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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프타임] LA다저스 디포데스타 단장 경질

    미국프로야구 LA다저스의 프랭크 매코트 구단주는 30일 “폴 디포데스타 단장을 만나 다저스가 재편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면서 “팀에 대한 그의 기여에 사의를 표한다.”고 밝혀 해임을 공표했다.‘빅초이’ 최희섭의 든든한 후원자인 디포데스타는 2003년 10월 다저스 단장에 취임한 뒤 이듬해 팀을 내셔녈리그 정상에 올려놨지만, 올시즌 부진으로 팀 개혁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 [박기철의 플레이볼] 팬의 애정과 구단주의 역할

    [박기철의 플레이볼] 팬의 애정과 구단주의 역할

    메이저리그에서 전통의 명문 구단을 꼽으라면 보스턴과 시카고의 팀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아메리칸리그가 출범한 1901년부터,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리그가 창설된 1876년부터 활약한 팀들이다. 이들 팀은 역사가 긴 데 비해 1920년대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공통점도 있다. 그럼에도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극성맞게 성원해온 팬들이 있는 점도 같다. 이들 팀의 팬은 창단한지 몇 해 되지 않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플로리다 말린스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우승을 밥 먹듯 해온 뉴욕 양키스를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응원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들 팀의 팬이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리며 팀에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데는 오랜 전통도 있지만 구단주의 역할도 무시하지 못한다. 지난해 숙적 양키스를 꺾고 1918년 이후 최초의 우승을 일군 보스턴은 요키 가문이 있었다.1933년 구단을 인수한 톰 요키는 1976년 사망했지만 그의 아내인 진 요키가 구단주를 이어받았고,1992년 그는 사망하면서 자선 재단인 요키 기금을 설립, 구단 주식을 기증했다.2002년 구단이 매각될 때까지 요키 기금이 받은 금액은 무려 10억 달러에 이른다. 시카고 팀의 구단주들은 전통적으로 팬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다. 컵스는 시카고 트리뷴이라는 지역 최대 일간지가 든든한 후원자였고, 현대에 들어서는 WGN이란 전국 네트워크 덕분에 전국에 걸친 팬을 확보하고 있다. 화이트삭스는 컵스보다는 열성팬이 적다. 물론 빌 벡이 구단주이던 시절에는 열성팬이 많았다. 벡은 1946년부터 1980년 사이에 4차례나 구단주를 지냈고 화이트삭스의 구단주만 두 차례 역임했다. 선수 유니폼에 처음으로 이름을 새기고 폭죽 전광판을 설치하는 등 참신한 아이디어의 선구자로 이름이 높다. 클리블랜드 구단주이던 시절에 전설적인 명유격수이자 감독으로 이름 높던 루 보드로를 트레이드하려고 하자 팬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시내의 거의 모든 식당을 다니면서 팬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트레이드를 철회했다. 난쟁이와 50세가 넘은 선수를 등장시키는 등 야구를 희화화시킨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시카고 팬들은 벡이 재미를 주기위해 했던 행동으로 이해했다. 현 구단주인 라인스돌프는 1997년 7월말 선두와 불과 3경기차일 때 팀의 주력 투수를 트레이드한 것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팀 전력 증강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농구팀 시카고 불스의 구단주로서 마이클 조던에게 2000만 달러의 연봉을 주며 시카고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1917년이 월드시리즈 마지막 우승인 화이트삭스가 지난해 보스턴에 이어 2번째 한풀이에 성공할지 궁금하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박지성·베켄바우어 “한국 본선서 강팀될 것”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강한 팀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박지성)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지금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일 것”(베켄바우어) 4일 나란히 입국한 ‘맨체스터의 신형엔진’ 박지성(사진 왼쪽·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독일축구의 황제’ 프란츠 베켄바우어(오른쪽·60)가 한국축구의 미래를 자신, 축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오는 12일 이란과의 평가전을 위해 이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지성은 “비록 이영표·차두리 등이 합류하지 못하지만 남은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1기 아드보카트호’ 합류 각오를 다졌다. 청바지와 가벼운 양복 상의를 걸치고 환한 얼굴로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박지성은 지난 주말 풀럼전에서의 맹활약에 대해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른 플레이를 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다만 그날 공격포인트를 올렸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주전과 비주전을 오가는 상황에 대해선 “출전 시간에 대해서 한 번도 신경을 써 본적이 없다.”면서 “우리 팀 선수들이 모두 뛰어나 누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 주전 경쟁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오후 귀국 예정이었던 ‘차붐주니어’ 차두리(25·프랑크푸르트)와 5일 귀국 예정이던 이영표(28·토트넘 홋스퍼)는 부상으로 아드보카트호 엔트리에서 제외돼 입국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 5월에 이어 5개월 만에 독일월드컵 본선진출 확정국을 대상으로 조직위원회 차원에서 축하인사를 전하는 ‘웰컴투어’의 일환으로 방한한 베켄바우어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은 “한국의 해외파 선수들이 유럽에서 연일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면서 “이런 모든 것들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켄바우어는 그러나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바이에른 뮌헨으로의 ‘축구천재’ 박주영(20·FC서울) 이적설에 대해서는 “스카우트에게 알아보라고 지시내렸지만, 조직위 업무가 많아 이후로는 신경쓰지 못했다.”고 명확한 대답을 회피했다. 베켄바우어 위원장은 이날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참석, 독일이 준결승에서 한국과 만났던 2002년을 떠올리며 “지난 번 한국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강호들을 연파해줘 고마웠다.”면서 “2006년에는 우리가 한국을 돕겠다.”는 농담으로 한국의 선전을 기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첼시 구단주 90억弗 대박

    “자고 일어났더니 영국과 러시아에서 최고 부자가 돼 있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9일 잉글랜드 프로축구단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38)가 러시아 5위의 석유업체 ‘시브네프티’ 매각으로 최소 90억달러의 현금을 챙겼다면서 그가 이 돈을 어디에 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90억달러를 1달러짜리 지폐로 연결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인 87만 2159마일이나 된다고 전했다. 영국 은행의 평균 이자율이 연 4.65%임을 감안하면 은행에 넣어만 둬도 매년 2억 5100만파운드를 이자로 챙길 수 있으며 은행 이자만으로 첼시 구단의 지난해 적자 8780만파운드를 3번이나 채울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아브라모비치가 새로 벌어들인 천문학적 돈을 부동산 구입, 자선재단 설립 등에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런던 연합뉴스
  • [우리는 맞수 CEO] 김인 삼성 SDS 사장 vs 정병철 LG CNS 사장

