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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교포 넬리리 독창회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교포 소프라노 넬리 리(63)가 오랜만에 모국 팬들앞에 선다.27일 오후5시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독창회 무대 ‘밤의 노래’. 러시아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구소련 성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이후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 등 유럽 지역을 순회하면서 명성을 쌓았다.뛰어난 성악 기교,세련된 무대매너,그리고 곡에 대한 명쾌한 해석력 등은 그를 단번에 주목받는 성악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92년 케임브리지판 인명사전 ‘후즈 후 인 뮤직’에 이름이 실렸고,프랑스 정부가 주는 예술문학훈장도 받았다. 넬리 리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러시아 국적을 지닌 그는 동구권의 해빙 분위기에 힘입어 그해 9월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의 하나로 예술의전당에서 초청 음악회를 가졌다.당시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교포 음악인을 환영했고,그는 앙코르곡 ‘그리운 금강산’으로 화답했다. 이후 세계한민족문화축전 등 여러 음악회와 오페라 무대에 섰고,연세대 숙명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초빙교수로 잠깐씩 머물면서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지난 2000년 러시아로 돌아간 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이번 공연에서 밤을 주제로 한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을 들려준다. 1부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밤’‘해는 지고’‘광란의 밤’을,2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밤은 슬프네’‘나의 정원에서의 밤’ 등 20여곡이 넘는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한다.피아노 연주는 알렉산드르 스바트킨.3만∼5만원.(02)751-960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남북·한미관계의 새 틀짜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 차출을 결정하였다.이 부대가 이라크에서 근무를 끝마친 후에도 한국으로 복귀하지 아니할 것이며 앞으로 보다 큰 규모의 주한미군 감축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안보상황에 우려 섞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주한미군의 일부 차출로 한반도에서 ‘안보 공백’이 생겼는가? 앞으로 한반도에서의 안정적인 안보의 확보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신장하려면 급변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치환경 하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한가?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를 차출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라크 주둔 미군의 순환근무 필요의 절박함 때문이었다.그러나 미국이 자신의 육군 현역사단 중에서 작전단위로서는 유일하게 ‘전시체제’를 유지해오고 있으며,화력·기동력·장갑방위력 등에서 최강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주한 제2보병사단,그 중에서도 핵심여단인 ‘기동타격’ 여단(the ‘Strike’ Brigade)인 제2여단을 차출하기로 한 것은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미군의 차출은 미국 스스로가 한반도에서의 대북 안보상황이 제2여단을 빼내어가도 될 만큼 안정되어 있다고 판단하였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사실 구소련 붕괴 이후 북한의 생존전략은 ‘경제 살리기’에 맞추어져 있다.북핵문제 해결도 이미 미국이 제공하기로 약속한 대북 안전보장과 더불어 그 초점이 대외 경제협력 확보에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도발을 한다는 것은 지난 10여년간 추진해온 생존전략을 전면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며,이는 북한의 장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노무현정부는 총선 승리 등 국내정치에서 새로운 ‘돌파’에 성공하고 이제 제2기를 출범하고 있다.앞으로 4년간의 노무현정부의 성공여부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였던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재정립하느냐와 큰 관계가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노무현정부의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 핵심적인 정책은 ‘북핵문제’ 해결이었다.노무현정부는 소위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남북관계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포기하고 한·미공조와 한·미동맹 강화를 전적으로 중시하였으며,이라크 파병도 그러한 선상에서 결정하였다.한·미동맹강화는 6자회담에서 미국의 주도권 하의 한·미·일 공조,그리고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위한 한국군 추가 파병에 초점이 맞춰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북핵문제의 조속한 해결보다는 자신의 국내정치적 이익과 국내정치 일정에 따라 북핵문제를 실질적으로 ‘방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나라들은 뚜렷한 비전과 강한 의지와 정열을 갖지 않고서는 주어진 상황을 돌파하기 어렵다.따라서 손쉬운 ‘상황논리’로 현실정책을 합리화하기 쉽다.그러나 그러한 단기적인 합리화가 장기적으로 합리화로 연결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문제이다.이번 주한미군 일부의 이라크 차출은 우리 안보의 안정적 확보와 장기적인 한·미관계 증진을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큰 틀에서 재조정하기 위한 계기와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앞으로 주한미군을 감축해야 하는 미국정부는 여태까지와는 정반대로 한반도에는 군사적 긴장이 높지 않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급변하는 안보환경 하에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을 맞았다.무엇보다도 새로운 ‘틀 짜기’의 시작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가능하다.우리의 안보상황은 북한의 대남위협과 관계되고 북한의 대남위협은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새로운 틀 짜기를 통해 감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임기동안 벌써 두 번이나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는가? 우리정부는 국내정치에서의 성공은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미군감축의 새로운 상황을 맞아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을 적극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정명환 등 지음

    프랑스는 한국전쟁에 참여했을까? 답은 물론 ‘참전했다’다.갑자기 우문을 던진 이유는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혹은 집단의식 속에는 늘 미국과 소련의 ‘망령’만이 너울거린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민음사 펴냄)은 이런 문제의식이 담긴 연구서다.나아가 제3의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조망하면서 ‘우리의 상처’에 대한 시야를 넓히려고 시도한다. 책은 장 폴 사르트르,메를로 퐁티,알베르 카뮈,레이몽 아롱 등 4명의 대표적 지식인을 모델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념논쟁과 한국 전쟁과의 관련성을 살핀다.불문학자 세 명과 프랑스인 교수 등 4명의 필자는 당시 문학작품과 잡지·신문에 실린 기사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다.변광배 박사는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가 한국전쟁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 뒤 2차대전 당시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아롱과 카뮈에 맞서 논쟁했던 두 사람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서서히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그에 따르면 전쟁 초기 남한의 북침설에 동조한 사르트르는 구소련에 가까워지고,아롱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대표집필자인 정명환 가톨릭대 대우교수는 서론에서 프랑스 지성사를 개괄한다.사르트르,미셸 푸코,아롱 등 세 명의 지식인을 모델로 정치 참여의 세 유형을 정리하는데 ‘앙가주망’으로 대변되는 사르트르는 혁명적 유토피아주의,푸코는 이상주의적 아나키즘,아롱은 비판적 현실주의로 규정한다. 프랑스 지성사에 깔려 있는 세 흐름에 대한 분석으로 연구의 토대를 다진다.이어 파리국립정치학교의 시리넬리 교수는 1945년부터 프랑스 지식인들이 급격히 좌파쪽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한다.이런 편파성은 1965년 헝가리 사태를 계기로 구소련에 등을 돌릴 때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한다.1만 6000원. 이종수기자 vielee@˝
  • [이런 책 어때요]

