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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목연구회 ‘대희년 심포지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가 2000년 대희년(大禧年)을 앞두고 최근 개최한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대희년 심포지엄’에서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참회하고 반성하는 토론회를 가져 주목을 끌었다. 발제자들은 대표적인 잘못으로 ▲18세기 말 서양선박 요청사건 ▲제사금지에 따른 갈등 ▲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 무시 ▲민족운동에 대한 소극적 태도 ▲신사참배 허용 등을 꼽았다. 원주교구 교회사연구소의 여진천 신부는 “1796년과 1801년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서양 선박과 병력을 요청하는 서한을 중국 베이징의 주교에게 보낸것은 서양 배와 군대가 오면 천주교에 대한 금령(禁令)이 풀려 선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신유박해(辛酉迫害)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또 인천가톨릭대의 최기복 교수는 “18세기 교황청의 제사금지 조처는 천주교를 패륜의 사교(邪敎)로 낙인 찍히게 했고 복음의 토착화를 더디게 하는장애로 작용했다”며 교회의 잘못을 인정했다. 가톨릭대 장동하 교수는 “개항기 선교사들이 민족 고유의 문화와 풍습 등을 야만시함에 따라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산 것은물론 지식인들의 반외세감정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남대 윤선자 교수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천주교회가 민족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행태를 문제를 삼았고,한신대 강인철 교수도 “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하고 태평양전쟁 참전을 독려한 것은 반민족적·반가톨릭적인 과오였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천주교 전래기에 교회와 사회가 충돌했던 것은 대부분교회가 당시의 민족사적 요구나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맹목적인 신앙의 논리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호기자
  • [대한광장] 준법이 상식화되는 사회로

    1517년 10월31일은 세계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냈다.독일 동북부의뷔텐베르크시의 성곽교회 정문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자보는 95개 항목에 걸친 교회의 개혁 요구 문건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신의 은총으로 사죄받고 구원받는다는 명제가 유난히 강조되었다.말하자면 인간은 신을 믿음으로 사죄받는 의로움에 이르고 믿음에 대한 신의 은총이 의롭게 되는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95개조 개혁 요구 대자보는 당시 교회가 추진하던 ‘면죄부’ 관행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취소를 요구하고 있었다.사죄받아 의롭게 되는 면죄부를 일정액의 헌금을 받고 팔고 있었던 것이다.요즈음 용어로 표현하면 일종의 범칙금이나 벌금 또는 보석금에 다름아니다.이런 면죄부 구매를 당시에는신이 기뻐하시는 선행의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었다.신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지만 동시에 면죄부 구매라는 선행을 통해서도 구원받는다는 변질된신앙이 횡행했던 것이다. 중세기를 가리켜서 기독교왕국이라고도 하고 윤리도덕의 암흑기라 표현하기도 한다.당시 기독교는 동로마제국을 중심한 비잔틴문화권을 휩쓸던 ‘정교회’가 하나였다.정교회는 지금도 북아프리카,중동지역,동유럽지역의 주력기독교로 군림하고 있다.서로마제국의 라틴문화권은 오늘날의 서유럽을 중심으로 삼고 있었고 이곳에는 ‘천주교’가 주력 기독교로 자리해 왔었다. 종교개혁의 불길은 서로마 라틴문화권의 천주교 한복판에서 일어났고,당시베네딕트수도원 수도승 겸 신학교수로 명성을 날리던 마르틴 루터가 95개조대자보를 통한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기존의 천주교를 비판하고 갈라져 나온 저항그룹이 만든 교회를 ‘프로테스탄트 교회’라고 이름한다.천주교가 구교라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신교를 일컫는다. 종교개혁의 불길은 여러 나라로 번져나가면서 개혁의 지도층과 나라의 형편에 따라 여러 명칭의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장로교,감리교,침례교,성결교 등등 다양한 이름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그런데 신교의 모태와 뿌리는 역시 루터의 이름을 따라 형성된 루터교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482년 동안 갈등을 빚어온 신·구교의 분열 역사를 치유코자 천주교의 본산인 로마 교황청과 종교개혁의 발상 교회로 자부하는 루터교의 세계연맹이 수년 동안의 작업 끝에 최근 공동선언을 통해 교회일치의 거보가 내디뎌졌다. 종교개혁 신학을 정립하면서 ‘오직 신의 은총’으로 구원받음을 선언했던독일의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양쪽 교회가 모여 ‘오직 신의 은총으로’와 동시에 ‘신의 은총에 힘 입은 인간의 선행으로’를 추가함으로써 일종의 타협적 공동선언을 만들어낸 것이다.특히 루터교나 일부 신교 교파들 사이에서반대와 저항이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긍정적인 화합과 일치의 계기를 이룬것이라 보고 싶다. 종교개혁의 일면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인간의선행을 면죄부 구매와 연관시킨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성당 건축과 유지비용충당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한 죄과가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원인 중의 하나였다는 것도 종교의 종교다운 개혁을 위해서는 좋은 계기였을 것이다.482년이 지난 오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신의 은총에 힘 입은 선행은 어떤 경우든 면죄부 판매 같은 망발은 인정치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간의 선행의 최소한도 규범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준법이 선행이다.그런데 정치권력은 법을 권력으로 사버린다.초법적 정치범죄가 횡행한다.부자는 법을 돈으로 사들인다.매수가 그것이다.정경유착의늪에서 우리 기업과 재벌이 허우적거린다.정치가 휘말린다.공무원과 업소가불법유착하여 법을 사고파는 행태 때문에 인천의 호프집이 불이 나고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불에 타죽는 비극이 생겼다.씨랜드 참사가 그렇고,멀리는 성수대교 붕괴의 비극이 그랬다. 법만이라도 지키는 사회가 필요하다.하지만 21세기에는 ‘신의 은총에 힘입은 선행’이 요구되듯 ‘하늘 뜻을 따르는 법’이 요구된다.초법,탈법,범법이 자리할 곳이 없는 하늘의 뜻이 받쳐주는,법이 상식화되는 사회가 우리들의 미래사회일 것이다. [박종화.기독교장로회 총무]
  • [외언내언] 신·구교 화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 안에 일어난 내면적인 변화를 그리스도교에서는 ‘의화(義化·Justificatio)’라고 말한다.인간 안에 실현되는 의화의 내용은죄의 용서와 내면적 쇄신이다(로마서 5:1-5). 이 의화교리 논쟁에서 그리스도교의 분열은 시작됐다.즉 종교개혁의 발단이 된 마틴 루터의 95개 조항의 의견서(1517년)는 의화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리에 정면 도전한 것이었다.가톨릭의 전통적 교리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善行)을 실천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비해 루터는 “의화와 구원에 필요한 것은 오직 신앙뿐이며 선행은 단지 인간의 정화와 사회에 대한 임무로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톨릭과 루터교 사이에 500년 가까이 계속돼온 의화 논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지난 10월31일 독일 아우스부르크에서 두 종교의 대표자들이 인간구원과 의화 등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44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선언문은 “신앙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면서 “우리는 인간의 어떤 덕목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은총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함께 고백한다”고 밝히고 있다.두 종교는 “선행하라는 권고는 신앙을 실천하라는 권고”라고 절충하고 “의화는 신앙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선행은 참된 신앙의 핵심적 표지이다”고 합의했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루터교가 생산적인 대화에 나선 것은 60년대 후반부터다.지난 73년에는 가톨릭·루터교협동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저서를 출판하는 등 두 종교간 역사적 반목과 불신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왔으며 양쪽신학자들이 지난 94년 공동선언 초안을 작성했다. 아우스부르크 공동선언문은 의화교리의 기본적 진리에 관한 것일뿐 전체에관한 것은 아니다.이로 인해 신·구교의 틀이나 교회조직에 당장 큰 변화가일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두 종교가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 ‘교황의 지위’와 ‘성체성사’에 대한 이견등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구교 분열이 발생한 유럽 전체에 희망을 던지는 표시”라고 공동선언문을 환영했지만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200여명은 이선언문이 신교를 팔아 넘기는것과 같다며 반대서명을 한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스부르크 공동선언문은 교회일치운동의 획기적 진전으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전세계 10억 가톨릭 인구와 6,000만 루터교인들을함께 묶어준 일치와 화해정신이 극심한 종교 갈등현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피어오르기를 기대해 본다.마침 오는 성탄절에는 본사 주최로 ‘가톨릭·개신교 연합과 일치를 위한 성탄 축하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임영숙 논설위원
  • 가톨릭·개신교 구원론 공동선언문 서명..교리논쟁 종식

