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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청 지정 순례성지 6년 만에 보존 합의

    국민권익위원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하남사업본부에서 현장조정회의를 열고 LH와 천주교가 6년간 갈등을 빚어 온 경기 하남시의 교황청 지정 천주교 구산성지 보존 방안을 조정·중재했다고 17일 밝혔다. 구산성지는 로마교황청이 지정한 천주교 성지로 2009년 LH가 공공주택 사업지구로 편입하면서 보존을 요구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권익위에 따르면 구산성지는 1800년대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해 8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교우촌으로 1980년 로마교황청이 순례성지로 지정했다. 하남시는 2001년 구산성지를 향토유적(제4호)으로 지정했지만, 외곽에 위치한 천주교 성인 및 순교자 묘역과 이를 기리는 현양터는 제외됐다. 2009년에는 LH가 공공주택 사업지구로 해당 지역을 편입하면서 성지 보존 방안을 놓고 갈등이 발생했다. LH는 그동안 외곽 지역인 순교자 묘역, 현양터를 제외하고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구산성지만 존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천주교 수원교구는 지난 7월 “순교자 묘역과 현양터 없이는 성지로서 목적을 다할 수 없다”며 신도 1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구산성지의 역사성, 현양터를 종교용 부지로 볼 수 있다는 조세심판원의 판단 등을 근거로 중재안을 마련했다. 중재안에 따르면 LH는 현양터 보존과 함께 인근에 문화공원과 주차장을 조성하고, 천주교 수원교구는 순교자 묘를 오는 9월까지 보존되는 성지로 이전하게 된다. 또 하남시는 보존되는 구산성지에 대해 모든 부지를 향토유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카퍼레이드 멈추고 세월호 유족 위로 ‘감동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카퍼레이드 멈추고 세월호 유족 위로 ‘감동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미사를 앞두고 세월호 희생자 유족을 위로해 눈길을 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오전 시복미사를 앞두고 서소문 성지를 참배하고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 행사에 나섰다. 교황은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시민들의 환영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직접 차량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유가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잊지 말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유가족의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그들을 위로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방한 당시 공항에 영접을 나온 유가족들에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를 전한 바 있다. 네티즌들은 “교황 시복미사 전 카퍼레이드 생중계 봤는데 세월호 유족 위로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세월호 유족들이 많은 위로를 받았길 함께 기도한다”, “교황 시복미사 전에도 세월호 유족 위로 했구나”, “세월호 유족 위로, 교황의 모든 행보가 감동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미사가 열렸다. 시복식 미사는 관례적으로 바티칸에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추기경이 교황을 대리해 거행하는 것. 교황이 지역교회를 방문해 이를 직접 거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진 = KBS 중계 캡처(프란치스코 교황 시복미사, 세월호 유족 위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교황 시복식·복자품 뜻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 거행

    ‘교황 시복식’ ‘복자품 뜻’ ‘시복식 뜻’ ‘윤지충’ ‘바오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집전한 시복미사는 한국천주교 순교자 124위를 가톨릭 교회가 신앙의 본보기로 공식 선포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날 오전 10시 교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 안명옥 주교의 시복 청원과 김종수 신부의 약전 낭독에 이어 순교자 124위에 대해 시복 선언을 했다. 가톨릭 교회가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을 복자(福者), 복녀(福女)라 하는데, 시복(諡福)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를 복자로 선포하는 교황의 선언을 뜻한다. 복자와 복녀가 시성되면 각각 성인, 성녀가 된다. 복자와 성인은 공경의 범위가 다르다. 복자에 대한 공적 경배는 교황이 허락한 특정 교구와 지역, 수도회 안에서만 이뤄지며 가톨릭 전체 교회에 의무가 아니지만 성인은 세계 교회의 공경 대상이다. 이번 시복 선언까지는 한국천주교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앞서 한국 교회 차원의 시복 조사를 진행해 2009년 모두 125위에 대한 시복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했으며, 지난 2월 교황이 한국의 가톨릭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시복을 결정했다. 이때 124위와 함께 시복 청원된 ‘한국인 2호 사제’ 최양업 신부는 순직자여서 별도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복된 124위는 초기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들이다. 신유박해(1801) 때 희생자가 53위로 가장 많고, 신해박해(1791), 을묘박해(1795), 정사박해(1797),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1888) 등에 걸쳐 있다. 하지만 시복의 의미가 단순히 순교자 124위의 숭고함을 기리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순교자의 교훈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새기는 의식이기도 하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류한영(57) 신부는 최근 인터뷰에서 “시복은 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된 무고한 순교자들의 숭고한 행위가 헛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졌음을 선포하고 오해받은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순교자들이 박해자를 증오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을 맞은 정신을 살려 유교와 천주교가 화해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에서 시복시성된 인물은 국내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가톨릭 성인 103위가 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시성식을 직접 주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감동의 스킨십

