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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부 폭설 곳곳 ‘雪禍’

    영남지역에도 10여년 만에 폭설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거나 도로 곳곳이 정체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23일 대구시와 울산시,경북도,경남도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남 거창이 23.2㎝의 적설량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합천 15.4㎝,진주 13㎝,밀양 12㎝,대구 16.5㎝,구미 15.5㎝,상주 15㎝,울산 7.5㎝ 등의 눈이 내렸다. 이 때문에 대구에서는 이날 오후 5시 현재 달성군 가창댐∼한티재 정상 15㎞와 동구 팔공산 파계사 삼거리∼동화사 입구 7.8㎞ 등 12개 구간의 차량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23일 오전 7시를 기해 동해 해상에는 폭풍주의보가 발령돼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밤새 도로가 얼어 붙으면서 크고 작은 눈길 사고도 꼬리를 물었다.22일 오후 7시30분쯤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918번 지방도에서 갤로퍼승용차(운전자 전모·65)가 앞서 정차해 있던 포터 화물차를 들이받았다.이어 전씨는 화물차 운전자와 도로에서 시비를 벌이고 있던 중 이곳을 지나던 또 다른 포터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면서 농가 피해도 속출했다.경북 고령지역 딸기재배 농민들은 밤새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치웠으나 일손부족으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잇따랐으나 정확한 피해규모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한편 23일까지 남부 및 강원 산간 지역에 5∼25㎝의 많은 눈이 내린 것은 남해상을 지나며 수증기를 빨아들인 저기압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상청은 이날 “북서쪽에서 차가운 기압골이 남동진하고 남서·남동쪽에서 따뜻한 공기가 충청 이남,강원 해안과 산간지역에 공급되면서 추풍령 이남 지역을 경계로 눈구름대가 발달해 많은 눈이 내렸다.”고 밝혔다. 전국 정리 황경근·윤창수기자 kkhwang@
  • 北 NPT탈퇴 美에 협상요구 초강수 압박

    북한이 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반도 상공의 먹구름이 얼마간 짙어졌다. 북측이 이날 NPT 탈퇴와 핵안전조치협정(Safe guards Agreement) 준수 거부를 선언한 것은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긴 하다. 북한은 지난해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한 이후 미국의 ‘선 핵개발 계획 포기' 요구를 거부해 왔다.그러면서 거꾸로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끈질기게 요구하며 단계적으로 대응수위를 높여 왔다.미국의 대북 중유지원 제공 중단을 내세워 이미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재가동을 선언했고,동결된 핵시설의 봉인에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원까지 추방했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북한이 이 시점에서 이같은 초강수를 들고 나온 배경이 궁금하다. 이에 대해선 한반도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다만 북한의 이번 카드가 대미 압박 수위를 한껏 높인 뒤 그 연장선상에서 무엇인가를 도모하려는데 의도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것이다.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이라는 이중고속의 북한당국이 체제의 사활을 건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같은 극한 전술의 최종 노림수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일단은 국제사회와의 정면 대결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북한이 ‘정부성명'에서 비록 NPT에서 탈퇴하지만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다.”며 퇴로를 열어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북한이 카드를 빼든 시점의 절묘함도 협상촉진용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미국이 이라크문제에 매달려 대북 강공을 구사하기 힘든 상황인데다 남한의 정권 교체기라는 점을 북한이 감안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측이 “현단계에서 우리의 핵활동은 오직 전력생산을 비롯한 평화적 목적에 국한될 것”이라고 극구 강조한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사실 미국의 대북 중유제공 지원 중단으로 엄동설한을 나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전력문제가 이만저만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그런 만큼 차제에 전력문제를 이슈화,미국에 협상을 강력히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북한은 이날 양동전술을 구사했다.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의 정무 담당 외교관은 “미국이 중유 공급을 재개한다면 (NPT 탈퇴를)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번 사태로 북핵문제 해결의 시간이 오히려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반드시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북한의 강공이 미국의 양보보다는 MD(미사일방어체제) 구축 등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세계경영전략의 빌미가 될 소지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북한의 이번 ‘자위적 조치'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궁극적으로 북한체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구본영기자 kby7@kdaily.com ★정부 반응-'안보리 회부' 대책 착수 10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이란 초강수에 정부 당국은 ‘허를 찔린’ 표정이다.정부는 그동안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며 북한의 극단적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펼쳐왔고,최근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 등에서 미국의 대북 강경입장을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고 자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북한의 NPT 탈퇴 선언에는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포석도 깔린 것으로 진단하고,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때라고 보고 있다.대미 핵특사뿐만 아니라 대북 특사 파견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북한의 NPT탈퇴 선언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남북대화와 외교적 노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NPT 탈퇴의사를 밝히긴 했지만,‘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미국이 원하는 검증도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북측 성명이 미국의 요구대로 ‘핵포기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으나,외교부 당국자는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면서 이를 감시할 체제를 이미 벗어던진 것은 모순되며,NPT 탈퇴와 전력생산 주장은 무관하다.”고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일단 정부는 남북 대화를 그대로 진행할 방침이다.서울에서 열리는 제9차 남북장관급 회담도 북한이 수정 제의한 21∼24일을 그대로 받아들여 북측을 상대로 핵포기 설득 작업을 해나가는 한편,북측의 핵심 의도를 파악,대처해 나갈 방침이다. 이와 함께 중·러 등 주변국을 통해 북한의 NPT 탈퇴 복귀를 설득하고,미측에 대해선 북한이 초강수를 띄운 속뜻을 설명할 계획이라는 게 정부관계자의 전언이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북핵문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도 나섰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도 극단적인 북핵위기의 고조를 피하고 싶다는 뜻을 남겨 뒀기 때문에 대화를 통한 해결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NPT 탈퇴가 최근 운신의 폭을 넓혀온 미 행정부내 온건파의 입지가 아예 없어질 상황으로 연결될 수도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달러 약세로 환차손 ‘비상’

    미국 경제 불안,이라크전 발발 가능성 등으로 인한 달러화의 가치 하락으로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달러화 하락이 세계적 추세여서 일본 등 경쟁국과의 수출 경쟁력에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환차손에 따른 순이익의 감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올해 경영목표를 세우면서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를 1달러당 1100원대로 책정하는 등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을 감안해 사업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도 “미국 경제가 장기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1달러=1100원’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현대자동차도 달러화 하락이 지속되면서 이에 따른 환차손을 우려,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올해 환율이 지난 해보다 100원 가량 떨어지고 월 평균 7만대 정도의 자동차를 수출한다고 가정할 때 월간 매출액은 9000여억원에서 8000여억원으로 줄어들고 순이익은 7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제조업은 중국 등 경쟁국에 추월당하는 상황에서 달러화 하락에 따른 원화강세로 순이익 감소뿐 아니라 수출경쟁력마저 잃게 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제조업의 경우 고정환율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등과 수출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손은 기업의 순이익을 갉아먹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유럽·중국 등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결제대금을 유로화나 중국 원화로 받는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우리구 살림 이렇게/정영섭 광진구청장