    [아우그스부르크 AFP AP 연합]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 개신교가 지난달 31일구원론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는 선언에 서명함으로써 500여년만에 화해했다. 교황청 일치위원회 위원장인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의크리스티언 크라우저 감독은 독일 남부 아우그스부르크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서 면죄와 구원에 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신구교 지도자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기독교인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신의 사랑’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선언,새 천년을 앞두고 화해의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정확히 478년 전 같은 날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 관행에반발,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논제’의 반박문을 내걸고 종교개혁과30년 종교전쟁의 불을 댕겼다. 종교전쟁과 신구교를 분리시킨 이같은 교리 논쟁은 ‘어떻게 천국에 이를수 있는가’를 둘러싼 이견이었다.개신교에서는 “인간은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신앙과 함께 선행을 쌓아야한다”고 주장,양측의 교리가 팽팽히 맞서면서 그동안 숱한 갈등과 저항을낳았다. 이날 영어와 독일어로 진행된 신구교 화해의 예배에는 가톨릭 신부,개신교 목사,노르웨이,인도 등의 전통복장을 입은 여성 성직자 등 세계 24개국의 성직자 대표단을 포함해 700명이 참석했다.또 부근 텐트에서는 신구교기독교인 2,000여명이 대형 비디오 화면을 통해 화해의 예배를 지켜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번 신구교간의 화해선언은 고난의역정 위에 기독교 통합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면서 “몇 세기만에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같은 길 위에서 걷고 있다”면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개신교도인 남편을 둔 가톨릭 신자인 한 주부는 비디오로 예배를 지켜보고“양측 교회 지도자들이 포옹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면서 감격해했다.
  • “새천년엔 종교간 화해를” 세계종교회의 폐막

    “20세기는 기술혁명을 목격했으나 그에 걸맞는 정신적 도덕적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종교가 전쟁의 구실이 돼서는 안된다” 지난 천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4일간의 일정으로 바티칸 시티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에 참석했던 세계 종교대표들은 28일 폐막식에서 종교의 극단주의포기,종교를 빙자한 전쟁과 폭력의 종식,종교간 화해를 호소했다. 폐막식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분쟁은 곪은상처처럼 남아 있으며 치유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종교가 폭력과 분쟁의 구실이 돼서는 특히 안된다”고 강조했다. 강경노선의 프랑스 가톨릭교가 로마 교황청에서 탈퇴한 지난 86년 아시시회의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이번 세계 종교회의는 새 천년안에 인류의 공통문제를 풀자는 마지막 노력의 하나로 교황의 요청으로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교황을 비롯,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중국을 제외한 동·서양 불교 대표 26명,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각종 종교 고위성직자200명,그리고 수천명의 일반 신도들이 참석했으나 중국 불교 대표는 빠졌다. 폐막 메시지는“폭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은 종교를 악용하는 것”이라면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잘라말했다. 각 종교 대표들은 종교가 분쟁의 구실로 악용된 대표적 사례로 코소보와 동티모르 사태를 꼽고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종교내 온건파들이 나서 종교의폭력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종교의 극단주의와 폭력화 예방을위해 종교간 대화를 더 활성화하자고 다짐한 폐막 메시지는 새천년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지상에서 행해져온 폭력과 전쟁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한다. 박희준기자 pnb@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헝가리/ 건국1천년 역사적 자긍심 고취

    헝가리에 있어서 새 천년은 단순히 다른 천년의 시작이 아니다.건국 천년을맞는 역사적 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교황 실베스터 2세로부터 기독교 공인을 받았던 1000년 12월25일을 건국의기원으로 삼고있는 것이다.헝가리의 새 천년 준비는 바로 건국 천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국가비전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98년 ‘밀레니엄 경축의 원칙에 관한 결정’을 발표,2000년1월1일부터 2001년 8월20일까지를 밀레니엄 경축기간으로 정했다.건국 천년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전국 규모의 국민 행사로 추진할 계획이다. 헝가리는 최초의 수도인 에스테르곰에 위치한 왕국의 재건,2차대전때 파괴된 헝가리∼슬로바키아 교량의 복구,초대 국왕을 기념하는 성이스트반 성당의 개축 등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복원을 중심으로 밀레니엄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새 천년기(旗)와 기념 로고를 제작,지방정부와 국민에게 배포해일체성을 강조한다는 복안이다. 민간차원에서도 현재 부다페스트시 중심부에 건설되고 있는 무역센터 내에새 천년관을 설치할 계획이다.여기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헝가리 위인들의 조각을 새기는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한마디로 헝가리의 새 천년 준비사업은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이를 통해 국민과 국가의 통합을 촉진,새로운 국가건설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헝가리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에 기초한 민주체제로 전환한지 올해로 10주년을 맞고있다.아직까지 계층과 지역간 불균형 등 여러가지 문제가있지만 중·동구 국가 중 개혁의 선두주자로 지난 10년간 이룩한 성공적인정치·경제개혁의 성과를 높이 평가받고있다. 정치적으로는 지난 10년간 실시된 3차례의 총선 때마다 진정한 민의에 기초하여 정권이 수립됨으로써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외국투자의 적극적인 유치와 사유화 정책의 성공으로 경제적으로 안정국면에 접어든 것이 반증이다.96년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올 3월 NATO 가입을 실현하여 서유럽에의 진입이라는 국가 제일의 외교목표달성을 눈앞에 두고있다. 그러나 새 천년 헝가리의 가장 큰 비전은 무엇보다도 EU에 가입함으로써 오랜 숙원이던 서유럽 국가에로의 복귀를 실현하는 일이다.이를위해 헝가리 정부는 2002년까지 EU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회원국의 기준에 맞도록정치·경제·사회 등 전분야에 걸쳐 법적,제도적 개혁을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새 천년에는 중부 유럽의 중심국가로 자리를 굳힌다는 결의다.이미 92년 비세그라드(헝가리 제2의 도시)체제라고 불리는 중부유럽자유무역체제(CEFTA)를 출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중부유럽의 유통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주변국과 연결되는 도로망 건설 10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새 천년 헝가리는 체제전환의 과도기에서 벗어나 당당한 유럽국가의 일원으로서 선진 서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국가상을 제시하고있다.
  • 유럽 순방 江澤民 연일 곤욕