    교황 “세월호 십자가 로마로 가져가겠다”… 감동의 스킨십

    ‘짧은 만남, 깊은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5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기 직전 제의실 앞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단원고 학생 대표와 유가족 10명을 만나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교황이 외국 방문을 하면서 관례상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지만 이번 세월호 유족들 면담과 같은 만남은 이례적이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만남은 비록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방한 첫날인 지난 14일 서울공항에서 영접 나온 세월호 유족에게 “아픔을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관심을 보여줬다. 유가족들은 교황 면담 뒤 기자들과 만나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 정부와 의회가 나서도록 해 달라고 말씀드렸다”면서 단식 중인 세월호 희생 학생의 아버지를 광화문 미사 때 안아 달라는 요청에 교황이 고개를 끄떡였다고 전했다. 경기 안산에서 대전까지 십자가를 메고 걸어온 희생자 아버지 김학일씨는 “제의실에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으니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 달라”는 부탁에 교황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방한준비위원회 측은 “교황은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교황이 십자가를 가져가는 데 필요한 절차는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담당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와 함께 교황에게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유가족의 사진이 들어 있는 앨범과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해 줄 것을 부탁하는 영문 편지를 전달했고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2명도 영어와 스페인어로 쓴 편지를 전했다.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면서 유가족들이 선물한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줄곧 달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교황의 의지에 부합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있을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도 세월호 참사 유족 600여명의 참석이 확정됐다. 한국천주교는 현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부근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시복식 때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교황을 볼 수 있도록 좌석을 제단 근처로 옮기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이 같은 교황의 각별한 관심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복 행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농성장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시복식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인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하는 텐트 등 2개동만 남기고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유족들은 16일 오후 시복식이 끝나면 다른 천막들을 원래 위치에 복귀시키기로 했다. 한편 세월호 범국민대책위원회도 15일 오후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밤에는 시청광장에서 문화제를 열 계획이었으나, 유족들의 의사를 존중해 문화제를 취소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사설] 여야 역지사지로 세월호 치유해 민생 돌보길

    세월호 특별법으로 꽉 막힌 정국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완구 새누리당·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어제 취임 100일을 맞았으나 이후 처리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지난 7일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등 11개항이 물거품이 되면서 민생법안은 물론 국정감사 일정까지 ‘올스톱’될 위기에 놓였다. 여야 지도부는 정치력을 발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해법을 찾아 경제회생 법안을 처리하는 등 민생을 돌보기 바란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참사 122일째인 어제 대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10명의 실종자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제 성남공항에 나온 유족들에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위로했다. 유가족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히고 있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제 교황청대사관에서 집전한 첫 미사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정치권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세월호 특별법안을 하루속히 처리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여야 원내대표 간 세월호법 합의를 야당이 먼저 깬 점을 내세우며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연합은 공은 새누리당에 넘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새정치연합이 특별검사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4인 구성과 관련해 ‘여야 각 2명씩’이 아닌 ‘여당 1명, 야당 3명’을 제안한 것을 두고서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특검추천권이나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과 관련해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완구 대표는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오는 18일 본회의를 예고했다. 본회의가 무산돼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학생의 대학입학지원 특별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안산 단원고 3학년생들은 오는 9월 수시모집 중에 특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처음 실시할 예정인 ‘분리 국정감사’가 이뤄지려면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국감 시작일인 오는 26일 이전 마지막 국무회의가 19일로 예정돼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낮추는 등 정부와 정책 공조를 하고 있다. 이젠 국회가 민생법안들을 처리해 화답해야 한다.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안들을 더 이상 방치해선 결코 안 된다. 여당이 세월호 특별법 쟁점인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4인 구성이나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 문제에서 먼저 탄력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등 대승적 결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민중의 CEO 프란치스코

