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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침몰 이후] 오바마-이대통령 20분간 통화

    [천안함 침몰 이후] 오바마-이대통령 20분간 통화

    버락 오바마(얼굴 왼쪽) 미국 대통령이 1일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 조사를 돕겠다.”고 이명박(오른쪽) 대통령에게 밝혔다. 이 대통령과 가진 전화통화에서다. 두 정상의 전화통화는 미국 측의 요청으로 오전 7시10분부터 20분간 이뤄졌다. 두 정상은 천안함 사고와 이달 중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협력방안을 주로 논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천안함 사고 소식을 들었다. 진심으로 위로 드리고 싶다.”면서 “이 대통령과 한국정부가 실종자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고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미국이 구축함과 구조대를 보내줘 고맙다. 나도 지난달 30일 백령도에서 미국 구조대원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려울 때 우리(미국) 해군함이 한국함과 함께 작업을 해 나가는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고 원인 조사와 관련,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확실한 결론을 내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인 분석 과정에서) 필요할 때 꼭 도움이 되고 싶다.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다. 말씀해 달라.”면서 전문가 지원을 포함한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또 수색작업을 하다 숨진 한주호 준위의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부상한 승조원들도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희망한다.”고 위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만간 (미 핵전력 운용 방향을 제시하는) 핵태세 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NPR)를 하원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NPR 채택 때문에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 억지력(핵우산) 제공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중요한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화답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특사자격으로 최근 외국을 다녀온 한나라당 박희태, 김학송, 김정훈 의원 등과 청와대에서 오찬하면서 “(천안함 침몰과 관련) 북한이 관련됐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우리가 북한 쪽이라고 한다면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데 자칫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군 당국은) 절대 있는 그대로 보고하고 발표해야 한다. 군에 그렇게 지시했다.”면서 “언론에 자꾸 추측성 보도가 나오는데 참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수 주현진기자 sskim@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첨단시대에 아날로그식 구조?

    “우주선도 구하러 가는 첨단 시대에….” 1일로 천안함이 침몰한 지 7일째가 됐지만 실종자 구조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구조 소식에 지친 사람들의 분통 섞인 불만과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다.첨단 기계는 고사하고 물 속에서 손으로 일일이 더듬어 가면서 진입로를 확보해 가는 수준이다. 그야말로 아날로그식에도 못 미치는 원초적 구조 방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마저도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해군 수중폭파팀(UDT) 대원들의 투혼 덕분이라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SSU 전문가인 송무진 해군 중령은 “물살이 빠른 사리가 겹쳐 조류가 심하고 물 속 부유물들도 많이 떠다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수심이 45m나 되는 함미(艦尾) 부분의 경우 수압이 5기압쯤인데 이는 엄지 손가락 하나에만 10㎏짜리 아령을 올려 놓고 작업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송 중령은 “일부에서 ‘청해진함에 있는 심해잠수구조정(DSRV)을 이용하면 되지 않으냐.’고 하지만 DSRV는 물 흐름이 2노트(시속3.7㎞) 이하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면서 “현재 물 흐름이 5노트(시속 9.2㎞)쯤인데 이 정도면 DSRV는 떠내려가 버린다.”고 말했다. 해군 준장인 이기식 합참 정보작전처장도 “DSRV는 잠수함만 구조가 가능하다.”면서 “DSRV와 사고 잠수함 해치를 꼭 맞춰 승조원을 구조하는 방식이어서 침몰 수상함 구조에는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송 중령은 “1998년 북한 반잠수정이 150m 심해에 침몰했을 때도 우리 해군 요원들이 작업해 인양할 수 있었는데 당시 일본이 깜짝 놀라 합동 구조 훈련을 제안해 왔을 정도로 해난 구조 분야에서는 우리 해군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천안함 구조를 위해 지원된 미국 해군의 구조함인 살보함 잠수사들도 기상 악조건과 침몰 선체에 남아 있을 함포, 폭뢰 등 무기의 폭발 위험성 때문에 잠수에 손사래를 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익사한 동생 생각하면 이대로 떠나기가…”

    “물에 빠져 죽은 남동생을 생각하니 이대로 바다를 떠나는 게 가슴이 미어집니다.” 1일 오후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서 만난 한국구조연합회 정동남(60) 회장은 천안함 침몰 해역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정 회장 등 30여명의 민간 잠수사들은 천안함 침몰 직후 이 곳을 찾아 5일째 시커먼 바닷속 함미 부분에 갇힌 실종 승조원 구조 작업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최악의 기상조건 등으로 구조 활동의 폭을 넓히지 못해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한강에서 익사한 남동생 생각에 실종 승조원들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남동생은 1969년 한남대교 밑 한강에서 수영을 하다 변을 당했다. 당시의 아픈 기억으로 정 회장은 물에 빠진 사람은 무조건 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민간 구조에 나서게 됐다. 정 회장은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구조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뭍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운 것은 민간 구조대원 황민선(49·인천지역대장)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천안함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전국에 있는 구조연합회 소속 전문 다이버들을 모아 백령도로 왔다. 옹진군에서 구조용으로 제공한 어업지도선도 황 대장이 발로 뛴 결과였다. 황씨는 “20년 전 대형 트럭에 깔려 2년간 왼쪽 전신이 마비됐지만 주변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면서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뒤 ‘일 년에 10명씩 목숨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민영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시민·누리꾼 애도 쇄도