    국빈 자격으로 유럽·중동을 순방중인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연일 곤욕을 치르고 있다.인권단체들과 티베트 독립운동 단체 등이 가는곳 마다 ‘진드기 시위’를 벌여 ‘흠집’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달 3일까지영국·프랑스·포르투갈·모로코·알제리·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 순방에나선 장 주석은 당초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축 문제 등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고 유일 강대국인 미국을 겨냥,중국의 외교력을 과시할 참이었다.특히 국제사회의 핵확산 금지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미 상원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안 부결문제를 집중 부각함으로써 중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장 주석의 ‘야심’은 첫 방문국인 영국서부터 빗나갔다.영국 왕실과 정부는 50년만의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장 주석을 국빈으로 모셨으나인권단체들은 방문지마다 인권탄압 반대 시위를 벌였다. 18일 인권운동가 2명이 장 주석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란히 탄 마차를 향해 돌진하다 체포된데 이어,19일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버킹엄궁 밖에서인권단체들이 ‘고추가루’를 뿌렸다.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22일 리옹에 도착하자 국제사면위원회(AI)과 국경없는 기자회(RSF) 등의 주도로 200여명이시위를 벌였고,23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장 주변에서도 시위는 이어졌다. 그러자 태연한 척하던 장 주석은 끝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그는 24일 “인권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이며 해당국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중국과 바티칸 교황청은 그동안 관계회복의 최대 걸림돌이던 주교 임명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올해말까지 외교관계를 회복하기로 합의했다고 홍콩의타이양바오(太陽報)가 25일 보도했다. 김규환기자 khkim@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이스라엘/ 과학기술 무장 서두르는 거인

    내년부터 시작되는 21세기,즉 새천년을 맞이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조용하기만하다.이스라엘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표시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약 4백만∼5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성지 순례객을 위한 준비작업 정도다. 유태력을 중시하는 이스라엘로서는 서기 2000년이 특별히 기념할만한 해는아니다.종교행사로 따지면 예수탄생 2000년을 기념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스라엘을 방문한다.예루살렘,베들레헴,나자렛,가버나움 등 성지를 찾는 전세계 순례객들을 위해 우선 성지와 주변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21세기를 대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가.그렇지않다.약 2천년을 해외 유랑생활(디아스포라)을 한 이스라엘 국민들이 21세기에 가장 역점을 두는 대목은 확고한 안보와 평화다.48년 국가수립 이후 4차례의 외침을 극복한 이스라엘은 현재 주변의 어떤 국가보다도 군사적으로 강국이다.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우위는 단지 군사력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튼튼한 경제력에다 어려운 시기에 처할 때마다 잘이루어지는 국민의 단결력,과학·기술 인프라등을 자랑하고 있다.주변 어느 국가보다도 사회·경제적으로 우수하다. 특히 하이테크 분야에서의 과학기술력은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이것이 작은 거인 다윗에 곧잘 비유되는 이스라엘의 면모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메이드 인 이스라엘’제품을 거의 본적은 없지만 컴퓨터,휴대폰등 우리에게 친숙한 전자제품 중 우리 눈에 노출되지 않는 핵심 기술 또는부품은 이스라엘에서 개발된게 적지않다. 현재도 우수한 인력자원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수한 교육기관인 테크니온 공대 및 와이즈만 연구소,인접 과학기술단지내 국영 및 민간기업 간의 산학협동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21세기에도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이테크 분야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중동지역이 21세기에 다시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평화공존의 모습을보일지는 알 수 없다.가까운 장래는 아닐지라도 이 지역에 분쟁보다는 평화가 도래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같다. 협상추구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전쟁 억지력 유지다.이스라엘이 자랑하는 하이테크 분야는 곧 고도 정밀무기개발과 직결되고 있다.이스라엘은 현대전의 필수적인 각종 미사일을 개발해놓고 있으며 관측위성 및 무인정찰기 등 적의 동향을 시시각각 관측하는 장비도 자체 개발,운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안보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은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관계다.양국의 전략적 동맹관계가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미국이 역내 평화를 유지하는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과 함께 미국내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측면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여하튼 이스라엘은 21세기에도 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를 변함없는 대외정책 기조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준비하는 새천년은 어떠한 거창한 구호나 선전성 행사없이 이처럼 조용히 내실있게 진행되고 있다.작지만 큰 이스라엘에서 배울 대목이다. 이창호 駐이스라엘대사
  • 美, 28개테러단체 발표

    미국 국무부가 2년마다 수정,발표하는 국제테러단체 명단에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회교과격파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이다’ 조직이 새로 추가됐다. 국무부는 8일 지난해 아프리카 주재 미대사관 폭파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고 있는 빈 라덴의 ‘알 카이다’ 조직을 새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한편3개의 팔레스타인,칠레 및 캄보디아의 테러단체들을 제외한 28개의 새 국제테러단체 명단을 발표했다. ‘알 카이다’는 미 대사관 폭파 이외에도 지난 92년 예멘 주둔 미군에 대한 폭탄공격,93년 소말리아의 미군 헬리콥터 격추,9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음모가담 및 95년 미 여객기 폭파음모 등 수차례에 걸쳐 테러를 자행했거나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과 칠레의 마르크스주의 반체제 단체인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FPMR/D)은 최근 2년동안 테러행위가 없었다는이유로,또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는 더이상 “생존력있는 테러단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단에서 빠졌다. 이외 명단에 오른 테러단체들로는 알제리 ‘무장 이슬람조직(GIA)’을 비롯해 이슬람 무장단체들인 ‘헤즈볼라’ ‘알 지하드’ ‘하마스’,쿠르드족독립군인 ‘쿠르드 노동당(PKK)’,스리랑카 타밀족 독립군인 ‘타밀 엘람 호랑이(LTTE)’,남미의 혁명좌파조직들인 콜롬비아 ‘민족해방군(ELN)’,페루의 ‘빛나는길(SL)’ 및 일본의 ‘적군파’(JRA)’등이 포함됐다. 이경옥기자 ok@
  • 바그와티 美컬럼비아대 교수 대구라운드 기조연설 요지