    김인 삼성SDS 사장과 정병철 LG CNS 사장은 ‘관리형 CEO’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시스템통합(SI) 업계 1,2위를 다투는 경쟁자로서의 ‘자존심 대결’도 치열하다.‘재무통’인 정 사장이 정적이고 선비적이라면 ‘인사통’인 김 사장은 역동적이어서 일을 만들고 나서기를 좋아한다.‘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스타일’은 비슷한 편이다. 김 사장과 정 사장은 각각 삼성과 LG에서 30년 넘게 재직했다. 두 사람은 2003년 1월 CEO로 임명됐다. 그룹에서 취임 당시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재무·관리분야 베테랑인 두 사람을 ‘관리형’ 사장으로 앉혔다. 그동안 ‘내실 다지기’에 주력해 왔으나 최근에는 ‘외연 넓히기’에도 나서고 있다. ●‘수익성 강화’ 대 ‘매출 극대화’ 매출액에서는 삼성SDS가 업계 1위다. 반면 LG CNS는 ‘서비스 등에서의 진짜 1위’를 주장한다. 따라서 삼성SDS는 매출에다 수익성을 강화하는 것이고,LG CNS는 수익성에다 매출액을 올려야겠다는 것이다. 삼성SDS 김 사장은 “올해 첫 매출 2조원시대를 열고. 지난해 7%였던 영업이익률도 처음으로 10%대를 달성하자.”고 밝혔다. 이에 LG CNS 정 사장은 “그룹 계열사 외 부문에서 경쟁물량 확대를 최대한 확보하자.”며 독려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1등은 일시적 매출이나 규모의 우위가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매출을 지난해보다 13.5%가량 늘어난 1조 8000억원으로 잡아 규모면에서도 삼성SDS와 나란히 가겠다는 의도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의 근간인 ‘서울시 교통카드 시스템’을 성공리에 구축,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단지내 부지에 LG CNS IT센터 기공식을 가졌다. ●감동 경영은 ‘스킨십’ 두 사장은 유독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론 ‘수평적 경영’이 경쟁력의 기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이벤트로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된다. 정 사장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직원들의 소리를 듣는다. 사내 주니어 보드도 만들고 ‘카페 경영’도 하고 있다. 또 가족 사보에 편지 칼럼을 모은 ‘사랑의 우체통’도 운영 중이다.2년여전 여기에 한 직원의 딸이 올린 ‘첫째딸의 새해 소원’을 읽고 호텔 뷔페권을 사들고 간 사실은 아직도 직원들에게 회자된다. 김 사장도 매주 월요일 7000여명의 직원에게 ‘월요 편지’란 이메일을 보낸다.120회를 넘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보내는 편지에는 회사 소식은 물론 책 이야기, 출장 중 경험한 일, 직원들의 건강 걱정 등 다양하다. 두 사장은 또 책을 가까이하고 스포츠를 무척 즐긴다. 정 사장은 다독가(多讀家), 스포츠 마니아다. 프로야구팀 ‘LG트윈스’의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다. 임·직원과 함께 야구경기장을 찾아 ‘노사 화합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야구 경영론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김 사장도 책이라면 정 사장 못지않다.‘책 마니아’로 꽤 소문나 있다. 한 달이면 5권이상 책을 읽는다. 그를 만나면 독서 예찬론까지 나온다. 김 사장은 또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서울 테헤란로 사옥에 도착,24층 집무실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2003년 취임 이후 2년 6개월을 줄곧 해왔다. 그는 “걷기운동에 관한 책을 읽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걷다 보면 잡념이 생기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U-비즈니스’에서 한판 붙는다 김 사장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이미 밝혔다.2007년까지는 기술개발 등 기본역량을 강화하고 2008년부터 신규 사업, 해외 사업 등에 본격 진출하겠다는 프로젝트다. 오는 2010년 세계 10대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게 목표다. 정 사장도 ‘U-비즈니스’를 기치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상암IT센터’ 건립을 위한 첫삽을 떴고 ‘송도 U-라이프 유한회사’(가칭) 설립도 준비중이다. 두 CEO는 최근 전통의 내수시장(주로 그룹내 전산 지원)에서 중국, 일본, 브릭스(BRICs) 등으로의 해외사업 진출에도 주력하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김인 사장 ▲1949년(56) 경남 창녕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4년 삼성물산(주) 프랑크푸르트지점 부장 ▲9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 이사 ▲94년 삼성물산(주) 상무 ▲98년 삼성전관(주) 영업본부 전무 ▲2002년 (주)호텔신라 부사장 ▲2002년 서울 신라호텔 총지배인(본부장) ●정병철 사장 ▲1946년(59) 경남 하동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69년 LG화학 재경실 예산과 입사 ▲78년 LG화학 자금부 부장 ▲86년 LG화학 인사 총무 IT담당 이사 ▲89년 LG반도체 재경담당 상무 ▲96년 LG상사 경영지원담당 부사장 ▲97년 LG전자 대표이사
  • [우리는 맞수 CEO] 국내 가전1위 쟁탈 ‘루키 힘겨루기’

    [우리는 맞수 CEO] 국내 가전1위 쟁탈 ‘루키 힘겨루기’

    전자업계의 국내 영업 부문은 이른바 ‘총성없는 전쟁터’다. 신경전이 난무하며, 얼굴도 붉히고, 때로는 험악한 성명전도 오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정된 파이에서 내가 살자니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국내 영업을 책임지는 장창덕(55) 부사장과 LG전자의 국내 마케팅을 맡고 있는 강신익(51) 부사장. 이들은 영업 최전선을 누비며, 칼끝을 경쟁사에 겨누고 있지만 의외로 공통점이 적지 않다. 장 부사장과 강 부사장은 올해 처음으로 국내 영업의 수장이 된 ‘루키’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영업 노하우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해외에서 한가닥씩 해본 솜씨들이다. 장 부사장은 노키아와 모토롤라가 꽉 잡은 러시아 시장에 ‘애니콜 신화’를 심어놓은 장본인이다. 삼성전자를 러시아의 국민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강 부사장도 미국에서 ‘Life’s good’ 등으로 LG 브랜드를 키워놓은 ‘아이디어맨’으로 통했다. 때로는 양사의 자존심과 과욕이 관계를 삐걱거리게도 했다. 진정한 라이벌로서 서로를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꼭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대목이 올 상반기에 적지 않았다. ●치열한 1등 경쟁 올 초반엔 장 부사장의 공격에 강 부사장의 수비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상반기를 지나면서 강 부사장의 공격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장 부사장의 올해 영업 목표는 매출 10조원 돌파와 가전 시장에서의 선두 탈환.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지난 2·4분기 가전 실적에서 3년 만에 분기 매출 1조원을 달성했으며,5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국내 영업 매출은 4조 1000억원 수준.LG전자 매출과 비교하면 1.5배 가량 많다. 장 부사장은 “삼성이 국내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특히 에어컨은 80%, 지펠과 드럼세탁기 등 프리미엄 생활가전은 30%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엔 PC 교체 수요로 노트북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휴대전화시장점유율도 50% 이상 확보를 자신한다.”면서 올해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약진에 LG전자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강 부사장은 지난 7월 한국마케팅 부문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또 휴대전화의 영업 강화를 위해 ‘싸이언팀’을 신설했고, 유통 현장과 마케팅 조직의 유기적 연결을 위해 ‘마케팅 전략지원실’도 만들었다. 최근엔 프리미엄 가전시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존 양문형 냉장고 브랜드인 ‘디오스’를 주방가전 통합브랜드로 내놓기도 했다. 강 부사장은 “올 상반기 실적은 고객관리 강화와 매장 확대 등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가까이 성장했다.”면서 “제품별로는 에어컨이 77%, 냉장고 6%,TV 11%,PC는 94%나 늘었다.”고 설명했다.LG전자가 생활가전 부문에선 여전히 1등이라 것이다. 지난 2·4분기 LG전자의 가전 매출은 1조 6211억원, 영업이익은 1621억원을 올렸다. ●날카로운 신경전은 여전 장 부사장과 강 부사장이 보는 경쟁사는 어떨까. 둘 다 부담스러운지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다. 강 부사장은 다만 “삼성전자에 대해 뭐라고 직접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 “LG전자와 삼성전자 모두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덕분에 세계 가전과 IT 시장을 이끌어 가는 업체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장 부사장과 강 부사장은 그룹에서 알아주는 기획 및 전략통이다. 다만 장 부사장이 철저한 현장주의자로 유명한 반면 강 부사장은 튼튼한 기본기를 강조한다. 또 장 부사장이 삼성 문화와 달리 밀어 붙이는 추진력이 대단하다면 강 부사장은 친근하고 세련된 스타일이다. 장 부사장의 주량은 소주 1병. 골프 핸디는 14 수준이다. 일주일 가운데 3일은 1시간씩 조깅하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강 부사장은 술을 썩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수준. 시간이 나면 수영과 테니스, 골프, 스키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LG전자 강신익 부사장 ▲1954년 경북 봉화생 ▲1972년 경동고 졸 ▲1977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 ▲1976년 효성 입사 ▲1986년 LG전자 입사 ▲1992년 그룹 회장실 V-추진본부 과장 ▲1995년 제니스 지원팀 부장 ▲1996년 캐나다 법인장 ▲1998년 미국 시카고 제니스 재무담당(상무) ▲2001년 미국법인 브랜드 담당(상무) ▲2005년 한국마케팅부문장(부사장) ■ 삼성전자 장창덕 부사장 ▲1950년 서울생 ▲1969년 중동고 졸 ▲1974년 성균관대 사학과 졸 ▲1976년 삼성전자 입사 ▲1997년 전자소그룹 기획팀장 ▲1998년 정보가전 영상사업부장 ▲2000년 디지털미디어총괄 디지털영상사업부장(전무) ▲2001년 독립국가연합(CIS) 총괄(전무) ▲2004년 독립국가연합(CIS) 총괄 본부장(부사장) ▲2005년 국내영업사업부장(부사장) 겸 삼성전자 스포츠구단 구단주 대행
  • [쉬어가기˙˙˙] 첼시 구단주 부당거래 혐의 조사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프리미어리그의 구단주이자 러시아의 석유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부당거래 혐의로 조사한다고 영국 주간지 뉴스오브더월드가 29일 보도.UEFA에 따르면 개인이나 법인은 한 개 이상의 구단을 소유할 수 없으나, 아브라모비치는 첼시의 구단주이면서도 자신의 석유회사를 스폰서로 내세워 CSKA 모스크바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것.UEFA의 한 관계자는 “아브라모비치가 다른 구단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밝혀내는 게 이번 조사의 핵심”이라고.
  • [박기철의 플레이볼] 생사 기로에 선 감독들