    “역세권을 중심으로 지역개발사업을 본격화 할 것입니다.” 정영섭(70) 광진구청장은 ‘구정의 달인’답게 역동적인 개발사업을 마련하는 등 빈틈없는 새해 살림살이 계획을 세웠다. 정 구청장은 8일 “급속한 사회변화 만큼 구민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올해 구정 초점을 ‘한차원 높은 복지와 아름답고 깨끗한 미래도시 건설’에 뒀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역세권을 중심으로 5개 상업지역을 올해부터 본격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먼저 건대지구의 경우 60층 이상의 초고층 주상복합빌딩과 백화점 등 주민 편의시설을 유치,‘강북의 압구정’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이다. 능동로와 화양지구는 학생의 거리,패션의 거리 등 젊음이 넘치는 거리로 특화한다.또 중곡과 구의지구는 업무와 행정,유통과 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활기찬 거점지역으로 가꿀 생각이다. 그는 또 “깨끗한 도시환경으로 보다 양질의 복지구정을 실현하겠다.”며 구민체육센터 건립과 한강수변의 환경친화적인 구민체육공원 조성 등을 약속했다. 특히 “군자동어린이대공원 앞 일명 ‘도깨비 건물’을 철거해 1700여평의 부지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에는 구를 상징하는 ‘광장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화양동 느티나무 주변 1500여평을 매입해 문화복지관과 정자마당을 건립,주민 휴식공원으로 꾸미고 아차산성길을 관광명소로 개발하기 위한 종합 개발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광장사거리 남쪽에 운동장 부지와 연결하는 구름다리 건설 등 광장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거리 조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630억원이 투입되는 능동로 확장공사 2차구간인 건대역∼어린이대공원간 도로를 넓혀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고 건대역 주변 화양동 일대 뒷골목은 활력이 샘솟는 대학문화의 거리로 각각 가꾸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 구청장은 저소득 주민과 여성,노인·청소년·장애인 등을 위해 수급자 중심의 주민복지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수준높은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첨단 시설을 갖추고 건강관리시스템 구축과 방문진료 등에 보다 많은 행정력을 쏟을 계획이다.오는 5월 완공되는 군자동 노인종합복지관을 비롯해 치매시설 등을 갖춘 노인복지시설을 확충해 나갈 복안이다. 더불어 정 구청장은 구민들이 즐겨 찾는 정보도서관,광진문화원,동문화복지관 등의 내실있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행복한 광진 건설’을 앞당기겠다고 다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日, 무인정찰기 개발 추진/한반도등 주변국 군사시설 고공촬영 가능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방위청은 한반도 등 주변국 군사시설을 고공에서 촬영할 수 있는 체공형 무인정찰기 개발을 위해 2003년도 예산에 2억 6000엔(약 26억원)의 연구비를 책정했다고 도쿄신문이 3일 보도했다. 지구를 선회하는 정찰위성은 하루 한 차례 목표물 촬영이 가능한데 비해 무인정찰기는 36시간 연속 관측이 가능하다. 정찰기는 20㎞ 이상의 고공을 비행하기 때문에 지대공 미사일을 피할 수 있고 공해상에서 정찰이 가능해 한반도 내륙의 군사시설도 촬영할 수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상에서 무선으로 조종되는 정찰기는 디지털 화상이나 동영상을 송신할 수 있으며 구름이 낀 날씨에도 촬영이 가능하도록 광학카메라 외에도 레이더,적외선 탐지장치를 용도에 따라 적재할 수 있다. 2007년까지 19억엔을 투입,정찰기 개발과 배치에 필요한 기술 데이터를 수집할 예정이다.
  • 퇴근길 ‘엉금’ 출근길 ‘꽁꽁’

    3일 기습적인 게릴라성 폭설로 서울지역 주요 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어 퇴근길 교통 대란이 벌어졌다.일부 지역에서는 눈이 얼어붙어 4일 아침 출근길도 정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는 바람에 올림픽대로와 동부간선도로,한강 교량,도심 등에서 차량들이 밤늦게까지 거북이 운행을 계속했다. 저녁 퇴근길에는 평소 승용차로 1시간 거리인 서울 종로∼일산 신도시 구간과 강남 테헤란로∼분당 진입로 구간이 3시간 넘게 걸렸다.북악산길과 삼청터널은 오후 3시15분부터 10시20분까지 7시간여 동안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됐고,강변북로 반포∼행주대교 방면,동부간선도로 중랑교∼상계 방면,강남 테헤란로와 내부순환로 구간 등 주요 도로 곳곳에서 시속 20㎞ 미만의 정체를 보였다. 또 퇴근길 정체를 우려한 시민들이 승용차를 직장에 세워두고 지하철을 이용,평소보다 2배 정도 많은 승객이 몰려 열차가 북새통을 이뤘다.서울에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오후 3시부터 20분 남짓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게릴라성 눈보라로 돌변했다.또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칠흑처럼 어두워져 한때 암흑세계로 바뀌었다.기상청은 “기압골이 중부지역을 지나 동쪽으로 빠져나가면서 대기 상·하층의 심한 온도차로 인한 대기 불안정으로 천둥,번개,눈보라 등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크고 작은 차량사고도 잇따랐다.오후 2시30분쯤 충남 공주시 이인면 신기령고개에서 충남 32고 3626호 무쏘 승용차가 15m 아래로 추락,운전자 이모씨의 아버지(75)와 아내(47)가 숨졌다.오후 7시50분쯤 서울 잠실대교 상행선에서는 눈길에 미끄러진 크레도스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오던 엘란트라,체어맨 등 승용차 4대와 연쇄충돌했다.앞서 오전 10시20분쯤 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곡리에서는 쏘나타 승용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저포저수지에 추락,운전자 강모(37·여)씨와 딸(13),조카(6) 등 4명이 숨졌다.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는 강풍과 폭설로 오후 2시 이후 기능시험이 연기됐다.또 목포,여수 등으로 향하는 국내선 항공기 4편이 결항됐다.인천공항에도 4㎝의 눈이 쌓여 항공기 3편이 회항했고,제설작업으로 20여편의 항공기 출발이 1시간 정도 지연됐다.서해와 남해 먼 바다에는 폭풍경보가,나머지 전 해상에는 폭풍주의보가 내려 주요 항·포구에는 육지와 섬을 오가는 여객선의 발이 묶였다. 갑작스러운 눈보라에 기상청과 서울경찰청 교통상황실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기상청에는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릴 때처럼 어두워지고 번개까지 치는 현상은 처음”이라면서 “기상 이변이 아니냐.”고 묻는 전화가 많았다. 이창구 이영표 박지연기자 window2@
  • [열린세상]변화의 열망을 읽자

