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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도 인생도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詩도 인생도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간 최하림(1939~2010) 시인을 기리는 시선집이 나왔다.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출간된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문학과지성사). 시인은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1960년대 김승옥 소설가, 김현·김치수 문학평론가와 함께 4·19 세대를 대표하는 ‘산문시대’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1964년 ‘빈약한 올페의 회상’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시인은 시간과 존재, 언어와 예술에 대한 고민을 부지런히 이어 나갔다. 또한 가르침과 다독임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시인들의 시인’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는 고인을 기억하는 6명의 후배 시인들이 엮은 시선집이다. 장석남·박형준·나희덕·이병률·이원·김민정 시인이 최 시인의 시 중에서 10편씩을 골라 총 60편을 담았다. 5·18의 역사적 기억을 시의 주된 소재로 삼으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정교한 언어의 탐구가 빛나는 초기 시, 자연의 생명력으로 조금씩 치유돼 가는 전환기의 시, 역사마저도 시간의 경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후기 시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시편들이 담겼다. 칠십 평생에 시인은 시로 무언가를 부러 말하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드러내려 애썼다. ‘나의 시가 말하려 한다면/말을 가질 뿐 산이나 나무를/가지지 못한다 골목도 가지지 못한다’(‘시’)라고 읊은 것처럼. 그는 2010년에 출간된 ‘최하림 시전집’에서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 하는 순간에 강물, 혹은 시간은 사라져 버리며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원 시인은 그런 고인의 시를 더러 이렇게 부른다. “선생님의 시는 자연을 닮아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구부리거나 자른 흔적이 없었다. 이 미지근함이 시가 갈 수 있는 한 절정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106쪽)사는 게 힘들어질 때마다 최 시인을 찾아갔다는 박형준 시인은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선생님의 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중략) 상처 난 마음에 빨간 약이 발라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고인의 제자이기도 한 이병률 시인은 시가 무엇인지 물으시기에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던 수업 시간을 회상한다. “스승을 떠올릴 때마다 스승을 처음 만난 3월의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그날 이후 내 대답의 방향이 늘 엇갈림 없이 스승을 향하고 있어서다.”(86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너와 나의 시간이 멈춘 듯, 신록에 물들다

    너와 나의 시간이 멈춘 듯, 신록에 물들다

    최근 ‘춘불회(春佛會) 추내장(秋內藏)’이란 말을 들었다. 봄날의 경치로는 전남 나주 불회사의 신록이 으뜸이고, 가을 풍경은 전북 정읍의 내장사 단풍이 최고라는 거다. 내장산 단풍이야 귀에 익다. 한데 과문한 탓에 불회사는 도무지 생경하다. 신록이 전하는 풍경이 어떻길래 내장산 단풍과 견줄 만하다는 걸까. ‘4대강 사업’으로 빼어난 봄 풍경의 동섬이 사라지고 코로나19 탓에 문 닫은 곳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나주의 봄은 화사했다. 드들강의 소박한 풍경이 여전하고, 영산강이 휘돌며 만든 ‘느러지’며, 하루가 다르게 신록의 이파리들을 내놓는 들녘의 나무들도 정겨웠다. 산자락을 타고 신록이 쏟아져 내리는 불회사야 더 말할 게 없다. 이웃한 화순에도 세량제 등 봄의 명소들이 많다.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최근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안심할 단계는 아닌 만큼 아직은 ‘지면 속 풍경’으로만 즐기시길.산자락의 신록들이 절집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불회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불회사를 감싸 안은 덕룡산은 활엽수 관목이 많다. 나무들은 가지 끝에 채도가 제각각인 연둣빛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이 덕에 무리지은 활엽수 관목들을 멀리서 보면 꼭 ‘무도장’의 미러볼이 여럿 뭉쳐 있는 듯하다. 혹은 연둣빛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듯한, 딱 그런 느낌이다. 여기에 진초록으로 추임새를 넣는 나무들이 있다. 늙은 비자나무와 동백 숲, 그리고 우뚝 솟은 삼나무들이다. 늙었으되 여전히 성성한 나무와 여리되 싱싱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봄날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물론 이를 내장산 단풍에 견주는 것엔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미적 감각은 저마다 다르니 말이다. 한데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풍경이란 것엔 다들 동의하지 싶다.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드는 길.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소나무가 아닌 삼나무가 도열해 있다. 여느 절집 진입로와 달리 상점도 없다. 불국으로 가는 돌길 위의 연꽃 문양만 조용히 이방인을 맞고 있다. 이런 길은 걸어 줘야 제맛이다. 연꽃을 즈려밟을 때마다 머리가 말개지는 듯하다.진입로에 세워진 벅수(돌장승·중요민속자료 11호)도 인상적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절집으로 부정한 기운이 드는 것을 막는 수문장 구실을 한다는 것이 정설로 보인다. 벅수는 남녀 한 쌍이다. 남장승은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을, 여장승은 주장군(周將軍)을 각각 가슴에 새겼다. 당(唐)나라건, 주(周)나라건 모두 중국이다. 그럼 절집에도 사대주의가 있었다는 얘기? 그렇지는 않다. 불회사 벅수가 만들어진 건 300여년 전인 1719년이다. 이웃한 운흥사 돌장승(중요민속자료 12호)에 새겨진 조각 연대로 추정한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무서운 역질은 천연두였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천연두를 중국에서 들어온 잡귀로 여겼다. 중국 잡귀가 우리 말을 알아듣지는 못할 터. 무시무시한 주 장군, 당 장군을 동원한 것은 이런 이유다. 어딘가 300여년 뒤 발생할 코로나19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운흥사 입구에도 한 쌍의 돌장승이 서 있다. 돌장승 뒤엔 ‘강희 58년’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각 연대가 명문으로 새겨진 건 드문 경우다. 불회사와 덕룡산을 나눠 쓰는 운흥사는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출가한 절집이다. 초의선사가 차에 심취했던 것도, 이 일대 지명이 다도면(茶道面)인 것도 덕룡산 일대의 야생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운흥사 역시 독특하다. 무엇보다 여느 절집과 달리 가람 배치가 ‘제멋대로’다. 담장은 아예 없고 경내엔 잡초들이 무성하다. 대웅전 밑의 웅덩이-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선 도롱뇽 알이 부화를 앞두고 있다. 좋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쁘게 보면 전혀 관리가 안 된 것이다. 그간 여러 절집을 다녔어도 운흥사처럼 자유분방한 곳은 여태 보지 못했다. 불회사 일대의 신록이 다채로운 색감의 파스텔화라면 드들강의 신록은 수묵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림의 소재는 단색의 나무와 강물이 고작이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아랫입술로만 부는 하모니카처럼 어딘가 애잔하면서도 말간 느낌을 준다. 드들강의 공식 명칭은 지석강이다. ‘4대강 삽질’에 사라진 동섬의 몫까지 더해 나주 사람들의 쉼터 노릇을 하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드들강이라 즐겨 부른다. 경기 여주를 지나는 한강을 여강, 충남 부여 앞을 흐르는 금강을 백마강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드들강 건너 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 그 한 발짝 옆에 있는 전통마을 도래마을, 풍류 넘치는 벽류정, 바위 하나에 일곱 석불을 새긴 철천리 칠불석상 등도 사정상 길게 설명하지 못할 뿐, 봄 풍경이 빼어난 곳들이다. 나주 시내에선 완사천을 찾아야 한다. 목마른 남정네에게 버들잎 동동 띄운 물을 건넨 지혜로운 처자의 전설이 담긴 곳이다. 버들잎 고사는 지역별로 몇몇 버전이 전해지는데, ‘나주 버전’의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 호족 오다린의 딸이다. 둘은 현 나주시청 앞 완사천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바로 그날 함께 밤을 보낸 뒤 고려 2대왕 혜종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금성(나주)은 후백제의 도시였지만 왕건의 편에 선 덕에 이후 1000여년간 전라도의 핵심 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다. 전라도의 ‘라’ 자가 나주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만 봐도 ‘라떼’ 시절 나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영산강 끝자락, 무안과 인접한 곳에 느러지 전망대가 있다. ‘느러지’는 물살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강물이 이 일대에서 ‘U’ 자 모양으로 휘어지며 물돌이동을 만들었는데, 그게 ‘느러지’다.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 조롱박 모양이라면 영산강변의 느러지는 한반도를 닮았다. 느러지를 지난 영산강은 무안에서 ‘꿈여울’ 몽탄(夢灘)으로 이름을 바꾼 뒤 바다로 흘러간다. 글 사진 나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나주의 먹거리로 첫손 꼽히는 것은 영산포 홍어회다. 특히 초봄에 보리 싹과 홍어 내장을 넣고 끓인 ‘보리애국’의 칼칼한 맛은 놓칠 수 없는 제철 별미다. ‘홍어의 거리’ 어느 집에서나 맛볼 수 있다. 나주목사 내아 앞에는 곰탕집들이 즐비하다.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소뼈로 육수를 내는 일반적인 곰탕과 달리 양지나 사태 등 살코기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나주곰탕 거리에 ‘하얀집’, ‘남평’, ‘노안’ 등 맛집이 몰려 있다. ‘왕곡가든’은 생고기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식사 때면 번호표를 들고 대기해야 할 만큼 사람들이 몰린다. 화순에선 지리산 아래 ‘우리들목장’, ‘너와나목장’ 등이 흑염소 요리로 알려졌다. -숙소를 겸하는 나주 목사내아, 신록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아름다운 전남산림자원연구소, 동복호의 화순적벽 등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가기 전에 미리 해제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 -화순 별산풍력발전단지는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 주소창에 ‘화순군 동면 청궁리 438’을 쳐야 한다. 도로 옆으로 ‘화순풍력발전소’ 이정표가 있다. 표지판에서 3㎞ 정도 올라야 한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다. 험하지는 않지만 승용차는 조심해서 운행해야 한다.
  • “코로나에 월세 감당 못 해”…대학로 소극장 ‘나무와 물’ 폐관

