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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수선화와 금잔옥대/이지누 시인·사진작가

    며칠 전 제주도에 다녀왔다.돌담아래 그윽이 피어났을 수선화를 보고싶은 욕심 때문이다.마침 가던 날이 삼동이 물러가고 봄이 찾아온다는 입춘이었지만 꽃샘바람이던가,그곳에 머무는 내내 콧잔등에 모진 바람을 달고 다녔다.꽃이 피면 바람불어 그르치고 달이 뜨면 구름이 앞을 가린다더니 때맞추어 눈까지 흩날린 탓에 포근한 봄에의 기대는 간데없이 사라졌다.하지만 길을 걷다가 문득 만나는 수선화 몇 송이는 제 아무리 바람이 모질어도 봄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는 듯했다. 곁에 두고 읽는 시 중에 이규보의 ‘꽃샘바람(妬花)’이 있다.앞부분은 조물주가 비단을 가위질해 만든 듯한 꽃에게 모진 바람을 일으켜 다시 지게 하는 데 대해 원망하는 투이다.하지만 이내 “바람의 직책은 만물을 고무하는 것(鼓舞風所職)/만물에 입히는 공덕 더하고 덜함이 없는 걸세(被物無私阿)/만일 꽃을 아껴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惜花若停?)/그 꽃 영원히 생장할 수 있을까(其奈生長何)/꽃 피는 것도 좋지만(花開雖可賞)/꽃 지는 것 또한 슬퍼할 일 아니네(花落亦何嗟)/피고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일 뿐인데(開落摠自然)”라며 자연의 이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선가(禪家)에서도 차갑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화두 하나가 전해져 온다.중국의 재가 선사로 이름을 드높인 방온거사가 눈송이를 보며 무심히 말한다.“참으로 아름다운 눈송이로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또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그 속에는 눈은 아무런 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무위(無爲)의 모습으로 떨어진다는 뜻을 되새기고 있다.이를 두고 ‘호설편편불락별처(呼雪片片不落別處)’라 하는데 이는 눈송이가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고르게 떨어져 쌓이는 것을 말한다.눈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는 무작정 흩날리며 떨어지는 듯하지만 들판에는 땅이 생긴 모양대로 분별하지 않고 그저 고요하게 쌓이기 마련 아니던가.그러니 그들은 무질서 속의 질서이고 자연이란 바로 그렇게 어긋나지 않으며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방온거사 또한 자연의 이치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셈이고 그것은 지금껏 납자들이 선방에 들며 참구하는 화두로 남았다.꽃이 진다고 어찌 그를 말릴 수 있을까.꽃이 피지 않는다고 또 그를 활짝 피게 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바람이 불어 꽃을 피게 하고,지게 하는 것을 그냥 두어야 하듯 제 철에 제 자리를 찾는 것은 더 없이 중요한 것이다. 거뭇한 돌담 아래 피어난 연노랑 금잔옥대가 늦은 눈에 한풀 꺾여 고개를 숙였을지라도 그것에는 언제나 겨울의 찬바람이나 눈을 견뎌내야 하는 안타까운 아름다움이 있지 않겠는가.상처 입은 꽃이라고 해서 그것이 어찌 꽃이 아닐 수 있을까.혹 그를 꽃으로 어여삐 여기지 못하면 그것은 내 마음에 모진 상처가 있는 것이리라.겨우살이에 지친 뭇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다 어느덧 시들어가는 수선화를 어루만지고 돌아오는 길.공항에는 터질 듯이 탐스러운 금잔옥대가 큼지막한 화분에 담겨 봄을 뽐내고,부산에서 들른 어느 호텔의 식탁에도 화병에 꽂힌 수선화가 눈을 즐겁게 해 주었지만 그들과 돌담 아래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상처입은 그것과는 서로 아름다움을 견주지 않았다.제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 탓이다.사람 사는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제자리를 지키며 산다는 것,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눈여겨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속의 찌든 욕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이지누 시인작가˝
  • [토요일 아침에] 대지의 품으로 돌아오라/여연스님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매운 바람과 눈보라가 깊은 산골짜기에 머물며 서걱거리는 영혼을 뒤흔들고 지나간다.세상에서는 본분을 잊은 자들의 이전투구가 판을 치며 중생들의 마음을 할퀴고 있다.천리를 간다는 차진 느낌의 연분홍빛 매화 한 송이도 향기를 잃고 이리저리 천지를 헤매고 있다.자기 영혼을 잃은 자들이 세상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일지암 초당에 머물던 초의 선사가 어느날 지인으로부터 차나무 한 그루를 얻었다.선사는 자연이 준 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상에 뿌리 내린 한 그루의 차나무를 보며 날마다 즐거웠다.그리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했다. “소슬한 계절 낙엽들은 분분히 떨어져도/옷깃에 어린 차가운 이슬 원망하진 않네/달이 뜨면 달무리는 수면에 비추어지고/바람 불면 외로운 학 뜨락에서 춤추지/술잔을 기울이며 다정히 이야기 나누고자/만날 약속 정하고도 꿈속에서 다시 찾네/흰 구름과 맑은 이슬을 함께 지니고서/초당 안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도다.” 찻잎이 하나둘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도 차나무는 자연을 원망하지 않는다.봄이 되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차의 고운 이파리가 하늘하늘 춤추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초의 선사는 그런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고 이미 선사의 마음은 봄에 가 있기 때문에 기쁜 것이었다.작고 소담한 것들 속에 우주는 존재한다.그 우주는 모든 우주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우주적 삶들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늘 번뇌한다.우리의 삶은 그 번뇌 속에서 희로애락의 가파른 순환 주기에 매몰돼 산다.그래서 나를 너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부처님께서는 108가지 생각에 대해 말씀하셨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을 때 생각들이 일어난다.자아 외부에 있는 것들과 관련된 갈망이 늘 따라 다니는 18가지 생각들이다.이것을 갈망이 따라붙은 36가지의 생각들이라 말한다.이와 같은 과거의 36가지 생각들,미래의 36가지 생각들,현재의 36가지 생각들의 갈망에 따라 늘 따라 다니는 108가지 생각들이다.” 중생들은 바로 이런 갈망 때문에 유혹에 빠지고,떠돌아 다니고,멀리 내던져지고,무엇에 집착하게 된다.108가지의 생각들 때문에 세상은 숨막히게 되고,덮여버리고,실타래처럼 얽히고 어둠에 휩싸이고 밧줄처럼 꼬이는 것이다.자고 나면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함께 평생을 살던 사람들이 ‘홧김’에 상대를 죽이고,날이 바뀌면 새로운 ‘비리’가 펼쳐진다. 옛날의 나로 우리로 돌아가고 싶어진다.싸하고 시원한 동치미와 고구마를 나눠먹던 그 시절 우리는 따스한 영혼을 나누고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한 잔의 차를 따르자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바람결에 문풍지가 흔들린다.문을 여니 영혼을 씻어 내리는 듯한 매화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어디서 날아 왔는지 멧새 한 마리가 쫑알거린다.일지암 작은 차 밭엔 아직도 흰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멀리서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손과 마음은 벌써 초당의 무쇠 솥에 가 있다.아침 예불을 끝내고 해가 뜨기 전 소쿠리를 들고 봄비를 가득 머금은 노랑연둣빛의 작고 작은 생명을 지닌 찻잎을 따고,초당의 뜨끈한 구들에 널어 말리면 그 속에서는 천상의 향기가 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자연의 맛을 음미하며 천상의 향기를 느끼며 그 감미로운 미소 띤 얼굴들을 나누는 일은 참으로 지고지순한 복을 나누는 일이다.대지를 잃어버린 자들이여,자연의 섭리를 잃어버린 자들이여,이젠 세상의 갈망을 버리고 대지의 품으로 돌아오라. 여연스님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
  • [하프타임]기아 김진우, 올시즌 포기

