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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과학잡지 ‘섹시한 漢字표지’ 망신살

    獨 과학잡지 ‘섹시한 漢字표지’ 망신살

    독일의 유명 과학잡지가 표지에 한자를 차용한 디자인을 사용했다가 망신을 샀다. 한자 내용이 사실은 외설적인 문구들이었던 것.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잡지 중 하나인 ‘막스플랑크 리서치 저널’은 중국 특별판으로 기획된 최근호 표지에 한자로 된 외설적인 내용의 문구들을 실었다가 급하게 교체하는 소동을 벌였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지난 9일 보도했다. 막스플랑크 리서치 저널은 세계적인 과학연구기관 ‘막스플랑크협회’에서 발행하는 유명 잡지다. 잡지가 처음 게재했던 문구는 사실 ‘섹시한 여성들 항시 대기’, ‘북방 미녀들 보유’ 등의 뜻이며 홍콩의 한 스트립바에서 쓰였던 광고로 확인됐다. 처음 협회 측은 표지 문구의 내용을 모르고 있었으나 인터넷판 업데이트 직후 중화권 네티즌들의 지적으로 자신들의 중대한 실수를 알게 됐다. 이 ‘야한 표지’의 내용이 확인된 뒤 협회는 처음 의도했던 ‘강하면서 복잡한 이미지’를 포기하고 ‘奇器圖說’(신기한 기계들의 그림 설명)이라는 한자로 교체를 시도했다. 영어판과 인터넷판은 급히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독일 내 정기구독자들에게 먼저 발송된 독일어판은 그대로 독자들에게 배달됐다. 사진=막스플랑크 리서치 저널 표지 교체 전(왼쪽)과 후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성인만화 불법유통 39곳 적발

    성인 만화에 유해 표시(19세 미만 구독불가)를 하지 않거나 성인 만화를 일반 도서와 구분 없이 진열·판매한 만화 업소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10월 초부터 두 달간 성인 만화를 취급하는 서점 75곳,만화·도서 대여점 22곳,만화총판 26곳,출판사 6곳 등 총 129개 업소를 대상으로 유통 실태를 점검,이 가운데 청소년보호법의 성인 만화에 관련된 규정을 지키지 않은 45곳을 적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적발된 곳은 성인 만화에 대해 유해표시를 하지 않고 유통시킨 업소 37곳(서점 5곳,대여점 13곳,만화총판 13곳,출판사 6곳)과 성인 만화를 일반 도서와 구분하지 않고 판매한 업소 8곳(대여점 3곳,만화총판 5곳) 등이다.특사경은 유해 표시를 하지 않은 203종,902권에 대해 현장에서 시정 조치하는 한편 적발된 업소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여 위법 정도에 따라 행정처분 또는 사법조치를 하기로 했다. 업소들은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자율 규제토록 한 제도상의 허점과 유통업자의 직업 윤리의식 부족으로 음란성과 포악성,잔인성을 띤 성인만화를 순정 만화와 같이 유통한 것으로 특사경은 판단했다. 특사경을 이끄는 서울시 사법보좌관인 지석배 부장검사는 “성인 만화가 ‘간행물에 대한 사후 심의’ 규정을 악용해 청소년들 사이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겨울방학을 맞아 만화업소를 비롯해 노래연습장과 PC방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0) 목포 명도 복지관 관장 제라딘 라안 수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0) 목포 명도 복지관 관장 제라딘 라안 수녀

     전남 목포시 산정2동 225-54 명도 복지관은 장애인 재활시설.정신지체아를 비롯한 장애아들의 방과후 학습을 돕는가 하면 이들의 언어,심리치료를 해주고 성인이 된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위한 재활 학습과 직업교육을 시키는 사회복지기관이다.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며 상담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장애인들을 보살피는 총책임자인 관장은 푸른 눈의 외국인.한국에서 33년째 장애인들의 곁에 있으면서 이들을 챙겨주며 세상의 떳떳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자부심을 키워 주는 성골롬반 외방선교 수녀회 소속의 제라딘 라안(60·아일랜드) 수녀가 주인공이다.“사람은 누구나 예비 장애자.”수녀는 장애인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고 사회 속에서 동반자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준다면 세상은 한결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33년째 장애인들 재활 도와  장애인들의 종이 가방 만드는 작업을 돕다가 불쑥 찾아든 불청객에게 커다란 손을 내미는 제라딘 라안 수녀.첫 대면에도 막힌 구석이 없어 보이는 ‘활달자재’의 마음과 몸짓이 인상적이다.전라도에서 오래 산 때문인지 질펀한 호남 사투리로 건네는 인사말이 살갑다.“전라도가 내 고향인데 고향 말을 쓰는 게 당연하지요.” 자신의 방인 관장실 바로 옆에 딸린 접견실을 향해 나란히 걷는 길에서 마주친 장애아 학부모들이 연방 인사를 전한다.만나는 이마다 일일이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안부를 묻는 수녀.그에게 과연 장애인은 무엇일까.‘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함께 걸으며 들려주는 요한복음 10장10절 구절이 유난히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의 작은 마을,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 신앙심이야 말해 뭣할까.집에서 구독하는 선교지들을 보다가 우연히 칠레의 가난한 집 어린이들이 우유 대신 쌀 씻은 물을 먹고 연명해 간다는 소식에 어려운 이들을 돕는 봉사의 삶을 결정했다고 한다.고교졸업 후 곧바로 성골롬반 외방선교 수녀회에 입회했고 영국 런던 휩스 크로스병원에 부속된 간호대에서 간호학을 전공,졸업 이듬해인 1975년 전혀 알지 못하던 낯선 땅 한국에 몸을 맡겼다.  한국에 오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그렇듯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에서 1년간 한국말을 배우고 제주도 성이시돌복지의원에서 곧바로 간호사 일을 했다니 그의 작심은 분명 한 곳을 향했던 것이 분명하다.한국말이 서툴다는 생각에 연세대 어학당에서 다시 1년간 공부하는 중에도 서울시립아동병원 일을 도왔다고 한다.장애인을 향한 이정표를 단단히 세운 것은 목포 성골롬반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무렵.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목포로 내려간 병원에서 뇌염 후유증으로 얻은 뇌성마비에 신음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현실에서 초라하기만 한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당시 뇌염이 아주 기승을 부렸는데 뇌염을 앓아 죽거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부지기수였어요.그중 뇌염으로 뇌성마비를 당한 몇 명의 어린이들이 갈데 없이 막막한 상태로 입원해 있었는데 병원측이나 저나 어찌할 길이 없더군요.그때 나약한 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뇌성마비 어린이가 결국 허름한 수용시설로 보내지며 남긴 천연스러운 웃음에 아일랜드 성라파엘학교 유학을 결정했다.“저들을 돕기 위해 내가 노하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특수교육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2년간 공부하고 돌아와 광주 엠마우스 장애인복지관의 장애인 재활을 위한 작업장에서 낮밤을 가리지 않은 채 일하다 직접 목포 석현동에 장애인 재활 및 보호시설인 ‘생명의 공동체’를 꾸렸다.  말이 장애인 시설이지 23평 아파트 전셋방에서 장애인 20여명에게 심리치료와 알량한 재활 훈련을 시켜주는 게 고작.그나마 아파트 시공사가 부도 나는 바람에 두달 만에 쫓겨나 인근 산정동 전셋방으로 봇짐을 싸야 했다.“그때 인생공부 많이 했어요.” 한국의 법이며 상황도 모른 채 마음만 갖고 무작정 덤벼든 생활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한다.장애인을 돕는 데도 돈이 있어야 하지만 지원 한푼 없는 생활이 오죽했을까.장애인들과 함께 카네이션이며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내다 팔고 여기저기 아쉬운 손을 벌려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다가 적은 액수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만든 게 지금의 명도 복지관이다.1992년이었다.물론 그동안 시설 규모도 커졌고 찾아드는 장애인도 늘어 이제 목포에선 웬만한 이라면 다 아는 공간이 되었다. ‘명도 복지관’ 길 잃은 장애인들이 잘살 수 있도록 밝은 길을 안내한다는 뜻을 담아 직접 지은 이름.“그동안 얼마나 많은 불쌍한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라고 묻자 “장애인은 결코 불쌍하지 않다.”고 말을 고쳐준다.불쌍하다는 것은 그들이 나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깔린 위험한 말이란다.“장애인은 그저 어려운 때를 겪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운 시기를 만나 장애를 겪게 마련이지요.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우리와 똑같은 존재로 여겨 가진 것을 함께 나눈다면 지금 장애인들이 버거워하는 사회의 시선과 잘못된 대우가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요?” “한국말을 똑바로 못해 장애인이고,한국문화에 익숙지 못해 장애인이고,장애인들의 마음을 잘 몰라 장애인”이라며 자신을 장애인으로 소개하는 라안 수녀.그 말대로라면 이 땅에서 살면서 겪은 장애가 얼마나 많았을까.그 장애를 만날 때마다 변함없이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은 글귀 하나.‘(네가)어디를 가든지 함께 있겠다.’ 아일랜드를 떠나오기 전 수도원에서 기도 끝에 마음으로 받은 말씀이란다.사회복지시설 운영 소관이 중앙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전되면서 오히려 시설들이 받는 지원은 더 열악해졌고 무엇보다 이런 시설에서 소신있게 일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안타깝다는 라안 수녀.그나마 지금 명도 복지관의 ‘형제들’은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고마운 친구들이라고 치켜세운다. ●“남은 인생도 장애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종이 되겠다.’며 종신서원을 한 천주교 수녀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 선교사이자 수도자.목포 지역 개신교 목회자,신자들의 모임을 비롯해 다른 종교 모임에도 자연스럽게 찾아가 마음을 나눈다.‘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당신들과 함께 있겠습니다.’(마테오 복음 28장 19절)라는 말을 달고 사는 수녀.많은 정상인들은 욕심을 내고 끊임없이 가지려고 달려들지만 장애인들은 솔직하고 숨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많은 것(?)을 이루지 않았을까.2004년 적십자상 인도장을 받았고 2006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20여개 장애인 단체들이 수여하는 한국장애인인권상(생활실천부문)도 받았다.하지만 이룬 것이 없다고 한다.목포 지역 결손가정의 장애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여전히 아프고 장애인들이 은퇴한 뒤 함께 머물면서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여생의 꿈이란다. “소녀 시절부터 비가 많은 고향 아일랜드에서 무지개를 즐겨 보며 자랐어요.비 온 뒤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무지개가 얼마나 아름답고 예쁩니까.힘들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 무지개가 됩시다.” 글ㆍ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제라딘 라안 수녀는 ▲ 1948년 아일랜드 출생 ▲ 1966년 성골롬반 외방선교 수녀회 입회 ▲ 1974년 런던 휩스 크로스병원 간호대 졸업 ▲ 1975년 한국 선교사로 파견 ▲ 1975~1981년 제주 성이시돌복지의원,서울시립아동병원,목포 성골롬반병원 근무 ▲ 1981~1983년 아일랜드 성라파엘학교서 특수교육 공부후 한국 재입국 ▲ 1985년 목포 석현동에 장애인 재활 교육시설 ‘생명의 공동체’개설 ▲ 1992년 목포 산정2동에 ‘명도 복지관’설립 ▲ 현재 명도 복지관 관장
  • [SPECIAL 열매] 독자사진

