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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보보좌관 라이스 2대 걸쳐 충성 외교고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에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46)는뛰어난 두뇌와 추진력을 겸비한 조지 W 부시 새 행정부의 ‘떠오르는스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줄곧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며 부시의 ‘외교 가정교사’역할을 맡아왔다. 이같은 연유로 그는 “정치는 소모적인 것”이라는 평소 신조와 캘리포니아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부시 당선자와 함께 백악관으로 입성하게 됐다. 부시가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그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행정부하에서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구소련 담당 책임자로일한 바 있어 2대에 걸쳐 부시가문의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게 된 것. 한편 흑인으로 미혼인 그녀는 공화당의 흑·백 화합과 포용정책을상징하는 인물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문제 해결에도 큰 힘을 발휘할것으로 기대된다. 흑인 인권운동의 발원지인 남부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을 몸소 경험하며 성장했지만 그는 피아노와 책을 가까이 하면서항상 진취적인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고등학교 시절엔 스케이트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15세 노트르담대에 입학,어머니의 뜻에따라피아노를 전공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자 이내 외교정책으로 전공을 바꾸고 26세 때 소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81년부터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했다.89년 NSC의 소련 및 동유럽 담당책임자로 전략무기 감축 협상을 위해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간의 역사적인 미-소 정상회담의 준비과정에 참여했고 93년부터 스탠퍼드대 행정담당 부총장직을 맡아오는 등 화려한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동미기자 eyes@
  • [대한시론] 한민족 다국가 연합

    지난 6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통일방안은 남쪽의 1민족 2국가안,이른바 국가연합안과 북쪽의 1민족 1국가 2정부안,이른바 연방제안이었다(6월15일 남북정상 합의문에 나오는 ‘낮은단계의 연방제안’은 그 구체적 설명이 없어 어느 안인지 불확실하다). 남쪽의 안이 1민족 다국가를 전제로 하는 데 대해 북쪽의 안은 1민족 1국가를 고수하려는데 양자의 차이가 있다.국가의 구성을 보면 단일국가가 보통이지만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구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 등으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과 같이 다민족 다국가연합이 있고,민족과의 관계에서 보면 1민족 1국가 이외에도 중국이나 미국과같은 다민족 1국가,독일이나 오스트리아와 같이 1민족 다국가도 있다.그러므로 어떤 국가를 구성하느냐는 국가 구성원의 결단에 의하는것이지 논리 필연적 결론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2차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 분단국에서 통일된 나라들로서는 베트남과 독일이 있다(예멘은 2차대전 이전에 분단되었다가 통일된 경우다).베트남은 프랑스 및 미국이라는 외세에 의하여 강제로 분단되었다가 베트남 민족의 해방전쟁에 의해 통일된 경우고 독일은 2차 대전을 유발한데 대한 응징차원에서 연합국에 의하여 강제 분단되었다가 일종의 응징기간의 경과에 의하여 다시 통일이 된 경우다.거꾸로통일국가에서 분열된 나라들도 적지 않은데 인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졌다.유고슬라비아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세르비아를 주축으로 한 신유고연방으로 나뉘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열됐다.인도의 경우에는 힌두교와회교의 종교의 차이로,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에는 주로 민족문제와 종교문제로 분열되었다. 우리나라가 통일신라 이후 1,000년 동안 한반도에서 단일국가를 형성하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따라서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1민족 1국가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것은 틀림없지만 6·25전쟁에서 같은 민족이 양편으로 나뉘어 3년동안 총칼을 겨누었고 그후 50년동안 사상과 이념을 달리한 상태에서갈라져 살아 왔다. 지난 50년간 남쪽은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경제를 완성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데 반해 북쪽은 자본주의와 정반대되는 주체적 사회주의를 완성하였다.그러므로 현재의 남북한 주민은 핏줄과 언어를 같이 할 뿐 사상,생활방식 등에서는 전혀 공통성을같이하지 못하고 있다.어떤 면에선 종교를 달리하는 인도와 파키스탄보다도 더 큰 이질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질성을 도외시한채 1민족 1국가로 통일한다면 누가 제2의 6·25 전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 있겠는가(예멘의 경우는합의에 의해 남·북 예멘이 통일된 후 내부분쟁으로 전쟁을 통해 재통합되었다).통일은 그 형태를 어떻게 하든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의동질성을 유지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각자의 삶을 보장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남북한 주민들의 생활의 동질성이 이루어지고 6·25 전란의 참화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가 존재하는 한 남과 북은 현재와 같은 별개의 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하는 1민족 2국가연합안이 가장 좋은 통일방안이 될 것이다. 중국이 홍콩과 마카오를 통합하면서도 적어도 50년간 이들에 대해종전 체제를 보장한 가장 큰 이유는 양 체제 사이의 경제적 격차 해소시기를 50년 정도로 본다는 데 있는 것이다.우리의 경우에도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해소될 때까지는 체제의 통합은 미루어야할 것이다.현재의 통일로 향한 물꼬는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고통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소망과 발전의 디딤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강 현 중 국민대교수·변호사
  • 美 공산당 당수 거스 홀 사망

    [워싱턴 AP 연합] 수년간 투옥과 동유럽 공산정권들의 붕괴에도 아랑곳없이 공산주의의 이념을 철저하게 고수해온 미국 공산당수 거스홀이 13일 사망했다.향년 90세. 공산당원인 스콧 마샬은 16일 홀이 뉴욕 맨해튼 소재 리녹스 힐 병원에서 당뇨병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흘 전 사망했다고 밝혔다. 1926년부터 공산당원으로 활동해온 홀은 동유럽의 공산사회와 소련의 해체 후에도 결코 그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공산사회의붕괴를 통렬히 개탄했다. 그의 혁명적인 신념은 8년 반 동안의 투옥생활중 더욱 굳어졌다.미국 공산당 운동과 동의어가 되다시피한 홀은 1949년 연방정부 폭력전복 교사 공모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보석중 멕시코로 달아났다가 다시체포돼 송환됐으며 1950년대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59년 감옥에서 출소한 뒤 공산당 의장에 선출됐으며 구소련의 최고훈장인 레닌훈장을 받았다.
  • ‘파두여왕’ 로드리게스 국립묘역 안장키로

    [리스본 AFP 연합] 포르투갈 의회는 13일 포르투갈의 대표적 가요인 ‘파두’의 여왕으로 추앙받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유해를 국가위인들을 안장한 국립 판테온으로 옮기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로드리게스는 50년 이상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가수로 활약하다 지난해 10월6일 79세의 나이로 작고했으며 유해는 리스본의 프라제레스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자녀가 없는 그녀는 모든 재산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과 사회단체,장애자보호기관 등에 남겼으며 당시 안토니오 구테레스 총리는 3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기도 했다.안토니오 알메이다 산토스의회 의장은 지난 주 아말리아 1주기 행사 뒤 “아말리아를 알았던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런 일이었다”이라고 말했다. 1920년 리스본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로드리게스는 과일 장사와 재봉일로 9형제를 부양하다가 직업 탱고 무용수로 나섰으며,리스본 노동자들의 축제에서 카를로스 가르델의 탱고곡들을 부른 것을 계기로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40년 정식 가수로데뷔했다.그녀는 2차 세계대전후명성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브라질과 스페인,프랑스,영국 등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졌으며 50년대와 60년대에는 일본과 구소련,미국 등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녀가 취입한 170장의 앨범은 세계 30개국에서 판매됐으며 프랑스감독 앙리베르뇌이의 ‘테주강의 연인들’을 비롯,많은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 [시론] 노벨평화상의 한국적 과제

