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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 기고/美는 北核문제 대국적 차원서 풀어야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입장에서 한반도 핵문제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27년전인 1976년 5월27일 럼즈펠드 장관은 연례 한·미 안보회의 단독 회담에서 경고한다.“한국이 핵병기를 개발하면 한·미 관계에 중대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서종철 국방장관이 답한다.“한국은 핵병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이던 필자가 통역하고 기록했다.그때 필자가 알게 된 미측 문건에 “한국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하지 말라.”라고 주가 돼 있었다.그로부터 18년후인 94년 김일성 주석이 말한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병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전에 1975년 3월 키신저 미 국무부장관이 이미 경고했다.“한국은 초기 단계의 핵병기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10년내에 제한된 수의 핵병기와 미사일 능력을 가질 것이며,이로 인해 한국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70년 2월 닉슨의 괌선언이 있었다.“아시아에서 미국은 방위공약을 지키되 지상전투는 그 토착 군민이한다.” 그리고 이듬해 주한 미7사단을 철수한다.72년 상하이 공동선언으로 미·중 국교 정상화가 추진된다.75년 월남이 공산 통일되고,77년 카터 대통령은 남은 미2사단의 철수를 발표하고 철수를 시작한다.위기의식을 가진 당시 한국이 핵개발을 한다는 의혹이 발생한 환경과 오늘날 북의 위기의식에서 우리는 유사성을 보게 된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은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다.북에 대한 군사작전은,곧바로 재래식 장거리포 사정거리 내에 있는 서울의 피격을 의미하고 전쟁의 재앙을 뜻하기 때문이다.부시 대통령이 최근 문서에 의한 북의 안전보장 의사를 발표하고,북측이 불가침조약 요구를 일단 접은 것은 좋은 일이다.우리는 다음 6자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것을 믿고 기대한다. 미국의 많은 전략연구 보고 문건은 중장기의 잠재적인 적국으로 중국을 지목한다.그런 시각으로 볼 때,긴 육속 국경선을 중국과 러시아에 가진 북한의 군사·정보·정치적 가치는 남한의 가치에 비교할 수 없이 크다.미국으로서는 북을 더이상 중국이나 러시아에 근접시키는 적대적 정책보다 관계개선하고 제휴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이런 목표만 설정되면 달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20여년전 남측의 개발의혹이 미국이 뜻하는 대로 해결됐듯이. 지리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역사는 쉴 새 없이 닥치는 외침에 대한 저항과 투쟁,승리의 역사다.한국인은 소의 꼬리로 안주하기보다 닭의 머리로 남기를 원했다.한국인은 또 신의가 있다.월남전에 한국은 대병력으로 미국과 고난을 같이했다. 한반도 분단은 남북한 민족의 의사에 반한,미국·구소련의 세력 판도를 유지하기 위한 무자비한 결정이었다.물론 58년이 지난 아직도 분단 상태를 해결치 못한 기본적 책임은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다.그러나 그 원인 제공은 미국·구소련에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을 탓하려 하지 않는다.한국사람 스스로를 탓한다.우리는 미국이 남과 북의 평화적·단계적 통일에 동참하고 앞장서서 적극 지원해주기 바란다.닉슨은 미국이 주창하는 인권·자유·민주주의의 실행 전형과는 크게 차이가 있는 모택동과 국교를 정상화했다.미국은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600만 유대인 학살과 주변국을 침략·살상·파괴한 독일을,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시키는 데 주도력을 발휘했다.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칭송하는 미국의 관대·아량·자비·정의의식·책임감의 모습이다. 중국·독일에 비해 한반도는,미국에 필요이상으로 고난을 겪는 일개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다.그 핵 의혹을 해결하는 데 미국이 군사면뿐만 아니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 걸맞은 대국적 차원의 규모 큰 지도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손장래 민화협 상임고문 본지 자문위원
  • [열린세상] 역사의 엇갈린 방향

    중국이 구소련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유인우주선 선저우호의 첫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축배를 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중국과 한국의 엇갈린 운명이 선명한 대비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제건설과 국력신장에 한창 땀을 흘리던 60년대 후반 중국은 마오쩌둥의 주도로 문화대혁명이라는 사상 유례가 없는 대모험을 감행했고 10년이 지난 뒤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중국인들 스스로 역사의 퇴보였다고 여기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중국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후진사회주의 국가로 전락했다.하지만 1980년대 마오쩌둥의 노선을 비판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면서 중국은 변신을 거듭했다.1990년대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과 개방의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때 중국은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중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인물들 중에는 한국이 강력한 국가의 주도로 이룩한 경제성장을 자신들의 모델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이념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와 경제성장에 노력했던 이들에게 한국은 대표적 성공사례였던 것이다.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 한국을 자신들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요즈음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 가운데 일부가 1960년대 후반 중국의 극단적 이념정치를 자신들의 모델로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는 사실이다.홍위병이라는 용어는 보수 언론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하지만 노사모의 핵심인물 일부는 근래 들어 자신들이 대통령을 보호하는 홍위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나섰다.대통령 또한 중국을 방문하면서 마오쩌둥을 덩샤오핑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중국 정치인으로 꼽았다.물론 그것을 외교적 발언이라 할 수 있고,마오쩌둥에게 문화대혁명이라는 과오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에게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서 중국의 역사 발전을 거꾸로 되돌린 인물에 불과하다. 중국과 한국에서의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중국과 한국이 40년 가까운 세월을 격해서 서로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느낌을갖는다면 지나치게 과민한 것일까? 우리 사회가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구질서로 되돌아갈 수도 없지만 이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가 아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지도 않았다.과거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의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리더십의 능력이 검증된 것도 아니다.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개인적 해결책을 찾는다.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는가 하면,자녀 교육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래의 안정을 구하기도 한다.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사회 전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이제 생겨나는 새로운 질서가 만약 중국의 과거와 유사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험난할 수밖에 없다.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세대들은 스스로를 ‘잃어버린 세대’로 평가한다.문화대혁명이 휘몰아친 1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개인적으로 또한 국가 전체적으로 경쟁력 상실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만 했고,그 때문에 대혁명이 지난 뒤 자신들의 자리를 찾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다.과연 우리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평가를 할까? 중국이 후퇴하던 역사를 되돌려 앞날을 항해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빠르게 또한 철저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거꾸로 한때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던 우리가 소득 2만달러의 문턱에서 자꾸 주저앉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도 적용하지도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배움의 기본 자세는 자신이 범한 오류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바로잡는 것이 아니던가? 작금의 재신임 국민투표를 둘러싼 논란이 이러한 반성과 수정이라는 문제의식과 떨어져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우리에게는 중국처럼 10년 가까이 역사의 거대한 실험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우리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를 마다하고 이념적 만족을 선택할 상태인 것도 아니다.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60년대 후반 이념과 명분에 휩싸여 국난에 빠질 당시의 중국이 아닌 개혁과 개방에 박차를 가해서 동아시아에서 진정한 중심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현재의 중국이어야 한다. 한 준 연세대교수 사회학
  • 이라크 ‘제2 아프간’ 되나

