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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냥 거절당한 청년 훨훨벗고 알몸 데모

    광주(光州)경찰은 25일 김(金)모씨(24)를 공중소란혐의로 즉결에 회부. 김씨는 24일 하오 3시께 광주시내 충장(忠壯)로를 순회하며 구걸을 하다가 A상가에 이르러 동냥을 요구했는데 주인이『멀쩡한 젊은이가 일해서 벌어먹고 살라』 고 하자 느닷없이 훨훨 옷을 벗어붙여 나체로「데모」했다는 것. -빌어먹기 좋을 성미. <광주> [선데이서울 72년 3월 12일호 제5권 11호 통권 제 179호]
  • 아빠는 왜 노숙자만 보면 외면할까

    아빠는 왜 노숙자만 보면 외면할까

    프랑스에도 또다른 ‘완득이’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완득이와 한국의 ‘도완득’은 사뭇 다르다. 산꼭대기 동네에 살며 지지리 공부도 못하고 걸핏하면 싸움박질에다 아버지건, 선생님이건, 여자친구건 좌충우돌 들이받는 유쾌한 사고뭉치 ‘완득이(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와는 달리, 프랑스의 소녀는 말수가 거의 없이 자신을 ‘프티 부르주아’라고 부르는 과도한 성숙함과 함께 소외된 자에 대한 애정으로 그들과 공감할 줄 아는 섬세한 감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둘은 깊은 공통점이 있다. 뭔가 조금씩 결여된 자신의 삶은 물론, 그러한 소외를 낳게 해준 불가항력적인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기꺼이 진한 연민과 애정을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간직하며 얘기를 풀어나가는 이들이다. 완득이가 소외와 빈곤·폭력을 직접 겪으며 부대낀다면, 프랑스의 소녀는 그 문제들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구조적 성찰을 한다는 차이 정도다. 프랑스의 작가 클로딘 갈레아가 쓴, 어린 소녀 ‘스리즈’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빈곤과 폭력, 인간 소외의 문제를 고발하는 소설 ‘붉은 지하철(조현실 옮김)’을 창비가 펴냈다. ‘붉은 지하철’은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얘기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결코 눈돌릴 수 없는 ‘지하철’,‘노숙자’ 등의 소재와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청소년들이 보기에 다소 묵직하고 어두울 수 있는 주제인 듯도 하지만 프랑스 라디오 드라마를 개작한 이 소설은 경쾌하고 빠른 문체를 등에 업고 막판 극적 상황까지 스타카토처럼 치닫는다. 지난해 유럽 아동청소년문학 추천 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열 다섯 살 먹은 소녀 스리즈가 사는 곳은 파리.‘버찌’라는 뜻의 이름처럼 붉은 색 원피스를 좋아한다. 유일한 친구는 스페인 출신으로 프랑스어가 서툰 ‘끌라라´. 스리즈는 학교를 다니느라, 또 이혼한 부모의 집을 오가느라 혼자 지하철을 타곤 한다. 그곳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삶의 단면들을 접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훔쳐듣는 것을 좋아한다, 내려야 할 역을 무려 열 세 개씩이나 지나친 적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구걸하고 있는 이들-노숙자들이다.-의 표정만으로도, 희한하게도, 그들의 생각을 읽을 줄 안다. 게다가 동전 한 닢, 지폐 한 장이 아닌, 기꺼이 건네는 미소만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날 저녁 늦은 시간 한적한 파리 지하철 안에서 한 걸인의 총기 난사와 자살 사건의 전 과정을 코 앞에서 생생히 지켜본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 저녁의 상황에 대한 화자가 되고, 주인공이 되어 끔찍한 트라우마를 스스로 조금씩 치유한다. 한때 마치 경제사적으로 전지구적 승리를 거두기나 한듯 기고만장해 있던 신자유주의가 낳은 필연적 결과물인 극단적 사회 양극화와 인간 소외는 스리즈의 눈에 의아하기만 하다. 늘 오가는 지하철에서 가끔 보곤하는 노숙자 ‘푸른 눈’(스리즈가 붙여준 이름이다.) 등 걸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대단히 현학적으로 동정심과 적선을 요청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그를 외면할 뿐이다. 노숙자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다. 스리즈의 아빠 역시 “난 저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초코빵을 사먹는 바람에 적선을 할 돈이 없어 안타까운 스리즈는 이해하기 어렵다.‘어떻게 이 세상에 도와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국가와 사회가 역할을 하지 않는 세상, 주변에 대한 애정이 없는 세상은 스리즈가 납득하기 어려운 세상의 편린들이다. 지난해 6월 시작한 창비청소년문학시리즈 열 세번째다. 청소년문학이지만 학생과 자식, 조카들에게 권하던 선생님, 부모, 이모, 삼촌들이 더욱 진지하게 읽을 법하다. 특히 ‘붉은 지하철’은 표지(위쪽 그림 참조)로 많은 것을 말한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붉은 원피스를 입은 스리즈가 왼손에 지하철 티켓을 들고서 복잡한 속내의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지만 뭔가를 말하고 싶다는 듯. 대단히 이국적 분위기지만 ‘토종 한국인´ 이영운씨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마당] 우리 시대의 희망을 위하여/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문화마당] 우리 시대의 희망을 위하여/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아주 오래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영국 런던 다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노인이 바이올린을 켜며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한 외국사람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바라보더니, 그 노인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여선지 가만히 다가가서 바이올린을 좀 만져보자고 했다. 노인은 그러잖아도 손이 시렸던 차라 잘 됐다 싶어서 낡은 바이올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연주자가 바뀐 바이올린이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 연주자는 구슬픈 가락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름다운 곡조의 노래를 계속해서 바이올린의 현에 실었다. 그 자리가 영국하고도 런던의 한복판이긴 했지만, 귀가 열린 사람들이 뜻밖에도 많았다.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췄고 자연스럽게 둥그런 관람석을 이루게 되었다. 노인의 모자에 한 푼 두 푼 던져지던 동전이 수북이 넘치게 되었고, 이윽고 사람들이 운집하여 발디딜 틈도 없게 되었는데, 이제는 1파운드짜리 금화를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군중 속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와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파가니니다! 파가니니!”그 외국인은 이탈리아에서 온 당대 바이올린의 거장 니콜로 파가니니(1784-1840)였던 것이다. 스스로 세계의 정상에 선 음악의 기량을 아끼지 아니하고 추운 길거리의 불쌍한 거지노인을 돕기 위해 거리의 악사를 자원했던 파가니니에게서, 우리는 그의 음악적 천재보다 더 고귀하고 감동적인 인품의 향기를 보게 된다. 조그마한 명예나 지식이나 재물을 가지고서도 현대판 귀족으로 행세하려는 사람들이 넘치는 이 완악한 세상에, 작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에 대한 인식을 가진 우리가 먼저 우리 주변의 춥고 굶주리고 억눌린 자들을 위하여, 그 낙망의 자리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도록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국제 경제 침체의 여파가 온 세계를 강타하고 우리의 살림살이와 시장바구니에까지 찬바람을 일으키는 오늘,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이 어려움과 고통을 이기고 넘어서려는 공동체적 연대일 것이며, 동시에 그 당사자 자신도 새로운 의지와 기력을 섭생하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정녕 괄목상대로 바라보아야 할 한 인물이 있다.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을 만큼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름 헬렌 켈러(1880-1968). 그를 여러모로 설명할 것 없이, 그가 ‘애틀랜틱 언스리’1933년 1월호에 발표한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문면 한 부분을 차용해 보자.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묻곤 합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숲을 산책하고 온 친구에게 무엇을 발견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아무 것도 특별한 것은 없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중략)그때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만지기만 해도 이런 큰 기쁨이 있는데 눈으로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만일 사흘만이라도 보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볼 것인가?” 헬렌이 온 몸의 장애를 꿋꿋이 이겨내면서 쓴 이 글을 통해, 당시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신음하던 많은 사람들이 큰 위로를 받았고, 이는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되었다. 그가 사흘간만 하고자 희망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여명과 노을을 보고 때로 영화를 보는 것 등,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헬렌의 말처럼, 희망이야말로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 앞에 생명을 던지는 지금, 어려운 이를 돕는 따뜻한 마음과 그리고 자기 내부에서 발양하는 희망의 마음이 직조물의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될 수 있다면, 어떤 힘든 문제라도 넘어설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김종회 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 반항기 청소년의 파란만장 방황기