    해마다 이맘때 노벨상 수상자가 결정되면 우리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리고 언제쯤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수 있을까 기대했던가. 그러한 꿈과 기대가 마침내 실현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이 노벨상을받게된 것이다. 노벨상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평화상을 받게되었다. 당사자는 물론 남북한 온겨레와 세계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 모두의 영광이고 축복이다. 예외의 경우가 없는 바 아니지만 노벨상도 스포츠와 함께 국력이란말이 있다. 일본만해도 올해까지 9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훌륭한 인물은 바로 국력이다. 과거 영국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노라고 말할만큼 출중한 인물은 바로 국력이고 국가의 명예이며 자존심이다. 구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또 하나의 국가론’을 폈다. 전체주의 소련과 다른,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국가안의 또 다른 국가라는 뜻이다. 노벨상 창설100주년에 21세기의 첫 노벨평화상을 한국인이 받게된것은 여러가지 상징성을 띤다. 그동안 전쟁과 독재에 시달리면서 국제사회에 어둡고 불안한 이미지로 비쳐진 한반도가 남북화해 협력에이어 노벨평화상 수상은 새로운 평화시대를 의미하며 21세기 한반도중심국가의 도래를 상징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벨평화상의 효용성은정치경제학적 계량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동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노벨상을 둘러싸고 로비설을 비롯하여오슬로에 몰려가서 선정을 반대하겠다는 시위론이 제기되는가 하면심지어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기위해 남북문제를 추진한다는 극단적인 음해가 공공연히 제기되었다. 로비설과 시위론이 다분히 감정적 언사라면 남북화해 협력추진을 노벨상과 연계시킨 것은 매우 치졸한 정략이라 하겠다. 노벨평화상의 숭고한 정신과 품위를 훼손하는 몰지각한 행위인 것이다. 노벨상이 로비나 작위(作爲) 또는 부작위(不作爲)에 따라 결정된다면 오늘날 세계적 관심과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묻게된다. 노벨상은 새삼 설명이 필요없는 인류양심과 지성의 심벌이다. 정치적 반대의 위치에서는 배아파하기도 하겠지만 국가적 경사에는 정치논리를 떠나 함께 경축하는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성원의 도덕률이고 국민적 일체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대단히 보기좋다. 노벨평화상은 비인간화의 시대에 인간의 길을 열어주는 지침이 된다. 압제와 폭력에 맞서 정의와 인권 그리고 화해를 추구하면서 인간적인 삶과 도리를 평가해주는 척도인 것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노벨상을 타기 위해 고난의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남아공화국의 만델라는 노벨상이 탐이 나서26년간 감옥행을 택한 것이 아니다. 인도의 테러사 수녀는 노벨평화상을 받자고 캘커타의 빈민굴에서 병자들과 평생을 같이 했던 것이아니다. 순수한 사랑과 가치관 그리고 투철한 사명감과 인간적 열정으로 충실하게 살다보니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김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우리에게 영광과 함께 많은 과제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고 안전을유지하라는 인류양심의 명령이다. 중동의 불씨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면 극동의 불씨는한반도이다. 중동의 전화(戰火)는 ‘중동전’으로 국한되지만 한반도의 전화는 자칫 세계전으로 비화될 지정학적 위험을 안고있다. 그만큼 불안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성원 모두는 노벨평화상수상을 계기로 인류가 준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평화정착에 기여해야 한다. 탱크를 녹여쟁기를 만들고 군비를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신문명시대를 열어야한다. 그것은 곧 21세기 한반도 중심국가론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 새천년이 열리는 21세기 첫해에 반세기가 넘도록 대결해온 남북한이 화해협력에 나서고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게된 것은 동북아의 새시대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서광이 아니겠는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 지역간 계층간 정파간에 빚어진 갈등구조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평화와 화해의 국민적 에너지를 통일과 세계평화로 연결시키고 한반도 중심국가의 원동력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하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역대 수상자들

    새천년 첫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1901년 첫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앙리 뒤낭(적십자사 창립),그리고 20세기마지막 수상자 ‘국경없는 의사회’등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지난 한세기 인류평화를 위해 공헌한 얼굴들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수상 이유는 한국전쟁이후 이어져온 남북한 대결 종식과 화해.분쟁지역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로로 주어진평화상은 양쪽지도자에게 공동으로 수여된 것이 보통이지만 한쪽 지도자만이 단독수상한 예도 있었다. 역사적인 브란트-슈토프 회담을 성사시키고 동·서독 통일과 동유럽데탕트의 물꼬를 터 71년 수상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김대통령처럼 단독수상자다. 79년 수상자인 ‘빈자의 어머니’테레사 수녀의 경우는 인류를 향한박애 정신을 실천한 예다.인도와 전세계에 ‘사랑의 선교회’등을 설립,한평생을 고아와 나환자를 위해 살았다.비폭력 평화주의자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89년)와 인권·독립운동가 동티모르의 벨로주교(96년)등 압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에게도 노벨평화상의 영광은 돌아갔다.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도 평화의 사도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77년 국제사면위원회,88년 유엔평화유지군,99년 국경없는 의사회등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이후 삶이 상처럼 평화롭거나 만인의추앙을 받는 것만은 아니었다.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로 대통령까지 지냈으나 최근 고독한 야권인사가 돼버린 레흐 바웬사(83년 수상),러시아 국민들로부터 러시아 추락의 ‘주범’이란 비난을 받으며 강연활동과 해외 언론 출연 등으로생활비를 벌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90년 〃)에게있어 노벨상 수상은 옛추억을 되새기는 것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을듯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을 듯한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수상 당시 갈채를받았던 중동지도자들의 경우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78년 〃)과 이스라엘의 라빈총리(94년 〃)의 경우국내 강경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그러나 역대 수상자들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삶이 어떠했든지 간에 그들이 역사를 움직였고 인류평화에 기여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이동미기자 eyes@
  • 새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

    칠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로켓을 타고 다니는 우주용사가 된다면? 난센스코미디같다고 일축한다면 오산이다.제작,감독에 주연까지 한‘스페이스 카우보이’(Space Cowboys)에서 그는 백발성성한 ‘어제의 용사들’을 모아 우주탐험에 나서는 노익장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그의 역할은 왕년에 최고의 공군조종사였지만 우주탐험 기회를 침팬지에게 빼앗겨 버린 ‘억세게 운없었던 할아버지’ 코빈이다.NASA(미항공우주국)가 고장난 구소련 통신위성 유도체 수리를 요청해 오지만않았어도 그는 시골에서 조용히 늙어갈 참이었다.하나, 40여년 만에찾아온 천금같은 기회를 또 놓칠 수야 없는 일.전혀 다른 모습으로늙어 가던 옛 조종사팀 ‘데덜라스’ 멤버들은 앞뒤 잴 것도 없이 다시 뭉치기로 한다. 토미 리 존스,도날드 서덜랜드,제임스 가너가 이스트우드를 도와 ‘단체로’ 주인공이 됐다. 젊은 우주비행사들을 제치고 우주행 티켓을 따내기 위해 노인네들이체력단련하는 장면들에서는 10초에 한번꼴로 웃음이 터진다. 코믹드라마로 일관하던 분위기를 벗어나는지점은 중반을 훨씬 지나서다.폭소지뢰밭을 만든 것까진 좋지만,우주탐험에 들어가는 본론을너무 늦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지루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사실감과 신비감을 두루 갖춘 우주공간 화면은 그런 불만을일소해 줄 만큼 충분히 스펙터클하고 멋지다.14일 개봉황수정기자
  • [외언내언] ‘평화의 섬’

