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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랍희생’ 불가피성 주장 파문

    아프간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피살된 것과 관련,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측 관계자가 “구한말에 미국 선교사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했다.”며 선교 중 사망의 불가피성을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또 피랍자들이 석방된 뒤 샘물교회와 피랍자 가족들이 위험지역 선교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는 등 잇따라 태도를 바꿔 비판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이슬람 지역 선교 재개 시사 샘물교회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권혁수 장로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기독교에서의 선교 활동 중 순교는 우리나라에서도 모두 경험했던 일인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를 비난한다.”고 말했다.그는 “구한말 미국 선교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대학·병원들을 세운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면서 “이제 우리가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 나라에 들어가 봉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혀 샘물교회 측이 이슬람 지역 선교를 재개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이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교황 중심의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는 개별 교회 단위의 봉사 활동이 진행돼 성과는 많아도 세간의 평가가 늘 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대다수 언론이 박은조 목사의 설교 가운데 일부만 발췌해 ‘심성민 형제 같은 순교자가 3000명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왜곡 보도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무슨 말을 해도 비난밖에는 돌아오지 않아 일절 대응을 하지 않겠지만 일단 사태가 진정되면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랍 석방자의 어머니 조모(53)씨가 한 선교협회에서 간증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등 간증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계 안팎에서는 ‘신앙 간증은 개인이 선택하는 자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피랍자 가족과 석방자들은 이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하느님 덕택 석방” 자제 목소리 김종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선교와 간증은 자기 신앙의 확신을 통한 구원으로 상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느님 덕분에 석방됐다.’는 식으로 간증하는 것은 사회의 일반적 사고와 일치하지 않는 한국 교회의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윤형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도 “한국 교회의 잘못된 선교 활동이 문제되고 있는 만큼 피랍 석방자 및 가족들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건강을 회복한 뒤 간증 활동을 하는 것은 피랍 석방자들에게 득될 게 없다.”고 지적했다.성남 류지영 이경원기자 superryu@seoul.co.kr
  • [인도통신] 선종 10주년 마더 테레사의 빛과 그림자

    [인도통신] 선종 10주년 마더 테레사의 빛과 그림자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인도 콜카타(Kolkata)를 비롯 세계 곳곳에 그녀의 사랑의 흔적은 아직도 여전하다. 선종 10주기인 지난 5일 콜카타 시내 빈민가에는 콜카타 대주교가 주관하는 미사를 비롯 ‘빈자의 성녀’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현재 테레사 수녀가 콜가타에 세운 사랑의 선교회는 여전히 ‘마더 하우스’로 불리우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의 선종 후 선교회가 제대로 운영될 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사랑의 선교회는 더 확대돼 더 많은 국가에 병원이 지어졌으며 소속된 수녀도 4천800명에 750개 이상의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편지형태로 된 그녀의 심경고백론이 공개되면서 마더 테레사가 생전에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과 고민으로 가득했었다는 충격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생전 그녀가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신의 부름을 들었다고 고백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자신의 심경을 나누었던 서한 40통을 모아 출간된 내용 가운데 ‘주께서 제 안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냉담,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한 부분 등이 언론의 집중 화살을 받았다. 이같은 내용을 출간에 앞서 입수한 일부 언론들은 테레사 수녀가 신의 부재로 번민했으며 드러난 그녀의 신앙관 때문에 성녀 반열에 올리는 절차에도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고까지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번민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일 젊은 가톨릭 신도 30만명에게 한 연설에서 “깊은 신앙으로 자선활동을 폈던 테레사 수녀조차 하느님의 침묵으로 고통 받았다.”며 “때때로 모든 신자들은 이런 하느님의 침묵을 견뎌내야 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축했다. 1929년 콜카타에 온 알바니아 출신인 테레사 수녀는 아그네스 곤자 보와쥬라는 본명보다 ‘가난한 자의 어머니’, ‘빈자의 성녀’로 더 알려져 있다. 1997년 9월 5일 밤 인도 캘커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2003년 교황청에서 시복(교황이 성덕을 인정해 복자로 선포함)돼 시성(성인 또는 성녀로 추대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숱한 난관에 부딪치면서도 가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나병 환자, 버려진 아이들, 노인들에게 끈질기게 사랑을 전했던 테레사 수녀는 선종 10주년을 맞아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받고 있다. 나우뉴스 인도통신원 김대석 redarcas@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경북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586-1 봉양마을 주민들에게 두봉(78·본명 렌 뒤퐁) 주교는 ‘웃기는 괴짜 할아버지’로 통한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여는 맘씨 좋은 푸른 눈의 프랑스 선교사. 목사님이나 스님이나 거리낌없이 방 안에 들어가 허물없이 이야기를 꺼내도 껄껄 웃으며 들어주는 외국인.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문화마을에 두봉 주교는 없어서는 안 될, 그야말로 ‘분위기 메이커’인 것이다.2004년 11월 이 봉양마을에 왔으니 올해로 4년째.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며 거침없이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두봉 주교에게 한국은 ‘하느님이 명령한 선교 임지’에 앞서 어쩔 수 없는 ‘인연의 땅’이다.1954년 11월 한국 땅을 밟은 뒤 53년간 단 한번도 한국 땅을 떠나지 않은 채 서슴없이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두봉 주교. 그에게 과연 한국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뜻대로 살다 보니 이곳까지 왔습니다.” 왜 이토록 한국을 고집하느냐는 물음에 ‘능력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침을 따른 선교사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쩔 수 없는 선교사의 사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대답에 ‘한국은 나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절절한 심중이 읽힘은 왜일까. 프랑스 오를레앙, 그러니까 잔 다르크의 전설로 유명한 그 고장에서도 한참 벗어난 궁벽한 농촌 마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두봉은 저 멀찍한 한반도의 부름에 이끌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형제, 아니 사촌형제 두 명까지 모두 7형제가 한 집에서 살며 어렵게 어린시절을 보냈던 두봉은 형제 중에 유일하게 ‘성소’의 뜻을 밝혀 신학자, 목회자의 길을 밟았다. 