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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국가 에너지 정책·수급 논의 철저히 해야” “배심원단 감정적인 결정·시간 부족 우려”

    14일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중단이 결정되자 두 손 들어 반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향후 국가 에너지 정책 및 수급 계획 등에 대한 우려들도 쏟아졌다. 국가 차원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일이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전체적인 국가 에너지 수급 방안의 논의가 ‘탈원전’ 공론화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희정 건국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신재생에너지의 사용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은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신재생에너지가 당장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면서 “대체에너지원인 액화천연가스(LNG)도 온실가스와 높은 원가 부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도 “급격한 원전 폐쇄 주장은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면서 “전력 수급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과 에너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배심원단의 구성이나 논의 시간 등을 생각한다면 3개월이라는 기간은 너무 촉박하다”면서 “대통령 공약에 원전 폐쇄가 있었다지만, 대통령을 뽑았다고 모든 공약에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폐쇄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배심원단의 구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배심원단의 논의가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면서 “앞으로 수십년간 경제, 산업,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결정인데, 전문성이 부족한 배심원들이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원전 폐쇄로 말미암은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국책연구기관(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탈원전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진행되면 국내 발전 비용이 연간 11조 6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노동석 실장은 “신고리 5·6호기 중단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단순히 매몰비용 1조 5000억원이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 계획 차질에 따른 손실 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면서 “신고리 원전 건설이 영구 중단될 경우 현실적 대안은 당장 가스인데 그 비용만 계산하면 향후 10년간 15조원의 기대이익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모데카이’와 화가 고야의 이중성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모데카이’와 화가 고야의 이중성

    미술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 중 하나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그림이 갑자기 유명작가의 그림으로 밝혀져 ‘일확천금’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나 관료들도 그림이 갖는 문화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거나 재벌들을 옥죄기 위해 그림, 미술품을 생각한다. 범죄영화를 가장한 코미디 스릴러영화라 할 수 있는 ‘모데카이’(2015)도 미술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영화라는 점에서 동서의 그림에 관한 생각은 같은지도 모르겠다.영화는 스페인의 거장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고야(1746~1828)의 그림을 차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내용이다. 그림보다는 가볍고 능청스러운 주인공 모데카이를 연기하는 조니 뎁의 활약이 돋보이는 코미디물이다.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미술품은 임자를 제대로 만났을 때 예술로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천박하고 계산적인 인간을 만나면 미술품은 당장에 세속적인 신분을 상징하는 고색으로, 시간의 흔적이 담긴 표면 효과만 남게 된다. 즉 현재의 지위를 기호화해서 지금의 지위와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시각적 지위 증거로 사용될 뿐이다. 모데카이는 주인공의 이름인 동시에 영화 제목이다. 그는 영국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스스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았다고 여기며 미술품 수집을 즐긴다. 하지만 이미 몰락해 재정은 파탄이 났고 대저택은 오늘내일 경매로 넘어갈 형편이다. 그는 그저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렸지만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전설 속 그림 ‘웰링턴의 공작부인’이 복원 도중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며 벌어지는 해프닝이 영화의 전부나 다름없다. 모데카이는 얄밉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400년 전 소설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당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과 조롱, 풍자에 집중했다면 모데카이는 풍자를 빙자한 재미에만 더 매진하고 있다. 영화는 5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래 소설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고, 통찰력 있는 비유와 묘사가 압도적이라는 평을 받았으나 영화는 글쎄다.영화에 나오는 ‘웰링턴의 공작부인’은 영화를 위해 화가 샐리 드레이에게 주문해 만들어진 가공의 그림이다. 그는 고야의 유명한 ’옷 입은 마하’(1803)를 바탕으로 고야풍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고야의 진품 역시 영화 속 ‘웰링턴의 공작부인’만큼 사연이 많다는 사실이다. 고야는 ‘옷 입은 마하’를 그리기 3년 전인 1800년 ‘옷 벗은 마하’를 그렸다. 스페인의 실세였던 마누엘 고도이의 주문에 의해 그린 그림인데 당시는 공식적으로 누드화를 금하던 시기였다. 여성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은 신성 모독 논란을 일으켰고, “마하에게 옷을 입히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고야는 원그림을 고치는 대신 ‘옷 입은 마하’를 새로 그렸지만 1813년, 마하 연작이 외설이라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통해 압수당하기도 했다. 고야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다. 고야는 스페인 궁정화가의 전통을 이어 세 명의 왕의 초상화를 그린 고전적 의미의 대가이자 주제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 의미를 해체한 최초의 근대적 예술가였다. 32세에 궁정화가가 되기 전 고야의 작품들은 산뜻하고 밝았다. 말년에 들어 소위 ‘검은 그림’을 그린다. 그의 머릿속 환상과 악몽들이 드러난 것은 그가 청력을 잃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나서였다. 그 후 나폴레옹군의 스페인 침공으로 민족의식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가 시대적인 자각을 통해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찾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처음에는 권력자들의 초상화로 명예를 얻었으나 스스로 “인간의 과오와 악덕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판화집 ‘카프리초스’(변덕)를 발간해 계몽주의자가 되었다. 성직자를 조롱하거나 외설적인 마녀 그림이 문제가 되자 재빨리 판화집을 회수하고 판매 중지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에 조국 스페인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프랑스는 스페인을 침략해 페르난도 7세를 폐위하고, 나폴레옹의 형 조세프를 호세 1세로 즉위시켰다. 하지만 곧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이 들어와 페르난도 7세를 복위시키는 등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반도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고야는 출중한 실력 또는 처세술로 여전히 궁정화가로 일했다. 그는 호세 1세의 초상화를 그려 1811년 훈장을 받았다. 하나 웰링턴 공작이 마드리드에 입성하자 호세 1세의 얼굴을 웰링턴으로 고쳐 바쳤다. ‘비리의 고발자, 정의의 투사’라는 고야의 이미지는 이런 행적 때문에 기회주의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는 부르봉왕조, 종교재판소, 프랑스군, 영국군 모두를 위해 일했고 어느 쪽으로부터도 피해받은 바 없다. 물론 훌륭한 예술가라고 모두 철저하게 대의를 따를 수는 없지만 예술가들이 혁명적인 경우는 대개 예술에 한한다. 특히 고야를 혁명적 인물로 만들어준, 민중의 항거와 권력에 의한 학살을 고발하는 그림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도 알고 보면 1814년에 그려졌다. 즉 프랑스 점령기가 아니라 그들이 물러가고 페르난도 7세가 복위하기 직전, 화가의 친프랑스 행적에 대해 의심이 가해질 무렵 그려졌기 때문에 그 저항의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 스페인 반도전쟁의 도화선이 된 ‘1808년 5월 2일의 봉기’ 즉 ‘도스 데 마요 봉기’와 짝을 이루는 이 그림에서 고야는 보통사람들을 영웅적 순교자 내지는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자로 이상화시켜 혁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구엘 감보리노가 1813년 제작한 판화를 차용한 것으로, 이후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아무튼 고야의 삶을 돌아보면 사람의 삶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해도 표리부동함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 “사랑·재미·커가는 행복… 그림·색깔로 느껴봐요”

    “사랑·재미·커가는 행복… 그림·색깔로 느껴봐요”

