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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비정규직 이름팔지 말라/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비정규직 이름팔지 말라/우득정 논설위원

    16개월에 걸친 진통 끝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가까스로 통과했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민주노동당의 국회 법사위 점거와 야 4당의 공조로 또다시 4월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까지 포함하면 4년 가까이 비정규직 법안이 표류하고 있다. 정치권과 노동계, 재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임을 떠넘기며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는 파견 및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한을 2년으로 정부안보다 1년 줄인 환노위 수정안이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며 모처럼 ‘공조’를 보이고 있다. 재계는 노동계의 결사항전을 빌미로 비정규직 입법 자체를 아예 백지화했으면 하는 속셈이다.‘고용 유연성 확보’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이라는 양대 정책 목표 중 고용 안정에만 치우친 입법 내용이 탐탁지 않은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비정규직 채용 사유만 제한하면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정규직을 채용할 텐데 구태여 잡다한 부대조건을 붙여가며 누더기 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도 정규직처럼 번듯한 정장을 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면 철 지난 세일품을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형편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해결법이다. 하지만 기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내용을 분석하면 지난해 8월 현재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184만 6000원, 비정규직 115만 6000원이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62.6%다. 노동계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850만명으로 보면 정규직 전환 비용은 연간 70조 3800억원이다. 정부 기준을 적용해 540만명으로 보면 연간 44조 7120억원이다. 그러나 지난해 10대 그룹의 전체 순이익은 23조 362억원이다. 2004년 기준 전체 531개 상장회사의 순이익은 49조원이다. 순이익을 몽땅 쏟아부어도 정규직 전환 비용에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사회보험 중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3대 보험의 가입실태를 보면 정규직은 63.8∼75.9%인 반면 비정규직은 34.5∼37.7%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사회보험 추가비용도 간단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의 하청업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 관행을 시정하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허구인 셈이다. 기업으로선 적자를 감수하며 정규직으로 전환할 바에야 공장을 접거나 살 길을 찾아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치권과 노동계는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게 된다거나, 비정규직을 양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라며 말꼬리잡기식 힘겨루기만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정부안이든, 환노위 수정안이든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비정규직에게는 고용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노동계가 선동하듯이 비정규직을 더욱 곤경에 몰아넣는 악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고용구조는 갈수록 줄어드는 정규직 일자리, 광범위한 비정규직 일자리에 다양한 형태의 실업자군이 노동시장 진입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형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따라서 실업자는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선순환할 수 있게 혈로(血路)를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해법이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의 참상을 내팽개치는 놀음은 더 이상 계속돼선 안 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지자체 국제교류에 ‘쓴소리’

    지자체 국제교류에 ‘쓴소리’

    현직 부구청장이 지방자치단체의 국제교류에 대해 ‘쓴소리’를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강동구 박용래(53)부구청장. 그는 최근 서울시립대에서 ‘대도시정부의 국제교류 실태와 활성화 방안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서울시 국제교류과를 거쳐 미국 LA 초대 주재관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논문을 썼다. ●‘그 나물에 그 밥´ 차별화 전략 요원 지난달 28일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예상대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해외 도시와 벌이는 국제교류 사업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외자유치 등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인천시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지자체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사업이기보다 지자체의 대외 홍보 등 간접적인 효과를 거두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또 국제화 전략이 차별화되어야 하는데도 지자체 대부분 비슷하게 추진하는 실정이지요.” 박 부구청장에 따르면 2003년말 현재 서울은 36곳, 부산 19곳, 대구 19곳, 인천 52곳, 광주 48곳, 대전은 15곳 등 자치단체들이 외국의 도시와 교류를 하고 있다. 교류 건수와 교류의 질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대개 행정 교류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 국가 편중·전문성 부족 “교류라고 해도 해당 지자체·지역 인사들의 친선방문, 상대 도시 기념일 서신 발송 등 의례적인 교류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문화행사 참가 등 일회성 행사에 그치다가 교류가 끊기는 사례도 있었구요.” 그는 국제 도시간 자매결연도 일본, 중국, 미국에 쏠려 있어서 다양한 도시와의 관계를 맺는 데 제한을 받고, 국제 교류 전담 조직의 인력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해외 행정사례 국내 접목 아이디어 번뜩 박 부구청장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LA주재관을 지내면서 국제 교류에 관심을 갖게 됐다.LA서울종합홍보센터를 개설한 뒤 서울에 소재한 중소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박람회 등을 주선하면서 행정도 국제 부문으로 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미국 LA주재관을 지내면서 서울시에 해외 행정 사례에 대해 보고했다. 무려 281건,6428쪽에 이르는 분량이어서 한국에 돌아온 뒤 ‘사례별로 본 미국의 지방행정’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책은 아직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등의 보고서 등에 인용되기도 한다고 박 부구청장은 전했다.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 지방 정부가 실시하는 제도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어서 실무자가 관련 분야를 참고하도록 엮었습니다.” 책자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경제·정보화·행정·교통·건축·환경·상하수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중소기업 진흥정책, 도쿄의 뉴욕 사무소 운영, 전자우편을 통한 대민 봉사,LA시청사 건립, 뉴욕시 대중교통체계, 도로상 구걸방지법, 샌프란시스코의 문화시책, 이민족 다문화 축제 등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해외 행정 사례를 국내에 접목한 아이디어도 끊이지 않았다. 국제도시행정협회(ICMA·international City Management Association)에서 펴낸 자료집을 요새도 틈틈이 읽는 탓이다. ●미국선 세금 징수 아웃소싱도 “세금 체납자들을 대상으로 387기동팀을 운영해서 세금을 받아내지만, 미국의 경우 세금도 아웃소싱합니다. 지방정부가 수수료를 주고 세금질권을 넘기면 해당 업체가 받아내는 방식이지요. 세금이 걷히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 그는 이번에 박사 학위를 받은 게 시작이라고 말했다. 국제 교류를 전공한 만큼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구청 행정에도 접목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부구청장은 요즘도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영어 방송을 듣고, 주말에 산을 오르내릴 때에도 이어폰을 꼽고 영어회화를 듣는다. 박 부구청장은 중앙대학교 법대 재학시절 행정고시(18회)에 합격,1976년 서울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 국제교류과장, 투자관리과장, 비서실장 등을 거쳐 강남구 재무국장, 성동구 부구청장 등을 지냈다. ▲ 학력 -중앙대학교 법과대 졸업 -미국 피츠버그대학 행정대학원 졸업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 주요 경력 -제18회 행정고시 합격 -서울시 총무과장, 국제교류과장, 투자관리과장, 시장비서실장, 강남구청 재무국장, -미국 LA서울종합홍보센터 관장 -서울시립대학교 사무처장 -강동구청장 권한대행 -강동구청 부구청장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그라나다를 찾아가는 길은 알함브라 궁전을 떠올리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예술. 스페인 땅에 남아 있는 마지막 이슬람 유산. 지상에 마련한 실존의 파라다이스. 어떤 찬사로도 모자라는 알함브라는 그라나다에 있다. 무어(Moor)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아랍인들이 800년간이나 이곳에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남겨 놓았다. 바로 안달루시아 문화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화가 공존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인류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도시의 언저리마다 웅크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달루시아 문화의 중심도시가 바로 그라나다다. “그라다나라는 에메랄드에 알함브라라는 빛나는 오리엔트산 진주가 박힌 인류 최고의 보석” 15세기 한 아랍 시인의 표현이다.1492년 1월.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 알함브라 궁전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궁전의 새 주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결혼에 의해 아르곤과 카스티야 왕국은 통합을 이루고, 이베리아 반도에 이슬람의 지배를 청산하는 거룩한 사명을 천명했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아랍 왕 보아브딜은 자신의 가련한 시민들을 보호해 준다는 조건으로 금화 3만냥과 궁전을 바치고 항복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해야 했다. 예술을 사랑하고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보아브딜은 약자의 비애를 처절하게 되뇌며 정든 알함브라 궁전을 떠나갔다. 겉으로 언뜻 보면 투박함이 어느 아랍 궁성이나 성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덕을 오르고 첫 번째 문을 들어서는 순간, 비감함과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왕궁이 있던 팔라치오 레알 안으로 들어선다. 분수가 있는 전형적인 아랍식 실내 정원과 천국에서의 휴식을 설계한 시원한 공간 구조, 아라베스크 벽면 장식과 조각 예술의 극치에 나는 한참 동안 적당한 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알함브라구나. 네 이름만으로도 이제 충분하구나. 아랍건축의 특징은 외관의 투박함과 내부의 화려함이다. 그리고 많은 문들을 통해 실내로 연결되는데, 문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화려함과 정교함은 점점 도를 더해간다. 속세와 천국을 건축에 표현하려는 아랍인들의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왕궁 입구로 들어서면 두 벽 사이로 기다란 아라야네스의 안뜰이 이방인을 맞는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벽면의 초록색 모자이크가 기가 막힌 대조를 이루고, 아치를 이루는 조각 기둥이 떠받치는 지붕에는 붉은 아도베 기와를 얹었다. 작은 연못 물위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아치와 기둥 장식이 수중 도시처럼 느껴진다. 술탄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대사의 방에서는 뚫려 있는 아치 사이로 맞은 편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알바이신 이슬람 마을이다. 역사와 가슴 아픈 사연이 깔려 있는 마을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그때, 스페인 병사들은 소수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 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팽개치고 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새로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은 무참히 무릎을 꿇었다. 무슬림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들은 죽어가면서 처참한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래서 하얀 집과 벽에는 당시의 학살로 붉게 물든 핏자국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30여개에 달하던 모스크는 지금 성당이 되어 버렸다. 다만 좁은 골목과 서로의 목소리로 이웃과 통하는 가옥 구조가 전형적인 아랍 마을을 닮아 있다는 것뿐이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인 하얀 집들 사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석양을 이고 나직이 깔린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잠시 떠올리다가 ‘사자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내 정원과 마주하고 섰다.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는 중앙 분수와 사자의 입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물은 파놓은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을 흐른다. 야릇한 향내를 머금은 앞뜰의 정원수가 작은 그늘을 이루고,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역동적인 종유석 조각을 담은 아치 아래에는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황량한 사막을 뚫고 온 아랍인들이 이곳에 오아시스의 정서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 같다. 아니면 코란에서 묘사하는 천국을 설계한 것일까? 사자의 정원을 나오니 아름다운 분수가 바라다 보이는 계단에 한 맹인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스페인어로 팻말을 세워놓았다.“아름다운 여인이여! 자선하세요. 그라나다에서 맹인이 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스페인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의 시구다. 아! 동전 한 닢을 놓으면서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서 만난 맹인의 말없는 절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슬람의 궁성이 함락되던 1492년 그 해,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모신 제노아의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무적 함대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전성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한편 이슬람의 술탄 보아브딜은 다시 스페인에서 쫓겨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800년 전인 711년, 그의 선조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할 때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이다.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에도 보아브딜은 꿈에도 알함브라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63세를 끝으로 눈을 감았던 그의 초라한 페스 궁전은 너무나도 알함브라 궁전을 닮아 있다. 지금 대성당이 있는 알카이세리아 주변지역은 전형적인 아랍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아랍인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번 이슬람화 된 세계의 모든 지역이 끝까지 이슬람을 지켰지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만은 예외였다. 다시 가톨릭이 점령한 이 땅에서 이교도인 무슬림들과 유태인들이 가혹한 추방과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 때 문화용광로로서 유럽 르네상스를 일으키게 했던 최고 수준의 지적 산실이었던 안달루시아는 문명과 학문이 소멸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잊혀졌다. 그리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슬람 유산을 보기 위해 다시 안달루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수도권플러스] 서울지하철 무질서행위 26일부터 단속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는 26일부터 지하철 잡상인과 구걸행위 등 무질서행위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25일 밝혔다. 공사는 그동안 일정 구간별로 운영돼 오던 차내 단속반을 전담 책임자 배치와 인력증원 등으로 재편성 운영해 단속키로 했다. 또 신고전화(6311-2200,1577-5678)를 개설, 잡상인 등 무질서 행위자 신고를 받는다.
  • 中 ‘인터넷 거지’ 등장

