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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주의 청년동맹」 조직과 활동 상황

    ◎“주체사상이 지도지침” 강령 채택/「한민전」 지령대로 좌경혁명 기도/90년 결성… 철저하게 1대1접촉 경찰에 적발된 「김일성주의 청년동맹(김청동)」은 90년 12월 결성돼 국내 대학의 모든 주사파(주체사상파)조직을 배후 조종해 온 지하혁명조직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더구나 고려대내 「김청동」조직인 「2·16청년회」의 경우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에서 조직의 명칭을 따올 정도로 골수 주사파인데다 그 조직원들이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임시대변인·집행위원,북부총련 조직국장등 학생운동권내 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이번에 검거된 「김청동」의 조직원들은 경찰수사과정에서 가장 숭배하는 인물로 스스럼없이 김일성을 지목해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경찰수사 결과 「김청동」은 김일성주체사상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지도지침에 입각해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론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남한내 혁명전위대 구축을 위한 농민·노동자·대학생등 대중투쟁세력과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을 투쟁목표로 삼고 있다. 경찰은 특히 「김청동」이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지침으로 삼는다」「한민전의 지도노선과 지침을 올바르게 실천한다」「반미 자주화·연방제 통일을 위해 투쟁한다」는 등의 조직강령을 정하고 있어 명백한 이적단체로 규정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또 조직규약에서 「조직활동은 비합법·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조직연계는 1대1의 만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만일의 경우 수사당국에 증거를 남기지 않기위해 조직강령이나 조직규약을 일체 문서로 남기지 않고 주 2회의 모임에서 구두로 암송하는 등 치밀함을 드러냈다. 경찰은 이미 구속된 조직원들로부터 이같은 일관된 진술을 받아내고 이들의 활동이 단순한 학생운동의 테두리를 벗어나 간첩조직을 방불케 하는 지하혁명조직으로 남한의 현 체제를 전면부정하고 정권타도를 선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이들이 90년 결성이래 「구국전선」「등대」「벗」등의 기관지와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면서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구국의 방송」내용을 여과없이 내보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또 김일성의 80회 생일과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김일성 주석을 높이 우러러 모시자」「김정일 비서를 영원히 끝까지 따르자」는 등의 구호가 적힌 유인물을 배포하는가 하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에게 충성의 편지보내기」명분으로 김부자를 찬양하는 편지 20여점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2·16청년회」는 92년 9월 고려대 총학생회와 조국통일위원회를 장악할 목적으로 이 대학 NL(민족해방)주사파 3개 조직이 통합,결성된 「김청동」의 하부조직으로 고려대 재학생으로 이루어진 조직원이 1백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2·16청년회」도 북한의 상투적인 대남전술용어인 자주화(미국의 식민지 통치 청산·민족해방)·민주화(파쇼통치체제타도)·조국통일(연방제통일)을 조직강령으로 삼고 있다. 이밖에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자주·민주·통일사상 학습회」가 「김청동」의 연락책을 맡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구속한 10명외에도 신원이 밝혀진 「김청동」 핵심조직원 30여명의 행방을 추적중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수사결과 「김청동」이 일부 주사파 대학생들에 의한 자생조직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국내 고정간첩망과의 연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도자동지의 사상·작풍 체험,투쟁의 혁명가로…”/「김청동」의 김정일 충성맹세 편지(요약) 「김일성주의 청년동맹」의 한 조직원이 91년 1월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앞두고 만든 축하와 충성 과시 내용의 편지를 요약한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50회 탄신일을 열렬히 축하하며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인사를 올립니다.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지도자 동지께서 발전,풍부화하신 주체사상으로 참된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이 가르침과 은혜를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며 주체사상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살며 투쟁할 것을 다짐합니다. 주체의 위업은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책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이때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이북 사회주의는 자주성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의 희망이며 등불입니다.이북 사회주의를 파탄시키기 위한 미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음모를 분쇄하고 주체위업을 전국적 범위에서 완수해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지도자 동지의 사상과 작풍을 온전히 체현하며 지도자 동지가 걸었던 험난한 길을 따라 흔들림없이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성장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지도자동지의 뜻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받들어 집행하는 혁명전사가 되겠습니다.다시 한번 지도자 동지의 탄신일을 축하하며 충성의 맹세를 보냅니다.1991년1월 19일』 ▷김일성주의 청년동맹 투쟁목표·강령·규약◁ ■투쟁목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론(NLPDR)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 완수 ▲남한내 「혁명전위대」구축을 위한 대중투쟁 세력과의 연합전선 구축 ■조직강령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지침으로 삼는다 ▲「한민전」의 노선과 지침을 올바르게 실천한다 ▲반미 자주화,연방제 통일을 위해 투쟁한다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지도 핵심을 날로 육성하고 통일 원년을 위해 열심히 투쟁한다 ■조직규약 ▲조직의 명칭은 「김일성주의 청년동맹」이다 ▲조직 구성원은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투쟁속에서 단결된 지도핵심이다 ▲조직활동은 비합법,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조직연계는 1:1의 만남을 기본으로 한다 ▲모임은 주2회로 한다 ▲재정부담은 각자 부담한다
  • 워싱턴의 문선명·박보희씨/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26일 하오 2시.워싱턴시내의 고급호텔인 옴니 쇼람호텔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위한 청년연합」이란 생소한 단체의 창립총회에는 세계 1백60여개국에서 왔다는 4천여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참석했다. 이윽고 단상의 주요인사들이 사회자의 소개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그 단상 바로 중앙에는 통일교 문선명교주와 그의 부인 한학자씨가 자리를 잡았고 그 좌우에는 에드워드 히스전영국총리,알렉산더 헤이그전미국무장관,로드리고 카라조전코스타리카대통령등 저명인사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최근 평양의 김일성장례식에 참석,김정일을 단독면담했던 박보희세계일보사장도 단상 한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통일교의 새로운 조직 발대식인 이날 행사에 참석한 주요인사들은 세계 전역에서 왔다는 청년들에게 각기 축사를 했으며 1시간 반에 걸친 창립총회의 대단원은 문교주의 연설로 장식되었다.문씨는 『좌익과 우익의 이념적 대결은 이제 끝났습니다.인류의 미래는 하나님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필요로 하고있습니다』고 역설했다.문교주의,발음이 서투르다싶은 영어연설 중간중간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신도들이 보낸 열광에의 답례인듯 문씨는 청년연합 활동기금이라며 즉석에서 1백만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총회가 끝나자 장내는 곧바로 갖가지 조명속에 공연장으로 바뀌었다.젊은 참석자들의 무료함을 달래기라도 하듯 정상급 미국 가수와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의 공연등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단상의 인사들도 단아래로 내려와 공연관람을 위한 자리에 착석했다.단아래로 내려온 박보희씨에게 특파원들의 질문세례가 퍼부어졌다. ­서울에 언제쯤 돌아갈 계획인가. 『잘 모르겠다』 ­당분간 미국에 머무를것인가. 『그렇다』 ­클린턴대통령에게 전할 김정일의 구두메시지가 있다고 했는데 백악관측과 그 문제를 협의했는가. 『어제 저녁 워싱턴에 도착했다.오늘행사로 바빠 아직 아무것도 못하고있다』 이날 행사장의 분위기는 박씨가 북경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문선명총재의 참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신념에서 방북했다』고 한 말을 실감나게 했다.문교주의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반공에 앞장서왔다는 절대 권위의 문교주와,부자가 권력의 대를 잇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공산정권의 공통분모가 과연 무엇일까.
  • 도시마다 다른 산업(이탈리아 중소기업 탐방:18)