    입추를 정점으로 무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무덥지만 기온이 약간만 떨어져도 시원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 바람이 시원함을 넘어 차디찬 칼날이 목에 다가오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감독들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야구와 축구 시즌도 막바지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팀 성적이 나쁜 감독은 자신의 목을 걱정해야 한다. 한국시리즈까지 팀을 진출시키고도 우승을 못했다고 목이 달아난 사례도 있었으니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프로야구 감독은 남자로 태어나서 한 번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한다. 그 만큼 잘나갈 때는 황제와 같은 권한을 휘두르며 명예와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성적이 나쁠 때 희생양으로 쓰기 위해 고용됐다는 말처럼 성적이 곤두박질치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레오 듀로처 감독의 말처럼 감독은 자신이 살기위해 냉혈한이 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사람이 좋으면서 자신의 목이 달아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감독은 50년간 애슬레틱스를 지휘했던 코니 맥이다. 그는 자신이 구단주였기 때문에 이같은 걱정없이 88세까지 감독직을 누렸다. 미디어 재벌이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구단주였던 테드 터너도 감독 유니폼을 입은 적이 있다. 입추였던 지난 일요일 축구 대표팀은 동아시아대회에서 꼴찌라는 참담한 결과를 빚었다. 더불어 본프레레 감독의 진퇴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팀 성적은 감독의 책임이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도 선수 자원이나 지원이 부실하면 성적을 올릴 수 없다. 또 훌륭한 감독, 좋은 선수라도 운이 나쁘면 성적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훌륭한 감독이 있는 것처럼 훌륭하지 못한 감독으로 분류돼야만 하는 감독도 있다. 다만 훌륭하지 못한 감독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은 있다. 패배의 책임을 선수에게 돌린다는 점과 잠재력이 있는 선수를 찾아내는 눈이 없다는 것. 만루 홈런을 치거나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잠재력을 발휘한 것인지, 운이 좋아서였는지 구별하지 못한다. 본프레레는 한국의 입추 저녁 바람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최희암 감독, 장애우 농구단 창단

    최희암 동국대 농구 감독이 정신지체 학생들로 구성된 농구단을 만든다. 지난해 8월부터 서울 동대문구민체육센터에서 지역 주민의 건강과 복지증진을 위해 ‘최희암 농구교실’을 운영해온 최 감독은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참여가 늘어나자 지난달 정신지체 2∼3급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12명으로 구성된 장애청소년 팀을 만들고 ‘최희암 독수리농구단’으로 이름을 정했다. 최희암 독수리농구단은 최 감독이 구단주를 맡았으며 천수길 대한농구협회 공보이사가 단장, 이민현 전 고려대 코치가 감독을 맡고 있으며 박민혜 전 선일초등학교감독이 코치를 맡았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두산관련 물의 죄송”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이 그룹에서 퇴출된 뒤 처음으로 두산 주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자격으로 26일 두산베어스가 춘천CC에서 주최한 프로야구 구단주 및 사장단 골프모임에 참석했다. 박 전 회장은 골프를 마친 뒤 구단 관계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최근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KBO 총재로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이밖에 회사 사태와 관련한 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으며, 주로 야구와 관련한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참석자들은 덧붙였다. 박 전 회장은 라운딩 중에도 내내 깊은 상념에 잠겨 일행과 별다른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으며, 평소 핸디 10 수준의 골프실력에 훨씬 못 미치는 부진한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후문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KBO조치에 한표를

