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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지된 사랑이 만든 아름다운 궁전, 잘츠부르크 미라벨 궁전 [한ZOOM]

    금지된 사랑이 만든 아름다운 궁전, 잘츠부르크 미라벨 궁전 [한ZOOM]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1559~1617)가 우연히 연회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살로메 알트(Salome Alt)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살로메 역시 오래 전부터 디트리히 대주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성직자인 주교는 여자를 만나거나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남을 이어갔다. 얼마 후 디트리히는 살로메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교황님께 허락을 받을 테니 살로메를 저에게 주십시오.” “대주교님은 결혼하실 수 없는 몸입니다. 저는 제 딸이 대주교님의 숨겨진 여인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디트리히와 헤어질 수 없었던 살로메는 아버지를 떠나 디트리히에게로 갔다. 디트리히도 교황에게 살로메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교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비밀결혼을 이어갔고 열 다섯 명의 아이가 생겼다. 디트리히는 살로메와 아이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606년 잘자흐강(Salzach) 건너편에 ‘알테나우 궁전’을 지었다. 알테나우는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의 집’ 이라는 뜻이었다.금지된 사랑의 슬픈 최후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그리고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시기였다. 디트리히는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1573~1651)로부터 함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대항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그 동안 많은 도움을 준 황제를 배신할 수 없어 막리시밀리언의 제안을 거부했다. 막시밀리언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 디트리히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 잘츠부르크를 공격했다. 디트리히는 황제가 이번에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황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국 디트리히는 막시밀리언의 편에 선 사촌동생 호헤넴스(Hohenems)에 의해 대주교 자리에서 쫓겨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와 알테나우 궁전에서 쫓겨난 살로메는 서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몰래 편지만 주고받을 수 있었다. 1617년 디트리히는 알테나우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감옥에서 눈을 감았다. 디트리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살로메는 죽을 때까지 상복을 벗지 않고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1631년 눈을 감았다.남은 이야기 디트리히를 몰아내고 대주교의 자리에 오른 호헤넴스는 디트리히와 살로메가 떠난 알테나우 궁전에 계속 머물렀다. 그리고 궁전의 이름을 ‘미라벨 궁전’ (Mirabell Palace)으로 바꾸었다. 호헤넴스 다음으로 대주교가 된 로드론은 미라벨 궁전에 별채를 짓고 정원을 넓혀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금지된 사랑이 만든 아름다운 미라벨 궁전은 1818년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복원된 후 지금은 잘츠부르크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 가장 고귀한 시인 단테여, 모자이크 도시에서 영원한 안식을…[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가장 고귀한 시인 단테여, 모자이크 도시에서 영원한 안식을…[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꼭 가져가던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호위무사가 나를 지켜 주는 듯한 든든함이 느껴진다. 아주 멀리 떠날수록 나의 둔감한 영혼을 죽비처럼 후려치는 시원한 문장을 읽고 싶어진다. 위대한 작가 단테에게 혼쭐이 나는 듯한 순간이 많은데, 그마저도 이상하게 상쾌하다. 나를 혼낼 자격이 있는 훌륭한 어른에게 애정 어린 충고를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늘 높이 날기 위해 태어난 인간아, 어찌하여 작은 바람에도 그렇게 추락하는가?” 단테의 ‘신곡’ 중 한 대목이다.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창공을 가로질러 힘차게 날아오르는 삶을 꿈꾸지만, 아주 작은 역경에도 흔들리고, 곁눈질하고, 절망한다. 이런 단테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인간의 나약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한 작가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가 닥쳤을 때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그야말로 ‘앗, 뜨거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내가 바로 그런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필이면 위기가 닥쳤을 때 더더욱 두려움에 빠져 용감하게 약자의 편을 들지 못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분노를 참고 침묵하면서 상황을 바꾸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단테의 문장 하나하나가 심장을 꿰뚫는 화살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판다. 1318년 피렌체서 추방당한 단테라벤나 왕자의 초대로 잠시 망명여러 차례 유해 강탈 막아 내기도실제 시신 묻힌 무덤 방문객 많아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 한 사람인 단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는 단연 피렌체였는데, 알고 보니 단테의 생가가 있는 피렌체 말고도 단테 마니아들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모자이크의 도시로 더 많이 알려진 라벤나다.라벤나에는 단테의 무덤이 있고, 피렌체와 다른 또 하나의 단테 박물관이 있으며, 단테의 시신을 두고 서로 권력 다툼을 벌였던 이들의 수많은 후일담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는 단테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으나 단테의 무덤과 박물관이 라벤나에 생기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318년 라벤나의 왕자 귀도 2세의 공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온갖 고초를 겪고 있던 단테를 라벤나에 초대했던 것이다. 고향 피렌체에서 정치적인 권력 다툼에 밀려 추방당하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단테가 실제로 라벤나에서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다. 단테는 안타깝게도 1321년 베네치아공화국의 외교사절단에서 라벤나로 돌아오는 길에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그는 라베나의 산 피에르 마조레 교회(지금은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에 묻혔고, 나중에 그의 시신을 향한 피비린 암투가 벌어진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는 단테의 문장처럼 그는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온갖 지옥을 겪어 냈고, 이제는 천국으로 가는 길의 위대한 수문장이 돼 라벤나를 지켜 주고 있는 것 같다. 오랜 망명 생활과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고결한 성품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무덤이 어디 있든, 동상이 어디 있든 상관없이 우리 독자들의 가슴속에서 빛난다.1329년 교황 요한 22세의 추기경이자 조카인 베르트랑 뒤 푸제는 단테의 ‘군주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의 뼈를 화형에 처하려 했다. 하지만 라벤나 사람들은 단테의 유골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 냈다. 피렌체의 권력자들은 결국 단테를 추방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피렌체시는 그의 유해를 돌려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피렌체는 1829년 산타크로체 대성당에 단테의 무덤을 만들었다. 단테의 시신은 여전히 라벤나에 남아 있고, 피렌체의 단테 묘는 자리만 있을 뿐 시신이 없다. 피렌체에 있는 그의 무덤 자리 앞면에는 “가장 고귀한 시인을 기리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단테의 시신을 둘러싼 피비린 전쟁’의 끝이 아니었다. 1945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부가 연합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테의 유해를 발텔리나 보루로 옮겨 와 ‘이탈리아다움의 가장 위대한 상징’으로 써먹으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런 파시스트들의 사악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라벤나는 단테의 시신을 무사히 잘 지켜내고 있다. 단테의 무덤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단테 박물관에 들어갔다. 단테의 생애와 그가 영향을 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시물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단테의 문장들은 마치 거대한 모자이크의 흩어진 조각들처럼 곳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나는 비애의 도시로 가는 길이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로 가는 길이다. 나는 영원한 슬픔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신곡’의 한 대목처럼 그는 인생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추락했다. 뛰어난 리더십과 문장력으로 일찍이 정치 무대에서 성공했지만 결국 피렌체 정계와 로마 교황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쓸쓸한 망명객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괴롭고 쓸쓸한 시절에 ‘신곡’의 집필이 시작된다. 그가 만약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했다면 인류는 단테의 ‘신곡’이라는 명작을 갖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런 절망적인 문장을 쓸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지옥의 늪을 건너 끝끝내 천국에 다다르는 희망에 관해 썼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끝내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곡’에는 절망에 빠진 인간의 어깨를 툭 치며 ‘이봐, 정신 차려’라고 외치는 듯한 가벼운 유머도 있다. “여기 남아서 죽어 버리든가, 아니면 그 못생긴 엉덩이를 이끌고 저 문으로 돌아가든가. 다 네게 달렸어, 친구.”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늘 심각하고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단테의 책 속에서 뜻밖의 유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죽지 않았지만, 삶의 숨결을 잃었다”며 절망했던 단테가 마침내 붙잡은 희망의 나무는 바로 ‘아름다움’과 ‘사랑’이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아련한 사랑이었지만 평생 그의 마음속에서 사랑의 이상형으로 남아 있던 베아트리체를 향한 그리움, 그것은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향한 갈망’이 합쳐진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는 “아름다움은 영혼을 일깨워 행동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벤나에서 ‘신곡’을 다시 펼쳤을 때 나 또한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건너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 혼자 나를 하루하루 고문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이 사방에서 하루에 1밀리씩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원고 집필이나 강연 같은 공식적인 약속은 간신히 지키고 있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들’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루하루 나이 들어감이 두려웠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화가 났고, 적어도 겉으로는 아주 괜찮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진저리가 났다. 패배감과 분노와 질투로 가득 찬 진짜 내 속마음을 보여 주면 모두가 나에게서 뒷걸음질치며 도망갈 것만 같았다. 사회적인 약속은 부지런히 이행하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은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는 중이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꿈을 향해 도전했을 때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혐오를 부지런히 키워 가고 있을 때 단테의 ‘신곡’ 속 다음 문장을 다시 만났다. “나는 행함으로써 패배한 것이 아니라, 행하지 않음으로써 패배했다.” 너무도 뼈아픈 자기진단이었다. 뭔가를 해 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해 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습관은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나는 라벤나의 위대한 문화유산들뿐만 아니라 골목골목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자이크가 내 고민의 해답임을 깨달았다. 부서지고 이지러지고 찌그러진 채로도 모자이크는 훌륭한 한 조각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은 단지 하나하나의 깨진 조각들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큰 그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하루하루의 끈기다. 단테는 또 내 안에서 속삭인다. “그럼 뭐야? 왜 망설이는 거야? 왜 겁쟁이처럼 사는 것을 좋아하는가? 왜 대담하고 예리하게 시작하지 못하는가?” 오늘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낼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순간, 내가 가장 싫어지는 이 순간, 그 순간이 내가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디뎌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신곡’의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의 모자이크 조각이 돼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골목골목마다 모자이크로 장식가까이서 보면 그저 깨진 조각들멀리 떨어져서 봐야 큰 그림 보여오늘도 내 인생의 소중한 한 조각 삶의 불완전성을 온전히 끌어안는다는 점에서는 모자이크의 작업 원리와 단테의 ‘신곡’이 비슷하다. 인생의 부스러진 부분, 이지러진 부분, 깨어진 부분, 도저히 예뻐 보이지 않는 부분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부정하고 싶지만 실은 그 결점들이 하나하나 서로의 요철을 맞추어 가며 모자이크는 이루어진다. 게다가 모자이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미적인 거리가 필요하다. 모자이크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답진 않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바라보면 모자이크가 딱 아름다워 보이는 그 자리를 찾는 것이 균형감각이다. 적정 거리에서 모자이크를 바라보면 비로소 그림의 전체성이 보인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가 좀 엉망진창이고 결핍투성이일지라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이라는 큰 그림에 이어 붙이면 그 깨진 모서리들이 언젠가는 아름다운 윤곽선이 돼 광대한 삶과 사랑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힘들고 지치고 쓸쓸한 그대여, 일단은 오늘을 버틸 일이다. 오늘을 버틸 힘만 있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으니까. 오늘을 버틸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우리는 삶이라는 광대한 모자이크를 마침내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으로 고꾸라져 있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를 일으켜 세우며 이렇게 속삭여 본다. 오늘이 인생이라는 모자이크의 가장 소중한 한 조각임을 잊지 말자고. 깨어진 모자이크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고. 문학평론가·작가
  •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의 ‘수녀 낙태 강요’ 외면”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의 ‘수녀 낙태 강요’ 외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의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서도, 실질적인 조처를 취하는 데는 수년간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성학대 성직자 추적단체 ‘비숍어카운터빌리티’의 공동창립자 앤 바렛 도일은 이날 로마에서 기자들을 만나 “교황은 혐의를 받는 학대자들을 두둔하는 반복적 패턴을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2019년 이후 발생한 10건의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사건에서 교황이 사실상 가해자들의 편을 들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예컨대 예수회 신부인 동시에 저명한 예술가였던 마르코 루프니크 신부가 30년간 수녀 등 수십명을 성적으로 학대하고서도 공소시효를 이유로 처벌받지 않고 고향인 슬로베니아 교구로의 이적이 허용된 게 대표적이라고 도일은 지적했다. 도일은 “교황이 개혁에 진심이 아니라거나 교황청 내 반대에 막혀 있다는 게 아니다. 난 그가 개혁에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놓은 조처는 별다른 효과가 없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 출신의 활동가 도리스 라이징거는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사상 처음으로 수녀를 대상으로 한 일부 성직자들의 성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이 문제에 맞서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은 낙태를 살인청부에 비교하며 공개적으로 규탄했지만, 수녀들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성직자들에는 눈을 감았다”면서 성범죄 피해를 당한 많은 수녀들이 교단에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교황청은 아직 구체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3년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칠레 전직 신부의 성범죄를 은폐한 의혹을 받는 후안 바로스 주교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거센 비난을 받자 공개 사과하고 성비위를 저지르는 가톨릭계 인사들을 척결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2021년에는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 38년 만에 교회법을 개정하기도 했으나, 활동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해 도입한 여러 대책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 국내 한 가톨릭교회서 동성 신자 축복…로마 교황청 ‘사목적 배려’ 발표 이후 처음