    지난해 8월 1일 영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의 사장 출신인 장바티스트 드 프랑쉬는 다른 금융전문가 6명과 함께 교황청의 부름을 받았다. 이들은 게스트하우스인 ‘산타마르타의 집’에서 교황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왜 프란치스코 교황을 ‘민중의 교황’이라고 부르는지 이제 알겠다”며 교황의 소박한 숙소에 감탄했다. 그러나 교황과 면담한 뒤 이들의 평가는 달라졌다. ‘금융의 귀재’라고 자부해 온 이들은 교황을 “영감을 주는 탁월한 경영자”라고 불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14일(현지시간) 이들의 일화를 소개하며 ‘탁월한 경영자 프란치스코’라는 제목으로 교황청 개혁 등 교황의 경영자적 능력을 분석했다. 포천은 “교황은 철두철미한 전략가”라면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수행할 적임자를 선택해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전광석화처럼 조직을 정비한다”고 소개했다. 포천에 따르면 교황은 금융전문가 7명에게 “사람들이 내 말은 신뢰하지만 바티칸의 재정은 불신한다. 비밀이라는 먼지로 덮인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교황은 프랑쉬를 돈세탁 비리로 얼룩진 바티칸은행장에 임명했다. 컨설팅그룹 KPMG와 EY에는 교황청의 회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바꿔 줄 것과 철저한 회계감사를 의뢰했고 매킨지에는 우수한 인재를 뽑아 줄 것을 부탁했다. 교황은 가톨릭 개혁을 위한 확실한 ‘플랜’을 갖고 있었다. 그는 바티칸의 관료주의와 비효율을 타개하기 위해 호주 시드니 교구의 조지 펠 주교를 교황청 경제사무국장으로 발탁해 전권을 줬다. 개혁성향의 펠 주교는 바티칸의 기득권은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전혀 친분이 없었다. 주교 시절 바티칸은 그를 ‘아웃사이더’로 여겼지만 프란치스코는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위축되기만 하던 가톨릭을 개혁시킬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했다고 포천은 분석했다. 교황청의 한 신부는 “교황이 특정 정보를 5~6명의 자문관에게 교차 확인할 정도로 꼼꼼해 얼렁뚱땅 보고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돈’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인류애를 구현하는 데 돈은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당신이 돈에 집착하면 돈이 당신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포천은 “실용적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개혁과 청빈한 삶을 실천해 신자를 늘렸고, 이에 따라 재정이 흑자로 전환됐으며, 흑자 재정을 빈자들에게 되돌려주는 선순환을 구현해 전 세계에 돈을 뛰어넘는 ‘프란치스코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박대통령 “비엔베니도 아코레아”… 교황, 새터민·이주노동자와 일일이 악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박대통령 “비엔베니도 아코레아”… 교황, 새터민·이주노동자와 일일이 악수

    교황으로 역대 세 번째로 한국 땅을 밟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제스처는 없었다. 앞서 1984년 역대 교황으로는 처음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서 땅에 입을 맞췄다. 그런 만큼 돋보인 것은 때로는 은은하고, 때로는 어린아이같이 환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소였다. 교황은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의 기내 영접을 받은 뒤 난간을 잡고 트랩을 천천히 내려와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박 대통령은 교황을 뒤따르며 나서지 않았다. 종종 TV 화면에서도 사라졌다. 앞서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당시에도 각각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공항에서 직접 교황을 영접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지난해 2월 취임 이래 친서를 포함해 네 차례 서한을 전달했고, 한국을 방문한 교황청 고위 인사에게 구두로 초청 의사를 전달하는 등 교황의 방한을 다섯 차례 요청했다. 교황의 사제복인 흰색 수단에 맞춰 연분홍빛 상의와 회색 바지를 차려입은 박 대통령은 교황을 영접하면서 “오셔서 환영합니다”(비엔베니도 아코레아)라며 간단한 스페인어로 환영인사를 전하고 “여행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교황을 모시게 돼서 온 국민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인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다. 교황은 박 대통령이 “이번 교황의 방문으로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답했고, 박 대통령은 “행복하고 뜻깊은 방문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을 환영하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며 세계 가톨릭 교회 최고지도자인 교황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교황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등학생 남녀 화동(花童) 2명이 꽃다발을 건네자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어 교황은 박 대통령과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한 뒤 정부 주요 인사와 주교단, 평신도 환영단의 영접을 받았다.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교황에게 평신도 환영단을 한 명씩 소개했으며 교황은 환영단으로 나온 세월호 유족, 이주노동자, 새터민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평신도 환영단 중에는 교황과 인사를 한 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공항 환영행사는 이것이 전부였다. 의전을 원치 않는 교황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저 환영단과 인사를 마치고 박 대통령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소형 차량 쏘울을 타고 현장을 떠났다. 박 대통령은 쏘울에 올라타는 교황을 향해 “이따 뵙겠습니다”(노스데모스 루에고)라며 다시 스페인어로 인사를 전했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알리탈리아항공의 교황 전세기(에어버스 330)에는 7개 한국 언론사 기자를 비롯해 AP, AFP, 로이터, CNN 등 전 세계 유력 언론사 기자 70명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교황은 우선 숙소인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으로 바로 이동했다. 교황은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개인 미사 시간을 가졌으며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동, 한국천주교 주교단과 직원들을 만나 연설하는 것으로 방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영접 통역한 정제천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영접 통역한 정제천 신부