    부상을 이유로 올스타전에 불참한 선수들에게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당분간 출전을 자제토록 권고한 일을 놓고 한동안 야구계가 시끄러웠다. 핵심은 규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KBO가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KBO는 그런 권한을 충분히 갖고 있다.KBO의 권한이란 결국 커미셔너, 즉 총재의 권한인데 총재는 야구규약 171조에 따라 규약에 없는 사항이라도 야구의 발전과 이익에 저해되는 모든 행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법치국가에서는 법률에 미리 정해지지 않은 일로 처벌을 받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스포츠에서만은 예외다. 스포츠의 규약이나 규칙은 스포츠맨십을 바탕으로 한다. 규정에 없는 행위라도 스포츠 발전에 저해가 된다면 커미셔너에게 해당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규약은 법원에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76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구단주 찰스 핀리가 핵심 선수 3명을 당시 단일 트레이드 사상 최고액인 350만 달러에 팔려고 했을 때 커미셔너인 보위 쿤이 무효화시킨 일이다. 세 선수는 모두 그 해를 마지막으로 자유계약(FA) 신분이 되기 때문에 구단은 팀에 소유권이 있을 때 트레이드를 하려고 했다. 지금은 아주 흔한 일이다. 하지만 커미셔너는 이 행위가 야구에 ‘최선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금지시켰다. 핀리 구단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커미셔너의 손을 들었다.“커미셔너가 독단적으로 자신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조항으로 불리는 커미셔너의 권한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권한이 생겨난 것은 커미셔너 제도가 야구에 도입된 1921년이다. 당시 초대 커미셔너로 취임한 랜디스 판사에게는 “규약에 없더라도 ‘야구의 최선의 이익에 해가 되는’ 모든 행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내릴 권한과 이 조치에 반한 일체의 법률 소송을 걸지 못한다.”는, 황제와 다름없는 지위가 부여됐다. 이후 구단주들에 의해 권한은 대폭 제한됐지만 제3대 포드 프릭은 은퇴를 앞두고 “구단을 비롯한 야구계 전체의 손해”라고 설득, 권한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일부에선 이번 올스타전 불참 선수에 대한 출전 자제 권고가 사후 약방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올스타전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2∼3주의 진단서가 나왔다면 최소 4∼5일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강제 조치는 상식이 안 지켜질 때 발동된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두산 ‘형제의 난’ 야구에 불똥튀나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의 불똥이 프로야구에 튈지 주목된다.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프로야구의 수장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맡고 있고, 두산 베어스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박 총재는 1998년 12월8일 총재에 오르면서 중립성을 내세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동생 박용성 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내줬다. 프로야구계에서는 이번 사태 전말을 예의 주시하면서 ‘프로야구와는 별개’임을 애써 강조한다. 하지만 수장인 커미셔너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라는 좋은 않은 이미지를 준 것만은 틀림없어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사실 박용오 총재는 프로야구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일체의 행동에 대해 강하게 질타해와 박 총재 스스로가 조만간 어떤 형식이든 ‘액션’을 취하지 않을까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박용오 총재는 원년이후 지속돼온 ‘낙하산 인사’를 끊고 8개 구단 구단주들이 옹립해 뽑은 첫 인물이며 최장수 총재다. 야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폭넓은 식견을 지녀 야구인들의 지지를 받아왔다.이와 관련,KBO의 한 관계자는 “지난 21일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프로야구 얘기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오는 8월2일 경찰청 야구단 창단 조인식에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아무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프로야구계에서는 벌써부터 총재의 거취를 놓고 의견이 크게 갈려 자칫 총재의 사퇴로 파장이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하이닉스 현대와 질긴 인연

    하이닉스반도체는 2001년 8월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가 확정된 뒤 2002년 6월 최대주주가 현대상선에서 외환은행으로 바뀌며 현대와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아직 현대건설, 현대중공업과의 송사 등 현대가(家)와 정리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하이닉스는 1997년 7월 푸르덴셜투자증권(옛 현투증권) 주식 매각을 놓고 벌어진 현대중공업과의 송사를 아직 마무리짓지 못했다.2002년 1심에서 하이닉스와 현대증권, 이익치 전 회장 등이 현대중공업에 1718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하이닉스측이 항소를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푸르덴셜 주식 매입 법인세 비용 등과 관련해 488억원의 청구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1998년 건립된 현대그룹 제2연수원과 관련된 임대보증금 반환소송도 계류 중이다. 현대건설 등 과거 현대 계열사들이 연수원 임대차계약이 만료되자 임대보증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하이닉스측은 임대차계약은 형식상의 계약에 불과하며 실질은 연수원 건립비를 분담한 것이라는 이유로 임대보증금 반환을 거부했다. 하이닉스는 또 현대건설이 2000년 6월 하이닉스 영국법인을 통해 빌린 1억달러에 대해 대여금 및 이자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3월 법원이 “1억달러는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용 자금 중 현대전자의 분담금이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자 최근 항소했다. 현재 하이닉스와 현대가는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통해 실낱같은 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 정몽헌 회장이 구단주였던 유니콘스는 하이닉스가 최대주주(70%)지만 다른 그룹처럼 별도의 지원은 없다. 오히려 야구에 애정이 많은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 등 범 현대가가 구단 살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이 8조 2000억원에 달해 모그룹인 현대그룹(6조 700억원)은 물론 동부그룹(8조 1700억원)보다 규모가 크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FA 이전으로 가자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의 폭등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매번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 대책이 나온 적은 없다.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엄령을 선포하거나 대통령 긴급명령 또는 의회의 입법권을 동원해 모든 아파트 가격을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 또 하나는 공급을 무제한 늘리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의 주범인 중대형 아파트를 편리한 교통과 좋은 학군과 함께 무제한 공급하면 당연히 아파트 가격은 안정된다. 스포츠 시장에서 선수의 몸값 폭등에 대한 우려가 많다. 특히 자유계약(FA)선수가 생기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천문학적 금액의 계약이 수시로 체결되는 현상은 한국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나 같다. 선수 몸값의 폭등은 부자 구단만이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도록 만들어 ‘성적은 연봉순’이라는 현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야구에서 아파트 가격 동결 조치와 같은 해결 방법은 FA 도입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단이 선수 연봉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는다면 선수 몸값의 폭등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아파트 무제한 공급과 같은 대책이 프로야구에도 있을까. 물론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6년 조정관 피터 자이츠의 결정으로 메이저리그에 FA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해졌을 때 대부분의 구단주들은 아파트 가격 동결 조치처럼 FA 제도의 도입 자체를 직장폐쇄라는 방법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법적으로 FA제도의 도입 자체를 막기엔 불가능했다. 다만 오클랜드의 구단주 찰리 핀리는 아예 모든 선수를 FA로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 바로 무제한 공급이다. 그렇게 하면 사는 사람, 즉 구단이 시장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실제로 선수들을 대표에서 협상을 진행하던 마빈 밀러는 구단주들이 이 대책을 실제로 들고나올까봐 가장 우려했다.FA 자격도 4년으로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었지만 6년이 선수에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FA가 희소가치가 있어야만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직도 많은 선수들이 FA 자격 연한이 줄어들면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유경쟁 시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은 떨어진다. 특히 한국 프로야구는 선수 시장의 소비자, 즉 구단수가 8개뿐이라 공급이 약간만 많아져도 몸값은 떨어질 염려가 많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쉬어가기˙˙˙

    ‘007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배우 숀 코너리(75)가 하루 동안 축구 에이전트로 ‘깜짝 변신’해 화제.16일 로이터통신은 코너리가 프랑스 프로축구 마르세유의 전 주장 브라힘 헴다니(27)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인저스 입단을 설득하는 중요한 ‘중간다리’ 역할을 해냈다고 전했다. 레인저스의 데이비드 머레이 구단주가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영입 의도를 눈치채고 스코틀랜드 출신의 코너리에게 “헴다니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 前대통령비서실장·검찰총장 자녀도 국적 포기