    “코로나에 월세 감당 못 해”…대학로 소극장 ‘나무와 물’ 폐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이 코로나19에 따른 영업난으로 폐관한다. 극장 운영사이자 공연 제작·홍보사 문화아이콘 정유란 대표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로에서 2013년부터 함께했던 예술극장 나무와 물의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 소극장 하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라면서 “코로나19로 2월부터 멈춘 공연장에 수입이 1원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매월 내야 하는 월세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폐관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예술극장 나무와 물은 2003년 12월 개관해 백희나 작가 동화 원작의 동요 콘서트 ‘구름빵’을 비롯해 연극 ‘도둑맞은 책’,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을 무대에 올렸다. 정 대표는 “건물주는 더이상 공연장으로 쓰지 않겠다며 원상복구라는 이름으로 전부 다 철거하라 한다. 저희가 들어올 때는 이미 극장이었기 때문에 극장 그대로 두고 나가는 게 맞다고 하는 분도 있었지만, 남아있는 계약 기간 법대로 지키라고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증금은 원상복구에 소요되는 철거비와 폐기 비용 그리고 밀린 임대료로 거의 소진되어 겨우 몸만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민간 소극장 운영에 대한 지원은 분명 재설계 되어야 한다. 대관료 지원사업이나, 서울형 창작극장제도가 기본적으로 기초예술로서의 연극을 지키기 위한 지원책의 일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나, 극장에 대한 지원을 고민했을 때 근본적인 소극장 자생에 대한 정책은 못 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지금의 사용료를 대신 내주는 정책들보다는 건물이 극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설들을 기본적으로 잘 갖추고 임대를 하여야 하며, 임대료 또한 정상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극장은 5월 1일부터 철거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아이들에겐 ‘구름빵’보단 ‘알사탕’

    아이들에겐 ‘구름빵’보단 ‘알사탕’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린드그렌상) 수상작들 가운데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빌린 책은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최근 3년간 전국 1003개 공공도서관의 린드그렌상 수상자 저서 대출량 분석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한국어로 출판한 수상자들의 저서는 모두 232종이었다. 1위부터 8위까지 모두 백 작가 작품이 휩쓸었다. ‘알사탕’에 이어 ‘장수탕 선녀님’, ‘이상한 엄마’, ‘달 샤베트’, ‘이상한 손님’ 순이다. 이번에 상을 받은 ‘구름빵’은 8위였다. 이 책은 발간 연도가 2004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지난해 낸 최신작 ‘나는 개다’는 13위였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도서관이 스마트 도서관, 책배달과 같은 비대면 서비스에 주력하는 가운데 백 작가의 린드그렌 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3월 31일을 기점으로 백 작가 도서의 대출량이 급상승했다. 특히 ‘달 샤베트’는 4월 첫째 주에 전체 도서 가운데 96위로 전주 대비 677위 상승했고, ‘구름빵’ 역시 전체 87위로 전주 대비 651위나 올랐다. 국립중앙도서관 측은 “추세를 볼 때 백 작가의 도서 대출량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외국 작가의 도서로는 베르너 홀츠바르프·볼프 에를브루흐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9위에 올랐다. 이어 모리슨 센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 루스 크라우스의 ‘아주아주 특별한 집’이 뒤를 이었다. 성별·연령별로 대출 현황을 분석해 보니, 백 작가의 책은 7세 여아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어 7세 남아, 8세 여아, 6세 여아 순이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된다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된다

    보물 제410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경북유형문화재인 ‘안동 봉황사 대웅전’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7일 밝혔다. 수마노탑은 석가모니 사리를 모셨다고 알려진 탑이다. 역사서 ‘삼국유사’에 따르면 정암사는 자장율사(590∼658)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들고 귀국해 643년 창건했다.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 하나인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가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하여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물 ‘水(수)’ 자를 붙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정암사에는 수마노탑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양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영월 법흥사, 인제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알려져 있다. 수마노탑은 거대한 돌덩어리를 올리는 일반적 석탑과 달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차곡차곡 쌓은 모전(模塼)석탑이다. 모전석탑으로는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탑이 유명하다. 돌 재질은 석회암층 중에 산출되는 고회암이며, 회록색이 감도는 돌을 길이 30∼40㎝, 두께 5∼7㎝로 깎았다. 석탑 전체 높이는 9m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운 탑 1층에 작은 불상을 모셔두는 공간인 감실(龕室)을 상징하는 문이 있다. 그 위에 벽돌 모양 석재를 층층이 올렸다. 신라시대 이래 모전석탑이 구축한 조형적 안정감과 입체감, 균형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수마노탑은 1972년 해체 과정에서 탑 건립 이유와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인 탑지석 5매가 발견돼 조성 과정이 확인됐다. 불국사 삼층석탑, 다보탑과 함께 탑 이름이 전해지는 희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국내 유일하다는 점에서 국보로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보물로 지정 예고된 안동 봉황사 대웅전은 건립 시기가 명확하게 전하지는 않으나 여러 기록상 17세기 후반 무렵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을 봉안한 정면 5칸의 대형 불전이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3칸 맞배지붕 불전이 유행한 것을 고려하면 규모와 형식이 돋보인다. 전면 배흘림이 강한 기둥은 조선 후기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이다. 근래에 채색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17∼18세기 단청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 특히 정사각형 우물반자에 그린 용, 금박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연화당초문, 연꽃을 입에 물고 구름 사이를 노니는 봉황이 인상적이다. 문화재청은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두 유물의 문화재 승격 여부를 확정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베스트셀러]펭수 화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진입

    [베스트셀러]펭수 화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진입

    EBS 캐릭터 펭수의 화보 ‘펭수 디 오리지널’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1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아동용 만화 ‘흔한 남매’가 4월 둘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발간 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만화는 2주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문학동네의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1계단 오른 2위를 기록했다. ‘펭수 디 오리지널’은 펭수의 지난 1년간 활동을 화보로 정리한 책이다. 여성 구입자가 87.9%로, 여성 팬층이 많이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여성이 40.4%로 가장 많았고 40대 여성(26.4%)이 20대 여성(20.3%)을 앞섰다. 함께 출간한 컬러링북 ‘펭수 펭아트 #컬러링북’도 17위에 진입했다. 부와 행운의 비밀을 분석한 처세서 ‘더 해빙’은 전주보다 6계단 상승한 3위로 뛰어올랐다. 아동문학계 최고 상금을 자랑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수상작가 백희나 책 가운데 ‘구름빵’과 ‘알사탕’이 유아 분야 1,2위에 각각 오른 것을 비롯해 모두 9종이 분야별 베스트셀러에 포함됐다, 다음은 4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 1. 흔한 남매4(아이세움) 2.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 3. 더 해빙(수오서재) 4. 펭수 디 오리지널(EBSi) 5. 당신이 옳다(해냄출판사) 6. 녹나무의 파수꾼(소미미디어) 7. 1㎝ 다이빙(피카) 8.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시공사) 9.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한국경제신문) 10.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13(아이휴먼)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100세 전에 정원 100바퀴’ 모금액 259억원으로