    국내 한 가톨릭교회서 동성 신자 축복…로마 교황청 ‘사목적 배려’ 발표 이후 처음

    국내 한 천주교회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도가 이뤄졌다고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라는 단체가 11일 전했다. 로마 교황청이 지난해 연말 교리선언문을 통해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가톨릭 사제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적용된 첫 번째 사례다. 다만 12일 현재 한국 천주교회 측의 공식 입장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를 ‘한국 가톨릭 교회’ 전체의 일로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는 앞서 11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1월 20일 오후 (서울 시내 모처에서 열린)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신년미사 직후에 이승복 라파엘 신부가 교황청에서 발표한 교리선언문 ‘간청하는 믿음’에 기반해 두 여성 커플을 축복했다”고 전했다. 첫 번째 커플은 가톨릭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 ‘알파오메가’와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의 공동대표인 크리스(가명, 세례명은 크리스티나)와 그 배우자 아리(세례명 아리아드네)이고, 두 번째 커플은 유연(가명, 세례명은 크리스티나)와 그 파트너 윤해(가명)다. 크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혼인 예식과 달리, 사목적 축복은 여러 번 받을 수 있다. 동성 커플들과 사제들이 서로 부담 갖지 않는 선에서 축복을 자주 청하고 줄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가 한국 가톨릭교회에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연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축복을 통해 다시 주님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어 기쁘다. 이번 기회로 비신자인 파트너도 교리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길을 열어주신 앨라이 신부님들, 수녀님들께 깊은 감사를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는 2022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T)에 가톨릭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 알파오메가 대표와 가톨릭독서포럼 대표가 의기투합해 공동 설립한 가톨릭교회 내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인 라파엘(세례명)은 1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회의 시선이 워낙 예민해 축복 장소, 실명 등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전했다. 축복식을 진행한 이승복 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성소수자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며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며, 주님의 축복에서 그 어떤 이도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 측은 “앞으로도 축복을 청하는 동성 커플을 가톨릭 사제와 연결해 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간) ‘간청하는 믿음’이라는 제목의 교리 선언문을 통해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을 위해 축복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난 7일 “부도덕한 기업가에 대한 축복에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동성 커플 축복을 반대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박물관 자리잡은 순교지… 미술관 버금가는 박물관[마음의 쉼자리-종교와 공간]

