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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자들 말로로 본 국제 인권 조류/세계인권선언 50주년

    ◎반인륜범 단죄는 역사적 필연/‘인권문제는 국제문제’ 인식 확산/아민·뒤발리에·멩기스투 등 전전긍긍 인권 범죄에 대한 단죄가 역사적 대세가 되고 있다.영국이 끝내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의 신병을 스페인에 넘겨주는 절차를 개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인권 시계’는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반인륜범은 언제 어디서고 처벌된다’는 판례를 남기는 인권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피노체트가 영국 상원 재판부에서 면책특권 불인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독재자들이 법정에서 죄값을 치르고 역사밖으로 퇴장당하는 것은 희귀한 경우에 속했다.많은 독재자들이 외교 관례와 집권 당시를 문제삼지 않는 국내정치 불문율의 이중 보호를 받으며 안락한 말년을 보장받았다. ○‘무조건 보호’ 관례 깨져 그러나 영국 정부는 잘못된 국제사회의 관행을 깨뜨렸다.국제사회의 결연한 동참이 확인되면서 전세계 곳곳의 독재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피노체트 판결이 중차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이디 아민,장클로드 뒤발리에,멩기스투 등 독재자 리스트 앞머리에 올라있는 인물들이 무엇보다 긴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독재자 가운데서도 악명높기로 첫손 꼽히는 우간다의 아민은 정적을 악어밥으로 던져주는 등 잔학한 수법으로 30만명을 살해한 인물.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농사일로 숨어 지내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다음 표적 1순위로 지목하고 있다. ○본국 송환될까 안절부절 74년 에티오피아 황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한 멩기스투.91년 반군에게 축출돼 짐바브웨로 피신한 뒤 권력 재탈환 음모를 꾀하다가 짐바브웨 정부의 골치덩어리로 낙인찍혔다.반인륜 범죄 죄목으로 궐석재판을 받기도 한 그는 요즘 본국으로 송환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전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는 집권기간 중 엄청난 양의 구두를 수집하고 달러를 밀반출 하는 등 부정축재를 일삼다 86년 남편 실각과 함께 하와이로 쫓겨났다.91년 국내 입국,9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며 재기를 꿈꾸기도 했지만 93년 금고 18년을 선고받고 상고절차가 진행중인 상태다. 인도네시아의 전 대통령 수하르토도 철권통치 끝에 권좌에서 쫓겨나 단죄를 기다리고 있다.콩고의 카빌라 대통령은 지난달 유럽여행에 나서면서 선발대를 앞세워 체포영장이 나와있지 않나 알아본 뒤에야 길을 나섰다는 후문이다. 반인륜을 저지른 독재자들은 비록 우여곡절 끝에 법정에 서지 않았다 해도 말로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7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이티 종신대통령으로 취임한 뒤발리에는 학정을 편 끝에 86년 축출돼 프랑스 망명길에 올랐다.한때 유명관광지에서 호화롭게 살았으나 2억달러를 탕진하곤 전화료도 내지 못하는 알거지가 됐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황제 보카사는 나라를 철권통치하며 더할 수 없는 권세를 누렸지만 집권 7년만에 권좌에서 내쫓겼다.그 아들들은 파리의 노숙자로,심지어 범죄자로 전락했다. ○인권범죄 처벌 시효 없어 지금까지 일부 독재자들은 범죄행각을 벌이고도 호의호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촌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됐다.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외교적 분쟁을 감수하면서도 인권외교를 표방하고있다. 인권수준은 한나라의 정치수준과 비례하며 사회지수로도 통용된다.특히 인권문제가 특정국가,특정지역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반인륜적 인권 파괴자는 끝내 세계의 이름으로 단죄되는 것이 시대적 조류다.인권파괴 행위자의 단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전 지구적 컨센서스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독일의 신임 라퐁텐 외무장관은 중국 당국의 불편한 심기에도 불구하고 반체제 인사들과 접촉을 지속하는 등 세계의 새로운 기류를 앞장 서서 실천하고 있다.
  • “학교폭력 근절운동 효과 못느껴” 44%(IMF 전과 후)

    대검찰청은 기회있을 때마다 ‘친절운동’과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홍보한다.검찰과 경찰의 노력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고 실제 효과도 있었다는 평가도 적지않다.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라이프 스타일 조사결과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다. ‘대검찰청과 시민단체의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기여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물음에 ‘기여했다’가 28.8%에 불과,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저 그렇다’(25.5%),‘기여하지 못했다’(44.5%)가 대부분으로 나타났다.노력에 비해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기여도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수치다. 특히 학생 및 연령이 적을수록 검찰청이나 시민단체의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평가를 낮게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검찰이나 시민단체가 벌이는 캠페인이 성인들에게는 비교적 깊이 각인돼 있으나 해당 학생들에게는 아직도 피상적인 구두선으로 들린다는 얘기다.
  • 5대 그룹 개혁 본격화­정·재계 간담 ‘합의문’ 함축

    ◎재도약 발판 ‘구조조정 大憲章’ 마련/국가신인도 제고­外資 대거유입 등 경제회생 촉진/사실상의 재벌해체 수순… 철저한 이행­감시 필요 재벌개혁의 ‘대헌장(大憲章)’이 마련됐다. 지난 1월13일 金大中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합의한 핵심 분야 설정 등 기업구조조정의 ‘5대 원칙’이 1년간의 산고(産苦) 끝에 제모습을 드러냈다.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논란과 거듭되는 재계의 반발로 개혁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던 게 사실이나 정부와 재계가 ‘대타협’을 일궈냄으로써 한국 경제는 재도약의 ‘초석(礎石)’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외신인도 제고와 외자유치의 가속화가 예상된다. 대내적으로는 주력업종으로의 재편으로 대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경제회복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재벌들은 1인 족벌체제가 와해돼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金대통령이 7일 직접 주재한 간담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합의문에 명문화한 것은 金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반영한것으로 가히 혁명적이다. 정부는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저효율’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다. 역대 정권들이 집권 초기에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외쳤으나 결과는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 당초 개혁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했었다. 그러나 건국 이래 최대 국난(國難)으로 표현되는 IMF체제로의 이행이 재벌개혁에는 날개를 달아 주는 역할을 했다. IMF는 1년 이내에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을 끝낼 것을 요구했고 새 정부는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개혁에 채찍질을 가했다. ‘위기에서의 탈출’을 위한 급박한 개혁이었기에 혼선을 빚기도 했으나 금융개혁은 9월 말을 전후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의 ‘제몸돌보기’ 때문에 신용경색이 심화돼 실물경제는 때아닌 ‘홍역’을 겪었다. 자금시장에서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자 정부는 돈줄을 죄면서 재벌에 대한 개혁의 고삐를 더욱 죄었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은 현란한 수사가 따르는 빅딜에만 매달려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룹 차원의 ‘선단(船團)식’ 경영에서 개별기업 차원의 ‘독립적’ 경영으로 전환하려는 개혁의 본질이 빅딜에 호도되기도 했다. 청와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조찬간담회 등을 통해 5대 그룹에 압박을 가했다. 부채비율 200%로의 감축에 이어 퇴출을 뜻하는 금융기관 여신중단이라는 ‘초강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내에 다른 업종간 상호 지급보증을 해소하라는 지침은 재벌개혁이 구두선(口頭禪)이 아님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빅딜도 7개 업종으로 구체화하고 5대 그룹 계열사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지정하자 결국 재계는 승복했다. 삼성전자와 대우자동차의 맞교환도 회생을 위해 추진된 그룹 차원의 자구노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7일 정·재계간담회에서 합의한 사항은 재벌개혁의 ‘초벌’일 뿐이다. 이를 시행하고 하지 않고는 주채권은행단과 5대 그룹에 달렸다. 정부가 이행 여부를 감시하겠지만 결국 주체는 재계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원화표시 국채를투자적격으로 평가하면서 국가 신용등급 조정을 유보한 것은 재벌개혁의 골격이 마련되는 12월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 서명 없는 ‘中·日 공동선언’ 파문/‘과거사’ 갈등의 불씨 내연