    프로야구 기아의 에이스 김진우(21)가 결국 오는 11일 수술차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기로 해 올시즌 출전이 불가능할 전망이다.기아는 지난달 오른쪽 무릎 연골부위 피가 통하지 않는 ‘박리성 골연골염’ 판정을 받고 수술 여부에 고심해온 김진우가 최근 독일에서의 필름 판독 결과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소견을 보내와 수술을 결행하게 됐다고 5일 밝혔다.이에 따라 김진우는 오는 18일쯤 수술대에 오른 뒤 8개월 정도의 재활 기간이 소요돼 기아의 우승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 정월 대보름달 볼수 있다

    정월 대보름인 5일 충청과 호남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는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기상청은 4일 “5일 아침까지 서울·경기지역에 1∼3cm가량의 눈이 오겠다.”면서 “특히 밤에 내린 눈으로 도로가 결빙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출근길 교통안전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서울·경기지역은 흐린 뒤 오후부터 개겠지만 충청·호남 지역은 구름이 많고 눈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천문연구원 안영숙 연구관은 “정월 대보름달은 서울 기준으로 5일 오후 4시 42분에 떠서,6일 오전 7시 5분에 지겠다.”고 밝혔다.안 연구관은 “5일 오후 뜨는 달은 꽉찬 달의 92% 정도 크기로 100%가 되는 ‘진짜 보름달’은 6일 오후 5시 47분에 뜨는 달”이라면서 “이같은 현상은 보름달부터 다음 보름달까지 기간(29일 12시간44분)과 달이 지구에 접근하는 주기(27일 13시간18분)가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일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 영하 7도를 비롯,전국이 영하 13도∼영하 2도,낮 최고기온은 영하 4도∼4도의 분포로 쌀쌀하겠다고 기상청은 내다봤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중국서도 조류독감 발생

    27일 라오스에서도 조류독감 발병이 확인된 데 이어 중국 당국도 남부 광시(廣西)성 자치지구 오리농장에서의 오리 집단 폐사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확인,조류독감 발병국이 10개국으로 늘어났다. 특히 아시아 최대의 닭·오리 생산국 중국에서마저 조류독감 발병이 확인됨에 따라 조류독감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피해가 걷잡을 수없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당국은 오리가 집단 폐사한 광시성 룽안 딩당 마을의 오리 농장에서 수집한 샘플을 테스트한 결과 베트남에서 발생한 조류독감과 같은 H5N1 바이러스에 의한 조류독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중국 당국은 또 중국 중부의 다른 두 성(省)에서도 조류독감으로 보이는 가금류 폐사 ‘의심’ 사례가 보고됐다고 밝혔다.그러나 지금까지 사람이 조류독감에 감염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국에서 두번째 사망자가 나오고 베트남에서 8번째 조류독감 환자가 확인됨에 따라 조류독감이 인간 대 인간 감염 사례로까지 발전할지에 대한 우려는 계속 커지고 있다.세계보건기구(WHO)는 27일 조류독감의 변종바이러스 H5N1이 인간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결합되면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지난해 전세계에서 8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사스보다 훨씬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WHO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세계동물보건기구(WOAH) 등 국제기구들도 이날 일제히 조류독감이 인간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국제적 문제라며 조류독감 퇴치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조류독감 발병 국가들에 대한 닭고기 금수조치와 여행 주의보가 내려지면서 해당 국가의 경제에 심각한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나라는 이날 두 번째 사망자가 공식확인된 태국.연간 닭 수출액이 약 1조 6000억원에 이르는 태국은 최대 고객 일본과 유럽연합(EU),한국 등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면서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태국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조류독감으로 인해 양계업 외에도 관련 산업도 피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월스트리트저널은 26일 메릴린치를 인용,태국산 닭에 대한 금수 조치로 인해 향후 4∼5개월간 국내총생산(GDP)이 0.7∼0.8% 감소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조류독감 은폐 의혹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조류독감 확산을 막기 위해 이미 처분한 470만여마리의 닭 외엔 보상비용이 없어 더이상 살(殺)처분할 계획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어 추가 확산마저 우려되고 있다.또 폐사시킬 380만마리의 닭고기를 소비용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혀 비난을 사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양계업 규모는 7조원에 달하며 양계업체들의 대규모 도산사태가 우려되고 있어 250만여명에 이르는 양계업 종사자들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세계 각국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 대 인간 감염 사례까지 발견된다면 양계·관광업계 등 아시아 경제 전반의 침체로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황장석기자 surono@
  • “실력도 짱 돼야죠”‘농구 얼짱’ 신혜인 프로데뷔

    “실력도 ‘짱’이라는 소리를 꼭 듣겠습니다.” 최고의 ‘스포츠계 얼짱’ 신혜인(사진·183㎝)이 드디어 프로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신세계와 연봉 3000만원에 5년간 계약한 여고졸업반 신혜인은 27일 막을 올리는 겨울리그에서 식스맨으로 기용될 예정이다. ‘얼짱’으로 뜬 지난해부터 신혜인은 농구선수라기보다는 연예인에 가까웠다.각종 매체는 그의 ‘얼굴’을 앞다퉈 다뤘고,패션쇼에 참가해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기도 했다.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신인이 10여년을 성인무대에서 땀흘린 선수보다 훨씬 유명해졌지만 정작 그의 농구 실력에 관심갖는 이는 드물었다. 지난해 연맹회장기 대회에서 숙명여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적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신혜인의 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지난해 말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정미란(금호생명) 정선화(국민은행) 최윤아(현대)에 밀려 4순위로 지명됐다.신혜인을 잡으면 유명세를 탈 게 뻔한 상황에서도 각 구단은 즉시 전력감인 ‘대어 트리오’를 먼저 취했다.센스는 있지만 골밑돌파가 약하고 슛 타이밍이 늦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신세계 김윤호 감독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인기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다른 선수에 견줘 훨씬 강도 높은 연습을 주문했다. 신혜인도 이젠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더구나 정선민 이언주 선수진 등 주전들이 일거에 빠져나가 팀 전력이 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어서 그에게 거는 기대도 높다.신혜인은 “단 1분을 뛰더라도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할 것”이라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데스크 시각] 復行과 공공개혁