    10대 청소년이 이유 없는 반항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뒤 1년여 동안 날치기, 보호관찰소 입소·탈출, 구걸, 노숙, 절도를 되풀이하다 소년원에 입소할 것으로 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모(15)군은 지난해 6월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자퇴했다. 가출한 뒤 서울시내를 떠돌며 한 달에 10건의 날치기를 하다 몇달 뒤 경찰에 붙잡혔다. 가정법원은 ‘6개월간 위탁시설에서 보호관찰 받으라.’고 선고했고, 이군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의 보호관찰 위탁학교로 들어갔다. 이군은 위탁학교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통과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학생들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담당 교사에게 호소했지만 오히려 보호관찰 기간은 6개월 연장됐다. 이군은 결국 지난 7월 밤을 틈타 학교를 빠져 나왔다. 이틀 동안 굶으며 산을 넘어 제천 시내로 나왔다. 구걸로 5000원을 마련해 상경한 뒤 잠은 PC방에서 해결했다. 최근 들어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알게 된 또래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나 교회 등지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이군은 지난달 27일 광진구 중곡동 길거리에 세워져 있던 49㏄짜리 오토바이(중고기준 40만원 상당)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이미 날치기 전과가 있어 소년원으로 보내지는 게 상례”라면서 “이군은 가정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심이 큰 문제로 발전한 것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동냥거절 분풀이 여탕에 침입한 걸인

    부산 영도경찰서는 8일 목욕탕의 여탕으로 뛰어들어 소란을 피운 황(黃)모씨(33·주거부정)를 즉심에 넘겼는데. 황씨는 7일 하오 5시쯤 영도에 있는 어느 목욕탕에 구걸차 들렀다가 돈을 주지 않고 쫓아내자 분에 못이겨 그대로 욕탕문을 열고 들어간 것. 즉결로 넘겨진 황씨, 『10원짜리 구걸보다 여자들의 알몸을 실컷 구경했으니 한이 없다』고 엉뚱한 소리.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2년 1월 23일호 제5권 4호 통권 제 172호]
  • [단독] 강병규 인터뷰 “국민들에게 죄송, 오해 확산 안타깝다’

    [단독] 강병규 인터뷰 “국민들에게 죄송, 오해 확산 안타깝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저 때문에 동료 연예인들까지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의 국고낭비 논란을 빚고 있는 방송인 강병규가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한편으로 일부 잘못된 사실 전달로 오해가 확산되는 데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지난 8월 올림픽 당시 단장 자격으로 연예인 응원단을 이끈 강병규는 30일 오후 스포츠서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연예인들이 현지에서 흥청망청(돈을)쓰고 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버스와 셔틀버스를 갈아타며 몇시간을 이동하고, 비를 맞으며 응원에 매달렸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나선 동료 연예인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고 있어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강병규와의 일문일답.   -애초부터 VIP대우, 국빈급 대우를 문광부에 직접 요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다. 하루 숙박비도 100만원을 기준으로 해달라고 문광부에 요구했다는 말도 있는데.   절대로 그런 일이 없고 불가능하다. 당시 문광부에서도 현지 숙박비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 담당 공무원과 여러 차례 상의해 진행했다. 가장 우선 고려된 것은 연예인들의 안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단장으로 정확하게 요구했다. 그것이 와전되었을 수는 있지만 ‘100만원’ 이라는 식으로 금액을 정해서 요구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JW Marriot City Wall Beijing 호텔이다. 우리가 묶었던 방의 현재 가격을 오늘 베이징에 연락해 확인했다. 당시 응원단은 그 호텔에서 가장 싼 방인 디럭스 룸을 2인 1실로 사용했다. 현재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호텔의 방값을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우리가 묶었던 방은 현재 1250위안으로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26만원 정도다. 그게 올림픽 때는 110만원대까지 치솟아 우리도 질겁했다. 또 일부에서는 내가 ‘정부에서 먼저 연예인 응원단을 요청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했는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분명히 내가 먼저 요청했다고 얘기했는데 왜 이런 기사가 나오게 됐는지 황당하다. -”자리가 없어 비즈니스석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논란도 있다. 일반적으로 연예인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해외 행사가 있어 비행기를 이용할 때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를 제공받는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다보니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해야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뒀다. 그 당시 이코노미 클래스의 가격이 67만 9900원이었다. 그것도 날짜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지난 23일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내가 “전체적으로 꼭 가야 하는 상황인데 좌석이 없으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비즈니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문광부에서도 연예인들이 비즈니스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을 관행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내 말을 잘 못 이해해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스파를 이용했다는 비난도 있는데. 영수증에 스파라고 찍혀 있어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영화에 나오는 호화 스파를 상상하고 분개하시는 것 같다. 기억하시겠지만 양궁장에서 폭우가 내리는 중에도 의연하게 응원을 했다. 이후 제가 단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발마사지를 받고 피로를 풀자고 해 시내에 있는 발마사지 하는 곳으로 갔고 그 비용이 영수증에 스파로 찍혀 있어서 이런 논란이 벌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유 없이 내 개인의 소견으로 간 것이므로 개인비용으로 반환하겠다. 금액은 모두 59만 8442원이다. 응원단 인원과 비교해 보면 1인당 비용도 쉽게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 응원이 일부 종목에 한정되는 등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다. 행사의 후원이 문광부였는데 입장권 확보 등 사전준비가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같다. 연예인들은 현지에 가서 열심히 응원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 나 역시 단장으로서 연예인들의 참여 유도와 열심히 응원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현지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티켓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이를 알고 중국 현지에 있는 지인에게 표를 구걸하는 일까지 했다. 생각하면 정말 한심한 노릇이었다.암표를 구해서라도 경기장에 들어 가서 응원하고 싶어 암표를 구입했다. 이 부분은 당시에도 걱정을 했다. 어쨌든 준비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해 응원이 생각했던 만큼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티모르 여행기①] 동티모르에는 어린 천사들이 산다