    ●미학오디세이 3/진중권 지음 문화비평가인 저자가 10년 만에 완간한 ‘미학오디세이 시리즈’ 마지막 권.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판화가였던 피라네시의 작품을 중심으로 ‘탈근대 미학’의 세계를 살핀다.피라네시는 현대예술을 잉태한 바로크와 낭만주의 두 사조에 다리를 놓은 선구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다.저자는 피라네시의 상상을 문학적으로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람은 보르헤스라고 주장한다.특히 ‘바벨의 도서관’이나 ‘죽지 않는 사람들’ 같은 소설 속의 환상은 피라네시 없인 생각할 수 없다는 것.저자는 구소련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 또한 피라네시에 열광했다고 밝힌다.1만 4000원. ●Knowledge Driver/장대환 지음 오늘날 우리는 지식사회에 살고 있다.사회가 지식에 의해 주도된다는 뜻이다.그러면 이런 지식을 보유하고 활용하고 창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바로 지식 드라이버다.지식 드라이버란 지식사회에서 지식을 보유하고 활용하고 창조하는 주체,즉 지식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말한다.이 책은 지식 드라이버가 주도하는 세계에 대한 입문서다.저자(매일경제신문사 회장)는 자신이 구상하는 교육과 자기개발의 지식경영 로드맵을 밝힌다.저자는 지식경영은 지식 드라이버에겐 ‘변신합체로봇’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1만원. ●장사의 신 호설암/증다오 지음 ‘중국의 상성(商聖)’으로 불리는 호설암의 경상지법(經商之法),즉 경제와 상업의 지혜로운 법칙을 정리했다.19세기 말 청나라 상계를 주름잡은 호설암은 전장과 상단을 거점으로 전국적인 금융점포망을 형성하고 ‘호경여당’이란 약재상을 운영하며 민심을 사로잡았던 인물.상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관직인 ‘홍정상인’과 황마괘를 하사받기도 했다.호설암에게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란 자본 축적만이 아니라 사회안정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그가 큰 돈을 벌고 나서 맨 처음 한 일은 고향의 강가에 나루터를 지어 사람들이 오가기 편하게 한 것이었다.1만 5000원. ●에도시대의 일본미술/크리스틴 구스 지음 일본미술 하면 우리는 흔히 유녀나 가부키 배우를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목판 에혼(繪本) 형식으로 이같은 극장과 유곽지대의 생생한 문화를 반영하고 형상화한 게 바로 에도시대의 미술이다.250년에 걸친 도쿠가와 바쿠후 통치기간 동안 일본의 주도적인 미술형식들은 대부분 에도와 교토의 발전을 통해 이뤄졌다.이 책은 에도시대의 미술을 당시 사회적 상황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에도의 미술가들이 교토와 달리 빈정거림이나 유머,풍자 같은 반체제적 형식에 관심을 기울인 건 미술에 대해 엄격하게 간섭했던 바쿠후의 영향 때문이다.1만 9000원. ●성서 속의 생태학/A P 휘터만 지음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살았던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덥고 건조했으며,거름을 주지 않거나 벌목이라도 하면 금방 사막으로 변하는 땅이었다.또한 강한 민족들이 주변을 차지해 영토도 넓히지 못한 채 비좁은 곳에서 살아가야 했다.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그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생태규칙을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했다.이 책은 성서가 자연친화적인 율법과 지속가능성의 원형을 담고 있음을 밝힌다.출애굽기나 레위기,신명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 규칙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1만 2000원.˝
  • [2004 LA마라톤대회] 49세 포즈냐코바 2연패

    8일 열린 2004 LA마라톤대회에서 49세의 ‘아줌마선수’ 타티아나 포즈냐코바(우크라이나)가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2시간30분16초의 기록으로 그것도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차지했다.우승상금 5만달러 외에 ‘아줌마의 투혼’을 인정받아 2만 5000달러를 보너스로 받았다. 포즈냐코바가 5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낸 것은 아테네올림픽 때문이다.1955년 3월생으로 15세 때인 70년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뜀박질로 34년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그러나 아직 올림픽엔 출전하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마라톤을 한 것은 아니다.800m와 1500m가 주종목인 중장거리 선수였다.육상강국이었던 구소련 대표선수로 10년 이상 활약했다.그러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고,운도 따르지 않았다.포즈냐코바는 “80모스크바올림픽을 앞두고 1500m에서 3분56초50이라는 좋은 기록을 세워 올림픽출전을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다른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는 바람에 선발되지 못했다.”면서 지금도 아쉬움을 드러냈다.포즈냐코바의 당시 기록은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역대 랭킹 23위에 올라있을 정도.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96년 41세의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았다.체력을 고려해 출산 이후 장거리를 포기하고 중거리로 전향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엄마가 된 뒤 더 자신감이 생겼다.그래서 오히려 거리를 늘려 1만m에 도전했고,이후에 본격적으로 마라톤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직 은퇴는 생각하지 않는다.나이가 들수록 기록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소속사도 없고 전문코치도 없다.남편 알렉스 자호루이코가 유일한 운동친구다.그러나 남편은 절대적인 후원자이고 든든한 코치다.러시아에서 출생했지만 남편을 따라 국적도 바꿨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지난 96년 금지약물 복용으로 2년간 자격정지를 당했다.길거리에서 구입한 감기약에 금지약물인 에페드린이 포함된 줄 모르고 먹은 것.그러나 99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높다.기록 인정기간(2003년 1월1일∼2004년 8월9일)에 세운 개인최고기록은 2시간29분40초(2003년 3월)로 올림픽 A기준기록(2시간37분)을 넘어섰다. 박준석기자 pjs@˝
  • [23일 TV 하이라이트]

    ●한민족 리포트(밤 12시) 서양문학의 뿌리 속에 동양의 문학을 알린 한국 비교문학자 이상경.‘차이코프스키 음악 계보의 4대 작곡가’로 구소련의 음악가 사전에 올라 있는 한국인 작곡가 정추.핵물리학의 비밀을 한꺼풀 벗겨낸 프랑스 핵물리학자 노만규.2004년 KBS 해외동포상의 인문사회부문 수상자들을 만나본다. ●낭랑 18세(오후 9시50분) 정숙을 바라보던 혁준은 계속 가슴이 뛰자 자신이 정숙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혁준은 와인에다 양초를 준비해 놓고 정숙에게 고백할 결심을 한다.한편 가영과 만난 정숙은 머리채를 붙잡히고,참다 못한 정숙도 폭력을 쓴다.가영을 납치하려던 제갈파는 얼떨결에 정숙을 납치하는데…. ●대장금(오후 9시55분) 중종의 병세를 놓고 장금과 정윤수는 진단과 처방에서 많은 이견을 보이고 급기야 세력다툼의 양상으로 치닫는다.결국 중전은 고심 끝에 내의정 정윤수의 손을 들어준다.그러나 중종이 심한 복통을 호소하고,장금이 우려하던 증상이 나타난다.결국 중종의 안위는 장금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백만불 미스터리(오후 7시5분) 무속인의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 난다. 무속인이 되는 것은 신의 부름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병과 신내림,그들의 믿음처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올가미일까?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사람의 운명까지 바꾼다는 신내림에 대한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본다. ●경찰24시(오후 10시50분) 자정이 다된 시간,아내가 칼에 찔려 숨져 있다고 신고한 남편.밖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고 굽다 만 삼겹살 등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으로 수사의 초점이 맞춰진다.형사들은 사건 당일 CCTV 녹화내용 중 피해자와 인사를 나누는 두 여자의 신원파악에 나서는데…. ●기획시리즈 ‘서길수의 고구려를 깨운다’(오후 9시) 연해주에 남아 있는 발해의 흔적을 찾아간다.연해주에서는 현재 러시아와 공동으로 유적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그 진행과정과 상황,그리고 과연 실제로 발해의 영토는 어디였으며 당시 국제 질서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백지연의 정보특종(오후 3시20분) 지난 17일 발표된 사교육비 경감대책에서 EBS 수능강의를 실제 수능시험과 연계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긍정적인 평도 있는 반면 현실성에 대해선 다소 유보적인 지적도 있다.EBS 강의로 과연 사교육비룰 줄일 수 있을지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
  • [제10회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 亞 사격선수권 판도 어떻게