    지난 19일 이라크전이 끝난 지 4개월만에 최악의 테러가 발생,이라크가 극도의 불안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이날 오후 바그다드 주재 유엔 본부 건물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최소 2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가운데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 유엔 특별대사와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직원들도 포함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세계 각국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이번 테러를 “야만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테러범들이 노리는 것은 이라크의 사회불안 야기라는 분석이다.미군에 대한 산발적 공격에서 벗어나 이제 외국공관,국제기구와 인프라로 공격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민심불안 조장 목적 뉴욕 타임스는 이에 대해 20일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민심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는 새로운 테러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미국 주도의 평화유지활동과 재건 작업을 방해해 이라크 내에서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세계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이라크로 속속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라크 내저항운동이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지하드(성전)’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이라는 분석이다.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라크 국경을 넘고 있으며,알 카에다와 연관이 있는 안사르 알 이슬람의 조직원 150여명이 이미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제2의 아프간 수렁 우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라크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구소련의 점령기간 동안 아프간 해방을 위해 젊은 이슬람 전사들이 세계 각처에서 대거 몰려들었다. 이번 테러로 미국의 평화유지활동과 재건 작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미국의 지원 요청에 파병을 수락한 나라들은 이라크에서 유엔의 역할 강화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유엔의 역할 축소가 불가피한데다 연이은 테러 발생에 자국군의 안전에 대한 우려까지 겹쳐 이들 국가가 파병을 유보하거나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당장 일본 정부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시기를 연기할 수도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또한 이라크 재건 사업에 인도적인 지원을 제공할 의사를 밝힌 바 있는 터키도 이번 사건으로 주춤하고 있다. 한편 유엔은 20일 사고 이후에도 바그다드 주재 유엔 사무소의 직원들을 철수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으며,부상자와 충격을 받은 직원들만 요르단으로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상숙기자 alex@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2)김윤식

    ‘국문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 김윤식 선생을 뵙고 한국문학 연구의 현 단계를 묻기로 했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생이 일생에 걸쳐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직분의 논리다.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밖에 할 수 없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그는 이렇게 말했다.“안일한 나날보다도 비통한 나날을,죽음 이외의 휴식은 없는 것이다.”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 인터뷰 때 찢어진 바랜 잡지를 가리키며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월평 쓰려고 준비하기 위해 갖고 다닌 거요.그 옆에 종이는 작품 읽고 메모해 놓은 거고.월평을 쓰려면 세 번 읽어야 된다고.한 번 읽고,쓸 때 다시 꺼내가지고 읽고,쓰고 난 다음에 대조해가면서 다시 읽고.그래야 돼.외국 갈 때는 잡지를 찢어가지고 가방에 넣어가.안 그러면 무거워서 많이 못 가져가니까.” 김윤식 선생을 만나러 가는 날은 몹시 긴장되었다.내게 무서운 선생님인 까닭이다.강의실에서 선생의 꾸짖는 소리를,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를 죽여 가며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런 무서움에 앞서 선생은 제자들보다 더 일찍 연구실에 불을 켜놓는 부지런함 때문에,날마다 읽고 쓰는 놀라운 규칙성 때문에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딱딱한 안면,퉁명스러운 말씀을 떠올리며 용산 자택으로 찾아갔다.기어들어 갔다고나 해야 할까.예상 외로 강의실에서와는 달리 선생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래,어떻게 지내나?” “….” 선생이 건네는 말씀은 독백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다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간단한 ‘요식 절차’가 끝나자 인터뷰를 서두른다.여전히 긴장한 탓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책을 하나 써서 곧 나올 때가 되었어요.우리 세대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연구는 일제 강점기 문학이니까….정년 퇴임 후에 일제말기 한국 작가들이 일본어로 글 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해 왔고….한 400페이지 되는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내용이라면?” “유진오,김사량,이효석 이 세 사람이 일본말 창작을 자유롭게 했는데 이중에 이효석이 제일 정확하고 언어감각이 뛰어났어요.그냥 일본말로 바로 창작을 했지요.유진오도 대단히 정확했고 김사량은 그중 제일 서툴렀고….” “일제 말기 일본어 문학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그들은 이중어 글쓰기를 했던 셈인데,한국의 근대문학이라고 했을 때 그 문학은 근대국가가 만든 말을 가지고 해야 하지 않겠소? 그게 국어지.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망하고 없었으니 조선어학회 같은 곳이 국가 역할을 대행했어요.그런데 일제 말기에 국가를 대행하는 이것을 잡아 가둬 버리기 시작한 것이 1942년 10월이에요.33인을 잡아넣었어요.33인이라는 것은 삼일운동 때 33인,그걸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그래서 그때부터 1945년 광복까지가 암흑기라는 것이오.1942년 10월까지는 조선근대문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없어요.그럼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조선근대문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문학을 하는 수밖에 없고 일본어로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한국근대문학의 고통스러운 운명이 느껴지는군요.” “근대문학이 뭐냐 하면,자본재 생산양식 또는 국민국가주의가 문학에 투영된 것이잖소? 그런데 우리는 근대국가를 만들면서 동시에 일제라는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단 말이에요.근대국가라는 것이 사실은 ‘제국주의’인데 ‘제국주의’가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던 거죠.이 특수성,자기모순,우리 근대문학은 근대문학으로서의 보편성 외에 이 특수성을 반영하는 문학이었어요.” “최근 들어 특수성 대신에 보편성,즉 식민성 대신에 근대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에 176개의 나라가 있지만 근대화하지 않은 나라는 아무데도 없어요.국민국가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가는 천하가 다 아는 거라고.우리만 사람이고 우리 아닌 사람은 다 짐승이고,그래서 잡아먹어도 괜찮다,카니발적인 거라고.카니발리즘.그러나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우리끼리는 잡아먹지 말자는 거죠.그러니까 지금 사람이 생각해낸 것 중에서 제일 고약하지만 합당한 원리는 이것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선생의 일생을 지탱해온 문학 근대주의자 면모를 새삼 재발견한다.그렇다면 문학 역시 특수성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직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이 되지 않으면 안될 터.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내가 김현하고 문학 활동하던 그 세대에는,어땠냐면,어떻게 하면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어요.임화의 이식문학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걸 가지고 떠들고 했어요.자본주의가 우리 내부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하려고 했었고.그런데 요새는 어떠냐.안병직씨 이론이 더 맞다고 하잖소.조선은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다,일본이 와서 근대를 이식했다는 거지요. 그러면 이식문학 극복하자고 떠들던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국민국가문학,이런 거 하는 것보다도,문학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게 광복 직후에 김사량이 펼친 주장이잖소.이태준이 김사량 보고 너 일제시대 때 일본말로 글 쓰지 않았느냐 했더니,김사량이 뭐라고 했소.나 큰소리 안 친다 말이야,그러나 당신은 그럼 뭘 했는가.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나는 일본말로 썼든 뭐로 썼든 쓰지 않았느냐. 요즘 시점에서 보면 이 김사량의 입장이 뚜렷한 의미를 갖고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도 일본하고 전쟁한 거라고 보지 않아요? 이런 세대가 부각되고 있음을 사실로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딘가 거북해진다.386세대의 일원인 나는 특수성에 목을 매고 살아온 까닭이다. 한편으로 보면 식민성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특수성을 떨치고 세계화니 현대화니 하는 보편성을 향해 거침없는 진군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선생의 관심사를 한국문학이라는 특수성 쪽으로 환기시키려 해 본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근대문학의 특질은 무엇입니까.” “한국근대문학사를 공부해 오다 보니까 이게 일본근대문학사로부터 대단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지 않았겠소? 한국근대문학을 일본근대문학과 비교하면서 보는 시각은 한국근대문학만 보는 시각하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의 관심사가 언어와 문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국문학도가 살아남으려면 국문학만 해서는 안됩니다.한국근대문학사의 특질이다,뭐다,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은 어떻고 중국은 어떻다,하는 시각을 갖고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 속에서 견주어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선생은 오히려 나를 선생의 시각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문학은 세계문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 와 있습니까.한국문학은 세계문학사상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까.” “언어나 문학이나 이제 단일성만 주장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이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나라는 아마 일본이나 한국 정도가 아닐까 해요.다른 문화권은 이미 단일성을 주장하지 않아요.우리만 한국어라는 단일한 전제를 갖고 한국어로 된 문학이 국민정서 전체를 버티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우리 문학이 늘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문학은 늘 인간은 벌레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어요.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을 우리는 해왔단 말이에요.일제 때도 그렇고,광복 후 분단 문제와노사문제를 다룬 것도 그렇고.그런데 20세기 이후 21세기의 한국문학은 방향이 바뀌고 있어요.거꾸로 인간은 벌레라고 주장하고 있어요.인간은 벌레다,짐승이다,요녀다,물고기다.이런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이것이 한국문학의 단일한 정체성에 파열구를 내고 그 방향을 바꾸고 있어요.인간을 하나의 생물로 보는 커다란 상상력을 통해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에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국적성의 해체 국면이군요.” “한글로 쓰든 영어로 쓰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DNA예요.DNA 문제예요.여기서는 한국이고 뭐고 세계가 다 똑같다는 거죠.”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하버마스 쪽을 지지하고 있어요.이성이 아무리 도구적인 이성이 되어 가지고 유태인을 죽이고 미사일 가지고 실험한다 하지만 창조하는 것도 이성이란 말이에요.인류는 어떻게 하든 간에 이성을 살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제일 많이 흔들린 때는 구소련이 무너졌을 때였어요.프랜시스후쿠야마가 역사가 끝났다고 하더군요.역사가 끝장났다면 인간은 그럼 뭐냐.나는 역시 이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이성이 아무리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그것을 버리면 허무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정년퇴임한 선생이 나이 어린 나보다 더 젊게 보이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다.선생은 세계화라는 시대의 대세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며 또 다른 국면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의 아파트를 빠져나올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예사 장맛비가 아니라 좍좍 내리 퍼붓는 소나기였다.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험한 비가,장대 같은 빗방울이 내 이마에 꽂히고 있었다.나 또한 매일 젊어져야 하리라.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평론가 김윤식 ●조선 향기 가득한 자택 겉모습만 보면 김윤식 선생은 서구식 멋쟁이다.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뒤로 잘 빗어 넘긴 머리칼은 지성을 상징한다.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항상 세련된 조화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모던 보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뜻밖에 아파트는 전통미가 살아 숨쉰다.흔한 서구식 응접세트 대신에 자리를 깐 마룻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 안성맞춤인 낮고 넓은 옻칠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그 위에는 우리네 화병이 하나,흰 접시가 하나,접시 위에는 산수유 열매 몇 점. 한쪽 벽에는 백자며 분청사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어 고전미를 자아내는데 방문은 모두 격자무늬다.선생의 서구식 외모와는 전혀 다른 ‘조선식’ 생리를 발견한 것이 더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런데 내외만 사는 그곳엔 먼지 한 점 찾을 수 없다.여인은 어디론지 나가고 없고 선생 혼자 지키는 대낮의 실내는 적막하기만 하다.선생은 국문학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고독한 항해자였다. ●문학 유목과 지적 여정 1936년생인 김윤식은 한국 현대소설 및 비평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자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읽고 소화해 내는 현역 비평가다.한국전쟁 이래 한국 현대문학사의 뼈대를 만든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이래 숱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벌여 100권을훨씬 상회하는 한국현대문학 관련 저서를 출간했으니,그로 인해 한국 현대문학 연구는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염상섭 연구’,‘김동인 연구’,‘김동리와 그의 시대’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가 연구는 젊은 국문학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이외에도 ‘한국근대문예비평사’,‘한일문학의 관계 양상’ 등은 한국현대문학사를 일본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연구서다. 또 ‘황홀경의 사상’ ‘낯선 신을 찾아서’ 등의 예술·기행 산문집은 현대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 기고 / 공공성 훼손하는 국가학벌이 문제

