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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래도 고구려가 중국역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한국 역사는 기원전 23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5000년 역사는 곳곳에 유구한 문화를 형성했다….”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 28일자 5면에 비친 한국 역사의 일단이다. 한국 역사 교과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내용은 계속 이어진다. “한국에는 단군신화가 있다. 단군은 천자의 아들로 곰을 토템신앙으로 하는 부락 여인과의 사이에서 탄생했다. 단군은 한국 역사상 첫 왕국을 건설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역사 시기를 ‘고조선’ 시대라고 부른다….” “기원전 100년 전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정립하는 시대를 이루었고….” 이 글은 ‘중·한(中·韓) 두 나라의 조화(和諧) 발전’ 에세이 콘테스트 특등(特等)작이다. 중국 전역에서 응모한 1만 2000여명 가운데 칭화대 철학과 박사 저우궈원(周國文)의 ‘내가 본 한국 민족문화의 찬란함’(我眼中紛的韓國民族文化)이 뽑혔다. 중국청년보 국제부와 한국 주중 대사관이 공동 주관한 행사다. 저우씨가 ‘한국 1주일 방문’이 부상으로 걸린 특등상을 타기 위해 한국 역사 교과서를 참조했는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글이 중국청년보에 게재된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중국청년보는 중국 공산당 청년조직인 공청단(共靑團) 중앙위원회 기관지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핵심 정치세력인 공청단원, 인민해방군, 경찰,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된 독자층으로 이들에 대한 뉴스와 정보 제공 및 의식교육을 위해 발간된다. 전국에 배포되며 중국의 중앙 일간지 중 세번째의 구독률을 자랑한다. 심사과정에서의 한국측 영향도 미미했다.5명의 심사위원에도 한국인은 주중 대사관의 위계출 홍보공사 1명뿐이다. 나머지는 중국청년보 총편집 리어량(李而亮), 난타이대학 세계문제연구소장 팡중잉(龐中英),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위원 리수핑(李甦平), 중국청년보 국제부 주임 천웨이민(陳爲民) 등이다. 특히 35개 작품을 골라내는 1차 심사는 중국청년보가 독자적으로 마친 것이다. 물론 저우씨의 글이 전부 한국 역사교과서와 같은 내용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중국 고대 역경의 팔괘에서 나온 태극은 한국 국기의 기본 도안”이라거나 “한국의 유교이론은 중국의 전통 유교이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라며 원류(源流)로서의 중국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jj@seoul.co.kr
  • [웃으며 삽시다] 아이들에게 행복본능을 유전시키자

    [웃으며 삽시다] 아이들에게 행복본능을 유전시키자

    글 최규상 웃음전문가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전국적으로 웃음운동을 펼쳤습니다. 나라를 잃어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희망을 심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창호 선생은 어린이들은 방그레 웃고, 젊은이는 빙그레 웃고, 노인들은 벙그레 웃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특히 아이들의 웃음이야말로 너무나 중요한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웃음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겠지요. 아이들의 웃음은 한 가정을 밝게 하며 웃음의 원천이 됩니다. 그리고 웃음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의 앨 엔더슨 박사의 《웃음과 학습과의 연구》에서 살펴보면 웃음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막강한 영향을 줍니다. 웃음은 아이의 이해능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며, 주의력을 잡아줘 학습에 도움이 되며, 나아가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자극해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개발됩니다. 그리고 늘 밝게 잘 웃는 아이는 저절로 좋은 표정을 갖게 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어도 미소를 지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좋은 인상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어 친근감을 느끼게 하여 성장하면서 인간관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엄마들이 두려워하는 왕따가 될 염려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좋다는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할 줄 알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가정 내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음을 나누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몇 가지 방법을 나누어 봅시다. 첫째, 하루에 한 번만 같이 웃어보세요. 가족이 함께 웃는 웃음은 모든 행복의 기본이 됩니다. 가족 간의 웃음은 가족의 행복도를 측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루에 10~15초 동안 서로를 보면서 웃을 수 있도록 해봅시다. 그것이 쉽지 않다면 자기 전에 서로 간지럼을 태워봅시다. 필자가 아는 한 분의 아들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했는데, 실제로 자기 전에 서로 간지럼을 태우면서 30초 정도 웃었더니 매우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둘째, 아이의 유머를 기억하고 칭찬해 주세요.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유머의 기질을 타고납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이 어른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한 아주머니가 임신을 해서 남산만큼 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줌마. 그 배에 뭐가 들어 있어요?” ”응. 예쁜 아가가 들어 있단다…” 그러자 아이 왈, ”그런데 어쩌다 애를 다 먹었어요?” 순수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웃을꺼리 천국이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는 아이의 시각을 칭찬하고 감동해주면 아이의 유머 감각과 기질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유머를 잘 하고 사람들을 웃게 하는 어린이가 학교 내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아이가 유머를 할 때마다 잘 기억해 놓았다가 칭찬을 해보세요. 유머의 핵심은 바로 자신감인데, 아이가 이 자신감을 갖게 하는 데는 아이의 유머에 박수를 치면서 뒤집어지게 크게 웃어주는 것만큼 좋은 칭찬은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이에게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재미있다는 말을 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셋째, 아이와 퀴즈를 나누어 보세요. 아이와 웃음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가 어떤 일에 웃음을 잘 터트리는가를 잘 살펴보면 아이의 웃음코드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퀴즈는 아이와 함께 웃음을 나누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도둑이 훔친 돈은? 슬그머니. 그렇다면 날마다 이상한 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치과의사가 된다. 소가 웃는다를 세글자로 한다면? 우하하가 된다. 그리고 100곱하기 100곱하기 100곱하기는? 그렇다, 비꼽에 피가 난다이다. 중요한 것은 시도해 본다는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에 유행하는 이런 엽기적인 시험문제와 답안 퀴즈는 어떨까? 떠벌려 말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와 성공을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와 성공의 원천은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집니다. 웃음과 유머를 갖는다는 것은 이미 행복을 본능적으로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에게 행복본능을 유전시켜 주세요. 하하하.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세계의 싱크탱크] (9) 일본 ERINA

    [세계의 싱크탱크] (9) 일본 ERINA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 북한, 일본, 중국, 몽골,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국가의 경제와 외교 상황 등을 연구하는 일본 ERINA(Economic Research Institute for Northeast Asia)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민간기업이 출자한 독특한 싱크탱크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관련 정보는 일본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이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방(니가타현)에 있으면서도 민감한 국제정세를 다루는 브레인집단이라는 것이 연구소 아라이 히로후미 홍보실장의 설명이다. ERINA는 16억 동북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 경제권을 형성,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ERINA는 1980년대 말 중국과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이 본격화되자 동북아 교류시대를 대비해 설립이 추진됐다. 니가타현이 동북아 지역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동북아시아 장래를 연구하는 거점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 1993년 10월 출범했다. 특히 니가타현은 물론 니가타시와 아오모리·이와테·미야기·아키타·야마가타·후쿠시마·군마·나가노·도야마·이시가와현 등 지방자치단체와 니가타의 도쿄전력, 도호쿠전력, 도시바, 히다치,NEC, 호쿠에쓰은행 등 8개 민간기업들까지 공동 설립주체로 참여한 것이 이채롭다. 1993년 12월부터 2년반 동안 당시 도쿄은행 부산지점에서 근무, 한국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카가와 마사유키 부소장은 “조사연구부와 경제교류부를 두어 싱크탱크 기능 뿐 아니라 행동으로 교류를 실천하는 독특한 집단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ERINA는 실제로 조사연구 기능과 함께 한국,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등 동북아지역 국가와 교류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해마다 동북아시아경제회의를 개최하고, 각종 연구회를 니가타와 도쿄 등에서 연 8회 정도 갖는다. 지난해까지 2년간 10회에 걸쳐 동북아시아지역 문제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동북아시아 경제데이터북’,‘동북아시아경제백서 2003’,‘ERINA연례 보고서’는 물론 ‘현대한국경제’,‘지방자치체의 국제협력체’ 등 단행본도 왕성하게 출판하고 있다. 지자체나 지역기업의 요청이 있을 경우 해당지역 연구보고서를 만들어낸다. 조사연구활동도 활발하다. 설립을 지원한 지자체와 기업들이 많이 이용한다. 아오모리현은 2003년부터 5년간 아오모리항의 국제화 추진을 위한 방안을 연구 의뢰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아오모리항을 연결하는 항로 개설 가능성 등에 관한 용역이다. 미야기·아키타·야마가타현 등 관계자들도 ERINA측에 러시아, 중국 등과의 교류를 촉진하는 방안에 대해 상담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기업에서는 투자환경 파악을 위해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의 경제상황이나 정치정세 등을 연구 의뢰하기도 한다. 러시아나 북한에 관한 발군의 연구실적과 자료축적을 자랑하다 보니 정부 부처의 용역의뢰도 많다. 우선 재단법인 설립을 허가해준 경제산업성은 러시아 천연가스나 석유 등 자원에너지 문제에 대한 상담을 많이 해온다. 외무성에는 러시아 경제모델이나 에너지문제, 북한·중국 문제 등에 관한 연구성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토교통성은 동북아시아수송회로, 시베리아철도의 활용 방안 등을 연구 의뢰한다. ERINA는 기본재산 36억엔(약 291억원)을 종자돈으로 해 매년 2억 5000만∼3억엔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산확보는 기본재산 운용 수익에다 니가타현의 지원과 위탁조사 수입으로 충당한다.ERINA가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을 정기구독할 수 있는 구독회원제(연 1만엔)나 연회비 5만엔의 찬조 회원제도 활용한다. taein@seoul.co.kr ■ 남북한 주요 연구대상… 한반도와 인연 깊어 |도쿄 이춘규특파원|ERINA는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경제·정치 정보를 모아 분석·연구한 뒤 이를 출연 지방자치단체·기업·정부기관 등에 제공하는 싱크탱크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북한과 인연이 깊다. ERINA가 개최하는 동북아시아 경제회의에는 매년 2∼6명의 한국 경제·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지난해의 경우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가 패널리스트로 참석했고,2004년 회의 때는 남덕우 전 부총리가 참석했다. 초청 강연도 활발하다. 산자부 과장 시절인 1998년 동북아시아경제회의에 참석하거나 수차례 강연을 했던 주일 한국대사관 서석숭 상무관은 10월2일 ‘고이즈미 이후의 한·일 경제관계’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정부공직자나 수출입은행 관계자가 ERINA에서 객원연구활동도 한다. ERINA의 한국 연구는 ‘한국경제시스템연구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나카지마 도모요시 연구주임이 이끌고 있는 연구회에는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 등 20여명의 한국과 일본 교수들이 참여,2개월에 한 차례 정도 세미나를 개최한다. 연구결과는 책으로 출판돼 호평을 받기도 한다. 북한도 1996년 동북아시아경제회의에 과장급 인사 3명이,98년 회의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등 2명이 참석하는 등 인적교류가 활발했다.97년에는 정부 과장급 2명이 1개월간 초청돼 일본 8개 지역서 투자촉진설명회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99년부터 북·일 관계가 냉각되면서 중단됐다. 관계정상화시 경제교류를 즉각 재개하기 위해 미무라 미쓰히로 연구주임을 중심으로 기초정보수집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taein@seoul.co.kr ■ “韓·中·日 에너지공동체 만들자” |도쿄 이춘규특파원|요시다 스스무 일본 ERINA 이사장 겸 소장은 민간기업인 출신으로 1999년부터 현직을 맡고 있다. 러시아·중국 전문가이지만 한국 문제에도 정통했다. 요시다 소장은 “러시아나 몽골의 에너지 자원을 매개체로 동북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실적이 지자체에 도움이 되나. -내년 초 니가타와 러시아 자르비노, 한국 속초를 한국의 동춘훼리로 연결함으로써 지역 발전에 기여하려 한다. 실현을 기대한다. 실현되면 니가타 지역경제에 도움된다. 슬로건인 ‘싱크 앤드 두(Think&Do, 연구한 것을 행동으로 옮김)’를 적극 실천해 각 지자체에 공헌하고 있다. ▶지자체의 평가는 어떤가. -일본 전체 입장에서 연구를 잘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지역의 세세한 것도 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한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교류는. -활발하다. 한국의 교통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3개 연구소와 제휴하고 있다. 러시아의 극동경제연구소 등과도 제휴 관계다. 중국도 동북지방 3곳의 사회과학원과 제휴하고, 대학과도 제휴했다. 후단대학 등과도 교류한다. 한국 등과 국제인적교류도 적지 않다. 북한의 경우 제휴는 아니지만 국제무역촉진위원회 등과 교류가 활발하다. ▶북한과 일본 관계가 안 좋은데. -그래도 연구는 꾸준히 한다. 지난 2년간 동북아지역 각국 문제를 토론하는 세미나를 10회 열었는데, 북한을 주제로 할 때는 미국의 국회의원이 참석하기도 했다. 북한연구회도 연다. ▶동북아시아 경제권 구상은. -현재 한·일·중 관계가 안 좋아 진척이 없다. 지역공동체는 에너지 문제가 매개되지 않으면 어렵다. 유럽연합(EU)도 석탄, 철강 등을 고리로 결성됐다. 따라서 에너지를 매개로 동북아시아경제권을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와 겹치게 하면 안된다. 러시아의 석유·천연가스·석탄, 몽골의 석탄·구리 등을 매개체로 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동북아시아 중심국가를 주창한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은 좋다고 본다. 현재 한반도 문제로 동북아시아가 어렵다. 한국과 북한이 연방을 만들면 큰 장애가 없어진다고 본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문제가 해결되면 납치문제도 해결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라고 본다. 미국도 취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기회를 잡아 움직여야 한다. ▶한국이 동북아지역에서 실질적으로 기여할 방안은. -한국의 큰 문제는 에너지다. 천연가스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에너지공동체를 만들어 공동 보존하면 좋다. 한국이 중심역할을 하면 좋다. 공동비축을 통해 상호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강점과 약점은. -한국은 빨리 정보기술(IT)혁명의 흐름을 탔다. 일본보다 빨라서 집중투자가 가능했다. 삼성전자가 NEC, 히다치를 추월, 리딩컴퍼니가 되기도 하고 철강도 포스코를 중심으로 강하다. 다만 중소기업 육성 노력이 부족하다. 일본과의 무역역조도 중소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농업도 규모가 너무 작다. 일부 재벌도 해체했지만 너무 빨랐고, 지나쳤다고 본다. 일본은 재벌 해체에 50년이나 걸렸다. ▶지방에 위치한 약점은. -국토교통성이나 외무성의 위탁조사 요청이 많다. 중앙에서 발언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는 도쿄에서 세미나를 열어 보완하고 있다. 지방에 있기 때문에 연구해서 실천하기가 쉽다. taein@seoul.co.kr
  • 자전거 타는 간 큰 곡예사

