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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와 악마’, 전작 ‘다빈치 코드’ 넘을까

    ‘천사와 악마’, 전작 ‘다빈치 코드’ 넘을까

    ●과학 vs 종교… 14일 개봉 과학과 종교의 대결을 그려 일찌감치 화제가 된 영화 ‘천사와 악마’가 14일 드디어 개봉된다. 원작은 작가 댄 브라운이 ‘다빈치 코드’에 앞서 쓴 소설이다. ‘다빈치 코드’보다 영화화는 늦게 됐지만, 사실상 전편인 셈. 영화 ‘다빈치 코드’(2006년)는 소설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혹평을 받은 만큼 ‘천사와 악마’가 어떤 평가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는 교황청의 의뢰를 받고 의문의 사건을 수사한다. 그 사건이란 교황 선거인 ‘콘클라베’ 직전 유력한 교황 후보 4명이 납치되고 교황청에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앰비그램이 나타난 것. 일루미나티는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의해 사멸된 18세기 과학자들의 결사대로 500년 만에 부활한다. 이들은 교황 후보들을 한 시간에 한 명씩 살해하고 CERN(유럽 핵원자 공동 연구소)에서 탈취한 반물질(빅뱅 실험을 통해 개발된 강력한 에너지원)로 바티칸을 폭파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랭던은 CERN의 물리학자 비토리아(아예렛 주어)와 함께 로마와 바티칸 곳곳에 숨겨진 단서와 암호들을 해독하며 일루미나티를 추적해 나간다. ●“흥미진진한 오락물” vs “답답한 추적물” 영화 ‘천사와 악마’가 처음 입에 오른 건 ‘종교이미지 왜곡’, ‘신성모독’ 논란 때문이었다. 교황청이 계몽 과학자들을 탄압하고 사제가 살인의뢰자로 등장하는 설정 등에 가톨릭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연을 맡은 톰 행크스가 “추리극일 뿐”이라 주장한 데 이어 론 하워드 감독도 “바티칸 교황청이 이탈리아 당국에 압력을 넣어 현지 촬영을 방해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전작 ‘다빈치 코드’ 역시 예수의 자손이 현존한다는 암시 때문에 가톨릭과 기독교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천사와 악마’가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뒤 종교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픽션으로서 가능한 정도”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평가는 오히려 극적 성과면에서 엇갈리는 모습이다. “흥미진진한 오락영화”라는 평에서부터 “황당하고 답답한 추적물”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공통된 지적이 있다면 원작보다 긴장감이 덜하고 추리적 요소가 허술하다는 대목이다. 반대로 화려한 볼거리와 영상미에는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꼽고 있다. ●제작비 1억 3000만달러 투입… 화려한 볼거리 로마와 바티칸을 공들여 담아낸 화면은 1억 3000만달러의 제작비가 헛되지 않다고 할 만하다. 시스티나 성당, 산 피에트로 성당, 나보나 광장,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등 주요 명소들을 눈앞에 보듯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광장, 판테온 앞 로톤다 광장 등 일부 장소는 로케이션 촬영으로 찍은 것이지만 대부분은 제작진에 의해 재현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세트장이다. 일례로 새 교황 선출식이 진행되는 곳인 시스티나 성당은 바닥 모자이크, 벽화 등 모든 것을 현장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구현해낸 것이다. 건축물과 예술 작품의 주요 소재인 대리석도 실제 대리석이 아닌 무늬를 그대로 본뜬 벽지다. ‘천사와 악마’ 홍보사인 ‘영화인’측은 “로마 바티칸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인 만큼 촬영 허가 받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복잡한 동선, 거친 액션 장면 등의 촬영을 위해 실제보다 큰 규모의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세트 촬영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뷰티풀 마인드’로 2002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론 하워드 감독은 ‘다빈치 코드’, ‘프로스트 vs 닉슨’ 등 최신작의 면모에서 볼 수 있듯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놓치지 않는 감독으로 입지를 넓혀가는 모습이다. ‘천사와 악마’에 대한 반응은 분분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는 징검다리 돌 하나를 더 놓는 격이 될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천사와 악마’ 본 교황청 “건방진 스토리” 입장 표명

    ‘천사와 악마’ 본 교황청 “건방진 스토리” 입장 표명

    “종교와 과학의 대립 그린 ‘천사와 악마’, 건방진 스토리지만 다이나믹한 영화” 영화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와 동명의 소설들과 관련해 여러 차례 이슈화 됐던 카톨릭 교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로마 교황청이 처음 입장을 밝혔다. ‘천사와 악마’는 인류의 오랜 논쟁거리인 ‘종교와 과학의 대립’을 그린 영화다. 이 작품은 로마 바티칸을 무대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다뤄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천사와 악마’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반응은 원작 ‘천사와 악마’가 영화화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화제를 모아왔다. 3월 초 미국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카톨릭 교회가 ‘천사와 악마’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으며 조만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전망”이라고 발표했고 뒤이어 4월 중순 인도 매체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카톨릭 단체가 ‘천사와 악마’에 대해 반박하며 상영 금지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주체인 교황청은 이러한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영화 ‘천사와 악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일체 표명하지 않아 전세계 언론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침묵을 고수하던 교황청은 최근 ‘천사와 악마’의 월드 프리미어 행사가 로마에서 진행된 뒤 ‘로쎄르바토레 로마노’라는 한 기관지(6일자)를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매체는 두 건의 리뷰 기사를 실었는데 ‘천사와 악마’에 대한 교황청의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함께 언급했다. 이 기사는 ‘천사와 악마’에 대해 “스토리가 매력적이고 촬영 기법이 뛰어나며 론 하워드 감독의 연출력이 상당히 다이나믹하고 호소력이 있었다.”고 호평했다. 반면 교황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건방진 스토리 라인”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또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등 작가 댄 브라운의 작품들이 교회에 대한 단순하고 부분적인 초상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교회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 ‘다빈치 코드’의 속편격인 영화 ‘천사와 악마’는 5월 14일 개봉될 예정이다. (사진제공=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성모병원 개원… 교황 축하 메시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서울성모병원 개원에 즈음한 축하 메시지를 전해 왔다. 서울성모병원(원장 황태곤)은 30일 정진석 추기경과 한승수 국무총리, 오스빌라 파딜랴 주한 교황청대사, 교황청 생명학술원장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 박영식 가톨릭대학교 총장, 최영식 가톨릭중앙의료원장, 남궁성은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 황태곤 서울성모병원장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식 및 개원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특히 이날 개원식에서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축하 메시지를 파딜랴 교황청대사가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병원에 동판으로 새겨진 축하 메시지에서 “서울성모병원에서 치유와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모든 환우들이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가톨릭학교법인 이사장 정진석 추기경은 격려사를 통해 “서울성모병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선도하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천주교 “야훼 대신 주님으로”