    얼마 전에 끝난,‘수평사회를 만들자’라는 기획의 제2부로 진행된 대한매일의 ‘학벌 타파’기획 연재기사를 빠지지 않고 읽어왔다.근래 사회에서 학벌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함에 따라 일시적으로 관심을 보인 언론은 있었으나,이번처럼 무려 넉달에 걸쳐 다각도에서 학벌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획은 없었다.그러기에 이번 기획기사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학벌문제를 고민하는 정책담당자나 일반인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기획 측은 학벌을,우리 사회가 수평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억압하고 서열과 차별이 지배하는 수직사회요 닫힌 사회로 만드는 원인자라고 보았다.그리하여 학벌을 ‘현대판 골품제’라고 명명하였는 바,신라시대에 골품제로 인해 많은 능력있는 인재들이 사회발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좌절함에 따라 통일신라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자는 강한 호소력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아울러 18회에 걸친 연재에서 학벌의 실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한 것으로 시작하여,학벌문화의 정점으로 거론되는 서울대의 문제를과감하게 파헤쳤으며,일본과 유럽 등지의 해외취재를 통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 모습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여 학벌타파의 해법이 무엇인지를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가며 모색하여 보았으나,학벌문제가 워낙 난마처럼 얽힌 문제라 어디서부터 손을 써나가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오히려 이러한 기획이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심도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대안 모색에 있어서는 크게 두가지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하나는 ‘학벌 타파’라는 구호 자체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의구심이다.그들은 이러한 구호에 대해 인위적인 평준화,실력보다는 자리 나눠먹기 등을 말하는가라고 되묻는다.나아가 학벌은 우리 현실에서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능력의 지표이며,학벌에 서열이 있고 그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그러기에 학벌타파가 어떤 ‘인위적’인 간섭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러나 현재의 학벌구조는 그 자체가 매우 인위적인 것이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경쟁질서의 형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기획기사가 학벌문화의 정점으로 서울대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는데,바로 국립 서울대가 학벌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인위적인 것이다.그것은 국가가 국립중앙대학으로서 특별히 지원하여 일종의 국가 엘리트 양성소로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시키기 때문인 것이다.이것은 자연스레 대학간에 공정한 경쟁질서와 그것이 가져오는 창의와 역동성을 억압하게 되어 고착된 대학 서열구조가 형성되고 이것이 학벌문제의 핵심인 것이다.우리가 심각하게 문제삼는 학벌은 단순한 동창회 문화가 아니라,마치 구소련의 노멘클라투라와 같이 국가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는 국가학벌의 횡포이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방향은 학벌문제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사회공학적인 접근이다.교육공화주의,대학의 평준화,대학별 인재할당제 등을 내세우는 일련의 흐름이 있다.이들은 학벌문제는 궁극적으로 고등교육이 시장의 영역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모든 불평등이 생긴다며,대학교육을 전면적으로 국가관리체제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대한민국을 새로이 건국하지 않는 한 이러한 주장이 우리 사회의 동의를 얻으리라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학벌로 인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에 의하여,학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마치 대중주의적이고 평등지상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는 데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마침 참여정부에서도 학벌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합동기획단을 발족시킨다고 한다.그러나 학벌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없이 단순히 지엽적이고 결과적인 현상을 수정하고자 한다면 어색하고 인위적인 정책들만이 나올 것이고 그 실효성도 크지 못할 것이다. 김동훈 국민대 법대학장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 최인훈

