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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구본무 회장이다.’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1] 글로벌 창업주… 매출 5배 껑충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2] 선구자… 2003년 지주사 전환 일찌감치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3] 정도…“편법 1등은 싫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 드문 ‘현역병’ 출신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제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 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입사 10년 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다시 10년 뒤에야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후 “1등을 해야한다”고 줄곧 강조하면서도 “편법은 싫다”고 단호히 주문했다. [4] 끈기…LCD·2차전지 1위 우뚝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액정화면(LCD) 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5] 눈물…외환위기 때 반도체 내줘 시련과 굴곡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 반도체 빅딜을 사실상 막후에서 조정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쪽은 눈길도, 발길도 주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급한 자금을 일부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을 매각하는 등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6] 몰입…조류도감 펴낸 새 전문가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냈을 정도로 새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지만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도 있었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모든 사업장에 비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7] 마곡…4조 투자 융복합단지 꿈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였다.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다. 투자비만 4조원이다. “마곡에서 수만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격식 차리지 마라, 연명치료 안 받겠다”… 마지막 길도 소탈했다

    “격식 차리지 마라, 연명치료 안 받겠다”… 마지막 길도 소탈했다

    고인 유지 따라 조문·조화 사양 계열사 별도의 분향소도 없어 이재용·양승태·홍석현 등 조문 文 “재계 훌륭한 별… 안타깝다”떠나는 길도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재벌 총수이면서도 소탈한 면모로 유명했던 고(故) 구본무 회장은 눈을 감기 전 “격식을 차리지 말라”고 했다. “연명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가족은 20일 조용히 ‘작은 거인’의 산소호흡기를 뗐다.●구 회장, 조부처럼 뇌종양 투병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은 조용했다. 고인의 유지를 받아들여 LG그룹과 유족이 “가족 외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고 일찌감치 밝혔기 때문이었다. 몇몇 그룹에서 보낸 조화가 도착하기도 했으나 LG 측은 모두 돌려보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는 받았다. 문 대통령은 조화에 이어 장하성 정책실장을 보내 조문을 대신하게 했다. 장 실장은 “문 대통령이 ‘존경받는 훌륭한 재계의 별이 가셨다. 갑자기 이렇게 돼 더 안타깝다’고 했다”고 전했다.LG그룹은 “장례는 비공개 3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했으며,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 했던 고인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빈소 유리문에도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장남 먼저 보낸 93세 구자경 회장 칩거 앞서 구 회장은 최근 병세 악화 이후 가족에게 미리 조용한 장례를 주문했다고 한다. 부친인 구자경(93) 명예회장이 생존해 있는 점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구 명예회장은 빈소에는 나오지 않고 자택이 있는 천안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생전 해외 법인 순시나 출장 때에도 비서 한 명만 수행하고 현지에 의전 인력이 마중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이런 뜻에 따라 LG는 그룹이나 계열사 차원의 분향소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 발인도 비공개로 가족들끼리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도 외부에 알리지 않을 방침이다.LG그룹 관계자는 “고인이 지난해 4월 뇌종양 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아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에도 자주 출근했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12월 두 번째 수술 이후 올 들어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고인의 할아버지인 구인회 LG 창업주도 62세에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재계 “큰 별 잃었다” 애도 구 회장 임종 직후 상주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는 친적과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구 상무의 친아버지이자 고인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오후 3시 넘어 빈소를 찾았다. 부인 김영식씨와 딸 연경·연수씨도 빈소를 지켰다. 조화는 GS그룹 허창수 회장, LS그룹 구자열 회장, LIG그룹 구자원 회장 등 LG 관련 기업과 LG그룹 임직원 일동 명의의 것만 눈에 띄었다.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음에도 오후 들어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고모(이숙희)로 인해 LG와 사돈 관계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후 4시 10분쯤 빈소에 도착했다. 이 부회장은 수행원 없이 혼자 빈소 안으로 들어간 뒤 짧게 조문을 마치고 떠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범LG가인 구자원 LIG 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 구본걸 LF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의 발길도 이어졌다. 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는 “큰 별을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구광모 체제’ 떠받치는 6인회… 구본준은 계열 분리 가능성