한국이라는 동양 끝 저쪽 나라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채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쌓았던 그가 털어놓는 한국과의 인연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를레앙 신학교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병영생활을 하던 말미에 한국전쟁이 터졌다.“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동료들이 거의 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내가 한국에 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그였다. 당시만 해도 ‘위험지역에 선교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은 신학생인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먼 나라일 뿐”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참에 6·25전쟁으로 성직자들이 거의 전멸하디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지원을 요청해 5명의 신부가 배정됐던 것. 휴전 한 달 전인 1953년 6월 발령을 받아 교육을 받고 일본을 거쳐 인천 땅을 밟은 게 1954년 11월. 처음부터 “한국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던 그에게 “한국인으로 한국땅에 묻히겠다.”는 변함없는 소신을 준 것은 과연 믿음일까, 삶일까. 전쟁의 끝자락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폐허만 눈에 띌 뿐” 어느 한 곳 번듯한 게 없었던 한국 땅. 용산 성심여자고등학교 터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거처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대전교구 대흥동본당 보좌신부를 맡은 게 한국 사목의 시작이다. ‘두봉’(杜峰)이란 이름은 당시 대흥동 본당 주임이었던 오기선 신부가 지어준 이름. 두봉 주교의 프랑스 이름자에 맞춰 지었다고 하는데 두봉 주교는 “중국의 두보와 같은 성씨”라며 은근히 이름 자를 치켜세운다.“두견새가 큰 봉우리에서 우니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않겠느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중등학교 시절 ‘가톨릭노동청년회(JOC)’활동을 했던 때문일까,‘눈에 밟히는 가난한 이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전 선화동 다리 밑에 50명쯤 되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집을 나와 움집을 짓고 살았는데 대전 JOC 청년회원들이 1년 넘게 같이 어울리며 살아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일은 지금도 감동으로 남아 있다. 당시 대전 MBC 라디오를 통해 진행한 ‘5분명상’ 프로그램은 대전 지역 가난한 이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가 분리돼 초대 교구장을 맡을 무렵 “바늘방석에 앉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두달 뒤 주교서품을 받았는데 주교 서품 때 응당 정하는 문장(紋章)과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아 당시 화제가 되었다. 주교라면 12사도 후손의 반열에 오르는 천주교의 큰 명예인데 굳이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마다한 까닭은 무엇일까.“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지 서민인 내가 무슨 문장을 가져.” 한사코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외국인 사제는 한국인 뒷바라지만 하면 됐지 뭐 교구장 자리까지 차지하느냐.”며 안동교구장 자리를 고사했지만 교황청의 내리누름에 밀려 할 수 없이 눌러앉았다. 지난 1990년,22년 만에 안동교구장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한국인 사제를 교구장으로 임명하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 교황청에 탄원을 낸 인물이다. 전통 문화의 고집이 센 ‘유림의 땅’ 안동에서 22년간이나 큰 탈 없이 천주교 교구장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안동지역 최초의 문화회관을 만든 것을 비롯, 함창에 상지 여중·고를 세운 일, 한국 최초의 전문대학인 가톨릭상지대학을 설립한 일…. “지금 생각해도 그 의롭고 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유교와 불교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도 안동은 전통이 살아있는 유별난 지역이었지요. 그런데 유림들은 양심에 따라 인간관계를 아주 중시하는 성격을 지녔더군요. 천주교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나 나의 가치관이 잘 맞았지요. 내가 부딪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1979년 ‘안동농민회사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잊지 못할 큰 사건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영양군이 알선한 불량감자씨를 심은 농민들이 감자농사를 망쳐 피해보상을 받았는데 보상운동에 앞장선 오원춘이 정부기관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사실을 안동교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들고 일어서 전국에 폭로한 것.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교구장 두봉 주교의 출국명령을 내렸지만 로마 교황청이 나서 추방명령이 철회됐다. 두봉 주교에게 ‘한국 농민사목의 대부’라는 별명을 붙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젠 한국인 사제가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탄원이 받아들여져 교구장에서 은퇴한 게 1990년. 정년을 15년 앞둔 채였다. 고양시 행주외동의 조립식 가건물인 행주공소에서 능곡성당 신부를 도와 성직자와 수도자 신도들의 피정 지도를 14년간 하다가 지난 2004년 안동교구의 주선으로 이곳 봉양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향격인 안동 지역에서 살게 해달라는 주문이 받아들여져 이곳에서 살게 됐는데 너무 잘 살아서 미안하다.”고 말한다.“사는 집에 따라 마음가짐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마저 달라진다.”며 한사코 번듯한 집을 마다했던 그다. “한국 천주교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중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은 나의 모범 선배”라는 두봉 주교. 그 10명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한다. 사목표어는 만들지 않았지만 마음속 표어는 있지 않으냐는 짓궂은 물음에 마지못해 떠듬떠듬 말한다.“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기도 많이하고 남과 함께 살다가 주님의 뜻이 뚜렷해지면 주님 뜻대로 하겠다.”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 한국에서 40여년을 선교한 끝에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피정에, 강의에 아주 바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고추며 가지며 텃밭에서 손수 키운 푸성귀들을 주섬주섬 챙긴 주교가 거실 벽에 걸린 문구를 가리킨다. 두봉 주교 은퇴 후에 안동교구 사제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목표어란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 출생 ▲1949년 오를레앙 대신학교 철학과 졸업 ▲1951년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신학과 졸업 ▲1954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신학교 대학원 신학과 졸업 ▲1953년 사제 서품 ▲1954∼1955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1955∼1965년 대전교구 대흥동 본당 보좌신부 ▲1967∼1969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 임명. 주 교 서품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훈장 ▲1990년 안동교구장 사임, 은퇴 ▲1991∼2003년 행주외동 행주공 소 피정 지도 ▲2004년∼ 봉양문화마을 거주
  • 베트남 등 4국 대사 임명

    정부는 4일 주 베트남 대사에 임홍재 주 이란 대사를 임명했다. 주 이란 대사에는 김영목 경기도 국제관계자문대사가, 주 교황청 대사에는 김지영 외교통상부 외교문서공개예비심사단장이, 주 노르웨이 대사에는 최병구 고려대 외교겸임교수가 각각 임명됐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교황의 얼굴’ 그려진 오토바이 나왔다

    ‘교황의 얼굴’ 그려진 오토바이 나왔다