    [동티모르 여행기①] 동티모르에는 어린 천사들이 산다

    정일근 《삶과꿈》기획위원과 안남용 사진작가는 지난여름 커피 시즌을 맞아 동티모르 커피생산지인 고산지역을 취재하고 왔습니다.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가이며 우리에게 미지의 국가인 동티모르에 대한 생생한 현지 취재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본지를 통해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동티모르(Timor-Leste)는 아시아권이지만 우리에게는 먼 나라다. 일요일 저녁 8시 30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공항을 경유 동티모르 수도인 딜리공항에 도착하니 월요일 낮 12시 40분이 넘었다. 적도를 지나는 16시간의 긴 비행이 끝나자 우리 일행은 경험하지 못한 끈적끈적한 뜨거운 햇살 아래에 서 있었다.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기 시작했다. 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규모인 딜리공항을 빠져나가는데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동티모르는 노비자 국가이지만 길게 줄을 서서 1인당 30달러의 입국세를 지불해야했고, 잦은 정전으로 짐을 찾는데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무더위 속에 진행되는 느린 시간이 나그네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묘한 편안함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 편안함의 비밀은 시간에 있었다. 때로는 시간이 마법을 부린다. 16시간의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나라 1950년대쯤으로 찾아온 것 같았다. 동티모르는 우리나라와 같은 시간을 사용하는 나라여서 시차가 없다. 발리 덴파사르공항에서 1시간의 시차가 있었지만 산호섬들이 그림처럼 뿌려진 뜨거운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그 시차마저 두통에 두통약을 먹은 듯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의 동쪽이고 동티모르는 동남아시아의 동쪽이다. 결국 우리 일행은 우리나라에서 남쪽 아래로 아래로 해서 같은 동쪽으로 왔다. 우리와 같은 동쪽나라이기에 같은 시간에 해가 뜨고 같은 시간에 해가 진다. 시계의 시간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나그네를 더욱 편안하게 한 것이었다. 동티모르는 섬이다. 티모르(Timor)란 그 나라 토속어인 테툼어로 동쪽이란 뜻이다. 결국 인도네시아의 동쪽이란 뜻이다. 우리가 동티모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보면 동동(東東)이라 중복해서 부르는 것이다. 악어처럼 생긴 티모르 섬은 하나의 섬이지만 지금은 동서 티모르로 나뉘어져 있다. 서쪽은 인도네시아의 땅이고 동쪽은 21세기에 독립한 지구에서 가장 어린 신생국가다.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은 2002년 5월 20일 인도네시아로부터 힘들게 독립했다. 그래서 한 섬에 두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서티모르 안에도 동티모르의 도시가 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티모르 섬을 양분해서 식민지로 가졌었는데, 포르투갈이 이 섬에 첫 발을 디딘 기념적인 그 땅을 네덜란드에게 넘기지 않고 동티모르의 소유로 남겼다. 동티모르 정부는 서티모르 안에 섬으로 남은 그 지역을 포함해서 13개의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은 섬이다. 동서 길이 256km, 최대폭 92km인 우리나라 강원도만한 땅이다. 산도 강원도처럼 높다. 섬 중앙에는 동티모르에서 가장 높은 산인 타타마일라우가 해발 2,963m로 백두산보다 높이 솟아올라 있다. 타타마일라우 산을 정점으로 라멜라우 산맥이 동서 길게 펼쳐지는 것도, 영동과 영서로 나눠지는 강원도 같은 느낌이다. 쉽게 이렇게 생각하자. 강원도에 13개의 시와 군이 있는 것으로. 그러나 우리의 시와 군의 규모와 형편은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비일비재하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의 1950년대 같다고. 어디든 손을 내밀면 덕지덕지한 손 시린 가난이 그대로 묻어난다. 동티모르 인구는 2002년 100만 명 정도 추산되었으나 독립 후 아픈 내전을 겪은 탓으로 2004년 유엔 통계로는 70만 명 정도 추산하고 있다. 내전으로 인구의 30%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수도 딜리는 요란했다. 인구 10만 명 정도가 산다는 최대 도시. 그 10만 명 인구가 모두 밖으로 나온 것처럼 도로는 요란하다. 시장이 서는 곳은 더욱 요란하고 이웃 지역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가 있는 곳은 더더욱 요란하다. 내전으로 파괴된 시설이 그냥 그대로 방치된 곳도 있고, 새로 짓고 있는 국가 건물도 많다. 한국 사람이 가르치는 이곳 유소년축구팀이 인기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곳곳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 골목 축구 수준이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 필자는 베트남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동티모르도 베트남 정도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남국의 정서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오래 고민하다가 무릎을 치며 답을 찾았다. 아, 사람이 다르다! 500년 이상 포르투갈 식민지를 지낸 동티모르는 전형적인 작고 새까만, 들창코를 가진 동남 아시아인들과는 외형이 다르다. 굉장히 서구화되어 있다. 키가 크고 피부도 갈색이 많다. 검은 색에 흰색을 섞어 나온 아름다운 갈색이다. 눈도 아름답고 코도 오뚝하고 이름도 이국적이다. 아우렌티노, 발렌티노, 루이스, 아구스…, 허나 나는 그런 이름 앞에 슬픔을 느낀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칠수’와 ‘순례’를 만나야 하는데 ‘제임스’와 ‘메리’를 만나는 기분이다. 지난 초여름 포항에서 포항제철 창사 40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아시아 문학포럼에서 만난 전쟁 중인 국가에서 온 한 작가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쟁의 비극을 강조하는 그 친구에게 나는 전쟁이 식민지보다는 덜 불행하다고 말했다. 파괴하는 전쟁은 복구가 가능하지만 식민지는 민족의 정신과 씨앗을 말살시킨다고. 전쟁 다음에는 평화가 오지만 식민지 다음에는 상처가 오래 남는다고. 일제강점기 36년, 우리 민족이 겪는 후유증은 전쟁의 후유증보다 더 심각하다고. 동티모르는 더욱 심각했다. 그들의 삶은 이미 복원이 불가능한 식민지화 DNA를 가져버렸다. 정부도 그렇다. 스페인어에서 파생된 지역 고유어인 테툼어가 있는데, 국민의 1%밖에 모르는 스페인어를 국어로 정해 놓았다. 정부와 국민은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다. 화폐도 자국 화폐가 없다. 미국이 독립에 많이 도와주었다고 달러를 국가 화폐로 사용하고 있다. 내전 이후 동티모르 치안은 UN경찰이 맡고 있다. 딜리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나는 고급차량은 UN마크가 선명한 UN경찰 차량이었다. 동티모르에서 교육은 본인이 원할 경우 대학까지 무료로 제공된다. 그러나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학교를 다녀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에 그냥 가족공동체를 이뤄 생활하는 경향이 많다. 전국에 700여 개의 초등학교가 있지만 배우는 학생도 가르치는 교사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 나라의 미래는 이 나라 아이들에게 있다. 한 가구당 7.8명이나 된다는 아이들이다. 수도인 딜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들은 가족 단위, 부족 단위로 생활을 한다. 더러 도시의 아이들은 어깨 짐을 지고 생선이나 채소, 과일 등을 팔러 나서기도 하지만 시골아이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하루를 오직 웃음과 미소로 견딘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공부를 하지도 못하고, 병이 들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가지는 연민도 어쩌면 나그네의 마음일 뿐인지도 모른다. 동티모르 어린이들은 누구나 행복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제였다. 그 행복의 증거가 그들의 웃음이며 그들의 눈빛이었다. 이국의 나그네가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 그것도 즐거워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 그 백만 불짜리 미소가 아이들이 가진 자산이었다. 동티모르 어린이와 우리나라 어린이는 비교할 수 없는 비교급이다. 단 한 벌 옷으로 1년을 살며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고급 운동화에 명품 의류, 영상휴대폰, MP3로 무장한 우리 어린이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한국의 어린이가 다 그런 것이 아니고, 동티모르 어린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 대 평균의 비교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동티모르를 여행하는 중에 책을 들고 있는 어린이를 단 1명 만났다. 그것도 책을 거꾸로 보고 있었으니 책을 읽고 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다. 행복지수가 우리 아이들과는 분명 달랐다. 동티모르 어린이들은 인도나 네팔의 아이들처럼 구걸을 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외국인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다. 그 손으로 그들은 부모를 돕고 가사를 돕고 어린 동생을 돌본다. 나라는 가난하지만 영혼만은 절대 가난하지 않은 동티모르 어린이들. 그 증거가 그들의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번 우리 취재팀이 담아온 15,000여 장의 사진 속에 남은 아이들 눈동자는 모두 남국의 빛나는 별빛을 닮아 있었다. 그래서 천사 같은 그 아이들을 만나는 일로 지치고 힘든 여행 내내 나그네는 행복했다. 글 정일근 본지 기획위원 / 사진 안남용 다큐멘터리 사진가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열린세상] 우리를 진정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열린세상] 우리를 진정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며칠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하늘은 눈부시게 투명하고 볼을 스치는 바람이 자못 삽상하다. 밤거리엔 사람들이 어느새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종종걸음을 친다. 몸과 마음이 미리 알고 따스한 것을 찾는다. 한 잔 차로 몸이야 데울 수 있지만, 마음은 온기를 머금을 줄 모른다. 겨울을 나기 힘든 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많은 이들이 “혹여 범죄자라면 어떠냐. 경제만 살려다오.”라는 마음으로 MB를 선출하였는데,IMF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난리다. 자고 나면 가게가 속속 문을 닫는다. 지하철을 타면 구걸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첫손님인 경우가 많다. 교외로 나서면 길이 한산하다. 그래도 IMF 때는 기업과 은행이 부도가 난 것이라 국민들이 노력하여 살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영업이 휴폐업하고 가계가 적자투성이이고 개인이 부도가 난 것이라 그를 일으켜 세울 주체 자체가 절망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기반이 무너진 것이기에 공적 자금 투여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의 금융위기로 국제 경제조차 좋지 않으니 앞날이 더욱 캄캄하다. 하여 풍요로운 이 가을날에 우리는 가난과 고통의 수렁에서 절규한다. 서민들의 절규가 처절한 것은 경제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상대적 빈곤과 불안감이 도를 넘어섰다. 비정규직이 860만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반 이상이 한 달에 10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다. 생계가 곤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노동을 해야 한다. 정규직 또한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강도 높은 노동과 해고 위협 아래 일하는 하루, 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다. 자고 나면 물가와 교육비가 오르니 실질 소득은 팍팍 줄어드는 셈이다. 대부분의 가계가 빚을 지고 있어 덜 먹고 덜 입고 덜 가르치며 한푼 두푼 모아 빚 없는 날을 고대하며 살고 있는데, 금융 위기는 그 바람마저 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고통스러우면 어떠랴. 우리는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는 데는 세계 최고인 민족이다. 하지만 지금 미래가 없다. 지도자는 전혀 비전이 없다. 간혹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지만, 현재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립서비스요, 미봉책인 줄 초·중딩도 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인데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마저 더 나쁜 상황으로 악화시키는 정책만 난무한다.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깨닫고 그 본산지인 미국에서조차 실패를 선언하고 유턴하고 있는데, 유독 MB정권은 신자유주의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꿈을 꿀 수도, 그 꿈을 향하여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길조차 없다. 예전에는 서울에서도 골목문화가 남아있을 정도로 공동체의 유산이 강하였지만,IMF 이후 각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과도하게 강요하면서 우리 안에 남아있던 공동체는 사라졌다. 회사에선 의리나 인간적인 정이 사라지고 오로지 돈을 준 만큼, 잘리지 않을 만큼 일한다. 동료가 곧 적이고 경쟁상대다. 사회에선 오로지 재테크와 욕망을 추구하는 일만 관심사다. 신자유주의식 시장 전체주의는 학교와 종교의 성역에도 스며들어 목사나 대학교수조차 돈과 욕망을 좇고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린다. 눈물을 닦아 줄 형제가 있고 고통을 나눌 친구가 있고 젖동냥을 기꺼이 해줄 이웃이 있는 한 가난은 겉옷에 불과할 뿐, 삶은 의미로 충만하다. 그 의미들은 가난을 극복하는 힘과 용기와 지혜의 바탕이다. 이제 MB정권은 집토끼만 챙기는 요요(yoyo)경제가 미국의 금융위기를 낳았음을 직시하여, 양극화와 상대적 빈곤을 강화하고 1%만 잘살게 하는 경제정책과 조세정책을 중지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 강제「드링크」마신 알몸의 탕아들