    14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공항에 도착한 이후 10여분에 걸친 영접 행사 내내 교황 뒤를 따르며 동분서주해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4박 5일간 그림자처럼 교황을 수행하며 통역을 도맡을 정제천(57) 예수회 신부. 광주에서 태어나 33세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속된 예수회에 입회, 6년 뒤 사제품을 받은 해외통 신부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2년간 스페인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2009년 최종 서원했다. 정 신부가 이번 수행비서 겸 통역 담당자로 낙점된 건 교황방한을 앞두고 교황청이 예수회 한국관구에 요청한 데 따른 것. 교황과 같은 예수회 소속 신부 중 한국에 있으면서 스페인어와 이탈리어에 능통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정 신부는 교황의 수행 및 통역 비서로 간택된 데 더해 다음달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예수회 한국관구장에 피선, 겹경사를 누리게 됐다. 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든 일정을 함께하며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긴다. 실제로 서울공항 영접행사가 끝난 뒤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이동하는 차 옆자리에 동승한 뒤 이날 하루 종일 교황과 동행했다. 숙소도 교황과 같은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정해 교황의 첫날 밤부터 같은 지붕 아래 몸을 뉘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탈한 교황 ‘기내 스킨십’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소탈한 교황 ‘기내 스킨십’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 환하고 인자한 얼굴 표정, 평범한 식사와 좌석까지….’ 13일(현지시간) 교황청 전세기가 이탈리아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을 이륙한 지 40분 만에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문 그대로’ 소탈하고 살가웠다. 교황의 사제복인 흰색 수단을 입은 교황은 동승한 70명의 기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몇몇 기자들과는 사진도 찍었다. 한국 기자들에게는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나지막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인사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숨진 언론인을 위한 기도였다.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취재 도중 숨진 이탈리아 사진기자를 거론하며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고인을 위해 침묵 속에 기도하자고 제안하고 30초가량 고개를 숙인 뒤 손을 모아 기도했다. 교황이 이번 방한에 이용한 알리탈리아항공의 ‘에어버스 330’기는 다른 항공기와 차이점이 없었다. 교황을 위한 사무·휴식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11시간 30분 동안 줄곧 비즈니스석 의자에 앉아서 와야 했다. 식사도 이탈리아 일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저녁 식사는 전식, 메인 요리, 디저트로 구성돼 있었다. 전세기에 탑승한 100명의 교황청 관계자와 취재 기자들은 모두 같은 음식으로 식사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연합뉴스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헬로 파파… 화해의 씨앗 활짝 피어나는 계기되길”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헬로 파파… 화해의 씨앗 활짝 피어나는 계기되길”