    中 ‘인터넷 거지’ 등장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에 처음으로 ‘인터넷 거지’가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사기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지만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 중심으로 ‘자선 행위’에 동참, 제법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란저우천바오(蘭州晨報)가 7일 보도했다. ‘인터넷 구걸’의 현장은 이달 초 처음으로 선보인 웹사이트(www.somebody.com.cn)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걸자 사진 3장을 올려놓고 “거지들이 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도와주세요.”라며 적선을 호소했다. 적선 금액도 ▲0.5위안 ▲1위안 ▲10위안 등 3가지로 구분했고 지불계좌(self@163.com)도 올려 놓았다. 모금액의 증가 상황을 매일 매일 알리면서 인터넷 적선자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구걸’의 주인공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네티즌 사이에서 ‘컴퓨터 전문가의 사기 구걸이냐, 진짜 거지 행각이냐.’는 논쟁이 뜨겁게 일고 있다. 란저우천바오는 “란저우(蘭州) 소재 초·중학생들이 이웃돕기 차원에서 적잖이 모금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중국에선 ‘인터넷 구걸’에 대한 법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 인터넷 거지들이 보다 빠르게 확산될 것이란 지적이다. oilman@seoul.co.kr
  • 12일 아세안+3 정상회의 한·중·일 회담 무산될 듯

    |도쿄 이춘규특파원|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오는 12일부터 열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 때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파로 무산될 가능성이 일본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하지만 믿을 만한 도쿄 외교소식통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일본이 “굳이 회담을 구걸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 막판 변수다. 한·중·일은 1999년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의 제안으로 ‘아세안+3 정상회의’ 때마다 3국 정상회담을 해왔다.올해 3국 정상회담 의장국은 중국으로, 현재까지 회담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taein@seoul.co.kr
  • ‘카지노 중독’ 경보