    박물관 자리잡은 순교지… 미술관 버금가는 박물관[마음의 쉼자리-종교와 공간]

    첫 만남에 두 번 놀람을 안겨 주는 공간이 있다. 서울 중구 칠패로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다. 첫 번째는 여기가 박물관인지 미술관인지 불분명한 것에 놀란다. 박물관 자체의 건축적 조형미가 빼어나고 전시된 작품들도 하나같이 전문 미술관 뺨칠 만큼 아름답다. 그런데도 공식적으로는 ‘박물관’이다. 두 번째는 이런 기막힌 공간을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이다. ‘원흉’은 코로나19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문을 열어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공간이 나라 안에 몇 곳 있는데, 2019년 개관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도 그중 하나다.박물관이 들어선 자리엔 수많은 역사의 켜가 쌓여 있다. 대표적인 걸 꼽으라면 ‘서소문 밖 네거리’가 아닐까 싶다. 600년 조선의 역사를 통틀어 줄곧 사형장으로 쓰여 온 공간을 일컫던 표현이다. 그만큼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숨을 거뒀고 또 효수됐다. 천주교도의 참형장이기도 했다. 교회사적으로 서소문 밖 네거리는 단일 장소에서 최다 성인(44명)과 복자(27명)를 배출한 한국 최대 천주교 순교 성지다.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을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당했다. 로마 교황청이 2018년에 아시아 최초로 이 일대를 국제 순례지로 승인한 이유다.박물관은 지하에 조성됐다. 광주광역시의 아시아문화전당, 전북 익산의 국립익산박물관 등을 떠올려 보면 되겠다. 지상엔 작은 안내판과 약간의 조형물 등이 배치된 정도다. 진입로부터 인상적이다. 현재 공간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전이적 공간’ 같은 느낌이다. 가장 감동을 받는 장소는 ‘위안’, ‘위로’라는 뜻의 ‘콘솔레이션 홀’(Consolation hall)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이 공간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하다. 고구려 무용총에서 모티브를 따온 콘솔레이션 홀은 상자 형태를 하고 있다. 바닥에서 2m가량 들린 모양새다. 이 열린 공간이 진입문 구실을 한다. 상자 안으로 들어서면 네 벽면에서 빛의 공연이 펼쳐진다. 영상은 명동성당 등의 스테인드글라스, 박해의 시대였던 조선 후기 사회,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전도’ 등을 담고 있다. 모두 천주교와 관련된 소재이지만 그 관계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콘솔레이션 홀 가운데에는 다섯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그 위 천장엔 ‘빛의 우물’이 배치됐다. 이름처럼 빛의 우물에선 쉼 없이 바깥의 빛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리고 그 빛은 바닥의 선을 따라 콘솔레이션 홀과 마주하고 있는 바깥의 ‘하늘광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두 공간은 떨어져 있되 실질적으로는 하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은 하늘광장으로, 이와 상반되는 어둠의 기념 공간은 콘솔레이션 홀로 구성된 거다. 지상과 지하를 하나로 묶고 밝음과 어둠의 연결성에 고심한 설계자의 의도가 여실히 읽힌다.빛의 안내를 따라 하늘광장으로 나가면 붉은 벽돌로 된 공간이 방문객을 맞는다. 삶의 주인인 각자를 상징하는 작품 ‘영웅’과 이 땅에서 순교한 이들 중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상징하는 작품 ‘서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빌딩이 숲을 이룬 서울의 ‘하늘 아래 빈 공간’에서 이런 조형미술 작품들과 마주하는 느낌이 아주 각별하다. 이후로도 성 정하상 기념경당, 좁은문, 조형미술 작품 ‘발아’와 ‘피에타’, 상설전시장, 특별전시장이 연이어 펼쳐진다.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펴보길 권한다.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문을 열고 월요일과 공휴일에 휴관한다. 입장료는 없다.
  • 밀레이, 악마라고 비난했던 교황 만난다

    밀레이, 악마라고 비난했던 교황 만난다

    하비에르 밀레이(53)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악마’라고 부르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오는 12일 예방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마누엘 아도르니 아르헨티나 대통령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정례 기자회견에서 “밀레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바티칸 순방 일정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다”고 밝혔다. 밀레이 대통령과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만남이 주목받는 것은 밀레이 대통령의 과거 발언 때문이다. 극단적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밀레이 대통령은 교황이 빈민층 지원과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 정의 교리를 설파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면서 교황을 ‘악마’, ‘악의 축’, ‘×덩어리’라며 험한 말로 부르기도 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달 “교황 성하를 고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며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밀레이 대통령이 교황에게 과거 막말을 사과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을 사랑한 이태리男 알베르토의 ‘사적인 이탈리아’

    한국을 사랑한 이태리男 알베르토의 ‘사적인 이탈리아’

    한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에 덜컥 한국에 왔다. 며칠 있어 보자는 게 몇 달이 됐고 몇 년이 됐고 그렇게 17년을 살았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는 열정과 낭만이 ‘역시 이탈리아 남자구나’ 싶다. 알베르토 몬디(40)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이탈리아인 가운데 하나다. 중국 유학 시절 썸을 타던 그 여자를 따라 한국에 와서 결혼해 정착했고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JTBC ‘비정상회담’ 출연을 계기로 프로 방송인이 됐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틈새책방)까지 냈다. 원래는 같은 출판사에서 2017년 ‘이탈리아의 사생활’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이번이 개정판이다. 알베르토의 책을 계기로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수잔 샤키야(네팔), 벨랴코프 일리야(러시아), 오헬리엉 루베르(프랑스)가 ‘지극히 사적인 ○○○’ 시리즈를 출간하게 되면서 원조였던 그도 이번에 ‘지극히 사적인’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알베르토는 “원래 책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업데이트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면서 “‘이탈리아의 사생활’이 나오고 7년 동안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뭘 관심 있어 하는지 파악하게 되면서 확장해서 풍부하게 썼다”고 말했다. 이전 책은 이윤주 작가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는데 이번 개정판은 온전히 알베르토 혼자 보완했다.‘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여행을 피상적으로 다녀왔을 이들에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내용이 많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서서 마시는지, 진짜 이탈리아 남자들은 어떤지, 마피아의 실체, 이탈리아 음식과 식문화,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을 품은 나라로서 종교가 사회 전반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등 여행 가이드로는 알 수 없는 정보들이 가득하다. 알베르토의 내밀하고 친밀한 소개는 당장이라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알베르토는 “저도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책을 쓰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저만의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가는 부분도 많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보자 해서 비판적인 얘기도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마피아를 다룬 내용은 비판적인 시선으로 단호하게 썼다. 한국의 X세대처럼 이탈리아 사람들의 유형을 다룬 부분은 조금 딱딱하지만 이탈리아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상세히 넣었다. 그가 집필하면서 가장 재밌게 쓴 부분은 음식, 축구, 여행이다.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피자, 파스타를 떠올리는데 책에는 현지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 적혀 있다. 본인이 축구 선수로도 활동했던 덕분에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축구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게 담겨 있다. 특히 김민재가 나폴리에서 활약하며 일군 우승이 어떤 의미인지가 흥미롭게 읽힌다.판매 욕심을 묻자 알베르토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마음보다 이탈리아로 여행가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유학가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분들도 유학 준비하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추천했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책을 낼 정도로 잘 정착한 그는 현재 TV 고정 프로그램 3개, 유튜브 고정 프로그램 2개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다른 외국인들과 같이 유튜브도 하고 따로 작은 사업체도 운영할 정도로 바쁘다. 이렇게 한국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그는 ‘진정성’을 꼽았다. 알베르토는 “방송한 지 10년 넘었는데 아직까지 할 수 있는 건 있는 그대로, 못하는 거 많고 빈틈이 많지만 진정성 있게 하자는 마음 덕분이지 않을까 한다”면서 “원래는 사무실에서 엑셀을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도 방송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현재를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난감한 질문인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알베르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내 답을 정한 그는 “인생은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현재에 집중해서 산다”면서도 “방송도 열심히, 유튜브도 열심히, 사업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아빠와 남편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게 계획”이라며 가정적인 이탈리아 남자의 매력을 뽐냈다.
  • ‘질소가스 주입’ 사형 괜찮은가…사형제 폐지 국제추세 속 ‘고문 vs 인도적 방법’ 논란