    현재 천주교계에서 쓰고 있는 가톨릭 성가(聖歌) 제목과 가사의 ‘야훼(YHWH)’라는 표현을 ‘주님’으로 모두 바꿔쓰게 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주교)는 “최근 각 교구에 공문을 보내 ‘모든 전례를 거행할 때나 성가, 기도에서 거룩한 네 글자 야훼(YHWH)로 표현된 하느님의 이름을 일절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14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야훼’가 포함된 가톨릭 성가 19개 곡의 제목과 가사 40군데에 등장하는 ‘야훼께’는 ‘주께’ 혹은 ‘주님께’로, ‘야훼님’은 ‘주님’으로, ‘야훼 하느님’은 ‘주 하느님’으로, ‘주 야훼님’은 ‘주 하느님’의 표현으로 바꿔써야 한다. 교회 전례용으로 성경 본문을 번역할 때도 훈령 ‘진정한 전례’ 41항의 규정에 따라 ‘야훼’를 ‘아도나이(Adonai)’와 똑같은 의미인 ‘주님’으로 표현해야 한다. 한국 천주교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해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하느님에 대한 공경의 뜻으로 그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지난해 10월13~16일 추계 정기총회에서 교황청의 결정을 놓고 논의를 해온 끝에 각 교구에 지침을 전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오바마, 줄기세포 연구 불지폈다

    “이념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결정을 내렸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부시 정권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지원 중단 조치를 걷어냈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인 미국이 속도를 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련 연구의 규제와 지원책이 풀릴 것으로 관측된다.●“사전에 말기·치료불능 단어 사라질것”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를 주요 내용으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할 것을 목표로 한다.”며 관련 연구에 대한 지원 강화를 약속했다. 향후 의회의 초당적 규제 완화도 촉구했다. 오바마는 “앞으로 우리 사전엔 ‘말기’나 ‘치료불능’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엄격한 감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인간복제의 위험에 대해선 강하게 선을 그었다. 전 국민적 합의도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지향점과 신조 등에 관계없이 대다수 미국인들은 줄기세포 연구를 추구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타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70%가 찬성했고, 워싱턴포스트와 AB 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도 60% 이상이 지지표를 던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8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 훼손을 이유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중단시킨 바 있다.●과학·산업계 반색… 관련株 급등그러나 찬반은 갈린다. 이번 발표로 심장병, 파킨슨병, 척수 손상 등 불치병 치료 및 생명공학 발전을 요구해 왔던 과학·산업계는 기대에 부풀었다. 주식시장에서도 스템셀의 주가가 지난 2005년 이후 최대폭인 43.5%, 아스트롬 바이오사이언시스가 33.3% 오르는 등 첨단 바이오 기업들의 주식이 일제히 급등했다. 2004년 알츠하이머로 숨진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고 크리스토퍼 리브와 그의 아내 데이나가 설립한 크리스토퍼 앤드 데이나 리브 재단도 이날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겼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도 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투지를 상기시키며 그의 뜻을 기렸다고 텔레그래프가 10일 전했다. 오바마는 “크리스토퍼는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우리가 이 연구를 수행해 나간다면 우리 생엔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생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정치권·종교계 등 반발 커반면 로마 교황청, 복음주의 기독교 등 종교계와 낙태 반대자, 보수 정치권 등의 반대는 분명하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우려와 줄기세포 치료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인간의 태아부터 생명으로 보는 입장에서 배아 파괴는 살인행위로 여겨진다. 공화당인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재검토를 요구했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온 국민의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에 이번 조치는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자연을 빚는 도예가 지헌(知軒) 김기철(金基哲·77) 선생. 전통적인 조선 백자의 맥을 현대적인 조형미로 이어 가고 있는 선생의 작품들이 자연을 닮은 것은 그의 삶이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흙을 좋아하고 꽃과 나무 가꾸기를 즐기는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뒷동산과 산기슭에 온갖 향기나는 식물들을 심어 놓고 계절따라 피고지는 꽃들을 들여다 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젖는다.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농사를 짓고 거둬 들인 수확물로 손님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뿌듯해 한다.그렇게 30년을 살다 보니 그도 어느 덧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의 삶은 작품 속에 오롯이 담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봄을 주제로 오는 13일부터 동숭동 샘터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선생을 만나러 경기도 곤지암의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한 보원요(寶元窯)를 찾았다. 한창 물이 오른 매화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길을 오르니 가득 쌓아 놓은 장작더미가 인상적이다. 가마에 땔 소나무 장작이다. 바람 결에 실려 오는 향긋한 나무 냄새가 기분좋게 코끝을 스친다.대문도 없이 나무 등걸을 가로 세운 마당 입구를 지나 돌너와지붕을 얹은 돌집이 작업실 겸 생활공간이다. 마당 저편으로 산 언덕에 자연스럽게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가마가 눈에 들어 온다. 조선시대의 전통가마를 그대로 재현한 재래식 용가마다. 그는 편리한 가스나 전기가마 대신 재래식 가마에 우리의 소나무인 좋은 육송만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 소나무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요즘이다. 