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구조된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비서실장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폭행 위협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늘씬 몸매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 국민의당
    2026-03-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556
  • 수원가톨릭대학장 배문한신부 “살신성인”

    ◎물에 빠진 신자 셋 구하고 익사/삼척 샘뻘수도원서 하계휴양중 【삼척=조한종기자】 수원 가톨릭대학장 배문한신부(60·세례명 도미니코)가 5일 하오 3시 30분쯤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본촌리 샘뻘수도원 앞바다에서 물속에 빠진 천주교 여자신자 3명을 구하고 자신은 숨졌다. 배신부는 지난 3일 경기도 송탄시 「서정동 성당」신자 10여명과 함께 이곳에 놀러와 이날 물놀이를 하던중 문병선씨(39·여·송탄시 서정동)등 여신자 3명이 갑자기 깊어진 수심 5m깊이의 물속에서 들락거리며 허우적대는 모습을 발견했다.여신자들은 바다물속에서 튜브 2개로 물놀이를 즐기다 튜브가 기우뚱거리는 바람에 모두 바다에 빠졌다. 그러자 평소 수영에 자신이 있던 배신부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들어 20m앞 해상까지 헤엄쳐 들어갔다. 배신부는 여신자들을 튜브에 매달리게 한뒤 혼신의 힘을 다해 뭍으로 밀쳐냈다.이때 구조상황을 지켜보던 주변의 신자들이 뒤늦게 튜브와 밧줄을 갖고 뒤따라 들어왔지만 배신부는 이미 탈진상태였다. 구조된 이들 4명은 즉시 삼척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물을 너무 많이 마신 배신부는 5분후에 숨졌다.그의 유해는 삼척의료원에 안치됐다. 배신부는 지난 3일 자신이 82년 주임신부로 재직했던 송탄시 「서정동 성당」 신자들의 초청으로 이곳 샘뻘수도원으로 함께 놀러왔다가 귀가를 하루앞둔 5일 평소 자신을 존경하던 신자들을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은 것이다. 34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배신부는 서울대 농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뒤 가톨릭대 신학부를 수료,70년 사제서품을 받았다.73년 이탈리아 올바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뒤 여주성당·서정동 성당 주임신부와 광주가톨리대 교수,수원 가톨릭대 학장을 역임해 왔다.
  • 항공기 추락참사 1년… 남다른 감회의 마천리주민

    ◎희생자 넋 위로하려 조촐한 추모제/자녀들 고향에 대한 자부심·긍지 느껴 보람/구조됐던 생존자 찾아올땐 형제 만난 기분 26일은 국내 항공사상 가장 큰 희생자를 낸 아시아나항공 보잉 737기 추락사고 1년째되는 날­당시 누구보다도 먼저 사고현장에 뛰어들어 44명의 생존자를 구해내는 헌신적 사랑실천으로 흐뭇한 화제를 던져준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천리 산골마을주민들은 이날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 동네사람들에게는 늘 자신감과 여유가 넘칩니다.마을이 이만큼 달라진 것만도 어느해보다 값진 풍년을 이룩한 셈이 아닙니까』 당시 이장 김진석씨(61·당시 이장)는 『마을주민들이 사고당시 스스로 확인한 이웃사랑실천 잠재력은 앞으로 두고 두고 이 마을을 지탱해줄 수 있는 값진 수확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지난 1년의 시간이 여느해보다 남달랐던 게 사실이지만 차츰 그날의 충격이 조용한 현실로 돌아와 지금은 희생자들의 넋앞에 하나같이 옷깃을 여미는 모습이다. 『오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위해 마을주민들끼리 조촐한 추모제를 가질 예정입니다.이 추모제가 지난 한햇동안 마을주민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주민 정한기씨(58)는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은 뒤로 한 채 난데없이 우리가 너무 많은 영예를 안은 것만 같아 늘 죄스러웠다』고 말한다. 마을주민들은 이 산골마을에 대통령까지 다녀가더니 사고이후 이 마을에 경사가 겹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무엇보다 자녀들이 어딜 가도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고 그만큼 떳떳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장 김동희씨(47)는 『지금도 가끔 당시 구조된 생존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아와 형제를 만나는 기분이다』라며 『마천마을이 그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푸근한 마음의 고향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헬기 극적구조 투병중인 김성희씨/“통증 시작하면 아직도 잠못이뤄/건강하게 자라는 아들이 큰 희망” 『병상의 하루 하루는 너무도 긴시간이지요.하지만죽음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아들 승호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삶의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1년전 세기의 참사로 일컬어졌던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 현장에서 의식을 잃은채 헬리콥터에 매달려 극적으로 구조되는 장면이 TV에 보도돼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김성희여인(30).가족과 함께 친정인 목포에 다니러오다 문제의 사고 여객기를 탔었던 김여인은 사고후 전신마비상태에서 눈물겨운 투병생활로 상반신의 기능은 회복됐으나 나머지 부분은 치료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하고 있다. 『뇌와 흉부에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워낙 충격이 컷던 것같습니다.통증이 시작되면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기만 합니다』아내의 간호를 위해 회사까지 그만둔 남편 윤진현씨(32)는 『그날의 사고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속에서 지워져가고 있지만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부상자들이나 희생자가족들에게는 그날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난다』고 말했다.
  • 미,아이티·쿠바난민 비상/「원안작전」 계획 수립

