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인맥 열전](8)재경부.중
이재(理財·현 금융정책)국장이 부르면 은행장들은 언제든지 즉각달려와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이른바 은행장 소집권이다.사무실 문앞에는 이재국장을 잠시라도 만나려는 금융기관장들과 정부부처 간부들로 북적거렸다.
은행·보험·증권·금고 등 1,500여개 모든 금융기관의 인사와 경영에 관한 주요 결정들이 이재국의 ‘허가’사항이었다.이재국의 막강한 파워는 바로 옛 재무부(MOF)의 파워를 의미했다.
행정고시 수석,차석 등 1∼7위 합격자라야 재무부를 선택했다.더구나 이재국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김용환 한국신당 대표가 재무장관 시절인 70년대말 이재국에는 그의 동서인 이한구 한나라당의원,김치열 전 법무장관 동생인 김인열,김정렴 전 청와대비서실장 사위인 김중웅(현 현대경제연구원장) 과장 등이 포진해 구설수에올랐었다.
이재국의 힘은 한국은행을 거느리고(?),금융기관의 대출한도와 대출금리를 정하는 데서 나왔다.또 대기업에 대한 여신관리도 여기서 이뤄져 이재국이 한국경제의 모든 돈을 주물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이재국장은 막강한 파워와 위세를 누렸지만 정작 장·차관까지 출세한 관료는 많지 않다.산하기관장으로 나가거나,도중에 크고작은 ‘사건’에 연루돼 중간에 옷을 벗은 경우가 많았다.
지난 93년 마지막 이재국장은 이정재 재경부차관이었으며,금융정책국장의 첫 바통은 김영섭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어 받았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도 도중에 옷을 벗었다가 장관으로 복귀한 케이스다.그래서인지 MOF맨들은 ‘이재국의 터가 세다’고 말한다.
최근 금융정책국장의 인맥은 정건용 금감위 부위원장-유지창 민주당정책실장-신동규 재경부 공보관-김규복 대외금융거래정보시스템(FIU)추진기획단장-이종구 국장으로 이어지고 있다.이중재 한나라당 고문의 아들인 이 국장은 사무관시절 이 고문의 거친 대여공세로 금융정책과를 떠나야 했다.대신 서기관으로 승진했다.그는 MOF출신의 꼼꼼함보다는 대범한 업무스타일을 가졌으나 톡톡 쏘는 듯한 말투로 대인관계에서 오해를 사기도 한다.
국제금융국장 출신들은 장·차관으로 승진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홍재형 전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과 엄낙용 산업은행총재(전 재경부차관) 등이 이 자리를 거쳤다.
김용덕 국제금융국장은 사무관시절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근무하는바람에 14년만에 늦게 서기관에 승진한 국제금융통.하지만 98년 8월국제금융심의관을 맡은데 이어 99년 1월 현 자리에 올라 만회를 했다.
김규복 FIU단장은 외환위기 당시 금융정책과장을 지냈으며 “펀더멘털이 좋다”는 강경식 전 재경원장관의 발언을 뒤집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강골 체질로 항상 공보관 후보에 오른다.진병화 국고국장은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업무를 훤하게 꿰뚫고 있어 부하직원들이 꼼짝을 못한다.
세제실은 선배가 먼저 승진하는 일사불란한 전통을 자랑한다.14회동기 3명이 나란히 심의관을 맡고 있지만,관세심의관-재산소비세심의관-세제총괄심의관을 차례로 거쳐 세제실장으로 승진하는 게 관례다.
최경수 세제총괄심의관은 부인이 계명대 교수여서 주말부부인 탓에평소 퇴근이 늦다는 평.한정기 재산소비세심의관과 박용만 관세심의관은 조용히 업무를 챙기는스타일이다.
박정현기자 j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