    ◎21세기 동반자관계 ‘삐끗’ 【도쿄 黃性淇 특파원】 도쿄(東京)에서 26일 있은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중일 공동선언’에 양국 정상의 서명이 빠져있어 파문을 낳고 있다. 일본측은 “당초부터 서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측의 미흡한 과거사 사죄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중국측은 지난 10월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정상이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일본측이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를 명기한 점을 들어 중·일 공동선언도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일본측은 그러나 72년 중·일 공동성명과 78년 우호조약 등 공식문서에 침략의 과거사를 사과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사죄 명기는 곤란하다고 거부했다. 타이완(臺灣) 문제나 경제협력 등 대부분의 외교현안에 합의해 놓았던 두나라는 장주석의 방일 하루 전인 24일에서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구두로 사죄를 표명하되 선언에는 ‘중국침략’과 ‘반성’만을 명기키로 가까스로 절충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처럼 소극적인 것은 자민당 내 보수세력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수립키로 한 이후 자민당의 보수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중·일 공동선언에 두 나라 정상의 서명이 없다고 이 선언의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언에서 합의한 일본의 3,900억엔 엔차관 공여나 중국 내륙개발에 대한 일본정부와 민간기업의 지원 등은 선언발표와 함께 효력이 발생한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불러들여 급격히 가까워지는 미국과 중국관계에 제동을 걸려고 했던 일본으로선 과거사 문제로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으로 눈알을 그려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에는 실패한 셈이다. ◎중·일 관계 일지 ▲72년 9월=중·일 공동성명 조인 ▲78년 8월=중·일 평화우호조약 조인 ▲88년 5월=오쿠노(奧野) 국토청장관 “중국에 대한 침략의 의도는 없었다”고 망언. 오쿠노 장관 사임 ▲89년 6월=톈안먼(天安門)사건으로 일본 제3차 엔차관 및 각료급 접촉 동결 ▲91년 8월=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 방중 ▲92년 4월=장쩌민(江澤民) 총서기 방일 ▲95년 8월=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전후 50년 담화발표,중국 핵실험 ▲97년 9월=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총리 방중 ▲97년 11월=리펑(李鵬) 중국총리 방일 ▲98년 4월=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부주석 방일
  • 江澤民 주석 中 국가원수론 첫 訪日/日 “침략 구두로 사죄”

    【도쿄 黃性淇 특파원】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25일 오후 일본에 도착,5박6일간의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기념해 이뤄진 장주석의 이번 국빈방문은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이다. 장수적은 이날 전용기편으로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성명을 통해 “중·일 관계의 역사적 경험을 진지하게 총괄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두 나라의 우호협력 발전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지적,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있는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장주석은 이날 저녁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베푼 비공식 만찬에 참석한 뒤 26일 오후에는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양국관계의 청사진을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대 쟁점이었던 과거사 사죄문제에 대해 오부치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사죄의 뜻을 표명하고,공동선언에는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負市) 총리가 담화문에서 표명한 ‘반성’이라는 표현을 포함시키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 비리공직자 설 자리 없다/10만원이상 돈받은 경찰관 무조건 퇴출

    ◎부패방지대책… 정부工事때 민간과 ‘反부패 협정’/지난달 중하위직 5,080명 적발 222명 파면·해임 정부는 모든 공직자가 일정액 이상의 선물이나 대접을 받을 수 없도록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 현행 ‘공직자 윤리규범’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비리 소지가 많은 세무,건축,교육,경찰 분야 등에 대해서는 공직자 윤리규범 외에 별도의 강력한 윤리지침을 만들어 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25일 金鍾泌 국무총리 주재로 세종로 청사에서 법무·국방·행정자치·교육·건설교통부장관과 국무조정실장,경찰·국세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부패방지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종합계획안을 확정,발표했다. 종합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과의 공사 입찰이나 계약 때 양측 이해당사자가 서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내용의 ‘반(反)부패협정’을 맺거나 ‘상호 신성서약’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1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경찰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퇴출시키며,사생활이 문란하거나 도박을 일삼는 경찰공무원은 집중 감찰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는 주민이 의혹 사항을 감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주민감사청구제’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건설교통부는 건축허가에서 준공까지의 전과정을 전산화해 처리과정을 공개하고,건축물 용도변경 허가절차를 폐지키로 했다. 교육부는 시민단체 등이 감사현장을 참관케 하는 ‘감사 참관인 제도’를 내년부터 시범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병무비리 해소를 위해 병사용 진단서발급 병원 지정요건을 강화하고 지정 병원수도 축소키로 했다. 또 신체검사 때 병사용 진단서 발급병원에 본인여부 및 진단내용을 조회하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및 단층촬영(CT)은 촬영병원과 진단서 발급병원이 같을 때만 참조키로 했다. 한편 정부 각 부처는 지난 10월 한달동안 중·하위직 공직자를 사정한 결과 금품수수나 직권남용,공금횡령·유용,복지부동 등으로 5,080명을 적발,222명을 파면이나 해임하고,30명은 정직,157명은 감봉·견책 조치했다고 밝혔다. 4,571명은 구두주의나 경고를 받았다. 또 이와 별도로 법무부는 검찰을 통해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인사,건축,부동산,교통,소방,세무,교육,병무,금융,납품 등 16개 중점 분야의 공직비리를 집중단속한 결과 235명을 적발,142명을 구속하고 60명을 해당부처에 징계토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 中·日 과거사 문제/오부치 구두 사죄키로

    【도쿄 연합】 중국과 일본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국빈방일을 하루 앞둔 24일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양국간 최대 쟁점인 과거사 문제와 관련,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사죄’를 표명하기로 합의했다. 그간 양국은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문제를 놓고 ‘사죄’ 표현을 공동문서에 담아줄 것을 요구한 중국과 문서화 대신 오부치 총리가 구두표명토록 하자는 일본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이견조정에 난항을 겪어왔다.
  • 5대 재벌 개혁 채찍질­연말시한 강조 의미