    [SPECIAL 열매] 독자사진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하는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위해 고향을 찾았습니다. 하는 일이라곤 기껏 콤바인에 매달려 쌀가마니 잡아주는 일이 고작인데, 아버지는 그 대가로 내년도 일 년치 식량을 보내주시겠지요. 벼를 다 베고, 아버지는 텅 빈 논두렁에 앉아 마른 담배를 피우십니다. 그 마음 다 헤아릴 길 없지만, 듬성듬성 잘리지 않은 벼처럼 쓸쓸함이 묻어나 그 옆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김선후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지난 9월에 코엑스에서 있었던 우리나라 최대의 ‘제7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미술시장의 침체로 작년보다 판매액과 관람객이 줄었다. 이번 미술시장은 코엑스 태평양홀과 인도양홀에서 218개 화랑(국내 116, 해외 102개)이 참가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KIAF 사무국은 ‘제7회 한국국제아트페어’의 관람객이 6만 1614명, 작품 판매액은 140억 원(추정치)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매년 열려온 KIAF의 관람객과 작품 판매액은 2002년 1만 8,000명:7억 3000만 원, 2003년 2만 3000명:18억 원, 2004년 2만 8000명:20억 원, 2005년 3만 2000명:45억 원, 2006년 5만 명:100억 원, 2007년에는 6만 4000명이 175억 원 규모의 미술품을 구입했다. 이번 판매 저조는 미국발 금융 위기와 정부의 2010년부터 점당 4,000만 원 이상 미술품 양도세 부과 방침에 따른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반영되어, 그동안 미술시장을 이끌었던 ‘블루칩’ 작가와 30~50대 인기 작가들의 작품 판매 부진으로 매출액이 30억~40억 원 정도 감소된 것이다. 10월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제14회 마니프(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10.1~13)’와 ‘제14회 SIPA(서울국제사진아트페어, 10.18~24)’, 대구 엑스코에서 ‘대구아트페어(10.29~11.2)’가 이어진다. 마니프는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제 미술품은 고가로 부자들만이 구입하는 게 아니고 ‘김과장’도 살수 있다고 대중을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다. 이 밖에 A&C 아트페어, 안산국제아트페어, 골든아이국제아트페어…, 아트페어가 전국적으로 도·시 단위로도 열리고 있다. 아트페어(art fair)는 일반적으로 몇 개 이상의 화랑이 한 장소에 모여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로, 미술시장을 뜻한다. 화랑 외에 작가 개인이 직접 참여하는 때도 있지만, 미술품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화랑 사이의 정보교환이나 판매 촉진 또는 시장의 확대를 위해 여러 화랑이 연합해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다. 국내에는 아트페어로 1986년 출발한 ‘화랑미술제’, 2002년 출발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05년부터 ‘서울판화미술제’를 확대한 ‘서울국제판화사진미술제(SIPA)’, 2007년부터 ‘서울오픈아트페어’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아트페어가 화랑이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파는 것만이 아니라 마니프나 한국현대미술제(KCAF), 대한민국미술제(KPAM)처럼 부스별로 작가 스스로 작품을 판매하는 형태도 포함한다. 세계아트페어는 국제화상들이 현대미술품을 내걸고 치열한 판촉전을 벌이고 세계미술시장의 정보를 주고받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미술품 판매시장이다. 아트페어가 개최되면 컬렉터, 미술가, 딜러, 미술관계자, VIP, 언론사 등이 모여 짧은 기간 동안 붐비기 마련이다. 이제는 단순한 미술장터가 아니고 도시, 국가가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부가가치가 높은 컨벤션 산업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피악(FIAC), 스위스의 바젤, 미국의 시카고 아트페어가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데, 피악은 대중성과 축제성을 중시하는 아트페어로, 시카고 아트페어는 미국의 현역작가를 선보이는 아트페어로 유명하다. 큰 아트페어 일수록 참가하는 화랑들은 주최측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작년 스페인에서 열린 아르코 아트페어는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초대되어 ‘코레아 아오라(Corea Ahora / 한국의 현재 / Korea Now)’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아오라는 스페인어로 ‘지금’이라는 뜻이다. 이 문화행사는 아르코에 한국 15개 화랑의 출품, 특별기획 7개 전시, 퍼포먼스로 김금화와 서해안풍어제, 안은미댄스컴퍼니, 한국영화 특별전, 한국문학포럼 등이 포함된 대규모 행사로 대통령까지 참관한 바 있다. 미술품의 구입은 일반적으로 화랑이나 작가의 전시장, 옥션 등을 통해 구입하게 된다. 그러나 아트페어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열리지만 여러 작가의 최근 미술 동향을 보며 가격이 공개되어 있어 구입하기가 편리하다. 한 장소에서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과 가격대를 가지고 있어 비교하여 구매가 쉽다. 이 가을 아트페어에 가서 온 집안 식구가 공감할 작품 한 점을 구입해 생활의 풍요로움을 느끼길 권유한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 여유가 그립다. 글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관 관장 www.daljin.com <가을, 秋 유물 속 가을 이야기> 10.6~11.16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조상들이 예술 속에 담아내고자 했던 가을의 정서를 문화유산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열린 기획특별전이다. 전시는 크게 가을을 주제로 4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 ‘가을을 그리다‘는 산수화를 중심으로, 2부 ‘가을을 느끼다’는 꽃·풀벌레·새 그림의 회화·도자기를 선보인다. 이어 3부 ‘가을을 노래하다’에서는 향가와 시·시조·편지글이, 4부 ‘가을을 거두다’에서는 농가의 추수 모습의 경직도·풍속화를 전시하고, 세시기 등 문헌을 통해 한가위 풍속을 살핀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김홍도, 정선, 강세황 등 잘 알려진 작가의 유명 회화 작품을 포함하여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총 140여 점에 이르는 유물과 더불어, 옛 선인들이 즐겨 사용한 시전지(편지지)를 만들어 보는 체험공간이 마련되며, 가족참여 프로그램 <야생화와 가을 숲 여행>이 야외 정원에서 진행되는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함께한다.(www.museum.go.kr T.2077-9000)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 9.23~11.9 서울역사박물관 조선 중기 이후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유행한 삼국지 관련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삼국지의 체계적인 이해와 우리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이해하고자 기획된 특별전이다. 주제별로 프롤로그인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삼국지의 역사적 배경과 정사를, ‘삼국지연의의 유입과 유행’은 조선 중기 우리나라 유입과 유입 초기의 문제점 및 민간에 유행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우리 민화 속 삼국지’는 조선 후기 삼국지의 대중적인 유행을 만나볼 수 있고, ‘서울 역사문화 속 삼국지’는 서울 곳곳에 있었던 민간 무속신앙 관련 자료를 통해 삼국지의 흔적을 찾아본다. 이어 ‘대중문화 속 삼국지’에서는 1900년대 이후 출판된 신문연재·잡지연재·번역소설·만화로 삼국지를 만나보고 영상자료를 통한 <적벽가>도 들어볼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참여 가능한 ‘삼국지 읽기’, ‘다른 책 같은 이야기’ 등으로 삼국지의 재미를 함께 느껴본다. 조선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삼국지 관련자료 15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로, 서울의 역사문화 속에 삼국지가 어떤 형대로 녹아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www.museum.seoul.kr T.724-0153) <정원방문기> 10.16~12.6 코리아나미술관 코리아나 화장품 창립 20주년 기념전시로 8명의 작가가 생각하는 정원의 의미들을 방문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정원(garden)’은 ‘보호하고 막는다’의 gan, ‘즐거움’의 eden이 합성된 것이다. 바로 이 정원이 가진 모호성과 이중성, 의미의 복잡한 메트리스를 작품으로 표상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동시대 문화의 일면을 짚어내고자 한다. 더불어 기업 이념인 ‘Art Through Nature(자연을 통한 아름다움의 예술창조)’ 정신을 예술작품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에덴 : 쾌락의 정원+비밀의 정원, Promenade+借景+詩景(산책+차경+시경), Colour Graound (색채 탐구에 헌신된 장소로서 정원), Political Garden (권력의 장으로서의 정원), Healing Garden (치유로서의 정원)이라는 소제목의 전시내용을 갖고 노재운(영상), 문경원(영상), 박화영(영상설치), 안성희(사진설치), 윤애영(프랑스, 영상설치), 이윤진(사진), 이창원(평면 설치), 타카기 마사카츠(영상)가 참여한다. (www.spacec.co.kr T. 547-9177)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청계천은 살아났지만 그 옛 정취는?

    청계천은 살아났지만 그 옛 정취는?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은 뚜렷한 줄거리나 인물이 없이 1930년대 청계천 주변의 일상 사물과 풍경을 세밀히 관찰하여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1920년대의 이데올로기 문학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기술(記述)의 비인칭화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의 역할만 하고 있다. 박태원은 1909년 수중박골(중구 다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약국을 경영하고 숙부는 의사로, 그의 집안은 중인 계층이었다. 이 소설의 배경인 청계천 주변은 원래 서울의 중인 계층이 살던 동네로, 작가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과 풍경이 《천변풍경》에 녹아 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청계천에 총 9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새경다리), 태평교(마전교, 오교), 오간수교, 영도교(영미교) 등이다. 모전교의 옛 이름은 모교였는데, 중구 무교동 네거리 길모퉁이에 과일가게 ‘모전’이 있어 이름을 얻게 되었고, 하랑교는 현재의 청계3가 센추럴 호텔 앞쪽에 있었던 다리이고, 효경교는 세운상가 동쪽 전자상가 앞쪽에 있었던 다리이다. 마전교는 청계5가 네거리 동쪽 방산시장 앞에 있던 다리로 성종 때는 태평교라고 불렀으나, 수표교 주변에 있던 말-소 시장이 옮겨오면서 마전교라는 이름을 얻었다. 말과 소 시장은 낮에 열리므로 오교라는 명칭도 갖게 된 것이다. 이들 다리 이외에 청계천을 쉽게 건너기 위해 교각을 세우지 않고 널조각을 걸쳐 놓은 나무다리를 배다리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다리가 청계천에 몇 군데 있었다. 그 중 이 소설에는 장통교, 수표교를 중심으로 모전교, 광통교, 광교 등이 나오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은 빨래터, 이발소, 평화카페, 한약국, 신전(여관), 이쁜이네 집, 당구장, 근화식당 등이고, 그 공간들은 각각 분리되어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도시의 공간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청계천변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으니, 식민지 자본주의 유통 구조 속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부(富)를 축적하는 인물들로 한약방 주인, 사법서사를 하는 민주사, 포목전 주인, 양약국 주인 최진국 등으로 식민지 경제 체제 속에서 안정적인 부를 쌓으며, 새로운 지위, 즉 권력을 차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토지나 자본, 지식 등의 기반이 없이 축첩이나 노름 같은 비생산적이고 불건강한 일들에만 몰두한다. 다른 부류는 도시의 부유층 밑에 고용되어 하루하루의 생명을 이어가는 하층민들로 이발소의 재봉이, 김서방, 점룡이, 창수, 귀돌어멈, 만돌어멈, 칠성어멈, 필원네, 금순이, 하나코, 기미코 등으로 남의 집에 고용되거나 이발사, 아이스케키 장사, 당구장 종업원, 남의 집 행랑살이, 카페 여급 등으로 일한다. 이들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다가 상경하여 방황하고 몰락하는 가엾고 딱한 사람들이다. 이 소설의 모든 사건과 그 진행의 추이(推移)는 작가가 아니라, 이발소의 소년 재봉이와 점룡이 어머니의 관찰과 수다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보들은 빨래터와 이발소를 매개로 전파된다. 이 소설 처음에 나오는 청계천 빨래터는 오늘날 삼일교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약방만 청계천 남쪽 천변에 있고, 이발소, 포목전, 은방, 당구장, 평화카페는 전부 청계천 북쪽 천변 광교 모퉁이 큰 길거리에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소설에 나온 시대와는 달리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청계천도 복개했다가 다시 복개한 것을 뜯어 버린 만큼 과거의 지형지세는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소설에 나온 장소와 공간들은 그대로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물론 소설은 픽션이므로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수많은 빌딩과 음식점, 커피점으로 바뀐 것이다. 오로지 예쁜이 남편 강 서방이 관심을 가졌던 신정옥이가 풍금으로 찬송가를 치던 수표교 예배당은 건물만 그 자리에 폐허처럼 남아 있고(머지않아 그 자리는 재개발되리라 한다), ‘수표교교회’는 1984년 5월에 서초동에 새 성전을 짓고 이사를 갔다. 소설 《천변풍경》에는 옛 서울 지명들이 나오는데, ‘우대(인왕산 주변 마을;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등)’, ‘아래대’(동대문 주변 마을), ‘양삿골(충신동)’, ‘다방골’(중구 다동), ‘똥굴’(관철동), ‘동관’(예지동, 원남동), ‘노돌강(노량진 부근의 한강)’, ‘시구문(광희문의 속어)’, ‘남묘(남대문 바깥에 있던, 관우를 모시던 사당)’, ‘왜성대(지금의 남산 공원)’, ‘남산 벙바위’ 등이 나온다. 《천변풍경》에는 당시에 수입되었던 외래 근대문화와 새로운 물질문명의 여러 구체적인 모습과 양상이 소설에 제시됨을 볼 수 있다. 당구장, 카페, 이발소, 백화점, 왜식 술집 등과 마작 용어, 당구 용어, 당시 유행하던 일본 유행가 등은 서울이 근대적으로 변화하고 서구의 영향에 차츰차츰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안이 몰락하여 강화로 낙향하는 ‘신전집’이나, 부회 의원 선거, 금순이를 유혹하여 서울까지 데려와 하숙에 유숙하는 금광 브로커의 모습 등은 70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은 서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어느 해 3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의 1년간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1년 동안 인물과 사건 등은 비극으로만 치닫는 것이 아니라 4계절의 순환과 같은 흐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결국 시련을 거친 뒤에 안정을 회복하고,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등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세상은 자연 순환의 법칙을 따르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천변풍경》은 독자에게 회고의 감정에만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결국 인간이 사는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과 진리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글·사진 김원호 편집이사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휘청대는 실물경제] “한푼이라도 더”… 가정·기업 新자린고비