    ◎대량유입 위기 대응 【워싱턴·포르토프랭스 AP AFP DPA 연합】 클린턴 미대통령은 1일 아이티 탈출 선상난민의 급증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보좌관들과 긴급협의를 가졌다고 디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이 말했다. 국무부는 지난달 30일 하루동안 1천명이 바다에서 구조된 것을 포함,지난 2주간 구조된 아이티인들의 수가 5천명을 넘는다고 말했는데 이날 백악관대책회의는 최소한 30명의 아이티인들이 아이티를 탈출하려다 경찰의 경고사격에 놀라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보도에 자극받아 열린 것이다. 한편 미행정부는 쿠바,아이티를 비롯한 외국난민들의 대량유입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극비계획안의 마무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지등 미국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 「원안작전」으로 명명된 이 계획안은 13년전 12만5천명의 쿠바난민들이 플로리다주에 도착한 이래 계속 작성중에 있었으나 지난해 플로리다주 관리들이 또다시 쿠바난민들이 대거 미국으로 유입될 경우를 우려하고 공식 입안을 요구함으로써 가속화됐다. 일부에서는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정권의 붕괴나 내전이 있을 경우 최고 30만명의 난민이 쿠바를 탈출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태평양 횡단중 조난/일본 요트인 부산에/화물선에 구조된 모로이씨

    ◎“생존 일념으로 석달 견뎌”/“하루 한끼에 빗물 받아 마셨다” 요트로 태평양을 횡단하다 폭풍우로 조난당한 뒤 1백여일동안 표류중이던 일본인 모로이 기요지씨(제정청이·56·오사카거주)가 한국으로 들어오던 화물선에 구조돼 17일 상오 부산 감천항에 입항,부인 지에코씨(42)·누나 마쓰이 다가코씨(61)와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이날 모로이씨는 텁수룩한 머리에 흰색 운동복과 청색바지를 입고 다소 지친듯한 표정이었으나 부산해운항만청 감천출장소를 가득 메운 취재진들에게 조난당시 상황과 표류일정등을 설명했다. ­실종당시 상황은. ▲출항 1개월여만인 지난 3월8일 폭풍우를 만났다.강풍이 불어 돛을 내리려고 하는데 큰 파도가 뱃전을 때려 몸중심을 잃고 바다에 떨어졌으나 필사적으로 헤엄쳐 다시 배로 올라갔다. ­표류기간동안 생활은. ▲배는 마스터가 부서지고 유리창이 파손됐으며 무전기도 손상돼 통신이 불가능했다.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오는 8월까지 견딜 수 있는 왕복항해 분량의 식량을 준비했었지만 언제 구조될지 몰라 하루 한끼씩만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다.식수가 부족해 빗물을 받아 마셨다. ­표류과정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가족들이었다.처와 자녀 5명의 얼굴은 한시도 잊지 않았다.표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억울해 죽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로이씨는 지난 2월초 일본 오사카항에서 요트 수텐도지호(10t)로 미국 LA까지 횡단하던중 지난 3월8일 하와이 북쪽 8백마일 해상에서 폭풍우로 조난,행방불명된 지 1백1일만인 지난 7일 조난해역에서 2천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던 빈센트선적 화물선 비엔나우드호(1만7천1백61t)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 북한병사 2명 어제 돌려보내

    국방부는 1일 하오3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509차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를 통해 지난달 27일 백령도 근해에서 표류하다 우리 해군함정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민경비대소속 하사 김철진(23)과 상등병 김경철(19)등 북한병사 2명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날 회의에서 유엔군비서장 포레스터 칠튼대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이번 송환은 이들이 고향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한국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신속한 송환은 진정한 협력의 의미와 평화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구조 두 북한병사 돌려보낸다/본인들 의사 존중

    ◎정부,대화분위기 조성위해 결정/백령도 근해서 표류중 구조 정부는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 현역군인 2명을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1953년 휴전이후 처음으로 북한으로 송환키로 했다. 국방부는 29일 북방한계선 이남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표류하다 지난 27일 우리 해군함정에 의해 구조된 북한군 2명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북한군은 조선인민경비대소속으로 하사 김철진(23)과 상등병 김경철(20)이다. 우리정부의 이같은 전례없는 조치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대화 분위기를 조성해보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방부는 구조 당시 실신상태에 놓여있던 이들을 서울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치료해왔으며 최근 귀순여부에 대한 의사를 타진한 결과 이들이 일관되게 북한송환을 희망함에 따라 이를 존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군당국의 조사에서 『김정일어버이께서 내년에는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교시했다』며 북한으로 돌아갈 뜻을 분명히 했다. 국방부는 이들이 북한군인 신분인데다 유엔군이 관리하는 해상에서 구조됐다는 점등을 들어 이날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측에 송환결정을 통보했다. 이들 북한군은 군사정전위 협의가 끝나는대로 송환될 예정이며 협의에는 한달쯤의 시일이 걸려 송환시기는 2월말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에앞서 지난 27일 정전위를 통해 표류중인 북한군 2명을 구조했다고 북한에 통보했었다. 송환되는 북한군인 2명은 지난 25일 황해남도 용연군 오차신리 일명 장산곶에 설치된 근무초소에서 해상 50m앞에 쳐놓은 고기잡이 그물을 걷기 위해 전마선(무동력선)을 타고 출항했다가 높은 파도와 강풍에 밀려 표류하던중 지난 27일 상오11시쯤 북방한계선 1마일 남쪽에서 출동한 우리 해군함정에 의해 구조됐었다. 국방부는 78년 두차례 북한주민이 표류·선박침몰등의 사고로 우리측에 구조돼 자유의사에 의해 북한으로 송환된 적은 있으나 북한현역군인이 표류해왔다가 다시 돌아간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78년 5월동해상에서 민간인 신분의 승무원 8명이 타고 있는 간첩선이 침몰,우리 해군이 구조했으나 구조자 전원이 북한송환을 요구해 같은해 6월 정전위를 통해 북한으로 송환한 바 있다.
  • “「내년 통일」 김정일 말 믿는다”/북한병사 일문일답