    25년 만에 교황을 맞는 14일 전국은 들썩거렸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 각 성당은 일제히 교황 환영 메시지를 담은 깃발,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날 오전 서울공항으로 도착한 교황의 환영행사 생중계를 기차역과 터미널 대합실 등에서 TV로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선에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천주교 신자들의 감격은 더욱 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착하기 전부터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 근처 청와대 분수대 앞은 상기된 표정으로 교황을 맞이하려는 천주교 신자 200여명으로 북적였다. 모두 파란색 티셔츠를 차려입은 이들은 초대교회 공동체 운동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소속 교인들이었다. ‘복음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등 현수막을 든 교인들은 한국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로 복음송을 부르며 교황을 기다렸다. 그 앞을 지나던 교황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흘들어 줬다. 최용근(24·대학생)씨는 “교황님 영접을 앞두고 월요일부터 다 같이 기도하면서 말씀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며 “오늘 플래카드 드는 일을 맡았는데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전국 각 성당에는 평소보다 많은 신자들이 찾아 기도를 올리며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교황 방한 첫날 사제들의 시선이 주목된 곳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황이 맨 처음 사목 방문지로 택한 것이 주교회의인 데다 서울의 변두리까지 직접 찾아간 곳이어서 감격은 더했다. 이날 오후 5시 20분쯤 천주교주교회의 건물 들머리에 늘어선 사제와 수녀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됐다. 교황대사관에서의 짤막한 개인 미사 후 청와대를 예방해 대통령 면담, 공직자들과의 만남을 하고 찾아온 교황을 친견한다는 설렘 때문이다. “교황님 도착하셨습니다.” 누군가의 외마디 알림에 모든 시선이 들머리로 향했다. 마침내 환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걷는 교황의 현신. “교황님 고맙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가운 맞음의 순간이 끝나고 사제의 안내로 7층 소성당에 들어선 교황의 기도 소리가 잔잔하게 퍼졌다. 교황의 기도를 지켜보는 사제와 수녀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현직 주교단 25명과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등 은퇴 주교 8명이 마음의 기도를 함께 바쳤다. 국내 16개 천주교 교구협의체인 주교회의는 대내외적으로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해 교황청이나 외국 교회와의 연락 업무도 맡는다. 이날의 만남은 세계 가톨릭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이 지역 교회를 돌보는 주교들을 격려하며 세계 교회의 하나 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사목 방문을 거듭 강조했던 교황이 먼저 한국 천주교 주교단을 만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 그렇다 해도 한국의 사제들은 여독에 지친 몸으로 서울의 변두리까지 걸음해 준 교황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찍이 “주교들을 보려면 그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중곡동행을 고집했다. 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 집전차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의 주교단을 만난 곳은 숙소인 주한 교황대사관이었다. “이렇게 먼 길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가 끝나고 4층 강당으로 자리를 옮긴 교황에게 주교단을 대표한 강우일 주교가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화답했다. “순교자들이 씨앗을 뿌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 이 나라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해진 신앙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빕니다.” 이탈리아어로 답례 연설을 끝낸 교황이 환하게 웃었다. 주교들과 한 사람씩 인사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자 어느새 오후 6시 30분. 교황은 그렇게 한국 땅에서의 첫 사목 방문을 마무리하며 중곡동을 떠났다. 그리고 숙소인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한식과 양식을 곁들인 보통 가정집의 조촐한 저녁 식사로 한국 땅에서의 첫날 공식일정을 마무리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교황 침소 6평 남짓… 침대·옷장·탁자 달랑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교황대사관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간 묵는 숙소 겸 집무실이다. 15일 대전가톨릭대에서 있을 아시아청년 대표와의 오찬과 17일 충남 서산 해미성지에서 예정된 아시아주교와의 오찬을 제외한 모든 식사도 이곳에서 해결하게 된다. 교황이 외국을 방문할 때 방문국 주재 교황대사관이 교황청을 대신하는 관례에 따라 거소로 정해졌다. 총면적 2300여㎡, 건물면적 1600㎡ 규모의 2층 집으로 지어진 지 50년이 넘는 낡은 건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궁정동 안가 자리 앞이다. 청와대와 인접해 재건축이 불가능한 탓에 냉난방시설조차 제대로 못 갖춰 당국이 교황 방한에 앞서 부랴부랴 에어컨을 수리했다고 한다. 침실은 1984·1989년 두 차례 한국에 왔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묵었던 곳이다. 침대와 옷장, 탁자만 놓여 있는 6평 남짓의 소박하고 검소한 공간으로 평소 파딜랴 대주교가 쓰던 침대와 옷장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한국 내 유명 침대 제조업체가 교황이 사용할 침대를 기증할 의사를 밝혔지만 교황대사관 측이 정중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티칸에서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며 교황관저(교황궁) 대신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을 숙소로 고집한 교황의 뜻을 한국 천주교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이곳으로 이동, 교황대사 파딜랴 대주교와 대사관 직원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에서의 첫 개인 미사를 봉헌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6일 광화문 시복식에 세월호 유가족 600명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6일 광화문 시복식에 세월호 유가족 600명 참석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약속이 방한 행사를 통해 하나씩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전하는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600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미사 참석은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유가족들이 교황방한위원회에 요청함에 따라 이뤄졌다. 위원회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서울 중구 소동공 롯데호텔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전날 세월호 유족 측에서 600명이 시복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허 대변인은 이어 “이미 (시복식의) 자리 배치가 끝났지만 신도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씩 좁혀서 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가족들은 시복식 미사 전날인 15일 밤 행사 준비를 위해 잠시 광화문 밖으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방한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가 ‘농성장 철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강제 철거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2일 강 주교는 담화문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예수님께 미사를 거행할 수 없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배려를 약속했다.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집전에 앞서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공개로 만난다. 위원회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과 교황의 만남은 지난 5월 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유가족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처음 요청받았다. 이후 바티칸의 교황청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 방한 일정에 맞춰 추진돼 왔다. 세월호 실종자 10명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진도의 실종자 가족들이 교황에게 보낸 편지도 전달된다. 편지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젖은 잠자리 밑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울고 있는 것 같다”며 “아직 진도의 참사 현장은 진행형임에도 남은 실종자가 10명이라는 이유로 실종자와 가족들은 잊혀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편지는 15일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 및 생존 학생들과의 비공개 만남 자리에서 전달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전국을 도보순례 중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 3명이 지고 다니는 십자가도 교황에게 전해진다. 유가족들은 16일 광화문 시복 미사 직후에도 일부가 교황을 만나며, 17일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 때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석한다. 서울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진도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평화·정의 ‘희망 메시지’… 분단·불평등 ‘치유의 복음’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평화·정의 ‘희망 메시지’… 분단·불평등 ‘치유의 복음’