    최대한 더 타고 덜 쓰자.미국발 금융쇼크와 글로벌 경기 둔화 불길이 국내 소비 행태를 180도 바꾸고 있다.소비자들이 갈수록 호주머니 사정이 팍팍해 질 것으로 보고 너도나도 지갑을 닫으며 ‘짠돌이’가 되고 있다.가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나 가구 교체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기업도 마른 수건을 쥐어 짜면서 경비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자전거 출근으로 교통비 줄이기  예전 같으면 폐차장으로 직행해야 할 차를 참고 더 타는가 하면 교통비를 아끼기 위한 ‘자출족(자전거 출근족)’이 늘고 있다.한 번에 대량 구입하던 생필품도 낱개로 나누어 사고 환율이 낮아질 때까지 국내여행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 붙으면서 폐차가 줄어 들고 있다.신차 구매가 급감하면서 자동차 보유대수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폐차와 도난,수출 등을 포함한 자진 폐차 대수는 지난 7월 9만 43대였다.하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8월 이후 폐차 대수는 월평균 8만대 밑으로 뚝 떨어졌다.8월 7만 7922대,9월 7만 3056대,지난달 7만 8134대 등으로 집계됐다. 유모씨는 “주행거리 22만㎞의 산타모 LPG 차량을 폐차하기로 하고 신차 구매 상담까지 마쳤으나 휘발유나 경유차로 바꿀 경우 연료비가 1.5배 더 들 것이 부담돼 그냥 돌아왔다.”면서 “가족과 상의해 한해 더 타는 대신 끊기로 했던 딸 학습지는 계속 구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자영업자 김모(39·경기도 김포시)씨도 “지난달 10년 넘은 대우 타우너 승합차를 폐차하고 새 트럭을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할부금 마련 걱정에 당분간 더 타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름값과 차비를 절약하기 위해 운전대를 놓거나 대중교통까지 포기하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다.삼천리자전거의 올 매출은 지난 9월까지 633억원을 기록해 지난 한 해 매출액 639억원에 육박했다.홈플러스도 올 10월까지 36억여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을 뛰어넘었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자전거 판매량이 1년 전보다 65%,자전거 용품 판매량은 230% 급증했다.”고 밝혔다.올해 1월과 2월만 해도 웰빙 바람이 거셌던 지난해에 비해 자전거 판매량은 각각 36%,25% 감소했었다.그러나 경기침체가 가시화된 7월과 8월에는 각각 110%,9월 103%,지난달에도 91% 판매가 급증했다.  ‘소용량 바람’도 거세지고 있다.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낱개로 사거나 기존 제품보다 용량을 줄인 제품을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주부 김모(34·강서구 방화동)씨는 “대형마트 등에서 ‘묶음 제품’을 주로 샀으나 최근엔 가까운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필요한 만큼만 낱개로 산다.”고 말했다.이같은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최근 대형마트 등에서는 신선ㆍ가공 식품을 1~2개씩 나누어 파는 ‘소용량 코너’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에도 소형 중심으로 청약이 쏠리고 있다.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불황 여파로 관리비 등 주택 유지비가 뛰면서 소형 아파트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행 패턴도 변했다.경기악화에 환율 급등까지 겹치면서 가급적 여행 횟수를 줄이고 해외가 아닌 국내 여행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항공권을 판매하는 여행업체 93곳의 집계에 따르면 9월 항공권을 구입한 관광객은 43만 619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했다.금액은 3387억 6319만 9000원으로 4% 증가하는데 그쳤다. 한국일반여행업협회 관계자는 “9월 해외관광 지출은 8억 4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0% 줄었다.”고 밝혔다.   이영표 홍희경기자 tomcat@seoul.co.kr ■ 임금 반납… 휴무… 기업 ‘몸부림’ ‘지사 축소,급여삭감,해외연수 대신 국내연수,주말 휴일을 이용한 출장,선박의 경제속도 유지,관리직을 현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실물경제 위기가 예상 외로 길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기업들이 저마다 ‘짠물 경영’에 돌입했다.  중소기업이나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들이 사용하던 내핍경영이 삼성전자나 현대건설,한전,SK텔레콤 등 업종 선도 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일등 기업이라고 무게 잡을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24일부터 내년 1월4일까지 열흘 이상 장기휴무에 들어가기로 했다.교대근무제인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생산 현장 근로자를 뺀 다른 사업장 근로자는 모두 해당된다.현대건설은 사장의 해외 출장 길에 그동안 대동했던 비서실장을 제외시켰다.대신 실무 임직원만 동행한다.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더불어 직원들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출장을 모아서 가도록 했다.주말과 휴일을 이용한 출장도 권장하고 있다.근무시간내 업무 집중처리제를 도입,일과시간 후 근무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GS건설은 다음달부터 관리직의 20%인 300여명을 현장에 전진배치하기로 했다.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해마다 10여명을 1년짜리 해외연수를 보냈으나 내년부터는 국내 MBA로 돌렸다.급여삭감도 늘어나고 있다.1982년 공사 전환 이후 사상 처음으로 올해 1조원이 훌쩍 넘는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은 10개 발전자회사를 포함해 과장급 이상 1만 1300여명의 임금을 평균 200만원가량 깎기로 했다.과장급은 평균 170만원,팀장급은 200만원,부처장급은 230만원,처장급은 250만원의 임금을 각각 반납하기로 했다.이런 식으로 절약하게 될 금액이 220억원에 이른다.  매장 축소나 예산 절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SK텔레콤은 내년도 예산을 20% 줄였다.출장비용이나 사무용품 등 소모성 경비를 줄이기로 했다.이미 올해 남은 예산도 30%를 줄였고,업무용 신용카드의 결제한도도 축소했다.  KT는 다음달 내년 2월까지 현재 267개인 KT플라자를 56개로 단계적으로 줄인다. KT와 KTF쇼 매장의 동시업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KT 관계자는 “KT 플라자 업무의 대부분인 요금 납부,서비스 가입 등은 KT고객센터와 전국 2000여개의 쇼 매장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고객 불편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KT 플라자로 활용되던 공간은 임대나 다른 용도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운항 중인 200여척의 선박에 규정 속도인 20노트를 준수하도록 했다.속도가 빨라질수록 기름이 많이 먹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항구별 기름값을 파악,값싼 항구에서 기름을 넣도록 했다.  한 건설업체는 회식이나 공식적인 행사 이후 부서 비용으로 대리운전비를 지원해줬으나 27일부터는 경비절감 차원에서 이를 중단했다.  김성곤 김성수 김효섭기자 sunggone@seoul.co.kr ■ 생활정보지 이용해 수수료 절감  부동산 중개업소 대신 생활정보지로,변호사 선임 대신 상담으로….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지고,내년 전망마저 비관적이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소비심리가 얼어 붙으면서 관련 업계는 저가·공짜 마케팅을 이어가고,기존 시장이 붕괴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부동산 거래가 끊기면서 중개업소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거래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게 첫번째이고,아예 중개업소를 찾는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게 두번째이다.잠재적인 주택 구매 대상자들은 중개업소 대신 공짜인 생활정보지 등에서 정보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하지만 생활정보지에 내놓는 매물 역시 줄어들어 생활정보지 업체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업계 관계자가 27일 귀띔했다.  전문 서비스업도 위축되고 있다.사법연수원에서 해마다 1000명의 법조인이 배출되면서 2001년 41.7건에서 지난해 31.5건으로 줄어들던 연 평균 수임건수가 올해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급감했다. 7년 전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해 현재는 혼자 사무실을 꾸리는 한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상담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늘어났다.”면서 “특히 최근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문이 돌자,터무니없는 선임료를 부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최근에는 병원도 잘 안 된다고 하니,앞으로 얼마나 더 상황이 악화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불황의 여파는 이번 겨울부터 구직 활동에 나서는 사법연수생들에게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사법연수원이 지난 25일부터 사흘 동안 개최한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기업과 로펌,국가기관은 26곳으로 지난해 31곳에 비해 줄었다.실제로 중소 로펌의 경우 신규채용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전언도 들린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Happy Time] 빅토르 위고와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Happy Time] 빅토르 위고와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속이 상할 때에는 와인 한 병을 갖다 옆에 놓고 고전소설을 읽는다. 솔직하게 말해서 읽는다기 보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어떤 때는 술술 잘 읽히다가도, 또 어떤 때는 한 장도 안 넘어가고 종이만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렇게 단골로 내 친구 역할을 하는 소설 중의 하나가 《레미제라블》이다. 내가 이 소설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소설이 풍기는 사람 냄새고, 또 하나는 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매력이다. 이 양반은 한마디로 엄청 재미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재미있는 양반인가? 그는 매우 낭만적인 성품이었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자기 옷 벗어주고. 그는 나폴레옹이 보기 싫다고 한적한 시골로 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레미제라블》이라는 대작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글을 쓰기 시작은 했는데 놀러 다니느라고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 것이다. 몇 줄을 쓰다가 친구들이 찾아오면 밖으로 나가서 술 마시고 놀다 들어오는 게 일쑤였다. 자신에게는 큰 갈등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 자기 하인을 불러서 “내가 잠이 든 사이에 내 옷하고 신발들을 몽땅 훔쳐가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아무 친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 옷과 신발이 없는 위고는 하는 수 없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잠옷만 걸친 채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레미제라블》이다. 소설의 제목만 그대로 번역하면, ‘비참한 사람들’ 또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는데 이 양반이야 말로 불쌍한(?) 상태에서 소설을 쓴 셈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인도주의적인 리듬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고 감옥살이를 하고, 자기를 도와주던 신부 몰래 은촛대를 훔치다가 발각되었지만 신부는 그를 용서하면서 그 촛대를 가져가라고 준다. 장발장은 전과자라는 것을 숨기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큰 부자가 된다. 그 후 정치를 하게 되지만 악착같이 쫓아다니는 자베르 형사한테 걸려들어서 다시 감옥으로 갔다가 탈옥을 한다. 또한 젊은 여인 코제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목숨 걸고 도와준다. 장발장의 기구한 운명을 지루하지 않게 그려 나간 이 소설을 나는 좋아한다. 빤히 아는 스토리인데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고 오페라, 애니메이션, 연극, 뮤지컬 등으로 우리에게 친근하다. 특히 뮤지컬은 대성공을 거두어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소설은 재미있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의 한 문장(Sentence)에 무려 823단어가 계속 연결되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 문장 속에는 93개의 콤마(Comma)가 찍혀 있고, 51개의 세미콜론(Semicolon)과 4개의 대쉬(Dash) 등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한 문장이 소설의 3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가장 긴 문장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성품으로 봐서 일부러 그렇게 기록적인 문장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파리의 노트르담》을 비롯하여 많은 소설과 시를 발표했지만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역시 《레미제라블》을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위고가 거의 발가벗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글 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동티모르 여행기②] 커피 꽃은 희게 피고 열매는 붉게 익는다