    ◎작년 10월 삭발… 북송뒤 처벌 겁안나 북방한계선 이남 백령도 근해에서 우리 해군 함정에 구조된 조선인민경비대소속 하사 김철진과 상등병 김경철은 29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심경을 피력했다. ­건강은 어떤가. ▲괜찮다.표류를 시작한 뒤 이틀동안 물한모금도 먹지 못해 실신상태에 빠졌었다. ­왜 군인이 동력장치도 없는 전마선을 타고 고기를 잡다가 표류하게 됐나. ▲일상 경비 근무를 미치고 여가시간에 그물로 고기를 잡아 같은 초소에 근무하는 1개소대가 나눠 먹곤했다.지난 25일에는 바다로 나갈때만 해도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불어온 풍랑으로 노를 저어도 배가 전혀 나가지를 않을 정도였다. ­북에서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알고 있는 남한의 사정은 어떤가. ▲잘사는 사람은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회다.북에서는 그렇지 않다.뭐라고 말로 하기 어렵지만 모든 면에서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다. ­남한 사회를 구경해 보고 싶지 않은가. ▲전혀 보고 싶지 않다.빨리 돌아가고 싶은심정뿐이다. ­북에 돌아가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나 ▲설사 처벌을 받더라도 돌아가겠다. ­왜 머리를 빡빡 깍았는가. ▲지난해 10월 명령이 내려와 전 병사가 머리를 빡빡 깍았다.전투시 유리하고 위생에 좋으며 치료하기도 편해서 내려진 지시로 알고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같은 동포라는 느낌이 있나 ▲든다. ­통일이 될 것 같은가. ▲통일은 내년에 이루어진다.김정일 어버이가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틀림없다. ­병원식사가 어떤가. ▲내가 근무하는 곳은 기차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다.이 곳은 중앙병원이라서 이처럼 좋은 것 아닌가. ­북한의 군 생활은. ▲군 복무기간은 10년이며 입대한뒤 한번도 집에 가보지 못했다. (김철진은 7년째,김경철은 4년째 복무중이다)
  • 검경,헛소문에 “빗나간 수사”/서해훼리 참사

    ◎목격담 집착… 숨진 백 선장 등 수배/허둥대다가 억측만 양산/갑판원 주검 보고도 “생존 확신”오판 국내최대의 해난사고인 서해훼리호 침몰사건과 관련,수배를 받아온 백운두선장(56)등 선원 3명이 15일 하오 사고선박에서 사체로 발견됨으로써 백선장등의 생존을 전제로 한 검경합동수사가 초동단계부터 엄청난 허점이 있었음을 입증했다. 이번 수사는 특히 불확실한 현지주민들의 목격담과 증폭된 소문에 집착한 수사팀들의 성급한 판단을 근거로 수사에 착수,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유가족은 물론 국민모두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주고있다.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끝난 사망선원에 대한 수배소동은 검찰과 경찰 합동수사본부가 사고당일 백선장등을 목격했다는 일부 주민들의 진술내용을 「확신」,성급하게 수사방향을 결정하면서 이미 예견됐었다. 수사본부는 백선장등 수영에 능한 선원이 초기에 사체로 발견되지 않고 사고당일 백선장등을 목격했다는 최문수씨등 유진호 선원 3명의 진술 등을 근거로 백선장등의 생존을 확신,성급하게 백선장등 7명의 선원들에 대해 지명수배령까지 내리는 졸속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좀더 냉정하게 접근했더라면 최씨의 목격진술에는 애초부터 신빙성을 의심할 여지가 많았다는 점을 알수 있었다. 최씨 진술 가운데 ▲백씨의 행색이 물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빨간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백씨의 복장이 집에서 나갈 때의 사복차림이 아닌 제복차림이었다는 점등은 물에 빠져 경황중에 구조된 사람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수사본부는 『백선장을 좋게 생각하는 마을 주민들이 거짓말할 가능성은 있지만 최씨등이 거짓말할 동기가 전혀 없다』는 말까지 하며 최씨 진술을 믿고 백선장의 행적을 쫓는데만 급급했다. 더구나 경찰 2개중대를 동원한 수색결과 백씨등이 은신했거나 도피했다는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지난13일 갑판원 김재광씨가 선실에서 사체로 발견됐음에도 백선장등의 사망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황 총리 등 위로금 전달 황인성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일동은 15일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에 대한위로금 3천만원을 최창윤 총무처장관을 통해 사고수습대책본부장인 이강년 전북지사에게 전달했다.
  • “백 선장 생존가능성 높다”/수사지휘 임상길검사 인터뷰