    ‘질소가스 주입’ 사형 괜찮은가…사형제 폐지 국제추세 속 ‘고문 vs 인도적 방법’ 논란

    바티칸 산하 가톨릭 국제자선단체인 산테지디오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사법당국에 질소가스를 이용한 사형 집행 계획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사형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격으로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에 본부를 둔 산테지디오의 사형제 전문가인 마리오 마라치티는 이날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유럽 기업과 관광객에게 보이콧을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앨라배마주가 예정대로 질소가스 사형을 집행할 경우 유럽 차원에서 앨라배마 보이콧 운동을 벌이겠다는 이야기다. 마라치티는 “독일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 벤츠가 앨라배마에 공장을 두고 있고, 많은 유럽인이 골프를 목적으로 미국 남부 지역을 방문한다”며 “앨라배마에 대한 유럽의 무역과 투자 규모가 연간 수억 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에도 보이콧이 효과가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흑인을 차별하는 ‘아라파트헤이트’ 체제를 종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앨라배마주 사법당국은 오는 25일 사형수 케네스 스미스(58)에게 질소가스를 이용해 사형을 집행할 예정이다. 사형수에게 안면 마스크를 씌운 뒤 질소가스를 주입해 저산소증으로 숨지게 하는 방식이다. 앨라배마 교정당국은 2022년 11월 스미스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고자 몇 시간가량 애썼다. 스미스를 교도소 내 ‘죽음의 방’이라 불리는 집행실 내 사형 침대에 묶어두고 혼합 화학물질을 주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주사를 놓을 정맥 부위를 찾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다. 스미스의 변호인단에 따르면 이로 인해 스미스의 몸엔 다수의 자국이 남았다. 결국 시계가 자정을 가리켰고, 이에 앨라배마주의 사형집행 영장이 만료되면서 더 이상 시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앨라배마주는 그의 목숨을 다시 한번 끊고자 시도한다. 앨라배마주 사법당국은 사형 재집행을 결정하면서 약물이 아닌 질소가스 주입 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시도되지 않은 방식이라는 점이다.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는 질소가스 사형은 대형동물을 안락사할 때도 쓰지 않는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고문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 의견을 내놨다. 집행일을 앞둔 스미스는 BBC 인터뷰에서 “검증되지 않은 실험과도 같은 집행 방식을 생각하면 너무 괴롭다”고 고백했다. 이번에 앨라배마주는 스미스의 얼굴에 밀폐 마스크를 씌우고, 체내 산소 부족을 일으키는 불활성 가스인 순수 질소를 강제로 흡입시켜 질식시키겠다는 사형집행 계획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앨라배마주 법무장관실은 성명을 통해 “질소가스 사용이 가장 덜 고통스럽고 인도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라치티는 “고통 없는 사형 집행 방법은 없다”고 받아쳤다. 스미스는 1989년 목사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세넷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 2명 중 한 명이다. 이들 남성은 1000달러(약 133만원)를 받고 세넷을 구타하고 흉기를 휘둘렀다. 1996년 배심원단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권고했으나,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에서 스미스는 피해자가 살해당했을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던 건 사실이나,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제 스미스는 미국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나 사형장으로 향할 인물이자, 성공하면 질소가스로 사형을 당하는 최초 사례로 남을 처지다. 스미스는 BBC 서면 인터뷰에서 “내 몸은 그저 무너지고 있다. 체중이 계속 줄고 있다”고 밝혔다. 앨라배마주는 언론과 사형수 간 직접 대면을 금지하고 있다. 스미스는 서면 답변에서 “지금 계속 구역질이 난다. 공황 발작도 정기적으로 일으킨다. 이것 말고도 매일같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질소 가스를 통한 사형 집행 방식은) 기본적으로 고문과도 같다”면서 앨라배마주 당국에 “(집행을) 멈춰달라. 너무 늦기 전에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앨라배마주는 질소가스 주입 시 빠르게 의식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진 않은 상태다. 의학 전문가들과 인권 운동가들은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거나, 사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생존했으나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마스크에서 질소 가스가 새어 나와 그 곁에 있을 종교인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의 가능성 등 재앙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형 집행 시 입회할 제프 후드 목사는 “스미스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 과정에서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며 두려워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후드 목사는 BBC 인터뷰에서 “만약 호스, 마스크, 얼굴 주변 밀폐장치에서 그 어떠한 누출이라도 있다면 사형 집행실 전체에 질소가 누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유엔에 제출된 조사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미국 에모리대 의과대학 소속 마취가 부교수인 조엘 지봇 박사는 BBC에 “스미스가 미국에서 가장 나쁜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려야만 할 것 같다. 앨라배마주가 그를 죽이고자 이토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를 죽이고자 다른 이들도 죽이고자 할 정도”라며 비꼬았다. 그러면서 지봇 박사는 “총살형을 당하는 사형수 근처에 목격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집행관의 사격 실력이 좋지 않아 목격자들에게도 총알이 날아갈 수 있기에 이들 모두에게 법적 책임 면제서를 받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바로 이러한 일이 질소 가스를 통한 사형 집행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봇 박사는 “질소 가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건강한 신체를 지닌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에서 약 15~20초만 들이마셔도 전신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대로 된다면 스미스는 먼저 의식을 잃고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게 된다. 앨라배마주는 미국에서 1인당 사형 집행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현재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165명에 달한다. 2018년부터 앨라배마주는 독극물 주입 사형이 세 차례 실패할 경우 책임을 지게 돼 있다. 그리고 사형 집행 당국은 이러한 실패의 원인이 전반적으로 사형수들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사형수들의 변호인들이 의뢰인의 목숨을 구하고자 막판에 법원에 사형 집행 유예를 요청하는 식으로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또한 내부 조사 보고서는 이러한 사태로 인해 사형수들이 “불필요한 기한 압박”을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 “빅테크 기업가들, AI로 하느님 행세 그만두라”

    “빅테크 기업가들, AI로 하느님 행세 그만두라”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엔의 인공지능(AI) 윤리 정책을 돕는 파올로 베난티(50)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윤리·기술 전공 교수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가들에게 “AI 기술을 활용해 마치 하느님이 된 양 행세하는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베난티 교수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에는 좋든 싫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며 하느님 행세를 하는 가부장주의가 팽배해 있는데 저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AI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인간의 의사결정 능력을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의 등장이 인류 존속을 위협할 가능성보다는 인간이 AI를 전쟁에 쓸 무기로 전용하는 등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더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중요한 건 AI 거버넌스”라며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AI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베난티 교수는 로마의 명문대인 라사피엔차대학에서 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지 1년여 만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과 AI를 통섭하는 전문지식을 갖춘 그는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출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유엔 인공지능 자문기구 위원이자 AI가 생성한 허위조작 정보로부터 저널리즘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권고안을 제공하는 이탈리아 정부 위원회 위원으로, 최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대담에 사제복을 입고 배석해 눈길을 끌었다.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생명아카데미 컨설턴트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조언을 해 왔다. 지난해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과 브래드 스미스 MS 회장의 대담에서 ‘AI가 인류에게 어떻게 이익이 되고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논의하는 데 다양한 조언을 했다.
  • 이태리 최고 AI윤리 전문가 “실리콘밸리 빅테크, AI로 하느님 행세, 멈춰”