    강제「드링크」마신 알몸의 탕아들

    서울역앞의 사창가 양등의 밤. 문구멍으로 방안의 기척을 살피다가 숨소리가 높아지면 방문을 열어 젖히고 「드링크」병을 불쑥 내민다. 알몸으로 뒹굴던 남녀가 때아닌 불청객에 놀라 몸을 도사리면 『재미를 보시려면 원기를 내셔야죠』 능글맞게 능청을 떠는 이른바 「바카스」파 일당 4명. 부끄럽고 쑥스러워 어쩔줄 모르는 탕아를 윽박질러 20원짜리 싸구려 「드링크」제 1병을 먹이고 백원짜리 몇장씩을 뜯어 냈다는데-. 24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덜미가 잡힌 일당은 두목 조성문(趙成文)(21·수배중), 제조부장 김종배(金鍾培)(21), 경리부장 김기섭(金基燮)군(19·가명)등 4명. 감투가 꽤나 어마어마하다. 경찰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지난 15일밤 11시쯤 중구 양동 42 무허가 하숙방에서 창녀와 동침하던 정(鄭)모씨(29)에게 20원짜리「드링크」제를 1백원에 판 것을 비롯, 지난 1년동안 사창가의 탕아들을 상대로 「드링크」제를 정가보다 5~10배씩이나 비싸게 팔아 자그마치 1백여만원을 벌어들였다는 것. 양동, 도동일대의 사창가에서는 「바카스」파라면 모를사람이 업을 만큼 악명을 떨쳐온 이들은 시중에서 「드링크」제를 무더기로 사들여 물과 「사카린」을 섞어팔면서 혹시 거절하는 손님이라도 있으면 신발을 신은채 방안에 뛰어들어 이불을 걷어 젖히며 행패를 부리기도 하여 창녀들은 이들이 나타나면 『날도깨비 나왔다』며 기겁, 알몸으로 도망칠 정도. 이런 푸른 서슬앞에 탕아들은 고양이 앞에 쥐꼴이 되어 무릎을 꿇수밖에. 『돈은 줄터이니 제발 이 자리만은…』 이래서 이들의 어깨는 더욱 으쓱해졌고. 경찰서 형사과에 끌려와서도 『홍등가에서 돈을 뿌리며 재미보는 사람들에게 「바카스」몇병 떠안긴게 뭐가 죄가 되느냐』고 제법 항의까지 한 이들의 죄명은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도망친 두목이외에는 모두 구속됐다. 이들이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24일 밤부터 『징글벨 징글벨…』이 요란하던 「크리스마스·이브」를 개업날짜로 잡은 것이다. 사창가에는 탕아와 창녀들이 거리를 메워 마치 이 거룩한 날을 축하나 하는 듯 붐볐다. 이들의 장사도 그 덕택에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첫판부터 땡을 잡았다고 흥겨워진 장사수법도 날이 갈수록 능란해졌다. 이 기발한 장사를 착안해낸 장본인은 자칭 제조부장 김종배. 지난해 12월초 고향인 전남 무안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무작정 상경한 김군이 우연히 들여 놓은 곳 양동의 무허가 하숙집. 젊은 여인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의 밤풍경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그에게는 신기한 것 이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채 그럭 저럭 10여일을 지나고 보니 시골에서 갖고온 돈도 바닥이 났다. 이틀을 굶어야 했다. 온갖 궁리끝에 희한한 생각이 번득 떠올랐다. 재미보러온 손님들에게 무엇이든 내놓고 팔아 달라면 거절하지 못하리라. 구걸하는 것 보다야 얼마나 의젓한가. 김군은 양동일대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날리던 조군을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털어 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조군은 「아이디어」상을 탈만한 『멋진 생각』이라며 무릎을 쳤다. 조군의 부하 2명을 더 끌어 넣어 조군은 두목이 되고 나머지 3명은 그럴듯하게 자칭 부장이 되었다. 『점잖으신 체면에 돈 몇백원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설마 사모님이 아시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겠죠』빈정거리며 터질듯한 정열에 허덕이는 탕남탕녀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바카스」파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문을 열어 젖혔다가 뜻하지 못한 야릇한 장면을 보고 기절초풍할 때도 더러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 60대의 노인이 10대의 창녀와 알몸으로 변태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멈칫하더라는 것. 까까머리 10대소년이 30대 창녀를 껴안고 시근덕거리는 현장을 덮쳤을 때는 이불을 걷어 붙이고 소년을 방바닥에 꿇어 앉혀 놓고 『어린놈이 벌써부터 이 무슨 짓이냐』 고 호통, 「뭐 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라는」식의 훈계를 1시간동안이나 한뒤 「드링크」제 1병을 공짜로 먹여 쫓아 보냈다고 자랑하기도. 이들에 의하면 사창가에는 신분이 꽤 높은 분이나 스님 또는 목사도 가끔 드나든 다는것. 이런 부류일수록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분고분 「드링크」제를 마셔준다고. 영화에서 얼굴이 익은 배우 K모씨는 「드링크」제 1병을 마시고 5백원짜리 2장을 던져주는 인심을 보이더라는 것. 한창 정열을 불태울 때 문을 열어 젖히면 『잠깐 기다리라』면서 계속 열을 올리는 정력파도 많다고 했다. 이쯤되면 오히려 이쪽이 기가 죽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버리기도 한다고. 학생복 차림이나 10대의 구두닦이등은 대부분 훈계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치더라고, 제법 직업에 대한 긍지를 느낀다는 듯 우쭐대기도 했다. 「바카스」파가 반드시 나쁜짓만 하는 걸로 알면 천만의 말씀이라면서 사창가에 드나드는 청소년선도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아 취조경찰관을 웃기기도 했다. 구속영장이 떨어져 수갑을 차고 유치장에 끌려가면서도 이들은 『우리가 없으면 사창가의 질서가 큰 걱정』이라며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투덜. <안태석(安泰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2월 5일호 제4권 48호 통권 제 165호]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법고를 치는 뜻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법고를 치는 뜻