    선진·채권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 대응,개발도상국과 채무국의 입장을 대변해 쌍방통행형 신(新)국제금융질서 수립을 목표로 한 대구라운드 세계대회가 6일 경북대 대강당에서 국내외 7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 관계자와 석학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됐다.사흘동안 계속될 이 대회의 개막행사에는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J.Tobin)교수 등이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서상돈상 본상은 대한매일신보 주필이었던 고(故) 양기탁 선생이 받았다.수상은 며느리 최선옥(81)여사가 대신했다.국제상은 미국 컬럼비아대 자그디시 바그와티 (J.Bhagwati) 교수에게 돌아갔다.다음은 바그와티 교수가 ‘세계화:적절한 통제의 문제’란 제목으로 이날기조연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는 ▲세계화가 투기성 단기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통해현재 아시아 금융위기로 알려진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고 ▲시민 사회세력들이 그같은 세계화에 저항하거나,최소한 조절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국제 교역,외국인 직접 투자,단기자본 이동, 인구이동등 여러 유형의 세계화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의 토론에서도 이같은 현상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나,분명한 사실은 그 개념들간에는 유사성도 있지만 차이도 크다는 것이다.자유 교역과 자본이동 자유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으나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는 이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시아국가들로 하여금 단기자본 이동 자유화를 허용하도록 밀어붙였다.따라서 우리는 세계화를 다룸에 있어서 개념별로 차별화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이 과정에서 우리는 ‘적절한 통제’ 원칙이 국내외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국내외 차원의 적절한 통제에는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노동기준에 대해 보다 인정넘치는 정책을 촉구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도 포함된다.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NGO의 엄청난 확산이 범세계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강력한 세력형성으로이어지도록 세계화가 조절만 된다면 반대하기보다는 지원하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대구라운드 세계대회’ 내일 개막

    미국을 위시한 선진·채권국 중심의 국제금융거래 질서를 타파하고 평등한세계경제질서를 모색하자는 세계 각국의 목소리가 한국에서 하나로 모인다. ‘대구라운드 한국위원회’(위원장 金泳鎬 경북대 경상대학장)는 4일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를 오는 6일부터 사흘동안 국내외 시민단체와 학자 등이참가한 가운데 대구 팔공산 대구은행 연수원 등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는 ▲국제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교수가주창한,외환거래에 부과하는 관세 성격의 토빈세 신설 ▲개발도상국 외채 문제의 심각성 및 외채 탕감 ▲IMF(국제통화기금)식 구조조정의 문제점 및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 개혁 방안 등을 논의한다. 이번 대회에는 국제투기자본 규제운동을 주도하는 ‘금융거래과세연합(ATTAC)’과 극빈국 외채탕감운동에 앞장서는 ‘주빌리 2000(Jubilee 2000)’를비롯한 국제 NGO(비정부기구)와 참여연대 민주노총을 포함한 국내 시민단체등 100여개 국내외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이 참가한다. 가트(GATT)창설을 주도한 바그와티(J.Bhagwati)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국제경제론의 권위자 드 베르니스(프랑스)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참석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토빈(J.Tobin)교수도 대회 격려 메시지를 보낼 예정이다. 김영호 위원장은 “투기자본의 횡포와 개발도상국의 외채 증가 등 현 금융세계화시대는 무역세계화 시대와는 달리 극히 위험해 대책이 절실하다”면서“한국이 주도적으로 세계 시민·사회단체와 연대, 투기자본의 횡포를 막고외채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대구라운드란 대구라운드는 세계 각국의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이 연대,개발도상국이나채무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대응논리를 발전시켜 새로운 쌍방통행형 국제금융질서를 수립하자는 목표로 창설됐다. 지난해 2월 21일 대구에서 열린 국채보상운동 91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김영호 교수가 주창해 지난 5월 ‘대구라운드 한국위원회’가 결성됐고 국제사회의 호응속에 세계대회가열리게 됐다. 한국 최초의 시민운동인 구한말의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개발도상국이 건전하게 외채를 조달해 생산적으로 활용한 뒤 건전하게 갚을 수 있도록,외환위기→외채위기→대량실업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개발도상국의 위기가 세계경제위기로 이어지는 원인인 브레튼우즈 체제의 일방통행형 질서를타파해 ‘건전한 국제외채·자본질서’를 형성하자는 운동이다. 일반은행이특정기업에 대출해줬다가 회수불능 사태에 빠지면 이자는 물론 원금도 건지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진국 채권은행들은 채무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빠져도 채권회수를 보장해주는 IMF 덕택에 가산이자까지 붙여 대출금을회수하는 ‘면책특권’을 누려왔다는 주장이다.
  • [외언내언] 개신교의 참회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톨릭의 부패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됐다.우리나라에서는 면죄부로잘못 번역된 대사(大赦·indulgentia)의 남용에 항의해 발표한 95개 조항의성명서가 그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대사란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는 행위인보속(補贖)의 방법과 기간이 너무 엄격해서 신자들이 보속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아지자 10세기부터 교황이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면서 죄를 사면해준 제도였다.그 조건들은 교회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이나 자선의 실천이었는데 교회가 부패하고 세속화하면서 대사가 남발되고 전제조건도 대성당 등을 짓기 위한 헌금으로 대체되면서 상품화되고 말았다.루터는돈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당시 교회의 악습에 반기를 들고 ‘오직 성서와믿음과 은총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은 뼈를 깎는 자기쇄신으로 거듭났다.지금도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해 파문(破門)했던갈릴레오 갈릴레이를 1992년 복권시켰다.지난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에 대한 교회의 침묵을 반성하는 문헌 ‘우리는 기억한다:쇼아(Shoah·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을 발표했고 중세의 종교재판과 같은 교회사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회개도 이루어졌다. 한국 개신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개신교 교단에 구성된 15개 목회자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9일 일간신문에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5단 크기 광고를냈다.같은날 10개 기독교 시민단체들도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실천연대’를 결성했다.이들은 최근 교회와 신자들이 연루된 일련의 사건들-고급옷 로비 사건,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방송사 난입,종말론 추종자들의 집단가출,신애양 사건,모 교단의 선거부정 및 비리 시비 등-이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대해 참회하며 교회 쇄신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자기고발 광고는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왜곡된 기복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철저하게 가르치지 못한 죄 ▲돈과 권력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하고 교회의 자원을 사회정의 실현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바로 사용하지 못한 죄 ▲IMF 고통과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세계 8억 인구가 기아상태에 있는 현실에서 나눔과 섬김의 원리로 청빈의 삶을 살지 못한 죄 ▲신사참배 등 역사적으로 교회가 권력과 맘몬(物神)의 우상 앞에 무릎 꿇었던 죄 등 7개항의 죄를 고백하고 있다.“주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로 끝나는 이 고백과 교회갱신운동이 루터의 성명서가 그랬듯 한국개신교를 거듭나게 하는 제2의 종교개혁바람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임영숙 논설위원
  • 뉴스피플 8월26일자 발행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8월26일자,8월17일 발매)는 ‘복지국가 확립’을 강조한 김대중대통령의 8·15경축사를 계기로 빈민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턱없이 부족한 복지시설과 ‘불법’이라는 이유로 철거를 종용당하는 무허가 복지시설 등 현정부의 복지정책을 밀착취재했다. 또 김대통령의 8·15경축사 행간을 분석해 정치개혁과 재벌개혁 구상,재벌해체 전망 등을 세밀하게 짚어봤다. 정년단축,명예퇴직 급증으로 빚어진 초등학교 교사난의 실상과 최근 인기를얻고 있는 ‘인터넷 학위 따기’현상과 그 문제점 등도 꼼꼼하게 살펴봤다. 이밖에 최근 우리사회에서 유교적 가치를 놓고 벌어지는 ‘공자 논쟁’의 이모저모와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외교관 장인남 몬시뇰 인터뷰,‘5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2차대전 당시 위안부로서의 참혹한 생활을 자서전으로 엮어낸 네덜란드 출신 오헤른여사의 호주 멜버른 현지 인터뷰 등도 읽을거리다.
  • [깊이읽기]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문화국민은 저마다 그들의 고전을 창출한 황금기를 갖는다.단테와 페트라르카,다빈치와 미켈란젤로,메디치 가와 피렌체의 이름과 맺어지는 15·16세기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참으로 유럽 아니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현란한 문화의 황금기였다.우리들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라는 명품(名品)을 통해 그 전체의 면모를 체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문화사학의 정초자(定礎者)요 미술사가인 부르크하르트에 있어 역사란 인간정신의 형태학이요, 르네상스의 주조음은‘개인’의 탄생과 발전이었다.이때개인이란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아가페와 에로스의 조화를 이룬, 그러므로써‘위대한 삶’을 실현한 인격을 말한다. 부르크하르트는 15세기의 이탈리아를 가리켜 선과 악이 기묘한 혼합을 이루었던 시대였다고 말한 바 있으며,그러한 인물로서 당시의 전제군주,용병대장,고위 관리들을 우리들 앞에 내세운다. 성직자나 휴머니스트,예술가와 귀부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요청한 청탁을 함께 삼키는 덕성‘비르투’가 인간의 가능성과 위대함의 징표로서 찬탄되고 악도 또한 덕으로서 미장된,그리고‘명성’에 신들린 르네상스적 자아.그 자아의 비밀을 밝히는 소도구로서 부르크하르트는 그들의 기쁨과 좌절,환상과 불안,야심과 절망,영광과 몰락, 기지와 풍자,향락과 참회의 모양을 전체적 삶의 수준에서 펼쳐주며,또한 당시의 격언과 우화,사교와 의식,연설과 개선식,위상과 귀금속,간통과 창부,놀이와 성의물 숭배,미신 등의 변주곡도 빠짐없이 들려준다.이탈리아 르네상스를향한 애증(愛憎)이 뒤섞인 관찰에 있어 이 ‘진리를 널리 말하는 시인’은직관과 상상력 그리고 감정 표출의 독특한 문체를 아낌없이 구사한다.인간의심층세계를 파헤친 이 정녕의 역사가에 의해 역사서술은 예술이 되고 역사와문학의 주제는 하나가 되었다.그리하여 그는 아날 학파와 역사심리학의 개척자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도시공화국과 전제정치 그리고 특히 자유로운 시민의 공동체인 피렌체를 요람으로 자란 르네상스적 인간이 지향한 ‘보편적 인간’,‘독자적 인간’의 위대함과 그들에 의해 창출된 교양(휴머니타스),심미적 문화를 찬탄하여 마지않는다.그러나 이 뛰어난 인간 관찰자는 르네상스풍의 자아의 문제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그는 그들 속에 ‘무엇인가 진정 악마(demon)적인 것’을 예감하였다. 부르크하르트는 1789년 이후 그가 놓인 ‘혁명의 시대’의 상황이 ‘모든격정과 이기심을 방출한’광기의 소행임을 잘 알고 있었다.부르크하르트는반문화적인 정치가 모든 것을 제패하는 그의 시대를 철저하게 거부하였다.그리하여 그는 현실로부터 탈출과 구제의 길을 ‘아름다움과 위대성’에 빛났던 과거 속에서 찾았다.‘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바로 아름다운 역사에게 바쳐진 그의 신앙 고백이다.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무서운 인간’의 불길한 도래를 예언한 부르크하르트.마이네케는 역사적 삶의 심연을 통찰함으로써 현대의 우리들의 문제를 그발단에서 그리고 그 해답을 최초로 제시한 부르크하르트에 감탄하였다. 이 책은 역사서술을 시와 예술로 드높인 고전 중의 고전이다.만시지탄의 감이 없지않으나 이제라도 명저의 번역본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하지만몇가지 오역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교황국→교황권,현대적→근대적,계급→신분,도덕과 종교→풍속과 종교 등등의 오역은 재판에서 바로잡아지기를 바란다.(안인희 옮김,푸른숲 2만9,000원)
  • 교황 “모두 기도를…” 케네디2세 사망 세계표정