    최인훈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 속에 20세기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젊은 날의 최인훈을 사로잡은 고독이란 식민,분단,전쟁,냉전으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장강처럼 펼쳐간 사유의 대기록인 ‘화두’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대가(老大家)의 몸부림이 아니었던가.이 시대를 묻기 위해서는,밤길처럼 어둡고 동물원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읽고 쓰는 일 외에 별로 분주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980년 광주 특집 방송과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책보다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담겨있었는데 남과 북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지금은 한민족이 과거를 딛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역작 ‘화두’(1994)는 바로 그와 같은 한민족 내지 한반도의 운명과 20세기말의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넓고 깊게 사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두’는 냉전의 종식,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죠.20세기에 훌륭한 예술가·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만 불행하게도 20세기 말까지 생존한 분들은 적습니다.저는 20세기를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은 행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들어 세계는 심각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현재의 제 감각으로는,세계는 지금 19세기적인 국제 정치 환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저는 이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결과를 생각해 볼 때 20세기는 상당히 괜찮은 세기였다고 생각합니다.그 시대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높이 존경하고 그 존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문명사는 인간에게 분수를 알라고 가르치지만 겸손이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우상이나 정해진 틀을 대담하게 넘어서려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바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환경,거꾸로 우리가 그런 대로 해결하면서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미국과 아랍 문명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현상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은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물론 많은 비판이 있었고 미국이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가 방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구상의 소박한 민중들 눈에 비친 미국은 훌륭한 나라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항공모함으로서만 살 수 없고 미사일만으로서 세계를 만만하게 요리할 수도 없습니다.내가 아까 19세기 운운했지만 형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닙니다.세계 민중의 의식은 21세기에 와 있습니다.이런 시대에 지금까지 국제 질서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이 이처럼 퇴행적인 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심각히 우려되는 일입니다.당장 우리 반도 남북의 거주자들한테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북한 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세계사적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한반도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이라고 합니다.이 어려운 시대를 한국인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지난 20세기는 우리 반도 거주자들이 한반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래 최악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전반에 국가 전체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우리 역사에 이처럼 완전히 권리를 제약당한 적은 없었습니다.그런가 하면 20세기의 후반기에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를 견뎌 왔어요.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평화는 우리 전부의,최대의,인간으로서의 희망 사항이고복지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있어야 이런저런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극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년 전,100년 전보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50년 전,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과거에 문명사적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구소련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권·슬라브권이 인류사적 의미의 문명의 축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갖지 못한 인류사적 문명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들은 난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들이 제공하는 방향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같은 이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일본은 중국과 다릅니다.일본은 20세기의 문명사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습니다.그러면서도 명쾌한 과거반성이 없습니다.이러한 일본의 존재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상당한 격차를 가질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입니다.앞으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유럽에 비견될 만한 공동체적인 지역 환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두드러졌습니다.새롭고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당부의 말씀을 남겨 주시지요.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들을 견제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자제하라느니 자기 검열을 하라느니 하는 말은 노파심의 소산입니다.선거가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선 안 된다,판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말려야 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바로 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합니다.소신이 있다면 책임지고 갈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지요.갈 때까지 가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라는 거지요.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험한 역사를 본 세대의 입장에서는 감히 뭔가 앞질러서 다 지혜롭게 꿰뚫어 보고서 충고를할 만한 저축이 없습니다.새로운 세대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 봅시다. ■방민호가 본 작가 최인훈 ●최인훈 선생 만나는 날 ‘북(北)에는 최인훈이요 남(南)에는 박경리다.’.함경북도 회령은 반도의 북쪽 끝,경상남도 통영은 남쪽 끝이 아니던가.그러니 먼저 최인훈을 찾아 가리라.나는 이 막막한 시대를 헤쳐 나갈 지팡이를 얻기 위한 제일(第一) 행선지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인훈 선생의 자택으로 정했다. 그를 만나는 길은 멀었다.선생은 여러 겹 문을 가진 성(城)처럼 깊은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처음 본 선생은 셔츠를 맨 위 단추까지 꼭 채워서 입고 있었다.그것이 내게는 선생의 작가적 성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여러 번에 걸쳐 ‘광장’을 고쳐 쓴 선생은 완벽주의자다. ●최인훈의 문학세계 1936년에 국경도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쟁 중에 해군함정을 타고 월남한 가족의 한 사람,최인훈.부산과 목포 등지를 떠돌다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대형 작가임을 증명해준 ‘광장’(1961)과 ‘회색인’(1964)의 주인공들은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극단적인 냉전의 시대에 남과 북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내성(內省)은 바로 최인훈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의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 진입시킨 것은 1973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미국 체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었다.그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은 어떠하며 한국문학의 길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희곡과 소설을 시도해 간다. 1994년에 간행된 ‘화두’는 20세기 한국사를 그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켜 기억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의 독특한 존재 의미를 건져내 보여주었다.이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탐색의 결과였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 지성과의 인터뷰를 맡은 방민호 국민대 교수는 문단의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로서 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서’,‘납함 아래의 침묵’,산문집 ‘명주’,산문선집 ‘모던 수필’을 펴냈다.
  • 몽고메리·그린·디버스·드래길라…美육상드림팀 “목표는 우승”/ 세계선수권 출전명단 발표

    미국 육상 드림팀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정상을 향해 돛을 올렸다. 미국육상연맹은 9일 파리세계육상선수권(8월21∼31일)에 출전할 대표선수를 발표했다.미국은 이번 대회 46개 금메달 가운데 10개 안팎을 따내 정상을 지킨다는 목표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세계선수권에서 미국은 구소련이 붕괴된 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주체제를 굳혀 왔다.특히 단거리에서는 ‘미국대표=세계최고’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 우선 남자 100m는 세계기록(9초78) 보유자인 팀 몽고메리를 비롯해 2000시드니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모리스 그린이 포함됐다.미국의 우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두 선수의 맞대결도 또 다른 흥밋거리다.지난해 9월 몽고메리가 그린의 당시 최고기록(9초79)을 깬 이후 두 선수는 아직 단 한차례도 맞대결을 펼치지 않았다. 백전노장으로 세계선수권에서 세차례나 우승한 37세의 스프린터 게일 디버스도 여자 110m허들 대표로 뽑혀 정상을 넘본다.여자 100m는 현역 최고의 스프린터로 각광받는 매리언 존스가 출산으로 불참해서 다소 김이 빠진 느낌이지만 켈리 화이트가 존스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세계 최고기록(4.81m) 보유자 스테시 드래길라가 정상과 함께 또 한번 세계기록 경신에 도전한다. 박준석기자 pjs@
  • 국제 플러스 / 콩고 여객기 추락… 160여명 사망

    |킨샤사(콩코민주공화국) 외신|킨샤사를 출발해 남동부의 루붐바시를 향해 가던 콩고민주공화국(DRC)의 한 국내선 여객기가 비행 도중 갑자기 문이 열리는 사고가 발생,160여명의 승객들이 추락사한 것으로 우려된다고 9일 군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 사고는 8일 밤 구소련제 일류신 76 여객기가 이륙 후 7000피트 고도에 도달했을 때 뒷부분 문이 떨어져나가면서 발생했다.
  • 문명의 이름으로 저지른 ‘인간사냥’ 백인들은 야수였다?