    ◎구조조정 안하면 제2換亂 온다/신용등급 하락 우려/부실채권ㄷ ‘눈덩이’ 5대 재벌은 정녕 ‘제2의 환란(換亂)’을 자초하고 말 것인가. 당초 연말까지로 악속한 5대 재벌 개혁이 지지부진하다.정·재계 간담회를 통해 연말까지 구조조정의 큰 틀을 짜겠다고 ‘말’로는 구조조정에 동참했을 뿐 실제 성과는 미미하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방한 기간 동안 “재벌 개혁이 더디다”고 꼬집었다.외국의 시각들도 부정적이다. 金大中 대통령이 24일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을 연말까지 끝내야 한다”고 재천명한 것도 재벌에 대한 국내·외 시각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외신인도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금융 구조조정이 성공적인 반면,5대 그룹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지는 최근 “완고한 한국의 재벌들은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조로 사업확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신용경색을 극복하기 위해 현금보유율을 높이는 등 개혁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 재벌들을 비난했다. 외국의 이같은 시각은 한국 경제의 낙관적인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미국의 무디스와 S&P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지난 해 외환위기를 부른 한 요인이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이었음을 감안하면 ‘한국 경제개혁의 성패가 5대 그룹의 구조조정에 달렸다’는 지적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국내적으로도 노동계의 반발이 우려된다.명예퇴직과 감원 등을 감내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정부와 재벌의 개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재벌 개혁이 역대 정권에서처럼 ‘구두선(口頭禪)’에 그친다고 판단되면 노동계는 자기들만 피해를 강요받고 있다고 판단,강력히 반발할 여지가 충분하다. 금융기관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나다..5대 그룹이 부채비율을 200%로 낮추는 등 재무상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들 대기업에 대한 여신은 장기적으로 부실채권이 될 소지가 높다.금융기관의 부실은 기업의 부도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이 재연되고,‘제2의 경제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 연방보안국 前·現 장교 6명 양심선언/러시아 정국 또 소용돌이

    ◎“前 국장때 고위관료 등 제거 명령” 폭로/베레조프스키 등 거물 다수가 암살대상/하원 안보위 “묻혀진 과거사에 메스” 러시아 정국이 정보기관 소속 요원들의 양심선언으로 또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양심선언은 연방보안국(FSB)의 범죄단체 수사국 소속 알렉산드르 리트비녠코 중령 등 전·현직 군인 6명. 이들은 17일 기자회견을 자청,“니콜라이 코발료프 전 FSB국장 재임시절 범죄단체 수사국이 고위관료와 기업가 등을 제거하라는 구두 명령을 내렸다”고 폭로했다. 제거 대상에는 러시아 안보위원회 부서기를 엮임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현 독립국가연합(CIS)사무총장 등 거물도 여럿 포함돼 있어 파문이 더했다. 기자회견에서 리트비녠코 중령은 “베레조프스키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지난해 12월말 알렉산드르 카므슈네코프 FBS 범죄단체 수사국장으로부터 받았다”고 폭로했다. 코발료프 국장의 재임기간은 96년 6월부터 98년 7월. 올 7월말 해임됐지만 그동안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전권을 휘둘렀다는 점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있다. FSB는 옛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국내정치 및 정권안보 담당분야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기관. 지난 7월말부터는 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행정실 1차장이 신임 국장으로 취임,옐친 권력의 보루 역할을 맡고 있다. 암살대상에 올랐던 베레조프스키도 푸틴 FSB 국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FSB 일부 지도층이 러시아의 ‘민주화 개혁’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어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원(국가두마) 안보위원회도 18일 이 장교들의 양심선언을 ‘검토과제’로 채택하는 등 ‘묻혀진 과거사’에 대한 ‘메스’를 가할 태세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러시아 정보기구의 쇠락을 보여준 이번 사건은 표류하는 러시아 상황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 종합 사고력 측정에 초점/수능 영역별 출제경향

    ◎언어영역­교과서 지문중심 친숙한 명작 많아/수리탐구Ⅰ­이해·추론비해 창의성 비중 높여/수리탐구Ⅱ­다양한 사회·환경문제 해결력 요구/외국어영역­단순 안기 측정보다 생활 소재 평가 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은 언어·외국어영역이 대체로 쉬운 반면 수리탐구Ⅰ·Ⅱ영역은 까다로운 문제가 많았다. ◆언어영역 전반적인 언어생활 능력을 측정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전체 지문 10개 가운데 국정교과서내 출제비율이 60%나 됐다.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 김소월의 ‘진달래꽃’,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염상섭의 ‘삼대’ 등 고전과 현대를 막론하고 학생들에게 친숙한 고전과 현대 명작들이 출제됐다. 듣기 평가에서는 강연·방송대담·전화통화·토론·법정진술 등 일상적인 구두언어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했다. ◆수리탐구I 인문계 자연계 모두 계산문제가 각각 40%,37%로 이해·추론분야보다 비중이 높았다. 간단한 이해력을 요구하는 문항에는 2점,창의성 또는 상대적으로 상위 수준에 속하는 문항에는 3점씩 배점했으며 예년과 달리 4점짜리 고난도 문항은 출제되지 않았다. 인문·자연 공통 10번 문항은 합집합과 교집합 관계를 묻는 문제로 참신하고 독특했다. 단순한 지식을 요하는 문제는 8문항에 그쳤으며 나머지는 사고의 논리력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수리탐구Ⅱ 사회탐구분야는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들이 많이 출제됐다. 이밖에 갯벌 그린벨트, 쓰레기 매립장 등 환경관련 현안들도 포함됐다. 과학탐구에서는 과학의 기본원리를 이용해 다양한 상황의 탐구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측정했다. ◆외국어 영역 지문의 내용이 일상 생활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았다. 단순한 암기나 단편적 지식의 측정은 배제했다. ‘쓰기 능력’은 문장과 단락의 구성원칙을 간접방식으로 측정하는 문항이 출제됐다.
  • 21세기 준비하자 전문가 그룹인터뷰

