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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자에 뚫린 지하철 안전

    노숙자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밀쳐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50대 여성을 시민들이 극적으로 구조했다.3일 서울 관악경찰서와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관악구 봉천동에서 노숙 생활을 하는 A(52)씨는 지난 2일 오후 10시2분쯤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승강장에 서 있던 최모(53·여)씨에게 다가가 돈을 구걸했다. 최씨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겨 돈을 주지 않고 옆으로 피했지만 A씨는 갑자기 최씨를 신림역 방향 선로로 힘껏 밀쳤다. 선로에 떨어진 최씨는 비록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혼자 힘으로 1m가 넘는 승강장 위로 올라오기는 힘겨웠다. 게다가 열차 진입까지 1∼2분밖에 남지 않은 위험한 상황. 이때 근처에 있던 이태규(58)씨를 비롯한 시민 여러 명과 공익근무요원 송재윤씨가 달려들어 최씨를 승강장 위로 안전하게 끌어올렸다. 이씨와 송씨는 또 근처를 배회하던 A씨를 붙잡아 역무실에 넘기기도 했다. 이씨는 “혼자 힘으로는 끌어올리기 벅찼다.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애꿎은 생명이 희생될 뻔했다.”면서 “지하철의 승객 안전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7) 한남동 이슬람 중앙 사원

    [종교건축 이야기] (27) 한남동 이슬람 중앙 사원

    서울 한남대교에서 남산 터널 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왼쪽 이태원 언덕의 도드라진 이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1976년 세워진 뒤 31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한국 이슬람 총본산 역할을 해온 이슬람교 중앙 사원(모스크·용산구 한남동 732~21)이다. 전국 10개의 이슬람 사원과 선교원,40여개의 이슬람교 예배소를 총괄하는 한국 이슬람의 핵. 많은 이들에겐 그저 호기심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만 3만 5000여명의 한국 무슬림(이슬람 신도)과 10만여 외국인 무슬림들에겐 절실한 신앙공간이다. 이태원 소방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광초등학교 삼거리 왼쪽 길을 택해 오르면 허름한 주택들이 줄지어 선 골목 양쪽에 아랍어 간판을 단 집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이슬람 성서인 코란을 비롯해 아랍 과자·음료수를 파는 가게며 서점, 터키 전통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골목 끝에 서면 푸른색의 아치형 문이 길을 막는다.‘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하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이슬람 교리를 가장 극명하게 압축한 문구를 보며 회랑처럼 생긴 오르막길을 올라 너른 마당에 서면 큼지막한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라 쓴 중앙 사원이 눈에 든다.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5차례의 이슬람 예배가 어김없이 열리는 곳. 한국은 물론 서남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한국에 온 무슬림들의 신앙이 이어지는 이색지대이다. 멀찌감치선 우람하게 비쳐지는 것과는 달리 막상 사원 앞에 서면 아주 단촐한 인상을 받는다. 모스크를 상징하는 지붕 중앙의 돔(쿱바)과 앞쪽 두 개의 높은 첨탑(미나렛), 그리고 돔과 첨탑을 호위하듯 선 자그마한 첨탑들이 건물 외관을 장식하는 모든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잘 불러모을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모스크를 세운 것처럼 한국의 무슬림들도 중앙 사원을 이태원 꼭대기 높은 언덕에 세워놓았다. 사원이 세워진 것은 1976년.6·25전쟁 중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軍) 이맘(이슬람교 예배 인도자), 압둘 가푸르 카라 이스마일 오울루의 전도로 1955년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 등 한국 최초의 무슬림이 탄생한 지 21년 만의 일이었다. 중동 붐을 타고 이슬람 국가와의 친교가 긴요했던 무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초동 쓰레기 매립장 10만평과 지금의 사원 자리 등 두 군데 중 한 곳을 사원 터로 무상 제공할 뜻을 비쳤다고 한다. 한국 이슬람교가 지금의 부지를 택한 것은 당시 주변에 아랍 상인들과 이슬람 신도들이 모여 살았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태원에 살던 영향력 있는 한국인 신도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신도층이 두텁지 못해 사원 건립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구걸하다시피 전 세계 이슬람 나라들에 손을 벌려야 했다.1970년 부지가 확보된 뒤 한국의 무슬림들이 모금 사절단을 구성, 이슬람 각국을 돌아 미화 40만달러를 모았다.1974년 10월 첫 삽을 뜬 지 1년 7개월 만인 1976년 5월 마침내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 건축물을 세워놓은 것이다. 당시 개원행사엔 17개 이슬람 국가의 장관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50여명의 종교지도자들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붕 위의 첨탑인 미나렛은 이슬람의 가장 대표적인 순례지인 사우디아라비아 하람성원의 것을 그대로 본떴다. 미나렛은 무앗진이라 불리는 사람이 올라가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을 외치는 첨탑. 이슬람 전통을 따르자면 매 예배 때마다 무앗진이 이곳에 올라 예배시간을 알려야 하지만 마이크와 스피커로 대신하고 있다. 사무실과 회의실이 들어선 1층에서 계단으로 오르게 되는 2층 예배공간에선 교회나 성당에 흔한 성상이나 초상, 상징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코란 구절만이 빙 둘러 새겨져 있을 뿐이다. 6개의 둔중한 기둥이 떠받치는 중앙 돔과, 양측 벽 위쪽의 아치형 창에서 쏟아지는 자연채광이 바닥의 붉은색 양탄자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배공간의 중심은 아랍어로 ‘너희들이 어디에 있건 하람성원을 향할 지니.’라 쓰여진 미흐랍. 전 세계의 이슬람 신도들이 예배 때 마음과 몸을 둔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만든 예배 방향 표시이다. 그 오른쪽, 예배 인도자인 이맘이 올라서서 설교하는 계단인 민바르도 독특하다.2층이 남자 신도들의 예배공간이라면 3층은 여 신도들의 공간.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슬람 세계의 문화가 이곳에도 살아 있다.3층 여 신도 공간 앞쪽엔 가리개를 쳐 남자 신도나 예배 인도자조차 여 신도들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여 신도들은 이맘의 목소리만 듣고 예배드릴 뿐이다. 평일 5차례씩 열리는 예배 참석자는 매회 40명 정도. 대부분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외국인 무슬림들이다. 평일과는 달리 금요일 오후 1시 특별 예배엔 전국에서 500여명이 몰리며 한국인 신도도 40∼50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한다. 예배는 한국인 이맘 2명과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선교사 2명이 번갈아 인도한다. 라마단이 끝나는 다음날인 이슬람력 10월1일과 이슬람 성천(聖遷)일인 이슬람력 12월10일의 축제일엔 3000명이 모여 신앙을 넘어선 거대한 만남의 장을 일군다. “서구인들이 이슬람교를 왜곡하기 위해 지어낸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말 그대로 많은 한국인들은 이슬람교와 교도들을 호전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이슬람 중앙 사원의 이행래(70) 이맘. 그는 “순종과 평화를 추구하는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이슬람 사원은 무슬림들의 본 모습을 가감없이 볼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kimus@seoul.co.kr ●한반도와 이슬람교 서기 610년경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도 무하마드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이슬람교. 유일신 ‘알라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코란’을 따르며,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천국에 임할 수 있음을 기초교리로 삼는 일신교다. 신성에 관한 한 어떠한 복수(複數)적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은채 ‘가장 훌륭한 일신교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이슬람 신도, 즉 무슬림은 전세계 13억명. 이 땅에선 1955년 첫 한국인 무슬림이 탄생하면서 신앙이 태동했지만 한반도와 이슬람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학계에서는 통일신라기 무슬림 상인들의 교역상품이나 이슬람 세계의 것으로 여겨지는 물품들이 흔히 사용된 기록으로 미루어 9세기 중엽부터 이미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처용 일행을 ‘동해안에 나타난 모양과 의상이 괴이한 4명의 자연인’으로 묘사한 삼국사기 기록은 ‘처용가’의 주인공이 아랍인이라는 설을 낳기도 했다.11세기 초 고려기엔 ‘대식(大食)’으로 알려진 아랍 상인들이 고려조정과 교역을 자주 시도했다. 고려사에 ‘1024년,1025년,1040년에 아랍 상인이 100여명씩 무리를 지어 수은이나 몰약을 갖고 개경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여말선초(麗末鮮初)기인 13∼14세기 무렵. 당시 원(元)의 간섭을 받았던 고려조정에는 중앙아시아계의 무슬림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다. 이들은 고려사에 ‘회회인(回回人)’으로 기술된 투르크계의 위구르 무슬림들로 수도 개성에 이슬람 성원까지 세웠다고 한다. 조선조 세종 때엔 궁중 행사에 무슬림 대표들이 코란을 낭송하며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도 했으며, 그때 이슬람 역법이나 도자기 기술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조 유교사상으로 인해 이 땅의 이슬람은 15세기 중엽 이후 썰물처럼 빠졌다. 이후 1920년대 들어 소련치하 소수민족인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한반도에 망명해와 학교며 이슬람 성원을 건립하기도 했으나 해방과 한국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한국이슬람교 중앙회측은 보고 있다.
  • 비정한 지하철?