    ‘구광모 체제’ 떠받치는 6인회… 구본준은 계열 분리 가능성

    ‘40세 총수’ 승계 과도기에 계열사 CEO 6인 조력자로 LG ‘징검다리 승계론’ 일축 구 부회장 조만간 분가 관측LG가 새로운 ‘구광모 체제’를 안착시키기까지 주요 계열사의 전문 최고경영인(CEO)인 부회장 6인회가 떠받치며 조력하는 과도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구광모 상무가 40대로 젊어 부회장이나 회장 직함을 바로 달기 부담스러워서다.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주요 계열사를 이끌며 구광모 체제를 떠받칠 것으로 보인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은 2~3년 안에 일부 사업을 떼어내 계열 분리를 하거나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LIG, LS그룹 등 형제 및 형제 자손들이 계열분리를 해 왔다.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 온 구 부회장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해 왔다. 그러나 LG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고 일단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구인회 창업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서 독립시켜 LIG그룹을 만들었다. 또 구 회장의 6형제 증 넷째부터 막내인 태회·평회·두회 형제는 LS그룹으로 분가해 나갔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 역시 조만간 분가해 별도 경영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LG그룹이 장자 승계 때 묵시적으로 적용해 온 ‘70세 룰’도 구 상무의 향후 승진 시점과 맞물려 관심거리다. 앞서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 때 당시 50세인 장남 구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올해 40세인 구 상무가 회장 승계를 하려면 아직 10년은 남았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뚝심과 끈기의 리더십 구본무 LG회장 별세

    뚝심과 끈기의 리더십 구본무 LG회장 별세

    뚝심과 끈기의 기업인으로 불리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LG그룹을 23년간 이끌며 ‘럭키금성’을 ‘글로벌 LG’ 반열에 올려놓았다. 인화와 정도 경영으로 상징되는 ‘LG웨이’를 만든 이도 그다.LG그룹은 이날 오전 9시 52분쯤 구 회장이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두 차례 뇌수술을 받았으나 최근 상태가 악화되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룹 관계자는 “고인은 1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평소 밝혔다”면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고 공개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LG는 가족 외 조문과 조화는 가급적 받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명의로 조화를 보내고 장하성 정책실장을 통해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LG가(家) 3세대 총수’인 고인은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첫 입사는 1975년 ㈜럭키(현 LG화학)였다.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인재 중심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으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냈다. 구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영권은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넘겨받게 됐다. 그룹 관계자는 “2003년 일찌감치 지주회사로 전환해 계열사별 책임경영 체제가 안착된 만큼 경영권이나 리더십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식씨와 아들 구 상무, 딸 연경·연수씨가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LG 새 사령탑은 불혹의 구광모… 재무·기획 강도 높은 경영수업 받아

    LG 새 사령탑은 불혹의 구광모… 재무·기획 강도 높은 경영수업 받아

    아들 잃은 큰집에 2004년 입양 소탈하지만 준비 철저한 스타일 정효정씨와 결혼해 1남 1녀 둬 증여·상속세 1조원 육박할 듯LG그룹의 철저한 장자(長子) 승계 원칙은 이번에도 지켜졌다. 2대인 구자경 그룹 명예회장이 1995년 경영권을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넘길 당시 LG반도체를 이끌던 구자학 아워홈 회장, 유통을 맡았던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이 물러난 것은 그래서다. 이에 따라 고(故)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40) 상무가 ‘포스트 구본무’ 체제를 이끌게 됐다. 미국 로체스터 공대 졸업 후 2006년 LG전자 재경 부문 대리로 입사한 구 상무는 이듬해 과장 승진 후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약 1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 LG전자 미국 뉴저지법인에 복귀해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2014년부터 LG㈜ 시너지팀, 경영전략팀에서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 하현회 부회장 아래서 경영 수업을 강도 높게 받았다. 재무, 글로벌사업, 기획은 물론 현장 실무까지 두루 경험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 상무의 행보는 크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말 상무 승진 이후 올해 초 LG전자에서 디스플레이 핵심인 사이니지 담당 사업부를 이끌며 경영 전면에 본격 등장했다. 구 상무는 평소 직원식당에서 식사하고 야구 관람을 즐기는 등 소탈한 편이다. 그러나 일에서는 사전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실행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업의 본질과 방향성을 깊게 고민하는 등 실무진이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를 짚어 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고인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2004년 들어가며 공식 후계자가 됐다. 미국 유학 중 만난 아내 정효정씨와 2009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정씨는 식품원료기업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다. 고인의 큰딸인 연경씨는 2006년 스탠퍼드대 출신 윤관씨와 결혼했다. 둘째딸인 연수씨는 학생으로 아직 미혼이다. LG는 지주사인 LG㈜의 최대주주가 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구 상무가 소유한 LG㈜ 지분은 6.24%로 고 구 회장(11.28%), 구 부회장(7.72%)에 이어 3대 주주다. 우호 지분으로 구 상무 어머니 김영식씨가 4.20%,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이 3.45%를 갖고 있어 이 지분을 상속받으면 LG㈜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다만 증여세와 상속세가 걸림돌이다. 이들 지분을 모두 넘겨받는다면 상속세만 1조원 가까이 내야 할 수도 있다. 몇 년에 나눠 내는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비롯해 자동차 전자장비, 인공지능(AI), 바이오 사업 등 미래 먹거리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과제도 구 상무의 어깨에 얹어진 과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장하성 정책실장 “재계의 큰 별 떠난 것에 문 대통령도 안타까워해”