    ◎지식산업에 미래 달려… 기반구축 시급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할 것인가.21세기의 핵심 과제를 정치개혁,지식산업 육성,신노사문화 창조,지역감정 해소 등으로 보고 전문가 그룹인터뷰를 통해 이들 과제의 효율적 수행방안을 알아본다. □정치개혁 ▲질문=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金令培 의원(국민회의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최근 정치권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왜 정치개혁을 이뤄야 하는지를 절실하게 알 수 있다.‘판문점 총격요청사건’,지역감정 조장 등은 국난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해도 너무 한다’는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정치운영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정치개혁을 이뤄야 한다. 지역구의원은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 선출하고 비례대표의원은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선출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입이 핵심이다.이는 현재의 지역구도 타파와 정치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당과 국회,정치자금제도 개혁도 이뤄야한다.21세기 정치선진화를 이룩하기 위해 공청회 등 여론 수렴 절차도 중요하다. ◎鄭昌和 의원(한나라당 정치개혁특위 위원장)/국회의원수 인구비례로 조정해야 국회를 연중 활동케 함으로써 민생에 접근하자는 주장이나 정당의 조직을 축소하거나 정책정당화하여 정당활동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제안,투명한 정치자금만으로 정치를 운용하여 정경유착을 방지해야 한다는 등의 원칙에는 여야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정치권 또는 국민 관심의 대상은 국회의원 정수와 국회의원의 선출방법이다.정부 여당은 현재 299명의 국회의원 수를 50명 정도 줄이자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국회의원 수는 인구비례 등 객관적 기준과 기능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선거제도와 관련,정부 여당이 주장하는 정당명부제는 우리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청산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사당(私黨)정치와 계보정치를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朴載昌 숙명여대 교수(정치학)/보통사람 정당운동 벌일 수 있어야 정치개혁이 되려면 근본적으로 정당개혁이 되어야한다.몇사람만이 정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당이 일상생활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보통사람들이 정당을 주도하도록 정당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은 스스로 정당에 참여,정치개혁에 앞장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정당을 이끌기에는 조직과 자금이 부족한게 현실이다.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대통령이 새 사람이 데리고 정치를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그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지식산업육성 ▲질문=지식산업 육성을 위해 어느 부분이 우선적으로 개발되어야 하나. ◎朴元勳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독자적·창의적 원천기술 확보를 제2의 건국은 지식기반국가 건설을 의미한다.그리고 지식기반국가 건설의 요체는 고부가가치의 지식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슬기롭게 개편하여,오늘 우리가 직면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국민총생산(GNP)의 50% 이상을 지식산업에서 얻고 있다.21세기에 유망할 것으로 기대되는 첨단기술을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는데,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정보통신·생명공학·신소재·환경·신에너지 등 지식산업과 관련된 핵심기술들이다. 지식산업 육성의 핵심과제는 과학기술력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다.특히 그간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범용기술의 개발과 활용에서 벗어나 독자적·창의적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卞在一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정보인프라 구축·규제완화 긴요 지식기반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창출되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하며 정보 접근과 이용이 누구에게나 용이해야 한다. 두번째로는 정보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정부는 현재 지식기반산업의 핵심 인프라 확충을 위해 광대역 쌍방향의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중이다. 마지막으로 지식기반산업은 민간의 자율과 창의적인 사고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정부규제를 완화하고 자유로운 경쟁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朴鍾佑 삼성전자 상무/반도체관련 정부·산학 협동 절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산업으로 반도체에 대한 정부,학계 및 기업의 공동노력이 절실하다.향후 반도체 연구 투자는 날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마이크로 프로세스,멀티미디어,정보통신 등과 같은 비메모리의 연구개발도 주력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시장상황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가지 방향의 연구투자가 필요하다.첫째는 공정기술이다.2000년이후 주류가 될 0.15㎛급 반도체 기술에 대한 연구투자를 준비해야 한다.둘째,기가급 메모리와 시스템 LSI제품의 양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300㎜ 에이퍼의 가공기술의 확보가 필수적이다.마지막으로 설계기술에 대한 고급 설계기술의 강화가 필요하다. □노사관계 ▲질문=21세기를 맞는 바람직한 신노사관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趙南弘 경총 상임부회장/법제도 철저히 준수 풍토조성을 노사관계의 불안과 대립적 성향은 지금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외자유치와 대외신인도 제고에아직도 결정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합리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의 창출은 경제위기탈출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일뿐 아니라 다가오는 21세기 미래의 지속적 경제성장을 보장받기 위한 대전제다. 지금 우리는 법과 제도를 철저히 준수하는 풍토조성이 절실하다.진정한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신노사관계 창출’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진작시킴으로써 21세기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金兌基 단국대 교수(경제학)/관료·정치 윤리 개입하면 안돼 21세기의 신노사문화는 ‘참여적 노사관계’가 필수적이다.노사문화는 일종의 가치관이다.기업은 경영윤리를,노동자는 노동윤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노사관계에 관료윤리,정치윤리가 개입하면 노사문화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21세기에 반드시 필요한 경영혁신도 노사관계의 혁신에서 비롯된다.기업은 노동자를 생산도구로 보지말고 인적자원으로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노동자도 자신이 속한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노동조합은 노동자에 대해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중앙부처는 노사관계에 대한 기획을 맡고 지자체가 이를 집행해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새 노사문화를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鄭星熙 민노총 대외협력국장/정리해고 위주 구조조정 재고를 ‘제2건국’이라는 말이 유신시대의 ‘민족중흥’,5공화국의 ‘정의사회구현’,문민정부의 ‘신한국창조’처럼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서는 안된다.재벌개혁,IMF와의 재협상을 통한 주권회복,광범위한 사회 개혁 등 실질적인 개혁프로그램이 강력하게 추진돼야 한다. 특히 정리해고 위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근로의욕을 악화시켜 생산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진정한 의미의 제2건국이 아니다.노동시간 단축 등을 포함한 고용유지에 역점을 두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지역감정해소 ▲질문=21세기를 앞두고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방안은. ◎趙永載 의원(자민련)/고향·파당까지 버릴수 있어야 지금 세계는 미래를 향해,바깥을 향해 뛰고 있는데 우리는 안에서 지역감정이라는 해묵은 유령과 싸우고 있다.소모적 지역감정으로 입은 국가적 손실이 엄청나다.이제는 새판으로 새롭게 시작하자.각계 지도층은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는다는 각오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자기를 버리는 개혁,가정과 고향,파당까지 버릴 수 있는 ‘진짜 개혁’을 이뤄야 한다. 더 이상 ‘배고픈 사람’은 있어도 ‘배아픈 사람’‘배아픈 지역’은 없도록 세심히 노력하자.모든 것이 ‘내탓’이라는 책임의식을 회복하자. ◎洪一植 공동체의식개혁 국민운동협의회 공동상임의장/위정자들 솔선 국민의식교육부터 21세기를 앞두고 지역감정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공멸만이 있을 뿐이다.지역감정은 법제도와 캠페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국민의식을 개혁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사회교육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정부와 언론이 의식개혁운동을 주도해야 한다. 위정자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말로만 지역감정 해소를 외치기보다는 실천을 해야 한다. 지난날 지역감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는 비록 과거 지역차별 피해자이지만 나는 차별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도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지역차별은 결국 본인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閔俊基 경희대 교수(정치학)/성숙된 민주화·표준어 교육 필요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숙한 민주화가 요구된다.민주화가 충실해질수록 학연·지연에 의지하는 정치보다 인재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사회가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지역 출신들을 통치자의 심복으로 자주 기용했다. 과거의 정권은 투명하고 공명정대한 사회가 되지 못했다. 민주시민교육과 의식개조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때 지역감정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표준어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누구나 표준어를 구사하기만 하면 지역갈등은 완화될 것이다.
  • “변호사 수임료 너무 많다”/소보원 설문조사

    ◎형사 1건에 507만원꼴/응답자 92% “보수 내려야” 우리나라 변호사의 사건수임 평균보수는 민사 457만원,형사 507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많은 소송의뢰인은 변호사 보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며 법률서비스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변호사에게 준 돈의 영수증을 받지 못하거나 소송 의뢰시 구두계약만 하는 경우도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최근 2년 내 민·형사 소송 때 변호사에 소송을 의뢰했던 55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한길리서치연구소를 통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응답자의 74.2%는 변호사 보수기준이 있는지조차 몰랐고,27.4%는 보수표준총액(기준금액±30%)을 초과한 보수를 변호사에게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을 합한 보수기준금액은 형사소송이 상한가 500만원이며 민사소송은 소송가액이 100만원 이하일 경우는 10%,5억원 이상일 경우는 1% 등 소송가액에 따라 다르다. 조사에 응한 의뢰인의 59.6%는 변호사 노력이나 사건 난이도에 비해 보수가 너무많다고 답했다.72.0%는 법률서비스에 불만을 느꼈으며,92.5%가 보수의 인하를 원했다. 소보원은 △착수금의 분할납입 △서면계약 및 계약서교부 의무화 △불만처리제도 활성화 △설명 및 통지서비스 강화 △법률비용보험의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통일외교통상위(國監 하이라이트)