    [바다에 섬이 있다/섬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고/그 바다에 나가면 다시 새로운 섬/…/그 중심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꿈 속에서 다시잠이 들었다 또 꿈꾸었다] 류시화 시인의 시 ‘섬’의 일부다.섬은 시인이 아닐지라도 꿈속에서조차 찾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동경의 땅이 아닐까 싶다. 3,300여개 우리 섬 중 면적 1,845㎢여로 가장 큰 제주도.한반도 남단의 이 섬이 남북화해를 일궈내는 텃밭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가 특사회담을 위해 북측 인사로는 맨처음 여기를 찾은 이후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남북 국방장관이 25∼26일 이곳에서 만났다.27∼30일 장관급회담까지 열려 북측 회담 일꾼들이 즐겨 찾는 남쪽의 최고 명소가 된 셈이다.더욱이 앞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여기서 만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사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 될 만한 천혜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있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수려한 경관에다 세계 어느 섬에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독특한 민속적 체취와 역사적 자취까지 간직하고 있다. 옛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이상향으로 꿈꾸어온 곳은 대개 섬이었다.토머스 모어가 그려낸 유토피아나중세유럽 서민들이 그리워했던 대서양의 코케인섬 등이 그러하다.조선조 허균(許筠)이 ‘홍길동전’에서 설정한 이상국인 율도국도 마찬가지다.어디 그 뿐이랴.오래 전 제주도 사람들이 동경했던 낙원 또한이어도였다. 그러나 이 섬들은 모두 상상 속에만 있는 가공의 낙원들이다.따지고보면 유토피아도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름답지만 이 세상에는없는 곳”이라는 뜻이다.영국작가 모어가 그리스어의 ‘오우토푸스’(없는 곳)와 ‘이우토푸스’(아름다운 곳)라는 두 낱말을 합친 16세기의 신조어다. 하지만 제주도는 실재하는 섬이다.게다가 세계적으로도 ‘평화의 땅’이라는 아름다운 평판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는 중이다.남북회담 뿐만 아니라 지난 1990년대 이래 우리와 주변 강대국간 정상회담 등 국제적 평화 이벤트가 이곳에서 열렸다.이미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장쩌민 중국 국가주석,클린턴 미국 대통령,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 등 주변 4강 정상이 모두 제주도 땅을 밟았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이 “반란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제주도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막말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이 섬은 이미 유배와 저항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지 오래이다.제주도가 지구촌 사람 누구나 ‘아,그 섬에 가고 싶다’고 되뇌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으로기억됐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솔제니친, 푸틴에 이례적 극찬

    [모스크바 AP 연합] 옛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인사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데르 솔제니친이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활기찬 마음씨에 용의주도함과 결단력을 갖춘 탁월한 정치지도자”라고 격찬했다. 솔제니친은 자택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을 만난 지 하루만인 이날 RTR-TV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찬양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권력에 사심이없고 자신이 물려받은 방대한 국내외 난제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과이해력을 갖고 있으며 신중성과 결단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푸틴은 구소련 정보기관이었던 KGB(국가보안위원회)의 요원이었고 솔제니친은 국가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던 반체제인사여서 두 사람은 서로 정반대의 처지에 있었다.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27일 돌연 모스크바 교외에 살고있는 솔제니친을 방문한 다음날 솔제니친은 TV회견을 통해 이례적으로 푸틴을 격찬하는 등 화해제스처를 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솔제니친은 소련의 통치를 비판했다고 해서 추방됐다가 1994년에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사격 구지네비슈테…리투아니아 건국 첫 金