    지난해 11월 새 국적법이 발의된 이후 올 4월까지 국적 포기자들이 총 1678명에 달한 가운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전직 장관 등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 정ㆍ재계 고위층 인사 자녀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MBC ‘PD수첩’은 14일 오후 11시5분 방송할 ‘전격 분석, 국적 포기 1678명’(가제) 편에서 지난해 11∼12월 390명과 올 1∼4월 1288명의 국적 포기자 명단이 등재된 5월 관보를 토대로 모두 1678명의 신상에 대해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전직 장관 3명,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전 청와대 수석, 전 검찰총장, 전 도지사, 전 군 고위장성 등 상당수 고위층 자녀들이 포함돼 있다. 또 모 자동차회사 사장, 프로축구 구단주,G건설 대표,S전자 전무,S생명 상무 등 경제계 인사가 75명으로 학계의 뒤를 이었다. 학계에서는 서울대 5명, 카이스트 5명, 전북대 3명 등 국공립대가 29명이었고, 한양대 11명, 연세대 9명 등 사립대 교수 자녀가 154명에 이르렀다. 법무부는 5월 국적 포기자 부모 중 공무원이 11명이라고 발표했으나 ‘PD수첩’의 확인에 따르면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40명으로 조사됐다. 홍지민기자 icurus@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야구월드컵 MLB의 돈놀음

    내년 3월로 예정된 야구 월드컵이 아직도 참가 예정 국가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혼란을 빚고 있다. 일본은 7월에 가서야 참가 여부를 확정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서로 다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MLB 재팬’의 대표인 짐 스몰은 “설사 일본이 참가하지 않더라도 월드컵을 강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미국 신문은 “MLB 국제 담당 부사장인 폴 아치는 일본이 참가하지 않으면 대회 성사가 어렵다는 발언을 했다.”라고 보도했다. 두 나라 언론의 보도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공통점은 아직 대회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논조다. 가장 큰 원인은 MLB 탓이다. 국제 대회는 국제기구가 주최한다. 축구의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고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연다.MLB는 WBCI라는 임시 주최 기구를 만들어 중계권과 입장 수입 등의 문제를 전담시키겠다고 했다.MLB는 대회 수입 가운데 35%를 MLB에,10%를 일본의 NPB에, 그리고 7%를 한국의 KBO에 차등 분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박찬호를 대표팀에 포함시킬 것이 확실하고 일본야구기구(NPB)도 이치로와 마쓰이를 합류시킬 것이다. 따라서 팀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MLB의 배당 비율이 더 높아야만 한다는 주장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논리에도 맹점은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가 더 많고 대표팀에도 더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를 포함시킬 게 분명하다. 메이저리그 선수를 각국 대표팀에 빌려주기 때문에 MLB의 배당이 많아야 한다면 한국은 일본보다 선수를 적게 빌리므로 일본보다 배당률이 높아야 한다. 대회 수입과 비용을 WBCI가 공정하게 관리할지도 의문이다. MLB의 각 구단은 구단 수입을 잘 속이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예전 다저스의 구단주이던 오말리는 유능하다고 평판이 자자하던 자기 팀의 단장 버지 바바시가 연봉 인상을 요구하자 팀이 200만달러나 적자라고 엄살을 떨었다. 바바시는 정작 다른 구단으로 옮기고 나서야 당시 다저스가 400만달러의 흑자를 낸 사실을 알았다. 또 구단들은 미국 의회가 요청을 해도 정확한 구단 재정을 밝힌 적이 없다. 퍼센트로만 된 수입 분배는 이런 전력이 있는 MLB가 대회를 관장하는 주최격인 WBCI를 믿어야만 가능하다. 가장 많은 돈을 배당받는 미국이나 일본이 예선에서 탈락해도 예정대로 분배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결론은 합리적으로 수입을 분배하려면 참가국이 각자 자기 나라 방송의 중계권을 갖고 입장 수입 등 기타 수입은 성적대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예선도 해당 지역의 국가들이 관장해야 이치에 맞는다. ‘스포츠투아이’ 상무이사 tycobb@sports2i.com
  • 대한야구협회 이내흔 회장 아시아야구연맹회장 당선

