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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회장 현재 상태, 호전되고 있다는데 삼성전자 3분기 실적 전망은 갈수록 부정적

    이건희 회장 현재 상태, 호전되고 있다는데 삼성전자 3분기 실적 전망은 갈수록 부정적

    ’이건희 회장 현재 상태’ 이건희 회장 현재 상태가 지난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뒤 100일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3분기 실적 전망이 부정적인 것으로 나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그룹 측은 이건희 회장이 현재 여전히 의식이 없지만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보는 사람들은 상태가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여러 가지로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증권은 휴대전화 사업부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6조원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박영주 현대증권 연구원은 27일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액이 50조 5000억원, 영업이익은 5조 9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의 평균 전망치(컨센서스)인 7조 5000억원보다 무려 1조 6000억원이나 낮은 수준이며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실적보다는 매출은 3.5%, 영업이익은 17.7% 감소한 것이다. 국내 증시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실적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늘면서 주가는 물론 국내 산업계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불과 지난주만 해도 7조원대 초반이나 6조원대 후반에 머물렀으나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건희 현재 상태, 호전되고 있다지만 삼성전자 실적 전망은 부정적…한국경제 전반에 악영향

    이건희 현재 상태, 호전되고 있다지만 삼성전자 실적 전망은 부정적…한국경제 전반에 악영향

    ’이건희 현재 상태’ 이건희 현재 상태가 지난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뒤 100일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3분기 실적 전망이 부정적인 것으로 나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그룹 측은 이건희 회장이 현재 여전히 의식이 없지만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보는 사람들은 상태가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여러 가지로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증권은 휴대전화 사업부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6조원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박영주 현대증권 연구원은 27일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액이 50조 5000억원, 영업이익은 5조 9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의 평균 전망치(컨센서스)인 7조 5000억원보다 무려 1조 6000억원이나 낮은 수준이며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실적보다는 매출은 3.5%, 영업이익은 17.7% 감소한 것이다. 국내 증시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실적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늘면서 주가는 물론 국내 산업계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건희 현재 상태, 미미하게나마 호전됐다지만…삼성전자 3분기 부정적 전망 나와

    이건희 현재 상태, 미미하게나마 호전됐다지만…삼성전자 3분기 부정적 전망 나와

    ’이건희 현재 상태’ 이건희 현재 상태가 지난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뒤 100일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쾌유를 비는 글이 7000건에 육박했다고 조선일보가 2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그룹 관계자는 ”사내 소식을 알려주는 ‘미디어 삼성’ 코너에 이 회장이 쓰러진 직후 병세와 관련한 설명문을 올렸는데, 많은 직원이 아직까지 응원의 댓글을 달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소식에 달린 댓글이 7000건에 육박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 회장은 현재 여전히 의식이 없지만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보는 사람들은 상태가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건강이 여러 가지로 상당히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증권은 휴대전화 사업부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6조원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박영주 현대증권 연구원은 27일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액이 50조 5000억원, 영업이익은 5조 9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의 평균 전망치(컨센서스)인 7조 5000억원보다 무려 1조 6000억원이나 낮은 수준이며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실적보다는 매출은 3.5%, 영업이익은 17.7% 감소한 것이다. 국내 증시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실적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늘면서 주가는 물론 국내 산업계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온난화에 수증기 양 늘어 국지성 호우…시간당 100㎜ 비는 소형 폭포 물벼락

    25일 부산·경남·전남 등 남부지방을 강타한 시간당 100㎜의 ‘물폭탄’은 남쪽에서 유입된 고온다습한 기류와 중국 동북부 상공에서 내려온 차가운 공기가 부딪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창원에 240㎜를 비롯해 금산 154.0㎜, 김해 132㎜, 군산 117.3㎜, 부산 108.0㎜, 의령 106.5㎜ 등 남부지방 곳곳에 폭우가 쏟아졌다. 특히 부산 금정구에는 한 시간만에 130㎜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100㎜의 강우는 소형 폭포수 아래에서 물벼락을 맞는 것과 맞먹는 위력을 지닌다. 이처럼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강한 비가 내린 것은 평년보다 빨리 수축한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만나면서 국지적으로 강한 비구름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전준모 기상청 대변인은 “다량의 수증기가 남서쪽에서 한반도로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세를 넓힌 찬공기와 만나 국지성 호우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지구 기온이 올라가면서 대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의 양도 늘어나 이런 집중호우 현상은 앞으로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전날 기상청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려 충청이남과 강원북부 지역의 총강수량이 150㎜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국지성 호우는 26일 오전까지 전국적으로 이어지다가 오후에 서쪽 지역부터 차츰 그칠 전망이다. 동해안 지역은 27일까지 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압골의 영향으로 28~29일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 또 한 차례 비가 내린 뒤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다음달 3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전망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가장 추운 갈색왜성’에 물 존재하나?…증거 발견

    ‘가장 추운 갈색왜성’에 물 존재하나?…증거 발견

    지금까지 발견된 천체 가운데 온도가 가장 낮다고 알려진 갈색왜성이 ‘물얼음’ 구름에 휩싸여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과학전문주간지 사이언스매거진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만일 질퍽질퍽한 얼음으로 이뤄진 이 구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태양계 너머 외계에서 물로 된 구름을 ‘최초’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름이 둘러싼 목성 크기의 천체는 지금까지 갈색왜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 다른 항성을 공전 중인 차가운 거대 가스 행성의 한 유형일 수도 있다. 지구로부터 불과 7.3광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천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천문학자 케빈 루만 박사팀이 미국항공우주국(NASA) 와이즈(WISE) 적외선 우주망원경의 광범위 데이터(2010~2011년)를 조사하던 중 최근 발견했다. 갈색왜성은 흔히 ‘실패한 별’로 불리는데 질량이 매우 적어 지속적인 핵반응을 할 수 없으므로 차갑고 어둡다. WISE J085510.83-071442.5(혹은 WISE J0855-0714)로 명명된 이 갈색왜성은 지금까지 발견된 천체 중에서 가장 차가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천체의 온도는 물이 어는 점인 영(0)도보다 조금 더 낮아 지구의 평균 기온보다 더 춥지만, 목성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다. 미국 카네기과학연구소의 천문학자 재클린 파허티는 “발견 이후 이 천체를 관측해왔다”고 말했다. 이 새로운 ‘이웃’은 거대 가스 행성과 비슷한 데 목성만큼 크며 질량은 3~10배 정도 된다. 하지만 이 천체는 우리 시야에서의 관측을 방해하는 항성이 없는 ‘외톨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이 천체는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과 ‘바너드 별’, ‘루만 16’에 이어 우리 태양에서 네 번째로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천체는 작고 차가워 지상 기반의 천체망권경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희미하다. 파허티는 “이번 발견을 얻기 위해 와이즈 적외선 우주망원경과 씨름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칠레 소재 6.5m 마젤란-바데 망원경를 사용해 얻은 151장에 달하는 근적외선 이미지를 3일 밤 내내 조사한 끝에 물얼음 구름과 황화나트륨 구름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천체에 확실히 물얼음 구름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려면 좀 더 확실한 스펙트럼을 얻어야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관련 천문학자들은 허블 망원경을 대체하기 위해 2018년 발사예정인 차세대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웨브 우주 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20일 자로 게재됐다. 사진=사이언스매거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명(하) - 땅 이름, 無言의 역사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명(하) - 땅 이름, 無言의 역사