    ‘카지노 중독’ 경보

    카지노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도박 중독자’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본인 스스로 카지노 입장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사람만 올들어 지난 8월까지 432명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전문 상담원은 3명에 불과해 도박 중독에 대한 예방이나 치유 노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5일 열린우리당 김태년 의원이 밝힌 ‘강원랜드 도박중독센터 상담 현황’에 따르면 강원랜드를 찾는 사람 가운데 도박중독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사람은 올들어 지난 8월까지 1273명으로 집계됐다. 치유와 예방을 목적으로 강원랜드에 도박중독센터가 설치된 지난 2001년에는 상담자가 106명에 그쳤다. 그 이후 2002년에는 362명,2003년에는 423명으로 완만히 증가하다가 지난해에는 160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특히 카지노 입장을 금지시켜 달라고 스스로 요청한 사람이 2001년 12명에서 2002년 73명,2003년 124명,2004년 433명으로 매년 크게 늘어났다. 카지노 입장이 금지된 사람 가운데 본인 요청에 따른 금지자의 비율은 2001년 4%에서 2003년 20%,2005년 1∼8월 43%로 급증했다. 이는 카지노를 찾는 사람들이 스스로 도박 중독의 폐해를 절실히 깨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강원랜드는 카지노 내부에서 구걸이나 사기 행위를 하는 사람 이외에도 가족이나 본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 카지노 입장을 금지하고 있다. 전체 금지자 수는 2001년 270명에서 지난해에는 1044명으로 늘었으며 올들어 8월까지는 1000명에 이르고 있다.9월 수치까지 감안하면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원랜드에 설치된 도박중독센터의 상담원은 3명뿐이며, 이들은 모두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어 상담의 지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2002년 이후 상담 건수는 총 3658건, 본인 요청에 따라 카지노 입장이 금지된 사람은 1062명이지만 실제 치료를 받은 경우는 18건, 치료 지원금은 1200만원에 불과했다. 김태년 의원은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설립된 강원랜드가 도박산업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도박중독센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면 지금보다 더욱 내실 있게 중독 치유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센터의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해 ‘도박중독센터’라는 명칭을 ‘도박중독 상담센터’나 ‘도박중독 예방센터’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박태경(朴泰慶)(69)노인은 도로공사판에 인부로 나가고 있다. 일을 하는 데서 오래 산 보람을 느껴 보는 요즘 나날이다. 전과 16범, 일명「땅개노인」- 25년간, 그러니까 삶의 거의 3분의 2를 교도소에서 보낸 인생이 그 노경(老境)에 이르러 비로소 맛보는 평온이다. 주인꾸중 두려워 콩 사오다 도망쳤던 철부지 18세 초범이 그만 수년 전에『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대중가요가 잠시 유행했었다. 이미자가 불렀다. - 비 오는 낙동강(洛東江)에 저녁놀 짙어지면 - 흘러 버린 내 청춘이 눈물 속에 애달프구나 -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 모질게 살아가는 이 내 심정을… 노래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아성(亞星)영화사가 유동일(柳東日)감독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이 바로『저 강은 알고 있다』(일명 땅개 박노인), 그 주제가다. 바로 이 영화의「모델」이 오늘의 박태경씨였다. 영화촬영 당시 박노인은 15회째의 징역살이로 대구교도소에서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친 것이 죄였다. 땅개 박노인의 기구한 운명이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약삭빠른 영화사가 노인을「모델」로 해서 그럴싸한「최루탄(催淚彈)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노릴 만도 했다. 박노인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수의를 입은 채로. 1918년 10월 11일 - 지금부터 51년 전, 박노인이 18세 때 첫 번째 죄를 지었다. 일본주인 밑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부 만들 콩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 넘어졌다. 콩이 쏟아졌다. 주인을 찾아 볼 낯이 없었다. 그만 콩 한 말을 10원에, 자전거를 10원에 팔아 버렸다. 전과 16범의「스타트」였다. 2번째, 이웃에 홀로 사는 오(吳)모 여인이 아기를 낳고도 굶주리고 있음을 보다 못해서 쌀 두 말과 미역 1단을 훔쳐다 주었다. 3번째, 1919년 6월 21일, 가택침입죄로 대구지방검사국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4번째, 1921년 12월 23일, 역시 가택침입죄로 징역 2년. 5번째, 1923년 10월 16일, 징역 3년. 6번째, 1927년 11월 16일, 징역 4년. 7번째, 1931년 12월 26일, 징역 4년. 8번째, 1935년 12월 28일, 절도죄로 대구지방검사국에서 기소유예처분. 9번째, 1936년 3월 5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0번째, 1936년 4월 28일, 징역 3년. 11번째, 1940년 7월 16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2번째, 1940년 12월 23일, 징역 3년. 13번째, 1961년 7월 25일, 20년간을 고요히 지낸 것도 헛것이 되어 대구지법에서 야간주거침입, 절도죄로 징역 8개월. 14번째, 1963년 1월 29일, 또 절도죄로 징역 2년. 15번째, 막내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쳐서 징역 1년. 영화촬영은 이때였다. 16번째, 1967년 5월 5일, 절도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낯익은 안동교도소에서 복역, 1968년 초에 출감했다.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몽땅 교도소에서 보낸 계산이다. 도둑질서 발 씻기는 영화 주제가 때문, 그 노래 들으면 눈물 나와 그 동안의 특징을 보면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과 죄명이 모두 절도 아니면 주거침입이라는 점. 사람을 해친 일은 한 번도 없다. 고향 땅에 고목 같이 굵은 뿌리를 박고 다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어쩌면 소심하고 선량한 농민의 아들인지도 모른다. 범죄회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명만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기가 붙이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한 별명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 알려져 있는 것만 들어도(본인은 입을 다물고 열지 않는다) 상희(相熙), 상열(相烈), 춘근(春根), 태성(泰星), 봉근(鳳根), 송태성(宋太星), 임춘근(林春根), 땅개 박노인의 8가지. 본명과 또 다른 별명들을 합해 13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앞으로는 굶어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땅개 박노인」이라는 별명 때문이란다. 영화와 대중가요를 통해 행적이 알려지면서「땅개 박노인」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해진단다. 문제의 노랫가락을 혼자 외면 헛되이 보낸 삶에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한때 안동과 대구 등지를 방랑하면서 구걸을 했다. 『땅개 박노인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문간에서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두 말 않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구걸도 한정이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안동시가 실시하는 구호양곡 근로공사장에 그 늙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가루 3되씩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버지 소문이 부끄럽던 아이들도 발 씻자 모두 일터 찾아 도둑질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후세들의 앞날을 위해서라고 박노인은 말한다. 그의 현주소는 안동시 상아동의 속칭「진모래」라는 곳. 안동 김씨의 재사 안의 1평 반짜리 단칸방에서 박노인 이하 부인 박숙해(가명·48) 장남(18) 장녀(16) 2녀(14) 3녀(10)의 5식구가 살고 있다. 도둑소리만 들어오던 아버지가 손을 씻자 아이들도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힘차게 나섰다. 장남은 안동시 상아동 박모씨의 양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월수 5천원을 가지고 들어온다. 장녀와 2녀는「검」팔이로 하루 6백원 정도의 벌이를 하고 있다. 박노인 일가는 아침은 조밥을,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는 공사판에서 박노인이 가지고 온 밀가루로 국수를 쑤어 때운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명랑한 웃음이 떠돈다. 이들에게는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서 3년 후에는 50만원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자는 꿈이다. 아버지가 도둑질만 하고 다녔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단란한 꿈이다. <안동=문명준(文明俊)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儒林(398)-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4)

    儒林(398)-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4)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4) 일찍이 제나라에 간 공자가 안영으로부터 ‘대체로 유자는 말만 그럴싸하지 바른 규범을 지키지 못하며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구걸하며 빌리기만 잘하니 나라를 위하는 짓은 못됩니다.’라는 제재를 당해 경공으로부터 홀대를 받은 것처럼 제나라에 간 맹자 역시 순우곤으로부터 강력한 제지를 받아 위왕을 제대로 접견조차 하지 못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무렵 순우곤과 맹자는 전국시대 사상 가장 유명한 논전을 벌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순우곤이 맹자를 찾아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남자와 여자가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직접 하지 아니하는 것이 예(禮)입니까.(男女授受不親禮與)” 순우곤의 말은 교묘한 함정을 갖고 있었다. 즉 ‘수수불친(授受不親)’이란 ‘손과 손이 마주 닿아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순우곤의 질문은 ‘남녀는 서로 손이 닿지 않아야 되는 것이 예입니까.’하고 묻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맹자는 대답한다. “그것이 예(禮)이다.” 맹자가 대답하자 세치의 혓바닥을 가진 순우곤이 비로소 맹자가 자신의 미끼에 걸려들었음을 알고 회심의 미소를 띠며 다시 물어 말하였다. “하오면 여기 제수나 형수가 물에 빠져 있습니다. 손으로 끌어내야 합니까.” 순우곤의 두 번째 질문 역시 교묘한 함정을 갖고 있었다. 즉 맹자의 대답대로 남녀는 유별하여 서로 상대방의 몸에 손을 대지 아니하는 것이 예라면, 그러나 지금 형수 혹은 제수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손을 뻗어 건져 올리자니 무례(無禮)한 일이고, 그렇다고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은 무도(無道)한 일이 아닐 것인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묻는 순우곤의 질문은 실로 궤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일언지하로 대답한다. “제수나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손을 뻗어 끌어내지 아니하면 승냥이나 이리다.” 맹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아무리 남녀가 유별하여 손을 댈 수 없는 상대방이라 할지라도 목숨이 위태로울 때 손을 뻗어 건져주지 않는 것은 승냥이나 이리와 같은 짐승의 행위라고 단언한 다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남자와 여자가 물건을 주고받지 아니하는 것(손이 맞닿아서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는 것은 권(權)이다.” 맹자가 대답한 권(權)은 ‘저울추’를 의미한다. 저울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위치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해야 하는 행동원리’를 가리키고 있음인 것이다. 즉 이 세상에 절대의 원칙은 없는 것이며, 그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최선의 행동원리를 취하는 것 또한 예임을 맹자는 웅변으로 드러내고 있음인 것이다. 이로써 맹자의 마음을 떠보려던 순우곤은 일격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이로써 물러갈 만만한 순우곤이 아니었다. 순우곤은 마침내 최후의 반격을 시도한다. “지금 천하가 물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선생께오서는 끌어내지 않으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 [월드 이슈] 가난·빈곤·분쟁…눈물의 아프리카