    아시아 사격의 판도는 한국 중국 카자흐스탄의 3강 체제다.사실상의 프레올림픽인 제10회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서도 3강이 불꽃튀는 접전을 펼칠 전망이다. 아시아 지역에 걸린 아테네올림픽 출전 쿼터는 모두 79장.이 가운데 한국은 현재 남녀 공기소총 등 전통적인 강세 종목을 중심으로 13장을 확보한 상태다.10장 안팎인 역대 수준을 벌써 넘겼을 정도로 풍작. 그러나 대표팀은 아직도 쿼터에 목마르다.이번 대회에서 남자 10m 러닝타깃,남자 스키트,남자 더블트랩,여자 50m소총 3자세 등에서 최소한 3개의 쿼터를 추가할 계획이다.또 25m 권총의 이상학 박병택,남자 공기권총 진종오,여자 10m 공기소총 서선화 등 간판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 아테네까지 내닫는다는 각오다. 중국의 현재 쿼터는 21장.지금까지 아시아 전체 국가가 거둬들인 49장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중국은 여기에다 남자 50m소총,남녀 트랩 등에서 최소한 5개 이상을 추가할 전망이다. 카자흐스탄의 돌풍도 거세다.지난 80년대 사격 강국이었던 구소련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상당수가 카자흐 출신이고,이들이 현재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활약하고 있어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직 2장의 쿼터밖에 따지 못했지만 남자 10m 러닝타깃,여자 50m소총 3자세 등에서 한국을 위협할 전망이다. 이두걸기자˝
  • [이런 책 어때요]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요시다 타로 지음

    1990년대 쿠바는 경제붕괴에 직면했다.1959년 혁명 이후 계속된 미국의 경제봉쇄에 구소련의 붕괴가 겹쳐 상상을 초월하는 물자부족 사태에 빠졌다.사탕과 커피를 수출하고 쌀과 밀을 수입하던 농업국 쿠바의 식량 자급률은 43%에 그쳤다.당시 쿠바가 선택한 해법은 ‘도시농업’이었다.수도 아바나의 220만 시민들은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지었고,마침내 식량을 자급하는 ‘유기농업의 메카’가 된 것이다.이 책엔 그 ‘늘 푸른 혁명’의 비결이 담겼다.쿠바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1만원.˝
  • 새로운 감각의 슈베르트 명곡/바이올리니스트 크레머 내한공연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실내악 앙상블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3년만에 한국을 찾는다.16일 울산문화예술회관,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8일 부산문화회관.연주회의 주제는 ‘애프터 슈베르트’.슈베르트와 친구들이 꾸몄던 살롱음악회 ‘슈베르티아데’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크레머는 현란한 기교와 뛰어난 해석,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역사를 보면 그가 왜 그저 ‘뛰어난’ 데서 그치지 않고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됐는지를 알 수 있다. 크레머는 1947년 구소련연방에 속한 라트비아공화국의 리가에서 태어났다.그가 고국 라트비아를 비롯하여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이른바 발트해 3국의 젊은 연주자들로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창단한 것은 1997년.자신과 세 나라를 통칭하는 표현을 각각 넣어 작명(作名)을 한 셈이다. 크레머는 단순히 음악적이거나 개인적인 이유에서 이 악단을 만들지 않았다.발트해 연안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음악적 정체성을 지키고,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세 나라의 음악계를 활성화하고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창단 이후 독특한 레퍼토리와 고전·낭만·현대를 접목한 신선한 도전으로 극찬을 받았다.그동안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4계’를 편곡한 ‘8계’와 아르보 패르트와 마티노프의 작품을 담은 ‘정적(Silencio)’,모차르트와 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모은 ‘애프터 모차르트’ 등을 펴냈다. 이번 공연은 ‘애프터 슈베르트’에서 컨셉트를 빌려왔다.첫 곡은 바르툴리스의 1997년작 ‘아이 러브 슈베르트’.바르툴리스는 미니멀리즘의 성향을 가진 리투아니아 작곡가다.‘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티네’는 지휘자로도 유명한 데이비드 진먼이 편곡했다.또 연가곡 ‘겨울나그네’의 마지막곡 ‘거리의 악사’를 바탕으로 한 데샤트니코프의 ‘노쇠한 거리의 악사 같이’,리스트가 편곡한 왈츠 카프리스,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의 현악합주 버전 등 슈베르트 원작의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보여준다.(02)580-1300. 서동철기자 dcsuh@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 기고/美는 北核문제 대국적 차원서 풀어야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입장에서 한반도 핵문제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27년전인 1976년 5월27일 럼즈펠드 장관은 연례 한·미 안보회의 단독 회담에서 경고한다.“한국이 핵병기를 개발하면 한·미 관계에 중대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서종철 국방장관이 답한다.“한국은 핵병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이던 필자가 통역하고 기록했다.그때 필자가 알게 된 미측 문건에 “한국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하지 말라.”라고 주가 돼 있었다.그로부터 18년후인 94년 김일성 주석이 말한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병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전에 1975년 3월 키신저 미 국무부장관이 이미 경고했다.“한국은 초기 단계의 핵병기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10년내에 제한된 수의 핵병기와 미사일 능력을 가질 것이며,이로 인해 한국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70년 2월 닉슨의 괌선언이 있었다.“아시아에서 미국은 방위공약을 지키되 지상전투는 그 토착 군민이한다.” 그리고 이듬해 주한 미7사단을 철수한다.72년 상하이 공동선언으로 미·중 국교 정상화가 추진된다.75년 월남이 공산 통일되고,77년 카터 대통령은 남은 미2사단의 철수를 발표하고 철수를 시작한다.위기의식을 가진 당시 한국이 핵개발을 한다는 의혹이 발생한 환경과 오늘날 북의 위기의식에서 우리는 유사성을 보게 된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은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다.북에 대한 군사작전은,곧바로 재래식 장거리포 사정거리 내에 있는 서울의 피격을 의미하고 전쟁의 재앙을 뜻하기 때문이다.부시 대통령이 최근 문서에 의한 북의 안전보장 의사를 발표하고,북측이 불가침조약 요구를 일단 접은 것은 좋은 일이다.우리는 다음 6자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것을 믿고 기대한다. 미국의 많은 전략연구 보고 문건은 중장기의 잠재적인 적국으로 중국을 지목한다.그런 시각으로 볼 때,긴 육속 국경선을 중국과 러시아에 가진 북한의 군사·정보·정치적 가치는 남한의 가치에 비교할 수 없이 크다.미국으로서는 북을 더이상 중국이나 러시아에 근접시키는 적대적 정책보다 관계개선하고 제휴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이런 목표만 설정되면 달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20여년전 남측의 개발의혹이 미국이 뜻하는 대로 해결됐듯이. 지리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역사는 쉴 새 없이 닥치는 외침에 대한 저항과 투쟁,승리의 역사다.한국인은 소의 꼬리로 안주하기보다 닭의 머리로 남기를 원했다.한국인은 또 신의가 있다.월남전에 한국은 대병력으로 미국과 고난을 같이했다. 한반도 분단은 남북한 민족의 의사에 반한,미국·구소련의 세력 판도를 유지하기 위한 무자비한 결정이었다.물론 58년이 지난 아직도 분단 상태를 해결치 못한 기본적 책임은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다.그러나 그 원인 제공은 미국·구소련에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을 탓하려 하지 않는다.한국사람 스스로를 탓한다.우리는 미국이 남과 북의 평화적·단계적 통일에 동참하고 앞장서서 적극 지원해주기 바란다.닉슨은 미국이 주창하는 인권·자유·민주주의의 실행 전형과는 크게 차이가 있는 모택동과 국교를 정상화했다.미국은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600만 유대인 학살과 주변국을 침략·살상·파괴한 독일을,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시키는 데 주도력을 발휘했다.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칭송하는 미국의 관대·아량·자비·정의의식·책임감의 모습이다. 중국·독일에 비해 한반도는,미국에 필요이상으로 고난을 겪는 일개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다.그 핵 의혹을 해결하는 데 미국이 군사면뿐만 아니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 걸맞은 대국적 차원의 규모 큰 지도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손장래 민화협 상임고문 본지 자문위원
  • [열린세상] 역사의 엇갈린 방향