    땅이름(지명)은 가장 겸허한 모국어이자 무형문화재이다. 지명 속에는 그 지역의 내력이 오롯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명이란 무언(無言)의 역사이다. 지명에 몇 가지 요소가 덧붙여져 기록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볕을 쬐면 역사요, 달빛에 물들면 야사’(野史)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의 지명은 어떠한가. 한자와 이두(吏)와 우리글의 치열한 ‘3자 경쟁’에서 한자가 압승을 거뒀다. 순우리말 지명은 유일하게 서울이 살아남은 반면 소부리(부여), 한밭(대전), 솜리(이리)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은 땅속에 묻혔다. ●지명은 해당 지역의 ‘과거사’ 압축적으로 보여줘 지명은 지역의 내력과 곡절을 숨죽여 외친다. 삼국시대에는 오늘의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를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라고 했다. 이두로 ‘제차’란 구멍, ‘파의’는 바위이므로 ‘구멍바위’이다. 이를 한자로 공암(孔岩)이라고 옮겼다. 옛 한강 공암진 나루요 양천 허(許)씨의 발상지로 알려진 허가바위의 유래가 깃들어 있다. 또 이 바위는 큰 홍수 때 이웃 광주땅에서 떠내려왔다고 하여 광주바위라고도 불렸다. 또 한강을 건너 삼남지방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점인 노들나루가 있던 상도동에 전국 모든 장승의 우두머리 장승이 서 있다고 해서 장승백이(장승배기)라고 불렀지만, 지명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이처럼 지명은 해당 지역의 과거사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한 번의 잘못된 개명은 뜻을 일그러뜨리고, 사실을 비튼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땅이름은 우리말이었지만 기록에는 한자지명으로 남겼기에 우리말 지명이 홀대를 받은 측면이 있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체계는 부(部)-방(坊)-계(契)-동(洞) 4단계였다. ‘전국 방방곡곡’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한자식 행정체계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크든 작든 모든 마을을 ‘고을’이라고 했고,고을의 수령은 높든 낮든 모두 ‘사또’라고 불렀다. 토박이 지명은 조선시대 한자 지명화됐다가 일본 강점기에는 유래조차 짐작할 수 없는 엉뚱한 지명으로 변질됐다. 무쇠로 솥을 만드는 가마터와 대장간이 많이 있다고 하여 무쇠막 또는 무수막이라고 불리던 옛 수철리(水鐵里)는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금호동으로 개악됐다. 물 수(水)는 호수 호(湖)로, 무쇠 철(鐵)은 금 금()으로 멋대로 바꾼 것이다. 금호동이라는 지명에서 옛 대장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가. 없다면 잘못된 지명변경이다. 1914년 강제 행정개편 이후 불과 100년 사이에 잣골→백동→혜화동, 모래내→사천→남가좌동, 한내→한천→상계·중계·하계동, 배오개→이현→종로4가, 진고개→니현→충무로, 구리개→동현→을지로2가, 박석고개→박석현→갈현동 등으로 전혀 다른 엉뚱한 지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정도는 덜하지만 붓골→필동, 삼개→마포, 두텁마위→후암, 물치→수색, 새내→신천, 노들→노량, 복삿골→도화동, 삼밭→삼전동, 미나릿골→미근동, 쇠귀바위→우이동, 서래→반포 등 순우리말 지명의 억지 한자화도 지역의 유래와 특색을 퇴색시키고 있다. ●무악이 안산, 아단산이 아차산으로 바뀐 까닭 지명은 시간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작품이기도 하다. 대개 안산(鞍山)이라고 불리는 무악은 서울 풍수의 알갱이를 이루는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 못잖게 중요한 산이었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없다. 무악재라는 험한 고개에 도로가 놓이고 평평해지면서 안산이라는 평안한 이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 초기 풍수 중 ‘무악주산론’(毋岳主山論)이 있었다. 무악을 서울의 주산으로 정하고 오늘의 연세대와 이화여대 자리에 경복궁을 앉히자는 하륜의 주장이었다. 터가 좁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지만 ‘백악주산론’과 마지막까지 자웅을 겨뤘다. 태종이 종묘에 나아가 길흉을 점친 결과 백악이 우세하자 태종은 “나는 무악에 도읍하지 아니하지만, 후세에 반드시 도읍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무악의 기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비록 성 밖으로 밀려났지만 연희궁이라는 이궁이 무악 아래 지어졌다. 정종과 태종, 세종이 차례로 거했다. 세조 때는 서잠실(西蠶室)이라고 하여 양잠을 했고 연산군은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조선 최악의 내란이라고 일컫는 이괄의 난을 진압해 왕조가 이어진 장소가 바로 무악이기도 하다. 또 오늘날 연세대가 연희전문학교에서 출발했고 연희동에서 대통령이 두 명이나 나왔으니 태종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싶다. 서울의 외사산(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 중 용마산 부분이 좀 헛갈린다. 어떤 이는 용마산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아차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산은 다른 산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산이다. 서울의 외사산 중 좌청룡을 아차산으로 보고 아차산의 최고봉을 용마봉(348m)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고구려 유적지가 발굴되고 온달과 평강의 전설로 유명한 아차산의 지명 유래도 꽤 흥미롭다. 높을 아(峨)에 우뚝 솟을 차(嵯)를 써서 아차산이라고 하지만 높이가 285m밖에 되지 않으니 어울리지 않는 지명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각축지였다는 점에서 ‘내가 잠시 빌려 쓴(我借)’의 뜻으로도 해석하는 등 설이 분분하다. 아차산의 원 지명은 아단산(阿旦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삼국사기에 ‘아침 해’(旦)를 의미하는 신성한 터, 아단산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의 이름(李旦)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비슷한 글자를 썼다는 풀이다. 이른바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피휘(避諱) 때문이었다. 경북 대구(大邱)도 본디 대구(大丘)였지만 영조 때 공자의 이름(孔丘)과 같으므로 피휘해야 한다는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정조 때 바꾼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 ●청운동·옥인동·인사동은 일제가 만든 합성 지명 서울역사 이천 년의 풍상보다 36년 일제 식민지배의 훼절이 더 엄혹했다. 한국땅이름학회에 따르면 서울 동 이름의 30%, 종로구 동명의 60%가 일제 잔재라지 않는가. 해방 후 창지개명(創地改名)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으면서 우리 지명의 대부분이 원상회복되지 못했다. 개발연대 이후 우리 손으로 행한 개악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의 지명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합성지명이다.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청운동, 옥인동, 통인동, 인사동은 급조된 지명이다. 어느 날 갑자기 두 개의 지명을 합치면서 생겨난 정체불명의 이름이다. 일제는 행정개편이라는 이름 아래 멀쩡한 두 개의 지명을 하나로 합쳤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뤄진 지명말살정책이었다. 지명 속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얼과 문화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무서운 음모였다. 청운동은 청풍계(청하동)와 백운동에서 한 글자씩을 따 만들었다. 옥인동은 옥동과 인왕동의 합성이다. 유서 깊은 청풍계와 옥동이라는 지명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바위에 새긴 ‘백세청풍’과 ‘옥류동’이라는 글에서 비롯됐다. 청풍계천은 청계천의 발원지이며 청계천이란 이름의 연원이기도 하다. 인왕이라는 명칭은 인왕산에서 비롯됐다. 광해군 때의 기록에 따르면 인왕사라는 절 이름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 한양도성 안 최고의 경치 좋은 곳으로는 백악의 동쪽 삼청동천(삼청동)을 으뜸으로 쳤고 백악 서쪽 백운동천(청운동)과 인왕산 아래 옥류동천(옥인동) 그리고 낙산 서쪽 쌍계동천(동숭동), 남산 아래 청학동천(필동) 등 다섯 곳을 꼽았다. 여기서 동천(洞天)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수려한 골짜기를 이른다. 내 천(川)을 쓰지 않고 하늘 천(天)자를 쓴 것은 사람만 모여 즐기는 곳이 아니라 신선도 더불어 노닌다는 뜻이다. 우리가 백사실계곡이라고 부르는 부암동 백석동천이나 관악산 자하동천도 풍광에서 빠지지 않았다. 새로 만들어진 청운동과 옥인동이 지명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네 개를 둘로 줄이면서 사라진 것들이 아쉬울 뿐이다. ●흐리멍덩한 지명 회복 실패의 교훈 잊지 말아야 서울을 찾는 외국인관광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인사동이다. 한국적인 정취를 품고 있으며 인사동이라는 지명도 발음하기 쉽고 어감도 좋다. 그런데 인사동은 관인방의 인자와 대사동의 사자를 강제 결합시켜 지은 것이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대사동은 곧 탑사동인데 옛날에 원각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석탑만 남아 있다”고 유래를 전한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때문에 탑동, 사동, 대사동, 탑사동, 탑골 등으로 불렸고 지금도 탑골공원이나 파고다공원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백동(잣골)은 숭교방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숭동이라고 바꿨고 괴동(회나무골)은 의금부가 있는 자리라고 해서 공평동, 옥방동(옥방골)은 인의예지에서 따와 예지동, 사동(탑골)은 낙원동, 원동(원골)은 원서동, 상사동(상삿골)은 원남동이라고 작명했다. 15개 동의 새 지명이 생겼다. 수진방과 송현을 합쳐 수송동이 되면서 송현(솔골)이 사라졌고 옥동과 인왕산동을 합쳐 옥인동을 만든다고 옥동(옥골), 운동(구름재)과 니동을 합쳐 운니동을 만들면서 니동(진골), 육상궁과 온정동을 합쳐 궁정동을 만들면서 온천수가 나오던 온정동이 각각 사라졌다. 서울이라는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은 미군정청이 해방과 함께 일방적으로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지명을 회복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우리는 기존의 일본식 지명을 토박이 이름으로 되돌리지 않고 모조리 한자로 바꾸는 우를 범했다. 강제병합 이전의 지명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일본이 멋대로 변경하고 왜곡하고 합친 일본식 지명에서 정(町)을 동(洞)으로 바꾸는 데 급급했다. 세종대왕, 이충무공, 을지문덕 장군, 원효대사, 이퇴계, 민충정공 등 6명의 선현의 시호를 채택해 세종로(광화문통), 충무로(본정통), 을지로(황금정통), 원효로(원통) 등으로 가로명을 변경하는 데 그쳤다. 사라진 숱한 지명의 원혼 앞에 어찌 이리 덤덤한가. 현재 진행 중인 독도와 동해 표기전쟁은 한국과 일본의 지명전쟁이다. 독도냐 다케시마냐, 동해냐 일본해냐는 모두 지명선점 다툼이다. 해방 후 흐리멍덩한 지명회복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 성명(姓名)이 역사이듯 땅에는 지명이 역사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멸종위기’ 아기 구름표범 한쌍 공개 ‘심쿵 주의’

    ‘멸종위기’ 아기 구름표범 한쌍 공개 ‘심쿵 주의’

    초롱초롱 동그란 눈망울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기’ 표범의 모습에 요즘 많이 쓰이는 말로 ‘심쿵’(심장이 쿵이라는 줄임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州)에 있는 휴스턴 동물원에서 멸종위기의 새끼 표범 한 쌍이 태어나 주목받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휴스턴 동물원에서 지난 6월 처음으로 태어난 구름표범 한 쌍이 사진을 통해 공개됐다. 이 사랑스러운 두 표범은 태어난 직후 동물원 내 병원에서 수의사팀에 의해 24시간 집중관리를 받아왔다. 이는 이를 출산한 어미 구름표범 타라크가 초산이었기 때문. 타라크는 남편 수크슨과 함께 올해 2살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양잇과동물 중 가장 뛰어난 산악 명수인 구름표범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취약종(vulnerable)으로 분류되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이들의 개체 수는 총 1만 마리에도 못 미친다. 이는 산림파괴와 밀렵, 암거래와 같은 요인에 의해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가죽과 이빨, 발톱은 장신구 목적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구름표범은 히말라야 산 기슭을 따라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종면 칼럼] 이 땅의 젊은이를 춤추게 하려면

    [김종면 칼럼] 이 땅의 젊은이를 춤추게 하려면

    “젊은이여 깨어 있으라, 잠들어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한 6000여명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교황의 청년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4박5일간 방한 행사에서 ‘청년’이란 단어를 45번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교황의 ‘행복 10계명’ 중에는 ‘젊은 세대에게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자’는 것도 있다.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결코 꿈을 뺏기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지만 우리에게 과연 꿈꿀 공간은 있는가. 깨어 있다 한들 어디서 춤을 출 것인가.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지만 우리 주위에는 절망보다 못한 가짜 희망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철학자 헤겔은 이렇게 썼다.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금쪽 같은 말이다. 정치인 천정배와 시민운동가 차병직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라는 대담집에서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상의 나라, 허구의 나라, 불가능의 나라에 닿기 위해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 요컨대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로 여기 현실의 땅에서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 밭이랑만 곧게 갈며 정직하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그악하다. 반칙과 변칙이 판친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300명이 넘는 생목숨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엽기적이기까지 한 폭력 병영문화는 젊은이들을 끝없는 환멸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어린 학생들조차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도무지 전망이 서지 않는다. 도처에 드리운 짙은 먹구름을 거두어 내지 않는 한 누구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 감히 여기서 춤추라고 말할 수 없다. 절망의 문화를 넘어 믿음의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할 책무가 어른들에게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렇다 할 ‘어른’이 없으니…. 그래서 그렇게 너나없이 타는 목마름으로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외쳤나 보다. 교황의 방문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병통을 다시 한번 아프게 확인시켜 줬다. 지금의 난국은 교황이 강론에서 밝힌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무방비로 자신을 내맡긴 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업보다. 잃어버린 원칙과 상식을 되찾고 정의의 힘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혁신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다시 ‘세월호’다. 여야가 그제 사실상 유가족에게 특검추천권을 부여하는 세월호특별법에 재합의했지만 유족들은 난색을 표한다. 그 정도로 성역없는 진상 규명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특검후보 논의 과정에서도 유족의 입장을 반영할 여지는 많다. 유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하지만 ‘세월호 이후’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정서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 자칫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결단이 필요하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성직자의 첫 번째 임무”라고도 했다. 정치인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단식을 하면 벌써 실려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막말을 해대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그러니 세월호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해결 의지 자체를 의심하는 것 아닌가.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깨어 있는 젊은이들이 여기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정신적 불구자’들부터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약한 자들의 손을 꼭 잡아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이 징글징글한 ‘세월호 슬픔’의 강을 건널 수 있다.
  •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 수천년 숨결을 품었네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 수천년 숨결을 품었네