    다이아나 구지네비슈테(34)가 조국 리투아니아에 건국이래 첫 금메달을 안겼다. 구지네비슈테는 18일 사격 여자 트랩부문에서 올림픽 신기록인 93점을 쏴 조국의 독립 9주년을 자축했다. 91년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 원반 던지기의 로마스 우바르타스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이듬해 세계선수권에서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을 보이는 바람에금메달을 박탈당하는 불운을 겪었다.리투아니아의 남자 농구팀도 92·96년 연속 동메달을 차지하며 인구 370만명의 작은 나라를 세계에알렸지만 금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투아니아는 구지네비슈테의 금메달로 단숨에 메달순위 17위권으로뛰어 올랐다. 지난 24년 파리 올림픽에 첫 선을 보인 리투아니아는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일환으로 올림픽에 참가,금 1,동1을 구소련에보탰다.
  • [대한포럼] 푸틴의 동북아 나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新)아시아 외교정책이 발빠르게 전개되고 있다.지난 17,18일의 중국 방문을 첫머리로 그의 동북아 순방 외교가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구소련과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도 방문한다.그의 발걸음은 오는 21∼23일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이 예정된 일본 오키나와까지 이어진다. 이 염천(炎天)에 그의 발길을 재촉한 모티브가 러시아의 국익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동북아에서 차지했던 ‘옛 소련의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한 나들이라고 한다면 사족일 뿐이다.전문가들은 범세계적 냉전체제 종식 이후 미국의 단일 패권전략에 맞서 다극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이는 구체적으로 러시아와 중국,러시아와 북한의 상호 협력과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을 저지하려는 공동대응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움직임이 우리에게 ‘강건너 불’일 수 없다는 데 있다.푸틴의 순방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역학관계가 일정부분 재편될 조짐이기 때문이다.러·중간 완연한 밀월무드나 러시아의 남북 등거리 외교 재연조짐이 그런 징후다.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같은 흐름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우리의 외교적 노력 여하에 따라 남북 평화통일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걸림돌이 될 수도,추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런 맥락에서 그의 방북을 오히려 반겨야 할 역설적 이유도 있다.소련 등 동구권과의 수교러시로 나타난 우리의 야심찬 북방외교 이후 증폭된 북한의 ‘소외감’을 치유하는 것도 그 하나다. 그러한 소외감이 북한정권으로 하여금 체제생존 차원에서 미사일이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다는 분석도 있는 터이다. 사실 대도시 인구집중이 보편화된 오늘날 지구촌에서 많은 통치자들이 체제유지를 위한 초고단위 처방으로 핵개발에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이 “고대에선 대도시가 외부 위협으로부터 부족을 지키는 안전판이었지만 핵무기의 출현 이후 도시민 전체가 인질처럼됐다”고 개탄했을까. 따라서 푸틴의 방북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 등을 자제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물론 어떤 방식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하는 문제는 남는다.이를 위해 북한에 ‘퇴로’를 열어주는 일이 중요할 수도 있다.그런 점에서 “북한에 진정한 안전보장을 해준 뒤에야 한반도를 미사일 비확산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언급이 주목된다.요미우리(讀賣)신문 등 최근 일본 언론과의 회견에서 밝힌 대목으로,미국·일본과 북한의 관계개선 촉진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급선무는 북한의 발상 전환이 아닐까 싶다.주변국의 설득에 앞서 스스로 장거리미사일 개발의사를 철회함으로써 미국의 NMD 구상에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미국이 6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요격미사일 100기를 실전배치하려는 NMD 구상은 내·외적 동인(動因)을 갖고있다.안으로는 군·산(軍·産)복합체의 막강한 영향력이,밖으로는 북한·이라크 등 이른바 ‘우려대상’ 국가들의 미사일 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창과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든 요순 시대의 도래는 아직 먼훗날의 일일 것이다.그럼에도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은 주변 4강보다는 같이 경제난을 겪고 있는 남북한 당사자에게 더욱 절박한 과제다.푸틴의 동북아순방이 주변국간 갈등의 고조가 아니라 군축과 상호 협력의 계기가 되도록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具 本 永 논설위원]kby7@
  • [2000 美대선](6)외교·국방정책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외교분야에서 제시한 공약은 한결같이 ‘미국 제일주의’이다.고어는 ‘세계 지도자 역할을 위한 강력한 국방력’을 누누이 강조했으며, 부시 역시 “미국은 자유세계의 지도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미국은 미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세계화를 추구해 왔고 91년 이후 고립주의에서 탈피,추구한 ‘인도적인 개입주의’는 두 후보로 하여금 세계 지도자역할을 대외정책의 목표로 자연스럽게 내세우게 만들었다. 세계 지도자로 역할하는 미국을 위해서 두 후보가 표방한 전제조건은 모두강력한 국방력.외교와 국방은 한묶음으로 미국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유용한도구이며,‘한 손에 코란,한 손에 칼’이 아니라 ‘한 손에 총,한 손에 원조’라는 세계 운영 이념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편인 것이다. 미국 원조의 혜택은 그러나 친미 사고방식을 낳아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수혜국가 경제의 미국 편향이란 결과를 가져왔으며,미국 의회가 외교·국방의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그러해 반미감정을부추기기도 한다. 미 국무부가 웹사이트에 제시한 외교의 당면 목표는 ▲국제 안보질서 확보▲경제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등 3가지이다. 이중 국제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현안에는 중동,인도-파키스탄 분쟁,신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중국과의 알력,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장으로 다시제역할을 찾아나선 러시아와의 무게중심 싸움, 그리고 북한 문제로 대별되는‘우려국가’ 문제 등이다. 인권·외교 문제가 현안이 아닌 유럽과는 극단적인 실리,즉 무역을 둘러싼논쟁이 한창이다. 이해가 엇갈리는 외교논쟁에 대한 고어의 대응은 국제기구를 통한 접근이다.명분을 살리면서 세계의 중지를 모으는 실질적인 방법이다.이스라엘 문제에유엔의 해결책을 근간으로 중재안을 이끌어내는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그러나 분쟁지역에 대해서는 단호하다.91년 부시 전대통령의 걸프전 지지,유고 공습 결정,체첸사태와 관련 미 원조 제공 요구,사담 후세인 반대파 지원 등이 그것이다. 국방에 관한 한 고어는 방산업체로부터 다소 자유스러운 민주당 소속이기에여론동향에 따르는 편. 공화당에 밀려 국가미사일 방어망 계획(NMD) 추진에필요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개정에 반대했지만, 국방에 있어서의 기술개발을 적극 추진해 21세기 첨단군대를 추구했다. 이에 반해 국제경영에 경험이 없는 부시는 외교정책에서 다소 어눌하다.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쿠바에 대한봉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분위기없는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방에 관해서는 단호해 공화당의 특징을 대변한다는 말을 듣는다.630억달러의 NMD 계획을 적극 주장했었고 신무기 개발에 200억달러,군인 임금인상을 위해 10억달러를 책정한다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외교에 어둡다는 지적에 따라 전 국가안보위원이자 스탠퍼드대 교수였던 곤돌레사 라이스,폴 월포위츠 존스 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부터 외교안보문제 자문을 받아 조심스럽게 이슈별로 접근중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대북 정책-고어 '당근' 부시 '채찍'.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민주당의 대한반도 정책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북한에 대한 적극 개입정책(engagement policy)’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벼랑끝 외교를 인도주의적인 원조와 국제사회로의 복귀로 완화시켜 북한 정권의 조기 붕괴를 막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을 골간으로 한다. 고어의 한반도 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할수 있다.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94년 북한과 맺어진 제네바 핵협정의 준수를 적극 주장한다. 반면 부시의 한반도 정책은 아직 뚜렷히 언급된 바가 없어 지적하기 어려우나 최근 한국을 다녀간 폴 월포위츠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월포위츠는 공화당 정권인 부시 행정부 시절인도네시아 대사를 역임하고 국방부 차관까지 지낸 뒤 현재는 부시 후보의국제관계 자문역을 하고 있으며 당선시 곤돌레사 라이스와 함께 백악관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이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을 방문, 제네바회담의 재협상을 주장했다.근본적으로 공화당의 한반도 정책은 제네바회담에 대한 자세에서 엿볼 수 있는데 공화당은 국제사회가 핵동결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수로와 같은 혜택을준 사례가 없기 때문에 제네바회담은 잘못된 것이며,식량 전용을 하는 북한에 대한 식량공급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시는 ‘북한에 대한 보다 확실한 채찍’을 언급,공화당의 입장을 충실히대변하고 있다. *양측 참모진. 대선에 나선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벌이는 정책 대결은 막강한 정책 참모진이 밤잠을 설치며 뒷바침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들 참모진들은 아직은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보의 당선시 백악관 진영과 행정부 장·차관으로 내정되기 때문에 종종 ‘세도우 캐비넷’으로 인식된다. 고어후보 참모진은 부통령 재직 시절 봐왔던 인물들이중심인 반면 부시 참모진에는 대통령이었던 부친 조지 부시의 지인들이 많이 진을 치고 있다. 하버드 출신인 고어의 참모진영은 자연스럽게 하버드 학파가 중심이 돼 케네디 스쿨 학장인 일레인 카마크를 중심으로 참모가 구성돼있다.카마크는 지난 93년 클린턴·고어 행정부 선임정책보좌관을 지내면서 국가정책검토분야에 뛰어난 역할을 했으며 백악관의 신정책위원회를 구성,전체 공무원의 14%인 30만명을 감축하는 개편작업을 이끌기도 했었다.그녀와 함께 정책입안에책임을 지는 사람은 딕 게파트 미주리주 하원의원과 빌 리처드슨 에너지 장관이다. 민주당내 제2인자 자리를 놓고 고어와 은근히 알력을 빚었던 게파트의원은지난해 대통령 출마를 포기,민주당 단합에 모범을 보였으며, 최근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된다. 하원의원 출신인 빌 리처드슨 에너지 장관은 고어에 헌신적인 가신역할을하는 참모이다.인종문제 전문가인 헨리 게이츠 하버드교수와 환경운동전문가인 로버트 케네디 2세,게리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톰 하킨 아이오와주 상원의원도 고어참모로 두드러진 활동을 한다. 부시는 예일을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마친 전형적인캠브리지파이나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부친을 자문했던 곤돌레사 라이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을중심으로 외교자문을 받으면서 어느덧 참모진은스탠퍼드 학파로 이뤄졌다. 따라서 하버드와 스탠퍼드 양대학은 차기 정부 구성을 두고 은근히 자존심대결을 벌이고 있으며,고어와 부시 양측의 핵심 참모진은 공고롭게도 모두여자인 셈이다.15세에 덴버대학에 입학해 19세에 졸업한 영재인 라이스는 89년 부시대통령 정부의 국가안보위원회 일원으로 구소련과 동구전문가로 활동했다.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던 라이스는 외교와 정부정책면에서 어눌한 부시의 개인교습을 시작하면서 참모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대선출마선언 훨씬 이전인 98년 7월,부시는 조지 슐츠 전국무장관을 비롯한라이스, 부시 대통령 정책개발 보좌관 출신 마틴 앤더슨 등 후버연구소 요원들을 텍사스 오스틴 주지사 관저로 불러 자신의 대선 자문을 부탁했다.이렇게 시작된 부시의 참모진은 단시일내에 부시 후보를 전국후보로 등장시키는데 성공했을뿐 아니라 고어진영을 계속 앞도하는데 성공적인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음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사아 대사,국방부차관,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 등을 역임한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연구소장 폴 월포위츠 역시 부시 외교문제 정통자문관으로 활동중이며,한반도 문제와 관련 역할은 주목된다. 워싱턴 최철호 특파원 hay@.
  • [대한시론] 政爭에도 법도가 있다