    비정한 지하철?

    “어쩔 수 있나, 단속하면 못하는 거지. 이제 노인네들이 굶어 죽는 수밖에 더 있나…”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지난달 2일부터 질서기동팀을 동원해 ‘무가지(무료신문) 폐지 수집인’ 집중 단속에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집인 대부분이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60∼70대 노인들로 ‘무리한 단속’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폐지 수집인들이 승객들의 몸을 밀치는 등으로 불편을 끼친다는 이용객들의 민원이 많아 단속에 나섰고, 지난달 한달 동안 폐지수집인 191명을 단속해 지하철에서 퇴거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들은 “㎏당 겨우 70원씩 받아 먹고 살겠다는 노인들을 위해 그 정도 불편도 못 참느냐.”며 무리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출근시간 3시간 동안 3500원 벌이 26일 오전 7시 4호선 열차 안에서 만난 A(71)씨는 폐지를 가득 담은 50㎏들이 가방을 메고 힘겹게 출근 인파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는 3년전 충남 서산에서 부인과 함께 서울 아들 집으로 올라 왔지만 아들이 석달전 간암으로 숨지면서 폐지 수집에 나섰다.“아들이 죽으니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서 나왔어. 출근시간 3시간 동안 모은 폐지 50㎏을 고물상에 팔면 3500원이 떨어지는데 그걸로는 밥먹기에 모자라 동네에서 폐상자도 주워야 해.” 그는 집중 단속중이라는 말에 “보던 신문을 내게 주거나 선반 위에 있는 신문을 꺼내면서 도와 주는 시민들이 더 많다.”면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같은 시각 1호선 열차 안에서 만난 B(76)씨도 쌀포대에 폐지를 가득 담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40년전 부인과 사별하고 15평짜리 지하 빌라에서 홀로 살고 있는 그는 어렵게 사는 딸들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 지난해 2월부터 폐지 수집에 나섰다.20년 넘게 해온 목공소 일도 나이 탓에 이젠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80㎏ 정도 모으면 8000원 가량 번다. 열차 안에서 포대를 놓자 40대 여성 둘이 “이런 걸 여기다 놓으면 어떡해요.”라고 핀잔을 주지만 묵묵히 폐지담기에만 집중했다.“요즘은 줍는 노인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주워야 소득이 더 커서 몸을 부대끼는 건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원 이성만(37·경기 과천시)씨는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몸을 밀치고 가는 노인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 분들이 물건을 강매하거나 돈을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서 “지하철 선반에 가득 올려져 있는 무가지가 보기 싫은데, 노인들을 단속하기 이전에 청소 대책부터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회사원 이윤희(28·여·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도 “단속팀을 동원하는 데 드는 예산으로 차라리 청소할 대책이나 더 면밀하게 꾸렸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단속이라고 해서 법적 조치를 내리는 건 아니고 단지 퇴거조치를 내리는 것일 뿐”이라면서 “차량 내부 청소에도 올 한 해 73억원의 예산을 들여 370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훈 정서린기자 nomad@seoul.co.kr
  • [깔깔깔]

    ●거지와 신사 항상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어느날 지나가던 신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제게 1만원씩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난해부터 5000원으로 줄이더니 올해엔 1000원으로 줄이셨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입니까?” “전에야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지난해 결혼을 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거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금발의 여인과 피자 한 금발의 여인이 피자 한 판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웨이터가 말했다. “여섯 조각으로 잘라 드릴까요? 아니면 열두 조각으로 잘라 드릴까요?”금발의 여인이 말하길, “여섯 조각이요, 열두 조각은 못 먹거든요.”
  • [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惠而不知爲政(혜이부지위정)

    중국 고대 정(鄭)나라의 대부(大夫) 자산(子産)은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어느 날 그는 진수와 유수를 지나다가 백성들이 걸어서 냇물을 건너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자기 수레를 빌려줘 건너게 했다. 물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산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자산은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할 줄 모른다.11월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놓고,12월에 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는 큰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군자가 정치를 공평하게 하면 길을 가면서 사람을 물리쳐도 좋을진대 어찌 사람마다 건네줄 것인가.” 농한기를 이용해 겨울에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맹자가 보기에 자산의 행위는 은혜롭기는 하지만 정치는 아니었다.요컨대 큰 정치가라면 보다 대국적인 데 착목해야 한다는 얘기다.‘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에 나오는 고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일부 정치인들이 보여준 단식정치 행태가 혜이부지위정(惠而不知爲政)이라는 옛말을 떠올리게 한다. 현 정권에서 당·정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 한·미 FTA 체결에 맞서 단식의 구태정치를 재연한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조공협상’‘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자학적 표현을 쓰는가 하면,“나를 밟고 가라.”는 순교자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마이너스 FTA’는 안된다는 모호한 수사를 남발하며 줄타기 정치를 일삼는 이도 있다. 정작 국익을 앞세워 말해야 할 때는 침묵하다가 뒤늦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치(正治)’가 아니다. 원칙 없는 널뛰기 정치요, 인기를 구걸하는 소극(笑劇)정치일 뿐이다. 대의를 헤아리지 않는 기회주의적 포퓰리즘 정치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백남준이 ‘쇼를 해라!’라고 했다면, 필자는 ‘정치를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다.jmkim@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2) 논리로 무장한 수다쟁이들