    꼬박 1858년 전 일이다. 서기 156년, 신라 왕 아달라가 계립령(鷄立嶺, 525m)을 연다. 현재의 충북 충주와 경북 상주를 잇는 고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이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니 기록으로만 따지자면 계립령은 우리나라 제1호 고개인 셈이다. 계립령은 요즘 하늘재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름처럼 하늘에 닿을 만큼 높지는 않다. 몇 군데 된비알도 있는데 숨찰 정도는 아니다. 선선해진 초가을에 설렁설렁 걷기에 딱 좋다. 길 곳곳엔 연륜만큼의 역사도 서렸다. 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즐겨찾기’ 해 둘 일이다. 계립령이 잇고 있는 두 마을의 이름이 독특하다. 충주 쪽은 미륵리, 문경 쪽은 관음리다. 현세의 고통을 구제하는 관음의 대자대비와, 내세의 염원이 담긴 미륵의 용화세상을 계립령 양쪽 기슭에서 동시에 만나는 셈이다. 우연치고는 묘하다. 이를 두고 일부 주민들은 “계립령은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이라며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보통 하늘재로 알려져… 6㎞ 떨어진 새재보다 1000년 빨라 계립령은 문헌상 제1호 고갯길이다. 저 유명한 단양 죽령도 이보다 2년 늦고 북쪽으로 6㎞ 떨어진 조령(새재)은 무려 1000년 뒤에야 열렸다. 계립령을 개척했다는 건 단순히 길 하나를 새로 낸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백두대간을 넘은 신라가 백제, 고구려와 교류하게 됐고 이후 한강을 넘어 삼국통일까지 이뤘기 때문이다. 계립령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포암산(962m)과 탄항산(857m) 사이를 여우목처럼 지나간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주요 교통로로 쓰이던 계립령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결정타는 조선 태종(1414) 때 열린 조령이 날렸다. 계립령보다 무려 천살이나 어린 조령이 영남과 한양을 잇는 ‘신작로’ 자리를 단박에 꿰찬 것이다. 이후 계립령은 세곡 운반과 군사 관문으로서의 지위를 조령에 내주고 시나브로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한데 역설적으로 이런 망각 덕에 계립령이 2008년 국가 명승 제49호에 지정될 수 있었다. 수천년 저쪽의 숨결을 비교적 온전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 명칭은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다. 계립령은 충주와 문경에서 각각 오를 수 있다. 한데 충주 쪽 길은 산자락을 에둘러 가는 흙길인데 견줘 문경 쪽은 아스콘 포장도로다. 걷는 맛으로 치자면 문경 쪽 도로는 충주 쪽에 댈 게 못 된다. 충주에서 들머리 노릇을 하는 곳은 미륵대원지다. ‘미륵대원’이라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다. 고려시대 계립령 일대엔 절집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계립령 북쪽의 미륵대원이다. 미륵대원지는 흥미로운 절터다. ‘한국 지형 산책’이란 책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미륵대원처럼 이름 뒤에 ‘원’자가 붙은 곳은 대개 여행자가 숙식을 해결하던 곳, 즉 역원의 역할을 담당하던 절집이다. 조선시대엔 국가가 역원을 운영했지만 고려 때는 절에서 담당했다. ●특이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미륵대원지의 미륵불 이런 절집엔 대개 ‘기골이 장대한’ 불상이 서 있기 마련인데, 미륵대원지에도 10.6m에 달하는 미륵불(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이 조성돼 있다. 한데 불상이 바라보는 방위가 특이하다. 나라 안 불상의 대부분이 남쪽을 바라보는 것에 견줘 이 미륵불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학계에선 이를 옛 고구려 땅을 회복하려는 고려의 북진사상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스토리텔링이 얹힌 옛이야기도 전해진다. 신라가 망한 뒤 마의태자가 누이 덕주공주와 금강산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충주에 이르렀을 즈음 덕주공주가 월악산 자락에 덕주사를 창건했다. 그러자 마의태자도 덕주사가 잘 보이는 미륵리에 불상을 세워 북쪽의 덕주사를 바라보게 했다는 것이다. 미륵불상은 외모가 빼어나다. 키도 늘씬하고 비율도 9등신은 족히 돼 보인다. 특히 얼굴은 시쳇말로 ‘간지난’다. 수없는 시간의 흔적이 쌓였을 법한데도 여전히 뽀얗다. 그 원인에 대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밝혀진 건 없다. 절터 초입의 거북 모양 귀부(비석 받침돌)도 꼼꼼하게 살피자. 미륵불상의 애완동물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데, 귀부 가운데 국내 최대라고 한다. 미륵대원지에서 위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하늘재 표지석과 만난다. 여기서부터가 실질적인 들머리다. 예서 고갯마루까지는 2㎞가 채 못 된다. 두어 시간이면 원점 회귀할 수 있다. 험상궂게 생긴 장승의 마중을 뒤로하고 오르면 구름다리 앞에서 또 한번 길이 갈라진다. 왼쪽 구름다리 너머는 생태관찰로, 오른쪽은 등산로다. 두 길은 얼마 뒤 합쳐진다. 길은 유순하다. 숲 한편으로 어린아이 오줌발 만한 계류가 흐르고 공기는 청량하다. 사람 발걸음이 적은 만큼 새소리는 한결 다양하고 또렷하다. 길 여기저기엔 옛 화전민의 흔적들도 남아 있다. 폭은 좁지만 길이 품은 역사는 넓고 깊다. 삼국시대에는 정치·군사적 요충지였고 민초들의 삶의 통로이자 불교문화의 전승로였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한, 그리고 계립령을 손에 넣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겠다던 고구려 장수 온달의 기백도 길 곳곳에 서렸다. 후삼국 시대 궁예는 상주를 치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고,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 행렬도 이 땅을 밟았다. ●야트막한 오름의 흙길 따라 ‘친구나무·연아 소나무’ 볼거리 야트막한 오름의 흙길은 아름다운 숲길의 정수다. 길을 따라 볼거리도 몇 개 있다. 표지판이 작아 지나치기 십상이니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친구나무가 먼저 나온다. 단풍나무 두 그루가 ‘X’ 자로 교차하며 자란 연리목이다. 분위기가 고즈넉해 사진 찍기 좋다. 정상 못미처엔 ‘연아 소나무’도 있다. ‘피겨 여제’ 김연아를 빼닮았다는 나무다. 머리 뒤로 한쪽 다리를 잡은 뒤 몸으로 방울 모양을 만들며 도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예서 정상까지는 다소 된비알이다. 밭은 숨 몇 번 내쉬고 나면 곧 정상이다. 왼쪽은 포암산, 오른쪽엔 탄항산이 우뚝하다. 멀리 백두대간의 산자락들도 마루금을 바짝 좁히고 있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 미륵대원지 아래는 저 유명한 월악산 송계계곡이다. 물 맑은 계곡에 들러 산행으로 쌓인 먼지와 땀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충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나들목으로 나와 597번 지방도 월악산국립공원 방향으로 가다 수안보온천 지나 미륵리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곧장 들어가면 미륵대원지 주차장에 닿는다. 수안보 관광안내소 845-7829. →맛집:원조중앙탑막국수는 막국수와 만두로 이름난 집이다. 메밀로 만든 면 위에 아삭한 메밀 새싹을 얹어 낸다. 원래 가금면의 중앙탑 인근에서 영업하던 식당인데 단월동으로 옮겨서도 손님몰이를 하고 있다. 메밀만두도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편이다. 848-5508. 중앙탑오리집은 담백하고 연한 오리탕을 2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는 집이다. 가금면 중앙탑 주변에 있다. 857-5292. →잘 곳:온천을 겸해 수안보에서 묵는 것도 좋겠다. 지금은 명성이 다소 퇴색했지만 수안보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주 찾았다는 등의 여러 기록들이 전해져 와 한때 ‘왕의 온천’으로 불렸던 곳이다. 가족 단위로 묵기 좋은 한화리조트(846-8211)를 비롯해 수안보상록호텔 등 다양한 등급의 숙박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아울러 살미면의 문강유황온천은 유황천, 앙성면의 앙성탄산온천은 저온 탄산천으로 널리 알려졌다. 미륵대원지 인근의 닷돈재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풀 옵션’ 캠핑장이 있다.
  • 온화한 미소?…거꾸로 생긴 무지개 포착

    온화한 미소?…거꾸로 생긴 무지개 포착

    마치 수염 난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처럼 구름 속에 거꾸로 생긴 무지개가 포착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최근 영국 블랙풀에 사는 한 남성이 자택 뒤뜰에서 하늘에 거꾸로 생긴 무지개를 카메라에 담아 공개했다. 웹디자이너인 이안 브룩스(43)는 지난달 우연히 하늘 위에 걸린 무지개를 목격했다. 이때 그는 이 무지개가 평소 볼 수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즉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사진으로 담았다. 이 무지개는 발견 이후 약 5분간만 보였다고 한다. 그가 찍은 무지개는 흔히 ‘거꾸로 생긴 무지개’ 혹은 ‘하늘의 미소’로 불리는 희귀 현상으로 기상학에서는 천정호(天頂弧, circumzenithal arc)라고 불린다. 이는 빗방울이 햇빛에 반사돼 생기는 보통의 무지개와 달리, 7~8km 상공의 옅은 권운 속에 있는 납작하고 소금 결정보다 작은 육면체 얼음 결정에 반사돼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운은 상층운에 속하며 털구름, 새털구름, 견운 등으로도 불린다. 따라서 천정호는 일반적으로 북극이나 남극과 같은 추운 지방 근처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천정호는 무지개와 반대로 빨강부터 보라까지의 스펙트럼이 밑에서부터 위로 진행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KTX 탄 교황 “빠른 기차 처음 타 봤다” 좋아해