그가 소나무 장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살아 숨쉬는 제대로 된 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잘 만들어진 백자가 빛의 방향과 세기,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백자가 숨을 쉬기 때문이죠. 소나무 장작의 불기운과 그을음, 공기의 조화만이 그런 오묘한 효과를 지닌 살아 숨쉬는 도자기를 구워 낼 수 있습니다. 가스나 전기로 구워 낸 것은 도자기라고 할 수 없지요.” ●가스·전기가마 대신 소나무 땔감만 고집 소나무 장작은 단순히 도자기를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불기운이 도자기 살 속까지 파고 들었다가 다시 내뿜기를 반복하는데 그 힘든 과정을 견딘 도자기만이 맑고 윤기있고 단단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백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청아해지는 것은 이런 조화에서다. 백자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도자기로 꼽힌다. 특히 불때기가 까다롭다. 산소가 들어가면 도자기가 산화돼 누렇게 변색되는데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연기와 그을음을 적당히 만들고 불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때기는 도자기 빚는 것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장작 가마는 전기나 가스가마에 비해 실패율도 높다. 대작의 경우 열개 중에서 두세개 건지면 성공이다. 그럼에도 백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백자는 도자기 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청자도 좋지만 백의민족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기는 역시 백자입니다. ” 백자와 함께 보원요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로 꼽히는 옅은 적갈색 도자기도 소나무 장작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흙빛이 윤기있게 살아나는 독특한 작품들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불의 힘으로 유약의 효과를 얻는 자연유(自然釉) 방법을 사용한 것들이다. 초벌구이를 한 뒤 도자기 안쪽에만 유약을 바르고 바깥은 유약을 생략해 재벌구이를 한다. 1350도 이상의 고온에서 이틀간 굽는데 이때 육송의 송진이 타면서 자연스럽게 유약 역할을 한다. 자연유의 푸근한 번짐과 이리저리 튀면서 만들어 내는 무늬 또한 볼수록 신비롭다. ●흙장난 하듯 해학 넘치는 연잎·청개구리 그저 흙과 자연이 좋아 평생 소박한 농사꾼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작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식물의 잎이나 꽃, 열매, 연잎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새, 물고기, 청개구리, 두꺼비, 사슴 같은 동물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천성이 촌놈이라 화초 가꾸고 농사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들판이나 계곡의 돌틈에 핀 이름모를 꽃들을 보면서 우주가 숨쉬고 있는 것을 느끼지요. 그런 모습들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흙장난으로 하듯이 작품을 빚습니다.” 연잎 위에서 세월 모르고 앉아 있는 청개구리는 그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다. 흙으로 빚은 조그마한 청개구리는 그의 작품에 포인트처럼 놓여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청개구리는 전래동화에서도 있듯이 우리 민족의 눈물나는 감성과 해학의 상징이에요. 해학의 미학이 있는 것이 최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물레를 쓰지 않고 모두 손으로 작품을 빚는다. 번잡스러운 기교가 없음에도 날아갈듯 자유스럽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특유의 분방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살아 숨쉬고 쓸수록 정이 피어 나는 유정의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물레 위에서 뽑아 내는 것은 무정의 정물에 불과합니다. 불균형 속에 균형이 있는 그런 자연의 형태를 물레 작업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손으로 빚어야 불균형 속에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형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흙 고르기부터 굽기까지 전통방법 고수 그는 흙을 고르는 작업부터 고온에서 구워 내는 작업까지 철저하게 조선 백자의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도자기를 빚은 뒤 정성껏 가마에 넣고 그 다음은 불의 몫으로 남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하늘의 도움을 기원하는 옛 도공의 모습 그대로다. “고되고 비능률적이며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패율도 높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어 내는 도자기가 첨단 과학과 기계 문명으로 잃어가고 있는 인간성 회복에 일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의 숨결을 온전히 품은 나의 작품들이 쓰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 도공 김기철의 세계 시골서 만든 ‘장작불 도자기’ 교황청·대영박물관까지 퍼져 충북 괴산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나온 영문학도였던 그는 원래 직업이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동경하며 서울의 변두리에 살면서 텃밭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 낙으로 살던 그는 마흔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도예가이자 농사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허리를 다쳐 쉬던 중 우연히 일민미술관을 지나다 나전칠기 중요인간문화재 김봉룡 선생의 고희 회고전을 보게 됐어요.정성을 기울여 만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이렇게 기막힌 것을 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나는 마흔 중반이 되도록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니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난 것이 도자기였다. 도자를 배우던 아내의 친구가 심심풀이 삼아 흙이나 만지라고 가져다 준 청자 흙덩어리로 꽃병이랑 단지를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재주가 있다고 칭찬을 하던 터였다. 모교에서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도자기에 매달리기로 뜻을 세웠다. 겨울방학에 무작정 가마가 있는 이천의 도요에 가서 사정 사정해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도공이 그의 재능을 알아 보고 내친 김에 같이 재래식 용가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마터를 물색한 지 석달 만에 지금의 보원요 터를 찾아냈다. 도예가로서 그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은 1년 뒤 공간대상 도예상 수상(1979년)으로 입증됐다. 그해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도예 평론가이기도 했던 초정 김상옥 시인은 1979년 4월17일자 서울신문 전시평을 통해 “한때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던 백자가 김기철씨의 집념의 결과로 시대적인 전승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고 평했다. 눈코뜰새 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시골 구석에서 천수답처럼 살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가까이는 국립현대미술관부터 멀리는 로마 교황청과 대영박물관, 스웨덴 에벨링박물관까지. 법정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의 다실에서도 손으로 빚어 장작불에 구운 그의 다기는 아낌을 받는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수필집 ‘꽃은 흙에서 핀다’(1993년)와 ‘고향이 있는 풍경’(2006년)을 냈으며 엘리아수필집과 포 단편집도 번역했다.