    [동티모르 여행기②] 커피 꽃은 희게 피고 열매는 붉게 익는다

    정일근 《삶과꿈》기획위원과 안남용 사진작가는 지난여름 커피 시즌을 맞아 동티모르 커피생산지인 고산지역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가이며 우리에게 미지의 국가인 동티모르에 대한 생생한 현지 취재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본지를 통해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동티모르(Timor-Leste)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는 커피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커피나무와 커피 열매를 본 적이 없는 나그네에게는 그 풍경이 신기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꼭두서닛과(科) 열대산 상록관목인 커피나무는 하얀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며 꽃 진 자리마다 푸른 열매가 맺히고 시간이 지나면 열매는 앵두처럼 빨갛게 익어간다. 동백나무와 비슷한 커피나무도 처음 보았고, 하얀 커피나무 꽃도 처음 보았다. 커피 열매가 빨갛게 익는다는 것과 빨간 열매 속에서 검은 커피가 나온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동티모르는 커피 대량생산국가는 아니지만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지역에서 커피의 명품인 ‘아라비카種(종)’ 원두를 생산해 연간 7천~10만t 내외를 수출하고 있다. 2006년 동티모르 생두수출량은 8,877t이다. 동티모르 커피는 세계시장에서 인기가 좋다. 그것은 순종의 커피나무에서 야생 원두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곳의 커피나무들은 동티모르가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인 200여 년 전에 심어진 커피나무로 거의 원종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차(茶)와 비교하자면 지리산에 자라는 야생차와 같다. 거름을 주고 비료를 주며 키우는 차가 아니라,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스스로 자생하는 차와 같다고 보면 된다. ‘커피 벨트’라는 말이 있다.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위 25도 사이에 커피나무가 자라는데 연 1,500mm 이상의 강수량을 가진 열대와 아열대 지역을 커피 벨트로 부른다. 그 중에서도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이 지나는 위도 23.5도 사이의 해발 1,000~3,000m 연평균 기온은 20~25도 수준일 때 좋은 커피가 생산된다. 커피 재배는 토양과 날씨도 중요하다. 마그마가 냉각, 응고되어 만들어진 화성암 풍화지역에서 커피나무가 잘 자르는데 그건 땅이 기름지고 물이 잘 빠지는 특성 때문이다. 또한 열매를 딸 때도, 열매 속의 원두를 말릴 때도 맑은 햇살과 좋은 바람에 말려야 하기에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동티모르는 좋은 커피나무가 자라는 특성을 대부분 가졌다. 그런 특성에 플러스알파가 있는데 커피나무 생장에 좋은 자연적인 그늘을 만들어주는 셰이드 트리, 그림자 나무가 함께 생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백나무 곁에 차나무를 심어주면 동백나무가 잘 자라듯 셰이드 트리 아래서 자라는 커피나무는 더욱 싱싱해지고 수확량이 많다고 한다. 셰이드 나무가 무슨 종류의 나무인지는 알지 못했지만(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형은 우리의 자귀나무와 비슷하며 키가 크고 가지가 길고 가지에 많은 잎들이 달려 시원한 그림자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세계의 커피 애호가들이 동티모르 커피에 주목하는 것은 이곳의 커피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하거나, 농약, 화학비료 등으로 재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차량 수송이 되지 않는 동티모르 고산지대에 아직까지 그런 투자를 하는 커피회사는 없다. 커피농사로 힘들게 1년을 먹고 사는 그 지역주민들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그러기에 동티모르 커피는 야생과 원종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가난이 오히려 좋은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커피회사인 스타벅스도 2003년 3,053t 의 동티모르産(산) 원두를 수매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동티모르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구매해 가고 있다. 스타벅스가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동티모르 커피의 품질이 세계인의 입을 감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나그네가 방문한 커피 생산마을인 ‘로뚜뚜’는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12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두어 시간 차를 타고 서너 시간 산을 오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그네는 2박3일 만에 로뚜뚜에 도착했다. 산으로 산으로 이어지는 느린 도로를 1박2일을 달려 ‘사메’라는 지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다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로뚜뚜란 마을을 만났다. 로뚜뚜가 속한 광역단위가 ‘마누파히’이며 시·군단위가 ‘사메’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누파히道(도) 사메郡(군) 로뚜뚜面(면)이다. 그 로뚜뚜에는 6개의 里(리), 마을이 있다. 로뚜뚜는 동티모르에서 3번째 높은 산인 가브라키(해발 2,360m) 산자락에 부족단위로 모여 사는 산마을이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운동장을 가진 초등학교, 주민들의 치료를 위해 부정기적으로 약사가 오는 클리닉(우리의 보건소), 일요일 아침 9시에 문을 여는 작은 가톨릭 성소가 유일한 공공건물이다. 로뚜뚜 사람은 가브라키산 정상을 오르는 일을 부족 전체의 원로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겐 입산을 허락하지 않는다. 산이 노한다는 것이다. 로뚜뚜 사람들이 산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산에 커피나무가 자라기 때문이다. 산과 하늘의 해와 달과 별, 비와 바람이 전부인 로뚜뚜 마을에 커피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가브라키 산의 축복이다. 로뚜뚜 마을 주민들이 숭배하는 산인 가브라키에는 산의 축복처럼 야생 아라비카종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산 속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는 커피나무들이지만 주인 없는 나무가 없다. 그래서 남의 커피 열매를 절대 따지 않는다. 그건 로뚜뚜 마을 사람들의 정직함과 순박함이며 또한 마을 공동체가 지켜나가는 불문율이다. 이 로뚜뚜 마을에 꿈이 생긴 것은 2005년이다. 당시 동티모르 대통령이었던, 사나나 구스마오 현 총리가 한국을 비공식 방문하고 한국 YMCA 중앙회(이하 한국Y)에 요청해 이 오지마을에 ‘커피가공공장’이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Y는 로뚜뚜 마을과 ‘공정무역’(Fair Traed)을 체결하고 ‘피스 커피’란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 ‘공정무역’은 세계NGO들이 가난한 국가의 저소득층 국민을 돕는 대표적인 무역정책이다. 가난하다고 무작정 돕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거래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자생력으로 키워주는 일이다. 로뚜뚜 마을에 커피가공공장을 만든 한국Y는 2005년 10t, 2006년 20t, 2007년 24t의 품질 좋은 원두를 생산해 전량 한국으로 수출했으며 올해 생산량은 30t으로 잡고 있다. 한국Y의 공정무역은 동력기계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햇빛과 바람과 물과 그리고 사람의 손을 이용해 친생태적인 커피를 만드는 것에 있다. 로뚜뚜 커피가공공장은 커피시즌엔 매주 월, 수, 금요일에 붉게 잘 익은 커피 열매(레드체리)를 수매하고 가공장은 주일인 일요일을 제외하고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레드체리 kg당 25센트로 구입하다가 올해는 30센트로 올렸다. 물론 그 값은 한국Y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6개 마을 대표와 로뚜뚜를 대표하는 원로 등 9인의 원로회의를 통해 결정이 된다. 동티모르의 대규모 커피상들은 커피 열매 수확량에 따라 레드체리의 가격을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지만 한국Y의 공정거래는 한 번 결정된 가격은 커피 시즌이 끝날 때까지 변동이 없다. 또한 다국적 커피상들은 당일 대금을 지불하지만 한국Y는 주급제로 커피 열매의 값을 지급하고 있다. 산간지역에서 커피 열매 이외는 별 수익이 없는 이 지역주민들에게 커피 열매는 경제(달러)에 대한 관리감각을 익히게 하고 있다. 가격에 대한 이 2가지 원칙을 고수하는 조건으로 로뚜뚜 마을 주민들은 반드시 익은 레드체리만, 그것도 그날 딴 레드체리만을 가지고 온다. 커피 열매는 하루만 두면 酸化(산화)를 시작해 커피의 맛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제 딴 커피 열매가 들어 있거나 익지 않은 푸른 열매가 들어 있으면 감독관인 원로회의에서 수매를 하지 않는다. 나그네는 그들의 공정거래를 지켜보면서 참 아름다운 거래가 가브라키 산자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Y의 공정무역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커피 시즌에 1인당 월 120불의 급여를 지불하는, 연인원 6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올해만도 10만 불 이상의 현금이 로뚜뚜 지역에 공정무역에 대한 정당한 가격으로 지불될 예정이다. 로뚜뚜 주민들은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 온 가족이 커피를 따서 저물 무렵 가공장 수매장으로 돌아올 때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일주일마다 수매가격을 현금으로 받으며 그들은 다시 일주일을 꿈꾼다. 공정무역을 통해 그 꿈이 일 년 열두 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한국Y의 꿈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로뚜뚜이지만 커피 시즌에는 가공공장에서 발전기를 돌려 몇 개의 알전구가 환하게 켜진다. 멀리서 별빛처럼 빛나는 그 불빛을 바라보는 로뚜뚜 사람들의 가슴에도 ‘메히’(꿈의 테툼어)란 알전구가 커피 시즌 막바지인 오늘도 켜지고 있다. 글 정일근 기획위원 / 사진 안남용 다큐멘터리 사진가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미네르바 정체 암시’ 글 전문