    KTX 탄 교황 “빠른 기차 처음 타 봤다” 좋아해

    그로서는 늘 하던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파격’이라 불렀다. 취임 이후 찾았던 브라질, 팔레스타인에서 그랬듯 한국을 방문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느 곳에서든 군림하지 않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며 낮은 곳의 약자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방한 이틀째인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초 예정됐던 전용 헬기 대신 열차를 타고 대전을 찾았다. 일반 승객 500여명이 타고 있는 고속철(KTX)이었다. 교황은 이날 오전 8시 46분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운행하는 KTX 4019호에 승차, 50여분 만인 오전 9시 42분 대전역에 도착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에 따르면 교황이 탄 KTX는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서 교황 이동수단의 변동 가능성에 대비해 코레일 측의 협조를 통해 임시 열차로 편성해 놓은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일반 승객의 예매도 받았고, 대신 교황과 수행단을 위해 객차 두 량을 더 연결했다. 교황은 총 18량의 객차 가운데 4호 특실 객차를 이용했다. 경호를 위해 교황이 탄 특실과 연결된 나머지 특실 3개 객차에는 승객이 타지 않았지만 일반 객실 14량에는 승객 500여명이 탑승해 교황과 함께 대전으로 이동했다. 안개 때문에 안전을 고려해 이동수단을 바꾼 배경도 있지만, 평소 격식을 차리지 않는 교황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파격적인 행보였다. 유흥식 대전교구장은 “교황께서 ‘빠른 기차는 처음 타 봤다’면서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대전역에 영접 나온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교황께서 타실 수 있도록 구름이 끼게끔 기도했다”고 말하자 교황은 “기도 때문에 KTX를 탈 수 있었다”며 농담으로 화답했다. 사람을 대할 때면 스치듯 손을 맞잡는 짧은 순간에도 마치 단 둘만이 외딴 방에 있는 듯 진심어린 눈빛과 말을 주고받았다. 도착 첫날 차마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짓는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손을 꼭 쥔 채 왼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더욱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날 역시 마찬가지. 성모승천대축일 직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해 받은 노란 리본을 직접 왼쪽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세월호 참사 해결 방안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답답해하던 유가족들로서는 대단히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현장에서 쏟아진 반응이다. 세월호대책위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은 교황을 만난 뒤 “간접적으로 우리의 뜻을 피력하긴 했지만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특히 미사 때 교황님이 리본을 달고 나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교황이 탄 대전행 KTX에서 여객서비스를 맡은 승무원 신상희(40)씨에게도 겸손함의 품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신씨는 “교황께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줄 때마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황은 자신이 쓴 책에 ‘신상희님, 축복과 함께 저를 위한 기도를 부탁합니다’라고 스페인어로 쓴 뒤 신씨에게 선물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화과/김인구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화과/김인구

    무화과/김인구 내 안에 우물은 없단다 겹겹의 문을 열어젖혀도 샘이 마른 우물가 제 흔적을 지우고 돌아앉은 풍경 사이로 휙, 나뭇잎 하나 마당 귀퉁이를 휘돌다 내 안의 물길에 얹혀도 인기척 하나 내지 못하는 닫힌 문틈 사이로 파랗게, 노랗게 하늘 한 자락 나를 비웃고 가는 길 쓰다듬고 더듬어도 더듬이가 달리지 않는 이마에선 불빛이 일지 않는다 꽃물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꽃핀 적 없는 내 몸에 환한 달 구름 한 송이 꽃으로 걸릴 때까지
  • 타이탄 북반구에 여름 왔나?…카시니호, 구름 포착

    타이탄 북반구에 여름 왔나?…카시니호, 구름 포착

    토성의 최대 위성인 타이탄의 북극 근처에서 구름이 관측돼 마침내 이 위성의 북반구에 여름이 온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산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12일(현지시간)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號)가 타이탄 북극 근처에 있는 탄화수소로 이뤄진 ‘리지아 바다’(Ligeia Mare) 위를 가로지르는 구름을 이틀간에 걸쳐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 구름의 움직임으로 풍속은 초속 3~4.5m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미지는 카시니호가 지난 7월 말 타이탄 상공을 저공비행한 뒤 그 위성으로부터 멀어지는 시점에서 새롭게 얻은 것이다. 카시니호는 2004년 토성계에 도착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수년간에 걸쳐 타이탄의 남극 부근에서만 구름을 목격하면서 남반구가 여름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구름은 타이탄의 북반구에서 관측돼 봄이 된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지난 2010년 말에 거대 폭풍이 발생하면서 구름이 모두 사라졌다. 따라서 카시니호로 관측할 수 있는 구름의 수와 규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타이탄의 대기 순환을 보여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는 북반구에 여름이 찾아오면 대기 온도가 상승해 구름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으므로 구름의 활동이 없어진 것에 연구팀은 놀라워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응용물리학연구소의 엘리자베스 터틀 박사는 “우리는 이 구름의 출현이 여름형 날씨의 시작인지 아니면 단지 고립된 발생인지 확인하려 했다”면서 “또한 타이탄의 바다와 구름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우연히 카시니호가 해상의 구름을 사로잡은 것뿐인지 아니면 해상에서 구름이 우선으로 발생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탄의 1년은 지구의 약 30년으로 매우 길며 계절은 약 7년마다 변한다. 타이탄의 북반구에 여름이 찾아오면 남반구는 어두운 겨울이 된다. 타이탄의 계절 변화를 관측하는 것은 카시니호의 주된 임무 중 하나다. 사진=JPL/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무용 총예술감독 윤덕경 서원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무용 총예술감독 윤덕경 서원대 교수

    태초의 언어는 ‘몸짓’이었다.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은 몸으로도 말을 한다. 때로는 귀로 듣는 말보다 진하고, 때로는 노래보다 더 감동스럽다. 허공을 향하는 무한한 몸짓은 구슬프기도 하고 감동의 예술로 승화된다. 그 모습은 영원한 잔영으로 가슴을 붙들어 매게 한다. 작품 하나를 잠시 감상해 본다. ‘열 두발 상모 흥에 취해 돌고 잦은 가락 속에 서로는 어깨를 들썩이고 어느새 판은 하늘 별 구름 달 벗삼네/지난 밤 꿈자리 뒤숭숭해 벌떡 일어나 달빛 고요한 곳에 물받아 올려 몸을 씻는다/고통은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은 다시 이어지고 어이 할까 어이 하리~/생은 여전하고 나와 너 오늘처럼 여전하기를 펄럭이는 대지가 그저 바람을 닮기를, 그 바람을 타고 여전히 말 달리기를~’ 무용 ‘어~엄마 웃으섯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철용(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이사장) 전 국회의원의 원작 대본을 새롭게 각색했다. 이 작품은 오는 10월 21일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소외된 정신지체 장애자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그런 자녀를 둔 어머니의 심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장애자들이 가장 소외된 문화장르인 ‘춤’으로 형상화됐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서로의 가슴과 머리를 맞대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용이다. 윤덕경(60) 서원대 교수는 1997년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이 작품을 의욕적으로 처음 무대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장애인의 얘기를 춤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후 60여회 공연하면서 사회에 적잖은 이슈를 던져왔고 대표적 장애인 소재의 창작무용으로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문화공연의 일환으로 올려질 ‘어~엄마 웃으섯다’는 새로운 안무와 각색을 통해 장애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아픔을 사랑과 주변 공동체의 힘으로 확장했다. 스토리텔링의 극적 전개의 이미지도 새롭게 보여줄 예정이다. 아울러 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문자답의 형식을 새로 추가했다. 총예술감독을 맡은 윤 교수가 안무도 하고 직접 출연한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연습실에서 윤 교수를 만났다. 그는 올해로 춤인생 40년을 맞이한다. 그 세월 동안 인간을 주제로 인간이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매김하고 인간 삶의 여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내용들을 주로 다뤄 왔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자연의 올바른 만남을 밖에서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춤동작, 춤의 언어로 치열하게 토해냈다. 1982년 서독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공연을 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 때 ‘떠나가는 배’의 안무를 맡아 국내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전문 무용단이 부재했던 1989년 ‘윤덕경무용단’을 창단해 현재까지 체계적인 한국 창작무용의 표현법을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다. ‘어~엄마 웃으섯다’를 무대에 올리게 된 배경부터 물었다. ‘~웃으섯다’는 더듬거리는 장애인의 발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 “이철용 선생님을 1995년에 처음 만났을 때 장애인을 소재로 한 대본을 써줄 테니 무대에 올려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장애인 자식을 둔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고민을 하다가 시각장애인을 만나 여러 가지 불편한 경험을 들었고 대학로에서 종로5가까지 휠체어를 직접 타고 가면서 자신을 얻었지요.” 1996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시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첫 작품 ‘우리 함께 춤을 추어요’를 대학로 아르코극장 무대에 올렸다. 객석이 텅텅 비면 어쩌나 걱정을 했으나 예상과 달리 많은 관객들이 찾아왔다. 대성황이었다. 내친김에 ‘어~엄마 웃으섯다’를 이듬해 무대에 올리면서 지금까지 60회가 넘는 국내외 공연을 하게 됐다. 2000년 독일국제무용예술제에 초청받았으며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일환으로 워싱턴 케네디센터, 노스캐롤라이나와 뉴욕 공연에서 성공리에 공연을 하면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어~엄마 웃으섯다’는 씻김굿과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이다. 어머니의 이미지를 한국 정서에 부합해 부모의 아픔을 춤으로 표현하고 결국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서 함께 극복해 나간다는 내용으로 장애인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러한 작업을 위해 수화를 배우고 장애인 자식을 둔 어머니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체험을 통해 그들의 감정 표현에 충실해 왔다. 특히 2010년에 ‘하얀 선인장’을 통해 국내 무용작품 사상 보기 드물게 신체 장애인 무용수를 직접 무대에 등장시켜 주목을 끌었고 이런 인연으로 장애인 제자까지 생겼다. 이에 대해 무용평론가 김경애씨는 “신체 장애인들이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안무자는 의욕을 갖고 멀티미디어를 동원해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기량 있는 전문 무용수들의 춤과 감동을 주는 장애자들의 참여 노력, 그리고 시각적인 연출력으로 상생의 효과를 잘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때 윤 교수는 주위를 수소문해 장애1급부터 5급 척추장애, 뇌병변장애 등 8명의 장애인들과 호흡을 함께했다. 휠체어 5대가 무대 위에 굴러다니며 음악에 맞추고 흩어지는 춤사위를 연출한 것도 윤 교수만의 독특한 연출 기법이었다. 이렇듯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장애인을 위한 무용에 집중한다. 원래 그는 첫 창작작품 ‘연에 불타올라’(1983년)를 시작으로 한국 여인을 생각나게 하는 ‘가리마’(1986년), ‘사라진 울타리’(1987년), ‘빈산’(1989년), ‘밤의 소리’(1991년), ‘보이지 않는 문’(1992년) 등을 발표하면서 인간에 대한 인식과 확인, 인간과 자연에 역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그의 춤인생 전반부는 자연의 섭리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내면의 갈등이나 이념을 표현했으며 중반 이후에 들어서 장애인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춤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의욕이 강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 누구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사회적인 인식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작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1996년부터 장애인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사막 한가운데 있는 선인장 같은 장애인들은 하얀 가시로 제 살에 상처를 내며 분노와 절망으로 몸을 방어하며 살아가거든요.” 그의 이 같은 호소와 노력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장애인예술과까지 생겨났고 음지에 있던 장애인들을 양지로 나오게 했다. 그가 대극장 무대 위주로 공연을 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서울시내 3개 고등학교를 찾아가 직접 장애아들을 지도해 오고 있다. 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신념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법인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부이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무용공연,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가 함께하는 융·복합공연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무용과 인연이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하굣길에 우연히 장구 소리를 듣고 그곳을 찾았더니 동네 무용학원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장구를 치고 있는 광경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이때부터 자주 무용학원에 들러 장구 치는 모습을 보게 됐고 아버지한테 무용학원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춤이냐,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반대했다. 이를 본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학원비를 주고 무용학원에 다니게 했다.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춤을 추고 장구를 배우는 일이 신났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때까지 무용을 배웠고 이화여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그때서야 반대하던 아버지도 무용가가 되는 것을 허락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용 공부를 하게 됐던 것이다. 대학 때는 무용가 김매자씨를 지도교수로 삼았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는 건국대에서 받았으며 고 한영숙 선생과 강선영 선생에게 한국춤을 별도로 배웠다.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 지정받아 한국 전통무용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창무회’ 대표를 맡아 창작춤 발전에 많은 노력를 하기도 했다. 장애인 무용 외에도 1년에 한 번씩 창작춤 발표회를 갖는다. 오는 10월 1일에는 용산아트홀에서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가 함께하는 융·복합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윤 교수만의 춤의 미학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윤덕경 교수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덕여고를 나온 뒤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 한영숙과 강선영 선생한테 한국 전통춤을 배웠다. 이화여대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창무회’ 대표를 맡아 창작춤 발전에 많은 노력을 했다. 1989년 ‘윤덕경무용단’을 창단해 현재까지 체계적인 한국 창작무용의 표현법을 연구해 오고 있다. 주요 국외 공연으로는 독일과 미국의 뉴욕, 워싱턴, 하와이, 캘리포니아, 홍콩 등지의 예술제에 참가했으며 헝가리 세계무용제를 비롯해 멕시코·독일·캐나다 국제무용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예술공연제, 중국 선전 등의 공연에도 참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안무를 맡아 서울올림픽 문화기장을 받았으며, 장애인에 관한 문화예술 활동과 복지 증진에 기여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서원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단법인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 사단법인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로 지정받아 한국 전통무용의 맥을 잇고 있다.
  • 해외여행 | 멕시코 Mexico- 당신의 허니문이 코수멜이어야 하는 이유

