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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남북정상회담,정쟁의 대상 아니다/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남북정상회담,정쟁의 대상 아니다/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을 차기정권으로 연기할 것을 주장하면서, 정상회담 개최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선 승리를 눈 앞에 뒀다고 생각하는 이명박 후보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정상회담이 대선정국을 뒤흔들 변수로 작용할까 우려하는 듯하다. 이 후보의 기우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 의제가 대선과 관련해 정파적 이해관계로 판단되고 정치적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한나라당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정세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분단과 6·25전쟁 휴전 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사급 수교를 하는 문제를 협상하고 있다.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냉전체제를 종식시키는 한반도 질서의 새판짜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남북정상회담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남북이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민족의 장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 위해 남북정상이 만나야 한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핵포기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한 공동의 노력을 국제사회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조기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남한 정부와의 대화를 기피하고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 매달리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 정상회담은 고사하고 북한과 당국간 대화를 재개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남한 정부와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조건으로 상당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에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한나라당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했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북한이 식량 등 남쪽으로부터 얻는 대북지원 때문에 남한정부와 관계를 장기간 단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역시 오판이다.‘2·13 합의’에 따라 핵불능화 조치를 하면 중유 95만t에 해당하는 원조를 얻을 수 있다. 남한 정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주어야 한다. 북한이 굳이 남한 정부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고 미국에 더욱 매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반도 정세의 급변기에 주도권 행사는 고사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입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실용주의적 중도우파로의 개혁은 대북정책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올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나 또 집권 후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절실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국민들이 느낀다면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통일문제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복병이 될 수 있다.‘냉전적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1) 모문룡의 작폐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1) 모문룡의 작폐Ⅰ

    인조반정 성공 이후 조선이 표방했던 대외정책의 성격은 ‘친명배금(親明排金)’이었다. 그런데 ‘친명’은 분명 실천했지만 ‘배금’은 쉽사리 실천할 수 없었다.‘배금’을 실천하려 할 경우 필연적으로 후금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조선의 존망까지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괄의 난을 비롯한 내부 변란을 겪었던 와중에 조선은 후금과 군사적 모험을 벌일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조선이 1627년 후금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모문룡(毛文龍)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모문룡과 가도 ( 島)의 동강진(東江鎭)은 인조반정 이후부터 병자호란 직후까지 조선, 명, 후금 삼국관계의 ‘키워드´였다. ●모문룡과 가도의 존재 의미 1618년 누르하치에게 무순(撫順)을 빼앗긴 이후 명은 요동에서 연전연패했다.1619년 사르후에서 참패한 직후 개원(開原)이 무너졌고,1621년에는 요양(遼陽)이,1622년에는 광녕(廣寧)이 넘어갔다. 정치, 군사적 거점이자 전략적 요충이었던 요양과 광녕이 함락됨으로써 명은 사실상 요하(遼河) 이동의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만주의 상실은 조선과 명을 연결하는 육로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이제 조선과 명이 연결되려면 철산(鐵山)에서 요동반도 연해를 거쳐 등주(登州)로 이어지는 해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것은 육로에 비해 불편하고 위험했다. 실제 조선과 명의 신료들은 험악한 해로를 두려워하여 상대방 국가로의 사행(使行)을 꺼리게 되었다. 한 예로 1626년 조선에 왔던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 강왈광(姜曰廣)은 이 위험한 바닷길을 ‘고래 아가리(長鯨之口)’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요동 길이 사라진 것은 조선에 대한 명의 영향력과 ‘통제력’이 대폭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경우, 북경 정부는 요양의 요동도사(遼東都司)를 통해 바로 조선을 견제할 수 있었다. 해로를 통해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바로 그때 등장한 인물이 모문룡이다. 앞에서(25회) 언급했지만 광해군은 모문룡을 ‘화근’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를 설득하여 섬으로 밀어 넣었다.1622년 철산 앞바다에 있는 가도( 島)로 들어갔던 모문룡은 가도와 주변의 목미도(木彌島) 등을 아울러 동강진이라는 군사 거점을 만들었다. 일개 섬에 불과한 가도를 거점으로 요동을 수복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 조정은 가도를 매우 중시했다. 후금과 조선을 견제하는 전략 거점으로 보았던 것이다. 특히 1626년 명의 주문욱(周文郁)은 가도의 존재 의의를 명확히 정의했다.‘조선은 비록 약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조선이 후금에 넘어가면 우리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도는 바로 조선이 반역하는 것을 방지하는 거점이다’. ●‘찬밥’에서 ‘은인’으로 변신 가도는 농토가 적고 척박한 섬이었다. 식량을 자급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모문룡이 가도로 들어간 이후 수많은 요동 출신 한인(漢人), 즉 요민(遼民)들이 가도로 몰려들었다. 모문룡을 ‘비빌 언덕’이자 의지처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도에 식량이 없어 굶주리게 되자 요민들은 다시 조선에 상륙했다. 이미 광해군 말년부터 철산, 용천, 의주 등 청천강 이북(淸北)지역은 요민들로 넘쳐났다. 요민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식량을 구걸했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관아를 습격하거나 민가를 약탈했다. 조선 백성들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났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요민들 때문에 후금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는 점이었다. 자신들이 점령했던 요동 지역에서 노비로 부렸던 요민들이 줄지어 가도와 조선 영내로 탈출하자 후금은 격앙되었다. 이미 1621년 12월, 후금은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적이 있거니와 후금은 조선 조정에 거듭 경고했다. 모문룡을 축출하고, 요민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했다. 광해군은 후금의 침략을 우려하여 모문룡을 채근했다. 휘하 병력을 육지에 상륙시키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요민들을 속히 산동(山東) 지역으로 이주시키라고 요구했다. 모문룡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광해군 또한 식량과 군수 물자를 제공해 달라는 모문룡의 요구를 회피했다. 모문룡은, 자신의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광해군에게 이를 갈았다. 광해군때 ‘찬밥’ 신세였던 모문룡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은인’으로 변신했다. 그가 인조가 명 조정으로부터 승인받는 데 힘을 썼던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인조대의 모문룡은 광해군때보다 조선에 훨씬 버거운 존재가 되었다. 인조와 조선 신료들은 모문룡이 보낸 차관(差官)을 융숭하게 대접했고, 그때마다 거의 빠짐 없이 ‘인조가 책봉된 것은 모야(毛爺)의 덕분’이라는 상찬을 빼놓지 않았다. 더욱이 이괄의 난 때문에 정권을 잃을 뻔했던 뒤로 모문룡에 대한 의존 심리가 더 높아졌다. 이미 반란 초기에 모문룡에게 원병을 요청했다. 문제는 정권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난을 겨우 진압한 다음이었다. 반란 진압으로 힘이 거의 고갈되자 인조 정권은 후금이 침략해 오는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히 유사시 모문룡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조 정권은 모문룡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조선을 오가는 명나라 사신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인조반정의 원훈(元勳)이었던 김류(金 )가 붓을 들었다. 그는 비문에서 먼저 모문룡이 진강(鎭江)에서 이룩한 승리의 전말을 기록하고 찬양했다. 이어 ‘모문룡의 은혜를 배신한 광해군의 배은망덕’을 질타했다.1621년 12월, 후금군이 모문룡을 공격한 것은, 실상 광해군의 밀지(密旨)를 받은 의주부윤 정준(鄭遵)이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유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류는 나아가 ‘모문룡이 조선을 후금으로부터 지켜주고 동방의 백성들을 보호해준 덕과 은혜가 하늘과 같다’고 찬양했다. 그러면서 모문룡이 ‘요동 수복’의 대업을 이룰 것이라며 그의 앞길을 축원했다. ●격화되는 모문룡의 폐해,‘은인’의 실상 김류의 찬양과 기대는 오산(誤算)이자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문룡은 ‘요동 수복’은커녕 조선을 도울 역량이나 의지도 없는 인물이었다. 가도로 들어간 이후, 그가 보였던 행태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모문룡은 가도와 목미도의 이름을 제멋대로 뜯어고쳤다. 본래 가도와 목미도는 엄연히 조선 땅이지만 모문룡이 점거한 이후 명에 임대되었다. 모문룡은 가도를 피도(皮島)로, 목미도를 운종도(雲從島)로 고쳤다. 순전히 미신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문룡은 자신의 성인 ‘모(毛-터럭)’는 ‘가죽(皮)’이 없으면 붙어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가도를 피도로 바꾸었다. 또 자신은 ‘용(龍)’인데 ‘용은 구름 속으로부터(雲從) 나온다.’는 속설에 따라 목미도를 운종도로 바꾸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 급급했던 인물이었다. 인조와 조선 조정이 모문룡을 ‘은인’으로 인식하면서 그 휘하의 병력과 요민들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광해군때와 달리 그들이 조선 영내로 상륙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고 방임했다. 그것을 계기로 10여만 이상의 요민들이 청북 지방을 휩쓸었다. 휘하의 병력들은 용천, 철산 일대에 둔전(屯田)을 설치했다. 기세등등한 그들의 횡포 앞에 조선의 지방관들은 움츠러들었다. 떼를 지어 다니며 민가를 약탈하고 백성들을 구타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청북의 백성들은 그들의 횡포를 피해 이주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정은 연일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모문룡을 ‘은인’으로 여기는 한 뾰족한 방도는 없었다. 이정구(李廷龜)는 요민들을 ‘새로운 홍건적(紅巾賊)’이라 지칭하고, 방치할 경우 청북은 조선 영토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구걸해서 고급요리 사먹는 베이징역 거지들