    몇 해 전 영남알프스에 있는 운문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면서 운문사에 들렀다. 해가 질 무렵 범종각에서 법고를 치는 것을 듣고 퍽 감동한 적이 있다. 법고는 불교의식에서 사용하며 대개 아침 저녁 예불 때 친다. 나는 저녁 예불 때의 법고를 들었다. 법고춤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조석의 예불 때나 기타 영산재 등의 의식에서 추는 것이다. 나는 뒤에 절에 갈 적마다 법고를 보면, 운문사의 법고가 생각났다. 나는 법고는 늘 범종각 안에서만 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신윤복의 ‘법고’(그림1)를 보니, 길거리에서도 치고 있지 않은가. 어찌된 사연인지 그림을 좀 더 꼼꼼히 살펴 보자. 그림 중앙에 한 스님이 법고를 두드리고 있고, 그 왼쪽에 패랭이를 쓴 사내는 꽹과리를, 또 그 왼쪽의 감투를 쓴 사내는 목탁을 두드리고 있다. 아마도 제법 요란한 소리가 날 것이다. 오른쪽에는 고깔을 쓴 사내가 무언가 펼쳐들고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다. 자, 이제 여자들을 보자. 부녀자 다섯이 있는데, 세 사람은 장옷을 입고 있고, 한 여자는 장옷을 개켜 머리 위에 얹고 있다. 중앙의 한 여인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있다. 여자들의 신분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 같이 젊은 여성들이며, 복색이 사치스러운 것을 보면, 여염집 여자는 아니다. 특히 그림의 왼쪽 아래에 도포를 입은 선비, 그것도 내외를 하기 위해 차면(遮面)을 손에 든 선비가 바라보고 있는데, 치마를 훌렁 뒤집는다는 것은 양반집 여성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생 패거리가 아닌가 한다. 하기야 이 선비도 우습다. 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차면까지 들고 다니는 선비라면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걸음을 멈추고 여자들의 속것은 왜 본단 말인가? ●정조 7년 스님들 도성 출입 금지 각설하고, 도대체 길거리에서 법고를 치는 것은 왜인가? 홍석모(1781∼1850)는 ‘동국세시기’에서 법고의 내력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 있다.‘세시기’란 것이 원래 한 해의 정기적인 풍속을 밝힌 것인데, 법고는 1월 1일의 풍속에 해당한다. 스님들이 북을 지고 시가로 들어와서 치는 것을 법고라 한다. 혹은 모연문(募緣文)을 펴놓고 방울을 울리면서 염불을 하면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진다. 속담에 중의 떡을 얻어 어린이를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고 한다. 또 스님들은 떡 한 개를 속세의 떡 두 개로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후에 조정에서 도성문 출입을 금지했으므로 성 밖에나 이런 풍속이 남아 있다. 여러 스님의 상좌스님이 재 올릴 쌀을 오부 내에서 빌기 위하여 새벽부터 바랑을 메고 돌아다니면서 문 앞에 와 소리를 지르면 인가에서 각기 쌀을 퍼다 준다. 이는 새해의 복을 맞는 뜻이다. 새해 첫날 스님들이 모연문을 가지고 서울 도성 안으로 들어와 법고를 치고 염불을 하면 사람들이 돈을 던진다는 것이다. 모연문이란 불사(佛事)를 일으킬 때 신도에게 재물을 기부하여 좋은 인연을 맺도록 권유하는 글이다. 쉽게 말해 종교 단체에 기부하고 복을 받으라는 내용의 글이다. 한데, 위 기록에 의하면 조정에서 스님들의 서울 도성 출입을 금지했으므로 도성 밖에나 이런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홍석모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김매순(1781∼1850)이 지은 서울의 풍속지인 ‘열양세시기’에는 정조 원년에 스님의 도성 출입을 금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조 원년의 ‘실록’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정확하게 스님을 축출한 것은 정조 7년이다.‘정조실록’ 7년 1월 2일 조에 “중들이 도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법을 거듭 엄하게 적용하라고 명하였다. 세시(歲時)에 쌀을 구걸하는 중들이 서울 도성 안으로 난입한 사건 때문에 경연관(經筵官)이 엄히 금할 것을 요청하자,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라는 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후로 1월 1일 스님들이 서울 시내에서 법고를 가지고 와서 치는 것이 금지되었을 것이다. 그림1 역시 장소가 도성 안이 아니라 야외인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승복 입지 않은 사내들… 아마도 사당패일 듯 그렇다고 해서 이 그림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법고, 꽹과리, 목탁을 치는 사내는 모두 승복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꽹과리를 치는 사내와 목탁을 치는 사내는 패랭이와 감투를 쓰고 있다. 왜 이들은 승복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인가. 참고로 오명현의 ‘모연(募緣)’(그림2)과 김홍도의 ‘모연’(그림 3)을 보자. 모두 모연문을 펼쳐 놓고 요령을 흔들고 목탁을 치고 꽹과리 비슷한 것을 치고 있다. 또 당연히 가사 장삼을 제대로 차려 입고 있다. 그림2와 그림3에 비하면 그림1의 사내들은 무언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의심해 본다면, 그림1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사내는 승려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신 있게 말할 단계는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추론이지만, 내게 이들은 사당패로 보인다. 하기야 사당패라면 여자가 주된 구성원이고 춤과 노래, 매음을 하는 연희 집단이기는 하지만, 남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우성 선생의 ‘남사당패 연구’란 책을 보면, 사당패에는 ‘모갑’이란 우두머리가 있고, 그 아래 ‘거사’란 사내들이 사당 한 명과 각각 짝을 맞추어 패거리를 이룬다고 한다. 겉으로 보면, 사당패는 모갑인 남자가 이끄는 패거리인 것 같지만, 사실상 모갑 이하 모든 거사들은 사당에 붙어서 사는 기생자일 뿐이다. 곧 거사는 사당의 연희(演)에 전혀 관계하지 않고, 다만 사당을 업고 다니는 등 갖가지 잔일과 뒷바라지를 하며 허우채(解衣債, 사당이 매음하여 얻은 돈) 관리를 맡는 것이다. 그런데 심우성 선생의 사당패에 관한 언급 중 그림1과 관련하여 각별히 눈을 끄는 대목이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의 수입으로 불사를 돕는다는 것을 내세운다. 실제로 그들은 반드시 관계를 맺고 있는 일정 사찰에서 내준 부적을 가지고 다니며 파는데 그 수입의 일부를 사찰에 바치는 것이다.” ●사찰에서 내준 부적 가지고 다니며 팔아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추리하기 곤란하지만, 그림1은 이 설명처럼 사당패가 자신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의 부적을 파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림1에서 고깔을 쓴 사람이 펼쳐 들고 있는 것은 부채처럼 보이지만, 부채가 아니라 부적일 것이다. 19세기의 문인 권용정은 서울의 풍속을 기록한 ‘한양세시기’에서 계절의 구애를 받지 않는 서울의 연희로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꼽았는데, 소년의 씨름, 거사의 뇌고(雷鼓), 산붕(山棚)의 선희(繕戱), 화랑의 타령(打令), 무고(巫)의 새남(賽南)과 송경(誦經)이 그것이다. 권용정은 여기에 친절하게 주석을 달고 있다. 맨 끝의 것부터 소개하자. 무고는 무당과 장님이다. 새남에 대해서는 주석에 ‘강혼영신(降魂迎神)’이라 하였으니, 곧 무당의 굿이다. 송경은 점치는 장님이 경문을 외는 것이다. 화랑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풍속에 우인(優人광대)을 화랑이라 한다.”는 주석을, 타령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풀어서 하되 간간이 노래를 섞는 것”이라는 주석을 달고 있으니, 곧 광대의 판소리 공연을 말하는 것이다. 산붕은 ‘산대(山臺)’로서, 산붕의 선희란 곧 광대가 무대를 가설하고 줄타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거사에 대해서는 원래 불교의 ‘재가(在家) 신자’란 뜻이지만, 사실 이 원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아마 사당패의 거사와 동일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뇌고는 법고를 의미할 것이다. 곧 사당패 거사들의 법고를 흥미 있는 사철의 구경거리로 여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그림1의 사내들이 모두 승복 아닌 평복을 입고 있는 근거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그림1에서 돈을 내는 사람이 여자인 것이 흥미롭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불교 신자는 여자가 많았다(지금도 그렇다). 현대 한국의 기독교에도 여자 신도가 많은 줄 안다. 여성이 종교적 심성을 더 짙게 타고 태어나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의 모종의 특수성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베니스에서 ‘구걸’하면 소지품 압수