    대한야구협회 이내흔(69) 회장이 아시아야구연맹(BFA) 수장에 올랐다. 이 회장은 2일 스위스 로잔 모벤픽호텔에서 열린 BFA총회에서 유효투표 19표 가운데 10표를 획득해 통 팽 타이완야구협회장(9표)을 간 발의 차로 따돌리고 회장에 당선됐다. 한국인으로선 임광정(1981년), 김종락(1983∼1995) 회장에 이은 세번째. 지난 83년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으로 스포츠계에 입문한 이 회장은 대한역도연맹 회장, 아시아역도연맹 회장을 역임했고,96년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 구단주대행을 맡아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의 기틀을 마련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지난해 발표된 국내 100대 부호 명단에는 6명의 허씨가 포함됐다. 허창수(57) GS회장이 316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허정수(55) GS네오텍 사장이 2530억원,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1700억원, 허완구(69) 승산회장이 1510억원,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이 각각 139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 가운데 하나인 김해 허씨 문중인 이들은 경남 진주의 만석꾼인 고 허만정씨 자손들이다. 허씨가는 지난 세월 재계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 LG에서 분리, 재계 7위 규모의 GS그룹을 출범시키며 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GS그룹은 삼양통상, 승산, 코스모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 회사들을 계열로 편입시키며 무려 5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기준 자산규모는 18조 7200억원으로 한화(16조 2200억원), 두산(9조 7300억원) 등 전통을 자랑하는 그룹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허씨의 핵, 허준구 일가 수백년간 이어졌던 구씨와 허씨의 관계를 ‘인척’에서 동업관계로 바꾼 사람은 고 허준구 회장이다.1946년 초 고 구인회 LG 창업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6촌)인 고 허만정씨가 3남인 준구(작고)씨의 ‘경영수업’을 부탁하면서 사업자금을 내놓은 것이다. 구 회장은 귀족적인 용모의 일본 간토중학교(5년제) 출신 사돈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 허만정씨가 내놓은 자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씨가는 이후에도 고향마을(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의 땅을 처분한 돈으로 계속 출자를 했다. 이른바 해방정국의 ‘벤처캐피털’인 셈인데 허씨의 투자는 59년 만에 18조원이 넘는 자산으로 돌아왔으니 ‘대박’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허준구 회장은 당시 가내수공업 수준을 면치 못하던 락희화학의 영업담당 이사로 발을 디뎠는데 당시 공장에서 고생하던 구자경 이사를 부산 시내로 불러내 술을 사 주며 ‘위로’하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내가 ‘비어홀’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본 것은 준구씨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허 회장은 반도상사(현 LG상사)·금성사 상무를 거쳐 62년 금성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68년 반도상사 사장을 시작으로 71∼82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사장,84∼95년 금성전선 회장 등을 지내며 LG그룹의 버팀목이 됐다. 구인회 회장은 68년 그룹체제를 출범시키며 허 회장에게 초대 기획조정실장을 맡길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69년 락희화학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실시한 것도 당시 기조실장이었던 허 회장의 ‘숨은 공로’다. 77년 하루 480㎜의 폭우가 쏟아져 금성전선 안양공장이 2m 가까이 침수됐을 때 허 회장은 예비군복에 장화를 신고 물속을 헤치고 다니며 공장 복구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밤낮없이 꼬박 두달동안 계속된 복구작업끝에 안양공장은 주변 공장 중에서 가장 빨리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2년 7월29일 허 회장이 세상을 뜨자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등 구씨들은 ‘5일장’ 내내 자리를 지키며 ‘사돈이자 동지’였던 허 회장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허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씨 장녀 위숙(77)씨와의 사이에서 5명(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의 아들을 뒀는데 모두 고려대 동문인 데다 대부분 해외유학파 출신이다. 특히 창수·정수·진수씨는 학과(경영학과)까지 똑같다. ●항상 공부하는 허창수 회장 장남인 허창수 회장은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지주회사인 GS홀딩스와 GS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허 회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77년 그룹 기조실 인사과장으로 입사했다.79년 럭키금성상사 해외기획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홍콩지사, 도쿄지사 등 해외근무를 오래하며 영어와 일어 실력을 쌓았다.88년 럭키금성상사 전무로 승진한 직후인 89년에는 LG화학 부사장을 지냈고 92년부터는 LG산전(현 LS산전) 부사장을 맡았다. 95년 구본무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아버지가 맡고 있던 LG전선 회장을 이어받았고 2002년부터는 LG건설(현 GS건설)을 지휘하며 분가를 준비해왔다. 허 회장은 첨단제품과 해외정보에 관심이 많은데 지금도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 해외 경제전문지들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2002년 LG건설 회장을 맡으면서 ‘건설부흥’,‘주간 다이아몬드’ 등 일본의 경제잡지에 나온 일본 건설회사의 현황 기사를 번역해 임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미국 건설산업 왜 강한가?’,‘영국 건설산업의 혁신전략과 성공사례’ 등을 필독서로 권유했다. 허 회장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조깅을 한다. 허 회장은 조깅, 등산 등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량이 부족한 임직원들을 위해 ‘만보기’를 직접 사줄 정도로 자상한 면모도 갖고 있다. 골프는 80대 중반 실력이지만 라운딩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주량은 양주 반병 가량으로 약하지는 않지만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늘 구본무 회장 한발 뒤에 섰던 허 회장은 소탈하고 겸손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에서 지하철 한 코스 떨어진 강남역 정도는 수행비서도 없이 걸어서 다닌다. 비서팀도 따로 없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을 지닌 데다 젊은 직원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첨단기기들에 관심이 많은 허 회장의 향후 행보는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허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당대에서는 LG와 겹치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슈퍼루키’ GS그룹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어느 쪽에서 터져나올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허 회장은 고 이철승 전 상공부 차관의 딸인 부인 이주영(53)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아버지의 모교인 미국 세인트루이스대를 나온 아들 윤홍(26)씨는 지난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 영업전략팀·경영분석팀 등을 거쳐 올 초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GS건설 경영관리팀 대리로 입사했다. 구씨와 마찬가지로 허씨 역시 ‘장자승계’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므로 먼 훗날에는 윤홍씨가 허씨가의 대표로 그룹 회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윤홍씨는 조만간 누나(윤영·29)가 공부중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MBA 코스를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경영을 책임지는 동생들 허창수 회장의 첫째 동생 허정수(55)씨는 GS네오텍(전 LG기공) 지분 100%를 보유하며 사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허 사장은 90년대 LG전자에서 상무로 일하다 96년 LG기공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했다. 당시 LG는 처음으로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구씨와 허씨 한 명씩을 분가시키기로 했는데 구씨 쪽에서는 고 구정회씨 아들인 구형우씨가 부민상호저축은행을 갖고 독립했고 허씨쪽 대표로 허 회장이 LG기공을 맡았다. 교환기 설치 및 부가통신공사, 유무선 통신케이블 및 전송공사, 전기전력 및 산업 플랜트 공사, 정보통신 및 인터넷사업을 영위중인 GS네오텍은 지난해 수주 2700억원에 매출 2250억원, 당기순이익 123억원을 냈다. 최근에는 반도체,LCD 공장에 필수적인 ‘클린룸’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부인 한영숙(51)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장남 철홍(26)씨는 GS홀딩스 지분 1.26%를 갖고 있는데 ‘홍’자 돌림 3세 가운데 가장 많다.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주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일했다.2000년에는 LG전자 중국지사 부사장을 거친 뒤 2001년부터 GS칼텍스 경영전략본부장·경영혁신본부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생산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2003년에는 발전회사인 LG에너지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GS가 LG에서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LG는 LG에너지 지분을 GS에 매각하는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부사장은 부인 이영아(47)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은 경복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LG전자 청소기공장장, 영국 뉴캐슬 법인장 등을 거쳐 2002년 허창수 회장과 함께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재경본부장으로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려대 ‘역도부’에서 활동했다. 허 부사장은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의 딸인 부인 노경선(45)씨와의 사이에 2남을 뒀다. 노 전 국방장관은 ‘12·12사태’때 국방장관으로 말 못할 고초를 겪은 뒤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등을 지냈다.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 코스를 밟았다. 이후 콘티넨탈은행, 어빙은행 등 금융권 경력을 살려 88년 LG증권 국제조사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런던법인 상무보 등 2002년까지 LG증권에서 일하다 LG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로 자리를 옮겼고 2003년 말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허 부사장은 중국 현지 법인인 ‘충칭GS쇼핑’ 설립을 주도하는 등 중국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허 부사장은 바로 위 형인 허명수 부사장과 함께 골프실력이 재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싱글’ 수준을 넘어 ‘이븐’이나 ‘언더파’를 칠 정도로 프로 못지않다. 