    참으로 무상한 것이 세월이지만 어느새 세밑이다.올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쉬움으로 가득하다.먼저 나 자신 무엇하나 제대로 한일이 없다는 부끄러움에서 그렇다.하지만 우리가 함께 사는 이 땅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이 신나고,고마워 이대로 올 한 해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들 만큼 이 해를 보내기가 아쉽기만 하다. 우리는 지난 6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잔치를 치르고 또 신명나는한 달을 보냈다.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의 가없고 거침없는 힘이 드러나는 것을 눈이 시리도록 보았다.그러면서도 그 힘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한 번 일어났던 일로 끝나지나 않을까 안타까워하던 중,전혀 다른 자리에서그 힘은 거듭,그리고 새롭게 솟아났다. 이번엔 신나고 즐거운 잔치가 아니라,슬프고도 애달픈 일이었다.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일을 놓고 누군가 지핀 한 자루의 촛불이 이제 주말이면,온 누리 곳곳을 수천 수만의 불빛으로 늘어 춥고 캄캄한 섣달 그믐의 밤을 밝히고 있다.누가 그들을 철없고,저만아는 어린 세대라 하는가?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 끝난 대통령 선거에선 젊은 세대의 기발하고도 열정적인 참여가 눈부셨다.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펼쳤다.그동안 ‘독’으로만 여겼던 인터넷을 통해 서슴없이 드러내고 함께 나눈 정치 의식은 인터넷이야말로 그들의 ‘약’이며,‘무기’라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선거가 끝나고 며칠 동안 학기말을 마무리하려고 연구실에 들어앉아 있자니 과제를 내러,세밑 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그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으로 결과와 상관없이 투표에 참여하고 정치적인 관심을 보인 일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시험 기간이라 새벽에 고향에 내려가 투표하고 밤새 되밟아 와 다음날 시험을 치렀다는 이야기에 나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지난 6월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젊은이들 사이에서 목청껏 외치고 거침없이 부둥켜안고 울었던,그리고지난 주말 먼발치에서나마 훔쳐 본 그 젊고,어린 세대들의 촛불을 보고 눈물을 닦았던 일이 되살아났다.선거가 끝난 다음날 밖에서 점심을 먹는데 몇몇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철없고 서툰 행동’을 탓하고 꾸짖으셨다.참다못해 내가 나서 그들의 뜻을 전했다.“모르긴 모르지만 이들은 이제 사람이나,아니면 출신 배경 등을 보고 투표한 것이 아닙니다.정책,아니 무엇보다도 이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우리가 제대로 새기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그들은 어느 정치가나 집단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한마디로 변화를 열망한 것이다.지금까지와는 다른,새로운 정치와 삶을 바라고 뜻한 나머지 온 몸과 존재를 던져 나선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세대 간 정치문화의 차이가 드러났다고들 한다.세대에 따라 정치문화가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그 차이는 그저 고여있는 물 같은 것이 아니다.그들은 이제 고여 있는 물을 박차고 흘러 역동적인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고자 한다. 흔히 앞날의 주인공이라며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유보당한 자라나는 세대가자신들의 미래를 지금,여기 앞당겨 꿈꾸고 또 실현시키고자 나선 것은 정말소중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를 정치적인 뜻으로만 그 결과를 따져 이러쿵저러쿵 할 것이 아니라,그 과정,특히 자라나는 세대의 참여와 의사 표현의 과정으로 읽고 새겨야 할 것이다.과정이 중요하다고 입으로는 ‘바담풍’을 가르치면서도,입시 위주 교육의 한계처럼 그저 결과만 따져온 어른 세대를 그들이 따끔하게 야단치고 가장 중요한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나선 일을 아프고 또한 고맙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이제 그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읽고 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애써야 한다.무엇보다도 그들과 함께 변화를 꾀해야 한다.우리 어른들이야말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자라나는 세대와 함께 열어갈 새해,그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정유성 서강대 교수 교육학
  • 동해안 새해 첫날 일출 못볼 듯

    계미년(癸未年) 1일의 전국 날씨는 맑겠으나 동해안 지역은 흐려 해돋이를보기 힘들 전망이다. 기상청은 30일 “새해 첫날은 맑거나 구름이 조금 끼고 눈은 오지 않겠다.”면서 “서울 아침기온이 영하 4도 등 기온은 평년보다 1∼2도쯤 높아 강추위는 없겠다.”고 예보했다. 동해안 지역은 31일 눈이 온 뒤 흐려져 1일 일출을 보기 어렵겠으나 그밖의 지역은 해돋이의 장관을 즐기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일 해뜨는 시간은 서울 오전 7시47분,강릉 7시40분이다. 한편 3일 전국적으로 눈·비가 온 뒤 4일부터 서울 아침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강추위가 올 전망이다. 추위는 다음주 초부터 점차 누그러져 1월 상순과 중순은 평년보다 따뜻하다 한두 차례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순에는 포근한 날이 많겠으며 일시적 고온현상도 있을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윤창수기자 geo@
  • [건강칼럼]증세만으론 부족하다

    먹구름이 모여들고 바람이 일면 대체로 비가 내린다.그러나 바람이 분다고꼭 비가 오지는 않는다.여러가지 기상조건이 어우러질 때 비가 오므로 한가지 조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그 결과를 속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질병을 진단하는 과정도 이와 흡사하다.의대생이 견습의사로서 수업을 시작할 때 처음 받는 교습은 환자가 느끼는 자각적 증상을 논리있게 끄집어 내어 정리하는 병력채취이다.배나 머리,가슴이 아플 때 같은 증세라도그 원인은 여러가지이므로 이를 감별할 수 있는 진단이 필요하다.또 증세만으로는 정확히 진단하기에 부족하므로 추가 정보가 요구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우리의 오관을 총동원하여 환자를 들여다보는 이학적 진찰이다.눈으로 관찰하고(시진),귀로 듣고(청진),두들겨보고(타진),만져보고(촉진),냄새를 맡아(요즈음에는 유용성이 낮아 거의 사용하지 않음) 질병의 내용을 파악한다. 그러나 상당부분의 질병에서 이학적 진찰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에 도달키 어렵다.따라서 혈액검사나 내시경,영상기기 등을 통한 검사가추가된다.증세의 심한 정도에 따라 대체로 질병의 무겁고 가벼움이 가려지긴 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말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고혈압이나 당뇨는 합병증이 생기기 전에는 증세가 없으므로 혈압을 재보고 혈당검사를 해야 진단이 가능하다.고지혈증도몸속의 중요장기가 동맥경화로 계속 망가지는데도 혈관손상이 어느 한계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증세가 없다. 조기 암의 경우도 이치는 같아 증세로 암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차원에서 시행한 진단기법으로 질병을 찾아낸다.우리 몸속의 감각기관이 절묘하긴 하나 질병의 초기에 이를 포착하여 알리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Q씨는 3개월전부터 등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처음엔 의자에 앉아 사무를볼 때 긴장이 되어서 그렇거니 생각하고 자세를 조심하고 목욕과 찜질로 아픈 부위를 달래보았다. 그는 평소 술 담배를 안하고 운동과 올바른 섭생 등 모범적 건강관리를 하던 분이다. 통증이 좋아지는 기색이 없자 침과 뜸으로 4∼5주를 다시 허비하고 나서 인근 정형외과를 찾았다.등뼈 사진을 찍어보니 약간의 퇴행성 변화가 있을 뿐이었다.의사가 큰 문제 없으니 약을 쓰면서 물리치료를 병행하자고 해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더 심해지고 소화도 안됐다.결국 정확한 진단을 위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Q씨가 입원해 내시경과 CT등 여러가지 검사 결과 진단받은 병명은 많이 진행된 위암이었다.위암조직이 췌장을 침범하고 주위에 있는 신경조직과 뒤범벅이 되어 그렇게 등이 아팠던 것.Q씨는 현재 문제에 대한 치료계획을 강구중에 있다. 진단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증세는 불가결의 요소이다.그러나 증세만으론 부족하다.질병을 조기에 발견하여 퇴치하려는 현대의학에선 더욱 그러하다.
  • [세대를 넘어 지역을 넘어] ⑦ 온.오프라인 괴리현상