    ◎목격자 3명 출현… 구명보트 탔을것/인근 무인도·연고지 등에 수사관 급파 『「백선장이 살아있다」는 가정아래 모든 상황증거 확보와 함께 백선장의 소재파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위도에 파견돼 침몰된 서해훼리호 선장 백운두씨(56)의 생존여부등을 수사하고 있는 전주지검 정주지청 임상길검사는 사고원인 수사의 열쇠를 쥐고있는 백선장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많은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백선장의 생존여부는. ▲바다의 경험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다.갑판과 2층에 있던 승객들은 대부분 살았다.또 조타실에 있었다는 백선장은 조타실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백선장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크다. ­수사착수의 계기는. ▲사고당일인 10일 하오부터 주민들사이에 백선장이 살아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여기에다 백선장이 구조돼 위도 파장금방파제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는 유진호 선장 최문수씨(26)등 3명의 목격자가 나타났다. ­백선장이 구조되었다면 그 과정은 어떠했다고 보는가. ▲훼리호에는 구명보트가있었다.사고현장에는 4∼6척의 구명보트가 떠 있었다는 당시 구조작업에 나섰던 선장및 선원들로부터 진술을 받았다. 즉 구명보트를 타고 있다가 어선들에 의해 구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백선장이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겠는가. ▲위도인근의 무인도에 은신해있거나 마을로 들어와 친척이나 친구들의 집에 머물 수 있다.어쨌든 현재로서는 백선장이 구조된뒤 다른 배를 이용,위도를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수사방향은. ▲백선장을 태웠다는 FRP낚싯배의 소재와 백선장의 친척들이 사는 위도면 벌금리등 연고지에 수사관을 파견했다.
  • 백 선장 등 살았나 죽었나/“살아있다”… 주민들 제보 잇따라

    ◎시체도 발견 안돼… 일부선 “낭설” 일축 침몰한 서해페리호 선장 백운두씨(56)와 갑판장 최연만씨(51)등 승무원 7명의 생사는 어찌되었나. 이번 사고로 78명이 숨졌으나 바다를 가장 잘 아는 백씨등은 사건발생 3일째인 12일까지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주민들 사이에서 「백씨가 살아있다」는 등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있다.이같은 소문은 사건이 발생한 10일 하오 구조에 나섰던 일부 주민과 선원들 사이에 여객선 선원들의 사체가 한구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구조작업에 나섰던 유진호선장 최문수씨(29)와 선원 박근문씨(29)등 3명이 11일 『사고가 난 10일 상오 11시40분쯤 감색제복 차림을 한 백선장이 왼손에 빨간 모자를 들고 10ⓣ급 낚싯배에서 내려 파장금 방파제에서 마을로 걸어가는 모습과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백선장이 현재 식도에 은거하고 있다는 제보도 나오고 있어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 구조된 사람 가운데 선원인 조씨(37)도 구조당시 겉옷을 모두 벗은채 팬티차림으로 헤엄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선장등도 사고당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있다. 그러나 백선장의 가족과 사고현장에 나갔던 종국호,일선호등의 선장과 선원들은 백선장 등 승무원들에 대한 이같은 소문은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고있다. 위도면 새마을지도자 이송죽씨(39)등 주민들도 『구조된 생존자와 시체들을 실은 배가 선착장과 방파제에 도착할 때마다 일일이 확인작업을 벌였다』면서 『어떻게 선장 백씨가 방파제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선장 등 승무원 7명 수배/경찰/없어진 구명보트 타고 도주 가능성

    ◎항해사 소환… 운항실태 등 조사 【부안=특별취재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원인을 수사하고있는 검·경합동수사본부(반장 이동기전주지검 부장검사)는 12일 서해훼리회사가 사고당시 규정을 어긴채 정원을 크게 초과해 승객을 태운데다 승객명부를 작성하지않고 항해사마저 탑승하지않은 사실을 밝혀내고 빠르면 13일중 유동식사장(72)을 소환,혐의사실에 대해 집중 추궁,사법처리하기로 했다. 합동수사본부는 또 군산해운항만청 당직 통신과 직원 강등호(27)·김주태씨(35)등 2명이 사고여객선이 출항신고를 하지않고 출항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지체없이 호출해 소재와 동정을 파악하지 않은 혐의사실도 밝혀내고 이들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합동수사본부는 사고당시 배에 타지 않았던 항해사 박만석씨(52)를 이날 서울에서 연행,그동안의 사고배 운행실태 등에 대해 조사했다.일부가 살아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해 공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수사본부는 사고여객선의 구명보트 5척 가운데 1척이 없어진 점을 중시,백운두선장(56)등 생존 승무원들이 타고 달아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합동수사본부는 특히 백선장등이 구조된뒤 어청도를 거쳐 15마일쯤 떨어진 공해상으로 달아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따라 백선장의 소재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또 백씨가 사고현장 인근 위도 야산에 은신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날 밤 경찰관 2백명을 동원,수색을 벌였다.
  • 낚싯배 선장이 44명 살렸다

    ◎“여객선 침몰” SOS 받고 출동… 종국호 이종훈씨/격랑속 표류자 정신없이 건져/손만 나온 넷 최후구조… 배 가라앉을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훼리호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접근,44명의 인명을 구해낸 종국호 선장 이종훈씨(42·위도면 진리 산2)는 지금도 「아비규환」의 당시 상황이 눈앞에 생생하다. 『이게 바로 생지옥이구나 싶더군요.주위를 둘러보니 살려달라고 허우적대는 사람,울부짖다 힘이 부쳐 끝내 물에 가라앉는 사람,어떻게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이씨는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던」수습현장을 다시 설명하려다 이내 눈물부터 쏟았다. 이씨가 사고소식을 들은 시각은 이날 상오 10시10분쯤.『서울 등지에서 온 낚시손님 11명을 태우고 위도에서 50ⓜ쯤 떨어진 방파제 뒤쪽에서 풍랑을 피해 낚시를 하다 배가 침몰한다는 무선을 받았어요』 이씨는 「손님」들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파도를 헤치며 바다 한가운데로 배를 몰았다.정신없이 달리다보니 1백ⓜ쯤 앞에 3∼4척의 구명보트에 20∼30명이 매달려 아우성치는 처참한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여객선의 뱃머리는 이미 물속에 모습을 감춘 뒤였다. 이씨는 「구조선을 보내달라」는 무선을 곰소무전본국에 치며 현장에 접근했다.「살려줘요」「여기요」라며 낚시용 아이스박스에 3∼4명씩 달라붙어 절규하는 사람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물에 가라앉는 사람도 눈에 들어왔고 이곳저곳 떠다니는 사체도 적지 않았다. 『배에 있는 밧줄을 바다에 던져 한사람 한사람 끌어올렸어요』 기운이 지쳐 보이는 사람부터 우선 구해냈다.『구조된 사람들은 겁을 먹은 탓인지 조타실로 기어들기도 하고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제 다리를 붙들고 「아버지가 저기 있어요.살려주세요」라며 울부짖었어요』 이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또다시 눈물을 떨구었다. 『집채만한 파도가 거푸 우리배를 덮치자 뱃머리가 기우뚱거리기 시작했어요』 이씨는 구조에 나선 사람들도 탈진하고 신음하는 40명의 생존자들로 배안이 가득찬 것을 보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뱃머리를 돌리다 손만 떠오른 4명을 발견,마지막으로 그들을 구조한뒤 포구로 향했다.주위를 보니 동료들의 작업배가 막 현장에 도착,사체를 거두고 있었다. 이씨는 이렇게 말을 마친뒤 『인양작업이 벌어지는 현장에 나가 보겠다』며 또다시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위도 주민들의 인간애/박홍기 사회부기자(현장)