    ◎‘장석중씨 대북 보고서’ 공방/“현정권 특사로 북과 접촉” 야 장씨 방북보고서 공개/여선 “조작 가능성 크다” 통일부도 “자료 받은적 없다” 9일 통일외교통상위의 민족통일연구원과 국제협력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총풍(銃風)사건’으로 구속된 張錫重씨의 ‘대북 밀사의혹’이 뜨거운 쟁점이 됐다.여야 의원들은 이같은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李信範 의원의 발언을 놓고 3차례나 정회를 거듭하며 ‘난타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李의원은 감사에 들어가기 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張씨가 지난 1월24일부터 2월3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비료회담의 막후협상 등 현정권의 대북특사 활동을 했다”며 張씨가 통일원에 제출했다는 8쪽짜리 ‘북한 방북보고서’를 공개했다.이어 “지난달 23일 국감에서 통일부가 제출한 張씨의 방북보고서엔 이러한 내용이 왜 빠져있었느냐”며 은폐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이날 저녁 긴급호출된 康仁德 통일부 장관은 답변을 통해 “통일부는 李의원이 제시한 문서를 접수한 적도 없고,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康장관은 이어 “이런 식의 보고는 (대북사업을 위해)자신을 과시하거나 입장을 유리하도록 (조작)할수 있기때문에 진실로 믿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李의원이 ‘張씨의 대북밀사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1쪽짜리 ‘남북 직접 대화창구에 대한 전언 보고서’.지난 2월 평양에서 安炳洙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부위원장과 張씨와의 면담시 安부위원장이 “구두메시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林東源씨에게 안부전해 주기 바라며 편지 교환하자고 전하라”는 내용이 있다는 것. 李의원은 이를 근거로 “여당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배후에 한나라당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전후관계로 보아 張錫重씨는 현정권과 관련된 사람”이라며 “오히려 여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역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국민회의 金琫鎬 의원 등은 “저런 저질의원이 어디 있느냐”면서 “면책특권을 악용한 언론플레이를 중지하라”고 맞섰다.한나라당은 金의원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사과를 요구하다 결국 의원 전원이 회의장을 퇴장해 이날 회의는 자동유회됐다.
  • 극단 신화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목욕탕 주변 사람들의 소박한 삶과 희망 불황의 연극계에서 드물게 앵콜공연되는 극단 신화의 ‘서민극시리즈 Ⅱ’로 도시 변두리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담았다.지난달 1일부터 15일까지 공연기간 내내 전회매진 기록을 세웠고 극중 이발사 만배역을 맡았던 중견연극배우 서희승이 서울국제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는 도시의 한켠으로 잠깐 눈을 돌리면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서민들의 삶을 그린,평범한 이야기.젊은층이 선호하는 현대적이고 화려한 감각과는 거리가 먼 조금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같은 줄거리가 대학로에서 젊은 관객들의 발길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낡고 누추한 뚝섬 목욕탕을 배경으로 만년 이발사 만배,개그맨이 꿈인 때밀이 상우,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권투를 하는 준호,그리고 이들에게 밥을 나르는 한밭집 식당 진숙 등….하나같이 힘든 환경에 놓여있지만 저마다 가슴속 소망을 지닌채 도전과 희망을 잃지않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세대를 초월해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출연배우들의 열의에 가득찬 연기도 소극장 연극 감상의 재미를 더 해준다.국립극단의 ‘무주별곡’ ‘파우스트’등에서 중후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서희승이 가난하지만 잔정을 잃지않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 만배로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TV에서 낯익은 김상중(준호)의 성실한 연기도 조화를 이룬다.또 아버지(전무송)의 뒤를 이을만한 연기자란 평을 듣는 신인 전현아(진숙)의 당찬 모습과 김진만(상우)의 익살도 돋보인다. 김태수 작,김영수 연출.6일∼12월6일 대학로 인간소극장.화∼목 오후 7시30분,금∼일 오후 4시30분·7시30분.(02)923­2131
  • 민주열사 열전:14/신흥정밀 사원 朴永鎭(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 외치며 분신/열악한 근무환경 맞서 사업장 조직강화 전력/과학적 노동운동에 헌신… 새로운 지평 열어 평화시장 노동자 全泰壹의 분신 자살은 ‘노동자의 인간선언’이었다. 그는 1970년 11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요구하며 근로기준법 책을 껴안고 분신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86년 3월17일 한 젊은 노동자가 또 다시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을 ‘한국의 예수’로 존경했던 27살의 朴永鎭이었다. 볼펜 생산업체인 신흥정밀에 몸담고 있던 그는 인간다운 삶에 더해 사회 주체로서의 노동자 권리를 선언한 뒤 분신,12시간만에 병원에서 숨졌다. 다음날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 ‘임금인상 요구 농성 근로자 분신자살’이란 제목의 1단 짜리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1단 짜리 조그만 기사의 가치밖에 없는 그렇게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그의 죽음 뒤에는 노동자 권리를 위한 처절한 투쟁,노동운동의 경직성,경찰의 인권과 생명 경시 풍조 등 그당시 시대상황이 복합적으로 내재돼 있었다. 박영진은 농성 전 임금투쟁을 4·5월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역량이 미미해 싸움의 결과가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의 실상보다는 공동보조의 중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지역연대차원의 모임에서 3월17일의 공동투쟁이 결정됐다. 신흥정밀에서의 다른 활동가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투쟁을 늦추어야 한다는 그는 주장을 접어야 했다. 3월17일의 공동투쟁 결정이 내려지자 그는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투쟁의 승리를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고위 관리사원 몰래 각 작업장을 돌며 싸움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동료들을 조직화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나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미리 결심하지는 않은 듯하다. 누구에게도 그런 뜻을 비치지 않았고,분신 3일전 회사 여공들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도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쫓아온 경찰 불끄는 동료 제지 노조가 없던 상황에서 3월17일 박영진 등 30여명은 지역 연대모임의 결정에 따라 임금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17일 낮 식당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다 옥상으로 쫓겨 올라갔다. 박영진은 이미 식당에서 난로 석유통을 머리에 들어부어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쫓아 올라온 구사대와 경찰에게 열을 셀 때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분신하겠다고 외쳤다. 피를 토하듯 그의 입에서 숫자가 흘러나왔다. “하나,둘,셋,넷,…” 그러나 곤봉과 각목을 든 경찰과 관리직 사원들은 이를 조롱하듯이 다가왔다. 시간이 멎은 듯한 정적에 숫자를 세는 외침마저 묻혀버린 순간,뜨거운 불길이 눈부신 햇살을 태우며 허공에 치솟았다.깜짝 놀란 동료들은 옷을 벗어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을 낚아챘다. 불에 타는 사람을 우선 구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불을 끄는 사람들을 체포한 것이다. 박영진은 시뻘건 불길속에 엎어진 채 10여분간 방치됐다. 경찰의 행위는 독재권력의 정권유지 도구로 전락했던 일그러진 자화상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영진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신문팔이,껌팔이,구두닦이 등 잡초같은 삶을 살았다. 노동운동에 눈을 뜬 것은 83년 검정고시를 위해 지역야학이던 ‘한얼야학’에 다니면서부터. ‘전환시대의 논리’‘나의 라임오렌지나무’‘노동법해설’‘미국노동운동사’등을 읽으며 점차 억눌렸던 것이 새로운 힘으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충동을 느꼈다. 특히 ‘전태일평전’은 그가 검정고시냐,노동운동이냐를 놓고 갈등하게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그는 84년 시흥에 있던 동도전자에 입사한다. 입사하는 날 쓴 일기에 ‘어머니,더많은 다른 부모와 형제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혼자만의 이기를 위해 안일하게 행동한다면 돈 많이 가진 악덕기업주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이제 내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사장의 갖가지 비열한 횡포에 항의해 회사를 나오고 만다. 조직적인 대응을 못하고 개인적 분노에 휩싸여 일을 그르쳤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3개월후 구로공단의 동일제강에 입사한다. 여기서 동기회 및 친목회,독서회 등을 조직해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구청의 노조설립 신고서 접수 거부와 회사의 어용노조 기습 설립 등으로 또 한번 실패를 맛본다. ○하루 두세시간 자며 동료 설득 박영진이 85년 9월 들어간 신흥정밀은 근무환경이 열악했던 구로공단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기본 근무시간을 9시간으로 정해 1시간을 공짜로 부려먹고 있었고,월급은 하루 평균 3,080원으로 월 10만원을 넘지 않았다. 월차수당, 특근·잔업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종업원들에게 하루 3시간 이상의 잔업을 강요했다. 그는 하루 두세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서 조직강화에 전력했다. 동료에 대한 애정과 의리는 보증수표였으며,이를 바탕으로 단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조직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치 않은 노동투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소수의 주장을 존중하는 노동운동의 유연성만 있었어도,기업주가 작은 협상의 자세만 보였어도,정권이 생명 존중의 정신을 조금만 가졌어도,치열한 삶을 살아온 한 노동운동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없지않았을까. 이봉우 전 구로노동연구소 소장은 “자기 견해와 다른 다수의 결정을 위해 목숨을 던진 조직적이고 의식적이었던 참노동자”라고 박영진을 평가했다. 또 “과학적 노동운동의 새벽을 열었던 첫 닭”이라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약력 ▲1960년 충남 부여에서 박창호·이미선씨의 3남2녀중 장남으로 출생 ▲76년 서울 배문중 3년 중퇴 ▲79년 방위병 입대 ▲83년 한얼야학 입학 ▲84년 동일제강 입사 ▲85년 신흥정밀 입사 ▲86년 3월17일 분신 ◎노동운동의 흐름/신군부 폭압에 정치투쟁 전환 연대투쟁 나서/현장서 유리된 서노련 쇠퇴… 노조중심 정착 신군부 세력은 80년 5월17일 계엄의 전국 확대와 함께 그때까지 힘들게 자라왔던 우리 노동운동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70년대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민주노조 관계자들은 노동운동의 대응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폭력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이들은 임금을 주 타깃으로 하던 ‘경제투쟁’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묶을 수 있는 ‘정치투쟁’에 눈을 돌렸다. 쓰라린 패배를경험했던 학생운동가들도 노동현장을 토대로 하지 않은 민주화투쟁은 ‘사상누각’이라는 인식하에 노동야학과 위장취업의 형태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구로공단은 이러한 물줄기를 그대로 타고 있었다. 70·80년대 20여만명의 노동자를 두고 한국수출의 메카 역할을 했던 구로공단에서 85년 6월 공단내 10여개 사업장이 참여한 ‘구로동맹파업’이 있었는데 노동조합 연대투쟁의 형태를 띠었지만 노동운동 학습을 받은 지역활동가들 역할이 컸고 정치투쟁의 성격이 강했다. 동맹파업은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구속이 도화선이 됐다. 구로동맹파업의 산물임을 자처하면서 ‘선도적 정치투쟁’을 주창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85년 탄생,각종 가두·점거투쟁,지역연대투쟁을 주도해 나간다. 박영진이 분신했던 3·17투쟁은 이런 지역연대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는 노동자가 단순한 경제적 만족을 넘어 사회의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주장했지만 그 바탕엔 현장노동자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현장의 조직역량이 약했던신흥정밀의 동조투쟁에 반대했던 것이다. 정치투쟁을 지나치게 중시했던 이러한 흐름은 86년 이후 쇠퇴기를 맞는다. 현장으로부터 유리된 활동가 중심의 조직활동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서노련도 86년 5·3인천사태를 고비로 해소된다. 85·86년의 이런 쓰라린 아픔을 겪고 나서 노조를 중심으로 대중적 경제투쟁을 올바로 이끌어가는 가운데 노동자의 정치의식 고양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투쟁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이 자리잡게 됐다. ◎분신현장 동료 姜文英씨/당시 정권수호대 인명 경시/죽음 몰아붙이던 모습 충격 “충격이었어요. 永鎭의 독한 희생도 그랬지만 노동자 한 사람의 목숨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몰아붙이는 정권 수호대의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분신 당시 옥상에 함께 있던 姜文英씨(37·사업)의 말이다. 박영진은 그가 건네준 유인물에 불을 붙여 분신했다. “그냥 겁만 줄테니 걱정말라”는 말에 건네주었지만 아직도 자책과 아픔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점버를 벗어 불을 끄려다 경찰에 나꿔채여 5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지독한 사람이었지요. 항상 단결을 해야한다고 했어요. 구구절절히 옳았지만 부담을 느꼈어요. 그가 조직강화를 위해 제방에 왔을때 문을 잠그고 모른척하다가 밤새워 문앞에 서 있어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그로부터 배웠다”며 “다시는 그같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姜씨. 그는 87년 박영진추모사업회 결성에 참여하다가 박영진의 여동생 현이씨(34)를 만나 결혼해 살고 있다.
  • 北에 800만평 경제특구 건설/鄭周永 회장,金正日만나 경협 합의