    지난 15일 오전 8시10분경 울산공항 상공.CF감독에서 영화제작자로 변신해 흥행에 성공한 김모씨는 서울발 울산행 대한항공 KE 1601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김씨가 탄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내려와 착륙을 위해 보조날개를 폈다.이어 랜딩기어를 내리고 활주로를 향해 최종접근에 들어갔다.그러나 착륙 직전에 비행기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쳤다.이른바 ‘복행’(復行·go around)을 한 것이다.영화에서처럼 비행기 사고를 당할까봐 10여분간 불안에 떤 김씨는 땅을 밟자마자 “비행기가 비정상적으로 착륙했다.”며 제보를 해왔다.그러나 복행은 안전한 착륙을 위한 정상적인 절차일 뿐 흠잡을 일이 전혀 아니다. 비행기가 착륙 결심고도에 이르렀을 때 활주로의 축과 비행기의 축이 일치하지 않으면 기장은 복행을 결정해야 한다.비행기의 속도 및 고도가 적절하지 않아도 복행해야 한다.결정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머뭇거릴 틈이 없다.그랬다간 비행기는 순식간에 활주로에 처박히고 만다. 비행기는 일단 복행하면 공항 상공을 한바퀴 선회한 다음 다시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한번 복행하는 데 비행시간 10분이 더 소요된다.연료비만도 30만원 정도가 추가된다. 2002년 1월부터 2003년 6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김포·김해 등 전국 8개 공항에서 69만 9842회의 착륙이 시도됐는데 이 중에서 복행은 929회나 됐다.복행 발생비율 0.13%로 1000회 착륙 중 1.3회가 복행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잘못된 교통문화로 인해 복행을 수치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더욱이 한때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 조종사들은 군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던 관계로 이러한 분위기는 더했다.그래서 마땅히 복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착륙이 많았다.그 결과 우리나라는 한동안 ‘항공사고 대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지난 1990년대 10년 동안 국적 항공사는 국내외에서 7건의 대형사고를 일으켰다.이 기간 동안 총 307명이 사망했다.10만 비행횟수당 0.2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이는 세계 평균 0.11건의 2배에 이른다. 항공사고가 잇따르자 2001년 8월에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우리나라를 항공안전 2등급 국가로 판정하기도 했다.대외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했고 항공안전 위험국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4년전부터 대한항공은 뼈를 깎는 아픔으로 ‘사고 항공사’라는 이미지를 씻어냈다.미국 델타항공사로부터 안전운항 컨설팅을 받았다.운항규정도 대폭 강화했다.착륙 결심고도를 정부 기준인 500피트에서 1000피트로 강화시켰다.당연히 복행 횟수는 늘어났지만 사고는 지난 4년 동안 한 건도 없었다.이 과정에서 안팎으로부터 손가락질도 받았다.그러나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회사 자체가 일종의 복행을 감행한 것이다. 이제 막 우리나라도 공공개혁이라는 복행 절차에 들어갔다.정부 부처간에 국장을 맞교환하고 주요 보직은 공모를 해서 인선한다.산하 기관·단체장의 낙하산 줄도 하나씩 끊고 있다.‘철밥통’도 없애고 있다. 복행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공공개혁도 마찬가지다.고통이 따르고 치부도 드러난다.‘공무원 사회를 흔든다.’ ‘총선용 길들이기다.’라는 등의 딴죽도 나온다.그러나 불안해할필요가 하나도 없다.이는 선진국이라는 활주로에 안착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 와! 317야드/미셸위, 소니오픈 1R 괴력의 장타 컷통과 글쎄… 나상욱 26위 선전

    최고 317야드에 이르는‘괴력의 장타’를 보기 위해 몰려든 갤러리만 3000여명.16일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와이알레이CC(파70·7060야드)에서 열린 미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 1라운드.PGA 사상 최연소 여성이자,여성으로서는 59년 만에 PGA 대회 컷 통과에 도전하는 미셸 위(15)가 티샷을 하기 위해 첫홀인 10번홀(파4)에 오르자 갤러리가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전 대회 챔피언 어니 엘스(남아공)나 지난해 상금왕 비제이 싱(피지)보다 많은 갤러리였다. 첫홀 티샷은 3번 우드로 했다.공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 사뿐하게 내려 앉았고,웨지샷으로 가볍게 온그린시킨 뒤 파로 마무리했다. 첫 버디는 12번홀(파4)에서 나왔다.동반자 크레이그 보든보다 약 25야드나 더 멀리 드라이버샷을 날린 미셸 위는 9번 아이언으로 친 두번째샷을 홀 3m 앞에 떨군 뒤 과감한 퍼트로 버디를 낚았다. 갤러리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14번홀 에서는 317야드의 드라이버 비거리에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오전조가 경기를 끝낸 뒤 대회조직위가 발표한 각부문 순위에서는 드라이버샷 평균비거리 325.5야드로 전체 출전선수 143명 가운데 2위였다. 물론 세계 최고의 쟁쟁한 남자프로들 틈에서 여자선수가 세운 기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 예상대로 경기가 모두 끝난 뒤 다시 정정된 순위는 89위로 평균 278야드.조직위조차 혼선을 빚을 정도로 미셸 위의 드라이버 샷은 폭발적이었다. 동반자들조차 “어떤 코스에서 치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장타”라며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고 경탄했다. 그러나 스코어는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버디 3개를 잡아냈지만 보기는 5개나 범해 2오버파 72타로 공동 105위.당초 목표인 컷 통과는 쉽지 않게 됐다.드라이버샷 14차례 가운데 11차례가 페어웨이에 떨어져 정확도에서는 뒤지지 않았지만 아이언샷 그린 적중률이 66.7%에 그친데다 버디 찬스를 여러차례 놓치는 등 서투른 퍼트가 발목을 잡았다.18홀 동안 퍼트수가 31개나 됐다. 미셸 위는 “만약 컷을 통과한다면 3라운드 때부터는 더 공격적으로 치고 싶다.”고 말했다. 최경주(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두번째로 PGA 멤버가 돼 데뷔전을 치른 나상욱(20·엘로드)은 버디 4개 보기 2개로 2언더파 68타를 쳐 공동 26위로 선전을 펼쳤다. 한편 카를로스 프랑코(파라과이)가 7언더파 63타로 선두에 나선 가운데 엘스와 싱은 각각 3언더파 공동 9위,1언더파 공동 41위를 달렸다. 곽영완기자 kwyoung@
  • 반론/ 방폐장 대안없는 반대 안된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가 서울신문 1월15일자 15면 ‘열린세상’에 기고한 ‘방폐장 논란을 다시 생각한다’는 글은 많은 부분에 문제점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첫째,원자력발전을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대안에너지로 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뜬구름 같은 말이다.현재 전력의 40%를 담당하는 원자력을 태양에너지나 풍력으로 대체하려면 우리나라 전국토를 태양열 집광판이나 풍차로 가득 채워도 모자랄 것이다. 경제성은 더 큰 문제다.전력 생산비가 현재보다 10배,20배 비싸지면 국민생활도 생활이거니와 생산단가 상승과 이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로 우리나라 경제는 거덜날지도 모른다. 둘째,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그 증거로 원자력발전소의 고장 정지 건수를 언급한 것은 ‘고장’과 ‘사고’의 차이도 모르는 기술적 무지의 소치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자동차 고장을 사고라고 하지 않듯이 발전소 또한 마찬가지이다.아무리 정밀하고 안전한 기계라도 고장은 있을 수 있다.다만 그러한 고장이 사고로 연결되지않도록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느냐가 안전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3중,4중의 안전장치를 갖춘 원자력발전소야말로 기술적으로 대단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원자력발전소 사고 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체르노빌 사고는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와는 달리 안전장치가 미비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셋째,서울대 교수들의 원전센터 유치 제안에 대해 안전성에 대한 정밀 조사도 없이 이루어진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발상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이다.어떤 곳이든 원전센터 부지로 제안되면 부지 적합성에 대한 예비조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식적으로 유치신청을 하게 되고,유치신청을 받은 관계당국은 부지 정밀조사를 거쳐 이상이 없으면 최종부지로 선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번 서울대 교수들의 유치 제안은 말 그대로 ‘제안’단계인 것이다.공론화 과정이나 부지 적합성 조사는 앞으로 할 일이다.국가적 난제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구국 충정의 심정으로 ‘제안’한 일에 대해 절차가 어떻고 하며 비난의화살부터 들이대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한 나라의 에너지 문제는 이성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실현가능한,타당한 대안은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원자력은 위험하니 그만두어야 한다는 식의 감정적이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식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강양구 한국수력원자력(주) 부안건설사무소장
  • 盧대통령 연두회견/야당 반응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두회견에 대해 야당은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본부장의 출정사”라고 혹평했다.특히 민주당은 자신들을 ‘반개혁세력’으로 매도한데 대해 15일부터 조순형 대표를 비롯한 소속의원과 당직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기로 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趙대표 회견… 盧발언 반박키로 민주당은 이날 저녁 조 대표 주재로 긴급 상임중앙위원회 회의를 소집,노 대통령 회견 내용을 맹비난했다.‘개혁을 위해 저를 지지한 사람과,개혁이 불안해 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갈라졌고,결과적으로 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하고 있다.’는 노 대통령 발언에 발끈했다. 조 대표는 “특검수사 대상인 사람이 자숙하기는커녕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정당을 이렇게 폄하하고 매도할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김영환 대변인은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자신의 배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당을 반개혁세력으로 몰아붙였다.”면서 노 대통령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다.장전형 부대변인은 “자기가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격으로,후안무치하고 야박한 본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김경재 상임중앙위원은 “노 대통령은 5000년 역사에 최악의 배신자”라고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조 대표가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 대통령 발언을 반박하는 한편 소속의원 전원이 청와대를 방문,노 대통령이 사과할 때까지 매일 침묵시위를 벌이기로 했다.방송사들에 반론권도 요청하고,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노 대통령을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한나라,“자화자찬 듣기 민망” 한나라당은 “장밋빛 총선공약만 늘어놨다.”고 평가절하했다.박진 대변인은 “듣기 민망스러운 자화자찬에다 뜬구름 잡기식 총선용 공약으로 일관한 졸작”이라고 잘라 말했다.홍사덕 총무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임을 믿는다면 투자의욕을 꺾는 온갖 정치게임부터 중단하라.”고 요구했다.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경제에 주력하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새해에는 총선에 집착하지 말고 국정에만 집착해 주기 바란다.”고 비꼬았다.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은 “국정 최우선을 일자리 창출에 두겠다고 밝힌 것은 높게 평가하나 인적쇄신을 포함한 국정쇄신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주말매거진 We/서울탱고-단장의 미아리 고개