    ‘100세 전에 정원 100바퀴’ 모금액 259억원으로

    요원의 들불처럼 모금액이 불어나고 있다. 16일 오전 6시 42분(이하 한국시간)쯤 100회 생일을 앞두고 영국 베드퍼드셔주 마스턴 모어테인 자택의 정원 25m 트랙(?)을 100바퀴 도는 챌린지의 마무리를 앞둔 100세 어르신 톰 무어의 사연을 전했을 때만 해도 저스트기빙 사이트에 모인 돈은 900만 파운드(약 137억원)였다. 그런데 기사를 올린 뒤에도 BBC는 쉼 없이 기사를 업데이트했다. 모금액이 계속 불어났기 때문이다. 무어 할아버지가 100바퀴를 마침내 다 돌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후 5시쯤에는 1200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그런데 17일 오전 7시 30분쯤 1600만 파운드(약 244억원)로 불어났다고 방송은 전했는데 오후 2시쯤 1700만 파운드(약 259억원)로 또 늘어났다.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이 도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 부녀는 25m 한 바퀴를 도는 데 10 파운드씩 1000 파운드만 모금하면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일주일 남짓 만에 80만명이 십시일반해 목표의 1만 7000 배를 넘겼다. 100바퀴를 마친 무어 할아버지는 “기분 좋다. 여러분 모두도 기분 좋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힌 뒤 그렇게나 많은 돈이 모인 데 대해 “완전 환상적이다. 이렇게 엄청난 기회에 함께 하게 될지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윌리엄 왕세손도 2차 세계대전 때 인도와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육군 대위로 복무했던 어르신이 이렇게 국민건강서비스(NHS)와 직원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펼친 데 감사하는 편지와 함께 액수를 밝히지 않고 기부에 동참했다.NHS 직원들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에서 고마움을 표하는 글이 쏟아졌고, 딸과 손주들은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엄지를 치켜든다.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자는 청원에는 벌써 3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코로나19 감염증을 떨쳐낸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그의 헌신을 공인하는 방법을 찾겠노라고 총리실이 밝혔다. 지금까지 기부의 뜻을 밝힌 개인이나 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약속한 것은 10만 파운드를 내겠다고 밝힌 저스티기빙이다. 100회 생일까지 남은 2주 동안 그는 100바퀴를 더 돌 계획이다. “여러분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종국에는 이겨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란 점이다. 지금 이 순간 힘들다고 여기는 모두에게도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구름이 걷힐 것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나 건드리지 마, 또 시(詩) 나온다!’ 친구들을 만날 때 인사말 대신 건넨 농담이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이제 시를 그만 써야 할 때도 됐는데. 허허허.” 문학을 천명으로 알고 50여년 외길을 걸어온 한국문인협회 원로시인 이운룡(83·전 중부대 국문과 교수·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박사. 그는 팔십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도 시를 써야 삶의 의미를 느끼고 행복한 현재 진행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마음은 문학청년이다. 솟구쳐 오르는 시상을 억누르지 못해 매일 시를 쓴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통 좁은 청바지와 스니커즈 스타일을 좋아하는 ‘멋쟁이 시인’이다. 깨끗한 피부와 살아 있는 눈빛, 힘이 있는 목소리, 밝은 표정에서 건강미가 넘친다. 항상 깔끔한 차림에 활기가 느껴진다. 젊은이도 따라가기 힘든 총기와 지성미가 풍기는 화법은 올곧게 살아온 문인의 향기를 내뿜는다. 이 박사는 ‘삶의 방정식’을 ‘근면’, ‘성실’, ‘정도’, ‘직진’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시인의 길을 한평생 쉼 없이 달려왔다. 집념과 의지로 밤낮없이 시에 매달려 살았다. 두 번의 암 수술도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문학은 나의 인생이고, 나의 인생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농촌의 자연은 꿈을 키웠고, 꿈은 문학을 키웠으며, 문학은 나를 키웠다”면서 “나와 시, 시와 나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한다.그는 1969년 등단한 이후 1355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70~80대에 쓴 것이다. 시인으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많은 시를 쉬지 않고 쓸 수 있는 비법은 시상과 영감, 제재가 떠오를 때마다 잊기 전에 메모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주제의식에 따라 언어를 구조화하면서 첨삭을 거듭한다. 시상을 더 정확하고 표상하기 위해서다. 전심전력 언어의 형상화에 투신하면 무르익은 시를 쓰고 후회하는 일을 덜 수 있다.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에는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했지만 인생을 숙고하고 성찰하면서 우주의 충만한 존재 문제에 천착하려는 시 정신과 시작 태도가 나이 든 시인의 소명임을 늦게 깨달았지요. 이제야 시가 쉽게 나옵니다.” 이 박사는 2018~2019년 2년 동안 무려 555편의 시를 발표했다. 하루에 0.76편, 나흘에 세 편꼴로 시를 쓴 셈이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80개의 제재가 떠올랐고 사흘 밤낮 16편의 시를 내리 쓰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집 2권을 한꺼번에 펴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시가 터졌다”고 표현한다. 그는 긍정적 사고와 규칙적인 운동, 문인들과 진솔한 교류, 어릴 적부터 계속해 온 문학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욕과 편식 없는 식사는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을 즐기는 그만의 방법이다. 치아 관리도 철저해 아직도 상한 이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작업이 마음을 늙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문학계 후배와 자녀들에게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 정신을 주문한다. 평생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아온 이 박사는 얼핏 ‘금수저’ 같아 보이지만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전북 진안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름 위로 솟아오른 용이 되라는 뜻으로 운룡(雲龍)이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 그러나 광복 이후 1946년 진안초등학교에 재입학한 아홉살 소년은 평범한 시골뜨기였다. 그에게 인생의 길라잡이가 돼준 책은 한국전쟁 당시 전주에서 시골로 피란 온 친구의 초등학교 교지였다. 동시 “하늬바람 불어오면/ 전깃줄은 쓰르릉 피리 불고요”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무작정 시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쓴 최초의 동시 ‘달밤’이 학급 문집 ‘글벗’에 수록됐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59년 전북대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이 박사는 시인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했다. 대학 2학년이던 1962년 10월 경북대 주최 제5회 전국대학생문예작품 현상공모에 ‘기도’가 당선됐다. 이어 1964·1965·1969년 ‘현대문학’에 연 3회 추천되면서 등단에 성공했다. “앞만 보고 뛰어가는 외곬으로 뚫린 성격, 철저한 준비성과 꼼꼼한 정리벽,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긍정적 사고,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이 저의 유일한 자산이지요.” 그가 시인으로서 문학의 앞길을 열기까지 과정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시대적 상황에 휩쓸리고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오직 정신력 하나로 이겨냈다. 중학생 때부터 학비 마련을 위해 장작 장사를 했고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다. 대학 시절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영양실조에 시달렸지만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 가난은 시련과 고통이었으나 성취욕 강한 그는 오히려 성장의 자양분으로 치환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주제넘게 시인이 되기를 꿈꾼 비현실주의자입니다. 시와 함께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었지요.” 이 박사는 오로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을 뿐 경제적으로는 빵점짜리 가장이었다. 부인이 생활고를 탓하며 바가지를 긁으면 “선비가 돈 버는 것 봤느냐”며 되레 큰소리치고 헛기침을 했다. 이 박사는 전북문인협회장, 초대·2대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며 향토문학계에 족적을 남겼다. 그가 22년 동안 이끈 ‘열린시문학회’와 ‘시창작교실’은 전북 지역 문인 배출의 산실 역할을 했다. 그가 닦아 놓은 문학 기반은 전북도 문화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증명해 준다. “나는 어린 시절 희망대로 여전히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생활력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요. 저승의 부모님에게는 불효막심이고 형제에겐 자기 이상만 고집해 온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졸장부지요. 어찌 보면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백(배경)도 없는 촌놈이 문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불꽃은 가난 속에서 팔순까지 지칠 줄 모르고 문학인으로 담금질하는 에너지원이었다. 또 세 자녀를 낳은 아내가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나, 10년 전 전립선암과 위암 수술로 사경을 헤맬 때도 그를 지탱해 주고 일으켜 준 힘이 됐다. “그동안 옆걸음 치면서 타인의 어깨 너머를 넘보지 못했고 유유자적 느림의 미학도 탐할 수 없었지요. 자녀들도 모두 자리잡아 걱정이 없다 보니 이제야 숨 돌리고 인생과 문학을 정리할 때가 왔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불청객 세월이 가르쳐 준 결과지요.” 이 박사는 한때 이 세상 사람으로 살았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시집 20권, 문학이론서 및 시론서 등 13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제 소망이 있다면 작은 개인 문학관을 건립하고 자신이 제정한 ‘중산문학상’이 계속 후배 문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함을 즐기지 못하는 그의 문학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언제까지 문학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제 그만 써야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2022년에 단행본 시집 7권을 합본한 3번째 ‘이운룡 시 전집’과 시론집 ‘시와 비평의 등가성’을 발간할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글 사진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딕훼밀리‘ 서성원, 코로나19로 별세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딕훼밀리‘ 서성원, 코로나19로 별세