    1.'인터넷 정치' 르포 ‘넷맹’ 이윤수(62·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씨는 최근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아이들 장난’이라고 치부했다.그러나 요즘 대학생 아들을 보면 부럽고 두렵다.사회문제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매일 골방에 처박혀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하는 줄로 알았던 아들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1등 공신인 열혈 네티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선거 전날밤 ‘정몽준의 배신’이 발표되자 수십개의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노무현 지지를 호소했다.인터넷에서 들불처럼 번진 여중생 추모 열기에도 적극 동참해 주말이면 양초를 들고 광화문에 나간다. 연말 모임도 대부분 인터넷 동호회원들과 갖는다.송년회라야 고향 친구나 예전의 직장 동료들과 만나는 것이 전부인 이씨는 인터넷을 무기로 매일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는 아들이 부럽다.‘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뒤늦게 인터넷을 배우느냐.’ 하던 고집도 ‘이러다가는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것 아니냐.’ 라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신주류 탄생’,‘인터넷 민주주의’,‘네티즌이 이루어낸 정치혁명’ 등 온갖 신조어를 만들어낸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인터넷 바다’는 아직도 ‘정치 파도’로 출렁거리고있다. 26일 밤 10시 ‘혁명’이란 ID의 네티즌이 “정치철새,보수정치인과의 타협은 없다.정치판을 싹 쓸어버리자.”는 글을 올리자 동조 글이 쏟아졌다.“보수를 수구로 내몰지 말라.”는 글이 올라오자 곧바로 반격이 시작됐다.30분도 안 돼 이 글은 ‘개혁’을 외치는 네티즌들에게 묻혀버렸다.선거기간 중 문을 닫아야 했던 ‘노사모’ 사이트에도 네티즌의 발길은 새벽까지 이어졌다.게시판에 노사모의 진로에 대한 토론과 문의가 잇따르자 ‘노사모 진로토론방’도 따로 개설됐다. 27일 새벽 3시30분 한 네티즌이 ‘노후보는 과연 개혁적인가.’라는 글을 올리자 곧바로 난상토론이 시작됐다.글쓴이에 대한 감정적인 힐난과 논리적 답변,일방적인 비난에 대한 사과 등이 꼬리를 물었다.같은 날 오전 11시 ‘창사랑’ 사이트에는 ‘재검표’ 논란에 불이 붙었다.재검표와 수개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측과 ‘명분도 실리도 없는 싸움’이라고 반발하는 측이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대형 포털사이트,언론사 홈페이지,인터넷 신문 등 대중적인 사이트에는 차기정권의 과제를 묻는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젊은 사이버 논객들은 저마다의 정치적 입장을 피력했다.그러나 사이버 민주주의가 한창인 인터넷에는 50대 아버지들이 저녁 밥상에서 들려주던 ‘고루한’ 정치적 견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2.기성세대의 푸념 경제지를 포함해 3개의 신문을 구독하는 김준규(66·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하고 살았지만 이번대선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신문들은 앞다투어 ‘네티즌의 힘이 세상을바꿨다.’고 외쳤지만 정작 자신은 그 힘을 느낄 수 없었다. 이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토론하고 연락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들이 어떻게 정치를 변화시킨 힘으로 등장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김씨는 “인터넷을 배워보려고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한 교육관을 찾을 수 없다.”며푸념했다.집에 있는 컴퓨터는 자식과 손자들의 전유물이다.김씨는 “배워 보자니 자신이 없고,아는 체하자니 손자들에게 무시당할 것 같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주부 박원자(58·경기 광명시)씨는 지난 6월부터 뒤늦게 컴퓨터에 입문했다.10살 난 외손녀가 뉴질랜드로 떠난 뒤 이메일로 연락하면 전화비가 들지 않는다는 주위의 권유로 인터넷 수업을 받은 박씨는 이메일 전송은 물론 웬만한 사이트도 스스로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박씨에게도 문제가 생겼다.10여개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입했지만 젊은이들의 대화에 자신이 낄 틈이 없었다.우여곡절 끝에 연령대에 맞는 ‘실버 커뮤니티’를 찾았지만 게시판에는 성인광고와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장사치들만 득실거렸다. 박씨는 요즘 외손녀에게 메일을 보낼 때 외에는 컴퓨터 앞에 앉지 않는다.박씨는 “어렵게 인터넷을 배웠지만 노인들에겐 장벽이 너무 높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3.통계로 본 격차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377만명으로 전체인구의 7.9%를 차지해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그러나이번 선거에서 20∼30대에게 ‘정치적 주류’의 자리를 내준 50대 이상 연령층 가운데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은 10명 가운데 1명도 안 된다. 지난 6월 정보통신부와 정보문화센터가 실시한 정보격차 실태 조사 결과 5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9.1%였다.55세 이상은 5.6%,65세 이상은 2.9%로나이가 들수록 수치는 떨어졌다. 반면 2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86%였다.이들 가운데 58.8%는 주당 10시간 이상을 인터넷에 매달리고 있다. 비록 50대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들에게 맞는 인터넷 콘텐츠는 전체의 1%도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그나마도 노인들의 쌈짓돈을 노리는 상업사이트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콘텐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인터넷 포털업체 ‘다음’에만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수백만개의 동호회가 개설돼 있고,하루에 수백개씩 늘고 있다. 다음 관계자는 “월드컵 응원과 대선,광화문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것처럼네티즌들은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올 수 있다.”면서 “인터넷 지배계급인 20∼30대의 배려,기성세대의 적극적인 도전이 없다면 온라인 소외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 유영규기자 window2@ ★전문가 의견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 김기철(48·강원도 인제군 한계리)씨의 집에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깔린 것은 신청한 지 일년만인 일주일 전이다. 김씨는 대선 기간 내내 전화선과 모뎀으로 노사모 활동을 하면서 분통이 터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속도가 느리고 인터넷 접속이 자주 끊겨 노사모 회원끼리의 채팅은 상상할수도 없었다.게시판에 글조차 제대로 쓸 수 없어 한두줄 답변을 다는 것이고작이라 답답했다.평소보다 접속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전화요금도 두배나많은 10만원 가까이 나와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300여명 가까운 동네 주민중 40대 이상의 인터넷 사용자는 김씨가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었다.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의견을 마련한 김씨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딴세상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김씨의 동네는 신문도 우편으로 이틀치씩 들쑥날쑥 배달되다 보니 신문(新聞)이 아니라 구문(舊聞)격이다.김씨는 “방송,신문이 벽돌찍듯 똑같은 뉴스만 내보내는 상황에 인터넷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 속에서 주관을 찾을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20,30대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사이버 문화에 소외된 이들에게는 괴리감을 안겨주고 있다.인터넷을 모르는 기성세대나 초고속 통신망 등 정보통신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역주민들에게 노사모 등이 이끈 ‘온라인 대선문화’는 그들만의이야기일 뿐이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강원 지역 노사모 사무국장 김호식(35·원주시 단계동)씨는 “노사모가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활동이 불가능하다 보니 1400여명의 강원지역 노사모 회원중에는 가입만 하고 활동을 못하는 회원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40,50대 노사모 회원들을 위해서는 긴급 모임 공지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달할 수밖에없었다.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한명의 시민이라도 보다 편리하게 선거에 참여토록 하기 위해 인터넷상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인 ‘메신저’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사용자가 늘고있는 메신저는 다수간에실시간 채팅이 가능해 이메일,게시판에 비해 훨씬 친근감을 형성했다.이런장점으로 ‘메신저 액티비스트’의 가입자는 한달만에 4000여명에 이르렀다. ‘시민행동’의 최인욱(33)씨는 “온·오프라인 세대를 묶기 위해서는 전방향의 영향력을 가진 TV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면서 “오락 프로그램만 내보낼 것이 아니라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늘려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또 앞으로는 휴대전화,메신저 등 새로운 선거운동 수단을 다양하게 개발해 정보에 소외되는 이들의 이질감을 줄여야 할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상일(43) 박사는 “온·오프라인의 괴리를 없애려면서로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온라인 세대인 자식들을 이해하기 힘든 부모는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민경배(36) 소장은 “보다 많은 오프라인세대가 온라인에 접속하게 되면 단절감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민 소장은 20대와 30대사이에도 엄연히 세대차이가 존재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온라인을 통한 소통으로 서로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선의 당락엔 TV토론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온라인세대는 일방적으로 TV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토론을 벌였다.”면서 “온라인에 접속하는 오프라인세대가 늘수록 인터넷 토론마당의 색깔도 다양해지고 참여가 증가하면 공유하는 부분도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창수 황장석기자 geo@
  • 새해 경제기상 ‘먹구름’