    중국이 구소련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유인우주선 선저우호의 첫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축배를 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중국과 한국의 엇갈린 운명이 선명한 대비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건설과 국력신장에 한창 땀을 흘리던 60년대 후반 중국은 마오쩌둥의 주도로 문화대혁명이라는 사상 유례가 없는 대모험을 감행했고 10년이 지난 뒤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중국인들 스스로 역사의 퇴보였다고 여기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중국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후진사회주의 국가로 전락했다.하지만 1980년대 마오쩌둥의 노선을 비판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면서 중국은 변신을 거듭했다.1990년대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과 개방의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때 중국은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중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인물들 중에는 한국이 강력한 국가의 주도로 이룩한 경제성장을 자신들의 모델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이념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와 경제성장에 노력했던 이들에게 한국은 대표적 성공사례였던 것이다.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 한국을 자신들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요즈음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 가운데 일부가 1960년대 후반 중국의 극단적 이념정치를 자신들의 모델로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는 사실이다.홍위병이라는 용어는 보수 언론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하지만 노사모의 핵심인물 일부는 근래 들어 자신들이 대통령을 보호하는 홍위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나섰다.대통령 또한 중국을 방문하면서 마오쩌둥을 덩샤오핑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중국 정치인으로 꼽았다.물론 그것을 외교적 발언이라 할 수 있고,마오쩌둥에게 문화대혁명이라는 과오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에게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서 중국의 역사 발전을 거꾸로 되돌린 인물에 불과하다. 중국과 한국에서의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중국과 한국이 40년 가까운 세월을 격해서 서로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느낌을갖는다면 지나치게 과민한 것일까? 우리 사회가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구질서로 되돌아갈 수도 없지만 이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가 아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지도 않았다.과거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의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리더십의 능력이 검증된 것도 아니다.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개인적 해결책을 찾는다.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는가 하면,자녀 교육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래의 안정을 구하기도 한다.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사회 전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이제 생겨나는 새로운 질서가 만약 중국의 과거와 유사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험난할 수밖에 없다.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세대들은 스스로를 ‘잃어버린 세대’로 평가한다.문화대혁명이 휘몰아친 1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개인적으로 또한 국가 전체적으로 경쟁력 상실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만 했고,그 때문에 대혁명이 지난 뒤 자신들의 자리를 찾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다.과연 우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평가를 할까? 중국이 후퇴하던 역사를 되돌려 앞날을 항해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빠르게 또한 철저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거꾸로 한때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던 우리가 소득 2만달러의 문턱에서 자꾸 주저앉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도 적용하지도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배움의 기본 자세는 자신이 범한 오류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바로잡는 것이 아니던가? 작금의 재신임 국민투표를 둘러싼 논란이 이러한 반성과 수정이라는 문제의식과 떨어져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우리에게는 중국처럼 10년 가까이 역사의 거대한 실험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우리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를 마다하고 이념적 만족을 선택할 상태인 것도 아니다.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60년대 후반 이념과 명분에 휩싸여 국난에 빠질 당시의 중국이 아닌 개혁과 개방에 박차를 가해서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중심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현재의 중국이어야 한다. 한 준 연세대교수 사회학
  • 이라크 ‘제2 아프간’ 되나

    지난 19일 이라크전이 끝난 지 4개월만에 최악의 테러가 발생,이라크가 극도의 불안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이날 오후 바그다드 주재 유엔 본부 건물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최소 2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가운데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 유엔 특별대사와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직원들도 포함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세계 각국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이번 테러를 “야만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테러범들이 노리는 것은 이라크의 사회불안 야기라는 분석이다.미군에 대한 산발적 공격에서 벗어나 이제 외국공관,국제기구와 인프라로 공격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민심불안 조장 목적 뉴욕 타임스는 이에 대해 20일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민심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는 새로운 테러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미국 주도의 평화유지활동과 재건 작업을 방해해 이라크 내에서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세계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이라크로 속속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라크 내저항운동이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지하드(성전)’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이라는 분석이다.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라크 국경을 넘고 있으며,알 카에다와 연관이 있는 안사르 알 이슬람의 조직원 150여명이 이미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제2의 아프간 수렁 우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라크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구소련의 점령기간 동안 아프간 해방을 위해 젊은 이슬람 전사들이 세계 각처에서 대거 몰려들었다. 이번 테러로 미국의 평화유지활동과 재건 작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미국의 지원 요청에 파병을 수락한 나라들은 이라크에서 유엔의 역할 강화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유엔의 역할 축소가 불가피한데다 연이은 테러 발생에 자국군의 안전에 대한 우려까지 겹쳐 이들 국가가 파병을 유보하거나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당장 일본 정부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시기를 연기할 수도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또한 이라크 재건 사업에 인도적인 지원을 제공할 의사를 밝힌 바 있는 터키도 이번 사건으로 주춤하고 있다. 한편 유엔은 20일 사고 이후에도 바그다드 주재 유엔 사무소의 직원들을 철수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으며,부상자와 충격을 받은 직원들만 요르단으로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상숙기자 alex@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2)김윤식