    ◎2일 金 대통령에 訪北결과 보고 金大中 대통령은 2일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면담내용을 보고받을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1일 “鄭명예회장측에서 金대통령에게 직접 방북결과를 보고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2일 오전 9시 청와대에서 이번 2차 방북성과를 보고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는 鄭夢憲 현대그룹회장과 李益治 현대증권 사장이,청와대에서는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이 각각 배석한다. 朴대변인은 “이날 면담에서는 민간차원의 합의내용이 아닌 정부차원 메시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1차 방북때는 현대측의 요청에도 불구,金대통령과 공식적인 면담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鄭명예회장의 보고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金대통령은 당초 鄭명예회장의 방북성과를 통일부를 통해 보고받을 예정이었으나,金正日 면담 이후 방침이 바뀐 것으로 전해지면서 ‘金正日의 구두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이 경우,金위원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향후 남북관계 및 두 차례의 잠수함 침투사건,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등과 관련된 모종의 구두메시지가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또 대북 3원칙에 입각,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북한측의 입장이 전달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康仁德 통일부장관은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대측이 북측과 합의한 금강산관광 종합개발사업을 포함해 남북경협 및 교류확대,그리고 당국자간 대화 추진 등에 대한 정부의 후속조치를 밝힐 예정이다. 한편 鄭명예회장과 鄭회장 등 방북단은 4박5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지난달 31일 오후 4시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鄭명예회장 등 4명은 귀경 하루 전인 30일 밤 10시25분 숙소인 평양 백화원초대소를 찾은 金正日 국방위원장과 45분간에 걸쳐 금강산개발사업,유전공동개발,체육교류,경제협력사업 등에 대해 환담하며 원칙적인 합의와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현대측은 오는 18일 금강선 유람선이 첫 출항하며 이에 앞서 14일 동해항에서 장전항까지 시험운항을 한다고 밝혔다. 현대는 평양 등에 매장된 석유를 북측과 공동 탐사·개발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남측에 우선 공급키로 했으며,금강산 일대를 2004년까지 6년 동안 독점적으로 개발·이용하는 대신 9억600만달러를 지급키로 하는 금강산종합개발계약을 북한과 체결했다. 이밖에 서해안에 800만평 규모의 경제특구를 10년에 걸쳐 건설하고,고선박 해체,화력발전소 건설,자동차조립공장 건설,광천수 개발 등 9개 경제개발 협력사업에 합의했다. 평양에 실내종합체육관도 건설키로 했다.
  • 구두티켓 돌리면 ‘뇌물’/주스 한상자 주면 ‘선물’

