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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남미] 바다에서 금이?…10년 전 도둑맞은 금관 발견

    [여기는 남미] 바다에서 금이?…10년 전 도둑맞은 금관 발견

    "바다에서 금을 캘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 어부들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주저함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10년 전 도둑맞은 금관이 바다에서 발견됐다. 베네수엘라 언론은 "2009년 디오세사노 박물관에서 누군가가 훔쳐간 마르가리타 성녀의 금관을 어부들의 어망에 걸려 건져졌다"고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금관은 베네수엘라 수크레주의 차코파타에 사는 어부들이 조업을 나갔다가 발견했다. 어부들은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현지어로 페피토나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장에 나가 그물을 던졌다. 던진 그물을 건져 올리던 어부들은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정체를 확인했다. 그물에서 나온 건 작은 관. 귀금속에 대해 지식이 없는 어부들이었지만 한눈에 봐도 금관이 분명했다. 육지로 돌아온 어부들은 "바다에서 금관을 건졌다"고 자랑했다. 이웃들은 발견한 금관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 어부들을 베네수엘라 군인들이 찾아온 건 31일 아침. 이른 시간에 들이닥친 군인들은 "바다에서 발견한 금관을 내놓으라"라고 했다. 어부들이 금관을 내놓자 이번엔 스마트폰을 검열하며 찍은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군인들이 돌아간 후 공포에 떨던 어부들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 건 최근 현지 언론의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다. 현지 언론은 "차코파타의 어부들이 10년 전 도난 당한 마르가리타 성녀의 금관을 바다에서 건졌다"고 보도했다. 순금으로 제작된 관은 무게 165g짜리로 2009년 도난사건 후 행방이 묘연했다. 베네수엘라 가톨릭교회는 9일 공식행사를 열고 금관을 마르가리타 성녀에게 다시 씌워줄 예정이다. 군인들이 가져갔던 금관이 무사히 성녀에게도 돌아가게 된 데는 어민들의 공이 컸다. 현지 언론은 "군인들이 사진을 삭제하도록 했지만 일부 이웃주민들이 삭제한 사진을 복원, 언론에 제보하면서 군인들이 금관을 가톨릭에 돌려주게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진=엘피타소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부고] 이성원씨 모친상, 임석우씨 모친상, 박영숙씨 부친상

    ●이성원(대구 강북우리교회 목사)·이은희·이성희·이정희씨 모친상, 장병진(부산일보 사회부 기자)씨 외조모상, 4일 낮 12시20분께, 경산시 옥산전문장례식장 201호실, 발인 6일 오전 8시. 053-801-4444 ●임석조·임석우(에스원 부사장)·임석희·임석교·임석길·임석란씨 모친상, 한복희·우혜수(전 리움 학예실장)씨 시모상, 정대섭·안철원(서울시립대 교수)·이남우(한국전력 부장)씨 장모상, 4일 오후 3시53분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6일 오전 10시. 02-3410-6917 ●박영숙(㈜에스에스드림 대표)·박진우씨 부친상, 엄호윤씨 장인상, 임해옥씨 시부상, 4일 낮 12시14분께, 동국대 일산병원 장례식장 16호실, 발인 6일 낮 12시30분, 장지 파주 동화경모공원. 031-961-9400
  • [100초 인터뷰] ‘배꼽빌라’ 개그 3인방 “여기서는 내가 주인공!”

    [100초 인터뷰] ‘배꼽빌라’ 개그 3인방 “여기서는 내가 주인공!”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타인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지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합니다.” 여기 웃기는 일이 직업인 세 남자가 있다. SBS 공채 개그맨 12기 김승진(32), 13기 유룡(32), 14기 이재훈(29)씨가 그 주인공이다. 한동안 방송에서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이 유튜버로 돌아왔다. ‘배꼽빌라’. 지난해 8월 14일, 이들이 문을 연 유튜브 채널 이름이다. 이름의 탄생 배경을 물었다. “빌라 한 채씩 갖는 것이 꿈”이어서 붙인 이름이란다. 서울신문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연습실에서 배꼽빌라 멤버들을 만났다. 2017년 SBS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이 폐지되면서 많은 희극인이 직장을 잃었다. 김승진, 유룡, 이재훈씨도 그 안에 포함됐다.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청춘의 시간을 열정으로 보낸 이들에게 위기는 기회가 됐다. 언제든 웃길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세 남자는 유튜브로 무대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이 제작한 콘텐츠 몇 개가 그야말로 대박을 치면서 인지도가 치솟았다. ‘배꼽빌라’로 만난 이들에게 인기를 실감하느냐고 물었다. “웃찾사 때보다 더 많이 알아봐 주신다”며 세 남자는 수줍어했지만,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단단한 철칙을 세우고 출발했음을 밝혔다. 김승진씨는 “누가 봐도 유쾌한 채널이 되자”라는 것이라고 했고, 이재훈씨는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모두를 해피하게 만드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낸 콘텐츠가 벌써 100여개다. 그중 재생수 100만을 넘긴 것은 무려 8개나 된다. 특히 지난 3월에 게시한 ‘마마보이 몰카(이하 실험영상)’는 재생수 325만을 넘겼다. 최근 선보인 ‘노래가사로 대화하기’와 ‘재벌2세 실험영상’은 각각 재생수 180만과 160만을 훌쩍 넘기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배꼽빌라’란 이름을 알린 일등 공신은 ‘마마보이 실험영상’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마마보이 콘셉트로 제작된 실험영상으로, 김승진씨의 “엄마, 나 나이트 가도 돼?”와 스님 복장을 한 유룡씨의 “엄마, 나 주말에 교회 가도 돼?”라는 엉뚱한 통화가 누리꾼들의 시선을 확실히 사로잡은 것이다.이에 대해 김승진씨는 “웃찾사에서 했던 캐릭터를 무대 밖에서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며 “특히 ‘마마보이 실험영상’이 저희를 많이 알린 영상이라 유독 애착이 간다”고 고백했다. ‘배꼽빌라’의 인기 상승폭만큼이나 부정적인 시선도 생겼다. 실험영상의 경우, ‘연출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재훈씨는 “저희 촬영은 100% 리얼로 진행된다. 조작은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하고 명확하게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제작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어 “영상에 출연하는 모든 분께 초상권 허락을 구한 뒤 내보낸다. 저희를 믿고,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부탁의 말을 덧붙였다. 이들에게 최종 목표를 물었다. 세 사람은 망설임 없이 “다시 방송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며 한 목소리로 답했다. 김승진씨는 “웃기고 싶어도 설 무대가 없어서 시작한 일이 유튜브다.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꾸준히 연구해서 개그맨은 다르구나,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하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유룡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재미있는 영상으로 여러분께 다가가는 게 저희 일 같다. 앞으로 구독자 100만까지 힘차게 달려보겠다”며 소박한 계획을 덧붙였다. 이재훈씨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아들이 잘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부모님을 향해 미안함과 감사를 표했다. 끝으로 유튜버의 매력을 묻자, 유룡씨는 “아무런 제재 없이, 누구의 개입도 없이, 우리 세 명의 의견만으로 영상을 만들고, 그것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고, 이재훈씨는 “카메라만 있으면, 어디서든 무대를 만들 수 있고, 웃음을 드릴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지켜보는 관객을 위해 배려를 기저에 깔고 웃음을 만드는 ‘배꼽빌라’. 이들의 따뜻한 철칙이야말로 이 시대 관객이 원하는 진정한 희극인의 태도가 아닐까.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트럼프 ‘올백’ 스타일로 교회 예배에 깜짝 등장