    1970년대 인기그룹 리더이자 드러머미국 LA서 치료 중 사망 소식 알려져1970년대 인기 그룹 ‘딕훼밀리’의 리더였던 드러머 서성원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코로나19으로 별세했다고 주변 인사들이 전했다. 73세. 가수 위일청은 지난 1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서성원 님이 오늘 미국 LA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돌아가셨다”면서 “미국에 계신 유가족분들과 40여년을 함께 했던 딕훼밀리 식구들, 그리고 서성원 님을 알고 지내셨던 모든 지인들,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라는 국민가요를 알고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고 적었다. 1980년대 그룹 ‘서울페밀리’로 활동했던 위일청은 “저한테는 선배이자 선생님 같은 분”이라고 덧붙였다. 딕훼밀리는 1972년 7인조로 결성돼 1974년 1집을 발표한 뒤 1976년 2집을 발매했다. ‘나는 못난이’, ‘또 만나요’, ‘흰 구름 먹구름’, ‘작별’ 등 순수한 노랫말에 친근한 멜로디의 곡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다. 특히 ‘또 만나요’는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익숙한 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당시 건전 가요로 지목되며 건전한 그룹사운드의 이미지를 줬다. 당시 외래어를 배척하는 언어순화 정책 탓에 ‘서생원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1971년 MBC 중창상, 1972년 플레이보이 그룹사운드 경연대회 우수상과 가창상, 1973년 뉴스타배 보컬그룹 경연대회 우수상·개인 연주상, 1974년과 1975년 팝스 그랑프리 최우수 그룹상 등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그룹의 원년 멤버로 드러머이자 리더를 맡았다. 딕훼밀리 활동을 접은 이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은 1980년대 ‘날개’로 사랑받은 가수 허영란이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日소프트뱅크 ‘15조 적자’…손정의, 최악의 위기 상황 내몰리나

    日소프트뱅크 ‘15조 적자’…손정의, 최악의 위기 상황 내몰리나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옵니다.” 지난 2월 12일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손정의(63)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머지않아 자사 실적의 상승 반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2019년 4~12월 영업손익 결산에서 129억엔(약 145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상황. 그는 소프트뱅크의 향후 실적 전망에 대해 쏠린 시장의 우려를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산하기업인 미국 이동통신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직후인 데다 글로벌 증시가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것이 당시 손 회장이 “적극적인 경영을 계속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있는 배경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현재 재일교포 3세로 일본내 최고 부자로 꼽히는 손 회장의 입지는 한층 더 옹색해지고 말았다. 2019 회계연도 전체(2019년 4월~2020년 3월) 결산 기준으로 15조원대의 막대한 영업적자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에 취약한 소프트뱅크의 사업구조상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13일 “2019회계연도에 1조 3500억엔의 영업손실이 예상된다”는 전망치를 발표했다. 연간 기준 15년만의 적자로 1년 전 2018회계연도 결산 발표에서 2조 3539억엔의 흑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이익이 거의 4조원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소프트뱅크의 실적 급락은 투자 사업을 맡고 있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의 투자 실패가 계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각지의 투자기업 지분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올 3월 결산에서 SVF 투자손실은 1조 8000억엔에 달해 전체 그룹이 적자로 돌아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투자전문회사로 바꾸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소프트뱅크는 이제 (통신 등) 사업회사가 아니다. 투자자산과 주주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가 핵심업무가 될 것”이라며 ‘투자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방향 전환이 먹혀들어 지난해 4~6월 결산에서는 분기 기준 일본 기업 역대 최고인 1조 1217억엔의 흑자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주요 투자업체의 경영 악화가 이어지면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특히 주력 투자기업이던 미국의 사무실 공유서비스 업체 위컴퍼니의 기업공개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봤다. 또 올들어 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면서 투자기업들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처 중에 숙박, 부동산 등 코로나19 타격이 심각한 업종이 많은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유망한 신생기업을 ‘입도선매’(투자)해 키운 뒤 ‘수확’(상장차익)을 거둔다는 그의 투자 비즈니스가 절체절명의 국면을 맞아 그룹 경영까지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70년대 밴드 딕훼밀리 서성원, 코로나19로 미국서 사망

    70년대 밴드 딕훼밀리 서성원, 코로나19로 미국서 사망

    70년대 인기 밴드 딕훼밀리 출신 드러머 서성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사망했다. 13일 가수 겸 작곡가 위일청은 자신의 SNS에 “서성원이 오늘 미국 LA에서 코로나19로 돌아가셨다”고 부고를 전했다. 위일청은 “인생이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에 진하게 닿는 날이 저한테도 이제 하나씩 생기기 시작한다”며 “고인이 되신 서성원 형님에게 그리움을 전하며 이제부터는 하나님 곁에서 함께하기를 기도한다”고 추모했다. 같은 날 위일청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서성원의 추모 영상을 게재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최고였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했다. 서성원은 지난 7일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6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성원은 지난 1970년대 초반 그룹사운드 딕훼밀리 드러머로 데뷔했으며 ‘나는 못난이’, ‘흰구름 먹구름’, ‘또 만나요’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이후 1980년 3집을 끝으로 1기가 해체됐고, 서성원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매절계약에 눈물 젖은 ‘구름빵’… 저작권 누구 품으로

    매절계약에 눈물 젖은 ‘구름빵’… 저작권 누구 품으로

    지난달 31일, 백희나(49)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며 그의 책 ‘구름빵’이 관심의 중심에 섰다. 한국 작가의 첫 수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구름빵’을 둘러싼 저작권 논쟁도 재점화됐다. 수상 이후 백 작가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구름빵’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백 작가에게 ‘구름빵’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에 12일 현재 1만 9954명이 동의했다. 이에 출판사 한솔수북은 해명자료를 내며 맞섰다. 2003년 백 작가는 출판사 한솔교육과 저작권양도계약을 통해 ‘구름빵’을 출간했고, 출판사로부터 추가 지급분까지 1850만원을 받았다. 이후 ‘구름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백 작가는 해당 출판사인 한솔교육, 한솔수북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1·2심 모두 패소해 최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2014년 ‘구름빵’ 저작권 논쟁이 불거진 이래 1·2심 판결을 거친 지금까지 논쟁이 달라진 것은 없다. 최종적인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지금, 사안의 법적 검토와 더불어 ‘갑과 을’이라는 윤리적 문제, 출판산업의 현실까지 아울러 살펴봤다.●백작가, 아동문학 노벨상 ‘린드그렌상’ 받자 재점화 최근 진실 공방의 초점은 ‘구름빵’이 창출했다는 수익 4400억원에 관한 것이다. 4400억원이라는 숫자는 한솔교육(2013년 출판사업 부문 분할해 한솔수북 설립)이 백 작가에게 지급한 1850만원과 대비되며 더욱 공분을 샀다. 그러나 한솔수북은 ‘구름빵’은 2004년 출간된 이래 40만부가 팔려 매출 20억여원, 수익 2억원가량을 올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구름빵’은 단행본 출간 외에도 이후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DSP 등에서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 2차 콘텐츠로 가공돼 상당한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솔수북은 해명 자료에서 “2014년 4월 열린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작권을 존중하자’며 ‘불법 복제 시장규모가 4400억원’이라고 언급한 후, 뜬금없이 ‘구름빵’을 거론했는데 어느 순간 ‘구름빵’ 수익이 4400억원으로 와전돼 보도됐다”고 했다. 백 작가가 소송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허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러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4400억원’을 언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백 작가는 “제가 확인한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는 ‘구름빵’ 사업 매출에 대한 언급을 할 리 없다”며 “제 관심은 오로지 ‘구름빵’ 저작권 회복에 있을 뿐 (매출은) 관심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 작가가 한솔교육에서 받은 1850만원에 대해서도 양측은 의견이 엇갈린다. 애초 2003년에 맺은 계약 당시 ‘구름빵’은 유아 대상 회원제 북클럽 ‘북스북스’에 수록하는 책 중 하나로 백 작가는 850만원을 받았다. 이후 2006년 ‘구름빵’을 단행본으로 제작하기 위한 인센티브 계약을 맺으며 1000만원을 추가 지급했다는 게 한솔수북 측 설명이다. 그러나 백 작가는 “당시 그림책들에 관한 전시 기획을 준비하며 책을 냈던 출판사들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것 중 하나”이며 “전시 후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절차라고 하기에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양측은 2014년부터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중재하에 저작권 협의를 진행했다 파행을 겪은 바 있다. 한솔수북은 “‘구름빵’ 책의 글·그림 저작권을 백 작가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2015년 2월 서로 구두합의까지 했으나 작가 측에서 그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여 무산됐다”고 말한다. 조은희 한솔수북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백 작가가 2차 저작물에 관한 권리도 요구해 왔는데, 이미 애니메이션 등 2차 사업자들과 계약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계약 파트너를 바꾸는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솔수북은 백 작가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소송이 끝나면 ‘구름빵’의 수익을 공익적 목적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백 작가는 ‘구름빵’에 관한 저작권 모두를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동책 시장에서 큰 성공 사례인 ‘구름빵’이 ‘매절계약’으로 이뤄졌다고 하면 신인 작가들이 계약을 맺을 때 선례로 언급되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더불어 ‘구름빵’에서 파생된 2차 상품의 퀄리티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은 백 작가의 린드그렌상 수상 이후에도 개별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는 대법원이 백 작가의 패소를 결정한 2심 판결을 유지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백 작가가 2003년 당시 한솔교육과 작성한 계약서에는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조항이 있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는 계약서에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시비를 걸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대법원이 (백 작가가) 해당 조항에 대해 ‘잘 몰랐다’고 볼 경우 비슷한 사안에 대한 재검토가 줄을 이을 텐데 개별 사건보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법원의 특성상 실현이 어렵다”고 말했다. 권리 및 법률상의 지위 등을 모두 넘긴다는 뜻을 가진 ‘양도’라는 개념이 불러일으킨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3년 저작권 양도’라는 조항으로 물의를 빚었던 올 초 이상문학상 파동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양도’라는 건 힘의 우열에 따른 계약관계”라며 “당시에는 그걸 거절하기 힘든 사회적 맥락도 있었겠지만, ‘이용허락’이라는 개념으로 저작물에 관한 행위를 허락받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말했다. 백 작가는 “계약 당시 조건 수정을 요구했으나, 같은 시리즈물을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도 같은 조건이기에 형평성에 따라 수정은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구름빵 사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 계약서에는 저작재산권의 종류를 선택적으로 양도하게 하고, 기간을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구름빵’ 분쟁 해결엔 법·윤리·산업적 측면 고려해야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 작가가 한국 작가 처음으로 수상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전 세계적으로 그 권위가 대단하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안데르센(1805~1875)이 처음 창작동화를 만든 인물이라면 ‘삐삐 롱스타킹’을 만든 린드그렌(1907~2002)은 현대 아동문학의 출발을 알린 작가다. 린드그렌상이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최대 규모의 상금(약 6억여원)과 더불어 노벨문학상이 아동청소년문학에 수여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린드그렌상은 어느 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 혹은 단체가 내놓은 작품의 질, 어린이 인권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여하는 상이다.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어린이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현대아동문학의 형식을 백 작가는 16년 전에 ‘구름빵’을 통해 선구적으로 보여 줬다”며 “세계국제도서전에 가면 그해 린드그렌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부터 주목할 만큼 유무형의 이익이 엄청난 상인데, 그런 작가의 ‘구름빵’이 저작권을 빼앗긴 책으로 기억되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형태의 ‘매절계약’은 구습이지만,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솔수북의 설명처럼, ‘북스북스’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될 당시 ‘구름빵’은 한 권당 3000원에 판매됐는데, 백 작가에게 처음 지급됐던 850만원이라는 금액은 4만부 판매에 해당하는 인세다. 매절계약은 당시 만화나 그림책처럼 초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성행했다. 신인 작가의 책이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출판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1,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당시 관행들이 줄줄이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출판계 관계자는 “저작권 개념이 무지하던 시절 출판사·작가의 상호 필요에 의해 ‘매절계약’이 많이 맺어졌다”며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결정이 그대로 이어져 한솔수북이 법적 정의는 가져간 후, 윤리적·대승적으로 백 작가에게 저작권 일체를 넘기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매절계약에 눈물 젖은 ‘구름빵’… 빼앗긴 저작권 되찾을까