    [월드 이슈] 가난·빈곤·분쟁…눈물의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다.8일 폐막되는 G8 정상회담에서 지난달 G7 재무장관회의에서 확인됐던 수준 이상의 빚 탕감이나 극적인 원조 증액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40년 동안 대외원조만 4500억달러(450조원)가 제공됐지만 대륙의 실상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를 한숨 짓게 하는 빈곤과 기아, 에이즈, 내전과 분쟁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원조 방법을 모색해본다. 하루 60센트(630원). 아프리카 인구의 약 절반인 3억 3000만명이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돈이다. 사하라 이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1인당 한해 국민총소득(GNI)이 765달러를 밑돈다. 에티오피아와 브룬디 국민들은 90달러(9만 4500원)로 1년을 버텨내고 있다. 유엔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하는 세계 최빈 48개국 중 이 대륙에만 32개 나라가 포함돼 있다. 80년대 이후 이들 나라의 1인당 소득은 13%나 줄어들었고 극빈층 숫자는 곱절로 늘었다. 세계은행은 1990년대 10년 동안 잠비아에서 1인당 GDP가 2% 하락하는 사이 극빈 인구도 똑같은 비율로 늘어나고 우간다의 GDP가 3.7% 증가하자 빈곤층 숫자도 같은 비율로 줄어든 것에 주목한다. 원조나 지원보다는 국가의 경제성장 자체가 빈곤 해결에 더욱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대학살과 인종청소, 내전으로 인한 식량난도 심각해 한해 50만명 이상이 기아로 숨진다. 그리고 오염된 물을 마셔 숨지는 사람은 1년에 70만여명에 이른다. 이렇게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데는 무능하고 부패한 절대권력에 지원금을 통제할 권한을 부여해왔기 때문이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스와질란드 국민과 달리 국왕 일족은 벤츠승용차 구입에 88만달러 이상을 썼고 미국의 콩고민주공화국 지원금은 제트기와 궁전 건축에 전용됐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한해 아프리카에서 비밀계좌로 빼돌려지는 금액은 26억 5000만달러”라고 주장했다. 역내 국가들이 지금까지 상환한 대외원조만 5500억달러에 이른다. 아직도 상환해야 할 2950억달러가 대륙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옥스팜과 같은 구호기관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의 광범위한 수탈, 그리고 아프리카의 농광업 자원 수출을 가로막는 부국들의 무역보호와 농업부문 보조금이 빈곤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자립기반 마련이 우선 “구걸로 아프리카의 미래를 창조할 수 없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지난 5일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 개막연설 중 한 대목이다. 과거 식민지배와 수탈에 대해 책임이 있는 G8 국가들을 상대로 추가적인 부채 탕감이나 원조 증액을 호소하는 다른 정상들을 공박한 것이다. 이번 G8 정상회담에서 15개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18개국의 부채 400억달러를 탕감해주는 방안이 승인되겠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들 나라의 전체 부채 2950억달러의 13%에 불과하고 부패한 관료들의 배만 불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합의를 주도한 영국조차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일이 많았다. 다른 프로그램에 쓰이는 예산을 슬쩍 돌려 새로 제공하는 것처럼 꾸미는 수법이 자주 등장했다. ●현물원조 부패관료 배만 불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2년 전 에이즈 치료 명목으로 150억달러를 약속했으나 의회에 예산 요청을 할 땐 지원액을 줄여버렸다. 케냐의 경제전문가 제임스 시그와티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원조는 이익보다 해만 끼친다.”며 “제발 원조를 중단해달라.”고 주장했다. 케냐에 원조가 끊길 경우 우간다나 탄자니아와 식량 교역을 하고 이를 위해 내부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취지다. 앤드루 낫시오스 미 국제개발처(USAID) 처장 역시 “(선진국의) 원조가 부패를 키워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동조했다. ●농산물 보조금·관세 철폐해야 파이낸셜타임스는 자그디시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가 현지인 기술 교육과 아프리카에서 일할 자원봉사대의 운영에 비중을 두는 방식으로 원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강조했다. 또 설탕과 면화 등 아프리카의 대표 상품들에 대해 선진국들이 보조금과 관세를 철폐하는 것도 당장 돈 몇푼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카다피 원수도 역내 국가들의 교역 증진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식민지배도 혼란의 원인 아프리카에는 왜 내전이 끊이지 않는가? BBC 인터넷판은 시에라리온 내전에 참전했던 용병을 통해 아프리카의 눈으로 바라 본 아프리카 문제를 진단했다. 코버스 클라센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군대에서 복무하다 사설 군대 회사로 옮겨 1995년부터 시에라리온 내전에 참전했다. “사람들이 산 채로 집과 함께 태워지고, 소녀들이 성당에서 강간당한 뒤 목이 잘려지는 등 아프리카에서 들려 오는 끔찍한 이야기는 실제로 모두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아무 할 일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쉽게 전쟁에 빠진다고 클라센스는 말했다. 수입이 두 배가 되면 내전이 일어날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는 아이러니도 있다. 전쟁을 할 만한 일이 생기면, 돈은 오히려 전쟁을 진행시키는 재원이 된다. 시에라리온 장관인 오케르 아담스는 “다이아몬드가 발견됐을 때 농업은 사실상 중단됐고, 광산 지역에선 무력충돌이 일어났으며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캐려 몰려들었다.”고 설명했다. 앙골라의 반란군 지도자였던 요나스 사빔비가 살해됐을 때 그가 광물 자원으로 쌓은 부는 40억달러에 달했다. 식민통치가 끝난 뒤 발생하는 혼란도 아프리카 내전의 주요 원인이다. 앙골라 내전은 종족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식민통치는 종족의 터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국경을 일방적으로 나눴다. 아프리카 내전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성공적인 해결 사례를 통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서 일어난 비극은 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아공의 케이스는 독보적이다. 만델라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서 흑인들은 과거를 용서했고, 백인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을 배웠기 때문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보츠와나 에이즈전쟁 성공 티없는 순백의 정장을 입은 올해의 미스 유니버스 나탈리 글레보바는 지난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 요하네스버그의 병원에서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녀의 명성으로 남아공의 다른 젊은 여성도 똑같은 일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남아공에서는 500만명 이상이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 에이즈 공포도 심각해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거나 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2000년 남아공 사망 통계에 따르면 사망 원인의 3분의1이 에이즈였다. 스와질란드는 성인의 40%가 에이즈에 감염돼 있다. 현재 2500만명의 아프리카인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20년 후에는 그 숫자가 90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유엔이 최근 경고했다. 에이즈와의 전쟁에서 별다른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20년 후에는 아프리카 대륙 인구의 10%가 에이즈 환자가 되는 셈이다. 현재 전세계 에이즈 환자의 64%가 아프리카인이다. 보츠와나는 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세계 최대 에이즈 감염국이란 멍에를 스와질란드에 넘겨줬다. 보츠와나 정부는 모든 에이즈 환자들에게 무료로 약을 제공했다.2만명 이상의 보츠와나 에이즈 환자는 3∼4가지 치료제를 섞어먹는 칵테일 요법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는 것처럼 에이즈 감염 검사를 받는다. 보츠와나의 에이즈 치료법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진일보한 것이다. 보츠와나의 경우는 바다에 물 한방울 떨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귀감이 될 만하다. 보츠와나의 성공 사례를 목격한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노력이 에이즈 치료의 중요한 열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숙자의 ‘3000만원짜리 베개’