    장하성 정책실장 “재계의 큰 별 떠난 것에 문 대통령도 안타까워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20일 별세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재계의 큰 별이 떠나신 것에 대해 대통령께서도 안타까워하셨다”고 밝혔다.장 실장은 이날 오후 8시24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20여분간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말씀을 전달했냐는 질문에 장 실장은 “정말 존경받는 재계 큰 별이 가셨다”며 “갑자기 이렇게 되어서 더욱 안타까워하셨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의 명의의 조화도 보냈다. 그러면서 “(구 회장은) 다른 재벌들과 달리 2003년부터 지주회사 체제를 정립해 선도적인 역할을 하셨다”며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더 좋은 성과가 있었을텐데 아쉽다”며 소회를 밝혔다. 장 실장이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자리에는 하현회 ㈜LG 대표이사 부회장이 배웅을 나왔다. 또 LG상사 부회장을 지낸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도 장 실장과 같은 시간에 빈소를 찾은 뒤 장례식장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외신도 높이 평가... “구본무 회장, 족벌 경영에도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외신도 높이 평가... “구본무 회장, 족벌 경영에도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LG그룹을 이끌어온 구본무 회장이 20일 별세하자 외신들도 이 소식을 비중있게 보도했다.AP, 로이터, 블룸버그 등 주요 통신사들은 구 회장의 이력, 업적, 후계체제 전망 등을 자세히 다뤘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부고 기사에서 구 회장이 투명한 소유지배구조를 국내 재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받아들인 점을 먼저 소개했다. 통신은 “구 회장이 현지에서는 재벌로 불리는 그룹을 1995년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아 이끌어온 3세대 경영자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가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바꿨다는 점, LG그룹이 4개 부문으로 분사된 점, 구 회장의 이후 역할 등을 높이 평가했다.블룸버그는 LG그룹이 구 회장의 23년 지휘 기간에 2000년대 초 분사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장했다는 걸 업적으로 강조했다. 그 기간 매출이 1994년 30조원에서 작년 160조원으로 5배 이상, 직원이 21만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한국의 재벌들이 회장이 고령화하면서 세대교체를 겪고 있다며 그 전환계획이 꼭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고 삼성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AFP통신은 구 회장이 조부가 1947년에 창업한 업체를 ‘기업제국’으로 확장한 업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구 회장이 LG그룹을 아들인 구광모(40) LG전자 상무에게 넘기라고 당부했다는 보도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구 상무는 구 회장 동생의 장남이었으나 1990년대 구 회장이 친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입양했다는 얘기도 소개했다.로이터 통신도 LG전자와 LG화학이 소속된 기업집단을 이끌던 구본무 회장이 별세했다고 부고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 매체는 구 회장이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LG그룹을 글로벌 브랜드로 변화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로이터 통신은 LG그룹이 구 회장의 별세 전에 소유구조를 간소화하고 승계작업을 시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주회사 체계를 수립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족벌경영 기업그룹들이 투명성과 기업경영을 개선하라는 정부와 대중의 요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기업승계를 이행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도 소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갑질과 거리 먼 유별난 재벌 총수 ‘구본무’

    갑질과 거리 먼 유별난 재벌 총수 ‘구본무’

    LG복지재단 대표이사, LG상록재단 이사장,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LG연암학원 이사장.20일 별세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또다른 직함들이다. 그룹 경영만큼이나 공익활동을 중시하면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고인은 2015년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LG 의인상’을 제정했다. LG복지재단은 지금까지 72명의 의인을 선정·발표했다. LG상록재단은 산림환경의 보호·연구, 야생 동·식물 보호·연구 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1997년 12월 설립된 재단으로, 고인이 일생 보여준 새와 숲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고인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있는 집무실에 망원경을 두고 내려다보이는 한강의 밤섬에 몰려드는 철새를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또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 본인의 아호를 딴 ‘화담(和談)숲’을 조성하고, 무궁화 500주를 심어 나라꽃 사랑을 실천했다. LG상록재단이 지난달 산림청과 공동으로 실내 재배용 무궁화 품종 개발과 보급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고인의 이런 뜻을 반영한 것이다. ‘기업이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술지원과 청소년교육, 문화예술 분야에서 지원 활동을 벌인 LG연암문화재단, ‘인재육성’과 ‘과학기술 진흥’이란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받아 설립한 연암학원 등도 고인의 공익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재계 관계자는 “고인은 직원들로부터도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평가될 정도로 이른바 ‘재벌 갑질’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면서 “국내외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사회의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무 회장 빈소, ‘비공개 가족장’에도 각계 조문 잇달아