    서울신문 책팀이 국내의 저명한 동화 작가 4인에게 의뢰해 추천받은 어린이책 8권을 소개합니다.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과 눈높이를 잘 아는 작가들이 미취학 어린이와 초등생용으로 나눠 ‘함께 읽으면’ 좋을 책 2권씩을 살뜰히 챙겨 보내왔습니다. 책마다 다채로운 색채의 사랑과 공감, 선과 악, 놀이와 재미, 위로와 성장 등 ‘인생의 힘’이 될 메시지가 알알이 담겨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아이들뿐 아니라 그림책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에게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할머니·다문화인과 함께 찾는 ‘가족 사랑’ 할머니의 여름휴가/안녕달 지음/창비오월은 봄과 여름이 걸쳐 있다. 한낮의 날씨는 이미 여름이지만 아직 바닷물에 풍덩 빠지기에는 한참 이른 터라 바다 내음을 한껏 담은 책을 권하고 싶다. 가족의 구성원 중 뭔가 원초적인 뿌리를 느끼게 하는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면 아주 적당한 그림책이다. 모래알처럼 부드럽고 할머니의 소박한 사랑처럼 푸근하고 모래벌판에 쓰고 지우고 하던 어떤 글자처럼 아스라한 정서. 할머니는 엄마들의 엄마다. 눈은 깊어지고 마음은 넓어진다. 엄마들에게 할머니 시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들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어디가 끝인지를 알게 된 여행객의 걸음처럼. 자신감이 아니라 안정감. 나는 지구인/장여우위 글/위자치 그림/허유영 옮김/챕터하우스이 책은 아빠는 대만 사람이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인 아이의 일기다. 담백한 문체와 진실한 내용, 아이의 숨김없는 감정,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이 사이를 메우는 애틋한 행복이 배어 있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고학년 아이들은 부모가 꽂아 놓은 이 세계의 중심에서 제 발로 밖으로 뛰쳐나가는 때다. 중심을 찾기 위해 사춘기 때에는 변경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책은 얼마나 우리가 흔들릴 수 있는지, 얼마나 변경으로 내몰릴 수 있는지를(어디가 변경인지) 보여 준다. 삶이란 뚜벅이처럼 이어 가는 것임을 몸이 작은 소년이 몸이 큰 나에게 일러 준다. 책장을 덮을 때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은 가족의 아름다운 결속력이다.●“춤추는 글자·그림 속 음악에 빠져봐요” 간질간질/서현 지음/사계절샤방샤방 형광 핑크와 번쩍번쩍 형광 노랑이 우선 아이들의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주인공의 머리가 간질간질 간지러워 벅벅 긁었더니 떨어진 머리카락이 수많은 내가 되어 춤을 추며 돌아다니면서 가족들을 골탕 먹이네요. 머리카락 한 올에서 쭉쭉 뻗어 나가는 대책 없는 상상력이라니, 아이들과 똑같네요. 우리도 드디어 이런 대책 없이 자유로운 책을 가질 수 있게 되었구나, 싶은 책입니다. 글자도 춤을 추고 책 속의 모든 것이 춤을 춥니다. 수백만의 “나”가 추는 군무의 장면은 압권이군요. 어이없도록 행복하고 해맑게 빛나는 아이들로 가득 찬 책입니다. 간질간질 낄낄거리면서 볼 수많은 “나”에게 추천합니다. 내 마음이 들리나요/조아라 지음/한솔수북글 없는 그림책과 음악은 서로 통합니다. 말 한마디 없이 서로를 이어지게 하지요. 차분한 연필 선으로 꼼꼼히, 작가가 곳곳에 심어 둔 단서들을 따라가며 아이의 마음에 귀 기울여 봅니다. ‘학교폭력 없는 우리 학교’ 문구가 선명히 새겨진 층계 위에서 아이는 폭력에 휩싸입니다. 혼자 남아 있던 아이 곁에 음악이 날아와 새가 되어 아이를 위로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책장에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네요. 글 없는 그림책에는 목소리가 없으므로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음악이 들리고, 슬픔이 들리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울림이 클 책입니다.●권력·역사의 무게 이겨낸 ‘이름 없는 영웅들’ 파란파도/유준재 글·그림/문학동네 ‘파란파도’라는 이름의 말로 살다가 사람들을 구하고 영원으로 가는 파란색 말의 이야기다. 작가는 무지한 선과 악과 이상을 상징하는 백·흑·청의 배합을 통해 그림책 속에서 주제를 펼쳐 나간다. 책은 탐욕스러운 권력자에게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스스로 죽음으로써 구원자가 된 영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죽음은 또 다른 영생으로 가는 경로다. 부패한 위정자와 권력에 저항하는 영웅은 신화나 옛이야기에서 익숙하다. 하지만 영웅의 정체가 파란색 말인 것과 강렬한 흑백으로 인물들에게 상징을 입힌 재미가 남다르다. 남다른 5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명을 일으킨다.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임정자 글/권정선 그림/한겨레아이들 격동하는 삶을 살아온 이 땅 여성들, 그중 섬마을 할머니의 삶은 우리 근현대사의 거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과 산업화까지 평생 역사의 된바람을 맨 얼굴로 대면했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무게 속에 가녀린 몸과 의지로 새로운 세대를 길러 낸 여성의 삶.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모성이라는 보통명사로 칭해지는 할머니들의 삶은, 평생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 낸 것만으로 찬사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역사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이름은 없다. ‘한평생 열심히 살았네. 수고혔네.’ 자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또한 역사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그림책과 따라쟁이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파랑이와 노랑이/레오 리오니 지음/물구나무오프셋 칼라인쇄 기술의 발전과 그에 걸맞은 그래픽 혁신이 이뤄진 1960년대는 그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그림책들이 출현하던 시대다. 이 책은 50년 넘게 색깔로 상상하고 예술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의 기원이 됐다. 상상력이 대단한 작가의 실험적 시도를 경험할 수 있다. 책에서 아이들 사이 친구 관계와 그들의 노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하다. 가장 훌륭한 유아교육이란 무엇일까. 온갖 교재와 상업적인 그림책의 홍수 속에서 예술 자체로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책을 한 권씩 찾아 아이들 곁에 놓아 주는 일이 으뜸이라 하겠다. 본 대로 따라쟁이/김영주 글/이경은 그림/재미마주누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잘 따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다 따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요런 깜찍한 개구쟁이가 나온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다 따라 한다. 속없이 그저 따라만 하는 걸까. 배꼽 빠지는 따라쟁이의 뒤를 따라가 보자. 이 책은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어린이책의 신기원을 연 작가 김영주의 최신작이다. 현재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교육 현장에 오래 몸담아 온 그의 동화 속에선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낡은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 좀더 높은 차원의 교육철학으로 이 책을 즐길 줄 아는 독자 역시도 훌륭한 독자라 할 수 있다.
  • [방승언의 삐-급 문화 쪼개기] 유행했던 예비군복 인증…전쟁은 게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방승언의 삐-급 문화 쪼개기] 유행했던 예비군복 인증…전쟁은 게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미국의 강경한 대북기조에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배째라’식 엄포에는 이골이 난 우리 국민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돌발행동만큼은 예측하기 힘들다며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 ‘해볼 만한 전쟁’은 없다 긴장 속에서 한때는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지도 모른다는 ‘북폭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각에선 이 극단적 시나리오를 두 손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미국이 압도적 화력으로 북한을 공격하고 나면 국군이 북진해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이길 수만 있으면 전쟁도 나쁘지 않다는 태도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등장했던 레퍼토리다. 2년 전 있었던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언 때에도 일부 예비군들 사이에선 SNS에 “전투준비 완료”를 외치며 군복 사진을 올리는 이른바 ‘예비군 인증’이 유행했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기 자체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너무 가벼운 태도였다. 자신만만하게 ‘전쟁 나도 괜찮다’거나 심지어는 ‘전쟁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일부 예비군들 앞에서 전쟁 발발 즉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현역 장병들과 그 가족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 국방부의 전쟁 게임, ‘국방 FPS’ ‘전쟁불사’를 외치는 일부 국민의 무모함을 자제시켜야 할 책임은 아마도 국군에 있다. 전쟁의 진짜 피해를 가장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집단으로서 국군은 지금도 장병들에게 ‘전쟁 승리’보다는 ‘전쟁 예방’이 중요하단 사실을 강조해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공개된 국방부의 ‘국방 FPS’ 게임 개발 연구 보고서는 국방부의 이런 평소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물건이었다. 개발인력 9명, 예산 60여 억 원, 개발기간 2년으로 현실감 넘치는 온라인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총격전 게임)를 개발하겠다는 이 계획은 이미 그 실현가능성 측면에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보다 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은 개발목적 쪽이다.국방부는 ‘국방 FPS’의 목적이 “군에 대한 즐거운 간접 체험을 통해 입대 대상자들의 군복무에 대한 공포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투행위를 ‘즐거운 체험’으로 인식시키는 게 이 게임의 최대 목적이라는 의미다. 물론 전투를 재미있는 오락거리처럼 연출하는 작법 자체는 수많은 게임이 공유하는 아주 기본적 요소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전쟁을 엄숙히 대해야 할 국방부가 게임 업계의 고질인 전쟁미화 문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은 한 번쯤 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게임계에서 전쟁미화에 대한 담론은 아직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십 년 넘게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 전쟁게임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도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난다. 이 시리즈에 속한 대부분 작품의 주된 줄거리는 약간 과장을 섞자면 ‘시체의 산을 쌓아 세상을 구한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할 만큼 단순하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이 점을 문제 삼는 개인이나 단체는 아직 많지 않다.더불어, 전쟁게임에 부적절한 정치·역사적 뉘앙스가 담기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에 있어서도 업계는 아직 서투른 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은 전략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는 2차대전 최대 피해국이자 공로국인 러시아를 거의 악당 조직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러시아인들 외에 이 문제를 성토하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기조가 이렇듯 만연해 있더라도 업계가 전쟁묘사 방식에 대한 반성을 아예 포기해선 안 될 일이다. 북미원주민 추방전쟁을 오락거리로 포장한 5,60년대 서부극들에 대한 현세대의 평가는 당시와 많이 다르다. 현대 전쟁게임에 대한 후손들의 평가라고 해서 호의적이리란 보장은 없다. ●게임으로 재해석된 ‘지옥의 묵시록’ 2012년 미국에서 발매된 게임 ‘스펙옵스: 더 라인’(이하 ‘스펙옵스’)은 게임업계에 이런 반성의 분위기를 조성한 최초의 메이저 게임으로 꼽힌다. 이 게임은 자연재해로 고립된 두바이에서 질서유지를 명분삼아 계엄군 행세를 하는 미 육군 33보병대대와, 이들을 물리치려는 미국 특수부대 델타포스 사이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6개월 전, 두바이 인근에 주둔 중이던 33대대는 갑자기 불어 닥친 대규모 모래폭풍 속에서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두바이 시내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구조작전은 처참히 실패했고 33대대는 시민들과 함께 완전히 도시에 고립되고 만다. 대대장 ‘존 콘래드’ 대령은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극한 환경 속에서 안전을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한다. 하지만 무력을 앞세운 일방적 통제는 곳곳에서 점차 부조리한 억압과 학살로 이어졌고 33대대는 자각하지 못한 채 폭군으로 군림하게 된다.영국 문학사에 조예가 있다면 콘래드 대령의 이름과 줄거리에서 이미 게임의 주제의식을 일부 간파했을 수도 있다. 콘래드라는 이름은 소설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의 저자 ‘조셉 콘래드’에게서 따온 것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암흑의 핵심’은 19세기 말엽 세계를 물들인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고전이다. 맥락을 고려해보면 안전을 명분으로 억압을 펼치는 33대대의 모습은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전 세계에 손을 뻗치고 있는 미국의 현대판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은유로 읽힌다. 미군을 정의의 사도로 묘사하는 대신 그들의 오랜 적폐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이미 독특하다. 하지만 스펙옵스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미국정부의 패권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영웅게임’의 모순 ‘스펙옵스’를 플레이하면 대번에 느낄 수 있는 묘한 사실 하나는 33대대에 맞서는 주인공 ‘마틴 워커’가 도무지 ‘착한 놈’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야기 중반부터 워커는 당초 임무였던 생존자 구조보다는 33대대 및 콘래드의 처단에만 집착하며, 이로 인해 수십 명의 민간인을 죽게 만든다. 그런데도 워커는 멈추지 않고 결국엔 두바이 생존자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을 초래하기까지에 이른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이런 불편한 전개는, ‘살인만으로 영웅이 되는’ 대다수 전쟁게임의 비현실적인 내러티브를 180도 뒤집어 비꼬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담겨 있다. 워커가 마침내 마주한 콘래드 대령의 마지막 대사는 제작진의 비판의식을 잘 요약해 준다. 콘래드는 말한다. “자네는 구원자가 아닐세, 자네의 재능은 구하는 쪽이 아니라 죽이는 쪽에 있었지. 영웅이 된 기분을 느끼려 여기까지 왔지만, 자네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더 나아가, 이 대사는 플레이어를 향하는 제작진의 비판이기도 하다. 자기 행동의 당위성을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내달린 워커의 모습은, 게임에 표현된 폭력이 과연 정당한 것일지 고민해보지 않은 채 그저 타성적으로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는 대다수 소비자의 모습을 모사하고 있다. ●‘불편한 게임’을 소망하며 제작진은 단 하나의 이야기로 정부, 게임업계, 소비자라는 세 집단 공통의 문제인 ‘무비판’을 지적해 내는데 성공했다. 자아비판을 모르는 미 정부는 자유세계 수호의 확신에 젖어 세계 각지의 무력분쟁에 개입했고 미국 게임계는 그런 행태를 고발할 생각은커녕 오히려 영웅적 서사로 윤색해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정부와 업계의 중첩된 무비판이 낳은 결과물을 다시 무비판적으로 소비해왔다. 가장 대중적 미디어인 게임을 통해서도 사회 각 층위의 안일함에 대한 첨예한 비판을 이뤄내는 이런 모습은, 분명 우리가 부러워 할 만 한 것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 게임이 출시된 지 5년이 지난 현재, 미국 게임계 판도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대중문화의 가치 및 외연의 확장은 일부 기업이나 몇 개 작품의 노력만으로 찾아올 수 있는 종류의 변화는 아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플레이어를 깊은 회한에 빠지게 만드는 ‘불편한 게임’이 더욱 많이 출시되기를, 그리고 그런 게임들이 보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길 희망해 본다. earny@seoul.co.kr
  • 대전 원자력硏 방사능 누출 시 153만 시민 탈출 32시간 소요