    야만의 역사 김남섭 옮김 /한겨레신문사 펴냄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석기시대 종족인 북아프리카의 관체족(Guanches)은 유럽의 팽창에 의해 멸종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족 또한 유럽 팽창기에 절멸당했다.15세기 말 500만명에 이르던 아메리카 인디언은 백인의 이주로 인해 1891년에는 5%인 25만명만이 살아 남았다.1898년 수단의 옴두르만 전투에서는 1만1000명의 수단인이 살해됐다.이에 반해 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인의 희생은 48명에 불과했다.전투의 승리로 영국은 수단을 점령하고,나일강의 해상운송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백인들의 ‘야만’ 사례가 어디 이뿐이랴.독일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인 17세기 ‘30년 전쟁’처럼 서구 국가들간의 살육도 상상을 초월했지만,백인들의 비(非)서구지역에 대한 잔혹성은 야수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서 자행된 유럽 제국주의 대학살 스웨덴 출신의 작가이자 진보적 저널리스트인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야만의 역사’(김남섭 옮김,한겨레신문사 펴냄)라는 저서를 통해 19세기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유럽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인종대학살,그 참혹한 기억의 흔적을 한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여행기 형식을 빌려 비극적인 인종 말살의 역사를 기록한 이 책은 공간적 여행과 역사 속의 시간 여행,그리고 저자의 기억 속 내면 여행이 겹쳐지는 복합적인 구조를 띤다. 저자는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면서 경유지마다 얽힌 역사적 사연들을 되짚어간다.과거 유럽인들의 잔학상을 떠올리며 역지사지의 사유를 시도한다.내가 인간사냥의 대상이 됐다면 어떻게 느꼈을까.그런 점에서 이 여행은 일종의 ‘회개를 위한 순례’이다. 이 책은 폴란드 태생의 영국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에 나오는 한 문구를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책의 원제이기도 한 ‘모든 야수들을 절멸하라(exterminate all the brutes)’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저자는 유럽인들이 비서구에 대해 가졌던 태도의 핵심,즉 ‘야수(비서구인)의 절멸이야말로 최선’이라는 유럽인들의 ‘학살주의’의 사상 계보를 상세히 들춰낸다.무기를 제외하고 기술과 자원이 부족했던 유럽은 16세기부터 학살이나 강탈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그런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요구됐던 것이 학살주의 이데올로기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인들의 유례없는 폭력 경험은 그들의 뼛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나아가 ‘인권’을 최고 덕목으로 삼는 그들이 감히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하는 인종주의로 구체화돼 있다.저자가 유럽인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학살행위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직접적인 선례가 됐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홀로코스트를 유럽의 민주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일탈한 사건으로 보려하거나,기껏해야 구소련의 강제수용소나 대숙청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하는 것은 유럽인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은폐하려는 기도일 뿐이라는 얘기다.저자는 이와 관련,‘나치의 유태인 말살은 유일한 것인가.’라는 이른바 ‘역사가들의 논쟁’을 촉발한 독일의 우익 역사가 에른스트 놀테의 예를 든다. 놀테는 제3제국에 의한 유태인 말살은 독창적 행위가 아니라 반작용이나 왜곡된 모방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1930년대 소련에서 있었던 쿨락(kulak,부농)들의 절멸과 스탈린의 숙청을 히틀러가 모방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소련에서의 부르주아 계급학살은 나치에 의한 인종대학살의 논리적·사실적 선례라는 게 그의 견해다. ●19세기 백인의 잔혹성 꼬집기 이 ‘역사가들의 논쟁’에서는 누구도 히틀러의 어린 시절,남서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독일인에 의한 헤레로족 말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프랑스인,영국인,미국인들에 의해 자행된 이와 비슷한 학살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학살주의 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셈이다.저자는 이 지점에서 “‘역사가들의 논쟁’에 참여한 모든 독일 역사가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즉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야만성이라는 주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종속이론의 대가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과 문필가들이 이를 연구했다.그들은 ‘지리상의 발견’ 이래 약탈적으로 이뤄져온 유럽의 팽창은 다름 아닌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과정이라는 점을 밝혔다. 이 책은 이러한 기초적 사실을 토대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의 만남을 시도한다.서구 열강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역사를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죄의식에 대한 고해성사도 곁들인다. 역사의 진실은 종종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바로 그 ‘진실의 이면’에 존재한다.저자가 던지는 메시지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北核 보유 시인 파문 / 北核 사실이면 9번째 보유국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9번째 핵보유국이 된다. 현재 핵무기 보유 사실이 공식 확인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이른바 ‘핵 5대 강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비공식 보유 3개국에 이은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자진해체한 유일한 국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기준은 이들 8개국과 다를 것이라고 설명한다. 8개국은 처음부터 국가안보·국제질서를 내세우며 핵 보유를 천명했고 이를 실천에 옮긴 나라들이다.핵이 없는 187개 국가가 참여해 1970년 3월 발효시킨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핵을 갖지 않겠다는 약속 아래 지난 85년 12월 구소련의 설득으로 NPT에 가입했다. 이에 비해 인도·파키스탄의 경우 핵실험을 하자 주변국이 각각 경제제재 등을 취한 바가 있지만 국제적인 차원의 제재는 없었다.하지만 북한은 몰래,국제사회를 속이고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명되면 향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논의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남아공의 경우 지난 93년 3월 데 클레르크 당시 대통령은 백인통치시절 자력으로 개발,은닉했던 핵무기 6기를 흑인 다수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자진 폐기했다. 이듬해 94년 8월 IAEA가 핵사찰로 이를 공식 확인했고,이에 대한 대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를 참조해 북한이 남아공 선례를 따를지 여부도 관심사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밀레니엄]세계는 지금 전략지원 전쟁중