    [프렌치 리포트] (22) 논리로 무장한 수다쟁이들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몇해 전 치러진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의 철학시험 문제였다. 정말 난해한 질문이다. 그런데 아직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은 10대 후반의 학생들은 플라톤과 데카르트, 칼 마르크스와 장 자크 루소, 토머스 무어 등의 이름과 학설, 사상을 열거하며 나름대로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논술형 시험이니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이런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철학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바꿀 뿐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세상을 다르게 이해한다면 다른 태도를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직접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행동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철학은 실천적 기능을 담고 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놀랍지 않다. 프랑스의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도록 잘 짜여져 있다. 이 때문에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간 학생들은 무난하게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수다떨기 프랑스 사람들은 수다스럽다. 텔레비전의 토크쇼를 보면 출연자들이 쉴 새 없이 떠들다가 언성을 높이는 일도 많다. 목청을 돋워 남의 주장을 반박하고 자기의 주장을 펼친다.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도 다반사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다.‘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것’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들도 그렇고, 심지어 지하철에서 동전을 구걸하는 사람들까지도 논리정연하게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참 놀랍다. 독서와 교육의 효과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적 호기심이 무척 많아서인지 책읽기를 좋아한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읽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005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은 1년 동안 1인당 무려 58권의 책을 읽었다. 국민의 58%가 문화생활 가운데 독서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 다음은 교육이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설득력 있게 자기 주장을 펼치도록 교육을 받는다. 초등 5년, 중등 3년, 고등 3년제를 택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논술교육은 사실상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프랑스어 수업을 통해서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주당 27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중 10시간을 프랑스어 수업에 할애할 정도로 프랑스어 교육을 중시한다. 초등학생들은 프랑스어 시간에 읽기, 쓰기, 받아쓰기, 시, 맞춤법, 어휘, 어미변화, 말과 글을 이용한 표현능력을 중점적으로 배운다. 특이한 점은 저학년 학생들에게 유명 작가의 시나 동화 외우기를 시키는 것이다. 아폴리네르의 시, 라퐁텐의 우화를 어린이들이 무조건 외우도록 하는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격조 높은 표현법과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중학교부터 본격적 독서지도 중학교에 들어가면 무조건적인 수용에서 한 단계 나아가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고, 쓰기·말하기·표현하기를 익힌다. 중학교 프랑스어 교사들은 학생들이 그 나이에 적절한 논리력과 사고력, 표현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독서지도를 병행한다. 교사들은 학기마다 추천도서를 지정하고 학생들에게 독서노트를 제출하도록 한다. 독서노트는 작가의 특징, 작품요약,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 작가가 의도한 점, 본인의 생각 등을 적도록 돼 있다. 중학교 과정이 끝나면 브레베라고 하는 졸업자격 국가고사를 치른다. 역사, 수학, 프랑스어 등 3과목을 치르는데 이중 가장 중시되는 과목이 프랑스어다. 프랑스어 시험은 어휘·문법·이해력 테스트와 작문으로 이뤄진다. 작문시험은 자유롭게 서술하기 혹은 논하기 중 한 가지를 택하는 방식이다. 자유롭게 서술하기의 경우 제시된 예문을 읽고 ‘작가의 관점에서 이야기의 뒷부분을 전개하는 것’이 문제다. 논리적인 상황 전개력과 사고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 논하기는 ‘음악의 유용성에 대해 논하라.’는 식의 문제에 대해 서론·본론·결론의 순서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고등학교의 프랑스어 수업은 문학작품을 비교하고 비평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읽어야 할 책의 양도 많아지고 수준도 훨씬 높아진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다음 학기 동안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목록을 나눠준다. 놀지만 말고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고, 다음 학기 준비를 해 오라는 뜻이다. ●교육의 목적은 민주시민 양성 고등학교 2학년 학기말에 바칼로레아 프랑스어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10년간 계속된 프랑스어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졸업반(테르미날)이 되면 일주일에 8시간씩 철학 수업을 받는다. 철학 수업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부터 프랑스에서 다닌 박혜진씨는 “프랑스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전 과목에 걸쳐 논리력을 키우는 기초 학습이 있었고, 과정에 맞게 독서지도를 받아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철학을 접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철학은 프랑스어 수업의 완성인 셈이다. 프랑스에서 대학이나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진학하려면 바칼로레아를 통과해야 한다. 매년 6월에 치러지는 바칼로레아는 철학 과목부터 시작하는 것이 전통이다. 철학을 고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칼로레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해 주고,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자주적 판단력을 키우며, 객관적으로 사물을 고찰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 일정한 점수 이상이면 자격을 인정해 주는 ‘에그자맹’과 응시자간 경쟁을 거쳐 정원을 선발하는 ‘콩쿠르’가 있다. 브레베나 바칼로레아는 에그자맹에 해당하고, 그랑제콜이나 국립행정학교 입학시험은 콩쿠르에 해당한다. 이런 시험들과 학교에서 수시로 치르는 시험들의 필기시험이 모두 주관식인 것도 특이하다. 구두 시험의 비중도 무척 높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논리정연하게 구술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중세 소르본 대학 학사과정에서는 3학(문법학, 수사학, 논리학)을 가르쳤는데 그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가 수세기에 걸쳐, 그리고 지금도 인문학의 거성들을 수없이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구걸의 격(格)/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회사 인근 술집에서 동료들과 술 한잔 나눌 때였다. 나이가 마흔쯤 됐을 법한, 입성이 비교적 깨끗한 사내가 들어오더니 좌석을 오가며 손을 내밀었다. 평소 ‘빌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늘의 은혜’라는 말에 공감하는 터라 그 사내가 우리 좌석에 오자 1000원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사내가 “한장 더”라고 했다. 언어장애인이 아니군 하는 생각에 훑어보니 허우대도 멀쩡한 게 딱히 신체·정신적 약점은 없는 듯했다. 얄미운 생각에 손을 내저었더니 한두 마디 더 주절대다가 옆자리로 옮겨갔다. 동석한 후배들이 그의 뻔뻔함과 함께 나의 무절제한 동정심을 비판하는 바람에 방어논리를 펴느라 급급한 참에 고함소리가 술집을 울렸다.“사지 멀쩡한 젊은 놈이 늙은이에게 돈을 달래?” 몇 좌석 건너 노인 10여명이 있는 자리에서였다. 구걸한다고 해서 비굴하게 굴 이유는 없겠으나 적어도 고마워하는 마음은 가져야 하지 않겠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구걸에도 격(格)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한·미 FTA 최종협상] 숨가빴던 14개월 레이스

    [한·미 FTA 최종협상] 숨가빴던 14개월 레이스

    드디어 종착역에 도착했다.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14개월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이 최후의 절충 단계에 접어들었다. 타결이 확정되면 우리나라는 사상 최대의 FTA를 체결하게 된다. 미국도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후 14년 만에 최대의 FTA를 맺는 성과를 얻게 된다. 그러나 막판 협상에서 ‘이익 균형’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FTA체결이 우리 경제에 ‘보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농산물 시장이 폭넓게 개방됨으로써 농가를 보호하고 농업경쟁력을 높이는 대책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FTA 찬반논란 국론분열 양상 여기까지 오는 데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미국 워싱턴DC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관례를 깨고 서울이 아닌 미 의회에서 협상 개시 선언을 한 이후 늘 ‘구걸 협상’,‘졸속 협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게다가 타결후 예상되는 경제 손익 대차대조표도 적자와 흑자 사이를 오가며 국민들을 혼란시켰다. 협상 초기부터 ‘4대 선결과제´논란이 불거지면서 마지막까지 ‘퍼주기´ 비난과 반(反)FTA진영의 협상 중단 촉구 집회도 끊이지 않았다. 찬반 논란이 가열되면서 협상이 한·미 간의 실리 다툼이 아닌 우리 내부의 좌-우 국론분열 양상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두 나라는 지난해 6월5∼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한 1차 본협상을 비롯해 모두 8차례의 공식협상을 열었다. 지난 19∼21일에는 한국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고위급 협상을 갖고 일괄타결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26일부터는 마감시한내 타결을 위해 장관급까지 포함한 ‘끝장협상’에 돌입했다. 결국 쇠고기, 자동차 등 최종 쟁점 두세가지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전화상으로 막판 ‘슈퍼 빅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8차 협상 때까지만 해도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미국 협상단은 자국 기업과 찰떡궁합 호흡을 이룬 한 수 위의 협상 기술로 우리측 협상단을 곤욕스럽게 했다. 농업 등 ‘쟁취 분야’에서는 우리측 협상단의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하게 만들 정도로 강공을 퍼부으며 야금야금 실익을 챙겼다. 자동차, 섬유 등 ‘방어 분야’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식 의제가 아닌 ‘뼈있는 쇠고기’ 검역 문제를 교묘하게 물고 늘어지며 협상테이블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쌀 문제는 직접 언급을 하지 않고도 언제든 빼 쓸 수 있는 ‘비상 카드’로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車·쇠고기 평행선 한때 결렬위기 반면 우리측 협상력은 상대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초기 의료·교육시장 분야 등에서 오판도 적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대외비 문서유출 사건으로 전략이 노출돼 협상력에 큰 흠집이 나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쟁취 목표’로 장담했던 무역구제, 자동차, 섬유, 개성공단 등 문제에서도 기대에 못 미친 결과가 나오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협상 중단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논란 3題] 한나라“비선통해 정상회담 구걸”