    ◎“비엘라는 직물”… 지역 고유산업 특화/비제바노=구두·카메라=대리석 대표적/원자재 염가 공동구입·정보교류 이점/다품종 소량생산체제… 한분야 타격 받아도 국가전체엔 연향 없어 국내에서 구두 상표로 유명한 「비제바노」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도시 이름이다.하얀 대리석으로 불리는 「카라라」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이며 유리의 대명사 「무라노」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15㎞ 떨어진 섬의 이름이다. 패션 상표 「밀란」「제노비아」등은 패션의 도시 밀라노와 제노바에서 따 온 말이고 조개 껍데기에 로마인들을 조각한 「카메오」는 로마의 특산물로 이탈리아 관광 기념품 1호로 통한다.피렌체에서 예술과 문학을 모르면 「정복자」 로마 사람들도 업심을 당한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이처럼 제각각의 자랑거리를 갖고 있다.패션·자동차·기계·유리·직물 등 공업 분야일 수도 있고 관광·문화·휴양 등 비공업 부문일 수도 있다.한 두개의 거대 도시가 나라 전체의 경제권을 거머쥔 「기형」이 아니라 지역별로 발육이 골고루 잘된 「초우량아」인 셈이다. ○제각각 자랑거리 북부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비엘라는 직물로 유명하다.지난 17세기부터 모·면·실크 등 모든 종류의 옷감을 다뤄왔다.세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물이 많은 계곡에 공장을 세웠다.가내 수공업으로 운영되다 지난 50년대 들어 근대식 공장으로 성장했다.지금은 크고 작은 업체가 2천개를 헤아린다.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프라토도 직물 도시다.비엘라보다 출발은 앞섰으나 패션의 중심이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옮아가면서 1위 자리를 비엘라에 넘겨줬다.질이 비엘라에 뒤처지나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지금도 1천개가 넘는 업체가 여전히 베틀을 돌리고 있다. 지난 50년 원사·원단 공장을 세워 피렌체 의류 업체에 납품해 온 피키사의 바론첼리 옥타비아노 사장은 『모·면·마 등 원사의 90%는 남아프리카·아르헨티나·중국 등 외국에서 수입하지만 옷감을 짜는 방식은 1백% 전통 기술에 따르고 있다』며 『이 곳은 직물업체만 모여 있는 일종의 직물 공단』이라고 말했다. 밀라노는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도시다.지아니 베르사체·지안 프랑코 페레·조르조 아르마니·구치·젠니·미소니 등 쟁쟁한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부티크가 즐비하다.지난 50년대 파리의 영향권에서 독립,단순하면서도 실험성이 강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여성 패션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이탈리아 패션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피렌체는 남성복으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다소 보수적 경향이 짙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명예 회복에 나서 디자인 전문학교인 「폴리모다」를 세우는 등 「밀라노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다는 가구도시 밀라노에서 40㎞ 북서쪽에 위치한 메다는 가구 도시다.전통가구업체인 메데아사는 가족 이름을 회사명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도시 이름을 빌렸다.이 곳에는 장인들만 3천명이 넘고 가구업체는 1천개를 웃돈다.7대째 가업을 잇는 업체도 수십개에 달하며 대가 끊기면 다른 업체에서 기술을 가르친다고 한다.기술의 단절은 없다. 지중해 연안의 카라라와 마사는 대리석이 유명한 곳이다.로마군이 원정을 떠날 때 이 곳 돌로 길을 닦았으며 중세때의 천재 미켈란 젤로는 아예 이곳에 눌러 앉아 조각을 했다고 한다.지역명인 카라라가 대리석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2천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돌을 캐는 석공은 줄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공법을 더하고 첨단 기계로 무장,기술을 한층 발전시켰다.돌을 가공하는 코제마사의 비토리오 멜란더 사장은 『일단 산업이 특화된 지역에서는 다른 분야에 한눈을 팔지 않고 철저히 분업의 원칙을 지킨다』며 『섬유산업의 경기가 나빠지면 직물·패션 도시만 불황을 겪을 뿐 다른 도시는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토리노는 시 전체가 자동차 왕국이며 코모는 원단에 색을 넣는 염색업체 일색이다.베네치아 북쪽의 벨루나는 안경업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지역 인구의 90%를 차지하며 베네치아는 무라노의 유리를 바탕으로 조명기구를 발달 시켰다.비제바노는 2백년이 넘는 구두 업체가 수백개에 이른다.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3위에 랭크된 공작기계는 바레세와 밀라노를 중심으로 웅지를 틀었고 주방기구·가방 등도 밀라노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집적이익」 효과 지역적 특화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두가지.원·부자재의 공동 구입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과 업체간 정보 교류로 기술 발전의 시너지(상승)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른바 「집적이익」이다. 기계업체인 카르나기사의 아드리아노 카르나기 영업담당은 『한 곳에 수백개의 동종 업체가 몰려 있어 기술 전파가 엄청나게 빠르다』며 『새로운 기술이 외국에 전달되는 데 1년이 걸린다면 이 곳에서는 한 달을 못 넘긴다』고 말했다.경기의 좋고 나쁨에 따라 도시마다 부침이 확연히 드러나는 폐단이 있지만 국가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편이다. 알베르토 만페라리 섬유연합회 대외담당은 『가내 수공업을 바탕으로 한 지역적 특화가 이탈리아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전제,『이탈리아 기업은 수세기 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의 가내 공업에서 출발,독특한 기술을 축적했다』고 말했다.대규모 공장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 적격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 박보희씨의 이상한 언동(사설)

    시절이 수상해서인가 별일도 많다.박보희 통일교실력자의 언동은 참 맹랑하다.조문객중 「제일 큰 꽃다발」을 들고 대한민국 국법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듯 허겁지겁 김일성을 조문하러 달려가는 것부터 이해하기가 어렵더니 다녀나와서 하는 언동은 더욱 해괴하다.자신의 위법적인 행각을 생각해서도 그가 북한을 벗어나 맨먼저 했어야 할 일은 국가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소명하는 노력이었어야 한다.그러나 그가 처음 한 일은 북경에서의 내외신기자회견이었다. 김정일을 깍듯이 「비서각하」로,북한을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표현하는 기자회견이었다.그리고 한국을 의도적으로 「남한」으로 부르는 기자회견이었다.「남한」이란 호칭은 국호가 아니다.이 호칭은 그것이 부득이한 경우라도 한국인을 불쾌하게 만든다.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이제 필요치 않아진 것일까.「개인적으로」 「각하」로 섬기는 맹세를 한 셈인 김정일의 「DPRK」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그는 굳힌 것일까. 문선명교주와 김일성이 맺은 형제지의를 존중하는 일이 국법보다 우위에 있는 것같은 논지를 펴는 그를 보면 대한민국은 그에게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지구상에 마지막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을 조국보다 더 소중히 섬기기로 다짐한 그가 「승공론」을 펴는 것 또한 이해가 안된다. 그의 「언론인자격」론도 어불성설이다.국법에 저촉되는 언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이 언론인의 「특권」은 아니다.그는 또 김정일의 「방미 클린턴회담」이니 「남북정상회담」 「구두메시지」를 운위했다.누가 그런 자격을 부여했는가.만약에 그런 사실이 있다면 북경기자회견 같은 것은 더구나 이상하다. 의도적인 북경기자회견을 끝내고 그는 사법처리를 「피해」 미국으로 가버렸다.우리국민은 이런 그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 대단히 불쾌한 느낌을 맛보고 있다.「영주권」이라는 편리한 도피카드를 들고 훌쩍 날아가버리면 고만이라고 처음부터 계산했을 그의 교지에 배신감이 드는 것이다. 세련된 국제감각으로 통일교가 당면한 위기들을 처리해온 그의 고수를 아는 우리로서는 그의 북행이 개인 내지는 그가 속한 단체의 어떤이권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는 분석도 한다.북녘땅에 남 먼저 이로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한민국과 국민을 무참히 깔아뭉개는 일을 서슴지 않는 그의 행적을 사람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그가 훌쩍 떠난 것으로 끝난 일은 아니다.그가 속한 단체나 기관은 그런 오산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당국은 당국대로 단호한 사법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고 그가 속한 집단에서는 그나름의 소명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 “김정일과 50분간 미­북문제 논의”/박보희씨 북경회견 일문일답