    이태리 최고 AI윤리 전문가 “실리콘밸리 빅테크, AI로 하느님 행세, 멈춰”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엔(UN)에 인공지능(AI) 윤리 정책을 자문하는 파올로 베난티(50)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윤리·기술 전공 교수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가들에게 “AI 기술을 활용해서 마치 하느님이 된 양 행세하는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베난티 교수는 1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에서 “실리콘 밸리에는 좋든 싫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며 하느님 행세를 하는 가부장주의가 팽배해 있는데 저는 여기에 반기를 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AI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인간의 의사결정능력을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의 등장이 인류 존속을 위협할 가능성보다는 인간이 AI를 전쟁에 쓸 무기로 전용하는 등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더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중요한 건 AI 거버넌스”라며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AI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 가능한 수준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난티 교수는 로마의 명문대인 라사피엔차 대학에서 공학 학위를 취득한 지 1년여 만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과 AI를 통섭하는 전문지식을 갖춘 그는 둘 사이의 균형을 맞줄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유엔 인공지능 자문기구 위원이자 AI가 생성한 허위조작정보로부터 저널리즘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권고안을 제공하는 이탈리아 정부위원회 위원으로, 최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대담에 사제복을 입고 배석해 눈길을 끌었다.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생명아카데미 컨설턴트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자문을 해왔다. 지난해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과 브래드 스미스 MS 회장의 대담에서 ‘AI가 인류를 어떻게 이익이 되고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논의하는 데 다양한 자문을 했다.
  • 프라하에서 시작된 유럽 첫번째 세계대전 [한ZOOM]

    프라하에서 시작된 유럽 첫번째 세계대전 [한ZOOM]

    1415년 7월 6일 화형대 아래 쌓여 있던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던 남자가 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은 거위를 불태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 뒤에 등장하는 백조는 감히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체코의 유명한 사제이자 신학자 얀 후스(Jan Hus·1369~1415)였다. 그는 교회와 교황 그리고 성직자의 부패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화형에 처해졌다. 얀 후스가 예언한 날로부터 102년이 흐른 1517년 10월 31일 한 남자가 비텐베르크(Wittenberg) 교회 정문에 종이를 붙였다. 그는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였다. 그는 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교회와 교황의 부패를 비판했고, 역사는 이 날을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기록하고 있다.종교개혁의 불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에 참여한 자들을 이단으로 몰아갔다. 종교개혁 반대파 제후들은 이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독일)에서 시작한 개혁의 불길은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주변국으로 계속 퍼져 나갔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종교로 인한 제국분열을 막기 위해 루터파 제후들을 상대로 군대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황제에게 유리한 듯 보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루터파 제후들의 저항은 격렬해졌다. 결국 1555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 양측이 모여 화의를 맺었다. 이 화의를 통해 루터파 교회가 정식으로 인정받았고, 제후들은 종교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제후가 신교로 개종하면 공직과 영지를 반납해야 했고, 제후는 종교결정권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제후의 결정에 따라야 했기 때문에 개종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또한 루터파를 제외한 칼뱅파는 제외되었다.창 밖 투척사건이 일으킨 세계대전 정통 카톨릭 교도인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 보헤미아(체코) 국왕들은 국민들에게 카톨릭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1617년 즉위한 반종교개혁파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II, 1578~1637)는 이전 국왕들과 달리 국왕 직할령에 개신교 교회 설립을 중단시키고 개신교도들의 집회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1618년 5월 23일 트런 백작과 개신교도들이 프라하 성에서 그 동안 차별과 학대를 받은 분노를 표출하며 섭정관으로 온 백작 두 명과 비서관을 창 밖으로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세 사람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개신교 제후들과 합스부르크 왕가는 전쟁준비를 시작했다. 1619년 보헤미아 국왕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올랐다. 보헤미아 개신교도들은 페르디난트 2세를 거부하고 ‘프리드리히 5세(Friedrich V, 1596~1632)’를 보헤미아 국왕으로 추대했다. 종교갈등은 보헤미아 국왕 자리를 건 정치싸움으로 변해갔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개신교 제후들은 각각 주변국들과 동맹을 체결했다.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 등 수많은 유럽국가들이 참여하면서 보헤미아의 종교전쟁은 유럽 전체의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30년 동안 계속된 이 전쟁으로 무려 약 800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30년 전쟁의 결과 1648년 10월 24일, 베스트팔렌(Westfalen) 조약을 체결하면서 30년 전쟁이 끝났다. 이 조약을 통해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제외되었던 칼뱅파가 정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누구나 종교를 결정할 수 있게 하고 제후가 종교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편, 스위스가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제후들은 황제와 제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상호 또는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종교적 자유가 확대되면서 교황의 세력이 약화되고 중세를 이끌어 온 종교 중심의 사회질서가 무너졌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 역시 약화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한편 세력이 약해진 교황을 대신해 국왕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절대주의 체제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프라하 성 창 밖 투척사건이 유럽 최초의 세계대전인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 전쟁은 중세 유럽의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를 열었다. 트런 백작과 개신교도들은 집정관을 던질 때 이런 결과가 초래될지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만든다는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 이론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한정구 칼럼니스트 deeppocket@naver.com
  • 흥부자 수녀들의 유쾌발랄한 찬양… 거기에 구원 있었네

    흥부자 수녀들의 유쾌발랄한 찬양… 거기에 구원 있었네

    경건함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데도 은혜가 넘친다. 유쾌한 멜로디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 줘”라고 노래하는 가사에는 성경 말씀 이상의 감동, 감화가 있다. 수녀원에서 이게 맞는 건가 고민할 새도 없이 빠져들다 보면 오, 주여 이 수상한 수녀들의 노래에 구원이 있나니.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시스터 액트’(Sister Act)가 흥 넘치는 수녀들의 유쾌한 노래와 함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행적을 담은 사도행전이 영어로 Acts인데 ‘시스터 액트’는 수녀들의 노래가 성경 못지않은 감동을 안긴다. 원작은 1992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로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으로 출연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뮤지컬은 2006년 초연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는 2017년 초연 당시 엄청난 화제를 남기고 6년 만에 돌아왔다.클럽에서 삼류 가수로 일하는 들로리스가 암흑가의 거물인 커티스의 범행을 목격하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수녀원에 들로리스를 숨기면서 좌충우돌 펼쳐지는 이야기가 담겼다. 세상 엄격한 수녀원이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들로리스에게 이런 환경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매일 말썽을 피워 골칫덩어리이던 들로리스는 어느 날 성가대 지휘봉을 잡게 되고 넘치는 에너지와 매력적인 목소리로 수녀원 성가대를 세상에서 가장 핫한 단체로 성장시킨다. 어찌나 유명한지 교황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인기다. 엄숙한 공간에서 타고난 흥을 발휘하는 들로리스 덕에 믿음이 약했던 자들도 영혼의 구원을 얻게 된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유쾌한 대사와 흥겨운 음악이 어우러져 관객들을 빠져들게 한다. 재치 있는 번역도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영어로 진행되는 극이기에 화면의 한글 자막을 보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지만 유행어를 활용한 번역이나 다양한 글씨체를 삽입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자막 보는 즐거움을 추가했다.이번 공연은 국내 뮤지컬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아시아투어권을 확보해 미국 뉴욕과 서울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한 배우들이 영어로 공연하는 버전이다. 김소향 등 영어가 가능한 한국 배우 7명을 포함해 총 29명의 배우를 EMK뮤지컬컴퍼니가 직접 선발했다. 검증된 작품에 한국의 뮤지컬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세계시장에도 통하는 경쟁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는 “한국 뮤지컬의 제작 노하우를 해외에 알릴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면서 “K뮤지컬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달라”고 말했다. ‘시스터 액트’는 서울공연 포함 국내 도시에서 먼저 선보인 후 2025~26시즌 아시아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흥겨웠던 무대의 백미는 커튼콜이다. 국내 관객을 위한 팬서비스로 외국인 배우들이 한국어로 노래하고 수녀들이 객석까지 내려와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 축제 같았던 150분의 공연이 끝나면 꼭 종교가 있지 않더라도 마음에 유쾌한 은혜가 넘치게 된다.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2월 11일까지.
  • 황제가 만든 온천과 영화의 도시, 체코 카를로비 바리 [한ZOOM]