     21일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네티즌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새벽 2시쯤 포털사이트 다음의 논쟁 사이트인 아고라에 ‘read me’란 필명의 네티즌은 “‘미네르바’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인 K씨”라고 글을 올렸다.  ●다음은 read me가 다음 아고라에 남긴 글의 전문  오늘같은 밤,  겨울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은  런던의 워털루역 앞 길고 어둡고 지린내나는 지하보도의 벽에  낙서처럼 남겨진 이름 모를 시(詩)를 생각나게 한다.  I am not afraid as I descend,  step by step, leaving behind the salt wind  blowing up the corrugated river...  (우리는 저 암흑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두려워 않으리...) 사실 미네르바 개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안 쓰려 했다.  그런데...  어떤 누구에게서 한밤중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K란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극비사항인데... K가 바로 아고라의 미네르바 라는군...    K... 01001011...    모교 동기 중에 그런 이름의 희미한 얼굴이 스쳐갔다.  삼십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추억이다.  내 자신 이십여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K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런던 시티 어디에선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면 외로운 이방인이 영란은행 앞 킹 윌리암 거리를 따라 내려와  캐논 거리 코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빨대로 마시며  진로 소주를 병 째 빨아대던 그 겁없던 시절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근처 다이와 보험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인 젊은 무리들을  동경 반 경멸 반 흘려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잊으려고  로이터 터미널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런던 브릿지 위에서  남쪽 강변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는지도...  내가 워털루 다리 밑 사우드 뱅크의 노점에서 헌 책을 뒤적이고 있을때  K는 사우드와크 다리 양쪽 LIFFE와 FT에서  텔렉스와 컴퓨터와 마이크로필름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두 에트랑제가 아마 그 시간 테임즈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십 수년이 또 지나고...  나는 아직도 부(富)란 무엇이냐는 형이상학의 질문에서  수도원의 늙은 유폐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K는 그동안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그에 걸맞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그가 올라가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지도 않았다.  구태여 그래야 할 이유나 핑계도 없었다.  동창이란 것 외에 우리의 관심이나 특히 처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옛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피하며 살았지만,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쫒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날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의 화신을 만난다.  십 수년 전...  테임즈 강변 사우드와크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떠올린다.  아테나의 파르테논을 연상시키기에는  너무나 소비에트적인 현대식 건물과 우중충한 거리.  의미도 모른 채 예쁜 이름이 참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마치 낡은 화력발전소 속에 숨어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처럼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갈등과 타협이 이해할 수 없이 얽혀진  그런 모순의, 그런 도시의, 그런 건축의, 그런 이름 이구나...  라는 느낌을 흘려 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불가사이의 미네르바를 여기 아고라에서 다시 만난다.  좌절과 희망과 평화와 복수와 수학과 역사가 동시에, 모두,  엄청난 파괴력으로 폭발하는 그의 글을.    K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의 수호신이었다.    삼십여년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어린 시절 6년의 긴 시간을 같이 부대끼며 지냈겠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이른바 명문학교의 얼마 안되는 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지,  좀 더 촌구석에 살았던지,  좀 더 생활이 어려웠던지 (당시는 모두 못살았지만), 아뭏든...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K를 미네르바의 암호에서 해독한다.  토끼처럼 유순했던 아이가 어느날 외로운 늑대가 되어 돌아왔다.  비밀의 가면 뒤에서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현란한 검술을 뽐내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또는 고탐 시의 억만장자 흑기사 뱃트맨이 어울릴까.  무엇이 그를 정의의 분노에 불타게 했을까.  지금 그 나이와 그 명성에...  뭇 사람들이 선망과 질시를 함께 느껴야 할  지금 그처럼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그가 속한 하이 소사이어티의 남들은  탐욕의 절정에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을 가지기 위해  금력과 권력을 휘둘러 힘없는 자를 탄압하며 갈취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풍요와 안락의 유혹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저 아래 천민의 편에 서서 저 아래 천민을 위하여  자기가 그 정점에 앉아 있는 자기 발 아래의 피라미드를 부수고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열과 노력으로...  왜?  모든 것을 가져본 자의 한낱 변덕일까?  청년 시절 하지 못한 초로의 때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 슘페터가 말했듯이 -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의 극대점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의 이상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체제 내적 모순의 변증법적 완성일까?  자기 자신을 불살라 없애는 생산적 에로스의 충동일까?  생명의 원죄를 드디어 깨달은 종교적 속죄 의식일까?  아니면... 저 멀리 아마존 숲 속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슈퍼 컴퓨터 미네르바의 프로그램에 삑. 삑.. 삑...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일까?    왜 K는 자기가 있는 이너서클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할까?    70년대 폭압과 혼돈의 대학시절,  민주와 자유의 선구적 외침 속에서 나는 K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의 이상주의는 철저한 현실주의 밑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나와 같이 영원히 무능한 회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가 된 이제, K는 미네르바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중학입시를 경험한 세대이다.    나는 국민학생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리는 내 또래 소녀의 어두운 포토 리포르타쥬를, 어른들이 보는 신동아에서 읽은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월남전과 두브체크와 꽁방디를 거쳐 오일쇼크와 검은구월단과 아라파트와 바더 마인호프와 그리고 딥퍼플과 마리화나가 대변하는 해방의 시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주의 사회의 이른바 자유경쟁은 우리를 능력 껏 뛰게 해주는 자유가 아니라 발을 얽맨 노예의 사슬이었고 시험은 우리에게서 상상과 비판을 박탈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차라리 군사교육 교련은 운동장에 나와 공기를 마시고 동무들과 장난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옥은 오히려 자유에의 투지를 키우는 장소이며 전체주의는 내일에의 희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의 작은 꿈,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나라 만들거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는 나라,  미군 트럭 뒤를 쫒아 뛰며 지아이에게 기브 미 껌,  쵸콜렛 냠냠 손 내밀지 않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속의 이윤복 같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  언젠가 우리는 그런 나라 만들어 행복하게 살거야 라고.    우리 세대가 지난 삼십여년간 이룬 것은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나라가 아니었다.  더 살벌한 경쟁과 더 잔인한 교육과, 더 오만하고 더 탐욕스런 부자들과,  더 가난하고 더 불쌍해진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파트라 불리우는 콩크리트와 플라스틱의 쓰레기 속에서 생존의 무자비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변태의 사회.  정치인들은 더 추해졌으며, 공직자들은 더 썩었으며,그 부정과 부패를 교활히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법과 규제와 관습과 편견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얽어맨 그런 세상.  어느날 삼십년간 잊어왔던 내 모습을 봤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비겁하고 무식한 돼지였다.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겠다는 거짓 희망과 거짓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속여왔다.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힘을 휘두르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 자에게 가까이 붙기 위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권위와 폭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노예사회에 종속시킴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장차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 믿으려 해왔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나의 가장 탐욕스런 이기일 뿐이었다.  나라의 성장은 내 신분상승과 재산형성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러이 보이고 싶어한 이 사회는 결국 거대한 분뇨 덩어리였다.    불행하게도 개인의 부의 총합은 국가의 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부란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스칼라 량(量)이 아니며, 그것을 더하려는 행위 자체가 궤변이다.  -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케네 -    미네르바는 오늘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미네르바이다.  나는 삼십년전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K...  넌 2반이었지, 이과반.  담임이 오래 전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  난 문과반이었지만 제일 좋아하던 분이었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넌 기억나니, 그 시절이?  * * *  이것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비밀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다.  미네르바가 노란 토끼의 미래를 이곳에 예언해야 했듯이  나는 미네르바의 과거를 이곳에 증언한다.  왜?  미네르바의 현재는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일 미네르바의 신분이 이 정권에 의해 폭로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 강만수와 그 수하 한나라당이 내세워왔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데올로기가 그 순간 몰락하며,이 정권 자체가 파멸의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왜?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기 때문이다.  극상위층의 대표적인 인물 K가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일부 상위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수탈주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완전한 개.사기이며 날.강도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이데올로기의 정강 위에 세워진 한나라당 세력의 정치적 존재 자체는 허구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절대왕조와 중금주의의 야합에 불과한 소위 공급주의 친기업정책,  무한경쟁 약탈경제를 내세운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교육의 상업화와 룸펜 부르조아지들의 천박한 귀족화,  복지와 후생과 군비의 감소,  그에 따른 국론의 분열과 국력과 국방의 쇠퇴,  실용주의를 빙자한 맹목적이고 고립적인 사대주의,  게다가 오만한 독재와 언론의 독점...  이 모든 것은 국가 파괴를 구성하는 죄목일 뿐이다.    소망교회 장로정권이 절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던 돈의 신(神)들 중에서도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지혜로운 신 미네르바가 나를 향한 너희의 거짓 예배는 신성모독일 뿐이라며 분노한다.  너희의 주인인 0.1% 부자는 너희들 아랫 것 0.9% 졸부들의 패악한 정치를 부정한다.  너희가 경제를 빙자하여 국민에게서 강탈한 장물들을 나에게 뇌물로 바치려들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며, 기업가를 위함도 노동자를 위함도 국부를 위함도 국민을 위함도 아니며, 다만 국가를 욕되게 함이라.    기회주의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그들이 영구독점하는 시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내세울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며 이상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얼굴 K,  일류학교 일류직장 일류기업의 일류코스를 모두 밟은 초글로벌 리더 최고선진 CEO의 얼굴인 K는 이제 기생충 계급의 일류선진국 데마고지가 숨기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얼굴 없는 미네르바로 돌아왔다.  이 정권이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기려 함은 이 정권 스스로의 손으로 아포칼립스 제7의 봉인을 뜯어 한 때 마리 앙뜨와네트의 가증스런 무식을 단두했던 그 시퍼런 날이 정권의 목 위에 떨어지도록 자초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미네르바와 국민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것이다.  오만과 아집이 과연 목숨보다도 소중하지는 않겠지.  국민의 안녕과 따라서 정권의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이명박과 강만수는 국가의 부도를 맞기 전에 정권의 부도를 자백해야 한다.  숙주(宿主)가 죽는다면 기생충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상식 쯤은 물론 알고 있겠지.  이 정권의 추종자들이 자기 생존의 본능까지 버릴 정도로 최소한의 이성 마저 잃고, 감히 미네르바와 국민들에게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망교회 이명박 강만수 광신장로들이 성서의 억지해석을 바탕으로 패륜목사들의 꾐에 혹하여 운명을 그르칠까봐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악하고 탐욕한 장로정권의 자멸에의 충동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A Dieu!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96246&hisBbsId=best&pageIndex=7&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아빠도 뿔났다

    아빠도 뿔났다

    TV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올린 채 지난 9월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를 본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된 생각 하나가 있다. ‘아빠는 그럼 뭐야? 오히려 아빠가 더 뿔이 날 지경이 아닌가?’ 그렇다. 아빠도 뿔났다. 김수현 작가가 은근히 노린 점도 이것일는지 모른다. 김 작가라면 충분히 그걸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아빠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우선 제일 나이가 많은 아빠로 이순재 할아버지가 있고, 백일섭, 김용건, 김정현, 그리고 류진 등이 있다. 그렇다면 아빠들은 뿔이 나지 않을 만큼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극 중 할아버지 역을 맡았던 이순재 씨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홍택(이하 정): 축하합니다. TV 드라마에서 키스신을 한 최고령자가 되셨더군요. 이순재(이하 이): 허허허, 그런가요? 그거 제가 아이디어 낸 겁니다. 처음엔 대본에 없었는데 노인들도 연애하는 내용을 집어넣자고 김수현 작가하고 연출자에게 제안했죠. 요즘 노인 인구가 많아졌잖아요. 65세 이상이 500만 명이라는데 그분들에게 힘을 드려야죠. 내 생각에는 이런 연애 장면을 본 많은 노인들이 자기관리를 할 것입니다. 노인들이 연애를 하면 집안에서 투정이 없어진답니다. 물론 불륜 말고 혼자 사는 노인들 이야기죠. 정: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이: 리얼리티(Reality)가 아닐까요? 어느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스토리 전개, 대가족의 모습에 대한 시청자들의 부러움 등이죠. 자칫하면 무관심해질 수 있는 일상에서 서로 낄낄거리며 부딪치며 사는 재미, 그리고 이른바 스킨쉽 같은 것을 느끼는 점이 김수현 작가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페이소스가 있는 상황 전개가 시종 지켜지는 것 말입니다. 온기가 느껴지는. 정: 드라마에서 보면 아빠들도 뿔날 일들이 많은데 거의 화를 내지 않더군요. 이: 제목이 <엄마가 뿔났다>인데 아빠까지 뿔내면 복잡해지지 않을까요? 허허허. 그렇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아빠들이 뿔날 일이 많이 있는 것을 시청자들이 느낄 겁니다. 정: 제일 연세 많은 아빠, 즉 할아버지 역을 하면서 화날 일이 많던데요. 강부자 씨가 술 마시고 엉엉 운다든지 미국 간 막내아들 김상중이 이혼을 한다든지. 이: 그럼요, 많았죠. 그러나 화내는 대신 연애하는 것으로 풀었잖아요. 허허허. 그런데 지금 강부자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 또 느낀 거지만 그녀는 정말로 몸을 던져서 연기를 했어요.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예요. 장미희도 오랜만에 좋은 역할을 맡았고. 다들 잘했습니다. 정: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요즘 세상에 아빠들이 뿔날 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이: 그래요, 그래요. 아빠들, 또는 남편들이 뿔날 일들이 많아요. 주도권이 남편한테서 부인에게로 이전이 되었거든요. 통장 주도권이 여인들, 엄마들에게로 가 있습니다. 자연히 남자들이 왜소해집니다. 그리고 잠재해 있던 여자들의 권리가 표출되게 되죠. 학교에서도 보면 우먼파워가 강합니다. 여권상승입니다. 내가 늘 보는 것이지만 골프장 주변에 있는 고급스럽고 비싼 식당에 가면 여자 분들이 더 많아요. 이거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죠. 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사사건건 아빠들이 뿔낼 수도 없고. 이: 편하게 살아야지요. 하지만 정말로 뿔날 때는 뿔내야죠. 화날 때 화를 안 내고 살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죠.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입니까? 어떤 때 보면 아빠들이 불쌍할 때가 많아요.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것들 좀 보십시오. 아빠들, 그러니까 남자들이 완전히 기죽어서 살고 있잖아요? 문제는 인간의 가치관, 가족의 가치관 등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정: 진짜, 말이 나왔으니까 얘긴데 이순재 씨는 거의 대부분 카리스마가 강한 아버지 역을 많이 했는데, 요즘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기를 피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걸 보면 어때요? 이: 딱하죠. 그거 왜 그런 줄 아세요? 모두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 드라마 작가들이 편모 슬하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아요. 이상한 일이죠. 우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어떤 위치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슬플 때가 언제인지, 기쁠 때는 또 언제인지, 그런 것들을 섬세하게 알고 있지를 못한듯 해요. 이를테면 아버지라는 자리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면이 어느 정도 드라마에 반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정: 이 선생은 가정에서 뿔날 일이 없나요? 이: 나라고 왜 없겠어요. 많이 있겠죠. 하지만 나는 집에서 별로 뿔낼 일 없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아내(최희정 씨)가 한국무용을 했는데 나한테 시집오느라고 꿈을 접었죠. 정: 그럼 부인께서 뿔이 나시겠네요? 이: 웬걸요. 잘 안 내요. 화나는 일이야 많겠죠. 촬영한다고, 녹화한다고 허구헌날 늦게 들어오고, 좋기만 하겠어요? 정: 정치할 때 부인께서 고생 좀 하셨겠네요. 이: 했죠. 집사람이 고생 많았어요. 사실 나는 정치를 하려고 마음먹지는 않았습니다. 하려고 했으면 일찌감치 했지, 그렇게 늦게 합니까? 13대 국회의원 선거(1988년)에서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갑자기 서울 중랑갑에 출마를 해서 실패를 했죠. 700표 차로 떨어졌습니다. 너무 시간이 짧았거든요. 4년 뒤 14대 선거에 다시 출마해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출마를 안 했습니다. 한 번 했으면 되지 뭘 자꾸 합니까.” 정: 정치를 하면서 뿔날 일이 많았나요? 이: 아이구, 많다 뿐입니까? 하지만 ‘정치는 제대로만 하면 예술이다’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예술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대통령이나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이익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현직에 있을 때 국가를 위해서 큰일도 못한 사람들이 고향 집을 크게 만들고, 이것저것 꾸미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정: 정치는 이제 다시 안 합니까? 이: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직업이 배우니까 연기로 봉사해야죠. 정: 자녀들이 있을 텐데 아빠로서 뿔날 때는? 이: 아들하고 딸이 있어요. 근데 딸이 결혼을 해서 남매를 낳는 바람에 내가 외할아버지가 되었죠. 아이들 때문에 화날 일이 있으면 나는 화를 냅니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 그런지 아이들 때문에 뿔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정: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이: 11월 초에 시작되는 MBC-TV 일일 연속극 <사랑해, 울지마>에 나갑니다. 박정란 작, 김사현 연출입니다. 지금 한창 연습 중이죠. 이순재 씨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그는 노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얘기를 이끌어 가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신구 씨, 최불암 씨 등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뿔날 때는 뿔을 내고, 낄낄거리고 웃기도 하는 그런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이면서 아버지이기도 한 역할을 재미있게 엮어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빠가 뿔났다’가 아닌 ‘아빠가 신났다’를 만들고 싶은 듯하다. 뿔날 때 제대로 한 번 뿔을 내보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위치는 어디일까.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아들이 진 빚을 갚아 주느라고 쩔쩔 매다가 “내가 왜 아버지가 되었는고?” 하고 한탄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딸을 시집보내 놓고 허전함을 못 이겨서 계속 편지를 보낸 아버지가 있다. “이 집은 언제나 너의 집이니 아무 때나 집에 오렴”이라는 편지를 보낸 아버지는 영국의 왕 ‘조지 6세’이고, 시집간 딸은 바로 오늘날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글 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행복의 원천은 일용할 양식에 있다