    베니스에서 ‘구걸’하면 소지품 압수

    ‘물의 도시’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이제부터는 거지를 볼 수 없게 됐다. 이탈리아 도시 중 처음으로 베니스가 공식적으로 ‘구걸행위’를 금지시킨 것. 베니스 시(市)는 마크 광장, 리알토 다리, 비탄의 다리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에 더 많은 경관을 배치해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베니스 의회 관계자 오구스토 살바도리는 “구걸행위는 시민들과 여행객 모두를 괴롭히고 베니스 이미지도 나쁘게 만든다.”며 “특히 거지집단에 있던 아이들이 범죄 집단으로 이동하는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이런 조치가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구걸행위를 하다 걸리면 25~50유로(약 4~8만원)의 벌금을 내야 할 뿐 아니라 처벌의 하나로 갖고 있던 소지품 모두가 압수된다. 살바도리는 “노숙자들을 쫓아내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조직화된 거지 집단을 소탕하는 게 이번 조치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베니스 경찰은 “현재 약 150명 정도의 거지가 있고 그 중 약 80명 정도는 시내 역사 유적에서 활동한다.”며 “단속된 개개인은 모두 사회 복지센터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 자선단체의 디노 피스토라토는 “거지 집단 소탕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생활이 나아지도록 돕는 것이라면 올바른 조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users.ipfw.edu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독도 무력충돌 가능성도 대비해야”

    “독도 무력충돌 가능성도 대비해야”

    자유선진당 권선택 원내대표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일본에 ‘구애외교’를 하려고 애걸복걸하다가 뺨만 맞은 ‘구걸외교’의 결과”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노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는 18일 국회 비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미 의회 도서관이 독도의 검색어를 일본 영해에 떠 있는 암석으로 변경하려던 계획을 잠정 중단시킨 것도 정부가 아닌 우리 국민”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 원내내표는 이어 “이제는 어떠한 비상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무력충돌 가능성까지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사건에 대해서는 “정부는 이제라도 북한과 가까운 중국의 협조를 얻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중국의 협조가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유엔 인권이사회나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개성관광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우리말 여행] 동냥

    불교 용어 ‘동령(動鈴)’에서 왔다. 동령은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강하게 일으키기 위해 흔드는 도구의 하나다. 각종 불교의식 때는 물론 스님들이 걸식 수행의 한 방편으로 탁발하는 과정에서도 흔들었다. 이 동령이라는 말에 ‘거지 등이 구걸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물건’이라는 속된 의미가 결부됐다.‘동녕’을 거쳐 ‘동냥’이 됐다.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0) 살레시오 수도회 산티아고 수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0) 살레시오 수도회 산티아고 수녀

    가톨릭의 수녀들은 신앙적인 틀에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며 극기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녀(修道女)의 공통점을 갖는다. 철저한 금욕을 바탕으로 평생 기도와 묵상에 몰두하는 관상(觀想)생활을 하는가 하면 남자 수사와 마찬가지로 사목, 전교, 구제의 활동을 통해 이웃과 함께 살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어렵고 아픈 이들을 내 몸 살피듯 살아가는, 이른바 ‘활동수도회’ 수녀들은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통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미켈레 산티아고(75·필리핀)도 한국에서 홀대받는 젊은 이들과 고통을 나누며 평생을 살아온 생활속 수도녀. 햇살보다는 그늘에서 버겁게 살아가는 노동자며 소외 이웃들의 곁을 51년간 지켜오고 있다. ●필리핀 노동자 공동체 든든한 버팀목 서울 성북구 성북동 한성대입구역 가까이의 주택가 골목길 언덕 모퉁이에 있는 필리핀공동체.2003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우산 아래 둥지를 튼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공간이다. 공동체라야 오갈데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며칠 묵어갈 수 있는 방 몇개에 상담이 이루어지는 사무실, 부엌이 딸린 허름한 3층짜리 자그마한 연립주택. 공간이 작으면 어떠랴. 살갑게 정을 나누고 외로움과 아픔을 보듬는 공간 속에선 푸근한 웃음들이 피어난다. 이곳엘 가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재게 움직이는 산티아고 수녀를 항상 만날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청소를 하고 지친 몸을 맡겨온 뜨내기 외국인들의 끼니며 마음을 챙기는 수녀. 힘겨운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하소연이라도 할 요량으로 일찍부터 공동체를 찾아드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에겐 친어머니의 넉넉한 웃음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필리핀공동체에선 없어선 안될 해결사이다. 기자가 필리핀공동체를 찾아간 지난달 27일 아침에도 산티아고 수녀 할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오전 9시를 막 넘긴, 이른(?) 시간이어서일까. 기자를 맞는 노 수녀의 표정이 심드렁하다.“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청소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죗값이려니 생각하고 소파 한 쪽에 몸을 쭈그려 30분을 기다렸을까. 역시 데면데면한 얼굴로 마지 못해 옆에 앉으며 “무슨 말을 듣고 싶으냐.”고 물어온다. “한국에서 이방인 수녀로 살아가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필리핀 사람이면서 일본 수도회에 입회해 한국에 살게 된 까닭을 들려준다. ●24살때 노기남 주교 요청으로 들어와 “살레시오 수도회 본원이 일본 도쿄에 있었어요. 교육을 모두 마치고 본국 필리핀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한국의 젊은이 교육을 위해 수녀를 보내달라는 서울대교구 노기남 주교의 청을 일본 본원이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함께 교육을 마친 이탈리아 수녀 3명, 일본에서 자란 한국인 수녀 1명과 엉겹결에 서울 도림동성당에 도착한 게 1957년. 한국에 들어온 첫 살레시오 수녀들이라 기대 실린 눈길을 한껏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24살 꽃다운 나이의 산티아고 수녀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공산당’과 ‘전쟁’뿐이었다.“무서운 나라”였다. 그에게 한국은. “6·25전란의 포화가 멎은 지 4년, 서울의 모습은 처참했지요. 빈민촌 아이들을 받아주는 수녀회 주변에 밤낮없이 수백명의 헐벗은 어린이들이 몰려들어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대책이 없더군요.” 어쩔 수 없이 인근 미군부대를 돌며 빵과 우유를 구걸해 먹였고 노래며 춤, 연극들을 가르치며 전란에 상처받은 마음들을 달랬다고 한다. 당시 영등포시립병원에 얽힌 사연은 잊을 수 없다. 무료 진료가 소문나면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약과 의사가 모자라 죽는 이가 태반이었다. 병실 침대를 돌며 임종의 환자들에게 사제를 대신해 영세를 베푸는 임종 대세(代洗)도 수 없이 했다. 그때 보호자도 없이 꺼져가는 숱한 생명 앞에서 기도하던 수도자의 현실적인 다짐과 각오가 지금의 산티아고를 만들었을까. 말을 도란도란 주고받자니 어느새 노 수녀의 굳었던 얼굴이 펴져 있다.“여기서 5분 거리의 베들레헴 어린이집 옆 수녀원에 수녀 5명과 함께 살고 있으며 매일 아침 8시쯤 이곳에 와 저녁까지 일을 하고 수녀원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곁들인다. 2003년 필리핀공동체 출발과 함께 노동사목을 시작한 이래 6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오가며 힘겨운 사연들 속에서 부대끼고 있다. 임금 체불과 대가없는 근무, 때리고 무시하는 업주의 폭력…. 이곳에서 쏟아내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하소연과 불평 불만의 사연들은 고스란히 자신의 아픔이 되어 가슴에 박힌단다. 몇 년째 이 일을 하다보니 출입국관리소와 노동부는 물론 성북동·혜화동·동대문 일대 경찰서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어있다. “힘 닿는 대로 돕고 있지만 완전한 해결은 쉽지 않아요. 그나마 외국인들의 부당한 처우에 관심갖는 한국인들이 많아졌고 도움도 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봉사는 하느님이 주신 수도자의 사명 ” 수녀의 몸, 더구나 외국인의 신분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란 고난한 일. 하지만 지난 세월의 고난에 비하면 지금의 필리핀공동체 사목은 아무 것도 아니란다. 그의 말마따나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아온 지난 세월은 결코 편치 않은 나날의 점철이다. 첫 사목지인 도림동 성당에서 헐벗은 아이들, 병상의 환자들과 함께 7년을 울고 웃다가 광주 살레시오 초등학교의 사실상 책임자로 7년간 살았다. 서울 신길5동의 수녀원을 맡으면서 공장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했고 어려운 형편의 버스 안내양 돕기에도 발벗고 나섰다. 다시 마산 자유수출산업단지로 내려가선 본격적으로 여공들을 돕기 시작했다. 여성들만의 노동자 기숙사를 세웠고 창원에는 청소년교육회관도 번듯하게 지어놓았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젊은 여성 근로자들은 대부분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이나 중퇴학력인데, 일에 대한 보수가 턱 없었어요. 중학교 진학만 해도 (보수를)배 이상 받을 수 있었기에 여공들에게 영어와 일본어 타자를 열심히 가르쳤지요.” 그렇게 살다보니 함께 처음 한국에 들어온 살레시오 수녀들이 모두 흩어졌다. 두 명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두 명은 세상을 떴으니 산티아고만 남은 셈이다. 지금의 필리핀공동체 일을 시작한 것도 1993년 살레시오수도회 본원이 있는 서울 신월3동 옆 청소년교육회관 일을 맡으면서부터. 의지하며 살던 동료 수녀들과 모두 헤어진 채 홀로 남은 상실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공장이 밀집해 있던 신월3동엔 유난히 외국인, 특히 필리핀 근로자가 많았는데 이들과 자주 만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알 수 있었다. ●노동자들에 헌신한 공로로 ‘일가상´ 받아 필리핀 근로자들이 주로 모이는 한남동과 자양동 성당에서 미사도 돕고 경험을 살려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시작했고 2003년부터 이곳에 몸담고 있다. 지난해엔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 봉사한 공으로 일가상(사회공익 부문)을 받았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창설한 일가 김용기(1912~88) 선생의 뜻을 기려 제정한 상. 수상 소감을 물었더니 “상 받을 일한 것도 없는데 공연히 받았다.”는 짧은 말로 그냥 넘긴다. “신월동 수도회 본원 수녀들이 나만 보면 농담삼아 아직도 일하느냐고 물어요. 할 수 있을 때까진 해야죠.” 젊은 이들,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구원과 자립을 큰 정신으로 삼는 수도회의 뜻을 철저하게 따라 살고 있는 수녀 산티아고. 하느님이 주신 사명인 ‘수도자’라면 타인을 돕고 타인을 위해 사는 봉사의 삶은 당연하다면서도 뼈있는 한 마디를 전한다. “살아갈수록 나 자신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존재임을 느껴요. 자기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거룩한 사람이 아닐까요.”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산티아고 수녀는 ▲1933년 필리핀 태생 ▲1953년 일본서 살레시오 수녀회 입회 ▲1956년 종신 서원 ▲1957년 한국 입국 ▲1957∼64년 서울 도림동본당 빈민, 환자 사목 ▲1965∼72년 광주 살레시오 초등학교서 영어, 교리 교육 ▲1972∼79년 서울 신길5동 수녀원장, 근로자 자녀위한 어린이집 운영 ▲1979∼93년 마산 살레시오 노동자기숙사, 창원 청소년교육회관 건립, 여성근로자 사목 ▲1993∼2003년 서울 신월3동 살레시오수도회 본원으로 이주, 청소년교육회관 운영책임 ▲2003년∼ 서울 성북동 필리핀공동체서 노동사목 ▲2007년 일가상(사회공익부문) 수상
  • 망토 두른 ‘9인조 여성 거지단’ 中서 화제