    낮은 수온, 빠른 조류, 시계 제로 등 백령도 근해의 악조건 속에서도 연일 목숨을 걸고 실종자 수색과 구족작업을 펼치는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팀(UDT)과 해난구조대(SSU)에 31일 시민과 누리꾼의 격려와 성원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전날 구조작업 중 목숨을 잃은 UDT 대원 고(故) 한주호 준위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진정한 영웅’‘마지막 군인’이라며 고인의 용기와 군인정신을 기리는 글을 쏟아내고 있다. 시민들은 한 준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구조대원들이 사력을 다해 실종 장병을 한 명이라도 더 찾아달라고 염원했다. 회사원 권재욱(34)씨는 “더는 희생 없이 좋은 소식을 들려주길 바란다. 당신들은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릴 영웅들”이라고 말했다. 박유남(31)씨는 “UDT와 SSU 대원들의 구조 활동 자체가 감동적”이라면서 “부디 실종자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정인호(51)씨는 “한 준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실종자들의 생사를 빨리 확인해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 동료들의 애도 목소리도 이틀째 이어졌다. 현역 군인 조영찬(55)씨는 “아들 같은 장병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구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 아닌가. 장하고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군에서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선후배 장병들의 글들도 눈길을 끈다. 아이디 ‘후지하라’는 “군 생활을 하던 중 ‘고라니’라는 별명도 지어주시고 특별히 예뻐해 주신 분이라 한 준위님의 순직 소식이 더욱 가슴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한 준위의 추모 서명란에는 이날 자정까지 4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헌화하며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천안함 침몰 이후] 故 한 준위 소속 UDT는

    [천안함 침몰 이후] 故 한 준위 소속 UDT는

    “해군 수중폭파팀(UDT) 요원들은 심해잠수 자격이 없는 전투요원들인데도 명예와 사기로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전문가인 송무진 중령은 31일 침몰된 천안함 구조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 등 UDT 요원들의 희생정신에 이같이 경의를 표했다. 빠른 물흐름, 차디찬 바닷물, 한계를 뛰어넘는 수압에 맞서 세계 최고 수준의 대(對) 테러 전문가들인 UDT 요원들이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승조원들을 찾기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UDT는 해상·육상·공중 어디서나 임무수행이 가능한 전천후 부대다. UDT는 수중파괴임무, 육·해·공 전천후 타격임무(SEAL), 폭발물 처리(EOD), 해상 대테러임무 등을 전문으로 한다. 해군은 구조 분야는 SSU, 폭발 및 대테러 분야는 UDT로 특화시켜놓고 있다. UDT는 6·25 전쟁 때 미군 UDT의 활약상을 본받아 창설됐다. 전쟁 당시 해상공작대와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한국 해상특수공작대를 거쳐 1954년 6월 한국함대 상륙지원대 수중파괴대로 독립했다. 해병이나 육군 특수전사령부 요원 보다 세다는 UDT 요원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태어난다. 지옥훈련으로 불리는 24주간의 1단계 기초체력 배양 과정을 거쳐야 본격적인 잠수, 폭파·정찰, 특전 전술 등 전문 훈련을 받을 수 있다. 1단계 과정은 수영과 스킨스쿠버, 폭파, 대테러뿐 아니라 극기주 훈련도 포함돼 있다. 극기주 훈련은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능력을 시험하는 과정이다. 1주일에 걸친 훈련기간중 단 한시간도 잠을 재우지 않는다. 워낙 혹독한 훈련이다보니 체력이나 담력에서 자신있는 지원자 가운데 40%쯤만 통과한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해군 UDT는 각종 수색작전과 대형 해난 사고 현장을 누비며 구조활동을 펼쳐왔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침몰한 참수리 357호 인양 때 폭발 가능성이 컸던 함수의 수류탄 박스도 UDT가 처리했다. 1996년과 1998년 동해안에 북한의 잠수정이 출현했을 때도 수중침투를 통해 해상 대테러팀 요원들이 최초로 잠수정에 진입했었다. UDT는 베트남·아프간·이라크전 등을 거치면서 세계 최강이라는 명성을 쌓아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천안함 침몰 이후] “한명의 실종자라도 더 살리겠다”

    31일 오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의 천안함 함미 수색해역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초속 8∼12m의 거센 비바람, 파고 2.5m, 최대 유속 3.5노트(시속 6.5㎞), 수온 4도 등 악조건이 겹쳤다. 실종 승조원 가족들의 염원을 짊어진 잠수사들은 당장이라도 물속에 뛰어들고 싶지만 악천후가 이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구조대 지휘부인 성인봉함에 대기 중인 해난구조대(SSU)와 해군 수중폭파팀(UDT) 소속 잠수사 100여명은 바다만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구조대 관계자는 “기상 상황과 잠수 여건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며 먼 하늘만 쳐다봤다. 전날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악몽에다 잠수사들의 실신이 잇따르면서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다른 잠수사는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한 명의 실종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겠다.”고 다짐했다.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는 민간구조대들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구조연합회 등 민간 잠수사들은 이날 오전 어선을 타고 구조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파도가 높아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소방방재청 소속 119심해특수구조대 관계자는 “기상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애를 태웠다. 백령도 사고 현장 인근 장촌포구에는 해병대 수색중대와 고무보트(IBS)팀이 실종자들의 물품을 찾기 위해 해안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한 해병대 구조대원은 “파손된 함대 등 천안함 일부분이 떠내려올 수 있어 수색 중”이라면서 “기상상황이 나아지면 즉각 출동해 실종자 수색 및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영 윤샘이나기자 min@seoul.co.kr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설] ‘UDT 전설’ 한주호 준위의 고귀한 희생

