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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무익한 명분론과 오기싸움

    실용성 없는 명분론으로 국익을 크게 해친 대표적 사례는 1876년 2월 강화도에서 일본과 맺은 한·일수호조규 또는 병자수호조약으로불리는 강화도조약의 체결과정을 들 수 있다. 일본은 저들이 도발한운양호사건을 트집잡아 조선에 군함과 함께 전권대사를 보내 협상을강요했다. 일본에서는 근황(勤皇)론자인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가,조선에서는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이 각각 전권대사로 협상에 나섰다. 신헌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대표들은 함포의 위협과 근대적 국제조약체결의 지식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지나치게 명분론에집착하여 국익을 저버리고 국권을 빼앗기게 되는 첫발을 내디뎠다. 구로다는 부산과 인천·원산항의 개항을 비롯하여 개항장 안의 조계(租界)설정,영사재판권 인정 등의 조항이 명시된 12개항을 요구한 대신에 신헌은 조약문의 내용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조선국황제’ 앞에 대(大)자를 추가하여 ‘대조선국황제’를 고집,이를 관철시켰다. ‘조계설정’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일본의 ‘대일본국천황’이란 호칭에 우리도 질 수 없다는 명분론에서이를 고집하다가 개문납적(開門納賊) 즉,‘문을 열어서 도적을 맞아들이’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실익이 없는 알량한 명분주의는 지금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얼어죽어도 겻불은 안쬐고 굶어죽어도 빌어먹지 않는다는 결기가 선비의 덕목일지는 몰라도 정치인이나 공인의 행위가치일 때는 사회에큰 손상을 끼치게 된다. 그것도 민주주의 시대에. 여야 명분론과 의사들의 오기싸움 이번만은 달라지기를 기대했지만 한달이 넘도록 국회를 공전시켜온여야의 대치나 석달이 넘도록 국민건강을 팽개친 의사들의 집단 폐·파업이 타협을 어렵게 만든 것은 무익한 명분론과 오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지켜야 할 명의(名義)나 도리가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명분론은 다분히 성리학적인 공허한 명분주의에 집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반이라는 명분 때문에 가족이 굶어도 노동하지 않고,선비라는 명분을이유로 놀고 먹는 구실을 찾는다. 실용을 천시하고 협상론을 죄악시하면서 흑백론에 집착한다. 그래야 선명성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그것도의정을 책임진 여야나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는 의사들이 상대의 굴복을 전제로 벌이는 대결과 오기싸움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되기어렵다. 지금 국회는 촌각을 다투는 법안이 쌓여 있다.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고 각종 개혁을 뒷받침할 정부가 제출한 36건의 구조개혁법안을 비롯,수재민을 돕는 법안 등 각종 민생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마터면 ‘불법군대’가 될 뻔한 동티모르 주둔군 연장문제는 여권 단독처리로 그나마 급한 불은 껐지만 나머지 법안들은 여전히 낮잠만자고 있다. 그 판에 경제가 거덜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게 된다. 의사들의 막무가내식 명분론과 오기도 고약하기로는 정치권에 못지않다. 국가공권력의 치욕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강경노선은 그들이 내건 각종 명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다. 더욱이 여야나 의사들이 내세우는 명분이 그나마포장용이고 실제는 정국주도권이거나 잇속챙기기에 있음을 상기할때 저들의 오만과 독선에 국민의 분노와 증오심만 가중된다. 정치인들과 의사들은 민심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보리와 귀리도구분할 줄 모르는 숙맥주의,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고집하는 위압주의,소경의 코끼리 평가와 같은 편견주의,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상대의 눈에 티만 찾는 도그마를 버리라는 말이다. 무엇을 거두려 하는가 가을이 깊어간다. 폭우와 태풍이 휩쓸고 간 들녘에도 벼가 무르익고 과일이 살쪄간다. 농부들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정치인과 의사들은 이 가을에 무엇을 거두려 하는가. 국가를 위하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자신들의 행위를 되돌아보면서 제발 본령(本領)으로 돌아오라. 당신들의 알량한 명분주의와 오기싸움으로 우리사회와 국민을 더이상 멍들고 병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삼웅 주필
  • 日, ‘엔강세 저지’ G7합의 추진

    [도쿄 AFP 연합] 일본이 엔화 강세 저지에 양팔을 걷어부쳤다.엔화 강세가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간이어진 경기하강 국면에서 벗어나는데 원동력이 되는 수출의 목을 조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최초로 시행중인 0% 금리정책이나 시장개입,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선진국들의 공조와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일본정부는 이를 위해 이번 주말 도쿄에서 개막된 서방선진 7개국(G7) 회의에서 엔화 강세 억제를 위한 회원국간 합의를 추진할 방침이다.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도 8일 일본이 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미국 등 G7국가에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이 끝날 때까지 합의를 도출해 내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엔화 강세 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디플레우려가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0% 금리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번 회의를 주재하고있는 구로다 하루히코 대장성 국제담당 차관은 “엔화의 환율이 아직 순조로운 경제 회복에 충분한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엔화는 지난주초 달러당 101엔 근처까지 치솟았다가 일본은행의 엔화매도 개입 이후 달러당 105엔까지 떨어진 상황.그러나 일본정부가 희망하고있는 엔화가치는 달러당 105∼ 110엔선이다. 지난해 9월 워싱턴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을 제외한 G7 국가들은 엔화 강세에 대한 우려는 같이 하면서도 엔화 가치의 하락을 위한 공조노력은 회피했었다.대신 일본 정부가 0% 금리정책을 고수하고 시장에 엔화를 더욱 많이투입해 강세를 저지하는 등 내수진작을 위해 더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었다.
  • 일·미, 엔고저지 공조 나섰다

    일본이 엔고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고 미국도 협조개입에 응할 조짐이다.일본은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금융과 재정 양면의 특별조치를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17일 일본 언론들은 미·일 통화당국이 엔고 저지를 위한 협조체제를 강화하는 최종협의에 들어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엔화 가치가 급등하면 양국이협력,기동성 있게 대규모의 ‘엔 팔기,달러 사기’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힘입어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전날보다 1엔가량떨어진 달러당 106엔대로 하락,수직상승세는 일단 가라앉았다. 일본은행은 2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통해 양적 금융완화를 강화할 뜻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은 일본이 시중에 푼 엔 자금을 즉시 거둬들여 엔고를 촉진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시중에 제공된 엔 자금을 그대로 두는 양적 금융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은이 검토하고 있는 금융완화는 현행 1조엔으로 고정돼있는 금융준비액을 크게 늘려 엔 자금방치를 포함한 대규모 자금 공급에 착수하는 방안이 될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최고 10조엔에 달하는 제2차 추경예산안을 편성,내수확대를 통한 본격적 경기회복을 꾀해 미국의 협조를 끌어낸다는 복안이다. 하야미 마사루(速水優) 일은 총재는 이날 윌리엄 맥도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와 전화회담을 갖고 현재 급격히 진행중인 엔고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협조개입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미국을 방문중인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대장성 재무관도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차관과 16일(현지시간) 저녁 회담을 갖고 협조개입에대해 협의했다. 미야자와 대장상과 하야미 일은 총재는 전날에 이어 이날 회동,대책을 협의한 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에게 보고하는 등 일본 당국은 엔고 저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성기기자 marry01@