    해외여행 | 멕시코 Mexico- 당신의 허니문이 코수멜이어야 하는 이유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허니문은 코수멜Cozumel Island이 어떻겠냐고. 일생에 한번은 코수멜을 방문해야 했던 마야 여인들처럼, 일생에 한번은 멕시코를 여행해야 하고, 그것이 허니문이라면 코수멜인 것이 좋겠다고. 코수멜은 아주 먼 옛날부터 생명의 섬, 잉태의 섬이었으므로. 이스라 코수멜 Isla Cozumel 코수멜섬은 멕시코만 하단에서 불쑥 솟아오른 유카탄 반도, 그 반도에서 20km 떨어진 캐리비안 해상에 자리잡고 있다. 킨타나 오Quintana Roo주에 속해 있으며 섬의 수도는 산 미구엘. 멕시코 최대의 유인도이자, 마야 유적지와 해양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해마다 200만명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크루즈 기항지다. 새들이 먼저 발견한 낙원 아마도 당신은 지구상에 ‘코수멜’이라는 섬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 처음 들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멕시코는 대한민국에서 너무나 먼 나라이고, 마야 문명은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코수멜은 제주도보다도 작은 섬이니 말이다. 그나마 정보다운 정보를 준 사람은 칸쿤에서 만난 미국인 밥 할아버지였다. “코수멜에 간다고? 페리를 타고 섬에 도착하면 선착장 앞에 커다란 제비상이 있을 거야. 코수멜은 제비의 땅Cuzaam Luumil이거든. 그래서 원래 이름도 쿠싸밀Cuzamil이었고. 남아메리카로 이동하던 제비떼가 쉬어 갔던 곳이 코수밀이었거든. 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야 이런 사실에 관심도 없지만.” 제비처럼 날쌘 페리는 육지를 떠난 지 30분 만에 코수멜 선착장에 주민들과 뒤섞인 여행자들을 쏟아냈다. 정말로 선착장 입구에는 커다란 새 조각상이 날개를 활짝 펼쳐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밥의 귓띔이 아니었다면 사실 제비인 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제비들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아봤던 ‘쉬어 갈 만한 섬’ 코수멜은 지금 캐리비안해를 항해하는 크루즈십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항지가 됐다. 코수멜의 크루즈 선착장에는 비수기에도 한 달에 5~9척, 성수기에는 무려 25~32척의 크루즈가 입항한다. 마이애미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크루즈 선착장이다. 이 때문에 제주도와 비교해 면적647km²은 3분의 1이고, 인구약 8만5,000명는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코수멜은 연간 200만명이 방문하는 멕시코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오로지 당신에게 허락된 시간일 뿐. 저녁이 되면 다시 배를 타고 떠나 버리는 성마른 여행자들을 위해 코수멜은 효율적인 ‘수용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를 테면 ‘찬카납공원Chankanaab Park’이 그렇다. Chakanaab Beach Adeventure Park South Coastal Road 5 miles 성인 21달러, 어린이 14달러 월~토요일 08:00~16:00 스쿠버다이빙 45달러, 스노클링 15달러 www.cozumelpark.com 바다놀이터, 찬카납해양공원 찬카납은 작았다. ‘작은 바다Little Sea’라는 뜻의 마야 이름 그대로 이 천연의 라군은 잔잔한 연못 같았다. 잠시 구름에 가렸던 햇빛이 물속을 비추는 순간, 커다란 크랩 한 마리가 바위틈으로 나왔다가 산호 사이로 사라졌다. 그 뒤를 쫓아 뛰어들고 싶지만 찬카납 라군에서는 수영이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은 바다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와 해양동물들이 살고 있는지는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다. 최고의 자연수족관이라는 표현대로다. 찬카납은 작지만 찬카납해양공원은 작지 않다. 1980년에 해양생태계 보존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사람의 접근을 막는 대신 자연과 인간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그래서 찬카납해양공원은 멕시코의 역사, 문화, 자연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어드벤처비치파크가 됐다.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자연 풀장에서의 수영은 물론이고 바다로 조금만 나가도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명소가 나온다. 공기호스가 연결된 헬멧을 쓰고 잠수할 수 있는 씨트렉Sea Trek도 있고 물개쇼도 진행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기 높은 프로그램은 역시 돌핀 수영이다. 돌고래를 품에 안아 보거나 수영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해양스포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수백 종의 열대 식물이 자라는 정원을 거닐거나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고, 데킬라 테이스팅을 할 수도 있다. 좀더 아드레날린을 분출할 방법을 찾는다면 지프라인을 추천한다. 시작하자마자 맥없이 끝나 버리는 단 한번의 줄타기가 아니라 7개의 타워 사이를 날아서 이동하는 장쾌한 경험이다. 처음에는 발을 떼기조차 두려워하던 사람들도 거의 1km에 달하는 지프라인 비행을 마치고 나면 개인기 현란한 공중묘기를 마다하지 않는 지프라인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천국의 수심은 제로 결국 다른 표현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코수멜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상의 낙원’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에 ‘낙원 인증’만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특히 그 낙원이 물속에 있다면 말이다. 코수멜은 멕시코에서 온두라스까지 캐러비안해를 따라 1,000km 정도 이어진 그레이트 마얀 리프Great Mayan Reef에 속해 있다. 65종의 경산호와 350종의 연체동물, 비늘돔, 해면동물, 노랑가오리 등 500여 종의 물고기로도 모자라 예수상, 성모상도 바다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더 흥분되는 소식은 이 바다의 수질이다. 26~27℃ 사이의 따뜻한 수온, 60m 이상의 가시거리라니. 하지만 코수멜은 이 장점도 가볍게 넘어선다. 코스멜과 리비에라 마야 지역의 지질은 온통 석회암이라 땅 아래에는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복잡한 수중 동굴들이 형성되어 있다. 입구와 출구를 표시한 수중지도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당신은 다이버가 아니고 그리하여 천국은 너무나 멀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수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당신을 위해 거북이들이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알을 낳고, 악어들이 기슭에서 헤엄치고, 심지어 돌고래는 당신의 발끝을 밀어 수중에서 뛰어오르게 도와주기도 한다. 코수멜은 아름다운 해변과 100여 개가 넘는 리조트(코수멜은 4,200여 실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로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마얀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남북 길이는 약 48km, 동서 폭은 16km 정도니 렌터카를 빌리면 섬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얼음을 채운 블루 마가리타 한잔을 옆에 놓고 하루 종일 해변에 누워 있다가 밤이 되면 섬의 수도인 산 미구엘San Miguel의 델 솔 광장으로 내려가 라이브 음악에 맞춰 살사를 춰도 좋다. 천국에 대한 증언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별이 빛나는 천국의 바다 코수멜은 작지만 단조로운 섬이 아니다. 본토와 마주보고 있는 서해안에는 수도 산 미구엘San Miguel을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과 리조트들이 몰려 있고, 식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이 제한된 동해안에는 고즈넉한 프라이빗 해변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올인크루시브로 운영되는 이슬라 파시온Isla de Pasion은 하루 나들이로 좋은 곳이다. 산 미구엘의 선착장을 출발해 30분 정도 달리면 옥빛 라군으로 포위된 섬에 도착한다. 입장료에 왕복 배편과 해먹, 선베드, 샤워 사용, 발리볼, 수중 트램폴린, 카약, 페달 보트뿐 아니라 오픈 바에서 제공되는 음료수와 점심식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아보카도를 듬뿍 넣은 과카몰리Guacamole, 닭고기 바비큐, 마히 마히 생선요리 등을 즐길 수 있다. 섬 전체가 그레이트 마얀 리프에 속해 있는 코수멜은 어디서 스노클링을 해도 실패하지 않지만 특별히 엘 시엘로El Cielo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불가사리 때문이다. 바다 속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이름이 ‘천국’이다. 코수멜의 별은 그리 깊지 않은 곳에 있어서 수영을 잘 하는 사람들은 맨몸으로 잠수해서 불가사리를 만져 볼 수도 있을 정도다. 동해안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 있으니, ‘색의 전망대’라는 뜻의 깔라 미라도르Cala Mirador다. 나뭇가지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고스란히 살린 가구와 조형물을 해변에 전시하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바다에 펼쳐지는 푸른색의 스펙트럼은 일일이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코수멜 토박이인 레이몬은 이 경치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최근 바를 오픈했는데 그 바텐더가 바로 해변에 전시된 작품들의 조각가이니, 멋진 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Isla de Pasion Carretera Costera Norte, Cozumel 77600, Mexico 어른 45달러, 어린이 30달러 보트출발 9:00, 11:00, 13:00(섬 체류 약 5시간) +52 (987) 872 5858 www.isla-pasion.com Cala Mirador Carretera Oriental 28km Cozumel, Quintana Roo, Mexico 10:00~16:00 +52 (998) 213 6968 소녀, 악어를 만나다 한국에 돌아온 지 2주쯤 지났을 때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잘 돌아갔나요? 여긴 이미 거북이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지난 2주 동안 12개의 거북이알 둥지를 발견했답니다. 알아요. 많은 숫자가 아니죠. 하지만 우리가 계속 찾아볼 거예요. 또 연락해요. 친구.” 발레리아Gaia Valeria Romero는 코수멜의 콜롬비아 라군에서 악어를 관찰할 때 만났던 현지의 소녀였다. 이제 겨우 15살의 그녀는 악어와 거북이, 맹그로브 숲 등 섬의 해양생태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7살 때부터 FPMCQROOFundacion de Parques y Museos de Cozumel, Quintana Roo, 킨타나루 코수멜 공원박물관재단에서 지원하는 에코프로그램에 꾸준히 참가했기 때문. “매년 이 바다에 2만5,000여 마리의 거북이가 찾아와 산란을 해요. 5월부터 산란을 시작하는데 그 둥지가 6,000여 개나 되죠. 부화는 2달 정도 있다가 시작되어 10월까지 이어져요. 새끼 거북이가 태어나 바다까지 무사히 돌아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이 지역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어요. 그래서 수영은 절대로 금지예요. 대신 바다거북을 관찰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죠.” 멕시코 정부는 1990년부터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지만 바다거북은 여전히 위기종이다. 킨타나 오주에서는 13개의 붉은바다거북loggerhead turtle 보존구역이 있는데 코수멜 최남단의 푼타수르에코비치파크Punta Sur Eco Beach Park가 그중 하나다. 