    [워싱턴 뉴욕 외신종합]케네디 2세 내외의 사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19일 미전역과 세계각국에서는 애도행렬이 줄을 잇고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휴가 도중 소식을 듣고 “케네디가의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전언.팀 피셔 호주 총리서리는 케네디가에 조위문을 보냈고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와 미국을 방문중인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도 애도성명을 발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8일 실종된 존 F.케네디 2세와 부인등을 위해 모든 미국인들이 기도해줄 것을 호소.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휴가를 보내던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온 후 특별성명을 내고 이같이 발표. ■전문가들은 케네디 2세의 무모한 야간 단독비행이 사고 원인이었다고 지적.사고기를 판매한 조종사 미니르 후사인씨는 “면허증 딴지 15개월된 케네디가 교관 없이 조종한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고 지적.캐나다의 선데이 스타18일자는 “케네디 2세는 패러글라이더를 타다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다”고보도. ■케네디 2세는 어머니인 재클린여사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94년 재클린이 암으로 사망한 후에야 조종사 자격을 획득.케네디 가문 친지와 지인들은 재클린이 케네디 가문의 모험성향에 외아들이 물들까봐 늘 노심초사해왔으며 아들도 이를 알고 조종사자격증 따기를 미루어 왔다고 전언. ■미언론들은 케네디 2세의 죽음을 비롯한 일련의 비극이 케네디가(家)에 흐르는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모험주의’기질이 한몫한 것이라고 보도.케네디가의 친구 프랭크 맨키에비츠씨는 케네디 가족들은 어릴 때부터 남성적인 ‘힘’을 신봉토록 교육받는다면서 모토는 ‘케네디가의 사람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위험을 감수하라’등이라고 소개. ■지난 60년대 로버트의 암살과 에드워드의 교통사고 등을 취재했던 BBC방송 찰스 휠러 기자는 18일 리포트에서 “케네디 왕조는 사실상 30년전에 끝났다”며 언론의 이상관심도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예언. 손정숙기자 jssohn@
  • [외언내언] 케네디家 비극