    대의제의 모국 영국의 사례를 들 것도 없이 자유언론의 발원지가 의회라는것에 대해선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다.나라살림의 기본을 국민여론을 반영해공론화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의원에게는 발언 표결에 대한 면책특권이 보장된다.물론 우리가 헌정 반세기를 넘긴 관록을 지니지만 독재정권 시절엔 독재를 비판한 김옥선 의원이나 유성환 의원이 제명되고 구속된 어두운 과거도있다.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발언의 자유가 비판이 아닌 비방을 하는 탈선과 방종이나 대안이 없이 적수를 무조건 물어뜯어 골탕 먹이는 횡포로 악용돼서는 안된다.새 정권 출범후 국회는 대통령 취임날,총리 인준동의를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세금도둑과 연루된 혐의로 소환당환 의원 신변보호의 방탄조끼로 둔갑하는 등 의원의 고유권능이 이상하게 행사된 사실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더구나 의원의 발언이 면책된다고해서 인신모욕의 비방중상이나 대안없이 트집 잡고 훼방놓기식의 폭언이 그대로 방임돼도 좋다는 건아닐 것이다. 거듭해 강조하지만 국회에서 여야가 벌이는 정치투쟁은 말과 표를 무기로하는 싸움이기 때문에 발언 표결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그에 대해선 누구도 이의가 없다.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은 발언의 면책특권은의원 개인의 이익이나 자기 한풀이를 위한 사사로운 특권이 아니다.또 의원의 법도를 일탈한 비방성 중상발언의 면책 구실로 악용돼서도 안된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우리에게 통일과 안보문제는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어선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역대 독재자들의 죄악중에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의 하나는 통일과 안보처럼 민족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쿠데타 명분이나 집권연장을 위해 정치도구로 써먹었다는 점이다.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이를 국민이 용납해도 안된다는 말이다. 특히 엄중경고해 두어야 할 일은 공인으로 발언에 신중해야 할 정치인이 통일과 안보에 대한 대안과 정책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거나 수준 이하의 졸견과 독단으로 무책임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1953년 정전협정 이래 남과 북,주변4강 어느쪽도 일방적으로 무력에 호소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됐다.거기에 지금 상황은 구소련의 해체와 동구 공산권 붕괴 이후 사태변천에도 불구하고 냉전논리로 밀고 나가는 무책임한 만용은 개인의 문제로만 봐줄 수는 없다. 남과 북은 상호 자살적,자멸적 군비경쟁의 대결상태를 어떻게 하든 종식시키고 평화정착을 해야 한다는 것은 민족생존의 전제조건이 되는 과제다.민주화나 복지를 위해선 이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된다.정치인처럼 책임있는지위에 있는 공인은 자기발언에 대해 그가 무지해 정책을 오판했다는 이유로 관용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 그러한 정치인은 자기행위에대해 당장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것, 다시 말해 물러나는 것이 가장 국민에게 봉사하는 지름길이다. 급변하는 주변정세와 주변 4강의 이해와 각축 속에서 우리는 민족으로서나나라로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난제를 안고 있다.지금 국제관계를 모르고서는 국내정치도 못한다.마찬가지로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무지한 채 옛날 봉건 세도정치식 밀실흥정 거래로 정치가 통할 수 없다.정치인을 이권거래의 브로커로 만든 토목업자 지배의 일본정치의 흉내를 더는 내서는 안되고 또 낼 수도 없다.아직도 그러한 구시대 밀실흥정의 거래를 정치로아는 부류가 실세로 떠들며 정가에서 행세할 수 있는 우리 정치실정의 한계를 지나쳐 버릴 수는 없다고 하지만,더이상 그런 낡고 치사한 브로커 정치와대가성 없는(?) 떡값으로 기생하는 부류의 정치는 끝장을 내야 한다. 나는 일부 정치인에게 말하고 싶다.세상이 달라졌다.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연단에서 성실하게 발언하라고.사사로운 입장 고집이나 개인 한풀이를 자제하라고.특히 예전의 수법으로 또다시 ‘안보귀신’을 동원해 나라 망치며 반대파의 얼굴에 먹칠하고 목을 옭아맬 생각일랑 그만두라고. 국민은 언제까지고 3류 이하의 정치를 비싼 세금 내고 구경할 수 없다.우리는 정치인이 정치에서 최소한의 기본 룰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그들에게 법도를 지켜달라고만 해서 지켜나가지 않으리란 것을 국민은 알아야 한다.국민이 주인답게 그들에게 비판의 채찍과 투표의 압력을 보여주어야만 한다.우리는 정치인이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 아는 공인부터 되게 해야 한다. 韓 相 範 동국대교수·법학
  • 北최고액권은 500원