    한 노숙자가 3000만원의 돈다발이 든 보자기를 베고 잠자며 떠돌이 생활을 해 화제가 되고 있다. 5일 부산의료원에 따르면 행려환자 병동에 최근 입원한 60대 초반 김모씨가 풀어보인 낡아빠진 옷보따리를 보고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묵은 때와 땀에 절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데다 먼지까지 뽀얗게 낀 보따리에서 무려 3000만원에 이르는 현금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속이 쓰리다.”며 병원에 찾아온 김씨는 자신에게 늘 목욕을 시켜준 한 남자 간호사에게 “고생이 많은데 커피나 한잔 하라.”며 보따리에서 3만원을 꺼내줬다. 김씨는 전에도 복통 등을 호소하며 세 차례나 경찰관과 함께 이 병원을 찾아왔는데 목욕을 하면서도 이 보따리만은 손에서 절대 놓지 않았다고 한다. 줄곧 이를 궁금해하던 간호사가 “도대체 보따리에 뭐가 들어 있는데 신줏단지처럼 모시느냐.”면서 “한번 풀어보자.”고 간곡히 부탁하자 10여분간을 망설이다 결국 보따리를 풀었다는 것이다.김씨는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30여년간 노숙하면서 행인들에게 구걸한 돈으로,1000원짜리가 10장 모이면 근처 은행에 가서 1만원짜리로 바꿔 보관해 왔다.”면서 “돈보따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베개로 베고 잤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78) 乞骸骨(걸해골)

    儒林 (373)에는 ‘乞骸骨’(빌 걸/뼈 해/뼈 골)이 나온다. 이 말은 ‘心身(심신)은 主君(주군)에게 바친 것이지만 뼈만은 돌려달라는, 즉, 자신의 몸을 해치지 말고 돌아가게 해달라.’는 뜻이다. 古文字(고문자)에서는 ‘乞’(빌 걸)자와 ‘ ’(기운 기)자의 區分(구분)이 없었다.隸書(예서)에 이르러 ‘ ’에서 한 획을 除去(제거)하여 새로 만든 글자가 ‘乞’이다.用例(용례)로 ‘求乞(구걸:돈이나 곡식, 물건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빎),門前乞食(문전걸식: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빌어먹음)’ 등이 있다. ‘骸’자는 ‘소 어깨 뼈’를 본뜬 ‘骨’(골)과 ‘괴이한 짐승’의 상형인 ‘亥’(해)가 결합되어, 몸의 중심이 되는 단단한 부분을 뜻한다.用例에는 ‘骸骨(해골: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앙상한 뼈),易子析骸(역자석해:자식을 양식과 바꾸고, 장작 대신 시체의 뼈를 땐다는 뜻으로 성을 지키며 무척 고생함을 이름),形骸(형해:사람의 몸과 뼈)’ 등이 있다. ‘骨’자는 원래 ‘살’의 상형인 ‘月(=肉:고기 육)’이 없이 쓰이던 글자로, 점칠 때 쓰이던 ‘소 어깨 뼈’를 본뜬 글자이다.‘强骨(강골:단단하고 굽히지 아니하는 기질),骨董品(골동품:오래되었거나 희귀한 옛 물품),骨肉之親(골육지친:부자, 형제 등의 피붙이)’ 등에 쓰인다. 史記(사기) 項羽本紀(항우본기)에 나오는 ‘乞骸骨(=願賜骸骨:원사해골)’의 故事(고사)는 다음과 같다.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이 天下統一(천하통일)을 놓고 乾坤一擲(건곤일척)을 벌일 때 유방이 항우에게 쫓겨 苦戰(고전)하고 있었다. 유방은 항우가 叛亂軍(반란군) 討伐(토벌)에 나선 틈을 이용해 關中(관중)을 合倂(합병)하였다. 또한 義帝(의제) 弑害(시해)에 대한 懲罰(징벌)을 名分(명분)으로 楚(초)나라의 都邑(도읍)인 彭城(팽성)을 攻略(공략)했으나 항우의 反擊(반격)을 받고 겨우 滎陽(형양)으로 도망쳤다. 유방의 군대는 시간이 經過(경과)함에 따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講和(강화)를 提議(제의)하였다. 항우는 이 提案(제안)을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나 謀臣(모신) 范增(범증)은 강하게 反對(반대)했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參謀(참모) 陳平(진평)은 間者(간자)를 풀어 초나라 陣中(진중)에 ‘범증이 유방과 內通(내통)하고 있다.’는 헛소문을 流布(유포)하였다. 이에 항우는 발끈하여 유방과 講和(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진평의 離間策(이간책)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진평은 張良(장량) 등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면서 범증의 安否(안부)를 물었다. 이 또한 사신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한 高度(고도)의 戰略(전략)이었다. 예상대로 사신이 불쾌감을 드러내자 진평은 한술 더 떴다. 사신을 왕의 勅使(칙사)가 아니라 범증의 家臣(가신)인 줄 알았다며 의도적으로 의전상의 缺禮(결례)를 범한 것이다. 사신의 報告(보고)를 접한 항우는 巷間(항간)의 소문을 사실로 確信(확신)하고 范增의 모든 權利(권리)를 剝奪(박탈)했다. 화가 난 범증은 이제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고 보고 항우에게 ‘肉身(육신)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간청’(願賜骸骨)하였다. 범증은 落鄕(낙향) 길에 등창으로 죽고 말았다.謀臣(모신)을 잃은 항우도 결국 垓下(해하)에서 大敗(대패),烏江(오강)에서 自決(자결)하고 만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1841∼1919)는 인간의 영원한 아름다움에 매달렸다. 밝은 태양을 사랑한 그의 화폭에 어두운 구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굳이 해설이 없어도 된다.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뿐, 미술사적 의미나 구구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시공을 초월해 르누아르가 사랑받는 이유다. 그의 작품은 몰아치는 속도와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늘이자 ‘오아시스’다. “나에게 그림은 적어도 사랑스러운 가치가 있어야 하고 즐거울 수 있어야 된다. 특히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런 즐거운 것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르누아르는 평생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어찌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 있을까?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예쁜 여자 아이와 통통하게 살찐 풍만한 여인의 나체, 꽃과 나무 같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말을 건넨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전시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크렘스. 푸른 도나우 강이 시골 마을을 끼고 흐르고,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포도밭에는 포도주 향기가 넘쳐나는 고장이다. 저 멀리 언덕바지에 고성과 수도원이 자리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백포도주 맛이 좋다. 농가의 주민들은 앞마당에 식탁을 몇개 차려놓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자신이 빚은 포도주에 햄, 소시지 같은 요리로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농부의 땀이 배어든 오스트리아 가정식 요리다. 르누아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의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자리한 쿤스할레 미술관에서 자신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르누아르와 인상파 화가의 여성’(4월2일∼7월31일)을 테마로 한 이 특별전에는 그의 작품 40점을 포함,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 19명의 작품 120점이 전시되고 있다. 인구 2만∼3만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주말에는 2000∼3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푼 벨진(49) 미술관장은 “빈으로 출장 온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르누아르를 만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작품 성격 때문인지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름다운 것이 좋아 미술관 1층에는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당대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풍경화에선 한가롭게 노닐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고, 여자 인물화에선 젖가슴이나 등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다.” 르누아르의 이같은 생각을 담은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그림은 ‘책 읽는 가브리엘’(1906년).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책을 읽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도무지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성경책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르누아르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던 유모 가브리엘. 그가 즐겨 그린 둥글둥글한 품새의 얼굴과 엉덩이를 가진 여인에서는 깊은 영혼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1882년)은 ‘빛’이라는 특성을 잘 활용한 전형적인 인상파 색채의 작품이다. 아기를 안은 여인의 옷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옷도 아니다.”고 비웃었다. 심지어 “그림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타이푼 벨진 미술관장은 “르누아르는 흰 옷에 파란색을 칠해 명암을 표현했는데 이는 당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며 “그늘진 곳을 검은색이나 회색으로 표현했던 당시 화풍에선 엄청난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벗은 몸이나 목욕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에게 여성의 나체는 아름다움이 샘솟는 원천이었다. ●르누아르에게 여성은? 르누아르의 여성은 당대 다른 화가들과 사뭇 다르다. 많은 화가들이 여인을 그렸지만, 그처럼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향기를 가진 여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거리에 나앉은 채 젖을 물리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을 그린 페르난드 펠레츠의 ‘집없는 사람들’(1883년), 깨진 그릇과 빵조각이 흩어진 문가에 기대 앉은 한 노파가 등장하는 에드가 드가의 ‘로마의 구걸하는 여인’(1857년) 등을 보면 도무지 같은 시대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번 전시장에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작품 세계가 나란히 전시, 확연히 비교되도록 했다.‘나는 춤추는 사람을 그리는 화가’라고 얘기한 것처럼, 드가는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그의 발레리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힘든 동작을 취하기 위해 힘들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펠레츠의 발레리나도 힘들고 무표정한 표정이다. 미술관 연구원으로 전시장 가이드를 맡은 미하일 폴츨(27)씨는 “르누아르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자세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년은 손에 붕대 감고 작업 실제로 그가 그린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그가 그린 아이들은 모두 착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울한 그림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가 르누아르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그림에서 가난과 고민스러운 날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는 생애 마지막에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붓을 직접 들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마비된 손가락 사이에 붓을 고정시켜줘야만 했다. 그가 변함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몸을 그리려고 한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몸이 불편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 작품에서는 그의 육체적 고통이 절절하게 배어나온다.‘사람이 있는 카뉴슈메르의 풍경’(1916년)에는 손을 제대로 들 수 없어 높은 위치의 붓질을 하기 힘들어했고, 그 붓질마저 현저하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끝내 놓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헬가 킨스키(75)씨는 르누아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르누아르의 그림은 밝고 따뜻해서 좋아요. 말년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이 나빴지만 삶의 즐거움을 표현했잖아요?” ■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 타이푼 벨진 관장 “일본을 두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경쟁사회에서 힘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가 르누아르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점차 살기가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평화와 안식을 얻고자 한다.” 타이푼 벨진(49)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장은 르누아르가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역사학 박사로 독일인인 그는 1년6개월 전부터 이곳 미술관의 최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2년의 준비 끝에 40여군데에서 그림을 빌리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이 전시회는 “이 작은 미술관에서 10년에 한번 할까 말까한 전시회”라고 자랑했다. 인상파 성격의 그림은. -르누아르는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에서 여자의 흰 옷에 파란색을 칠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아무리 흰 옷이라도 밝은 날 햇볕을 쬐게 되면 파랗게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파란색으로 그늘을 그려 명암을 표시했다. 르누아르와 드가를 비교하면. -둘 다 목욕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렸다. 드가는 여자를 목적물로 그렸다. 여자의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는데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반면 르누아르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이 특징이다. 여자 모델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을 아름답게만 본 것은 르누아르의 한계가 아닌지. -예술에는 어떤 이념이 없다. 그는 여성을 존중, 드가처럼 창녀를 그리지 않고 유모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을 그렸고, 여자를 무시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르누아르가 갖는 차별성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화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갖는데, 피카소의 경우는 점점 더 각져 갔다. 여성의 모습도 딱딱하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글게 표현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협찬 Sharp Travel
  • 손창섭 소설 ‘유맹’-고은 산문집 ‘1950년대~’ 30년만에 재출간

