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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은 민족의 자부심… 후손 위해서라도 소중히”

    “기록은 민족의 자부심… 후손 위해서라도 소중히”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역사 없는 민족은 존재할 수 없다.우리의 기록문화 전통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찬란하다. 지난 7월 세계기록유산에 새로 등재된 동의보감을 비롯해 조선시대 대표 기록유산인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등 총 7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근현대로 넘어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록문화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정부든 민간이든 기록의 가치를 무시하고 외면해 왔다. ●생생한 증언 통해 기록하는 ‘구술사’ 방식 선택 국내 첫 현대사 기록연구 분야 사단법인인 현대사기록연구원이 지난 9일 창립 1주년을 맞았다. 현대사기록연구원은 민간 차원에서 현대사를 기록해 사료화하고, 기록문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넓히기 위해 설립됐다. 13일 서울 교남동 사무실에서 만난 송철원(67) 이사장은 “해방 직후에는 생활이 곤궁해서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할 겨를이 없었고, 1970년대 이후엔 군사독재 정치로 인해 통치자들이 기록을 두려워한 측면이 컸던 것 같다.”면서 “기록은 장기적으로 민족의 자부심인 만큼 미래 후손을 위해서라도 소홀히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송 이사장의 신념은 그의 개인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시절 6·3 항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서울시립병원장이었던 부친 송상근(97)옹은 아들이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가담한 1964년 3월24일부터 1971년 11월13일까지 6·3항쟁에 관한 각종 보도문과 선언문, 재판기록, 서신 등을 빠짐없이 스크랩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무려 42권이다. 송 이사장은 40년 넘게 보관해온 이 자료를 지난해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 그리고 국가기록원으로부터 6·3항쟁에 대한 기록을 위임받으면서 현대사기록연구원을 설립했다. 현대사기록연구원은 다양한 기록방식 가운데 구술사 연구를 택했다. 6·3항쟁 주도자들이 대부분 생존해 있는 지금,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당대를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이다. 구술사 연구는 ▲기록 대상 사건 선정 ▲기록물 현황 및 관련자 생존 여부 조사 ▲증언채록 인물 선정 ▲증언 녹화· 녹취 ▲정리·해제 등의 과정을 거친다. 녹취 후 교정과 검수는 필수이며, 검색을 쉽게 하기 위한 색인 작업도 병행한다. 송 이사장은 “연구원은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기록에만 매진할 뿐 가치 평가는 후대 사학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개인 기록까지 사료화하는 사업 추진 설립 1년 만에 제법 굵직한 연구 용역 사업도 여러 건 따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10년 프로젝트인 ‘1945~2002년 한국정당정치사’ 구술연구 사업을 비롯해 ‘60·70년대 경제 고위관료’ ‘70·80년대 해직언론인’구술 자료 수집(국사편찬위원회), ‘역대 대통령 관련 구술채록’ ‘경부고속도로 건설 관련 구술’(국가기록원)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송 이사장은 “올초만해도 돈은 안 되고,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라 사무실을 접을 생각까지 했는데 다행히 공개 입찰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현대사기록연구원은 기록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개인의 기록까지 사료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송 이사장은 “영웅이 없는 현대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역동적일 수 있다.”면서 “누구의 삶이든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한국춤문화 자료원 건립 탄력