    남북한 교류가 급진전되면서 북한의 화폐체계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화폐는 일반화폐와 ‘외화와 바꾼 돈표’라 일컫는 특수화폐로 나눠진다.또 화폐단위는 ‘원’,보조단위는 ‘전’으로우리나라와 같다.그러나 글자만 같을 뿐,가치는 전혀 달라 ‘이종화폐’나다름없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북한의 화폐를 발행하는 기관은 조선중앙은행.우리나라의 한은과 같다.1원,5원,10원,100원,500원권 등 6종의 지폐와 1전,5전,10전,50전,1원 등 5종의주화 등 모두 11종의 화폐가 있다.우리나라보다 2종이 더 많다. 발권국 정상덕 조사역은 “북한의 일반화폐는 지난 1947년 12월 화폐개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면서 “은행권의 경우 과거에는 구소련에서 인쇄됐으나 79년 제3차 화폐개혁 이후부터는 평성 상표 인쇄공장에서 인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고 설명했다.북한의 은행권도 위·변조 장치가 돼있으며발행 당국자의 날인및 서명이 없는 것이 남한 은행권과 다른 점이다.화폐에등장하는 ‘단골 모델’은 금수산 기념궁전,김일성 초상및 생가,주체사상탑,꽃파는 처녀,천리마 동상,남포갑문 등이다. 외화 누수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79년부터 발행된 특수화폐 ‘외화와 바꾼돈표’는 과거에는 청색과 적색 두종류가 있었으나 95년 청색으로 통일됐다. 미 달러화,일본 엔화,기타 서유럽국가 화폐와 교환되며,외화상점 및 호텔 등에서 외화물건을 살 수 있다.일반식당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외국인들과 북한주민들 사이에 널리 통용된다. 안미현기자
  • 韓國戰 미군포로등 생환 협조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은 앞으로 한국전쟁(6·25)·베트남전쟁과 관련된 미군 포로나 실종자들의 생환을 돕는 북한주민 등 특정국가 국민들에게피난처를 제공하고 신변을 보호해주기로 했다. 미 상원은 30일 이같은 내용을 주요골자로 하는 ‘전쟁 실종자 및 포로 생환법 2000’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국무부와 법무부는 곧 구체적인 관련후속조치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한국전쟁·베트남전쟁 당시 현지에 파견돼 활동하던 중 전쟁포로가 됐거나 실종된 미군과 군무원들의 생환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특정국가국민들에게 미 법무장관이 즉각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피난처를 제공토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포로나 실종자가 된 사유가 되는 전쟁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한정했으며,이들에게 도움을 준 외국인의 국적을 북한을 비롯해 중국,구소련권 국가,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으로 제한했다. hay@
  • 21세기 차르 푸틴의 러시아/(上)정치·외교정책

    ‘푸틴호’의 러시아는 어디로 가는가.강력한 러시아건설을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임 이래 대내외적으로 의욕에 찬 정책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러시아의 오늘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모스크바 오일만기자] 지난 7일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47) 러시아 대통령의 외모는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아담한 체구에 번쩍이는 안광,절도있는 걸음걸이….무엇보다 러시아 부흥에대한 강렬한 의지가 몸 전체에서 품어져 나온다는 것이 푸틴대통령을 만나본 이재춘(李在春) 주러시아 대사의 소감이다. 군인의 길을 걸었던 박전대통령과 달리 푸틴은 ‘러시아 007’을 꿈꿨던 KGB(보안위원회) 출신이다.체첸 전쟁을 지휘하면서 ‘터미네이터’라는 애칭을얻을 정도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과시했다.“위대한 러시아 건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손쉽게 ‘차르(황제)’에 등극했다는 평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취임 직후부터 변화를 모색했다.지난 9일 2차대전 승전 55주년 기념일을 맞아 구소련 붕괴 이후 10년만에 군사 퍼레이드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옐친 시절 크렘린궁에서 권력의 혼돈을 생생하게 지켜본 푸틴은 취임 직후부터 ‘권력 집중’,즉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다.강력한 대통령만이 위대한 러시아를 만든다는통치철학이다. 이 때문에 총설계사 푸틴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국가구조 개편’ 작업이다.89개의 주·자치주·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된 러시아 전역을 7개의 연방지역으로 재편,각 지역의 총괄책임자를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다.국민이 직접선출한 지방 지도자들 위에 앉히는 초헌법적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내무군소속을 내무부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편입시킨 것도 주목할 일이다.아직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하지만 푸틴의 대외정책은 대내 정책과 달리 ‘실용주의 노선’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국제사회의 호감을 확보하면서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위한 국제 환경조성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한반도에서의 실용주의적 접근도 ‘신등거리 외교’로 표출되고 있다.주한러시아 대사관의 고위관리는 “우리의 남북한 등거리 외교는 과거 친(親) 서방 친(親)남한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고 못을 박았다.지난 2월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북·러 신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푸틴의 러시아는 군사·외교면에서 최대 강대국인 미국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이 지배적이다.특히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항한 중·소 공조체제를 본격 가동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oilman@k
  • [시베리아 대탐방](20.끝)재벌 꿈꾸는 개인기업들