  • 親日의 군상:6/‘친일파 1호’ 金麟昇(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 침략선 타고와 모국 침탈 앞장/1875년 ‘운양호사건’ 전후 日에 침략정보 제공/日 통역으로 강화도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日本식 두발·복장에 ‘皇國 절대 충성” 다짐/한때는 선비정신 소유자/日 속셈 모르고 매국 행위/背族 대가는 日의 멸시뿐 1876년 2월4일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앞바다에 일본 군함 한 척이 출현했다.1월6일 일본 시나가와만(品川灣)을 출발,부산을 거쳐 온 이 배에는 일본 정부의 특명전권변리공사(特命全權辨理公使)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일행이 타고 있었다.구로다 일행은 6개월 전에 발생한 ‘운양호(雲揚號)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교조약을 맺으러 오는 길이었다. 구로다를 포함해 무려 800여 명에 달하는 일행 가운데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 한 명이 끼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金麟昇(생몰연대 미상). 그는‘운양호사건’ 이전부터 일본측과 내통하면서 일본을 도와오다가 이제 그 마무리 작업인 조약(강화도조약)체결을 돕기 위해 동행한 통역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는 있었지만근대적 의미에서 金麟昇보다 앞서는 친일파는 없다.친일파 연구가 고(故) 林鍾國씨 역시 그를 ‘친일파 1호’로 꼽았다.조선조 말기 양반계층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친일의 길을 걷게되는 과정은 이후에 등장하는 친일파들의 행태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그의 친일행적 연구는 일제하 친일파 연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그는 해외에서 일제의 외국인 고문(顧問)으로 고용돼 비밀리에 활동한 까닭에 국내에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林鍾國씨 조차도 그의 글에서 ‘김인승’이라는 이름 석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몇몇 역사학자 역시 논문에서 그를 언급한 바는 있으나 친일활동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은 지난 96년 2월 성신여대 具良根 교수(당시 도쿄대 외국인 연구원)가 발표한 한 논문을 통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具교수는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서 입수한 3건의 자료를 토대로 ‘일본외무성 7등출사(七等出仕·일본의 구식 관직명) 세와키 히사토(瀨脇壽人)와 외국인고문(顧問)金麟昇’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친일파의 ‘선구자’격인 金麟昇의 친일행적을 추적해 보자. 金麟昇은 함경북도 경흥(慶興)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7대조 때 경흥으로 이사한 뒤로 그의 집안은 토반(土班,지방의 양반)으로 전락하였다.그는 16세 때부터 경흥부(慶興府)에 근무하면서 상당한 직책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이 지역에 대홍수와 기근이 몰아치던 1869년 그는 모종의 일로 이 지역 수령과의 의견충돌 끝에 관직을 그만두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 니콜리스크(당시 한국명 吹風,블라디보스토크 북방 50리)로 탈주하였다. 이곳에는 그 뒤 식량을 찾아 월경(越境)한 조선인 유랑민이 대거 몰려들었는데 한학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여기서 학교를 열고 생도들을 가르쳤다.그러던중 여기서 다케후지 헤이가쿠(武藤平學)라는 한 일본인과 사귀게 된다.다케후지는 원래 양학(洋學,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집을 나왔다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오게 된 사람이었다.바로 이 다케후지가 나중에 그를 친일의 길로 이끈 첫 안내자가 된다.한편 이무렵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진(南進)정책을 강행하자 1875년(明治 8년) 4월 일본정부는 외무성 7등출사 세와키 히사토(1822∼78)를 블라디보스토크와 포셋 지방에 파견,러시아와 교섭을 갖게 하였다. 세와키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외무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 위해 파견한 외교관이었지만 사실상 정탐꾼이었다. 일본 외무성이 그에게 준 ‘출장명령서’(1875년 4월4일)의 임무 부분은 ‘탐색’,‘정탐’인데 이 중의 절반은 의외로 조선에 대한 것이었다.명령서에는 구체적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조선땅으로 들어가서 토지·풍속 등을 탐색하고 올 것’ 등이 명기돼 있다.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세와키는 조선에 들어가지 못했다.대안을 모색하고 있던 세와키는 여기서 일본인 다케후지를 만나 문제의 金麟昇을 소개받는다.金麟昇의 학식과 경험을 높이 산 세와키는 귀국길에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이무렵 일제는 다수의 외국인 고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874∼75년에는 그수가 약 2,000명에 달했다.운양호사건(1875년 9월20일),강화도조약(1876년)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에 ‘황국(皇國)의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외국인 고문 채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그리고 그 첫 군사행동이 바로 ‘운양호사건’이었다. 1875년 7월 세와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金麟昇은 운양호사건 발생직전 1차로 3개월간(8월1일∼10월30일) 일본정부와 외국인 고문 고용계약(日給 1원)을 맺었다.당시 일본 외무성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만주지방 지도작성 ▲북방사정 탐색 ▲조선 침략용 지도작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 등.이중에서 金麟昇이 일본측에 크게 도움을 준 부분은 조선에 관한 사항이었다. 1875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조선 침략용으로 작성한 ‘조선전도(朝鮮全圖)’는 金麟昇의 자문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지도 하단부에 적힌 ‘조선 함경도인 모(某)씨에게 친히 그 지리를 자문받고…’의 모씨는 바로 金麟昇을 지칭한 것이다.지도 외에도 당시 조선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계림사략(鷄林事略)’ 역시 그의 자문을 받아 출간됐다. 한편 1차 계약기간중인 10월부터 金麟昇의 급료가 월급제로 바뀌면서 금액수 두 배로 늘어났다.당시 일본 외무경(현 외상) 데라시마(寺島宗則)는 태정 대신(太政大臣,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어는 물론 한학,시문(詩文)이 능통하여 아주 유용한 인물로…한지(韓地,조선)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라고 그를 평가하였다.일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를 적절히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지로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2월27일) 이후까지 거의 1년동안 도쿄에 머물면서 조선침략을 위한 갖가지 정보와 조언을 일본측에 제공했는데 결정적인 공헌은 역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876년초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일본정부의 대표 구로다 특명전권공사가 그에게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깎지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皇國,일본)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황송해 했다.심지어 ‘끓는 물,타는 불 속이라도 어찌 고사하겠는가’라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1876년 2월4일 강화도에 도착한 구로다 일행은 1주일만인 2월10일 강화부(江華府)에 상륙하여 다음날 11일부터 담판에 들어갔다.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렸다.이 기간동안 그는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군함에 머무르면서 공문의 한문번역과 수정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조약체결 과정에서 수시로 일본측에 조언을 해주었는데 구로다에게는 조선관리설득방책 18개항을 서면으로 제출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전신기(電信機)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에서부터 ‘여러 말 할 필요없다.청국(淸國,청나라)은 그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데도 먼저 일본에 강화조약을 청하여 맺었다.두루살펴 깊이 생각하라’(18항)는 등 공갈·협박성 문귀도 들어 있다. ‘직량(直亮)’한 성격에 동포애도 강한,조선의 전통적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던 金麟昇.당시 그는 일본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일본과 조선은상맹상통(相盟相通)의 나라’로 보고 일본의 강화도조약 체결 추진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조약 체결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얼마후 러시아로 되돌아갔는데 도쿄에서 남긴 한 편지에서 ‘거리에서 듣기 불편한 말들이 들리고 길을 걸으면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적었다.‘친일파 1호’가 배족(背族)의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보상은 멸시와 증오였다.그 이후 대개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강화도 조약/日,운양호사건 고의 유발뒤 강제 체결/총 12조… 韓日간 맺어진 첫 불평등조약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은 병자년에 체결됐다고 해서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으로도 불리는데 정식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조선과의 국교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일본은 조선정부의 쇄국정책으로 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1875년 9월 20일 해안측량을 빙자하여 ‘운양호사건’을 고의로 유발했다.이를 빌미로 일본은 군함과 함께 구로다를 전권대사로 파견,1876년 2월 27일 조선측 대표 판중추부사 申櫶을 상대로 수교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총 12조로 구성된 이 조약은 ▲부산 이외에 원산·인천 추가 개항 ▲조선연해 측량권 허용 ▲개항장 내 조계(租界)설정·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등 일본측에 유리한 내용들 뿐이다.이 조약은 국제법적 토대 위에서 양국간에 이뤄진 최초의 외교행위이자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기도 하다.