    황제가 만든 온천과 영화의 도시, 체코 카를로비 바리 [한ZOOM]

    우리나라에 위대한 세종대왕(世宗, 1397~1450)이 있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체코(Czech Republic)에는 카를 4세(Karl IV, 1316~1378)가 있다. 카를 4세는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고, 가장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체코사람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트비히 4세’와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교황은 루트비히 4세를 견제하기 위해 카를 4세를 대립왕(현 국왕에 대항해 왕권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에는 루트비히 4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많았다. 1347년 루트비히 4세가 사망하자 카를 4세는 권력기반을 강화한 후 보헤미아 국왕에 올랐다. 그는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Prague)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삼고 도시재건사업을 추진했고, 중앙유럽에서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딴 ‘카렐대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1355년는 로마로 가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올랐다.황제에게 온천수가 있는 곳을 알려준 사슴 어느 날 카를 4세는 자신이 쏜 화살에 맞고 도망치는 사슴을 쫓고 있었다. 한참 사슴을 찾아 숲 속을 헤매던 중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사슴을 발견했다. 카를 4세는 사슴의 상처가 치료되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상처를 치료했다고 한다.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는 이 전설로 시작된 도시다. 도시 이름 ‘카를로비 바리’는 ‘카를의 목욕탕’이라는 뜻이며, 수많은 지도자들과 괴테,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유명인들이 찾을 만큼 유럽에서 카를로비 바리 온천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한다. 카를로비 바리에는 12개의 원천지(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있다. 빗물이 용암지반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온천수가 되어 나오는데 그 시간이 자그마치 천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나오는 온천수는 무려 천년 전에 떨어진 빗물인 것이다. 카를로비 바리 온천수는 마시는 온천수로도 유명하다. 곳곳에 있는 상점에서 빨대 같은 손잡이가 달린 전용 컵 ‘라젠스키 포하레크’를 구할 수 있는데, 라젠스키는 ‘스파’, 포하레크는 ‘컵’이라는 뜻이다. 이 컵은 손잡이가 빨대로 되어 있어 온천수를 컵에 담고 손잡이 끝을 빠는 방법으로 마실 수 있다. 카를로비 바리 온천수에는 철분이 많아 그냥 마시면 철 맛이나 피 맛이 느껴지지만, 전용 컵을 사용하면 그 비린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세계 제5대 영화제 KVIFF가 열리는 도시 2006년 개봉한 ‘마틴 캠벨’ 감독의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W. Craig, 1968~)가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첫 작품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제임스 본드가 호텔에서 카드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설정은 몬테네그로에 있는 호텔로 되어 있지만 실제 촬영장소는 카를로비 바리에 있는 ‘그랜드 호텔 펍(’Grand Hotel Pupp)이다. 이 호텔은 영화 촬영지보다 영화제 개최장소로 더 유명하다. 매년 여름 이 호텔에서는 세계 5대 영화제의 하나인 ‘카를로비 바리 국제 영화제’(Karlovy V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KVIFF)가 열린다. 이 영화제에서 2017년에는 이창동 감독 작품 ‘박하사탕’이 심사위원특별상을, 2023년에는 유지영 감독 작품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소화제 맛이 나는 명주 베체로브카 카를로비 바리의 마지막 명물은 ‘베체로브카(Becherovka)’라는 이름의 술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이 술은 약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술은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수에 20가지가 넘는 약재를 넣어 만든다. 사실 처음부터 술은 아니었다고 한다. 재료를 보면 건강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처음에는 위장약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향도 좋고 맛도 좋아 약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수를 높여 술로 만들어 버린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체코사람들에게는 건강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약재가 들어가다 보니 소화제 맛이 나는 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1위를 한 전력도 있을 정도로 명주로 평가받는다. 제조비법은 코카콜라처럼 제조비법이 철저히 가문의 비밀로 붙여져 있다. 지금 제조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전 세계 단 두 명뿐이다. 그리고 제조비법 유출을 막기 위해 생산도 오로지 한 곳에서만 한다고 한다. 한정구 칼럼니스트 deeppocket@naver.com
  • 교황청 고위 성직자 “사제 결혼 허용 고려해야”

    교황청 고위 성직자 “사제 결혼 허용 고려해야”

    교황청 고위 성직자가 가톨릭 사제의 결혼 허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해 눈길을 끈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DPA 통신에 따르면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보인 찰스 시클루나(65) 몰타 대주교는 일간신문 타임스오브몰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긴 처음이고 일부 사람들에겐 이단적으로 들릴 것”이라면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사제에게 독신을 요구하는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주장했다. 신앙교리성은 신앙과 윤리·도덕에 대한 교리를 보전하는 임무를 지녀 교황청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로 꼽힌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2018년부터 차관보를 맡아 왔다. 그는 “현재 사제직과 (사랑하는) 여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서 여러 사례들을 보고 사제 독신 규정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결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위대한 사제 재목을 놓쳐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 “가톨릭 사제 결혼 허용을”…고위성직자 공개발언 주목