    그제 천안함 실종 장병들의 구조에 나섰던 해군 특수전여단(UDT) 소속 한주호(53) 준위가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35년간 군생활을 하는 동안 군인정신의 전범(典範)이자 ‘UDT의 전설’로 불리던 그였기에 온 국민은 그의 고귀한 희생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한 준위의 추모란에는 수천명이 헌화하며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더구나 전역을 2년 앞두고 구조대의 선봉에서 솔선수범하다가 순직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고인은 1975년 하사 임관 후 UDT에서 특수임무만 수행한 해군 용사 중의 용사다. UDT 교관으로 수많은 후배를 길러냈고 해군 특수전 고급과정에서는 1등을 차지한 인재(人材)다. 그래서 그를 잃은 게 더욱 슬프고 아깝다. 구조대에 참여하면서 그는 “조국과 해군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며 잠수복을 챙겼다고 한다. 주위에서 나이와 체력을 걱정해서 극구 말렸지만 그는 “아들 같은 후배들이 어두운 바닷속에 있다.”며 이를 뿌리쳤다고 한다.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구조활동을 벌이다가 그만 자신의 생명은 돌보지 못한 것이다. 바닷속은 잘 훈련된 젊은 구조대원조차 견디기 힘들 만큼 차갑고 캄캄하며 수압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50대의 한 준위에겐 오직 후배들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는 사실 심해잠수 및 구조대에 적합하지 않은 전투요원인데 임무의 한계를 뛰어넘어 악전고투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한 준위의 군인정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 실종 장병 구조에 반드시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
  • 무심한 하늘…선체진입 눈앞인데

    무심한 하늘…선체진입 눈앞인데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천안함 실종자에 대한 수색이 기상악화에 물살이 빨라지는 ‘사리’까지 겹쳐 난항을 겪고 있다. 군(軍)은 이번 주말 2200t급 해상크레인이 현장에 도착하면 실종자 구조와 선체 인양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군은 31일 오전 3시부터 실종자를 찾기 위해 해난구조대(SSU)를 비롯한 특수부대 잠수요원들을 동원, 수색을 재개하려 했으나 빠른 물흐름과 높은 파고, 기상악화로 수중작업을 하지 못한 채 오후 9시30분쯤 수색을 종료했다. 백령도 구조활동 지역에는 비가 내렸고, 바람은 서풍이 초속 8~12m, 유속은 5.6노트(시속 10.3㎞)로 상당히 빨랐다. 잠수요원들은 물의 흐름이 느려지는 1일 새벽 3시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지만 수중작업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합동참모본부는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 함수(艦首·뱃머리)와 함미(艦尾·배꼬리)의 절단된 면에 30일 밤 각각 1개씩 문을 확보, 새벽 선체 진입을 시도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내리는 등 기상이 갑자기 나빠져 구조함인 광양함에서 대기만 했을 뿐 수중작업에 나서지 못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지 여건이 좋지 않아 (수색작업에) 진전이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른 시간 내에 (사고) 원인 규명과 생존자 구출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잠수사들이 작업하기 가장 힘들다는 기상조건에다 30일부터 시작된 ‘사리’가 이번 주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실종자 수색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합참 관계자는 “기상 상태가 너무 좋지 않고 물살도 더 빨라져 구조대원들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 광양함에서 대기토록 했다.”면서 “수중 작업이 가능한 때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천안함 함수 부분에서 실종자 탐색 작업을 하던 해군 수중폭파팀(UDT) 한주호(53) 준위가 순직하는 등 사고가 발생한 데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기상악화가 갈길 바쁜 구조 작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기식 정보작전처장은 브리핑에서 “기상 상태와 물흐름이 호전된다면 함미 쪽 문을 통해 선내 진입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처장은 “문이 열렸다고 해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통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사고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 이번 주에 백령도 사고현장으로 파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천안함 침몰 이후] 美 “北개입 근거없다→규명할길 없다” 미묘한 변화

    [천안함 침몰 이후] 美 “北개입 근거없다→규명할길 없다” 미묘한 변화

    미국은 왜 천안함 침몰과 관련, 북한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냉정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일까. 미국은 사고 직후인 지난 26일(현지시간)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 담당 차관보가 “그것(북한 개입설)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이후 줄곧 몸을 사리는 자세를 보여왔다. 29일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제3자가 개입했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고도 했다. 세계 최고의 감청·통신 체계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이런 입장은 북한 개입 의혹을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건의 베일이 조금씩이나마 벗겨지면서 미국의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형 잠수정이 몰래 잠입할 경우 제아무리 미군이라 하더라도 100% 잡아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미국이 처음부터 조금은 단정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마치 ‘북한의 개입이 사실이 아니었으면’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31일 “미국 입장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소극적으로 비쳐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북관계에서 현상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힘겨운 전쟁을 하는 와중에 한반도를 굳이 정정 불안지역으로 몰고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북한의 도발로 피해를 입은 한국이 보복조치를 취하려 할 때마다 주저앉힌 적이 많았다. 1967년 우리 해군의 당포함이 북한의 해안포 공격으로 침몰해 39명이 전사했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에 응분의 군사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듬해 터진 1·21 사태와 1983년 아웅산 폭파 사건 때도 한국은 대북 보복을 주장했지만 미국은 수용하지 않았다. 멀게는 6·25 직후 미군이 북방한계선(NLL)을 그은 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北進)을 막기 위해서였다. 구조대원들의 선체 수색 결과 등으로 외부 공격설에 점차 무게가 실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30일부터 미국의 입장이 다소 후퇴하는 듯한 발언이 감지되고 있다. 제프 모렐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의 기뢰 폭발 여부와 관련, ‘근거가 없다.’는 대답 대신 “배가 바닷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그것을 규명할 길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선체탐색은 70~80% 완료… 진입 굉장히 힘들다”