    매절계약에 눈물 젖은 ‘구름빵’… 빼앗긴 저작권 되찾을까

    지난달 31일, 백희나(49)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며 그의 책 ‘구름빵’이 관심의 중심에 섰다. 한국 작가의 첫 수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구름빵’을 둘러싼 저작권 논쟁도 재점화됐다. 수상 이후 백 작가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구름빵’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백 작가에게 ‘구름빵’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에 12일 현재 1만 9954명이 동의했다. 이에 출판사 한솔수북은 해명자료를 내며 맞섰다. 2003년 백 작가는 출판사 한솔교육과 저작권양도계약을 통해 ‘구름빵’을 출간했고, 출판사로부터 추가 지급분까지 1850만원을 받았다. 이후 ‘구름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백 작가는 해당 출판사인 한솔교육, 한솔수북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1·2심 모두 패소해 최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2014년 ‘구름빵’ 저작권 논쟁이 불거진 이래 1·2심 판결을 거친 지금까지 논쟁이 달라진 것은 없다. 최종적인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지금, 사안의 법적 검토와 더불어 ‘갑과 을’이라는 윤리적 문제, 출판산업의 현실까지 아울러 살펴봤다.●백작가, 아동문학 노벨상 ‘린드그렌상’ 받자 재점화 최근 진실 공방의 초점은 ‘구름빵’이 창출했다는 수익 4400억원에 관한 것이다. 4400억원이라는 숫자는 한솔교육(2013년 출판사업 부문 분할해 한솔수북 설립)이 백 작가에게 지급한 1850만원과 대비되며 더욱 공분을 샀다. 그러나 한솔수북은 ‘구름빵’은 2004년 출간된 이래 40만부가 팔려 매출 20억여원, 수익 2억원가량을 올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구름빵’은 단행본 출간 외에도 이후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DSP 등에서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 2차 콘텐츠로 가공돼 상당한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솔수북은 해명 자료에서 “2014년 4월 열린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작권을 존중하자’며 ‘불법 복제 시장규모가 4400억원’이라고 언급한 후, 뜬금없이 ‘구름빵’을 거론했는데 어느 순간 ‘구름빵’ 수익이 4400억원으로 와전돼 보도됐다”고 했다. 백 작가가 소송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허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러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4400억원’을 언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백 작가는 “제가 확인한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는 ‘구름빵’ 사업 매출에 대한 언급을 할 리 없다”며 “제 관심은 오로지 ‘구름빵’ 저작권 회복에 있을 뿐 (매출은) 관심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 작가가 한솔교육에서 받은 1850만원에 대해서도 양측은 의견이 엇갈린다. 애초 2003년에 맺은 계약 당시 ‘구름빵’은 유아 대상 회원제 북클럽 ‘북스북스’에 수록하는 책 중 하나로 백 작가는 850만원을 받았다. 이후 2006년 ‘구름빵’을 단행본으로 제작하기 위한 인센티브 계약을 맺으며 1000만원을 추가 지급했다는 게 한솔수북 측 설명이다. 그러나 백 작가는 “당시 그림책들에 관한 전시 기획을 준비하며 책을 냈던 출판사들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것 중 하나”이며 “전시 후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절차라고 하기에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양측은 2014년부터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중재하에 저작권 협의를 진행했다 파행을 겪은 바 있다. 한솔수북은 “‘구름빵’ 책의 글·그림 저작권을 백 작가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2015년 2월 서로 구두합의까지 했으나 작가 측에서 그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여 무산됐다”고 말한다. 조은희 한솔수북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백 작가가 2차 저작물에 관한 권리도 요구해 왔는데, 이미 애니메이션 등 2차 사업자들과 계약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계약 파트너를 바꾸는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솔수북은 백 작가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소송이 끝나면 ‘구름빵’의 수익을 공익적 목적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백 작가는 ‘구름빵’에 관한 저작권 모두를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동책 시장에서 큰 성공 사례인 ‘구름빵’이 ‘매절계약’으로 이뤄졌다고 하면 신인 작가들이 계약을 맺을 때 선례로 언급되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더불어 ‘구름빵’에서 파생된 2차 상품의 퀄리티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은 백 작가의 린드그렌상 수상 이후에도 개별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는 대법원이 백 작가의 패소를 결정한 2심 판결을 유지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백 작가가 2003년 당시 한솔교육과 작성한 계약서에는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조항이 있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는 계약서에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시비를 걸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대법원이 (백 작가가) 해당 조항에 대해 ‘잘 몰랐다’고 볼 경우 비슷한 사안에 대한 재검토가 줄을 이을 텐데 개별 사건보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법원의 특성상 실현이 어렵다”고 말했다. 권리 및 법률상의 지위 등을 모두 넘긴다는 뜻을 가진 ‘양도’라는 개념이 불러일으킨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3년 저작권 양도’라는 조항으로 물의를 빚었던 올 초 이상문학상 파동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양도’라는 건 힘의 우열에 따른 계약관계”라며 “당시에는 그걸 거절하기 힘든 사회적 맥락도 있었겠지만, ‘이용허락’이라는 개념으로 저작물에 관한 행위를 허락받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말했다. 백 작가는 “계약 당시 조건 수정을 요구했으나, 같은 시리즈물을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도 같은 조건이기에 형평성에 따라 수정은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구름빵 사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 계약서에는 저작재산권의 종류를 선택적으로 양도하게 하고, 기간을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구름빵’ 분쟁 해결엔 법·윤리·산업적 측면 고려해야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 작가가 한국 작가 처음으로 수상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전 세계적으로 그 권위가 대단하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안데르센(1805~1875)이 처음 창작동화를 만든 인물이라면 ‘삐삐 롱스타킹’을 만든 린드그렌(1907~2002)은 현대 아동문학의 출발을 알린 작가다. 린드그렌상이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최대 규모의 상금(약 6억여원)과 더불어 노벨문학상이 아동청소년문학에 수여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린드그렌상은 어느 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 혹은 단체가 내놓은 작품의 질, 어린이 인권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여하는 상이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어린이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현대아동문학의 형식을 백 작가는 16년 전에 ‘구름빵’을 통해 선구적으로 보여 줬다”며 “세계국제도서전에 가면 그해 린드그렌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부터 주목할 만큼 유무형의 이익이 엄청난 상인데, 그런 작가의 ‘구름빵’이 저작권을 빼앗긴 책으로 기억되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형태의 ‘매절계약’은 구습이지만,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솔수북의 설명처럼, ‘북스북스’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될 당시 ‘구름빵’은 한 권당 3000원에 판매됐는데, 백 작가에게 처음 지급됐던 850만원이라는 금액은 4만부 판매에 해당하는 인세다. 매절계약은 당시 만화나 그림책처럼 초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성행했다. 신인 작가의 책이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출판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1,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당시 관행들이 줄줄이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출판계 관계자는 “저작권 개념이 무지하던 시절 출판사·작가의 상호 필요에 의해 ‘매절계약’이 많이 맺어졌다”며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결정이 그대로 이어져 한솔수북이 법적 정의는 가져간 후, 윤리적·대승적으로 백 작가에게 저작권 일체를 넘기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다시 불거진 ‘구름빵’ 저작권 논쟁… 해법은?