    TV드라마나 영화 촬영지가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습니다.레저 대중화에 따른 추세입니다.서울신문은 이에 발맞춰 ‘노랫말 여행'에 나섭니다.삶의 애환이 서린 대중가요에는 지명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거리,건물,다리 등 저마다의 지형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정조와 감성을 갖고 우리의 심금을 파고 듭니다.서울탱고라는 제목으로 가요지명 순례에 나섭니다. ‘미아리 눈물고개/울고 넘던 이별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눈 못뜨고 헤메일 때…뒤돌아 보고 또 돌아 보고/맨발로 절며 절며/끌려가신 그 고개여/한 많은 미아리고개’ ●한(恨)과 어둠으로 가득 찼던 미아리고개 서울 미아리고개 정상의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는 세워진 지 6년에 불과하지만 비에는 당시의 한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짓고 이재호(작고)씨가 곡을 붙여 가수 이해연씨가 부른 이 노래는 6·25와중에 부모형제와 이별하고,쇠사슬에 묶여 북으로 끌려가는 남편과 아버지를 ‘살아만 돌아오라.’고 애타게 빌던 민중의 한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살아만 돌아오오…”등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곡조를 부르다 보면 어느 새 가슴은 촉촉히 젖는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과 길음동 사이에 있는 미아리고개는 이 노래가 불리기 전부터 많은 사연이 서린 곳이다.원래 이름은 ‘되노미고개’또는 ‘되너미고개’란다.병자호란 때 되놈(胡人)이 이 고개로 넘어 왔다 물러 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일제시대에는 일제가 강제로 공동묘지를 만들어 우리 조상들의 원혼이 묻힌 ‘눈물고개’다. 당시 미아리고개는 지금보다 10여m높고 가팔랐다.도로는 왕복 2차로로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번 있을 정도였다.광복 후 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정릉천변 길음교 근처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6·25때에는 인민군과 중공군이 이곳을 넘었다.피란민 가운데 이곳에서 헤어진 이산가족이 수두룩하다.50년대 후반 공동묘지가 경기 광주로 옮겨간 뒤 점(占)집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주변에는 오갈 데 없는 서민들이 달동네를 형성했고,인근의 속칭 ‘미아리텍사스’에선 취객들을 상대했다. ●옛모습 간데없고 아파트 숲뿐 이런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 고개가 얼마전부터 변화의 중심에 섰다.최근 찾은 미아리고개는 살을 에는 추위를 느낄 수 있었지만,정상에서 바라본 주변은 어두운 그림자는 없었다.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정상의 구름다리와 인근 성곽 등에 대한 조명작업을 해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아름답고,역동적이며 희망찬 곳으로 바꾸었다. 공동묘지였던 곳엔 아파트 촌이 가득 들어섰다.정상 주변에 있던 산동네 판자촌들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인근 길음지역은 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의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홍등가인 미아리텍사스는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돼 개발의 날만 기다린다. 조덕현기자 hyoun@ ■작사가 반야월 선생의 사연 “50년이 지났지만 제가 생각해도 민족의 한(恨)을 가득 담은 노래라고 생각됩니다.” 반야월(半夜月·사진·87) 선생은 6·25당시 자신의 아픈 사연을 민족의 아픔에 녹여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6·25전에 반야월은 미아리고개 북쪽인 수유리에 살았다.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오자 그는 부인과 큰 딸수라(당시 5세)를 집에 두고 홀로 피란길에 올랐다.며칠 뒤 부인이 초라한 몰골로 처가인 경북 영천으로 왔는데,마땅히 함께 와야 할 둘째딸은 보이지 않았다.아내는 아이가 잘 먹지 못해 굶어 있던 터에 총소리,대포소리에 놀라고 공포에 질려 미아리고개를 채 넘지도 못하고 숨졌다면서 아이를 미아리고갯길에 손으로 묻고 피란올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였다.반야월은 울어도 소용없었다.”고 달랜뒤 “서울이 수복된 뒤 그 근처의 여러 군데를 파 보았지만 딸의 시체는 끝내 찾지 못했으며,그때의 비통한 심정을 ‘단장의 미아리고개’에 담았다.”고 말했다. 반야월은 필명이다.본명은 박창오(朴昌吾·87)다.처음 노래를 부를 때 진방남이란 이름으로 가수에 데뷔했다.옥단춘,남궁려,금동선,허구,백구몽,추미림 등 수많은 필명으로 2000여곡의 노랫말을 지었다. 조덕현 기자
  • 주말매거진 We/훌쩍 떠나볼까-땅끝