    사용후핵연료 등이 문제가 되는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로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났을 때 시민 153만명이 모두 안전지역으로 대피하는 데 32시간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민간연구기관인 원자력안전연구소는 27일 대전시의회에서 열린 ‘원자력시설 위급상황 대비 시민대피로 확보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가장 심각한 방사능 누출 단계인 ‘적색경보’ 발령 시 원자력연구원 반경 15㎞ 이내 건물과 산 등 대전의 지형, 구역별 인구분포, 도로 현황 등을 적용한 ‘동적 대피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조사했다. 조사는 방사능 누출 발생 30분 후 통보를 가정했을 때 시민 153만명이 모두 대전을 벗어나는 데 32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연구원과 인접한 유성구 관평·구즉·신성동 등 주민 20여만명이 대피하는 데에도 5.5시간이 필요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대전은 대부분 해안에 있는 다른 원전시설보다 개방돼 있어 대피 시간이 빠를 줄 알았는데 인구 밀집도가 높아 오히려 더 지체됐다”고 밝혔다. 긴 대피 시간은 교통체증 탓이다. 대전은 연결 도로가 1만 4533개로 다른 원전지역보다 훨씬 많지만 승용차, 버스 등 차량 59만여대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낙후된 동구는 길이 비좁고 복잡해 대피 시간이 더 길었다. 홍성박 대전시 안전정책과장은 “대피 시간을 줄이려면 도로 확보나 확장이 더 필요해 대전순환도로망 구축 등을 대선 공약에 넣어 도로망을 넓히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은 원자력 생산·연구 시설과 핵폐기물이 있는 데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987년부터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 핵 폐연료봉 1699개를 반입해 실험하고 이 중 309개는 손상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해 왔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역적’ 윤균상, 장화홍련 구하고 오랑캐 물리치고 ‘통쾌한 활약’

    ‘역적’ 윤균상, 장화홍련 구하고 오랑캐 물리치고 ‘통쾌한 활약’

    ‘역적’ 윤균상이 홍길동으로 완벽 변신해 활약했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에서는 홍길동(윤균상 분) 사단이 민초들의 구원자가 돼 백성을 사로잡는 과정이 떠들썩하게 펼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춘향과 이 도령을 연분 맺게 해주고, 장화 홍련의 원수도 갚아주고, 심청이도 인당수에 빠지기 전에 사기꾼들한테 구해주는 등 홍길동 사단의 활약은 눈부셨다. 수귀단이 용모파기까지 붙이며 홍길동 사단 잡기에 혈안이 됐지만 이들은 여장까지 감행, 낄낄거리며 법망을 피해갔다. 홍길동 사단을 향한 백성들의 환호가 커질수록 수귀단의 수장 도환(안내상 분)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강상의 법도에 사로잡혀 능상 척결의 칼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수귀단의 수장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긴 도환은 “홍길동, 그놈은 이제 나의 적이다”라며 길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을 공표, 긴장감을 안겼다. 생이별한 여동생 어리니(정다빈 분)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길동은 민초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능상 척결에 짓밟히는 백성들과 마주한 길동은 “임금이나 백성이나, 주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인간 아니냐”며 강상의 법도로 지배되는 조선 전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홍길동 사단이 오랑캐를 물리치는 등 재물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고 도환이 연산(김지석 분)에게 직접 고하며 소용돌이칠 앞날을 예고했다. 한편,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4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MBC ‘역적’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오감 인식 AI 플랫폼·고성능 VR…‘모바일, 그 다음 요소’ 길을 찾았다

    오감 인식 AI 플랫폼·고성능 VR…‘모바일, 그 다음 요소’ 길을 찾았다

    2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모바일, 그다음 요소’를 찾기 위한 나흘간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올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에서는 참가 업체 대부분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모습을 주로 보여줬다. 당장 실생활로 이어지는 기술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맥 빠진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힌트’를 얻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이번 MWC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분야를 소개한다. 1일(현지시간)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주식회사 대표는 MWC 기조연설에서 네이버와 함께 준비한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를 공개했다. 음성인식 AI엔진, 비주얼 인식 AI엔진, 대화형 엔진 등 다양한 AI 기술을 망라한다. 이데자와 대표는 “사람은 음성뿐 아니라 오감을 모두 활용해 정보를 인지하고 의사소통을 한다”면서 “클로바는 음성에 초점을 맞춘 AI 플랫폼에서 하나 더 나아가 폭넓은 감각을 인지하는 것으로 확장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상 파고드는 AILG ‘G6’ 개인비서 역할까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MWC 개막 첫날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의 무한한 가능성을 역설했다. 핵전쟁, 감염병, 자연 재난 등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을 해결하는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인간의 평균 지능지수(IQ)는 100인데, 인공지능은 30년 후 IQ 1만에 도달한다”면서 “인간을 초월한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MWC 화두 중 하나인 인공지능은 전시 부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소니가 공개한 무선 스테레오 헤드폰인 ‘오픈형 엑스페리아 이어 콘셉트 모델’은 음성 대화 및 머리의 움직임을 인식해 사용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한 예로 새로운 음성 채팅 서비스 ‘애니타임 톡’은 연락처를 검색하거나 전화를 걸지 않아도 간단히 버튼 하나를 누르거나 머리를 움직이는 동작만으로 가족,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동시에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노키아는 인공지능과 결합된 네트워크 관리 서비스 ‘아바’를 선보였다. 통신사들의 네트워크 운용 비용을 줄여주는 서비스다. LG전자는 전략 스마트폰 ‘G6’에 구글 인공지능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를 적용했다. 사용자 음성을 인식해 질문에 답하고, 음악을 재생하고, 날씨 정보를 제공한다. 스스로 학습하면서 사용자에 최적화된 ‘개인 비서’ 역할로 거듭난다. 맹점은 영어, 독일어 버전만 지원된다는 점이다. LG전자는 이르면 연내 한국어 버전을 내놓는다는 계획이지만, 구글은 아직 구체적 개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실생활에 와닿게 하려면 결국 콘텐츠가 많아야 한다”면서 “식당을 예약하고, 택시를 불러주는 등의 서비스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지럼증 확 줄어든 VR삼성·KT 부스 관람객 북적 MWC 메인 홀로 불리는 3번 홀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 삼성전자 부스는 행사 기간 내내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VR를 체험하려는 이들 때문이었다. KT도 VR 체험관을 마련하고 썰매 경기인 루지를 두 명씩 체험하도록 했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 메르세데스벤츠 등 다수 기업들이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갖다 놓고 VR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관람객을 유인하는 데는 이만한 장치가 없을 정도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1년 전에 비해 대단한 기술이 적용된 건 아니었지만, 관람객들은 ‘재미’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만족해했다. VR 체험 장치가 늘어나고 성능도 좋아지면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어지럼증’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도 “VR 시장의 성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연산 속도 향상, 그래픽 처리 능력 개선, 배터리 용량 확대 등의 과제가 해결되면 엄청난 파도로 밀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식지 않은 ‘웨어러블’ 인기스마트워치 성능 쑥·가격 뚝 식을 줄만 알았던 웨어러블 시장이 다시 살아난 것일까. MWC 행사장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관심을 보인 것 중 하나가 스마트워치였다. LG전자, 화웨이, 노키아 등 전통의 강호들이 성능을 대폭 개선한 스마트워치를 내놓기도 했지만, 수많은 중소업체가 가세하면서 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중소업체들은 저마다 특색을 강조하면서 저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은 100~200달러선으로 고급형 제품에 비해 최대 200달러가량 저렴하다. 시장조사기관에서도 웨어러블이 배터리 성능 향상, 인공지능 기술 도입 등과 맞물리면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웨어러블은 패션의 영역에도 속해 있다 보니 기술과 패션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 또한 1~2년 안에 해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때문에 스위스 시계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2015년부터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기존 시계업체가 느꼈던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나는 중”이라면서 “차기 웨어러블은 사물인터넷(IoT)과 결합되며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바르셀로나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재미있는 원자력] 로봇 기술의 숨은 주역, 원자력/박종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융합기술 개발부 선임연구원