  •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추기경 신드롬 어떻게 발전시키나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추기경 신드롬 어떻게 발전시키나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이후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한국 천주교는 물론 로마 교황청까지도 놀라게 한 이 추모 열기는 종교와 이념 구별 없이 한국사회 전반에서 번져 이른바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으로까지 불려진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새기고 살려내자는 이 거대한 움직임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승화시킬 방안은 없을까. 조광 고려대 교수, 천주교주교회의 변승식 신부, 김종회 경희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의 양상을 짚어본다. ▶참석자 조광 고려대 교수 변승식 신부 김종회 경희대 교수 ▶사회 김성호 선임기자 변승식 신부 1. 40만 추모인파 의미 사회 추기경 선종에 일반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 선종 이후 전국적으로 이념, 종교를 가르지 않고 이어지는 추모 행렬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변승식 모두가 다 놀라고 있다. 추기경께서 장례 미사를 소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유지를 남기셨다. 그래서 천주교 교회에서는 빈소만 마련했을 뿐, 그 누구도 시민들에게 오라 가라 하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추위에 떨면서 이어간 조문 행렬을 보면서 종교계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일반 시민들이 종교에 대해 바라는 것이 많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추기경이었기에 그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김종회 지난 한주간 언론에서 추기경 선종 기사로 지면을 가득 메웠다. 그런 반응은 쉽지 않은 것이다. 시민들이 추기경의 구체적 행적에 대해서 잘 모르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그분의 업적을 알아가면서 감동이 더해간 점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없는 시절에 살고 있고 그에 따른 정신적 공백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추기경 선종을 기회로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아 이분이 이런 분이셨구나.’라고 감동하며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조광 추기경 선종 이후의 열광적인 추모 양상은 그가 생전 늘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과 함께하려 한 자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한 결과다. 그분은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늘 추구하셨다. 또 종교인으로서 자기 신념만 강조하지 않았고 모든 것들 속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다고 생각하며, 신성한 가치를 찾아 다른 것들이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자 했다. 그렇게 인정하고 대화하는 자세가 종교를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게 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2. 신드롬 일시적 현상인가 사회 추모 행렬이 7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천주교뿐 아니라 로마교황청에서도 각별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작 한국에서는 수많은 관측이 일고 있다. 김 추기경 신드롬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사회적 불안을 반증한 당연한 결과인가. 변 추모객들 중에는 그분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을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가 줘야 할 것을 주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치·문화 등 각계에서도 이 사람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를 살피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양떼들은 참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성경말씀이 있다.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김 추기경의 동성상업학교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 교사가 ‘황국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고 하니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고 한다. 이분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민주항쟁 때는 성당에 들어온 경찰에 ‘나를 밟고 가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 일화도 있다. 결국 우리는 소시민처럼 살고 있는 것인데, 이분은 실천적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사신 것이다. 시대적 양심을 지키고 또 역사의 훗날을 내다보면서 이분은 살다 가셨다. 조 추기경 신드롬은 어떻게 보자면 과거 어둡고 어렵던 시기에 그가 희망을 주었고 희망의 표지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다. 현재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가치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거듭 요구되는 가치라는 점을 집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추기경 신드롬은 불안한 사회의 심리표현이나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상당히 근거 있는 행동인 것이다. 그것은 추기경이 추구했던 가치에 대한 인정이라 볼 수 있다. 3.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 사회 그렇다면 추기경이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이어가야 할 과제가 우리사회에 남겨진 셈이다.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라면. 변 사제의 신분으로 추기경님을 회상하고 얘기하다 보면 그게 추기경님 이야기인지 예수님 말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정말 그분은 충실히 예수의 길을 따라가셨다. 그분은 늘 신앙을 가지고 고민을 하며 사셨다. 사람들은 책임과 지위가 지워지면 유혹에 빠지지만 추기경님은 늘 욕심 없이 살고자 하셨다. 나를 비롯한 성직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라면 끊임없이 그분을 닮도록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해 그분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따라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김 온 나라가 국장 수준으로 추기경께 존경을 바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앞으로 1주일쯤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분이 삶을 통해 가르치려던 것을 이어갈 작지만 튼튼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장으로서 명성이 알려져 있고 지위가 있었지만 이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됨의 실천을 보여주셨다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구체적 장치를 각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 그가 생전 갖고 보여주었던 가치를 먼저 확인하고 어찌 따라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그가 가진 가치 중에는 화해의 정신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신앙인이었기에 종교간 화해에 특히 관심이 깊었다. 늘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사랑이 없는 정의는 폭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의를 강조하면서도 늘 사랑과 함께해야 한다는 입장은 바로 종교 신앙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런 정신이 기초가 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전한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사회 사회에는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양극화, 경제위기, 이념대치 등 난제들을 지금의 추기경 신드롬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변 경제위기며 양극화, 남북은 물론 보수·진보간 이념 투쟁으로 사회는 병들고 있다. 사회가 점점 천박해져 가고 무한경쟁 논리에 빠져 각박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의 가치에 경도됐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추기경님을 바라본 사람들은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무작정 경쟁하고 남을 짓밟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가치, 이것이 원래 종교는 물론 정치,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추기경 추도 물결은 그런 새로운 인식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도층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추기경 개인에 대한 얘기는 더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분 자체가 당신 이름으로 무엇을 하자 한 게 아니었고 그저 보편적 가치를 따랐던 사람이다. 그가 추구했던 그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우리사회가 할 일에 대해선 사실 모든 이들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상식’일 것이다. 상식을 모두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추기경은 그 상식을 삶 속에서 실천하신 분이다. 우리는 이분의 상식을 응원하고 그걸 배워야 할 것이다. 정치 문제나 분단의 문제나 마찬가지다. 상식으로 돌아가서 상식의 차원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조 일반적으로 어떤 큰 업적을 남긴 분이 돌아가시면 기념사업을 하거나 집단 운동의 모델로 삼곤 한다. 물론 그런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안에서 그분이 추구한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이어갈지 찾아내고 결단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기초가 돼야 기념사업이든 운동모델이든 가능할 것이다. 