    ‘국문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 김윤식 선생을 뵙고 한국문학 연구의 현 단계를 묻기로 했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생이 일생에 걸쳐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직분의 논리다.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밖에 할 수 없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그는 이렇게 말했다.“안일한 나날보다도 비통한 나날을,죽음 이외의 휴식은 없는 것이다.”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 인터뷰 때 찢어진 바랜 잡지를 가리키며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월평 쓰려고 준비하기 위해 갖고 다닌 거요.그 옆에 종이는 작품 읽고 메모해 놓은 거고.월평을 쓰려면 세 번 읽어야 된다고.한 번 읽고,쓸 때 다시 꺼내가지고 읽고,쓰고 난 다음에 대조해가면서 다시 읽고.그래야 돼.외국 갈 때는 잡지를 찢어가지고 가방에 넣어가.안 그러면 무거워서 많이 못 가져가니까.” 김윤식 선생을 만나러 가는 날은 몹시 긴장되었다.내게 무서운 선생님인 까닭이다.강의실에서 선생의 꾸짖는 소리를,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를 죽여 가며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런 무서움에 앞서 선생은 제자들보다 더 일찍 연구실에 불을 켜놓는 부지런함 때문에,날마다 읽고 쓰는 놀라운 규칙성 때문에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딱딱한 안면,퉁명스러운 말씀을 떠올리며 용산 자택으로 찾아갔다.기어들어 갔다고나 해야 할까.예상 외로 강의실에서와는 달리 선생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래,어떻게 지내나?” “….” 선생이 건네는 말씀은 독백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다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간단한 ‘요식 절차’가 끝나자 인터뷰를 서두른다.여전히 긴장한 탓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책을 하나 써서 곧 나올 때가 되었어요.우리 세대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연구는 일제 강점기 문학이니까….정년 퇴임 후에 일제말기 한국 작가들이 일본어로 글 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해 왔고….한 400페이지 되는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내용이라면?” “유진오,김사량,이효석 이 세 사람이 일본말 창작을 자유롭게 했는데 이중에 이효석이 제일 정확하고 언어감각이 뛰어났어요.그냥 일본말로 바로 창작을 했지요.유진오도 대단히 정확했고 김사량은 그중 제일 서툴렀고….” “일제 말기 일본어 문학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그들은 이중어 글쓰기를 했던 셈인데,한국의 근대문학이라고 했을 때 그 문학은 근대국가가 만든 말을 가지고 해야 하지 않겠소? 그게 국어지.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망하고 없었으니 조선어학회 같은 곳이 국가 역할을 대행했어요.그런데 일제 말기에 국가를 대행하는 이것을 잡아 가둬 버리기 시작한 것이 1942년 10월이에요.33인을 잡아넣었어요.33인이라는 것은 삼일운동 때 33인,그걸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그래서 그때부터 1945년 광복까지가 암흑기라는 것이오.1942년 10월까지는 조선근대문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없어요.그럼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조선근대문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문학을 하는 수밖에 없고 일본어로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한국근대문학의 고통스러운 운명이 느껴지는군요.” “근대문학이 뭐냐 하면,자본재 생산양식 또는 국민국가주의가 문학에 투영된 것이잖소? 그런데 우리는 근대국가를 만들면서 동시에 일제라는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단 말이에요.근대국가라는 것이 사실은 ‘제국주의’인데 ‘제국주의’가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던 거죠.이 특수성,자기모순,우리 근대문학은 근대문학으로서의 보편성 외에 이 특수성을 반영하는 문학이었어요.” “최근 들어 특수성 대신에 보편성,즉 식민성 대신에 근대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에 176개의 나라가 있지만 근대화하지 않은 나라는 아무데도 없어요.국민국가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가는 천하가 다 아는 거라고.우리만 사람이고 우리 아닌 사람은 다 짐승이고,그래서 잡아먹어도 괜찮다,카니발적인 거라고.카니발리즘.그러나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우리끼리는 잡아먹지 말자는 거죠.그러니까 지금 사람이 생각해낸 것 중에서 제일 고약하지만 합당한 원리는 이것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선생의 일생을 지탱해온 문학 근대주의자 면모를 새삼 재발견한다.그렇다면 문학 역시 특수성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직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이 되지 않으면 안될 터.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내가 김현하고 문학 활동하던 그 세대에는,어땠냐면,어떻게 하면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어요.임화의 이식문학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걸 가지고 떠들고 했어요.자본주의가 우리 내부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하려고 했었고.그런데 요새는 어떠냐.안병직씨 이론이 더 맞다고 하잖소.조선은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다,일본이 와서 근대를 이식했다는 거지요. 그러면 이식문학 극복하자고 떠들던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국민국가문학,이런 거 하는 것보다도,문학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게 광복 직후에 김사량이 펼친 주장이잖소.이태준이 김사량 보고 너 일제시대 때 일본말로 글 쓰지 않았느냐 했더니,김사량이 뭐라고 했소.나 큰소리 안 친다 말이야,그러나 당신은 그럼 뭘 했는가.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나는 일본말로 썼든 뭐로 썼든 쓰지 않았느냐. 요즘 시점에서 보면 이 김사량의 입장이 뚜렷한 의미를 갖고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도 일본하고 전쟁한 거라고 보지 않아요? 이런 세대가 부각되고 있음을 사실로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딘가 거북해진다.386세대의 일원인 나는 특수성에 목을 매고 살아온 까닭이다. 한편으로 보면 식민성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특수성을 떨치고 세계화니 현대화니 하는 보편성을 향해 거침없는 진군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선생의 관심사를 한국문학이라는 특수성 쪽으로 환기시키려 해 본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근대문학의 특질은 무엇입니까.” “한국근대문학사를 공부해 오다 보니까 이게 일본근대문학사로부터 대단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지 않았겠소? 한국근대문학을 일본근대문학과 비교하면서 보는 시각은 한국근대문학만 보는 시각하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의 관심사가 언어와 문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국문학도가 살아남으려면 국문학만 해서는 안됩니다.한국근대문학사의 특질이다,뭐다,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은 어떻고 중국은 어떻다,하는 시각을 갖고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 속에서 견주어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선생은 오히려 나를 선생의 시각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문학은 세계문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 와 있습니까.한국문학은 세계문학사상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까.” “언어나 문학이나 이제 단일성만 주장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이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나라는 아마 일본이나 한국 정도가 아닐까 해요.다른 문화권은 이미 단일성을 주장하지 않아요.우리만 한국어라는 단일한 전제를 갖고 한국어로 된 문학이 국민정서 전체를 버티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우리 문학이 늘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문학은 늘 인간은 벌레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어요.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을 우리는 해왔단 말이에요.일제 때도 그렇고,광복 후 분단 문제와노사문제를 다룬 것도 그렇고.그런데 20세기 이후 21세기의 한국문학은 방향이 바뀌고 있어요.거꾸로 인간은 벌레라고 주장하고 있어요.인간은 벌레다,짐승이다,요녀다,물고기다.이런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이것이 한국문학의 단일한 정체성에 파열구를 내고 그 방향을 바꾸고 있어요.인간을 하나의 생물로 보는 커다란 상상력을 통해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에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국적성의 해체 국면이군요.” “한글로 쓰든 영어로 쓰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DNA예요.DNA 문제예요.여기서는 한국이고 뭐고 세계가 다 똑같다는 거죠.”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하버마스 쪽을 지지하고 있어요.이성이 아무리 도구적인 이성이 되어 가지고 유태인을 죽이고 미사일 가지고 실험한다 하지만 창조하는 것도 이성이란 말이에요.인류는 어떻게 하든 간에 이성을 살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제일 많이 흔들린 때는 구소련이 무너졌을 때였어요.프랜시스후쿠야마가 역사가 끝났다고 하더군요.역사가 끝장났다면 인간은 그럼 뭐냐.