    땅끝선착장(갈두항)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족히 1㎞는 될듯한 가파른 길.잘 정돈돼 있지만 쉼없이 올라가니 제법 숨이 차다.전망대 아래 계단 옆의 예쁘장한 화강암 조각에 새긴 고은 시인의 ‘땅끝’이란 시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지난 한 해.가슴속 뭉쳐있던 응어리 풀어내 땅끝 앞바다에 모두 흘려보내고,희망의 새해를 맞자는 의미가 아닐까. 여명속 땅끝 앞바다는 회색빛이 돈다.멀리 흑일도와 백일도,그 뒤의 동화도,소화도가 어렴풋이 거무스름한 윤곽을 드러낸다.하늘이 서서히 붉어진다.그러나 일출의 장관을 고대하던 이들의 기대와 달리,홍시빛 해는 살짝 얼굴을 내밀기가 무섭게 하늘을 덮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꼭 해가 거꾸로 지는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삼산면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대흥사.고즈넉한 산사를 거닐며 새해의 희망을 구체화해보자.땅끝마을에서 승용차로 30분쯤 걸렸다. 대흥사는 백제 무령왕 14년 신라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본래 대찰은 아니었으나 조선 선조때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를 받은 뒤 사세가 번창해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당시 서산대사는 금강산에서 입적하면서 제자인 사명당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럽혀지지 않을 곳’이라며 해남 대흥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사찰 왼쪽 구역에 자리잡은 대웅전을 시작으로,지붕과 건물의 맵씨가 경쾌한 천불전,선조가 서산대사의 공을 기려 사액을 내린 표충사를 둘러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표충사 뒤편 굵직한 감나무에 진홍빛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니 새파란 하늘 한가득 홍시가 박혀 있는 것 같다.새들이 겨우내 먹을 양식거리를 남겨놓은 모양이다.산사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감나무에서 눈을 떼니 주장자를 어깨에 걸친 스님 좌상이 앞을 막는다.한국 차에 관한 명저 ‘동다송’(東茶頌)을 쓴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의 동상이다.선사는 대흥사에서 수행하며 한국차의 정신과 맛을 중흥시켰다. 바다가 가깝고 안개가 자주끼는 대흥사 주변은 좋은 차가 자라기 알맞은 기후 환경을 갖춘 덕택에 다성(茶聖)까지 배출한 한국차의 성지가 됐다. 이곳에서 차 이야기를 하자면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빠질 수 없다.선생이 ‘다산’이란 호를 얻은 것도 해남 바로 옆 동네인 강진땅에서 보낸 귀양살이를 할 때다.그는 도암면 만덕리에 다산초당을 지어 기거하며 만덕산 아래 백련사의 혜장 스님(1772∼1881)에게 차를 배우고 호도 받았다.초당에서 다산은 추사 김정희,초의선사와 교우하며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강진군 도암면의 다산초당은 대흥사에서 30분쯤 걸렸다.다산유물관 앞 주차장에서 산 중턱에 자리한 초당까지는 800m 정도. 동백나무와 소나무,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선 길을 15분쯤 걸어 올라가니 단아하고 소박한 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산은 18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초당 왼쪽으로는 제자들의 거처인 서암(西庵)이,오른쪽으로는 다산이 첫 거처로 초막을 짓고 집필에 열중했던 동암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몇걸음을 옮겨 산등성이에 서니 강진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가족이 그리울 때면 다산이 찾던 곳으로,지금은 강진군이 천일각이란 정자를 세워놓았다. 천일각과 동암 사이 오솔길 입구에 ‘백련사 800m’란 작은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다산 선생과 혜장 스님이 교우를 위해 수시로 오가던 길.부지런히 걸으니 10여분 만에 백련사에 닿는다. 대흥사와 달리 자그마한 산사다.제법 큰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여기저기 펼쳐진 공사 때문에 어수선하다.절 아래와 좌우로 동백숲이 울창하다. 백련사 동백숲은 고창 선운사 못지 않은 동백 명소.지난 며칠간 강추위가 이어진 탓인지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백년사는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절 아래 강진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다원’(禪茶苑)이란 찻집이 자리잡고 있다. 작설차나 솔잎차도 내고,다기(茶器)도 판매한다.따사로운 햇살이 유리를 통해 실내로 가득 퍼진다.차탁(茶卓) 앞 방석 위에 정좌하고 앉아 솔잎차를 시켰다. 차와 함께 생감과 떡·강정을 내오는데,출출한 나들이객에게 간식으로 그만이다.찻값은 3000원.은은한 정취의 산사 찻집에서 향긋한 솔향을 마시며 멀리 강진만을 내려본다.새해를 맞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해남·강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어떻게 가나요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번 국도,13번 국도,813번 지방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해남 땅끝마을에 닿는다.서울서 승용차로 6시간 정도 걸린다.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나주IC에서 빠져 13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지나 2번,18번 국도,813번 지방도를 차례로 타야 한다. 승용차를 몰고가지 않으면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해남시외버스터미널(061-534-0881)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 뒤,일반버스를 타고 땅끝마을이나 대흥사로 가면 된다. 광주에서 땅끝까지 운행되는 버스도 수시로 있다.해남군 문화관광과(061-532-8942),강진군 문화관광과(061-433-4116). ●숙박 땅끝마을에 라메르관광모텔(061-534-8686),비치모텔(061-534-1033),땅끝민박(061-533-6389) 등 여관과 민박이 많다.대흥사 아래에도 기와집 형식의 전통여관인 유선여관(061-534-6005),두륜각(061-535-0080) 등 여관이 꽤 있다. ●달마산과 미황사 시간이 허락된다면 해남 남단의 달마산(489m) 및 그 아래 자리잡은 미황사에 가보자.달마산은 해남군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설악,태백을 지나 두륜산,대둔산을 넘어 내려오다가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르러 잠시 주춤한 뒤 급격한 암릉으로 변화하는데,바로 달마산이다. 이 암릉은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을 지나 땅끝전망대가 서 있는 갈두산에서 그 기세를 갈무리한다. 병풍처럼 두른 달마산 암릉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사찰이 미황사다.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의존 스님이 향도 100명과 함께 그것을 소의 등에 싣고 가다가 소가 지쳐 멈춘 곳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절로,이 때문에 불교의 남방 유입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절 마당에 서면 고색창연한 절집 뒤로 송곳같은 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친 풍광이 볼 만하다.미황사~불썬봉 왕복코스가 가장 짧은 코스로 2시간 30분쯤 걸린다. ●해남·강진 맛기행 패키지 해남 땅끝마을∼대흥사∼강진 다산초당∼백련사∼영랑생가∼완도 코스로 짜여진 코스로,해남 용굴해물탕,강진 명동식당의 한정식,완도 산호정의 해물 한정식,목포 호산회관의 갈낙탕 등을 맛볼 수 있다.특급호텔인 목포관광호텔 및 완도 씨사이드호텔에서 묵는 2박3일 코스가 29만원.옛돌여행 (02)-2266-0220. ●꼭 맛보세요 강진은 한정식,해남은 해물탕이 유명하다.우선 강진군 군동면 호계리 강진공설운동장 앞의 ‘청자골 종가집’(061-433-1100)은 품위와 맛을 함께 갖춘 명가로 인정받는 집. 돼지고기 편육,데친 꼬막,더덕 양념구이,붕어찜,전어회,산낙지,참숭어알,홍어찜 등 온갖 요리와,손수 담가 지하 저온 창고에 보관한다는 돈배,토하 등 각종 젓갈,2년 정도 숙성시킨다는 묵은 김치 등이 더해진다. 광주에서 전통한옥 한 채를 고스란히 옮겨와 4년간 지었다는 식당은 특히 맛과 함께 옛 사대부의 풍류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4인상 기준 8만원,10만원,15만원짜리가 있다. 강진읍 남성리의 ‘해태식당’(061-434-2486)은 다양한 요리에다가 겨울철엔 메생이국이 별미로 나와 손님을 끈다.강렬한 맛은 최대한 없애고 담백한 고유의 맛을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이밖에 강진읍 터미널 옆의 ‘명동식당’(061-434-2147),강진읍 남성리의 ‘흥진식당’(434-3031)이 음식 잘하기로 꼽히는 집이다. 음식은 1인 기준으로 1만 5000∼3만원.음식 가짓수가 많아 1인,2인상은 차리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미리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해남읍 수협 인근의 ‘용궁해물탕’(061-536-2860)은 이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 서울과 부산에도 분점이 생겼지만 역시 해남 원조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들이 많다.주인 황점이씨는 손수 새벽 2시에 일어나 목포,완도 등 스무군데가 넘는 수산 시장을 누비며 신선한 재료를 구입한다. 무와 멸치를 2시간쯤 푹 고아낸 육수에 꽃게,새우,낙지,조개 등 10가지 이상의 해산물을 넣고 끓인다.해물에서 우러나는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된장과 조미료는 절대 넣지 않는다고. 냄비별로 3만원(2인분),4만원(3∼4인분),5만원(5∼6인분)짜리가 있다.
  • 주말매거진 We/시네마 천국-풋풋한 동심영화 2편