    ◎“북 세체제 생각보다 확고/남­북·미­북 관계 좋아질것” ­김정일과는 어디서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가. ▲지난 20일 김일성광장에서 김일성추도식이 끝난 직후 이 광장 두석단에 있는 주석실에서 약 50분가량 만났다.이때 남북문제와 미국­북한문제 등 많은 얘기를 했다. ­김정일의 건강은 어느 정도인가. ▲그는 겉으로는 창백하고 수척해보였으나 악수할때 느끼는 힘이나 가까이선 본 모습은 건강에 이상이 없어보였다.장례식 때문에 최근 피로가 겹친 정도이지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그의 측근들로부터도 들었다. ­북한의 매스컴보도에 따르면 박사장이 평양에서 김정일을 「각하」라고 호칭하고 또 그가 조국통일의 운명을 지고 태어나셨다고 했다는데….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나는 항상 「김정일 비서님」으로 호칭한다.(그러나 박사장은 내외신회견에서 영어로 얘기할때는 「His Excellency Kim JongIl」(김정일 각하)또는 「Marshall Kim JongIl」(김정일 원수)라는 표현을 썼다) ­방금 영어로 「각하」라고 부르면서도왜 안썼다하는지…. ▲영어로는 일국의 대사에게도 「His Excellency」라는 표현을 쓰는데 북한에 가서는 영어를 안쓰고 한국말을 쓰지 않은가.한국말로는 「김일성 주석님」「김정일 비서님」이라고 쓴다. ­북한에 가게된 경위는. ▲문선명총재와 김일성주석과의 인연을 고려해 문총재와 본인의 이름으로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조화나 보내려고 북경에 왔었는데,13일 상오에 교포들은 평양에 들어와도 좋다며 구두초청이 있었고 기회는 그날 하오 뿐이어서 들어갔다. ­김정일은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전혀 얘기한게 없다. ­김정일에 대한 평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위치에 있었다.김정일체제는 완벽하고 일사불란해서 혁명1세대에 대해서도 그대로 잘 대접하고 김용순 같은 젊은 엘리트들이 앞으로 대단히 잘해갈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용순등은 『남쪽에서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체제가 3일천하니 길어야 3년밖에 못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설명했다. ­김일성의 사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는데. ▲내가 보기로는 자연사가 틀림없다.6월에 카터를 만날때만해도 겉으론 건강해 보였으나 너무 과로했었다.한국에서도 보도됐었지만 김일성은 6월에 18번이나 외국인을 접견했는데 당시 외국인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자리에 눕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을 만날땐 건강한듯 나타났었다.이같이 비상한 최후 노력을 하다가 사망 며칠전에는 자기와 같이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절친한 전우들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어서 충격이 더 컸던 것으로 들었다. ­김정일이 미국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클린턴대통령이 김의 사망에 조의를 표한데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는 특히 김일성이 미국에 가볼 생각이 있었는데 실현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 미국에 가서 클린턴대통령과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남북한관계나 북한·미국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김정일은 대단히 배포가 크고 일을 대담하게 처리한다.개방정책도 시험적으로 실시하려다가 압력을 받아 그만 두기도 했었다.
  • “남북정상회담 계속 추진/김정일/클린턴과 회담도 희망”

    ◎방북 박보희씨 북경서 회견 【북경=최두삼특파원】 김일성사망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박보희세계일보사장은 23일 북한의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미 정해진 원칙에 따라 계속 추진해갈 것이며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미대통령과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사장은 이날 11일간의 평양방문을 마치고 북경에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20일 추도식이 끝난직후 김정일과 약 50분간 단독면담을 가졌다고 밝히고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이 카터전미대통령에게 한 약속이 모두 유효하며 북한­미국회담 등을 모두 그대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일이 한국과 미국정부에 전해달라는 구두 메시지도 있으나 그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사장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24일 일본에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밝혀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박사장은 자신의 방북활동이 한국내에서 물의를 빚은 사실을 의식한듯 기자회견에 앞서 배포한 「본인이 평양을 방문한배경과 입장」이라는 설명서에서 『김일성주석의 장의 의식에 참여하여 조의를 표하고,북한이 처한 현실정을 정확하게 알고 미래를 전망코자 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설명서는 이어 방북과 관련,▲조문은 인도주의 정신의 기본 신념이며 ▲문선명총재의 「참사랑」 가르침을 실천하고 ▲조국통일의 물꼬를 튼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 장인존중의 기업풍토(이탈리아 중소기업 탐방:17)

    ◎숙련공 한명 키우는데 3∼10년 투자/철저한 도제식 교육… 자질평가후 적소배치/“품질 떨어진다”… 주문 밀려도 일시적 충원은 안해 이탈리아근로자는 직장을 거의 옮기지 않는다.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철새」도 많지 않다.농촌을 떠나는 이농현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처럼 심각하지는 않다. 도·농을 가릴 것 없이 일자리가 많은 것도 주요한 이유다.도시국가로 출발,지역간 이동이 적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근로자를 보는 기업의 생각이 틀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기업들은 갑자기 주문이 는다고 일할 사람을 새로 찾지 않는다. 구인광고도 별로 하지 않는다.일손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지낸다.일시적인 수요 때문에 근로자를 사지 않는 것이다. ○사장도 간섭 안해 근로자는 오랜 시간을 두고 채용한다.몇 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능력을 살핀 뒤 가장 적합한 자리에 앉힌다.단순한 기능공이라 해서 무턱대고 고용하는 법은 없다.일자리의 「대물림」을 위해 평가는 「고참」이 내린다. 비제바노의 남성구두업체모레스키사는 숙련공 1명을 키우는 데 3∼4년을 투자한다.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초년병들을 고용,1년간 쉬운 일을 시킨다.가죽을 나르거나 모델을 보고 가죽위에 선을 긋는 일,자르는 일 등이다. 보통 10명을 고용하면 3∼4명은 이 과정에서 탈락된다.두번째 관문은 밑창을 갈고 풀칠한 뒤 못박는 과정이다.역시 1년동안 지켜본다.2∼3명이 다시 나간다.마지막으로 가죽의 틀을 잡거나 표면을 다듬고 꿰매는 일들을 시킨다.구두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이때는 반드시 「고참」이 지켜보는 데서만 일을 배울 수 있다. 모든 과정을 거쳐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만의 공정을 가지려면 3년 또는 4년이 걸린다.지안베페 모레스키사장은 『하나의 구두가 만들어지려면 약 2백50개 공정을 거쳐야 하며 한사람이 공정 하나씩을 책임진다.근로자의 능력이 바로 품질이기 때문에 오랜 훈련과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10년터울 신참 양성 그는 『근로자중 자질이 있는 사람을 골라 여러 공정에서 일을 시킨 뒤 현장책임자로 발탁한다』며 『이들이 신참들을 교육하고 평가하며 일자리를 정한다』고 한다.생산직은 생산직출신이 책임지며 사무직이나 사장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4살때부터 43년간 이곳에서 일한 안토니오 펠레그리니씨는 『해마다 10여명 정도의 사람을 뽑지만 정작 3∼4명만 남는다.그러나 이들은 구두공장을 차릴 만큼 다양한 기술을 배우게 된다』며 『기술이 끊이지 않게 10년 터울로 신참들을 키운다』고 전한다. 보르고세샤의 직물업체 아뇨냐사는 최근 근로자의 신구교체를 맞았다. 53년 설립때부터 일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정년을 맞아 새 근로자들을 뽑았다.한번 직장을 가지면 평생 다니는 관례 때문이다.대부분 20대 젊은이들로 뒤를 이었지만 기술의 단절은 없었다. 알베르토사장은 『전에 일하던 사람들은 나이가 50대후반으로 10년전부터 동시퇴직을 고려,준비했다.한사람씩 자기일을 맡을 사람을 특별히 고용,기술을 전수토록 했다』며 『기계의 도입으로 숙련공들의 역할이 갈수록 줄지만 품질은 대를 잇는 손끝에서 나오는 법』이라고 했다. 바레제의 공작기계업체 카르나기는 2년전 주문량이 평소보다 2배나 많았다고 한다.피에로사장의 아들인 아드리아노 카르나기 영업담당은 이때 회사가 클 수 있는 기회라 싶어 사업규모를 늘리자고 제안했다고 한다.근로자도 더 뽑고 공장도 새로 건설,생산규모를 늘리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돈보다 근로자 중시 숙련공이 부족해 품질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게 주요이유라는 것.피에로사장은 『생산량을 늘리면 매출은 늘지 모르나 기존제품의 질이 떨어지고 근로자도 일의 강도가 높아져 장기적으로는 불리히다』며 결국 주문량의 절반은 취소했다고 한다.돈보다 근로자가 더욱 소중하다는 것이다. 메다에서 전통가구를 만드는 란자니사의 움베르토 란자니사장은 『가구업계에서의 기술전수방식은 더욱 철저하고 오래 걸린다.조각공은 10년,염색공은 5년을 함께 지내야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움베르토씨는 『그래서 가구업체는 신참을 키워 장인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장인들을 특별히 고용하는 게 보통이다.직접 장인을 만들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란자니사에서 일하는 장인 마리오 프라다씨는 『12살때 아버지로부터 조각하는 기술을 배웠지만 완제품을 만든 건 20살이 넘어서였다.제품을 만들면 부수거나 흠집을 내 새로 만들기 일쑤였다』며 『지금도 도제식으로 훈련시키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공작기계업체 피쳅사의 레나토 지우리아니부회장은 『기계를 만들고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근로자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으면 품질은 떨어지는 게 당연하며 교육도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그의 잔영은 여전히 잔인하다/몽상적 독재자 김일성의 저승길을 보며

