡미술관 개관 10주년전 6월5일까지 성곡미술관(02)737-7650.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이성’과 ‘감성’을 주제로 한 김범, 김수자, 김영진 등 젊은 작가 19명의 작품. ■ 김준 개인전 5월29일까지 사바나미술관(02)736-4371. 사회적 ‘금기’인 문신을 예술로, 문화적으로 해석한 작품들. ■ 이상원 개인전 6월6일까지 갤러리 상(02)730-0030. 러시아에서 전시한 ‘영원의 초상’등 인물화 미발표작. 클래식 ■ 영감과 열정 챔버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5월3일 오후 7시 30분 영산아트홀(02)586-0945 ■ 바리톤 윤호문 독창회 5월3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02)586-0945. ■ 김나영 피아노 독주회 5월4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02)3436-5222. ■ 정예창 오보에 독주회 30일 오후 3시(02)6303-1919. ■ 세계음악축제 30일 오후 5시 파주 헤이리 북하우스내 아트 스페이스(02)3774-2500. ■ 나수경 피아노 독주회 5월5일 오후 7시 30분(02)399-1111. ■ 금관악기 실내악단 코리아 브라스 콰이어 30일 오후 8시 DS홀(02)3774-2500. ■ 라이브 모차르트 5월1일 오후 7시 덕양 어울림누리 별모래 극장(02)3774-2500. 콘서트 ■ 사월의 봄 이야기(뱅크·포지션·최재훈)콘서트 30일부터 새달 1일까지 토 오후 4·8시, 일 오후 3·7시. 경희대 평화의 전당.(02)1544-1555. ■ 변진섭 뮤직 환타지 29일부터 새달 1일까지 29일 오후 7시30분 30일 오후 4·7시30분 1일 오후3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 새천년홀 (02)322-9555. ■ GOD 콘서트 30일 오후 7시 강릉 빙상 경기장 (033)645-9600. 어린이 ■ 제로공주 실종사건-5월31일까지 웅진씽크빅 아트홀 어려운 수학을 놀이처럼 즐기며 배울 수 있다고? 수학나라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지우개 마왕에게 붙잡힌 제로공주를 구출하러 떠난다. 구출기를 통해 멀게만 느껴지는 수학과의 거리를 좁히는 교육 뮤지컬.(02)569-0696. ■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 5월15일까지 정동극장(02)751-1500. 박정자 주연의 첫 아동극. ■ 넌 특별하단다 5월8일까지 인켈아트홀2관(02)745-0308. 맥스 루카도의 세계적인 그림동화를 각색. ■ 헤라클레스 5월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68-1515. 제우스신을 구하기 위해 생명수를 찾아 떠나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그린 뮤지컬. ■ 개구리 왕자 5월1일까지 하늘땅 소극장(02)3672-8276. 그림형제의 동화 ‘개구리왕자’를 아이들 상상력에 맞게 풀어낸 뮤지컬. ■ 노노 이야기 6월19일까지 상상나눔시어터(02)741-2323.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뮤지컬. ■ 하륵이야기 5월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02)525-6929. 폐품을 재활용해 만든 소품, 악기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연극 ■ 아가멤논-5월11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아이스킬로스 작·미하일 마르마리노스 각색·연출, 남명렬 손진환 안순동 박정한 박지아 출연. 아가멤논은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주제가 되는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그리스 비극의 세계적 권위자 미하일 마르마리노스가 선보이는 그리스비극의 정수.(02)580-1300. ■ 안녕, 모스크바 5월8일까지 아룽구지극장(02)762-0810. 김태훈 번역·연출, 이원희 신서진 백향수 김선영 신지훈 출연.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린 198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암울한 인권상황을 그린 작품. ■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5월22일까지 소극장축제(02)741-3934. 위성신 작·연출, 오주석 김재환 민충석 전형숙 출연. 은밀한 공간인 여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섯가지 사랑이야기. ■ 관객모독 6월19일까지 창조콘서트홀(02)764-3076. 페터 한트케 작·기국서 연출, 전수환 윤상화 서은경 양동근 출연. 힙합과 욕, 환상의 결합. 양동근도 관객도 그래서 더 신난다. ■ 부부 쿨하게 살기 5월22일까지 세우아트센터(02)762-9190. 손기호 작·연출, 임학순 우미화 출연.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한 지침서. 뮤지컬 ■ 인당수 사랑가-무기한 대학로 발렌타인극장 박새봄 작·최성신 연출, 서정금 강은경 김준원 김도현 장재용 출연. 우리 가락에 전통의 소리를 접목해 창작한 한국형 뮤지컬. 심청이와 춘향이의 만남을 다룬 독특한 소재에 꼭두각시놀음 등 다양한 장르의 결합이 돋보인다.(02)741-9120. ■ 틱틱붐 5월29일까지 신시뮤지컬극장(02)577-1987. 조나단 라슨 작·심재찬 연출, 이석준 배해선 문혜영 성기윤 출연. 뉴욕에 사는 젊은 예술가의 사랑과 희망. ■ 달고나 5월31일까지 PMC자유극장(02)739-8288. 오은희 작·이현규 연출, 정의욱 임진아 이장훈 출연. 추억의 가요로 엮은 옛이야기. ■ 더플레이엑스 6월26일까지 발렌타인극장2관(02)741-9120. 박재민 작·연출, 김영민 이동수 조은별 출연. 세상을 향한 개들의 유쾌한 풍자. ■ 아이 러브 유 6월19일까지 연강홀(02)501-7888.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정성화 오나라 출연. 이땅의 모든 커플들에게 바치는 뮤지컬. ■ 난센스 아멘 5월2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02)556-8556. 고선웅 연출, 김성기 서영주 김수용 출연. 여장 남자수녀들의 신나는 버라이어티쇼.
  • 日법원 “조총련 세경감 정당”