    [재미있는 원자력] 로봇 기술의 숨은 주역, 원자력/박종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융합기술 개발부 선임연구원

    로봇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영화는 물론 각종 애니메이션에서 지구 평화를 지키는 주인공으로 로봇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 비해 로봇이 등장한 것은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로봇은 1921년 체코 출신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연극 ‘로섬의 만능 로봇‘이라는 희곡에서 처음 등장했다. 로봇이란 단어는 ‘강요된 노동’, ‘소작농의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됐다. 이후 1961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 공장에 산업용 로봇이 설치되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군사, 물류, 의료, 건설, 해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이 개발돼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직립 보행하는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주목받고 있다. 사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런 로봇 개발의 역사를 이끌어 온 하나의 축은 바로 원자력이다. 원자력 시설 내부에는 고방사선 구역, 수중 구역 등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많은데 이런 곳에서 사람 대신 로봇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핫셀’이라는 시설에서는 1950년대부터 로봇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업자들은 방사선을 막아주는 납유리창 밖에서 원격 조종할 수 있는 로봇팔을 이용해 안전하게 방사성 물질을 취급하며 다양한 작업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0년대 이후 원자력발전소가 상업화되면서 로봇 개발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원자력발전에 사용되는 핵연료를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강한 방사능을 견딜 수 있는 로봇이 사용되었으며, 고방사선이 방출되는 좁은 구역을 점검하는 소형 이동로봇도 개발되었다. 국내에서도 원전의 좁은 배관 속을 스스로 이동하며 1㎜ 이하의 미세 결함까지 탐지할 수 있는 뱀 형태 로봇이 개발된 바 있다. 원자력 분야에 사용되는 로봇은 안전 모니터링 및 유지 보수뿐만 아니라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원전 사고 시에도 활용된다.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도 미국 군용로봇 ‘팩봇’과 일본 재난대응 로봇 ‘퀸스’ 등이 투입돼 원전의 내부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원전 로봇 개발에 그치지 않고 언제든지 로봇을 투입, 운영할 수 있도록 조종사를 훈련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할 ‘한국형 원전사고 대응조직’도 준비 중이다. 이는 위험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로봇을 투입해 운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밖에도 메스 없이 방사선을 이용해 암을 제거하는 기존 사이버나이프보다 안전하고 치료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암 치료용 엑스선 발생 로봇 장치 개발도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앞으로도 로봇은 다른 산업분야뿐만 아니라 원자력 및 방사선 분야에서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 ‘아는 형님’ 이상민, “비, 채권자 앞에 나타난 나의 구원자” 훈훈한 사연 공개

    ‘아는 형님’ 이상민, “비, 채권자 앞에 나타난 나의 구원자” 훈훈한 사연 공개

    이상민과 비의 놀라운 사연이 공개된다. 14일(토) 방송되는 ‘아는 형님’ 58회에서는 전학생으로 가수 비와 하니가 등장한다. 두 전학생은 센스 넘치는 공격으로 멤버들을 긴장하게 만들며 즐거운 녹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날 이상민은 10여 년 전 비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 있다며 특별한 사연을 고백했다. 이상민은 “과거 힘들었던 시절, 채권자들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비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톱스타였던 비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덕분에 협상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라며 이상민은 비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멤버들 역시 훈훈한 사연에 박수를 보냈다. 비 역시 이상민과 중학교 선후배사이임을 밝히며, 둘 사이의 끈끈한 인연을 공개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 이상민에 대한 칭찬을 들으며 꿈을 키워왔다는 것. 이에 이상민은 특유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비를 바라보기도 했다. 한 편 이날 비는 화려한 첫 등장과 함께 방송 최초로 컴백 무대를 공개한다. 하니는 물론 아는 형님 멤버들은 ‘아는 형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스케일의 퍼포먼스에 깜짝 놀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비와 이상민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오는 14일(토) 밤 11시에 방송되는 JTBC ‘아는 형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서울 낙산 안양암 마애관음보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서울 낙산 안양암 마애관음보살

    뭔가 답답하면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되뇌는 할머니들이 있다. 대표적인 불교 경전의 하나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중생이 온갖 고뇌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알 길 없고, 해탈에 이르기는 더더욱 어려운 중생이라도 그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마음을 모아 부르기만 하면 구원해 준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부르면 고통 벗어난다고 전해와 불교는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 나가면서 수많은 관음신앙의 성지를 만들었다.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산 포탈라카는 스리랑카에서 멀지 않은 인도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따라서 불교가 퍼져 나간 곳에서는 관음성지, 즉 포탈라카의 상징성이 부여된 도량은 바닷가의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바다가 없는 티베트조차 키추강을 바다로 상정하고 수도 라사를 포탈라카로 의미를 부여했다. 라사의 포탈라궁은 글자 그대로 관음보살이 살고 계신 곳이다. 다시 말해 포탈라궁의 주인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인도에서 망명 정부를 이끄는 달라이라마를 변함 없이 정신적 지도자로 여기는 까닭이다. 중국에서 포탈라카는 다양한 음역(音譯)이 이루어졌지만, 일반적으로 보타락가(補陀洛迦)로 썼다.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저우산(舟山)군도의 보타도(補陀島)가 대표적 관음성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상 대사가 신라 문무왕 11년(671)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굴을 지었다는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을 최초의 본격 관음도량으로 본다. ●바위에 새겨 덧집… 觀音殿 편액 붙여 전각 역할 양양 낙산사를 비롯해 인천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보문사, 경남 남해 보광산 보리암은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여기에 전남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을 포함시켜 4대 관음성지로 부르기도 한다. 낙산이나 낙가산은 모두 보타락가의 줄임말이다. 서울의 낙산 역시 보타락가산을 상징한다. 연극의 거리로 유명한 대학로 뒷산이다. 안양암은 낙산 남동쪽 기슭인 창신동 산기슭에 조금은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바위에 관음보살을 새겨 놓았는데, 덧집을 만들고 ‘관음전’(觀音殿) 편액을 붙여 전각 역할을 하도록 했다. 높이 3.53m의 관세음보살좌상 곁에는 이 마애불을 조성한 내력도 새겼다. 관음보살이 조성된 1909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병탄이 이루어지기 바로 전해가 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긴 대한제국의 고통이 갈수록 깊어지던 시기다. 6·25전쟁으로 낙산이 피란민의 판잣집으로 가득찬 뒤 관음보살이 위안을 주어야 할 존재는 더욱 늘어났다. ●6·25 피란민에 위안… 한국 봉제산업에도 기여 불교적으로 낙산 관음보살은 서울 주민 모두 나아가 국민 모두의 구원자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조각이라고는 해도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상이 갖는 의미는 과소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창신동은 청계천과 함께 한국 봉제산업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으로, 지금도 동대문 패션타운의 배후 생산기지 역할을 해 내고 있다. 창신동이 서울의 새로운 문화적 부심(副心)으로 떠올랐을 때 안양암과 마애관음보살상은 매우 중요할 역할을 해 낼 것이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데스크 시각] 100마리 원숭이와 헬조선/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100마리 원숭이와 헬조선/안동환 문화부 차장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청계천변에 문을 연 문화창조벤처단지(셀·cel:creative economy leader)에 입주한 93개 스타트업 기업 중 하나인 A사는 새해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공고를 냈지만 1년째 직원을 단 1명도 뽑지 못했다. 독창적인 특허와 비전을 갖고 있음에도 스타트업이다 보니 지원자 씨가 말랐다. 하지만 13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엄격한 심사 끝에 셀에 입주한 만큼 직원 구하는 데도 ‘볕 들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희망이다. 우수 인력을 뽑고 싶어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허다하다. 대기업이나 안정된 공무원 자리만 찾고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혁신과 도전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더 우려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기업가 정신 지수는 세계 130개국 중 27위. 경제 규모(13위)에 비해 반 토막 수준이었다. 청년들의 술자리에서 유행가처럼 흥얼거리는 말들이 ‘금수저’‘흙수저’이고,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과 ‘탈조선’이다.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부조리와 좌절감 등 정신적 생채기가 가히 자학적이라고 할 만큼 크고 깊다는 점을 방증하는 건 아닐까. 기성세대들도 격하게 나무라곤 한다. 작은 회사에서 일할 의지도 도전 정신도 없고, 쉽게 안주하면서 부모 탓 사회 탓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청년들의 냉소적 시선을 마냥 다독이며 위로만 건넬 수는 없을 듯하다. 미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청춘은 청춘들에 주기엔 아깝다’고 독설했다. 스스로 구원자가 되지 못하면서, 구원자를 기다리며 사회에 대한 염증과 체념에만 빠져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우리는 문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에 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문화 콘텐츠 산업의 국내총생산(GDP)은 2011년 82조 9000억원(매출액 기준)에서 2012년 87조 3000억원, 2013년 91조 2000억원, 2014년 95조 3000억원으로 매년 평균 4.7%씩 성장 중이다. 문화창조 산업의 부가가치액은 국내 GDP의 6~7%를 차지한다. 세계 각국은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영국)’, ‘크리에이티드 인 차이나(중국)’, ‘디자인드 인 싱가포르(싱가포르)’를 부르짖으며 문화 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혁신적 성장의 활로를 찾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셀의 스타트업 청년들은 미래 문화 산업 부문을 이끌, 이른바 ‘첫 번째 원숭이’들이다. 1950년 일본 미아자키현의 무인도 고지마섬에는 야생 원숭이 무리가 살았다. 흙이 묻은 고구마를 주자 처음에는 손으로 털어 먹었다. 얼마 후 원숭이 몇 마리가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는 게 목격됐고 수년 후에는 무리 대부분이 새로운 방식으로 고구마를 먹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고지마섬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원숭이 무리도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동 양식이 관측됐다는 점이다. 미국 생태학자 라이언 왓슨은 일본 원숭이의 행동을 연구해 처음으로 도전하는 개체 수가 ‘임계치(100마리)’에 도달하면 다른 집단으로 새로운 행동 양식이 확산된다는 ‘100마리째 원숭이’ 이론을 만들었다. 첫 번째 원숭이의 혁신이 100마리째가 되면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얘기다. 도전자는 그 자신이 첫 번째 원숭이가 되어 추종 무리를 만들어 나간다. 한 마리 원숭이가 100마리, 1000마리 원숭이를 만들면 세상은 바뀐다. ‘노오력’과 ‘노력’은 구별해야 한다. ipsofacto@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17] 서울 낙산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의 상징성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17] 서울 낙산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의 상징성