    이라크 전쟁이 사실상 끝났다고 미국은 선언했다.전쟁 목적중의 하나인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미국의 ‘또다른 전쟁’이 전개될 지도 관심사다.미국과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벌이고 있는 자원확보를 둘러싼 정치·경제 전략과 우리나라가 추구해야할 국가 전략을 연세대 통일연구원 강삼구 박사로부터 들어봤다. ●새로운 큰 게임 소련이 와해되면서 양극체제는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기반으로 하는 일극체제로 바뀌었다.미국은 최근 이라크 전에서 보여주고 있듯이,유엔,러시아,독일,프랑스,중국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있다. 이라크 침공의 제 1차적 원인은 미국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9·11사태로 조성된 충격과 안보 불안이라 할 수있다.그러나 우리는 미 부시정권이 취임 초기 “앞으로 21세기에 미국 외교정책의 1순위가 석유,가스를 비롯한 전략자원의 확보”라고 규정한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그리고 앞으로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의 확보가 국제 정치·경제체제에서 핵심적인 변수가 되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은석유자원의 확보를 위한 청사진을 이미 마련해 두고 있다.이라크 다음으로 이란을 제압하여 중동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함과 동시에 소련이 무너지면서 생겨난 힘의 공백지대인 자원의 보고인 카스피해 연안지역을 수중에 넣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카스피해 연안지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곳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위치라는 점과 석유,가스,우라늄 등 각종 전략자원의 막대한 매장량 때문이다.석유와 가스를 확보하고,수송루트를 갖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을 몰아내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두가지 카드 미국의 카스피해에 대한 지배권 획득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하나는 이 지역을 수중에 넣음으로써 급성장하고 있는 잠재적인 적국인 중국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이다.동시에 정치·경제적 안정과 함께 조만간 초강대국으로 재등장하게 될 러시아를 흔들어대는 지렛대로 이용하겠다는 군사·정치적 ‘패권전략’이다.또 다른 하나는 석유자원의 확보에 있다. 미국은 이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이 지역국가들의 독립성,영토적 통일성을 강조하며 러시아의 재통합을 방해하고 있다.또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경제개혁을 위한 미국의 지원을 약속하면서 미국자본,특히 석유 이권 획득과 송유관의 부설을 위한 자본침투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카스피해 연안국이 독립을 획득하자마자 먼저 터키를 통해 대다수가 터키계 민족으로 구성된 이 지역에의 침투를 꾀하였다.1992년 이스탄불에서 터키가 선언한 흑해·카스피해 연안지역 경제협력 기구의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또 역내 민족분쟁에 개입했다.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민족분쟁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지원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아제르바이잔에 접근했다.그루지야에서는 아프하지아 자치주가 독립을 선언하자 러시아는 아프하지아를 지원하였다.결국 그루지야와 터키 사이에 군사협력에 관한 의정서가 채택됐으며,1999년 5월에는 550만 달러 상당의 터키의 그루지야 군사지원이 승인되었다.터키의 등뒤에 미국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동시에 미국은 이 지역 국가들에 직접적인군사원조,경제지원을 계속해왔다.예를 들면 1994년 미국·중앙아시아 펀드를 설립하고 1억 50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배정,5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하면서 미국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석유회사를 진출시키고 있다. 서방세계는 이 지역의 석유 매장량에 관해 고의로 엇갈리는 정보를 흘리는 등 석유 획득을 위한 전략을 은밀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여러 석유 탐사기관은 이 지역의 석유매장량이 1600억∼2000억 배럴에 이른다고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1997년 미국무성은 의회에 대한 보고에서 “석유 매장량이 2000억 배럴로 추정되는 이 지역은 앞으로 세계 석유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그렇지만 1998년 4월 런던 전략문제연구소는 이 지역의 매장량이 이보다는 훨씬 못 미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미국 라이스대학의 제임스 베이커 정치연구소는 159억∼310억 배럴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의 유전지대가 새로이 발굴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같이 발표가 엇갈리는 것은 각국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와 전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대한 서방세계의 지정학적 침투가 석유게임에 기초하여 코카서스의 석유 보고인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이미 1991년 아제르바이잔에 서방의 주요 석유회사가 진출하기 시작,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아모코,펜조일,엑슨,유노칼,일본의 이토추 등이 사업을 벌이고 있다.1994년 11월 이들 회사와 아제르바이잔은 30년 계약을 체결했다.아제르바이잔에서는 해외자본의 컨소시엄 형태로 석유 및 가스의 탐사,채굴을 위한 계약이 15건,420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미국은 1999년 4월 아제르바이잔과 100억 달러에 달하는 3건의 중요한 계약을 체결했다. 서방세계는 이 지역을 지속적으로 자기의 영향력하에 두기 위하여 나토(NATO)와의 군사협력 틀 속으로 끌어들이는 한편,역내에 나토 및 미국의 군사기지 설치에 주력해 왔다.아제르바이잔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앙숙관계인 그루지야를 나토의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든가 ‘코카서스 아마존 98’해군 합동군사훈련을 수행했다. 미국은 줄곧 그루지야에 군사적 지원을 강화해왔는데,결국 9·11 사태 이후 군사 고문단을 상주시키는데 성공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으로 이 지역에 군사기지를 확보,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여기에도 러시아 견제라는 군사적 목적과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확보라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서방세계는 러시아를 우회하여 이 지역의 석유를 수송할 유라시아 통로 (TRASECA),신 비단길을 제시하고 있는데,그들이 제시하는 송유관 루트는 이렇다.아제르바이잔(바쿠)-그루지야-터키(제이한),바쿠-그루지야 (숩사,바투미,포치),바쿠-카스피해 해저-투루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카라치),그리고 바쿠-러시아-불가리아-그리스로 이어진다.이들이 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에 깊이 관여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대약진 최근 이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정치·군사적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중국이 경제성장으로 필요한 에너지확보를 위해 사실상 아직 미개발 상태인 이 지역에 관심을 보이자 미국과 경쟁하게 되었다.중국은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와 카자흐스탄의 석유에 관심이 있는데,카자흐스탄 텡기스 유전의 매장량은 100억∼200억 배럴로 밝혀지고 있다.이미 1997년 10월 중국 리펑 총리가 카자흐스탄을 방문,두 개의 협정을 체결했다.즉 ‘석유,가스분야에서의 상호 협력’과 카자흐스탄의 악토베무나이가즈,우제니무나이가즈와 신장-위그르지역을 통과하는 ‘두개의 송유관 부설’에 관한 협정이 그것이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석유개발을 위해 95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아띠라우-켄키약-드르주바-중국 루트의 송유관은 연간 200만t의 송유 능력을 갖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중국은 1998년 송유관 부설에 착수했다.여기에는 주로 신장-위그르 자치구에 살고 있는 100만명 이상의 터키계 민족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이를 해소하기 위해 1997년 4월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간에는 국경지역에서의 군사력 삭감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다.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상호협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다양한 에너지 공급원의 확보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우리는 북한에 러시아의 가스를 공급함으로써 경수로 에너지 사업을 대체하고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개발을 추진중인 이르쿠츠크의 가스와 사할린의 가스를 끌어온다는 것이다.사할린 가스전의 경우 미국은 자국사인 엑슨과 쉘이 개발권을 갖고 있으며,이것을 우리측에 제시하고 있다.여기에는 가스관의 부설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분산되어 있는 이권과 매장량의 한계라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르쿠츠크 가스전이 갖는 장점은 장차 러시아 국내 파이프라인과의 연결 가능성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여기에 이르쿠츠크 인근 앙가르스크까지 부설되어 있는 러시아 국내 송유관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덧붙여 사할린의 석유는 송유관이 현재 러시아의 콤소몰스크까지 부설되어 있는데 러시아측으로서도 장차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할 필요성을 갖고 있다는 점,기존에 논의되어온 카자흐스탄-중국,투르크메니스탄-중국-한국-일본 루트,카스피해 연안지역이 구소련의 철도시스템으로 되어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 게임에 우리는 어떤 카드를 갖고 뛰어들 것인가.여차하면 판을 뒤엎어버릴 수도 있는 노련한 도박꾼들이 벌이는 게임에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싹쓸이 당할 위험이 있다. 정확한 정보와 이 지역의 정치·경제관계에 대한 확실한 이해,노련한 외교력의 발휘가 요구된다 하겠다.이 점과 관련,카스피해 연안지역에서 러시아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먼저 러시아와의 석유,가스사업에서의 협력을 시작으로 해서 이 지역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삼구 박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러시아 과학아카데미 IMEMO(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박사▲현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주요논문:소련사회주의 체제의 변화,중앙아시아 지역의 민족갈등과 강대국의 개입 문제 등
  • i 센터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새달 3일부터 8일까지 러시안 아이스발레를 공연한다.구소련 올림픽 단장을 역임한 가브릴린 뱌체슬라프 단장 지휘로 역대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및 올림픽에서 우승했던 선수들중 예술적 감각과 연기력을 겸비한 출연진이 클래식과 영화음악 등을 배경으로 환상적 무대를 선보일 계획. 관람료는 2만∼4만원,제주은행 전 지점과 컨벤션센터·롯데호텔·신라호텔에서 구입할 수 있다.(064)738-5114. ●스타크루즈 한국지사 평택항에서 일본의 청정지역인 가고시마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크루즈 여행상품을 내놓았다. 선내 숙박 및 식사,쇼 관람이 포함된 5박6일 상품이 49만 9000원.사쿠라지마 화산섬 및 온천,나가사키 하우스텐 보스,운젠화산,시마바라성 등은 옵션으로 관람할 수 있다.1588-3800. ●63빌딩 봄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화려한 빛깔의 나비고기들을 모아 ‘나비고기 특별전’을 27일까지 63수족관에서 연다. 지느러미 끝에 가시를 지닌 가시나비고기,멜론을 닯은 멜론나비고기 등 20여종 300여마리의 나비고기가 3개 수조에나뉘어 전시된다.(02)789-5663. ●한화리조트 전국의 11개 직영 체인 콘도를 10년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하이클래스 멤버십’ 회원권을 선착순 50명에 한해 분양한다.이용 객실은 23∼32평형 패밀리형이며,무료 이용에 따른 예약도 보장해 준다. 분양가는 일시불 기준으로 개인회원 4800만원(부가세 포함),법인회원 5500만원.(02)729-5300.
  • 무너진 후세인 / “美·中, 北·타이완문제 빅딜 가능성”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패권 장악 전략에 따라 동북아에서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우려되고,미국이 타이완을 중국에 넘기는 대신 북한은 자기 지배하에 두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양대 리영희 명예교수는 10일 한국정치연구회가 주관하고 민주사회정책연구원,민주사회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이 공동주최한 ‘파병안 국회 통과와 반전평화 긴급토론회’에 참석,기조발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리 교수는 “미국의 횡포와 독단적인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 이번 전쟁에서 입증됐다.”면서 “앞으로 로마제국과 18,19세기의 영국처럼 미국의 단일 지배 세계가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교수는 세계지배 전략은 이미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전 부시 대통령이 1991년 수립한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에 나타나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신세계 질서에 ▲구소련과 같은 단일권 적대세력 억제 ▲비자본주의 국가 불허용 ▲복종하지 않는 중소국가(불량국가)에 대한 응징 ▲막강한 군사력 유지 ▲유엔 협조 없을 시 단독행동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리 교수가 전망한 동북아의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로 인한 일본의 군사력 증대와 대만과 북한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싸움이다.그는 “정치 군사 경제자원의 초강국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 문제”라면서 “미국은 러시아·북한·중국을 포위 압박 봉쇄하기 위한 장기 계획에 들어가,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이라크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겉으로는 (북핵 문제를) 노무현 정권과 협의에 의해 해결 하는 척하면서 미·일 및 한·미 방위조약 외에,일본의 군사적 헤게모니 아래 일본과 남한을 군사동맹으로 결부시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전초기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이 북한과 타이완을 맞바꾸는 뒷거래를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그는 “국제적 통찰력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면서 “중국의 원래목적이 타이완 수복임을 감안할 때,‘기브 앤드 테이크’를 요구해 미국은 대만을 주고 중국은 북한을 미국에 주는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수범기자 lokavid@
  • 大使·公使 경제전문가 대거 기용...한국과 밀접한 경제교류국 우선 추진