나는 역시 이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이성이 아무리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그것을 버리면 허무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정년퇴임한 선생이 나이 어린 나보다 더 젊게 보이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다.선생은 세계화라는 시대의 대세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며 또 다른 국면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의 아파트를 빠져나올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예사 장맛비가 아니라 좍좍 내리 퍼붓는 소나기였다.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험한 비가,장대 같은 빗방울이 내 이마에 꽂히고 있었다.나 또한 매일 젊어져야 하리라.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평론가 김윤식 ●조선 향기 가득한 자택 겉모습만 보면 김윤식 선생은 서구식 멋쟁이다.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뒤로 잘 빗어 넘긴 머리칼은 지성을 상징한다.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항상 세련된 조화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모던 보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뜻밖에 아파트는 전통미가 살아 숨쉰다.흔한 서구식 응접세트 대신에 자리를 깐 마룻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 안성맞춤인 낮고 넓은 옻칠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그 위에는 우리네 화병이 하나,흰 접시가 하나,접시 위에는 산수유 열매 몇 점. 한쪽 벽에는 백자며 분청사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어 고전미를 자아내는데 방문은 모두 격자무늬다.선생의 서구식 외모와는 전혀 다른 ‘조선식’ 생리를 발견한 것이 더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런데 내외만 사는 그곳엔 먼지 한 점 찾을 수 없다.여인은 어디론지 나가고 없고 선생 혼자 지키는 대낮의 실내는 적막하기만 하다.선생은 국문학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고독한 항해자였다. ●문학 유목과 지적 여정 1936년생인 김윤식은 한국 현대소설 및 비평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자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읽고 소화해 내는 현역 비평가다.한국전쟁 이래 한국 현대문학사의 뼈대를 만든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이래 숱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벌여 100권을훨씬 상회하는 한국현대문학 관련 저서를 출간했으니,그로 인해 한국 현대문학 연구는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염상섭 연구’,‘김동인 연구’,‘김동리와 그의 시대’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가 연구는 젊은 국문학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이외에도 ‘한국근대문예비평사’,‘한일문학의 관계 양상’ 등은 한국현대문학사를 일본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연구서다. 또 ‘황홀경의 사상’ ‘낯선 신을 찾아서’ 등의 예술·기행 산문집은 현대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 기고 / 공공성 훼손하는 국가학벌이 문제

    얼마 전에 끝난,‘수평사회를 만들자’라는 기획의 제2부로 진행된 대한매일의 ‘학벌 타파’기획 연재기사를 빠지지 않고 읽어왔다.근래 사회에서 학벌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함에 따라 일시적으로 관심을 보인 언론은 있었으나,이번처럼 무려 넉달에 걸쳐 다각도에서 학벌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획은 없었다.그러기에 이번 기획기사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학벌문제를 고민하는 정책담당자나 일반인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기획 측은 학벌을,우리 사회가 수평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억압하고 서열과 차별이 지배하는 수직사회요 닫힌 사회로 만드는 원인자라고 보았다.그리하여 학벌을 ‘현대판 골품제’라고 명명하였는 바,신라시대에 골품제로 인해 많은 능력있는 인재들이 사회발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좌절함에 따라 통일신라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자는 강한 호소력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아울러 18회에 걸친 연재에서 학벌의 실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한 것으로 시작하여,학벌문화의 정점으로 거론되는 서울대의 문제를과감하게 파헤쳤으며,일본과 유럽 등지의 해외취재를 통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 모습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여 학벌타파의 해법이 무엇인지를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가며 모색하여 보았으나,학벌문제가 워낙 난마처럼 얽힌 문제라 어디서부터 손을 써나가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오히려 이러한 기획이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심도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대안 모색에 있어서는 크게 두가지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하나는 ‘학벌 타파’라는 구호 자체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의구심이다.그들은 이러한 구호에 대해 인위적인 평준화,실력보다는 자리 나눠먹기 등을 말하는가라고 되묻는다.나아가 학벌은 우리 현실에서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능력의 지표이며,학벌에 서열이 있고 그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그러기에 학벌타파가 어떤 ‘인위적’인 간섭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러나 현재의 학벌구조는 그 자체가 매우 인위적인 것이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경쟁질서의 형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기획기사가 학벌문화의 정점으로 서울대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는데,바로 국립 서울대가 학벌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인위적인 것이다.그것은 국가가 국립중앙대학으로서 특별히 지원하여 일종의 국가 엘리트 양성소로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시키기 때문인 것이다.이것은 자연스레 대학간에 공정한 경쟁질서와 그것이 가져오는 창의와 역동성을 억압하게 되어 고착된 대학 서열구조가 형성되고 이것이 학벌문제의 핵심인 것이다.우리가 심각하게 문제삼는 학벌은 단순한 동창회 문화가 아니라,마치 구소련의 노멘클라투라와 같이 국가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는 국가학벌의 횡포이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방향은 학벌문제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사회공학적인 접근이다.교육공화주의,대학의 평준화,대학별 인재할당제 등을 내세우는 일련의 흐름이 있다.이들은 학벌문제는 궁극적으로 고등교육이 시장의 영역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모든 불평등이 생긴다며,대학교육을 전면적으로 국가관리체제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대한민국을 새로이 건국하지 않는 한 이러한 주장이 우리 사회의 동의를 얻으리라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학벌로 인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에 의하여,학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마치 대중주의적이고 평등지상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는 데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마침 참여정부에서도 학벌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합동기획단을 발족시킨다고 한다.그러나 학벌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없이 단순히 지엽적이고 결과적인 현상을 수정하고자 한다면 어색하고 인위적인 정책들만이 나올 것이고 그 실효성도 크지 못할 것이다. 김동훈 국민대 법대학장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 최인훈