라군, 맹그로브, 산호, 해안 사구 등의 다양한 지형을 관찰할 수 있고, 각각의 지형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악어, 거북이, 새 등도 더불어 만날 수 있는데 발레리아를 만났던 콜롬비아 라군도 그중 하나다. 수심이 깊지 않은 콜롬비아 라군Colombia Lagoon에는 악어를 가장 가깝게 그리고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브릿지와 타워를 설치했다. 이곳에 사는 악어 옐로아메리카 크로코다일은 코수멜의 고유종으로 가장 큰 것이 400kg 정도라고 했다. 대형 악어종이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동작이 날쌔다. 코수멜의 그 요란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 곳은 셀라라인 등대Faro Celarain 전망대다. 공원입구에서 8km 정도 들어가면 섬의 가장 남단에 서 있는 하얀 등대를 발견할 수 있다. 수백년 동안 이 섬을 거쳐 갔던 탐험가와 해적들의 흔적은 등대 1층에 마련된 항해문화박물관Navigation and Cultural Museum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FPMCQROO 찬카납 어드벤처비치파크, 푼타수르에코비치파크, 코주멜뮤지엄, 산 헤르바시오 유적지 등을 운영하고 그 수익을 지역사회와 자연보호에 환원하는 비영리재단으로 300여 명의 장학생 선발, 여름 캠프, 문화예술 워크숍, 공예품 워크숍, 전통문화보호, 바다거북보호 프로그램, 맹그로브조림프로그램, 해변청소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Punta Sur Eco Beach Park South Coastal Road 15 miles 어른 12달러, 어린이(3~11세) 8달러 주차 시간 | 월~토요일 09:00~16:00 마야는 머물지 않는다 앞서 말했지만 코수멜은 마야여인들이 일생에 한번은 꼭 방문해야 했던 성지였다. 결혼식을 올린 후 이 섬을 방문해 잉태와 풍요의 여신 익셀Ix Chel에게 경배를 올려야만 신성한 결혼의 의식을 온전하게 마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신과 순조로운 출산을 기원하는 여인들의 정성은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당시 여인들이 경배를 올렸던 익셀 여신의 신전이 아직도 코수멜에 남아있다. 코수멜에 있는 6개의 마야 유적지 중 최대 규모인 산 헤르바시오San Gervasio Archaeological Site가 대표적인 장소다. 코수멜 북동부의 작은 정글 안에서 발견된 소규모의 정착지들은 AD300~600년 사이에 형성된 지구도 있고, AD1,250~1,500년대에 형성된 지구도 있다. 그중에서 3,000여 명이 흩어져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 헤르바시오는 백색의 포장도로Sacbeeob를 통해 다른 정착지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돌과 조개껍데기 등을 섞어 재료로 사용해 밤에도 달빛을 반사해 길을 잃지 않도록 설계한 것. 이토록 높은 수준을 자랑했던 마야 문명이 스페인 침략 이전에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수학, 천문학, 기상학에서 놀라운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마야인의 건축은 그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데, 예를 들어 마야인들은 4계절(혹은 4방향)이 13번 반복되면 세상이 끝난다고 생각했기에 52년마다 살던 도시를 버리고 새로운 도시로 이동했다고 한다. 산 헤르바시오도 그렇게 52년간 살았던 도시 중 하나일 뿐이지만 정글 속에서 1,000년을 굳건하게 서 있다. 마치 콘크리트처럼 견고해 보이는 건축들은 모두 산호와 고무를 혼합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 때로는 편백나무에서 흘러나온 호박amber에 고무를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산 헤르바시오의 유적들은 마야의 건축 중에서도 높이가 낮은 동해안 양식East Coast Style으로 분류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은 손’이라고 불리는 주택인데, 건축가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하는 벽면의 손자국이 아직도 선명하다. 바닥이 아니라 돌침대에서 잠을 잤고 하수도 시스템이 있었으며 음식을 시원하게 저장하는 지하동굴 저장고도 있었다. 또한 노예제도를 갖지 않았고 일처일부제 였으며 카카오를 화폐로 사용했고 옥수수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마야 문명 이후 코수멜은 멕시코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침략과 식민지화, 기독교 개종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무역항으로 발달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캐리비안의 해적들에게 숱한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1571년 해적 산프로이Sanfroy의 침략을 시작으로 1700년대까지 많은 해적선들이 코수멜섬을 근거지로 삼아 본토를 공략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섬 주민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코수멜에 인구가 다시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것은 1847년 마야 인디언과 비인디안 사이에 일어난 ‘카스트 전쟁’을 피해 온 이주민들 때문이었다. 승세가 완연했던 이 전쟁에서 마야 인디언들은 농번기가 되자 농작지로 돌아갔고, 이 기회를 틈타 정부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역도들을 일망타진하고 말았다. 이 혼란을 피해 많은 난민들이 코수멜에 정착했고 이후 껌의 원료일 치클과 로그우드Logwood를 수출하여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코수멜의 사포딜라 나무에는 치클을 추출한 상처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코수멜은 관광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의 주도하에 세계적인 리조트 휴양지로 개발된 칸쿤에 비해서 인지도는 낮지만 코수멜은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였다. 그리고 거대한 리조트와 쇼핑점들이 줄지어 있는 칸쿤의 상업적인 느낌이 싫은 사람들은 여전히 코수멜을 선택한다. 코수멜을 다른 휴양지와 다르게 만드는 초강력 에너지는 ‘생명력’이다. 풍요와 잉태를 약속했던 익셀 여신의 정령은 코수멜의 자연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이 섬에 들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축복처럼 나눠 준다. San Gervasio Archaeological Site Carretera Transversal Km. 7 성인 9.5달러, 어린이(10세 미만) 무료 주차시간 | 08:00~15:45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멕시코정부관광청 www.visitmexico.com 코수멜관광청 www.cozumel.travel ▶travel info Cozumel Island Airline & traffic 멕시코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서 일본을 경유해야 한다. 아에로멕시코항공(www.aeromexico.com)은 일본 도쿄에서 멕시코시티까지 직항편을 운행하고 있으며 멕시코 내에서 국내선 연결 노선은 다양하다. 코주멜섬까지의 비행편도 있지만 본토에서 배를 이용할 경우에는 유카탄 반도의 동해안인 리비에라 마야의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에서 코수멜까지 30분 정도 페리를 탑승하면 된다. 울트라마르Ultramar와 멕시코 워터젯Mexico Waterjets 두 개의 페리선사가 있으며 비용은 왕복 16달러 정도다. Hotel B라고 불리는 일류 부티크 호텔-Hotel B Cozumel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예 호텔 B의 선착장에 내렸다. 놀랍게도 오후 4시의 호텔 B 수영장은 라이브밴드의 연주를 즐기는 선남선녀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수영장이 아니라 마치 ‘최상급 수질’의 클럽에 온 것 같았다. 2001년 문을 연 이 부티크 호텔이 그 동안 호텔 B가 추구해 온 아방가르드 정신이 자리를 잡은 결과이리라. 부티크 호텔답게 모든 소품들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멕시코 전통 수공예품이거나 디자인 제품으로 직접 판매도 하고 있었다. Carr. Playa San Juan Km 2.5 Zona Hotelera Norte C.P. 77600 +52 (987) 87 20 300 www.hotelbcozumel.com 또 하나의 완벽한 휴가-Occidental Grand Cozumel Resort 맹그로브 숲에 둘러싸여 있는 옥시덴탈 그랜드 코수멜 리조트는 아름다운 정원 사이에 6개의 레스토랑, 4개의 바, 3개의 수영장이 흩어져 있는 대규모 리조트다. 올인크루시브 리조트답게 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리조트 내부의 수영장과 해변 근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고의 다이빙 지역으로 뽑히는 팔랑카 산호Palancar Reef가 가까이 있으며 코수멜 스노클링 명소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엘 시엘로로 출발하는 보트도 리조트 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별도의 데이패스를 구입하면 식사와 해변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로열클럽으로 업그레이드하면 클럽 라운지 무료 이용과 개인풀장, 카레타 레스토랑 이용 등이 가능해 리조트 안에 또 다른 럭셔리 리조트를 체험할 수 있다. Kilometro 16.6 Carretera Sur, El Cedral, San Francisco, Palancar 77600-Cozumel, Quintana Roo, Mexico +52 (987) 872 9730 www.occidentalhotels.com Restaurants 집에서 먹는 저녁-Casa Mission Restaurant 넓은 정원에 둘러싸인 오래된 콜로니얼 스타일의 고택에서 흘러나오는 마리아치들의 연주. 그 음악에 곁들이는 데킬라 한잔. 이것이 코수멜 최고의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까사 미션의 선물이다. 은퇴한 정부관료나 고관들이 살았던 이 고택은 현재 미란다 가문Miranda Morales의 소유인데, 거실 공간만을 레스토랑으로 사용할 뿐 내부의 주거공간은 그래도 보존하고 있어서 살짝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신선한 해산물 요리의 항연 끝에 ‘불꽃쇼’를 통해 만드는 특별한 커피 후식도 근사하다. 여러 가지 해산물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콤비네이션 메뉴Combinacion Mexican가 221 멕시코페소 MXN다. Avenue between Avenue Juarez and 1º Sur. Street Cozumel, Quintana Roo, Mexico 7:30~23:00 +52 (987) 872 1641 www.missioncoz.com 퓨전 멕시코 요리-Kondesa Cozumel Restaurant 뉴욕에서 요리를 공부한 크리스가 2012년 말에 오픈한 레스토랑. 셰프였던 아버지와 멕시코 출신인 어머니의 DNA를 골고루 자신의 요리철학에 적용하고 있어서인지, 콘데사의 메뉴는 전통적인 멕시코 요리와는 다른 퓨전스타일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요리교실도 운영하고 있는데, 물론 모든 재료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든 테이블은 마치 자연 속에서 식사를 하는 느낌이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칵테일을 주문할 수 있는 바와 홀은 밤새토록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편안함이 있다. 5ta Av. between 5 and 7 South#456, 77600 Cozumel, Quintana Roo, Mexico +52 (987) 869 1086 www.kondesacozumel.com 데킬라의 재발견 까사 미션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유명한 데킬라 브랜드인 로스 트레스 토노스Los Tres Tonos의 시음과 데킬라 투어를 할 수 있다. 3대째 데킬라를 만들고 있는 노스 트레스 토노스는 100% 블루 아가베Agave를 사용하고 아메리칸 버번 배럴에 담아서 숙성시킨 데킬라를 판매하고 있다. 한 병을 기준으로 숙성년도에 따라 1병750ml에 55달러, 65달러, 85달러, 110달러. 데킬라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있는데 하시엔다 안티구아Hacienda Antigua는 산 미구엘 시내와 칸차납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멕시코 정부는 데킬라의 전통을 보존을 위해 오직 할리스코 지역에서만 데킬라를 생산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에 시음장에서 마시는 모든 데킬라는 할리스코에서 주조한 것이다.
  • [차동엽 희망찬가] 기쁨의 탄생