    교황의 얼굴이 그려진 오토바이를 타면 어떤 느낌일까? 최근 미국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의 얼굴이 그려진 오토바이가 등장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 교황으로 선출된 후 전세계인들로부터 추앙받은 인물로 지난 2005년 84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이 오토바이는 뉴욕의 한 오토바이 전문점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개조한 것으로 향후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한 ‘이베이’(eBay)경매 상품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오토바이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와 그의 문장(紋章) 그리고 폴란드 국기 등이 장식되어 있으며 개조 비용으로 3만 파운드(한화 약 5700만원)이상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 관계자인 아만다 르블랑(Amanda LeBlanc)은 “오토바이 손잡이 바로 밑부분에는 평화로운 미소를 짓는 교황의 얼굴이 그려져있다.”며 “이 그림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한 눈 팔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요한 바오로 2세의 위대한 가르침과 종교적 메시지를 상징화하고 싶었다.”며 “오토바이 판매 수익금은 10만 파운드(한화 약 2억원)정도를 예상하며 크리스천 자선단체에 전액 기부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메트로 인터넷판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5·끝)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5·끝)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한국 천주교는 이 땅의 사람들이 스스로 일으킨 ‘자생 신앙’이란 자부심을 갖는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생신앙 한국천주교의 태동지가 바로 천진암(天眞菴·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산500)이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이면서 불교와 유교를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유불천(儒佛天)의 합류지 천진암. 이 천주교 발상지에서는 지금 천주교 선조들의 정신을 오롯이 되살려내기 위한 독특한 성역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지난 1984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국 순교성인 103위의 시성(諡聖·천주교에서 성인품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절차)식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강론을 남겼다. “한국의 저 평신도들, 즉 한국의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모임인 한 단체는 중대한 위험을 무릅쓰면서 당시 베이징천주교회와의 접촉을 과감히 시도하였고 특히 새로운 교리서적들을 읽고 그들 스스로가 알기 시작한 신앙에 관하여 자기들을 밝혀줄 수 있을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나섰습니다. 남녀 이 평신도들은 마땅히 한국천주교회 창립자들이라고 해야 하며…(중략)…1779년부터 1835년까지 56년간이나 저들은 사제들의 도움 없이 자기들의 조국에 복음의 씨를 뿌렸으며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성직자 없이 자기들끼리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켰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세계인의 관심을 모은 시성식장에서 로마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이 한국 천주교의 자생신앙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그런데 교황이 강론 첫머리에 세세하게 강조한 ‘한국천주교회 창립자들’이란 누구일까. 바로 천진암에 모여 천주교를 공부했던 이벽(1754~1785)·이승훈(1756~1801)·권일신(1742~1791)·권철신(1736~1801)·정약종(1760~1801), 그러니까 천주교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5인의 성조(聖祖)’이다. 천진이란 산제사나 당산제, 산신제 등을 지낼 때 모셨던 단군의 영정(影幀).195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선 이 천진을 모시고 제를 지내던 천진각이나 천진당이라는 작은 초가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료들을 들여다보면 천진암은 원래 천진당이 있던 자리였다. 불교의 천진암(天眞庵)이 들어섰다가 폐찰이 되었고 한때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였으며 나중에는 대궐의 음식 장만하는 일을 관장하던 사옹원의 관리를 받기도 했다. “천진암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다. 요사체는 반이나 무너져 빈 터가 되었네.”(1779년경 정약용)/“천진암은 오래된 헌 절인데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사옹원에서 관리하고 있다.”(1797년 홍경모의 ‘남한지’)/“젊은 선비들과 함께 이벽 성조께서 강학을 하던 곳은 쓰지 않는 폐찰이었다.”(1850년 다블뤼 주교) 이벽을 중심으로 이른바 5인의 ‘성조’들이 모여 공부할 무렵의 천진암은 거의 허물어져 가는 초라한 폐찰이었다. 당시 일반 집과 서당, 사찰에서 생소한 천주교 책을 읽고 토론하기란 아주 어려웠을 터. 이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외딴 곳을 물색, 바로 천진암을 공부방으로 삼았던 것이다.1779년 이곳에서 강학회를 결성한 뒤 약 5년간 천주교리 연구와 강의, 공동신앙생활을 하며 천주교회를 창립했다. 교회라야 이 5명과 이들의 뜻에 동참한 정약전, 정약용, 권상학, 김원성, 이총억, 그리고 그 가족들이 전부. 대부분 당대의 명망 높은 남인(南人)계열 집안의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천진암을 자주 찾아 천진암에 얽힌 시를 90여 편이나 남긴 정약용이 대부분의 시에서 천진암의 ‘암’자를 ‘庵’이 아닌, 남인 학자들의 호 돌림자 ‘菴’으로 썼던 것일까. ‘5인의 성조’와 동지들은 학문을 연마하던 강학회를 종교신앙의 수련회로 발전시켰고 신·구약 성경 내용을 서사시 형태로 집약한 ‘성교요지’며 ‘천주공경가’를 지어 부르며 허술하나마 교회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쟁쟁한 유가의 10∼20대 선비들이 불교 암자에서 천주학을 공부하고 실천했으니 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함께 공부했던 강학자 이승훈을 베이징으로 보내 영세받도록 했으며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은 귀국후 이벽에게 영세를 주었다. 천진암은 이렇듯 중요한 한국천주교의 성지이지만 1980년 전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한국의 천주교회가 교회사 정리를 하면서 외국 선교사들의 문헌에만 의존했던 탓에 이 선교사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천진암이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것이다. 그러던 참에 천주교 수원교구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변기영 몬시뇰이 1975년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1981년 ‘한국천주교발상지천진암성역화위원회’를 구성, 이곳에 한국천주교 200년 기념 ‘천진암대성당’을 세우기 위한 큰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벽을 포함한 ‘5인의 성조’는 모두 박해를 받아 모진 매질 끝에 옥사하거나 참수당해 순교했다.‘한민족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터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왼편에 ‘한국천주교 창립 성현 5인묘역’이라 쓴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천주교를 창립한 성조 5인의 유해를 옮겨 이장한 곳이다. 반대쪽엔 그 가족묘역이 조성되었다. 묘역 초입에 ‘한국천주교발상지천진암터’라 쓴 비석을 올려다보며 산길을 오르면 ‘강학회터’라 새긴 표석이 눈에 든다. 천주교리를 공부하고 교회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 덩그맣게 표석 하나만 남았지만 젊은 선비, 아니 천주교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혈기를 나누던 현장에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5인의 묘를 봉안한 곳이 바로 옛 천진암 터. 가운데 ‘세자 요한 광암 이벽’이라 새긴 이벽의 묘를 중심으로 왼쪽에 정약종·이승훈, 오른쪽에 권철신·권일신의 묘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훨씬 전 앞서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연구하고 교회로 발전시키다가 순교한 한국천주교의 선구들. 목숨을 던져 신앙을 창시하고 지키다 희생한 선조들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채 옛 신앙 터만 소리없이 지키고 있다. kimus@seoul.co.kr ■천진암대성당 어떻게 짓나 천진암성역화 작업의 핵심은 아무래도 ‘한민족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 이름 그대로 한국 천주교 발상지에 100년에 걸쳐 기념 성당을 우뚝 세워 놓겠다는 것이다. 