    트럼프 ‘올백’ 스타일로 교회 예배에 깜짝 등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머리 스타일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평소 한결같은 머리 스타일을 자랑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의 한 교회 예배에 깜짝 등장했다. 총기 난사로 12명이 사망한 버지니아주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골프를 치고 곧바로 예배에 참석하느라 머리를 손질하지 못해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을 모두 넘긴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트위터 등을 통해 “트럼프의 새 헤어스타일”, “이 스타일이 더 자연스럽다”, “평소 모습이 젊어보인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영국 국빈방문에서는 원래의 헤어스타일로 돌아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툭하면 국회 거부·장외 투쟁·막말… 정치, 그것밖에 할 게 없나요

    툭하면 국회 거부·장외 투쟁·막말… 정치, 그것밖에 할 게 없나요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로 접어들었고 경제와 남북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국운이 크게 걸린 문제이다. 그러나 경제는 현실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순조롭지 못한 형편이고 남북관계는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할 상황인데 정치 상황이 협조해 주지 않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목사에서 신학자로 변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20세기 초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와 빈민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던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들이 모여서 비도덕적인 사회를 만들어 내는 기이한 현상에 주목했다. 인간은 도덕적인데 사회는 왜 비도덕적일까?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니버가 출간한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이유는 이렇다. 인간은 도덕과 이익의 두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개인들 사이에서는 도덕이 작용할 여지가 있지만, 복수의 인간들이 이익을 목적으로 구성한 사회에서는 도덕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가정에서는 도덕을 말하지만, 사회에서는 도덕을 잊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중생활을 모순 없이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니버에 의하면 개인들 사이의 행위는 정치공동체가 규범으로 규율하기 때문에 도덕적 강제가 가능하지만, 집단의 경우 그 행위를 규율하는 상위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덕이 작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회의 비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인간들이 비도덕적인 사회에 저항해야 하고, 그 저항이 정의가 되고 힘이 될 정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 니버의 처방이다. 니버의 진단과 처방은 1세기 전의 것인데 이제 와서 그를 다시 불러들이는 이유는 우리 정치의 심각한 비도덕성 때문이다. 니버의 표현대로라면 정당과 국회가 가장 비도덕적인 집단이 되었다. 밑도 끝도 없는 정치 싸움이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이다. 주권자의 관점에서 판단하자면 이러한 상식 이하의 정치를 위해서 정당과 국회를 만들고 세금을 지원해야 하는 것인지 회의적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정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치학자의 수만큼이나 많겠지만, 통상 권력구조, 재화의 배분, 합의의 창출, 갈등조절, 민주와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신장 등과 같은 문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문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 혹은 가능성의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 특정한 사회적 주제에 대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무엇인가의 가능성, 이것이 정치다.그런데, 왜 정치가 문제인가?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었고 무엇인가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공동체의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서 멀어져 있다는 뜻이다. 정치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설계된 높은 수준의 국가적 장치인데, 본령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들 정치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해 보자.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적 무관심이다. 모두가 방관자를 자처하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플라톤이 말했다. 한나 아렌트가 겪었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의 배경에도 정치적 무관심이 작동한다. 정치에 관심 없다는 사람에 대해 루소는 공동체에 불필요한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정치적 무관심은 중용이나 중립과도 무관하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정치적 무관심”이라고 지목했다. 미국의 밀턴 마이어는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라고 갈파했다. 마이어의 책에는 게슈타포가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차례로 잡아가고 마지막에 자기까지 잡아가도록 만든 침묵과 동조에 대한 독일인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통한의 참회도 실려 있다. 직접적인 이유는 과도한 정치적 행동주의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행동주의가 국회 거부, 장외 정치, 막말 정치의 세 가지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당의 행동주의를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과유불급에 자승자박의 선택이다. 정치적 행동주의는 정치적 무관심의 반대편에 존재하지만, 서로는 매우 가깝다. 양 극단은 서로 통하고 극단적 무관심은 극단적 행동주의의 자양분이다. 과거 히틀러를 독일정치로 불러낸 것이 파시스트 극우 행동주의였다면 최근 트럼프를 미국정치로 불러낸 것은 여론조사에도 잡히지 않는 정치적 무관심이다. 한국당이 장외 정치를 빌미로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한 것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또 장외 정치가 필요하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국회 일정에는 협조하는 것이 마땅하다. 야당이 국회를 거부하면 국회는 더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 사실이 있다. 역사적으로 국회는 권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야당의 활동 무대였다는 사실이다. 국회를 거부하는 것은 독재권력의 논리이지 야당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당의 지지층을 포함해서 많은 국민이 지금 국회의 시급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한국당이 절제되지 않은 정치적 비속어를 반복해서 남발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정치적 행동주의와 무관하고 장외 투쟁과도 무관한 것이다.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대변인이 계주하듯 비속어를 쏟아내는 것은 정당으로서는 커다란 실책이고 씻기 어려운 과오이다. 비속어의 정도가 심해서 정당에 대한 신뢰를 더욱 실추시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배링턴 무어는 세계적 수준에서 혁명의 전개과정을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의 세 갈래로 구분한 후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부르주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no bourgeois, no democracy)는 유명한 테제를 선언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촛불혁명 다음 국면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당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기여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 집권을 준비하는 공당이라면 적어도 “한국당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정도의 테제는 마련해야 하지 않나? 니버가 거론한 비도덕적 사회에는 기업, 교회, 단체, 정당도 포함된다. 그중에서 정당은 공공성의 수준이 매우 높은 집단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정당의 활동을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정치 관계자들은 정당과 국회의 도덕성을 높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추필법으로 표현하자면, 정당이 건전하게 발전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사회적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정당과 국회가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국민이 정당과 국회에 저항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정의와 힘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입법자가 책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에 입법자를 창출한 주권자가 그 책무를 보충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자연법적으로 권장된다. 관건은 국민의 무관심을 극복하는 문제인데, 정당과 국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과제는 정치적 사안을 넘어 우리들 모두의 먹고사는 문제를 포함한 공동체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을 서로 자각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광화문의 촛불이 일상의 촛불로 재탄생되어 비도덕적인 정치를 규율하는 사회적 장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상지대 총장
  • 제주 4·3 실무위, 희생자 9명 추가 의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는 최근 열린 제167차 회의에서 희생자 9명, 유족 1208명 등 총 1217명을 의결했다고 3일 밝혔다. 실무위는 이번에 의결한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해 제주4·3중앙위원회에 최종 심의 결정을 요청했다. 9명의 희생자는 사망 6명, 행방불명 2명, 수형자 1명이다. 그동안 실무위의 10차 심사까지 의결된 추가 신고자는 희생자 264명, 유족 1만 1823명 등 총 1만 2087명에 이른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3중앙위가 지금까지 의결한 희생자는 1만 4363명, 유족은 6만 4378명이다. 한편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가 주최하고 제주도, 강창일 국회의원실,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주관하는 제주 4·3 인권 심포지엄이 오는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강우일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 기조발표를 하고 한미 현대사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 퓰리처상 수상자인 찰스 헨리 전 AP통신 편집부국장, 유엔인권이사회 강제실종위원인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 등이 토론에 나선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풍덩~풍덩” 성남시 23곳 물놀이장 8일 일제 개장