    뭔가 답답하면 ‘나무관세음보살’하고 되뇌이는 할머니들을 본다. 대표적인 불교경전의 하나인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중생이 온갖 고통과 고뇌에 시달릴 때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알 길 없고, 해탈에 이르기는 더 더욱 어려운 중생이라도 그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마음을 모아 부르기만 하면 구원해준다는 것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나가면서 수많은 관음성지를 만들었다.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산 포탈라카(Potalaka)는 스리랑카에서 멀지 않은 인도 남동쪽에 자리잡은 것으로 믿어졌다. 따라서 관음성지, 즉 포탈라카의 상징성이 부여된 도량은 바닷가에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바다가 없는 티베트조차 키추강을 바다로 상정하고 수도 라사를 포탈라카로 의미를 부여했다. 라사의 포탈라(Potala)궁은 글자 그대로 관음보살이 살고 계신 곳이다. 그러니 포탈라궁의 주인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라마를 변함없이 정신적 지도자로 여기는 까닭이다. 중국에서 포탈라카는 다양한 음역(音譯)이 이루어졌지만, 일반적으로 보타락가(補陀洛迦)로 표기한다.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저우산(舟山)군도의 보타도(補陀島)가 대표적 관음성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1년(671)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굴을 지었다는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을 최초의 본격 관음도량으로 보아야 한다. 양양 낙산사를 비롯해 인천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보문사, 경남 남해 보광산 보리암은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여기에 전남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을 포함시켜 4대 관음성지로 부르기도 한다. 낙산이나 낙가산은 모두 보타락가의 줄임말이다. 서울의 낙산 역시 보타락가산을 상징한다. 연극의 거리로 유명한 대학로 뒷산이다. 안앙암은 낙산 남동쪽 기슭인 창신동 산기슭에 조금은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바위에 관음보살이 새겨졌는데, 지붕을 씌우고 문을 달아 전각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높이 3.53m의 관세음보살상 곁에는 마애불을 조성한 내력도 새겼다. 관음보살이 조성된 1909년은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병탄이 이루어지기 바로 전해가 된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긴 대한제국의 고통이 갈수록 깊어지던 시기다. 이후 6.25전쟁으로 낙산이 피난민의 판잣집으로 가득찬 뒤에도 관음보살은 위안을 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불교적으로 낙산 관세음보살은 서울 주민 모두, 나아가 국민 모두의 구원자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의 조각이라고는 해도,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상이 갖는 과소평가되고 있는 듯 하다. 창신동은 청계천과 함께 한국 봉제산업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으로, 지금도 동대문 패션타운의 배후생산기지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창신동이 서울의 새로운 문화적 부심(副心)으로 떠올랐을 때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상은 매우 중요할 역할을 해낼 것이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리즈 전체보기
  • 신라가 나당전쟁서 이긴건 당의 흥망성쇠에 있었다

    신라가 나당전쟁서 이긴건 당의 흥망성쇠에 있었다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서영교 지음/글항아리/816쪽/3만 8000원 7세기의 동아시아는 무대를 중원에서 동쪽으로 옮겼을 뿐 전국시대와 다름없었다. 중국의 수·당,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 바다 너머의 왜국, 중앙 초원의 돌궐·설연타·거란·토욕혼, 티베트 고산지대의 토번 등이 뒤엉켜 벌인 국제전은 그야말로 ‘유라시아판 열국지’였다. 21세기의 지정학적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원교근공(遠交近攻)과 합종연횡(合從連衡)이 되풀이되는 복잡다단한 시대였다. 중원대 한국학과 서영교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은 고대 제국들이 존망을 걸고 맞부딪쳤던 치열한 대결 구도와 복잡하게 얽힌 역학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저자는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친 612년 살수대첩부터 676년 나당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의 시대를 세밀하게 되짚어 복원한다. 그러면서 삼국통일 과정에서 진행됐던 일련의 전쟁들이야말로 당시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제1차 동아시아 세계대전’이었으며 한반도의 지정학을 최초로 결정지은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임진왜란을 조선과 왜국의 전쟁이 아닌 국제 정치적 역학 구도 속에서 치러진 세계전으로 바라보는 최근 학계의 움직임과 맞물려 주목받는 대목이다. 송나라 역사가 사마광의 ‘자치통감’, ‘수서’, ‘구당서’, ‘신당서’를 비롯한 25사와 ‘돈황본토번역사문서’, ‘요동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조선상고사’ 등 고대 문헌과 고대사에 관한 한·중·일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집대성했다. 실증적 사료와 함께 문학적 서사 형식을 취하면서 전장에서 불꽃처럼 스러져 간 장수들의 리더십과 당시의 치열한 전쟁을 눈에 보일 듯이 묘사하고 있다. 612년 수나라 황제 양광은 고구려를 ‘악의 축’으로 몰고 선전포고를 했다. 30만 대군이 고구려를 향했으나 돌아온 이는 2700명에 불과했다. 살수대첩 이후 고구려는 중국인들에게 세상의 끝이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고구려 침공에 실패한 수나라가 망하고 618년 이연이 당나라를 세웠다. 이연의 둘째 아들 이세민은 형제를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뒤 스스로 황제가 된다. 당 태종 이세민의 집권은 고구려와 백제에는 위기였지만 고구려·백제, 왜에 포위된 신라에는 희망이었다. 643년 당 태종은 고구려와 백제에 서한을 보낸다. “신라는 우리 당 왕조에 충성을 다짐하며 조공을 그치지 않으니 고구려와 백제는 마땅히 군사를 거두라. 만약 다시 신라를 공격하면 군사를 내어 너희 나라를 칠 것이다.” 645년 태종은 정식으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역사에 박힌 가시이니 그것을 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당의 패배였다.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와의 소모전에 지치고 백제의 이중플레이에 신물이 난 당에 신라는 끊임없이 구애를 보냈다. 외교의 귀재 김춘추는 나당동맹 체결만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었다. 책은 고구려군의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 외에 무명 노장 김유신이 신라의 구원자로 등장한 대야성 전투, 백제의 비극으로 끝난 황산벌 전투, 백제가 무너지고 신라 삼국통일의 서막이 열린 백강 전투, 고구려를 내전에 휩싸이게 한 평양성 전투 등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전투들을 시공을 오가며 그려 낸다. 저자는 당나라 황실의사 장원창의 ‘신수본초’에 남은 기록을 통해 백제의 의자왕이 위암으로 추정되는 반위(反胃)로 긴 투병 생활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백제 왕조의 통수권이 약화돼 결국은 패망하게 됐다는 사실도 새롭게 조명한다. 또 사마광이 ‘자치통감’과 별개로 편찬한 ‘고이’(考異)의 기록 가운데 연개소문이 몽고의 설연타 제국 매수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추후 편찬된 자치통감 주석에서 찾아내 발굴하는 성과도 보였다. 저자는 당의 지원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친 신라가 어떻게 세계 최강 당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주변국의 정세와 당시 지형을 파고든다. 그는 당나라의 설인귀가 670년 동돌궐 기병 11만 대군을 이끌고 티베트고원 대비천에서 토번군과 맞붙어 전멸당한 사실에 주목한다. 이후 당은 실크로드 교역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주된 동북아 거점을 만주에서 서역으로 옮기게 됐고, 이는 신라가 당과의 전쟁을 감행하게 만든 배경이 돼 통일신라가 지속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긴박한 정세의 일목요연한 전개와 자세한 전투 묘사, 거침없는 공간 이동과 세력 구도의 거시적인 조망, 전략 전술의 디테일, 전쟁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등은 여타 고대 전쟁연구서와 차별성을 지니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초소형 레이저·안전제일 원자로’ 과학 혁신 이끌었다