    ◎광신적 오열행렬에 피란짐보다 더 무거운 슬픔이…/“미망이 저런건가”… 통일로 가는길 먹구름 보는듯 불과 열흘전 한반도에서는 82세로 그 인생을 마감한 헛된 몽상가의 죽음이 있었다.필자는 그 죽음의 소식을 남쪽으로가는 여행길의 휴게소에서 들었다.그리고 두가지의 충격을 받았다.그 첫째는 물론 김일성의 물리적인 죽음이었고,다른 한가지는 백여명을 헤아리는 그 휴게소 여행객들이 보여준 의연한 침묵이었다.그러나 그 무표정에 묻어 흐르고 있는 일말의 아쉬움 또한 필자는 읽을 수 있었다.죽기 전에 남북정상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회담을 갖자 하던 그의 결심이 진정한 조국애에서 비롯되었기를 바란 것이었기에 그 죽음의 아쉬움은 우리 가슴에 진한 구두점을 찍어준다.분단 50년의 포한을 풀려 한 것이 진정이었다면,하필이면 이 찰나에 불귀의 객이 되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고 미련이다. 그러나 그 몽상가는 그 유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치문맹이었다.그는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스탈린의 추종자였다.스탈린이 그러했듯인민을 그의 수하에 두었고 인민을 그의 이념구현의 도구로 삼았다.그는 2천5백만 인민을 울타리속에 가둬두고 필요에 따라 동원하고 배급으로 울게 만들었다.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 좁은 땅위에 살던 군인과 민간인 2백58만명이 초개와 같이 죽거나 실종되었고,무려 5백50만여명이 미망인·불구자·고아등으로 비참한 전쟁후유증을 겪었다.그 전쟁은 게르만민족의 대이동보다 더 많은 민족의 이동을 불러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란한 남북이산가족이 1천만명에 이르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전쟁의 깊고 깊은 상흔은 가시지 않고 민족적인 비극으로 남아 있다.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말끝마다 나가라고 외치고 있는 미군은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이 나라에 들어왔고,소련군대와 중공군까지 불러들여 동족을 살상하고 국토를 초토화시키는 일에 이용했다.설혹 물리적인 피해는 당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말미암아 우리 겨레의 가슴에는 피맺힌 슬픔이 자리잡고 말았다.그 폐단의 상흔 역시 우리의 진솔한 삶의 그롯속에 아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필자는 11살,산골국민학교 5학년 시절이었다.먼 산자락을 뒤흔들던 포성소리가 가까워지자 어머니는 새우잠을 자고 있던 우리 어린 두 형제를 깨웠다.문 바깥은 한치 앞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의 칠흑같은 어둠,동생을 들쳐업은 어머니는 포성을 등뒤로 하고 허둥지둥 발걸음을 떼어놓았다.11살의 나이로는 엄두조차 못낼 무거운 피란봇짐을 등에 진 필자 역시 경황없이 어머니의 뒤를 무작정 따라야했다.동이 트기 시작하는 어느 산기슭에선가 우리는 벌써 쇠파리가 들믿는 국군의 시체를 보았고,그 곁에 인민군에 포위된 채 매복하고 있는 국군을 보았다.남하의 피란길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산협의 낯선 농가의 추녀 아래서,그리고 빗물이 새어드는 움집에서 병고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남아 그 모욕적인 전쟁이 먼발치로 떠나가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간 작년 여름,필자는 중국의 집안에 있는 선착장에서 작은 배를 타고 그 맞은편에 있는 만포의 강안을 스쳐간 적이 있었다.우리가 탄 배가 북한의 만포연안을 서행으로 거슬러 올라갈제 40여년전 필자 나이 또래였던 헐벗은 아이들이 몰려와서 담배를 달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필자 곁에 있던 일행중 한사람이 담뱃갑을 던질듯 포즈를 취하다가 그만두자 그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은 배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돌팔매질을 사양 않던 그 철부지들의 단도직입적인 호전성을 목격하면서 자리잡은 충격적인 슬픔은 11살의 나이가 감당하기엔 무거웠던 40여년전의 피란짐보다 훨씬 무거웠다.집권 49년을 그는 북한 인민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하였고,그 인민은 동원의 미망속에 살고 있다.그 인민은 미망속에 살면서 언제 어디서든 수령의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려왔다.그들은 스스로 창조하려는 몸부림보다 식량배급표를 쥐고 있는 수령의 명령과 교시만을 따르려 하였다.그런 바탕위에서만 우리는 북한의 그 엄청난 오열의 행렬을 이해한다.울먹이는 목소리로 독재자의 죽음을 알리고 있는 북한 아나운서의 슬픈 가슴을 이해한다.냉정한 검증을 거쳐가는 역사에 참여되고 있는 민족이 아닌한 독재자의 신격화에 동원되었던 인민의 미망을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면서,우리는 또 다른 무게로 등을 덮치는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과 마주서야 한다.우리는 통일의 열쇠가 이제 우리와 유명을 달리한 독재자 김일성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미망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우리가,그리고 우리겨레가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는 그 통일의 열쇠는 공교롭게도 바로 백성으로 이름되는 우리 모두의 이해와 용서와 화합에 달려 있다.그렇기에 그에 대한 냉정한 검증없이는 국민의 이해와 용서는 구걸조차 어려울 것이다. 고달픈 인생살이에는 필경 눈물이 많은 법이고 가슴을 에는 듯이 통렬한 예배의 대상을 둠으로써 심정적 위안을 획득한다.우리가 북쪽에 있는 동포에게 보내고 있는 슬픔이 바로 그런 모습들에 있다면 그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궁핍에서 벗어나고 자기개발과 창조의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터득시켜 그들이 겪고 있는 미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주선하는 아량과 노력이 통일을 위한 정치적 담판과 병행되어야 할 줄 안다. 2년전 겨울 필자는 중국의변경에 있는 어느 해관(세관) 식당에서 중국의 친지방문을 위해 방금 북한땅에서 건너온 어떤 모녀의 점심식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그 두사람의 식탁은 너무나 빈약해서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애옥살이를 견디고 있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죽은 자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닐 것이고,전쟁도 아니고 핵을 개발하는 데도 있지 않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들도 알고 있는 일이다.그것은 바로 남북한간의 화합과 용서,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통일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제 한시대는 물러났다.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한반도의 북쪽에서 가장 야만적인 모습으로 군림하던 독재자는 사라졌다.그러나 그 잔영은 너무나 진하게 우리앞에 남아 있음을 또다시 목격하게 된다.그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아닌 비방과 이간질의 현실이 북한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 신문에서도 우리는 읽고 있다.아연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통일로 가는 길위에 놓인 고통과 갈등을 예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 피서철 어린이 고무신 인기/물에서 마음껏 뛰놀수 있고 실용적

    「그때를 아십니까」.60·70년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다 가죽구두와 운동화에 밀려 사라져 버린 고무신이 최근 일고 있는 갖가지 우리 것 찾기와 신토불이 움직임속에서 도시의 유치원생을 비롯한 유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들이 신고 있으면 앙증맞으면서 친근감을 주는 고무신은 본격 장마철과 피서철로 접어든 요즘 유치원의 유아캠프준비물 목록에 포함되는등 수요가 늘고 있다. 색상도 검정·흰색외에 보라·파란색및오팔과 같은 무지개 광택이 나는 것등으로 다양해지고 앞코가 오똑해 불편한 여아용 고무신 보다 신고 벗기에 편한 뭉툭한 남아 고무신이 더 사랑받고있다. 이같은 고무신의 유행은「가난하기 때문에 값싼 신발을 사준다」는 부끄러운 의식을 전혀 가질 이유가 없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요즘 젊은 부모들의 소박한 아이멋내기소품으로 애용된다는 분석이다. 15,16일 유아원의 여름캠프때 준비품으로 고무신을 포함시킨 서울 강남구 개포동 신양유치원 원장 조원희씨는 『잘 벗겨지는 슬리퍼나 물에 젖기 쉬운 운동화보다 계곡등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놀기에는 고무신이 실용적이며 발도 다치지 않아 준비물에 넣었다』고 말했다.신체균형을 잡기 힘든 어린아이들이 슬리퍼를 신고 뛰어놀다 한발로 다른발의 슬리퍼 뒷부분을 밟아 넘어지는 등의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아들(6)딸(4)에게 각각 검정·흰 고무신을 사줬다는 임성숙씨(32·서울 마포구 연남동)는『어렸을때의 시골생활이 떠올라 정감도 있는데다 아이들이 편하게 신고 노는 것같아 좋다』고 말한다.아이들이 신다 작아진 고무신을 깨끗히 씻어서 진열장에 두고 추억이 깃든 인테리어 용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 「스쿨걸 룩」 유행/“청순한 여고생이고 싶어라”

