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반군,시위대에 발포/수명 부상
◎4천 군중 감사후르디아 지지시위/셰바르드나제,대통령출마 시사
【트빌리시 AP 연합】 보름동안 약 6백명의 사상자를 낸 그루지야공화국 내전은 6일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대통령이 인근 아르메니아공화국으로 탈출함으로써 일단락 되긴 했으나 7일 축출된 감사후르디아대통령에 대한 4천여명의 지지시위가 발생,군의 발포로 수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루지야 정국이 점차 정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이날 시위는 트빌리시 철도역에서 시작,점차 인원이 늘어났으며 군중들은 「즈비아드」를 연호했다.
한편 반군지도자들은 감사후르디아대통령을 국내 송환해 재판에 회부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국가재건을 위해 공화국민들이 단합해 줄 것을 촉구했다.트빌리시는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으나 극심한 물자난을 겪고 있으며 무장강도들이 횡행하고 있다.
타스통신은 아르메니아가 감사후르디아에게 「정치적 망명」이 아니라 단지 「임시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철권통치·경제난에 민심 등돌려/반군수뇌부 “동상이몽”… 불씨 여전(해설)
군사평의회 인사들은 이날 ▲조속한 민정 이양 ▲빠르면 오는 4월 총선 실시 및 ▲감사후르디아 재판 회부 노력 등을 약속했다.
이와 관련,구왕주인 바그라티오니가를 귀국시켜 입헌군주제로 복귀할 가능성도배제할 수 없으며 바그라티오니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한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구소련외무장관은 이날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새로 구성될 그루지야 정부내에 참여하거나 대통령에 출마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구소련방의 붕괴와중에서 지난 4개월동안 끌어온 그루지야 내전이 반군들의 승리로 일단락 됐다.
이에따라 지난 2주동안 정부청사 지하벙커에 갇힌채 저항해오던 감사후루디아 대통령을 추방하고 전권을 장악한 반정부세력은 이미 구성된 군사평의회와 임시정부를 통해 혼란수습에 나서면서 민주주의와 경제개혁 및 여타공화국과의 협력정책을 추진해나가는 한편 올4월쯤 자유총선도 실시겠다고 밝히고 있다.그루지야는 구소련의 15개공화국중발트3국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독립국가연합에 불참했으나 정권교체를 계기로 뒤늦게나마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감사후르디아가 비참하게 권좌에서 쫓겨난 이유는 집권후 독재자로 돌변했기 때문이다.그는 공산당독재치하에서 공화국독립투쟁에 앞장서왔으며 민족주의 시인으로 숭앙받아 90년10월 처음으로 실시된 다당제총선에서 자유그루지야원탁동맹을 이끌고 압승,최고회의의장에 취임한데 이어 지난해 5월 87%의 압도적지지로 직선대통령에 당선됐었다.그러나 그뒤 감사후루디아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과 법률안거부권 계엄선포권을 신설하면서 민주인사를 투옥하고 비판적인 신문들을 폐간시켰으며 시위대와 남오세티아자치주의 분리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유혈진압하는 등 철권통치를 펴와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지난해 8월 구소련의 불발쿠데타 당시에도 명확한 반대의사를 밝히지 않아 반군의 공세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자초했다.당시 오블렌스키 쿠데타조사위원장은 그가 쿠데타 지지자 명단에 올라있었다고 밝혔다.
스탈린과 셰바르드나제전소련외무장관의 출신지인 그루지야는 인구 5백40만명으로 포도주와 과일을 주로 생산하는 경제적으로 낙후돼있는 소국이다.소연방이 해체된 상황에서 경제자립을 이룩하기가 결코 쉽지않고 남오세티아 독립문제도 남아있기 때문에 내전이 일단락됐다고 해서 그루지야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반정부세력들도 여태까지의 감사후르디아타도 투쟁에는 단결했지만 워낙 여러갈래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분열될 가능성도 없지않고 연방해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있는 셰바르드나제의 복귀에 대해서도 지난 72∼85년 그루지야공산당제1서기 재임시절 쌓았던 나쁜 이미지때문에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