    가랑비가 오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 쏘울이 청와대 본관 앞에 도착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쓰고 있던 우산을 치우고 교황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좀 쉬셨느냐”고 물었고 교황은 “쉬었고 이곳에 오게 돼 기쁘게 생각하고 만족한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14일 방한한 세계적 종교 지도자를 깎듯이 배려했다. 환영식에서는 정상들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평소와는 달리 교황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매우 이례적으로 의장대가 대정원을 한 바퀴를 돌며 분열을 했다. 이후 교황의 방명록 작성과 기념 촬영 등의 순서가 이어졌으며 박 대통령과 교황은 면담을 하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박 대통령은 화목문(花木紋) 자수 보자기 액자를 선물했고, 교황은 ‘2000년 대희년’을 기념한 로마 지도 동판을 선물했다. 이어 공무원과 주한외교 사절 등 각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하는 연설회가 열렸다. 박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교황청을 비롯한 전 세계 천주교회의 기도가 대한민국이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었다”면서 천주교회가 한국 사회에 끼친 유무형의 도움에 큰 감사를 보냈다. 이어 “한국 정부도 우리가 받았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기억하며 꿈과 희망을 세계 인류와 나누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면서 “‘교황님께서 생필품이 필요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식탁에 여분의 자리를 남겨 두자’고 말씀하셨듯 대한민국의 식탁에도 여분의 자리를 남겨 두어 가난한 이웃과 늘 함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 대통령과 수차 서한 교환을 통해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가 평화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교황은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대통령께서) 이 선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방한이 천주교의 제6차 아시아청년대회를 계기로 이뤄진 점을 거론하고 한국의 천주교 역사를 언급하며 “특별한 전교의 역사를 가진 나라”라며 “하느님이 한국을 선택했고, 한국민도 이를 잘 받아들여 믿음을 자기 것으로 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핵과 전쟁의 공포를 종식시켜 이산가족과 탈북자 문제의 해결을 기하는 것은 평화통일로서만 가능하다”면서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시대가 열릴 수 있도록 교황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이어 “이산가족들이 고령으로 인해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산가족 문제를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그동안 따뜻한 서한을 보내 주면서 우리 국민을 축복해 주셨고 한반도 평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기도도 해 주고 애정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고 기도해 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메시지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메시지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 교황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방한할 때 교황 곁을 줄곧 떠나지 않은 사람이 눈에 띄었기 때문. 그는 바로 정제천(57) 신부로 지난 6월초 예수회 총장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로부터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으로 임명돼 9월부터 한국관구를 이끌게 됐다. 정제천 신부는 한국관구장에 임명된 뒤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게 표면상 이유였지만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관련해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한국 내 수행비서 겸 통역을 겸한다. 교황청과 함께 교황의 빡빡한 일정 관리와 함께 눈과 귀, 입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정제천 신부는 입국장인 서울공항에서도 교황이 영접 나온 박 대통령과 인사할 때도,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롯한 다른 환영객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교황 곁을 지켰다. 또 공항에서 나와 숙소인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향하는 국산 소형차 쏘울에도 교황 옆에 나란히 앉아 눈길을 끌었다. 정제천 신부는 1990년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해 석·박사를 모두 이곳에서 땄다. 최근까지 예수회 양성 담당 및 하비에르 공동체 원장을 맡아 왔다. 정제천 신부는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직후에 “이 시대 성령의 도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는 착한 목자가 되시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교황의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위로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고맙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특별기고] 신령한 향기와 같은 분, 혼돈과 악취를 걷어주소서