    내년에도 세계 경제의 회복세는 미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가시권에 들어온 미국의 이라크 공격 위협과 이에 따른 국제원유 가격 상승이 세계경제 회복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5일(현지시간) 저녁부터 재개된 시간외전자상거래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유가가 배럴당 34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전망했다. ◆세계경제 회복 새해에도 쉽지 않을듯 세계 경제는 내년초에도 이렇다 할 상승이 가시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모건 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연구원은 “세계 경제가 내년에는 지난 2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면서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회복세는 신통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메릴린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연구원은 “이라크전 위협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움직임,그리고 베네수엘라 총파업이 에너지 가격 상승을 예고한다.”면서 “미 경제가 내년에도 본격 회복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유럽 경제에 대한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유럽담당 로렌조 고도노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다른 지역의 경제가 먼저 바닥을 치고올라와야 유로권도 회복된다.”면서 유로권의 내년 성장률은 1.3%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반면 아시아 경제는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일 것으로 관측됐다. ◆국제유가 34달러 넘을듯 국제유가는 상존하는 이라크전 위협과 4주째에 접어든 베네수엘라 총파업으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5일 내년 2월물 WTI가 전날보다 54센트(1.7%) 하락한배럴당 31.43달러에 거래되며 하락세로 반전했지만 하락 추세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이날 유가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PDVSA)의 알리 로드리게스 사장이 다음달 15일 이전에 석유수출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미국의 지난주 석유재고량이 예상과는 달리 270만배럴(1%) 늘어난 데 힘입어 하락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의 노조위원장 호라시오 메디나는 노동자들이다음달중 모두 복귀한다고 해도 석유 수출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적어도 4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로드리게스 사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금값도 덩달아 상승중 이라크 전쟁 위협과 미국 달러화 약세,증시 침체 등 세계경제의 불안 속에금이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받으면서 금값이 치솟고 있다.24일 뉴욕상품거래서에서 2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347.30달러로 97년 5월 이후 5년 7개월만에최고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국제 금값은 이라크전 개전 이전에도 온스당 50달러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김균미기자 외신종합 kmkim@
  • 현대문학상 수상작 조경란 소설 ‘좁은문’

    ‘남자는 안개를 본다.여자는 구름이라고 한다.남자는 구름을 본다.여자는 그걸 안개라고 말할 것이다.여자와 남자는 각각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름으로 그것을 부를 것이다.’ 지독한 안개와 자폐적인 안개 탐닉,그리고 언제나 어긋나는 소통의 고독이눅진하게 엉겨붙은 소설가 조경란의 ‘좁은 문’(현대문학).올해 현대 문학상 수상작품집의 표제작인 이 단편은 실상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좁은 문’의 개념에서 상당히 비켜난 곳에 있다.그것은 좁은 문이라기보다는누구도 들어설 수 없는 단절된 폐쇄의 문,운명의 문이라는 게 옳을는지도 모른다. 감각적이어서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커다란 물방울 하나가 남자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고 도입부를 이끈 작가는 작품 전체에다 안개,다소간 몽환적이되 결코 낭만적 소재로 차용되기를 거부하는 독특한 질감의 소재를 깔아놓는다. 집주인에게서 3개월 후에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젊은 전당포 주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와는 다른 시각에서또다른 고독을 안개처럼 피워올린다.그는 전당포에만 갇혀 단절의 세상을 사는사람이다.‘남자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뜨거운 햇살이 남자의 얼굴로 쏟아져내렸다.남자는 기겁하듯 얼른 창문 아래로 몸을 숨겼다가 다시 기웃기웃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았다.’는 식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언제나 의도와 달리 불가해의 각도로 어긋나는 생활의 실제성”을 말하고 싶어한다.작가의 말처럼 모든 인간이 가진 불안감,이를테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틀렸다는 생각과 그 길이 어쩌면 길이 아닐지모른다는 불안”에 프로이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주인공 ‘그’와 소통 부재의 교감을 나누는,그것도 끝까지 단 한마디의 직설적인 교감이 이뤄지지 않는 ‘막막한 사랑’을 나누는 여자는 딱히 고상하달 것도 없는 카페에서 매일 밤 두시간씩 그네타기 이벤트를 연출하는 그렇고 그런 직업여성. 처음 전당포에 금붙이를 가져갔다 퇴짜를 맞은 그 여자가 ‘생업’의 그네를 탈 때면 남자는 ‘한 순간 아주 가까워졌다가 아주 멀어지곤 하는’진자의 반복같은 감정의 교란을 느껴야 했다.‘여자를 볼 때마다 몸피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누군가 여자 몸에 긴 막대를 꽂고 위에서부터 한 입씩 핥아대는 것처럼…’.그네를 타는,그러면서도 전당포에 돈나가는 뭔가를 맡겨 구멍난 생활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 여자에게서 남자는 이런 실낱같은 연민을 느끼며 산다.어쩌면 그것은 생명의 구원을 향한 절박한 몸짓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의 생활은 자폐적이다.‘안개 낀 날은 외출을 삼가야 된다.’고 믿는그는 안개가 피어 열정 혹은 열망처럼 세상을 옥죌 때면 ‘비좁은 전당포 내실에 전기장판을 깔고 앉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개수대는 막히고 손님은오지 않고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오는 사람 또한 없는’그의 일상에 어느날 아주 느리게 굵고,낮고,힘있는 변화가 찾아온다.그네 타는 여자를 향한 구체적인 연민이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은 한사코 코를 꿰지 못하는 뜨개바늘처럼 겉돌다가 이내 지쳐버린다.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원초적인 고독의 원형질 같은 것.작가는 바로 이 정답이 없는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문학평론가 김화영은 “소설은 매우 다양한 질료와 느낌과 감각과 인물,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욕망의 흐름을 상감기법으로 정교하게 짜맞춘 기이한 ‘오리무중’의 보석”이라고 평한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조경란의 작품세계를 두가지 패턴으로 읽어낸다.하나는 ‘코끼리를 찾아서’(2001)에서 보이는 자전적 글쓰기이고,다른 하나는이 소설처럼 자전적 경계를 넘어서는 또다른 탐색의 소산이다. “한번도 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으나 단 한번쯤 내심 기다렸던 순간”이라며 인간적인 수상 소감을 밝히는 그가 “치열한 작가“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그런 노력의 결실일까.김윤식은 “그가 확실한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는,늦었지만 아니 언제라도 절대 늦지 않을 법한 찬사를 더해 주었다. 심재억기자 jeshim@
  • 화이트 X-마스