    “가톨릭 사제 결혼 허용을”…고위성직자 공개발언 주목

    교황청 고위 성직자가 가톨릭 사제들에게 결혼을 허용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DPA통신에 따르면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보인 찰스 시클루나(65) 몰타 대주교는 현지 일간신문 ‘타임스오브몰타’ 인터뷰에서 가톨릭교회가 사제들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앙교리성은 신앙과 윤리·도덕에 대한 교리를 증진·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교황청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단적으로 들릴 것”이라면서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나는 사제에게 독신을 요구하는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부가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사제직과 (사랑하는) 여성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사제들은 몰래 감정적인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시클루나 대주교는 이런 사례들을 보고 사제 독신 규정 문제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임을 깨닫게 됐다면서 “왜 결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위대한 사제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놓쳐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가톨릭 교회도 12세기까지 사제들의 결혼을 허용했으며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는 지금도 사제들 결혼이 가능하다면서 교황청이 이러한 쪽으로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교황청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결정은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86)은 지난해 3월 즉위 10주년을 기념한 모국 아르헨티나 언론들과 만남에서 사제의 독신 규정이 ‘일시적인 처방’이라고 말하며 독신주의를 재검토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가 결혼하는 데 있어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교회에서 독신주의는 일시적인 처방”이라고 밝혀 교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인 사제 독신주의 규정이 깨질 가능성을 열어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것(독신주의)은 영속적인 사제 서품처럼 영원한 게 아니다”라며 “(사제가 교회를) 떠나고 말고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그것(사제 서품 자체)은 영원하다. 반면, 독신주의는 단지 규율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1927~2022, 재위 2005~2013),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재위 1978~2005)를 포함한 가톨릭 보수 진영에서는 사제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강력히 고수했다. 한편 텔레그래프는 현재 교황청은 예수의 모범을 따라 사제들에 독신을 강제하고 있으나 세계 곳곳에서 불거진 아동을 상대로 한 성직자들의 성 학대 문제 해결을 위해 씨름을 하는 가운데, 사제 독신 규정을 폐지하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제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가톨릭의 한 분파인 동방 정교회의 경우 로마 가톨릭교회에 비해 사제들이 저지른 성 학대 사례가 훨씬 적게 보고됐다. 앞서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도 지난해 3월 11일 사제의 독신 의무를 폐지할 것을 교황에게 요청하는 결의안을 포함한 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로마 가톨릭에서 사제가 혼인하지 않는 풍습은 약 4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성직자 독신주의가 교회법으로 규정된 것은 1123년 제1차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다. 이에 비해 동방 가톨릭 교회나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 다른 기독교 종파의 사제는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교황청은 2019년 10월부터 한 달간 이어진 ‘아마존 시노드’를 계기로 사제 부족 문제가 심각한 아마존 지역에 한해 기혼 남성에게도 사제품을 허용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 약 1000년 간 이어진 사제 독신 전통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었다. 이번에 관심사를 재소환한 시클루나 대주교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2018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보를 맡아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혐의 조사를 총괄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모든 사제와 수녀들에게 독신 서약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성직자들이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성직에 헌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사제 독신제를 ‘주님의 선물’이라며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도 이는 ‘교리’(doctrine)가 아닌 ‘전통’(tradition)이라며 지역 사정이나 필요에 따라 수정 가능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있다. 이어 그해 10월 열린 ‘아마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아마존 시노드)에서 사제 부족 문제가 심각한 아마존 지역에 한해 기혼 남성에게 사제품을 허용하는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폐막 때 이를 찬성하는 입장의 권고문이 채택돼 주목받았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2월 발표한 ‘친애하는 아마존’이라는 이름의 권고문에서 이 문제에 대한 아무런 권고나 의견을 담지 않아 사제 독신제 전통에 변화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황청은 지난해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가 아프리카 주교들을 중심으로 한 거센 반발을 사 진화하느라 아직까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신앙교리부는 성명을 내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게 그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그들이 영위하는 삶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앙교리부는 따라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이단적이거나 교회의 전통에 위배되거나 신성 모독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에선 과반 국가가 동성애를 범죄로 다룬다. 우간다는 지난해 5월 동성애자를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에바리스트 은다이시몌 부룬디 대통령은 동성애자로 밝혀진 사람은 투석형에 처한다고 선언했다. 신앙교리부는 이처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문, 투옥, 심지어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곳에서는 동성 커플 축복이 무분별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신앙교리부는 “축복을 요청하는 두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축복을 거부하는 게 합리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신앙교리부는 지난달 18일 ‘간청하는 믿음’이란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동성애 관계에 있는 이들이 원한다면 사제가 이들을 축복할 수 있다”고 했다. 신앙교리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을 받은 후 이 선언문을 공개했다. 교황청은 지난 수 세기 동안 “결혼은 남녀 간 불가분의 결합”이라며 동성 결혼에 반대했다. 2021년에도 ‘동성 결합은 이성간 결혼만을 인정하는 교회의 교리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교리를 선언했다가 불과 2년 새 입장을 바꿨다. 비록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은 교회의 정규 의식이나 미사에 포함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혼인성사와 유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으나, 동성 커플을 배제한 전통과 다른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일반인 사이엔 동성 커플의 결혼 허용과 혼동한 사례도 적잖아 곤혹감을 더하고 있다.
  • ‘동성 커플 축복’ 대혼란… 교황청 “동성애 지지 아냐” 해명

    ‘동성 커플 축복’ 대혼란… 교황청 “동성애 지지 아냐” 해명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 것을 두고 아프리카 주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자 교황청이 진화에 나섰다. 바티칸 관영매체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4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이 그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그들이 영위하는 삶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앙교리부는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이단적이거나 교회의 전통에 위배되거나 신성 모독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교황이 지난달 동성 커플의 ‘일상적 축복’을 허용하면서 불거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간청하는 믿음’이라는 제목의 교리선언문을 통해 “혼인 성사(가톨릭 결혼식)에 합당한 축복과 혼동되지 않는 형식에 한해 동성 및 비정상적 상황의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고 밝히며 동성애자와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교황청은 지난 수 세기 동안 “결혼은 남녀 간 불가분의 결합”이라며 동성 결혼에 반대해왔다. 2021년에도 ‘동성 결합은 이성간 결혼만을 인정하는 교회의 교리를 훼손하는 것이기에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없다’고 했지만 2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다. 교황청의 입장 변화는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일부 국가에서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특히 아프리카의 저항이 심했다. 아프리카에선 절반이 넘는 국가가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우간다는 지난해 5월 동성애자를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 에바리스트 은다이시몌 부룬디 대통령은 지난주 “동성애자로 밝혀진 사람은 투석형에 처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신앙교리부는 이처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문과 투옥, 심지어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곳에서는 동성 커플 축복이 무분별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신앙교리부는 “우리는 약 10초 또는 15초 정도 지속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축복을 요청하는 두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축복을 거부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은 그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했던 여러 진보적인 조치 중에서도 이번 일만큼은 가톨릭 사회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 곳곳에서도 동성애를 명확하게 반대하고 있음에도 교황이 이를 무시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교황청이 지난달 18일 선언문을 발표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해명자료를 낸 것은 많은 국가에서 동성 커플 축복이 얼마나 큰 혼란을 야기했는지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 순교자들의 피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전주 전동성당 [한ZOOM]

    순교자들의 피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전주 전동성당 [한ZOOM]