    한국 전후세대 문학을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2권의 책이 30여년 만에 나란히 재출간돼 눈길을 끈다.‘잉여인간’의 작가 손창섭의 장편소설 ‘유맹(流氓)’(실천문학사)과 고은 시인의 산문집 ‘1950년대-그 폐허의 문학과 인간’(향연)이 묵은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고 햇빛 아래 다시 나왔다. ‘유맹’은 1976년1월부터 10월 말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2000장 분량의 장편소설. 지난 2월 출간된 ‘손창섭 단편 전집’(전 2권·가람기획)등에서 보듯 그에 관한 평단과 독자들의 관심이 주로 1950년대 단편들에 집중된 탓에 책으로 묶여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미지의 작가로 알려진 손창섭의 작품관과 세계관, 인생 행로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작품”이라며 “그가 쓴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큰 문제작이자 대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훗카이도 징용 노동자 수난사 재구성 소설은 일제 말기에서 해방공간으로 이어지는 시대, 조선에서 일본으로 이주해간 최원복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홋카이도 징용 노동자들의 수난사를 재구성한다. 동시에 작가 자신의 분신격인 ‘나’의 이야기를 병치시켜 그 시대 재일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운명을 밀도있게 다룬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손창섭은 일본에서 수학하고, 해방 이듬해 귀향했다가 1948년 월남했다.1952년 ‘공휴일’‘비오는 날’등의 단편소설로 문단에 데뷔한 뒤 ‘혈서’‘잉여인간’등의 문제작을 발표하며 전후 한국문단의 대표작가로 떠올랐으나 1973년 돌연 아내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자취를 감췄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 문단과 전혀 교류가 없는 상태다. 이번 출간과 관련된 협의도 작가의 위임장을 소지한 국내 저작권 대리인을 통해 이뤄졌다. 방 교수는 “일본으로 떠난 이후에는 자신의 작품이 출간되는 걸 꺼려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유맹’은 신문연재 당시에도 특별한 애착을 지녔던 작품인 만큼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 같다.”고 전했다. ●‘폐허의 공간´ 작가들의 삶 그려 ‘유맹’이 대표적인 전후세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면 고은 시인의 ‘1950년대’는 당대 문인들을 둘러싼 온갖 활극과 고난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문단 보고서다.1971년 ‘세대’지에 1년간 연재한 글을 모아 1973년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됐고,1989년 청아출판사가 ‘고은 전집’의 하나로 펴낸 바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1950년대는 ‘전쟁이 만들고 전쟁이 버린 고아의 시대’이자 ‘역사가 인간을 버리고, 예술 자체가 인간을 버린 유기의 시대’(24쪽)다. 이 폐허의 공간에서 시인은 날카로운 직관으로 전쟁과 인간, 문학과 작가의 본질을 꿰뚫는다. 책에는 사형을 받고 시체로 실려가던 중 기적적으로 살아난 김팔봉, 에덴 다방에서 시작된 오상순의 다방철학, 자기해체적 자학과 순정의 화가 이중섭, 방랑구걸 기인 천상병 등 1950년대 거의 모든 작가들의 삶의 행적이 실려 있다. 초판 서문에서 ‘비극 가운데서 더 많은 정신적 질료들을 찾아낼 의무로 책을 썼다.’고 적었던 시인은 32년이 지난 지금,‘이제 와서 이런 슬픈 풍경이 무슨 역할을 장담하겠는가.’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다른 세대 사람들에겐 ‘기이한 동물들의 생태학’처럼 낯선 1950년대의 풍경을 이 책이 아니면 무슨 수로 어림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儒林(37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73)-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훗날 대문장가였던 안축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퇴계가 요청하여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이름을 사액받는다. 이곳이 전국에 서원이 설립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사학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원래 숙수사란 절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주세붕이 절을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중 불상들을 모두 바위 아래 못 속에 던져버리자 한이 맺힌 불상들이 밤이면 첨벙거리며 뛰어올라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한다. 이를 전해들은 주세붕은 못 위의 바위에 ‘경(敬)’자를 음각하였더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은 바로 주자가 주장하였던 ‘거경궁리’의 철학. 공경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이로써 불상들의 한이 위로받았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풍기에 이르자 백운동서원이야말로 앞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향임을 깨달았다. 주세붕의 뒤를 이어 자신도 고향에 서원을 지을 것을 결심한 후 그런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특히 한시라도 경건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자가 새겨진 바위는 퇴계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만 1년 동안 풍기의 군수로 있었던 퇴계는 경상도 감사에게 병을 이유로 사직원을 낸다. 그러나 이 사직원은 경상감사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3개월에 걸쳐 세 번이나 사장을 올려도 회답이 없자 퇴계는 더 이상 회보를 기다리지 않고 그해 12월, 해를 넘기기 전에 고향으로 떠나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퇴계의 행동으로 보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단호한 태도였다. 다음해 정월 허락 없이 임지를 떠났다고 해서 감사로부터 2계급 강등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토계( 溪)라고 불리던 골짜기에 봉진암(奉眞庵)이란 작은 암자를 짓고 ‘토( )’자를 ‘퇴(退)’자로 고친 후 그곳을 퇴계라 부르고 이를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것은 ‘퇴거계상(退居溪上)’의 뜻을 관철하려는 확고한 결심 때문인 것이다. 이후 퇴계는 임종하는 70세 되던 해까지 선조에게 마지막으로 최후 사장을 올린다.20여년에 걸쳐 무려 53회에 걸쳐 사퇴원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최후 사장의 이름은 ‘걸치사장(乞致辭狀)’, 풀어 말하면 ‘물러가기를 구걸하는’ 애절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원래 ‘걸치사’란 말은 ‘걸해골(乞骸骨)’에서 나온 말로,‘해골을 빈다.’는 말의 뜻은 ‘신하란 본디 온몸을 모두 임금에게 바친 것이니 사퇴를 원하고 나올 때에는 오직 썩어버린 해골만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돌려달라는’ 하소연인 것이다. 이 말은 항우의 충신이었던 범증(范增)이 항우가 유방의 모함에 빠져 자신을 믿지 못하자 ‘이미 천하의 대세는 정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전하가 알아서 하십시오. 신은 내리시는 해골을 받아 옛날처럼 이름 없는 병졸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퇴계의 최후 사장이었던 ‘걸치사’는 이처럼 늙은 신하가 ‘해골을 비는’ 간절한 호소로,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죽령고개를 넘을 때 퇴계는 임금에게는 이미 ‘썩어버린 해골’만 남아 있는 병든 신하였으나 학문으로는 소향무전(所向無前)의 대용사였던 것이다.
  • ‘개똥녀’ 계기로 본 지하철 꼴불견