    최인훈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 속에 20세기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젊은 날의 최인훈을 사로잡은 고독이란 식민,분단,전쟁,냉전으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장강처럼 펼쳐간 사유의 대기록인 ‘화두’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대가(老大家)의 몸부림이 아니었던가.이 시대를 묻기 위해서는,밤길처럼 어둡고 동물원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읽고 쓰는 일 외에 별로 분주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980년 광주 특집 방송과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책보다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담겨있었는데 남과 북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지금은 한민족이 과거를 딛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역작 ‘화두’(1994)는 바로 그와 같은 한민족 내지 한반도의 운명과 20세기말의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넓고 깊게 사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두’는 냉전의 종식,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죠.20세기에 훌륭한 예술가·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만 불행하게도 20세기 말까지 생존한 분들은 적습니다.저는 20세기를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은 행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들어 세계는 심각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현재의 제 감각으로는,세계는 지금 19세기적인 국제 정치 환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저는 이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결과를 생각해 볼 때 20세기는 상당히 괜찮은 세기였다고 생각합니다.그 시대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높이 존경하고 그 존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문명사는 인간에게 분수를 알라고 가르치지만 겸손이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우상이나 정해진 틀을 대담하게 넘어서려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바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환경,거꾸로 우리가 그런 대로 해결하면서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미국과 아랍 문명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현상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은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물론 많은 비판이 있었고 미국이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가 방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구상의 소박한 민중들 눈에 비친 미국은 훌륭한 나라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항공모함으로서만 살 수 없고 미사일만으로서 세계를 만만하게 요리할 수도 없습니다.내가 아까 19세기 운운했지만 형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닙니다.세계 민중의 의식은 21세기에 와 있습니다.이런 시대에 지금까지 국제 질서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이 이처럼 퇴행적인 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심각히 우려되는 일입니다.당장 우리 반도 남북의 거주자들한테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북한 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세계사적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한반도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이라고 합니다.이 어려운 시대를 한국인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지난 20세기는 우리 반도 거주자들이 한반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래 최악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전반에 국가 전체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우리 역사에 이처럼 완전히 권리를 제약당한 적은 없었습니다.그런가 하면 20세기의 후반기에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를 견뎌 왔어요.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평화는 우리 전부의,최대의,인간으로서의 희망 사항이고복지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있어야 이런저런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극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년 전,100년 전보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50년 전,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과거에 문명사적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구소련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권·슬라브권이 인류사적 의미의 문명의 축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갖지 못한 인류사적 문명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들은 난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들이 제공하는 방향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같은 이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일본은 중국과 다릅니다.일본은 20세기의 문명사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습니다.그러면서도 명쾌한 과거반성이 없습니다.이러한 일본의 존재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상당한 격차를 가질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입니다.앞으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유럽에 비견될 만한 공동체적인 지역 환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두드러졌습니다.새롭고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당부의 말씀을 남겨 주시지요.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들을 견제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자제하라느니 자기 검열을 하라느니 하는 말은 노파심의 소산입니다.선거가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선 안 된다,판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말려야 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바로 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합니다.소신이 있다면 책임지고 갈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지요.갈 때까지 가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라는 거지요.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험한 역사를 본 세대의 입장에서는 감히 뭔가 앞질러서 다 지혜롭게 꿰뚫어 보고서 충고를할 만한 저축이 없습니다.새로운 세대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 봅시다. ■방민호가 본 작가 최인훈 ●최인훈 선생 만나는 날 ‘북(北)에는 최인훈이요 남(南)에는 박경리다.’.함경북도 회령은 반도의 북쪽 끝,경상남도 통영은 남쪽 끝이 아니던가.그러니 먼저 최인훈을 찾아 가리라.나는 이 막막한 시대를 헤쳐 나갈 지팡이를 얻기 위한 제일(第一) 행선지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인훈 선생의 자택으로 정했다. 그를 만나는 길은 멀었다.선생은 여러 겹 문을 가진 성(城)처럼 깊은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처음 본 선생은 셔츠를 맨 위 단추까지 꼭 채워서 입고 있었다.그것이 내게는 선생의 작가적 성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여러 번에 걸쳐 ‘광장’을 고쳐 쓴 선생은 완벽주의자다. ●최인훈의 문학세계 1936년에 국경도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쟁 중에 해군함정을 타고 월남한 가족의 한 사람,최인훈.부산과 목포 등지를 떠돌다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대형 작가임을 증명해준 ‘광장’(1961)과 ‘회색인’(1964)의 주인공들은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극단적인 냉전의 시대에 남과 북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내성(內省)은 바로 최인훈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의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 진입시킨 것은 1973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미국 체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었다.그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은 어떠하며 한국문학의 길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희곡과 소설을 시도해 간다. 1994년에 간행된 ‘화두’는 20세기 한국사를 그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켜 기억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의 독특한 존재 의미를 건져내 보여주었다.이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탐색의 결과였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 지성과의 인터뷰를 맡은 방민호 국민대 교수는 문단의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로서 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서’,‘납함 아래의 침묵’,산문집 ‘명주’,산문선집 ‘모던 수필’을 펴냈다.