    한 장의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막내아들을 무릎에 앉힌 아버지를 중심으로어머니와 9명의 자녀가 포즈를 잡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는다. 케네디가(家)가 1940년 하이아니스 포트의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지난 60년대 후반AP통신이 엮은 책 ‘케네디가의 승리와 비극’(서울신문 외신부 번역·발간)에 실린 이 사진에는 비극의 그림자가 없다.다복한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있을 뿐이다.그로부터 4년후 가족사진 속의 맏아들이 죽는다.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언젠가는 미국대통령이 되겠다고 장담했던 조지프 패트릭이 2차대전중 연합군의 베를린 공습에 참여했다가 피격당한다. 그로부터 다시 4년후 9남매중 넷째인 딸 캐슬린이 비행기 사고로 또 죽는다. 이어 케네디 집안 영광의 정점(頂點)에 섰던 둘째아들 존 F 케네디 대통령(63년)과 일곱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68년)이 잇달아 암살당함으로써 케네디가의 비극은 미국의 비극이 되기에 이른다.이제 사진속의 가족 가운데 남은 사람은 막내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4명의 딸뿐이다. 케네디가의 비극적 죽음은 3대까지 이어져 로버트의 두 아들 데이비드(84년)와 마이클(97년)이 각각 약물 과다복용과 스키사고로 숨진데 이어 케네디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2세와 그의 부인 캐롤라인이 함께 탄 비행기가 17일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났다.공교롭게도 실종된 비행기는 케네디일가가 가족사진을 찍었던 하이아니스 포트를 최종목적지로 하고 있었다. 케네디가의 비극에는 운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미국 대통령 1명과 대통령 후보 3명(상원의원 3명),하원의원 3명을 배출한 미국 최고의 정치 명문으로 왕실이 없는 미국에서 로열 패밀리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 집안에 드리운 운명의 그림자는 영광이 빛이 밝은 만큼 더 어둡게 보인다.워싱턴포스트는 케네디2세의 비행기 실종사고를 보도하면서 “미국에 셰익스피어가있다면 케네디가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셰익스피어는 야망,부(富),정열,권력,섹스,사랑 그리고 죽음등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초대형 인생의 모든것이여기에 들어 있음을 즉각 간파했을것”이라고 쓰고 있다. 이 가문의 이야기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것이라며 호머의 ‘오디세이’에 비유한 국내 번역가도 있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30대에 백만장자가 되고 영국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조지프 케네디로부터 시작된 케네디가의 신화가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주목을 끈데는 이 비극의 그림자도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단란한 가족사진을 망가뜨린 비극은 너무 처절하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원했듯이케네디 2세의 실종이 케네디가의 마지막 비극이 되길 바란다.
  • 대중문학으로 재조명 받는 추리문학 진단/역사/우리나라 추리소설

    소설은 재미 있어야 한다는 오락적 기능을 강조할 때,우리는 먼저 추리소설을 떠올린다.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면서 느끼는 지적 유희의 쾌감이 어떤 다른소설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정전(正典)장르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비(非)정전 하위 장르들이 주목받으면서 추리소설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추리소설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중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 같은 미스터리가 폭넓게 읽힌다.또 우리와는 달리 장르의구분이 무의미한 만큼 대중소설 작가라고 해서 평론가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일이 없다.그 작품들은 물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 대표적인 추리소설가로 으레 언급되는 작가가 ‘쥐덫’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애거사 크리스티다.크리스티의 작품은 셰익스피어보다도 14개가 더 많은 103개 국어로 번역돼 5억부 이상 팔렸다.크리스티가 생전에 발표한 추리소설은 모두 86권.특히 ‘빅4’로 꼽히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오리엔트 특급살인’‘ABC살인사건’‘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비롯해 피해자가범인이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예고살인’ 등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자신의 소설을 압도하는 기이한 실종사건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크리스티는이른바 ‘골든 에이지’ 추리소설의 대표작가로 견고한 독자층을 형성하고있다.골든 에이지는 1920∼40년대 추리소설의 전성기를 일컫는 말로,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밝히는 수수께끼 플롯에 치중하는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중세를 다룬 현대소설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대표적인 추리소설로 빼놓을 수 없다.‘장미의 이름’은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이탈리아의한 수도원에 잠입한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교황이 아비뇽에 유폐되면서 교권이 무너지고 유럽에 창궐한 페스트의 여파로 농민반란이 뒤따르는 등 중세 봉건제의 토대가 심하게 흔들리던 시대,교회의 반발로 이단심판이 본격화돼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시대를 그렸다.에코가 14세기중세를 무대로 한 까닭은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의 분석적인 사고가 14세기초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 오컴의 윌리엄이 등장한 이후에야 가능했기 때문이다.오컴의 윌리엄은 유명론(唯名論)의 주창자로 기호해석에 관한 진보적인이론을 전개한 인물이다. 이처럼 비교적 완성도 높은 추리 장르의 소설들은 최근에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움베르토 에코에게 적잖은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영국 추리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의 ‘캐드펠 시리즈’다.최근 제10권 ‘고행의 순례자’(북하우스)까지 나온이 시리즈의 배경은 12세기 초 중세 영국 미들랜드 지방의 시루즈베리.인간고통의 내면을 끈질기게 탐구함으로써 중세인의 사상의 궤적을 좇는다. 이시리즈는 중세의 의상과 색채,소리를 생생하게 묘사,12세기 영국인들의 삶과분위기를 실감나게 살려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엘리스 피터스가 각광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레이먼드 챈들러 계열의 하드보일드(hard-boiled) 소설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는 1920년대 말 미국에 처음으로 등장한 소설의 한 유형으로 프랑스에서는 ‘흑색소설(roman noir)’의장르에 포함된다.추리소설에 있어서하드보일드는 범인을 찾는 과정은 다른 추리소설과 비슷하지만,주인공이 지적인 추리가 아니라 행동과 완력을 통해 범인을 밝힌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때로는 범인이 스스로 실토하는 경우도 있어 모험소설과 추리소설의 경계를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도 한다.개성이 강한 등장인물과 복잡한 플롯,장식적인 배경 등이 특징으로 골든 에이지와 함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장르로 꼽힌다. 이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에드거 앨런 포의 창조적 계승’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80,90년대에 들어 스스로의 한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말았다.충격만을 위한 잔혹,반전을 위해 존재하는 반전 등이 그주된 요인이다. 반면 엘리스 피터스가 주도하는 현대 영국 추리소설은 문학적 측면을 크게강조한다.미국의 레이먼드 챈들러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의 영역을 개척해현대 미국 미스터리의 원형을 구축한 작가라면,엘리스 피터스는 전후 미국추리소설에 밀려 잠시 주춤했던 영국 미스터리계를 일으켜 세운 인물이다. 또 국내에 새로 소개된 추리소설로 시선을 끌만한 것으로는 미국 여성작가셰리 홀먼(34)의 역사 미스터리소설 ‘도둑맞은 혀’(문학사상사)가 있다.중세 성지 순례단이 순례 여행중 겪는 의문의 사건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실존 인물인 펠릭스 파브리 수사가 지은 ‘펠릭스 파브리 수도사의 여행기’를토대로 한 작품이다. 이집트와 시나이 산, 성 카타리나의 유골이 있는 고대수도원 등지를 직접 답사해 소설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추리소설의 효시라고 할 에드거 앨런 포와 뒤이어 등장한 코넌 도일과 길버트 체스터튼이 미스터리의 토양을 일궜다면,1920년대 이후의 애거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은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를 연 작가들이다.도서출판 청년사에서는 ‘코넌 도일의 정통적 계승자’‘미국 추리소설 그 자체’란 평을 듣는엘러리 퀸이 가려 뽑은 세계 초(超)단편 추리소설 걸작선 ‘미니 미스터리’(청년사)를 최근 내놓았다.이 책에는 세계 유명 추리작가의 작품 뿐 아니라 안톤 체홉,찰스 디킨스,기 드 모파상,마크 트웨인,잭 런던 등 거장들이쓴 추리소설도 발굴해 싣고 있어 눈길을 끈다.또 민음사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최신작 ‘빛이 남아 있는 동안’을 오는 12월에 펴낼 예정이다. 한편 국내 추리소설로는 추리소설선집 ‘99 올해의 추리소설 아웃사이더’(신원문화사)가 나와 있다.김성종·이상우·노원 등 원로 작가에서부터 신진작가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추리작가들이 망라돼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일본에서 지난해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작가는 추리소설가 니시무라 교타로(西村京泰郞)라고 한다.선진국일수록 또 사회가 고도로 발달할수록 추리소설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미국이나 일본,영국 등 등 추리문학 선진국의 경우추리소설은 생활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추리소설이란 말은 150여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나라마다 다양한 용어로 불려 왔다.영미에서는 탐정소설(detective story 혹은 mystery story)로,프랑스에서는 경찰소설(roman policier)이란 말로 통용됐다.특히 경찰의 수사력에 역사적 배경을 둔 프랑스의 ‘로망 폴리시에’는 중국식 추리소설이라 할 ‘공안(公案)소설’과도 일맥상통한다.최근의 국제적인 추세를 보면 범죄소설(crime novel)이라는 말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탐정소설이라는 용어는 추리소설이 일본에 처음 도입된 메이지 말기에 일본인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추리소설은 소설의 발달과 더불어 탄생했다.소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나 설화,민담,전설 등의 구비문학 혹은 ‘천일야화’에까지 이른다.추리소설의 기원 역시 멀리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서 가깝게는 볼테르의 ‘자디그’까지 소급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근대적 의미의 추리소설은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모르그가의 살인’(1841)에서부터 출발한다.그 뒤 19세기 말 영국의 코넌도일에 와서 하나의 양식으로 굳어졌다- 우리나라 추리소설 우리의 추리문학은 어떤가.누구나 명탐정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의 이름을들먹거리지만 정작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편견과 무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 문단에서 추리소설에 관심을 보인 것은 1918년 코넌 도일의 작품 ‘충복’이 ‘태서문예신보’에 번역·수록되면서부터.1930년대 들어서는 외국작품 소개와 함께 국내의 순수 창작물도 여러 편 선보였다.당시 우리 추리문학의 대부였던 아인(雅人) 김내성이 일본어로 쓴 ‘타원형 거울’(1935)이대표적인 예다.그는 ‘마인(魔人)’‘가상범인’‘백가면’‘살인예술가’등을 발표하며 추리작가로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그러나 60년이 넘는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추리문학의현주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영미권의 정통 추리소설도,일본작가 모리무라세이이치(森村誠一)류의 사회파 추리소설도 찾아보기 힘들다.어정쩡한 형태의 ‘불륜’ 추리소설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순문학 내지 고급문학에 기울어져 있는 사람들은 추리소설이란 장르를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작가나 출판사들 또한 문학작품에 ‘추리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이러한 문학적 자기비하 현상이 계속되는 한 한국 추리문학의 앞날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의 추리소설이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추리적 재미를 만들어내야 한다.코넌 도일의 작품을 노골적으로 베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같은 유사 추리소설은 더이상 나와서는 안된다.변호사였던 존 그리샴,국제담당기자였던 프레드릭 포사이드,호텔맨이었던 모리무라 세이이치,의사였던 로빈쿡 등이 확실한 ‘전공’을 갖고 추리소설을 썼듯이 현대의 추리작가에게는무엇보다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이 요구된다. - 국내 선보인 캐드펠 시리즈 ?성녀의 유골 ?99번째 주검 ?수도사의 두건 ?성 베드로 축일장 ?죽음의 혼례 ?얼음 속의 처녀 ?성소의 참새 ?귀신들린 아이 ?죽은 자의 몸값 ?고행의 순례자 - 읽을만한 추리소설 ?애거사 크리스티:쥐덫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패트리샤 콘웰:악의 경전 ?로빈 쿡 :미필적 고의 ?엘러리 퀸:재앙의 거리 ?모리무라 세이이치:인간의 증명 ?존 그리샴:거리의 변호사 ?프레드릭 포사이드:재칼의 날 ?이안 맥완:암스테르담 ?김성종:제5열
  • ‘수녀도 휴대폰 쓴다’ 교황청,TV시청 이어 허용