    한나라당은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비선(秘線)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의혹이 일자 국정조사까지 검토하는 등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핵이 폐기되기 전에 밀사를 보내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는 구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면서 “안희정씨는 직책이 없는 민간인 신분인데, 이런 사람을 통해 국가 중대사를 추진하는 것은 ‘가족정치’,‘동네정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영세 최고위원은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결과 보고서를 보면 이 전 총리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2005년 4월)자카르타 회동 이후 남북고위급회담을 하기로 했고, 김 위원장은 빠른 시일 내에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적혀 있다.”면서 “결국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최종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의 사설 측근이 밀실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것은 정상회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을 노골화한 것”이라면서 “현 정부가 정상회담에만 ‘올인’하는 것은 북핵폐기 노력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안씨의 북측인사 접촉은 남북관계발전기본법과 남북교류협력법 등 실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면서 “해당 상임위에서 불법성 여부를 철저히 따지는 것은 물론 필요시 국정조사 여부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화가 남궁문의 자전거 하이킹] (3·마지막날) 거제 해금강

    [화가 남궁문의 자전거 하이킹] (3·마지막날) 거제 해금강

    ‘남도’는 어쩌면 우리 고향의 대명사가 된 듯합니다. 겨울이면 따뜻하고 봄소식을 먼저 전해주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우리나라 남해안의 섬은 다른 곳과 달리 바다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연출합니다. 또한 여기저기 흩어져 연결되는 섬마다 사연도 많아 일년내내 찾아도 그 느낌이 각각 다르지요. 그래서 2월1일자 ‘We 151호’부터 3회에 걸쳐 남해도~창선(삼천포)~거제도를 잇는 자전거 여행기를 게재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그 마지막회로 거제도편을 다뤘습니다. ‘거제도’하면 제주도 다음의 큰 섬으로 바다의 금강이라는 ‘해금강’과 ‘외도’가 대표적으로 생각납니다. 많은 분들이 다녀보셨겠지만 길이 380여㎞에 달하는 해안선은 크고 작은 곶과 섬으로 구성되어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경관을 연출하지요. 섬 주위에는 크고 작은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가 있어 각종 어류의 서식처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곳곳에 몽돌해변과 구조라해수욕장 등이 있어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지요. 아울러 열대식물인 풍란·팔손이·동백나무 등이 자라며 맹종죽순, 멸치, 유자청, 표고 등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래서 동백축제, 해변축제, 고로쇠약수제, 옥포대첩 기념제전 등 계절별로 갖가지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제포로수용소는 6·25전쟁의 아픔을 생생하게 간직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해마다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견학오는 곳이지요. 필자 남궁문은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여행기를 펴내는 등 ‘특별한 여행’을 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2년 전부터 달랑 자전거 하나에 의지한 채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체험하며 우리 국토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울러 필자는 아름다운 낭만도 낭만이지만 가는 곳마다 산업화의 개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간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 자전거를 타고 거제도로 떠나볼까요. <편집자 주> 평소 덜렁대는 성격으로 급기야 통영의 찜질방을 나오면서도 웃지 못할 촌극을 빚고 말았다. 어젯밤 찜질방에서 자전거 여행 중에도 늘 메고 다니는 손가방을 넣어두었던 사물함의 열쇠를 그만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 손가방에는 디지털카메라와 수첩, 지도, 현금 등 이번 여행의 중요한 소지품들이 거의 다 들어 있었다. 그래서 팔목에 차고 자기까지 했던 것인데 나오면서 보니 열쇠가 보이지 않았던 것.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우선 카운터에 가서 아직 내 물건이 무사한지를 묻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 통영 찜질방서 웃지못할 촌극 다행히 아직 사물함 자체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열쇠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으로 1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돈도 카운터에서 내 이름과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물어본 뒤, 찜질방 자체 보관용 열쇠로 가방을 꺼내고 나서야 지불할 수 있었다. “여기에 연락처와 은행계좌번호를 적으세요. 그래야 혹시 나중에 열쇠를 찾게 되면 돈을 보내드릴 수 있거든예.” 별일 아니라는 듯한 카운터 아가씨의 말에 나는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었다. 이때 “저 아저씨! 혹시 모르니, 팔목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라고 아가씨가 말한다. 그러면서 “흔히들 팔목에 차고 있으면서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예.” 하는 것이었다.“그래요?” 하면서 반사적으로 왼쪽 팔목을 만져봤다. 그 순간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어? 여기에 있네.” 나는 파카의 팔목을 걷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열쇠를 빼냈다.“아, 내가 이래요.” 하고 겸연쩍게 말을 했다.“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어예.” 하면서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 아가씨는 다시 1만원짜리 지폐를 돌려준다.“아무튼 고맙습니다.”라고 인사까지 하고 찜질방을 나왔다. 사실, 그 돈 1만원이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이번 자전거 여행을 떠나오다가 내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급작스럽게 한 친구의 새 카메라를 빌려 왔기 때문에 그게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특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뭔가 한 가지라도 ‘깜빡’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이번 남도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다. 하지만 시간을 따져 보니 거제도 전 구간을 자전거로 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통영에서 거제도 북부 지역은 자전거를 접어(내 자전거는 반절로 접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산업화된 도심 변화에 새삼 놀라 통영을 출발해 거제대교를 거쳐 버스로 달리다 보니 예상했던 대로 그 지역은 주거지가 상당히 밀집해 있었고 차량의 통행도 어찌나 많은지 자전거로 가야 할 의미가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섬에 불과한데도 이렇게 도심이 발달하고 또 번화한 모습에 새삼 놀랐다. 특히 ‘고현’ 시가지를 지날 때는 더욱 그랬다. 학교때 지리교육을 잘 받았음에도 생소한 지명이 많았다. 어쨌든 번창하고 현대화된 도시가 거제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조선소가 눈에 띄면서는 그 규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승포에도 역시 다른 조선소가 떡 버티고 있어서 ‘이게 섬인가’ 할 정도로 도시화와 산업화의 위력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그런저런 생각에 버스는 어느덧 장승포에 닿았고 짐칸에서 자전거를 꺼내 내렸다. 그리고 바로 자전거를 조립한 뒤 무조건 남쪽으로 난 도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 일정이 빠듯해서 서둘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직 태양은 있었지만 바람은 차갑게 다가왔다. 날씨는 맑은 것 같은데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선명한 수평선은 남해안의 다른 곳에 비해 길고 널따랗게 보였다. 그렇게 감상하고 느끼며 얼마동안 달렸다. 문득 ‘대마도가 보이는 집’이란 안내문이 보였다. 바다쪽을 유심히 바라보니 수평선 언저리에 뭔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나지막한 섬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언뜻 보기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바로 조선 세종 때 김종서 장군이 정벌했던 대마도였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서히 페달을 밟으니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반갑지만은 않았다. 내려가다 보면 또 다시 오르막길이 나올 터이니 말이다. 그만큼 나는 이제 이런 굴곡이 심한 길에 익숙해져 있고 또 자전거로 달리는 힘든 여정에 지쳐 있었다. 이 부근을 지나오면서 보니 ‘외도 행 유람선’에 대한 문구가 눈에 많이 띄었다. 저기 보이는 섬이 바로 ‘외도(外島)’인가.TV에서 특집으로도 다뤘고, 또 드라마에도 가끔 나와 유명세를 타는 곳. 온갖 아열대 식물들을 심어놓아서 더욱 이국적이라는 곳. 게다가 거기에 있다는 하얀집은 스페인 풍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별로 관심이 없어진다. 너무나 인위적인 것 같아서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의 풍광 한가운데에 왜 생뚱맞게 외국색이 물씬 풍기는 섬으로 꾸며 놓았는지…. 다시 산모퉁이를 오르는데 중턱쯤에는 한 군부대가 있었다. 입구에는 두 명의 초병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웬 이상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낑낑대며 가파른 오르막길인 자기들 초소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굳이 나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으려는 듯 직설적인 표현과 표정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웃음을 참으려는 그들의 표정에서 그런 걸 더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한번 ‘씩’하고 웃어줬다.