김 추기경은 IMF때 교회 중심의 금모으기 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주변에 실천 가능성을 문제삼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분은 끊임없이 노력했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그 운동을 퍼뜨렸다. 그런 식의 그의 업적과 노력이 재음미되고 평가될 때 우리사회가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정호승 시인이 어디선가 ‘추기경님은 갔지만 우리는 추기경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말처럼 그분이 남기신 가치를 남은 우리가 잘 읽고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한다. 정리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참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같았던 분”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교황님과 교황청과 각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온 국민이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버지 같은 분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고 희망은 안 보이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편안히 가십시오. 주님 나라 들어가시면 평소 불쌍히 여기시던 백성을 위해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이 기증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빛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장기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다섯 배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떤 장관도 본받아서 기증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000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각막 이식 대기자가 모두 빛을 보려면 5년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년 혹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추기경을 모범으로 이 눈을 열게 되면 이는 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홍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 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기로 다짐합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교황청, 세번째 추기경 임명 앞당길 듯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 천주교계에 닥쳐올 변화에 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주교계는 교회 기구와 운용을 비롯한 천주교 내부의 큰 지각 변동은 당장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 천주교의 유일한 추기경이 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의 은퇴가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사회활동과 관련한 일반인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천주교 교회가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새 서울대교구장 취임·정진석 추기경 은퇴 임박 만 75세면 주교에서 은퇴하도록 하고 있는 천주교 규정상 78세인 정진석 추기경은 이미 정년을 3년 넘긴 상태. 정 추기경이 로마 교황청에 은퇴 의사를 밝혀 교황청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한국천주교는 가장 상징적이고 높은 자리인 서울대교구장을 새로 맞게 된다. 천주교계에 따르면 정진석 추기경은 정년을 맞은 시점부터 교황청에 사임 의사를 밝혀 왔다. 정 추기경의 은퇴와 그에 따른 새 서울대교구장의 취임 이후 대주교, 주교들의 연쇄 이동이 예상된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은 세번째 추기경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제3의 추기경 탄생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관측은 교황청이 정진석 추기경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특사로 전격 임명해 김 추기경의 장례를 서울대교구장에서 교황장으로 격을 높여 치르도록 한 것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김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연일 이어지는 조문행렬을 본 로마 교황청이 한국천주교를 새롭게 인식, 새 추기경 임명 시점을 앞당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회약자 위한 천주교 나눔·생명운동 탄력 한국천주교 교회의 성격과 관련해선 대(對)사회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기경의 생전 활동이 부각되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가면서 교회의 역할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대전 교구를 비롯한 일부 교구에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 강조하고 치중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활동을 높일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 발족시킨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비롯한 천주교 사회복지 단체엔 가입을 원하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본부장인 김용태(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천주교계의 나눔과 생명 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수환 스테파노’ 한국의 104번째 성인 될까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은 신자들에게 가장 존경받고,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삶과 인품이 귀감이 됐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려고 하고,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택할 수도 있다. 국내 가톨릭 신자의 세례명으로 ‘대건 안드레아’가 많은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인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을 따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이 성인이 되면 ‘수환 스테파노 성인’의 이름을 딴 ‘수환 스테파노’의 세례명이 생겨나게 된다. 문제는 성인으로 가는 길이 까다롭고 험난하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시복시성’(복자에 올리고, 성인에 올림)은 사후 5년이 지난 뒤에 추진한다. 일단 성인 반열에 오르기 전에 ‘복자’가 돼야 한다. 복자는 성인으로 가는 전 단계로 상당한 수준의 자기희생 등이 입증돼야 한다. 우선 지역(한국) 교구에서 각종 자료와 증거를 찾아서 로마 교황청에 ‘시복시성’을 요구해야 한다. 로마 교황청의 시성성에서는 자료를 검토한 뒤 직접 현장에 와서 실사를 한다. 이때는 증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2년씩 걸릴 수도 있다. 자료가 사실임이 확인되면 복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성인은 그 뒤에 성경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다양한 기적들을 추가로 수집해서 추진해야 한다.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김 추기경의 시복시성 추진을 공식화하지 않는 것은 절차의 복잡성과 엄격함 등으로 일이 더디게 진행될 경우 김 추기경의 명예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생전에 김 추기경의 자기희생적인 모습은 많지만, 기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순교자의 경우 기적 여부가 면제되지만, 선종한 경우에는 기적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 추기경 聖人 추진

    가톨릭계가 김수환 추기경을 성인(聖人)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의 한 관계자는 20일 “성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생전이나 사후에 기적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라면서 “하지만 명동성당을 찾은 40만명의 조문객이 상징하듯 분열과 갈등의 한국 사회가 자성의 기회를 되찾고, ‘통합과 화합의 신드롬’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21세기의 사회적 기적’이라고 해석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톨릭 교회가 아직 이 문제에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김 추기경의 성인을 추진하는 것은 그의 삶과 업적, 사후 전국민에게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불가피하다는 데 가톨릭 내부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가톨릭계는 197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던 자기희생뿐만 아니라, 1969년 추기경이 된 이후 80만명이던 신자를 520만명으로 6배가량 급속히 교세를 늘린 것 등도 기적에 준하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인 추진은 통상적으로 사후 5년이 지나야 한다.”고 성인 추진에 일단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뒤 “그러나 ‘살아 있는 성인’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사후에 무덤 참배객들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사례가 외국에서 종종 보고되고 있어 완전히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가톨릭 성인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조선 후기의 순교자 103명이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허영엽 신부 문답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의 홍보담당인 허영엽 신부는 17일 “추기경께서는 병상에서도 당신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도록 신신당부했다.”면서 “그래서 화환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허 신부는 “20일 장례미사도 일반 신자와 다르지 않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 신부는 이날 구성된 장례위원회 첫 회의를 마친 뒤 명동성당내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이렇게 브리핑했다. 