  • 엔低 쇼크/세계금융시장 안전지대 없다

    엔화의 폭락과 중국 위안(元)화의 평가절하 압력에 이어 인도네시아의 대외채무 불이행에 대한 우려마저 고조되면서 국내 기업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잇따라 터지는 악재(惡材)로 아시아 금융시장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엔 폭락을 기폭제로 확산돼 가는 ‘아시아 패닉’의 파장을 짚어본다. ◎무역 어떻게/한국은… 150엔대 올라가면 수출 대혼란 위기/중 위안화 10% 절하땐 20억弗 차질 일본 엔화가 추락하면서 우리 수출업계에 또다시 먹구름이 일고 있다.8월중 수출실적은 12일 현재 -13.7% 성장을 기록한 지난달보다 더욱 부진한 상황이다.엔­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우리 수출은 35억∼80억달러 정도 감소하는 실정을 감안할 때 하반기 우리 수출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엔화 환율이 150엔대로 올라설 경우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로 이어지면서 아시아시장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들 가능성도 없지 않아 수출업계의 위기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엔저,지속될까=세계 주요 금융기관의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미국의 메릴린치사는 연말까지는 140엔대를 지속하다 내년 들어 150엔대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대로 JP모건사는 이달 중에 153엔까지 올라 연말까지 지속되다 내년 상반기엔 120엔 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엔저와 우리 수출=산업자원부는 3가지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다.첫째 시나리오는 다음달 안으로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본격 추진하면서 엔저가 안정국면을 맞는 상황이다.둘째는 아시아위기 재발론이다.엔화 폭락­중국 위안화 평가절하­동남아시아 각국 통화 폭락­아시아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수순이다.세째 시나리오는 세계 동시공황론으로 엔 폭락­아시아 통화 폭락­미국 주가 폭락­세계 공황 등의 수순을 밟게 된다.정부는 현 단계에서 볼 때 지금의 엔저가 세계 공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상당기간 아시아 시장을 교란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즉 시나리오 1과 2의 중간수준을 걷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가정을 전제로 할 때 하반기 우리 수출은 자동차와 가전제품,반도체,타이어 등의 부문에서 일본제품에 대한 가격경쟁력을 상실,수출감소가 예상된다. ■중국 위안화,평가절하 될까=중국 정부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의 가능성은 점차 높아가고 있다는 것이 국내 연구기관과 정부의 시각이다.이달 들어 상해나 북경의 암시장에서 위안화가 공식환율보다 5% 절하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은 위안화가 10% 평가절하 될 경우 우리 수출은 20억달러 정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했다.철강과 섬유 자동차 석유화학 등이 타격업종이다.그러나 위안화 평가절하는 이런 직접적인 수출액 감소보다는 아시아 시장전체를 흔든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자칫 정부가 가정한 두번째 시나리오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기업 어떻게/가격경쟁 자제 ‘고품질’로 승부걸어야 엔화 폭락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책은 우리 수출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이다.그러나 지금 기업들은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실제 지난 상반기 수출제품의 단가는 95년의 65%선에 그쳤다.값을 낮추느니 아예 수출을 포기하는 것이 나은 게 현실이다. 다른 대응책은 우리 원화의 가치를 엔화에 맞춰 떨어뜨리는 것.금융연구원은 달러당 엔화의 환율이 140엔대일 경우 원화의 적정 환율을 1,450∼1,550원 선으로 보았다.무역협회도 100엔당 1,000원 선을 적정환율로 꼽았다.그러나 인위적인 환율인상은 제2의 환란(換亂) 우려를 증폭시키고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기업 역시 대외채무의 환차손이 커져 채산성이 악화되는 악영향도 따른다. 때문에 바람직한 대응책은 국내의 수출여건을 보다 개선해 수출가격을 조금이라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한국무역협회 申元植 이사는 “기업들이 애로를 겪는 각종 수출입금융을 원활히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외환수수료와 물류비용 등도 보다 낮춰줄 것을 촉구했다. 기업으로선 수출은 가급적 달러화로,수입은 엔화로 결제하는 것이 유리하다.환차손을 그만큼 줄게 된다.그러나 이같은 대책은 응급처방일 수 밖에 없다.중장기적으로는 기술개발과 품질경쟁력 강화를 통해 환율변동의 영향을 덜 받는 수출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산업자원부 辛東午 무역정책심의관은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고 신제품과 고부가가치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지금의 가격경쟁력을 품질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이은 증시 폭락/세계는… 미·일·중 대책 마련 ‘초비상’/日 금융개혁­내수진작 등 아직 미흡/원유·곡물값 폭락 확산 경제난 가중 전세계 각국이 일본의 엔화가치 폭락에 경악했다.자칫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을 깨뜨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엔화 가치 불안정은 세계 주가 폭락을 불러 왔고 증시 동요는 국제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십상이다.엔화가치가 8년만에 최저치로 폭락하자 미국 뉴욕의 다우지수는 무려 1.3%(11포인트)나 주저앉았다.아시아 국가 증시는 물론 일본,유럽,홍콩 등의 주가가 많게는 4.3%까지 폭락했다. 첫번째 대책은 일본에서 나왔다.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대장성 국제국장은 엔화가치의 하락을 방치할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적절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엔저(円低) 저지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기다렸다는 듯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나서서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고 구로다 국장을 지원 사격했다. 두번째는 본의 아니게 이번 엔화 파동에 역할을 했던 중국쪽에서 나왔다. 천지앤(陳健) 주일 중국 대사는 일본 자민당의 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 정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위안화의 평가절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엔화 파동은 일본 경제의 위기에다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이 가세하며 시작됐었던 터다. 다음 미국이었다.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클린턴 대통령이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비롯해 주요 정부 관리들과 전세계적인 주가 하락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록하트 대변인은 미국 경제의 기초 요건들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정책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정부 관리에는 루빈 장관 이외에 국가경제위원회의 진 스펄링 위원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약속이라도 한듯 호흡을 맞춘 세 나라의 ‘합작품’에 폭락하던 엔화는 주춤했다.하오 들어서는 반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엔화가 안정 기조를 다졌다고 보는관계자는 거의 없었다.우선 일본이 과감한 금융구조 개혁과 실물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실효성있는 내수 촉진책의 즉각 시행을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세계 경제도 취약하다.이번 엔화 파동에 지구촌 주식시장은 순식간에 제자리를 벗어났다.세계 금융구조의 취약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실물 경제도 어렵다.아시아 경제 위기가 1년 이상 계속되면서 원유가 1배럴당 11달러선에서 거래되는 등 곡물,금속 등의 가격이 역시 폭락하며 세계 경제를 마구 어지럽혀 놨다.하나같이 세계 경제에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 마비 직면/러시아·캐나다는 벌써 ‘휘청’/러,채무불이행설 난무/加 달러 최근 18% 하락 아시아 금융 위기의 회오리에 러시아와 캐나다를 휘청거리하고 있다.선진 8개국의 멤머로 세계 경제를 떠받쳐온 나라들이다. 러시아는 연이은 주가 폭락으로 금융시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일부에서는 채무 불이행설까지 나돌고 있다. 캐나다도 형편은 비슷하다.주가와 환율이 불안정 기류에 휘말려 손을 쓰기가 크게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가다.아시아 금융위기는 이제 세계의 금융위기로 번졌다. 러시아의 주가는 11일 무려 7.5%가 폭락하면서 거래가 일시 중단됐다.RTS지수는 106.65. 96년 5월 이래 최저치였다.시장 규모도 1500만달러 언저리를 맴돈다 지난 1월의 20% 수준이다. 단기국채(GKO) 형편은 사실상 재기 불능이다.공공부문 부채만 600억∼700억달러.민간부문을 합하면 2,000억달러에 이른다.공공부문 부채 이자만 매주 15억달러로 전체 예산의 34%에 해당한다. 캐나다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아시아 금융 위기가 사뭇 심각하다.캐나다달러 가치와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고 있다. 요즘 외환시장에서 캐나다 달러는 미화 1달러에 1.5355 캐나다 달러.4월의 1.3068달러에 비해 4개월 동안 18%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외환 준비고의 0.5%에 달하는 10억달러를 시장에 투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가가 하락세이다보니 실물경제도 아주 어렵다. 아시아 경제 침체로 주력 수출품목인 목재와 광물의 시세가 폭락한데다 수출량마저 줄었다.실물과 금융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캐나다 경제도 위기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 엔貨 자력 회생 물건너 가나

    ◎실물경제 약화·구조개혁 기회 상실 겹쳐/각료들 잇단 대책 발표에도 상승 역부족 일본 엔화가 사실상 ‘자력 갱생력’을 잃은 것 같다. 일본 정부의 ‘추임새’에도 불구,약세기조의 엔화는 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실물 경제가 허약한데다 경제구조 개혁을 제때에 단행하지 못했다는 시장의 평가가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의 출범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새 내각 출범이후 엔화 환율을 처음 거론한 각료는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관방장관. 오부치 내각이 본격 출범한 3일이었다. 지나친 엔화 하락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나아가 세계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엔화는 달러당 144.65엔에서 즉각 145.05엔으로 반등하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 날인 4일 신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의 언급은 엔화가치를 반석위에 올려놓는듯 했다. 루빈 미국 재무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시장경제가 순조롭게 움직이도록 개입을 할 수 있으며 시장의 무질서한 동향을 고치지 않으면 시장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밝혔다는 대목이 5일 외환시장에 전해지면서 환율은 143.95엔까지 회복됐다. 그러나 엔화의 약세 기조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일의 144.25엔에 이어 7일에는 146.25엔이 되었다.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 경제기획청 장관과 오부치 총리의 한마디가 직접적인 화근이었다. 사카이야 장관은 7일 ‘8월 월례 경제보고’를 하면서 일본 경제를 하향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를 하향 조정하겠다는 발언은 엔화가치 틀을 흔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부치 총리도 같은 날 중의원의 첫 시정연설에서 경기를 회복시키는데 최소한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사카이야 장관 발언을 거든 꼴이 됐다. 그러자 한편에서는 일본 정부가 침체된 수출을 자극하기 위해 엔화 약세흐름을 고의로 방치하고 있다는 분석들이 제기됐다. 엔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통산성의 와타나베 오사무(渡邊修) 차관이 진화의 전면에 나섰다. 10일 일본 경제가 엔화 약세로 얻을 게 별로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이때는 엔화가 기력을 얻기에는시간이 너무 늦었다.환율은 146.18엔까지 치솟으며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렸다. 다음 날인 11일 미야자와 대장상이 단상에 올랐다. 엔화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고 외쳤지만 엔화가치는 8년만에 최저치인 147.41엔으로 추락했다. 12일에는 급기야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대장성 국제국장을 내세워 “엔화하락을 방치할 수 없고 필요할 경우 적절하게 대처한다”고 발표케 해 간신히 폭락세를 주춤거리게 했다. 그러나 ‘주춤 장세’는 일시적인 조정 국면으로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실물 경제의 취약성을 보강하지 않고는 엔화의 하락을 저지시킬 수 없다는 게 국제금융 전문가들의 한 목소리이다.