    구본무 회장 빈소, ‘비공개 가족장’에도 각계 조문 잇달아

    20일 별세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는 비교적 조용하고 간소했다. 구 회장의 유족이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을 치르기로 하면서 공식적으로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LG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구 회장은 이날 아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고, 통원 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해 입원했었다. LG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며 비공개 가족장을 치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유족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3층 1호실에 비공개로 빈소를 마련한 상태다. 빈소 입구에는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를 바란다’는 큼직한 문구가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날 오후 각계에서 조문이 시작됐다. 첫 외부 조문객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그는 이날 오후 4시쯤 수행인 없이 홀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약 10분간 머문 뒤 자리를 떴다. 그 뒤를 이어 범 LG가(家)인 허씨·구씨가 인사들이 줄지어 빈소를 찾았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구본완 LB휴넷 대표·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과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이 조문을 위해 빈소를 방문했다. 비공개 가족장이 원칙이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 홍석현 한반도 평화만들기 이사장 겸 중앙홀딩스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장하성 정책실장도 빈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LG그룹 관계자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 외 조문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며 “조문 오신 분들은 돌려보내기 어려워서 받았지만, 고인의 뜻을 헤아려 마음으로 애도를 해주시길 부탁한다”고 거듭 밝혔다. 통상 빈소에서 눈에 띌 법한 조화는 유족 뜻에 따라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와 LG·GS·LS·LIG 등 범LG가가 보낸 조화에 한해서만 수용해 빈소 내부에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상] 구본무 LG그룹 회장 별세…생전 모습 보니

    [영상] 구본무 LG그룹 회장 별세…생전 모습 보니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은 “구 회장이 1년간 투병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구본무 LG그룹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95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다. 첫 입사는 1975년 ㈜럭키(현 LG화학)였다.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인재 중심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으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냈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이재용 삼성 부회장, 구본무 회장 빈소 조문…수행원 없이 혼자 찾아

    이재용 삼성 부회장, 구본무 회장 빈소 조문…수행원 없이 혼자 찾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0일 별세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4시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으며, 상주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를 비롯한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LG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수행원 없이 혼자 장례식장을 찾아 잠깐 조문한 뒤 곧바로 떠났다. 이 부회장과 고인은 각각 삼성그룹과 LG그룹의 ‘창업주 3세’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 회장 빈소에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낸 데 이어 장하성 정책실장을 보내 조문하게 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별세’ 구본무 회장 끈질기게 괴롭힌 ‘숙환’은...조부와 같은 병

    ‘별세’ 구본무 회장 끈질기게 괴롭힌 ‘숙환’은...조부와 같은 병

    LG그룹을 23년간 이끌어온 구본무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LG 그룹은 이날 구 회장이 가족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이어 올해 초에도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다. 이후 통원 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되면서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한 뒤 같은 해 4월과 12월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후 통원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되면서 입원, 결국 명을 달리했다. 구 회장을 끈질기게 괴롭힌 질병은 2년 생존율(병 발견 후 2년간 생존율)이 30%에 불과한 악성 뇌종양인 것으로 알려졌다. 뇌종양은 두개골 내에 생기는 모든 종양을 뜻한다. 뇌종양은 크게 △뇌와 주변 구조물에서 발생한 ‘원발성 뇌종양’ △다른 부위의 암이 전이돼 발생한 ‘전이성 뇌종양’으로 분류한다. 구 회장이 앓았던 뇌종양은 악성으로 분류되는 교모세포종 인 것으로 파악된다. 종양은 수술을 통해 조직검사를 해야 가장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양성 외종양은 수술적 치료만으로 완치율이 높지만 교모세포종과 같은 악성 뇌종양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 후 방사선치료나 항암화학요법을 추가로 시행해야 재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구 회장은 지난해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병세가 악화됐다. LG그룹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도 뇌종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 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직후인 이듬해 1월 동생이자 창업멤버인 구철회 사장은 본인의 경영 퇴진을 선언하면서 조카인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한 바 있다. 한편 구 회장의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LG그룹 관계자는 2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인의 유지에 따라 최대한 검소하고 간소하게 장례절차를 진행한다는 게 유족의 입장”이라면서 “3일장으로 치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인이 최근 병세가 악화하면서부터 가족에게 ‘조용한 장례’를 주문했고,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생존해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룹 측은 LG전자, LG화학을 비롯한 계열사에도 별도의 분향소를 마련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무 회장의 남달랐던 야구 사랑