    [특별기고] 신령한 향기와 같은 분, 혼돈과 악취를 걷어주소서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속적으로는 사제요, 주교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아닙니다.”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봉헌한 첫 미사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분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이 되고 나서도 그 직위가 제공하는 많은 특혜를 내려놓는 것으로 직무를 시작했다. 교황 관저 대신 여행자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고, 이탈리아 장인이 바느질한 수단과 명품 구두를 사양하고 대신 자신이 평소에 입던 값싼 소재로 만든 수단과 낡은 구두를 그대로 신고, 전용 리무진 대신 작은 차를 탔다. 즉위 시 교황청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보너스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오랜 세월 지켜 온 관행을 깨기도 했다. 그분의 이런 행보는 새삼스러울 것도 파격적일 것도 없었다. 예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따르고자 하는 제자 된 모습은 검은 사제복을 입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 사람들의 삶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해 온 교구신부 시절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분은 대교구장, 추기경을 거쳐 2013년 3월 3일 베드로 성당의 굴뚝에서 피어 오른 흰 연기를 신호로 “지극히 탁월하고 공경받으실 분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라는 선포와 함께 그 이름이 세계로 타전되었다. 그렇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게 있을까. 교황청이란 오래고 거대한 종교 조직의 관행과 부패의 척결은 쉽지 않겠지만, 나이 많은 추기경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예수 십자가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려는 성직자의 본분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세족식에서 마약 중독자의 발을 씻겨 준 뒤 그 발에 입을 맞추는 모습, 베드로 광장에서 신경섬유종 환자를 포옹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 그분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환자 가족이 침대째 환자를 데려와서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선뜻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 환자에게 입 맞추는 모습은 그분 자신이라기보다 그분 안의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때의 초점은 정작 입맞춤과 포옹을 당하는 사람들 쪽에 있었다. 섬유종 환자 비니초 리바는 “지난 40년간 그처럼 따뜻하게 안아 준 사람은 교황이 처음”이라 했고, 침대에 누운 채 입맞춤과 기도를 받은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눈물겹게 체험했다. 그분이 우리나라를 찾아오셨다. 너무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참으로 신령한 향기와 같다. 혼돈과 악취로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맑게 정화시키고 숨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각자 믿고 있는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떠나서 그처럼 아름답고 선한 분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신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땅을 밟고 서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을 축복해 주실 그 순간이 가슴 떨리게 기다려진다. 또 그분의 눈에 비칠 우리나라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또한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그분 앞에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낳은 많은 순교자들과 지고지순했던 신앙인의 당당한 삶과 그분들이 걸어간 자취들을 보여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너무도 감격스럽다. 진리를 향하여, 복음을 향하여, 보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향하여, 모든 것을 바친 선조들이 우리들의 정신과 영혼의 기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보잘것없고 많이 부족한 존재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 우리 선조들의 장하고 아름다운 삶을 드러내 놓고 함께 신에게 감사하게 될 크나큰 축복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아! 세상은 이렇게 해서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한다. 그 일에 대해서도 그분과 함께 신께 깊이 감사드리자.
  • [교황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 “해군기지 갈등 해소 위해 좋은 말씀을”

    [교황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 “해군기지 갈등 해소 위해 좋은 말씀을”

    “해군기지 건설로 지금껏 마을 주민들이 겪은 부당한 것들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맞았으면 합니다.”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에 초대된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는 데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줄지 궁금해하고 있다.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조경철 마을회장과 고권일 부회장, 천주교 신자인 주민 김미량씨 등 강정마을 주민 3명이 초청됐다. 조 회장은 “교황이 보다 낮은 곳에 있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것 같아 기다려진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주민들이 겪었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사 참석과 별도로 면담 일정은 잡히지 않아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또 “미사에서 강정마을 갈등 해소를 위한 좋은 말씀을 듣게 되기를 온 마을 주민들이 잔뜩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정마을에서는 올해 초 교황청에 강정마을 방문을 호소하는 편지 보내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진청색 ‘쏘울’ 탄 교황, “가장 작은 한국차 타고싶어서…”

    진청색 ‘쏘울’ 탄 교황, “가장 작은 한국차 타고싶어서…”