    자전거 타는 간 큰 곡예사

    글 송정연 방송작가, 청소년 소설작가 내겐 지금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다. 엄마라는 일, 방송작가라는 일, 논술강사 수업 중인 수강생이라는 일. 그 외의 일들에 대해서는 다 양해를 구해 놓아서 이 세 가지 일에 집중만 해도 되는데 이 세 가지 일이라는 것이 매일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엄마라는 일. 아이 영양을 위해서, 아이 스케줄을 위해서 도와줘야 하는 때이다. 절대로 뒤로 미룰 수 없는 일. 방송일도 그렇다. 매일 쓰는 라디오작가인 데다 원고량이 많은 2시간짜리 프로그램이라 잠시 다른 데로 마음 가 있으면 빈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논술강사 수업생인 일. 이 일도 아이의 논술을 도우려고 하는 공부인데, 철학공부까지 겸해야 하고,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늘 정신을 쓰고 준비해도 따라갈까 말까한, 아주 버거운 작업이다. 유순신 씨 책에서 읽은, 서커스에서 접시 돌리는 사람이 생각난다. 어느 큰기업 경영자가, 자신이 접시 돌리는 사람 같다고 표현했다는데 내가 요즘 그렇다. 이 접시 열심히 돌리고 있으면 저 접시가 떨어지려 하고 황급히 그쪽 접시 살려놓으면 다른 접시가 핑그르르르 힘없이 떨어지려 한다. 여기 저기 허덕 허겁 돌리고 또 돌리는 곡예사 같은 느낌이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숨돌리는 일은, 영화 보는 일, 책 보는 일이다. 책과 영화는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즐거움이자 나의 폐활량을 넓히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작업들이 다 앉아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몇 달 전 심한 두통에 시달려서 병원에 갔더니, 일을 쉬든지 아니면 운동하든지 하라고 한다. 헬스 클럽에 바로 등록했는데, 결국, 한 달간 딱 하루 가고 지나갔고, ‘아, 내가 그런 동적인 운동보다는 정적인 운동이 낫겠구나’ 싶어서 요가 등록을 했는데, 딱 두 번 가고 두 달을 보내고 말았다. 세 번째 생각한 게 자전거! 일단,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 그냥 하는 것’이라는 최면을 걸기로 하고, 스스로 자전거에 대한 공상에 들어갔다. 베를린 공원을 자전거 타고 달리던 기억이 짜르르 아리도록 난다. 독일 전국의 지하철노조가 파업했을 때 다들 자전거 타고 출근하면서 노조를 이해해주던 거리 풍경을 보면서 자전거가 참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던 기억. 독일 녹색당 의원들이 장미꽃 입에 물고, 청바지 입고 자전거 타고 출근하던 상큼한 화면. 서울로 돌아와 이와이 순지의 영화 <러브레터>를 보면서 자전거 바퀴를 돌릴 동안 켜지는 불빛, 그 불빛에 비쳐보던 편지…. 자전거 타고 달리던 <러브레터>의 중학생 남자주인공과 사랑하는 소년에게 종이봉지를 씌워서 비틀거리게 만들던 자전거 두 바퀴…. 도서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날리던 하얀 커튼 자락과 함께 자전거가 늘 오버랩 되게 만들던 영화. 창의력 짱이던 그 하늘로 오르던, 영화 <ET>에서의 아이들의 자전거. 영화 첨밀밀에서 장만옥을 뒤에 태우고 가던 여명의 낡은 자전거도 마음 아렸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우체부 아저씨가 타던 아저씨의, 해변을 달리던 자전거 바퀴도 좋았다. 영화 <북경자전거>에서의 자전거 바퀴와 영화 <비욘드 사일런스(Beyond the Silence)> 에서 시각장애인인 어머니가 타는 자전거 바퀴는 슬펐다. 소설 《자전거 도둑》에서의 자전거는 은밀했고 영화 <아이리스>에서 수재에 호기심이 많은 여대생이 타던 자전거는 너무나 싱싱하고 섹시했다. 아, 자전거 타고 싶다. 그날 이후, 나는, 방송이 끝나면 여의도 공원으로 자전거 타러 간다. 그리고 방송원고가 더욱 밝아졌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노래하는 작은 거인, 지휘자 함신익

    노래하는 작은 거인, 지휘자 함신익

    글 정재옥 CREDIA 대표 앞에는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또 다른 100여 명의 합창 단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내로라 하는 협연자들이, 뒤에서는 2천여 명의 관객들이 그의 손만을 지켜보고 있다. 보통 사람의 담력이라면 잠시도 견디기 힘든 그 자리에서, 지휘자 함신익은 하늘의 별만큼 많은 음표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며, 모든 사람들을 천상으로 이끌고 있었다. 지난 1개월 간 세 차례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함신익은 국내 음악계에서는 진정 힘있는 연주가이다. 워싱톤 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 중 인류사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다. 대륙을 넘어 교류한 최초의 지구촌 시대를 연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칭기즈칸으로 대표되는 유목민들은 살기 위해 항상 이동했으며, 그들의 사고는 장소 중심이 아니라 시간과 속도 중심이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칭기즈칸의 정신을, 디지털 노마드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함신익에게서 발견한다. 23세에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시작한 그의 이력도 놀랍지만, 군 복무 후 빈손으로 찾은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만다. 길거리 오케스트라니 유니폼 입은 지휘자니 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그의 사전에 안주란 단어는 없었겠구나를 짐작케 해준다. 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방법과 강한 추진력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그의 열정이 있기에 우리는 세계적인 지휘자뿐만 아니라 영웅부재시대에 기댈 만한 리더 한 명을 얻은 셈이다. 그이기에 그가 이끄는 대전시향이 국내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평가받는 점도 별로 놀랍지 않다. 오히려 세계무대에서 더욱 빨라질 함신익의 다음 행보와 그 성취가 자못 기다려진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부부금실만 좋으면…