    중국 정저우(鄭州)에 망토를 두른 정체불명의 여성거지 무리가 길거리에 나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있다. 이들은 일명 ‘여성 9인조 거지단’으로 함께 몰려다니며 상점에 들어가거나 수시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8명의 여성과 아이 1명으로 구성된 이 조직은 모두 허름하고 긴 망토를 걸치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거리를 활보해 이목을 끌고있다. 이들은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에서 백발 할머니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지난 16일 오후 정저우시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판(凡)씨는 갑자기 들이닥친 ‘망토 부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무릎까지 내려오는 망토를 입고 있었으며 어떤 여성은 등에 아이까지 업은 상태였다. 판씨가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지만 이들은 알 수 없는 말로 대화를 나눈 뒤 상점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판씨는 “망토가 너무 크고 길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볼 수가 없었다.”면서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망토 속에 칼 같은 무기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가가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목격자에 의하면 상점을 나온 이들 ‘9인조 거지단’은 인근 길거리로 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아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꼬집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한 시민은 “이렇게 무리로 몰려다니는 거지단은 본적이 없다.”면서 “게다가 여자 거지단 이라니 놀랍다.”고 말했다. 정저우의 한 일간지 기자와 만난 ‘9인조 거지단’은 “왜 망토를 쓰고 다니냐”는 질문에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왜 돈을 구걸하냐”는 질문에는 조용히 아이를 가리킬 뿐 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곳 관할 경찰서의 한 경찰은 “이 거지단은 일대에서 이미 유명해졌다.”면서 “구걸을 하기는 하나 특별히 범법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아 지켜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지는 많이 봤어도 아이까지 업은 여자 거지단은 처음 본다.”며 “‘일’이 끝나면 모두 망토를 가방에 넣고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버스를 탄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신경림 누항 나들이] 곡예사와 나환자

    [신경림 누항 나들이] 곡예사와 나환자

    대통령이 특정종교의 독실한 신자인 것이 가끔 구설에 오른다. 너무 편애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출신 지방이나 학교와 함께 그 종교가 우대받는다는 비아냥으로 ‘고소영’ 정부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그 종교에 대한 호의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중학교 때 읽은 두 편의 소설의 영향이 큰 것 같다.‘타이스’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초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아나돌 프랑스의 ‘성모와 곡예사’, 또 한 편은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보바리 부인’으로 유명한 플로베르의 ‘나환자와 성자’이다. 정식 텍스트가 못 되고 중학생을 위한 문장독본 비슷한 책을 통해 읽은 것이어서 그것이 내용을 얼마나 제대로 전달하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대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기억된다. 한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성금을 받을 일이 생겼다. 신도들은 앞 다투어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갖다 바쳤다. 돈 많은 사람은 돈을 바치고, 권력이 많은 사람은 권력을 바치고, 곡식이 많은 사람은 곡식을 바쳤다. 그리고 서로 자기가 바친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자랑들을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칠 것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선량하고 믿음은 깊지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곡예사가 그였다. 사람들은 기껏 마당 비질이나 하고 풀이나 뽑는 그를 비웃고 업신여겼다. 어느 날 교회가 비었을 때 그가 남의 눈을 꺼리면서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래 뒤따라가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곡예사는 기도를 드리고 난 다음 마리아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재주를 넘는 것이었다. 저런, 하고 사람들이 놀랄 사이도 없었다. 곡예를 끝낸 그 앞으로 성모 마리아가 제단에서 사뿐사뿐 걸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마리아는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보고 있는 앞에서 손에 든 수건으로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이상이 아나돌 프랑스의 ‘성모와 곡예사’다. 플로베르의 소설은 이렇다. 어느 추운 날 성자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때 나환자인 거지가 덜덜 떨면서 다가왔다. 그는 성자한테 말했다. 추워 죽겠습니다. 당신이 입은 외투를 제게 주십시오. 성자가 웃는 얼굴로 외투를 벗어 주니까 또 말했다. 양복도 벗어 주십시오. 양복도 벗어 주었다. 아직도 추워 못 견디겠습니다. 속옷도 벗어 주십시오. 속옷을 벗어 주고 성자는 마침내 알몸이 되었다. 거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추워 죽겠으니 당신의 몸으로 내 몸을 따듯하게 안아 주십시오. 성자가 싫은 기색 없이 안아 주니까, 더 세게 안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하여 세게 끌어안았더니, 순간 나환자인 거지는 예수로 변해 있었다. 이 두 소설을 관통하는 기독교 정신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려이리라. 우리 주위에도 이 곡예사와 같은 순박한 신도, 이 성자와 같은 참된 성직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이 편애하는 신도나 성직자에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 고소영이라는 비아냥이 생겼을 터이다. 제단에서 걸어 내려와 돈 많은 사람, 권력 가진 사람을 다 놓아두고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곡예사의 땀을 닦아 주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 대통령이 겹쳐지는 그림을 나는 보고 싶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백만의 인파들이야말로 다름아닌 저 곡예사들이기 때문이다. 한데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하여, 사실과는 다르겠지만, 돈 많은 사람이나 지위 높은 사람들과만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는 이미지를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추워 죽겠으니 당신이 입은 옷을 벗어 달라는 나환자가 언제까지나 구걸하는 가엾은 나환자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에서도 현실의 메타포를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인
  • 한나라 “논란거리 해소… 촛불 원인 사라져” 민주“전화 사기극… 여야 합의에 맡겨야”