    행복의 원천은 일용할 양식에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평단리에 원경선 옹이 산다. 한국 나이 95세. 긴 세월을 농사 위주의 삶을 살아 왔고, 지금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 농부인가. 그렇다. 그런데, 씨앗 뿌리고 가꾸어 거두어들이는 일을 오랫동안 반복해 온 단순한 농부가 아니다. 원경선 옹은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을 평생 동안 실천하며 살아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니, 사람으로 살면서 이 말씀을 실천하며 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시골을 도는 시내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어렵게 찾아간 원경선 옹의 농장 이름은 ‘평화원’. 이곳에 가면 원경선 옹과 함께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서 원경선 옹의 농장을 찾아들어 온 이들인데, 일하고 먹고 잠자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식당 예배당 회의실 작업장 사무실 응접실 등등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다목적용으로 지은 지붕 높은 집에서 밥 때가 되면 식탁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긴 탁자에 마주 앉아서 원경선 옹의 이야기를 듣는데, 정오가 조금 지나자 농장에서 일하다 점심을 먹으러 돌아온 이들이 한 둘씩 집안으로 들어선다. 농장의 총무로 일하는 젊은 부부는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당연히 목회자가 꿈이었는데, 농장에 와서 원경선 옹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함께 살기 시작했단다. 이들 부부는 원경선 옹에게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종교를 삶에서 실천하며 사는 아주 드문 분. 이들 부부 외에 홀트 복지재단에서 데려온 두 사람은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한, 언어 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는 이들이다. 그들을 ‘평화원’으로 데려올 때 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맞아서 이가 세 대나 부러진 상태였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복지재단을 설립했던 홀트 씨는 원경선 옹의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였다. ‘평화원’은 홀트 씨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 원경선 옹의 의지가 만든 보금자리. 삶의 평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한 가족을 이루어 꾸려가고 있는. 일용할 양식 이들의 점심 메뉴는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김치와 콩나물 같은, 집에서 늘 먹는 서너 가지의 반찬과 현미로 지은 밥. 큰 그릇에 이 반찬들과 밥을 담아 놓고는 접시 하나에다 자신이 먹을 만큼씩 각자 덜어서 먹는다. 뷔페인 셈인데, 원경선 옹도 늘 이들과 함께 먹는다. 점심을 먹으면서 직전에 들었던 원경선 옹의 말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된다. 남기지 말고 축적하지 말아야 한다.” 원경선 옹의 고향은 북한이다. 11세까지 평안남도에서 자랐고 11세 이후 황해도로 이주했다. 거기서 원경선 옹은 종교와 만나게 되었다. 평생을 지배해 오고 있는 정신의 거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23세 때 어머니와 서울로 오게 되었는데, 출사 사진 찍는 일을 했던 이 청년은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 기독교 자유 전도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렵고 가혹했다. 먹고 살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에 귀국해 국내에서 돈벌이를 시작했다. 미군부대의 토목청부업을 해서 번 돈으로 경기도 부천에다 1만 평 농장을 마련했다. 원경선 옹의 실천하는 삶의 기초가 마련된 셈인데, 이 농장 경영을 바탕으로 원경선 옹은 자유 전도자로 농촌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한다. 미군부대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미군 군목들과 친교를 맺어 하우스 보이들에게 낮에는 성경을 공부시키고 하루의 반은 일을 하게 했다. 이 농장의 이름이 바로 ‘평화원’이다. 이곳에서 원경선 옹은 바른 먹거리 농사를 시작해서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했다. 이 유기농법을 바탕으로 올바른 농법을 지향하는 ‘정농회’를 창설하고 사유의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한삶회’도 설립했다. 공동체 정신 우리들이 마켓에서 만날 수 있는 ‘풀무원 식품’은 이 농장에서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기업화 한 것. 일용 양식을 남기지 말고 축적하지 말고 함께 먹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평화원’의 근본정신을 일생을 통해 일관되게 실천해 오고 있다. 누구든 ‘평화원’에 와서 일하고 먹어라. 일용할 양식을 목표로 함께 일해라. 원경선 옹의 평생 지론이다. 평안한 마음과 큰 꿈, 인류를 위해 남을 도우면서 살아오려 했다고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정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을 게 있어야 평화도 이룰 수가 있는 거라고. 북한 고향에 다녀오신 적이 있느냐고 묻자 구호 관계로 두어 번 평양에 가본 적이 있고 고향 20여 리 근처까지도 갔었는데, 일행들이 있고 무엇보다 길이 없어져서 고향에 가보지 못했단다. 향수에 대한 회한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한데 원경선 옹은 이런 개인적인 사정들에는 집착을 버리고 살아온 듯, 남들을 위해 무엇을 할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원경선 옹을 만나보면 종파와 계파를 떠나 참 종교인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상의 모든 경(經)들은 옳고 마땅한 말씀들로 채워져 있다. 단지 이를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기가 어려울 뿐인 것. 원경선 옹은 삶에 대한, 종교에 대한 경건성을 갖게 한다. 누구나가 원하는 호의호식의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있는 삶. 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 ‘환경정의시민연대’를 창설한 환경운동가로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글로벌500’상을 수상하고, ‘교보환경대상’도 받았지만 이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닌 관련 자료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원경선 옹의 면모가 엿보인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조곤조곤 말하는 원경선 옹이 방금 점심 식사를 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일간신문을 넘긴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온 나이에도 안경 없이 신문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건강과 행복이라니. 열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게 해주고 남을 위해 살아오게 해준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오늘을 사는 원경선 옹의 모습이 잔잔한 가을 햇살처럼 평화롭다. 종교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 남기지 말고 자신을 위해 쌓아두지 말고 다 베풀라는 ‘평화원’의 정신은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의 현실을 그 원인과 대책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참 평화와 참 행복은 어려운 데 있는 게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원경선 옹을 만나면 그런 기쁜 확신을 갖게 된다. 글 최준 기획위원 월간 <삶과꿈> 2008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TV수신료 인상 공감대 형성”

    신문법이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돼 처리될 전망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은 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신문법을 처리하겠다.”며 “신문법에 대해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과 헌법 불일치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고치지 않으면 국회의 직무유기가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06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판단 기준과 정정보도 청구 절차, 신문발전기금의 지원 대상 등과 관련해 위헌 및 헌법불일치 결정을 받은 신문법 조항 등을 중심으로 이번 국회에서 개정이 논의될 전망이다. 고 위원장은 신문법 개정 방향과 관련,“독과점 정의 규정, 언론중재법에서 중재신청인 조정 등의 부분을 우선 손질하겠다.”며 “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문의 방송 진입을 제도화하는 문제도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KBS 수신료와 관련,“27년 전에 책정된 2500원의 수신료는 당시 일간 신문들의 한 달 정기 구독료인데 지금은 그 구독료가 6배가량 올랐다.”며 “그동안 물가나 제작비 상승 등을 감안, 문방위 차원에서 인상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 위원장은 “현재는 언제, 어느 정도의 폭으로 올린다는 결정이 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Smile again]아이들의 유머감각 칭찬이 키운다

    [Smile again]아이들의 유머감각 칭찬이 키운다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일요일 아침에 MBC에서 방송되는 <환상의 짝꿍>이라는 프로그램이다. 5명의 아이들이 연예인과 팀을 이루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특히 아이들의 솔직함과 순진함이 뒤집어지는 유머가 된다. 얼마 전에도 아내와 함께 <환상의 짝꿍>을 보다가 너무 너무 웃겼던 대목이 있다. MC 김제동 씨와 출연한 어린이의 대화 내용이다. 김제동: 엄마 나이가 몇 살이야? 아이: 몰라요~ 김제동: 그럼 엄마 띠는 무슨 띠야? 아이: 엄마는 띠가 없어요~ 태권도도 안 하세요~ 단순함은 늘 유머의 원천이다. 그리고 아이의 유머는 대부분이 단어놀이임을 알게 된다. 얼마 전에도 출연한 한 아이가 물었다. “‘저기도 화장실 문 앞에 똑똑하세요’라고 써 있는데 똑똑하면 똑똑해져요?” 세상에 대한 어린이의 호기심은 어른들의 기대를 완벽하게 저버리면서 유머가 된다. 아이들을 살펴보다 보면 아이들은 타고난 유머꾼이며 유머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형님의 아들 또한 개그맨 수준이다. 그 형님의 아들이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오더니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말하더란다. “아빠! 우리 반은 진짜 신기해요. 전부 다 호랑이띠밖에 없어. 신기하지?”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유머에 어떻게 반응하고 웃어주느냐이다. 그에 따라 아이들의 호기심과 유머감각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7~8세에 발달하기 시작하는 유머감각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아이들의 질문과 웃음 만들기에 반응을 해줘야 재미를 들인 아이들은 유머와 웃음을 반복하게 된다. 아이를 유머감각과 재치가 넘치는 아이로 키우는 첫 번째 방법은 아이의 유머에 조금 과장되게 반응해 주는 것에 있다. 큰 웃음소리와 박수를 치는 것은 기본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와,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네”라는 칭찬의 말로 반응해줘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이 붙어서 자꾸만 웃기려고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난이나 썰렁하다는 판단은 아이의 유머적 상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며 반복적인 비판은 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게 된다. 나는 지난 4년 가까이 매일 유머를 연구하고 사람들과 나누지만 재미없다, 또는 썰렁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며칠 동안 유머를 입에 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다. 유머에 대한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유머를 구사할 줄 안다. 그리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우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생각을 넓혀준다. 내가 아는 멋진 유머가 있다. 한 부부가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아들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러자 상황을 간파한 아들이 먹던 호빵을 반으로 잘라서 부모에게 하나씩 주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는 두 개 호빵 중에서 어느 쪽 호빵이 더 맛있을 것 같아? 난 두 쪽 다 맛있을 것 같은데….” 아이의 유머감각을 키우는 두 번째는 정기적으로 유머를 나누라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나누게 되면 서로 어떤 유머에 반응하는지 알 수 있게 되며 유머 눈높이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장 멋진 유머는 유머 퀴즈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은 시시해 보이는 유머지만 아이들에게는 명품 유머가 된다. 몇 가지 소개한다. - 일본에서 제일 방귀를 잘 뀌는 사람은? 아까끼고 또끼고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은? 뭐 하나도 몰라 유머는 세상을 좋게 보이도록 유도하는 지혜이다. 그 귀중한 지혜인 유머감각은 칭찬에 의해서만 발견되고 성장한다. “우와, 정말 재미있다”라는 말이 아이를 지혜 있는 웃음꾼으로 만든다. 최규상의 유머발전소 [재미있는 유머] 중고등학생 생태 학습 자원봉사를 위해 안면도 생태마을에 다녀왔다. 학생들과 생태마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관광버스에서 한 아주머니가 내리더니 물었다. “아저씨, 이 마을에서 생태찌개를 젤 잘하는 식당이 어디에요?” 글 최규상 웃음코치, 유머코치, 한국유머발전소 소장, 최규상의 유머편지, 유머발전소 카페 ‘최규상의 유머편지’를 받으실 분은 한국유머발전소 에서 유머편지를 신청하시면 됩니다.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행복어 사전] 꿈이 그냥 떠나가게 하지 마라