    구본무 회장의 남달랐던 야구 사랑

    20일 구본무(73) LG 그룹 회장이 병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구 회장의 남달랐던 야구 사랑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LG 트윈스가 창단된 건 1990년. 당시 럭키금성그룹에서 프로야구 원년멤버인 MBC 청룡을 150억에 인수해 그룹사의 영어 약자를 따 LG(Lucky Goldstar) 트윈스로 출범시켰다. 구본무 회장은 LG 트윈스의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LG 트윈스는 창단 첫 해 우승을 거머쥘 정도로 승승장구하며 90년대 프로야구의 강자로 군림했다. 특히 94년의 우승은 LG 야구의 대명사인 ‘신바람 야구’의 돌풍을 일으킨 해로서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LG 트윈스의 우승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설도 떠돈다. 당시 구단주로서 LG 트윈스의 우승을 크게 기뻐했던 구본무 회장이 이듬해 그룹사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기존 사명인 럭키금성을 LG로 바꿨다는 것이다. 야구장 시설개선에 앞장섰던 구 회장은 뚝섬에 한국 최초의 돔구장 건설을 추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구 회장은 해외 출장을 가는 도시에 돔구장이 있으면 방문 일정을 잡았고, 실제로 그룹사에서 건설계획을 구체화해 서울시에 부지 입찰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축구계와의 갈등, IMF의 여파 등으로 돔구장 건설은 무산됐다. 구 회장은 시즌 전 경남 진주 단목리에 위치한 자신의 외가에서 LG 선수단 전체를 모아놓고 그 해의 선전을 기원하는 ‘단목행사’를 갖는 독특한 전통도 만들었다. 98년 단목행사에선 한국시리즈 MVP에게 8000만원 상당의 고급 손목시계를 선물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아직까지 시계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2000년에는 오키나와 전지훈련지를 찾아 선수단에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경우 백지수표를 써주겠다고 약속했던 일화도 유명하다.2008년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1년에 몇 차례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구 회장은 야구단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룹 수뇌부의 지나친 관심이 LG 야구단의 성적부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꾸준히 성적이 좋지 않던 암흑기 시절에도 구 회장이 매년 변함없는 애정과 열정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터라 LG 트윈스 팬들 사이에서 구 회장은 구느님(구본무+하느님)으로 불린다. 한편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리는 한화와 LG의 경기는 유니폼에 검은 리본을 달고 응원도 자제하기로 하는 등 야구단도 구 회장 추모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무 회장 장례 ‘3일 가족장’으로…회사 분향소 설치도 생략

    구본무 회장 장례 ‘3일 가족장’으로…회사 분향소 설치도 생략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례는 ‘3일 가족장’ 형식으로 간소하게 치러질 전망이다. 그룹 관계자는 2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인의 유지에 따라 최대한 검소하고 간소하게 장례절차를 진행한다는 게 유족의 입장”이라면서 “3일장으로 치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인이 최근 병세가 악화하면서부터 가족에게 ‘조용한 장례’를 주문했고,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생존해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빈소는 고인이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가족회의를 통해 정해질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룹 측은 LG전자, LG화학을 비롯한 계열사에도 별도의 분향소를 마련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철저하게 가족장으로 치른다는 게 유족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장례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발인 때도 공개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구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와 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을 비롯한 가족은 서울대병원에 모여 장례절차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에는 일부 조화가 배달되기도 했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모두 반송됐다고 그룹 측은 전했다. 연합뉴스
  • 국내 재벌총수 평균 수명 77세…최장수 회장은?

    국내 재벌총수 평균 수명 77세…최장수 회장은?

    국내 재벌총수들의 평균 수명은 77세인 것으로 나타났다.20일 재벌닷컴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자산 5조원 이상 60개 대기업 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52곳을 대상으로 총수를 지냈다가 별세한 창업주와 직계 총수 36명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77세로 파악됐다. 이날 73세로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평균보다 4년 정도 짧게 산 셈이다. 조사 대상 재벌총수들이 타계한 연령대는 70대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80대 10명, 60대와 90대 각각 5명 등 순이었다. 50대와 40대는 각각 2명, 1명으로 집계됐다. 가장 장수한 총수는 2002년 타계한 영풍그룹 창업주 장병희 전 회장과 지난해 별세한 구태회 LS전선 전 명예회장으로 각각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전 회장이 92년을 살아 그다음으로 오래 살았다. OCI(옛 동양제철화학) 창업주 이회림 전 회장과 이원만 코오롱그룹 전 회장도 모두 90세에 별세해 장수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SK그룹 모태인 선경화학섬유의 창업주 최종건 SK그룹 전 회장은 1973년 가장 젊은 나이인 47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태광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호진 회장의 큰 형인 이식진 태광그룹 전 부회장도 2004년 5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한화그룹 전신인 한국화약 설립자 김종희 전 회장은 1981년 59세로 숨져 당시 29세이던 장남 김승연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과 구인회 LG그룹 전 회장, 박두병 두산그룹 전 회장, 박정구 금호그룹 전 회장, 이운형 세아그룹 전 회장은 모두 60대에 숨을 거뒀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명예회장은 1987년 노환과 폐암 합병증으로 유명을 달리하며 재벌총수 평균 수명만큼 살았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전 회장과 장경호 동국제강 전 회장, 이장균 삼천리 전 회장도 모두 평균 수준인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밖에 허준구 LG건설 전 명예회장, 이재준 대림산업 전 회장, 최기호 영풍그룹 전 회장, 박성용 금호그룹 전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전 회장, 이임룡 태광그룹 전 회장, 장상태 동국제강 전 회장은 70대에 운명했다. 이수영 OCI그룹 전 회장도 지난해 향년 7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며 70대에 타계한 총수에 포함됐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86세인 2001년 노환으로 숨졌다. 조중훈 한진그룹 전 회장, 구평회 E1 전 명예회장, 구두회 예스코 전 명예회장, 금호그룹 창업주인 박인천 전 회장, 신용호 교보생명 전 회장, 정인영 한라그룹 전 회장, 세아그룹 창업주 이종덕 전 회장,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전 회장, 박경복 하이트맥주 전 회장 등도 80대에 유명을 달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수익 창출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다” 고 구본무 회장의 말말말