    경기 성남시는 탄천과 공원 놀이터에 조성한 물놀이장 23곳이 8일 일제히 개장한다고 3일 밝혔다. 8월 18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7시까지 각 물놀이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소독과 시설물 관리를 위해 휴장한다. 능골·태현공원 물놀이장은 일요일에 휴장한다. 탄천 물놀이장은 5곳이다. 수진동 삼정아파트 앞, 야탑동 만나교회 앞, 수내동 분당구청 뒤, 정자동 신기초교 앞, 구미동 불곡중학교 앞에 있다. 공원 물놀이장은 9곳이다. 희망대·단대·영장·위례·은행·대원·사기막골·능골·태현공원 안에 있다. 놀이터 물놀이장은 주택가 9곳에 있다. 산성동 은빛나래 ·수진2동 푸른꿈·양짓말·양지동·신흥2동 정다움·상대원2동 꿈마을·성남동 나들이·금광1동 푸른꿈·금광2동 자혜놀이터 등이다. 각 물놀이장은 바닥분수, 조합 놀이대, 워터 슬라이더 등의 시설을 갖췄다. 시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각 물놀이장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주 1회 수질검사 등 위생관리를 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김석훈 결혼식 사진에 돋보이는 신부 미모

    김석훈 결혼식 사진에 돋보이는 신부 미모

    김석훈 결혼식 사진이 공개됐다. 배우 김석훈은 1일 신부를 처음 만난 교회에서 가족, 친지, 지인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진행했다. 이상엽은 이날 오후 자신의 SNS에 “데뷔할 때 처음 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를 일일이 챙겨주시고 방송국 곳곳을 소개해주시고 카메라 앞에 서는 법도 가르쳐주셨어요. 첫 세트장 녹화 때 긴장하는 저를 위해 함께 현장으로 나와주셨던, 마음이 지칠 때 늘 생각나고 술잔 기울여주시던, 저에게는 은인이고 스승이신 김석훈 형님이십니다”라는 글을 게재하며 김석훈의 결혼을 언급했다. 이어 이상엽은 “석훈이 형이 오늘 결혼을 하십니다. 석훈이 형 이제 더 행복해지시길. 석훈이 형 이제 더 웃을 일이 많아지시길. 축하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김영철은 김석훈과 신부의 뒷모습을 담은 결혼식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특히 신부의 돋보이는 옆라인이 눈길을 ㄲ쓴다. 김석훈은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극단 단원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하다 지난 1998년 드라마 ‘홍길동’에서 주인공 홍길동 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토마토’, ‘경찰 특공대’, ‘한강수타령’, ‘폭풍속으로’, ‘비밀남녀’, ‘행복한 여자’, ‘천추태후’, ‘반짝반짝 빛나는’, ‘루비반지’, ‘징비록’, ‘엄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브라운관을 장악했으며,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또 지난 2010년 9월부터 지금까지 ‘궁금한 이야기 Y’의 스토리텔러로도 활약 중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김석훈 결혼, 의외의 인맥 총출동 ‘인맥부자’

    김석훈 결혼, 의외의 인맥 총출동 ‘인맥부자’

    김석훈 결혼식 사진이 공개됐다. 개그맨 김영철은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홍길동 #김석훈 형 결혼 축하해! 석훈이형때문에 #충신교회 친정교회도 오랜만에 가고. 미선누나 진영이도 보고” 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게재된 사진 속 김영철은 신랑 김석훈, 박미선, 권진영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의외의 인맥에 네티즌 눈길이 모아졌다. 한편 김석훈은 1일 신부를 처음 만난 교회에서 가족, 친지, 지인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진행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제9회 성북구 효도실천협의회 효잔치’ 개최

    ‘제9회 성북구 효도실천협의회 효잔치’ 개최

    김춘례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성북1)은 지난 5월 30일 성북구 성일교회에서 열린 ‘제9회 성북구 효도실천협의회 효(孝)잔치’에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올해 9회째를 맞이한 효 잔치는 성북구 효도실천협의회(회장 심일선)에서 주최·주관하는 행사로 매년 협의회 후원금으로 개최되고 있다. 심일선 신임 회장은 “나이를 먹는 것은 단순히 늙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연륜이 쌓이는 것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오신 공로에 감사드린다. 오늘 행사를 즐기시고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바란다”며 개회사로써 행사를 열고, 내빈을 소개했다. 내빈으로는 유승희 국회의원, 이승로 구청장, 임태근 성북구의회의장, 김춘례 서울시의원, 최정순 의원, 원용식 성일교회 목사, 양보경 성신여대 총장, 안향자 성북구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어서 문부남 전임회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성북구 내 효행자 12명에게 4명의 구청장표창과 8명의 국회의원표창을 수여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축사에서 “어르신들께 나누고 베풀며 느끼는 기쁨은 너무나 크다. 그동안 효도실천협의회 문부남 전임회장님께서 잘 이끌어 오신 것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을 잘 모시고 섬기겠다” 고 전했다. 이어 원용식 목사는 “노년의 아름다움은 예술작품과 같다. 노년은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후대들을 비추는 삶이 되도록 가꾸어 가야 한다”고 어르신들을 격려했다. 양보경 성신여대 총장은 “전 세대의 우리 사회를 이끌어 주신 어르신들께 감사의 답례로 우리 교직원들이 정성껏 도시락을 마련했으니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란다”며 감사를 표했다. 끝으로 김 의원은 “지난 10년간 효도실천협의회의 고문으로서 활동해오며 느낀 점은 어르신들을 대표할 의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대표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문부남 전임 회장님과 심일선 신임회장님 이하 협의회 구성원 모든 분들, 오늘 행사 진행에 힘쓰고 있는 성북한마음봉사회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축사를 마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사람 만나고 싶다”는 MB…