    ◎짧은 주름치마에 흰색양말 “깜찍” 최근 2∼3년 전세계적으로 강세를 띠고 있는 패션 유행은 거지패션(그런지 룩)과 겹쳐입기(레이어드 룩)등 자유로움과 우아함,성숙미를 강조하는 스타일.그러나 최근 이러한 경향에 대비되는「스쿨 걸 룩」(여학생 패션)이 10대후반과 20대 여성들 사이에 유행 스타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쿨 걸 룩」은 말 그대로 여고생의 단정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한껏 강조하는 패션 스타일로 올 가을 겨울에 이어 내년 봄 여름까지 이어진다고 패션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스쿨걸 룩은 슬립드레스등 속옷응용패션(란제리룩)과 겹쳐입기,스포츠 룩의 유행과 아울러 프랑스등 유럽과 일본에서 올 봄부터 이미 유행하고 있는 옷차림.지난 봄 밀라노 파리 뉴욕등 세계적인 패션쇼에서 지아니 베르사체등 유명디자이너들에 의해 일제히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스쿨 걸 룩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바로 밝고 경쾌한 멋을 내는 짧은 주름 치마나 랩스커트,또는 A라인의 스커트다.이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중·고등학생들의 교복에 보편적으로 쓰인 체크무늬 주름치마가 가장 부각된다. 이밖에 단순한 모양의 섬유로 된 천연운동화나 끈달린 여학생구두,머리핀,흰색양말 등이 소품으로 이용되는데 특히 발목이나 무릎까지 오는 흰색 커버양말은 빼놓을 수없는 코디용품이다. 상의는 보통 셔츠나 단순한 모양의 블라우스,조끼등을 입기도 한다.기온이 떨어지는 가을·겨울에는 조끼나 블라우스 위에 스웨터를 입어 더욱 깔끔한 멋을 연출할 수도 있다. 「씨」디자인실 이지은씨는 『자연주의가 주도하던 봄·여름 유행경향이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느낌이 특징이었다면 올 여름 하반기와 가을철에 강세를 띠는 스쿨 걸 룩은 깜찍하고 단정한 청순미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짧은 커트머리의 유행과도 부합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요즘 스쿨 걸 룩의 주름치마소재로 면이나 리넨,폴리에스테르 등이 쓰이고 있는 반면 가을 겨울에는 보온성이 좋은 소재가 등장,울이나 기계주름을 넣기에 좋은 울·폴리에스테르의 혼방소재(T/W)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 정상회담 빠를수록 좋다/김형국(대북정책 새 접근)

    ◎핵연료봉 재처리시간 주지말아야 북한 김일성사후의 새로운 지도체제는 장례식 이후에 공식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겠지만 그동안 명실공히 제2인자로 군림해 왔던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 김일성의 영향력 아래서 후계자로 지목받은 이후 가능한 공공행사의 참석을 피해왔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혹자는 그의 비정상적인 사생활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고 혹자는 그가 비범한 두뇌와 논리를 가진 자로 평가하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앞으로 그의 행동은 향후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현재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면서도 북한의 권력계승이 완전히 완료된 후에 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시기나 조건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나름대로 신중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을 정점으로 하는 북한의 신체제는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상당기간 권력기반을 공고히 해나갈 것으로 분석된다.일부의 평가처럼 그의 권력승계 이후 당장 족벌간,파벌간 권력투쟁이 일어나거나 군부와의 마찰 등을 상정하는 것은 북한의 정치권력을 서구의 시각으로 보는데서 연유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일체제는 그동안 김일성이 근 반세기동안 구축해온 「주체노선」의 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과거 소련의 스탈린이나 중국의 모택동이 사망한 후에 풍미했던 전임자에 대한 격하운동은 김일성사후의 북한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더욱이 군사쿠데타에 의한 전혀 새로운 지도층의 확립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김일성은 『일제로부터 민족해방을 가져오고 미제국주의로부터 인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의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너무나 확고히 굳혀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러한 명분과 카리스마를 꺾을 자는 없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는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로서 이미지의 구축을 필요로 할 것이다.그러한 이미지는 이른바 「인민의 행복과 안녕」을 구두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보장해야만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만약 이같은 「물질적인 보상」이인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으면 이미지 구축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체제유지 자체가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김정일체제는 생전에 우상화했던 김일성을 이제는 신격화시키고 김일성이 죽기 전에 추구하려 했던 정책노선을 당분간 답습할 것으로 예상된다.왜냐하면 이 길만이 김정일지도체제의 조기정착을 가능하게 하고 김일성이 구사했던 방대한 권력의 공백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김정일체제의 갑작스런 대외정책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그것은 김일성노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뿐아니라 김일성노선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김정일체제가 개방을 추구한다 해도 지금까지의 『주체성을 훼손받지 않는』 극히 제한적인 범위내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김정일체제의 성격을 감안하여 우리의 대응에 관해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남북정상회담을 가급적 신속히 재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의 김정일체제가 사실상 구축된 이상 남북한 정상이 하루빨리만나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한간이 더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온 세계가 다 알고있는 이상 회담결과의 성패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북한 신지도층의 핵에 대한 의견과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안에 대한 견해를 직접 알아보는 것만해도 큰 소득이 될 것이다.대화가 없는 대결보다는 대화가 있는 대결이 훨씬 안정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둘째,북한핵문제를 고려하여 가급적 8월말전에 1차 회담을 갖고 이어 적절한 시기에 2차 회담을 곧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리고 남북관계에 관한한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좋다. 북한이 지난 6월 원자로에서 꺼내 냉각저수조에 보관중인 연료봉은 8월말이면 재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정상회담의 주요한 의제의 하나가 한반도의 비핵화문제라면 가능하면 8월말 전에 만나는 것이 북핵개발의 저지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북한의 내부정세를 빨리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더욱 공고히 해야할 것이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치부되어야 마땅할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이 분단 반세기만에 찾아온 남북화해의 기회를 또다시 지연시킨 아쉬움을 남겼듯이 김정일체제의 구축을 도와주는 것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 아이러니를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분석할 때 비로소 생명력이 주어지는 것이며 당대의 사건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져야 미래의 역사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수 있는 것이다.
  • 김정일 관련 「북한의 은어」

    ◎고슴도치 부자=대권전수 빗대 새끼 아끼는 고슴도치 비유/까투리 새끼들=3대혁명 소조원 지칭… “입만 까졌다”는 뜻/번지없는 주막=일반 관공서와 달리 번지없는 주석궁 풍자 북한의 권력을 승계할 것이 확실시되는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져 있을까.북한문제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극동문제연구소(소장 강인덕)가 최근 펴낸 「북한의 은어」를 통해 서방세계에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김의 모습을 살펴본다. ▲숫밤송이=김정일이 시범적으로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이른바 주체머리를 말한다. ▲곁가지=김정일의 이복형제들을 말한다.같은 자식들이지만 김이 본류라는 비유다. ▲고도=키가 작은 김정일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을 일컫는 말. ▲고슴도치부자=김일성부자를 지칭한다.자질이 모자라는 김정일에게 김일성이 70년대부터 대권전수를 시작하자,그 부자를 새끼를 끔직히 위하는 고슴도치에 비유하는 말. ▲까투리새끼들=김정일의 권력기반인 3대혁명소조원을 지칭한다.그들은 허황한 정치선전만 하므로 입만 까졌다고 해서 붙여졌다. ▲민족반역자=김정일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환자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한 데서 비롯.일반적으로 성병환자를 가리킨다. ▲번지없는 주막=김일성이 지금까지 살았고 곧 김정일이 살게 될 금수산 주석궁.주석궁은 다른 관공서와 달리 번지가 없다. ▲쏘왕=김정일을 주패놀이(북한에서 유행하는 카드놀이)에 등장하는 「소왕」(김일성은 대왕)이라는 카드에 비유한 단어. ▲호미망치=무지몽매할 뿐 아니라 철없이 날뛰면서 주민들을 들볶던 3대혁명소조원들을 지칭.70년대초부터 쓰였다. 극동문제연구소는 『은어는 일상어가 아닌 억압당하는 계층의 풍자』라며 『일부주민들은 김정일을 그 아버지처럼 존경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보고 SOS 운동/김중양 총무처 능률국장(굄돌)