천진암의 성격에 맞춰 지붕은 사찰 대웅전의 처마형태를 갖춘 기와 지붕, 외벽은 유교 서원의 골격, 내부는 천주교 성당 양식을 택해 그야말로 ‘유불천’의 조화를 이룬다. 99만㎡ 넓이의 성지에 대성당을 중심으로 조성되는 광장이 16만 5000㎡, 성당 터만 해도 2만 6000㎡(좌석수 3만석). 성당의 높이는 기단∼2층 50m에 지붕부분 35m를 포함하면 전체 85m. 길이도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195m에 달한다. 성당 넓이는 1층 2만 6800㎡,2층 1만 8600㎡. 기둥만 해도 42개가 세워진다. 벽과 기둥, 기단에는 사방 1m 크기의 한국산 화강암 10만개가 쓰이며 모든 돌에는 돌값을 봉헌한 사람의 이름과 봉헌번호, 봉헌연도가 새겨진다. 제대는 중앙 제대를 포함해 1,2층에 걸쳐 모두 55개. 지금은 지반 등 성당 터닦이 공사만 마쳐 휑한 모습. 성당 터 맨 위쪽에 1994년 축성식때 마련한 86t짜리 중앙 제대석이 놓였고 그 앞에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복문을 직접 써 안치한 대성당 머릿돌(초석)이 있다. 5년 내에 철골·지붕공사를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그때부터는 미사도 진행할 수 있다. 임시 성당격인 성모경당을 대성당 터 위에 지어 놓았으며 대성당 완공 때까지 이곳에서 미사를 진행한다. 외벽과 장식까지 포함해 20여년 안엔 모든 공사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게 변기영 몬시뇰의 귀띔이다. 예상 공사비는 골조공사 500억원, 조적공사 500억원 등 총 1000억원.100년간 연평균 1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공사다.
  • [부고] 러시아 음악 거장 흐레니코프 사망

    러시아가 배출한 세계적인 명성의 작곡가이며 피아노 연주가 티콘 흐레니코프가 14일 모스크바에서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흐레니코프는 1948년 35세에 스탈린에 의해 작곡가 동맹 서기장으로 발탁된 후 30년 넘게 서기장직을 유지하며 자국 내에서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세발린을 사사해 작곡을, 베이 가우스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러시아적인 억양을 바탕으로 성실하고 정서가 풍부하며 기지가 넘치는 음악이 특징이다. 오페라, 오페레타, 영화음악이 뛰어나며 러시아 음악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황곡·피아노·바이올린·첼로의 각 협주곡, 부수음악, 가곡 등을 남겼다. 특히 그가 1939년 작곡한 첫 오페라 ‘폭풍 속으로’는 스탈린이 좋아하는 소설가 니콜라이 비르타의 작품을 소재로 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조작”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로마 교황청이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의 편집을 조작하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 등 외신은 16일 이렇게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보 조작 가능성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BBC는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는 이용자들의 IP 주소를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 개발로 CIA와 로마 교황청 등의 고의적인 편집 개입 행위가 밝혀지게 됐다고 전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 비영리 단체인 위키미디어재단이 운영하며 지미 웨일스가 2001년 1월15일 만들었다. 전세계 200여개 언어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한국은 2002년 10월부터 시작되었다. 위키피디아는 그동안 이해관계가 걸린 기관의 악의적 편집이 적지 않았다. 미국과 앙숙 관계인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경력 항목이 악의적 편집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항목 편집자의 IP가 CIA의 컴퓨터인 것으로 드러났다.CIA 컴퓨터를 사용한 직원은 로널드 레이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전기 항목도 편집했다.CIA의 대변인은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CIA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CIA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청까지 편집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일랜드의 구교도를 대표하는 신페인당 당수인 제리 애덤스의 항목 중 “제리 애덤스가 1971년 살인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 링크를 없앤 것은 로마 교황청의 컴퓨터였다. 이처럼 세계 여러 기관들이 위키피디아 편집에 개입하려는 것은 위키피디아의 영향력이 날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관계자는 “우리는 투명성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며 “위키피디아 스캐너가 기관이나 개인의 왜곡된 편집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종교계 “생명·평화운동 자성”

    종교계 “생명·평화운동 자성”

    ‘지금 종교계의 큰 화두는 생명.’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종교계에서 ‘생명’과 ‘평화’라는 쉽지 않은 화두를 풀어내려는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명평화결사가 10일 오후 3시 거창 수승대 거북극장에서 마련하는 공개토론회와, 다음달 2일 오후 7시 서울 명동성당서 천주교가 주관하는 ‘천주교 생명수호대회’. 모두 주제 자체가 첨예한데다 참석인사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거창 토론회가 확산되는 생명·평화운동의 현주소를 평가, 반성하는 공개토론장이라면 천주교계의 생명수호대회는 생명 평화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적극적인 실천 다짐으로 눈길을 끈다. ●생명·평화 운동의 개인 역량 되찾기-거창 토론회 전국을 돌며 생명, 평화 인식을 세상에 심는 탁발순례 중인 ‘생명평화결사’회원들이 자신들의 위상과 행동을 되돌아보기 위한 반성의 자리.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강조하는 다양한 목소리와 행동이 많지만 아프간 피랍사태를 계기로 과연 이같은 것들이 사회 전체와 개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일반인 앞에서 냉철하게 심판받자는 뜻에서 마련,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부분은 진보적 논조로 주목받고 있는 김규항(‘고래가 그랬어’발행인)씨가 이 생명평화결사 실행위원 9명에게 비판의 화살을 거침없이 쏜다는 점이다. 도법(탁발순례단장) 스님을 비롯해 황대권(작가·생태운동가), 이병철(시인·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정해숙(초대 전교조 위원장), 김경일(성공회 신부), 박두규(시인·교사), 김민해(목사·월간 ‘풍경소리’발행인), 박소정(순천YMCA이사장), 김귀옥(교사)씨 등 9명이 김씨의 질문과 비판을 받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명평화결사의 탁발순례를 비롯해 여러 생명 평화운동의 허와 실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최병진 목사(광주 미래에서온교회 담임·생명평화결사 문화홍보위원장)는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생명평화운동은 개인을 종교권력·정치권력·시민권력 앞에서 자유롭도록 도와야 하는데 거꾸로 이같은 권력들에 함몰되어가고 있다.”며 “개인이 슬로건식 생명 평화의 기치아래 끌려가는 게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는 생명 평화운동의 방향을 찾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토론회에서는 당연히 아프간 피랍사태도 빠지지 않을 전망.‘한국 개신교 교회들의 배타적 선교가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생존권 침입의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 첨예한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생명문화 건설에 동참을” 천주교 생명수호대회 천주교계가 작심하고 준비한 대규모 생명 수호대회. 주교회의가 주최하고,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공동주관,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사제단과 신자 국회의원,7대 종단 대표, 정부 관계자, 일반신자 등 6000여명이 참석한다. 외부인들은 주최측이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권고(회칙‘생명의 복음’)를 따라 ‘생명을 사랑하는 선의의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다. 행사는 핵심사안인 ‘배아도 인간’임을 천명하면서 생명경시 풍조에 정면 대응한다는데 초점을 맞췄다.‘낙태를 합법화한 것’으로 받아들여 모자보건법 제14조의 개정을 거듭 촉구한다.