    교황청은 수녀원에서 은둔 생활중인 수녀들에게 라디오 청취와 TV 시청을허락한데 이어 시대변화를 수용,휴대전화와 팩스,인터넷 사용도 허용할 것이라고 7일 발표했다. 교황청 성성(聖省) 장관인 에두아르도 마르티네스 소말로 추기경은 수녀원의 일상생활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지침과 관련,수녀들도 앞으로 휴대전화및 인터넷 등을 활용하되 “극히 신중하고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녀원내 수녀들은 지난 주말 ‘라디오 바티칸’을 듣거나 최근 고국 폴란드를 방문중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정을 방영하는 TV뉴스를 시청했다. 또한 몇몇 수녀들은 이미 카톨릭의 ‘2000 대희년(大禧年) 준비위원회’의인터넷 사이트 개설작업에 참석하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제2공화국과 張勉](25)장면과 가톨릭…정치고비마다 후원자로

    장면(張勉)을 정치가로서 해부하건,인간적으로 이해하건 그 출발점은 같은자리에 있다.곧 가톨릭 신앙이다.장면의 정치는 출발부터 마감까지 신앙의테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장면을 정치의 길로 ‘내몬’사람은 노기남(盧基南)대주교다.한국인으로서처음 서울교구장이 되고 주교자리에 오른 그는 해방 당시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노주교는 대한민국 출범을 앞두고 정계에도 가톨릭을 대변하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가 염두에 둔 인물이 장면이었다. 장면은 노주교보다 나이는 겨우 3살 많았지만 소신학교에서 직접 그를 가르쳤다.게다가 인품·덕망이 뛰어나 노주교를 비롯한 제자들에게서 진정한 스승으로서 대우 받았다.그런 한편으로 신자인 장면에게 노주교는 순명(順命)의 대상이었다.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노주교에게 정계진출을 권유받은 장면은 처음에 펄쩍 뛰며 거부한다.교육자로 남겠다고 했다.그러나 거듭되는 강권에 못이겨출마한다.선거전이 시작되자 노주교가 진두지휘를 했고 가톨릭이 운영하는경향신문·경향잡지가 총동원돼 선거운동을 벌였다. 제헌의원이 된 장면은 첫번째 주요 임무인 ‘유엔에서의 한국 승인’을 받아낼 때도 가톨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당시 국내에는 친한파인 패트릭번 신부가 교황사절(바티칸이 국교를 맺기 전에 파견한 대사)로 있었다. 장면이 출국인사차 번 신부를 찾아가자 그는 파리주재 교황대사와 유럽·중남미의 가톨릭국가 대표들에게 보내는 소개장 10여장을 건네주었다.이 소개장은 파리에서 큰 효력을 발휘한다.한국을 몰라 냉담하던 이들이 소개장을받고나서는 앞장서서 다른 나라 대표들을 인사시켜줄 정도로 적극 협력했다. 장면은 훗날에도 주위사람들에게 이때 일을 자주 이야기하며 고마워했다. 한편 이승만(李承晩)은 나름대로 장면과 노주교의 관계를 이용했다.이승만은 장면에게 유엔대표단장·주미대사·총리 등 중책을 맡길 때마다 노주교를불러들여 상의하는 형식을 취해,장면으로 하여금 거절하지 못하도록 미리 쐐기를 박았다.이러한 삼각관계는 장면이 52년 4월 총리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된다. 장면이 제헌의원-주미대사-총리-부통령을 단계적으로 밟아 결국 제2공화국정부를 맡은 정치가로 성장한 바탕은 물론 그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이다.그러나 가톨릭 세력의 끊임없는 지원이 큰 보탬이 된 것도 사실이다. 장면 자신의 정치형태 또한 신앙인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장면내각에서 총리 공보비서관이었던 송원영(宋元英)은 “종교인으로서 성실의 원칙을정치에 적용하려 했으며 소위 정치적인 권도(權道)나 거짓말을 이용하는 일을 거의 생리적으로 배척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장면의 정치활동도 가톨릭의 테두리 안에서 끝났다.5·16쿠데타가 일어나자그는 수녀원으로 도피,쿠데타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뒤에야 그곳에서 나왔다. 수녀원에 있던 55시간동안 장면은 누구보다도 고뇌했을 것이다. 세월이 어느정도 흐른 어느날 민주당 신파의 장경순(張慶淳)전의원이 수녀원에서 지낸 시간에 관해 조심스레 물었다.장면은 “정치인과 종교인이라는 갈림길에서 정말 고민했다.결국 종교 쪽으로 결정했다.정치를 택했다면 (쿠데타군과 진압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서울시민의 희생이 컸을 것이다.권력을빼앗겼다거나 무능한 정치인이었다는 낙인은 감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한다. 이용원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25)-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上)