    [행복어 사전] 꿈이 그냥 떠나가게 하지 마라

    사람들은 꿈을 간직한 채 “나는 꿈을 가졌어”라고 말해. 그리고는 가끔 꺼내보면서 ‘그래, 아직 꿈이 있어’라고 생각하며 안도한단다. 하지만 상자 속의 꿈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상일 뿐이야. 자신의 꿈을 말만 하고, 생각만 하고, 계획만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에겐 허황된 꿈으로, 실패의 삶을 살게 되는 거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성공의 삶을 살게 된단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은 바꾸지 않은 채 결과만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이며, 꿈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야. 현실에 안주하면서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꿈만 꾸고 생각만 한다면 진정한 삶의 변화는 얻을 수 없어. 꿈은 자기를 변화시키는 힘이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하잖아. 꿈의 크기가 미래를 결정해. 꿈이 크면 클수록 또한 많을수록 삶에 힘을 불어넣는단다. 씨앗은 때를 기다릴 줄 알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면서 꿈을 키워가고 현실화 시킨단다. 꽃 피기 전까지 혹은 열매를 맺기 전까지는 그 씨앗이 무엇이 될 것인지 모를 때도 있어. 그렇다고 씨앗을 땅에 심지 않으면 꽃도 열매도 볼 수 없는 것이란다. 꿈도 마찬가지란다. 뱁새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독수리가 되기를 꿈꾸지 마라. 독수리가 되고 싶다면 독수리 떼와 함께 날아야만 하는 거야. 꿈을 단단히 붙들어야 해. 꿈을 놓치면 네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독수리일 뿐이야. 정말로 독수리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비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독수리가 사는 곳으로 가야만 해. 그 열정이 바로 꿈을 구체화 시키고 현실화 시키는 거야. 네 꿈이 그냥 떠나가게 하지 마라. 꿈을 잃어버리면 원하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어. 자신이 원하는 것, 되고 싶어 하는 것을 확실하게 그려라. 그리고 실현된다는 확신을 가져. 꿈이 희망이나 단순한 꿈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야. 비록 네 꿈의 씨앗이 아주 작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돼. 꿈이 있으면, 그 꿈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어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어떠한 시련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도 꿈을 포기하거나 절대로 꿈을 잃지 말거라. 설사 꿈이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꿈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이란다. 날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꾸면서 인생의 지도를 그려라. 그 꿈을 절대로 놓치지 마라. 만일 이미 떠나가 버렸다고 느낀다면 찾아가서 그 꿈을 꼭 붙들어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보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실천하라.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선물이 주어진단다. 꿈을 이루기 위해 꿈틀거리는 내 안의 작은 혁명, 그 혁명을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는 두려움과 망설임에 맞서는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야. 세상의 모든 위대함은 가슴 뛰는 꿈을 향한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단다. 꿈이 바로 네 앞에 있다. 그 꿈을 그냥 떠나보내지 말고 손을 뻗어 꼭 붙들어라. 글 이지상 자유기고가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정거장]버스 정거장 벽화에 ‘좋은 세상’이

    [정거장]버스 정거장 벽화에 ‘좋은 세상’이

    ‘좋은 세상’이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사상과 작품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고지는 ‘좋은 세상’이었다. 좋은 세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의 대답이 똑같지는 않겠으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같을 것이다. ‘행복’. 그리고 행복은 소통과 이해를 전제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 버스 정거장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소통과 이해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우연히 찾은 시골 버스 정거장에 멋들어진 벽화가 그려져 있다면 이 사람들을 생각하자. 좋은 세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미 좋은 세상이라고 대답하는 이 젊은이들을. 한 청년의 비운에서 시작된 ‘좋은 세상 만들기’ 한 청년이 시골 버스 정거장에 앉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 납골당 옆에 자리한 살풍경한 정거장은 청년의 마음과 꼭 닮아 있다.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끝내 세상을 등진 아버지, 삶의 이정표를 잃고 방황하는 자신…. 캄캄하게만 여겨지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삭막한 정거장이 제 모습인 것 같아 더욱 씁쓸해진다. 며칠 후 거센 장맛비를 맞아가며 다시 정거장을 찾은 청년, 세 명의 후배를 대동하고 페인트 통까지 들고 있다. 네 사람은 빗물을 받아 붓을 빨고 을씨년스러운 콘크리트 벽에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환하면 내 마음도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낙담에 빠져 있던 청년이 기분 전환처럼 그린 그림. 그것이 ‘좋은 세상 만들기’와 이 단체의 대표 프로젝트인 ‘시골 버스 정거장 그림 그리기’의 첫 발자국이었다. 아버지의 투병 당시, 정수 대표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는 미술학도였다. 하지만 복학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그때,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만 했다. 택시를 몰고 배를 탔다. 지방을 떠돌며 막노동판을 전전한 것도 수개월.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벽화 아르바이트를 도와주러 간 것을 계기로 그는 본격적으로 그 일에 매달렸다. 잘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니 능률이 오르고 열의가 생겼다. 다행히 수익도 늘어나 병원비를 충당하는 게 이전보다 수월했다. 그 과정에서 정수 대표는 100호짜리 황금비율 화선지보다 제한되지 않은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화실이 아닌 현장에서 작업하는 것, 소수의 관람객이 아닌 다수의 시민과 공유하는 것, 그런 이유 때문에 벽화에 끌렸어요.” 벽화에 빠진 한 청년이 심란한 마음으로 을씨년스러운 버스 정거장을 바라보던 그때, 이미 ‘좋은 세상’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소망이 모두의 현실이 되다 첫 작업을 마친 후 건너편 정거장에 두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린 왕자였다. 그런데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그림을 보더니 왜 젊은 놈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느냐, 칼은 또 왜 들고 있느냐며 의아해하더란다. “그때 깨달았죠, 공공미술은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는 것을요. 관람자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료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겠더라고요. 세 번째 작업부터는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서 마을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벽화를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버스 정거장은 우연히 선택된 캔버스였다. 하지만 작업량이 늘어나면서 왜 정거장이냐는 물음에 필연적인 답변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시 정거장과 달리 마을 입구에 고즈넉하게 서 있는 시골 정거장. 버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아무도 적막한 그곳에서 시간 보내지 않는다. 배차 간격이 길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 그곳은 어떤 의미에서 소외된 공간이다. ‘좋은 세상 만들기’ 회원들이 작업하는 동안 정거장에는 훈훈함이 넘친다. 자장면을 시켜주는 이장님, 수줍은 손길로 주전부리를 건네는 꼬마,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동네 아주머니…. 작업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완성된 벽화를 보고 미소를 짓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왜 카페나 멋진 건축물이 아니라 시골 버스 정거장인가. 대답은 충분한 셈이다. 현재 다음카페 ‘좋은 세상 만들기’의 회원은 768명. 회원 수가 수만 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카페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사회봉사의 성격을 가진 카페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회원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숫자다. 회원만 늘어난 게 아니라 후원자도 생겼다. ‘좋은 세상 만들기’의 발이 되길 바란다며 스타렉스 승합차를 사주신 분, 재료비를 지원해 주신 분, 다달이 정기적인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 그들이 있어 좋은 세상은 각자의 머릿속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의 현실이 된다. 후원자들이 보내는 건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세상을 넘어보라는 한 후원자의 격려처럼,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박수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좋은 일, 좋은 사람들만 있으랴. 작업해 놓은 정거장을 다시 찾았는데 낙서가 되어 있거나 심지어 욕설이 쓰여 있을 때 회원들은 힘이 빠진다. 그래서 보이는 후원자들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후원자들이 고맙다. “한 번은 작업을 하는데 지나던 차가 끽 소리를 내면서 정차하더니 후진해서 오더라고요. 웬일인가 했더니 트렁크에 있던 홍시를 한 가득 주시면서 마음으로나마 열심히 후원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또 언젠가는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우리 마을에는 언제 오냐고,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시고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어떤 마을은 작업을 마치고 가보니 페인트가 안 말랐다고, 누군가 새끼줄로 입구를 막고 박스를 푯말 삼아 ‘출입금지’라고 써놓았더라고요. 얼마나 힘이 솟았는지 몰라요.” 일방통행에서 쌍방통행으로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러가고자 했던 한 청년의 소망은 이처럼 뜻있는 사람들의 참여와 응원으로 인해 공공미술을 통한 사회 공헌이 되었다. “초기에는 마을의 특질을 반영한 그림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자 소재의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농악, 씨름, 특산물….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싶었죠.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향유자에게 끌려 다니는 단계를 넘어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미술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작품을 감상하고 사유할 수 있다면 그곳을 단순한 정거장이라 할 수 있을까. 벽화가 완성된 순간 정거장은 더 이상 지루한 기다림의 장소도, 스쳐 지나가는 공간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예술도, 사유도 멀리 있지 않다.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 벽, 낙서와 오물로 더럽혀진 그곳에 오늘도 작품 하나 탄생했다. 창작자의 메시지와 향유자의 공감대가 쌍방통행 하는 곳. 화가가 질문을 던지면 관람객이 나름의 대답을 던져놓는 곳. 그래서 ‘좋은 세상 만들기’가 꾸민 시골의 버스 정거장은 광고가 부착된 유리칸막이를 설비한 도시의 버스 정거장보다 아름답다. 글·사진 하재영 소설가 좋은 세상 만들기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발행·유가부수 신고조항 폐지 방침 논란