    올 성탄절은 춥지만,눈이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22일 “성탄절 하루 전인 24일 전국에 비구름대가 걸쳐 있고 기온이 낮아 눈을 기대할 만하다.”면서 “그러나 영남과 제주지역은 눈보다는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24일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 영하 1도,춘천 영하 4도,대전 1도,광주·대구 2도,부산 5도 등으로 예상된다.25일에는 차가운 대륙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6도,낮 최고기온이 영하 3도를 기록하는 등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예상된다. 기상청은 “성탄절에는 충청과 호남,제주 등에서 구름이 많이 끼고 눈이 내리겠지만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영남지역은 구름이 다소 끼거나 흐린 뒤갤 것”이라고 예보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권 쓰고 일곱 달 머문 사람은 글을한편 쓰지만,인도에 7년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인도란 그렇게,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역설의 나라’다.때문에 인도의 이미지는 흔히 보는 이의 ‘전지전능한’시선에 의해 박제되고 복제되고 또 무의식적으로 수용된다.‘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옥순지음,푸른역사 펴냄)은 바로 이러한 무분별한 ‘인도신화 만들기’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인도 근대사 전공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먼저 류시화·강석경·송기원 등 내로라하는 ‘인도전문’작가들의 산문집과 소설을 텍스트로 택해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베스트셀러 작가 류시화는 최근 출간된 산문집 ‘지구별 여행자’에서 인도에 관한 가장 ‘흔한’접근법을 보여줬다.신비와 명상,깨달음의 나라로서의인도.“…생은 어디에나 있었다.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이 보기 좋았다.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 열매처럼 익어갔다.…” 또 그 뜬구름 잡는깨달음 이야기인가.인도는 왜언제나 삶의 교훈과 각성을 안겨주는 곳이어야 하는가.‘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류시화의 시선은 인도를 지배한 식민주의자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그의 순수한 ‘인도 보기’ 역시 인도를 대상으로 여기고 ‘나와 다른’ 인도를 강조하며,10억 인구를 가진 광대한 인도의 다양한 층과 켜와 색채를 무시한 채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를테면 정신주의적인 측면만 골라 본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류시화는 19세기에 득세한 수많은 ‘키플링 아류’와 같은 배를 탄 셈이다.저자에 따르면 류시화는 후진적인 인도와 일정한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두며 인도를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강석경이나 송기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많은 소설가들에게 인도는 그저 추상으로 존재한다.‘실존하지 않는 그 무엇’이니까 그만큼 ‘무책임하게’ 그린다.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구원을 얻으려고 갑자기 인도로 떠난다.송기원 소설의 한 주인공은 이혼하고 잡지사를 그만둔 뒤 술을 마시고 여관에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인도로가자!”고 외친다.그런가 하면 강석경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에서의 “허위적인 결혼생활을 탈피”하려고 인도로 간다.은희경의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강선배도 갑자기 직장을 내버리고 캘커타로 떠난다.주인공들은 무력한 순간에 홀연히 인도로 향한다.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인도가 거기에 있으니까 하는 식이다.그야말로 모호하고 무력한 글쓰기의 전형이다. 강석경과 송기원의 소설에 나오는 인도는 더러움과 가난만 가득할 뿐,즐거운 일이나 사람다운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강석경은 ‘문명 이전의본능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송기원은 ‘굶주린 아귀’로 인도 사람을그렸다.“인도인은 동물적인 기능만 한다.…개나 코끼리,원숭이보다 낫지 않다.”고 한 200년전 헤이스팅스 인도 총독의 말과 어쩌면 그리 닮은 꼴인가.저자는 이러한 묘사는 20세기 초 “난 그들을 언제나 일종의 동물 같다고 여기지요.우스꽝스러운 염소나 예쁜 사슴 같다구요.절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라고 한 헤르만 헤세의 ‘냉철한’시선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한때 인도를 돌아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그는 인도를 가난하고 지저분한,구제불가능의 나라로 그릴 참이었다.그러나 글을 쓰기 전에 다시 돌아본 인도는 전혀 다른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트웨인이붓을 꺾은 것은 불문가지다.‘인도’를 들먹이기 좋아하는 작가라면 한번쯤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구잡이식’인도묘사는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 작가들이 생산하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을 담고 있다.저자는 이를 입증하고자 19세기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상대로 만들어낸 ‘박제 오리엔탈리즘’의 뿌리를 파고든다.영국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도의 이미지를 역사가 없고 야만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한 것으로 왜곡했다.그 고착된 이미지 탓에 인도는 숱한 세월 박제 상태였다.그리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미지를내면화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이러한 시선이 200년의시차를 건너뛰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소비된다는 사실이다.‘지독하게 가난하고 더럽고 혼란스러운 인도,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행복을 잃지 않는다.’이런 종류의 이미지야말로 영국 식민주의가 낳은 ‘오염된’ 지식인데,우리는 무심코 이를 복제하고 확대 재생산한다.저자는 문학이나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이같은 이미지를 ‘이중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서양이 구성한 동양이 아닌 ‘동양이 구성한 동양’이라는 중층적인 구조를 띠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안의 또 다른 파시즘이다.”라는 말로 끝을맺는다.시민사회를 규율하는 이념적 도구인 파시즘은 반공이나 전체주의 같은 데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남을 나와 다르게 보고 그것을 그대로 틀 안에 가둬버리는 것,그러한 시선이야말로 파시즘의 출발점이다.이 책에는 우리의 의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잡은 닫힌 의식체계 즉,일상적 파시즘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98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투표하기 좋은 날