  • IMF와 역사 되씹기/송일 외국어대 교수·경영학(시론)

    ○예측불능시대의 해법 찾기 무인년 새해는 대란의 해이며,개혁을 향해 몸부림치는 빅뱅의 해이다.외환대란 금융대란 물가대란 부도대란 실업대란 등 전대미문의 국란시대가 전개되고 있다.한편 외환,금융,주식시장에 빅뱅 도미노가 국가경제 전반에 걸쳐 경천동지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개혁의 바람은 이 위기가 선진국으로 가는 천로역정이라는 희망도 예고되고 있다. 한국이 국제사회로 편입하는 과정은 항상 외세의 개입에 따른 타율적이고 강압적이라는 부끄러운 특징을 수반에 왔다.국제통화기금(IMF)대란도 따지고 보면 외세에 의한 세계화의 빅뱅이다.IMF 구제금융의 발단이 된 외환위기는 결과적 현상에 불과하며 화근의 본질은 한국경제가 국제수준의 규범과 관행에 맞는 경쟁체질로 미리 거듭나지 못한데 있다. 앞으로 고통분담은 세계화로의 엑소더스를 위해 국민 정부 기업이 다함께 참여할 지옥훈련인 것이다. 최근 한국사람치고 나름대로의 IMF신드롬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필자가 겪는 IMF 신드롬은 오늘의 딜레머를 구한말 비운과 좌절의역사에 조명해 보는 ‘역사되씹기’이다.왜 이렇게 어리석은 역사를 후렴처럼 반복하는지 되씹으면 씹을수록 뒷맛이 쓰다.역사속에서 예측불능시대의 해법을 찾아 방황하며 반성하고 또 자성할 뿐이다. 최초의 근대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년),조미수호조약(1882년),갑오개혁(1885년) 그리고 을사조약(1904년)에 이르기까지 개방과 개혁의 역사는 우리의 국운과 장래를 놓고 외세가 갑론을박하는 타율과 굴절로 얼룩져 있다.1세기가 지난 오늘도 개발연대의 자만과 구각,악습과 시대적 오류를 우리 힘으로 털어버리지 못한 죄과를 IMF 문전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조선말 통상을 요구해 온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하고 쇄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세운 대원군의 척화비와,외국인이 한국기업을 소유하는 것을 찬성하는 한국인이 겨우 4%에 불과하다는 지난 연말 어느 외국기관의 보고서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1세기 동안 변한 것이 없다. 이처럼 우리민족이 국제물정에 등을 돌려온 탓으로 개방과 관련된 협상은 늘 선택과 저항의 여지가 없는피동과 압박의 역사의 반복이다.강화도 앞바다에 군함을 도열시킨 구로다(흑전청융)의 무력적 위압에 의한 강화도 조약이나,지난 연말 벼랑끝 위기에 몰려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IMF 협상 사이에는 우리가 자초한 강박과 궁박의 차이 외에는 없다. 이처럼 강압적이고 수동적인 개방화의 이면은 불평등과 굴욕이며 내적인 준비없이 골육지책으로 이루어진 문호개방은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침탈의 발판이 되고 말았다.19세기 말 열강과 체결한 각종 통상조약의 불평등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일본이 구한말 당시 1년예산에 맞먹는 1천300원의 차관을 공여하며 제멋대로 1할의 수수료를 떼어도 우리는 말 한마디 못했다.특히 일본이 파견한 재정고문 메가다(목하전종태랑)는 화폐정리를 통해 금융을 장악하고 일본 금융제도를 조선에 연장,실시함으로써 가격기구에 의한 경제침략의 첨병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 이번에 세계은행(IBRD)과 IMF에서 제공한 차관조건은 이들 기관 50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불공정 사례(사상 최고의 이자율과 최초의 전후수수료 징수 등)를 남겼다.또한 신용등급의 추락으로 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린 한국의 외채연장을 놓고 끝없이 벌어지는 외국금융기관의 탐욕이나,바닥으로 추락한 주가와 천정부지로 치솟은 환율 덕으로 코카콜라주식의 10분의 1이면 한국의 상장주식을 송두리째 장악할 수 있다는 언론보도는 우리의 방만과 실책을 다시한번 뼈아프게 만들 뿐이다. 한편 일제의 예속적 차관에 저항하여 남자들은 담배를 끊어 푼돈을 모으고 부녀자는 가락지와 비녀까지 내놓아 모금하던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연상시키는 ‘금모으기 운동’이나 국산품 애용운동,그리고 60·70년대의 수출드라이브 역사는 반복해도 좋다고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다.혹시 이것이 IMF 조건이나 심기를 또 어떻게 건드릴까 싶어 필자의 역사되씹기 신드롬은 바람잘 날이 없다. ○지원효과 극대화 노력 절실 분명한 것은 공존공영의 지구촌 자본주의 시대에 IMF는 점령군이 아닌 지원군이란 사실이다.그러나 IMF 개혁이 갑오개혁과 다르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은 지난날 못다가졌던 선견지명으로 우리가 자주적으로 창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IMF 조건의 원론은 최단시일내에 가시적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추락한 국가신인도를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 국가존립의 필요조건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충분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IMF 프로그램의 각론을 한국의 현실에 부합하게 도출할 수 있는 정부의 지혜와 협상 여백의 확보가 필요하다.피지원국의 풍토나 사정의 이해없이 일률적으로 처방된 IMF의 단칼 수술방식에 탄력성과 융통성을 제공해 지원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은 세계 11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조기회복을 염원하는 IMF목표와 우리의 목표와 정확히 합치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일 우익 화염병 투척 시도

    독도 접안시설 완공에 항의하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이 7일 새벽 오사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화염병 투척 미수범은 우익단체 ‘황국헌정당’소속 구로다 쥰이치(흑전순일·27)로 이날 상오 4시45분쯤 총영사관에서 50m 떨어진 거리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이다 손을 데 병을 땅에 떨어뜨린 뒤 총영사관 경비 경찰에 체포됐다.