장례위는 정진석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은 염수정 주교, 김운회 주교, 조규만 주교 등 3명이 각각 맡으며 한국천주교주교단이 고문역할을 담당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기경의 시신 옆에 놓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둘러싼 얘기들이 분분한데. -추기경께서 군사독재에 반대해 거부한 훈장을 정부가 갖다 놓아 갈등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다. 추기경께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70년 8월15일에 이미 받았다. 유신 선포전이다. 어제 정부가 유인촌 장관을 통해 이 훈장을 다시 갖다 놓은 이유는 국민의 사랑의 표시로 다시 제작,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미사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나. -미사 끝에 몇분의 조사가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자의 장례미사와 기본적으로 같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진행된다. 여기에 마지막 기도를 바치는 고별 예식이 따른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안구 상태는. -감염이 없는, 일반적인 각막으로 판정됐다. →유리관은 특별한 장치가 돼 있나. -냉장 장치가 돼 있다. →19일 입관되면 더 이상 얼굴을 못 보나. -그렇다. 정식 관에 모시는 것이다. →추기경의 재산은 어떻게 되나. -재산도 많지 않다. 교구 사무처에 맡겨 놓은 유언장에 모든 것을 교구에 넣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황청의 조문 일정은. -일단 조전이 와 있다. 일반적으로는 교황청이 조문 대표를 선임해 조문하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게 일반적인 관례다. →후임 추기경은 누가 되나. -전 세계에 추기경은 150명가량이다. 교황청이 임명에 대한 전권을 갖는다. 특정한 나라에 배당하는 게 아니다. 후임이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한국 천주교의 최고 성직자라는 명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살며 우리의 곁을 지켰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용기있는 발언으로, 때로는 ‘무거운 침묵’을 지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 온 시대의 양심이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품고 시대의 메신저로서 사회적 지침을 제시해온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정의와 진리에 바탕을 둔 인간성 회복에 앞장선 휴머니스트였다.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아버지 김영석과 어머니 서중하 슬하의 5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옹기점과 농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부모 아래서 유아세례를 받아 자랐지만 원래 사제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달리 자식에게 열정을 가진 모친은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사제가 되기를 권했지만 정작 소년 김수환은 썩 내켜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들처럼 처자를 거느리며 평범한 세상을 살아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친의 권유를 따라 결국 형(동한)과 함께 성직의 길을 택했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하고 1933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한 게 성직자 인생의 첫걸음. 서울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입학했으며 1941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해 4월 일본 유학을 떠났다. 조지(上智)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사제의 길을 놓고 망설임이 적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나라 잃은 민족적 현실에의 고민이었다. 조지대학의 게페르트 신부가 “정치가가 될 것이냐, 신부가 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민족이 저를 부른다면 정치가라도 되겠다.”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당시 갈등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성직보다 항일 독립투쟁에 더 마음을 두던 중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44년 학병에 징집되어 섬에 끌려갔다. 강제로 일본 국가를 부를 때마다 서러움이 사무쳐 미군에 투항할 생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 조지대에 복학, 1946년 12월 부산항에 도착했고 곧바로 서울의 성신대학에 편입해 4년 뒤인 1951년 9월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남의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학병 시절 체험한 전쟁속 인간의 잔학상은 사제로서 “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경북 안동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해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비서, 해성병원 원장을 거쳐 1955년 6월 경북 김천본당 주임 겸 성의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됐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신학·사회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1년 8개월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1966년 44세의 김 신부가 마산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에 임명돼 주교 성성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을 때 택한 사목표어가 바로 그 유명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이다. 이 표어는 평생 소외받고 어두운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몸과 마음을 둔 채 어길 수 없었던 큰 나침반이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을 때의 취임인사도 바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짐대로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에 초점을 맞춰 살면서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부조리한 정치사회 현실을 향한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인권 옹호자’의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상계동과 목동의 철거민 주거지를 직접 방문했고 성탄 전야 미사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집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 기구로 설립해 놓았다. 그 때문에 서울대교구의 복지 시설은 200여 개로 크게 늘었다.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사임한 다음해인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 이후 30년 재임기간 중 서울대교구에서 6명의 주교를 탄생케 했고 48개이던 본당이 200여개로 늘어나는 교세확장도 일궜다. 한국 천주교사상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것은 서울대교구장 착좌 이듬해. 나이 47세로,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이 됐던 그는 2차례에 걸쳐 총 12년동안 한국 주교회의 의장을 맡은 것을 비롯,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FABC)를 출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실에의 냉정한 처신을 비켜나지 않으면서도 늘상 이웃집 아저씨, 할아버지 같은 살가운 정과 웃음을 달고 살았던 김 추기경. 그는 떠날 때도 정확히 알고 지킨 인물이었다. 75세가 되던 1997년 교회법 제401조에 따라 로마 교황청에 서울대교구장 사임 의사를 단호히 밝혔다. 교황청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거듭 사임의사를 밝힌 끝에 마침내 이듬해인 1998년 5월29일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에서 물러났다. 목자 생활 47년 만이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향년 87세.  천주교 서울대교구 고위 관계자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이 이날 6시12분 선종했다고 밝혔다.김 추기경의 안구 등 장기는 고인의 뜻에 따라 기증될 예정이다.  앞서 서울대교구 한 관계자는 이날 오후 4시반부터 관계자들이 김 추기경의 임종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에서 고인의 장례미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지난해 8월29일부터 건강 악화로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고인이 세상에 공개된 마지막 모습이다.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김 추기경은 입원 이후에도 생명연장 장치 사용을 거부해왔으며,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 큰 고통 없이 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주치의였던 강남성모병원 정인식 교수는 “추기경께서는 노환에 따른 폐렴 합병증으로 폐기능이 떨어져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호흡했다.”면서 “선종때까지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추기경께서는 평소 늘 하시던 말씀대로 임종을 지켜본 교구청 관계자들과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고인은 1951년 사제서품을 받았고,초대 마산교구장(1966년)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정년(75세)을 넘긴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교회와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곧 깊은 관심을 가졌던 김 추기경은 독재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1970년에는 3선 개헌·유신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 행보에 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정권의 거센 압력 속에서도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고자한 고인의 신념에 힘입어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김 추기경은 또 장애인과 사형수·빈민 등을 만나 소외받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노력했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기구로 설립,복지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고인은 1999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등 2권의 책을 발표했다.