    ‘한국춤문화자료원’을 건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공연예술, 박물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춤자료원(아카이브) 현황을 점검하는 심포지엄을 여는가 하면 이와 관련해 예술인 구술채록을 주제로 한 국제워크숍도 마련한다. 먼저 한국무용기록학회가 16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여는 국제학술심포지엄 ‘춤유산의 저장고:세계 춤아카이브의 현황’. 미국, 독일, 이스라엘, 중국, 일본, 한국 등 6개국의 춤과 예술 아카이브 기관장 및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춤아카이브 건립이나 운영의 성공사례를 통해 한국춤문화자료원 건립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의 춤자료관인 뉴욕 공립 공연예술도서관의 댄스컬렉션을 비롯해 이스라엘 무용도서관, 독일 라이프치히 무용아카이브, 중국 무용박물관, 샌프란시스코 공연 및 디자인 박물관, 일본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 대표와 전문가들이 방한한다. 한국에서는 공연예술박물관을 건립중인 국립극장 공연예술자료관, 디지털아카이브를 구축중인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한국춤문화자료원을 계획중인 심소 김천흥 기념사업회의 연구원들이 자리를 함께한다. 17일 무용인류학자인 애드리언 캐플러(스미소니언박물관 오세아니아 민족학 큐레이터) 박사의 특별강연 ‘세계화 시대에서의 춤연구’와 17∼20일 아르코예술정보관 3층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국제워크숍 ‘예술인 구술채록 방법론’도 관련 행사. 캐플러 박사는 춤인류학 연구의 최신 경향을 통해 춤아카이브 건립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세계적 연구 동향을 소개할 예정이다. 17∼20일 한국무용기록학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개최하는 국제워크숍은 아르코예술정보관의 지난 5년 간 구술채록사업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예술구술사의 현황을 짚는 자리. 참석자들은 샌프란시스코 공연 및 디자인박물관의 사례를 중심으로 각국의 예술구술사 연구 동향과 전망을 공유할 예정이다. 특히 ‘세계 무용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애드리언 캐플러 박사를 비롯한 무용, 음악, 연극, 인류학, 기록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한국춤문화자료원 건립을 놓고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에서 국내외 공연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1977~86년 민중가요 악보 한눈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민중가요 기본 콘텐츠 수집사업’의 하나로 민중가요 악보집 ‘노래는 멀리멀리’를 발간했다.1977∼86년 사이에 불려진 민중가요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2권의 책자에 나눠 담았다.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1970년대부터 등장한 민중가요는 80년대를 거치면서 학생, 노동자, 농민 등 광범위한 계층의 입을 통해 불려졌다. 민중가요는 노래라는 형식이 지닌 친화력과 파급력이 큰 만큼 민주화운동의 정당성과 대중성을 알리는데 큰 몫을 했다. 이 악보집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공장의 불빛’‘광야에서’‘금관의 예수’‘노동해방가’등 당시 널리 불려진 민중가요를 비롯해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부른 포크송과 민요, 가곡, 팝송 등 모두 800여 곡이 수록됐다. 김민기·문승현·안혜경 등 민중가요 창작자 40여 명의 구술채록 과정에서 많은 비화가 쏟아진 것도 적지 않은 소득.‘임을 위한 행진곡’의 경우,1982년 광주에 거주하던 소설가 황석영의 자택에서 녹음한 카세트를 복사하기 위해 화가 홍성담과 문화운동가 전용호가 원본 테이프 하나씩을 가슴에 숨기고 5m 간격을 두고 운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작자 미상이던 ‘민족해방가’‘투사의 노래’ 원작자가 이형석(46)씨라는 사실도 드러났다.1981년 동국대학교 1학년 재학중이던 이씨는 “민족해방가 가사 내용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기도 했다.”며 “가슴에 있는 정신을 모든 사람과 함께 향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고 작곡자로 나서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민중가요 수집사업을 총괄한 서정민갑(35)씨는 “80년대 후반 일부 민중가요가 선별적으로 자주 불려지면서 그 외의 노래들은 지워졌다.”며 “70,80년대 모든 민중가요 악보집을 수집·정리, 당시 노래운동의 전체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업회는 올해 안에 89년까지의 민중가요를 정리한 악보집을 발간하고 내년에는 89년에서 92년 사이에 불려진 민중가요 악보집도 낼 계획이다.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구술사는 새 역사 기록에 초점 모아야”

    “구술사는 새 역사 기록에 초점 모아야”