    부부금실만 좋으면…

    글 김철환 인제대학원대학교,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몸이 불편해서 외래를 찾는 이유가 참으로 여러 가지이지만 정확한 증상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 것은 언제나 임상의사로서 어려운 점이다. 진짜 몸에 병이 있는데 그 병을 찾지 못하고 마음이 원인이니, 스트레스 때문이니 등으로 남의 다리 긁는 소리하면 안 되지 않은가? 또한 마음의 병이 분명한데 경제적인 부담만 되는 비싼 검사만 해대고 진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 의사 장보기(doctor shopping)에 빠져들게 된다. 외래를 찾는 사람 중에서 마음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몸의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심리적인 문제에서 남녀 차이는 뚜렷하다. 남자들이 갖는 마음의 문제는 주로 사업이나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이다. 남자들의 문제는 이 스트레스를 긍정적인 방법, 즉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 휴식, 운동, 명상, 종교적 활동, 취미생활 등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술과 담배로 푼다. 이런 이유로 각종 성인병은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다. 여성들의 마음의 병은 부부 관계, 자식, 시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직장 문제의 순으로 원인이 되는 것 같다. 부부 관계가 돈독하면 다른 문제가 있어도 잘 견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녀 문제나 시부모 문제나 남편의 직장 문제 등이 해결 안 되면 부부 사이의 갈등 지수도 올라간다. 따라서 부부 관계는 부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부를 둘러싼 환경이 모두 중요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남녀의 60% 이상은 부부 공동체의 성공기준 가운데 ‘부부금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부부금실은 만족스러운 부부 성관계와 원활한 대화를 주요한 요소로 삼았다. 재테크와 내집 마련 등 경제력은 그 다음을 차지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부부들은 부부금실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할까? 나는 남성이고 환자를 보는 의사이므로 조금은 편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나는 대부분 문제가 있는 부부 관계에서 남자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관계는 상호적이므로 남자와 여자 두 사람 모두 중요하지만 무관심, 무능력, 무책임, 언어 폭력, 신체 폭력, 문제 음주 습관 등 대부분의 문제 항목에서 남과 여는 차이가 크다. 왜 이럴까? 선진국도 남자에게 문제가 많은 경향은 있지만 이렇게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럴까? 아직 선진국이 안 되어서 그럴까? 그럴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서 남녀 차별이 존재하는 우리 수준으로는 선진국은 멀지 모른다. 얼마 전 인터넷에 ‘아내에게 사랑받는 법 100가지’라는 퍼온 글이 돌아다녀서 내가 자주 들락거리는 사이트에 올렸다. ’1. 집에 돌아오면 각시부터 찾아 가볍게 포옹하라.’ ’3.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적절한 질문을 하라.’ … ’98. 장보기가 아내의 책임이지만 가끔은 장보기를 자청한다.’ ’99. 로맨틱한 날에는 가볍게 먹어라. 너무 배가 부르면 곧 식곤증이 찾아오므로….’ ’100.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라’ 등으로 마초형 한국 성인남자에게는 황당하기까지 한 내용이리라. 다음은 댓글이다. 남자: ”음. 당장 차부터 한대 사줘야되겠군 ‘31. 아내의 차를 대신 세차해 줘라.’” ”너나 잘 하세요.” 여자: ”처음에는 이렇게 남편이 해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내를 남편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만큼, 과연 나는 얼마나 남편에게 해주고 있는지….” ”남편이 좀 한가해지면 서로 원하는 것 3가지 정도 골라서 해보기 그런 거 해볼까 하는데요, …중략…결국 자기성찰로부터 풀어가는 것이 훈련되신 분들이라 좋은 기회로 삼으실 것 같습니다.” 같은 내용에 남자와 여자의 반응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이런 차이를 좁히고 그래서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빨리,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남녀평등과 상호 의사소통, 그리고 나눔과 배려의 문화가 더 커지기를 바랄 뿐이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기억을 염(殮)하다

    기억을 염(殮)하다

    글 황두진 건축가 나는 건축가지만 아주 드물게 건축이 아닌 다른 창작을 하기도 한다. 굳이 따지자면 직업적 외도겠지만 창작이란 인간성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와 친분이 있던 어떤 갤러리에서 여러 작가들을 모아 전시회를 하는데 거기에 동참할 것을 권유해왔다. 약간의 주저 끝에 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곧 나는 답을 내 자신에게서 찾기로 했다. 그 당시 갖고 있던 느낌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즉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막 치르고 난 후였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그때만큼 열심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막상 대면해 보니 죽음이란 마치 정전과도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컴퓨터 모니터가 갑자기 꺼지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돌아가신 분과 살아 있는 나 사이의 어떤 초자연적인 교감과 소통을 기대했고, 그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심지어 내 꿈에도 나타나지 않으셨다. 어떤 분들은 그것이 오히려 좋은 징조이며, 돌아가신 분이 미련 없이 이승을 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감사히 들으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죽음은 곧 끝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여전히 죽음이라는 문제와 씨름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혹은 종교에서 그 대답을 찾기도 하고, 혹은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미학적 형식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발견하거나, 혹은 심지어 그것들을 만들어내려고도 한다. 장례 절차란 이러한 노력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정교한 의미와 형식의 복합체에 다름 아니다. 장례란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일종의 포장과정이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종이와 천, 그리고 나무, 최종적으로 흙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입관 절차, 특히 시신을 염(殮)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경우, 중년의 두 남자분이 그 일을 했다. 침묵 속에, 그러나 너무나 숙달된 몸짓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마치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벌이는 군무와도 같았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애절한 순간이었지만 그 경건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전시회가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인사동에 나가 한지와 삼베를 넉넉히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내 주변의 작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싸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내 물건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쓰시던, 혹은 아버지와 관계 있던 물건들도 있었다. 아버지의 안경. 아버지가 보시던 책.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눈이 펑펑 내리던 설악산에서 찍어드린 아버지의 빛 바랜 사진. 아,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시던 소주를 담은 병에 이르기까지. 나는 때로는 한지를 접고, 때로는 한지를 구기고, 또 때로는 한지를 돌돌 말아 끈을 만들어가며 서로 다른 형상과 의미를 지닌 물건들을 제 나름의 형식을 담아 싸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아버지의 입관 과정에서 보았던 종이와 천의 순결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엮이고 접히며 만들어내는 간결하고 엄숙한 결합의 방식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싸고 있었던 것은 물건들이었지만, 내가 염하고 있었던 것은 그 물건들이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나 자신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날들에 대한 예언적 기억. 나는 이렇게 종이와 삼베로 싼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갤러리에 보냈고 그것이 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를 내 마음 속으로 보내드렸다. 황두진 ·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 미국 예일대에서 건축석사 학위를 받았다. 재미건축가 김태수 문하에서 7년 간 일했으며, 2000년 독립하여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 현재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9월의 창] 사각지대… 그 눈과 귀

    [9월의 창] 사각지대… 그 눈과 귀

    글 김홍식 대인관계연구소 <아름다운 사람> 대표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장례식을 참여했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슬프고 안타까운 장례식이 하나 있습니다. 5살 여자 아이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슬퍼하는 부모의 얼굴을 보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화장장까지 함께 가는데 어린 딸의 상주가 된 아빠는 함께 가는 사람들의 식사도 챙기고, 마지막 장례절차를 준비하느라고 슬픔을 잊은 듯 하였습니다.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음료수도 권하고…. 그러나 혼자의 시간이 되면 조용히 아내 옆으로 가서 하염없이 슬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부는 아무 말 없이 허공만을 바라보며 울지도 웃지도 않았습니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사람들에게 사고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트럭 기사가 주차해두었던 차를 빼기 위해 후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운전석에서는 안 보이는 사각지대를 둘러보아야 했는데, 그 날은 너무 피곤한 상태라 일상 점검을 생략한 체 승차한 후 바로 후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3살짜리 동생과 함께 차 뒤의 사각지대 에서 놀던 5살 언니가 커다란 뒷바퀴에 치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3살 아이의 비명에 놀란 기사가 황급히 차를 세우고 달려 내려왔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후였던 것입니다. 부모와 사고를 낸 기사는 사고 처리를 위해 천사 같은 어린 아이의 시신을 앞에 두고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해야 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동석한 경찰에게 원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실수이니 운전기사의 처벌을 최소화 시켜 달라고 부탁하였고, 운전기사는 죽을죄를 지었다고, 용서 해 달라고 하며, “한 번만 둘러보았어도, 한번만 살펴보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트럭 기사가 한 번만 둘러보았으면 그런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 중 아무라도 기사가 볼 수 없는 차의 뒤쪽을 한 번만 봐주었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어린 생명이 그렇게 허무하게 천국으로 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운전기사가 아무리 운전을 오래 했고, 잘 한다고 해도 운전석에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그 곳을 보기 위해서는 차에 오르기 전에 확인을 하든지, 주위에 있는 사람 누구에게라도 대신 봐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운전자가 볼 수 없는 곳을 대 신 봐주기 위해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잘 낫든 못 낫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한 번 보고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만 해 줄 수 있으면 됩니다. 그 한마디는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볼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이 인생의 사각지대입니다. 자신의 눈에는 안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삶의 모퉁이,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 오래된 습관, 잘 못 들여진 버릇, 가끔씩 튀어나오는 괴팍한 성질, 무의식적인 행동….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피곤하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각지대의 위험물들입니다. 그 것들이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데도 정작 본인은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 속에 자신이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는 자녀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내 인생의 사각지대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서라고 하면 서고, 가라고 하면 가고, 앞으로, 뒤로, 우측으로, 좌측으로 가라고 하면 그 대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천사를 하늘로 보내고 후회하며 통곡하는 트럭기사와 같은 일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야당은 여당의 말을 들어야 하고 여당은 야당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근로자는 경영자의 말을 들어야 하고, 경영자는 근로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말을 들어야 하고 국민은 대통령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정에 위기가 닥치고, 회사 내에서 의사소통이 안 되면 회사는 경영난을 겪게 되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사회의 질서는 깨지게 되고,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지도자들은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가족들 간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말하려 한다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는 지금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이 거대한 ‘술통’속에선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다