    ‘초소형 레이저·안전제일 원자로’ 과학 혁신 이끌었다

    이용희(왼쪽·60) 카이스트 물리학과 특훈교수와 정용환(오른쪽·58)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재료기술개발단장이 올해 최고의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됐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2015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이 교수와 정 단장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에게는 각각 3억원이 주어진다. 이 상은 연구 성과가 뛰어난 과학기술인에게 2003년부터 시상해 온 것으로 지금까지 32명이 받았다. 이 교수는 초소형 레이저를 연구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광학 물리학자다. 빛의 특성을 바꾸는 ‘광(光)결정’이라는 물질을 이용한 초소형 레이저 공진기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기술은 광학 분야의 오랜 숙제인 ‘자연에서 허용하는 가장 작은 레이저’의 개발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교수는 “과학계에 더 훌륭한 학자가 많은데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우리 대학원생들이 열심히 한 결과에 대해 내가 대표로 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방사성물질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우라늄 핵연료를 감싸는 ‘고성능 지르코늄 핵연료피복관’을 개발하고 사업화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출신 학자로는 두 번째 수상자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노르웨이 할렌 연구용 원자로에서 6년간 검증시험과 국내 상용 원전에서 4년간 검증시험을 거쳐 성능이 입증됐다. 특히 원자력 연구·개발 사상 최고액인 100억원에 한전원자력연료에 이전돼 해외 수출 기틀도 마련했다. 세계 최대 원자력기업인 프랑스 아레바와 7년간의 국제 특허분쟁에서 최종 승리해 국내 원자력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한 공로도 인정받았다. 이 교수와 정 단장의 수상식은 다음달 2일 ‘2015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 개막식에서 열린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좋은 의사를 가려내는 법

      사실, 일반인이 몸이 아파 병원을 갈 때,특정 의사를 찾아서 가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병원 이름을 먼저 봅니다. “저 정도 병원이면 거기에서 진료하는 의사야 당연히 뛰어나겠지”라고 믿는 것이지요. 물론 지명도가 높은 의사에게는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 서울의 내로라 하는 대학병원 전문의 중에는 벌써 1년 이상 진료 예약이 밀려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겠다고 예약진료를 신청하면 “진료 예약일이 2016년 2월 17일 입니다” 이런 식의 예약 통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정이 급하지 않다면야 못 기다릴 것도 없겠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가 의사 한번 만나기 위해 1년 정도를 기다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요. 물론, 그 병원도 아픈 환자더러 1년 후에 오라는 뜻으로 예약을 받아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약조차 받지 않는다면 비난이 쏟아질테니 “상황이 이렇습니다. 알아서 판단하세요” 정도의 의미로 예약신청을 받아주는 것이겠지요.  좋은 의사를 찾는 것은 환자의 권리  이 대목에서 ‘좋은 의사’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참 판별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얼굴만 보고, 또 입소문만 듣고 의사의 좋고 나쁨을 가늠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그래서는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사가 모두 같지 않으니 어쩌면 환자의 생사가 걸린 국면이라면 그 중 ‘누가 좋은 의사인가’를 가리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를 두고 ‘의사들 등급 매기기’라고 폄하할 일은 아니지요. 내 돈을 들여 치료받는 의료 수요자들이야 아무리 하찮은 병이라도 보다 나은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어 하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하고 또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병을 꼭 치료하고 싶다면 인품이나 취향을 따질 것 없이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의사를 택하면 될 것이고, 당장 목숨이 걸린 병은 아니지만 치료 절차가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병을 가졌다면 당연히 좀 더 친절한 의사에게 마음이 끌릴 것입니다.    유능한 의사를 찾는 게 중요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의사의 기준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기준은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의사입니다. 누가 뭐래도 의사는 병을 정확하게 진단할 줄 알아야 하고, 병증에 따라 가장 적합한 치료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에 더해 자신의 진단과 치료를 통해 병증의 개선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짚어야 할 문제는, 지금도 수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무능이나 성실하지 못한 태도, 안일함이나 장비의 문제 등으로 생각보다 많은 오진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진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치료로 이어지는데, 그러고도 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환자야 당장 오진 여부를 알기도 어렵고, 설령 오진 사실을 알더라도 대부분은 문제 삼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밉든, 곱든 나를 치료해주는 사람한테 밉보여 득될 게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유능한 의사를 찾아내는 일은 환자에게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의사에게는 실력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이 대목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가령, 실력은 좀 떨어지지만 친절하고 성실해 환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의사와, 실력은 있지만 환자에게 친절하거나 성실하지도 않은 의사를 어떻게 견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상상이라고 했지만 이 상황은 현실입니다. “실력을 좋은데 사람 됨됨이가 영…”인 의사도 많으니까요.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좀 기분 나쁘고, 병의 경과를 설명해 주지 않아 답답하더라도 잘 낫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후자를 고르는 데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병 정도면 어떤 의사라도 다 고만고만 치료할 수 있으니 맘 편하게 해주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면 전자를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실력도 좋은 데다 좋은 품성까지 갖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런 의사가 흔치 않으니 고민이지요.  문제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열에 여덟, 아홉은 의사의 능력이나 됨됨이 등을 따로 따지지 않고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의료도 경쟁이라지만 실력이 부족한 의사가 더 성찰하고,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인성이 비뚤어진 의사가 자신을 되돌아볼 생각을 못하게 되고, 여기에서 배태된 문제는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이런 의사도 있긴 합니다. 제가 아는 대학병원의 의사 한 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찬바람이 쌩∼돌만큼 냉랭하고 단호합니다. 그러니 회진 때나 외래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그 의사에게 말 한 마디 붙이려 해도 쭈뼛거리기 일쑵니다. 그러나 우연히 사사로운 자리에서 만난 그 분의 속내는 전혀 달랐습니다. 원래는 무척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젊은 시절, 환자를 큰 시야에서 살피지 못해 몇 번 아픔을 겪었고, 그 때부터 일부러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환자의 상태를 보게 되더라구요. 그 후 저는 환자에게 일부러 살갑게 굴기 보다 그 환자가 가진 질병 치료에 전념하는 게 내 일이고,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임을 깨달은 거죠. 그렇다고 환자에게 할 얘기를 안 하는 건 아녜요. 필요한 얘긴 다 하는데, 환자들이 그런 저를 좀 어렵게들 여기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또다른 의사는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의사 말을 잘 들으면 건강하게 살지만, 의사를 따라서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없다’는.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의사는 전문적인 판단으로 환자에게 강요와 유사한 수준의 강한 권고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환자에게 가볍게 보이면 더러는 의사의 이런 지시까지도 가볍게 여겨 병을 키우기도 합니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환자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지요.”  전문적인 능력은 의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왜냐 하면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환부만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상처 난 마음까지 치료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환자는 마음의 병을 갖고 있습니다. 병이 크던, 작던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아픔은 십중팔구 마음의 아픔으로 전이되고, 그래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다들 눈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병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환자들이 유능한 의사를 만나 병을 고치는 건 정해진 치료 패턴입니다만, 그 유능하다는 의사들도 어지간하면 개입하기 싫어하는 게 바로 환자의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안 보이니 딱히 치료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애매한 마음도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금방 치료책이 손에 잡힙니다. 마음에는 마음으로 대응하는 것이 상책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환자에게 “이 병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든가 “최선을 다할테니 걱정 말고 같이 노력해 보자”라든가, 아니면 “어렵지만 함께 애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등 치료 결과에 상관없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말 한 마디가 바로 처방전에 적어낼 수 없는 명약이지요. 그런 의사의 마음씀이 때로는 어떤 약이나 치료보다 효과적으로 환자의 병을 고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의사들이 말하는 “의사는 치료로 말한다”는 인식은 너무 원리적이고 고답적입니다.  사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그들은 작다 못해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위안을 얻습니다. 그 감동과 위안이 질병의 치료에 자신감을 부여하고, 치료 효과를 키운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사가 환자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가를 따지는 것도 의사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병원이 ‘앓는 영혼의 양지’라면 의사는 ‘앓는 영혼의 구원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근엄하고 과묵한 의사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너무 근엄한 의사들이 제발 그 ‘근엄’ 좀 덜어냈으면 합니다. 아니, 온 나라, 방방곡곡에 근엄이 넘치니 수퍼갑은 언감생심 평생 갑 한번 되어보지 못한 을족들은 기가 죽어 몸 붙일 데가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 국회의원과 장·차관, 법률가, 교수, 심지어는 그러지 말아야 할 공무원과 경찰까지 근엄하기만 하니, ‘개콘’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에는 근엄한 사람과 근엄하지 않은 사람만이 있을 뿐”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오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면 근엄이라는 게 편리하기는 합니다. 눈 좀 내리 깔고, 적당하게 목을 곧추 세우고, 입꼬리를 아래로 바짝 땡긴 뒤 눈에 힘 좀 주면 그런 인상 자체가 넘기 어려운 벽이 되어 세상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들 접근하지 못하고, 내 구린 모습을 감추는 효과는 확실하지요.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근엄은 곧 소통의 단절이며, 이해의 고립일 뿐입니다. 그것을 편하게만 여기면 이내 고립의 수렁에 빠져 종국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위엄 속에 갇히고 맙니다.  그런 거추장스러운 근엄보다 생각을 좀 바꿔 쾌활 모드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꽉 닫힌 입꼬리만 풀어도 그걸 바라보는 환자들은 가슴 속의 얼음장이 풀리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없는 약을 먹여도 못 고칠 마음의 병을 한 방에 고칠 수 있다는데, 왜 한사코 그걸 마다 하고, 어려워들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릴없이 실실거리거나 넋이 나간 듯 헤헤거리라고 주문하는 건 아닙니다. 근엄의 빗장을 조금만 풀면 거기에 마치 석류알 같은 상큼한 명랑이 깃들 것이고, 그런 표정으로 환자들을 토닥거려 준다면 그가 바로 수많은 환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바로 그 ‘명의(名醫)’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까지 좋은 의사를 선별하는 나름의 기준을 제시해 봤습니다만, 의료계를 모르는 일반 환자들이 겪어보지도 않은 의사를 가리고, 품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입소문을 캐고, 더러는 줄도 대보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보려고 하면 보이는 게 또한 세상의 이치입니다. 당장 인터넷을 뒤져도 꽤 쓸만 한 정보가 많고, 그 보다 더 정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인터넷의 뉴스 정보를 뒤지는 것도 의미있는 정보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일선 기자들이 쓰는 기사는 대체로 기사 준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사실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매체의 기사를 일별하는 것도 좋은 의사를 가려내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 기사화할 연구 성과나 임상 실적이 없는 데도 무작정 대문짝처럼 펼친 기사는 배경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요새는 더러 광고성 기사가 신문에 버젓이 실리기도 하고, 또 특별한 능력도 없으면서 뻔질나게 공중파나 종편, 케이블 채널을 기웃거리는 ‘날탕’ 의사도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의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의사가 허접한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시덥잖은 소리나 해대고, 말도 안 되는 변설을 건강정보랍시고 늘어놓는 걸 보면 부아가 치민다”고요. 저도 상당 부분 공감하는 말입니다. 텔레비전에 얼굴 내미는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제가 봐도 하품 나올 ‘짓’들을 하긴 하더군요. 그래도 명색 ‘사’자 가진 전문직업인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방송에서 히히덕거리거나 거기서 한다는 말이 “햄버거도 좋은 걸 골라 먹으면 괜찮다”는 등 한심하다 못해 냉소를 자아내는 수준이어서 그렇습니다.  수많은 불특정 시청자가 보고, 듣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는 의사는 어떻습니까. 한 출연자가 “그러면 비타민제를 자주 먹는 게 감기나 독감 예방에 좋겠네요?” 그러자 의사라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비타민은 인체의 면역 기능을 강화해 당연히 감기 예방효과가 있지요.” 제 생각에 그가 제대로 된 의사라면 비타민을 자주 먹으라고 말하기에 앞서 “평소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기초체력을 다지고, 손을 자주 씻으며,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는 게 보다 정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 의사가 정답을 몰랐을 리는 없으니 그렇게 말했다면 일단 ‘저의’를 의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거기에서 보고 듣는 게 다 정답이고, 진실이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바보되기 십상입니다. 왜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하는지 곰곰 되짚어 볼 일이지요. 인터넷은 어떠냐구요?그거야 많은 부분을 신문이나 방송 컨텐츠를 모아서 전달하는 것이니 신문,방송과 다를 게 없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허접한 방송 프로나 광고성 신문기사 보고 의사를 고르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 스포트라이트의 그늘 속에 숨어있는 좋은 의사가 훨씬 많다는 사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성폭행뒤 “내 아내들”... 이스라엘 교주 금고 30년 선고