    [이르쿠츠크·앙가르스크 특별취재반] 시베리아의 동토(凍土)에서도 미래의‘재벌’을 꿈꾸는 개인기업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해 11월 30일 이르쿠츠크 주(州) 3,000여개 개인기업 가운데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에네르쁘레트’를 찾았다.이 회사는 지난91년 이르쿠츠크 인근 도시 우스트일림스크에서 일하던 젊은이 5명이 1만달러를 들여 창업한 기계 생산업체다.그들은 “전 러시아에 팔 수 있는 기계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국영기업에 근무할 때보다 몇배는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창업 9년째인 99년,에네르쁘레트는 이제 300만달러의 자산과 4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또 이 회사는 러시아 군수산업부품의 70%를 조달할 정도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그리고 경상이익이 매출액의 30∼40%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도 견실하다. 에네르쁘레트는 이르쿠츠크 지역 대학졸업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중 하나다. 높은 임금과 성장성,개방성이 이 회사의 매력이다.이 회사는 2년전 입사한이르쿠츠크 공대 졸업생의 능력을 높이 평가,지난해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해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벤처기업 열풍이 러시아에도상륙했다는 느낌을 줬다. 에네르쁘레트는 그동안 시베리아 탐방 중 돌아본 다른 기업들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통역을 맡은 고려인 정추광씨는 “이렇게 컴퓨터가 많은 사무실은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사무실 풍경은 거의 선진국의 기업과 닮았다.또공장의 분위기도 활기와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러시아의 다른 기업에서 목격했던 느슨한 기업 분위기와는 달랐다.또 사장과 전 임원이 취재에 응할 정도로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트보로고프 수석부사장은 “우리의 성공은 개인기업이었기에 가능했다”며“무사안일의 타성에 젖은 국영기업이 이런 약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은 취재팀이 12월 3일 방문한 앙가르스크 의류(주)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한 기업들은 대규모 자본을 갖고 있었지만,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앙가르스크에 있는 이 회사는 지난 56년 국영기업으로 출발,최근 민영화됐다.이르쿠츠크 주정부는 안내하기 앞서 취재팀에게 “미국회사의 외자유치를 받아 미국,독일에서 올해 1월 최신설비를 들여왔다”며 “러시아 최고수준의 공장”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앙가르스크 의류 공장은 역시 동부 시베리아 최대의 의복공장답게 대규모였고 시설도 훌륭했다.한국의 의류공장 못지 않게 깨끗했고 첨단 자동화 설비도 갖췄다.여성인 코롤료바 스베틀라나 사장은 “우리의 여성 및 아동외투가올해 러시아 최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며 “설비교체후 생산능력이 4배나늘어났다”고 말했다.그러나 막상 회사측의 안내에 따라 공장안으로 들어가자 이완된 분위기가 느껴졌다.절반 이상의 설비가 놀고 있었고 종업원들은‘잡담중’이었다.코롤료바 사장은 “주문이 없어 이렇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최근 한국업체와 운동복 외주계약 협상을 벌였는데 그쪽에서 너무싼 가격을 요구해 결렬됐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수출 건을 따내러 직원들이 외국으로 직접 돌아다니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런 적 없다”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또 첨단설비인만큼 옷의 바느질 상태는 빈틈 없었지만 디자인은 영 엉성해서 우리시장에서는 한 벌도 안팔릴 것 같은 수준이었다.또 민영화과정에서 종업원들이 모두 주식을 받았지만 사장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회사 주가에 관심이없었다.회사 주가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종업원 지주제의 취지를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하드웨어만 민영기업이지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국영기업의때를 벗지 못한 셈이다. oosing@. * 러시아 최대 의약콤비나트. [우솔레시비르스코예 특별취재반]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중소도시 우솔레시비르스코예에는 러시아 최대의 의약콤비나트가 있다.창립 30주년을 맞는 이 의약콤비나트의 16개 공장에서는 50여종의 각종 화학제품과 의약재료를 생산하고 있다. 이 의약콤비나트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투자회사 ‘메지우스’의 고려인사장 김신범씨는 “옛 소련 때는 유럽 각국에 수출할 정도로 훌륭한 콤비나트였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와 함께 이 콤비나트에 들어선 취재팀은 그만실망하고 말았다.공장 부지와 건물은 대규모인데 설비는 마치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케 했다.가동이 중단된 몇군데 공장은 아예 폐허와 같았다. 미로치니코프 페도로비치 의약콤비나트 사장은 “설비가 이미 낙후된데다재료를 구입할 만한 운영자금도 모자라 생산량이 급감했다”며 “자금부족으로 최근 5년간 유럽에 비해 뒤떨어졌지만 외자만 유치되면 몇년내 따라 잡을수 있을 정도로 기초기술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그는 “투자자에게는 콤비나트의 주식도 주겠다”고 덧붙였다. 우솔레 의약단지가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생산품으로는 ‘페놀 페르비탈’을 우선 꼽을 수 있다.이는 두통 또는 수면제로 쓰이는 의약재료다.메지우스김사장은 “한국도 수교관계가 없을 때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수입해썼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줄어들어 질 낮은 중국산을 사다 쓸 것”이라고 말했다.생선이나 고기를 통조림으로 만들 때 쓰이는 ‘벤조아트’도 질이 높은것으로 전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미로치니코프 사장은 “외자유치 금액의 상당부분은 주로 의약 완성품 공장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 이유는 의약재료보다는 완성품이 자본회임기간이 짧고 수익성도 높기 때문이다.현재 10%에 불과한 의약 완성품 비중을 절반까지 올릴 방침이다. 그는 “북한측과 인삼약 제조에 관해 협상을 했으나 이미 결렬된 상태”라며 “콤비나트 산하 4개 공장이 현재 한국과도 모종의 협상을 진행중이지만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브이 로시스키'…자본주의 바람 타고 급부상. [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 특별취재반] 러시아에서는 요즘 ‘노브이로시스키(새로운 러시아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자본주의에 발빠르게 적응해 돈을 번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노브이 로시스키 가운데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경우도 많다.그래서인지 노브이 로시스키란 말속에는 비아냥의 뉘앙스도 섞여 있다.우리의졸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노브이 로시스키는 남들보다 앞서 용감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해 새 사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졸부와는 다르다.러시아의 ‘신흥세력’내지는 ‘신흥상류층’으로 번역하는것이 적당할 것이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즉 고려인 사회에서도 노브이 로시스키를 응용한 ‘노브이 카레이스키(새 고려인)’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취재팀은 극동과 동부 시베리아를 취재하면서 두명의 노브이 카레이스키를 만났다.이 두사람은 학문의 길을 걷다가 생존을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았다.역경을 기회로 바꾼 것이다. 김 보리스 예브게니예비치,한국 이름으로는 김신범이다.그의 신분은 투자회사 ‘메지우스’의 사장.러시아에서는 매우 생소한 종류의 회사이다.취재팀은 그를 지난해 11월 30일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에서 만났다.김사장은 우리의 우솔레시비르스코예 의약단지 취재를 안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이 의약단지에 대한 투자사업은 모두 그가 총괄하고 있었다. 김사장은 이르쿠츠크 의대 출신의 의사다.러시아 용어로는 의학중박사(의학석사).병원 외과의사와 의학연구소 연구원 등 정상적인 길을 가던 그는 91년구소련 붕괴로 연구소가 문을 닫으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김사장은 이 때 일회용 주사기,수술장갑 등 수술에 필요한 의약품을 수입,판매하는개인회사를 차려 큰 돈을 벌었다.그리고 96년 투자회사를 차렸다.김사장은겉보기에도 재력이 있어 보였다.그는 질 좋은 무스탕에 진갈색 렌즈 안경을쓰고 있었다.그리고 5,6년 이상된 일본 중고차를 쓰는 러시아 사람들과는 달리,그는 국산 쏘나타를 탔다. 김 사장은 “생활수준이 이 지역에서 최상위급”이라면서도 의학도로서의생활에 미련이 남아있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사업이 마음에 든다고는 못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학,약품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그는 사업차 서울에도 자주 들른다고 했다. 이에 앞서 26일 만났던 고가이 보리스는 벤처회사를 창업했다.아직 큰 돈은못벌었지만 석유시추공을 효과적으로 청소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전도가유망하다.고가이에 붙은 ‘가이’자(字)는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이 흔히자신의 성 뒤에 붙여 러시아식으로 작명하는 접미사다. 카자흐스탄에서 출생한 고가이 사장도 66년 톰스크 공대를 졸업한 뒤 크라스노야르스크 석탄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으나 구소련 붕괴의 격동속에서 연구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연구소를 나왔다.그는 처음에는 이 연구소 출신 몇몇과 동업,목재 등을 수출하고 한국산 직물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했으나 자금사정으로 그만뒀다.지금은 ‘시브레’란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려 자체 기술을 판매하는 한편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여러 연구소들이 창출해낸 성과들을실제 산업에 적용하도록 중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일종의 벤처캐피탈이다. 고가이 사장은 공익사업도 시작,‘국경없는 어린이(Boundless Children)’이란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잠재력을 세계 어린이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고가이 사장은 인터넷 마인드와 영어실력으로 무장한 지식형 노브이 카레이스키인 셈이다.고가이 사장은 “할아버지가 연해주에 살면서 사업차 한국에 자주 왕래하다 6·25전쟁이 나면서소식이 끊겼다”며 “얼마전 할아버지의 성함을 잡지에서 봤는데 장남 이름을 아버지 이름과 똑같이 지어놨다”고 말했다.
  • 교황, 20세기 순교자 선정

    [바티칸시티 AFP AP 연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알도모로 전 이탈리아 총리, 오스카르 로메로 엘살바도르 대주교 등을 20세기의계파를 초월한 기독교 순교자로 선정하고 이들의 업적을 치하한다. 로마 교황청은 오는 7일 로마시대 원형극장으로 살상의 상징이기도 한 콜로세움에서 특별 의식을 거행하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순교자 일부를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발표될 순교자 중에는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가로 64년 노벨평화상을수상하고 68년 암살당한 킹 목사,78년 테러단체인 ‘붉은여단’에 의해 납치됐다가 살해된 이탈리아 기독민주당 출신 모로 총리,인권운동가 겸 해방신학자로 우파에 의해 암살된 로메로 대주교 등이 포함됐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구교,신교,그리스정교,영국국교회 등 종파를 초월해 20세기 기독교 순교자로 총 1만2,000명을 선정할 예정이며 전체 순교자 명단은올해말께 확정될 예정이다. 명단에는 구소련 전체주의, 나치즘,파시즘, 유럽공산주의 압제, 테러,세계각국 독재정권 등에 의한 희생자가 대거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교는 선정작업의 책임을 가톨릭 역사가 안드레아 리카르디씨에게 맡겨 지난 5년 동안 자료 검토를 해왔다.
  • 총선… 大選… 주말 지구촌 달군 유세전