    이 거대한 ‘술통’속에선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다

    글 박재곤《산따라 맛따라》저자, www.sanchonmirak.com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안성 서운산의 북쪽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 31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스무 살 나이에 3·1독립선언서를 영역, 해외에 보내고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 는 논개의 높은 절개를 노래한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 선생은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을 남겼다. 명정(酩酊)의 명(酩)은 ‘술 취할 명(酩)이고, 정(酊) 또한 ‘술 취할 정(酊)’이다. 그러고 보면 ‘명정 40년’은 ‘술 취하고 술 취한 40년’이라는 뜻이겠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몇 날 몇 밤을 앉은자리에서 꼬박 새우며 술을 마셨다는 얘기부터 배꼽을 잡고 웃어야만 할 ‘술 취한’ 얘기들이 수두룩하다.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월간 《山》에 등장하는 등산만화 ‘악돌이’도 이제 40의 나이로 접어 드는데 돌이켜 챙겨보니 어느 한 달 술 안 마셨던 달이 없었다. ‘악돌이’는 만화의 주인공이지만 만화를 그리는 박영래 화백 바로 그 사람이다. 악돌이는 천하에 이름 높은 술꾼이자 산꾼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의 아내는 악처(惡妻. 岳妻)가 되었다. 홍두깨 같은 빨래방망이가 아니면 연탄집게를 하늘높이 쳐들고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 잡으려 악을 쓰는 악처다. 악돌이는 이 악처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고는 도망을 치듯 산으로 간다. 덕분에 악돌이는 세상이 알아주는 공처가가 되고 말았다. 등산 헬멧을 눈까지 가릴 정도로 깊숙이 내려쓰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계속 범하면서도 어김없이 매달 산행을 하고 어김없이 술을 마신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장마 중의 나흘 동안 경기도 안성땅 서운산 주변을 헤매다가 마지막날 우리는 ‘대한민국 술박물관’이라는 거대한 술독으로 빠져들었다. ‘술박물관’이라는 ‘술독’에서 자꾸 떠오른 인물이 바로 수주 변영로 선생과 악돌이 박영래 화백이었다. ”술도 엄연한 하나의 문화인데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던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서운산의 북쪽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 31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국호 대한민국을 술박물관 이름으로 쓰고 있다기에 첫 느낌은 ‘지나치구나’ ‘건방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지만 박물관을 둘러보고 박영국(朴泳國. 51) 관장을 만나보고서는 금방 그런 생각의 경솔했음을 뉘우쳤다. 슈퍼마켓과 술 도매점을 운영하며 술에 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박 관장은 세상에 태어났다가 스스로 무엇 한 가지라도 남겨야겠다는 신념에서 23년 전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버려진 양조장이나 고물상을 닥치는 대로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 다녔다. 고물상에서 술병 하나를 찾으면 2~3일 동안 일을 도와 주고 그 병을 얻어 왔다고 한다. 남들이 하찮게 보는 병마개 하나 얻으려 외진 시골을 찾아가느라 십만 원 정도의 교통비를 뿌린 경우는 부지기수로 꼽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에게 지금은 전국 각지의 고물상이 자료수집의 창구가 되어 있고 돈독한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고도 한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한 그가 이제사 건물을 북향으로 지어 술병의 상표가 빛에 바래지지 않도록 하는 등 독특한 형태의 2층 건물에 박물관의 문패를 걸었다.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우리 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쳇도리(깔대기)와 소주를 받는 증류기인 소줏고리, 내린소주를 보관하는 기기인 술춘 등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술빚기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두밥을 짓고 발효시켜 청주와 소주를 만들어내는 전통주 제조과정도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소주·맥주·와인·양주·전통민속주 등 다양한 술의 광고와 홍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민속주에 대한 기록이 담긴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와 조선시대 술에 대한 예법을 그린 향례합편(鄕禮合編) 같은 희귀본도 소장해 놓았다. 대형 술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옥외 전시장에서는 술꾼들의 추억과 흥미를 돋우는 장면들이 즐비하다. 전통주를 직접 빚을 수 있는 부뚜막 시설과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치는 술방에서 술빚기 시연을 보고 스스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거대한 ‘술통’속에서는 술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어디까지나 박물관일 뿐, 술을 마시는 주장(酒場)은 아니다. 전시된 34,000여 점의 자료들은 지금까지 모아 온 자료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태산보다도 더 크다며 즐거워하는 박영국 관장. 그는 전통주를 보존 계승하는 일에 계속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며 술체험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던 원대했던 꿈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수주’나 ‘악돌이’같은 당대 최고 주당들의 면면들도 자신의 술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임을 밝혔다. 문의: 031-671-3903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정의는 이로운가

    정의는 이로운가

    김성우 언론인《돌아가는 배》저자 인생은 의문이다. 세상에 정의는 있는 것인가. 정의가 있다면, 정의는 항상 불의에 이기는 것인가. 정의가 반드시 불의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그래도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의로운 것이 과연 이로운 것인가. *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크게 질문한다. ‘천도(天道)는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1) 천도가 대정의(大正義)다. 그는 절의를 지키려 수양산에 숨은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두고,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항상 선인의 편’(2)이라더니 백이·숙제는 선인이 아닌가. 그런데도 굶어죽고 말았으니.”하고 통탄한다. 그러면서 “조행이 정도를 벗어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종신토록 안락하고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으며 공명정대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데도 재화를 당하는 사람이 많으니, 천도는 과연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하고 묻는 것이다. * 플라톤도 천도를 의심한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름으로써 경쟁에서 상대를 능가하게 되고, 일단 능가하게 되면 부유하게도 되어 친구들을 잘되게 해주고 신들에 대한 봉납을 넉넉하게 바치게 되어, 결국은 이 사람이 올바른 사람보다 신의 사랑을 더 받게 된다.”(3) * 러시아 시인 푸쉬킨은 아예 천도를 부정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상에 정의는 없다.’고. 그러나 천상에도 정의는 없다.”(4) * ’세계사의 주 부분으로 판단하건대 지금까지 정의는 항상 위험에 처해 왔다.’(5)고 말하듯이, 모든 역사는 정의의 패전보(敗戰譜)다. ’정의는 장님일 뿐 아니라 절름발이’(6)이기 때문이다. * 플라톤이 ‘우리 시대에 가장 정의로운 사람’(7)이라 불렀던 소크라테스. 그 소크라테스도 “바른 사람은 행복하고 부정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평생 주장하고, 불의를 행할 것인가, 불의에 당할 것인가를 택일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다더니 결국은 불의의 독배를 마셨다. * 정의는 추방된다. 중국 초(楚)나라의 우국지사 굴원(屈原)은 참소로 쫓겨나자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추방당했다.”(8)고 노래 불렀다. ’그레고리 개혁’으로 유명한 교황 그레고리 7세는 로마에서 축출되어 객사하면서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다. 그래서 망명길에서 죽는다.”는 임종의 말을 남겼다. * 정의란 무엇인가. ’의는 사람의 길’(9)이요, ‘의는 사람의 대본’(10)이다. * ’정의 속에 모든 덕이 다 들어 있다.’(11) 정의는 덕의 일부가 아니라 덕 전체요 완전한 덕이다. * ’사상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이다.’(12) ’정의는 사회의 질서다.’(13) * ’정의의 제1차적 기능은 자기가 정의롭지 못한 것에 의해 해를 입지 않는 한 남을 해치지 않는 데 있다.’(14) 그리고 ‘정의란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서로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계약이다.’(15) * ’정의란 자기 것을 소유하고 자기 일을 하는 것’(16)이다. 그리고 ‘정의란 누구에게서도 그의 소유의 것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17) * ’의는 마땅함이다.’(18) ’정의의 목적은 각자에게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19) * 이(利) 아닌 것이 의(義)다. 이익을 찾지 않는 것이 정의다. ’무엇을 위하는 것이 있어서 하는 것은 이요.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 의다.’(20) ’이를 보면 의를 생각하라.’(21)고 했고, ‘이를 보고도 양보하는 것이 의’(22)라고 했다. * ’정의는 타인의 선(善)이다. 자기 아닌 남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23) 말하자면 정의는 ‘남에게 좋은 것이요. 자기에게 해 가 되는 것이다.’(24) 성경도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25) * 그러니 이는 불의(不義)하고 의는 불리(不利)하다. 이익은 정의에 어긋나고 정의는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다. 이롭지 못한 데도 정의로와야 하는가. * ’정의의 칼은 칼집이 없다.’(26) 정의는 힘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의는 강자의 이익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27) 라고 공언한 것은 플라톤이었다. 정의는 힘 있는 자의 힘이다. ’힘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압제적이다.’(28) * ’정의는 가장 약한 자의 권리다.’(29) 아리스토텔레스도 “약한 자는 항상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지만 강한 자는 여기에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30)고 말했다. 정의가 이렇게 약자에게 무력한 데도 정의의 힘을 믿고만 있어야 하는가. * 정의가 이롭지 못한 것이라 하여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 명종(明宗) 때의 사람 노극청(盧克淸)이 가난하여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가 잠시 외지에 나간 사이에 아내가 현덕수(玄德守)란 사람에게 은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극청이 돌아와 덕수에게 “내가 집을 살 때 은 9근 주었고 몇 해 사는 동안 더 꾸민 것도 없으니 더 받은 3근을 돌려 주겠다” 했더니, 덕수가 그대는 의를 지키는데 나만 의를 지키지 못하겠느냐”면서 받지 않았다. 극청이 다시 “내 평생에 의가 아닌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어찌 집을 헐하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겠느냐.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면 그 집 값을 돌려 줄 테니 집을 물러달라”고 했다. 덕수가 마지못해 은 3근을 받으면서 “내가 어찌 극청보다 못할 사람인가.”하고는 그 돈을 절에 기부했다.(31) * 아무리 정의가 무력한들 정의가 없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부터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생존하고 하늘의 뜻에 거슬리는 자는 멸망한다.’(32)고 했다. 정의가 무너지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다. * 선상수훈(山上垂訓)에도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33) * ’정의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사악을 타파하는 데 실패하는 일은 드물다.’(34)는 말을 우리는 믿지 않으면 안 된다. * 부귀가 불의의 과실이라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부귀한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고 세상에서 행복이라 일컫는 것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정도의 정의가 요구된다.”(35) * 송(宋)대의 학자 정이(程)는 “성인은 의로써 이를 삼는다.”(36)고 했고, 장재(張載)는 “모름지기 의리의 즐거움이 의욕보다 더하다는 것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37)고 했다. 그리고 묵자(墨子)는 결론 내린다. ”의로움이란 이로운 것이다.”(38) 정의는 불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다. *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이루어지게 하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이 모토가 모든 사람의 모토라야 한다. (1) ‘天道是耶非耶’-《사기》 백이전(伯夷傳) (2) 《노자(老子)》 79장 (3) 플라톤 《국가》Ⅱ, 362b (4) 푸쉬킨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5) 월터 휘트먼 《민주주의의 전망》 (6) 토머스 오트웨이 《보존된 베니스》 (7) 플라톤 《파이돈》 118a (8) 《사기》 굴원전(屈原傳) (9) ‘義人路也’ -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 (10) ‘義者人之大本也’-《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11)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1 (12) 존 롤즈 《정의론》 제 1장 (1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4) 키케로 《의무론》 Ⅰ·7 (1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 열전》X, 에피쿠로스 (16) 플라톤 《국가》Ⅳ, 433e (17)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탄》 Ⅱ (18) ‘義者宜也’- 《중용(中庸)》 20장 (19) 키케로 《법률에 대하여》Ⅰ (20) 《십팔사략(十八史略) 남송(南宋) 효종(孝宗) [송학자 장식(張拭)의 말] (21) 《논어(論語)》 헌문(憲問) (22) 《예기(禮記》 악기(樂記) (23)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V·1 (24) 플라톤 《국가》I, 343c (25) 《신약성서》고린도전서 10:24 (26) 조세프 드 메스트르 《페테르부르그 야화》 (27) 플라톤 《국가》I, 338c (28) 파스칼 《팡세》 §298 (29) 조세프 주베르 《단상집》 법에 대하여 §17 (30)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Ⅵ·3 (31) 《고려서절요(高麗史節要)》 권13, 명종(明宗) (32) ‘順天者存 逆天者亡’- 《맹자》 이루(離婁) 상 (33) 《신약성서》 마태복음 5:6 (34) 호라티우스 《카르미나》Ⅲ (35)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Ⅶ·15 (36) 《근사록(近思錄)》 출처류(出處類) (37) Ib. (38) ‘義利也’-《묵자》 경(經) 상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국악인] 단소음악의 최고봉 이용구 명인