    앞으로 우리나라와 경제적 관계가 밀접한 국가의 대사나 공사에 경제관료 등 경제전문가들이 대거 진출할 전망이다. 26일 관계당국 등에 따르면 청와대는 최근 국제화시대에 맞춰 세계 각국과의 교류에 있어 경제가 주된 핵심의제가 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와 밀접한 경제교류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대사나 공사 자리에 경제관료 등 경제전문가를 기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 정책실이 중심이 돼 경제전문가를 보낼 필요가 있는 국가와 직급 등을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네바·경제협력개발기구(OECD)·싱가포르·홍콩 등에는 대사를,미국 일본 중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는 공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주미경제공사,주러시아경제공사,주일경제공사 등에 경제관료 출신 또는 경제학자 등이 일한 적이 있긴 하나 각국 경제공사 자리는 대부분 외교통상부 출신들로 채워져 왔었다.옛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1991년 구본영씨와 이강두씨가 주미경제공사와구소련 초대 경제공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구씨는 이후 OECD대사를 지냈다.98년에는 양수길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OECD대사를 역임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도 현지의 사정에 따라 전체 공관장(140명)의 10%가량을 외무부 관리가 아닌 특정 분야 전문가를 ‘특임공관장’으로 임명해 파견하기로 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서울대 소련동구연구소장을 지낸 이인호 국제교류재단이사장이 96년 핀란드 대사를 거쳐 98년 러시아대사로 일했다. 정부 관계자는 “날로 경제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밀접한 경제교류가 있는 해당 국가에 경제관료 등 경제전문가를 대사나 경제공사로 보낼 경우 경제업무에 정통해 경제외교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화제의 책/ ‘블로우백’ - ‘오만한 불량국’ 미국은 자멸중

    블로우백 - 찰머스 존슨 지음 /이원태 김상우 옮김 /삼인 펴냄 지배욕망 가득한 미국 국제사회 신뢰 잃어 “살려면 제국주의 포기하라” 美 정치학자 따끔한 일침 세계 곳곳의 반전시위와 전쟁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계속하고 있다.‘이라크를 무장 해제하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세계 여론은 이런 군사행동이 아무런 정치·도덕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야만적’ 침락행위라며 규탄한다.미국의 ‘제국주의적 과잉 팽창’ 정책은 전쟁의 악순환을 자초하는 상황을 낳게 될 것이라는 지적들이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버클리대 정치학 교수를 지낸 찰머스 존슨(72)이 쓴 ‘블로우백’(blowback,이원태·김상우 옮김,삼인 펴냄)은 제목이 암시하듯 이같은 현실을 읽는 데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저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미국에 대한 반작용을 블로백(역풍)이란 말로 함축적으로 표현한다.이 말은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이 내부 용어로 만들어낸 것으로,미국 국민에겐 기밀로 부쳐졌던 대외공작 등의 정책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뜻한다.9·11테러가 대표적인 예다. 저자가 말하는 역풍은 미국에 대한 테러나 무력충돌 위협 등 정치·군사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역풍은 국제경제 분야에서도 폭넓게 나타난다.냉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적 지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오히려 미국의 군사적 지배 욕망은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경제적 지배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위험한 역풍은 미국의 오만함에 따른 국제적 신뢰상실이라고 단정한다.나아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자신의 개별적 합리성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차원의 총체적 합리성을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구체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역풍과 그 징후들,그리고 그 원인이 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주목한다.미군 범죄 등에 대한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로 촉발된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폐운동은 동아시아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역풍이라 할 수 있다.미군 주둔에 항의하기위해 3000명의 오키나와인과 본토의 지식인을 포함한 수많은 소지주들은 손수건 한 장 크기의 영토를 사들이는 ‘반전(反戰)지주’운동을 벌이기도 했다.‘아시아의 마지막 식민지’ 오키나와의 주민들은 17세기 이후엔 일본에,1945년 이후엔 미국에 점령당했다는 생각이 강하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필리핀의 마르코스,한국의 이승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정치ㆍ군사적 지원으로 야기된 국민들의 죽음과 탄압,그리고 그에 따른 반미주의의 확산 등도 역풍의 중요한 사례로 다룬다.또 북한을 상대로 한 ‘불량국가론’이 실제론 제국주의적 강박관념과 이윤논리가 결합된 ‘미사일방어계획(NMD)’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억지논리라고 주장한다.중국과 관련,저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견제는 중국의 역사와 정책에 대한 무지와 ‘유일 초강대국’이란 미국의 자만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예를 들어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은 미국과 중국간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중국의 ‘민족주의적’ 영토정책이 과거 제국주의에 지배당한 역사적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한다면 영토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저자는 이같은 역풍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미국이 냉전구조를 개혁하고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또한 ‘아메리카 제국'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도 자신이 담당해온 역할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기 때문에 결국 냉전의 실질적 승자는 없다고 주장한다.구소련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붕괴됐듯이 미국 또한 그같은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세계는 미국의 전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지칭한,미국이라는 ‘없어서는 안될 국가(indispensable nation)’에 관대했다.그러나 이제 ‘아메리카 제국’의 오만한 지배는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저자는 “뇌가 달린 크루즈 미사일과 같이 단단한 근육질의 미치광이 초강대국”이라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의 말을 인용,미국 자신이야말로 ‘불량대국’이 아닌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는 미국이 전세계에 뿌리고 있는 증오의 씨앗으로부터 응답을 받는 반격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이주일의 어린이책/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 - 전쟁이 뭐예요?

    연일 이라크전을 생중계하다시피 하는 황폐한 TV화면 앞에서 아이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일깨워주기란 참 난감한 일이다.12명의 해외 아동문학 작가들이 함께 엮은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제니퍼 암스트롱 등 지음,임옥희 옮김,비룡소 펴냄)는 전쟁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조용히 건네봄직한 책이다.참여작가들이 어린시절 직·간접적으로 겪은 전쟁경험을 소설로 재구성한 12편의 단편이 묶였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모두 어린이들.미국 남북전쟁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제2차 세계대전,중동전쟁 등 배경도 제각각이다.소재 역시 다양하다.무력충돌에 휩쓸린 민중의 나약함이 조명되는 것은 물론이고 냉전과 반전운동,징집 거부자와 가족들이 겪는 갈등과 사회적 파장까지.책장을 열면 구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1979년)에서 온가족을 잃은 여주인공의 사연부터 눈물샘을 건드린다.표제작에는 양심적 징집 거부자인 형 때문에 가족이 엉뚱하게 고초를 겪은 실화가 담겼다.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적인 설정과 묘사들이 감동의 파장을 더 길게 늘여놓는다.초등3학년 이상.비룡소 8500원. 황수정기자 sjh@
  • 러 연방 아디게야교향악단 “한국인과 지휘·협연 대환영”