    발행·유가부수 신고조항 폐지 방침 논란

    정부가 신문발행부수공사(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제도의 내실화를 추진하는 한편 신문법에 규정된 발행부수·유가부수 등 자료신고 조항을 폐지할 방침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김기홍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관은 지난달 31일 한국언론재단 주최로 열린 ‘ABC제도 운영 현황과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참여율과 과태료 납부율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지는 신문법의 자료신고 조항을 폐지하겠다.”며 “대신 ABC제도의 부수공사를 통해 자율적 참여로써 자료신고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신문법 제16조에 따르면, 일간신문 사업자는 결산일로부터 5개월 이내에 전체 발행부수와 유가 판매부수, 구독수입과 광고수입, 총 발행주식 또는 지분총수, 자본내역 등을 신문발전위원회에 신고하고, 신발위는 이를 검증·공개해야 한다. ●정부 개입하되 정치성은 배제 이에 대해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3일 “자료신고 조항의 실효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부수공사 활성화에 정부가 개입하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신문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기적 관점에서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 구조를 신문업계가 도출해내고, 정치중립적인 기구가 시스템을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문화부는 최근 “유명무실화된 ABC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운용의 내실화를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ABC협회 비상임 회장의 상임화 ▲ABC협회 운영자금 확충을 통한 자율적 운영 ▲조사원 인력의 확보와 전문성·윤리성 제고 ▲검증기준·절차 개선 및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인증위원회 구성 등이 추진될 예정이다. 문화부는 “11월 중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해 발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한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신문 등 인쇄 매체의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인쇄 매체 광고의 거래 관행·가격 구조가 합리적이지 못하고, 과학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ABC제도 정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형신문사 자발 참여 관건 이같은 ABC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광고관행 정상화, 연간 2500억원 규모의 인쇄 광고를 집행하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ABC협회의 강한 실천의지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적지 않다. 이는 지난 1989년 창립한 한국ABC협회의 회원사가 국내 전체 인쇄매체 7000여개 중 238개에 지나지 않고,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대형 신문사가 실사에 소극적인 것 등에서도 드러난다. 또 지난 7월 2002∼2003년도 조선일보 유가부수 부풀리기 논란에서도 불거졌듯,ABC제도 자체의 신뢰성과 공신력에 금이 가 있는 것도 문제다. 강하구 한국신문협회판매협의회장은 “제도와 시장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며 “지국이 영세하고 원천자료 관리시스템이 부실한 상태에서 검증하려다 보니 자료의 정확성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매체력 질적 평가 기준 필요 고한준 교수는 “ABC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센티브제를 확대해야 한다.”며 “ABC협회의 실사를 받는 언론사에 대해서만 기금을 지원하고 정부광고를 집행하는 방안을 적극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광고 부분에 대해 문화부 측은 “정부광고는 문화부가 단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처지가 못 된다.”고 말했다. 강미선 선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부수 같은 양적 매체력보다 질적 매체력을 측정하는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자치뉴스 시민의 삶 심층 보도해야/변선영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옴부즈맨 칼럼] 자치뉴스 시민의 삶 심층 보도해야/변선영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종이신문은 마을·지역 단위의 정보를 모아 거래하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독자들은 중국 하얼빈 어느 마을의 이야기보다, 미국 미네소타 주 어느 자치단체 이야기보다 우리가 속한 대한민국 ‘서울’의 소식에 더 관심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신문의 ‘자치뉴스’면을 다시 보자. 자치뉴스면의 ‘Seoul In’기사들은 여타의 중앙일간지와 차별화된 서울신문만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서울시뿐 아니라 수도권의 뉴스들을 꼼꼼히 담아낸 기사들은 서울시민의 생활과 직결된 정보를 제공한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서울신문’이라는 제호 하나만으로도 수도권에 관한 심층 기사를 기대하며 신문을 펴게 된다. 하지만 자치뉴스면은 항상 ‘취재처’ 제공의 홍보, 보도성 기사들로 가득하다. 수도권 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색깔있는 심층보도가 아쉽다. 이번 주 지면상의 ‘Seoul In’ 기사들도 비판보다는 칭찬 일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24일자 12면 ‘노인을 위한 구는 있다’(성북구 WHO 건강 도시상 수상 관련) 기사는 기쁘고 자랑스러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나 보았던 우리 이웃의 안타까운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신다는 할머니, 봉사단체에서 배급하는 도시락 한끼로 하루를 연명하시는 할아버지 등 서울시에는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수상 소식도 보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들의 현실을 심층 보도함으로써 사회가 함께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지 않을까. 여전히 ‘Seoul In’은 서울인의 현실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느껴진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1만 5000여명의 독자를 보유한 ‘블루프턴투데이’는 신문사 홈페이지에 독자들의 개인 블로그를 하나씩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이 블로그에는 자신과 주변의 일상생활 사진, 이야기가 담긴다. 기자는 여기서 참신한 기사거리를 찾아 신문에 게재하고, 독자들은 그 기사에 주목한다. 이러한 선순환 고리가 지속되면서 신문은 지역사회 전체의 건전한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국내 한 신문사의 인터뷰를 통해 스티븐 옐빙턴 부사장은 “참여를 통해 주민 간 교류가 활발해지며 지역사회 감시 기능까지 수행한다.”며 “시민 저널리즘의 활성화로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층이 지역사회에 갖는 관심을 증폭시켰다.”고 평가했다. 오스트리아 베랄베르거메디엔하우스 신문 역시 지역 특성화를 살린 신문의 청사진을 제시해 준다. 신문사는 독자들의 요구를 조사해 독자들이 “우리 동네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에 가장 관심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랄베르거는 이웃의 결혼과 출산 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시작해 지역 주민 35만명 중 10만명을 신문에 등장시켰다. 자신이 등장하는 신문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구독률은 점차 높아져 갔다. 그 결과 그 지역에서는 신문의 광고주 확보마저 베랄베르거가 1등을 차지했다. 주민과 신문사 모두가 윈·윈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기저에 깔려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만 켜면 정보의 홍수가 독자들을 압도한다. 해외 신문사의 시민 저널리즘 사례들을 보며 어쩌면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는 독자들은 우리네 이웃의 소식이 가장 알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혹은 취재처에서 보도 자료로 제공하는 정보를 수집해 놓은 기사는 이미 충분하다. 기자가 발로 뛴, 우리 이웃의 진솔한 이야기가 듬뿍 담긴 기사들이 오히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꼭 맞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 변선영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 [속삭임 ⑩] 메뚜기

    [속삭임 ⑩] 메뚜기

    꿈이 자꾸 흐트러진다. 근거 모를 꿈들이 잠 속으로 수없이 왔다가 사라진다. 몇 번이고 되짚어 보지만 알 수 없다. 계절 탓인가? 마음이 자꾸 산만해 지는 건. 아침 일찍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섰다. 늘 해왔던 것처럼 무작정 차를 몰고 도심을 빠져나갔다. 차창을 열었다. 어젯밤 잠보다 더 달콤한 바람이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온통 노랗다. 지금은 다 팔고 고향을 떠났지만 할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시던 다랑논이 있는 고향으로 달려갔다. 벌써 노랗게 익은 벼 이삭들이 할아버지 허리만큼이나 휘어 있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펼 때마다 놀라 투두둑 튀어 도망가던 메뚜기들. 그 소리가 메뚜기가 내는 소린 줄만 알았던 그 시절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할아버지, 메뚜기 잡으러 왔어요.” “오냐 많이 잡거라.” 살금살금 발을 옮길 때마다 후다닥 도망가 버리는 메뚜기를 이리저리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허리춤에는 강아지풀 뀀지가 서너 개로 늘어났다. 논둑마다 메뚜기가 지천이었다. 놀이 삼아 잡아도 잠깐이면 4홉 소주병이나 한 되들이 막걸리 주전자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얘야 그만 집에 가자!” 일손을 멈추고 나서도 좀처럼 똑바로 펴지지 않던 할아버지의 등. 종종걸음으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휜 등으로 쓸쓸하게 내려앉아 점점 깊어가던 어둠. 몇 십 년 전의 그 어둠을 지켜보고 있다. 메뚜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금방이라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란 메뚜기들이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는 소리 들릴 것 같은데…. 끝내 할아버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논둑길을 돌아 나온다. 강아지풀 하나를 뜯어 입에 물었다. 빈손으로 파고드는 어둠이 자꾸 추억에서 나의 등을 민다. 어둠과 추억은 왜 모두 슬픔에 기대어 있을까? 글·사진 문근식 시인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SPECIAL] 정거장

    [SPECIAL] 정거장

    가방을 이끌고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 듯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역 광장은 떠남과 당도, 만남의 공간이다. 하지만 모든 역 광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옛 서울역(이하 서울역)은 1905년에 남대문역으로 문을 열었다가 1925년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지금의 역사(경성역)로 단장했으며, 1947년 서울역으로 불리면서 명실공이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2003년 경부 고속철인 KTX에 대비해 새로운 현대식 서울역사가 준공되면서 한쪽 구석에 이물스럽게 방치된 폐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다시는 올 수 없는 시간을 마중 가는 길이다. 만남의 눈짓, 떠남의 손짓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 서울역에는 더 이상 떠날 열차도 달려올 열차도 없다. 꿈을 안고 떠나거나 당도하는 사람들, 손수건을 흔들며 마중하거나 배웅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며 서울역은 그 자리에 허리를 접어 새우잠을 자는 노숙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역 광장은 세상과 소통하는 트인 공간이지만, 굳게 빗장을 걸어둔 서울역 광장은 세상과 절연을 강요당한 노숙자들이 밤낮 하릴없이 서성이며 머무는 소외의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누워 종이 박스와 신문지 따위에 의지한 채 움직임도 소리도 없다. 남루한 옷가지와 헝클어진 머리카락, 검게 굳은살이 배인 발바닥만이 그들의 지난한 일상을 짐작케 할 뿐이다. 세상과의 절연을 강요당한 사람들에게 서울역 광장은 그저 뜨거운 햇볕을 피해 잠시 한뎃잠이라도 잘 수 있는 그들만의 랜드마크다. 오후 네 시, 전시회를 보기 위해 기다랗게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를 발견한다. 카메라의 배율을 올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새우잠을 자는 남자를 끌어당긴다. 찰칵! 지리고 시큼한 홍어회 냄새가 빨려 들어온다. 카메라 소리에 놀란 남자는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는 전시회를 보기 위해 기다랗게 줄을 선 사람들을 피해 외진 곳을 찾는다. 그곳에는 이미 다리를 잃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껌을 팔며 연명하는 사람과, 역 광장 벤치에 앉아 어딘가로 팔려 나가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다림에도 이력이 붙는 걸까? 남자는 호주머니 속 깊숙이 감춰둔 담배꽁초를 꺼내 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더욱 길게 내품는 담배연기, 휴식이라기에는 담배꽁초의 길이가 너무 짧아 보인다. 다시 서울역을 찾는 사람들 이 소외의 빈터에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바로 젊은 신예 미술작가들과 일반 시민이 작품을 통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들의 미술축제 아시아프(ASYAAF, 이하 아시아프)’가 그것. ‘아시아프’는 전 세계 11개국 105개 대학에서 엄선된 작가 777명이 2,300점의 작품을 1·2부로 나누어 열흘간 전시·판매하는 미술축제로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경험하고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場)이다. 서울시는 이번 전시를 통해 10여 년 가까이 걸어두었던 빗장을 열고 서울역을 일반에 공개했다. 플랫폼에 들어서자 ‘ㅁ’자 모형의 널찍한 전시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둠 모형의 지붕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옛 모습 그대로인 역사를 확인시킨다. 플랫폼은 신예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과 관람객들로 빼곡하다.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전시관은 기둥과 유리창을 통해 그림을 엿볼 수 있어 자칫 지루하기 쉬운 그림의 재미를 더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화적 이미지, 장난감, 쓰레기, 인형, 기계부품 등 생활 속의 잡다한 물건들도 등장한다. 그림에 포착된 이미지가 우리네 삶의 모습을 그대로 끌어들여서인지 목이 잘린 개의 그로테스크한 모습까지 친근감을 준다. ‘아시아프’ 전시가 진행되는 열흘 동안 서울역은 옛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아시아의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찾은 5만 6,926명의 관람객들의 발길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개장을 기다리는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울역에서 광장을 가로질러 KTX 승강장 앞까지 수백m에 걸친 인간 띠를 형성했다. 출품작 2,300점 중 1,500여 점이 판매될 만큼 호응도 높았다. 한국 미술 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는 신예 작가들의 가능성과 생활 속에서 현대미술을 즐기려는 대중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관람을 마치고 역사를 빠져나오자 뉘엿뉘엿 해가 저문다. 역 광장 주변으로는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길거리의 노숙자들이 뒤엉킨다. 서울역은 ‘아시아프’를 통해 새로운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는 앞으로 계획된 다양한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길거리 노숙자들의 삶은 플랫폼의 멈춘 시계처럼 그 자리에 멈춘 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왠지 씁쓸한 풍경이다. 글·사진 임종관 《삶과꿈》 기자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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