    [박록삼의 시시콜콜] “사람 만나고 싶다”는 MB…

    그의 생애는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한국 현대사, 그중에서도 특히 천민적 자본주의와 고스란히 맥이 닿아 있었다. TV 드라마며, 책이며, 온갖 신문 잡지 기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 소개됐던 그의 성공 신화는 많은 이들에게 ‘또다른 삶은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그가 굴지의 대기업 CEO가 됐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하나의 신화(神話)였지만, 현실 속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부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 듯해도 계급의 이동, 부의 이동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였다. 비록 지금 각자 현실은 비루하고 보잘 것 없지만, 높은 꿈을 세우고 밤낮 없이 노력하면 당신도 CEO가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게다가 그가 서울시장에 이어 대통령까지 되려고 한다니 자신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까지 모두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생겼다. 익히 짐작되겠지만 전 대통령 이명박씨 얘기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성공신화 뒷편에 숨겨져 있는 것들이 많았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수면 위로 많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거짓말과 탐욕, 비리, 부도덕, 불법 등으로 점철된 것들이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 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예컨대 2007년 11월 홍준표 한나라당(현재 자유한국당) 클린정치위원장이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대해 기자들에게 말했다. 소문으로 떠돌던 이른바 ‘발가락 다이아 사건’이었다. 이는 MB대선캠프 전략기획본부장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이 지난해“김 여사가 한 재미사업가로부터 ‘3만 달러가 든 명품백’을 받았고, 돈으로 보도를 무마했고, 다른 대가를 약속한 각서를 써줬다”는 폭로와도 맥락이 닿는 일이었다. 부도덕함은 그들의 일상에 가까웠다. 정치인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례대표였던 이씨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흔히 ‘정치 1번지’로 불리곤 했던 서울 종로에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와 노무현 후보 등을 꺾고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200억~300억대 자산가로 통하던 그가 자신의 재산을 2억 6000만원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것은, ‘전재산 29만원’이라는 전씨 못지 않게 씁쓸한 애교였다. 이씨의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씨가 불법선거 사실을 폭로한 탓이다. 이후 과정은 거짓말과 거짓말로 이어지는 추악함 그 자체였다. 그는 돈으로 김씨를 회유하고 홍콩으로 도피시켰다. 그럼에도 이씨는 검찰 수사 내내 “종교인으로서 약속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사실과 다른 것이 나오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 검사는 “이명박은 일체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범인도피 사실 등 모두 자백했다”고 술회했다. 결국 1997년 1심에서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 및 범인은닉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 이듬해 2월 21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원심이 확정됐지만, 의원직을 이미 사퇴했기 때문에서인지 사람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참고로 그의 범법사실 대부분에는 측근의 배신이 늘 있었다. 이익으로 맺어진 계약 관계는 이익이 사라지거나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봄눈 녹듯 사라지게 마련이다. 아무튼 BBK, 위장전입, 선거법위반, 도곡동 땅 등 이른바 ‘전과 13범 대통령 후보’에 대해 세상은 관대하기만 했고, 그는 결국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됐다. 이후 변화는 힘겹게 이뤄낸 역사 발전의 성취가 얼마나 빠른 시간에 퇴행할 수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줬다. 민주주의가 역행했고, 서민경제가 파탄났고, 한반도 평화는 전쟁 위기로 치달았고, 4대강을 막아 서서히 녹조로 썩게 만들었고, 방위산업과 해외자원개발에 흥청망청 실속 없이 돈을 퍼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막대한 경제적 특혜를 봤고, 민간인을 사찰했고, 조중동에 종편이라는 선물을 안겨 여론시장을 문란시켰고, 군·경·국정원을 동원해 대선에 깊숙히 개입했다.그는 후임 박근혜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하며 자신의 추악한 실정과 각종 범법 사실을 외부에 드러내는 시간을 5년 가까이 유예시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0월 “피고인 이명박에 징역 15년 및 벌금 130억 원에 처한다. 82억7700만3643원을 추징한다”고 선고했다. ‘다스’의 실소유자로서 245억원을 횡령하고, 84억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였다. 많은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의 추잡스러운 범죄 행위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10년 전 ‘747’이니 하는 허황된 얘기로 부풀린 부자의 꿈에 맞장구치며 그를 500만표라는 압도적 표차이로 대통령 되게 해준 이들 또한 국민이었지만, 그랬기에 모멸감은 더욱 컸다. 더욱이 지난 3월 ‘수면무호흡, 탈모’ 등 핑계를 대며 신청한 보석에 재판부는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통신 대상도 변호인, 가족으로 제한하는 등 가택연금 형식의 조건부 보석을 허가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 다수의 국민들이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한데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처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탐욕스러운 이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최근 이씨는 “사람들도 더 만나고 싶고, 교회도 가고 싶고, 삼성동 사무실에도 주 1~2회 나가고 싶다”면서 보석의 조건을 완화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가 국민 다수의 법감정 등까지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판단할 내용이다. 다만 그의 끝없는 거짓말과 욕심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이제 울화통을 터뜨리는 데도 지쳤다. 뻔뻔함의 끝은 어디인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헝가리 유람선 참사 애도·추모 물결...고노 일 외무상·부다페스트 추기경 위로 전해

    헝가리 유람선 참사 애도·추모 물결...고노 일 외무상·부다페스트 추기경 위로 전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지난 29일(현지시간) 한국인 26명이 사망·실종된 헝가리 유람선 사고와 관련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30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종이 서한을 남관표 주일대사에게 보내왔다고 주일한국대사관 측이 31일 밝혔다. 그는 이 서한에서 지난 28일 도쿄(東京) 인근 가와사키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먼저 사의를 표했다. 이어 고노 외무상은 “헝가리에서 발생한 유람선 사고로 많은 한국분들이 희생되었다는 비보를 접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며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한국 정부에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었다. 주일한국대사관 측은 고노 외무상이 보내온 메시지를 요약해 대사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앞서 남 대사는 가와사키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초등생 등을 상대로 한 50대 일본인의 흉기난동 사건으로 어린이 등 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는 보도가 나온 뒤 곧바로 고노 외무상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한편 헝가리 부다페스트 가톨릭교회 수장인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헝가리 수석 주교)은 이날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에게 보낸 위로 서한을 보내 빠른 구조와 회복을 기원했다. 에르되 추기경은 “29일 밤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이 충돌사고로 침몰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면서 “희생자 가족들,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자들, 대한민국 국민들의 슬픔을 함께하며,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그는 “실종자들의 빠른 구조와 부상자들의 회복, 그리고 비극적 사고로 아파하는 가족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겠다”고 덧붙였다. 에르되 추기경은 최근 서울대교구에서 열린 ‘2019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 정착 문제와 관련한 헝가리의 경험을 전한 바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과천경찰서, 손석희 대표 ‘뺑소니 의혹’ 무혐의 결론

    과천경찰서, 손석희 대표 ‘뺑소니 의혹’ 무혐의 결론

    ‘뺑소니’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아온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기 과천경찰서는 손 대표의 ‘도주·사고 후 미조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31일 밝혔다. 손 대표는 2017년 4월 16일 과천의 한 교회 주차장 부근에서 A씨가 운전하던 견인차와 접촉사고를 내고도 도주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시민단체 ‘자유연대’가 지난 2월 이런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해자의 인적·물적 피해가 없고 진술 외에 손 대표가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했다는 것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당시 피해자 A씨가 병원이나 정비소에서 상해진단서, 차량수리 견적서를 받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판단했다. 또 견인차 기사가 사고 직후 손 대표를 따라가 아무런 조치 없이 자리를 떠난 데 대해 항의하고 손 대표로부터 합의금을 받은 사실만으로는 손 대표가 사고를 인지하고도 도주했다고 보기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유연대는 고발장 제출 당시 “사고의 실체뿐 아니라 동승자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동승자 여부는 사고와 무관하다고 판단해 조사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다만 이 사고와 관련한 취재를 하던 프리랜서 기자 김웅(47)씨를 올해 1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일식 주점에서 폭행한 혐의에 대해서는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수사를 받다가 최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강물, 도로 바로 아래까지 찼는데 무리한 운항”

    헝가리 부다페스트 현지 교민들은 밤사이 발생한 사고 소식에 크게 놀랐다. 뉴스를 주시하며 사고 수습을 도울 방법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교민 사회에서는 사고 유람선의 안전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민 A씨는 3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3주째 비가 오면서 강물이 불어난 데다 (사고가 발생한) 어제는 구름이 끼고 비도 조금씩 내렸다”며 “지난 6년간 부다페스트에 살면서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사고가 났다는 뉴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여러 악조건이 겹치며 안타까운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최근 수일째 헝가리를 비롯해 동유럽 일대에 큰비가 내리면서 강 수위가 평소보다 높은 5m에 이르자 유람선 선장들이 정밀하게 배를 조종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고 당시 다뉴브강에서 다른 유람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소개한 한 한국 관광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강 수위도 도로 바로 아래까지 차고 유속도 빨라 운행이 중단됐어야 마땅할 정도의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못했던 것이 사고의 주요 원인 같다”고 했다. 현지 한인 교회 관계자는 “사고 당시 간헐적으로만 비가 왔기 때문에 배가 운항했다. 폭우가 오지 않는 한 유람선은 뜬다”면서 “여기서는 유람선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보통 입지 않는다”고 전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다뉴브강에서는 경찰과 소방 대원들이 수색작업이 한창이다. 교민 B씨는 “아침 일찍 사고 현장에 가봤는데 경찰차와 소방차 여러 대가 여기저기 서 있고, 폴리스라인도 쳐져 어수선했다”고 전했다. 또 헝가리 취재진과 시민들은 강변과 다리를 지나며 현장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교민 C씨는 “주요 방송사에서 한 시간마다 중계 방송을 내보낼 정도로 유람선 사고는 지금 헝가리에서 가장 큰 뉴스”라면서 “여태껏 한 번도 발생한 적 없었던 사고여서 헝가리인들도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지붕 밑 익선동 한옥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시간을 잊고 멈춰 있다