    [천안함 침몰 이후] “선체탐색은 70~80% 완료… 진입 굉장히 힘들다”

    해난구조대(SSU) 전문장교인 송무진 중령은 30일 초계함 함미(艦尾)에 대한 구조작업과 관련, “침몰 선체 탐색 작업은 70~80% 완료됐으나 선체 진입 작업이 굉장히 힘들다.”고 밝혔다. 평택함 구조부장을 지낸 송 중령은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브리핑을 통해 “서해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조류가 빨라 구조작업이 다른 곳과 많이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구조작업 해역의 조류가 3~4노트에 이른다. 이는 태풍이 부는 빌딩 위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면서 “수중은 대기보다 14배의 저항이 있는 만큼 인도색(잠수용 밧줄)을 통해 이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송 중령은 이어 “구조작업 단계는 ‘선체탐색→공기 주입→출입구 확보→생존자 확인’으로, 1단계인 선체탐색은 70~80% 완료됐다.”고 밝혔다. 송 중령은 “선체내 밀폐된 공간에는 공기를 집어넣을 수 없지만 노출된 부분에는 공기가 들어갈 수 있다.”면서 “기관실 내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입구 확보 작업에 대해 “함미 선체가 옆으로 누워 있고, 물속에서 손전등으로 비춰도 시계는 30㎝에 불과하다.”면서 “생명줄과 로프로 묶어 가까운 길로 들어간다고 해도 함미 기관부까지는 격실문 서너 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 중령은 잠수사의 작업 여건과 관련, “심해 잠수를 하려면 우주복 같은 복장을 갖춘 헬멧 잠수를 해야 하지만 이를 준비하는 데 사나흘이 소요된다.”면서 “현재 안전규정을 어기고 스쿠버 잠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잠수시간도 10분 이상 했을 때 자가치료 개념인 감압 과정을 거치면서 해상으로 올라와야 한다.”면서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을 감안해도 최대 15분 잠수에 작업시간은 7~8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버스 낭떠러지 추락 6명 사망

    버스 낭떠러지 추락 6명 사망

    강원 삼척에서 시외버스가 낭떠러지로 추락해 승객 등 6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30일 오전 10시 48분쯤 삼척 원덕읍 월천리 ‘갈령재’ 인근 7번 국도에서 강원여객 소속 시외버스(운전자 안모씨·50)가 중앙분리대와 도로 오른쪽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8m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버스 운전자와 승객 김모(38)씨 등 6명이 숨지고 이모(57·여), 러시아인 M(38·여) 씨 등 13명이 크게 다쳐 119구조대 등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버스에는 운전자와 승객 등 19명이 타고 있었고, 경북 울진에서 삼척으로 가던 중 편도 2차로 내리막 구간에서 사고가 났다. 사고 당시 시외버스는 도로 오른쪽으로 추락한 뒤 50m 가량을 굴러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승객들이 버스 밖으로 튕겨져나가 버스에 깔려 인명피해가 컸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사고버스가 중앙분리대와 가드레일을 잇달아 들이받고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삼척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사고 현장 사진 보러가기
  • [천안함 침몰 이후] “후배 구하러 간다고 전화 끊자더니…” 부인 오열

    [천안함 침몰 이후] “후배 구하러 간다고 전화 끊자더니…” 부인 오열

    “아이고 여보, 내 남편 내남편, 내일 전화하자더니…” 30일 천안함 실종 승조원 구조작업 중 순직한 고(故) 한주호(53) 준위의 시신이 안치된 성남 국군병원. 비보를 듣고 진해에서 급히 올라온 부인 김말순(56)씨는 믿음직스러웠던 남편을 애타게 찾으며 밤새 오열했다. 빈소에 먼저 도착한 아들 한상기 중위.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한 중위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는 “아버지께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굳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셔서 조심하시라고 했는데….”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 준위 동료들도 밤새 흐느끼는 바람에 빈소는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진해 집에서 남편의 순직 소식을 접한 김씨는 전화통화에서 “어제 남편과 두 차례 전화통화를 했으며 ‘배에 들어가는데 바쁘니까 내일 전화하겠다.’고 한 뒤 오늘은 전화가 없었다.”고 말한 뒤 군에서 마련해준 헬기 편으로 급히 올라왔다.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차디찬 바닷 속을 수없이 오르내리던 해군 수중폭파팀(UDT) 한준호 준위. 그는 망망대해 아래 후배들을 찾겠다고 나선 선배는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됐다. 한 준위는 해군 수중폭파팀(UDT) 중에서도 최고요원으로 꼽혔다. 그는 지난 1975년 해군에 입대해 35년간 잠수 요원으로 활약했다. 국무총리 표창과 국방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던 해군 최고의 베테랑 수중파괴전문가다. 가장 나이 많은 선배로 해군 최초의 해외 파병부대인 청해부대 대원으로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도 다녀왔다. 그는 지난 28일 이번 실종자 수색작업에 가장 먼저 참여했다. 선배로서의 솔선수범이었다. 오는 9월 전역 전 직업보도교육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군 생활은 길어야 2년밖에 남지 않은 그였다. 하지만 젊은 후배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먼저 나섰다. 50대의 나이에도 젊은 대원들과 함께 수색작업에 뛰어들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5일째인 이날 오후 지친 몸을 또다시 바닷속으로 던졌다. 오후 3시쯤 함께 수색에 투입된 조원이 의식불명 상태인 한 준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곧바로 미 해군 구조함으로 옮겼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한 준위의 시신은 저녁 7시40분쯤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로 이동된 고인은 군의관으로부터 공식 사망 판정을 받은 뒤 8시10분쯤 장례식장으로 운구됐다. 한 준위는 미 해병단기과정을 수료했고 해군 수중파괴대(UDT전신) 소대장을 지냈다. 이후 특수전여단 대테러담당, 폭발물처리대 중대장, UDT 및 해군 해난구조대(SEAL) 소대장을 지냈다. 말 그대로 UDT의 산 증인이다. 한 준위는 청해부대 파병 전 한 인터뷰에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파병을 지원한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들 말대로 군 생활을 편하게 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씨와 아들, 대학생 딸을 두고 있다. 윤상돈 오이석·진해 강원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천안함 침몰 이후] 심해용 헬멧에 연결된 ‘생명줄’로 호흡·통신