    구걸해서 고급요리 사먹는 베이징역 거지들

    중국 베이징과학기술대학(이하 과기대) 학생들이 베이징역에 상주하는 거지들의 일상과 실상을 조사해 네티즌의 눈길을 끌고 있다. 베이징 일간지 ‘신징바오’(新京报)는 3일 ‘거지 같지 않은 거지’의 생활을 조사한 과기대 학생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조사자들은 지난달 20일부터 열흘동안 베이징역 곳곳에 상주하는 수많은 거지들을 관찰했다. 과기대 조사팀은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진짜 거지도 있었지만 거짓으로 임신한 척하거나 아이들에게 연기연습을 시키는 거지를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어른들이 매일 역 모퉁이에서 거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사투리를 연습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조사팀은 “어떤 거지는 퇴근전 화장실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불고기를 먹은 후 200위안(한화 약 2만 5천원)을 지불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사팀의 샤오쉬(小徐)대표는 “거지들에게는 당장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역보다 노동으로서 돈을 벌수있는 생존 공간이 필요하다.” 며 “구걸을 위해 매우 열정적인 눈물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 ‘예술인’들에게는 어떠한 동정도 필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7월에는 한 호주 관광객이 베이징역에서 거지에게 쫓기다 기절한 일이 발생해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구걸행위가 중국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상천대표 한나라와 연합할 수도”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26일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한나라당과 연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장 원내대표는 전북 CBS와의 인터뷰에서 “박상천 대표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객으로, 자신과 이념 성향이나 정치성향이 맞는 한나라당과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통합신당 합류에) 한 발 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 대표가 대동단결론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독자 생존보다는 도리어 한나라당과 연합하고, 한나라당에 있는 개혁세력은 제3지대 대통합신당에 합류하는 변화를 예측할 수도 있다.”며 새로운 정계개편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에 박 대표측은 “전혀 근거 없는 소설”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재두 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공당의 원내 사령탑이란 분이 내놓은 발언치고는 너무 저질이어서 민망하다.”면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구걸하던 열린우리당이 왜 망했는지 알 것 같다.”고 발끈했다. 한편 장 원내대표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전날 사돈인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과 관련,“조 회장을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伊 어린이 거지 5만명 육박…대부분 집시

    이탈리아에서 구걸하는 어린이 거지의 대부분은 집시인 것으로 조사됐다. 8일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유럽 기본권 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어린이 거지들의 대부분은 2∼12세 사이의 집시들이며 계속 그 수가 늘어나 현재 5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전했다. 이 보고서는 이탈리아에는 최소한 12만명의 집시가 있으며, 그들 중 50%는 14세 미만의 아동들이라고 밝히고, 어린이를 활용한 구걸 행위는 연간 2억 유로(2천500억원) 규모의 ‘돈 벌이’ 비즈니스라고 지적했다. 이들 어린이는 주로 알바니아, 모로코, 루마니아, 그리고 전 유고연방 지역에서 오고 있으나, 지역 정부가 운영하는 임시 수용시설에 들어간 뒤 대부분 48시간 이내에 도망쳐 길거리에서 구걸이나 좀도둑질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유럽 기본권 기구는 현재 유럽 전역에 걸쳐 어린이 거지들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제주 ‘三無 전통’ 되살린다

    제주 ‘三無 전통’ 되살린다

    ‘대문 없던 때가 살기 좋았어요.’ 26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마을. 장석진(48) 이장은 굳게 닫혀 있던 자신의 집 철제 대문 두 짝을 떼내기 시작했다. 망치질 몇 번에 집 안과 밖을 가로막고 있던 철제대문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옛날처럼 이웃간에 믿고 살아야지요. 우리집도 곧 대문을 떼낼 겁니다.”라며 박수를 보냈다. 400여명의 주민이 도란도란 모여 농사를 짓고 사는 제주의 한 시골마을이 예부터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고 해 붙여진 제주의 ‘삼무(三無)정신’을 되살리자고 나선 것이다. 예로부터 제주 사람은 근면, 절약,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삼아, 도적질을 하거나 구걸을 하지 않고 집에 대문도 없이 살았다. 집 입구 정주석에 집주인의 외출 등을 알리는 ‘정낭’이란 긴 나무를 걸쳐 두면 그만이었다. 상명리 주민들은 3월부터 사라진 삼무를 되살리고 옛 정취가 물씬 나는 가장 제주다운 마을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130가구 중 120가구가 대문을 없애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이달 말까지 56가구를 대상으로 대문 철거 작업을 우선 실시하고 10월까지 마을의 대문을 모두 없앤다. 장 이장은 “처음에는 멀쩡한 대문을 떼내자는 데 다들 반대했다.”고 말했다. 한림읍도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정주석과 정낭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40만원을 가구마다 지원하기로 했다. 강영호 한림읍장은 “주민들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면서 “앞으로 상명리 대문 없는 마을을 관광자원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해 붙여진 삼다도(三多島)라는 제주의 별칭은 올 연말쯤에는 옛말이 될 전망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서울광장] 상하이, 왠지 어설픈 미래의 중국/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상하이, 왠지 어설픈 미래의 중국/함혜리 논설위원