    [차동엽 희망찬가] 기쁨의 탄생

    몇 달 전 강의 차 서울 모 성당에 갔다가 그곳 주임신부로부터 큼지막한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액자를 선물로 받았다. 흰색 수단 차림에 흰색 모자를 쓴 교황의 환한 미소가 하얀 테두리의 액자에 담겨 있었다. 그 액자는 지금 내 사제관 서재 책상 맞은편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다. 컴퓨터 글 작업을 하다가 잠깐 시선을 외곽으로 돌리면 오른손을 펼쳐 축복을 발하며 밝게 웃고 있는 교황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그날 내가 받은 것은 한낱 사진 액자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살아있는 그 무엇이 담겨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귀에 걸린 함박 미소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을 스스로 폭로한다. 그의 미소는 바라보는 이에게 하나의 물음이다. “저분은 저렇게 웃으시는데, 나는 행복한가?” 그는 미소로 우리의 행복을 일깨운다. ‘거창한’ 희열이 아니라 ‘소소한’ 기쁨. 바로 라틴아메리카의 아들로서 몸에 밴 행복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탱고를 정말 좋아합니다. 내 안에 잠재된 본능 같은 것입니다.” 이는 교황이 추구하는 행복이 뜬구름 잡듯 고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에게도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계기였던 것. 지금도 바티칸 홈페이지를 장식하는 사진들을 훑어보면 이런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의 포착 일색이다. 인사말, 수다, 생일파티, 만족과 감사, 나눔, 선행에서 나오는 행복…. 해마다 주관적인 행복도를 묻는 국제 설문조사에서 항상 꼴찌 그룹에 속하는 한국인에게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를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사실 교황은 글이나 강론을 통해 현대인의 ‘불행’ 이유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물질적 풍요의 추구와 탐욕이다. 그는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활력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졸저 『교황의 10가지』참조). 그렇다면 기쁨과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쁨은 탄생하는 것이다”라며 그 비밀을 밝힌다. “기쁨은 어디에서 태어납니까? …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기쁨은 우리가 가진 것에서 태어난다. 그러니 최신형 스마트폰을 찾아보자. 아니면 더 빠른 스쿠터나, 눈에 띄는 자동차….’ 기쁨은 우리가 가진 것들로부터 태어나지 않습니다. … 진정한 기쁨은 어떤 사물이나 소유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기쁨은 만남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태어나며,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이해받고 사랑받았다는 느낌에서 태어납니다. 또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에서 태어납니다. … 기쁨은 만남의 무상성에서 태어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쁨이 태어난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썼다. 이는 “기쁨이 발생한다”는 얘기와 같다. 그럼 어디서 발생한다고 했는가. 가진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다. 만나고 대화하며 주고받는 관계에서, 보람에서 발생한다. 하루하루 모든 것을 기쁨의 소재로 삼는 것도 행복의 명수다. 행복은 영어로 ‘happiness’, 이 단어는 ‘발생하다’는 의미의 ‘happen’에서 파생됐다. 즉, 행복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발생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행복을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 ‘발생’시킨다는 건, 사건 속에서 일상 속에서 만남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기뻐한다는 의미다. 행복의 비결은 이처럼 간단하다. 이러한 원리만 알고 있어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말이다. 그간 행복에 대해 숱한 강의를 해온 나로서도 교황의 행복 지혜에 백 번 공감한다. 실로 행복은 존재의 선한 구현을 통해 발생한다. 그러기에 교황은 자신에게 문제를 가지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에게 자주 되묻는다. “선행을 하고 있습니까? 작은 것이어도 좋으니 이웃에게 선행을 하세요.” 이는 윤리적 덕목의 권고가 아니었다. 행복의 비밀을 아주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픈 교황의 친절한 귀띔이었다.
  • [미래를 창조하는 학과]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영화·뮤지컬·연기과

    [미래를 창조하는 학과]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영화·뮤지컬·연기과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은 국내 영화계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이름을 단과대학 명칭으로 붙인 국내 유일의 영화예술 특성화 대학이다. 영화·영상, 디자인, 디지털콘텐츠 분야 특성화 대학인 동서대는 2012년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LINC사업)에 선정돼 해운대 연구·개발(R&D) 타운에 센텀캠퍼스를 조성, 지난해 3월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을 이전했다. 이곳에서 실기 중심의 교육을 통해 영화 관련 산업과 전문 예술인을 육성한다. 센텀캠퍼스는 영화의 전당과 부산영상위원회,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등이 들어선 부산 최대 영상콘텐츠 밀집지역에 자리 잡았다. 동서대는 학부제로 운용되지만, 임권택영화예술대학만은 예외다. 2008년 영화과·뮤지컬과·연기과로 출발한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은 2012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짧은 역사에도 200여명의 졸업생이 영화와 뮤지컬 등에 진출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손현석 영화과 학과장은 “지역 영화산업체와 산학협력해 부산 영화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라며 “이들 업체에서 재학생들의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졸업생들의 창업도 유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만 운영하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연중 상설화하고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시장과 중국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의 장점은 기존 영화전공 및 공연예술학부 교수에다 ‘임권택 사단’까지 가세해 막강한 교수진을 갖춘 것이다. 석좌교수로 위촉된 임권택 감독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그와 함께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대거 특강 강사로 강단에서 이론과 실무를 가르친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은 국내에서 가장 최신의 영화 제작 장비와 첨단 실습공간을 갖췄다. 동서대는 재학생들에게 작품 제작비를 비롯해 뮤지컬 연기 제작비, 특강비, 기자재 구입비 등을 전액 지원한다. 영화과 학생들의 경우 학기당 최소 한 작품 이상의 단편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결과 재학생의 작품이 2년 연속 부산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영화과 재학생이던 김병준 감독의 장편 ‘개똥이’가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되자 ‘제2의 윤종빈’이란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 개최된 제18회 BIFF 한국영화의오늘-비전 부문에는 서호빈 감독의 ‘못’이 선정됐다. 특히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의 특강프로그램인 마스터클래스에는 임 감독을 비롯해 안성기, 이덕화, 박중훈, 조재현, 강수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기자와 감독, 영화제작자, 영화평론가 등이 강사로 나서 학생들에게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은 부산국제영화제와 공동으로 영화제 기간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를 운영하며, 미국 채프먼 대학 내 ‘닷지 대학’과 교류, 양 대학 학생들이 연출부터 연기, 스태프로 서로의 작품에 참여한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 영어 커리큘럼도 운영하고 있다. 동서대는 2012년 해운대캠퍼스에 1134석 규모의 ‘소향뮤지컬시어터’를 개관했다. ‘삼총사’와 ‘시카고’ 등 초대형 뮤지컬이 연달아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DS뮤지컬컴퍼니’와 산학협동으로 창작 뮤지컬 ‘구름빵’을 제작해 서울과 부산에서 흥행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에는 ‘임권택 영화박물관’도 있다. 임 감독이 연출한 100여편의 영화와 포스터, 극장세팅, 배우들의 의상, 음악, 각종 영화제 수상 트로피와 상장, 언론보도 등이 총망라돼 있다. 조기왕 교학부장은 “우리 대학은 영화의 기획·제작부터 시나리오, 연출, 사운드, 편집 등 5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시켜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서대는 영화예술에다 인문·사회과학을 접목하는 통섭을 통한 교육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5학년도부터 임권택영화예술대학과 디지털콘텐츠학부를 통합해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으로 재출범시킨다는 방침이다. 장제국 총장은 “영화 관련 지망생들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부산으로 찾아오게 하고자 모든 지원을 다할 계획”이라며 “특히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 출신 학생들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고 중국 등 외국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센텀캠퍼스에 기숙사를 건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0) 지명(중)