    ‘개똥녀’ 계기로 본 지하철 꼴불견

    며칠전 지하철에 애완견을 데리고 탄 뒤,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개똥녀’로 인해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인터넷 여론은 대부분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여성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일색이었고, 일부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마녀사냥’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를 계기로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의 예절을 점검하고, 개선할 것은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도시철도공사 박창규 공보실장은 “지하철이 개통된 지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동안 지하철 예절이 많이 정착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아직도 일부 몇몇 사람들의 수준 이하 행동이 전체 시민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철도공사가 밝힌 ‘2005년 무질서 행위자 단속 실적’에 따르면 지하철 내 무질서 행위는 크게 ▲잡상 ▲구걸 ▲광고물 배포 ▲방뇨 ▲흡연 ▲취객 ▲노숙 ▲기타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광고물 배포다. 지난 1∼5월 동안 공사가 단속한 실적이 1270건이나 된다. 그 다음으로 1259건이 잡상행위이며, 1071건의 구걸행위가 그 뒤를 이었다. 공사 관계자는 “잡상행위나 광고물 배포, 구걸 등은 비록 건수는 많지만 지하철 이용객들의 비난 여론은 많지 않다.”면서 “오히려 방뇨나 흡연 등과 같은 ‘몰상식’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특히 흡연의 경우 올해 단속된 실적만 해도 400건에 이르고 있다. 방뇨도 87건이다. 흡연이나 방뇨는 대부분 술에 취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공사가 단속한, 취객으로 인한 무질서 행위는 올해 883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15건은 경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영등포구청역 이은환 역장은 “이외에도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닫히는 문에 우산이나 핸드백 등을 끼워넣는 행위도 많다.”면서 “이럴 경우 승객의 안전에도 위험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김밥이나 음료수 등을 가지고 타는 행위와 지하철 내에서 화장하는 것, 다리를 넓게 벌려 앉는 것 등은 반드시 삼가야 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에서는 이번 기회에 ‘지하철 10대 에티켓 준수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10대 에티켓은 지하철에 탈 때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하고, 신문을 볼 때는 반으로 접어보기, 차내에서 음식물 먹지 않기 등이다. 지하철공사 강선희 홍보과장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나 다 지키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번 사건이 지하철 에티켓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카드사 ‘두얼굴’

    카드사 ‘두얼굴’

    은행원 김모(38)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사 신용카드 회원을 10명 이상 모집하라는 지시에 따라 친구, 친척 등에게 구걸하다시피 해 겨우 10명을 채웠으나 3명이 발급심사에서 ‘부적격’으로 판정났다. 더욱 놀랄 일은 부적격자 3명 중에 자신도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정기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주식투자로 인한 손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드론’ 대출을 받은 ‘전과’ 때문에 카드 발급이 거부됐다. 동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된 김씨는 “나마저 발급이 거부될 줄은 몰랐다.”면서 “발급 기준은 터무니없이 강화해 놓고, 무조건 신규 회원을 확보하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냐.”며 한탄했다. ●카드사 흑자 전환, 카드 모집인 다시 활개 ‘카드 대란’에서 한숨을 돌린 신용카드사들이 다시 신규회원 모집에 열을 올리는 한편 무리한 잣대로 카드 발급을 거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새로 시작된 마케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규 회원 확보와 엄격한 리스크(위험) 관리는 ‘양날의 칼’과 같은 필수불가결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카드사들의 행태로 카드가 꼭 필요한 소비자들까지 골탕을 먹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삼성카드가 지난달 29개월 만에 처음으로 179억원의 월간 흑자를 기록하면서 은행계는 물론 전업계 카드사들도 모두 흑자기조로 돌아섰다. 연체율도 계속 낮아져 롯데와 BC 등 일부 카드사들은 5% 이하의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카드사들도 10%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카드 모집인들이 다시 활개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30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5월 현재 카드 모집인수는 1만 9732명으로 지난해 8월의 8194명과 비교하면 3분기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과도한 신용관리…선의의 피해자 속출 그러나 카드사들은 직원과 모집인을 동원해 일단 엄청난 수의 잠재 고객을 끌어모은 뒤 ‘입맛’에 맞는 고객에게만 카드를 발급해 주고 있다. 온갖 리스크 심사기법을 동원, 연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고객에게는 ‘맞춤형 서비스’로 호객행위를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한 고객은 카드에 접근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대기업인 H건설 황모(42) 부장은 지난달 주유시 적립 포인트가 높다는 A카드사의 광고를 보고 카드 발급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본인 명의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황한 황 부장은 이동통신사에 확인한 결과 중학생 아들의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된 사실을 알아내고 즉시 납입했지만 어떤 카드사도 자신이 원하는 카드는 발급해 주지 않았다. 황씨는 “직장이 확실한 사람도 퇴짜를 맞는데 신용이 약간이라도 불안한 사람들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카드사들은 은행연합회 등이 제공하는 신용정보 조회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거나, 한 번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신용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판단해 신규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특히 카드사별로 비금융권 대출 이용자, 휴대전화 요금 연체자, 타 금융기관과 거래가 없는 25세 미만의 남성 등에게는 획일적으로 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 카드사들의 과열경쟁을 조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카드사들은 출혈 양상의 부가서비스 혜택과 지나치게 엄격한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면서 “출혈 경쟁은 카드사의 손실로, 타당성 없는 카드발급 제한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칸 황금종려상에 ‘더 차일드’