    SOS하면 망망대해를 가던 배가 거친 폭풍우를 만나 구조해 달라고 조난신호를 보내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그래서 「보고업무에 무슨 SOS냐」라는 의문이 생길수 있다.이는 정부 조직체이든 민간 대기업이든 보고업무가 너무 많아 본래의 업무처리에 지장을 주게되므로 보고사무를 간소화하자는 것,그것이 「보고 SOS운동」이다.과거 60년대,70년대의 개발행정시대에서는 보고를 잘해서 출세했던 사람도 있었다. 단정한 자세로 절도있게 지휘봉을 적절히 짚어가면서 명쾌하게 보고하는 부하를 상관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위 「브리핑행정」「차트보고」가 풍미했던 단순행정시절의 이야기다.그러나 오늘날 행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문제는 행정기관내에 보고업무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우리행정에 있어서 보고사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전체업무량의 30%정도가 된다.상급기관이나 상사의 급한 지시에 따라 보고서를 만드느라고 철야근무를 안해본 공무원도 드물 것이다.그래서 과도한 보고사무를 감축하기 위하여 「보고SOS운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원래 이 운동은 민간대기업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공직부문까지 확산되고 있다.「보고SOS운동」의 첫글자「S」는 심플(Simple)로서 보고절차의 단순화를 의미한다.즉,간단한 내용은 굳이 문서로 할 것이 아니라 메모나 구두로 보고하자는 것이다.둘째글자「O」는 온 타임(Ontime)으로서 보고는 적시에 하고 당일에 끝내라는 의미다.보고에 있어서 타이밍을 맞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마지막글자인 「S」는 슬림(Slim)의 머리글자다.보고문서는 간결할수록 좋다는 것이다.즉 보고서는 1장이 최선이고 2장이 차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고SOS운동」의 3원칙을 적용하면 시간·경비도 많이 절감할 수 있게되고 또 쓸데없는 문서발생도 상당히 억제할 수 있다.「현명한 자는 지식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어리석은 자는 서류로 자신을 보호한다」모부처에서 내건 표어가 정곡을 찌르고 있다.
  • 파유학중 귀순 동영준씨가 만난 김정일/수기

    ◎“상대하기 껄끄럽겠다” 첫인상/디스코 등 일부 서구유행 허용… 젊은충 따라/김일성보다 강경하지만 훨씬 현실·개방적 김일성 북한주석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갓 돌이 지난 아들녀석이 아파 병원으로 가던 9일 점심 때이었다.라디오 뉴스를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대뜸 『이젠 시부모님을 뵐 수 있겠네요』라고 흥분했다.통일이 멀지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웬지 착잡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지난 79년 박정희대통령 피격당시 수업까지 전폐하고 「통일됐다」고 기뻐했던 일이 생각났다. 50년동안 신처럼 우상화돼 왔던 김일성.그 김일성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정권을 이어받게 된 김정일.나는 지난 89년 6월 한국으로 귀순하기까지 김정일을 모두 세번 만났다. 내가 김정일을 처음 본 것은 평양기계대학 수산기계학과 1학년이던 지난 82년 5월이었다.내가 다니던 대학이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명태할복기」라는 기계를 개발했을 때였다.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직접 「현지지도」를 나올 정도였다. 생전 처음 「민족의 태양」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직접 가까이서 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김일성 뒤에 서 있던 김정일에 대한 첫인상은 「상대하기 껄끄럽겠다」는 한마디로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다.김정일이 나중에 최은희·신상옥을 만났을때 자신을 「난장이 똥자루만하지요」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한쪽 머리카락이 모두 위로 치솟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래서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이런 모습을 두고 좋게는 김정일의 기상이 하늘로 솟았다고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때부터 부모사랑을 모르고 자라 사납고 괴팍하게 보인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쨌든 상당히 호탕해보였고 솔직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특유의 헐렁한 바지에 굽높은 신발,잠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다. 두번째로 김정일을 본 것은 1년뒤인 정권 창건일(9·9절)35주년 행사준비가 한창이던 83년 9월8일이었다.백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김정일이 직접 총지휘를 맡고 있었다.김정일은 총연습이 한창이던 8일 낮과 밤 두번씩이나 직접 현장으로 나와 학생들과 당원들을 격려했다. 김일성이 신격화된 존재였다면 김정일은 「인민의 자애로운 지도자」로서 인간적인 면이 강조됐었다.특히 김정일은 서모아래에서 설움을 받으며 자랐다는 「흠집」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동정을 불러일으켰다.또 서구영화와 디스코·장발·통바지등 서구의 유행등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금강산과 남포·청진시등 4개 도시를 관광지대로 개방하자고 주장하는등 젊은층의 기호·취향을 어느 정도 알아줬기 때문에 김일성보다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는 대학생과 청년단체,신진 엘리트,3대 소조를 자주 만나 「나와 함께 일할 동지들」이라고 신임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그래서 젊은층이 김정일을 미래의 지도자라는 생각에서 더 따랐던 것 같다.그리고 지금도 이런 정서가 북한의 젊은층 사이에 퍼져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특히 테크노크라트들의 지지기반을 얕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물론 나의 김정일에 대한 생각은 폴란드 유학및 한국생활을 통해 73년이후 20여년동안 계속됐던 세뇌교육에 의해 왜곡·조작된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속고 살았다는 배신감과 허탈감이 컸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에서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것을 보면서 북한체제의 경험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강경하고 즉흥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훨씬 현실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김일성과 비교해 친화력과 지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뒤집기 위해 무척 애쓸 것이다.또 「군사에 약하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어 핵문제등 현안문제를 통해 그렇지 않음을 안팎에 과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정권을 잡은 뒤에는 경제난과 피폐한 주민생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을 반대하는 혁명 1세대를 몰아내는 계기로 삼을 지도 모른다. 김일성 사후 북한사회를 정확하게 전망하기 위해서는 김일성보다 훨씬 인간적인 존재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된 김정일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동영준씨(28)는 지난 89년6월 폴란드 그다니스크종합대학에서 유학중 귀순,지난 92년 결혼해 아들을 두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 기 자 입 력 가제목:내가 본 김정일 기자명:김정열 부서명:문화부 김정일은 과연 어떤 성품의 인물일까.그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 본 문화·예술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78년 홍콩에서 납치된 뒤 86년 북한을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이 거의 유일하다.이들 부부가 지켜본 김정일은 이렇다. 1백65㎝의 키에 85㎏으로 비만한 편이며 작은 키를 의식해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머리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다.김은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할 때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하구래」 「…라요」라며 평안도 어미를 많이 붙인다.또 술과 담배,마작·블랙잭을 좋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연극·영화·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당 선전선동부장과 예술분야 전반을 관장하면서 능력을 발휘,아버지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특히 김정일이 주도한 가극 「피바다」는 김일성도 감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 대해서는 광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영화예술론」이라는 초보적인 영화이론서를 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영화문헌고의 필름을 가져다 감상하기도 한다. 영화문헌고는 그의 광적인 관심 덕분에 1만5천여편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등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도 상당히 알고 있다.패티김의 「이별」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연회석 상에서 흥이나면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기도 해 음악 전반에 꽤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되자 『신선생,저건 다 가짜야,거짓으로 하는 소리요』라고 말해 현실을 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또 자신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간부나 원로급 간부,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의 생일이나 환갑에는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그럴듯하게 차려주는 자상한 면도 있다.
  • 「과대망상증」 부자가 닮은꼴/김일성­김정일 인물비교