    ●창지개명은 단군 이래 최악의 민족정기 말살 사건 서울의 지명은 다중(多重)적이다. 대부분 지명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지명에는 그렇게 부르게 된 명명(命名) 동기가 있는 데 이를 지명의 유래라고 한다면 서울의 지명은 2000년 동안 성쇠와 풍상을 겪으면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친 적자생존의 산물이다. 서울의 지명은 산이나 물, 고개, 풍수, 바위, 들, 땅 모양, 인물, 식물,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는 정겨운 토박이 이름이 주를 이뤘다. 훈민정음 창제(1446년) 이전까지 비록 우리 글이 없었지만 한자(漢字)를 빌려 이두(吏)로 적었기에 소리 체계는 살아 있었다. 더욱이 수도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가 깊숙이 배어 있다. 예컨대 사간동, 내수동 같은 관아 지명이나 동소문동 같은 성문 지명을 비롯하여 왕십리나 답십리 같은 전설 지명, 압구정동 같은 누정 지명과 정릉동, 효창동 같은 능원 지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에는 두 가지 경천동지할 사건이 있다. 신라 경덕왕(757년) 때 모든 지명을 일률적으로 한자로 바꾸면서 가해진 변형이 첫 번째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인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앞에서는 조족지혈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 이름을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창씨개명), 땅이름도 제멋대로 바꿨다. 단군 이래 최악의 사건이라 할만하다. 서울의 지명에는 이 모든 영욕이 담겨 있다. 서울은 조선 개국 이후 한성부(한성)가 공식 명칭이었지만 한양 또는 서울이라는 지명이 더 널리 쓰였다. 뿐만 아니라 도성, 수선(首善), 도읍, 경조(京兆), 경도(京都), 사대문 안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렸다. 오늘의 서울을 있게 했고,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산인 삼각산과 백악산은 북한산, 북악산이라는 이명(異名)을 갖고 있다. 남산과 청계천의 본명도 목멱산과 개천이지만 잊혀진 이름이다. 남산은 목멱산이라는 옛 이름보다 오히려 정겨운 것이 사실이다. 인위적인 지명의 전이(轉移)가 아니어서 그렇다. 역사학자 안재홍은 목멱(木覓)은 남산의 우리말인 ‘마뫼’의 이두 표기라고 풀었다. 우리말 마뫼의 ‘마’는 앞이고 ‘뫼’는 산이므로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자이며 결국 남산은 앞산이라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남산은 주산(主山)인 백악산의 앞산이요, 왕이 사는 경복궁의 앞 산이었다. 지금은 서울이 확장되면서 강북과 강남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중앙산(中央山)이 됐지만…. 그러나 청계천 개명은 사정이 다르다. 옛 이름인 개천(開川)보다 청계천이 더 청결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역사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골짜기였다. 개천의 발원지로 ‘청풍계천’(?風溪川)이 본명인데 청계천이라고 줄여 불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개천의 상류가 청계천인 셈이다. 1916년 6월 24일자 매일신보에 청계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했다. ‘청계천변 시찰’이라는 기사에서 “개천, 일명 청계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10년이 흐른 1927년 조선총독부가 ‘조선하천령’을 제정하면서 청계천이라고 바꿔 버렸다. 조선 500년 동안 한양도성의 명당수이자 하수구였던 개천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처럼 조선 개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이 명명한 사대문의 정식 명칭을 두고 남대문, 동대문, 북대문, 서대문이라고 즐겨 불렀다.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 소덕문 등 사소문 또한 수구문(시구문), 동소문, 자하문(북소문), 서소문이라는 별칭을 주로 썼다. 인위적인 엄숙한 지명보다 방향이나 쓰임새 위주로 호칭하기를 즐겼다. 한강도 지금은 하나의 이름으로 통칭되지만 조선시대에는 동호, 경강, 노들강, 용산강, 서강, 조강 등 지역별로 세분해서 불렀다. 그중에서 3개의 강이 주를 이뤘다. 경강은 지금의 한남대교~노량진 구간, 용산강은 노량진~마포, 서강은 마포~양화진 구간을 각각 지칭했다. 학자에 따라서는 5강, 8강, 12강까지 세분했으니 우리 지명의 다중성은 일일이 예로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은 역사를 창조하기도 지명의 다중성은 어디에서 연유됐을까. 역사의 곡절 때문이다. 역사는 지명에 의해 기록되지만, 지명이 역사를 창조하기도 한다. 지명학(Toponymy)의 어원이 그리스어 토포스(Topos·장소)에서 비롯된 것처럼 지명은 땅의 기원과 의미, 변천사를 단순화해 보여주는 척도다. 지명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수록 역사 연구에서 지명 의존도는 높다. 지명이 복잡하다면 그만큼 역사가 고단했다고 볼 수 있다. 지명이 여럿이라고 해서 반드시 역사의 고단함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성명학(姓名學)에 빗대 보면 사물에는 하나의 이름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명(名)이 있다. 성년이 되면 자(字)를 가지며 사람에 따라 호(號)를 가진다. 죽은 뒤 시호(諡號)를 받는 사람도 있다. 왕은 사후 묘호(廟號)와 능호(號)를 가진다. 성명학에서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부르도록 한 것은 이름을 귀히 여기는 존명 사상 때문이다. 왕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국휘(國諱)라고 하고, 존속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했다. 자와 호가 없는 일반인들도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것을 꺼렸기에 ‘안동댁’ 같은 택호(宅號)를 두어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의 이름이 여럿이듯 땅의 이름인 지명도 여럿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네 사고방식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에 별칭이 따로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지명 왜곡은 차원이 다르다.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말살하고자 획책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군을 317개에서 220개로, 면은 4322개에서 2518개로 축소하는 어마어마한 행정개편을 단행했다.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이루던 우리의 마을 방(坊)을 폐지했다. 서울은 186개의 동(洞)-정(町)-통(通)-정목(丁目)으로 정리했다. 조선인들이 많이 살던 북촌은 동으로, 일본인이 모여 살던 남촌은 정으로 이름 붙였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번화가 본정통(충무로), 황금정(을지로), 명치정(명동)이 이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일본 황태자가 서울에 와서 머문 것을 기념한다면서 ‘황공하게도 다녀가셨다’는 의미의 어성정(御成町·남대문)이라는 지명을 붙였고, 술집과 찻집이 많던 다동을 일본식 다옥정(茶屋町·다동)이라고 개악했다. 일본군 육군대장의 이름을 따서 장곡천정(長谷川町·소공동)이라고 명명하거나, 일본 정신을 상징하는 ‘대화’를 넣어 대화정(大和町·남산)이라고 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부지기수로 붙였다. 22년간 지속된 동-정-통-정목 제도는 1936년 경기도 고양군, 시흥군, 김포군 지역이 서울(경성)로 편입되면서 모조리 정-통으로 통일됐다. 서울의 면적은 4배가 늘었고 186개의 동-정-통이 259개의 정-통이 됐다. 종로구,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마포구 등 8개 행정구가 생겼다. 원동이 원서정, 동세교리가 동교정, 아현북리가 북아현정, 홍제내리와 홍제외리가 홍제정, 한지면 신촌리가 응봉정, 수철리가 금호정, 두모리가 옥수정, 동막상리가 용강정, 동막하리가 대흥정, 여율리가 여의도정으로 각각 변경됐다. 역사와 문화가 깃든 우리 지명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의 절정이다. 무악재에서 발원해 남대문을 거쳐 원효로를 따라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을 그들이 내세우는 ‘욱일승천기’에서 ‘해돋을 욱’(旭) 자를 따 욱천이라고 마음대로 바꿨고, 흑석동 일대에 고급 주택을 지어 분양한 일본인 업자가 붙인 주택단지 명수대를 지명화했으며, 노들섬을 중지도라고 명명했다.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이름이 표기된 단 두 개의 길 이름도 퇴출당했다. 육조대로(광화문광장)와 운종가(종로)라는 양대 지명의 소멸이다. 육조가는 의정부와 육조가 자리한 관청거리였고, 운종가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이던 시장거리였었다. 일제는 유서 깊은 지명을 역사와 지도에서 지워 버렸다. 개천을 청계천으로 개명하거나, 인왕산(仁王山)의 한자를 엉뚱하게 인왕산(仁旺山)이라고 고친 것도 역사 말살의 속셈이었다. 해방 후 육조대로와 운종가를 왕조의 유물로 생각해 원상 회복시키지 않은 것은 후회막급이다. 삼각산이나 백악산이라는 정기가 깃든 아름다운 이름도 되돌리지 않았다. 태평로를 닦느라 고갯마루가 사라진 세종로 네거리 황토마루(황토현)의 이름도 청사에 남겼어야 했다. 우리의 조급함이 문제였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초속 150m…토성 소용돌이 근접 포착

    초속 150m…토성 소용돌이 근접 포착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토성의 눈’이라는 우주 사진을 5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했다. 이 사진은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가 4월 2일 토성 표면으로부터 약 220만 km 떨어진 상공에서 그 행성 북극에 있는 ‘육각형 구름’으로 유명한 거대 소용돌이의 중심을 관측한 것이다.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초속 150m의 속도로 회전하는 지름 2000km의 ‘눈’을 지니고 있다. 이 눈에 대한 상세한 이미지는 카시니호에 탑재된 협각카메라에 파장 748나노미터(nm)를 중심으로 한 근적외선을 투과하는 분광필터를 조합·장착해 촬영한 것이다. 촬영 당시 태양과 토성, 그리고 카시니호의 각도는 43도며 이미지의 척도는 1픽셀당 약 13km로 전해졌다. 카시니호는 1997년 지구를 떠나 2004년 토성 궤도에 안착한 뒤, 태양광이 직접 닿게 된 2009년 8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탐사 임무에 들어갔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은 어디 있나/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은 어디 있나/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청와대 서별관 회의 때 경제정책 협의의 단골 메뉴는 가계부채였다. 그때마다 등장한 게 총부채상환비율(DTI)이었다. 국토교통부 등 일부 부처들이 DTI 완화를 주장했지만 나는 반대했다. DTI를 완화하는 것은 빚내서 집 사라는 말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지금도 한국경제의 먹구름이고 나에게도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반전’의 한 대목이다. 그렇게 묶여 있던 DTI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단박에 풀렸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라면 몰라도 DTI까지 손대기는 힘들 것이라던 일각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LTV·DTI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다. 담보가치(집)를 얼마나 쳐줄지, 개개인의 빚 갚을 능력을 얼마로 측정해 얼마나 빌려줄지는 금융사가 판단할 몫이라는 논리에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금융사들에 그런 위험분석과 심사능력이 충분히 있던가. 아니, 그 이전에 그런 능력을 키우도록 충분히 자율을 줬던가. 다행히 실력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떼일 확률 낮고 이자 확실한 먹거리를 눈앞에 두고 과식의 덫에 빠지지 않을 만큼 우리 금융사들은 절제돼 있는가. 가계는 또 어떤가. 소득이 오르지 않으니 생활비는 늘 적자이고, 직장에서 떠밀려 나와 작은 가게라도 차리려는 데 목돈은 없다. 그럴 때 가장 쉽게 ‘잡히는’ 게 집이다. 그 집을 장만하느라 진 빚도 채 갚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빚을 진다. 빚으로 빚을 갚는 돌려막기 인생이다. 개인이든 금융사든 호된 시련(외환위기, 금융위기)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돈을 쉽게 빌려주겠다고 끊임없이 유혹하면서 ‘의리’를 기대하고 주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다며 여기저기서 ‘최경환 효과’를 얘기한다. 요즘 최 부총리는 입이 귀에 걸렸을 듯싶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중에 날아들지도 모를 청구서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못내 아쉬운 것은 그래서다. 경제는 심리이니 모든 부처가 하나 되어 뛰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체를 조망한 뒤의 합심이어야 한다.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면밀히 염두에 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책 공조요, 팀워크다. 경제부총리를 부활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 총재는 “금리는 내리더라도 가계 빚이 걱정되니 DTI는 풀지 않아야 한다”고 좀 더 강하게 주장해야 했다. 신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총재는 엉거주춤이요, 신 위원장은 180도 돌변이다. 금융감독원은 한 술 더 떠 은행더러 왜 일괄 대출잣대를 적용하지 않느냐고 채근이다. DTI는 시작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대통령 앞에서 받아쓰기하는 장관들을 보지 않게 된 대신, ‘만사경통’(최 부총리) 앞에서 머리 조아리는 장관들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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