    제58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벨기에 영화 ‘더 차일드’가 거머쥐었다.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진출한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제작 전원사)은 수상에 실패했다.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에밀 쿠스트리차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은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벨기에 작가주의 감독인 장 피에르-루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원제 L’Enfant)를 선정했다. 구걸과 도둑질로 살아가던 10대 후반의 두 남녀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로, 이로써 다르덴 형제 감독은 1999년 ‘로제타’에 이어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 대상은 미국 독립영화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즈’, 감독상은 ‘히든’의 프랑스 감독 미하일 하네케가 받았다. 또 남우주연상에는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을 직접 연출하고 주연한 미국의 중견배우 토미 리 존스, 여우주연상에는 ‘프리 존’의 이스라엘 여배우 한나 라슬로가 각각 선정됐다. 올해 아시아 영화의 수상성적은 초라했다. 심사위원상을 받은 중국 왕샤오솨이 감독의 ‘상하이 드림’이 유일한 아시아권 수상작. 막판에 전격 초청돼 기대가 컸던 ‘극장전’의 수상실패 배경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홍 감독 작품 특유의 대사의 뉘앙스가 미비한 불어·영어 번역 등으로 현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비경쟁부문 감독주간에 초청된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국제비평가협회상,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장률 감독의 ‘망종’은 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상을 받아 아쉬움을 달랬다. 다음은 경쟁부문의 기타 수상작. ▲각본상=‘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길레르모 아리아가) ▲황금 카메라상=‘버려진 땅’(비묵티 자야순다라)·‘너와 나와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미란다 줄리) 공동수상 ▲단편부문=황금종려상 ‘나그네’(이고르 스트렘비트스키), 특별언급상 ‘클라라’(반 소워와인)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상이군인/심재억 문화부 차장

    상이군인 참 많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야 군경 안 가리고 한 묶음으로 ‘상이군인’이라고들 했지요. 이들은 더러 두셋씩 짝지어 동냥을 하기도 했는데, 춘궁기 촌살림, 무슨 양식이 넉넉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가다가는 야박하달 문전박대도 당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어떤 이들은 문간에서 내놓고 강짜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나라 위해 몸바친 사람들 국가가 보살피지 못한 죄이지요. 그들이 정말 상이군경이라면 여생을 구걸로 연명하도록 한대서야 말이 아니지만, 암튼 어린 내게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쇠붙이 의수를 번쩍이는 상이군인이 보이면 으레 뒷걸음으로 멀찌감치 물러나곤 했는데, 한 날은 어찌어찌 하다가 동네 장정과 이 상이군인이 드잡이까지 하게 됐지요.“없어서 못 주는데 왜 욕질이냐.”는 말에 “너 오늘 임자 만났다.”며 대드는 게 여간 살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둘이 화해술을 나누게 됐는데, 술이 몇 순배 돌아 취기가 솟자 이 상이군인, 눈물을 훔치며 말합니다.“나야 죽는 게 낫지만 내질러 놓은 새끼들, 굶겨 죽일 순 없잖소?” 그 날, 봄가뭄으로 달아오른 붉은 노을이 슬프고, 어린 내 마음도 울울 함께 타들어 갔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자치구 당직자들 “밤이 괴로워”

    자치구 당직자들 “밤이 괴로워”

    “어떤 땐 큰 손님(?)만 서너 차례 들이닥쳐 퇴근할 무렵 녹초가 되는 야간 당직자도 더러 나와요.” 손님이란 달갑지 않은 방문객을 맞았다는 말을 돌려 한 표현이다. 서울시내 자치구 당직자들이 근무하면서 접하는 사례를 보면 이해가 빨라진다. 잠을 자가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숙직이라는 단어가 자치구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후 6시부터 총무과 상황실 담당자가 출근하는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밤을 책임지는 당번들은 특히 음주자 또는 연고가 없거나 치매를 앓는 사람을 경찰이나 택시기사 등으로부터 넘겨받을 경우 잔뜩 긴장한다. 각종 통로로 연고를 파악하고 경찰로부터 182신고가 접수됐는지 확인한 뒤 3∼4명이 이동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음주소란자·무연고자 인계받아 뒤치다꺼리 또 기억상실 등으로 가출을 되풀이하고 있는 고령자, 정신지체아 등 30여명의 신원을 늘 비치해 놓고 있다. 실례를 보자. 지난 3월29일 서울 강동구 기획공보과 W(44)씨는 당직근무 때 황당한 일을 당했다. 밤이 한창 무르익은 0시30분 강동경찰서 소속 지구대 경찰관들이 김덕남(58)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주민이 고덕동 주공3단지 화장실에서 자고 있던 김씨를 발견,D지구대에 신고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연락을 받고 나가자 구청 앞마당에서는 경찰관들이 김씨를 마구 차거나, 때리고 있었다고 W씨는 증언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문제였다.W씨에 따르면 경찰관이 (김씨에게) “너 때문에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해당 경찰서에 제보하려 했지만 뒤치다꺼리를 하다 돌아보니 경찰관이 이름을 남기지 않아 그만뒀다고 귀띔했다. ●남루한 차림으로 불쑥 찾아와 차비 구걸 퇴근할 무렵 사건(?)이 벌어져 당혹스러운 때도 생긴다. 지난달 21일 오전 9시쯤 나모(48)씨가 곧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당직실에 찾아왔다. 지난 2월7일 영등포의 한 노숙자시설에 입소했다가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고 싶으니 데려가 달라는 게 이유였다. 그는 당직자에게 남긴 사유서에 ‘의식주 해결’이라고 밝혔다. 속박되기 싫어 탈출했는데, 떠돌다 보니 먹고 입는 문제에 부딪혔다는 얘기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당직을 서고 있는데 옷차림이 변변찮은 사람이 들어와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차비가 없다.’며 손을 벌리는 모습도 더러 있다.”면서 “국민을 위하는 공무원이랍시고 내칠 수는 없어 1만원 정도 쥐어준다.”고 말했다. ●자정 전까진 민원전화 쉼없이 걸려와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새벽 1∼2시까지, 특히 밤 11시까지는 민원전화가 대개 10분당 1건쯤 몰려든다.”면서 “가로등이 깜빡깜빡하는데 조치해 달라는 등 요구도 다양하다.”고 거들었다. 이 가운데는 한국전력 등 다른 기관에서 다룰 일도 많은데, 그렇다고 현장에 가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구청이 야간시간대 주민들에게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밤에 구청으로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 것은 보통 20여곳 되는 관내 동사무소 전화가 동 공무원 퇴근 뒤에는 구청으로 자동 연결되도록 연동장치가 돼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잠자거나 고스톱치는 건 옛말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 4조와 보건복지부 훈령 523호에 따르면 보호가 필요한 일선 행정기관에도 노숙자, 부랑아, 유기동물 등을 적당한 기관에 인계하는 책임을 지우고 있다. 강동구의 경우 야간 당직을 직원 5명과 긴급차량 운전자 1명에게 맡긴다.5부씩 작성하는 일일당직 상황보고서는 근무가 끝나기 전 구청장과 부구청장, 행정관리국장, 총무과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인터넷 활성화, 공무원직장협의회 활동 등 근무환경 변화로 ‘고스톱’이나 치던 당직일이 이젠 옛말이 됐다. 한 자치구 직원은 “어느 날 이른 아침에 구청장이 당직실로 찾아와 밤새 일어난 일에 대해 처리상황을 물었다.”면서 “그런데 당직자가 거짓으로 보고했다가 들통나 벌칙을 받는 등 혼쭐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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