    ◎형세 판단력 뛰어난 카리스마형/김일성/행동 거칠고 충동적… 방약무인형/김정일 분단 반세기에 걸쳐 북한의 절대권력자로 군림한 김일성과 권좌를 대물림한 김정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치스타일은 물론 취향이나 생활 습관 등에 이르기까지 부자의 성향이나 스타일이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김일성은 훤칠한 키,호남형에다 듬직한 체구에서 풍기는 외모로 주위사람들를 압도한다.오랜 빨치산 생활을 통해 습성화된 동물적 정치감각과 주도면밀한 성격을 바탕으로 권모술수와 조직장악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즉 「간특할」정도로 형세판단에 탁월하며 이 판단을 기초로 『상대가 약할때 공격하고』『상대가 강할때는 과감히 후퇴하며』『후퇴시에는 적절한 상대의 약점을 잡아 협상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김일성의 이같은 빨치산식 전술은 「68년의 푸에블로호 납치사건」「7·4남북공동성명」에서도 적절하게 구사됐다. 굳이 두 부자의 공통점을 찾자면 과대망상증 정도라고 할 수 있다.거대한 카드섹션쇼의 김일성모습,특권층만의 차량통행이 허용된 장대한 개선문,김부자의 영광과 안락을 위해 전국에서 뽑혀온 「여성접대원」들이 고급벤츠 승용차 앞에서 머리 숙여 절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공통분모가 읽혀진다.또 원래 금박을 입혔다가 등소평의 핀잔을 듣고 금박을 벗겼다는 거대한 김일성동상,외국인 방문자의 눈을 속이기 위한 급조 통행인,형식적인 교회,전시용백화점등도 이들 부자의 과대망상증을 뒷받침해주는 한 단면이다. 김일성은 늘 미소를 짓고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말투로 포옹하는 등 이미지 관리에도 능하다.「친애하는 위대한 수령」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교묘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와 달리 카리스마도 없으며 행동이 거칠고 충동적이다.85㎏의 비만 때문에 몸가짐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1백65㎝의 작은 키에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기 위해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시력은 극히 나빠 0.1∼0.2의 근시. 김정일은 주말마다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위스키와 코냑을 즐겨 마시면서 경음악밴드에 맞춰 춤을 추고 한국의 히트대중가요를 부르기도 한다.그의 애창곡은 「하숙생」「이별」 「찔레꽃」등이며 요즘은 「사랑의 미로」를 즐겨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또 영화보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화가 나면 총을 꺼내들고 상대방에게 겨누거나 재떨이를 던지는 괴벽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주민들에게는 겸손한 체하나 측근에 대해서는 오만하다.평소의 말투는 아주 거칠고 방약무인이다.측근중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에게만 경어를 쓸 뿐이다.각종보고를 받을 때 기분이 좋은 경우는 1만달러 정도를 줄 때도 있는데 절대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고집이 세다.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때문에 시행착오나 부작용이 많아 북한주민들은 그의 성격을 난폭하다고 혹평한다. 「베이비 김」은 소년시절 생모의 사망(7살)과 부친 김일성의 재혼(11살)을 계기로 성격이 비뚤어지고 난폭해졌다. 윗사람들의 얘기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어 한글도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대신 어릴때부터 일찍 섹스에 눈을 떠 중·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당해 임신한 교사가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성장한 이후에도 그의 여자 사냥벽은 계속되고 있다.자신의 비밀,특히 정사에 관한 일을 조금이라도 외부에 누설하거나 방탕한 생활에 충고를 하는 자가 있으면 아무리 측근이라도 총살에 처하는 비정한 면이 있다. 그는 67년9월 결혼했으나 딸 하나를 둔뒤 70년에 이혼했다.첫 부인이 보통교육부의 전부부장(우리의 차관)김일천이라는 추측도 있다.72년 청진시 공산대학 부학장 김용준의 둘째딸 김애숙과 재혼,아들 하나를 두어 자식이 두명이다.소련여성 알라와의 사이에 주라라는 아들이 하나있다. 외제차 수집광에 스피드광인 그는 벤츠스포츠카등 독일·일본제의 고급승용차 30대를 가지고 있다.
  • 예술분야 상당한 조예… 영화는 “광적”/신상옥감독이 본 김정일

    ◎술·담배·도박 즐기고 승부근성 강해 김정일은 과연 어떤 성품의 인물일까.그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 본 문화·예술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78년 홍콩에서 납치된 뒤 86년 북한을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이 거의 유일하다.이들 부부가 지켜본 김정일은 이렇다. 1백65㎝의 키에 85㎏으로 비만한 편이며 작은 키를 의식해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머리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다.김은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할 때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하구래」 「…라요」라며 평안도 어미를 많이 붙인다.또 술과 담배,마작·블랙잭을 좋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연극·영화·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당 선전선동부장과 예술분야 전반을 관장하면서 능력을 발휘,아버지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특히 김정일이 주도한 가극 「피바다」는 김일성도 감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 대해서는 광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영화예술론」이라는 초보적인 영화이론서를 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영화문헌고의 필름을 가져다 감상하기도 한다. 영화문헌고는 그의 광적인 관심 덕분에 1만5천여편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등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도 상당히 알고 있다.패티김의 「이별」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연회석 상에서 흥이나면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기도 해 음악 전반에 꽤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되자 『신선생,저건 다 가짜야,거짓으로 하는 소리요』라고 말해 현실을 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또 자신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간부나 원로급 간부,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의 생일이나 환갑에는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그럴듯하게 차려주는 자상한 면도 있다.
  • 이 국방의 사과/박재범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국회에서 유사시 신도시를 장애물로 활용하겠다고 말해 신도시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이병대국방장관이 7일 공식 사과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국회에서 『하루 양말을 세켤레씩 갈아신으며 열심히 뛰고 있다』며 구두를 벗어들어 「기행장관」으로 불리웠던 이장관은 이번 해프닝으로 「사과장관」이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얻게 됐다. 그러나 군관계자들은 이번 파문을 「사회가 해도 너무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일게 아니라 군이 안고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높다. 이번 답변이 군사적으로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장관의 국회답변으로는 빵점짜리라는 평가다. 전투 때 방어군이 도시의 건물에 숨어 공격군을 저지하는 모습은 전쟁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 이번 답변은 군사교리 측면에서는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쓸데없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군간부마저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을 대신해 군사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지니는 자리이다. 그런 국방장관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나 선택할 작전계획을 국회에서 평시에 불필요하게 언급해 국민의 반발을 산 것은 사려깊지못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국방장관의 이번 답변이 국회에서 예상치 못한 의원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임기응변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국회가 열리면 전간부들이 매달려 예상질문과 답변자료를 점검하고 연일 고위전략회의를 갖는다.이번 답변도 이같은 오랜 과정을 거쳐 준비돼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수많은 간부들이 작전도상연습을 하듯 답변준비를 하면서 그 답변이 사회에 미칠 충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셈이다. 군이 국민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군이 국민과 함께 호흡하기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냉정히 분석해야 할 때다.
  • 밀라노의 가죽산업(이탈리아 중소기업탐방:13)