    1950년 6월24일 오후9시쯤(이하 현지시각)워싱턴의 장면(張勉)주미대사는 모처럼 토요일 밤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신생 대한민국의 초대 주미대사로서 매일 저녁 칵테일파티니,디너파티니 두세 군데를 쫓아다니며 바쁘게 외교활동을 벌이다 이날은 오랜만에 관저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AP통신의 해리스기자였다.해리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북한군이 전면 남침했다는데 아느냐”고 물었다.장면은 “흔히 있는 산발적인 전투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응답했다.이어 UP통신도 같은 내용의 전화를 해 장면은 미 국무부로 급히 연락하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밤10시30분쯤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북괴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밀고내려오니,장대사가 빨리 행동해 주어야겠소”라고 말했다.전화를 넘겨받은 임병직(林炳稷)외무장관은 “당신 한사람의역량에 국가 운명이 달렸소”라고 목이 메어 우는 소리를 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갓 세운 조국,대한민국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진 순간이었다. 장면은 곧바로 미 국무부로 달려가 딘 러스크 극동담당차관보 등을 만났다. 장면과 러스크는 한국사태를 25일 열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로 하고 이를 휴가중인 트루먼 대통령,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알렸다. 일단 관저로 돌아온 장면은 부랴부랴 짐을 꾸린 뒤 바로 비행장으로 나가 군용기 편으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갔다.오후2시 개막한 안보리에서 장면은 연설 기회를 얻었다.“유엔 승인을 얻은 대한민국은 북괴군의 불법공격을 받고 있다.이 공격은 인도(人道)와 민심을 거슬리는 죄악이자 국제평화·안보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다”라면서 지원을 호소했다. 안보리는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9대0으로 통과시켰다.결의한내용은 ▲북한군은 전쟁을 중지하고 38이북으로 철수할 것 ▲유엔한국위원단이 이를 감시할 것 ▲유엔회원국은 북한에 일체의 원조를 하지 말 것 등이었다.북한을 침략국으로 규정한 유엔 안보리 결의는 이처럼 6·25발발 50여시간만에 이루어졌다. 안보리 결의가 나온 다음날 장면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너무도 황급해서 국가원수에 대한 예모도 차릴 겨를이 없이”(회고록에서의 표현)장면은트루먼에게 “6개월전 요청한 무기원조를 왜 해주지 않았느냐,이제 우리나라 운명이 당신 손에 달렸으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마구 항변했다. 이 자리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트루먼은 27일 낮 해·공군을 한국에 파병한다고 발표했다.이날 유엔 안보리도 ‘북한의 공격을 격퇴하고 한국의 안전보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라고 권고하는’결의문을 추가로 채택했다.30일에는 미국이 육군을 출동시켰다. 6·25가 발발하자마자 유엔 안보리 결의,미국의 파병을 이끌어낸 이 며칠은한국이 적화(赤化)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나날이었다.그 결실은 장면의 초인적인 노력 덕에 맺어졌다고 할 수 있다.장면은 훗날 “본국으로부터의 지시나 의논할 사람이 없어 고군분투하며 우방 제국(諸國)의 대표들에게 눈물의 호소를 했다”면서 당시를 “한 시간이 일년만큼이나 귀중했다”고 회고했다. 장면정부를 ‘실패’라고 규정하고 장면 개인을‘무능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건국 초기에 두가지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한다.하나는 6·25직후 미국 및 유엔의 군사적 지원을 즉각 이끌어낸 점이고,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법 정부’임을 유엔에서 승인받은 일이다. 장면은 48월 5월10일 제헌의회 선거에서 서울 종로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당선함으로써 정치의 장(場)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정부 출범 며칠뒤 장면은 9월 파리에서 열리는 제3차 유엔총회에 참가하는 한국대표단의 수석으로임명받았다.그와 함께 대표단으로 참가한 이들은 조병옥(趙炳玉)정일형(鄭一亨)장기영(張基永)김활란(金活蘭)모윤숙(毛允淑)전규홍(全奎弘)김우평(金佑枰)김준구(金俊九)등이었다. 한국의 법통(法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막중한 회의에,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장면이 수석대표로 임명된 사실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특히 조병옥을 앞섰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조병옥은 독립운동 경력이 화려한데다 한민당 창당에 한몫 했으며 미군정 때는 경찰총수인 경무부장을 지냈다.더욱이 대통령 이승만에게서 미 유학시절부터 상당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반면 장면은 주요 경력이 동성상업학교 교장,입법의원 정도였다.이승만과도 해방공간에서야 처음 만난 사이다. 그런데도 당시 ‘국가 승인’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승만이 장면을 수석대표로 선택한 것은 그만큼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단을 이끌고 파리에 도착한 장면은 바티칸을 비롯한 가톨릭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해 12월12일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내의 유일·합법정부임’을 승인받는다.장면은 “쉬는 시간에도 혼자서 한국승인 문제를 위해 천주교인을 만나러 다녔고”(장기영의 회고담),그토록 과로한 탓에 쓰러져 입원한다.이때 병원에서 주사를 잘못 맞아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바람에 생을 마칠 때까지 간질환으로 고생하게 된다. ‘유엔의 한국 승인’에 성공한 장면은 대통령 특사로서 바티칸에 가 교황을 알현했다.귀국길에 미국에 들른 그는 그곳에서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짐은 이미 집으로 부친 뒤였다. 장면은 다음날부터 각국 대사를 찾아다니며 대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먼저 공부했다.한편으로는 사무실과 사람을 구하는 등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갔다.1년반 동안 노력한 끝에 주미대사관이 궤도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듯 6·25가 터졌고,장면은 그에게 부여된 국가적 과제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그해 11월 이승만은 장면을 제2대 국무총리로 지명했고 국회는 23일 이를 인준했다.그러나 장면은,유엔이 51년 2월1일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것까지를 지켜본 뒤에야 귀국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용원기자yw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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