이 책에서 김 추기경은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또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 지난 1966년 주교서품을 받으면서 사목표어로 정한 이 말 처럼 김 추기경은 자신의 신념을 평생에 걸쳐 실현하고 따뜻한 미소를 남긴 채 떠나갔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김수환 추기경 약력  ▲1922년 5월8일(음력) : 대구 출생  ▲1941년 :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 상지대 입학  ▲1942년 : 상지대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년 : 2차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51년 :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신학전공  ▲1951년 : 사제서품 및 대구 대교구 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3년 : 대구 대주교 비서 신부  ▲1955~56년 : 대구 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6~63년 :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 사회학전공  ▲1964년 : 주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 마산교구 주교 서품 및 마산 교구장 착좌  ▲1967년 이후 : 교황청 세계 주교 시노드(대의원회의)에 한국대표로 6차례 참석  ▲1968년 : 서울 대주교 승품 및 서울 대교구장 착좌  ▲1969년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 서임  ▲1970~75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년 :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5~98년 : 평양교구장 서리  ▲1981~87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2차 역임)  ▲1998년 : 서울대교구장 은퇴,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1998~99년 :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위원장,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초대 이사장  ▲2001년 :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상임대표  ▲2003년 : 생명21운동 홍보대사  ▲2009년 2월16일 : 선종    ●김수환 추기경의 명예학위  ▲1974년 :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1977년 : 미국 노틀담대 명예법학박사  ▲1988년 : 일본 상지대 명예신학박사  ▲1990년 : 고려대 명예철학박사,미국 시튼홀대 명예법학박사  ▲1994년 : 연세대 명예신학박사  ▲1995년 : 대만 푸젠 가톨릭대 명예철학박사  ▲1997년 : 필리핀 아테네오대 명예인문학박사  ▲1999년 : 서울대 명예철학박사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공교육 아름다움 일깨운 ‘임실 혁명’ 대학생 직장인 눈물겨운 부채탕감 비책 ”고용유지도 힘든데 나누긴 뭘” ’워낭소리’ 성공했지만 갈길 먼 독립영화
  • [씨줄날줄] 바티칸과 다윈/황진선 논설위원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공방을 벌인 이론은 창조론과 진화론일 듯싶다. 1925년 미국 테네시 주의회가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의결하자, 고교 풋볼 코치인 24세의 존 토머스 스코프스는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다며 스스로 피고인이 됐다. 바로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스코프스는 체포돼 벌금 100달러에 처해졌다. 테네시 주 대법원은 스코프스에 대한 유죄평결을 파기하면서도 법률 자체는 합헌으로 판단했다. 미 연방 대법원은 1968년에야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의 위헌을 선언했다. 그러나 진화론이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1981년 루이지애나 주의회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때는 반드시 창조론 교육을 병행토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창조론자들의 역습이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루이지애나주 법이 학문적 자유를 내세우면서 특정 종교를 지원하는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창조론의 반격은 최근 다시 지적 설계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명체의 기원과 복잡성은 다윈의 진화론이 설명하듯, 돌연변이에 의한 변화와 변화의 축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떤 지적인 존재에 의한 설계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2월12일)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진화론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바티칸이 오는 3월 로마에서 가톨릭대학인 이탈리아의 그레고리안대와 미국의 노터데임대의 후원으로 나서 ‘종의 기원’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열기로 해 눈길을 끈다.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밑바탕에 진보와 보수적 가치, 철학과 세계관의 차이가 흐르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정치 경제 사회 심리학, 철학과 의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며 진화와 분화를 계속하고 있다. 진화론을 배격하는 창조론을 대할 때마다 진퇴양난에 빠지는 기독교 신자도 적지 않다. 교황청 문화평의회를 이끄는 지안프란코 라바시 대주교가 밝혔듯이, 바티칸이 창조론과 진화론이 양립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냈으면 한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바티칸, 다윈에 포옹 제스처

    바티칸과 다윈의 ‘포옹’이 이뤄질까. 오랫동안 교회의 철퇴를 맞아온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에게 바티칸 교황청이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2일 탄생 200주년을 맞는 다윈의 복권이 이뤄지는 셈이다. 바티칸은 3월 다윈의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 기념 학술회의도 열어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새 지표를 세울 전망이다.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의 ‘화해’를 이끄는 발언도 잇따랐다. 교황청 문화평의회를 이끄는 지안프란코 라바시 대주교는 10일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대주교는 “생물학적 진화와 교회의 창조론은 상호보완적”이라며 “교회가 그간 진화론에 적대적 입장을 취해왔지만 공식적으로 비판한 일은 없다.”며 유연한 목소리를 냈다. 1996년 당시 교황 바오로 2세도 진화론을 “가설 이상의 것”이라고 평가했다. 교황청 부속기관인 산타 크로체대의 신학자 주세페 탄젤라 니티 교수도 “지금은 신학자들도 유전자 암호의 미스터리와 생물 다양성이 종간의 경쟁 혹은 공생의 결과인지 알아내기 위해 주력하는 때”라며 “진화론은 신학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월 교황청이 개최하는 다윈 기념 학술회의도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주최측은 처음으로 지적설계론(Intelligence Design)에 대한 논의를 회의에서 금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고 밝혔다.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을 반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조론의 ‘변형’으로, ‘지적인 존재’가 자연을 창조했다고 본다. 단, 하느님을 직접 가리키진 않는다. 주최측은 “이번 회의는 지적설계론을 ‘빈약한 신학, 빈약한 과학’임을 비판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교회가 다윈과의 관계가 ‘갈등’으로 비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분석했다. 다윈이 그의 믿음을 뺏기고도, 교회에 등을 돌리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다윈 탄생 200주년] 인류의 최종 이론 ‘진화론’을 말하다

    [다윈 탄생 200주년] 인류의 최종 이론 ‘진화론’을 말하다

    1859년 11월. 영국 런던 ‘존 머리’ 출판사는 전문 14장으로 구성된 ‘종의 기원’을 발간했다. 이 책 한 권으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지질학자에 불과했던 다윈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올랐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절대적인 논리를 앞세워 세계를 지배하던 종교계의 거센 반발은 채 10년을 가지 못했다. 신학자들의 논리는 30여년에 걸쳐 자연을 관찰하며 얻어낸 다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제 생물학자들은 그를 ‘인류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천재’, 사회학자들은 ‘혁명가’라고 칭송한다. 그의 이론은 철학과 종교, 인류의 사고체계 전체를 뒤흔들며 역사상 가장 파괴력 있는 논리이자 진실로 인정받고 있다. 여러 생물들의 진화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맞다면 인간도 현재의 모습이 진화의 최종 단계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최초의 화석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한 것은 약 500만~600만년 전이므로 인류 진화의 역사도 그쯤 된다. 그 사이에 인류는 신체와 지능에서 진화를 거듭해 왔다. 그러면 인간의 진화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다윈 자연선택 이론은 유효 모든 생물에서 진화가 진행 중이라는 대전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외부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신체, 혹은 사회 구조를 가진 생물들이 살아 남게 되는 만큼 더 강건한 신체와 좋은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2006년 10월 영국 런던 정경대 다윈연구센터의 올리버 커리 박사는 서기 3000년 인간의 평균 키는 2m에 이르고 수명은 120세로 늘어나 인간의 전성기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인간은 질병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세대가 거듭될수록 키와 몸무게가 늘어나고 있다.