    동심을 자극하는 영화 2편이 오는 16일 나란히 간판을 건다.영원히 늙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년을 그린 영화 ‘피터팬’(12세 이상 관람)과,곰과 인간의 우정을 그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브라더 베어’(전체 관람).누구와 보러 가든 모처럼 풋풋한 동심에 감상의 키높이를 낮춰야 할 영화들이다. ●피터팬 동화책은 물론 연극,텔레비전 드라마,뮤지컬,애니메이션,실사영화 등으로 다양하게 태어난 바 있다.이번 작품의 전체 얼개도 비슷하다.동화 세계에 젖어 공상을 즐기는 웬디 3남매가 창문으로 들어온 피터팬에 이끌려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로 날아가 인디언과 어울리고 해적 후크선장 일당과 싸우는 등 갖가지 신비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다는 내용. 아무래도 이 영화에 쏠리는 관심은 기존 피터팬과 무엇이 달라졌는가일 듯.‘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으로 흥행성을 인정받은 P J 호건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지만,상투적이다시피 굳어진 인물의 성격에 새로운 특징을 부여해 영화의 재미를 살렸다. 피터팬은 사랑에 무감각하고 약간은 당돌한 성격으로 나온다.주요 배역을 원작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제러미 섬터(피터팬)와 레이첼 허드 우드(웬디)가 맡아 동심을 물흐르듯 빨아들인다.웬디의 비중도 부쩍 커졌다.그저 피터팬을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 소녀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편다.피터팬과 ‘비밀의 키스’를 나누는가 하면 후크 선장에게도 야릇한 감정을 갖는다.후크 선장도 기존의 악당 이미지에다 음악을 즐기고 외로움도 타는 로맨틱한 성격이 보태졌다. 여기에 1억 2000만달러를 들인 특수 효과나 스튜디오도 팬터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네버랜드에 도착한 웬디 일행이 솜처럼 몽실몽실한 분홍빛 구름에서 펼치는 연기는 환상적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브라더 베어 삼형제의 끈끈한 우애와,곰으로 변해버린 인디언 청년이 어린 곰과 나누는 우정을 핵심어로 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실사영화 뺨치게 입체적인 3D애니메이션을 기대했다가는 화면이 싱거울 수도 있겠다.영화는 컴퓨터 기술을 배제하고 선(線)으로 윤곽을 다듬은 전통적인 방식의 ‘셀’애니메이션.화면에서 따스한 체온이 스며나오는 듯한 느낌은 오히려 장점이다. 거대한 매머드들이 살고 있는 먼 옛날 북미대륙이 배경.우애가 유별난 삼형제가 숲속에서 큰 곰을 만나고,곰을 유인해 위기를 모면코자 맏형은 빙하 아래로 몸을 던진다.이때부터 남은 두 형제는 엇갈린 모험담을 펼친다.형의 원수를 갚으려던 막내 키나이는 주술에 걸려 곰으로 변해버리고,키나이의 변신을 알아채지 못한 둘째형 데나히는 그를 원수 곰으로 오해하고 죽이려든다. 키나이와,엄마를 잃은 수다쟁이 새끼곰 코다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 훈훈한 감동이 스며든다.간결한 이야기 구도 속에서도 교훈적인 메시지를 건져올리는 디즈니 특유의 재치가 돋보인다.예컨대 곰들의 시각에서 죽창을 들고 쫓아다니는 인간이 ‘몬스터’로 객관화되는 등의 묘사가 그렇다. 하지만 어른 관객들의 눈에는 주변 캐릭터들이 다양하지 못해 지루할 수도 있다.티격태격 끊임없이 말다툼을 해대는 말썽쟁이 사슴 두마리가 끼어들어 간간이 웃음을 던져주는 정도다. 이종수 황수정기자 vielee@ ■관객과 번개팅 피터팬 하이루ㅋㅋ 저 아직 안죽었어요 안녕하세요?피터 팬이에요.몇가지 더 할 말이 있어서 잠깐 영화 밖으로 나왔어요. 그동안 제 모습을 다양하게 그렸지만 사실 일그러진 게 많았어요.그저 맘껏 하늘을 날고 해적과 신나게 싸우는 정도였어요.심지어는 로빈 윌리엄스처럼 약간 ‘징그러운’ 어른이 분장하기도 했지요.이번엔 감독님께 본래 모습대로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저는 원래 1902년 ‘작은 흰새’라는 소설에서 태어났는데 빨리 잊혀졌어요.그러다 1904년 극작가 제임스 배리 아저씨의 연극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어요.1924년에는 하버드 블레논 감독이 영화로,1953년엔 월트 디즈니사가 만화영화로 만드는 등 어린이 관련 문화 프로그램에서는 단골 손님이 됐어요.‘리턴 투 네버랜드’(Return to Neverland)라는 속편 애니메이션도 나왔을 정도예요.한국에선 이연경 누나나 윤복희 아줌마 등이 뮤지컬로 선보였죠.지금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저와 만나는 사람이 있을 걸요. 숱한 모습으로 땅에 내려왔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제 마음을 잘 읽지못해 속상해요.그저 초록색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용감하고 낙천적인 한 소년 정도로 알지요.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라는 남모를 슬픔도 지녔어요.이번 영화를 보세요.함께 놀던 아이들이 현실로 돌아가 아빠·엄마를 만나 기뻐할 때 저는 창 밖에 숨어 있잖아요. 그러나 더 쓸쓸한 것은 어른들이 제가 나오는 영화나 뮤지컬을 어린이날에 맞춰 한번쯤 보여주고는 잊어버리는 거예요.그래서 이번엔 좀 빨리 찾아왔어요.제발 늘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느껴 주시면 좋겠어요. 이종수기자
  • 주말매거진 We/세상에 이런 일이-국내