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건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뭐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바로 고개를 숙여 더 이상 그들을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별 관심도 없었다. 이렇게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니 그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 군초소를 지나다보니 왠 ‘짬밥´ 생각 군 초소를 지나 10여m를 오르는데 갑자기 군대 ‘잔반(짬밥)’ 냄새를 맡았고, 순간 그 밥이 먹고 싶었다. 특유의 냄새에 멀뚱멀뚱하던 국, 세 가지 반찬이라고 해봤자 겨우 간을 맞춘 정도의 일식삼찬이다. 가능하다면 저 부대에 들어가 잔반 한 그릇을 얻어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우스워졌다. 뭐, 먹을 게 없어서(내 가방 안에도 먹을 건 있었다.) 군대 잔반이 그리워지면서 먹고 싶어진단 말인가. 하기야, 요즘엔 군대 부식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다 드는 걸로 보면 아무래도 배가 고픈가 보다. 산모퉁이에 앉아 가방 안에 준비해두었던 먹거리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간식을 먹는 사이에 따사롭던 해가 사라졌다. 분위기가 조금 을씨년스러워졌다. 아무래도 나그네에겐 해가 있는 게 좋다. 구름이 끼면 겨울여행이라 추워져 마음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시 모퉁이를 돌았더니 또 하나의 움푹 파인 만(灣)이 나왔다. 여기는 만 하나를 도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도록 깊게 파여 있었다. 잠시후 ‘몽돌해수욕장’이 있는 ‘학동’ 마을을 지났다. 저쪽에서 아가씨들 네 명이 까르르 웃어가며 뭘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어묵이었다. 순간 입에서 침이 생겨났다. 따끈한 국물이 그리웠다. 그렇잖아도 내리막길에서 땀이 식어, 몸이 으슬으슬 추워오던 때였으니까. 자전거를 멈추고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꼬치 하나에 500원, 두 개를 먹는데 사실 별 맛은 없었다. 그 것보다는 따끈한 국물에 더 끌렸던 나는 두 종지를 떠 천천히 마셨다. 그걸 파는 여자가 무슨 일인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가 겨우 천원어치만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여행 끝의 꾀죄죄한 행색이어서 그런가. 어쨌거나 손님이고 내가 구걸하면서 얻어먹은 것도 아닌데…. 다시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러다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마을을 벗어나니 개발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바다를 낀 길 양쪽으론 동백 숲이 펼쳐지고 있었다. # 전망대서본 해안 너무나 아름다워 이제는 해금강이었다. 사실 거제도는 처음 오는 곳이라 내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경관이 수려했다. 비록 북부는 산업화로 도시화되었다지만, 남쪽은 적어도 이렇게는 지켜져야 할 것이었다. 처음엔 해금강을 지나며 반도(섬의 동남부 와룡반도와 운곶반도 사이의 도장포만 일대에는 굴곡된 해안선을 따라 기암절벽과 해식으로 이뤄진 해금강이 있다.)에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오후로 접어든 지 한참 지난 상태인 데다 시간이 빠듯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언제 다시 여기에 오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듯 싶었다. 게다가 그리 긴 거리가 아닌 것 같으니 한번 들어갔다 나오자며 불룩 튀어나온 반도로 자전거를 꺾어보았던 것이다. 아름다웠다. 비록 하늘이 구름에 덮여 조금 음산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경치의 아름다움은 어디 가겠는가. 여기가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지나는 가장 아름다운 경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별 특징도 없는 곳을 달리느라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조금이나마 더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이르자 전망대에서 한 시간여를 머물렀다. 내리막길을 휘 돌아 다시 한 만을 크게 돌았더니 마을이 나타났고 마지막 한 고비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겨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 길을 타고 오르면, 어차피 이번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다시 ‘고현’쪽을 향해 버스를 타고 갔다가 내일은 또 ‘통영’에서 출발을 해야 할 것이었다. 지금 막 내리막길을 내려왔으니 저 오르막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내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하기야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으니 이제 다시 올라가야겠지.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데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artistdiary@hanmail.net # 거제도 가는 길 1)대전-통영간고속도로→통영IC→14번국도→거제대교, 2)남해고속도로서 마산IC(14번국도)→고성→통영→거제대교,3)남해고속도로 사천IC(3번 국도)→사천읍(33번 국도)→고성(14번 국도)→ 통영→ 거제대교→ 거제도. # 주변 볼 만한 곳 ●해금강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해금강마을 남쪽 약 500m 해상에 위치한다. 원래 이름은 갈도(칡섬)로서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 해발 116m 약 0.1㎢ 의 이 섬은 중국의 진시황제의 불로장생초를 구하는 서불이 동남동녀 3000명과 함께 찾았다는 얘기가 있다. 썰물 때 십자동굴, 사자바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신선대 도장포 마을 우측에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 옆 오솔길로 내려가면 신선대가 나온다. 신선대는 바닷가에 큰 바위가 자리를 틀어잡고 있는 형상인데 그 주변의 해안경관과 더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여차몽돌 거제시 남부면 여차리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진 산지에 위치한 이 마을은 곳곳이 기암절벽으로 거제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가라산 높이 585m. 경상남도 남단 거제시의 최고봉으로 주봉은 가래봉이다. 산길에 서면 해안선이 가장 긴 한국 제2의 섬 거제도와 주변의 여러 섬은 물론 북쪽으로 진해·마산시, 서쪽으로 통영시를 마주하고, 남·동쪽으로 남해를 굽어볼 수 있다. 갠 날은 대마도가 가물거릴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명사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명은 밝을 ‘명’과 모래 ‘사’로서 모래의 질이 좋고 물이 맑다고 해서 유래됐다. 사장의 길이는 약 500m이며 면적은 약 9000㎢에 이른다. 이 해수욕장은 아름다운 모래사장뿐만 아니라 오솔길과 모래사장 뒤편의 울창한 송림으로도 유명하다. ●구천계곡 군립공원, 외도, 소매물도(등대) 등 볼만 한 곳이 많다. 문의 거제시청 관광진흥과 055-639-3198.
  • ‘불량 노숙인’ 오죽했으면…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대합실 일부가 심야시간대에 폐쇄된다. 한국철도공사 부산지사는 23일 최근 ‘불량 노숙인’들이 야간에 대합실을 점령해 음주소란, 고성 방가, 구걸 행위등을 일삼아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1층과 3층 대합실 일부를 오는 28일부터 폐쇄 조치한다고 밝혔다. 폐쇄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5시간 동안이다. 철도공사측은 지난해 절도·폭력·기물파손 등 노숙인들이 일으킨 형사사건이 41건, 역사 내 소란 흡연 등 행정사건이 1600여건에 달해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부산역 노숙인 수는 남성 200여 명, 여성 10여명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철도공사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7월1일 ‘노숙인 없는 부산역’을 선포할 계획이며 부산 동부경찰서의 협조를 통해 노숙인들의 범법행위를 강력단속해 나갈 방침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대합실이 폐쇄되더라도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1번 매표창구는 상시 개방한다.”며 “부산역을 쾌적하게 만들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讀書亡羊(독서망양)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들의 사무실을 두드리는 대학 교수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권력에 줄을 대보려는 ‘정치교수’,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제철을 만난 것이다. 이쪽저쪽 캠프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권력을 구걸하는 ‘양다리형’도 적지 않다고 하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천박한 행태가 독서망양(讀書亡羊)이라는 옛 말을 떠올리게 한다. 옛날 중국에 장(臧)과 곡(穀)이라는 사람이 양을 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두 사람 모두 양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이 장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다 양을 잃어버렸습니까?” “댓가지를 끼고 책을 읽고 있었지요.” 이번엔 곡에게 물었다.“그러면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나요?”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했든 본업을 태만히 해 귀중한 양을 잃어버린 것은 같다. ‘장자-외편(外篇) 변무(拇)’에 나오는 이야기다. 독서망양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본래의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교수가 본업인 연구와 강의보다 권력게임에 더 관심이 많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일찍이 공자도 ‘천하유도즉현(天下有道見) 무도즉은(無道隱)’이라고 했다.‘논어’ 태백편(泰伯篇)에 있는 말로,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 벼슬을 하고 도가 없으면 은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식인의 현실참여에 대한 준거로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여기는 교수라면, 정치판을 기웃거리기 전에 장자와 공자의 말씀쯤은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jmkim@seoul.co.kr
  • [노대통령 신년 특별연설] “한미FTA는 먹고사는 문제…수용해야”