    ◎유권자에 건넨 시·구의원/법원 판결로 희·비 엇갈려 선거 때 유권자에게 구두티켓 한장을 준 구의원과 주스 한상자를 건넨 시의원의 재판형량은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두티켓을 돌린 구의원은 의원직 상실과 함께 피선거권이 박탈되지만 시의원은 의원직이 그대로 유지된다.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金大煥 부장판사)는 29일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유권자에게 구두티켓 한장을 준 구의원 당선자 조모 피고인(43)과 주스 한상자를 건넨 시의원 당선자 또다른 조모 피고인(45)에 대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사건 항소심에서 각각 벌금 200만원과 80만원을 선고했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따르면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 무효와 함께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재판부는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주스를 가져가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으로도 볼 수 있지만 구두티켓은 뇌물 성격이 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 민주열사 열전:13/前경원대생 宋光永(정직한 역사 되찾기)

    ◎‘학원안정법 음모’ 온몸 항거 분신/학생운동 씨 말리려는 악법 제청 항의 선봉에/광주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 불꽃 확산 시도 “시상에 죽은 내 아들 광영이를 왜 이리도 무서워한당가.제 몸에 불을 지르고 뛰지도 못하는디.왜들 겹겹이 둘러싸고 문상도 못오게끄럼 막는당가.광영이 몸이사 이제 싸늘하게 식었지만 그 맴이사 어디 식겠어.어림 반푼 없는 소리제.이 에미 가슴 이리 불붙는디.그 맴이 어찌 식겠어…” 85년 10월 21일 서울기독병원 영안실.아들의 주검을 앞에 놓고 한 어머니는 이렇게 울부짖고 있었다.34일 전 학교에서 분신한 경원대 법대생 宋光永의 어머니 이오순 여사(당시 59세·94년 작고)였다.경찰은 한달 이상 1,000여명의 병력을 동원,병원을 두겹 세겹으로 에워싸고 출입자를 통제했다.그러나 그토록 삼엄한 경비와 장례 소동까지 불러온 송광영의 분신은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언론에 단 한줄도 보도안돼 그는 85년 9월 17일 오후 2시30분쯤 경원대 운동장에서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했다.그날은 학생총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로 연기된 상태였다.그러나 그는 시위를 주도하며 몸에 불을 붙였고,뛰어가며 외쳤다.“학원안정법 음모 철회하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나라” 인근 성남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서울기독병원으로 옮겨져 한달 이상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졌다. 그가 온몸이 불에 휩싸인 채 몇번씩 쓰러졌다 일어서며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의 희망이었다.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광주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의 불꽃을 확산시키려 했다.광주민중항쟁은 5공화국 내내 꺼지지 않는 민주화의 불씨로 남아 있었다.군사정권의 강요된 침묵을 깨고 80년 5월 30일 서강대생 김의기가 최초로 광주민주화항쟁의 실상을 폭로하기 위해 투신했다.그의 투쟁은 노동자 김종태의 이화여대 앞 분신과 또 다른 노동자 홍기일의 전남도청 앞 분신으로 이어졌다. 대학가에서도 5공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위가 점차 가열됐다.위협을 느낀 군사독재정권은 아예 학생운동의 씨를 말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바로 ‘학원안정법’ 제정 추진이다.골자는 학생의 좌경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위학생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일정 장소에 수용시켜 6개월 이내의 선도교육을 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독재정권은 비밀리에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통과시키려 했다. 그러나 미리 그 내용이 새어나와 한 일간지에 폭로되면서 반대여론이 들끓자 일단 유보됐다.그럼에도 정권은 당시 손제석 문교부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학원소요가 계속되면 학원안정법을 연내에 제정하겠다’며 관철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송광영은 어떻게 해서든지 학원안정법 음모를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분신의 가장 큰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그는 유서인 ‘양심 선언’에서 ‘결코 총칼이나 학원안정법 따위의 악법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는 70년대 노동운동의 싹을 틔웠던 전태일열사를 가장 존경했다.전태일에 대해 “소외된 민중의 대변인,억눌린 사회에서 참된 인간상을 제시해준 인물”이라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어려서부터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온 그는 소외된 삶들의 아픔을 나눌줄 알았고 그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다.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화시장 재봉보조원 생활,신문팔이,Y셔츠 장사,돗자리 장사 등 닥치는 대로 밑바닥 삶을 이어갔다.재봉보조원 시절엔 청계피복노조에 적극 참여했다.성격이 활달하고 발이 넓었던 그는 동료들을 취직시켜 주는 일로도 바빴다. 그는 81년 형들이 학교를 마치고 자리를 잡고 나서야 대학에 가기 위해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거기서도 동료학원생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학원을 10일씩이나 빠지면서 사고차를 찾아내 보상금을 타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초상까지 치르게 해줬다.또 학원에서 탄 장학금을 집에 오는 길에 구두닦이 소년에게 줘버린 자신을 호되게 야단치는 어머니에게 “그래도 우리는 집도 있는데”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 가장 존경 송광영은 84년 27살의 나이로 경원대 법학과에 입학한다.법학을 선택한 것은 고시에 합격해 어머니에게 효도하고,법관이 돼 사회의 부정부패와 모순을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시반에 들어가면 장학금을 탈 수 있는 것도 한 이유였다.그러나 그해 가을 어용교수 퇴진시위를 주도하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빠지게 된다.‘실존주의철학연구회’ ‘경제문제연구회’ 등의 학습모임을 만들어 이끌었다.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만둘 것을 설득하며 생활비를 끊어버리자 교내에서 구두를 닦으며 학교에 다녔다. 그는 학원악법이 통과되면 분신하겠다는 말을 했으나 후배들은 믿지 않았다.그러나 전세금을 빼 학교 등록을 못하던 친구를 등록시키고 분신 열흘 전에는 집에 들러 어머니에게 “호적을 정리하러 왔다”고 말하는 등 마지막 삶을 정리해 나갔다.누나 송영숙씨(49)는 “호적을 정리하려고 한 것은 그의 분신으로 형제들이 피해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회고한다. ‘…난자당하고 처절히 유린된 순백의 종이들이 책상 위에서 울고 있다/이렇게 또 하나의 밤이 사라져가는데/여자는 이제서야 피곤한 육신을 벗어제치고 있다/아! 그날 아침은 교회 종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분신 얼마 전 써놓은 자작시 ‘에필로그 85’이다.송광영열사는 숨지는순간 그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민주의 종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연보 ▲1958:광주에서 출생 ▲74년:서울 경신중 졸업 ▲75∼76년:청계피복노조 활동 ▲82년: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84년:경원대 법학과 입학 ▲84년:실존주의철학연구회 만듦 ▲85년:경제문제연구회 만듦 ▲85년:9월17일 “학원안정법 음모 철회” 외치며 분신 ▲85년:10월21일 서울기독병원에서 운명 ◎학원안정법 파동/5共 ‘시위학생 선도교육’ 등 골자 立法 기도/야당·재야 “제도적 폭력” 강력 반발 저지시켜 광주항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점차 뜨거워지던 85년 여름,미국의 개입 의혹을 추궁하는 반미 시위가 거센 가운데 공안기관 주도로 중요한 음모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이른바 ‘학원안정법’ 제정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한 일간지가 공식 발표를 2주 앞두고 ‘학원안정법’ 음모를 폭로했다.시안 내용은 삼청교육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학원소요 등과 관련,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자들을 형사처벌 대신일정한 장소에 수용시켜 6개월 이내의 선도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골자였다.대상자 선정은 문교부에 준사법적 성격의 ‘학생선도교육위원회’를 설치해 하도록 했다. 교육을 거부하거나 교육장소를 무단 이탈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에게 극도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일부 좌경·용공학생들을 격리시켜 학원의 오염과 소요의 본거지화를 막고 선도교육을 통해 건전한 학교생활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하지만 야당과 재야단체들은 학원에 대한 제도적 폭력이라고 즉각 반발했다.대다수 국민도 우려를 나타냈다.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여야 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자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미흡하다’며 법 제정을 일단 유보했다.그러나 당시 이원홍 문공부,손제석 문교부 장관은 소요가 계속될 경우 언제라도 법안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하지만 학원안정법은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다. ◎분신대책위 김해성씨/“당국 협박속 유가족 설득/분신의 의미 찾고자 최선” 송광영 열사의 가족과 몇몇 민주인사들은 그의 입원 치료와 장례문제로 적지않은 고통을 겪었다.그가 입원하자 문익환 목사를 위원장으로 한 ‘송광영 동지 분신구명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진상규명과 모금활동을 펴나갔다.치료기간중 상태가 좀 호전되기도 했지만 경찰의 철저한 통제속에 가족 이외에는 면회가 금지됐다. 대책위 집행위원장이던 김해성 성남주민교회 전도사(38·현재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집 소장)가 얼굴에 붕대를 감고 환자 시늉을 하며 겨우 2차례 송광영을 면회했다. “가족들을 설득해 당국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지 말고 분신의 진상과 의미를 찾자고 했지요.비슷한 상황을 겪은 다른 가족들과 달리 그의 가족들은 저희와 뜻과 행동을 같이했습니다” 김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송광영이 입원했던 서울기독병원은 79년 여공들이 독재정권과 독점자본에 저항했던 YH사건의 YH무역 건물이었다.송광영이 역사적 민주투쟁의 산실이었던 그곳에 다시 경찰을 불러모아 영혼을 태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송광영이 숨지자 대책위는 장례위원회로 바뀌어 사회장을 준비했다.그러나 경찰은 장례 전날 문목사 및 이해학 목사,김소장 등 대책위 관계자들을 모두 연행한 뒤 가족들에게 간결한 장례를 강요했다.또 일방적으로 시신을 강원도 춘성에 매장하려고 했다.그러나 누나 송영숙씨(49·대한생명 근무)가 스카프로 목을 매고 영구차 바퀴 앞에 눕는 등 가족들이 격렬히 저항했다.영구차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출발할 수 있었다.그는 횃불을 밝힌 가운데 금촌기독묘소에 안장됐다.
  • 재벌 구조조정 빨리 실현돼야(사설)