  • 「김영삼 정부의 성취」 서울의 외국특파원 평가

    ◎사라진 시위·최루탄… 세계화 “기대”/구로다 가쓰히로 일 산케이신문 지국장/「경제우위·탈정치」 사회기류 주시해야 얼마전 서울에 10년 이상 주재한 일본 기업인의 송별회가 있었다.그때 그는 한국생활을 되돌아보는 인사말에서 한국사회의 최대 변화는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없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 1월 오랫동안 계속돼 왔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불편했던 「야간통행금지 시대」를 떠올리지 않으며 훌륭한 역사적 정책결정이었던 「통금해제」를 평가하지 않는다.그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로부터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사라진 것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며 평가하여야 한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정권 출범후 2년간을 돌이켜 볼때 학생시위와 최루탄이 없어진 것은 틀림 없는 한국사회의 위대한 변화다.그러한 변화는 문민정권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확실히 김 정권의 최대의 업적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김 대통령의 그러한 문민정부 성과는 어려운 과도기에민주화를 정착시킨 노태우 정권의 노력 연장선 위에 있다.따라서 문민정부라 해도 과거를 부정만 해서는 안된다.역사에는 정직하지않으면 안된다. 학생시위와 최루탄의 소멸로 상징되는 김 대통령 정권의 2년은 한국 현대정치사상 국내 정치가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그때까지 한국의 대외 이미지는 학생시위와 정치불안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반정부운동이 없어졌다.외국인의 눈에는 가장 감명 깊은 변화다. 그러나 국민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요구 사항이 많다.정부의 훌륭한 업적을 강조·자랑하고 싶어도 국민들은 「당연한 일」 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며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면서 불만을 말한다.국민들에게는 정치안정이나 개혁이라는 업적은 이미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예상 이상의 경제성장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김 대통령은 이때문에 또 다른 업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최근 김 대통령 정권의 정치스타일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그것은 민자당의 당명 변경 중지와 대표지명이다.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당명까지 모집하다가 갑자기 당 이름의 변경을 중지했다.국민들에 대한 공식 사과·헤명도 없었다고 생각된다.새로운 대표자 임명도 당대회 때까지 비밀이었다.김종필씨가 탈당, 신당을 선언하며 지적한 「독선·독단·충격에 의한 정치스타일」 이라는 비판은 당연하다. 김 대통령은 인품이 훌륭해 득을 보고 있으나 그의 정치스타일은 「선의의 지도자 한사람 정치」라 할 수 있다.한국정치는 역시 지도자 한사람의 정치가 아니면 안되는가. 그러나 문민정부의 업적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정치의 비중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한국도 경제 규모가 커지며 근본적으로 국가를 움직이고 있는 힘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로 옮겨지고 있다. 김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은 한국사회를 탈정치화의 길로 이끈 것이 될지 모른다.학생시위의 소멸로 학생들은 이미 탈정치화 되고 있다.6월의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한국은 「정치의 계절」을 맞지만 국민들은 사실 탈정치화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앤드루 스틸 영 로이터통신 지국장/정치안정 바탕,통일에 과감한 도전을 서울 중심가를 조금만 걸어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2년간 이루어진 한국사회의 변화를 곧 알수 있다.그러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앞으로 하여야 할 주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울 중심에 있는 시청을 출발하면 여기저기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그것은 김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기업안정의 상징적 조형물이다.김 대통령의 등장으로 실현된 30년만의 문민정권 탄생은 한국의 군사통치와 권위주의의 어두운 시대가 역사속으로 사라졌음을 세계에 알리는 분명한 신호였다.공정한 자유선거를 통해 권력에 오른 그의 길은 번영하는 민주국가로서의 한국의 성공적인 등장을 더욱 확실히 입증하고 있다. 서울시청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사들이 있다.언론은 김 대통령의 부정부패 추방운동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자유를 누려왔다.세계의 언론감시단체들도 한국의 언론은 자유롭고 민주적이라고 선언했다.물론 한국의 언론자유가 완전히 장미빛만은 아니다.군사통치시대에 만들어진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낡은 법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김 대통령도 폐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그러한 법률은 김 대통령 만큼 훌륭하지 못한 미래의 지도자가 등장할 경우 언론제약으로 악용될 잠재적 위험성이 있다. 김 대통령은 개방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개방화는 아직 초기단계이다.서울에는 세계 주요 수도보다 여전히 외국인이 적다.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은둔의 나라」 시대는 지났으며 한국은 새로운 자화상을 만들고 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미국대통령, 옐친 러시아대통령,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강택민 중국국가주석 등 세계적 지도자들과 함께 국제무대를 활보하며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 놓았다.한국의 다음 목표는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다.그러한 목표의 실현도 그리 멀지않은듯 하다.그러나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관료주의와 한국사회의 복잡함에 당혹할 때가 있다.김 대통령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혁명이 공허한 슬로건의 의미 없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지않으면 안된다. 세종로 끝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여전히 경복궁과 청와대의 시야를 막고 있다.그러나 일본 식민지배의 잔재인 국립박물관도 많은 논란 끝에 김 대통령이 철거를 결정함에 따라 멀지않아 사라질 것이다.그 결정은 일본및 「빅 브라더」 와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의 점증하는 자신감과 함께 김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독소를 제거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 뒤에는 그러나 북한의 잠재적 침략가능성에 대비한 장벽이 있는등 무거운 남·북대결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김 대통령은 수십년간 계속돼온 북한의 불신과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그런 가운데 김 대통령은 폭발성을 갖고 있는 미지의 인물인 김정일과 조만간 거래하지 않으면 안된다.김 대통령은 한국을 안정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키고 있지만 과감한 통일에의 도전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그의 성공적인 대통령상은 심각하게 평가절하 될 것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 외국특파원이 본 YS정부/구로다 가쓰히로 일 산경신문 서울지국장

    ◎“여론 의식많는 개혁 추구해야”/대북정책 서두르지 말고 차분한 대응을 한국사회에는 한가지 유교적 재해관이 있는 것 같다.가뭄이나 홍수등 자연재해에도 또 큰사고·사건등 인재의 경우에도 위정자에 대해 「인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그 책임을 묻기도 한다.최근 성수대교사고·충주호 유람선 사고등 대형 사고가 연발하자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유교적 재해관 존재 그 결과 김영삼 대통령은 성수대교 사고후 발표한 특별담화에서 일부러 『대통령으로서 부덕을 통감하고 있다』고 국민에게 사과했다.사고에 대해 대통령이 부덕을 사과한다는 것은 아주 한국적이다.동시에 권력집중이 심한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위정자는 언제나 민중과 직접 대치하면서 긴장상태에 있다.정말로 「대통령은 고달프다」.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위로부터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간관리층의 옆으로부터의 자기혁신과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는데위에서 아무리 개혁의 깃발을 휘날리려해도 옆이나 밑에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실제는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옆이나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대통령의 책임이 아닐지도 모른다.김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우리는 이제 「빨리빨리」를 최선으로 여기는,성급함과 졸속으로부터 벗어나야 됩니다.「적당히」,「그냥」이 없고,부실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하지만 외국 기자가 보기에는 이런 「적당주의」나 소위 「괜찮아 정신」은 국민들의 사고방식의 문제다. 성수대교 사고도 점검·관리·유지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런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한국문화(!)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이것은 또 점검·관리·유지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일을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이것은 위도 옆도 아래도 구별없이 한국인 모두의 문제다. ○한국인 모두의 문제 나는 매일 좌석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버스안에서 일어나는현실을 볼 때 한국은 아직 개혁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예를들면 버스 운전사는 손님을 무시하면서도 자기가 아는 동료 운전사가 지나가면 길 한가운데 버스를 세우고 다정하게 잡담을 한다.손님은 금연인데 운전사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직업 정신은 어디로 가버린걸까.이러다가는 또 다리가 무너지지않을까. 자가용도 택시도 신호를 무시하고 또 서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양보 받아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내탓이오」정신도 「형님 먼저,아우 먼저」정신도 볼수 없다.이것은 사람들이 「개혁」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여전히 한국에서는 민주화도 개혁도 남이 하는 것이고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이제까지의 개혁은 여론의 박수 갈채를 받아왔다.이것은 사람들이 개혁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즐긴 결과일지도 모른다. ○반정부 압력 없어야 그러나 정말 개혁은 즐기는 것이 아니다.여론의 지지율이 높을 때는 여론이 아직 사태를 진지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을 때다.김영삼 대통령은 이제부터 여론의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없는 재미없는 개혁을 해야 한다.그것은 국민에 아부·영합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국민을 꾸짖으며 국민에게 자율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인기없는 정치다. 여론에 영합하지 않고,여론으로부터 오히려 불만 또는 비판받는 정치인이 후에 그 업적을 평가받을 때가 많다.물론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은 여론의 비판을 많이 받는 정치를 했지만 사후 높게 재평가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김영삼 대통령은 내치에 있어서는 비교적 순조로웠다고 해도 좋겠다.한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 조직적인 반정부 압력에서 벗어난 최초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너무 여론 영합적이다. 예를 들면,대북 경제교류 재개를 성급하게 발표한 것은 분명히 국내 여론용이다.북미합의 과정에서 심각한 소외감을 맛봐 온 여론을 달래는 의미가 강하다.서둘러야 할 일은 하나도 없는데….그 결과 소외감을 경제교류 발표로 안이하게 해소해 버렸다.이 기회에 대북 관계 혹은 대북 교섭의 어려움(남북통일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안이한 태도로 대응한 것같다. 한국에서는 「중무장 비밀 국가」인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같다.정부도 여론도 이쪽이 민주화·문민화가 됐으니까 북한도 부드러워지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한국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쪽이 원하면 상대도 그렇게 될거라는 낙천주의가 특징이지만 북한은 그런 나긋나긋한 상대가 아니다.물론,일본도 대북 교섭을 서둘러 재개할 필요는 없고,한국도 차분히 북의 태도를 주시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경제나 군사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힘을 충분히 기르면서 북한에 대처해야만 한다. ○내부화합·단결중요 여기서 정치적·사회적 힘이란 최병렬씨의 서울시장 기용같은 폭넓은 거국적인 인재 등용등을 예로 들 수 있다.세습독재인 김정일 체제가 노·장·청년층을 모두 규합한 새로운 철벽체제로 나오려고 하는 이 때,한국이 내부 갈등을 반복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오래된 이야기이면서도 새로운 과제이지만 남북관계에 앞서 남남화합·단결이 더 중요할 것이다.