    [천안함 침몰 이후] 심해용 헬멧에 연결된 ‘생명줄’로 호흡·통신

    46명의 실종자를 찾고 있는 해난구조대원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잠수방법에 따라 나뉜다. 일반인들도 하는 스킨스쿠버와 전문가들만 하는 심해잠수다. 기본적인 스킨스쿠버 방법에 사용되는 장비는 단순하다. 한 사람이 5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공기통 1개와 수경, 오리발, 잠수복, 고강도 랜턴, 마우스피스, 그리고 물속에서 움직임을 유지시켜 주는 납으로 만들어진 허리 벨트다. 이 가운데 잠수복은 온도가 낮은 물속에서 장시간 버틸 수 있도록 체온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고강도 랜턴은 웬만한 물 속에서 10m까지 도달하는 수중 전용 랜턴이다. 하지만 백령도 사고 해역은 갯벌 지역으로 부유물이 많아 현재 고강도 랜턴을 사용해도 30㎝ 정도밖에 시야 확보가 되지 않고 있다고 해군 관계자는 전했다. 심해잠수에는 더욱 복잡한 장비가 사용된다. 스킨스쿠버용 잠수복이 저체온증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심해잠수복은 헬멧과 연결돼 일체형으로 이뤄진다. 심해의 수압에서 잠수사의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헬멧에는 작업을 지원하는 배와 통신을 할 수 있는 장비가 부착돼 있다. 실시간으로 바닷속 상황과 수면 위 상황에 대해 교신이 가능하다. 특히 헬멧에는 이른바 ‘생명줄’이 연결돼 있다. 생명줄은 잠수사가 타고 온 배의 공기압축 탱크와 연결돼 깊은 바다에서도 원활히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함께 잠수사들은 비상 기체 실린더를 갖고 바다로 내려간다. 이 실린더에는 압축 공기가 들어 있으며 29일 구조대원들이 함미에 주입한 공기는 이 실린더를 함미 깨진 틈에 부착해 넣은 것이다. 이 실린더에 들어 있는 공기의 양은 한 사람이 5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또 선체와 선내 촬영을 위해 고성능 수중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현재 사고해역 일대의 시계는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있다. 해난구조대는 이번에 100m 이상 포화잠수를 하는 잠수사들이 사용하는 챔버(DDC)를 사용하고 있다. 챔버는 감압장치로 수심이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올 경우 고압력 상태에서 갑자기 저압력 상태로 전환되면서 생기는 공기색전증(塞栓症), 관절통, 근육통, 운동지각장애 등 잠수병을 막기 위한 것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한명이라도… 목숨건 구조중 UDT 1명 숨져