    성폭행뒤 “내 아내들”... 이스라엘 교주 금고 30년 선고

    최소 21명의 여성신도를 성폭행하고 그들로부터 태어난 38명의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해온 혐의로 체포됐던 이스라엘의 한 종교지도자가 금고 30년형을 선고받았다고 AFP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스라엘 텔아비브 법원이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종교집단의 교주인 고엘 랏존(64)에 금고 30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지난달 선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엘 랏존의 변호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구원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고엘 랏존은 2010년 자신이 아내라고 주장하고 있는 21명의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38명의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노예처럼 부리는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단 한 번도 정식으로 결혼한 적이 없다. 한편 법원은 피고에 대해 여성과 소녀 6명을 수차례 성폭행하는 등의 성범죄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아이들을 노예화했는지 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스카이뉴스 영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프로야구] 준PO 3차전…LG “오늘 끝낸다” NC “아직 아니다”

    [프로야구] 준PO 3차전…LG “오늘 끝낸다” NC “아직 아니다”

    찰리(NC)가 구할까. 리오단(LG)이 끝낼까. 홈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PO) 1, 2차전을 모두 내줘 벼랑 끝에 몰린 NC가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예정된 3차전 선발로 외국인 에이스 찰리를 23일 예고했다. 반면 3연승으로 시리즈를 끝낼 찬스를 잡은 LG는 역시 외국인 투수 리오단을 내세웠다. 올 시즌 12승(8패)으로 팀 내 최다승을 올린 찰리는 NC 선발진 중 가장 믿음직한 존재. 평균자책점도 3.81로 가장 낮다. 당초 토종 에이스 이재학에 이어 2차전 선발로 예정됐으나 이틀 연속 우천순연된 탓에 3차전으로 등판이 밀렸다. 찰리는 올 시즌 LG를 상대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5경기에 나와 35와3분의2이닝이나 던지는 등 LG와 잦은 대결을 펼쳤고 2.52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승운이 따르지 않아 1승에 그쳤지만 이 승리가 노히트노런이었다. 6월 24일 잠실전에서 삼진 7개를 낚으며 사사구는 3개만 허용, 11년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올해가 국내무대 첫해인 리오단은 ‘NC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첫 대결이던 6월 26일 잠실전에서 4안타 무실점의 완봉승을 따내더니 8월 15일 잠실전에서도 6이닝 1실점(1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LG를 상대로 평균자책점 0.60, 피안타율 .167의 ‘짠물’ 피칭을 했다. 결전지가 잠실인 것도 둘에게 나쁘지 않다. 잠실에서 네 경기에 등판한 찰리는 1승1패 평균자책점 2.79로 잘 던졌다. 사직(1승1패 평균자책점 0.90)과 목동(2승 2.19)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29이닝 동안 홈런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잠실이 홈인 리오단 역시 좋은 기억이 많다. 시즌 전체 승리 9승 중 8승을 잠실에서 따냈다. 20경기에서 122와3분의2이닝이나 던질 정도로 익숙한 구장이다. 등판 경험이 없는 마산보다는 훨씬 편한 마음으로 피칭할 수 있다. 결국 둘이 미뤄진 등판 일정에 따른 컨디션 조절을 얼마나 잘했는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2차전을 내리 내준 NC가 불리해 보이지만 역대 사례를 보면 희망이 있다. 5전3승제로 치러진 7차례 준PO에서 1~2차전을 연거푸 내준 팀은 네 팀이 있었는데 이 중 두 팀은 뒤집기에 성공해 PO 진출을 일궜다. 특히 김경문 NC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인 2010년 홈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롯데에 내줬지만 3~5차전을 내리 따낸 기억이 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증세에 꽂힌 ‘피케티 신드롬’ 난, 반댈세