    지붕 밑 익선동 한옥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시간을 잊고 멈춰 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5회 서울의 영화1(이형표 감독의 서울의 지붕 밑)’ 편이 지난 25일 종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종로3가역 14번 출구 서울극장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극장을 출발, 피맛길을 거쳐 한의원 가업을 7대째 잇는 춘원당 한방박물관을 방문했다. 이어진 유진식당~허리우드극장~낙원떡집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미래유산 코스다. 운현궁을 지나 떡박물관 10층 ‘지붕 위’에 올라 ‘지붕 밑’ 익선동 한옥 기와 지붕을 내려다봤다. 익선동 골목길을 돌고 돌아 호텔로 변한 ‘서울 3대 요정’ 오진암 터를 만났다. 인파로 넘치는 익선동 골목에는 1920~30년대 경성시절 모던보이, 모던걸 차림의 청춘들이 활보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영화 속 서울거리를 열성적으로 재현해줬다. 투어가 끝난 뒤 설문에 응한 참가자들은 “서울에 살면서도 모르던 것을 알게 돼 보람 있었다”, “무심히 지나쳤던 종로거리에 이런 사연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1000평에 건물 90채… 쪽방 780개에 740명 살기도 1960년대 서울은 영화도시였다. 영화 속 서울은 산업화시대 도시공간의 원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영화는 조선시대 한양이나, 일제강점기 경성, 한국전쟁의 폐허가 아닌 근대 산업화 시기 서울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산업화가 곧 도시화였으며, 영화는 문명세계의 첨병이었다. 주인공들은 한옥과 양옥, 한의학과 양의학이 공생하는 도시의 지붕 밑을 어슬렁거렸다. 좁은 골목을 오가는 카메라의 뷰파인더에는 새것에 대한 찬미와 낙오된 부적응자의 절망이 담겼다. 종로3가에서 을지로를 지나 충무로로 이어지는 길은 1980년대까지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스카라, 국도극장, 명보극장, 대한극장 등이 밀집된 한국 영화산업의 메카였다. 이 시기 영화는 도시와 군중을 관찰하는 만보객(漫步客)의 역할을 해냈다. 영화를 통한 서울읽기가 가능한 까닭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옥 기와, 탑골공원, 시내 교차로, 도심의 높은 빌딩 등 서울의 상징물이 등장한다. 특히 한옥과 양옥이 마주 보는 골목 풍경은 전통 생활 방식과 서구적 과학 문명이 어우러지고 충돌하는 현장을 예고한다. “서울의 지붕 위에 아침 해가 솟으면 오늘도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겨누고 사는 이 골목 안에 서울의 희한한 꿈과 사랑과 웃음과 눈물이 살아서 숨결 짓는다”는 내레이션은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1961년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지붕 밑’은 1956년 작 ‘서울의 휴일’이 ‘로마의 휴일’(1955년 작)의 제목을 모방한 것처럼 ‘파리의 지붕 밑’(1930년 작)에서 제목을 딴 복제품처럼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선망의 도시 로마와 파리의 낭만을 서울에다 옮겨놓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조흔파 원작 ‘골목 안 사람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초호화 출연진을 자랑한다. ‘마부’의 김승호와 성격배우 허장강, 합죽이 김희갑이 동고동락하는 골목 안 ‘세 영감’으로 출연했다. 김승호의 부인은 한은진, 딸은 최은희, 딸을 사랑하는 최 박사는 김진규, 아들은 신영균, 아들과 결혼하는 점례는 도금봉, 점례의 어머니 황정순, 골목 안 전파사 주인 구봉서, 떠오르는 ‘신성’ 신성일까지 깜짝 출연했다. 이형표 감독은 해박한 영화이론과 영어 실력 그리고 다큐멘터리로 다져진 실력파였다. 1961년 신상옥 감독 연출 ‘성춘향’의 촬영감독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은 영화에 어떻게 투영됐을까. 영화는 서울이라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삶을 대폿집, 실비집, 선술집에서 보여준다. 또 주인공들이 식당에 들어갔을 때 메뉴에는 돼지갈비 50환, 빈대떡 100환, 냄비우동 100환이라고 적혀 있다. 만둣국, 순댓국, 떡국과 함께 벽에 ‘양조장 술’이라는 광고 문안도 붙어 있었다. 초동교회 옆 돈의동 쪽방촌은 1960년대 영화의 세트장처럼 시간의 흐름을 잊고 멈춰 있다. 10여년 전 자료에 1000평 부지에 골목, 교회, 가게를 포함한 90여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니 집 한 채가 10평이 안 된다. 방 1개를 나눠서 1평짜리 방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쪽방 780개에 740여명이 거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래 이곳은 땔감과 숯을 팔던 시탄(柴炭)시장이었다가 1930년대 폐쇄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종삼’이라고 불리는 윤락가였다.●익선동 삼국·조선의 역사 지층 간직… 문화도 다층적 1968년 서울시가 ‘나비작전’을 펼쳐 사창가를 철폐하기 전까지 종로 3, 4가를 중심으로 하는 봉익동, 훈정동 일대는 2000여명에 이르는 윤락녀와 150여명의 포주, 200여명의 삐끼(호객꾼)들의 터전이었다. 당시 종삼에는 15~20평 정도의 단층 짜리 낡은 한옥이 300여채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지금은 금·은 세공과 판매 점포 300여개에서 일하는 사람만 1500여명에 이르는 서울 최대의 금·은 세공, 판매 단지다. 이날 투어단이 찾은 익선동은 역사적 다층성, 사회적 다층성, 문화적 다층성이 혼재된 공간이다. 서울은 다양한 층위(層位)를 가진 역사도시이고, 오래된 도시는 다층적이기 마련이다. 기원전의 도시 서울에는 삼국시대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역사지층이 드문드문하고, 조선의 지층과 유구, 유적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지층과 1960년대 이후 산업화시대 때 생성된 지층 또한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사회적 다층성과 문화적 다층성, 생태적 다층성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기억하는 다층성의 요소이다. 한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굽이치며 정겨운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익선동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익선동은 정확하게 ‘익선동 166번지’ 누동궁 터이다. 조선 제25대 철종이 태어나 14살 때 강화도로 쫓겨 가기 전까지 산 곳이다. 등극 이후에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사당을 짓고, 형 영평군이 살면서 제사를 지내도록 지어준 집이다. 2500여평에 이르는 이 궁의 익랑(대문 좌우에 붙은 행랑)이 특이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익랑골’, ‘익랑동’, ‘익동’이라고 불렀다. 익선동이라는 지명은 동네 이름인 익동의 ‘익’에 이 지역을 관할하는 정선방의 ‘선’을 넣어서 만든 지명이다. 바로 옆 낙원동 58번지 종로세무서는 옛 대빈궁 터였다.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사당이 칠궁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경성측후소와 요정 천향원을 거쳐 원불교 종로교당과 종로세무서로 변신했다.●익선동 한옥 정세권 작품… 서울 最古 100년 한옥마을 누동궁 터는 영평군의 4대손으로 일제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이 소유하다가 한국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 정세권에게 팔렸다. 정세권은 오늘의 북촌과 서촌, 창신동, 왕십리, 충정로, 휘경동에 남아 있는 도시형 한옥을 지은 사람이다. 익선동에는 1883년부터 3개월간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종로의 도로를 점령하고 있던 가가(假家)를 철거하는 등 서울 개조를 꾀한 개화파 박영효의 영향이 남아 있다. 박영효는 선 도로확보 후 필지 분할, 일정한 폭으로 곧게 뻗은 도로를 계획했으며, 대지경계선에 맞춰진 주택배치와 방 2칸, 부엌 1칸, 마루 1칸을 기본으로 행랑채가 덧붙여진 개량 집짓기를 추진했다. 익선동 한옥은 북촌보다 먼저 지어졌다. 100년을 버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30평 미만의 필지들 중 53.8%가 정세권 소유의 필지였고, 여기에 지은 한옥 64채 중 정세권이 지은 한옥이 절반이 넘는다. 정세권이 없었더라면 서울은 한옥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한 볼썽사나운 도시가 됐을지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6회 서울의 소설1(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1일(토) 오전 10시 6호선 광흥창역 1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기독교 세력 하나로 모으려 ‘허수아비 적’ 성소수자 세워”