    ◎수작업 고급가죽제품 중·저가로 수출/가방·핸드백·장갑등 다품종 생산/구두 고유디자인 1천가지 넘어/유행 알기위해 반드시 전시회… 「선생산 후판매」 방식이 주류 이탈리아 가죽 산업은 동남아의 모조품 공세를 고품질,다품종 전략으로 이겨내고 있다.가방이나 구두 등 한 가지만 특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가죽 의류,혁대,액세서리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50여년간 가죽 제품을 만들어 온 이산티사는 지난 47년 「산티 보르세」란 가방 하청 공장에서 출발,지금은 연간 매출 1백25억원을 올리는 이탈리아 10대 가죽제품 생산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지난 70년대 초까지도 자기 상표가 없었다.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수출하는 게 전부였다.그러나 품질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가죽을 말리는 작업에서 재단하고 꿰맨 뒤 포장하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이다. 지난 73년에야 「이산티」로 회사 이름을 변경,자기 상표로 첫 수출을 했다.창업주인 아마토 산티 회장의 성 「산티」에다 복수를 뜻하는 「이」를 붙여 상호와 상표로 썼다. ○73년에야 자체상표 특히 가격을 중·저가로 책정한 것이 주효해 이산티는 이 때부터 급성장을 거듭했다.아마토 회장은 가격에 알맞는 제품을 만드는 「밸류 오브 머니」의 철칙을 지킨 게 비결이라고 전했다.『일단 상품이 잘 팔리면 유명세만으로도 매출을 유지할 수 있고 품질보다 훨씬 높은 값도 받을 수 있다.그러나 소비자를 속이면 당장 큰 이득을 보지만 결국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다.생산원가에다 기업이윤(품질의 프리미엄)을 더한 값만 받으면 충분하다』 이산티는 유행의 변화를 알기 위해 반드시 전시회를 거쳐 생산 계획을 짠다.주문 생산보다 「선생산 후판매」 위주이지만 지난 2∼3년 동안의 생산량과 판매량을 감안해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재고는 쌓이지 않는다.그래서 때때로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주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생산 과정은 수작업이 원칙이다.기계는 재단하고 재봉하는 과정에만 쓴다.가죽을 다듬고 무늬를 넣는 등 품질을 결정하는 고난도 기술은 장인들이 맡고 있다. 이 곳에서 37년간 가죽의 틀을 잡고 무늬를 낸 자니 코미씨는 『20만리라(10만원) 안팎의 중·저가 제품들을 주로 만들고 있지만 품질만큼은 두배 이상의 값에 해당된다.물론 가죽의 특성이나 끝 마무리도 세계 어떤 유명 제품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여성용 핸드백과 남성용 가방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처음에는 1백% 가방만 생산했지만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자투리 가죽으로 여러가지 제품을 만들었다. ○아이디어도 기발 혁대 장갑 열쇠고리 지갑 등을 생산,가죽을 아끼면서 매출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셈이다.제품만 변화한 게 아니라 아이디어도 기발했다.양면을 사용할 수 있는 혁대,세번 접는 지갑,다용도 열쇠고리 등은 이산티가 자랑하는 작품들이다. 아마토의 큰 아들 마시모는 『한가지 상품만 특화해서는 소비자가 식상한다.다양한 메뉴를 준비,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방 업체만 제품을 다양화하는 것은 아니다.밀라노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바레제에서 남녀 구두를 생산하는 로렌조 반피사는 지난 79년 기존 업체에서 일하던 로렌조 반피 사장 등 6명의 근로자가 가내 작업장을 설치,구두 업계에 뛰어들었다. 가죽으로 만든 구두에 관한한 1인자를 다투는 전문가들이라 제품의 질은 처음부터 뛰어났다.더욱이 영국이나 일본 구두가 딱딱하고 형식적인 데 착안,반피사는 부드럽고 캐주얼한 신발을 특징으로 삼았다. ○샘플만도 3백가지 전통 장인들을 초빙,품질 향상을 꾀했으며 첨단 기계도 도입,생산성을 높였다.해마다 큰 성장을 거듭,15년만에 자본금은 2천만원에서 25억원으로 1백배 이상 늘었고 근로자도 2백명으로 불었다. 무엇보다 이 회사는 「토탈 패션」을 지향한 게 주효했다.이탈리아 가죽 업체는 남성용 또는 여성용 구두,핸드백이나 서류용 가방 등으로 특화하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반피사는 남녀 구두와 핸드백을 함께 만들었다. 반피 사장은 『한가지 상품을 특화하는 것만이 전문화는 아니다.생산 공정이 틀려도 가죽을 원료로 쓰는 제품이라면 넓은 의미의 전문화로볼 수 있다』고 말했다.제품의 전문화가 아니라 업종의 전문화를 간파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반피사는 구두,가방 뿐 아니라 가죽을 사용한 니트,자켓 등 의류와 액세서리,모자 등도 취급한다.게다가 디자인과 특징도 다양하다.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 스타일은 1천가지가 넘고 패션 캐주얼은 매년 1백가지씩 새로 만든다.이를 위해 샘플만 3백가지 이상 만들고 이탈리아,미국,영국,일본 등 세계 각국의 모든 전시회에 꼭 참여한다. 반피 사장은 『이탈리아도 새로운 전통이 필요하다.수작업에 의존,한가지 상품만 특화하는 것은 옛날 얘기이다.적절히 기계를 쓰면서 제품의 다양화를 통해 고객을 차별화하는 것만이 중소기업의 살 길』이라고 말했다.
  • 방수/워셔블/소프트/신소재 구두 잇달아 등장

    ◎기능성·개성 돋보여 신세대들에 큰 인기/방수/가죽 특수처리… 장마철들어 관심집중/워셔블/물세탁해도 변형없고 착용감도 우수/소프트/“무게 250g” 부드럽고 가벼운게 특징 기능성과 편리함을 최대한 살린 최신 소재의 구두제품들이 올 여름 대거 선보이고 있다. 테니스공 무게밖에 나가지 않는 신사화나 정전기 발생을 방지하는 구두,무좀방지를 위한 통풍화등 각종 기능성 구두들이 시판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방수처리 구두와 함께 세탁기에 넣어 물세탁까지 가능한 신소재구두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물세탁이 가능한 가죽구두와 방수및 통기성을 강화시킨 구두. 방수구두는 가죽의 가공단계에서 기름을 첨가하거나,특수처리를 해 방수기능 뿐 아니라 색깔이 은은하고 긁혀도 자연스러운 자국으로 남아 포근한 느낌을 준다는 장점때문에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물세탁이 가능한 캐주얼 구두 영에이지「워셔블 슈즈」를 이번여름 내놓은 (주)에스콰이아 제화기획실 박형구씨는『흙탕물 등으로 쉽게 더러워지거나 딱딱해져 못쓰게 되고 세탁이 어려운 가죽 캐주얼화의 단점을 보완해 내놓게 됐다』고 말하고 방학과 휴가로 수요가 급증하는 요즘 10대후반과 20대초반의 신세대를 중심으로 판매가 활발하다고 밝혔다. 소재는 미국 SALZ사로부터 직수입한 누박원피.밑창에는 착용감을 좋게하는 에어로 페서를 사용,활동성도 좋으면서 세탁이 손쉬워 더운 여름철의 산뜻함을 살려주는 구두라는 주장이다. 한편 기존의 신사 숙녀가죽 구두가 단단하고 광택이 좋았던 반면 최근 나온 「소프트 구두」는 압축 과정을 거치지 않아 부드럽고 가벼운 것이 특징.지난 91년부터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합성고무대신 폴리우레탄을 밑창으로 대는 공법까지 가미돼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업계측은 기존 구두가 4백g이었던 반면 2백50g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금강제화 기획실의 황규명씨는 『광택이 기존구두에 비해 떨어지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활동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신세대 계층에게 소프트 구두는 인기』라고 말한다.4년전 전체 매출액가운데 5%를 차지하던 것이 현재는 35%에 이를 정도라고. 이같은 구두소재의 다양화는 방수처리된 모직셔츠,구겨지지 않는 형상기억 와이셔츠등 첨단 기술로 가공된 섬유소재 의류들의 잇따른 개발과 함께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전략으로 앞으로도 계속 활기를 띨것으로 패션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 휴일에도 관계자전원 모의회담/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막바지 점검

    ◎발언순서 등 실제상황 그대로 연출/북한 사투리 동원… “고성” 오가기도 28일의 남북한 정상회담 예비접촉에서 북한측은 어떤 태도로 나올까.또 우리측의 제의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행여 예전처럼 정치선전이나 늘어놓지 않을까.궁금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측 대표들이 북한과의 회담에 직접 나서본 경험이 전혀 없는 새 얼굴들이라는 것이기도 하다.그동안 대북정책에 관여해온 전문가들이기는 하지만 회담에 당사자로 나서는 일에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그래서 이홍구부총리 정종욱청와대외교안보수석 윤여전국무총리특별보좌관등 우리 대표단은 휴일도 없이 「모의예비접촉」을 통해 실전경험을 쌓고 있다. 일요일인 26일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실시된 모의예비접촉에서는 이런 저런 가상할 수 있는 상황이 모두 연출됐다.불가피하게 입씨름을 해야 하거나 북한측이 회담장에서 퇴장하는 일까지.이번 접촉이 과거처럼 선전의 교환이나 첨예한 대립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회담이파국으로 치닫는 일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모의예비접촉에서는 김용순 안병수 백남준등 북한측 대표와 대좌한 경험이 있거나 남북대화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남북회담사무국 자문위원들이 그들의 역할을 대신했다.자문위원들은 때때로 투박한 북한사투리를 쓰면서 정상회담의 시기 장소등 의제를 놓고 우리측 대표단과 절충을 벌였다.민감한 사안이나 양쪽의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되는 부분에서는 언성까지 높이면서 분위기의 장악을 시도하기도 했다.그런 과정에서 김용순은 외교관출신으로 비교적 매너가 세련된 사람이니까 이런 식으로 대하고,논쟁의 전문가인 안병수와의 입씨름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대화를 유도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익혔다.북한측 대표의 뜻밖의 발언에 대한 대응도 연습하고 그럴 때 어떤 표정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도 받았다.주로 수석대표들의 대화가 주류를 이룰 전망이기 때문에 김용순에 초점이 모아졌다는 후문이다. 모의예비접촉에서는 환담,공개및 비공개 협의,발언순서 확정,수석대표 기조연설,구두 대화등 실제 회담상황을 그대로 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부는 27일 최종 모의예비접촉을 가질 예정이다.우리 대표단은 이밖에 지금까지 진행된 각종 회담에서 쏟아진 북한대표들의 발언들과 이번 접촉에 나오는 북한대표들이 등장하는 비디오테이프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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