    “중국의 과거를 알려면 시안으로, 현재를 보려면 베이징으로, 그리고 미래를 보려면 상하이로 가라.”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국제화 물결을 탔던 상하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로 재부상했다. 중국의 경제 발전을 대변하는 국제도시, 세계 초일류 다국적 기업들의 자본과 기술을 무섭게 빨아들이는 ‘블랙홀’ 등 상하이를 수식하는 문구들은 너무나 화려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지개벽’이라고 표현했다. 제2의 천지개벽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상하이의 실체가 궁금하던 차에 지난 주말 상하이에 여행을 다녀왔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듣던 대로 상하이는 엄청났다. 초고층 빌딩과 맨션아파트, 거대한 쇼핑센터, 특급 호텔들이 도시에 그득했다. 푸둥 지역의 화려한 야경은 마치 미래의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중국 최대의 소비시장답게 패스트푸드점, 유명 럭셔리브랜드숍 등 없는 게 없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그득한 신톈지는 유럽 도시에 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은 이 도시가 얼마나 관심을 끌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호텔에서 만난 한 프랑스 여성은 “외국이라는 느낌이 안들 때가 많다.”고 했다. 상하이는 활기에 넘쳤다. 그런데 무언가 어설픔이 느껴졌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짧은 여행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부조화와 불균형’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경제적 급성장의 부작용일 것이다. 불균형과 부조화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도시의 인프라는 첨단을 달리는데 사람들은 미처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심하고, 불친절했다. 외국인들의 파트너가 되어 데이트하는 중국 여성들이 자주 눈에 띄고, 식당이나 상점의 점원들은 서양식 이름을 자랑스럽게 명패에 새겨 달고 있었지만 영어로 의사 소통이 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자본주의는 받아들였지만 인적자원의 국제적 경쟁력은 별개였다. 뒷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풍경이 금세 바뀐다. 낡은 아파트 베란다로 기다란 대나무에 옷가지들이 지친 듯 걸려 있다. 건물 입구에는 자전거들이 줄지어 있다. 계단 구석에 거울을 걸고 그 앞에 의자 하나를 놓고 소년의 머리를 깎고 있는 이발사 할아버지, 부채로 파리를 쫓고 있는 만물상 주인 등 뒷골목 풍경은 15년전 중국에서 보았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푸둥의 야경을 찍으려고 밤에 황푸강변으로 갔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할머니 거지가 구걸을 한다. 잔돈을 건넸더니 어느새 거지들이 떼로 몰려와 매달린다. 뿌리치고 오면서 카메라를 꺼내려는데 낯선 손이 가방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귀국길에도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공항의 검색대 앞에 있던 요원이 물병을 가리키면서 한국말로 “안돼!”하는 것이다. 눈깜짝하지 않고 반말을 하는데 무척 불쾌했다. 끝에 ‘요’자 하나 더 붙이면 될 것을…. 비행기 안에서 한국신문을 펼치니 산시성과 허난성 벽돌공장의 현대판 노예사건으로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중국 경제를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비유한다. 공평한 복지분배를 내세우는 사회주의 경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13억 중국인들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되려면 아직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야생인간? 깊은 산속서 풀을 먹고 사는 中여인

    “뭐요,‘야생인간’이 나타났다구요?” 중국 대륙에 전설 속의 인물로 널리 알려진 ‘야생 인간’이 등장,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베이룬(北侖)구 궈쥐(郭巨)촌 주민 왕(王·여)모씨는 최근 귤나무 밭 가지치기 작업을 하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나 혼비백산했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2일 보도했다.하지만 베이룬구 공안(경찰)당국이 정밀 수사를 한 결과 이 ‘야생인간’은 직업도 없고 돈도 없다보니 구걸에 나섰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못해 산으로 들어간 ‘여자 거지’인 것으로 드러나 또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이 인터넷신문은 덧붙였다. ‘여자 거지’가 ‘야생인간’으로 둔갑한 사연은 이렇다.이달 초 베이룬구 궈쥐춘 주민 왕씨 아주머니가 심산유곡에 있는 귤나무 밭에 가지치기를 하러 갔다.첩첩산중에 들어선 순간,갑자기 겁이 난 상황에서 그녀는 멀리서 봉두난발에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여인이 풀뿌리를 씹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귤나무 가지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곧바로 되돌아 내려와 베이룬구 공안당국에 신고를 했다.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났다고…. 왕씨는 공안당국에 신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설속의 ‘야생인간’을 봤다.”며 소문을 퍼뜨렸다.이 소문은 삽시간에 궈쥐춘은 물론 베이룬구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즉각 수사할 채비를 갖췄다.베이룬구 공안당국측은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무슨 전설 속의 ‘야생인간’이 있겠느냐.”며 미심쩍었지만,주민들에게 황당한 소문이 퍼져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는 탓에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왕씨 아주머니가 ‘야생인간’을 보았다는 첩첩산중 귤나무 밭으로 가 샅샅이 조사한 결과 그 ‘야생인간’을 찾아냈다.공안당국 조사결과 ‘야생인간’은 중국 동북부 허베이(河北)성 출신의 장(張·여·36)모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어 구걸에 나섰으나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아 산속을 들어갔다고.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먹으며 살다보니 전설속의 ‘야생인간’처럼 보인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야생인간? 깊은 산속서 풀을 먹고 사는 여인

    “뭐요,‘야생인간’이 나타났다구요?” 중국 대륙에 전설 속의 인물로 널리 알려진 ‘야생 인간’이 등장,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베이룬(北侖)구 궈쥐(郭巨)촌 주민 왕(王·여)모씨는 최근 귤나무 밭 가지치기 작업을 하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나 혼비백산했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12일 보도했다.하지만 베이룬구 공안(경찰)당국이 정밀 수사를 한 결과 이 ‘야생인간’은 직업도 없고 돈도 없다보니 구걸에 나섰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못해 산으로 들어간 ‘여자 거지’인 것으로 드러나 또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이 인터넷신문은 덧붙였다. ‘여자 거지’가 ‘야생인간’으로 둔갑한 사연은 이렇다.이달 초 베이룬구 궈쥐춘 주민 왕씨 아주머니가 심산유곡에 있는 귤나무 밭에 가지치기를 하러 갔다.첩첩산중에 들어선 순간,갑자기 겁이 난 상황에서 그녀는 멀리서 봉두난발에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여인이 풀뿌리를 씹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귤나무 가지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곧바로 되돌아 내려와 베이룬구 공안당국에 신고를 했다.전설 속의 ‘야생인간’을 만났다고…. 왕씨는 공안당국에 신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설속의 ‘야생인간’을 봤다.”며 소문을 퍼뜨렸다.이 소문은 삽시간에 궈쥐춘은 물론 베이룬구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즉각 수사할 채비를 갖췄다.베이룬구 공안당국측은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무슨 전설 속의 ‘야생인간’이 있겠느냐.”며 미심쩍었지만,주민들에게 황당한 소문이 퍼져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는 탓에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베이룬구 공안당국은 왕씨 아주머니가 ‘야생인간’을 보았다는 첩첩산중 귤나무 밭으로 가 샅샅이 조사한 결과 그 ‘야생인간’을 찾아냈다.공안당국 조사결과 ‘야생인간’은 중국 동북부 허베이(河北)성 출신의 장(張·여·36)모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는 돈도 없고 일할 곳도 없어 구걸에 나섰으나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아 산속을 들어갔다고.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먹으며 살다보니 전설속의 ‘야생인간’처럼 보인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어떤 제약도 간절한 열망 앞에선 허물어져”