    8일 보스니아 지방선거를 필두로 9일 페루와 그루지야 대선,그리스 총선 등주말 지구촌 곳곳이 선거로 부산했다.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하는 페루대선에서는 원주민 출신 알레한드로 톨레도후보의 강력한 추격으로 결선투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그루지야에서는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다. ◆페루 9일 대선의 쟁점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현 대통령의 3선연임이냐,최초의 페루 원주민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냐 여부.당초 후지모리 대통령의 무난한 당선이 예고됐다가 각종 여당측 선거부정이 밝혀지면서 인디오 원주민 피를 물려받은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의 가능성’당 당수쪽으로 민심이 급격히 기울고 있다.8일 여론조사 결과는 후지모리 46.3%,톨레도 41.7%로 어느후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6월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러나 후지모리측이 안데스산맥 및 아마존 정글 등지에서 결과조작에 나설 경우국제 선거감시기구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어 벌써부터 정국불안 심화가 우려되고 있다. ◆그루지야 별다른 쟁점이 없는 가운데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72)의 재선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셰바르드나제 대통령외 대안은 없다는 분위기가 주조다.구소련 외무장관 출신인 현직 대통령은 고령에도 불구,5년임기재임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불태워 아슬란 아바쉬제,텐기즈 아산디체 등 두후보를 자진사퇴시키기도 했다.현재 줌버 하티아쉬빌리 구소련 공산당수가셰바르드나제 아성에 도전중이다.국제요원 150여명의 선거감시아래 300만유권자가 투표한다. ◆그리스 300석의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9일 총선에서 집권 좌파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과 제1야당인 중도우파 신민주주의당(ND)간 정권교체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2주전 최종여론조사 결과는 PASOK의 0.4% 리드로박빙의 승부를 예고중. PASOK는 지난 90∼93년 ND에 한차례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 81년부터 줄곧 집권해왔다. 불법이민규제,경제난 해소 등 양당 정책이 대동소이한 가운데 농촌표가 판세를 가를 것으로 예측,코스타스 시미티스총리(64)가 이끄는 PASOK는 각종농업장려금·사회보장정책 등으로 농심공략에 부심해왔다.반면 코^^스 카라만리스(43)당수의 ND는 11% 고실업률 등 집권당의 농정실패를 맹공,상당한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투표가 의무인 그리스에서 1,020만 국민가운데 유권자는 900만여명이다. ◆보스니아 8일 선거는 지난 92∼95년 내전 이후 두번째 치러지는 지방선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아래 250만 유권자가 145개 지자체 의원들을 뽑는다.서방측은 이번 선거가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회교도로 갈려 20만인명피해를 낸 내전 후유증을 치유할 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투표행태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돼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97년 첫선거 승리지역을 각각 다시 차지할 공산이 크다.일부 크로아티아계 도시에서 세르비아계의 선거조작을 우려한 보이콧이 발생하기도 한가운데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투표율 70∼80%를 기록중이다.선거결과는 10일나올 전망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대한포럼] 베를린 자유대학

    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Free University)은 독일내 300여개 대학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독일은 중세이후 군주들이 영지별로 학교를 설립,오늘에 이르러 대학들마다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세계대전후 서베를린을 관할하게 된 연합국은 구소련 관할지역에 있는 훔볼트대학에 상응하는 대학의 필요성이 절실했다.서방진영,특히 포드재단이 주도해 1948년 개교한 자유대학은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는데 앞장서 왔다. 냉전시대 서방의 필요에 의해 미군사령부 인근에 설립된 자유대학은 처음부터 200년 전통을 가진 훔볼트대학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프로이센제국이 설립,언어학자이자 교육개혁가의 이름을 딴 훔볼트대학은 연륜과 더불어법률·의학·철학·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철학자 헤겔·피히테와 칼마르크스가 이 대학서 강의했으며 아인슈타인등 노벨상 수상자 29명을 배출했다. 서베를린의 자유대학은 그러나 냉전중 자유민주사상의 전파자로서 독보적인위치를 굳혔다.자유대학은 훔볼트대학이 공산정권에 접수된뒤 마르크스주의를강요받자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탈출해 옮겨옴으로써 짧은 기간내 명문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자유대학은 인문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시장경제와 민주제도 발전에 이바지했다. 미국식 캠퍼스 유형을 도입한 자유대학은 냉전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엔 반공산,반동독 학생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베를린 봉쇄기간인 63년 케네디미국대통령이 방문해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고 자유대학에서 메달을 받은뒤 학생들의 반소운동이 절정을 이루자 당황한 연합군측이 이를 완화하도록 학교당국에 압력을 가한 것은 이 대학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그후 학생수가 2만여명으로 늘었으며 베를린 장벽이붕괴된 80년대말에는 5만명에 이르렀다. 학교 건물도 자유대학은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인데 비해 훔볼트대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다.통일후 두 대학 모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자유대학은 민간단체의 지원이 크게 줄고 학생들이 훔볼트대학을 선호하고 있어려움이 더욱 크다.이같은 어려움은 시대적 변화이기도 하나자유대학의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변함 없으리라는 것이 베를린 시민들 믿음이다. 베를린은 유럽 중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역사적으로 갈등과 화해의 중심무대가 되어 왔다.냉전시대엔 동서의 지도자들이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무대로,데탕트이후에는 화해와 협력의 현장으로 베를린이 갖는 의미는 크다. 베를린은 장벽의 붕괴라는 상징적 의미때문에 화해와 통일의 현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독일통일의 배경에는 자유대학과 훔볼트대학이 정신적 뒷받침이되어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자유대학은 자유와 민주의 상징이다. 유럽을 순방중이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0일 자유대학에서 남북정부당국간 대화를 제안한 것은 베를린의 지리적 특성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을 담고 있어 유럽순방 외교의 절정으로 꼽힌다. 특히 김대통령이 이 대학 교수와 학생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주제로 진행한 연설에서 “베를린 자유대학과이 대학 출신들이 개교이래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독일통일을 앞장서이끌어온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위해 이 대학을 찾았다”고 운을 뗀 것은 베를린과 자유대학의 상징성으로인해 의미가 더욱 큰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이 “뜻깊은 자유대학을 방문한 이 자리를 빌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와 남북간의 화해 협력을 이루고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며 정부당국간 협력 및 특사 교환 등4가지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것은 극적 감동을 더했다고 하겠다.연설이끝나자 좌석에 앉아있던 교수와 학생들이 기립박수를 보낸 것은 단순히 한외국지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이 대학의 역사적 배경과 연설이 일치했기때문이라 하겠다. 이기백 논설위원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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