    ◎이웃잃은 슬픔딛고 생존자 돌보기 “한마음” 『이럴때 일수록 우리가 마음을 다잡아야지요.숨진 우리 이웃도 이웃이지만 객지사람들을 돌보는데 더 신경써야지요』 흐르는 눈물을 흠칠줄도 모르고 10일 밤늦게까지 실려오는 생존자들을 돌보는 위도주민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성난 파도에 1백여명의 자식과 친지,친구들을 잃은 위도 주민들은 그 누구에게도 맡겨지거나 할당된 몫은 없었지만 「해야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일요일에다 날씨가 나빠 집에 있던 주민들은 이날 상오10시10분쯤 위도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포구로 뛰쳐나갔다. 동국호·일성호등 40여척의 마을배가 곧바로 검은파도를 맞으며 구조에 나섰고 나머지 주민들은 이들 구조선박이 도착할 때에 대비,재빠르게 각종 장비등을 모아 환자수송등에 대비했다. 구조된 생존자들은 18t급 어선 종국호(선장 이종훈·42)에 실려 파장금포구에 닿았다. 구조선이 들어오자 주민들은 배에 뛰어들어 생존자들을 가까운 「동굴식당」과 집등으로 옮겨 따뜻한 물로 씻겨주고 옷을 갈아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위급환자들에 대해서 보건의 유현씨(28)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인공호흡을 실시하고 응급처치를 해나갔다. 생존자는 주민들의 집으로 사체는 구 어민회관으로 옮겨졌다. 『저 놈의 파도는 삽시간에 숱한 생명을 빼앗고도 사그러들줄 몰랐습니다』인명구조작업을 끝내고 돌아올 답진호선장 정갑권씨(48)는 삽시간에 2백여명이 승선한 훼리호를 삼킨 파도를 원망하며 『좀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탄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조된 윤영원씨(39)는 『바다속에서 추위와 힘에 겨워 실신상태였으나 깨어나보니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고 울먹였다. 밤새 환자들을 돌보고 사체들을 정리한 주민들은 11일 아침이 되자 다시 침몰한 선체인양작업에 참여할 준비에 나섰다.흡사 잘짜여진 각본에 따라 연출되는 민방위훈련 같은 모습이었다.
  • 유조선 폭발… 선원3명 실종/말련근해서… 1만t급 일 선박 침몰

    【콸라룸푸르·싱가포르 AFP 로이터 연합】 말레이시아 동남쪽 남중국해상에서 25일 정오쯤 한국을 떠나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주로 가던 파나마 선적의 일본 유조선(1만2천1백t)이 폭발,선체가 동강나면서 한국인 선원 21명중 3명이 실종돼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 생존자가 밝혔다. 사고직후 구조돼 싱가포르의 한 병원에서 치료중인 김씨로만 알려진 이 생존자는 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는 타이헤요 해운 소속 알테어호가 사고를 일으킨후 선원들은 대부분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지나가던 컨테이너선인 조양 익스프레스호에 의해 구조됐으나 3명은 실종,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면서 몸이 갑판으로 내팽겨진 뒤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으나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겠다』면서 자신과 다른 부상자 1명이외에 구조된 선원들은 조양 익스프레스호에 있다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 해상구조조정센터(MRCC)의 한 대변인은 사고직후 승무원 18명은 두척의 컨테이너선에 구조됐으며 사고선박은 불길에 싸인채 기름을 유출시키며 강풍에 밀려 표류중이라고 밝혔다.
  • “사경 75일” 변영훈 끝내 숨져

    ◎촬영 헬기 추락 뇌사… 31세 짧은 삶 마감 지난6월14일 서울 잠실대교남단 한강변에서 영화 「여자위의 남자」를 촬영하던중 헬기추락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던 탤런트겸 영화배우 변영훈씨(사진·31)가 28일 낮 12시30분쯤 입원치료중이던 서울대병원에서 숨졌다.사고직후 성동구 방지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6월23일부터 서울대 내과중환자실로 옮겨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채 사경을 헤매던 변씨는 한때 약간 호전되는 기미를 보였으나 이날 낮 12시쯤 갑자기 혈압과 맥박이 떨어져 끝내 숨을 거두었다. 6명이 숨진 사고당시 40여분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변씨는 뇌사상태에서도 맥박수와 체온이 정상을 회복하는 등 희망적인 증세를 보이자 폐를 절개하고 수포를 빼내는 수술을 받아 주변사람들에게 회생의 희망을 안겨줬었다. 지난89년 KBS­TV 공채로 탤런트생활을 시작한 변씨는 MBC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서 인기대열에 뛰어들었고 사고당시 SBS의 「우리식구 열다섯」 「세상은 내게」등에서 열연,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족으로 두살난 아들이있으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공원묘지.발인은 30일 상오10시.
  • 매몰광원 1명만 극적구조/태백탄광 사고