    올 성탄절에 서울에서는 눈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새 대통령을 뽑는 19일은 전국이 흐린 가운데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도를 기록하는 등 중부 지역은 영하권을 맴돌아 쌀쌀할 것으로 보인다.오후에는 전국의 기온이 영상권으로 올라 투표하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18일 “충청·전라 서해안·제주 지역은 24일 지형적 영향으로 눈이 온 뒤 개겠고,25일에는 전국이 대체로 맑거나 구름이 많겠다.”고 예보했다.평년보다 높던 기온이 23일쯤부터 다시 영하로 떨어져 24일과 성탄절은추운 날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최저기온은 춘천 영하 9도,서울·청주·대전 영하 6도,전주 영하 5도등으로 예상된다 윤창수기자
  • [공직자에세이]‘신혼관광의 메카’ 제주

    전북 남원고을에 성춘향의 순애보가 있다면,제주고을에는 홍윤애의 순애보가 있다. 그녀의 순애보는 정조 1년 때인 1777년,정조대왕 모반사건에 연루돼 제주로 유배온 조정철의 고매한 성품을 남몰래 흠모한 홍윤애가 그의 생활을 보살피기 위해 적소를 드나들면서 비롯된다.그러나 소론파였던 김시구가 1781년제주목사로 부임해 노론의 조정철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면서 둘 사이에는 ‘별리’의 먹구름이 끼게 된다. 김시구 목사는 조정철의 연인인 홍윤애를 관가로 불러들여 거꾸로 매달아 곤장을 치며 “조정철이 유배온 죄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조정 대신들을 비방한 사실을 알 것이니 실토하라.”고 문초했으나,홍윤애는 “공(公)의 생(生)이 나의 죽음에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다. 유배에서 풀려 훗날 제주목사로 내려온 조정철은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 시를 지어 바친다.‘옥을 묻고 향기를 묻은 지 문득 몇 해인가/그대의 원한,저승길 무엇을 의지하여 돌아 갔을꼬/푸른 빛 띤 진한 피 깊이 간직하고 그대죽었으나 이 또한 인연이다/굳은절개는 두형향초처럼 그 이름이 영원히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라고. 제주에는 또 하나 사랑 이야기가 회자된다. 130여년 전,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마을에는 일찍이 부모를 여읜 강사철 총각과 고씨 처녀가 살고 있었다.남달리 착한 두 사람은 동네사람들의 주선으로결혼하게 된다.그러나 얼마 안돼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고씨 부인은 식음을 전폐한 채 해안가를 석달 동안 방황하며시체라도 찾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허사였다.체념한 아내는 남편의 뒤를 따르겠노라며 끝내 포구 근처 절벽 위 나무에 목을 매고 만다. 신비하게도 그날 밤 남편의 시신이 나무 아래 절벽 밑으로 홀연히 떠올라이를 본 사람들은 마치 중국 조아(曹娥)의 고사와 같다며 당산봉 기슭에 두시신을 나란히 안장했고,판관 신재우는 고씨가 숨진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 새겨 아름다운 사랑을 널리 전하게 했다.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매해 음력 3월 보름,절부암 앞에서 열녀제를 지내며고씨의 절개와 두 사람의 사랑을 기리고 있다. 며칠 전 언론에 내년도 우리나라의 해외여행수지 적자가 올해보다 28.5% 늘어난 45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3위라는 내용이보도된 바 있다.신혼 부부들이 제주 대신 해외로 나가고,그렇다고 이혼율이내려갈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사실 해외여행도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닌다.그러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신혼여행지로는 세계 어느 관광지보다 안전하고,풍광이 수려하며 죽음마저 초월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땅 제주도를 선택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제주에 여행온 신혼부부들이 광활한 초원을 배경으로 산심봉 자락에 오롯이 자리한 홍윤애의 묘 앞이나 용수포구 절부암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도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사랑의 맹세가 저절로 우러나오게 될것이고,그래서 살다 헤어지는 일은 결코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품행제로’ 주역 류 승 범“이번엔 폼생폼사 고교 캡짱”

    영화배우 류승범(22)을 인사동의 조용한 한식집에서 만났다.인사동 ‘밥집’에 들어선 신세대 아이콘.감기몸살로 잠을 설쳤다며 밥상머리에 앉는 그에겐 배우같은 구석이 없다.삐죽빼죽 삐져나온 머리카락 하며,손에 잡히는 대로 걸친 듯 헐렁한 옷매무새 하며.요즘 관객들을 홀릴 ‘쿨’한 이미지는 눈을 씻고 봐도 없어 뵌다.그런데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올까.“그래도 광(狂)팬들한테서는 잘 생겼단 소리도 꽤나 듣는다고요.” 원없이 두들겨 맞은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데뷔작.깎은 밤처럼잘 생긴 배우들이 득실대는(?)영화판에서,데뷔 2년만에 가뿐히 주인공을 꿰찼다.27일 개봉하는 청춘 코미디 ‘품행 제로’(제작 KM컬쳐)에서 그는 주먹 하나 믿고 온갖 폼을 다 잡는 고교생 ‘캡짱’이 됐다. “이번엔 ‘짱’이에요.뻥뻥 큰소리 치면서도 어찌 보면 외로운.공부 잘하고 예쁘지만 외톨이인 모범생 여자친구랑 자꾸만 좋아지는 역이고요.나중엔 키스신도 있다니까요.” 그는 스스로를 “억세게 운좋은 놈”이라고 말한다.자신도 모르던 연기력을발견한 것부터 행운이었으니까.얼떨결에 형(‘죽거나 혹은 나쁘거나’‘피도 눈물도 없이’의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나온 뒤로 출연제의가 줄이었다.‘와이키키 브라더스’‘다찌마와 리’‘피도 눈물도 없이’‘묻지마 패밀리’….그리고 올 초 가난했던 1970년대를 그린 SBS 주말연속극 ‘화려한 시절’에서 속깊은 덜렁이 철진 역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얼굴을 알렸다. “제 매력 포인트가 어디냐고요? 유∼명한 점술가가 그러대요.바람과 구름같이 사는 풍운아 팔자를 타고났는데 사람들이 그걸 훔쳐보는 거라고.”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렵게 형을 의지하고 살아서일까.철이 일찍 들었다.따박따박 조리있게 “철저한 현실주의자”라고 자신을 밝힌다.하지만 겸손을잃는 법은 없다.“누가 저더러 스타라고 하면 닭살이 돋아요.무슨 스타예요,제가? 이제 시작인데.” 무슨 역이든 가리지 않고 실험하듯 덤비는 것도 그래서다.새 영화에선 공부를 못해 2년이나 ‘꿇고’동생같은 급우들을 ‘삥’뜯는 한심한 ‘고삐리’.80년대를 무대로 키치풍으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그의 코믹 연기는 배꼽을 빼놓는다.무슨 일이든 한번 달려들면 뿌리를 뽑는 강단이 그를 질주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엄벙덤벙한 말투나 행동거지와는 달리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해내는 꼼꼼한 성격.“아무리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와도 찍던 영화를 완전히 끝내고서야 훑어본다.”는 그다. 촬영현장에서 ‘리액션 배우’니 ‘애드리브 배우’라 불리는 것도 그런 집요함 덕분이다.대본을 기계처럼 달달 외우는 건 체질에 안 맞다.대본은 쓱한번 보고나면 끝.“연기에 몰입하면 상대방의 대사에 반사적으로 말문이 터진다.”며 스스로도 신기해 한다. 오는 31일 종영하는 KBS2 월화드라마 ‘고독’에서 그는 연상의 직장상사를 사랑하는 젊은 유학파 엘리트다.출연작 목록에서 유일하게 ‘흥행 참패’한 작품.“개인적으론 그 드라마도 행운이에요.이미숙 선배에게서 많은 걸 배웠으니까.” ‘대책 있는’낙관론자다.심각한 역에 웃기기 짝이 없는 CF에.온탕·냉탕 너무 기준없이 들락거리는 것 아니냐고 슬쩍 꼬집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많이 벌어야 할 것 아녜요? 장가도 가고,애도 낳고,집도 사야 하고.하고 싶은 것 하는 게 남는 장사잖아요.” 한바탕 시원한 웃음이 터진다.‘품행 제로’가 탈없이 개봉하면 올 겨울엔 줄창 스노보드만 탈 거란다.내년 초엔 도심무협극 ‘마루치 아라치’에서 붕붕 날아다니는 경찰이 된다. 황수정기자 sjh@
  • 英, 새달초 航母 걸프만 파견