    “기독교 세력 하나로 모으려 ‘허수아비 적’ 성소수자 세워”

    성서, 시대 배경 고려해 새롭게 봐야 현재 시점에 맞춰 동성애 해석 필요“기독교가 내부의 결속과 통제를 위해 성소수자라는 일종의 ‘허수아비 적’을 세운 것이죠.” 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5월 21일~6월 9일) 기간을 맞아 동성애 혐오 집회가 잇달아 열리는 가운데 자캐오(45·본명 민김종훈) 성공회 신부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개신교 내부의 성소수자 혐오를 하나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여성이나 유색인종을 차별했던 역사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조성해 세력을 결집하려는 게 성소수자 혐오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자캐오 신부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에 적극 앞장서 온 종교인 중 한 명이다. 20회째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와도 인연이 깊다. 동성애 반대 집단이 축제를 막으려 했던 2014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퍼레이드 직전 축복식을 했고,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 모임 ‘무지개 예수’ 소속으로도 참여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성공회 교회들’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부스를 운영한다. 자캐오 신부가 성소수자 문제를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는 10여년 전 한 교인과의 만남이었다. 게이였던 교인을 마주하고 “하나님은 당신도 사랑하신다”고 답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갈등과 고민이 생겼다. 그 교인은 더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신부는 “신이 보낸 그를 있는 그대로 환대하지 못했다”는 아픔을 느꼈다. 이후 성소수자 문제를 더 공부했고 성수자와의 연대를 의미하는 무지개 묵주를 만들어 주변에 나눴다.그는 “성서에 동성애 금지가 적혀 있으므로 동성애를 반대해야 한다”는 일부 개신교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성서가 쓰일 당시 군주제와 가부장제가 팽배했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21세기에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그는 “성서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읽는 것이고 오늘날의 변화를 고려해 늘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서를 단순히 해석하면 출산하지 않는 부부나 이성애로 결합되지 않은 가족 모두가 배제된다”며 “동성애에 반대하는 측은 성서의 다른 내용은 현재에 맞춰 해석하면서 동성애에만 유독 다른 잣대를 댄다”고 비판했다. 세계 성공회에서도 성소수자는 민감한 주제여서 토론을 거듭하는 중이고 아직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달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 맞은편에서는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연합이 축제 형식의 집회를 연다. 자캐오 신부는 “일각에서는 혐오할 권리를 주장하지만 이것은 권리가 아니다. 무관용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워야 또 다른 혐오를 막을 수 있다”면서 “교회가 적을 만들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기보다 낯선 이웃을 존중하는 본래 목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복지, 현장과 풀뿌리 협업해야...주거복지도 마찬가지”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복지, 현장과 풀뿌리 협업해야...주거복지도 마찬가지”