    “어떤 제약도 간절한 열망 앞에선 허물어져”

    “저는 ‘달리트’(불가촉천민) 출신입니다.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작은 항아리를 목에 걸고 다녀야 하고, 자기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빗자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달리트 입니다. 그런 제가 카스트의 족쇄를 끊었습니다. 저와 제 책 자체가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렌드라 자다브(54). 미국 인디애나 대학 경제학 박사, 인도중앙은행 수석 경제보좌관, 현 인도 푸네대학 총장. 향후 인도중앙은행 총재 혹은 재무장관, 나아가 차기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되는 사람. 그러나 그는 달리트(Dalit)이다. ‘오염되기 싫으면 닿아서도 안 되는 사람’이 불가촉천민 달리트, 브라만(승려)·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바이샤(상인)·수드라(피정복민 및 노예, 천민) 등 카스트 제도의 네 가지 계급에도 끼지 못하는 ‘아웃 카스트’가 달리트다. 오물수거·시체처리·가죽가공·세탁 등의 일을 도맡으며 ‘오직 구걸할 권리’만 허용됐던, 인도 인구 15%(1억 7000만명)가 달리트다. ●교육 통해 ‘신이 정한 운명´ 뛰어넘어 자다브 총장이 외교통상부 초청으로 12일 한국에 왔다. 입국에 맞춰 ‘신도 버린 사람들’(김영사 펴냄)이란 책도 출간됐다. 책의 원제목마저 ‘Untouchables’, 즉 불가촉천민이다.13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자다브 총장은 “인도의 달리트는 깨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부터 신분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상당히 형성됐고,55년 불가촉천민법 제정으로 달리트에 대한 종교·사회·직업적 차별이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카스트제도는 여전히 인도 국민을 괴롭히는 ‘괴물 같은 존재’입니다. 카스트가 존속한 지난 3500년간 달리트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왔고, 결국 변화는 교육으로부터 싹트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의 많은 달리트가 고등교육을 받으며 신분제도란 거대한 벽에 도전하고 있다.‘깡패’를 꿈꾸던 그 역시 교육을 통해 ‘신이 정한 운명’을 뛰어넘었다. 자다브 총장은 ‘가난’과 ‘문맹’이란 인도 사회의 핵심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교육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인도의 미래를 밝힐 최대 강점은 젊은층 인구의 폭발이고, 이들을 길러내는 질 높은 교육 인프라는 인도의 현재를 극복할 핵심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존엄성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신도 버린 사람들’은 자다브 총장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을 위해서는 책 말미 일부분만 할애했다.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1970년 세탁업을 하던 아버지가 은퇴했습니다. 할 일 없어진 아버지는 매일같이 집안 곳곳을 고치느라 소음이 대단했지요. 좀 조용히 계셨으면 하는 마음에 회고록 써볼 것을 권했고, 글자를 간신히 깨친 아버지는 1947년까지의 일을 한자 한자 일기로 썼습니다. 제가 일기를 읽은 것은 8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죠. 그것은 놀라운 ‘사회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아버지가 남기지 못한 이후 기록을 아들은 어머니와 누나 등 가족의 입을 통해 써나갔고,‘자신의 존엄성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자다브 본인의 메시지를 추가했다. 그는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계급차별이나 법적 제약도 이를 극복하려는 간절한 열망 앞에선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면서 “책을 읽은 달리트 젊은이들이 카스트에 저항할 용기를 얻었다며 1만여통의 편지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자다브 총장은 한국 경제에도 깊은 관심을 표했다. 경제전문가인 그는 “1970년대에 일찌감치 경쟁력을 갖춘 한국은 인도가 50∼60년 걸린 경제성장을 20년 안에 이뤄냈다.”면서 “최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 지역에 한국 기업들이 속속 들어오는 점을 감안해 내년부터 푸네대학에서도 한국어 강좌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브 총장은 사회양극화 심화로 신빈곤 계층이 광범위하게 양산되고 있는 한국사회에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제가 생각하는 평등은 상위층을 끌어내려 하위층에 맞추는 게 아닙니다. 하위층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인도처럼 하위층 다수의 정계진출로 상위층이 역전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노인무료급식 중단위기 노란점퍼 좀 사주세요”

    “노인무료급식 중단위기 노란점퍼 좀 사주세요”

    “30여년간 이어온 노인 무료 급식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노란 점퍼’를 구입해 주세요.” 31일 낮 12시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영천시장 뒤편 30평 남짓한 지하 급식소는 수십명의 노인들로 가득 찼다. 노인들은 “오늘도 잘 먹고 간다.”며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한길봉사회 김종은(59) 회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정치권 인사 주문 하고 안찾아 공장부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란 점퍼’ 문제로 운영하던 옷 공장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하루 200∼300명의 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제공해 온 급식소가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급식소는 김 회장이 1972년부터 운영해온 옷공장 수익금으로 운영되는데 하루 급식비로 100만원가량 든다. 급식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은 2005년 11월17일 정치권의 모 인사로부터 ‘노란 점퍼’ 15만장을 주문받으면서부터다. 김 회장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한 인사가 보름 안에 노란 점퍼 15만장을 급히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해서 그 말만 믿고 작업에 착수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것도 모자라 주변 공장 세 곳에 제작을 일부 맡겼다. 돈이 모자라 사채까지 끌어 썼다. 그러나 주문한 사람이 물건을 인수하지 않으면서 18억원어치의 물건을 팔지 못해 자금난에 빠졌다. 또 보관용 창고비와 이자, 급식비 등으로 한 달에 5000만∼6000만원씩 쌓이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달 공장 문을 닫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모 일간지에 ‘노란 점퍼’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돼 보도되자 5만장 정도를 구입하려던 한 정치권 인사가 계획을 취소하고 잠적해 버렸다. ●5만원 짜리 원가 1만원에라도 사갔으면… 김 회장은 “노란 점퍼를 제작하면서 급식소 부지까지 저당을 잡혔다.”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경위야 어찌 됐든 누구라도 노란 점퍼를 팔아 달라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노란 점퍼를 펴보이며 “이게 백화점 등에서는 5만 3000원에 팔리는 고급 제품”이라면서 “누구라도 노인 무료 급식소를 도와주는 셈치고 원가(1만 2000원) 이하에라도 조금씩이라도 사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밀린 빚이라도 갚아야 급식소를 살릴 수 있지 않느냐.”며 울먹였다. 그는 설움이 복받치자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를 쏟아냈다. “저는 엄니가 앞을 못보게 되면서 네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시유.11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걸도 해봤지유. 그래도 나는 원체 어렵게 자라서 대충 살면 걱정 없시유. 그런데 급식소가 없어져 밥 먹을 곳 없는 노인들은 어찌될까 걱정스럽구먼유.”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인들의 상당수는 이런 사정을 몰랐다. 한 노인은 “최근 사기를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급식소가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문의 한길봉사회 02)392-0264∼5. 강국진 이경주기자 betulo@seoul.co.kr
  • “딱 100원만…” 잔돈만 구걸하는 희한한 중국 걸인