  • 「명성왕후 시해 칼」 발견/국제한국연 최서면원장,일 신사서

    ◎칼집에 “단칼에 늙은 여우 살해” 문구/낭인들 자백담긴 보고문도 찾아내 1895년 일제가 저지른 명성황후(민비)시해 만행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칼과 범행에 동원된 일본인 낭인들의 자백이 담긴 일본재판소의 보고전문이 발견됐다.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원장(67)은 22일 『1895년10월8일 당시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삼포오루)의 지시를 받은 일본인 낭인중 한명인 후지가쓰 아키(등승현)가 명성황후를 건청궁(경복궁)에서 살해할때 사용한 칼을 일본 규슈(구주)에 있는 한 신사에서 발견했다』고 밝히고 칼의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 제일의 칼 제작자 다다요시(충길)가 만든 이 칼은 길이 1m20㎝로 칼집에는 「일순 전광 나 노호」(한 칼에 늙은 여우를 살해했다)라는 문구와 함께 후지가쓰의 호인 「몽암」이 새겨져 있다. 최원장은 이날 『관련사료에 민비시해의 일본측 암호명이 「호수」로 나타난 점을 감안하면 칼집에 새겨진 「늙은 여우」는 민비를 지칭함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민비시해후 일본으로 돌아가 규슈지방의 한 신사에 이칼을 헌납한 후지가쓰는 공범들과 함께 히로시마재판소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이후 절에서 잠시 은거하다 나온뒤 여학교를 세우는등 교육자로 활동하다 8·15해방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민비시해사건에 가담한 일본 낭인들을 신문한 히로시마재판소의 구사노(초야)검사장이 당시 법무대신에게 보낸 1895년11월9일자 보고전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것으로 구로다 기요다카(흑전청륭·강화도조약체결당시 일본측 전권대사)관련 문서중에서 발견됐다. 특히 이 전문에는 『민비시해의 하수인을 찾던중 히라야마 이와히코(평산암언)등 13명이 「민비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이 실려있어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이들이 시해범인 것을 알고서도 일본 수사당국이 무혐의로 풀어주었고 또 정부수뇌부가 범행을 배후조종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전문에는 『후지가쓰등이 시해당시 명성황후처럼 보이는 여자가 많아 확인할 길이 없었다.이에 모두 옷을 벗긴뒤 유방을 살펴 명성황후 나이인 44세정도의 여자를칼로 베어 살해했으며 이를 저지하다 일본인 관리의 총을 맞고 쓰러진 궁내부대신 이경식을 다시 칼로 베었다』고 돼있어 당시의 무참한 살육상과 시해사건에는 낭인뿐아니라 일본인 관리들도 개입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최원장은 이에대해 『내년으로 다가온 민비시해 1백주년을 맞아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당시 시해때 동원된 낭인들의 후손으로부터 만행때 사용된 칼이 신사에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끝에 칼과 관련자료를 발견했다』며 『지금까지는 민비시해때 일본인 부랑아들만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신문기자인 아다치겐조(안달겸장),교육자인 사사도모쿠사(좌좌우방)등 당시의 일본 지식인층과 외교관·군인등이 함께 저지른 극에 치달은 만행』이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 주한공사 미우라 고로는 독일·프랑스·러시아의 삼국간섭(1895년5월)이후 친러정책을 지향한 명성황후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낭인과 군대를 동원,같은해 10월8일 상오7시쯤 민비를 시해했다.
  • 「거듭나는 한국」… 외신특파원의 시각

    ◎“강력한 리더십 무혈혁명 도출”/검찰숙정 최대 성과… 국민신뢰회복 “큰 획”/구로다 가쓰히로 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일본은 의원내각제이며 현대사에 있어서 본격적인 정권교체의 경험이 없다.따라서 일본인들은 한국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정권교체에 의한 대단한 변화에 놀라고 있다.지난 2월이후 서울지국장이 된 어느 일본기자는 『한국은 독재국가같이 보인다』라는 인상을 말하기도 한다.대통령이 말을 하지않으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또 대통령 말한마디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일본기자에게는 이해될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한 한국전문학자는 최근의 저서에서 1960년대 이후 군출신대통령에 의한 30년간은 한국역사에 있어서 「예외」의 시대라고 지적한다.그는 문민정권을 강조하는 지금부터의 한국정치는 「통상」의 시대로 돌아오는 것으로 앞으로 한국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승만대통령시대및 조선왕조시대의 정치를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치 정상시대 회복 그런 의미에서 「12·12」와 광주사건등 「과거」를 둘러싼 활발한 논쟁은 조선왕조시대의 역사극을 보는 것같은 느낌이다. 「과거」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는 외국인 기자의 눈으로 볼때 김종필씨가 주장하는 「기승전결론」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왜냐하면 김영삼대통령이 안심하고 「개혁」을 할수 있는 것은 박정희정권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전두환정권의 사회적안정,노태우대통령의 민주화정책에 의해 한국사회에 그나름대로의 힘과 자신감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련의 「개혁」가운데 검찰숙정에 가장 큰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한국에서는 지금까지 검사가 돈을 받는다는 일본인으로서는 상상할수 없는 악습이 있었는데 검찰이 부패한 상태에서 국민은 아무것도 믿을수 없다.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사법,그중에서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해서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하지않으면 안되는 숙정이었다. ○역사에 도전 각오로 지금까지의 1백일은 「과거」청산에 바빴다.과거 청산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그러나 김영삼정권의 진정한 목표는 지금부터 부정부패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5년후 측근으로부터 박철언,김종인씨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이것은 군사정권의 문제는 아니다.이승만대통령시대 아니 조선왕조시대부터의 문제다.김영삼대통령에게는 수백년의 역사에 도전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사회화해 달성은 장래 공익보장에 달려/이완 자하르첸코 러 이타르·타스통신 서울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1백일은 정치권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간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새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에 대해 『매우 잘한다』와 『잘하는 편이다』가 각각 25·7%와 60%로 나타난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과거 정권들과 비교해보면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아직 기간은 짧지만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재산공개,청와대와 인왕산 개방,안가철거,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 등의 조치가 문민대통령의 이미지를 잘 대변해주는 것이라 본다. ○5·18조치 문민대변 요즘 거의 매일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이 구속된다는 뉴스를 접하는 한국 국민들은 『마침내 공정한 사회가 왔다』고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강력한 정부」를 선언하고 나온 김영삼대통령은 체제내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엄격한 징벌수단을 선택했다.그러나 다른 조치를 동시에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말하자면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기대만큼의 좋은 결과를 낳기가 어려운 것이다.예를들면 옛날 어떤 나라에서는 도둑을 벌할때 손을 잘라버리기까지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도둑이 없는 나라가 없는 것이다. 한국학생들은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광주민주화운동의 책임자로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물론 진상규명의 필요성은 있으나 전직 대통령을 벌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더 잘살 수 있을까. ○제도적 장치 급선무 김영삼대통령의 「사회화해」노선은 과거 잘못을 용서하고 미래에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뜻으로 지지할 만한 것으로보인다.그러나 사회화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정과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과 동시에 공익을 보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1백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놓고 어떤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러시아에서도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한국의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결과는 새 정부가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보장하느냐에 달려있다. ◎「신경제 100일계획」 한국 재도약 기대/장충의 중국 신화사통신 서울주재기자 현재 지구상에서 부정부패척결의 회오리바람이 가장 거세게 불고있는 곳은 두개의 반도국가다.한곳은 이탈리아,다른 한곳은 바로 한국이다. 32년만에 출범한 한국의 김영삼문민정부가 오는 4일로 탄생 1백일을 맞는다.그 1백일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과거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를 한국민에게 실감시켰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한국병 치유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또 지난 2월25일 취임식에서 『개혁은 먼저 부정부패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확립등 세가지 당면과제로부터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칼국수접대 큰 화제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자기의 개혁구상을 실천에 옮겼다.그 시작은 바로 자신으로부터였다. 그는 먼저 솔선수범해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고 또 『재임기간동안 기업인으로부터 단돈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특히 청와대의 손님접대 메뉴가 칼국수라는 뉴스가 중국에 보도된 다음 북경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산공개를 확대하면서 연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일부 국회의원으로부터 고위공직자 심지어 국회의장에 이르기까지 제살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뿐 아니라 군의 인사비리,금융계와 교육계의 부정,슬롯머신 비호세력 내지 사정의 주역인 검찰까지 사정의 칼날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김영삼정부가 지난 1백일 동안 추진해온 개혁작업은 한마디로 무혈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사회전반의 부정부패척결과 동시에 새 정부가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신경제 1백일계획」을 세워 놓고 있어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에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개혁 국민 86% 지지 물론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작업에 대해 일부 기득권세력들이 『너무 서두르는게 아니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산다(수지청칙무어)』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약 86%가 새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는 어느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영삼정부의 개혁은 현재 국민의 박수와 갈채를 받고 있다. 「좋은 시작은 성공의 반」이라는 속담과 같이 짧은 1백일간의 개혁작업은 앞으로 한국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 「남한조선로동당」 간첩사건을 보고/전문가 좌담