부인 이지원(43)씨는 이한동(71) 전 국무총리의 장녀. 한때 대권 후보로까지 나섰던 이 전 총리는 현재 법무법인 남명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데 아들 이용모(41)씨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장남가의 화려한 혼맥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삼성을 공동 창업했다. 보성전문 법학과 출신의 허 회장은 제일제당(현 CJ) 전무, 삼성물산 사장을 지낼 정도로 삼성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다 57년 삼양통상을 설립, 독립했다. 야구공·글러브와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는 삼양통상은 지난해 2121억원의 매출에 9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양통상은 또 수입담배, 골프용품, 윤활유 판매 등을 맡고 있는 삼양인터내셔널과 보헌개발, 경원건설 등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허 회장은 권투협회장, 대한체육회장, 프로골프협회장, 골프장협회장, 아시아태평양아마골프회 회장 등 체육계와 남다른 인연을 쌓았는데 생전에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삼양통상은 허 회장이 99년 사망한 뒤 장남인 허남각(67) 회장이 이끌고 있다. 허 회장의 부인은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를 지낸 구자영(68)씨다. 허 회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상대,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을 마친 뒤 63년 삼양통상 시카고 지사장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시아태권도연맹회장을 지낼 정도로 스포츠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GS그룹의 주요 주주이자 ‘장손’ 자격으로 올 초 허창수 회장의 전남 여수 GS칼텍스 사업장 방문을 동행해 주목을 받았다. 허 회장의 장녀 정윤(34)씨는 정문원 전 강원산업 회장 아들 대호(37)씨와 결혼했고 아들 준홍(30)씨는 올해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씨와 사돈으로 연결된다. 의선씨가 정문원 회장의 조카사위가 되기 때문이다. 장녀 허영자(65)씨는 벽산그룹 김희철(68)회장과 결혼, 김성식(38) 벽산 사장, 김찬식(36) 벽산 상무 등 3형제를 낳았다. 차남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은 보성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오너경영인’이다. 허 회장은 미국 셰브론 리서치사의 연구원을 거쳐 73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로 입사,33년째 ‘오일맨’의 길을 걷고 있다. 국내 최초로 휘발유에 브랜드(테크론)를 도입하는가 하면 전 세계 정유업계 최초로 ‘6시그마’를 도입해 혁신을 추구했다. 도시가스, 전력,LNG 등 사업다각화와 대규모 시설투자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를 설립,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아마 6단으로 바둑에 남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데 2001년부터 한국기원(총재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사장을 맡고 있다.GS칼텍스배 바둑대회를 신설해 바둑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젊은 시절에는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했다. 김선집(86) 전 동양물산 회장의 장녀인 부인 김자경(60)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뒀는데 막내딸 지영(25)씨는 이병무(64) 아세아시멘트 회장의 차남 인범(34)씨와 결혼했다. 3남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 상대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마쳤다. 삼양통상과 나이키의 합작사였던 한국나이키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 골프연맹 부회장, 영국 로열앤드에인션트골프클럽 정회원으로 골프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사촌 동생(명수·태수)들에 못지않은 골프실력을 자랑한다. 고려대 아이스하키 대표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남다르다. 부인은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인 김영자(55)씨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부인 김영명씨의 언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외동딸 유정(31)씨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 준오(31)씨와 결혼시켜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삼양통상은 지난해 류근일(67) 전 조선일보 주필을 사외이사로 선임, 조선일보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허남각·동수·광수 3형제는 GS타워 인근에 ‘삼정빌딩’을 갖고 있는데 삼양통상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삼정은 3형제가 돈을 모아 세웠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3형제는 또 삼양통상 지분 17%,4.5%,3.1%를 나눠 갖고 있다. 허남각 회장의 아들 준홍(34)씨, 허동수 회장의 아들 세홍(36)·자홍(33)씨, 허광수 회장의 아들 서홍(28)씨도 각각 11%,1.7%,0.8%,1.7%를 갖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널의 경우 준홍·세홍·자홍·서홍씨가 각각 37%,33%,11%,7.5%를 갖고 있어 사실상 2세들이 소유하고 있다. 차녀 허영숙(53)씨의 남편은 유명한 소설가인 윤후명(59·본명 윤상규) 한국문학원 원장이다. 윤씨는 연세대 철학과 재학중이던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여우사냥), 이상문학상(하얀배), 이수문학상(나비의 전설) 등을 수상했다. 연세대 강사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대학 학장도 역임했다. ●LG의 창업공신 허학구·신구가 고 허만정씨는 8형제 가운데 허준구씨의 경영수업을 사돈에게 부탁했는데 이후 준구씨의 형인 고 허학구씨와 동생 허신구(76) GS리테일 명예회장도 LG경영에 뛰어들었다. 학구씨는 고향마을을 지키다 51년 플라스틱 사업 진출을 준비하던 락희화학에 들어갔다. 부산 범일동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사업진출을 서두르던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학구씨를 불러들여 아들 자경씨와 함께 공장업무를 맡겼다. 이후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한 뒤에도 둘은 공장이 완공돼 빗, 칫솔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군용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며 현장 노동자처럼 일했다고 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당시 함께 고생한 학구씨와 그의 자형인 이연두씨 등 ‘지킴이 삼총사’가 일은 물론 술로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학구씨는 6척 장신으로 경기고보 시절부터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부친(허만정)이 공부해야 한다며 진주고보로 전학을 시켰다. 하지만 진주고보에서도 농구를 시키려고 하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학구씨는 LG전선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1970년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학구씨는 최필선(89)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낳았는데 장남 전수(61)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새로닉스 회장을 맡고 있다. 새로닉스는 고 허학구 회장이 68년 설립한 ‘정화금속’이 이름을 바꾼 회사로 인쇄회로기판(PCB),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을 생산하다 최근에는 LCD백라이트 부품인 도광판과 브라운관 전자총 부품 등 디스플레이 부품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변경했다. 허 회장은 71년 미국 센트럴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74년 정화금속 총무이사로 입사,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았다.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부산대 상대를 나와 해운회사인 ‘조선통운’에 근무하던 시절 사돈어른인 구인회 창업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의 서울사무소 일을 맡았다. 허 명예회장은 처음에는 장사 경험이 없다며 사돈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자네 뒷조사는 다했다. 그만하면 일 하겠더라.”며 서울행 기차표를 쥐어주는 사돈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허 명예회장은 이후 동남아 출장에서 ‘합성세제’ 아이디어를 얻어 럭키 ‘하이타이’를 탄생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금성사 사장, 럭키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다 95년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다. 허 명예회장은 윤봉식(74)씨와 2남2녀를 뒀다. 장남 경수(48)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코스모화학 등을 주력으로 한 ‘코스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코스모그룹은 코스모정밀화학, 코스모앤컴퍼니, 코스모앤홀딩스, 코스모양행, 코스모아이넷, 코스모레저, 드림스포츠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코스모화학은 코스모산업이 2003년 이산화티타늄 독점공급업체인 ‘한국지탄공업’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 허 회장은 LG전자에서 이사로 잠시 일하다 87년 코스모산업 설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동생인 허연수(44)씨는 GS리테일 상무로 삼촌인 허승조(55) 사장을 보필하고 있다. 보성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87년 LG에 입사한 허 상무는 LG상사 싱가포르법인장을 끝으로 상사를 떠나 2002년부터 LG유통(GS리테일)에서 일해 왔다. ●고향이름을 딴 승산가 허완구(69) 승산 회장은 미국 페이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잠시 LG에서 일했지만 69년 ‘대왕육운’이라는 물류회사를 차려 일찌감치 독립했다. 허 회장은 이미 LG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형님들이 너무 많아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대왕육운은 이후 구씨와 허씨의 고향 이름을 따 승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허 회장은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부위원장과 민속씨름협회장 등을 맡을 정도로 스포츠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아버지 허만정씨가 1925년에 설립한 진주여고(일신여고)에 100억원을 쾌척, 교사를 새로 짓는 등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9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장남 허용수(37) 승산 사장은 보성고와 미국 조지타운대를 마치고 뉴욕 및 홍콩 CS 퍼스트 보스턴 투자증권에서 일했다.98∼99년에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LG그룹의 육상 운송을 담당하는 승산은 허 사장이 58.55%, 여동생인 허인영(33) 승산레저 이사가 18.48%, 허완구 회장이 18.34%, 허 회장 부인 김영자(66)씨가 4.63%를 갖고 있다. 