    ‘현장 복지’ 전문가 임성규 사장이 말하는 주거복지“우리 주택관리공단이 하는 일은 크게 보면 LH로부터 위탁받은 공공주택의 임대업무, 시설 유지·관리를 책임지는 주거관리와 함께 공공주택에 입주한 분들의 주거복지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공공주택 가운데 영구임대 아파트가 있습니다. 영구임대 하면 가난과 빈곤, 고독과 사회적 차별 이런 것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곳을 사람 냄새 나는 동네로 바꾸는 것이 주택관리공단의 역할이자 제일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약자가 많이 사는 곳의 주거복지를 업그레이드해서 이분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죠. 그래야 사회 복지가 좀 더 촘촘하게 스며들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현장 복지 전문가’ 임성규(56) 주택관리공단 사장은 주거복지와 공동체 문제로 말문을 열었다. 규모가 작은 다세대 밀집지역에 사는 이들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복지의 사각지대를 우려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는 그래도 낫습니다만 관리사무소조차 없는 곳에 다세대 밀집 주거지역에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지역 단위에서 복지기관, 사회적 경제조직, 사회적 기업 등 주거와 다양한 단위들과 결합해서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를 더욱 촘촘하게 구성하고 풀어나가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단의 본사가 있는 경남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난 24일 오후 늦게 인터뷰를 했다. “사회적 약자인 영구·국민임대 입주자 위한 복지로 바꿔야관리사무소-복지관 엮고, 지역 풀뿌리단체 묶는 게 제 역할”- 주택관리공단이 주로 하는 일은. “LH가 임대 주택을 공급하면 우리는 관리하는 LH의 자회사입니다. 1998년도에 분사됐는데 전국에 27만여 세대를 관리합니다. 영구임대 아파트 14만세대, 국민임대 8만 9000세대, 공공임대 2만 5000세대, 소규모 매입임대를 포함해 기타 자치단체 임대주택 등으로 1만 5000세대 입니다. 영구임대 입주자의 60% 정도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거나 장애인, 독거노인입니다. 국민임대 아파트 역시 10%가량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거나 홀로 사는 노인들입니다. 이런 비율에서 보듯 사회적으로 정말 어려운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요. 이분들의 삶의 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것이지요. 복지를 전공한 제게 맡겨진 소임 역시 이런 분들을 위해 주거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꿔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복지,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나.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풀뿌리 단위들과의 협업을 끌어내 시너지를 만들어야 더큰 복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영구임대 단지에는 복지관이 의무적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도 있습니다. 이게 잘 되는 곳도 있지만, 복지관과 관리사무소가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곳도 많아요. 제가 이 두 기관을 엮어주고, 입주민들이 역시 복지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긴 하지만 이분들이 당당하게 지역사회에서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협업을 하며 시너지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 묶어주면 삶의 질로서 주거복지가 제대로 돌아가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LH는 LH대로, 주택관리공단은 공단대로 하고, 복지관은 복지관대로, 지역의 풀뿌리단체는 풀뿌리대로 따로따로 하는 것을 협업의 구조로 묶어 복지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 복지 전문가이면서 주택관리공단 사장인 제게 주어진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현장 복지 경험 살린 주택관리공단 사장이라 가능한 일영구임대 입주자에 ‘환영파티’개최…사람 냄새 훈훈 감동”- 복지와 관리 양쪽을 아우를 수 있나. “제가 사회복지 일을 오랫동안 했으니 복지관에 가보면 상당수가 후배들이고 대다수가 저를 아는 사회복지사들입니다. 저 역시 복지관의 애로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복지관의 방향에 대해서 ‘함께 가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반면 관리사무소는 어찌 됐든 제가 사장으로 와 있고, 사장으로서 주택관리공단 직원들과 복지관이 협업을 하자라는 것이 틀린 말도 아니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직원들도 잘 알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쪽을 묶는 게 가능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했던 복지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것이죠. 예컨대 대전의 판암 관리사무소와 생명종합사회 복지관이 있는데 이 두 단위가 협업의 구조를 잘 만들고 있습니다. 입주민들이 새로 오면 관리사무소와 복지관이 함께 ‘입주민 환영파티’를 열어줍니다. 사회적 차별과 고독, 가난 등에 시달리던 분들이 ‘입주민 환영파티’를 예상치 못한 일이죠. 환영파티를 하면서 잔손 보기나 시설관련한 문제는 관리사무소가, 입주민들의 소소한 복지적 서비스에 대해서는 복지관이, 마을의 이곳저곳에 대해서는 기존 주민들이 설명해줍니다. 밀려서 밀려서 사회적 차별의 상징인 영구임대아파트에 이사 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뜻밖의 환대에 여기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며 감동하거나 아주 만족해합니다.” - 복지와 관련된 일은 얼마나 했나. “1998년도에 제가 태어나 자란 도봉구에 처음으로 복지관이 생깁니다. 당시 저는 목사로서 지역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2002년도에 방아골복지관 관장으로 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다 목회도 같이할 수 있겠다 싶어 비상근 관장으로 하겠다며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복지관 일이 생각보다 너무 방대하고 많아서 두 가지 일을 도저히 같이 할 수가 없어서 목회를 사임했습니다. 2004년 8월 들어 상근 복지관 관장으로 일하기 시작해 2016년 7월까지 복지 영역에서 일을 했습니다.” 목사→현장 복지→주택관리사장으로 변신 임 사장은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태어나면서 정해진 듯 하다. “지금도 개발이 덜 된 곳이지만 어릴 때만 해도 가마때기집, 루핑집(천막집), 판잣집이 즐비한 동네였습니다. 정말 철거민, 실향민, 빈곤, 민중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아버지(87)가 목회를 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릴 때부터 이타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육성회비를 제때 낸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야, 목사는 말이야, 교인들보다 가난해서도 안 되지만 부자여서도 안 돼’라고 하셨죠. 제가 육성회비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도 아버지가 말한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 목회를 했다고? “학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대학원에 가서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됐습니다. 사실, 아버지처럼 가난한 사람과 어울려 목회활동을 하는 데 자신이 없어서 학부에서는 신학 대신 사회사업학과(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자연스럽게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하다가 4학년 때 후배들이 ‘선배들 가운데 누가 학교 남아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대학원에 갈 사람을 찾으니 제가 …. 당시 저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시는 가난한 사람, 민중적인 목회 활동하고, 소위 말하는 학생운동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이런 생활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문제와 노동과 빈민들을 위한 신학인 민중신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습니다.” “92 목회 생활로 사회 첫발 … 빈자 위한 목회 고민‘목사는 교인보다 가난해도, 부자도 안돼’ 아버지 소신학생운동과 아버지 목회 활동 차이 고민하다 목사 길아버지, 은퇴 앞두고 후임 제의 …1주일 고민 끝에 거절”- 목회 활동을 오래 했나.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1992년도에 고향인 도봉구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목사로서 지역사회 운동과 시민사회나 복지 이런 것을 어떻게 민중적으로 재해석해 목회활동에 접목해야 하나하고 고민하며 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아버님이 은퇴를 앞두고 아들이 눈에 밟히신듯 저보고 ‘후임으로 왔으면 좋겠다’며 제안하셨습니다. 아버지가 1959년 개척한 교회를 평생 한 자리에서 45년간 목회 활동을 한 교회였고, 교인은 500명이 넘는 중견교회였습니다. 제가 1주일가량 고민하다 ‘아버님, 이건 아무리 뭐라 그래도 세습입니다. 제가 어떻게 가겠습니까, 안 갑니다. 아버지 만나시려고 하는 장로님들에게 (아들을 후임 목사로 추천한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들아,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 복지관의 역할을 많이 바꿨다던데. “당시만 해도 복지관은 개인과 가족에 맞춘 사례관리와 상담 등 공급자 중심이며, 전문가 중심의 작은 복지였습니다. 그런 것이 이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조직과 지역사회운동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예를 든다면 이전의 전통적인 재가복지 방식으로 어르신들이 불편하면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에 가요.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가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 어르신을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거예요. 이때 병원에 사람들이 많다거나 약국에 사람이 붐비면 많이 기다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게 2000년대 초반, 복지관에서 하는 재가복지의 유형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적극적인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인 ‘효플러스네트워크’를 만든 겁니다. 먼저 동네에서 의사·약사·한의사 15명 정도로 구성된 ‘의료인 모임’을 만듭니다. 이중 가장 적극적인 의사 2명은 1주일에 두 번씩 왕진 가방을 메고 점심시간에 어르신댁에 방문해요. 그리고 의사의 왕진을 받지 못한 어르신들은 아무 때나 병원에 오실 수 있게 해 주시고, 그래서 그 처방전을 약사에게 전달해주면 약사는 약을 받아서 복지관에 갖다주고, 복지관이나 지역 사회 활동가들이 그것을 어르신들에게 갖다 드리는 것이죠. 그런데 어르신들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여성들, 가정주부들을 대상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의사와 간호사에게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아서 1주일에 2회 이상 가정방문을 하고 말동무를 하고, 건강을 체크하고…. 또 ‘도우기’라 해서 아버지들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도배·장판·전기·수도 이런 전문 기술을 가진 동네 아버지들의 모임인데, 이분들이 한 달에 한 가정씩 집수리를 해주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대개 반지하에 살거든요. 눅눅하고 냄새가 나고 주거환경이 안 좋잖아요. 또 이런 모임들이 서로 선순환 하는 구조를 만들고 사회복지사들은 이 주민모임이 잘 돌아가게 만들면 됩니다. 이게 결국은 지역사회 주민들, 전문성을 가진 주민들을 조직하고, 조직된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문제에 참여하게 하는 네트워크 방식으로 진행한 거예요.” - 상당히 선진적이었다. “방아골복지관은 당시 복지계에서는 관심의 대상이었던 거죠. 실습을 하게 되면, 보통은 4주인데, 저희는 6주 정도 했죠. 그래도 실습생 대기자가 많을 정도로 지원자가 많았죠. 그만큼 사회복지계에서 유명한 복지관이 됐습니다. 서울시 평가에서 제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7년 방아골복지관의 실천사례집을 엮어 만든 ‘신명나는 지역복지 만들기’라는 책도 사회복지계에서는 센세이셔널 하고, 사회복지사들과 풀뿌리 활동가들이 많이 읽은 책이었죠. 그러나 당시 구청장에 의해 자신 편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위탁에서 제외됐습니다. 복지를 하면서 지역사회의 풀뿌리 시민단체의 중심에 일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로도 있었는데. “네, 2012년부터 4년 반 동안 일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제게 ‘박원순 서울시장과 어떤 관계냐’고 묻더라고요. 신명나는 지역복지 만들기 추천서를 써주시기는 했지만 사실 별다른 인연이 없습니다. 아마도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실천하며 성과를 만든 경험을 서울시 차원에서 넓게 시도해 보라는 메시지라고 보았습니다. 서울시복지재단 4년 반동안 ‘마을지향 복지관’, ‘사회복지 공익법지원센터’, ‘금융복지상담센터’, ‘찾아가는동주민센터’ 등 굵직한 사업을 만들어 내고 시도해 본 아주 중요한 협업과 융합의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장 재직한 방아골복지관 활동 선진적… 복지계 관심서울시복지재단 대표 갔더니, 박원순 시장과 관계 초점방아골복지관 성공스토리 서울 전체로 확대하란 메시지목회-복지-주택관리, 어려운 사람 위해 사는 의미 비슷”‘방아골복지관’ 성공 스토리를 가진 임 사장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복지국가특별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앞서 2007년에 서울시 예산의 상당 부분이 투입되는 복지예산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이태수 꽃동네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서울복지시민연대를 만들었다. 2009년 영구임대 아파트가 2411세대가 있는 서울 강서구 가양5복지관 관장도 지냈다. 2011년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장에 출마해 당선되는 등 복지 현장에서 많은 일을 했다. - 목회에서 복지, 다시 주택관리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굴절되고 어려운 분들이 당당하게 살아가고 그 분들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인다면 면에서는 목회와 복지, 주택관리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편적 복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보편적 복지가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복지가 좀 더 광의적인 의미에서 마을 지향의 일을 지역사회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울롱도까지 사업장이 있는 주택관리공단을 통해 전국적으로 복지와 주거복지를 협업의 구조로 만들어 좀 더 촘촘히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마을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주민들의 자발성을 확보하고 이것을 삶의 기본인 주거와 복지를 협업의 구조로 전국화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택관리공단도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입주민들을 찾아가서 이들과 호흡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복지관도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주민이 참여하고 주민이 중심인 마을 지향의 복지관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부고] 김 훈씨 장인상, 이재용씨 장인상, 최강석씨 부친상