    [국악인] 단소음악의 최고봉 이용구 명인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 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이용구는 대금 전공자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이고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겸임교수다. 대학시절부터 각종 국악경연대회에서 대금으로 큰 상을 휩쓸었고 대금 연주자로 활동하며 대금으로 KBS국악대상을 받기도 했다. 1967년생이니까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지만 그가 성취한 음악 업적은 대단하다. 연로한 명인 명창들이 출연하는 조선일보 국악대공연 무대에 20대의 나이로 출연하여 단소 산조를 연주하기도 했고, 역시 20대에 중요무형문화재 45호 대금 산조를 이수하기도 했다. 각종 공연에서 그는 독주자로 활동했고 초청연주회에 여러 차례 초청되기도 했다. 개인 발표회도 3회나 했다. 그런데 그의 음악생활 중 아주 중요한 것이 단소 분야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단소는 초등학교 음악 교과 과정에 필수악기로 되어 있다. 과거 리코더를 피리라는 명칭으로 배우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단소를 모두 배우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들이 단소를 배우고 단소와 관련되는 교재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정작 단소음악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의 국악과에 단소 전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소를 전공하면서 활동하는 음악가도 없었다. 단소음악은 옛날식대로 영산회상의 단소가락을 연주하거나 민요를 적당히 편곡하여 연주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용구는 단소음악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단소라는 조그마한 악기를 가지고 큰 무대에 나가 당당하게 독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5년 연강홀에서 젊은 산조 정기공연으로 단소 산조를 연주했고 1996년에는 조선일보 국악대공연에서 단소 산조를 연주했다. 이처럼 이용구는 단소로 연주하기 어렵다고 하는 단소 산조를 연주하여 단소의 악기영역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했다. 하기는 단소를 가지고 산조를 처음 연주한 사람은 전추산이었고 그 후 이생강이 그 전추산의 녹음을 듣고 단소 산조를 재현한 바 있다. 그 다음 세대에서 단소 산조를 재현한 것은 이용구이기 때문에 3세대를 맞는 단소 산조에 있어서 이용구의 위치는 중요하다. 헌데 지금 이용구의 단소음악은 정악이나 산조에 머물지 않고 북한음악이나 창작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엄청나게 넓혀가고 있다. 심지어는 서양의 현대음악까지 단소로 연주해 내고 있다. 그런 12음계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이용구는 직접 단소의 구멍을 더 뚫고 주법을 개발하여 필요한 음을 모두 만들어내고 있다. 기존의 음악가들이 단소로 기존의 음악을 연주했던 것과 달리 이용구는 창작음악과 서양음악까지 연주하도록 단소를 개량하고 주법을 개발하여 단소의 악기 기능을 확장했다. 그리고 단소음악으로 독주회를 하고 단소음악의 멋진 음반을 내기도 했다. 한국음악 역사상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음악 영역을 개척하여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단소라는 악기를 통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소음악의 최고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보았다. 최근 그가 건네준 이용구의 단소 연주곡집 <簫>를 들어보면서 나는 이용구의 단소음악이 정악과 산조는 물론이고 창작음악과 서양음악까지 수준 높게 연주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소는 이제 단순한 교육용 악기이거나 제한된 영역에만 사용되는 악기가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의 음악에 사용될 수 있는 악기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용구가 어떻게 이처럼 단소음악에 큰 업적을 쌓게 되었을까? 이용구의 음악인생은 바로 그 단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충북 단양이라는 시골에서 9남매 중 8째로 태어난 이용구는 적성초등학교와 단양중학교를 마치고 청주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청주 YMCA를 지나다가 단소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대학생 서클에서 단소 강습하는 소리였다. 그때 플라스틱 단소를 구해 단소를 불기 시작했지만 같은 해 칠석날부터 청주에 대금동아리가 생겨 대금을 배우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대금을 사려고 이생강 선생님을 찾아갔다가 이생강의 제자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대학은 추계예술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김정수 교수와 김성진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김성진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이용구의 음악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김성진 선생님은 정악대금의 인간문화재였지만 어떤 곡을 꼭 선생님이 하는 대로 연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본인도 이렇게 연주했다 저렇게 연주했다 하면서 경우에 따라 좀 다르게 연주했지만 제자에게도 “너의 가락을 만들고 너의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라”고 타이르곤 하셨다. 전통시대 훌륭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김성진 선생님이시다. 그렇게 훌륭한 선생님에게 정악을 배우고 기량이 대단한 이생강에게 민속악과 산조를 배우며 이용구는 탄탄한 실력의 음악가로 성장했다. 대학생 때 나가는 콩쿠르마다 큰 상을 휩쓸었는데 1990년 전주대사습놀이 국악경연대회에 나가 기악부 장원을 한 것은 지금까지 최연소(21세)라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1993년 국악을 전공한 유경화와 결혼했다. 유경화 역시 대단한 끼를 가진 음악가여서 요즘은 ‘상상’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거문고의 허윤정, 해금의 강은일과 함께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슬하에 딸과 아들 두 자녀를 둔 이용구·유경화는 남부러워 할만한 음악가 부부이기도 하다. 이용구는 한 인간으로 또 촉망되는 음악가로 창조적인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개량하는 단소와 그가 개발하는 단소음악은 미래 한국 단소음악의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거는 기대도 크고 그의 활동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주말탐방] 신림동 고시촌 신풍속도

    [주말탐방] 신림동 고시촌 신풍속도

    13일 밤 9시 서울 관악구 신림9동 ‘신림동 고시촌’에서 최고급으로 소문난 O피트니스 센터가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TV 9시 뉴스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동시에 러닝머신을 이용하려는 고시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1년 전쯤 문을 연 이곳은 다른 곳보다 월 이용료가 4만∼5만원 비싸지만 고시생들이 몰려 자리가 없을 정도다.‘고시생 주제에 무슨 최고급 피트니스 센터냐.’라고 의아해 한다면 고시촌의 변화에 한참 둔감한 것이다. 최근 2∼3년 새 이 지역에는 고급 피트니스 센터가 6∼7개나 들어섰다. 고시원·원룸 등 370여곳(신림9동사무소 자체 파악)에 고시생 2만여명이 몰려 있는 국내 최대 신림동 고시촌. 최근 이곳에는 화장실·에어컨 등이 갖춰진 원룸에 살면서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학원 수업이 끝난 뒤 피트니스 센터에 들러 체력단련을 잊지 않는 ‘웰빙 고시생’이 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나름대로 잔뼈가 굵은 사법시험 도전 5년차 이모(28·고려대 대학원 휴학 중)씨는 “노력·체력·재력 등 고시 합격에 필요한 3력(力) 가운데 제일은 재력”이라면서 “돈이 신림동 고시촌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고 했다. 최근 이곳은 돈 있는 고시생들에게 적합하도록 시스템이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에서 서울대 방면 큰 길(남부순환로)과 가까운 곳에는 어김없이 원룸이나 고시텔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과거 한달에 15만∼20만원 했던 고시원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원룸은 위치와 크기에 따라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지만 10평 정도라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80만원에 이르고 있다. 화장실과 에어컨 등이 갖춰진 6평 정도의 ‘미니 원룸’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0만∼50만원에서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 월세만 놓고 비교해도 고시원에 비해 3∼4배 비싼 가격이다.2004년 말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김모(24)씨도 원룸에 살면서 고급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모(29·여)씨는 “이른바 ‘헝그리 고시생’과 ‘웰빙 고시생’을 비교했을 때 누가 더 합격률이 높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도 구독하며 사회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고시 출제경향과 정보가 많은 서울신문은 고시생들의 ‘필독지’로 통한다. 14일 낮 P독서실 앞 주차장에는 아우디·벤츠 등 고급 외제차가 주차돼 있었다. 독서실을 이용하는 고시생들이 타고 온 차들이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고시생들이 늘어난 것도 과거와 다른 요즘의 풍경이다. 8년째 행정고시에 도전하고 있는 김세호(가명·34)씨는 “예전에는 고시원에서 화장실을 공동으로 썼지만, 지금은 대부분 화장실이 포함된 원룸 형태로 바뀌고 있다.”면서 “그만큼 고시생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게 증가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돈이 많은 고시생들은 변하고 있는 신림동 고시촌 시스템을 이용해 금방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최근에는 고시 합격생들에게 과목별로 개인 과외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림동 고시촌에 투입되고 있는 자본이 긍정적인 시스템 구축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300m 정도 떨어진 한 골목에는 PC방 8곳, 경마게임장 2곳, 스포츠 마사지 업소 1곳, 성인전용 PC방 2곳이 들어서 있다. 이런 시설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10년 가까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가장 유명한 ‘법문서적’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3·여)씨는 “2∼3년 전부터 급속도로 늘기 시작한 유흥업소들은 어중이떠중이로 고시촌에 몰려드는 ‘고시 낭인’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시 특구를 만든다던 공약들은 온데간데 없고 음란 퇴폐촌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전통적으로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던 신림동 고시촌은 최근 들어 경찰공무원이나 일반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법문서적에서 팔리는 책 중에서도 5% 정도는 일반 공무원 시험을 위한 것들이다. 지난해 1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신림동에 들어온 박모(24)씨는 “3년쯤 전부터 신림동 고시촌에도 경찰공무원 시험대비 학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면서 “원래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었던 ‘태학관’이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반을 만들 정도”라고 말했다. 김기용 이재훈기자 kiyong@seoul.co.kr ■ 서울대, 시험 장소제공 꺼린다?… 고대서 시험볼땐 숙소 잡느라 100만원 훌쩍 신림동 고시생들에게는 ‘작은 숙원’이 있다. 시험 장소에 서울대가 포함되는 것이다. 고시생들의 80%가 신림동에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험은 늘 한참 떨어진 고려대·연세대·중앙대·한양대에서 치른다. 신림동 고시생들이 꼽는 최악의 시험 장소는 고려대다. 신림동에서 고려대까지는 지하철로만 이동할 경우 2호선 신림역에서 시청 방면으로 19개 역을 지나 신당에서 6호선으로 갈아탄 뒤 5개 역을 더 가야 한다.1시간 정도 걸린다. 나흘간 치러지는 사법시험 2차 시험장소로 고려대가 배정된 고시생들은 고려대 주변 호텔이나 하숙집에 숙소를 잡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방값이 갑자기 오르는 경우가 많아 때로는 100만원 이상 비용이 들기도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를 맞아 2차 시험 응시자만 5000명이 넘고 있는데 대부분 신림동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불만이 대단하다. 고시생들 사이에는 ‘법무부 책임이다’‘서울대가 거부하고 있다.’ 등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임관혁 검사는 “2004년 법무부가 서울대에 시험장소 제공을 의뢰 적이 있었는데 서울대에서 ‘1000명 이상 수용할 건물이 없고 계절학기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수험생이나 서울대생 모두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서울대는 기본적으로 사법시험에 협조하고 싶은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고려대나 연세대 등은 모교 출신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김기용 김준석기자 kiyo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신림동 터줏대감이 말하는 변화 어느정도 고시 공부의 ‘메카’ 서울 관악구 신림9동에 고시촌이 생기기 시작한 건 30여년 전,1970년대 말로 추정된다. 서울대 관악캠퍼스가 완공되고 신림9동이 하숙촌으로 변하면서 고시생들의 ‘원룸 하숙방’인 고시원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관악산 자락 조용한 언덕배기인 신림9동 251∼254번지 일대에 몰려 있던 고시원과 하숙집에서 고시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외쳐댔다. 이곳에는 갓 입학한 20대 초반의 대학생도 있지만 30대 후반이나 40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시공부 경력이 15,20년이 훌쩍 넘는 이들은 가히 ‘신림동 터줏대감’이라 부를 만하다. 기혼자도 수두룩하다. 공부를 오래 하다 보니 집안이나 아내의 지원을 받는 것도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서 ‘장수 고시인’들 중에는 고시공부 경험을 바탕으로 고시 관련 책을 쓰거나 학원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고시 합격보다는 고시 공부를 평생의 업처럼 생각하고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고시촌에도 양극화 바람이 분다.90년대 말 신세대 고시생들이 몰려 있는 큰길가의 1500번지 일대에 학원과 미니원룸, 유흥시설이 즐비한 신 고시촌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노장 고시생들은 신림10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는 구 고시촌을 ‘신림9.5동’이라 부른다.13일 오후 7시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언덕배기 ‘영복슈퍼’ 앞에서 종이컵에 따른 음료수를 홀짝이며 잡담을 즐기고 있는 노장들 가운데 17년차 고시생 김영식(가명·38)씨를 만나 격세지감을 들어봤다. 김씨는 88학번 법대 출신이다. 대학 3학년이던 90년 고시준비를 시작했다. 사법연수생 300명을 뽑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학원도 거의 없었다. 대부분 책을 싸들고 혼자 공부했다. 태학관 등 그 시절 학원들은 법학이 아닌 과목을 공부할 때만 활용했다. 경제학과 문화사, 한국사 등 법학과 관계없는 시험도 치러야 했던 시절이었다. 학원들은 고시생들의 눈치를 보며 하숙집 밥먹는 시간에 따라 시간표를 짰다.“그때 고시촌엔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즐비했죠. 외무고시나 행정고시 준비생들은 잔뜩 주눅 들어 어깨도 못 폈습니다.” 95년 학사장교로 입대,98년 전역한 뒤 돌아온 고시촌은 어느새 ‘뉴타운’이 돼 있었다. 책상과 의자 하나에 몸 누일 공간이 전부이던 고시원에 머무르는 고시생보다 번듯한 원룸을 갖춰놓고 사는 신세대 고시생들이 늘었다. 각종 유명 고시준비 학원들도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섰다. 학원 재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고시생들은 학원 스케줄에 따라 생활 사이클을 정하는 학원생으로 전락했다. 식권 수십장을 도매하거나 한달치 식비를 미리 지불하고 먹는 월식을 제공하는 식당도 그즈음 급속도로 늘었다. 사법고시생 외에도 외시, 행시, 기시(기술고시), 변시(변리사시험), 입시(국회사무관시험) 등 각종 고시생들이 등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7·9급 공무원 준비생들도 하나둘씩 신림동을 찾아왔다.2004년쯤부터 경찰공무원시험 대비학원도 수요를 따라 생기기 시작했다.“예전엔 혼자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 고시생들은 사교육 세대라서 그런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공부가 안되는 걸로 생각하나 봅니다. 데모하던 친구들이 아니어서 그런지 깡다구도 없어 보이고 뭐든 부딪쳐 보는 청년정신도 부족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도 시험 이야기를 할 때는 신세대·구세대 따질 것 없이 합격 여부에 귀가 솔깃해지는 영락없는 고시생으로 돌아왔다.“지난달 2차 시험을 치렀죠. 다음달 24일이 발표일이라는 정보가 도는데 그날 제대로 발표할 지 모르겠네요.”그의 손에 들린 종이컵이 살짝 떨린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사학계에 부는 새 역사 접근법 ‘일상사’ 바로보기 이송순 박사