  • 몽고메리·그린·디버스·드래길라…美육상드림팀 “목표는 우승”/ 세계선수권 출전명단 발표

    미국 육상 드림팀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정상을 향해 돛을 올렸다. 미국육상연맹은 9일 파리세계육상선수권(8월21∼31일)에 출전할 대표선수를 발표했다.미국은 이번 대회 46개 금메달 가운데 10개 안팎을 따내 정상을 지킨다는 목표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세계선수권에서 미국은 구소련이 붕괴된 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주체제를 굳혀 왔다.특히 단거리에서는 ‘미국대표=세계최고’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 우선 남자 100m는 세계기록(9초78) 보유자인 팀 몽고메리를 비롯해 2000시드니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모리스 그린이 포함됐다.미국의 우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두 선수의 맞대결도 또 다른 흥밋거리다.지난해 9월 몽고메리가 그린의 당시 최고기록(9초79)을 깬 이후 두 선수는 아직 단 한차례도 맞대결을 펼치지 않았다. 백전노장으로 세계선수권에서 세차례나 우승한 37세의 스프린터 게일 디버스도 여자 110m허들 대표로 뽑혀 정상을 넘본다.여자 100m는 현역 최고의 스프린터로 각광받는 매리언 존스가 출산으로 불참해서 다소 김이 빠진 느낌이지만 켈리 화이트가 존스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세계 최고기록(4.81m) 보유자 스테시 드래길라가 정상과 함께 또 한번 세계기록 경신에 도전한다. 박준석기자 pjs@
  • 국제 플러스 / 콩고 여객기 추락… 160여명 사망

    |킨샤사(콩코민주공화국) 외신|킨샤사를 출발해 남동부의 루붐바시를 향해 가던 콩고민주공화국(DRC)의 한 국내선 여객기가 비행 도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사고가 발생,160여명의 승객들이 추락사한 것으로 우려된다고 9일 군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 사고는 8일 밤 구소련제 일류신 76 여객기가 이륙 후 7000피트 고도에 도달했을 때 뒷부분 문이 떨어져나가면서 발생했다.
  • 문명의 이름으로 저지른 ‘인간사냥’ 백인들은 야수였다?

    야만의 역사 김남섭 옮김 /한겨레신문사 펴냄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석기시대 종족인 북아프리카의 관체족(Guanches)은 유럽의 팽창에 의해 멸종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족 또한 유럽 팽창기에 절멸당했다.15세기 말 500만명에 이르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백인의 이주로 인해 1891년에는 5%인 25만명만이 살아 남았다.1898년 수단의 옴두르만 전투에서는 1만1000명의 수단인이 살해됐다.이에 반해 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인의 희생은 48명에 불과했다.전투의 승리로 영국은 수단을 점령하고,나일강의 해상운송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백인들의 ‘야만’ 사례가 어디 이뿐이랴.독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인 17세기 ‘30년 전쟁’처럼 서구 국가들간의 살육도 상상을 초월했지만,백인들의 비(非)서구지역에 대한 잔혹성은 야수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서 자행된 유럽 제국주의 대학살 스웨덴 출신의 작가이자 진보적 저널리스트인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야만의 역사’(김남섭 옮김,한겨레신문사 펴냄)라는 저서를 통해 19세기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유럽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인종대학살,그 참혹한 기억의 흔적을 한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여행기 형식을 빌려 비극적인 인종 말살의 역사를 기록한 이 책은 공간적 여행과 역사 속의 시간 여행,그리고 저자의 기억 속 내면 여행이 겹쳐지는 복합적인 구조를 띤다. 저자는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면서 경유지마다 얽힌 역사적 사연들을 되짚어간다.과거 유럽인들의 잔학상을 떠올리며 역지사지의 사유를 시도한다.내가 인간사냥의 대상이 됐다면 어떻게 느꼈을까.그런 점에서 이 여행은 일종의 ‘회개를 위한 순례’이다. 이 책은 폴란드 태생의 영국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에 나오는 한 문구를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책의 원제이기도 한 ‘모든 야수들을 절멸하라(exterminate all the brutes)’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저자는 유럽인들이 비서구에 대해 가졌던 태도의 핵심,즉 ‘야수(비서구인)의 절멸이야말로 최선’이라는 유럽인들의 ‘학살주의’의 사상 계보를 상세히 들춰낸다.무기를 제외하고 기술과 자원이 부족했던 유럽은 16세기부터 학살이나 강탈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그런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요구됐던 것이 학살주의 이데올로기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인들의 유례없는 폭력 경험은 그들의 뼛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나아가 ‘인권’을 최고 덕목으로 삼는 그들이 감히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하는 인종주의로 구체화돼 있다.저자가 유럽인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학살행위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직접적인 선례가 됐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홀로코스트를 유럽의 민주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일탈한 사건으로 보려하거나,기껏해야 구소련의 강제수용소나 대숙청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하는 것은 유럽인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은폐하려는 기도일 뿐이라는 얘기다.저자는 이와 관련,‘나치의 유태인 말살은 유일한 것인가.’라는 이른바 ‘역사가들의 논쟁’을 촉발한 독일의 우익 역사가 에른스트 놀테의 예를 든다. 놀테는 제3제국에 의한 유태인 말살은 독창적 행위가 아니라 반작용이나 왜곡된 모방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1930년대 소련에서 있었던 쿨락(kulak,부농)들의 절멸과 스탈린의 숙청을 히틀러가 모방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소련에서의 부르주아 계급학살은 나치에 의한 인종대학살의 논리적·사실적 선례라는 게 그의 견해다. ●19세기 백인의 잔혹성 꼬집기 이 ‘역사가들의 논쟁’에서는 누구도 히틀러의 어린 시절,남서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독일인에 의한 헤레로족 말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프랑스인,영국인,미국인들에 의해 자행된 이와 비슷한 학살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학살주의 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셈이다.저자는 이 지점에서 “‘역사가들의 논쟁’에 참여한 모든 독일 역사가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즉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야만성이라는 주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종속이론의 대가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과 문필가들이 이를 연구했다.그들은 ‘지리상의 발견’ 이래 약탈적으로 이뤄져온 유럽의 팽창은 다름 아닌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과정이라는 점을 밝혔다. 이 책은 이러한 기초적 사실을 토대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의 만남을 시도한다.서구 열강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역사를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죄의식에 대한 고해성사도 곁들인다. 역사의 진실은 종종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바로 그 ‘진실의 이면’에 존재한다.저자가 던지는 메시지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北核 보유 시인 파문 / 北核 사실이면 9번째 보유국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9번째 핵보유국이 된다. 현재 핵무기 보유 사실이 공식 확인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이른바 ‘핵 5대 강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비공식 보유 3개국에 이은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자진해체한 유일한 국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기준은 이들 8개국과 다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8개국은 처음부터 국가안보·국제질서를 내세우며 핵 보유를 천명했고 이를 실천에 옮긴 나라들이다.핵이 없는 187개 국가가 참여해 1970년 3월 발효시킨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핵을 갖지 않겠다는 약속 아래 지난 85년 12월 구소련의 설득으로 NPT에 가입했다. 이에 비해 인도·파키스탄의 경우 핵실험을 하자 주변국이 각각 경제제재 등을 취한 바가 있지만 국제적인 차원의 제재는 없었다.하지만 북한은 몰래,국제사회를 속이고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명되면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논의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남아공의 경우 지난 93년 3월 데 클레르크 당시 대통령은 백인통치시절 자력으로 개발,은닉했던 핵무기 6기를 흑인 다수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자진 폐기했다. 이듬해 94년 8월 IAEA가 핵사찰로 이를 공식 확인했고,이에 대한 대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를 참조해 북한이 남아공 선례를 따를지 여부도 관심사다. 김수정기자 cry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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