    ‘구술사(Oral History)’가 유행이다.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덩치 큰 기관들이 구술채록사업이라는 걸 하더니, 몇개 대학 연구소가 뭉친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은 아예 ‘무지렁이 촌 것들’의 증언만 따로 모아 아카이브(정보창고)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광복 60년을 맞아 KBS는 8·15 광복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TV구술사’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최근 충남대 연구팀은 부여 장정마을, 연기 솔올마을, 태안 개미목마을에 대한 구술사 연구성과를 ‘충남지역 마을지 총서’라는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처럼 새로운 방법론으로 최근 10여년동안 훌쩍 커진 구술사는 그 덩치만큼이나 단단한 골격도 갖추고 있을까.‘새로운 역사쓰기를 위한 구술사연구방법론’(아르케 펴냄)의 저자 윤택림 박사를 만났다. “구술사의 목표는 기존 역사의 보완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맞춰져야 합니다. 단순히 보통사람들의 얘기를 모아두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 구술사는 지난 10여년간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필요하긴 한데 충분하진 못하지요.” ●진술자료 생산·유통에 대한 성찰 필요 윤 박사는 우리 구술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구술사 비판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어떤 한 사람의 진술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비판, 더 깊게는 구술사 역시 구술자와 연구자의 편견이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특히 일반사람의 말을 기록하기에 구술사는 ‘겸손한 역사’같지만, 실제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기에 외려 연구자의 권력이 더 많이 개입한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학에서는 흔히 구술사 자료가 불안정하고 고증이 안됐다고 합니다. 구술사의 장점은 오히려 바로 그 지점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게 구술사입니다. 그냥 진술만 모아둘 게 아니라 그 자료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자기성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구술사 자료와 실제 문헌고증의 결과가 다르면,‘역시 구술사는 믿을 수 없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왜 사실과 다르게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사실’ 그 자체보다 ‘의미를 부여한 맥락’까지 파헤칠 수 있는 게 구술사라는 얘기다. 윤 박사는 실제 생활문화사에 도전하고 있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한창 작업 중인 ‘부엌의 문화사’ 같은 것들이다.“예를 들자면 60∼70년대 입식부엌에 싱크대가 들어서면서도 여전히 좌식식탁을 고수하는 풍경 같은 것이죠. 그에 따라 음식의 배열과 사람의 배열이 어떻게 바뀌는지, 또 그로 인해 가족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분석하는 겁니다.” 그러나 생각보단 쉽진 않다.“‘사건’은 잘 기억하지만 ‘일상’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거든요. 구술자료를 어떻게 분석해 개념화할지 고심 중입니다.” 그러고 보면 서점에서 ‘∼의 문화사’라는 꼬리표를 단 외국 책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도 곧 그런 책을 맛 볼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구술사 연구센터 세워 형식 표준화 절실 윤 박사가 바라는 바는 궁극적으로 구술사 연구집단이 안착할 수 있는 ‘구술사 연구센터’ 같은 것이 생기는 일이다.“연구센터를 중심으로 구술자료 형식의 표준화를 이뤄내고, 구술사 방법론을 쓰는 연구자들에게 이를 교육시킬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원래 사학을 전공했던 윤 박사가 어떻게 구술사에 빠져들었을까.“모든 사람을 역사의 주체로 불러내면서, 그들 모두에게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는거죠.”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대의 증언’채록 2권 출간/ 현대사 공백 메우는 ‘구술역사’

    한국 근세사를 치열하게 산 ‘시대의 증인들’의 구술이기록돼 단행본으로 나왔다. 도서출판 선인은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편)과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김석형 구술,이향규 녹취·정리)를 동시에 펴냈다.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은 정신문화연구원이 구술자료총서 제1권으로 독립운동가,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정치인,군 원로,비전향장기수,원로 음악가 등 8명의 ‘예사스럽지 않은’ 개인사를 기록한 것이다. 조문기(75) 선생은 일제하 마지막 국내의열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는 ‘부민관 폭파사건’의 주모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독립운동’은 계속되고 있다.그는 작년부터 친일파 전문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타계한 송남헌 선생은 1943년 ‘경성방송국 단파방송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미군정 당시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의장을 지낸 우사 김규식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1948년 남북협상때 우사를 모시고 방북한 인물. 교사출신으로올해 91세인 김선 할머니는 해방후 정당에서 활동한 기억을 증언하고 있으며,일본 니혼대학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소위로 해방을 맞은 백남권(79)예비역 장군은 1943년 11월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이 도툐로 건너와 “학병 나가라”고 권유연설을 하길래 춘원에게“옛날의 이광수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3공 당시 내무장관 3회,체신장관 1회,교통장관 1회 등 한정권에서 무려 다섯번이나 장관을 지낸 박경원(78)전 장관은 창군시절,한국전쟁,5·16과 정치참여 등을 비교적 진솔하게 토로했다. 함북 학성 태생으로 북한 김책공대 출신의 비전향장기수 최하종씨(74)는 1963년 5·16주체세력이자 당시 현역 사단장이었던 숙부 최주종씨(작고)를 만나 통일문제를 협의하려왔다가 체포돼 반공법위반으로 35년간 감옥생활을 마치고지난해 9월 평양으로 송환된 인물이다.이밖에 남쪽출신의비전향장기수 허영철씨(81),음악계의 원로 박용구씨(87) 등의 숨가쁘게 살아온 생애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었소!’는 이규향 박사(경남대 북한대학원 객원교수)가 작년 9월 2일 평양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63명 가운데 한 사람인 김석형씨(87)의 구술을 5년간에 걸쳐 채록,정리한 것이다. 김씨가 자신이 죽거나 북으로 송환된 뒤에 공개해 달라고요청해 그동안 이박사의 서랍속에 잠자고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정신문화연구원의 구술채록작업 실무책임자인 정용욱 교수(민족문화연구팀장)는 “구술자료는 기억의부정확성,주관성 등으로 인해 검증과 치밀한 비판이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자료제공과 묻혀진 과거사 복원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역사적 인물의 구술을 채록하는 작업은 공식적인역사기록의 ‘사각지대’를 메운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특히 외세지배와 분단상황으로 점철된우리 현대사의 경우 곳곳에 공백지대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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