    |도쿄 이춘규특파원|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관련 시설은 ‘공익성이 있기 때문에’ 재산세와 도시계획세 등 세금감면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일본 구마모토 지방법원은 21일 구마모토 조선회관에 대해 재산세 등 세금 일부를 감면해준 것은 위법이라며 납치피해자 지원단체인 ‘구출회 구마모토지부’회원들이 구마모토 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세금감면조치 취소 및 면제분 납부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구마모토 지법의 판결은 재일 조총련 시설 세금감면조치에 관한 첫번째 사법적 판단으로 일본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건의 유사한 소송과 감사청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나가마쓰 다케모토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시설 이용자의 대부분이 재일 조선인이라고 해도 다른 공민관 유사시설과 마찬가지로 교양 향상과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면서 “따라서 조선회관에는 공익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특정 정당의 이해에 관한 사업이 이뤄지거나 영리행위, 위법행위가 이뤄졌다는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원고는 소장에서 구마모토시가 “조총련은 영리사업과 정치활동을 하는 단체로 그 시설에 공익성이 없다.”면서 “세금감면은 평등을 규정한 헌법과 지방세법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측은 판결에 불복,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클릭 이슈] ‘작계 5029’ 한미 최대 갈등요인 부상

    [클릭 이슈] ‘작계 5029’ 한미 최대 갈등요인 부상

    북한의 소요 등 급변사태 등을 상정한 한·미 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 5029’문제가 한·미 양국간 최대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미연합사가 업그레이드시켜 오던 이 작전계획에 대해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제동을 걸면서, 작계 수립작업은 중단된 상태이다. ●北급변 대비 非전시 군사작전 계획 북한 내부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한·미 양국군의 군사 작전계획이 ‘작계 5029’다. 미국이 갖고 있는 수 개의 작계 가운데 유일한 비(非)전시 대비계획이다. 일종의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MOOT W)계획’에 속하는 셈이다. 대체로 4∼5가지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군부 쿠데타는 물론 주민들의 폭동, 내전 등이 발생할 경우 한·미 양국 군은 북한에 진입하지 않되, 북측의 소요가 남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봉쇄’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내 반군 등이 대량살상무기(WMD)를 탈취해 유사시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나, 대량 탈북난민 등에 대한 대책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북한이 북한지역 내 한국인들을 인질로 잡을 경우 구출작전을 펴는 방안과 북한에서의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도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미군에 군사작전권 넘어가 전쟁이 아닌 급변사태때 한·미 연합사의 역할에 관한 사항이 견해 차의 핵심이다. 현재의 작계 5029는 북한지역에 혼란상황이 발생해 한국군이 북한에 들어가야 할 경우 연합사가 이 문제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규정에는 엄연한 주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게 NSC 입장이다. 남침이 아닌 상황에서 연합사의 개입은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것. 이와 함께 군 일각에서는 기본적으로 양국간 북한지역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차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한국군은 북한지역을 ‘미(未)수복 지역’으로 보는 반면, 미군측은 ‘연합사 관할지역’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계는 북한에서 정변이 발생하면 한국군은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 3’을 발령하게 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데프콘 3 이상의 준비태세가 발령되면, 전시 대비체제로 전환돼 군사작전권도 미군으로 자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미수복 지역인 북한지역에서 미국 정부와 미군이 연합사 관할지역이라는 합법적인 작전 근거를 갖고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NSC측은 주권 침해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측은 한국의 이런 입장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계는 양국이 1990년대 중반부터 논의해 왔으며,1999년 ‘개념계획(CON-PLAN) 5029’를 완성했다. 이어 2003년엔 양국 합참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 군사위원회(MCM)에서도 합의했다. 당초 미군의 관여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가 뒤늦게 왜 입장을 바꾸냐는 게 미측의 의구심인 셈이다. 이를 인식한 듯 윤광웅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필요하다면 미 국방부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측은 이와 함께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군의 작전계획이 대외에 공개된 경위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주말 윤 장관을 방문한 리언 J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도 미측의 불편한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NSC의 이같은 기조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논의가 어렵다며 미측과의 실무협상도 사실상 중단한 상태이다. ●한반도 관련 작계들 작전계획의 경우 내용은 물론 존재여부도 군사 기밀사항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그동안 작계의 존재 여부나 내용에 대해 부분적으로 공개돼 왔다. 지난 2003년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인 글로벌 시큐리티(www.globalsecurity.org)는 미국이 한반도 전쟁을 가상해 수립한 작전계획을 요약해 공개한 바 있다. 특히 그해 3월엔 북한이 남침할 경우, 격퇴 후 전면전을 벌인다는 계획을 공개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한반도와 관련된 미국의 작전계획에는 한반도를 의미하는 미군의 암호인 ‘50’으로 시작되며, 이들 작전은 모두 미 태평양사령부가 주관한다. 대부분의 작계는 1∼2년마다 수정·보완된다. 예컨대 ‘5029-05’의 ‘05’처럼 작계 뒤에 붙는 두 자리 수는 수정·보완된 연도를 의미한다. 미측은 북한과 관련해 공중전(5026)과 전면전(5027), 전쟁 예비단계로의 교란작전(5030) 등 몇몇 상황을 가상해 작계를 수립해 둔 것으로 알려진 상태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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