    군(軍)은 30일 천안함 실종자를 찾기 위해 해난구조대(SSU) 등 민·관 합동 구조대를 동원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수중에서 탐색 작업을 하던 해군 수중폭파팀(UDT) 요원 한주호(53) 준위가 의식을 잃고 숨졌다. 합참은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 함수(艦首·뱃머리) 부분의 함장실에 외부로 밧줄을 연결하는 작업을 마쳤지만, 물 흐름이 빨라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밤 10시25분까지 수색했지만 실종자를 찾는 데 진전은 없었다. 구조대는 오후 3시20분쯤 전날에 이어 함미 복도로 연결된 문틈을 통해 공기통 2개 분량의 공기를 주입했다. 해군 관계자는 “구조작업에 적당한 ‘정조’(停潮·조류의 흐름이 약해지는 때) 시간을 전후해 유속 등을 지켜보며 계속 수색했지만 실종자를 찾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물살이 가장 빠른 ‘사리’가 이날부터 다음달 2일까지 계속돼 실종자 수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함수 쪽 탐색 작업을 맡았던 한 준위는 작업 40분 남짓 만인 오후 3시20분쯤 저체온증과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어 응급의료장비가 갖춰진 미군 구조함 살보함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3도 안팎의 차가운 물 속에서 한계시간을 넘겨 구조작업을 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 준위의 순직을 보고받고 “유감스럽다.”면서 “실종자 구출도 중요하지만 안전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이동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빠른 조치가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 더욱 안전에 유의하면서 실종자 구조 작업을 펼쳐달라.”고 당부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경기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엄수된다. 군은 천안함 침몰 닷새째를 맞아 해저에 가라앉은 함미(艦尾·배꼬리)와 함수에 생존해 있을지 모를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선체 진입과 선내 수색에 힘을 쏟았다. 생존자들의 최대 생존 한계시간으로 상정된 ‘69시간’이 전날 오후 6시30분으로 지나버렸지만, 구조작업은 계속됐다. SSU와 UDT, 특전사 요원 170여명은 함수와 함미로 나뉘어 선체 접근을 시도했다. 이들은 구조작업이 더디자 유속이 빠른 시간대에도 수색을 계속했다. 백령도 인근 침몰 현장에서 동남쪽으로 6.4㎞ 떨어진 해저에서 함수 선체의 진입로를 확보한 게 가장 큰 성과였다. UDT 요원들이 수심 20m 아래에 있는 함수의 함장실 출입구를 열고 외부와 닿는 ‘밧줄(와이어)’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진입로가 확보되자 이들은 조를 나눠, 한 조가 잠수해 5~7분 동안 출입구 안쪽을 탐색하며 밧줄을 걸어 진척상황을 표시하면 다음 조가 이어받아 작업을 진행하는 식으로 생존자를 찾았다. 하지만 열악한 시계(視界)와 낮은 수온, 5.3노트(시속 9.8㎞)의 빠른 물 흐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실종자들이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함미는 함수 쪽보다 구조 작업이 더 힘들었다. 군은 새벽 2시부터 함미가 있는 지점에 고무보트로 접근했지만, 시계 불량과 빠른 유속으로 구조 작업이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SSU 잠수사들이 오전 7시40분부터 100분 남짓 함미 선체에 접근해 진입로 확보를 시도했다. 하지만 조명등을 비추고도 30㎝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흐려 어려움이 따랐다. 함미 선체가 왼쪽으로 90도 기울어져 있어 내부 복도가 갯벌로 막혀 있는 데다, 폭발 충격으로 격실문이 뒤틀어져 진입을 가로막았다. 군은 선체의 벌어진 틈 사이로 산소를 주입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홍성규 오이석기자 cool@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사진] 살신성인 故한주호 준위
  • [천안함 침몰 이후] ‘한계 69시간’ 뒤 또 하루… 그래도 기적은 남았다

    [천안함 침몰 이후] ‘한계 69시간’ 뒤 또 하루… 그래도 기적은 남았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침몰한 천안함에 남아 있을 장병들의 생존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이 생존 한계시간으로 추정한 69시간을 꼬박 하루나 넘긴 30일까지도 실종된 46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무엇보다 부족한 산소량과 차가운 수온이 생존의 저해요소로 지목된다. 일부 전문가는 전날 함수·함미 부분 선체를 망치로 두들겼지만 응답이 없는 것도 생사 여부를 불투명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한 민간 해난 구조 전문가는 “산소가 남아 있더라도 사고일로부터 5일이나 경과된 시점이라면 거의 소진됐을 가능성이 높고, 수중의 차가운 바닷물이 격실에 유입됐다면 젖은 옷이 체온을 떨어뜨려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격실 안에 생존자가 있다면 밀도가 높은 수중에서 외부 충격 음파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폭발 당시 폭음에 의해 병사들의 신체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군 출신 구조 전문가는 “함체를 두동강 내버릴 정도의 폭발이라면 밀폐된 격실에 있는 승조원의 뇌 등에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이 전달될 수 있다.”고 말했다. 5일간이나 음식뿐 아니라 식수 섭취가 차단된 점도 생존의 장애요소로 지적된다. 반면 이 같은 폭음이 귀를 먹먹하게 해서 망치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왔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전우회 관계자는 “폭음으로 인해 고막이 손상됐거나, 격벽으로 둘러싸인 격실안에 머물러 있다면 생존해 있더라도 선체를 두들기는 망치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꽉 막힌 격실 안에 공기가 있다면 수심 40m쯤의 해저에서도 수압으로 인한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서 “더구나 침수량이 적다면 격실 안에 있을 수 있는 옷가지 등으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진다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뿐 아니라 현재 구조 현장에 투입된 해난 구조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있는 정성을 봐서라도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SU 전문장교인 송무진 중령은 “우리 SSU의 해난구조 전력은 세계 6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우수하다.”면서 “수심 150m에 침몰된 북한 잠수함도 우리 SSU가 구조 작업을 벌였고, 이번에도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구조 막는 4대 악조건