    ◎“남북대화” 미소뒤의 적화음모 일깨워/북,“개방” 외쳐도 통일전선전략 불변/주사맹신 운동권·재야 정신차려야/통일 앞둔 시점… 대공경계심 고삐풀지 말길 「남한조선로동당」간첩사건은 우리사회에서 점차 무르익고 있는 평화통일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남로당사건이후 최대규모의 간첩사건인 이번 사건이 우리사회에 던져준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지 등을 장수련통일원 통일연수원교수·고영환북한연구소 연구원(전 북한외교관)·구로다 가쓰히로 일본산케이신문 서울특파원등 3명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장수련교수=이번 사건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공산주의의 속성을 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공산주의의 속성은 한마디로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집단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일부 국민들이나 지식인들은 공산당을 서구적인 합법정당의 개념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공산당이 정당이 아니라 폭력집단이라는 사실은 역사속에도 잘 나타나 있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주고 있습니다.교훈의 하나는 공산주의는 겉으로는 미소를 띠며 속에는 음모를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그 양면성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때나 최근 남북합의서 체결때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이면에서는 남침땅굴을 파고 이번 남한조선로동당사건을 일으켰던 것이지요. ○서구공산당과 달라 북한이 제의한 고려연방제 또한 남한공산혁명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는 목적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은 후진국을 공산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식과 내용이 다른 양면전술이었던 것입니다.이번 사건을 비롯한 최근 일련의 간첩사건은 공산주의의 양면성이 잘 드러났으며 우리정부의 민주발전노력을 악용한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또한 사건을 미리 막지 못한 정부의 책임은 크지만 근본책임은 일부 몰지각한 유사 민주주의자에게 있습니다. ▲고영환연구원=저는 이번 사건이 놀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런 짓을 않으면 북한은 이미 북한이 아니라는 것이죠.북한이 안고 있는 난관을 뚫기 위해 쓰는 방법으로 몇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경제적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주민동원을 더욱 심하게 하는 것이나 일본·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그 하나이고 다음으로 대남공작 같은 것입니다.이번 사건에서 북한지도자들에게는 남한이 북한보다 더 위기에 있는 것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릅니다.거물급 간첩으로 이번 사건의 총책인 이선실은 김일성과 단둘이 만나 남한에는 정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사실 이번 사건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축시나 깃발을 보면 그들이 발붙일 토양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난관의 돌파구는 더욱 남한혁명 뿐이라고 여기게 할 것입니다. ▲장교수=미국의 어느 학자는 「공산주의는 파리」라고 했습니다.더러운 곳에 붙어 사는 파리를 공산주의에 비유한 것이지요.다시 말하면 서식처를 제공하지 않으면 공산주의도 헛것이라는 겁니다. 공산주의에 먹혀들 수 있는 소지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이것은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할 과제입니다. ○사회 면역성 부족 ▲구로다 가쓰히로특파원=저는 고영환씨의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한국의 민주화나 개방정책으로 볼때 이번 사건은 놀랄 것이 없다는 얘기지요.문제는 한국도 민주화 됐듯이 북한도 변했을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한국국민들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동안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은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변화는 표면적인 적일 뿐이지요.이번 사건에서 새삼 느낀 것은 남한의 진보적·반정부적 운동은 결코 북한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또 하나는 그런 조직이 있더라도 면역성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한국사회는 이번에 적발된 간첩단의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을 면역성이 있다고 봅니다. ▲장교수=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운동권학생들을 만나보면 지금도 사회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면역성이 약한 것이지요.그것은 우리가 47년동안 제도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해 유지해왔지만 밑바탕정신을 제대로 이식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고연구원=북한 주민들은 통일방법이란 무력남침과 남한사회혼란에 따른 정부전복 등 2가지 방법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따라서 남한의 날조극으로 발표된 버마 아웅산사건이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 있어서도 뒤늦게 북한이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대남공작부서가 똑똑치 못해 실수했다』는 적대적인 대남 비판을 일삼고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남한사회내에서는 남한조선로동당간첩사건 등 북한의 소행을 파헤쳐 밝혀도 일부인들은 이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이번 간첩단사건에 각계의 많은 사람이 포함된 것도 이같은 사회분위기가 조직원 포섭에 좋은 토양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정부측발표를 국민이 의심하면 이는 북한이 좋아하는 것이죠. ▲구로다특파원=간첩사건을 보면서 저는 간첩을 보내는 북한은 제쳐두고 남한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그 이유는 6·25전쟁책임이나 대한항공기폭파사건등 북한의 도발행위를 남북합의서채택등 마주앉는 자리에서 따지거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번에도 모신문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설문대상자의 40%가 간첩단발표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저는 이같은 자세가 간첩단사건 이상으로 심각한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장교수=맞습니다.북한이 겉으로 대화를 제의해오는 것은 무력혁명을 위한 지하조직을 보조세력으로 키우는 이면에서 행하는 상층통일전술의 일환입니다.남한내 의심계층을 이용한 지하조직구축과 대화제의라는 그들의 통일전선전술을 극복할 또는 역이용할 전술이 남한에서는 시급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사회체질 개선 역점 ▲고연구원=74년 2월 제가 대학2학년때 김일성은 『남조선 학생들의 반정부시위가 격해지고 박정희대통령이 간암으로 죽어간다는 소리가 있으니 이때 사회주의 대건설에 나서자』고 대대적인 사회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렇듯 북한은 남한사회분열을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남한 학생들사이에선 국가보안법을 없애라는 주장이 많습니다.그런데 북한의 형법은 『김일성머리뒤에 혹이 있다』는 사실만 말해도 일가족이 사라지는 악법입니다.체제비판은 커녕 이런말만 해도 극형에 처해지는 악법은 한마디 지적도 않고 남한내에 암약하는 간첩을 막는 법을 왜 없애라고하는지요. 저는 우리 한국은 지금 통일을 위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앞에 두고 있다고 봅니다.그런 좋은 상황에서 한국사람들은 불필요한 논란을 벌이면서,이 좋은 순간에 허리띠를 풀려고 하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 ▲구로다특파원=이번에 구속된 사람 대부분이 젊은층으로 소위 지식인을 자처한 사람이 많습니다.그런데 왜 이들이 혁명의 전위대에 앞장섰는지를 나름대로 볼때 한국의 젊은 지식층에는 김일성컴플렉스가 있는 것같습니다.이는 북한이 깨끗한 사회라는 환상과 민족의 정통성논란등에서 마치 김일성이 우월해보이는 데서 나온 결과라고 봅니다.그러나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의 행복도는 객관적·절대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북한주민들이 더 행복하게 산다」는 잘못된 감정적·상대적 평가는 버려야 할것입니다. ○기성세대 책임 통감 ▲장교수=이런 사회풍토가 나온데는 기성인들의 책임도 큽니다.자본주의는 땀을 많이 흘려야 잘사는 사회입니다.즉 깨끗한 사회풍토가 돼야하지 노력없이 대가만 많이 받는 사회에서는 불신풍토가 만연합니다.그것은쉽게 체제불만과 연결되는 것이죠.저는 권력보다는 재력에 의한 피해가 더욱 우려된다고 봅니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평등사회가 조직원들이 발붙일수 없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고연구원=제가 보는 관점에서 남한에서는 북한을 더욱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정부나 정당이나 학교등에서 과장이나 왜곡은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북한 실상을 좀더 알리고 확산되면 불신은 사라지고 4천만이 국론을 모으는 방향으로 애를 쓸 것입니다. ○민족주의 편승,암약 ▲구로다특파원=이번 사건도 「늑대와 소년」을 보는 식이 돼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한가지 제언을 하겠습니다. 한국에는 민족주의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김일성은 이같은 민족주의에 편승,남한내 지하조직망을 쉽게 포섭해갔습니다.자기과시욕이 있고 기성관념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이 부르짖는 민족주의가 쉽게 이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한국내에서는 민족주의라는 큰 명제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교수=좋은 말씀인데 그에 덧붙이자면우리 젊은이들은 자기가 사는 곳은 교과서적 자유민주주의를 하라고 외치면서도 북한의 사상은 신앙적으로 받아들이는 학문적 편견을 버리라는 것도 당부하고 싶습니다.