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단이 공동 집전하는 생명수호 미사를 시작으로 퍼포먼스, 촛불행렬과 묵주기도가 이어진다.24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본당에서는 미사마다 ‘생명수호대회 9일 기도’를 봉헌, 관심과 참여를 늘려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탈레반, 살해위협 재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을 납치한 탈레반이 5일 인질들에 대한 살해 위협을 재개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와 전화통화에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불만족스럽다.”면서 “만약 오늘도 한국 정부의 노력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디는 이날 한국정부측과의 접촉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정부는 유엔의 안전보장도 받아내지 못했고, 유엔에 공식 요청도 하지 못했다.”며 언제든 인질들을 살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한국정부와 대면 접촉을 위해 장소 등에 대해 협의해온 탈레반은 지난 3일 유엔이 한국정부와의 접촉과 관련한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으나 유엔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살해 위협 재개는 6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 당국자는 “아프간 피랍자 중 한 명과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4일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고 5일 전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측과 납치단체 간 전화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4일 오후 피랍자 중 한 명과 짧은 시간동안 전화통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전화통화에서 피랍자 21명의 안전과 건강 등이 이야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 샤 아마드자이 가즈니주 경찰서장도 4일 로이터통신에 “협상장소를 둘러싼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무력이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정부는 아프간 피랍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외교와 군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창의적 해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정부는 이를 위해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2∼3개 이상 복수의 조건을 묶은 패키지 형식의 협상을 검토 중이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이나 아프간 현지 동의·다산 부대의 즉각 철군, 아프간 대규모 경제 원조, 탈레반 수감자와 피랍자의 교환 노력 등 다양한 방안이 고려 대상에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탈레반측과 다양한 경로로 접촉하고 있다.”면서 “‘피랍자-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카드는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몫으로 우리 정부로서는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전달했다.”고 밝혔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의 전화협상에서 “한국정부가 수감자 석방을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정부는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위한 접촉장소가 정해지더라도 접촉 자체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등 현 시점에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피랍자들의 건강과 관련, 정부 당국자는 “의약품이 피랍자들에게 전달된 듯한 정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항생제와 진통제, 비타민제, 심장약 등 한국인들을 위한 의약품을 가즈니 주 카라바그 사막지역에 두고 왔다.”는 와하지 병원의 모하마드 하심 와하지 원장의 말을 인용, 의약품이 탈레반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탈레반 대변인 아마디가 “인질들은 1명씩, 적어도 500m 떨어진 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인질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4일 AFP통신과의 통화에서 “저들(탈레반)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고 울먹이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에게 구명을 호소했다. 이춘규 박찬구 김미경기자 ckpark@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교황청·탈레반 대변인 ‘설전’

    한국인 인질들의 억류와 일부 살해를 둘러싸고 교황청과 탈레반이 상대방을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ANS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세계 분쟁 지역에서 벌어지는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에 수없이 애도를 보여왔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교황의 29일 지적은 무고한 인질을 납치,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폭력행위에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이러한 행위는 증오와 죽음의 가공스러운 악순환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9일 로마 남부의 교황 휴양지 카스텔 간돌포에서 주일 미사를 통해 “납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이러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악행을 단념하고 인질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도록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왜 그(교황)는 외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가.”라면서 “아프간을 침략한 외국 군대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폭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마디는 또 “아프간 내 미군 기지에 아프간 여성들이 구금돼 있다.”고 주장한 뒤 “왜 교황은 바그람과 칸다하르 수용소에 구금돼 있는 아프간 여성들의 운명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아마디가 주장한 대로 아프간 여성들이 미군 등 다국적군에 의해 구금된 게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협상] 교황, 한국인 인질 무사귀환 호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주일 미사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AP 통신은 29일 교황의 휴양지인 카스텔 간돌포에서 열린 주일 미사에서 한 발언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교황은 “납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다.”라며 “나는 탈레반이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즉시 중단하고 인질들을 무사히 돌려 보내기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교황보다 달라이 라마 더 존경” 독일 시사주간지, 자국민 설문

    |파리 이종수특파원|독일인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독일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보다 더 존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14일(현지시간) 여론조사기관 TNS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44%가 오는 19일부터 10일 동안 독일을 방문하는 달라이 라마를 ‘모범’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베네딕토를 ‘모범’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2%다. 또 응답자 절반은 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해줄 수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슈피겔은 특히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달라이 라마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 독립 운동이 실패하자 인도 다름살라로 건너가 망명 정부를 세운 뒤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대한 비폭력·무저항 투쟁을 벌인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한편 종교 호감도에서 독일인들은 불교에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가장 평화적 종교?’라는 설문에 응답자 43%가 불교를 꼽았다. 기독교는 41%, 이슬람교는 1%였다.vielee@seoul.co.kr
  • “가톨릭 교회 아니면 완전한 교회 아니다”