    다시 불거진 ‘구름빵’ 저작권 논쟁… 해법은?

    저작권 소송 1·2심 출판사 승소… 대법원 상고한솔수북 “인세 지급할 것… 수익은 공익 목적”백 작가 “선례 남기면 신인 작가 부당 대우” 법조계 “시비 여지 없어” 작가 패소 무게출판계 “매절계약, 구습이나 당시 불가피”“법적으론 출판사가 명분 가져가되대승적으로 저작권 넘겨줘야” 의견도지난달 31일, 백희나(49)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며 그의 책 ‘구름빵’이 관심의 중심에 섰다. 한국 작가의 첫 수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구름빵’을 둘러싼 저작권 논쟁도 재점화됐다. 수상 이후 백 작가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구름빵’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백 작가에게 ‘구름빵’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에 12일 현재 1만 9954명이 동의했다. 이에 출판사 한솔수북은 해명자료를 내며 맞섰다. 2003년 백 작가는 출판사 한솔교육과 저작권양도계약을 통해 ‘구름빵’을 출간했고, 출판사로부터 추가 지급분까지 1850만원을 받았다. 이후 ‘구름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백 작가는 해당 출판사인 한솔교육, 한솔수북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1·2심 모두 패소해 최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2014년 ‘구름빵’ 저작권 논쟁이 불거진 이래 1·2심 판결을 거친 지금까지 논쟁이 달라진 것은 없다. 최종적인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지금, 사안의 법적 검토와 더불어 ‘갑과 을’이라는 윤리적 문제, 출판산업의 현실까지 아울러 살펴봤다. ●다시 시작된 진실 공방최근 진실 공방의 초점은 ‘구름빵’이 창출했다는 수익 4400억원에 관한 것이다. 4400억원이라는 숫자는 한솔교육(2013년 출판사업 부문 분할해 한솔수북 설립)이 백 작가에게 지급한 1850만원과 대비되며 더욱 공분을 샀다. 그러나 한솔수북은 ‘구름빵’은 2004년 출간된 이래 40만부가 팔려 매출 20억여원, 수익 2억원가량을 올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구름빵’은 단행본 출간 외에도 이후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DSP 등에서 애니메이션, 뮤지컬, 캐릭터 상품 등 2차 콘텐츠로 가공돼 상당한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솔수북은 해명 자료에서 “2014년 4월 열린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작권을 존중하자’며 ‘불법 복제 시장규모가 4400억원’이라고 언급한 후, 뜬금없이 ‘구름빵’을 거론했는데 어느 순간 ‘구름빵’ 수익이 4400억원으로 와전돼 보도됐다”고 했다. 백 작가가 소송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허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러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4400억원’을 언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백 작가는 “제가 확인한 적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는 ‘구름빵’ 사업 매출에 대한 언급을 할 리 없다”며 “제 관심은 오로지 ‘구름빵’ 저작권 회복에 있을 뿐 (매출은) 관심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 작가가 한솔교육에서 받은 1850만원에 대해서도 양측은 의견이 엇갈린다. 애초 2003년에 맺은 계약 당시 ‘구름빵’은 유아 대상 회원제 북클럽 ‘북스북스’에 수록하는 책 중 하나로 백 작가는 850만원을 받았다. 이후 2006년 ‘구름빵’을 단행본으로 제작하기 위한 인센티브 계약을 맺으며 1000만원을 추가 지급했다는 게 한솔수북 측 설명이다. 그러나 백 작가는 “당시 그림책들에 관한 전시 기획을 준비하며 책을 냈던 출판사들에서 후원금 명목으로 받은 것 중 하나”이며 “전시 후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절차라고 하기에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양측은 2014년부터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중재하에 저작권 협의를 진행했다 파행을 겪은 바 있다. 한솔수북은 “‘구름빵’ 책의 글·그림 저작권을 백 작가에게 넘겨주기로 하고, 2015년 2월 서로 구두합의까지 했으나 작가 측에서 그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하여 무산됐다”고 말한다. 조은희 한솔수북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백 작가가 2차 저작물에 관한 권리도 요구해 왔는데, 이미 애니메이션 등 2차 사업자들과 계약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계약 파트너를 바꾸는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솔수북은 백 작가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소송이 끝나면 ‘구름빵’의 수익을 공익적 목적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백 작가는 ‘구름빵’에 관한 저작권 모두를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동책 시장에서 큰 성공 사례인 ‘구름빵’이 ‘매절계약’으로 이뤄졌다고 하면 신인 작가들이 계약을 맺을 때 선례로 언급되며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며 “더불어 ‘구름빵’에서 파생된 2차 상품의 퀄리티를 지키기 위해서도 (저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은 백 작가의 린드그렌상 수상 이후에도 개별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는 대법원이 백 작가의 패소를 결정한 2심 판결을 유지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백 작가가 2003년 당시 한솔교육과 작성한 계약서에는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솔교육에 양도한다’는 조항이 있다. 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는 계약서에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시비를 걸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대법원이 (백 작가가) 해당 조항에 대해 ‘잘 몰랐다’고 볼 경우 비슷한 사안에 대한 재검토가 줄을 이을 텐데 개별 사건보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법원의 특성상 실현이 어렵다”고 말했다. 권리 및 법률상의 지위 등을 모두 넘긴다는 뜻을 가진 ‘양도’라는 개념이 불러일으킨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3년 저작권 양도’라는 조항으로 물의를 빚었던 올 초 이상문학상 파동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양도’라는 건 힘의 우열에 따른 계약관계”라며 “당시에는 그걸 거절하기 힘든 사회적 맥락도 있었겠지만, ‘이용허락’이라는 개념으로 저작물에 관한 행위를 허락받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말했다. 백 작가는 “계약 당시 조건 수정을 요구했으나, 같은 시리즈물을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도 같은 조건이기에 형평성에 따라 수정은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구름빵 사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표준 계약서에는 저작재산권의 종류를 선택적으로 양도하게 하고, 기간을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구름빵’ 분쟁 해결엔 법·윤리·산업 측면 고려해야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 작가가 한국 작가 처음으로 수상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전 세계적으로 그 권위가 대단하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안데르센(1805~1875)이 처음 창작동화를 만든 인물이라면 ‘삐삐 롱스타킹’을 만든 린드그렌(1907~2002)은 현대 아동문학의 출발을 알린 작가다. 린드그렌상이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최대 규모의 상금(약 6억여원)과 더불어 노벨문학상이 아동청소년문학에 수여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린드그렌상은 어느 한 작품이 아니라 작가 혹은 단체가 내놓은 작품의 질, 어린이 인권에 끼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여하는 상이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어린이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현대아동문학의 형식을 백 작가는 16년 전에 ‘구름빵’을 통해 선구적으로 보여 줬다”며 “세계국제도서전에 가면 그해 린드그렌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부터 주목할 만큼 유무형의 이익이 엄청난 상인데, 그런 작가의 ‘구름빵’이 저작권을 빼앗긴 책으로 기억되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형태의 ‘매절계약’은 구습이지만,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솔수북의 설명처럼, ‘북스북스’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될 당시 ‘구름빵’은 한 권당 3000원에 판매됐는데, 백 작가에게 처음 지급됐던 850만원이라는 금액은 4만부 판매에 해당하는 인세다. 매절계약은 당시 만화나 그림책처럼 초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서 성행했다. 신인 작가의 책이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출판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1,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당시 관행들이 줄줄이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출판계 관계자는 “저작권 개념이 무지하던 시절 출판사·작가의 상호 필요에 의해 ‘매절계약’이 많이 맺어졌다”며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결정이 그대로 이어져 한솔수북이 법적 정의는 가져간 후, 윤리적·대승적으로 백 작가에게 저작권 일체를 넘기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씨줄날줄] ‘집콕’ 라이브에이드/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집콕’ 라이브에이드/박홍환 논설위원