  • 해외 시각에 비친 「평화연설」

    ◎화해의 세계 질서 적극 대응에 기대/“선­후진국 교량역할 다짐엔 신뢰감” ▷길영환 ◁ 새로운 내용이 많이 담긴 연설이었다.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한반도에 평화공존시대를 열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그러나 이것이 과연 통일로 직결될지의 여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평화통일 실천방향은 그 내용이 아주 좋았다.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는 제안은 늦은감이 있으나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와 같은 긴장이 남아 있는 지역인 한반도에서 군비감축과 통제를 통해 평화체제를 정착시키자는 제안은 시의적절했다.건설적이고 진보적인 제안이었다. 노대통령의 제의처럼 통일에 앞서 남북한간에는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와 통신왕래가 있어야 한다.문제는 그것을 북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그것을 어떤 조건으로 성사시키느냐가 앞으로 총리회담과 남북당사자들이 합의해야 할 통일의 선행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S·그린버거 ◁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은 역사적인 유엔연설을 통해 남북통일의 첫 단계로 남북간 평화조약체결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노대통령이 「뉴 프렉시빌리티」(새로운 유연성)를 보인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해왔지만 평화조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늘 노대통령은 또 유엔연설에서 유엔의 새로운 회원국으로서의 새로운 지위속에 번영하는 한국의 위상에 대해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노력에 지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온 세계가 외교노력을 집중해야 할것』이라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재차 강조했다. 그는 또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업들이 자본과 기술은 부족하나 싼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북한을 도울수 있는 합작기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로다 가쓰히로 ◁ 노대통령의 연설은 여유와 자신감에 찬 내용이었다.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노대통령이 한국이 유엔가입을 기다렸던 40년 사이에 가난한 농업국으로부터 GNP 세계15위의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게 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중간국가」로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교량역할까지 하겠다고 다짐한 점이다. 이제 한국은 국제적으로 지금까지 처럼 일방적인 수익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세계에 대해 기여할 수 있는 나라가 된것이다.한국은 이제 역사적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서 당당한 나라로서 활동해야 한다.그것은 일본에 대해서도 그렇다. 노대통령은 북한을 「우리의 형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부르면서 평화공존과 협력,상호교류를 호소한 것도 인상적이다.그러나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는 상대가 있다.
  • 한국­일본 과연 동반관계인가/광복절 대담

    ◎“남북통일 지원이 선린회복 지름길”/과거반성 「통석의 염」등 모호한 표현 유감/원폭피해자·징용자 개인보상 매듭돼야/한국 「기술 홀로서기」 노력을… 6공때 일왕 방한 이뤄졌으면 광복 46주년을 맞는 오늘의 한일관계는 과거사 청산과 미래협력을 동시에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일본총리의 상호교환방문을 통해 과거사 청산이 선언되었지만 원폭피해자및 강제징용 한국인에대한 일측의 보상문제 등에서 일본의 반성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또한 한일양국은 정치·경제·외교·안보등 모든 분야에서 쌍무적 협력및 경쟁의 관계에 있을뿐 아니라 아·태각료회의(APEC)등 다자간 협의체내에서 양국간협력과 함께 경쟁을 해야하는 관계에 있다.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일본문제전문가인 한영구외교안보연구원교수와 8년째 서울주재특파원을 하고있는 구로다 가쓰히로(흑전승홍)일본 산케이(산경)신문 서울주재특파원을 초청,「한일은 은 과연 동반자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양국관계의 과제와 전망을 들어봤다. ▲한영구교수=한일양국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사가 완전히 청산되었느냐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과거사 문제는 단지 과거 차원을 떠나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입니다.해방이후 일본은 그들의 역사적 책무에 상응하는 관심을 보여오지 않았습니다.작년에도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통석의 염」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통해 반성의 뜻을 피력했지 않습니까. 한일관계가 진정한 우호관계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내 일본이 분명한 반성의 뜻을 밝혀야할 것입니다.이는 역사적인 문제의식과 직결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지요.지금도 식민지 지배시대의 많은 희생자들이 심신에 상처를 입고 한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들에 대해 일본정부는 대정부차원이 아닌 대개인차원에서 보상을 해야 합니다.그들은 대부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 아닙니까. ○과거청산은 안될 말 ▲구로다 가쓰히로특파원=역설적으로 과거는 청산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영원히 기억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과거사가 청산되면 한국은 무언가 일본에 요구할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과거 식민지배를 2차대전당시 독일의 유태인 학대에 비유하는 얘기가 한국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독일의 그것과 다르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교수=지난해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일왕의 한국방문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그렇지만 일왕의 방한은 양국관계가 성숙,국내에서 환영할 시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구로다특파원=일왕의 방한은 노대통령이 초청한 만큼 6공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본에 대한 한국의 나쁜 감정과 외대학생의 정원식총리에 대한 폭생사건 등을 감안하면 과연 일왕이 방한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일본에서는 제기되고 있습니다.또 중국을 먼저 방문했을 때 한국의 반응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고요.민족적 감정을 고려하면 중국 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일 이중성 신뢰 해쳐 ▲한교수=아무튼 과거사는 해결되지 못한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한일양국은 가깝고도 먼나라라고들 합니다.일·북한수교협상과 관련,최근 한일의원연맹 총회에서 일측은 남북관계개선과 공동보조를 취하겠다고 밝힌 반면 가이후(해부)일본총리는 중국에서 수교협상을 빨리 진전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일본의 이같은 2중적인 줄다리기 외교는 양국간 신뢰구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따라서 일측은 보다 명확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로다특파원=양국관계는 한국 언론에 비쳐지고 있는 것과 달리 사실은 매우 가까워졌다고 봅니다.88서울올림픽 전만해도 서울지하철에서 일본말을 쓰면 쳐다보는 시민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그만큼 경계심없이 가까워진 증거라 볼수 있습니다. 양국간 신뢰문제는 한국의 대일 불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즉 일·북한수교협상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배신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요.일본이 북한과 수교협상과정에서 한국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겠지만 일본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일본내에서는한국을 그렇게까지 신경써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고통없이 대가 바라 ▲한교수=경제적 측면에서 한일 양국 사이에는 협력과 경쟁이라는 2중적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특히 올해말 1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대일무역적자는 무엇보다 먼저 해결돼야할 과제입니다.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의 역사와 함께 무역 불균형문제를 한일 양국 사이의 최대 현안으로 꼽고 있습니다.또한 기술이전 문제와 관련,일본측은 부메랑효과를 우려해 한일 기술협력을 꺼리고 있으나 일본은 아·태지역에서 여타 국가들과 공동의 발전을 이룩한다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이 일본으로부터의 기술이전을 통해 경쟁력이 확보되고 그로인해 시장이 확대되면 이는 일본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구로다특파원=한일 양국간의 현 경제력 수준을 비교할때 한국은 아직 일본과 경쟁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때문에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그러나 문제는 양국 경제협력과 무역수지 문제에 있어 한국정부와 기업들은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도와주기만을 바라며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 책임을 일본측에 떠넘기고 있는데 있습니다.한국의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이나 통일의 추진력이 될만한 현 경제력을 확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의 도움 덕분입니다.한국은 경협문제나 기술이전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민족주의 감정을 너무 앞세우는데 일본이 미우면 미울수록 감정을 억제하고 참고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일본은 한국이 가난하길 바라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비슷한 수준으로 공존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또 기술문제와 관련,한국이 명심해야 할것은 우선 홀로서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고통없이 무엇인가를 너무 쉽게 얻으려 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통일방해 말도 안돼 ▲한교수=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일본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주변국가들은 한국이 거대 국가로 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하지만 이 문제는 통일방법이나 통일형태가 어떠하냐에 따라 충분히 그 인식이 달라질수 있는 성질의 문제입니다.통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의에 따라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주변국에 위협을 주지않는다면 그 누구도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지리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본은 이같은 한반도의 통일을 가장 우려하며 견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도 일본지원을 ▲구로다특파원=그것은 오해입니다.일부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한반도통일을 방해하기 위해 일·북한수교노력을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교섭의 시작은 한소국교정상화에 고립감을 느낀 북한이 탈출구로 일본측에 수교를 제의해옴에 따라 촉발된 것입니다.한국인들이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관념속에 분단의 피해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일본은 결코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한반도가 하루속히 안정되길 바라고 있습니다.남북관계문제는 전적으로 그 책임이 당사국인 남과 북에 있는만큼 「일본이 문제」라는 책임전가식의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한교수=앞으로 한일 양국이 동반자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국민적 차원의 신뢰관계 구축이 우선 선행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과거 불행했던 역사관계를 청산하고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관계의 지평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또한 새로운 한일관계는 두 나라만의 관계로 한정시켜 생각하지 말고 아·태지역의 역학구도와 더불어 포괄적으로 규정돼야 합니다.이와함께 일본은 경제대국·군사대국을 지향하고 있다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이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구로다특파원=앞으로의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인 동반자관계가 되기 위해선 한국인들의 의식전환 역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합니다.지금까지는 일본으로 부터 무엇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일본에 대해 무엇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예를들어 한소정상회담이 다시 열릴 경우 한국이 소련에 대해 북방영토문제와 관련,일본측의 입장을 거들어 준다면 일본은 한국을 매우 고맙게 생각할 것이며 진정한 동반자관계의 초석은 이로인해 쉽게 마련될 것입니다. □한영구 외교안보연 교수 약력 ▲1946년생 ▲이화여대 정외과졸 ▲일 도쿄(동경)대학(법학석사및 박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현) □구로다 산경신문 서울특파원 약력 ▲1941년생 ▲경도대 경제학부 졸 ▲교도(공동)통신 서울지국장(80∼84년) ▲산케이(산경)신문 서울지국장(89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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