    오직 1위안(元·약 120원)만 받습니다.거스름 돈이 없어 10위안을 주는 분에게는 반드시 9위안을 거슬러줍니다.” 중국 대륙에 1일 8시간 구걸·1위안 받기 등 나름대로 ‘구걸 원칙’으로 정해 이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천하는 30대 안팎의 한 남성 거지가 등장,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허핑(和平)구에 사는 劉(유)모씨는 하루 꼭 8시간동안만 구걸하고 반드시 1위안만 받는 등 다른 거지와 달리 ‘구걸 원칙’을 정해 손을 벌리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인(奇人) 거지’로 불리고 있다고 화상신보(華商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 10일 오전 9시쯤 선양시 허핑구 성리베이(勝利北)가의 한 대로상.소아마비를 심하게 앓는 한 30대 안팎의 사내가 손을 벌리며 구걸에 나서고 있었다. “나는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아 몸이 불편합니다.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중병을 앓아 누워계십니다.딱 1위안만 적선하십시오!” 이곳을 지나던 한 40대 남자가 잔돈이 없다며 10위안을 건네주자 그는 잽싸게 바지 주머니에서 9위안을 꺼내 거슬러줬다.류씨는 왜 1위안만 받느냐고 묻자 “1위안은 큰 돈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준다.”면서 “1위안 이상을 받으면 주는 사람도 부담이 생겨 그냥 가버리는 사람이 더많기 때문”이라고 밝혀,‘1위안 받기’가 일종의 ‘마케팅 전략’임을 내비쳤다. 그가 다른 걸인과 다른 점은 이 뿐이 아니다.같은 사람에게 절대로 두번 손을 벌리지 않는다고.류씨는 “시민들이 한 두번은 주지만,세번 이상은 손을 벌리면 대부분 주지 않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매일 낮에 하루 8시간만 구걸한다는 점도 여느 거지와 다르다.걸인 생활에도 직장 개념을 도입했다.그래도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어 굳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류씨의 하루 ‘수입’은 대략 40위안(약 4800원).구걸을 시작한 1개월여가 됐는데 지금까지 벌써 1500위안(약 18만원)을 모았다고.그는 “구걸을 오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지금의 생각으로는 5000위안(약 60만원)만 모으면 그만두고 부모가 있는 고향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딱 100원만…” 잔돈만 구걸하는 희한한 걸인

    “오직 1위안(元·약 120원)만 받습니다.거스름 돈이 없어 10위안을 주는 분에게는 반드시 9위안을 거슬러줍니다.” 중국 대륙에 1일 8시간 구걸·1위안 받기 등 나름대로 ‘구걸 원칙’으로 정해 이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천하는 30대 안팎의 한 남성 거지가 등장,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허핑(和平)구에 사는 劉(유)모씨는 하루 꼭 8시간동안만 구걸하고 반드시 1위안만 받는 등 다른 거지와 달리 ‘구걸 원칙’을 정해 손을 벌리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인(奇人) 거지’로 불리고 있다고 화상신보(華商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 10일 오전 9시쯤 선양시 허핑구 성리베이(勝利北)가의 한 대로상.소아마비를 심하게 앓는 한 30대 안팎의 사내가 손을 벌리며 구걸에 나서고 있었다. “나는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아 몸이 불편합니다.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중병을 앓아 누워계십니다.딱 1위안만 적선하십시오!” 이곳을 지나던 한 40대 남자가 잔돈이 없다며 10위안을 건네주자 그는 잽싸게 바지 주머니에서 9위안을 꺼내 거슬러줬다.류씨는 왜 1위안만 받느냐고 묻자 “1위안은 큰 돈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준다.”면서 “1위안 이상을 받으면 주는 사람도 부담이 생겨 그냥 가버리는 사람이 더많기 때문”이라고 밝혀,‘1위안 받기’가 일종의 ‘마케팅 전략’임을 내비쳤다. 그가 다른 걸인과 다른 점은 이 뿐이 아니다.같은 사람에게 절대로 두번 손을 벌리지 않는다고.류씨는 “시민들이 한 두번은 주지만,세번 이상은 손을 벌리면 대부분 주지 않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매일 낮에 하루 8시간만 구걸한다는 점도 여느 거지와 다르다.걸인 생활에도 직장 개념을 도입했다.그래도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어 굳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류씨의 하루 ‘수입’은 대략 40위안(약 4800원).구걸을 시작한 1개월여가 됐는데 지금까지 벌써 1500위안(약 18만원)을 모았다고.그는 “구걸을 오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지금의 생각으로는 5000위안(약 60만원)만 모으면 그만두고 부모가 있는 고향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가끔 하늘 보며 살기