    ◎91시간만에… 5명은 숨진채 발견/사망자 4천만∼5천만원씩 보상 【태백=정호성·조한종기자】 강원도 태백시 연화동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 지하 2천80m 막장에 갇혔던 광원 6명중 여종업씨(32·후산부)가 사고발생 91시간만인 17일 상오7시 구조작업반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으나 고인환씨(41·선산부)등 5명은 숨진채 발견됐다. 여씨는 장성병원에 후송돼 종합진단을 받은 결과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씨등은 지난 13일 낮 12시5분쯤 갱내 막장에서 채탄작업을 하던중 지하수가 터지면서 천장에서 죽탄이 쏟아지면서 출구가 막혀 갱속에 갇혔었다. 사고가 나자 광업소측은 50명의 광원으로 구조반을 편성,막혀버린 갱도를 파들어 갔으나 작업이 어려움을 겪자 14일 상오 1시부터 갱출구 반대쪽에서 28.5m의 우회관통 갱도를 뚫기 시작해 이날 상오 6시30분쯤 사고지점 2m까지 접근,천공기를 통해 여씨의 생존을 확인했다. 구조반은 30분뒤인 상오 7시 갱도를 관통,허기와 호흡곤란으로 탈진해있던 여씨를 구조했으며 주변에서 숨져있는 나머지 5명의 시체를 발견했다. 구조된 여씨는 갱내에서 1시간여동안 안정을 취한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여씨가 막장에서 버틴 91시간은 지난 67년 9월6일 충난 청양군 구봉광산에 갇혔다가 3백68시간여만에 구조된 양창선씨이후 가장 긴 시간이다. 한편 숨진 광원유족들에게는 법정 보상금으로 노동부 산재보험법에 따라 한사람당 4천만∼5천만원씩이 지급될것으로 보인다.통보광업소측은 유족들과의 합의에 따라 별도의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사망자는 다음과 같다. ▲서승구(43·태백시 동점동 산2) ▲고인환(41·연화동 6통1반) ▲송태구(41·〃 6통4반) ▲김완규(41·〃) ▲이병렬(38·연화동 7통3반).
  • 막장의 생과 사(외언내언)

    1967년 9월6일 청양 구봉광산에서는 인간의지의 승리가 드러매틱하게 연출되고 있었다.지하 1백25m의 갱속에 갇혔던 광원 양창선씨(당시 37세)가 15일8시간,정확히 3백68시간35분만에 구출되는 순간이었다.갱목과 흙더미에 묻힌채 양씨는 칠흑같은 갱속에서 갱목 껍질과 지하수로 연명하면서 그 긴 기간동안 사투를 벌였다.인간이 전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견딜수 있는 한계는 얼마나 될까.물도 안마시면 10일이내,물만 마시면 50∼60일까지도 버틴다는 게 의학계의 학설이다.시간이 지날수록 허기에 지친 양씨는 외부와 연결된 통화에서 『참기 어렵다.차라리 폭파해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생명에 대한 초인적 집념으로 기적같이 살아남아 구조되었다.매스컴과 온 국민들은 그를 「인간의지의 화신」,「초인」으로 영웅대접을 했다. 우리나라에는 광산사고가 잦아 해마다 많은 인명을 빼앗기고 있다.갱도가 무너지거나 가스폭발이 주원인이다.79년10월 문경 은성광업소 사고때는 갱내 화재로 42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를 기록했다.탄광의 경우 석탄 1백만t 생산당 사망근로자는 우리나라가 4.9명(91년),미국의 0.1명,독일의 0.2명 등에 비하면 25배,50배나 높은 수준이다.안전시설의 미비때문이라고 한다.안타까운 일이다. 6명의 광원이 매몰되어 구조작업을 벌였던 태백시 한보에너지 통보광업소 사고는 단 한사람의 생존자만 구출되고 나머지 5명은 시체로 발견되었다.나흘동안 밤낮없이 계속된 구조작업을 지켜보던 국민들과 가족들의 애타는 염원이 허무하게 무너진 느낌이다.그러나 유일한 생존자 여종업씨(32)의 극적 구출은 감동적이다.지하 6백m의 막장 깜깜한 어둠속에서 혼자 남은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오줌과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구조반이 도착하기까지 91시간을 버텨낸 것이다.『나는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계속 되뇌었다』라고 구조된 여씨는 말한다.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그를 살려낸것 같다.
  • 아시아나기 참사 해남 마산리의 7월 26일