    19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JFK스타디움에 각각 7만 5000명과 9만명의 구름 관중이 모여들었다. 세계 팝 음악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라이브에이드(Live Aid) 공연이다. 총 16시간가량 연속 진행된 공연에서 영국과 미국, 유럽의 톱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랐고, 특히 영국 팝가수 필 콜린스는 웸블리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초음속 콩코드 비행기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날아가 공연하는 기염을 토했다. 라이브에이드는 기아에 허덕이는 에티오피아 난민에서 비롯됐다. 아일랜드 펑크록 그룹 붐타운래츠를 이끌던 밥 겔도프는 1984년 우연히 TV를 시청하다 3000만 명의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그는 영국 및 아일랜드 출신 유명 뮤지션들과 일회성 프로젝트 그룹 ‘밴드 에이드’를 만들어 같은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선 싱글 ‘그들도 크리스마스를 알까?’를 발표했다. 앨범은 무려 300만장이 팔려나갔고, 800만 파운드의 기부금이 쌓였다. 미국 음악계의 호응에 고무돼 밥은 이듬해 영미 두 곳에서 동시 진행되는 자선콘서트 기획을 구상했고 60여명의 월드스타가 참여하는 라이브에이드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말이 60여명이지 슈퍼스타 한 명 모시기도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밥의 과감성과 기획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전화모금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1억 5000만 파운드(약 2250억원)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처럼 음악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위기의 세상을 구하는 위대한 힘을 보여 준다. 이번에는 미국의 혁신적인 팝아티스트 레이디 가가가 나섰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돕고, 전 세계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세계적 슈퍼스타들을 결집해 온라인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하나의 세계, 집에서 함께’로 명명된 이번 합동공연에는 엘턴 존, 스티비 원더, 폴 매카트니, 빌리 아일리시 등의 톱스타가 대거 참여하고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과 피아니스트 랑랑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19일 오전 6시(한국 시간) 시작되는 공연은 방송과 유튜브, 트위터 등 다양한 SNS 플랫폼 등을 통해 생중계된다. 전 세계인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스타나 관객이나 모두 집에서 공연하고 관람한다. ‘집콕’ 라이브에이드인 셈이다. 이번 공연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대응 모금을 돕는 의미도 있다. 레이디 가가는 WHO 친선대사인 모친과 자신의 앨범 제목을 딴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운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바위 틈 발그레 핀 너… 물드는구나 나의 맘

    바위 틈 발그레 핀 너… 물드는구나 나의 맘

    단언컨대 여기는 진달래의 영토다. 칼처럼 뾰족 솟은 암봉도 지금 여기에선 꽃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전남 강진의 덕룡산(德龍山). 고도는 낮아도 험하기가 설악의 용아장성을 뺨친다는 산이다. 그 산의 바위 벼랑 사이에 지금 연분홍 진달래가 장관이다. 진달래 하면 저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는 애잔한 시구로 기억되는 꽃이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한 가득한 진달래가 어떻게 험상궂은 바위 벼랑 틈마다 여린 꽃잎을 심어 둔 건지, 볼수록 신기하다. 그래도 이런 부조화의 아름다움이 좋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어우러지는 모습 말이다. 개체수가 많지 않으면 또 어떠랴. 노류장화처럼 흔천인 것보다 외려 이편이 더 낫다. 덕룡산은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산이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둬야 하니 가급적 올봄일랑 지면과 랜선으로 즐기시고 내년 봄을 기약하시길.덕룡산의 이름을 한글로 풀면 덕이 있는, 그러니까 후덕한 용의 모습을 한 산이라는 뜻이다. 뭐 용의 등뼈를 닮았다는 건 그렇다 치자. 창날처럼 솟은 희디흰 암봉들이 실제 꿈틀대는 백룡을 보는 듯하니까. 한데 덕이 있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 산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쓰고서야 겨우겨우 ‘등뼈’ 하나를 넘을 수 있다. 그런 암봉을 여러 개 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체력은 물론 멘탈까지 탈탈 털린다. 그런데 덕이 있다고? 용은 본 적이 없으니 현실에서 이 산줄기와 가장 닮은꼴을 찾으라면 지네다. 마치 지네의 발처럼 여러 산줄기를 이 마을 저 마을로 늘어뜨리고 갈지자로 꿈틀대는 듯하다. 멀리 월출산에서 일어선 산자락은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만덕산을 지나 석문산, 덕룡산, 주작산을 세운 뒤 해남 쪽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바다로 빠져든다. 그 장대한 줄기의 일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주작산 일출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덕룡산은 주봉인 서봉(432.9m)과 동봉(420m)을 비롯해 크고 작은 다수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우지끈 솟아오른 거대한 암봉들이 선사하는 장쾌한 풍경이 일품이다. 반면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겨울철엔 하루 한 명 보기도 쉽지 않다. 진달래가 피는 이맘때는 사람들이 꽤 찾는다. 그것도 주말에 서울 등 대처에서 등산 단체가 찾을 때나 잠깐 북적댈 뿐이다. 덕룡산과 주작산은 이어져 있다. 사실상 한몸이나 다름없다. 덕룡산이라 따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주작산에 딸린 봉우리로 여겨 ‘주작산 덕룡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꾼들 역시 주작과 덕룡을 이어 붙여 종주산행에 나서기도 한다. 이 경우 석문공원(소석문) 구름다리를 들머리 삼아 덕룡산 동봉~서봉~475봉(475m) 등을 거쳐 오소재로 내려선다. 거리가 무려 16㎞에 이른다. 노련한 산꾼이 숨만 쉬고 걸어도 7시간, 어지간한 이라면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물론 반대 코스도 가능하다. 가장 일반적인 건 소석문에서 출발해 수양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거리는 9㎞ 남짓. 6시간가량 걸린다.‘얄팍한 산행’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만덕광업에서 곧바로 동봉으로 올라 인증샷만 찍고 내려온다. 이 경우 2시간 안팎이면 그럴싸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줄곧 오르막 구간이긴 해도 거리는 편도 1㎞ 미만이다. 덕룡의 두 핵심 봉우리를 돌아보는 코스도 있다. 수양마을에서 출발해 서봉, 동봉을 거쳐 만덕광업으로 하산하거나 수양마을로 원점회귀한다. 거리는 5㎞ 미만이다. 얄팍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강진 이곳저곳을 돌아봐야 하는 갈길 바쁜 관광객들에겐 이 단거리 코스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오소재와 주작산 전망대, 소석문(석문공원) 구름다리 등의 명소는 하산해서 차로 돌아보면 된다. 덕룡산은 오르기 힘든 산이다. 암릉의 형태가 변화무쌍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용의 등뼈’ 하나를 넘고 나면 또 다른 등뼈가 앞을 막아선다. 이 지역 산꾼들의 ‘라떼’ 시절엔 산에 철심은커녕 로프 하나 매달려 있지 않았다. 그 탓에 산행 시간도 10시간 이상 걸렸단다. 물론 암봉 아래에 우회로는 있다. 하지만 우회로로 가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암봉을 발아래에 둔 정복감, 아찔한 바위 벼랑에 서서 빼어난 풍경을 맞는 성취감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으니 말이다.요즘은 위험 지역에 로프를 매어 놓거나 ‘ㄷ’자 형 철심을 박아 뒀다. 그 덕에 산행 시간도 꽤 줄었고 좀더 안전해 졌다. 그래도 아찔한 구간은 여전히 많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여 암봉 위에 오르고 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과 마주한다. 칼날이 여러 개 겹쳐진 듯한 암릉 사이사이마다 분홍빛 진달래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고된 산행 끝에 만난 절경이라 그럴까. 과장 좀 보태, 신이 만든 정원에 실수로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이다. 덕룡산 진달래는 대규모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다. 암릉과 산허리 등에 소박한 규모로 핀다. 여느 진달래 명산처럼 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외려 이 모습이 더 단정하고 아름답다.백룡의 등뼈에 올라타서 아래를 굽어보는 맛도 그만이다. 강진만과 다도해의 시원한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앞뒤로는 삼국지 장비의 장팔사모를 연상케 하는 뾰족한 암벽이 연달아 펼쳐진다. 쉽게 말해 눈 두는 곳마다 절경이다. 덕룡산 주변에 유명 관광지들이 많다. 백련사 동백숲은 자체가 천연기념물(151호)로 지정된 명소다. 수백년 묵은 고목 1500여그루에서 떨어진 동백꽃이 숲 바닥에 낭자하다. 산행 들머리인 석문공원은 ‘강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즘 강진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가우도는 ‘강진만의 여의도’라고 불린다. 서울 여의도의 양 끝에 다리가 놓였듯, 가우도 역시 도암면, 대구면과 각기 다른 연륙인도교로 이어져 있다. 월출산 아래 터를 잡은 백운동 정원도 필수 방문 코스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등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이라 불린다. 글 사진 강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얄팍한’ 덕룡산 산행의 들머리인 수양마을 주작산별빛마루펜션은 영업을 중지했다. 내비게이션 주소는 신전면 수양길 148-217이다. 옛 펜션 건물 조금 지나 공터에 차를 대면 된다. 만덕광업 쪽으로 오르는 이들도 꽤 많다. 광산 바로 앞에 작은 주차공간이 있다. -주작산휴양림은 강진 남쪽에서 가장 권할 만한 숙소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19로 폐쇄 중이다. 강진 읍내에선 프린스행복호텔이 깨끗하다. -강진 읍내에 오감통 먹거리장터가 있다. 강진을 대표하는 한정식, 토하비빔밥 등의 먹거리를 내는 집들이 몰려 있다. 칠량면의 청자식당은 바지락 회무침 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강진을 오갈 때 거치는 영암 학산면 독천리 일대에 낙지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많다. 갈비와 낙지를 함께 끓인 갈낙탕, 연포탕 등 ‘혼밥’도 낸다.
  • 백자 속 용 꿈틀… ‘봄·옛 향기에 취하다’