    ‘교황은 종교 갈등의 장본인?’ 세계종교간 화해를 이끌어 가야 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잇따른 언행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이하 현지시간) 엄격한 교리 해석 등 보수 성향인 교황이 ‘가톨릭 제1주의’식의 행보로 다른 종교 신자들을 성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0일 발표한 문서에서 로마가톨릭이 아닌 교회는 완전한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밝혔다. 교황은 문서를 통해 “정통 교회는 참된 교회이긴 하지만 교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면서 “개신교들 사이에서 상처는 여전히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천명했다. 이어 “개신교가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까지 말했다. 교황의 선언은 전날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파문을 더하고 있다. 라틴어로 진행되는 ‘트리엔트 미사’에는 유대인의 개종을 촉구하는 ‘굿프라이데이(예수수난일)’예배가 포함돼 있어 유대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참된 교회´ 선언은 교황이 지난 2000년 주교 재임 시절 발표한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의 내용을 사실상 재확인한 것이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교황 ‘라틴어 미사’ 재도입 결정 유대인들 반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기로 해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9일 AP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 7일 라틴어 미사를 재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교황 자의교서’를 공개했다. 유대인들이 라틴어로 진행하는 ‘트리엔트 미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유대인의 개종을 촉구하는 ‘굿 프라이데이(예수 수난일)’ 예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친유대 민권단체인 반인종주의연맹(ADL)은 교황의 라틴어 미사 재도입 결정이 가톨릭과 유대인 관계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프랑스의 일부 주교들을 비롯해 진보적인 성향의 성직자와 신자들도 이번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교황청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라틴어 미사 재도입 결정이 “과거로의 회귀는 물론 공의회나 주교들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출신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4월 교황에 선출된 이후 ‘반 이슬람 발언’으로 설화를 겪었고, 지난해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에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언급하지 않아 유대인들을 실망시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티칸, 중국에 화해 제스처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바티칸 교황청이 교황의 이름으로 중국 천주교계에 편지를 보내 ‘오해를 풀고 외교 관계를 복원하자.’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왔다고 1일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보도는 또한 서한이 중국 정부의 종교정책 등에 반대하고 있는 지하교회가 중국 관방과의 대화를 통해 단결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들은 이를 바티칸이 중국에 화해를 위한 구체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아직 서한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교황의 편지는 30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이며 6월 말 시점으로 이서가 돼 있다, 중국 당국은 번역에 상당히 신경을 쓰느라 중문(中文)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jj@seoul.co.kr
  • [데스크시각] 막말문화에 弔鐘을 울려라/김종면 문화부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엉터리 영어를 남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식 석상에서도 문법이 틀리고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조잡한 영어를 내뱉기 일쑤다. 얼마 전에도 상황에 맞지 않는 파격 영어를 구사해 또 구설수에 올랐다. 외신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예방해 환담하는 자리에서 교황에게 ‘성하(Your Holiness)’라는 호칭 대신 손윗사람이나 의회 의장 등에게 쓰는 말인 ‘님(Sir)’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말실수에는 물론 비난이 쏟아진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그것을 심각하게 문제삼으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계산된 발언이라기보다는 그저 밉지 않은 ‘텍사스 홈보이’의 교양없는 언동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말실수, 아니 ‘말폭탄’의 달인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의 말과 부시 대통령의 말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의 말은 부시 대통령의 그것과 달리 선량한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그나마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알량한 정마저 떨어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 말에 고슴도치 같은 가시가 들어 있고 동굴처럼 서늘한 독기가 서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취임초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탈권위의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노 대통령의 말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대통령의 말은 이제 공개 석상에서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쪽팔린다.”“조진다.”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갔다. 오죽하면 “대통령의 언어는 위선적이라 할지라도 품위나 품격이 필요하다.”는 시인의 충고까지 나왔겠는가. 노 대통령은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랬듯이 가슴으로 말하는 타입이다. 그런 만큼 그의 말은 늘 격정적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취한 듯한, 마치 부흥 설교사와도 같은 노 대통령의 말에서는 이제 더이상 예의 투박한 진실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기도취, 곧 나르시시즘적인 자세가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심리학 개념 중에는 이른바 ‘나이에 어울리는 나르시시즘(age-appropriate narcissism)’이라는 것도 있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모든 것을 자기 관점으로 이해하고 행동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듯한 그런 옹색한 언동을 어른이 보인다면 그것은 병적인 자기애(自己愛)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미숙한 나르시시스트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도 없다. 임기 말의 노 대통령이 끝내 자기도취적인 독선의 길을 걷겠다면, 나이에 맞는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추구할 것을 권한다. 그 첫 실마리는 ‘대통령 언어’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도 품위가 있다. 그게 바로 언품(言品)이다. 천박한 언어로 인한 도덕적 레임덕은 정치권력이 시나브로 새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지속적인 것임을 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치 마이크’를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 자리를 욕되게 하는 비속어만이라도 거둬들였으면 한다. 일찍이 접해보지 못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막말행진에 국민은 피곤하고 또 피곤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위해서도 창피스러운 막말문화의 바이러스를 뿌리뽑아야 한다. 기자는 노 대통령에게 그가 존경한다는 미국 링컨 대통령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나의 발언은 낱낱이 인쇄됩니다. 내가 어쩌다 실언이라도 하면 그것은 나 자신과 여러분 그리고 이 나라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때문에 나는 나의 실수가 최소한에 머무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종면 문화부장