    대학로서 3000명 우르르 나 잡아봐 ~ 라 ‘누가 술래고 누가 행인이야?’ 3000명이 넘는 인원이 한 장소에 모여 ‘술래잡기’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지난달 31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tag2003’(playtag.co.to)이라는 사이트에서 주최한 ‘범국민 대규모 술래잡기’에 네티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 것. 이날 술래잡기는 ▲도망자가 술래에게 잡히면 서로 역할을 바꾸는 ‘고독한 술래’ ▲술래에게 잡힌 도망자가 계속 술래가 돼 모두가 술래가 된 다음에야 끝이 나는 ‘무한증식 술래’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참가자들은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 일대를 필사적으로 뛰어다녀 시민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의 성공적인 술래잡기에 힘입어 네티즌들은 지난 1일 부산에서 1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술래잡기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놀이를 벌였으며 일산과 대구,인천의 네티즌들도 속속 카페를 결성,지역별로 비슷한 형태의 대규모 술래잡기를 계획하고 있다. 놀이를 최초로 제안했던 오형종(19·ID시시로)군은 “한 스포츠 의류용품업체가 술래잡기를 주제로 만든 광고 동영상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도 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놀이를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걷기 귀찮아 자전거 ‘슬쩍' “장난으로 훔쳤을 뿐인데 죄가 될 줄 몰랐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 형사계.이모(20)군 등 20대 젊은이 3명이 나이 지긋한 경찰로부터 훈계를 듣고 있었다.“학생들이 할 일이 없어 도둑질을 해? 너희들 학생만 아니었으면 모조리 구속이야.” ●음주 뒤 ‘객기’가 화근 전날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던 길에 자전거를 훔친 대학생들이었다.이들의 얼굴에선 ‘억울함’과 ‘당혹감’이 교차했다.취중에 장난삼아 벌인 일이라고 항변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들 모두 강남구 개포동과 대치동의 중형아파트에 사는 ‘8학군’ 출신이었다.아버지가 중앙정부기관 공무원인 사람도 있었다. 괜한 ‘객기’가 화근이었다.적당히 취기가 올라 밤 10시쯤 귀가하던 이들은 일원동의 주택가에서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자전거를 발견했다.이군이 “집까지 걸어가기도 귀찮은데 자전거를 타고가자.”고 제안했다. 자전거 1대를 번갈아 타가며 집이 있는 개포동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자정도 다가오고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웠던지 일행 중 누군가 “2대를 더 훔쳐 1대씩 타고 놀자.”는 얘기를 꺼냈다. 대담해진 이들은 30분 남짓 개포동의 아파트단지를 돌며 2대를 더 훔쳤다.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마지막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오던 신모(20)군이 순찰중이던 60대 아파트 경비원에 붙들렸다.도망칠 기회도 있었지만 ‘이게 무슨 큰 죄가 될까.’란 생각에 순순히 경찰서까지 동행했다. 경찰은 초범인데다 학생 신분이란 점을 감안해 이들을 불구속 입건하는데 그쳤다.다음날 오전 경찰서 문을 나서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법이 이렇게 엄한 줄 몰랐다.이제 우린 전과자가 된 거냐.”며 태연히 대화를 나눴다. 강남 최고급 빌딩 화장지도 비쌀까? 같은 시각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계에도 이모(19)군 등 대학생 4명이 절도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이들이 훔친 것은 두루마리 화장지.광진구 성수동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이들은 자취방에 화장지가 떨어지자 대형건물 화장실에는 24시간 화장지가 비치된 것을 떠올렸다. 30일 오후 5시 이들은 화장지를 넣을 빈 스포츠가방을 준비해 역삼동 스타타워로 향했다.‘서울에서 가장 비싼 빌딩이니 화장지 질도 좋을 것’이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화장실을 돌며 화장지 21개를 챙겼다.범행에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엔 찜찜한 기분도 없지 않았지만 ‘1만원어치도 안 되는데 무슨 죄가 될까.’ 싶었다.하지만 이들은 때마침 연말을 맞아 취약지 순찰을 하던 경찰과 맞닥뜨렸다.불룩한 가방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이들을 경찰이 그냥 보아넘길 리 없었다. 결국 이들은 경찰서로 연행돼 하룻밤을 보호실에서 보내야 했다.학생 신분을 내세워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은 엄정했다. 강남경찰서는 31일 이들을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세영기자 sylee@ 돈 안주면 “부처님도 싫어” 돈 문제로 절 주인과갈등을 빚던 주지 스님이 절에 불을 질러 경찰에 붙잡혔다. 경남 거제경찰서는 4일 자신이 주지로 있는 사찰에 불을 지른 ‘이진암’ 주지 김모(47)씨에 대해 일반건조물 방화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 3일 오전 8시30분쯤 거제시 일운면 옥림리 이진암 건물에 불을 질러 법당 70평과 불상 등을 태워 1억 5000만원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다. 김씨는 사찰 주인인 김모(80)씨의 부인 강모(72)씨를 폭행해 부상을 입힌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는 돈 문제로 절 주인 김씨와 갈등을 빚어오다 ‘주지를 그만두라.’고 하자 불만을 품고 불을 지르고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밝혀졌다. 35년만에 돌아온 병원비 40만원 돈이 없어 병원 치료비를 내지 않고 달아났던 환자가 35년만에 병원비 40만원을 갚았다. 인천 부평구 부평동 가톨릭대학교 성모자애병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11시쯤 40대 여자가 병원을 찾아와 안내원에게 “심부름 왔는데 원장님께 전해달라.”며 봉투를 전달했다.봉투에는 현금 40만원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에는 “저는35년 전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목숨을 끊으려 음독을 했는데 이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습니다.그런데 병원비를 낼 돈이 없어 몰래 도망했습니다.이제야 아주 작은 40만원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보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 새해 첫날 선명한 해돋이

    새해 갑신(甲申)년 첫날과 첫 주말인 3∼4일에는 전국에 구름이 많이 끼겠으나 추위는 없겠다. 기상청은 30일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기압골이 지나가면서 전국적으로 흐린 가운데 서울·경기,충남·북,강원 영서,남부지방에 한때 눈이나 비가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새해 1일은 서울·경기,강원 영동,충남·북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아침에 날이 개면서 맑겠으나 오후에 다시 흐려지겠다.남부지방은 1일에도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가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강원도를 비롯,중부지방에서는 비교적 선명한 해돋이를 볼 수 있겠다.2일 중부지방은 흐리고 비나 눈이 온 뒤 개겠으며,남부지방은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이 되겠다.주말인 3일에는 전국이 대체로 맑다가 4일 다시 흐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유종기자 bell@
  • [씨줄날줄] 새해 소망

    또 한해가 간다.만감이 교차한다.생각은 올해의 벽두로 올라 간다.소망도 있었고 결심도 대단했다.그러나 지금은 아쉬움만 맴돈다.담배도 못 끊었다.승진도 못하고 술만 부지런히 마셔댔다.체중을 줄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오히려 늘었다.카드 빚은 여전하고 매월 이자에 시달려야 한다.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직을 못 했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배필을 아직도 못 만났으니 또 어서 결혼해야지라는 주위의 걱정에 얼마를 시달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왜 한해를 이렇게 보냈단 말인가. 그러나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말자.무엇을 이뤘는가를 보지 말고 어떻게 보냈는가를 돌이켜 보자.실수도 하고 그래서 반성하고 다시 생각을 고쳐 먹는 과정이 세상살이 아니겠는가.누군가를 미워했다가도 다시 깔깔거리며 사는 게 인생살이일 것이다.궁지에 몰려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아니던가.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을진대 해가 바뀌는 요즘이라고 야박하게 자신을 몰아세워서야 쓰겠는가.생각하면 세월이 본디 시작과 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구름에 달 가듯 소리 소문 없이 가는 세월에 사람들이 요만큼 표시를 해놓고 1년이라고 나눠 놓았을 뿐이다.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그리고 삶의 의욕을 추스르라는 선인의 지혜일 것이다.삶이 속일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분발하여 다시 일어나라는 격려일 것이다.사람들이 가는 해를 아쉬워하면서도 저마다 남모를 소망을 품는 까닭일 것이다. 새해엔 아무쪼록 우리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복권이라도 당첨되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사람 사는 의욕만 꺾지 않았으면 좋겠다.대통령 선거한다고 차떼기로 돈을 거둬들였다니 어디 월급쟁이들 살맛 나겠는가.청년의 정부라는 참여정부에서 청년실업이 사상 최악이라니 이건 또 뭔가.카드 빚에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판에 해외 골프여행은 사상 최고였다니 말문이 막힌다.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을 쏟아내는 정치 지도자만 침묵해도 세상 살기가 한층 괜찮을 것 같다.갑신년 새해라고 세상 인심이 크게 달라지기야 하겠는가.그래도 해가 바뀐다니 새해 소망 하나씩 가져 보자. 정인학 논설위원
  • 프로농구 /TG, 홈팬에 성탄 선물