    영국은 이라크와의 전쟁에 대비해 걸프지역 병력을 증강하는 첫 단계로 항공모함 1대와 특수부대 600명을 포함한 기동부대를 다음달 초 걸프지역으로파견할 것이라고 선데이 텔레그래프가 15일 보도했다. 또한 2주내에 1개 경장갑사단을 포함한 지상군 2만명에 대한 파병 발표도 있을 것이라고 신문은덧붙였다. 신문은 군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16대의 해리어기와 6대의 헬리콥터가 탑재돼 있는 항공모함 아크 로열호는 해병 600명을 태우고 구축함과 프리깃함,잠수함 등 모두 6척의 해군 함정을 이끌고 걸프만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영국 남부의 포츠머스항에 준비중인 이 함정들은 총 2600명의 병력을태우고 즉각 항해에 나설 것이며,2주 내에 걸프지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영국군은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구축함 2척,프리깃함 2척,기뢰제거함5척,지원함 10척을 포함해 모두 19척의 함정을 파견했었다. 한편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5일 미국이 이라크전에 최근 개발된 최첨단무기를 투입,군사작전이 1주일 안에 완료될 것으로 군사전문가들은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첨단무기들은 짙은 구름을 뚫고도 탱크와 버스를 구분해 위성영상을 수신하는 병기류에서부터 민간인을 해치지 않고 전기와 컴퓨터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는 극초단파 폭탄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프랑스,독일,덴마크 등지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대규모 반미·반전 시위가 잇따랐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날 오후 4800명의 시위대가 ‘이라크를 건드리지 말라.’,‘피 한방울도 석유 때문에 흘릴 수 없다.’,‘부시식 도살(BUSHerie)중지’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며 공화국광장에서 국민광장까지가두시위를 벌였다.시위에는 장 피에르 슈벤망 전 내무장관을 비롯해 인권동맹,공산당,녹색당,노동단체 회원들도 참가했다.유럽연합(EU) 확대 정상회담이 끝난 지 하루 뒤인 1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5000명이 시위를 벌였다.이들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부시는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행진했다.이날 시위에서 독일,프랑스,노르웨이,스웨덴 등지에서 몰려든 외국인 시위대 15명이 폭력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독일의 슈팡달렘과 람슈타인,라인-마인지역의 미군기지 주변에서도 약 400명의 주민이 정부 당국에 이라크전이 발발시 미국에 영공을 제공하지 말 것과 기지내 미사일 제거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박상숙기자·외신종합 alex@
  • 내년 주요업종 전망 - 반도체 뺀 모든업종 주춤

    내년에는 반도체를 뺀 대다수 업종의 성장세가 한풀 꺾일 전망이다. 가계대출 제한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과 설비투자 부진,현장인력 부족 등으로 인한생산성 악화 등 갖가지 악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는 반도체·자동차·전자·일반기계·철강·조선 등 주력 수출업종이 내년에도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올해 부진을 면치 못했던 석유화학·정유·섬유업종도 소폭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주요 업종의 2002년 실적과 2003년 전망’ 조사에 따르면 내년 업종별 성장률은 전자 11.5%,일반기계 6.8%,조선 4.3%,자동차 3.2%,철강 0.3% 등으로 올해 증가율에는 못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반도체는 올해 8% 성장률을 기록한데 이어 내년에는 무려 20.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반면 올해 최악의 한해를 보낸 섬유·정유·석유화학 등도 소폭이나마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건설·철강·자동차 내수시장 고전 예상 가계대출 제한 등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건설·철강·자동차 등은 내수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내수시장에서 13.5%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건설업종은 주택안정화대책 등 규제강화와 가계대출 제한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올해건설경기 호조로 내수시장에서 14%의 성장률을 보였던 철강업종도 내년에는상당한 침체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별소비세 감면 등으로 올해 사상 최대 판매고를 올린 자동차업종도 내년에는 소비심리 위축과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판매부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빼고는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 내년 수출시장은 세계 각국의 산업보호정책과 중국의 급속 성장 등으로 인해 대다수 기업이 어느 때보다 힘겨운 한해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6.4%의 수출 신장률을 기록한 반도체는 내년에도 성장세를 지속해 올해보다 20.5% 증가할 전망이다.타이완 등 동남아 경쟁국의 D램 생산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통신용 반도체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데다 개인용컴퓨터(PC) 교체주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내수·수출 모두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전자·자동차업종의 내년 수출은 미국 등 주요 수출국의 경기불안과세계적 수요감소 등으로 인해 올해보다 각각 6.1%,6.6%포인트 떨어진 13.1%,8%의 증가율을 기록하는데 그칠 전망이다. 다만 올해 최악의 한해를 보낸 섬유·철강·정유업종 등은 다소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광삼기자 hi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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