    ‘수온 3.5도, 조류 시속 5.3노트(9.81㎞), 시계 제로, 수심 40~45m, 사리.’ 30일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과 민간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펼치는 사고 해역(인천 옹진군 백령도 서남쪽 1.8㎞)의 기상 및 해저 상황이다. 해저 전문가들은 “최악의 ‘4종 세트’가 종합적으로 펼쳐져 수색작업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얼음 수온 대한수중협회 스쿠버 전문강사인 조동혁(해병대 출신)씨는 “지금 서해는 ‘육풍’(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이 불어 ‘얼음물’이 나올 때”라면서 “5도 이하면 겨울용 잠수복인 드라이슈트에 보온용 속옷을 껴입어도 춥다. 입수 순간 냉기로 머리가 찌릿찌릿할 정도다. 최소 10~15도 정도 돼야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안해상구조대 김석봉 구조대장은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고, 추위 때문에 잠수도 오래 못한다. 가장 적당한 잠수 수온은 30도 정도”라고 밝혔다. 스킨스쿠버 단체 CMAS의 전문 트레이너 최상학씨는 “호흡기가 얼 수 있을 정도”라고 우려했다. ●거센 조류 조씨는 “하강 로프(줄)를 잡지 않고 들어가면 바로 떠내려간다. 더구나 사리 때인 데다 사고 해역이 ‘물길’이라 유속이 거세 줄을 잡아도 크게 흔들린다. 조류가 1노트(시속 1.85㎞) 이상이면 잠수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전했다. 최씨는 “사고 해역이 양쪽 섬 사이에 있는 ‘물골’이라 조류가 더 거세다. 마스크를 쓰면 벗겨질 정도”라고 했다. 김 대장은 “섬과 섬 사이라 북에서 내려오는 물이 거세다. 현장 대원들은 하강줄 하나에 의지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암흑 바다 최씨는 “가장 힘든 조건이 ‘시계 제로’다. 서해안은 부유물이 많아 빛이 흡수가 잘 안 된다. 20m 정도만 내려가도 컴컴하다. 손목에 찬 시계도 안 보이고, 불빛을 켜도 앞을 분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씨는 “부딪혀야 뭔가가 있다고 느끼고, 수심계나 공기잔압계 등에서 나오는 불빛도 안 보일 정도다. 다이버들도 서해에서는 청물(맑은 물)이 들어올 때인 4~11월만 다이빙한다.”고 했다. 김 대장은 “사리 때는 시야가 제로인데, 사고 해역은 펄지역이라 더 심하다. 랜턴도 무용지물이다. 오직 더듬어서 물체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깊은 수심 조씨는 “30m 이상 내려가면 질소 마취가 생기거나 질소가 체내 혈관을 막아 감압병도 발병한다. 현재 물이 차가워 발병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30m가 일반 잠수의 한계다. 그 아래로는 특수 잠수에 해당되고 특수요원들도 조류, 수온 등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잠수하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대장은 “지금 같은 수심에서는 ‘공기통 잠수’가 상당히 어렵다. 산소통을 등에 메고 들어가면 활동 시간도 짧고, 저장 공기량도 부족해 작업에 압박감도 많이 받는다. ‘표면 공급식 잠수’(잠수사의 헬멧에 육상에서 압축 공기를 공급하는 잠수법)를 활용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대원들이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정조’ 때는 조류 흐름이 약간 멈춘다는 것일 뿐 수온, 시계 등 다른 여건은 똑같다.”고 주장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늑장… 뒷북… 軍 위기대응 매뉴얼은 있나

    [천안함 침몰 이후] 늑장… 뒷북… 軍 위기대응 매뉴얼은 있나

    “도대체 위기대응 매뉴얼이 있기나 한 건가.” 지난 26일 밤 천안함 침몰 이후 실종자 수색을 위한 군 당국의 대응이 주먹구구식에 뒷북치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종자를 찾는 일은 시간이 곧 생명이어서 한시가 급한데도 군의 태도는 너무 느긋하다는 것이다. 바닷속 탐색을 위한 해군 해난구조대(SSU)의 첫 투입은 사고가 난 다음날 낮에야 이뤄졌다.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27일 늑장 출동을 지적하는 국회의원들에게 “SSU는 평소 경남 진해에 대기하고 있는데, 사고 직후 요원들을 소집해 새벽에 서해로 올라왔다.”면서 “어차피 밤중에는 작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만약 아침에 침몰했다면 고스란히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얘기일까. SSU가 북한군과 충돌이 잦은 서해상에 평소에 대기하고 있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 군은 사고해역의 높은 파도 때문에 SSU의 구조작업이 난항을 겪자 그제서야 구조함인 광양함(3000t급)을 파견했다. 사고 시각으로부터 이틀(41시간)이나 지난 28일 오후 2시30분쯤이었다. 왜 처음부터 구조함을 투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군은 아시아 최대 수송함인 독도함(1만 4000t급) 파견도 뒤늦게 결정했다. 독도함은 사고 후 사흘이 꼬박 지난 29일 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전문가들이 실종자가 배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최대 시간으로 잡은 69시간을 넘긴 시점이다. 미 해군과의 공조도 늦었다. 미군 구조함인 살보함(3000t급)은 29일 오전에야 구조에 나섰다. 평소 미군과 각종 훈련을 수도없이 실시해 왔으면서도 이런 유형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 공조체계는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28일 실종자 가족들이 민간 구조대의 수색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자 처음엔 난색을 표하다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허용했다. 군이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처음엔 민간 구조대의 투입을 꺼리던 해군은 28일 아예 민간인 구조전문가를 공식 모집한다고 밝혔는데, 알고 보니 정치권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경기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를 찾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을 받고 해군에 이 같은 뜻을 전달하자 손정목 해군본부 전략기획참모부장이 “천안함 수색을 위한 자원봉사에 나서고 싶은 이들은 해군2함대 상황실로 전화해 달라.”고 공지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샤워 중 ‘쾅’… 어둠속 선임병 안내로 탈출”