    1656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1599~1667)는 “동양의 전통의식인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볼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1715년 클레멘스 11세(1649~1721)가 기존 교황청의 입장을 뒤집고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이 혼란은 1939년 비오 12세(1876~1958)가 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791년 전라북도 진산에 살고 있는 양반 윤지충(尹持忠, 1759~ 1791)이 어머니 제사를 천주교식으로 치르고,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종친들이 격렬히 반대했지만, 같은 천주교인이었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 1751~1791)까지 윤지충의 편을 들면서 일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윤지충과 권상연은 구속되었고, 두 사람은 유교적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참형에 처해졌다.  역사는 이 사건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해박해(辛亥迫害)’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왕이 될 상...아니 여기가 왕이 될 땅인가. 전주(全州)는 삼국시대부터 전라도의 중심도시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의 성(姓)이 ‘전주 이씨’였기 때문에 전주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해방 후 남북의 초대 지도자였던 이승만(전주 이씨)과 김일성(전주 김씨) 모두 본관이 전주로 알려져 있으며, 견훤(甄萱, 867~936) 역시 전주를 수도로 후백제를 세웠으니,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의 기운이 영험하긴 한 것 같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 겨우 11살인 아들이 고개까지 박은 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전주는 발 닿는 모든 곳이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옥마을 방향으로 걷다가 전주성 남문, ‘풍남문(豐南門)’을 만났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주성은 원래 한양 사대문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을 보면 한양의 남문 ‘숭례문(남대문)’의 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가 화재로 불탄 전주성 남문을 재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풍패(豊沛)의 남쪽(南)’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풍패는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정리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 선조의 고향 ‘전주’를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로 비유한 것이다.  1900년대 초 일본 통감부는 조선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전국의 모든 성(城)을 허무는 ‘폐성령(廢城令)’을 내렸다. 이후 전국 수많은 성들이 허물어졌고, 성벽의 돌들은 집과 도로를 만드는데 쓰였다. 이때 전주성이 무너졌고 풍남문 역시 크게 훼손되었다. 다행히 1970년대 후반 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순교자의 피 묻은 돌로 지어진 성당 풍남문을 지나 길을 건너면 전주 한옥마을 입구가 나온다. 한옥마을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전라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殿洞聖堂)’이 있다. 전동성당은 1791년 유교식 전통을 거부하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른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한 바로 그 자리에 서있다.  두 사람이 참형을 당한 날로부터 100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인 보두네(Baudounet) 신부가 이 땅을 사들이고 성당을 지었다. 성당의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완공한 경험이 있는 프와넬(Poisnel) 신부가 맡았다. 당시 일제가 폐성령에 따라 전주성을 허물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주성에서 나온 흙으로 벽돌을 굽고,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춧돌을 세웠다. 전주성의 흙과 돌로 성당을 지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윤지충과 권상면 외에도 이 자리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참형을 당했다. 그들의 목은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전주성 성벽에 매달렸고, 순교자들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성벽 안으로 새어 들어갔다. 그들의 희생으로 조선에서 천주교가 지켜졌으니, 그들의 피가 묻은 돌을 발판으로 이 땅에 천주교를 일으키기 위한 성전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전동성당을 떠나며 전동성당 입구와 마당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아래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돌이 이 성당을 받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순교자들도, 순교자들이 피를 뿌린 땅에 성당을 지은 신부들도 사람들이 이 곳에서 고통의 역사를 느끼기 보다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 정의채 몬시뇰 장례미사 엄수

    정의채 몬시뇰 장례미사 엄수

    정의채(바오로) 몬시뇰의 장례미사가 30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정의채 몬시뇰은 우리 교회뿐 아니라 사회의 큰 어른이고 지성이셨다”며 “세계의 사랑과 평화를 위한 혜안으로 존경받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정 대주교는 이어 “늘 우리 교회와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앞장서 실천하신 분”이라며 “권력에 기울지 않으시고 바른 말씀으로 사회의 지표가 되시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착한 목자의 삶을 다 하셨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장례미사는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유경촌 주교, 구요비 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와 사제단의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미사에는 정 몬시뇰의 유족과 수도자, 신자들이 참석해 명동대성당을 가득 메웠다. 미사 후 정 몬시뇰의 관은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으로 운구되어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1925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정 몬시뇰은 1953년 28세 때 사제품을 받았다. 천주교 명동 본당 주임신부, 가톨릭대 총장, 서강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199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고, 2005년엔 교황이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게 부여하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 “신은 있나” 이병철 질문 받은 정의채 몬시뇰 선종

    “신은 있나” 이병철 질문 받은 정의채 몬시뇰 선종

    천주교 원로인 정의채(세례명 바오로) 몬시뇰이 27일 선종했다. 98세.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정 몬시뇰은 195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61~1984년 가톨릭대 신학부(현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로 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199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고, 2005년 교황으로부터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게 부여하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정 몬시뇰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1987년 ‘신은 있는가’, ‘삶은 왜 고통스러운가’ 등 24개에 달하는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전달받아 답변을 준비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정 몬시뇰은 종교계 원로로 현직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2007년 1월 라디오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가리켜 “‘악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빈소는 명동대성당 지하 성당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와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30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열린다.
  • 세계서 빛난 K문학·미술… 자기계발서 열풍

    세계서 빛난 K문학·미술… 자기계발서 열풍

    한강 ‘메디치상’… 詩도 美서 인기출판 ‘세이노의…’ 압도적인 1위자승 ‘입적’… 천주교 ‘청년대회’ 유치美구겐하임 전시 등 미술게 약진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쾌거 2023년은 K콘텐츠의 근간인 한국문학과 한국미술의 세계적 영향력을 확인한 해였다. 그런가 하면 ‘각자도생’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자기계발서 열풍이 이어졌고, 종교계에서는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올해 한국문학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에서 여러 번 호명되며 가치와 위상을 입증했다. 소설가 한강은 제주4·3 사건의 비극을 다룬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주요 문학상인 메디치상을 받았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부커상을 받은 뒤 영어 외 국가에서도 문학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 작품이 메디치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보라의 공상과학(SF)·호러 소설집 ‘저주토끼’와 천명관의 ‘고래’도 각각 전미도서상과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소설 외 장르에서도 활약이 돋보였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 영문판은 뉴욕타임스(NYT)가 뽑은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 포함됐고, 백희나의 그림책 ‘알사탕’은 이탈리아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문학뿐만이 아니다.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대규모 한국미술품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등 ‘K미술’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는 올해 한국실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계보’가 현지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에서는 ‘1989년 이후 한국 미술’ 전시가, 샌디에이고미술관에서는 한국미술을 주제로 한 첫 기획전 ‘생의 찬미’가 진행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외관에 설치할 조각 작품을 한국 작가 가운데 처음으로 이불 작가에게 맡겼다. 국내 출판단체와 작가, 출판사들은 지난달 중동 최대 도서 행사인 ‘샤르자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해 한국 책을 중동 지역에 선보였다. 그에 앞서 지난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지난해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난 36개국 530개사가 참여해 ‘K출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코로나19 팬데믹 영향에서 벗어나 세계 각국이 경제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국내에서는 산업계 전반의 업황이 나빴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계 부담도 커졌다. 자기계발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다. 상반기까지 국내 대표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맨주먹에서 1000억원 자산가가 된 저자가 세이노라는 필명으로 낸 ‘세이노의 가르침’이 베스트셀러 1위를 굳건히 지켰다. 그 밖에도 ‘김미경의 마흔 수업’, ‘역행자’, ‘원씽’ 등이 강세를 보였다. 8월에는 2027년 천주교 세계 청년대회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13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고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서울 등 국내 여러 도시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파행을 겪던 대규모 종교 행사들도 성사됐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부활절인 4월 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개최했는데,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부활절 퍼레이드를 한 것은 국내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열리지 못했던 불교 연등 행렬 역시 이전의 규모를 회복했다.문화재 분야에서는 민간과 정부, 학계의 10여년간 노력에 힘입어 9월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결실을 봤다. 가야고분군은 2021년 ‘한국의 갯벌’에 이은 16번째 세계유산이 됐다. 이에 더해 지난달 한국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되며 일본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견제하고 우리 입장을 피력할 기회를 갖게 됐다. 4월 국가유산기본법이 통과되며 문화재 명칭과 분류 체계가 60년 만에 ‘국가 유산’이라는 새 틀로 바뀌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내년 5월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출범한다.마냥 빛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종교계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11월 29일 경기 안성 칠장사 요사채에서 분신(焚身) 입적해 충격을 안겼다. 두 차례나 총무원장을 지내며 ‘조계종 실세’로 불렸던 자승 스님의 갑작스러운 분신은 불교계 안팎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 미술품 구매 시장도 얼어붙으며 침체했다. 백상경제연구원 산하 미술정책연구소의 ‘2023년 미술경매시장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양대 경매사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메이저 경매 낙찰 총액은 972억원으로 지난해(1713억원)보다 43% 줄었다. 10월에는 단색화를 세계에 알린 박서보 화백이 92세로 별세하며 미술계가 애도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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