    “수익 창출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다” 고 구본무 회장의 말말말

    “저는 LG를 반드시 ‘초우량 LG’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왔던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고 저력입니다.” - 1995년 회장 취임사“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반드시 고객을 위한 기술, 고객을 위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족스러운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 만족하고 고객이 평가를 내린 기술이라야 하며, 기술은 첨단이라고 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을 위해서 유익하게 쓰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 1995년 10월 LG전자 평택공장 방문 “LG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업 구조를 어떠한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해야 하며, 10년, 20년 후에도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하여 역량을 집중해야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1996년 사원과의 만남 “LG는 외자유치를 통해 단순히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 유수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입니다.” -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社와의 제휴 발표에서 “미래의 기회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수익 창출」이나 「선진 경영방식」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인재들」입니다. 저는 LG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여러분들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룬 만큼 보상 받는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도록 할 것입니다. 생동감과 역동성이 넘치는 조직이 되기 위한 여건 마련에도 힘쓰겠습니다.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 주십시오. 그 결실은 바로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 2001년 신년사 “지금은 일등이 아닌 기업은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대입니다. 경영 환경이 어려울수록, 일등기업은 오히려 진가를 발휘합니다. 일등의 프리미엄이 나날이 커진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일등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해 왔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일등 LG」,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달성해야 할 목표입니다.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기업, 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기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2002년 신년사 “경영자란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어 변화를 추구하고「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며, 조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도전적 목표」를 세우고 끈질기게 파고들어 반드시 「성과」를 이루어 내는 것이 경영자가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 2002년 4월 신임임원교육 “고객가치 위해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해야 됩니다. ” - 2006년 7월 임원세미나 “그 동안 고객중심경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으나 아직 내부관점에서 공급자 중심의 생각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있고, 단기실적에 연연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고객만족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으며, 기본으로 돌아가 하나씩 혁신해 나간다면 한층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 2006년 8월 글로벌 CEO 컨퍼런스 “LG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고객에게 보다 나은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을 때입니다. 시련 극복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강한 에너지와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존중 경영의 참 뜻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2007년 신년사 “R&D는 LG가 일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날로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선진기업의 파상 공세와 후발 기업의 맹렬한 추격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R&D에 있습니다.” - 2008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혁신은 고객가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이고, 또한 차별화된 가치로 고객의 기대,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하기 위한 창조적인 미래준비 활동이어야 합니다.” - 2008년 5월 혁신한마당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거나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됩니다.” - 2008년 11월 컨센서스 미팅 “구성원 모두가 창의성을 마음껏 발현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인간존중경영」의 참모습입니다. 창의와 자율이 살아 숨쉬는 열린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CEO들이 정진해 주십시오.” - 2009년 1월 글로벌 CEO 컨퍼런스 “불황을 극복하고 시장의 리더로 발돋움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미래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R&D, 마케팅 분야의 유능한 인력 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R&D투자는 줄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2009년 3월 임원세미나 “변화무쌍한 고객의 생각을 미리 읽어내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의 서로 다른 상상력이 열린 토론을 통해 다양하게 살아나야 합니다. 창의와 자율이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 2010년 신년사 “똑똑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못 당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겁게 일하는 사람 못 당합니다. 그래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연구하는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 하십시오.“ - 2010년 7월 연구전문위원 만찬 “늘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고객가치를 차별화하고 시장 선도를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의 모든 순간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에 머무르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 2011년 5월 혁신한마당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 하는 것과 같이 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합니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회장이라도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 2011년 9월 인재개발대회 “올 한해 융복합 기술과 같이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중장기 R&D를 강화해야 합니다.