    ◎“뒷산에 비행기 추락… 모두 나오시오”/산마을 인간애가 희생 줄였다/주민 3백여명 필사적 구조작전/빗속 진흙길 부상자 업고 줄달음/뒤늦게 온 유가족·구조대원엔 식사대접 『뒷산에 비행기가 떨어졌으니 동네사람들은 모두 낫과 삽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모이시오』 아시아나 여객기추락 직후인 26일 하오 5시30분.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이장 김석진씨(60)의 비상을 알리는 급박한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타고 온동네에 울려 퍼졌다.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삽과 톱등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달려왔으며 『우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김씨의 설명을 대충 듣고 운거산으로 내달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덤불을 연장으로 잘라 헤치며 해발 3백20m의 운거산 8부능선에 다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처참하게 산산조각난 비행기 잔해와 옷가지,짐꾸러미 등등.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가 옷가지를 찢어 상처를 싸매 지혈을 해주었고 비행기 잔해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힘센 장정들은 부상자들을 들쳐업고 산밑으로 뛰고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사고현장에서 정신없이 승객들을 보살폈다. 이렇게 하길 1시간쯤.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어느새 3백여명의 마천부락 주민들로 대규모 「인명구조단」이 자연스레 구성됐다. 아시아나항공 737편 보잉 737국내선 여객기 추락사고의 구조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결국 44명의 귀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끔찍한 대형참사속에서 여객기 추락사고치고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한 것이다. 사고 여객기 승객 김현식씨(21)가 하오 5시20분쯤 홀로 산밑으로 기어내려와 마을에 사고소식을 전한 뒤부터 군·경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 두시간동안 마천부락 주민들의 필사적인 희생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사고는 엄청나게 더 큰 재해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차례 폭우가 내린 뒤끝인데다 40도의 급경사인 산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기느라 주민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뒤범벅됐다. 이장 김씨는 김성수씨(23)등 청년 3∼4명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생존자들을 마을로 후송시켰고 나머지 주민들은 승객들의 안전벨트를 낫으로 끊어가며 생사를 확인했다.청년들이 생존자들을 등에 업고 막 산을 내려갈때 면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군용헬기가 계곡위에서 맴돌았다.헬기에서 구조로프와 카고네트가 내려왔고 주민들은 무게가 가벼운 어린이 4명을 우선 헬기로 올렸다.곧이어 또다른 헬기가 도착하자 주민들은 헬기에서 내려온 군인 1명의 도움을 받아 생존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로프에 묶기 시작했다. 『헬기에서 구조로프를 내렸을때 강한 바람으로 로프가 흔들리는 바람에 한사람을 묶는데만도 10분씩이 걸렸습니다』주민 천용진씨(45)는 온몸이 피로 물든 자신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박연규씨 등 동네주민들과 함께 8명의 생존자를 로프에 묶어 헬기로 올려 보냈다. 박씨는 『서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대할때 누구부터 구해야할지 괴로웠으나 어린이나 피를많이 흘린 중환자에게 먼저 손이 닿았다』면서 사고 신고가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은 생존자들을 확인하기위해 사고 현장인 고도 2백50m의 계곡을 중심으로 직경 1백여m안쪽의 숲과 나무를 헤치며 샅샅이 뒤졌다.다리가 부러진채 근처 숲에 쓰러져 있던 40대 승객은 『나는 괜찮으니 급한 환자부터 옮겨달라』고 애원해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고 당시 이곳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여객기가 추락할때 「꽝」하는 굉음을 천둥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고소식을 뒤늦게 알아 유가족들에게 죄를 진 것같다고 말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각 가정에 있는 밥솥 30여개를 총 동원,생존자와 뒤늦게 달려온 구조대원등 3백여명에게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또 화원면장 김한철씨(53)는 근처 방앗간에서 2백여명분의 주먹밥을 만들어 사고 현장에 긴급 운반하기도 했다. 『많은 희생자가 나 마음이 아프지만 구조된 생존자들만이라도 빨리 완쾌되길 바랄뿐입니다』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사고현장에 찾아와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전국부 임정용부장 최치봉기자 박성수〃 남기창〃 김수환〃 사회부 김재순〃 박찬구〃 사진부 김명환〃 남상인〃
  • 여객기 사고/어느 좌석이 안전할까

    ◎이번 참사선 뒷열 오른쪽 생존자 많아/이착륙시 뒷쪽보다 「프레스티지석」 유리/추락 유형따라 희비 교차… 「정설」 없어 항공기 추락사고가 일어났을때 좌석위치와 안전성과는 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아시아나 보잉737기 추락사고이후 많은 사람들이 좌석배치와 안전성과의 함수관계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비행기는 앞좌석이 고급이며 요금도 비싸다.반면 뒷좌석은 2등급으로 그만큼 싸다. 항공사 직원들은 이러한 좌석등급구분은 안전도보다는 서비스적인 측면이 고려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프레스티지 또는 퍼스트클래스로 불리는 앞좌석은 의자사이의 공간이 넓어 행동반경의 여유가 있는데다 앞부분에 위치한 승무원들로부터 봉사를 쉽게 받을수 있는 반면 이코노미클래스로 불리는 후미부분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이점이 적다는 것이다. 중간부분의 좌석도 엔진가까이에 있어 엔진소리로 시끄럽다는 점 때문에 이코노미클래스로 분류된다. 좌석구분에 있어 안전성이 고려된 측면은 비행기가 이륙시 앞부분부터 뜨고 착륙할때는 역으로 뒷부분부터 지상에 착륙,상대적으로 추락시의 충격을 떠받는다는 막연한 개연성이다. 앞좌석과 뒷좌석의 충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며 이로 인한 생존율의 차이는 얼마인지는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없다. 또 비행기사고가 반드시 이·착륙시에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어서 이러한 개연성은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사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탑승객 1백10명중 생존자는 40%인 44명.이중 좌석이 확인된 생존자 43명 가운데 후반부인 14∼24열에 앉아 있었다 기적적으로 구조된 탑승객은 모두 29명이며 전반부인 1∼12열(13열은 없음)에서의 생존자는 14명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수치를 확인된 전반부 탑승객 47명과 후반부 탑승객 57명을 기준으로 생존율을 보면 각각 30%,50%로 거의 20%포인트의 차이가 나고있다. 특히 앞좌석인 1∼3열에서의 생존자는 한명도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이번 사고의 경우 앞부분부터 먼저 땅에 부딪혀 앞좌석 승객들이 충격을 심하게 받아 사망률이 높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비행기사고의 안전성은 좌석배치보다는 그때그때의 사고유형에 많이 좌우된다는 것이 항공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박살난 기체… 곳곳 “살려달라” 비명/아시아나기 추락 참사의 현장