    사학계에 부는 새 역사 접근법 ‘일상사’ 바로보기 이송순 박사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일상사에 정작 일상은 없다? 무슨 철지난 말장난인가 싶은데, 최근 부는 일상사 열풍을 이송순 박사(근현대사·고려대 강사)는 이처럼 꼬집었다. 일상사란 최근 탈근대론과 맞물려 각광받고 있는 역사 접근법. 특정 인물이나 제도·구조의 변동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삶으로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민중·대중의 삶으로 역사보기에는 공감 이 박사도 일상사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말로는 역사를 이끄는 것은 대중·민중이라면서 실제 역사 연구는 그렇게 이뤄져오지 않았죠. 민중·대중을 도리어 이용해먹은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일상사가 나옵니다. 역사를 이끌었다는 대중·민중이 과연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일상사도 결국 개인의 삶을 구조·제도와 연결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친다. 문제는 이런 연구성과가 없다는데 있다. 한마디로 전체적인 시대상을 보지 못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만 찾는,‘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식민시기 일상사 연구를 들었다. 식민시기에 ‘착취 VS 독립운동’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근대성도 나타났다고 주장한다.“그런 연구에서 참조하는 게 당대의 신문·잡지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 조선에서 신문·잡지를 만들고, 구독해보는 사람이 어떤 계층일지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이 당시 조선사회의 표준일까요.” 당시 신문·잡지를 만들고 이를 사보던 사람들이 그 시기 ‘일상’이냐는 질문이다. 압구정동 오렌지족이 20대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1940년대 전 시기에 일제가 유언비어를 단속한 기록이 있는 데요, 여기 실린 유언비어라는 게 정말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만큼 보통사람들에게 일제통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대안 없이 기존 역사연구법 대체할지 의문 궁극적으로 일상사가 기존의 역사연구방법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일상사는 탈근대이론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근대를 비판할 뿐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탈근대론의 문제가 그대로 일상사에 적용됩니다. 기존 역사접근법을 비판한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실제 일상사 연구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는 1960년대 ‘역사작업장’운동으로 일상사 붐이 일었다. 랑케의 실증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이었기에 그 반작용으로 발생했던 것. 이 운동은 국문학·사회학 중심의 우리나라와 달리 역사학자들 중심으로 진중하게 추진됐음에도, 독일통일 같은 초대형 이슈를 만나면서 사실상 와해됐다. ●근대비판적인 연구영역 더 개발해야 이 박사는 그런 의미에서 일상사는 근대비판적인 연구영역을 더 개발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젠더, 성적 소수자, 장애인, 아동 등 소외받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연구와 근대·자본주의·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할 수 있는 연구 등이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에서 일상사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파문에서 보듯 탈근대에서 출발한 일상사 연구가 거꾸로 근대지상주의 논리에 포섭당하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조금 더 세심한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이제 일상사 연구가 대안’이라는 주장은 성급한 오류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박사의 결론이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신문편집과 마케팅 동질성 탈피를’/ 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지난 한 주 동안의 서울신문의 지면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기획기사 증가와 자치행정면의 보강이 눈에 띄었다. 기획기사는 유력한 대통령후보 인터뷰를 포함해 총 12건 게재됐다. 소방방재청과 공동으로 기획한 Safe Korea 캠페인(안전한 나라를 만납시다)을 비롯해 ‘농업, 희망을 쏜다’(8월28일), 창간 102주년 기획(국가경쟁력을 키우자), 이슬람 문명과 도시(29일),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31일), 광복 61주년 기획(한민족 문화유적지를 찾아서)(29일,9월1일),‘대통령 레임덕’,‘신경제대국 꿈꾸는 인디아 리포트’,‘접점 못찾는 직도 사격장’(30일),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9월 1일), 주말탐방(엑스트라의 세계)(2일) 등 취재 영역 또한 매우 다양했다. 48면 발행체제의 신문과 비교했을 때 지면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다양한 기획기사를 보도했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향후 기획기사의 취재영역을 몇몇 핵심영역으로 구분해 집중 취재하고, 요일별로 특정 주제를 정해서 보도하는 방식 등 다양한 편집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자치행정면(Seoul In,Metro)을 보강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하지만 서울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면(Seoul In)의 경우 구청장의 개발 청사진과 구의회 의원의 학력 및 경력 등 자칫 홍보성 기사로 분류될 만한 내용으로 채워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보도내용은 21일자 신문의 사고를 통해 천명한 ‘자치행정면의 강화로 중앙과 지방의 행정소식을 전하는 첨병이 될 것’이라는 지면개편의 목적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사회공익을 추구하여 국민통합을 이룩하고자 하는 언론사의 사회적 책임 역할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신문사가 정부 및 기타 여러 단체들과 함께 추진하는 공익캠페인에 관한 고지내용이 6일동안 1면에 네 차례나 보도됐다는 것도 지적받을 만하다. 자칫하면 자사의 대외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지면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8월31일과 9월1일 이틀에 걸쳐 대입 수시2학기 지원전략을 각각 2면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주요 대학의 2006-2007학년도 수시모집 경쟁률 상위학과’에 관한 자세한 내용(31일)이 수시2학기 입시 지원전략과 관련해 그렇게 중요한 정보였을까? 특히 도표에 소개된 대학 중 2개 대학의 경우 입학처장들의 인터뷰도 함께 게재함으로써 타 대학보다 훨씬 많은 지면을 배정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대학의 서열화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보도태도이다. 반면에 논술비중이 큰 대학과 적성검사 비중이 큰 대학으로 구분해 전형요소별 반영비율, 그리고 소재 지역별 대학의 학생선발 사정방법(일괄합산, 단계별, 혼합)과 학생부 요소별 반영비율(교과성적, 출결상황, 기타 비교과)을 도표로 소개한 1일자 기사는 적절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독신문을 중단하고 신문을 변경할 의향이 있거나, 변경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독자는 41% 정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저널리즘의 본질적 요소인 공정성, 객관성, 책임성, 비판성, 일관성에 대한 이미지는 신문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신문협회,‘신문가격과 독자’). 이러한 결과는 신문편집과 마케팅에서의 동질성을 탈피해야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영화 이전의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과 비교했을 때 정부를 비롯한 행정기관의 정책 및 움직임에 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풍부했다. 지방자치제가 자리매김한 오늘날 행정정보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며, 사회적 수요 또한 증가했다. 따라서 신문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서울신문은 행정영역에 관한 한 최고라는 자신의 강점을 적극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공동배달은 신문사·지국 둘다 윈윈”

    “공동배달은 신문사·지국 둘다 윈윈”