    백자 속 용 꿈틀… ‘봄·옛 향기에 취하다’

    다보성갤러리는 고미술 특별전 ‘봄·옛 향기에 취하다’를 6일부터 이달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전시관에서 연다. 전시 유물은 통일신라 시대 철불좌상과 조선 전기 백자호 등 금속·도자기 300여점과 책가도 8폭 병풍 등 서화 70여점, 궁중에서 사용하던 주칠삼층책장 등 고가구와 민속품 120여점 등이다. 18세기 광주 분원리 관요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청화운룡문호는 여의주를 잡으려는 두 마리 용과 구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용의 머리를 달마의 모습처럼 해학적으로 그려 넣은 17세기 철화백자도 공개된다.백자유개사이호는 귀 네 개가 달린 항아리다. 외호(外壺)와 내호(內壺)로 구성되며, 모두 뚜껑이 있다. 15세기 조선 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순백자항아리 백자호도 나왔다. 조선시대 책가도 8폭 병풍은 중앙에 초점을 두고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투시 기법을 적용해 그린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화가 이징 작품으로 전하는 니금산수도와 잣나무로 제작한 강화반닫이 등도 눈길을 끈다. 갤러리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우리 문화재 가치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해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수익금 일부는 코로나19 피해 지역 의료비로 기부할 예정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문체부 장관, ‘구름빵’ 백희나 작가에게 축전

    문체부 장관, ‘구름빵’ 백희나 작가에게 축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을 받은 ‘구름빵’의 백희나(사진) 작가에게 축하와 격려의 뜻을 전달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세계적인 캐릭터 ‘말괄량이 삐삐’를 만든 스웨덴 여성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을 기리고자 스웨덴 정부가 2002년 제정했으며,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올해는 67개국에서 240명이 후보로 올랐고, 백 작가가 한국 최초로 수상했다. 상금은 500만 크로나(약 6억 460만원)이다. 박 장관은 “이번 수상은 그동안 기발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창작 기법으로 경이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준 백 작가의 성취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면서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그림책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세계 속에 한국의 출판물, 나아가 한국 문화의 위상을 드높여준 쾌거를 일구어낸 백 작가께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박 장관은 백 작가의 작품과 관련한 논란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2005년 출간한 백 작가의 데뷔작 ‘구름빵’은 국내에서 45만 권 넘게 팔렸고, 10개 넘는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도 나오며 부가 가치를 창출했지만 백 작가가 지금껏 받은 돈은 1850만원에 불과하다. 백 작가는 관련해 출판사에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이른바 ‘매절계약’과 관련해 소송을 제기했고, 1·2심 모두 패소했다. 백 작가는 인형과 소품, 세트를 직접 만들고 조명까지 곁들여 하나의 무대를 연출한 뒤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첫 작품 ‘구름빵’을 비롯해 지금까지 ‘달 샤베트’,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 ‘나는 개다’ 등 그림책 13권을 출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씨줄날줄] 마스크와 WHO의 무능/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마스크와 WHO의 무능/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종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지난해에는 ‘초예측’이란 저서를 통해 “가난한 나라는 공중위생과 공공보건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신종 감염병이 등장하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각국 시장이 단일한 세계경제로 통합되는 가운데 세계적인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테러리즘 등과 함께 ‘전 세계적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든 사람이 신체·정신적으로 최고의 건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유엔의 전문기구이다. 1948년 설립 이후 천연두 박멸 등 세계적인 유행성 질병 및 전염병을 퇴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194개 회원국의 공중보건 행정과 검역업무를 지원하고 연구자료 등을 생산, 보급해 왔다. 전염병 등 각종 질병을 통제하는 국제적인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는 “WHO의 무능이 큰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WHO는 세계 각국의 전염병 관련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을 때에도 중국의 대응을 칭찬하며 허송세월 했다는 게 각국의 시각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은 지난 1월 30일에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지만 팬데믹 선언에는 미온적이었다. 약 10조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팬데믹을 우려한 일부 국가의 이동 제한이나 국경 폐쇄 등을 비판했다. “(WHO가) 정치와 돈에 오염됐다”며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이 계속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포함된다. 미국의 CNN 방송은 지난달 9일 “자체적으로 현 상황을 팬데믹이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는 112개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던 시점이다. WHO의 팬데믹 선언(3월 11일)보다 이틀 빨랐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팬데믹 상황에서 WHO는 마스크 착용을 반대했다. 오히려 지난 1일까지도 “마스크가 코로나19 전파를 막는 데 유용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반대했다. 현재는 미국·독일 등에서 일회용뿐 아니라 천마스크라도 착용하라고 장려한다. 코로나19로 희생된 사람이 4만 500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는 2일 기준 91만명, 곧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과 함께 경제적인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WHO의 늑장 대응으로 경제 등 세계적 붕괴라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WHO의 무능이 4월을 또 ‘잔인한 달’이 되게 하고 있다. yidonggu@seoul.co.kr
  • [금요칼럼] 국립충주박물관을 반기며/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국립충주박물관을 반기며/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충북 충주 중앙탑면 창동리의 탄금호 곁에는 커다란 고려시대 마애불이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기대를 안고 호숫가에 다가선 사람들은 그러나 비스듬히 보이는 불상이 당황스럽다. 그런데 남한강과 달천강의 합수머리를 지나던 사공들이 뱃길의 안전을 빌던 수호신이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무릎을 치게 된다. 진면목은 배를 타고 강물 위에서 바라봐야 알 수 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은 이 마애불을 두고 ‘토속적인 분위기와 세련되지 못한 세부 표현, 하체 조각이 생략된 기법, 구불구불한 선 모양 등 지방양식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세련되기 그지없는 조각이었다면 민초의 기원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보물이나 국보가 아닌 지방 유형문화재에 머물고 있는 것도 문화재 지정이 ‘미술’의 눈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문화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모여야 하는 문화행사는 바로 그 사람이 모인다는 이유로 대부분 멈춰 서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벌써부터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SNS를 비롯해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전시해설 같은 전에 없던 서비스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니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에는 국립충주박물관이 남한강변 충주세계무술공원에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도 있었다. 충주에 중앙박물관 산하 박물관이 2026년 문을 열 것이라는 뉴스가 지난해 말 들렸는데 위치를 놓고는 설왕설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충주에 국립박물관이 생긴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전시실에 가져다 놓을 수도 없는 창동리 마애불이었다. 고구려·신라·백제는 충주를 놓고 크게 다투었다. 충주 고구려비는 장수왕이 이 지역을 차지한 증거이고, 봉황리 햇골산마애불의 고구려 조각 양식은 그 장악 기간이 짧지 않음을 일러 준다. 신라는 진흥왕 이후 충주를 제2의 수도로 여길 만큼 중요시했다. 충주가 누구 손아귀에 들어가느냐는 곧 한강 유역 패권의 향방을 결정했다. 남한강 때문이다. 충주에서 배를 띄우면 과장할 것도 없이, 노를 젓지 않아도 하루면 서울에 닿았다. 충주의 중요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도 알고 있었다. 신립 장군이 이곳에 배수진을 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창동리(倉洞里)에는 고려시대 전국 13조창의 하나인 덕흥창이 있었다. 땅 이름부터가 ‘조창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충주지역 조창이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충청도는 물론 영남 북부의 세곡(稅穀)을 도성으로 나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계립령에 이어 새재를 개척한 것도 경상도에서 걷은 쌀을 남한강변으로 나르는 소달구지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창동리를 떠난 세곡선 물길은 용산강으로, 예성강으로 이어졌다. 창동리 마애불은 남한강 수운(水運)의 역사를 상징한다. 남한강 물길은 상류지역의 청풍과 단양은 물론 강원도 정선과 인제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태백산맥 너머 영동지역에서 한양을 오갈 때도 최단시간 교통로는 남한강이었다. 조운이 폐지된 이후에도 민간 수운은 20세기까지 지속됐는데, 조선시대 조창인 가흥창 건너 목계나루가 그 흔적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를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물길은 1973년 팔당댐 건설로 끊어졌다. 충주는 그 파란만장한 역사만큼이나 문화유산이 많은 고장이다. 그러니 새로운 국립박물관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는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럴수록 ‘남한강 물길이 만든 충주의 지정학적 환경’이 선사시대 이래 다양한 이 고장 문화유산의 상관관계를 일관되게 설명해 줄 전시의 키워드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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