    아디게야는 러시아연방의 일원으로 북서코카서스지방에 있는 인구 45만명 정도의 작은 공화국이다.기후가 온화하여 관광 및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이 아디게야공화국 국립교향악단(아래사진)이 지금 한국 음악가들을 상대로 ‘세일중’이다.누구라도 이 악단을 객원지휘할 수 있고,협연할 수 있다.객원지휘자는 자신이 선택한 협연자를 동행해도 된다.지휘자와 협연자는 레퍼토리를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다. 현재 이 교향악단을 이끄는 사람은 35살의 한국인 지휘자 양일오.미국 애틀랜타주립대에서 지휘로 석사학위를 받고 애틀랜타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아디게야 교향악단은 객원지휘자로 나섰던 그를 수석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눌러앉혔다고 한다.미국에서는 지휘자가 음악적 능력과 더불어 교향악단의 운영기금을 확보하는 마케팅 능력이 필수.이런 배경이 정부의 지원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아디게야 교향악단에는 큰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아디게야 사람들의 기대대로 최근 이 교향악단만을 전문적으로 세일하는 음악 매니지먼트사가 양일오의 활동본거지인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만들어졌다.영문에 앞서 한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든 것은,이 교향악단의 가장 주요한 ‘수요자’를 한국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휘 및 협연기회 세일’은 양일오와 매니지먼트사의 공동작품.나아가 이들은 오는 6월 ‘국제 지휘자 마스터 클래스 및 경연대회’도 연다.참가자들은 매일 30분 이상 아디게야 교향악단을 지휘할 수 있고 마지막 날에는 전원이 경연대회 겸 공개연주회를 갖는다.가장 뛰어난 2명은 다음 시즌의 객원지휘자로 정기연주회에 초청한다.같은 차원에서 아디게야 교향악단은 한국공연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사정이 어려워 당장 단원들의 임금을 지급하기도 버거운 구소련권의 국공립 교향악단과 더 많은 연주기회를 필요로 하는 국내 음악인들과의 협력관계가 바야흐로 점입가경에 접어들고 있다.아디게야 예술기획 홈페이지(www.adygeya.com) 서동철기자 dcsuh@
  • [씨줄날줄]첫 한국인 교황대사

    한국인 최초의 교황대사로 임명된 장인남 대주교의 착좌식이 6일 상오 9시(현지 시간)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거행된다.주 방글라데시 교황대사 임명과 함께 대주교로 승품된 장 대주교는 청주 출신으로 1976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졸업과 동시 사제품에 올라 3년 뒤 로마로 유학,라테란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2년 세계 각국의 우수한 젊은 성직자 가운데서 뽑히는 교황청외교관학교에 입학한 첫 한국인이기도 하다.1985년 주엘살바도르 교황청대사관 2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에티오피아,시리아,프랑스,그리스,벨기에에서 서기관·참사관으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번 발탁은 교황으로부터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은 것이어서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아울러 한국천주교회는 물론 한국인 전체의 경사라 할 만하다.교황대사는 국가간의 업무만을 담당하는 일반 외교관과 달리 분쟁지역의 중재 등 세계평화를 위한 교황의 의지를 세계 각국에 전파하는 평화의 사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학식과 덕망·신앙심,체력을 겸비해야 하는 그 과정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두 차례 방한해 순교자 103위를 성인품에 올렸고(1984년) 세계성체대회(1989년)를 주관했다.그 자신 공산국가 폴란드 출신으로 여건이 조성되면 북한을 방문,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나치와 공산주의에 항거한 경험으로 구소련 등 동구권 붕괴에 크게 기여한 교황의 평화에 대한 열망은 이번 신년 담화에도 잘 담겨있다.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반대하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기도하는 교황이다. 교황은 세계 10억 신자의 영적생활을 이끄는 지도자지만 영토주권국가로는 0.44㎢의 면적에 950명의 인구를 지닌 소국 바티칸 시티의 국가원수에 불과하다.그러나 ‘전쟁에의 능력은 무에 가깝지만 평화에 대한 능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한 비오 12세 교황의 외교지침을 실천하는 이 시대 평화의 마지막 보루다.그의 사절로 첫발을 내딛는 장 대주교의 앞 길에 신의 가호가 충만하기를…. 최홍운 hwc77017@
  • 예술의전당 21일부터 ‘팝아트’ 전-여배우 얼굴 사진 햄버거 광고

    마르셀 뒤샹은 1917년 남성용 변기를 ‘샘’이란 제목으로 출품해 ‘미술작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뒤샹의 주장은,비록 기성품이라도 화가가 선택한 순간 그것은 작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0년 뒤 그의 철학을 뒤따르기라도 하듯 ‘팝아트’가 탄생했다.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이 미술운동은 60년대 미국으로 옮겨가,유명 배우의 사진을 복제하거나 코카콜라·햄버거등 광고 이미지를 확대·축소해서옮기고,신문을 이용한 이미지 작업,만화 확대 등을 일삼았다. 60년대 팝아트의 대표주자인 앤디 워홀은 작업장을 ‘공장’이라고 부르고,제 작품을 ‘생산’되어 판매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가 무너졌고,‘공장’에서 실크 스크린으로 수백장의 판화를대량 생산했다.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본 구조로 하는 번영의 미국,상업문화가 확산되던 60년대를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예술의전당은 21일부터 내년 2월9일까지 ‘팝아트’전을 연다.1960년 초에서 75년까지의 작품들로,앤디 워홀·로이 리히텐스타인·멜 라모스·제임스로젠퀴스트·에드워드 류세이·로버트 라우젠버그·짐 다인 등 주요 작가 12명의 작품 52점을 전시한다.추상표현주의에서 영향을 받고,그후 극사실주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조성문 전시사업담당은 “팝아트의 진수만을 모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팝아트의 다양한 측면을 총체적으로 맛보는 최초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입체파·야수파 등 20세기의 다른 미술운동과 달리 팝아트가 특정한 스타일로 규정되는 운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양한 접근방식을보여주는 일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국내에서 팝아트는 90년대 초·중반 두 차례의 ‘앤디 워홀’전을 통해 알려졌다. 이번 전시품은 사우스플로리다 대학과 마이애미 대학의 미술관 소장품이 주가 된다.사우스플로리다 대학은 70년부터 ‘그래픽 스튜디오’에서 입주작가 프로젝트를 운영했는데,워홀·라우젠버그·로젠퀴스트·다인·라모스·리히텐스타인·류세이 등이 입주해 작업했다.휴양지 마이애미에 작업실을 두고독자적으로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은 자연스레 마이애미 대학에서 소장했다고. 팝아트의 본산인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대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주요 작가의 작품들이 이번에 대거 전시된다.1964년 아르투로 쉬와르즈의 ‘국제 현대판화 선집’에 든 작품 가운데 워홀의 ‘꽃’‘마릴린’‘리즈’‘모택동’,모라스의 ‘라마’,리히텐스타인의 ‘쉽보드 걸’‘핑커 포인트,초상화에서’등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성문씨는 “현대는 IT(정보통신)를 중심으로 60년대와 비슷한 역동적인사회적 변동이 이루어져 ‘브로드 밴 에이지’로 불린다.이런 시기에 미술은 어떤 조형예술을 보여줘야 하는가를 생각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팝아트는 1960∼70년대에 국한된 ‘박제’인가.그렇지는 않은 것같다.1980년대부터 사우스플로리다 대학의 그래픽스튜디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고 한다.82년 라우젠버그·다인이,87∼89년 리히텐스타인이,90년에는 구소련의 작가들이 입주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팝아트의 ‘세례’를 받은 극사실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 작가들이 ‘일상성’에 주목한 팝아트의정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02)580-1510. 문소영기자 sy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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