    신문법 논란 이래 오랜만에 ‘신문유통원’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경질사태와 맞물리면서, 또 다시 ‘원래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조직’이라는 화살이 유통원에 겨눠지고 있다. 과연 유통원은 필요없는 조직인지, 실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진호 신문유통원 경기북부센터장에게 직접 물었다. 경기북부센터는 유통원 직영센터인 의정부동부센터를 중심으로 의정부 서·남·북부 등의 지국장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안 센터장은 일간지 지국을 운영하다 한계를 느껴 센터에 도전했다. 그 때문에 지국계약을 해지당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공동배달사업은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안 센터장은 그 이유로 일단 “지국장들이 인간답게 살게 됐다.”고 했다. 지국별로 일할 때는 신문을 받아 배달시키려면 새벽 1∼2시부터 일해야 했다. 가끔 배달원이 안 나오면 직접 배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통원이 배달을 통째로 떠맡아 해결해주니, 지국장에겐 새벽일이 없어졌다. 대신 낮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부수 확장 등 영업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여기다 4∼5명씩 데리고 있었던 이런 저런 직원도 경리담당 1명으로 줄였다. 인건비뿐 아니라 사무실 유지비도 아낄 수 있었다.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는 배달원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처럼 배달원이 안정적인 직업이 될 수 있어서다. 지국별로 할 때보다 배달하는 부수가 증가하니까 수입도 늘 수 밖에 없다. 여기다 신문 외에 다른 정기간행물도 배달할 수 있다. 실제 경기북부센터는 몇종의 월간지와 주간지, 대학동창회보 같은 정기간행물배달도 맡고 있다.“요즘 우체국에서도 대량 배달에 대한 할인율을 낮추는 추세랍니다. 센터야 어차피 신문배달하는 김에 다른 것도 배달하는 거니까 가격경쟁력이 생길 수 있는거죠.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꾸준히 개발할 생각입니다. 배달원들에게 하다못해 ‘산재보험’이라도 해줘야죠.” 방송과 인터넷이 대세라는, 그래서 신문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는 시대에 공동배달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대안처럼 보인다.10개 신문사가 각각 한개씩의 지국을 내고 10대의 오토바이로 구석구석 배달하려면 100대의 오토바이가 필요하지만, 유통망을 합친 뒤 지역별로 배달하면, 배달시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10대의 오토바이만으로도 충분하다. 실제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배달은 이뤄져왔다. 한 지국이 여러 신문을 다루는 것이나, 아파트의 경우 신문별로가 아니라 동별에 따라 배달해왔다. 최소비용·최대효과라는 ‘시장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유통원이 그렇게도 못마땅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에서는 국가가 지원하는 공동배달제가 낯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안 센터장은 ‘부수에 가득 낀 거품’을 꼽았다.“사실 지금까지 전부 중국산 제품을 경품으로 주고 영업해왔잖아요. 솔직히 돈으로 산 독자들이잖아요. 그 거품이 사라질까봐 무서워하는거죠.” 또 구독자 명부가 영업기밀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곁에 있던 주재호 의정부사업소 북부센터장이 거든다.“유통원은 배달망입니다. 지국은 이름하고 주소만 알려주면 돼요. 기존의 독자를 관리하고 신규독자를 늘리는 건 지국장들의 몫입니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짜신문·경품 추방 캠페인

    정부 부처와 시민단체가 손잡고 공짜 신문(무가지)과 신문 경품을 뿌리뽑기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 신문판매시장의 거래 질서 회복을 위해 문화관광부, 소비자보호원, 한국언론재단, 신문발전위원회, 언론관련 단체, 소비자단체들과 함께 ‘과도한 신문 경품 및 공짜신문 안주고 안받기’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우선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관과 단체의 홈페이지 등 인터넷 사이트에 서명용 배너·팝업창을 개설해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다.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오프라인 서명 행사도 벌이기로 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신문 구독과 관련해 불편함을 겪은 독자의 수기를 공모해 책자를 제작하고 배포할 계획이다.또 경품과 공짜 신문을 제공하는 사업자를 신고하면 건당 최대 1000만원까지 지급하는 신고포상금 제도를 적극 홍보해 나가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2003년부터 자체적으로 강도 높은 감시 활동을 벌여 왔지만, 단속만으로는 일부 신문들의 위법 행위를 뿌리뽑는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연간 구독료의 20% 수준인 2만 8800원을 초과한 경품을 주거나 공짜 신문을 제공하는 것은 위법이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종이신문 생존전략] MP3로 듣고 휴대전화로 읽고…

    [’서울신문 102년-종이신문 생존전략] MP3로 듣고 휴대전화로 읽고…

    ■ 미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에서 종이 신문의 퇴락과 뉴 미디어의 부상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고 있다. 미 신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 610개 신문의 발행부수는 전년보다 주중에는 2.5%, 주말에는 3.1%가 줄었다. 신문 부수는 줄고있지만 신문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찾는 독자는 크게 늘었다. 올해 1·4분기에 신문사 웹사이트 방문자는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8%가 증가했다고 신문협회는 밝혔다. 미 신문협회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존 킴벌은 “웹사이트 방문자 증가로 올해 신문사의 온라인 광고 수입은 25∼30%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온라인 수입이 신문사 전체의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5%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온라인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앞으로 신문사 경영의 중요한 전략이 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언론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미래 신문의 모델은 놀랍게도 캔자스주의 로렌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발행하는 ‘로렌스 월드 저널’이라는 신문이다. 전문가들이 발행부수가 2만부에 불과한 이 신문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디어 컨버전스’를 독자들의 실생활에서 구현했기 때문이다. 로렌스 저널 월드는 신문과 인터넷, 방송(케이블TV 소유) 뿐만 아니라 전화와 MP3플레이어 등 현존하는 모든 기술과 기기를 통해 시민들에게 뉴스와 정보를 제공한다. 매일 아침 로렌스시의 남자들은 신문을 읽고, 주부들은 케이블TV 뉴스를 보며, 학생들은 아침에 로렌스 저널 월드의 신문 기사를 목소리로 서비스하는 포드캐스팅(Pod Casting)을 아이포드에 녹음해 등굣길에 듣는다. 동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주민들은 이 신문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을 놓고 다른 주민들과 채팅한다. 스포츠 팬에게는 캔자스대학의 미식축구와 농구 팀의 경기 스코어를 실시간으로 휴대전화로 전송한다. 로렌스 저널 월드의 신문과 방송, 인터넷 직원들은 모두가 하나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뉴스 보도뿐 아니라 제작 과정도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 로렌스 저널 월드의 웹사이트는 한 달에 700만 페이지 뷰(독자들이 웹사이트에서 본 화면의 총수)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신문의 모회사인 월드는 독자들이 웹사이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의 30개 지역에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핫 스폿’을 설치했다. 이 신문의 발행인인 돌프 시몬스는 “로렌스 저널 월드는 ‘작은 도시의 작은 뉴스’에 집중하는 매체”라면서 “테크놀로지의 적용도 중요하지만 콘텐츠의 질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로렌스 저널 월드의 중요한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작은 도시에서 외부의 견제나 위협이 없이 ‘독점적인’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쟁에 노출된 미국 대도시의 거대 신문사들은 속도조절을 하면서 좀더 신중하게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는 아직까지 수익의 90%는 종이신문에서 나오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온라인 쪽의 수익이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있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상반기에 웹사이트를 개편하면서 일부 콘텐츠를 유료화했다. 개편된 뉴욕타임스의 웹사이트는 종이신문과 달리 동영상과 사진 슬라이드 쇼 등 멀티미디어를 기사보다 돋보이도록 배치했다.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의 2004년 매출액은 5310만달러(약 530억원), 순이익은 1730만달러(약 170억원)였다. 최근 몇년간의 연 평균 성장률은 30∼40%나 된다. 욕타임스의 웹사이트 방문자는 하루에 무려 1800만명이나 된다. 뉴욕타임스의 하루 평균 발행부수는 110만부. 그러나 웹사이트를 유료화할 경우 대부분의 독자가 떠날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예측하고 있다. 아서 슐츠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무료에 익숙한 인터넷 독자들에게 고급 콘텐츠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육’하는가가 과제”라고 말했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 중심적인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미디어 업계의 관심거리”라면서 “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지적했다. dawn@seoul.co.kr ■ 일본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신문 발행부수는 하루평균 5400만부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인 신문대국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조간만 1007만부다. 아사히신문은 825만부, 마이니치신문이 395만부(일본신문협회 2005년판 통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요미우리·아사히신문은 연간 10만부 안팎, 다른 신문들도 수천∼수만부씩 부수가 줄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조간신문 1000만부 시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신문업계 전체가 비상이다. 일본신문협회는 모든 신문의 발행부수를 알리는 가이드북을 발행해왔으나 올해는 절판했다. 신문시장 전체 축소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일본 신문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국민은 아직도 인쇄매체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인터넷신문은 신뢰도가 떨어져 영향력이 아직 미미하다.”면서도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종이신문 독자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위기감을 드러낸다. 위기의식에 따라 주요 신문들은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모두 TV 등 계열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는 도쿄의 주요 신문사들은 인터넷홈페이지의 업데이트 주기를 단축시키고 있으며, 휴대전화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신문의 약세기조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일한 경제지로서 일본의 경기회복을 활용, 일본내·외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 주목된다. 니혼게이자이는 특히 신문과 통신, 방송 등의 미디어 융합에 대비, 모범적인 변신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문도 인터넷에 잠식당하지 않고,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조간신문 발행부수가 2003년 298만부에서 2004년 300만부로 늘었고,2005년에는 306만부로 늘었다. 지난해 광고도 전년보다 5% 증가했다. 매출액은 전년보다 2% 늘어난 2300억엔(약 1조 8800억원)이었다. 이처럼 니혼게이자이는 지난해 지면 차별화와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약진했다. 지면차별화를 위해서 1면 머리기사는 다른 신문이나 주요 방송과는 다른 사안을 배치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종이신문 기사의 독점성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신문에는 전체기사의 30% 이하만 서비스하는 ‘30%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종이신문 기사의 인터넷 게재 수는 물론 개별기사의 크기도 30%로 제한한다. 다른 주요 신문들이 인터넷에 100% 기사를 게재하는 것과 다르다. 포털사이트에는 기사를 포함한 콘텐츠를 절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독특한 경제비평기사도 차별화 상품이다. 또 종이신문과 인터넷의 융합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윈윈(상생)전략’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종이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의 세트광고를 하고, 인터넷 구독신청 코너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책임경영체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부문을 독립시켜 철저한 독립채산제를 실시, 경영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니혼게이자이는 일본내의 신문 중 인터넷대응이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따라 인터넷과 유료 정보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사업을 펴는 니혼게이자이 전파미디어국의 연간 매출액만 260억엔(약 2100억원)이다. 매출액과 순이익이 증가 추세라는 것이 회사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도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회사관계자는 토로한다.“유일한 경제지로서 일본경제의 활황에 따른 혜택으로 반짝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taein@seoul.co.kr ■ 유럽 |파리 함혜리특파원|“내가 이 신문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떠납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창업자 세르주 쥘리는 지난달 30일 ‘내가 리베라시옹을 떠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독자들에게 남긴 뒤 물러났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1973년 창간한 지 33년 만이다. 그는 이 글에서 “프랑스의 종합 일간지는 물론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며 리베라시옹 자체가 특별히 소비적인 신문이 아님에도 올해 예상되는 손실이 책정된 예산 250만유로(약 30억원)를 훨씬 넘는 700만유로(약 85억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베라시옹의 추락은 프랑스 진보언론의 암울한 장래,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활자 미디어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베라시옹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다. 한때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던 ‘프랑스 수아르’도 경영난 심화로 주인 바꾸기가 거듭되다 결국은 영국 타블로이드판 대중지 스타일로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프랑스 일간지 시장은 독자 감소, 이에 따른 신문사들의 재정악화, 무가지와 인터넷 매체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등장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란 세가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신문사들은 대기업의 자본참여를 통한 위기 극복을 시도하고 있지만 거대자본의 유입으로 신문들은 ‘독립성과 다원성의 침해’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맞는다고 프랑스 정부산하 경제사회이사회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는 신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종합일간지가 민주주의의 핵심적 위치를 되찾도록 신문기본법을 제정하고 신문 유통의 발전과 현대화를 위해 신문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또 기존의 가두판매를 재조직하고 정기구독 체제를 지원하는 등 정부가 유통조직 재편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정부차원에서 다양한 신문산업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신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비주얼 시대에 맞게 편집 스타일을 바꾸고 감각적인 젊은층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주말판을 발간하는 것은 기본. 인터넷 사이트를 보기 쉽게 디자인하면서 오디오와 비디오 뉴스를 동시에 듣고 볼 수 있도록 재정비하고 있다. 일간지 르몽드와 르피가로는 백과사전이나 박물관 화보집과 같은 도서 시리즈, 흘러간 명화 DVD 시리즈, 음악CD 등을 판매하면서 수익원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벨기에의 한 일간지가 세계 최초로 휴대용 디지털 전자신문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계획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벨기에 최대 항구도시 앤트워프를 기반으로 한 경제 일간지 ‘데 타이트(De Tijd)’는 지난 4월14일부터 세계 최초로 휴대용 디지털 전자신문 시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시험 서비스 기간에 독자 200명에게 신문의 인터넷판에 접속해 기사를 내려받을 수 있는 휴대용 전자기기를 무료로 나눠줬다. 독자들은 무선을 통해 인터넷판에 접속만하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된 기사내용을 화면으로 볼 수 있다. 종이두께에 타블로이드판 신문 한면 크기(8.1인치)의 스크린이 장착된 휴대용 기기는 전자잉크(E-Ink)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디든 들고 다니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컴퓨터나 TV 스크린과 달리 한번 텍스트나 그래픽을 입력하면 다시 입력하기 전까지 전원이 없어도 내용이 그대로 보존된다. 독자들은 특수 펜으로 기사에 대한 코멘크를 쓸 수 있으며, 광고면을 터치하면 해당 광고업체의 홈페이지로 직접 연결된다. 전자신문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페테르 브륀셀스는 “시험 서비스 결과를 정밀 분석해 비즈니스 모델을 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신문 구독비용은 한달 평균 400유로(약 50만원)이나 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독자 수가 늘어날 경우 대폭 내려갈 것으로 신문사측은 내다봤다. 프랑스의 경제일간지 레제코(Les Echos)와 독일의 국제미디어기술연구협회(IFRA)도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 lotus@seoul.co.kr ■ 중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지난 3월25일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열린 ‘중국 매체 창신(創新)회’. 중국의 거의 모든 주요 언론 관계자들이 모였다. 신문·방송 등 전통 언론 매체 경영자뿐 아니라 유력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최고경영자(CEO)들까지 망라됐다. 중국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참석자들은 신문시장을 비롯한 전통 언론시장의 위기를 논했다. 한때 금융, 건설과 함께 ‘돈 되는’ 3대 업종으로 불리던 신문업종이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린 지 불과 10여년만이다. 중국은 고도 경제성장과 13억 인구 등 ‘광고’와 ‘독자’가 모두 뒷받침되는 전통매체로서는 보기 드문 황금시장이었다. 심지어 한때 신문업계는 ‘폭리 업종’으로까지 불렸었다. 위기의 본질은 신문출판총서 스펑(石峰) 부서장의 지적대로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신흥 매체의 등장과 매체 상호간 경쟁으로 전에 없던 도전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에는 이른바 ‘도시신문’간의 지나친 증면 경쟁이 불붙으면서 일간지 면수가 하루에 최대 150∼200면까지 발행되는 신문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2005년 중국의 신문 광고시장은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중국 신문시장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반면 인터넷 및 디지털 매체의 광고수익은 전년보다 77% 증가한 31억위안(약 3700억원)이나 됐다. 올해는 40억위안(약 48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인터넷, 휴대전화 뉴스서비스, 디지털TV, 블로그, 포드캐스팅(Pod Casting) 등 신매체들로 인해 신문산업의 광고수익 잠식은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매체 창신회에서 뚜렷한 대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논의의 핵심은 ‘컨버전’과 ‘경영 다각화’였다. 경화시보(京華時報)의 우하이민(吳海民) 사장은 “과도하게 광고에 의존하던 과거의 경영방식으로는 생존해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하이 동방위성TV의 쉬웨이(徐威) 본부장은 “현재 직면한 도전은 TV라도 비켜가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같은 분위기로 최근 중국 언론 매체간에 진행중인 초거대화, 초집단화 현상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의 현상은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 주도에 의해 미디어 그룹들이 형성될 때와는 달리 생존을 위한 당사자간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상대적으로 많다. 합병을 통한 거대화·집단화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문회신민연합집단(文新民聯合集團)’의 탄생을 꼽을 수 있다.76년의 역사를 가진 신민만보(新民晩報)는 합병이전 이미 석간 신문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66년 전 창간된 문회보(文報)는 지식인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지대한 매체였다. 그러나 둘 다 고정 독자들의 ‘노화’와 신규 독자 흡수 부진 등으로 매체 영향력이 떨어져 가는 상황이었다. 문회집단의 후진쥔(胡勁軍)신문담당 사장은 “매체간 융합과 경영 다변화가 절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문회신민집단은 11개의 신문사,6개의 잡지사,1개의 출판사를 보유하며 영향력을 유지해가는 동시에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회사도 설립했으며, 다른 6개 주류 언론사와 합작해 만화 채널을 신설했다. 패왕별희(王別姬), 화목란(花木蘭) 등 영화에도 참여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눈을 돌려 신민만보는 현재 17개 해외판을 운영하고 있다. 집단 전체는 매년 이익의 3분의 1은 재투자에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진화를 고민하는 ‘신문 천국’ 중국. 방향타는 잡았으나,‘어떻게’가 문제로 남는다. jj@seoul.co.kr
  • [사고] 서울신문 구독료 자동납부 이벤트