    5대그룹이 정부의 3단계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안을 마련,주거래은행에 제출함으로써 이들 재벌의 구조조정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재벌은 계열사 수를 현재의 절반가량으로 줄이고 부채비율을 99년 말까지 200% 이내로 끌어내리며,외자유치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계획안을 주거래은행에 제출했다. 계열사 수를 줄인다는 것은 업종전문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으로,선단식 경영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구조조정계획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이 환란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5대그룹의 혁신적인 구조조정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5대그룹의 소그룹화를 통한 업종전문화가 계획대로 시행된다면 재벌총수 중심의 경영체제가 분권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전담하는 선진국형 기업경영체제로 전환하는 주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지식집약적 경영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재벌 총수한사람이 계속해서 경영을 좌지우지한다면 5대그룹이라도 앞으로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또 부채비율을 현재의 400% 이상에서 200% 이하로 줄이겠다는 것은 과도한 금리부담으로 인한 원가상승 요인을 제거,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향상시키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비용 저효율로 인해 국내 6∼30대 대기업 가운데 11개 대기업이 파산의 위기를 맞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5대그룹도 현재의 부채구조를 갖고는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다.동시에 외자를 적극 유치하려는 것은 취약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첨단기술 도입을 통해서 국제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이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재계가 정부의 업종전문화·부채축소·외자유치 등 3단계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댜.계열사 수를 줄인다고 하면서 유사 업종을 통합,숫자만 줄이는 형식적인 방식을 택한다거나 부채를 줄이는 방법으로 살 사람이 없는 부실기업을 매각하겠다고 나선다면 구조조정안은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5대그룹이 제출한 주력업종 수도최고 6개에 달하고 있고 이들 그룹이 주력업종으로 선정한 분야가 대부분 중복되고 있어 구조조정의 효과를 반감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외자유치의 경우도 각 그룹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그러므로 주거래은행은 5대그룹 구조조정계획안을 면밀히 검토,가능성이 희박한 부분은 과감히 수정해서 실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다시 개편토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 DJ ‘新재벌 정책’/“버리면 산다”/구체화되는 ‘재벌 해체’

    ◎철저한 경쟁력 위주로 ‘절반의 감량’ 옥죄기/계열사간 내부 수혈 ‘동반 부실’ 도미노 차단/업종별 독립 채산제… 부실 ‘주력’도 퇴출 金大中 정권의 재벌정책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주력업종 선정과 계열분리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상 ‘재벌해체’다.과거 정권처럼 실행방안이 따르지 않는 ‘1회성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다.선단(船團)식 경영의 병폐를 ‘진단’하고 효과적인 ‘처방’을 내놓고 있다.그것도 한꺼번에 우르르 쏟는게 아니라 조금씩 선보이면서 상대방을 옥죄는 ‘전방위 전략’이다. 정부는 그동안 드문드문 내놓았던 구조조정 원칙을 10월들어 수면위로 떠올렸다.연내 이(異) 업종간 상호지보 해소와 계열사의 사업부제 및 수직화기업 등을 분리·독립시키는 분사(分社)제도의 도입이 그렇다. 우량기업도 주력 업종이 아니면 내년 상반기에 정리하고 주력업종의 기업도 경쟁력이 없으면 하반기 퇴출토록 했다.이른바 ‘3단계 계열구조 개편’의 시나리오다. 재계는 겉으로 연내 상호지보 해소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내부적으론 계열사 30∼40% 정리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연초부터 시작된 정부의 재벌 옥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현대는 2세 경영인 중심으로 그룹 자체를 쪼개는 방안을,삼성 LG 대우는 지주회사 설립으로 소유구조 변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40∼60개에 달하는 그룹별 계열사는 20∼30개로 재편될 전망이다.1월23일 金大中 대통령의 “대기업은 그룹별로 주력기업 5개(업종별)만 남기고 정리해야 한다”는 발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재벌해체’는 아니라고 중언부언한다.대주주 지분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그러나 회장이 ‘왕’처럼 군림하는 기존 체제의 탈피는 사실상 ‘재벌해체’와 다를 바 없다.업종별 독립채산제는 선단식 경영을 불가능케 한다. 정부는 재계의 즉각적인 반응에 ‘정면대결’로 화답했다.맨처음 ‘빅딜’로 재계를 흔들었고 상호 지급보증을 걸림돌로 내세우며 재계가 반발하자 건전성 강화를 앞세워 부채비율 200% 미만 감축으로 방향을 틀었다.이어 경영의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회장 비서실과 기획조정실 등을 없앴다. 5대 그룹은 1차 기업퇴출시 계열사 20개 정리방안을 내놓았으나 정부의 불만에 9월 3일 7개 업종의 사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그러나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5대 그룹 사업 구조조정위원회와 외부자문그룹을 풀가동, 계열분리의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재벌해체든 주력기업의 선정이든 표현의 차이일 뿐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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