    1 “민생파탄·위기” 공격은 적반하장 민생이라는 말은 저에게는 송곳이다.4년 동안 저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참으로 면목이 서지 않는다. 송구스럽다.‘민생파탄’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민생의 어려움이 오로지 참여정부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장도 너무 지나친 과장이다.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히 하고 싶다. 민생문제를 만든 책임은 없다. 문민정부의 시절에 생긴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국민이 책임을 묻는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스스로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 ‘민생파탄’이라는 말까지 동원해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데는 승복할 수 없다. 적반하장, 후안무치라고 대답하고 싶다. 2 FTA 농업문제 특단의 대책 마련 양극화 현상은 해소되어야 한다. 경제만 좋아진다고 민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어야 민생이 해결된다.‘함께 가는 경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책이 동원돼야 한다. 진보세력이 앞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주도적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대세를 수용해야 한다. 초기에 FTA와 관련, 여러 비판론이 무성했지만 결국 지금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FTA문제는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이다. 농업 문제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놓았고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갈 것이다. 중요하다. 단번에 잡지 못해서 죄송하다. 혼란을 드려서 죄송하다. 더 이상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얻기는 불가능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보유세, 거래가격의 공시제도는 가장 오랫동안 주장되어 온 정석적인 정책, 강력한 수단이다.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3 수도권 2010년까지 年 36만호 공급 올해부터 2010년까지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연평균 36만호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다. 민간 부문의 위축에 대비해 공공부문의 공급정책을 준비중이다. 곧 발표할 것이다. 한 번에 잡지 못한 이유는 반대와 흔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만한 정책이었는데 일부 부동산 언론은 효과없을 것이라고 흔들고, 야당은 장차 제도를 뒤집을 듯이 흔들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오르고 다시 강력한 정책을 채택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흔들어서 더 강력한 정책이 만들어진 셈이니 부동산 신문으로서는 결과적으로는 자승자박이 됐다. 4 남북정상회담 왈가왈부 옳지않아 남북정상회담은 6자회담이 어떤 결론이 나기 전에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다. 저의 입장이다. 그러나 문은 항상 열어놓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어느 당에 유리하고 불리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2000년 총선에서 입증됐다. 아무 교섭도 실체도 없는 정상회담을 가지고 ‘구걸하지 말라. 정상회담을 하면 안 된다.’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리당략을 위한 소모적인 정치공세일 뿐이다. 한·미관계는 일방적인 의존관계를 상호관계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남의 나라 군대를 최전방에 배치해놓고 ‘인계철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주국가의 자세도 아니고 우방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현실의 의존보다 심리적 의존이 더 큰 문제이다. 주도적인 작전통제권은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이다. 평시작전 통제권은 돌려받았다고 하나 실제 내용을 보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5 평시 작통권은 껍데기 불과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다. 통일은 그 다음이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이다. 평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이다. 화해와 협력, 공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신뢰와 포용이다. 대결주의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물론 군사적인 대비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적절한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포용정책이다. 6 대북정책 핵심은 한반도 평화·안전 정치에서 국민의 불신과 적대감을 모으는 것만큼 수지 맞는 수단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치인은 성공하더라도 나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남북관계에서는 결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북 퍼주기, 친북정권 이런 말은 결코 이성적인 비판이 아니다. 되도록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안보를 위해 노력했다. 안보를 내세워 국민들을 겁주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독재시대의 나쁜 버릇이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갑부의 외동딸이 도둑으로 곤두박질친 사연