    [한승원 토굴살이] 가끔 하늘 보며 살기

    ‘하늘’이란 말과 ‘태허(太虛)’라는 말은 동의어이다. 태허는 태초로부터 텅 비어 있는 시원이다. 우리가 온 곳도 그곳이고 돌아갈 곳도 그곳이다. 어떤 일로 인해 기가 막히면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면 막힌 기가 뚫린다. 어떤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때에도 하늘을 쳐다보면 풀린다. 내가 얻곤 하는 모든 영감의 근원지는 짙푸른 하늘이다. 요즘 시장 바닥에 ‘어린’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고 그 하늘이 말한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문에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실어 펴지 못할 놈이 많으니라.’라 했는데, 그 말 속의 ‘어린’은 ‘어리석은’이라는 뜻이다. 잡아놓은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 이 땅의 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 알기를 잡아 놓은 물고기로 안다. 민심이 천심인데 하늘 알기를 우습게 아는 그들은 얼마나 어린 사람들인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 땅에다가 가로로 세로로 운하를 뚫겠다고 하고, 여론조사에서 항상 1등을 맡아 놓고 하는 사람과, 자기 당의 경선에서 이기기만 하면 차기 대통령자리는 자기 것이라는 생각에 잠겨 있는 한 여인이 벌이는 샅바싸움, 뿔뿔이 흩어진 다음 다시 대통합을 이루어, 가시화해 있는 그 두 사람에게 이길 수 있는 무슨 묘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웅얼대는 우후죽순 같은 군웅들의 행태…. 저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이 험난한 바다를 헤쳐 나가는 선장으로 삼아야 할까. 모두들 대의를 가지고, 한 패거리는 이리 몰려가서 웅성거리고, 다른 한 패거리는 저리 몰려가서 웅성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디에 줄서기를 해야만 차기의 국회의원 자리가 확보될 것인가 하는 눈치작전들만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런 시쳇말들이 나돌았다. 선생을 하려면 대학교수를 하고, 군대생활을 하려면 별을 달고 하고,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 노릇을 하여야 한다는 말.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공공의 큰 믿음과 희망을 미끼로 내걸어놓고 ‘나에게 한 표 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구걸의 낚시꾼’, 혹은 ‘구걸의 벼슬아치’이다. 후보로 출마해서는, 표 가진 자들에게 굽실거리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미끼를 던져주며 구걸을 하지만, 당선이 된 다음에는 그 미끼들을 싸 짊어지고 여의도나 청와대로 입성하자마자,‘한푼 줍쇼’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목에 힘주고 떵떵거리며, 자기와 자기의 이익단체를 위해, 그동안에 쓴 밑천만 뽑으려고 든다.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법을, 정전기 없는 순 무명옷이나 명주옷처럼, 추울 때는 따뜻하고 더울 때는 시원하게 만들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익단체들이 찔러준 돈만큼,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다급하고 소중한 것일지라도 깔고 앉은 채, 자기와 제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질질 끌어가는 파렴치한 그 집단들. 지금 대통령님은 또 왜 남은 임기 동안의 다스리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고, 이미 문밖으로 나와 버린 당에 집착하고, 그 당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에게 시시비비나 하고 있는 것인가. 비자금을 잔뜩 모아 감추어 두었다가, 청와대를 떠난 뒤 물밑에서 그 비자금을 이용하여 사당을 만들어 운영관리하려 했다가 모두 실패를 했는데, 저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 것일까. 강을 건넌 다음에는 뗏목을 버리라고 했는데, 왜 지금까지 뗏목을 짊어지고 다니고 있을까. 금년 12월 전후에는 마음 하얗게 비우고 고향 김해로 돌아가야 할 터인데. 그 여러분들에게 하늘, 혹은 태허를 가끔 쳐다보며 살기를 권한다. 그 하늘이 순수해지라고, 마음을 비우라고 가르쳐주고, 권력, 그것 새털 같은 것이라고 가르쳐줄 터이므로. 소설가
  • 당신, 마음에 사랑의 꽃씨 하나

    당신, 마음에 사랑의 꽃씨 하나

    어느 날인가부터 아침에 전자우편함을 열면 낯선 편지가 한 통씩 배달되었다. 마음을 감싸는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내가 아는 이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매일 아침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이 찾아온다는 건……. 취재, 글 김동하 기자 | 사진 이정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던가. 그래도 이즈음 거리의 풍경을 보면 한번쯤은 꽃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보다. 아침 출근길에 기지개 켜듯 툭, 툭 피어나는 봄꽃들과 눈을 맞추노라면 간밤 술에 취한 몸조차도 어느새 가뿐해진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5월에 만난 이 사람은 저 화사한 꽃들조차 승부를 피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향기를 지녔으니. 매일 아침 무려 200만 개의 꽃씨를 세상에 뿌린다는 ‘사랑밭 새벽편지’권태일 목사는, 흙이 아닌 사람의 마음밭에 농사를 짓는다. 희망과 위로, 칭찬과 격려로 함께 그려나가는 동심원…. 이메일로 띄우는 씨앗 주머니는 날마다 달라도 받는 이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피어난다. 콩 심으면 콩밭, 사랑을 심으면 사랑밭 사랑밭 새벽편지는 홀로 사는 노인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랑밭회’가 나눔을 함께하는 회원들에게 감사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따뜻한 글귀와 그림, 배경음악을 실어 보내온 이메일에 감동한 회원들이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추천했다. 2003년 7월 24일 이메일을 처음 발송한 이후 6개월 만에 회원이 50만 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200만 명을 넘기게 되었다.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그 밭은 각기 다른 이름을 갖게 됩니다. 콩 심으면 콩밭, 보리를 심으면 보리밭이 되지요. 20년 전 한 청년은 그의 마음에 작은 사랑의 씨를 뿌렸고 그것이 오늘의 ‘사랑밭’이 되었습니다.” 본인의 말을 빌면,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랑’에 푹 빠진 권태일 목사는 세일즈맨으로 뛰던 서른둘의 초겨울, 충무로의 육교 위에서 구걸하는 한 여인과 마주쳤다. 어린 두 아이를 등에 업고, 품에 안은 그녀의 얼굴은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충격! 세상에 이런 삶도 있구나 싶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통닭과 마실 것을 사서 그들에게 건넸고, 그 후로는 틈나는 대로 그들을 찾았다. “그 모녀를 알게 된 후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받을 수 없는 이들이 더 많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일즈를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녔지요. 집에는 봉지쌀을 사다 주고 그날 번 돈을 탈탈 털어주다 보니 장사가 안 되는 날은 도울 수가 없잖아요. 그래, 여럿이 힘을 모아보자는 생각을 했지요.”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 동안, 평범한 세일즈맨이었던 권태일 씨의 삶에도 못지않은 변화가 있었다. 갈 곳 없는 사람들, 함께 의지하자고 비닐하우스 집을 사 ‘즐거운 집’이라 이름 지었고,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목사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세상엔 그이가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편견과 오해가 있었지만, 희망으로 일궈가는 ‘사랑밭’은 다행히도 갈수록 수확량이 늘어만 갔다. 영어마을 생기는데 사랑마을도 지어야죠 현재 권 목사와 함께 ‘사랑밭 새벽편지’를 만드는 사람들 또한 따로 일을 가지고 있으면서 귀한 시간을 품앗이하고 있다. 라은미 씨는 권 목사가 쓴 글이나 새벽편지 가족이 보내온 글을 재구성해 감동을 더해주고, 이재영 씨는 글의 내용이 가슴이 오래 남도록 세련된 위트와 일품 감각을 삽화로 보여준다. 더군다나 음악을 맡은 박윤미 씨와 웹 작업을 하는 김광일 씨는 ‘사랑밭 새벽편지’가 낳은 커플.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전달하는 일을 하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만나 결혼한 사이니 이들의 하모니는 두말하면 잔소리. 권태일 목사는 사랑밭을 더 크고 넓게 일구려 한다. 배움에 목마른 가난한 조선족 청소년을 위해 학비를 마련해주고, 동포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도 세웠다. 함께하는 작은 정성들이 산을 이루어 여기까지 왔기에 재정 운영을 투명하게 하여 후원자들의 믿음에 보답코자 한다. “요즘엔 숲속에 지은 전원주택 마을도 있고, 아이들의 어학공부를 위한 영어마을도 생겨나고 있지요. 그러니 ‘사랑의 국민마을’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곳은 몸이 불편해서, 가진 것이 없어서, 가족에게 버림받아서, 난치병에 걸려서… 절망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즐거운 집이 될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냐고요? 저희는 사랑밭 새벽편지를 통해 벌써 희망을 보았답니다.” <오늘의 새벽편지> ‘단 1초만이라도’. 오늘도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지하철을 탔다. 그때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차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 딸이 백혈병에 걸려서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 지하철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딸을 팔아 먹냐, 돈이 그렇게 궁하냐…. 한동안 아저씨는 상기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오늘 제 딸이 수술을 받습니다. 단 1초만이라도 함께 기도해주세요.” 순간 열차 안은 숨소리도 안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 [게임플러스] ‘프로야구걸’ 모델 4차 선발대회