    TG삼보가 4연승의 휘파람을 불며 20승 고지에 선착했다.모비스는 3차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오리온스를 잡고 시즌 첫 연승을 기록했다. TG는 25일 원주에서 열린 03∼04프로농구 경기에서 SBS를 80-67로 물리치고 연승행진을 이어갔다.TG는 20승6패로 2위 KCC와의 승차를 2경기로 유지하면서 선두자리를 굳게 지켰고,SBS는 3연패에 빠졌다.SBS는 지난 20일 발생한 경기중단 사태에 대한 자성의 의미로 이날 경기에선 특별한 항의없이 심판의 판정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주성(22점 11리바운드)은 승부가 갈린 2쿼터에서만 9점을 올려 팀 승리의 선봉에 섰다.노장 허재도 23-20으로 근소하게 앞선 2쿼터 중반 ‘해결사’로 투입돼 12분여를 뛰면서 득점을 올리진 못했지만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승리를 거들었다.TG는 허재-김주성 콤비의 활약에 힘입어 41-30으로 2쿼터를 마치면서 승기를 잡아 낙승을 거뒀다. 모비스는 울산 홈경기에서 3차례나 연장전을 펼치는 혈투를 거쳐 강호 오리온스를 116-112로 물리쳤다.3차연장은 올시즌 처음이자 역대 3번째.이전까지 올 시즌 6차례의 연장전에서 단 1승만을 거두면서 ‘연장 징크스’에 시달렸던 모비스는 이날 승리로 연장승부 2승5패를 기록,징크스 탈출 기미를 보였다. 3차연장 막판 모비스는 114-109로 앞서 승리를 낙관했지만 곧이어 상대 김승현(17점)의 3점포를 맞고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전형수(25점)가 종료 21초를 남기고 회심의 레이업슛을 성공시켜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모비스 우지원(29점)은 3점슛 7개를 폭발시키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원주치악체육관과 전주체육관은 만원을 이루는 등 5경기장에 모두 2만3000여명의 구름관중이 모였다. 한편 SBS는 이날 “불미스러운 일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 드린 데 대해 거듭 사과한다.”면서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공식사과문을 냈다.또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표명했던 한국농구연맹(KBL) 김영기 총재는 “시즌 중인 만큼 이번 시즌까지 맡아달라.”는 구단 단장들의 요청에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석기자 pjs@
  • 어린이 문화행사 UP

    어린이의 문화체험에 부모는 ‘의미’를 강조하지만,당사자들은 ‘재미’를 추구한다.그런데 의미와 재미를 조화시킨 문화행사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어서,부모와 어린이 모두에게 외면당하곤 한다. 올 겨울에는 양쪽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건 문화행사가 적지않게 선을 보이고 있다.특정 장르에 그치지 않고,다양한 분야로 이런 분위기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춘향전’은 어린이 성교육 교과서? 국립창극단의 어린이 창극 ‘춘향이와 몽룡이의 사랑 이야기’는 춘향의 사랑 이야기로 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열다섯 춘향과 열여섯 몽룡은 정신적,육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사춘기로,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적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춘향이는 피가 나자 죽을 병에 걸린 줄 알지만,월매는 ‘여자가 된 경사’라며 떡과 음식으로 잔치를 벌인다.몽룡도 ‘기분이 묘하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름에 둥둥 뜬 듯,물위를 거니는 듯’하다 그만 바지를 버리는데,역시 “아기씨를 만들수 있는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격려받는다. ‘아우성’으로 유명한 성교육전문가 구성애 소장이 자문을 맡았다.27일부터 내년 1월2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2274-3507. ●책을 통한 창조적 체험의 또다른 방식 금호미술관과 아트링크가 공동 기획한 ‘사람을 닮은 책ㆍ책을 닮은 사람’전은 책의 교양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예술적 체험과 밀도를 최대화한다.미술가 44명과 어린이 13명이 책을 주제로 한 회화 조각 설치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소인국에서 보는 듯한 작은 책,반대로 거인국에 있을 법한 큰 책,계란껍질에 글자를 써넣거나,천장에 매달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책 등으로 지적·예술적 자극을 주어 자라나는 세대에 창조적 체험을 준다.내년 2월28일까지 금호미술관(02)720-5114 ●오케스트라의 ‘속’까지 보여드립니다 스테이지원이 기획한 ‘스쿨 클래식’의 하나인 ‘오케스트라를 배우자’는 공허한 곡목해설만 나열하는 기존의 어린이음악회가 아니다. 박영민이 지휘하는 서울 클래시컬 플레이어즈가,모차르트가 9세∼22세사이에 작곡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관객들앞에서 ‘해부’한다.유명한 ‘작은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악기들의 연주법을 보여주고,편곡에 따라 어떻게 느낌이 달라지는지도 체험해본다. 소프라노 김수진과 메조소프라노 추희명,플루티스트 박민상도 출연하여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내년 2월8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780-5054. ●꼬마 관객이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해! 극단 민들레의 아동극 ‘아기용 미르’는 서양식 공룡이 아니라 동양의 용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체적이다.나아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스스로 사회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겠다는 것이 연출의도라고 한다. 황소개구리 배스 블루길 등은 무분별하게 수입돼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외래문화를 상징한다.음악은 전통적인 5음계를 사용했다.첫 장면에서는 중국의 그림자극을 이용했고,주인공의 움직임은 일본 전통극 ‘노(能)’의 걸음걸이와 봉산탈춤의 기본자세인 ‘근경자세’에서 따오는 등 아시아권 나라들의 문화를 적극 수용했다.작·연출송인현.내년 1월8일∼2월1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02)760-4640. 김종면 이순녀기자 jmkim@
  • 근린공원 야경이 바뀐다

    동대문구(구청장 홍사립)가 근린공원 구릉을 잇는 구름다리에 야간 경관조명을 밝혔다. 구는 지난 22일 오후 7시 답십리근린공원 사이의 구릉을 잇는 길이 40m짜리 ‘쌍둥이’ 구름다리 경관조명 점등식을 열었다.서울시내 구름다리로는 처음이다.같은 날 밤 불을 밝힌 한강대교,당산철교 등 한강다리에 버금가는 시설이다. 경쟁입찰을 통해 예상보다 훨씬 적은 7000만원이 들어갔다.앞으로 성과와 예산 형편을 봐가며 다른 구름다리에도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전체적으로는 커다란 성곽모양을 연출해 동·서 화합을 상징하도록 했다.교각과 상판,또 다른 교각을 연결한,항아리를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다리 하부는 약진과 변화를 상징하는 오색(빨강,주황,파랑,보라,녹색)을 입혔다.현수교를 연상케 하는 상부는 파란색 계열의 은은한 별빛으로 꾸며 관내 자랑거리인 동대문(흥인지문)의 지붕과 처마선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동대문구 조영환 토목과장은 “최근 답십리근린공원과 배봉산근린공원,중랑천 뚝방을 연결하는 7.2㎞의 동대문 녹지순환 벨트를 마무리지었다.”면서 “단순히 휴식공간 역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사랑과 정감이 넘치는 명소로 가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길섶에서] 잃어버린 양지

    어린 시절 칼바람이 매서운 날에도 햇살이 비치는 담벼락 사이는 꼬마들의 놀이터였다.자치기,딱지치기,팽이돌리기….동네 꼬마들은 해거름이 되어 어머니가 찾아나설 때까지 자리를 뜰 줄 몰랐다.구름이 햇살을 가린 날에는 싸리 빗자루를 훔쳐 모닥불을 피우고 코 밑이 검댕으로 물들도록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닦아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의 겨울은 항상 햇볕이 따사롭게 스며드는 양지바른 모퉁이에서 생각이 맴돌게 된다.장갑도 귀마개도 없었음에도,제대로 씻지 않은 손과 발은 쩍쩍 갈라져 쓰라렸음에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양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겨울이 되어도 더 이상 햇볕 따사로운 양지를 찾지 않는다.모두들 학원으로,PC방으로,오락실로만 몰려다닌다.아파트 단지내 놀이터가 하루종일 그림자에 드리워 냉기만 쏟아내고 있는 탓이리라. 우리들은 아이들이 갈수록 강퍅해진다고 말한다.겨울철 그들만이 모일 수 있는 양지를 없앰으로써 그들의 꿈을 앗아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우득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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