  • 블레어 총리 “성공회 안녕”… 가톨릭 개종

    27일 퇴임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정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 보도했다. 가톨릭 개종은 블레어 총리가 옥스퍼드대 재학시절부터 30년간 품어온 오랜 꿈이다. 이와 관련, 블레어 총리는 이번 주말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면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블레어 총리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가톨릭 미사에 참석했고, 총리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영국 공군 소속 신부가 집전하는 비밀 미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부인인 셰리 블레어 여사는 결혼 전부터 가톨릭 신자였고, 블레어 총리의 자녀 4명도 가톨릭 신자다. 블레어 총리가 개종을 미룬 것은 가톨릭에 대한 영국 대중의 정서를 감안한 것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1688년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제임스 2세 이후 역대 왕 중에 가톨릭 신자는 없었다. 권리장전에서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까지 왕위계승을 금지했기 때문이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문화국가를 위하여/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문화국가를 위하여/김형태 변호사

    한나라당 경선이 뜨겁다. 한쪽에서 ‘위장전입’이라고 몰아대면 다른 편에서는 ‘명박삼천지교’라고 받아친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가니 저처럼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웬 ‘대선’은 이리도 자주 돌아오는지. 대통령선거 몇 번 치르다 보니 청춘이 다 지나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온 나라가 편이 갈려 한바탕 홍역 치르기를 20년.1987년에 비하면 선거풍토는 많이 점잖아졌다. 산업화·민주화가 그간 대선의 화두였다면 오는 12월 선거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사회 전체가 점잖아지고 성숙해지는 ‘문화국가’를 상정해 본다.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 주장을 넘어서 이웃과 더 나아가 지구생태계까지 생각하는 넉넉함과 품격.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동네에서 간장공장 사장님이 제일 부자이던 60년대에 비하면 너무 많이 바뀌었다. 삼성, 현대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 전체 생산의 절반을 훨씬 넘는 고도자본주의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경쟁과 효율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세계 최강의 미국 자본이 이 땅에서 자유롭게 경쟁을 하게 되니 문화국가를 향한 꿈은 멀어만 보인다. 최근 문제가 된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의 입시요강만 해도 그렇다. 내신 1등급과 2등급, 심지어 4등급까지 모두 같은 점수를 주게 되면 학교성적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서울 강남 학군이나 특목고 출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서울 변두리나 지방학생들이 상류계급에 편입될 기회를 줄이는 일이다.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천년 만년 자기들만 독식하려 하는 한 문화국가의 꿈은 멀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제일 힘이 센 나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2002년 국제사면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최소 1060명, 이란 113명, 미국 71명 순이다. 미국은 1930년부터 1967년까지 3829명을 사형시켰다.2005년까지는 미성년자도 사형을 집행했다. 철저한 경쟁논리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맞서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전통 아래서 사형제도는 없어진 지 오래다.‘유럽을 사형 없는 대륙으로’, 유럽연합(EU)의 목표다. 그래서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사형폐지를 내걸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려고 사형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의 목에 밧줄을 거는 사진을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에 돌렸다. 그 사진을 보는 세계인들은 무섭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터다.EU 국가들이나 로마 교황청은 후세인이 수십만 쿠르드족을 죽였다 해도 사형집행은 안된다고 반대했다.2007년 대선을 앞둔 우리의 수준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후세인의 잘못이 크다. 사형제도는 각 나라의 입장에 맡길 일이다.’라고 했다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로부터 호된 곤욕을 치렀다.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한국출신 반 총장이 지닌 한계라는 비판까지 들었다. 반 총장이 한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받은 문화국가 성적표다. 이번 대선에 나오는 후보들은 우리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비전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각 시대는 그 시대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 있기 마련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온 힘을 쏟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모든 이의 의견이 존중되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이긴 자, 강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고 이익과 권력이 사회 구석구석 골고루 퍼져 나가는 사회. 수십만 명을 학살한 전범이라도 사형은 안 된다고 못 박은 유엔 인권위의 정신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나라. 문화국가의 꿈을 꾸는 후보들을 보고 싶다. 김형태 변호사
  •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한국정교회. 신교인지, 구교인지, 아니 한국에선 그 존재마저도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 하지만 엄연히 전국에 2000명의 세례교인이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교회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부산 전주 춘천 양구 용미리 등 7개의 정교회 성당에서 매일 하루 두번씩 예배가 열리며 주말엔 어김없이 성찬예배가 진행된다. 이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 맞은 편 언덕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마포구 아현1동 424-1)은 한국정교회의 총본산격으로, 한국에선 처음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독특한 공간이다. “하나인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정교회 교인들은 신앙의 신조 ‘니케아 신경’을 외울 때 이렇게 말한다.‘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오순절에 거룩한 사도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고 위대한 교부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역공의회와 세계 공의회의 보호를 받은 교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 5대 교구가 형성되어 내려오던 그리스도교는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분열로 인해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의 4개 지역을 관할하는 정교회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마 가톨릭으로 갈라졌다. 이 가운데 정교회는 서방교회라 부르는 로마 가톨릭과 구분해 동방교회로 통한다. 한국정교회는 아직 독립교회나 자치교회로 인정받지 못한 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를 모교회(母敎會)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작은 교회. 그리스에서 파송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를 중심으로 그리스 출신의 주교와 한국인 신부 6명, 한국인 보제신부 1명, 러시아 출신 신부 1명 등 9명의 사제가 사역하고 있다. 