    게임빌은 12일 ‘2007프로야구걸(프야걸)’의 모델 4차 선발 대회를 서울 잠실 야구경기장에서 연다.4차 선발 대회에서는 압축된 3명의 후보 중 최종 1명을 선발한다. 이들 후보 3명은 LG트윈스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에 앞서 관중 앞에서 댄스, 장기자랑, 일일 치어리더 등을 하며 경쟁을 한다.최종 선발자는 경기 시작 전 시구한다. 모델이 되면 300만원의 장학금을 받는다. 또 TV 광고 및 프로그램 촬영, 잠실 야구장 시구 등 1년간 활동을 한다.
  • 노숙자에 뚫린 지하철 안전

    노숙자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밀쳐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50대 여성을 시민들이 극적으로 구조했다.3일 서울 관악경찰서와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관악구 봉천동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A(52)씨는 지난 2일 오후 10시2분쯤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승강장에 서 있던 최모(53·여)씨에게 다가가 돈을 구걸했다. 최씨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겨 돈을 주지 않고 옆으로 피했지만 A씨는 갑자기 최씨를 신림역 방향 선로로 힘껏 밀쳤다. 선로에 떨어진 최씨는 비록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혼자 힘으로 1m가 넘는 승강장 위로 올라오기는 힘겨웠다. 게다가 열차 진입까지 1∼2분밖에 남지 않은 위험한 상황. 이때 근처에 있던 이태규(58)씨를 비롯한 시민 여러 명과 공익근무요원 송재윤씨가 달려들어 최씨를 승강장 위로 안전하게 끌어올렸다. 이씨와 송씨는 또 근처를 배회하던 A씨를 붙잡아 역무실에 넘기기도 했다. 이씨는 “혼자 힘으로는 끌어올리기 벅찼다.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애꿎은 생명이 희생될 뻔했다.”면서 “지하철의 승객 안전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7) 한남동 이슬람 중앙 사원

    [종교건축 이야기] (27) 한남동 이슬람 중앙 사원

    서울 한남대교에서 남산 터널 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왼쪽 이태원 언덕의 도드라진 이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1976년 세워진 뒤 31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한국 이슬람 총본산 역할을 해온 이슬람교 중앙 사원(모스크·용산구 한남동 732~21)이다. 전국 10개의 이슬람 사원과 선교원,40여개의 이슬람교 예배소를 총괄하는 한국 이슬람의 핵. 많은 이들에겐 그저 호기심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만 3만 5000여명의 한국 무슬림(이슬람 신도)과 10만여 외국인 무슬림들에겐 절실한 신앙공간이다. 이태원 소방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광초등학교 삼거리 왼쪽 길을 택해 오르면 허름한 주택들이 줄지어 선 골목 양쪽에 아랍어 간판을 단 집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이슬람 성서인 코란을 비롯해 아랍 과자·음료수를 파는 가게며 서점, 터키 전통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골목 끝에 서면 푸른색의 아치형 문이 길을 막는다.‘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하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이슬람 교리를 가장 극명하게 압축한 문구를 보며 회랑처럼 생긴 오르막길을 올라 너른 마당에 서면 큼지막한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라 쓴 중앙 사원이 눈에 든다.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5차례의 이슬람 예배가 어김없이 열리는 곳. 한국은 물론 서남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한국에 온 무슬림들의 신앙이 이어지는 이색지대이다. 멀찌감치선 우람하게 비쳐지는 것과는 달리 막상 사원 앞에 서면 아주 단촐한 인상을 받는다. 모스크를 상징하는 지붕 중앙의 돔(쿱바)과 앞쪽 두 개의 높은 첨탑(미나렛), 그리고 돔과 첨탑을 호위하듯 선 자그마한 첨탑들이 건물 외관을 장식하는 모든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잘 불러모을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모스크를 세운 것처럼 한국의 무슬림들도 중앙 사원을 이태원 꼭대기 높은 언덕에 세워놓았다. 사원이 세워진 것은 1976년.6·25전쟁 중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軍) 이맘(이슬람교 예배 인도자), 압둘 가푸르 카라 이스마일 오울루의 전도로 1955년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 등 한국 최초의 무슬림이 탄생한 지 21년 만의 일이었다. 중동 붐을 타고 이슬람 국가와의 친교가 긴요했던 무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초동 쓰레기 매립장 10만평과 지금의 사원 자리 등 두 군데 중 한 곳을 사원 터로 무상 제공할 뜻을 비쳤다고 한다. 한국 이슬람교가 지금의 부지를 택한 것은 당시 주변에 아랍 상인들과 이슬람 신도들이 모여 살았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태원에 살던 영향력 있는 한국인 신도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신도층이 두텁지 못해 사원 건립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구걸하다시피 전 세계 이슬람 나라들에 손을 벌려야 했다.1970년 부지가 확보된 뒤 한국의 무슬림들이 모금 사절단을 구성, 이슬람 각국을 돌아 미화 40만달러를 모았다.1974년 10월 첫 삽을 뜬 지 1년 7개월 만인 1976년 5월 마침내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 건축물을 세워놓은 것이다. 당시 개원행사엔 17개 이슬람 국가의 장관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50여명의 종교지도자들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붕 위의 첨탑인 미나렛은 이슬람의 가장 대표적인 순례지인 사우디아라비아 하람성원의 것을 그대로 본떴다. 미나렛은 무앗진이라 불리는 사람이 올라가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을 외치는 첨탑. 이슬람 전통을 따르자면 매 예배 때마다 무앗진이 이곳에 올라 예배시간을 알려야 하지만 마이크와 스피커로 대신하고 있다. 사무실과 회의실이 들어선 1층에서 계단으로 오르게 되는 2층 예배공간에선 교회나 성당에 흔한 성상이나 초상, 상징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코란 구절만이 빙 둘러 새겨져 있을 뿐이다. 6개의 둔중한 기둥이 떠받치는 중앙 돔과, 양측 벽 위쪽의 아치형 창에서 쏟아지는 자연채광이 바닥의 붉은색 양탄자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배공간의 중심은 아랍어로 ‘너희들이 어디에 있건 하람성원을 향할 지니.’라 쓰여진 미흐랍. 전 세계의 이슬람 신도들이 예배 때 마음과 몸을 둔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만든 예배 방향 표시이다. 그 오른쪽, 예배 인도자인 이맘이 올라서서 설교하는 계단인 민바르도 독특하다.2층이 남자 신도들의 예배공간이라면 3층은 여 신도들의 공간.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슬람 세계의 문화가 이곳에도 살아 있다.3층 여 신도 공간 앞쪽엔 가리개를 쳐 남자 신도나 예배 인도자조차 여 신도들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여 신도들은 이맘의 목소리만 듣고 예배드릴 뿐이다. 평일 5차례씩 열리는 예배 참석자는 매회 40명 정도. 대부분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외국인 무슬림들이다. 평일과는 달리 금요일 오후 1시 특별 예배엔 전국에서 500여명이 몰리며 한국인 신도도 40∼50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한다. 예배는 한국인 이맘 2명과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선교사 2명이 번갈아 인도한다. 라마단이 끝나는 다음날인 이슬람력 10월1일과 이슬람 성천(聖遷)일인 이슬람력 12월10일의 축제일엔 3000명이 모여 신앙을 넘어선 거대한 만남의 장을 일군다. “서구인들이 이슬람교를 왜곡하기 위해 지어낸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말 그대로 많은 한국인들은 이슬람교와 교도들을 호전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이슬람 중앙 사원의 이행래(70) 이맘. 그는 “순종과 평화를 추구하는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이슬람 사원은 무슬림들의 본 모습을 가감없이 볼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kimus@seoul.co.kr ●한반도와 이슬람교 서기 610년경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도 무하마드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이슬람교. 유일신 ‘알라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코란’을 따르며,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천국에 임할 수 있음을 기초교리로 삼는 일신교다. 신성에 관한 한 어떠한 복수(複數)적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은채 ‘가장 훌륭한 일신교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이슬람 신도, 즉 무슬림은 전세계 13억명. 이 땅에선 1955년 첫 한국인 무슬림이 탄생하면서 신앙이 태동했지만 한반도와 이슬람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학계에서는 통일신라기 무슬림 상인들의 교역상품이나 이슬람 세계의 것으로 여겨지는 물품들이 흔히 사용된 기록으로 미루어 9세기 중엽부터 이미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처용 일행을 ‘동해안에 나타난 모양과 의상이 괴이한 4명의 자연인’으로 묘사한 삼국사기 기록은 ‘처용가’의 주인공이 아랍인이라는 설을 낳기도 했다.11세기 초 고려기엔 ‘대식(大食)’으로 알려진 아랍 상인들이 고려조정과 교역을 자주 시도했다. 고려사에 ‘1024년,1025년,1040년에 아랍 상인이 100여명씩 무리를 지어 수은이나 몰약을 갖고 개경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여말선초(麗末鮮初)기인 13∼14세기 무렵. 당시 원(元)의 간섭을 받았던 고려조정에는 중앙아시아계의 무슬림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다. 이들은 고려사에 ‘회회인(回回人)’으로 기술된 투르크계의 위구르 무슬림들로 수도 개성에 이슬람 성원까지 세웠다고 한다. 조선조 세종 때엔 궁중 행사에 무슬림 대표들이 코란을 낭송하며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도 했으며, 그때 이슬람 역법이나 도자기 기술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조 유교사상으로 인해 이 땅의 이슬람은 15세기 중엽 이후 썰물처럼 빠졌다. 이후 1920년대 들어 소련치하 소수민족인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한반도에 망명해와 학교며 이슬람 성원을 건립하기도 했으나 해방과 한국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한국이슬람교 중앙회측은 보고 있다.
  • 비정한 지하철?