김영자씨는 ‘추일서정’,‘와사등’ 등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사업가였던 고 김광균씨의 딸이다.‘매듭공예가’인 김은영(63) 녹미미술문화협회 이사장이 동생이다. LG는 친인척 소유의 회사에 물류업무를 맡기고 있는데 수출 관련 물류는 고 구정회씨 둘째 아들인 고 구자헌씨가 운영하던 범한종합물류가 담당한다. 범한여행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범한물류는 구자헌씨의 미망인인 조금숙(55)씨가 54%, 아들 구본호씨가 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승산은 물류회사인 에스엘에스·여수화물, 골프장·호텔사업을 하는 승산레저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국내보다 미국내 계열사인 철강회사 파웨스트스틸(Farwest Steel)의 규모가 훨씬 크다. 허 회장이 91년 인수한 파웨스트스틸은 지난해 2593억원의 매출에 183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모회사인 승산(매출 867억원, 순이익 183억원)보다 덩치가 크다. ●‘젊은 삼촌’ 3형제 허승효(61)씨는 조명전문업체인 알토 회장을 맡고 있는데 경남고와 경희대를 졸업하고 형님 회사인 정화금속 이사와 승산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85년부터 알토를 이끌었다. 알토는 아셈타워 정상회의실과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역사, 인천공항 여객터미널,GS타워 등의 조명시스템을 설계, 제작했다. 숭례문, 보신각, 비원, 동십자각 등 문화재 조명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허 회장은 서울시 야간경관 개선 공로로 월드컵유공자, 모범시민상 등을 받았다. 그는 한국조명디자이너협의회 회장, 한국산업디자인협회 이사, 한국전기설비조명학회 이사 등을 맡을 정도로 조명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난해 매출 311억원, 순이익 20억원을 낸 알토는 허 회장이 36%, 아들 영수(36)·윤수(32)씨가 각각 15%, 동생인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이 각각 3.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영수씨는 현재 GS리테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은 기업인으로뿐만 아니라 ‘축구인’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보성고와 연세대 상대, 서울은행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74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프로축구 3부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허 회장은 78∼90년 형님 회사인 승산에서 근무한 뒤 90년 방송 프로그램 제작, 미디어 유통,CF편집 등을 담당하는 미디아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미디아트는 허 회장과 부인 조희숙(56)씨, 딸 서정(29), 아들 준수(28)씨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허 회장은 2000년에는 이동통신용 전력 증폭기, 유무선 통신용 부품 및 이동통신용 중계기 등을 제조하는 ‘인텍웨이브’를 설립,IT업종으로 발을 넓혔다. 인텍웨이브는 LG전자 등을 주 거래처로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허 회장은 90∼92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97년에는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회장 선거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는 선에서 정리했다. 축구계의 ‘야당’으로 불리는 연구소는 이용수, 신문선씨 등이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이후 패션본부장, 유통사업부문장, 마트부문장 등을 역임하다 2000년 LG백화점 사장으로 유통경영을 시작했다.2002년 LG백화점,LG상사 할인점 부문,LG유통이 LG유통으로 통합되자 초대 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허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10년 뒤의 장기 비전을 갖고 대비하라.”고 주문하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한다고 한다. 허 사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인 헬스·미용 전문기업인 ‘왓슨’과 합작으로 ‘GS왓슨스’를 설립, 지난 3월 홍익대에 1호점을 내고 지난 2월에는 코오롱마트를 인수하는 등 신규사업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룡 회장의 장녀인 부인 이경훈(51)씨와 2녀를 두고 있다. 허 사장의 처가는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 양택식 전 서울시장, 한광호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명예회장, 신선호(롯데 신격호 회장 셋째 동생)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 등과 혼사를 맺었다. ukelvin@seoul.co.kr ■ 허씨의 남다른 축구사랑 GS그룹은 분리되면서 LG의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 등 스포츠 가운데 축구를 갖고 나왔다.‘안양LG’는 지난해 3월 ‘FC서울’로 이름을 바꿔 서울 입성에 성공한 뒤 거물 신인 박주영을 잡으면서 일약 명문구단으로 떠올랐다. FC서울의 눈부신 성장에는 허창수 회장 등 허씨 일가의 남다른 축구사랑이 밑거름이 됐다. 98년부터 LG축구단 구단주를 맡은 허 회장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해외출장 중에도 FC서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인터넷을 통해 경기상황을 직접 확인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녹화해 나중에라도 꼭 챙겨 본다고 한다. FC서울은 박주영의 고교(청구고)시절인 2002년부터 영입에 공을 들였다. 비록 박주영이 고려대 진학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영입에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끈질기게 박주영측과 고대를 설득, 마침내 대어를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이 모교인 고대에 7억원짜리 잔디구장을 기증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GS측은 “그런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허 회장 5형제가 모두 고대 출신일 정도로 고대와 깊은 인연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주영의 유니폼에 광고를 하고 있는 GS건설은 박주영 신드롬으로 광고효과만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GS리테일이 실시한 ‘박주영 경기 보러 가자.’라는 이벤트에는 3만 6000여명이 응모하는 대성황을 이뤘다.GS는 지난 5월10일 열린 ‘GS출범 이벤트’ 추첨자로 박주영을 내세우는 등 박주영을 그룹의 ‘얼굴’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허 회장의 삼촌으로 연세대, 서울은행, 영국 아스날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한 허승표 인텍웨이브 회장은 축구계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97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 도전한 데 이어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축구계 개혁에 힘쓰고 있는데 경쟁 상대인 정몽준 회장이 조카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동서라는 점이 이채롭다. 사돈간의 ‘정리’도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막지 못한 것이다. 허씨들은 축구 외에도 아이스하키, 골프, 역도,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GS 관계자는 “허씨들이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데다 집안에 여유가 있어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허씨 3세 남자들 가운데는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축구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여자들도 열성 축구팬이 많다. ukelvin@seoul.co.kr ■ 계열사의 핵심인맥 GS그룹은 숫자에 관한 감각이 탁월하다는 오너 허씨 일가에 이어 각 계열사 CEO도 재무통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18조원이 넘는 그룹 자산을 관리, 운용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서경석(58) GS홀딩스 사장은 부산 출생으로 경남고를 졸업했다. 서울대법대 4학년이던 70년 행정고시 9회에 합격, 국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 세제국, 국세심판소 조정실장, 간접세과장,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상임심판관, 주 일본 대사관 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91년 LG그룹 회장실 재경 상임고문으로 옮겼다. 서 사장은 공직에서 쌓은 재무 경력을 바탕으로 LG에서도 회장실 재무팀장, 전략개발사업단 운영본부장,LG투자신탁운용 사장,LG종금 사장, 극동도시가스 사장,LG투자증권 사장 등을 거쳤다. 허창수 회장이 서 사장을 GS그룹으로 영입한 것도 그의 회계·재무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강말길(62) GS홈쇼핑 부회장 역시 재무통이다. 부산대 상대 출신으로 공인회계사이기도 한 강 부회장은 금성통신 재경본부장, 관리담당 이사를 거쳐 회장실의 관리담당 상무를 역임했다.89년 LG유통(GS리테일) 전무로 부임, 유통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고 95년 LG유통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3년만에 만년 적자이던 편의점 사업을 흑자로 돌려 놓은 뒤 지난해 LG홈쇼핑으로 옮겼다. 김갑렬(57) GS건설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경남고,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으로 74년 LG화학 입사 후 LG상사 등을 거쳐 93년부터 96년까지 LG건설 재경 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LG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과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치며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부상했다.2002년 허 회장과 함께 LG건설로 옮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 “2010년까지 양과 질에서 국내 1위 건설회사로 만들겠다.”던 약속대로 2002년 3조 6000억원이던 수주액을 2003년 5조원, 지난해 6조원으로 키워냈고 올해 6조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완경(51) GS스포츠 대표이사 부사장도 선린상고와 고대 경영학과를 거쳐 79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한 이래 줄곧 재경업무를 담당해 왔다.LG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서경석 사장과 함께 ‘LG증권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GS홀딩스 재무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심재혁(58) 한무개발 사장은 연세대 상대,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LG그룹 홍보팀장을 거쳤다. 인터컨티넨탈을 국내 최고 수준 호텔로 키워내 재계의 대표적인 ‘홍보맨 CEO’로 꼽힌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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