    [사고] 서울신문 구독료 자동납부 이벤트

    서울신문과 BC카드가 함께 독자 여러분에게 행복과 행운을 드립니다 ●행사기간 2006년 5월15일∼8월15일 ●행사 1 서울신문 1년 정기구독(신규)을 신청하시면 BC Top 포인트 28,000점을 드립니다 ●행사 2 행사기간에 기존 서울신문 구독자중 납부방법을 BC카드로 신청하시면 BC Top 포인트 10,000점을 드립니다 ●행사 3 이벤트 1,2에 참여 하신 분중 행사 종료후 추첨을 통하여 15분에게 행운을 드립니다 ●행사상품 김치냉장고(딤채) 5명 스팀청소기 10명 ※당첨자 발표:2006년 8월20일 개별통지 및 서울신문 홈페이지 공지(www.seoul.co.kr) ※행사문의:02) 2000-9321-4 ●기타 반드시 비씨카드사를 통한 행사참여만 가능합니다 -구독신청 후 2개월 이내 철회 또는 해지하는 경우에는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습니다 -제세공과금 22%는 당첨 고객님 부담입니다
  • [독자의 소리] 공정위 제대로 처벌하나/이영익

    작년 9월과 12월 C일보와 J일보 직원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1년간 무료 구독, 백화점 상품권 1만원짜리 5장 등으로 구독을 유혹, 신문 불공정 관련법을 공개적으로 어기는 모습을 보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두 신문지국을 고발했다. 고발에 따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구독을 신청했다. 보기도 싫은 신문을 구독료까지 지불하며 어렵게 고발했으나, 공정위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어 있음에도 두 곳 모두 경고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또한, 공정위는 고발자의 신원을 해당 신문지국 직원에게 알려줘 지국 직원이 우리 집을 찾아와 고발 취소 각서를 요구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또 해당 지국의 처벌이 결정되면 3개월 내에 포상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도 공정위는 계속 업무의 과중함을 이유로 포상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시행하는 곳에서 무성의로 일관한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고발했던 해당 신문사 지국 직원들은 또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1년 무가지와 백화점 상품권을 가지고 구독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영익 <경기 군포시 수리동 가야 주공 아파트>
  • 프랑스정부 “신문산업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문의 독립·다양성 유지에 안간힘

    프랑스정부 “신문산업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문의 독립·다양성 유지에 안간힘

    전 세계적으로 신문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 산하 경제사회이사회가 지난해 7월 채택한 ‘일간지의 미래, 그 독립성과 다원성의 보장’이란 보고서가 한국언론재단에 의해 최근 번역, 출간됐다. 이 보고서는 신문업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떤 해결책이 바람직한 것인지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프랑스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신문업계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일간지 시장은 구독자 감소, 이에 따른 신문사들의 재정 악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의 등장에 따른 경쟁력 상실이란 세 가지 위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신문기업들은 대기업의 자본 참여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거대자본이 유입되면서 프랑스 신문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라갸르데르와 로트쉴드, 다소 등이 각각 르몽드와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에 참여하는 등 거대자본의 언론장악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1944년 해방과 함께 프랑스 신문업계가 다양한 목소리의 표현, 모든 금력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대명제에 합의했던 것들이 점차 무너져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보고서는 이같은 신문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인식 아래 침체에 빠진 프랑스 신문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신문 분야 조정을 위해 신문기본법 제정과 신문위원회 설치를 요구한다. 신문기본법은 종합일간지가 여론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민주주의에서 핵심적 지위를 되찾도록 돕기 위한 것이고, 신문위원회는 신문의 다양성 유지, 그리고 신문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유통의 발전과 현대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또 기존의 가두판매를 재조직하고 정기구독 체제를 지원하며 정기 구독 배달 통로를 조직하는 방안 등 유통조직 재편성 지원책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심각하게 노출된 신문업계 노동자들의 노동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직업 기술교육, 경력관리체제 도입 등의 제안도 담고 있다. 보고서는 또 ▲청소년이 성년에 이르면 일반 정보 일간지 2개월 무료구독 혜택 부여 ▲신문의 교육자료 사용 지원과 고등학교에서 신문판매 권고 ▲기업의 신문구독에 대해 예술작품 후원법 확대 적용 ▲신문사들의 월 1회 TV와 라디오 무료 광고메시지 허용 ▲모든 대학의 일간지 정기구독 지원 등을 제안했다. 이번 보고서는 정부 차원의 다양한 신문산업 지원 시스템이 이미 프랑스를 포함한 상당수의 유럽 선진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와 비슷한 취지로 제정됐지만 일부 보수 언론과 정치세력의 극심한 반대와 위헌소송에 휘말려 있는 우리 신문법 논의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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