    비정한 지하철?

    “어쩔 수 있나, 단속하면 못하는 거지. 이제 노인네들이 굶어 죽는 수밖에 더 있나…”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지난달 2일부터 질서기동팀을 동원해 ‘무가지(무료신문) 폐지 수집인’ 집중 단속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집인 대부분이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60∼70대 노인들로 ‘무리한 단속’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폐지 수집인들이 승객들의 몸을 밀치는 등으로 불편을 끼친다는 이용객들의 민원이 많아 단속에 나섰고, 지난달 한달 동안 폐지수집인 191명을 단속해 지하철에서 퇴거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들은 “㎏당 겨우 70원씩 받아 먹고 살겠다는 노인들을 위해 그 정도 불편도 못 참느냐.”며 무리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출근시간 3시간 동안 3500원 벌이 26일 오전 7시 4호선 열차 안에서 만난 A(71)씨는 폐지를 가득 담은 50㎏들이 가방을 메고 힘겹게 출근 인파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는 3년전 충남 서산에서 부인과 함께 서울 아들 집으로 올라 왔지만 아들이 석달전 간암으로 숨지면서 폐지 수집에 나섰다.“아들이 죽으니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서 나왔어. 출근시간 3시간 동안 모은 폐지 50㎏을 고물상에 팔면 3500원이 떨어지는데 그걸로는 밥먹기에 모자라 동네에서 폐상자도 주워야 해.” 그는 집중 단속중이라는 말에 “보던 신문을 내게 주거나 선반 위에 있는 신문을 꺼내면서 도와 주는 시민들이 더 많다.”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같은 시각 1호선 열차 안에서 만난 B(76)씨도 쌀포대에 폐지를 가득 담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40년전 부인과 사별하고 15평짜리 지하 빌라에서 홀로 살고 있는 그는 어렵게 사는 딸들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 지난해 2월부터 폐지 수집에 나섰다.20년 넘게 해온 목공소 일도 나이 탓에 이젠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80㎏ 정도 모으면 8000원 가량 번다. 열차 안에서 포대를 놓자 40대 여성 둘이 “이런 걸 여기다 놓으면 어떡해요.”라고 핀잔을 주지만 묵묵히 폐지담기에만 집중했다.“요즘은 줍는 노인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주워야 소득이 더 커서 몸을 부대끼는 건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원 이성만(37·경기 과천시)씨는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몸을 밀치고 가는 노인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 분들이 물건을 강매하거나 돈을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서 “지하철 선반에 가득 올려져 있는 무가지가 보기 싫은데, 노인들을 단속하기 이전에 청소 대책부터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회사원 이윤희(28·여·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도 “단속팀을 동원하는 데 드는 예산으로 차라리 청소할 대책이나 더 면밀하게 꾸렸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단속이라고 해서 법적 조치를 내리는 건 아니고 단지 퇴거조치를 내리는 것일 뿐”이라면서 “차량 내부 청소에도 올 한 해 73억원의 예산을 들여 370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훈 정서린기자 nomad@seoul.co.kr
  • [깔깔깔]

    ●거지와 신사 항상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어느날 지나가던 신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제게 1만원씩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난해부터 5000원으로 줄이더니 올해엔 1000원으로 줄이셨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입니까?” “전에야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지난해 결혼을 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거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금발의 여인과 피자 한 금발의 여인이 피자 한 판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웨이터가 말했다. “여섯 조각으로 잘라 드릴까요? 아니면 열두 조각으로 잘라 드릴까요?”금발의 여인이 말하길, “여섯 조각이요, 열두 조각은 못 먹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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