    한나라 “논란거리 해소… 촛불 원인 사라져” 민주“전화 사기극… 여야 합의에 맡겨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며 열린 ‘72시간 촛불문화제’ 마지막날인 8일에도 여야는 극한 대치 상황을 이어갔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통화를 놓고 한나라당은 “촛불이 타오를 이유가 사라졌다.”고 평가한 반면 통합민주당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화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를 통한 ‘쇠고기 해법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원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5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장시간 회동한 것으로 알려져 양측간의 조율을 토대로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두 정상 간의 통화에 대해 “외교적으로 재협상이 어려운 측면을 감안,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이례적으로 한·미 정상이 직접 나선 것”이라면서 “조만간 미국의 구체적 조치가 나오면 재협상 주장의 핵심인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한국에 절대 수입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쇠고기 논란의 마지막 문제까지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더이상 촛불이 타오를 이유가 사라졌다.”고 야당의 개원 협조를 촉구했다. 하지만 야당은 이날도 장외투쟁을 이어나가며 “재협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맞섰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당당한 재협상이지 굴욕 협상이 아니다.”고 꼬집었고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대통령은 검역주권을 포기한 굴욕외교도 모자라 구걸외교까지 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재협상을 주장하는 야당 사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사태 해결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서 “정국 해법 열쇠를 여야간 합의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은 고수하되 한나라당과 협의를 내세우면서 장외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논평에서 “6월10일은 100만 시민이 이대통령을 국민소환하는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해고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길회 홍희경기자 kkirina@seoul.co.kr
  • [이용원 칼럼] MB ‘노 맨’을 키워라

    [이용원 칼럼] MB ‘노 맨’을 키워라

    중국 춘추시대(서기전 722∼481년)에 천하를 번갈아 호령한 다섯 군주를 일러 춘추오패(五覇)라 한다. 그 가운데 두번째로 꼽히는 이가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으로, 결국 큰 명성을 얻었으되 삶의 여정은 험난했다. 아버지인 헌공의 말년에 벌어진 이복형제 간 승계 다툼을 피해 망명길에 나섰을 때 43세였고, 귀국해 권좌에 올랐을 때는 62세였다. 그 19년 동안 진문공은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때로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고, 먹을 것을 구걸했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때마다 그에게 초심을 잃지 않도록 깨우치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준 이들은 망명길을 함께한 측근들이었다. 진문공이 첫 망명지인 적(翟)나라에 있을 때 일이다. 본국에서 암살단을 보낸다는 소식에 황급히 이웃나라로 피신하는 도중에 재물을 몽땅 잃었다. 굶어죽게 된 일행은 농민들에게 밥을 구걸했지만 돌아온 건 그릇에 담긴 흙이었다. 진문공이 벌컥 화를 내자 측근인 호언은 조용히 달랬다. 흙은 국가의 근본이니 밥보다 얻기 어렵다, 그러니 장차 나라를 얻을 징조라고. 진문공은 농부들 앞에 나아가 절하고 흙 한그릇을 더 얻었다.10리쯤 더 가자 개자추가 고깃국을 진문공에게 바쳤다. 허겁지겁 그릇을 비운 진문공이 어디서 얻었느냐고 묻자 개자추는 제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였다고 실토했다. 진문공은 제(齊)나라에선, 군주의 딸을 부인으로 얻는 등 환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고국에 돌아갈 뜻을 잃은 듯했다. 걱정이 된 측근들은 어느날 밤 술에 곯아떨어진 진문공을 이불째 수레에 싣고 길을 떠났다. 뒤늦게 사태를 안 진문공은 ‘주범’인 호언에게 “내 진나라를 얻지 못하면 너를 죽이리라.”라고 원망했다. 이에 호언은 공이 실패하면 우리 모두는 어차피 허공을 떠도는 원혼이 될 것이라고 대꾸했다. 진문공의 고사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요즘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며 느끼는 답답함 때문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난 오늘까지 이명박 정부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뿐이다.‘강부자’니 ‘고소영’이니 여론의 질타를 받은 청와대수석·장관 임명에서 이번 쇠고기수입 협정 후폭풍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측근은 도대체 무얼 했을까. 진문공의 호언·개자추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제 자리를 걸고, 또는 이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각오로 ‘노(no)’라고 제동 걸려 한 측근이 있기나 한 걸까. 한·미 간 재협상 추진과는 별개로 인적 쇄신은 이뤄야 한다. 그리고 새로 발탁할 사람들은 ‘노 맨(no-man)’ 위주여야 한다.‘예스 맨(yes-man)’은 이미 넘치도록 많아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은 비록 20% 안팎으로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이명박 정부가 실정을 만회할 시간은 앞으로 넉넉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들로 진용을 짜느냐이다. 1993년 6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그룹 수뇌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면서 ‘신경영 선언’을 했다. 이제 그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천해야 한다. 대통령 본인을 제외한 모든 자리를 바꾼다는 각오로 물갈이를 단행하기 바란다. 측근 없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만 보이면, 유능하고 도덕적이면서 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줄 인물은 쌔고 쌨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측근이다. 이용원 편집국 수석부국장 ywyi@seoul.co.kr
  • 강경해진 野

    쇠고기 정국에 임하는 야권의 입장이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미국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금지’를 요청한 것을 ‘정치적 쇼’라고 비판한 데 이어, 자율규제 도입을 시사한 정부를 향해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급기야 4일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3당은 한나라당에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며, 무기한 등원 연기를 선언하는 등 대여 압박 강도를 높였다. 야권은 아울러 정부에 ▲이명박 대통령의 재협상 선언 ▲대폭적인 내각 재편 ▲어청수 경철청장 파면 및 촛불집회 과잉진압 책임자 문책 등을 촉구했다. 통합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정부는 퍼주기 협상으로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 주권을 상실한 것도 모자라 이젠 구걸까지 하고 있다.”면서 “자율규제는 고양이에게 부뚜막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긴급대책회의에서 “(30개월 이상 수출금지 요청은)파는 쪽에 팔지 말라고 간청하겠다는 것”이라면서 “한국의 어려운 실정을 미봉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며 즉각적인 재협상을 요구했다. 진보신당 노회찬·심상정 상임공동대표는 “20개월 미만의 뼈없는 살코기 수입 등을 뼈대로 장관고시를 한 뒤 미국이 불만을 토로하면 자연스럽게 재협상 테이블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전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한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과학과 사실에 대해 좀더 배우기를 희망한다.’는 언급에, 야권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다.‘한국민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버시바우 대사가)인간 광우병을 닮아가나.’라는 초강경 반응이 여과없이 터져나왔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최고위 회의에서 “국민 전체를 모욕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초기부터 미국측에 굴욕적인 자세를 보여서 이런 오만방자한 발언이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美쇠고기 어디로] 野 “재협상만이 근본 해결책”

    [美쇠고기 어디로] 野 “재협상만이 근본 해결책”

    3일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를 미국측에 요청키로 했다는 발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야권은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쇠고기 재협상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발언하자 비판 수위를 더욱 높였다. 야권은 정부의 발표가 내용상으로도 재협상으로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측의 일방적인 요청’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통합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실효성도 없는 추가협의 요청을 한지 반나절 만에 망신살만 뻗치고 말았다.”면서 “재협상은 커녕 재굴욕만 당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조정식 원내공보부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직후 “정부 발표는 재협상으로 볼 수 없다. 민주당은 재협상 관철에 집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같은 당 쇠고기 장외투쟁대책본부장인 송영길 의원은 “재·보선을 앞둔 정치적 제스처”라고까지 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모든 것을 미국에 백지위임하더니 이제는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금지해 달라고 구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도 “정운천 장관의 발표는 당정에서 결정된 ‘미국 측에 재협상을 요청하기로 한 것’보다 후퇴했다.”고 공격했다. 장외투쟁과 개원 거부 등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온 야권의 기존 입장은 그대로 지속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부평 롯데백화점 앞에서 쇠고기 재협상 촉구를 위한 2차 장외집회를 열었다. 6일째 서울 청계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인 민노당 지도부들도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과 협상테이블에 앉은 뒤 전면 재협상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하라.”고 압박했고, 자유선진당도 논평을 통해 “원점에서 시작하는 재협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개원 문제에 맞닥뜨린 민주당 내부는 난기류에 휩싸였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원혜영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두 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회동을 갖자고 했지만 원 원내대표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도 수용되지 않으면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의총에선 난상토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현 상태에서 개원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의원이 80%로 대세였지만, 장외투쟁에만 몰두하면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의견도 20% 정도였다.”고 전했다. 의총에선 개원 문제를 원내 지도부에 일임하기로 했다. ●이대통령·이회창 오늘 회동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을 갖고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포함한 정국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박선영 선진당 대변인은 “이 총재가 저녁 늦게 청와대를 방문, 박재완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4일 중 가능한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구혜영 홍희경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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