종교로서의 정교회는 1900년에야 이 땅에 처음 들어왔지만 정교회와 우리와의 만남은 800년전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 몽골 군이 유럽을 유린하던 중세시대 몽골에 파견되었던 로마 교황청의 사절이 남긴 기록을 들여다 보면 몽골의 왕실은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어서 러시아에서 온 대공(大公)을 후하게 대접했다. 당시 볼모로 잡혀가 있던 고려 왕실 등의 귀족 자제들이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조선 영조시대 청나라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던 이윤신은 ‘문견사건(聞見事件)’에서 ‘큰 코 오랑캐’라는 의미의 대비달자(大鼻獺子)를 만났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대비달자는 바로 ‘코 큰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 조선 선교책임자로 입국한 러시아 흐리산토스 쉐헤트콥스키 대신부가 그해 2월17일 러시아 공사 관저의 큰 방에서 성찬예배를 드린 것이 한국정교회의 시초. 한국정교회는 그 날을 생일로 삼고 있다. 고종으로부터 부지를 하사받아 지금 경향신문 자리인 서울 정동 22번지에 첫 성당을 세웠는데 러시아에서 제작해 들여온 7개의 크고 작은 이색 종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소리가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이후 정교회는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의 선교사가 모두 추방되면서 사실상 단절됐지만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교구로 조직되어 교세를 늘여가다가 한국전쟁을 맞아 다시 철퇴를 맞았다.1947년 한국인 사제 알렉세이 김의한이 서품되었지만 전쟁 발발 두 달뒤 납북되어 처형되었고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정동성당도 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당시 한국에 파병된 그리스 병사들이 매월 1달러씩 모아 성당 복구 비용에 보태기도 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육군의 종군 사제인 안드레아스 할쿄풀로스 대신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보리스 문이춘이 교회재건에 나서 1968년 아현동 언덕에 지금의 성당을 세워 놓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들이 긴 사각형의 공간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신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바실리카 양식을 택한다면 정교회 교회들은 한결같이 중앙의 둥근 돔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의 빛을 수렴하는 비잔틴 양식을 쓴다. 성니콜라스 대성당도 다르지 않다. 멀찌감치서 볼 때도 지붕의 둥근 돔이 가장 먼저 눈에 든다. 성당 입구 왼쪽에 선 아치형 종탑도 보통 교회나 성당의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종들에 내리 걸린 줄을 잡아당겨 치도록 했는데 요즘도 매일 예배 때 어김없이 종이 울린다. 정교회가 처음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러시아에서 7개의 종을 들여왔는데 전쟁중 2개만 남긴 채 모두 파손되었고 지금은 이 2개와 나중에 그리스 정부가 기증해온 3개의 종을 모아 5개의 종을 걸었다.1978년 종탑을 세울 때도 파병 그리스 병사들이 모금한 돈이 쓰여졌다고 한다. 정문 위에 걸린 수호성인 성 니콜라스의 금색 모자이크상을 보며 성당 문을 들어서면 비잔틴 양식 그대로 천장의 거대한 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앙 돔을 기준으로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가 나뉘지만 중앙 돔 양쪽에 사각형 공간을 각각 두어 결국 내부 공간은 십자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성당 문 바로 앞에는 양쪽에 촛불을 밝히는 성초대가 있는데 신자들이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나를 희생하고 이타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정화의 공간이다. 전례공간으로 가다 보면 신자석 앞 왼편에 세례조가 눈에 띈다. 전통적으로 침수 세례를 고수하는 정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지하 1.5m 깊이의 공간에 물을 채워 신자들이 세번 물속에 잠기는 과정을 통해 세례를 받는다.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화(聖畵)를 중시한다고 한다.4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성화는 대부분 복음서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신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보조교재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성당 안은 온통 성화로 도배되다시피 장식됐다. 모두 그리스 아테네대학의 소존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제작해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 돔 역시 거대한 성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꼭대기의 예수를 정점으로 성모 마리아와 천사·세례요한, 구약의 예언자 아브라함·다윗·모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이른바 구약의 의인들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결국 이 돔은 천상의 예수님부터 지상의 인간까지 연결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를 구분하는 이코노스타시스(성상 칸막이)도 천주교 성당과는 달리 높게 쳐져 있어 독특하다. 꼭대기에는 정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꽃봉오리 십자가가 올려져 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짊어진 예수의 고귀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십자가이다. 성상 칸막이 중간의 ‘아름다운 문’ 양쪽에는 역시 예수와 세례요한, 성모마리아상이 새겨졌다. 성상 칸막이 안쪽의 전례공간 구성은 천주교 성당과 비슷하지만 제대 벽은 성모상과 아기예수, 최후의 만찬을 형상화한 성화로 마감하고 있다. 성당 왼쪽, 선교사관과 사무실·교육실로 쓰이는 건물의 지하엔 성 막심 성당이 있다. 중앙 성당이 일요일 성찬예배가 열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평일 두차례씩 예배가 열리는 소성당. 초기 선교사들이 입던 제의와 18세기 제작된 성화, 복음경, 한글 기도문, 성가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러시아 신자들을 위한 예배와 영어 예배도 이곳에서 열린다. kimus@seoul.co.kr ■ “교세 확장보다 진실된 믿음 전파에 힘써” 소티리오스 트람바스(78) 대주교는 1975년 문이춘 신부의 후임으로 그리스 정교회에서 부임해 32년간 한국정교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정교회의 가장 웃어른. 교인 2000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정교회를 대표하며, 세례며 온갖 성사를 주례하는 ‘영적 아버지’로 통한다.“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달랑 성당 하나밖에 없었어요. 종탑도 없이 성당 한 쪽에서 종 몇 개를 매달아 예배를 알리곤 했는데, 돌이켜 보면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정교회는 천주교 못지않게 이 땅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세계 어느 지역 정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신자들의 열성과 신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소티리오스 대주교. 그는 “한국의 정교회 교인들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가르침’의 의미를 가진 정교회 교리에 존경스러울만큼 충실한 채 성숙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거듭 자랑한다. “서구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인해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지만 정교회는 초기 교회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은 채 진실된 믿음(복음) 전파에 치중해온 역사를 갖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정교회는 이같은 초기 교회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분쟁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지구상 유례없는 다종교국가라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는 “그러나 같은 종파이면서도 분열을 재생산하는 한국의 개신교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성장과 신자 확보에 치중하지 않는 정교회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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