    ◎널린 파편속 시신 뒤엉켜 아수라장/구겨진 시트속 부상자 탈출 안간힘 「아수라장」「아비규환」­연옥이 바로 거기였고 지옥이 바로 그곳이었다. 순간간에 6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남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현장.박살난 기체의 잔해와 주검들이 널려있는 매봉산중턱엔 희생자들의 비명이 뒤엉켜 인재가 빚은 사고순간의 참혹상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사고소식이 알려지자 즉각 군부대와 경찰 인근주민등 구조반원이 현장에 달려가 생존자들을 옮겼으나 사고발생후 2시간 넘은데다가 사고장소까지 접근이 어려웠고 장마날씨로 어둠이 드리워 밤샘 구조 작업에 애를 먹기도 했다. ▷현장◁ 여객기가 추락한 마산리 매봉산 8부능선 사고현장에는 세조각난 비행기동체로부터 반지름 1백m까지 사체가 널려져 있고 『살려달라』는 생존자들의 아우성이 산속을 메워 추락현장의 참혹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사고현장에 처음 도착해 여자승무원을 헬기로 후송한 해남군청 직원 김명희씨(32)는 『현장주변 나뭇가지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체가 걸려있고어린이 부상자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고 전했다. 한국전력은 날이 어두워지자 구조작업을 돕기위해 현장에 전기가설을 했으며 주민 3백여명은 군병력 50여명과 함께 마을에서 현장까지 비상도로를 내는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한편 생존자 44명 대부분은 비행기 뒷좌석에 앉아있다.목숨을 건진 것으로 밝혀져 앞좌석 VIP승객들의 운명과는 대조적 이었다. ▷교통부◁ 황인성국무총리는 이날 하오 10시30분쯤 교통부 상황실에 들러 정종환항공국장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사고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시설 또는 운항등에 문제점이 발견될 경우 예산을 최대한 활용,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 ▷사고기◁ 미 보잉사가 지난 90년7월 제작한 쌍발제트기로 지난해 11월 2천7백만달러에 도입한 중고비행기이다. 이 여객기는 ▲무게 31.2t ▲최대 항속거리 5만1천95㎞ ▲최대 항속시간 6시간45분 ▲연료탑재량 3만5천5백83파운드 ▲전장 31m ▲폭 28.9m이며 탑승인원은 1백27명. 사고기는 아시아나 항공이 보유한 26대의 비행기중 가장 작은 기종으로 아시아나측에 모두 4대가 있다. ▷생존자 명단◁ ◆DB 편집자주:명단생략 KHM 9307272306참조 ◎동체 산중턱 받고 7백m 미끄러져 ▷발생◁ 이날 사고여객기는 운항이 비교적 순조로워 예정대로 하오3시15분 목포공항에 도착하는듯 했다.황인기기장은 도착예정시각쯤 관제탑과 교신을 통해 『강풍말고는 기상상태가 양호하다』는 착륙지시를 받고 3시24분쯤 1차착륙을 시도했다.그러나 초속 18m이상의 강풍과 짙은 비구름으로 착륙은 불가능,실패였다. 여객기는 28분쯤 2차착륙도 실패한뒤 3시38분 『다시 연락하겠다”는 교신을 끝으로 통신이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사고여객기는 목포상공을 벗어나 해남쪽으로 기수를 돌린뒤 3시41분쯤 레이더망에서조차 자취를 감췄고 잠시뒤 비구름에 가린 매봉산 중턱 「절골」에 기체 앞부분이 부딪치면서 추락,7백m남짓 미끄러져 기체는 세동강이 났다. ◎가족들 문의전화 빗발/주민·공무원 헌혈행렬 ▷병원◁ 사고현장에서 경찰과 군·공무원·주민들에 의해 구조된 부상자들은 해남병원과 해남우석병원·목포한국병원·목포기독병원등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부상자들의 얼굴과 다리등은 피로 뒤범벅이 돼 사고당시 처참했던 모습을 실감케 했다.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이들 병원에는 탑승자 가족들의 생존여부를 묻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병원주변에는 마을주민들이 몰려들어 환자들의 쾌유를 빌기도.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후송된뒤 응급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다음 입원실로 옮겨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병원측은 수술하는데 필요한 혈액이 크게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사고기기장◁ 서울 서초구 방배동 328의2 황인기기장집에는 황씨의 부인(44)과 맏딸 효정양(19),효석군(16)이 문을 굳게 잠근채 일체 외부인과의 접촉을 끊고있다. 황씨의 부인은 남편의 사고소식을 하오6시쯤에야 TV뉴스를 보고 안뒤 실신,자식들의 간호를 받고있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장 황씨는 공군소령출신으로 지난 88년7월1일 아시아나항공에 입사,비행8천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가족주변◁ 박태환 부기장(40)의 집인 서울 은평구 신사동 140의 미성아파트 3동 1505호에는 가족및 동료들이 뜻밖의 비보에 모두 침통한 모습.박부기장의 부인 김은자씨(39)는 남편의 소식을 듣고 실신해 쓰러졌으며 친척과 동료승무원들은 취재진이 방문하자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며 문을 굳게 걸어 잠근채 안에서 통곡하거나 눈물을 삼키기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