    수십억원대 갑부의 외동딸이 ‘양경장수’로 전락한 까닭은? 중국 대륙에 수십억대의 갑부 외동딸이 양상군자로 돌변(?)하는 바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황당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貴州)성 구이저우(貴州)시에 살고 있는 리멍(李萌·가명·17)양.강철 주물공장을 경영하는 수십억원대 재산가의 외동 딸인 그녀는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돈 아까운줄 모르고 살아왔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풍족한 편이다. 그런 리양이 지난해 10월 남자친구와 여행을 다니는 등 신나게 놀다가 행탁에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두차례에 걸쳐 남의 물건을 후무리다가 그만 덜미를 잡혀 영어(囹圄)생활을 하게 됐다고 화상신보(華商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가오신(高新)구 공안분국 형경(刑警)대대에 따르면 리양은 지난해 10월 한 대학 영빈관에 몰래 들어가 현금 2000위안(약 24만원)과 MP3를 훔친데 이어,1주일 뒤인 21일 모 대학 예술학과 여학생 휴대전화를 후무린 혐의를 받고 있다. 형경대대 조사 결과 그녀의 아버지는 구이저우성 구이저우시에서 수천만위안(수십억원)을 투자한 강철 주물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지방 갑부였다.리양의 아버지는 사업에 너무 바빠 외동딸이지만 관심은 소홀했다. 그녀가 절도범으로 급전직하할 조짐은 1년 전인 지난해 초부터 서서히 나타났다.리양은 당시 컴퓨터 채팅을 통해 ‘꽃미남’의 한 남학생을 사귀게 됐다.이들 사는 곳이 너무 멀어 만나지는 못하지만 매일 채팅만으로도 사랑은 새록새록 깊어졌다. 지난해 9월 어느날,리양은 아버지와 대판거리로 말다툼을 벌였다.그녀의 아버지는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이 채팅이나 하고 거리를 쏘다닌다고 꾸중했기 때문이다.화가난 그녀는 무작정 집을 뛰쳐 나갔다.가출을 한 것이다. 그때 리양은 6800위안(81만 6000원)이 든 아버지가 준 저금통장을 가지고 있었다.곧바로 남자친구가 있는 랴오닝성 진저우로 날아간 그녀는 남친을 만나 상하이(上海)·항저우(杭州) 등 관광을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이 바닥을 드러냈다.남친은 집으로 돌아가고 무일푼이 된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을 만들 방법이 없었다.구걸도 해봤으나 익숙하지 않은 탓에 하루 밥 먹기가 너무너무 어려웠다. 이에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양경장수가 되는 길 밖에 없었다.10월 13일 현금 2000위안과 MP3를 훔치는데 성공한 그녀는 여학생 휴대전화를 훔치는 등 두차례에 걸쳐 ‘사건’을 쳤다. 하지만 그 이상은 성공하지 못했다.현금과 MP3를 잃어버린 모 대학 영빈관 관계자가 도난 신고를 함으로써 공안당국의 수사망에 올라 끝내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리양은 형경대대 조사에서 “나의 한달 용돈은 보통 사람들의 1년 쓰는 돈과 맞먹는다.”며 “당신들 벤츠를 몰아본 적이 있느냐.”는 등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여 공안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길섶에서] 노숙과 자존심/이목희 논설위원

    서울 목동에 있는 한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 노숙자를 위로합니다.150∼200명의 노숙자들에게 1000원씩 나눠주는 날이 있고,2000원씩 주는 날이 있습니다. 씻기 어려운 노숙생활의 특성상 그들이 오면 교회 안은 묘한 냄새로 가득 찹니다. 언젠가는 너무 지저분한 행색의 노숙자가 왔습니다. 보다 못한 교인이 화장실로 데려가 억지로 씻겼지요. 그러곤 깨끗한 담요를 뒤집어 씌워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면 난장판이 되리란 편견을 버리세요. 얼마나 질서를 잘 지키는지. 오는 순서대로 가방을 놓고 돈을 나눠주는 시간까지 기다립니다. 나누는 대화 수준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합니다. 영어 문장을 적어 교인에게 보여주는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들어 보니 나름의 준칙이 있더군요. 추한 짓은 하지 않는다, 구걸은 하지 않는다…. 자존심의 마지노선인가 봅니다.‘게으르고 무식한 노숙자’‘자발적 노숙자’가 일반론이 될 수 있을까요. 새해에는 사회가 그들의 자존심을 조금만 살려줘도 노숙자가 확 줄 듯싶은데.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아! 어머니”

    “아! 어머니”

    하이응우옌은 지난 9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녀의 손에는 600달러와 아들이 LA 인근 샌타애나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봉투, 빛바랜 아들의 옛 사진 1장이 쥐어져 있었다. 남편이 공산당에 살해되자 하이응우옌은 “너는 살아야 한다.”며 16살 된 맏아들 투안을 밀항선에 태웠다. 배가 난파되면서 말레이시아까지 쫓겨간 투안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미국에 정착했다. 아들은 4년 전 시계 수리공으로 일한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낸 후 연락이 끊겼다. 그녀는 2001년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2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자 수술과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삶이 연장될수록 잃어버린 아들을 찾겠다는 소망은 커져갔다.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 온 그녀는 아들의 옛 주소지부터 찾았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그녀는 매일 수㎞ 이상을 걸었다. 유일하게 아는 영어인 ‘소리(sorry)’를 외치며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전단도 뿌렸다. 오래지 않아 여행 경비도 떨어졌다. 그러나 아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얘기는 베트남인들이 모여 사는 LA 웨스트민스터의 ‘리틀 사이공’에 알려졌다. 지역 라디오에도 사연이 방송됐다.1000달러의 성금이 모아졌다. 웨스트민스터 경찰은 투안이 강도를 저질러 수감된 뒤 석방됐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어머니에게 ‘잘 지낸다.’는 편지만 보낸 것이다.LA를 헤매던 그녀에게 마침내 샌프란시스코 인근 새너제이에서 아들을 봤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하이응우옌은 새너제이 거리의 노숙자들을 뒤졌다. 지난달 19일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식당에서 구걸을 하던 한 노숙자를 찾아냈다. 바로 아들이었다. 하이응우옌이 껴안으려는 순간 아들은 “왜 노숙자를 안으려고 하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투안은 초점이 흐린 눈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의 주머니에는 단돈 69센트가 들어 있었다. 하이응우옌은 현재 아들과 새너제이의 한 베트남 사원에 머물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아들을 병약한 어머니는 정성을 들여 돌보고 있다. 하이응우옌은 비자가 만료되는 내년 1월 전에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에 돌아갈 계획이다. 정신이 혼미한 투안은 그녀를 처음에는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녀의 눈엔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투안과 생활한 지 5일이 지난 날 하이응우옌은 지난 20년 동안 간절하게 원했던 목소리를 들었다.“어머니”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불청객’ 핼러윈

    ‘불청객’ 핼러윈

    ‘핼러윈 데이는 피곤해.’ 미국인들의 독특한 명절(?) 핼러윈 데이가 갈수록 세계인들에게 ‘불청객’이 되고 있다. 아이들의 구걸 행위가 도를 넘은데다 너무나 상업적으로 변질돼 반미(反美) 감정과 겹쳐 거부감마저 일고 있다. 지난 31일(현지시간) 핼러윈 데이도 온갖 소란을 일으켰다. ●귀찮은 핼러윈…‘집에 없는 척’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에서 핼러윈 데이는 연간 2억 2800만달러 시장으로 성장했다.5년 전의 10배 규모다.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베리’는 올해 45만개의 호박과 4만개의 호박등을 팔아 치웠다. 잘린 손가락 모양의 쿠키나 귀신옷 등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기성세대에겐 이런 ‘무례하고 천박한’ 문화가 충격이다. 힐러리 보이드(57)는 “미국화된 아이들이 사탕을 조르며 노래 부르고 아양 떠는데 가관”이라고 혀를 찼다. 해골 복장을 하고 “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야.(Trick or treat)”를 외치는 아이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한 보험회사의 여론조사에서 집주인의 58%가 핼러윈 데이 때 뒷방으로 숨거나 불을 꺼 사람이 없는 것처럼 위장한다고 밝혔다. 사탕이나 과자를 주지 않으면 진짜 울타리를 부수거나 낙서하고 심지어 밀가루나 달걀을 던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안티 핼러윈 포스터를 붙이고 순찰을 돌지만 소용 없다. 한 주부 사이트에선 호박 수프 끓이기가 아니라 어떻게 핼러윈을 추방할 것인가가 주제였다.“초인종 덮개를 없애 감전사시킬까 생각했다.”는 섬뜩한 댓글도 올라와 있다. 영국 전통의 핼러윈 풍습인 횃불 축제(11월5일)가 밀려난 데 대한 원망도 있다. 글래스고 칼레도니안 대학의 휴 오도널 교수는 “이제 핼러윈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단지 재미만 남았다.”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치유하는 고대 켈틱문화는 거기에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동안 핼러윈 열풍이 불었던 프랑스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들린다.‘너무나 미국적인’ 문화에 대한 반감이 싹트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핼러윈 매출도 2002년 이후 계속 감소 추세다. 한 업자는 “열기가 시들해진 것은 반미 감정이 높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배척이 심한데다 밸런타인 데이와 함께 대표적 ‘앵글로 색슨’ 수입품이란 지적이다. ●성범죄자 단속하랴 경찰도 골머리 핼러윈에는 경찰도 비상이다. 어린이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다 성범죄자의 집까지 제발로 찾아갈 수 있어서다. 그래서 미국 대부분의 주정부는 아동성범죄 전과자들에게 가택연금 명령을 내렸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불을 꺼서 빈집인 것처럼 위장하라는 지침과 함께. 일부 주는 이들 전과자가 핼러윈 축제에 가거나 만화영화 주인공 등으로 분장하는 것을 금한다. 조지아주는 아예 성범죄자들이 경찰서에 와 있으라고 요구했다. 독일에선 핼러윈 데이 전날 고속도로 위로 2t 가량의 ‘돼지머리’가 쏟아져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트럭 운전사의 실수로 밝혀졌지만 한때 ‘누군가의 저주’라는 공포가 엄습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5)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시아