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3년, 5년 이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미래에 투자해야 합니다.” - 2012년 신년사 “가장 까다로운 고객의 시각에서 늘 새로운 가치,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만이 시장선도를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 2012년 5월 혁신한마당 “이제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더 이상 고객과 인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기업으로 남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체질과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경쟁사들이 쉽게 넘지 못할 실력의 벽을 쌓아 나가야 합니다.” - 2012년 9월 임원세미나 “이제 일등기업이 아니면 성장이나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적극적으로 인재를 확보하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경영진들이 앞장서서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미래를 설계하고 공통의 꿈을 향해 힘을 모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적이나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사업에 필요한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 2013년 1월 신년사 “고객의 마음은 물론, 기술과 제품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지금 일본 기업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 10년 후, 우리의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LG의 일하는 문화도 시장선도에 걸맞게 달라져야 합니다. 모두가 최고의 고객 가치에 몰입하고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일하도록 최고경영진들이 먼저 바꿔 나가고, 직접 챙겨야 합니다.” - 2013년 1월 글로벌 CEO 컨퍼런스 “LG는 여러분과 같은 우수한 인재들과 함께 세계시장을 선도하기를 희망합니다. 앞서 가려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LG가 조성할 LG사이언스파크도 최적의 근무환경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가겠습니다.” - 2013년 2월 테크노 컨퍼런스 “한 발 앞서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만들어 내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 계열사의 인재들이 역량을 모아 R&D 시너지를 내야 합니다. 나를 비롯한 경영진은 연구원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 2013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 “시장을 창출하는 상품을 많이 만들어 내려면, 제대로 승부할 시장과 사업에 집중하여 남보다 먼저, 그리고 꾸준하게 기술을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상품을 통해 고객의 삶이 더욱 편안해지고, 보다 안전해지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2013년 5월 임원세미나 “LG가 2020년까지 약 4조원을 투자할 ‘LG사이언스파크’는 전자, 화학, 통신 그리고, 에너지와 바이오 등 다방면의 두뇌들이 모여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우리 나라 최대의 융·복합 연구 단지가 될 것입니다. LG는 오늘 첫 삽을 뜨는 ‘LG사이언스파크’를 중심으로 수만 명의 다양한 인재들을 유치하고 육성하여, 여러 기술들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촉진하고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LG 사이언스 파크’를 서로의 지식을 모으고 녹여 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뛰어난 인재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언제 어디서나 교류할 수 있는 열린 공간과 생각을 스스럼 없이 나누는 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이 곳에 들어오는 LG 계열사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학계와 지역 사회 등, 여러 외부의 지식과 역량을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엮어내는 ‘창조 경제’의 좋은 본보기가 되고자 합니다.” - 2014년 10월 LG사이언스파크 기공식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강한 대학을 가진 나라가 세계를 리드합니다. 대학이 학문과 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우수한 인재를 많이 배출해주셔야 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LG가 연구의욕과 역량이 탁월한 교수님들을 후원하는 일은 매우 보람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 2014년 7월 연암해외연구교수 증서 수여식 “그 동안 해왔던 혁신 활동들을 철저히 되짚어 보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획기적인 혁신을 해야 합니다. 경쟁의 판을 바꿀 수 있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기필코 이뤄내겠다는 집념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 찾아 주십시오.” - 2016년 3월 혁신한마당 “과거의 성공 사례와 익숙한 방식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야 합니다. 고객과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 과감하게 사업하는 방식을 혁신해야 합니다.” - 2016년 5월 임원세미나 “사업 구조 고도화는 LG가 70년을 넘어 영속하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입니다. 주력 사업은 사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고객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아울러 변화에 뒤쳐지거나 경쟁력 회복이 어려운 사업들은 근본적으로 사업 방식을 바꾸는 동시에 성장 사업은 힘을 모아 제대로 육성해야 하겠습니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 하나하나가 더 나은 고객의 삶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 2017년 신년사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습니다. 최근의 경영환경을 볼 때 지난 세월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면서 얻은 교훈들을 깊이 새겨 다시 한번 변화하고 혁신해야만 합니다. 사업 구조 고도화의 속도를 더욱 높여 반드시 주력사업을 쇄신하고, 미래 성장 사업을 제대로 육성해야 합니다. 아울러 혼란스럽게 변하는 글로벌 사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영 시스템을 제대로 혁신해야 합니다.” - 2017년 1월 LG 창립 70년 기념만찬 “여러분처럼 우수한 인재들과 함께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싶습니다. 서울 마곡에 들어설 첨단 융복합 연구단지에서 한껏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 - 2017년 2월 테크노 컨퍼런스 “주력사업 및 성장사업 성과와 연결되는 연구개발을 통해 R&D의 생산성을 높이고, 핵심?원천 기술 개발로 R&D가 미래 준비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추어 도전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반드시 성과로 연결 시켜야 합니다.” - 2017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구본무 회장 별세’ LG 트윈스, 한화전 응원 중단