    “샤워 도중 ‘쾅’ 소리와 함께 배가 출렁거렸어요. 사방은 온통 깜깜해졌어요. 선임병이 침착하게 살길을 알려 주었어요.” 지난 27일 밤 침몰한 초계함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이은수(22) 이병. 그는 당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순간을 아버지 이윤원(50)씨에게 이렇게 전했다. 사고 직후 해군2함대사령부로 이송된 아들을 만나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린 이씨는 이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된 아들을 두 차례 더 만났다. 다음은 이씨가 아들로부터 전해 들은 당시 상황. 지난 1월10일 의무병으로 입대한 이 이병은 사고 당일 오후(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함) 일과를 마치고 갑판 밑에 있는 목욕실에서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다. 목욕실 옆에서는 이 이병의 동기(이름 모름) 한 명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쾅’ 하는 폭발음이 귀청을 때렸다. 순식간에 목욕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쓰고 있던 안경까지 없어져 버린 상태에서 이 이병은 어두운 선실 벽을 더듬어 목욕실 밖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빨래를 하고 있던 다른 이병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떨고 있었다. ●갑판위 올라오자 선체후미 안보여 어둠 속에서 미처 옷도 입지 못하고 떨고 있던 이 이병에게 한 선임병이 옷을 가져다주며 “얼른 입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 이병과 빨래하고 있던 동기의 손을 이끌고 서둘러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 위는 선실에서 황급히 탈출한 다른 병사 수십 명이 몰려 있었다. 일부는 바다로 뛰어내리려 했으나 선임병들이 말렸다. “아직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남았다. 침착하라.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구명조끼 입고 침착하게 기다려라” 이때 이 이병은 선체 후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가라앉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또 선임병들 말고 부사관이나 장교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조대가 큰 배를 이끌고 천안함 근처로 다가왔다. 이 이병은 참수리호라고 했다. 그러나 배가 너무 커서 천안함 가까이 다가오면 충돌할 위험이 있다며 선임병들이 돌려보냈다. 얼마 후 해경선이 왔고 해경이 건네준 소방호스를 잡고 갑판 위에 있던 생존자 수십 명이 침착하게 탈출했다. ●해경 소방호스 잡고 수십명 탈출 이 이병은 곧바로 해군2함대사령부로 이송돼 1차 진료를 받고 27일 밤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밤이었다.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노모를 모시고 29일 국군수도병원에 찾아온 이 이병의 아버지는 “침착한 선임병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들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수도병원에 있는 모든 구조자가 실종자 구조상황을 지켜보며 똑같은 마음으로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기원하고 있다.”면서 “부디 꼭 모두 살아서 구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심해 300m까지 잠수… 연평해전때 인양 주도

    천안함 생존자 수색작업의 일선에서 활약 중인 해군 해난구조대(SSU·Ship Salvage Unit)는 6·25 전쟁 발발 직후 창설됐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50년 9월 해상공작대로 창설돼 1955년 해난구조대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지난 50년간 운용돼 오다 2003년 해난구조대 요원들의 활약상을 다룬 해양 액션영화 ‘블루’를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들의 본래 임무는 전·평시 해난구조 작전과 항만 및 수로 상의 장애물 제거다. SSU 요원은 400여명선으로 유지된다. 실시간으로 상황이 변하는 바닷속에서 해난구조대 한 명의 잘못된 판단은 구조대상과 구조자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SSU가 되려면 강한 수압을 견뎌낼 수 있는 강철 체력이 필요하다. SSU는 세계적인 수준의 심해 잠수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7년에는 ‘포화 잠수’ 기술을 적용해 심해 300m 잠수에 성공했다. 덕분에 우리 군은 배타적경제수역(EEZ) 전 지역에서 작전능력을 갖게 됐다. 포화 잠수란 특수혼합기체를 체내에 흡수시킴으로써 체온손실을 줄이고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는 방법이다. SSU가 투입된 작전으로는 1998년 동해 북한 잠수정 나포 및 인양과 1999년 남해 북한 반잠수정 인양,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에서 침몰한 참수리 357호정 인양 등이다. 이들의 수색·구조 수준은 가히 ‘세계 최강’이라는 평가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함미 두들겼으나 반응 없었다”

    “함미 두들겼으나 반응 없었다”

    천안함의 함미(艦尾)가 발견되면서 해군이 29일 오전부터 본격적인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생존자는 확인하지 못했다. 군은 이날 밤 9시30분까지 실종자 수색과 함미 선내 진입 시도를 계속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군은 30일 새벽 2시쯤 수색을 재개했다.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오후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구조요원들이 바다 밑으로 들어가 함미 외부를 망치로 두들겼으나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해군은 46명의 실종자 중 30여명이 함미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존 가능성 점차 낮아져 앞서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은 필사적인 구조작업을 벌였다. 본지가 찾은 구조작업 현장인 백령도 서남쪽 2.7㎞ 해상에는 함미가 가라앉은 지점을 알리는 주황색 부표가 수면에 선명하게 떠 있었다. 해상은 쾌청했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군은 북서풍 10노트, 파고 1m라고 밝혔다. 수온은 3.9도로 무척 찼다. 거센 조류로 작업이 가능한 시간은 오후 2시, 오후 8시 두 차례. 촌음을 다투는지라 밤까지 기다릴 겨를이 없어 보였다. SSU 대원의 기지역할을 하는 4300t급 상륙함인 성인봉함과 잠수대원들을 지원하는 3000t급 광양함을 비롯한 3대의 구조함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하늘에는 대잠헬기(LYNX) 한 대가 부유물을 탐색하기 위해 ‘윙∼윙’ 굉음을 내며 선회했다. 성인봉함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나온 SSU 대원 수십명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여섯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대원들의 표정엔 긴장감과 비장함이 감돌았다. 바닷속은 30㎝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탁했다. ●선내 실린더 한 개 분량 산소 주입 하지만 대원들은 병사들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에서 필사적으로 수색했다. 한 구조대원은 “물속 유속이 생각보다 빠르고 전방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작업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구조 현장에서 500m 떨어진 성남함에서 살아 있기를 바라는 실종자 가족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아들아, 조금만 참거라.” 한 어머니는 절규했다. SSU 대원들은 오후 8시13분부터 27분까지 선체의 벌어진 틈 사이로 실린더 한 개 분량의 산소를 주입했다. 함미 선실에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장병의 생존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김상연 최재헌기자 carlos@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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