    (5)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시아

    세계 최빈국이라는 에티오피아에 와서 이런저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한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됐지만 무조건 헬로우, 하고 뛰어와 손만 잡고 그냥 도망치는 어린 꼬마들에게는 이제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헤이, 차이나, 하고 누군가가 부르면 손을 내밀 준비를 한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도로를 까는 일을 거의 중국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든 시골이든 현지인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무조건 차이나, 라고 부른다. 챙이 있는 모자에 커다랗게 태극기를 달고 다녀도, 그리고 그 태극기 아래에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KOREA라고 박아 넣었는데도 그냥 차이나, 라고 부른다. 돌아보던 말던 그냥 일단 불러놓고 본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한국인은 약 150여 명, 일본인은 약 130여 명 정도가 체류하고 있고 중국인은 수천을 헤아리고 있다. 직접 만난 중국인은 약 7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기관 사람들에 의하면 그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워낙 많이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 문화가 곧 아시아 문화로 둔갑을 해서 한국인도, 일본인도, 중국 사람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적어도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중국이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질 낮은 중국산 제품이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온 물건들은 중소기업 제품도 명품 취급을 받는다. 도로를 깔아도 금방 갈라지고 패는 통에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중국이 가지는 가격경쟁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도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중국인들이 도로 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로는 유일하게 경남기업이 에티오피아에 와서 지방도로를 공사 중인데, 역시나 명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암하라족들의 주거주지인 바하르다르(Bahar Dahr)라는 곳이 있다. 에티오피아 최대 담수호로 면적이 3,000㎢나 되는 타나 호수와 나일강의 원류인 블루 나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머라위(Merawi)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이외의 장소에서는 배추를 구경할 수가 없다는데 이곳 머라위에 가면 중국인들이 농사지은 배추를 구경할 수 있다. 먹는 게 안 맞는다고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직접 농사를 짓는 중국 사람들이다. 일본은 체류 인구수는 한국에 밀리지만 머무는 장소 수에서는 한국을 압도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아디스아바바와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우리나라 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의 모델인 일본국제청년협력대(JICA, 자이카)의 자원봉사자들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견이 되어 그들의 기술과 문화를 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하르다르에서 만난 코이카 봉사단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안전을 이유로 현재 대도시 위주로 파견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머라위에 갔을 때, 그 시골 구석에서 자이카 봉사단원을 만나 좀 놀랐다. 한국은 아프리카 4~5개국에 봉사 단원을 파견하고 있는데 일본은 현재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 자이카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메켈레에서 만난 일본 자이카 시니어 봉사단원에 따르면 현재 약 600여 명의 자이카 봉사단원이 아프리카 곳곳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파견 기간이 2년이니까 임기 후에 이들은 파견 지역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동네에 파렌지(현지어로 ‘외국인’을 의미)가 나타나면 현지인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를 한다.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머무는 곳에 자기가 먹을 농작물을 재배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보다도 지구촌 곳곳에 일본 문화의 메신저가 될 ‘사람’을 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참 부러웠다. 6,7년째 벼룩과 빈대 천국인 이 곳에서 아프리카 전체도 아니고 에티오피아에 있는 그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연구자들을 만났을 때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미국이 몇 개의 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아도 아프리카 대륙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지 않는가.       <윤오순>
  • “채찍 가해야 할때 당근 줘선 안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19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약체 대표’라는 의심을 털어내려는 듯 ‘강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북핵실험이란 비상사태를 맞아 강한 리더십을 내보이겠다는 의지를 읽게 해준다. 골프금지령 등 군기잡기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에겐 당내 대선 경쟁을 분열없이 이끌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지금 만나면 지극히 적절하지 못하다. 상대방이 핵이라는 엄청난 무기로 위협하는데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말려드는 것이다. ▶대북 지원 중단에는 인도적 지원도 포함되나. 대북 제재 방법론에서 당내 이견도 있는데. -북한에 현금 들어가는 일체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도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 채찍을 가해야 할 시점에 당근, 설탕을 줘선 안 된다. 어제 김대중(DJ) 전 대통령 연설을 들었다. 무력 제재는 안 된다는 말씀은 저와 의견이 같다. 그러나 경제 제재해도 효과 없을 것이므로, 남북간 대화가 우선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DJ는 기회를 한번 더 주자고 하셨다. 저는 반대다. 많은 기회를 주고 많은 물자를 주고 했다. 북한은 핵무기로 대답했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도입 주장에 대해.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는 돈 많이 모금하는 사람이 이겨가는 과정이다. 미국에서 위헌 판결났다. 열린우리당 주장은 판을 흔들자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고건 프라이머리라고 생각한다. 고건씨나 정운찬씨 등에게 구걸을 하더라도 담요나 멍석을 깔아놓고 몸부림하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 국지전 감수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취지가 많이 와전됐다. 자꾸 양보하고 질질 끌려다니면 만만하게 보고 진짜 국지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가 사고칠까봐 자꾸 부모가 머리 쓰다듬고, 잘못한 것을 잘했다고 안아주면 계속 사고친다. ▶정기국회 이후 정계 개편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정계개편은 없어져야 할 정치다. 지금까지 한 일로 평가받을 엄두도 못내는 당이 판을 흔드는 것이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깔깔깔]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고양이가 처절한 레이스를 벌이다 그만 쥐를 놓쳐 버렸다.아슬아슬한 찰나에 쥐구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쥐구멍 앞에 쪼그려 앉은 고양이가 갑자기 멍 멍 하고 짖어 댄다. “뭐야 이거 바뀌었나.” 쥐가 궁금하여 머리를 밖으로 내미는 순간 그만 고양이 발톱에 걸려들고 말았는데 의기양양 쥐를 물고가며 고양이 하는 말,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 살려면 적어도 2개국어는 해야지.”●본업 거지:“실은 저는 작가입니다. 전에 ‘돈을 버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썼지요.” 행인:“그런데 왜 구걸하러 다니는 거죠?” 거지:“이것도 그 100가지 방법 중 하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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