    ●허봉숙씨 남편상, 김 훈(한국교회연합 기획홍보실장)·김양구(한국정통침구학회 교수)·장인규·권호섭·민병남씨 장인상, 김일창(뉴스1 ICT과학부 기자)씨 외조부상, 28일 오후 6시20분께, 강동 경희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 30일 오전 10시. 02-440-8923 ●김사훈(강원랜드 사업전략팀장)·김사길(굿옥션 과장)·김윤희(홈앤쇼핑 쇼호스트)씨 부친상, 이재용(서울경제신문 산업부 차장)씨 장인상, 28일 오후 8시20분께,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113호실, 발인 30일 낮 12시30분. 070-7606-4188 ●최강석(금융감독원 팀장)·준석·소라씨 부친상, 백승원씨 장인상, 28일, 부산 아시아드 장례식장 2층 VIP실, 발인 30일 오전 9시30분. 051-503-0770
  • “가장 작고 가난한 ‘농민 교구’ 그래서 우린 더 행복합니다”

    “가장 작고 가난한 ‘농민 교구’ 그래서 우린 더 행복합니다”

    신자 5만명… 1969년 대구대교구서 분리 기쁘고 떳떳하게… ‘가난한 영성’ 이어져 초대 교구장 佛 두봉 주교 ‘농민의 대부’ 1979년 ‘오원춘 사건’으로 추방 명령받아 농민과 함께하는 안동교구 변함없을 듯경북 안동교구는 천주교계에서 가장 가난한 교구로 통한다. 5만명 남짓한 신자 규모로 천주교 16개 교구 가운데 가장 작은 교구. 하지만 교구 설정 50주년(29일)을 앞두고 찾아간 안동 외곽의 교구청에서 만난 사제와 신도들은 아주 안정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안정과 여유는 무엇 때문일까. ‘기쁘고 떳떳하게’. 교구청 곳곳에 걸린 문구에 눈길이 쏠린다. 초대 교구장인 두봉 레나도(90) 주교가 취임사에서부터 줄곧 강조해 생명처럼 지켜 온 교구 사목 표어. 그 표어의 연원을 귀띔한 교구장 권혁주(64) 주교의 인사말이 예사롭지 않다. “작고 가난한 교구라서 더 행복합니다. 가난을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신앙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서로를 도우며 살았다는 데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 말마따나 안동교구의 지난 50년은 ‘가난한 영성(靈性)’을 실천해 온 역사였다. 1969년 대구대교구에서 분리되면서 두봉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22년간 사목하다 박석희 2대 교구장에 이어 2001년부터 권 주교가 책임지고 있다. 서울의 웬만한 본당보다 신자수가 적어 ‘가장 작고 가난한 교구’라는 별명이 줄곧 따라붙지만 교회 밖에선 ‘농민 교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관할 지역이 문경, 상주, 봉화 등 대부분 농촌인 데다 농촌, 농민과 관련해 숱한 시련을 겪은 탓이다. 지역에 가톨릭농민회를 가장 일찍 설립하고 농민들과 끊임없이 연대했던 역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979년 정부 정책에 반대하던 농민이 끌려가 고문을 당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아주 유명하다. 정부는 농민들과 함께 이에 항의하는 두봉 주교를 강제추방 대상에 올렸지만 교황청의 항의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철회됐었다. 이 사건으로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는 한국 사회에서 ‘농민의 대부’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3년 안동교구가 건립한 안동 문화회관도 회자되는 건물이다. 안동 문화회관은 당시 안동에서 가장 높은 6층짜리 건물로, 한 부분만 성당으로 쓰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지역 사회를 도와 함께 성장하는 천주교’를 부임 이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두봉 주교의 사목 방향은 한 치의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지역사회에서 얻은 신임이 가난하지만 함께 나누는 신앙으로 발전했다고 할까.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대세 속에서도 안동교구에는 귀촌, 귀농자들이 적지않이 찾아들고 있다. 교구가 주선하는 생명 공동체 모임이며 유기농업, 식생활 개선, 교육 개선과 관련한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그래서 8년 전 관할지역인 봉화군 춘양에 세워진 ‘춘양 본당’ 미사엔 늘 100여명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6일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50주년 감사 미사의 타이틀도 다름 아닌 ‘기억, 감사, 그리고 다짐’이었다. 교구청에서 기자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 권 교구장은 “우리 사목 방향의 초점은 전에도 농민이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두봉 주교의 뜻을 이어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두봉 주교는 “고맙고 감사드린다. 용기 내시라”고 권 교구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글 사진 안동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구보다 사람이 먼저’ 실천… 안동 유림들의 마음 연 두봉 주교

    첫 안동생활 버거워 교황청에 “못하겠다” 정직한 유림들 신자 되면 ‘매우 좋은 신자’ 이달 대통령 표창 ‘올해의 이민자상’ 받아 안동교구를 말할 때 초대 교구장 두봉(90·杜峰·본명 르네 뒤퐁) 주교를 빼놓을 수 없다. 언제나 ‘기쁘고 떳떳하게’를 외치고 실천하는 프랑스 중부 오를레앙 출신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이젠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그는 가장 가난한 교구인 안동교구의 산증인이다. 22년간 초대 교구장을 지낸 두봉 주교도 처음엔 유림의 본향인 안동에서의 생활이 몹시도 버거웠단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사목을 하며 내 삶을 바치고 싶었다”지만 오죽하면 교황청에 ‘못하겠다’는 의견을 전했을까. 하지만 유림들과의 거듭된 만남 끝에 그들의 본 모습을 알게 된 뒤론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이웃종교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대다수 유림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아요. 양심적으로 정직하지요.” 심지어는 “유교 전통에서 바르고 잘 사는 사람이 천주교 신자가 되면 굉장히 좋은 신자가 된다”고까지 했다. 그 이유는 “바탕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안동교구에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유림들이 솔선해 도움을 보탰고 꽉 막힌 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두봉 주교가 목숨처럼 여기는 사목의 으뜸 방향은 교구가 아닌, 사람이다. 농민의 인권에 무엇보다 치중했고, 특히 한국 사제가 교구를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네 차례나 교황청에 안동교구장으로 한국 주교를 임명할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낸 일화가 유명하다. 그에게 신앙과 사목은 ‘교회 따로, 사회 따로’가 아니다. 교구청에서 만난 기자에게도 “교회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안동 문화회관을 세워 일반 모두의 열린 공간으로 내놓은 것을 비롯해 국내 최초의 전문대학인 상지대를 안동에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을 받았는가 하면 이달에는 국내에서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이민자’상도 받았다. ‘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두봉 주교 자신은 “귀족이 아니라서 쓸 수 없다”며 주교라면 누구나 으레 정하는 사목표어를 한사코 사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구에서 이 말은 모든 신행과 사목의 지침인 사목표어로 굳어져 있다.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 한국에서 40여년을 선교한 끝에 일선에서 물러나 지금은 의성 봉양문화마을의 작은 집에 머물고 있지만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피정에, 강의에 아주 바쁘다. 안동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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