    ‘구본무 회장 별세’ LG 트윈스, 한화전 응원 중단

    구본무 LG 그룹 회장이 20일 별세하면서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한화 이글스와의 잠실 홈 경기에서 응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LG의 한 관계자는 “한화 구단도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협조했다”면서 “LG 선수단은 유니폼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뛸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용하고 간소한 장례를 원하고 조문과 조화도 사양한 고인의 유지와 가족의 뜻에 따라 LG 트윈스는 별도의 애도 행사를 열지 않는다. 구 회장은 숙환으로 이날 오전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야구에 큰 애정을 보였다. 1995년 그룹 회장에 오르기에 앞서 1990년 창단한 LG 트윈스의 초대 구단주로 프로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2007년까지 LG의 구단주로서 트윈스가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들 앞세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근황

    아들 앞세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근황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20일 별세한 가운데 그의 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의 근황에 관심이 쏠린다.재계에 따르면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그룹 2대 회장을 지낸 구 명예회장은 1925년 출생해 올해로 만 93세를 맞았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LG그룹 총수 자리를 맏아들인 구본무 회장에게 물려준 이후에는 2선으로 물러나 천안연암대학 인근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워낙 고령인지라 거동이 편치 못해 이날도 아들의 임종을 지키지 않고 천안 자택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구 명예회장은 구 회장에게 그룹 경영의 바통을 넘기기 전 LG그룹이 현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50년 부산 사범학교 교사로 재직 중 부친의 부름을 받아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69년 부친이 타계함에 따라 1970년 45세의 나이에 LG그룹 회장에 올라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구 명예회장은 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자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 확보에 주력해 회장 재임 기간에 설립한 국내외 연구소만 70여개에 달한다. 본격적인 해외진출에도 나서 중국과 동남아, 동유럽, 미주지역에 LG전자와 LG화학의 해외공장 건설을 추진해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의 권한을 이양하고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그룹에 확립했다. 그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교육 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여해 왔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본무 회장 수차례 ‘조용한 장례식’ 주문…조문·조화도 사양

    구본무 회장 수차례 ‘조용한 장례식’ 주문…조문·조화도 사양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부터 가족과 회사 임원들에게 수차례 ‘조용한 장례식’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LG그룹은 20일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고인이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으나 가족·친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조문을 받지 않았으며, 조화도 정중히 사절했다고 한다. 이는 생전에 과한 의전과 격식을 꺼리고 소탈한 생활을 원했던 고인이 “내 삶의 궤적대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의 당부를 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인 구자경(93) 명예회장이 생존해 있는 점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구 명예회장은 빈소에는 나오지 않고 자택이 있는 천안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회장 재임 때도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 비서 1명 정도만 수행하도록 했고, 특히 주말에 개인적인 일에는 혼자 다닐 정도로 소탈한 생활을 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룹 경영진에게도 자녀 등의 결혼식을 할 때 가능하면 검소하게 치르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지난해 창립 70주년 때 성대한 기념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룹 내 일각의 주장에도 별도의 행사 없이 시무식을 겸해 간소하게 치르면서 의미를 되새기자고 제안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한평생 허례허식을 피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던 고인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죽음 이후에도 이어가길 원했던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공개 가족장’은 ‘조용한 장례식’ 원한 구본무 회장 뜻

    ‘비공개 가족장’은 ‘조용한 장례식’ 원한 구본무 회장 뜻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부터 가족과 회사 임원들에게 수차례 ‘조용한 장례식’을 주문했던 것으로 20일 알려졌다.한평생 허례허식을 피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던 고인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죽음 이후에도 이어가길 원했던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LG그룹은 이날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고인이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차려졌으나 가족·친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조문을 받지 않았으며, 조화도 정중히 사절했다고 한다. 이는 생전에 과한 의전과 격식을 꺼리고 소탈한 생활을 원했던 고인이 “내 삶의 궤적대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의 당부를 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회장 재임 때도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 비서 1명 정도만 수행하도록 했고, 특히 주말에 개인적인 일에는 혼자 다닐 정도로 소탈한 생활을 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룹 경영진에게도 자녀 등의 결혼식을 할 때 가능하면 검소하게 치르도록 조언했다고 한다. 지난해 창립 70주년 때 성대한 기념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룹 내 일각의 주장에도 별도의 행사 없이 시무식을 겸해 간소하게 치르면서 의미를 되새기자고 제안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오너가의 장자로 그룹 경영권을 자연스럽게 승계받았지만 젊었을 때부터 현장에서 혹독한 경영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원칙과 전통이 몸에 밴 것이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도 이어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과거 부장 시절 해외출장을 함께 간 한 기업 인사가 나중에 귀국해서야 동행한 사람이 그룹 회장의 맏아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직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는 회장으로 재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회장 취임 초 그룹 임직원들을 시상하는 행사에 직원들과 똑같이 행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은 사주 일가의 갑질 행태 등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면서 “이는 구 회장의 소탈하고 겸소했던 면모가 반영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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