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리고 인종 개량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기계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정신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적인 능력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손발이 퇴화하고 머리만 커지는 외계인 형상으로 인간의 모습이 바뀔 가능성도 있음을 뜻한다. 커리 박사는 서기 1만 2000년쯤부터는 의사소통 능력이 줄어들고 사랑과 동정, 신뢰, 존경 등의 감정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10만년 뒤에는 인류가 두 가지 종으로 구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류층, 고학력층,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들을 배우자로 선호함으로써 유전적 부유층들은 날씬하고 긴 몸과 창의력을 지녔을 것이며 나머지는 키가 작고 지능이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도 진화의 방향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유전자조작생명체(GMO)의 등장은 과거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 인구감소를 거쳐 도태될 일부 지역 사람들의 종족보존에 큰 역할을 한다. 한국처럼 수천년간 민족성을 유지해 온 나라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으로 인해 피부색과 사회적 성향이 다르게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체하거나 퇴보할 가능성도 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진화론의 원칙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등장과 점차 복잡해지는 사회구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미 인간의 진화가 멈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현대 진화론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스티븐 제이 굴드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이다. 하지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이같은 주장을 ‘궤변’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상태인 시골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으니 자연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굴드의 주장은 잘못됐다.”면서 “진화가 벌어지는 자연은 대자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이나 인위의 상대적 표현인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진화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모든 주장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다. 수십만년 후가 아닌 불과 10년 후에 우리의 신체와 정신이 어떤 변화를 겪고 급격히 변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화의 단계에서 빠진 공간을 ‘미싱 링크(missing link)’라고 부르며 공격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분석하고 중간의 틈새를 메우는 일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윈은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이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라고 감탄했다. 그조차도 미래에 대한 언급은 하지 못했다. ●진화론, 정치·경제·사회 변화도 설명 가능 아직까지 미국과 유럽내 일각에서는 ‘창조론’을 교과서에 추가해야 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로마 교황청이 올해 3월 이탈리아 그레고리안 대학과 미국의 노터데임 대학이 여는 ‘종의 기원이 인류에 미친 영향’ 심포지엄의 후원자로 나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계마저 진화론에 맞춰 사상을 재무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영국 성공회 역시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당신을 오해하여 당신에 대한 첫 대응을 잘못했고, 아직도 다른 이들이 당신을 오해하도록 부추긴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윈이 위대한 것은 진화론이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최종 이론’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변이가 발생하고 경쟁을 통해 한 개체가 적자생존을 한 뒤 생존한 개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변화 양상을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마이클 셔머가 말한 대로 150년이 지난 지금 역시 ‘다윈의 시대’다. 진화론 역시 진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이혼하려면 부부사이 빚도 나눠라” 강호순으로 용산참사 물타기? 박지성 ‘지옥에서 천당으로’ ‘그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장바구니 가방’ 男心 사로잡다 김정호의 22첩 대동여지도 실물로 보세요 올챙이 뻥튀긴 듯 못생긴 장치찜 ‘동해의 참맛’ 강원도에 생기려다 만 ‘누드 비치’ 제주도에선?
  • 김종수 신부 대전교구 보좌주교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0일 대전교구 김종수(53·아우구스티노) 신부를 대전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했다고 주한 교황대사관이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총 32명의 주교(추기경 2명, 대주교 4명, 주교 26명)를 갖게 됐다. 신임 김 주교는 1989년 사제서품을 받아 논산 부창동 보좌를 지내고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한 뒤 귀국해 해미성당 주임, 대전가톨릭대 교수, 교리신학원장을 거쳐 2007년 6월부터 대전가톨릭대 총장으로 재임해 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극우화 인사 파문 휩싸인 교황

    극우화 인사 파문 휩싸인 교황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한 영국인 주교를 복권시킨 데 이어 2005년 미국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신의 처벌’이라고 주장한 오스트리아 성직자를 부주교로 승급시키자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논란은 지난달 24일 로마 교황청이 20년 전 교황의 승인 없이 주교에 올랐다는 이유로 파면됐던 4명을 복권시키면서 시작됐다. 복권된 주교 가운데 영국인 리처드 월리엄슨은 지난달 21일 스웨덴 TV와의 인터뷰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은 600만명이 아닌 20만~30만명에 불과하며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주장했었다. 논란이 지속되자 교황의 고국인 독일에서도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일 기자회견에서 “윌리엄슨 주교의 복권에 따른 후폭풍이 강하게 불고 있는데도 교황청이 충분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교황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을 반대한다는 점을 명쾌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교황청은 이날 성명을 내고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는 완전히 복권되기 전에 자신의 발언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교황청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복권을 승인하기 전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인물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신의 처벌”이라고 주장한 오스트리아 성직자 게르하르트 마리아 바그너도 오스트리아 린츠의 부주교로 승급됐다. 바그너는 카트리나로 동성애자가 많은 미 뉴올리언스 주의 피해가 컸던 것을 염두에 두고 “동성애자에 대한 신의 처벌”이라고 발언해 구설수에 올랐고 “해리 포터가 악마주의를 전파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오스트리아의 한 성직자의 말을 인용, “교황으로 인해 가톨릭 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신자가 최근 몇 년 동안 급감했다.”고 비난했다. 교황은 지난 4년 재임기간 ‘극우 어록’으로 공식 사과를 반복해 왔다. 이슬람 교도와 인디언에 대한 비하와 동성애자 혐오 발언으로 진보·인권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교황청 홀로코스트 부인 英주교에 “발언 철회 촉구”

    로마교황청이 2차대전 당시 가스실에서 유대인 대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영국인 주교 리처드 윌리엄슨에게 발언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청은 4일 성명을 발표하고 “윌리엄슨 주교가 교회의 주교 직능을 인정받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존의 주장과 선을 그어야 한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성명은 이어 윌리엄슨 주교의 홀로코스트에 관한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엇으며 성부로부터도 확고히 부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황청의 한 추기경은 교황청이 이 문제를 잘못 다뤄왔음을 시인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 방송의 로마특파원인 데이비드 윌리는 교황 베네딕토16세가 실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며 바티칸이 이처럼 서둘러 성명을 내고 진화에 나선 것은 가톨릭 교회 내부에 이 파문이 미칠 파장이 심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윌리엄슨 주교는 지난달 21일 스웨덴 TV 인터뷰를 통해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은 600만명이 아니라 20만~30만명에 불과하며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교황청은 윌리엄슨 주교의 인터뷰 사실을 모른 채 20년 전 교황의 승인 없이 주교에 올랐다는 이유로 파면됐던 그를 지난달 24일 다른 3명의 주교와 함께 복권시켜 이스라엘의 유대교 지도자 등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유대교 지도자들은 교황청과의 공식 관계를 무기한 단절하고 3월로 예정됐던 교황청과 유대교의 회합도 취소하는 등의 후폭풍에 휩싸였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일 교황청이 충분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며 교황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을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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