    증세에 꽂힌 ‘피케티 신드롬’ 난, 반댈세

    ‘닭(불평등 해소)이 먼저냐 달걀(성장 우선)이 먼저냐.’ ‘피케티 논쟁’이 출판계를 중심으로 연일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경제학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토마 피케티(43) 파리경제대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글항아리)의 한국어판 출간이 이 논란에 불을 댕겼다. 분배구조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누진소득세와 누진자본세를 물려야 한다는 피케티의 급진적 주장에 출판계와 학계, 심지어 정치권까지 싫든 좋든 찬반 양론의 한복판에 빠져든 분위기다. 12일 ‘21세기 자본’이 서점가에서 공식 출간되면서 피케티의 위력은 점차 전선을 확대하는 기세다. 저자와 출판사 간 미묘한 신경전 탓에 국내 출간일이 하루 늦춰지긴 했으나 이미 예약 판매 5000부를 넘겨 3쇄까지 모두 4만부를 찍은 상태다. 피케티는 오는 18일 방한해 포럼과 강연에 나설 예정이어서 태풍은 강풍으로 돌변할 모양새를 띠고 있다.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피케티 이론은 정치권에서도 신랄한 논거가 되고 있다. 지난달 국회 세미나에서 여당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피케티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옹호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학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장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에서 프랑스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피케티식 경제해법이 득세한다면 경제의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피케티는 오는 19일 국내의 한 경제포럼에 참석해 ‘레이거노믹스’를 이끈 우파 경제학계의 거두 로런스 코틀리코프 미국 보스턴대 교수와 맞짱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피케티의 주장은 지난 300년간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소득과 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소수의 부유계층에 자본이 집중돼 분배구조의 불평등이 악화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세습 자본주의’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에 대한 반격은 진앙지인 출판계 쪽에서 가장 드세다. 국내 우파 자유주의 학자 7명은 ‘피케티 열풍’의 확산에 맞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백년동안)를 최근 펴냈다. 이들은 오는 16일과 18일 서강대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잇따라 강연을 열 계획이다. 경제학, 철학, 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가들이 저술한 이 책은 소득과 부의 분배 구조 변화를 실증적으로 추적한 피케티의 주장이 지나치게 직관적이라며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 이를 바라봐야 한다고 비판한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과연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피케티의 주장대로, 정부(통제)가 효율적이었던 역사가 있기는 한가”라고 지적한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자본성장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것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공식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실상은 많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또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불평등이야말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경쟁의식과 동기부여가 성장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피케티 저격수를 자처하는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의 ‘위대한 탈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한경BP)도 ‘21세기 자본’과 동시 출간되며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디턴 교수는 “피케티의 저서는 사회주의 경제정책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저자가 이미 실패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본떠 쓴 정치경제학 저술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글항아리는 ‘21세기 자본’에 이어 이를 둘러싼 세계적 논쟁을 소개하는 ‘피케티 패닉’을 이달 말 출간할 예정이다. 이런 ‘피케티 신드롬’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재림’ 혹은 ‘자본주의의 구원자’로 불리는 피케티는 지난해 8월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21세기 자본’의 번역본을 지난 3월 미국에서 발간하며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700쪽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금융위기 이후 소득불균형에 주목해 온 미국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해외에서의 평가도 엇갈린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10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학 서적”이라고 극찬한 반면 보수성향의 정통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피케티의 주장은 완전히 추정치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국내에선 그동안 연구가 소홀했던 소득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20여개국을 대상으로 한 피케티의 분석에서 우리나라가 빠져 있는 데다 세금을 올리면 기업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국내 상황과 괴리가 있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교황이 남기고 간 메시지/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교황이 남기고 간 메시지/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운은 깊다. 몸은 이 땅을 떠나 바티칸으로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평화와 화해, 죽음의 문화가 아닌 삶의 문화와 돈의 세계화가 아닌 연대의 세계화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진정한 대안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나 대안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고 치부하며 살았다. 교황의 메시지를 들으며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다. 성경을 보면 유대의 아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며 말을 건네는 구절이 나온다. 예수의 말 건넴은 이방인과의 어떤 접촉도 금하고 있는 유대 율법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예수는 이방인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건네고 있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유대 율법 그 너머의 세계, 선민도 이방인도 없는 인류 보편의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끝에 유대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유대 율법사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의 형틀에 못 박힌다. 그러나 유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가 되고, 인류 또한 사해동포가 된다. 사해동포의 세계가 평화와 화해, 연대의 세계다. 이 틀이 천부인권과 인간 존엄의 기본 틀을 만들어 줬다. 이 귀중한 선물이 훼손되고 망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정학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크고 작은 경계선을 긋고 그 안에서 생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나 그 생의 방식이 동일하지는 않다. 경계선을 넘어 나와 다른 것들과 만나 소통함으로써 끊임없이 낡은 나를 새로운 나로 재창조해 나가는 평화와 화해의 삶의 방식이 있는가 하면 닫힌 마음으로 나와 다른 것들을 낯설어하며 낯설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공격하려고 하는 대결의 삶의 방식이 있다. 우리는 흔히 대결을 강자의 것으로, 화해를 약자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웃는 얼굴로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자가 약자일 수 없을 것이며, 핏빛 어린 눈동자로 대결을 부추기는 자가 강자일 수 없을 것이다. 대결의 길로 치닫는 자 그는 강한 척하나 약한 자이고 용감한 척하나 비겁자일 따름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로서 그것이 지역감정이든 아니면 미래에의 발전 비전이든 경계선을 넘어 나와 다른 것을 만나는 자는 새로운 것의 창조를 위한 거대한 기회의 축복을 받은 자다. 차이가 없으면 창조도 없다. 같은 것을 아무리 같은 것에 서로 보태도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없다. 남과 여의 차이가 없으면 새 생명의 탄생도 없다. 차이를 창조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며 나와 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이나 나와 다른 것을 소중히 여기며 나와 다른 것이라고 해서 이를 경멸 또는 사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강한 자이고, 용감한 자다. 나와 다른 것과의 만남은 제로섬의 게임이 아니라 윈-윈의 게임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것, 존엄성은 공존 이상의 것이라는 것, 정의가 없는 곳에서는 존엄성도 자유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매순간 확인하면서 타자와의 만남을 고마워하는 것들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요구들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갖고 있다. 공감의 능력이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너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기쁨과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공감의 능력이 있다. 공감의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사랑의 비약이 있고, 사랑의 비약이 있음으로 해서 생의 약동이 있다. 지금 우리는 이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불의에 분노하고, 세월호의 비극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분노와 눈물이 생을 약동케 하여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문화를 뒤로하고 화해와 평화, 연대의 세계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기본 추동력이 될 것이다. 조선왕조라는 봉건의 질곡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받아들였던 조상들의 음덕이 정말 꼭 필요한 때에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멀리 보고 가는 길에는 공명과 응답이 있다는 역사의 법칙과도 같은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를 깊이 깨우친다. 마치 “이래도 믿지 않겠니?”라고 외치는 것 같다.
  • [MLB] 24일 만에 등판한 류현진 시즌 4승

    [MLB] 24일 만에 등판한 류현진 시즌 4승

    어깨 부상의 여파는 찾아볼 수 없었다. 푹 쉰 덕인지 직구는 힘이 있었고, 제구력은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류현진(27·LA 다저스)이 복귀전에서 ‘삼진 퍼레이드’를 펼치며 시즌 4승에 성공했다. 류현진은 22일 시티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MLB)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출장, 6이닝 동안 삼진 9개에 9안타(1홈런) 1볼넷 2실점(2자책)으로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달 28일 콜로라도전 이후 무려 24일 만에 나섰지만 낯설어하지 않고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의 안정감 있는 피칭을 했다. 총 89개의 공을 던진 류현진의 가장 돋보였던 구종은 직구였다. 최고 151㎞를 찍었고 147㎞ 내외의 구속을 꾸준히 유지했다. 힘이 떨어진 6회를 제외하면 모든 직구가 145㎞ 이상의 스피드를 냈다. 지난달 콜로라도 전에서 대부분 145㎞ 밑을 맴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몸 상태가 확실히 회복된 듯했다. 류현진은 힘 있는 직구를 앞세워 1~4회 매 이닝 삼진 2개씩을 잡았다. 1회 첫 타자 후안 라가레스에게 연거푸 3개의 직구를 던져 유리한 볼 카운트를 만든 뒤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이끌었다. 3회 2사 만루 위기에서는 커티스 그랜더슨을 150㎞의 직구로 삼진 처리했다. 6회 병살타로 투 아웃까지 잡은 뒤 에릭 캠벨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것은 옥에 티. 그랜더슨을 우전안타로 내보낸 류현진은 볼 카운트 원 스트라이크 투 볼에서 캠벨에게 134㎞짜리 체인지업을 던졌으나 밋밋하게 들어갔다. 지난 10일 빅리그에 데뷔해 이날이 일곱 번째 경기였던 신예 캠벨은 실투를 놓치지 않고 개인 통산 첫 홈런의 감격을 맛봤다. 이 홈런으로 류현진은 33이닝 동안 이어오던 원정 경기 무실점 행진을 마감했다. 1988년 오렐 허샤이저(41이닝), 2003년 기예르모 모타(37이닝)에 이어 다저스 구단 사상 세 번째 기록을 세운 것에 만족해야 했다. 2점대로 내려앉았던 평균 자책점은 다시 3점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류현진은 앤서니 레커를 루킹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마쳤고, 7회부터는 브랜든 리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다저스 타선은 아드리안 곤잘레스와 야시엘 푸이그, 핸리 라미레즈가 차례로 솔로홈런을 터뜨려 류현진의 승리를 도왔다. 리그와 브라이언 윌슨(8회), 켄리 잰슨(9회)으로 이어진 불펜도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류현진의 승리를 지켰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은 경기 후 “류현진의 공이 좋았고 날카로웠다. 기대했던 대로였다”며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류현진의 투구 영상을 메인 화면 중 하나로 내걸었고, 지역 유력 언론인 LA타임스는 “휼륭한 복귀였다. (부상으로)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많은 공을 던져 팀 승리를 이끌었다”고 호평했다. 현지 중계진은 경기 전부터 “커쇼가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 류현진은 투수 로테이션의 구원자였다. 이제 그가 돌아온다”면서 류현진 등판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오늘의 선수는 단연 류현진이다”고 호평하면서 “그는 정말 끝내줬다”며 감탄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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