    ‘포프모빌(교황의 차량)’의 영예는 이미 알려진대로 국산 소형 박스카인 ‘쏘울’에 돌아갔다. 14일 오전 역대 교황 가운데 세 번째로 내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남 서울공항에서 환영 의식이 마무리된 뒤 진청색 쏘울에 몸을 싣고 숙소인 서울 궁정동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향했다. 이날 교황을 태운 차량은 배기량 1600cc급인 기아자동차 ‘쏘울 1.6’으로 색상은 ‘뉴포트 블루’다. 작년 취임 이후 두 번의 외국 방문에서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에도 대중과 가까이하기 위해 방탄차를 타지 않은 교황은 이번 방한을 앞두고도 가장 작은 급의 한국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교황방한준위위원회에 전했고, 쏘울은 이런 뜻이 반영돼 교황의 차량으로 낙점됐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는 교황은 바티칸에서도 교황 전용 차량 대신 준중형차인 포드 포커스를 이용하고, 작년 7월 브라질 방문 때에는 현지에서 생산된 이탈리아 회사 피아트의 1600cc 소형 다목적 차량 ‘아이디어’를 탔다. 국내외 방송, 신문, 통신들의 열띤 취재 열기 속에 이날 교황의 차량인 쏘울이 덩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제작사인 기아자동차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쏘울이 교황의 의전차량으로 선정된 것을 크게 반기면서도 드러내놓고 마케팅은 하지 않고 있지만 이날 교황이 쏘울에 몸을 실은 모습이 TV 화면과 사진을 통해 전세계에 타전되자 내심 막대한 간접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 기아차는 교황의 방문을 자사 홍보와 연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역풍을 만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포프모빌에 대한 직접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교황이 쏘울에 탑승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나간 이후에도 “보안 문제 때문에 쏘울이 어떻게 교황차량으로 선정됐는지는 알 수도 없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는 “교황 차량으로 선정돼 뿌듯하다”는 소감을 밝히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유럽 언론의 경우 기사에 차량 브랜드까지 세세하게 명시하는 게 보통이라 쏘울은 특히 해외에서 간접 홍보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신문들은 이탈리아 제3당의 당수 베페 그릴로 관련 기사를 쓸 때 종종 “그가 자신의 흰색 기아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는 식으로 차량을 적시한다. 쏘울은 박스카가 아직 생소한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아 ‘교황차량’이라는 수식어까지 달면 판매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국내 자동차업계는 보고 있다. 쏘울은 올해 상반기에 국내에서는 2300대가 팔리는데 그쳤지만, 미국에서는 7만5000대, 유럽 4400대, 동유럽 3200대, 남미 2800대 등이 판매됐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2009년 2월 출시돼 올해 6월 누적 판매량이 50만대를 돌파했다. 기아차는 지난달에는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각종 사양을 적용한 ‘2015 쏘울’을 선보였고, 이달부터는 고속전기차인 쏘울 EV를 유럽에서 출시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전 세계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비종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성남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은 로마교회의 주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높은 성좌의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줄곧 소박하고 검소하며 낮은 자세로 연일 파격 행보를 이어가며 전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 것이냐”라는 한 무신론자의 질문에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는 말을 남기며 무신론을 포함한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과 화해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그동안 가톨릭교회와 적대적이었던 이슬람 등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이렇듯 신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파격적이라 할 만큼 소탈하고 검소하게 살며 한 인간으로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살아서는 인간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죽어서는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할 테지만,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 교황의 곁을 24시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계 최강의 용병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위스 근위대(Guardia Svizzera Pontificia)’, 정식 명칭 교황청 근위대(Pontificia Cohors Helvetica)가 그들이다.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키게 된 사연 지금도 강대국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강소국이자 영세중립국가인 스위스와 스위스인들의 용맹함과 감투정신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전 유럽에 소문이 자자했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산악국가다. 마땅히 키울 수 있는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목축이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중계무역과 정밀 기계 가공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침이 잦아 이마저도 안정적으로 발전이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 발달한 것이 용병산업이었다. 산악지형이라는 험준한 환경에서 자라온 스위스 청년들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훌륭한 전사들이었고, 중세 스위스의 역사 자체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와 다름없었기에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전투에 너무도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각 지방의 영주들은 필요에 따라 뭉치기도, 흩어지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접 영주에게 돈을 받고 군대를 빌려주는 거래도 자주 이루어졌는데, 영주가 돈을 받고 빌려주는 군대, 즉 용병들이 워낙에 용맹하다보니 인접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의 왕조나 지방의 힘 있는 영주들은 스위스 용병 단골고객이 되어 버렸다. 스위스인들은 용병이 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용맹함과 충성심, 그리고 의리는 스위스 용병을 국제 용병시장에서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들이 교황을 지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16대 교황인 율리오 2세(Papa Giulio II)는 스위스 연방에 바티칸을 지킬 병력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스위스 연방이 15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면서 스위스 근위대가 탄생했다. 이들의 진가는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를 침략할 때 발휘되었다. 당시 복잡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클레멘스 7세(Papa Clemente VII) 교황은 카를 5세의 대병력 앞에 무너졌고, 로마는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해 불타올랐다. 카를 5세가 클레멘스 7세를 잡기 위해 병력을 보내자 189명에 불과한 근위대는 수천 명의 병력에 맞서 교황을 탈출시켰다. 교황 근접 경호를 맡았던 40명을 제외한 나머지 149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했으며, 나머지 2명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신성로마제국군의 항복 권유와 대병력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이러한 충성심과 의리는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스위스 근위대가 교황을 지키는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21세기에 미늘창 든 군대? 바티칸에서 스위스 근위대를 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교황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근위병들이 현대적인 군복과는 거리가 먼 알록달록한 복장을 입고 있고, 심지어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투구를 쓰고 총 대신 미늘창을 들고 있으니 과연 저들이 어떻게 교황을 지키고 바티칸을 경비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세시대 복장과 미늘창을 든 병사들이 경비 임무를 맡는 이러한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겼다. 1943년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에 병력을 파견했는데, 이때 전차와 장갑차, 야포로 중무장한 부대가 교황령을 포위하고 점령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근위대는 즉각 소총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임전 태세를 갖췄지만,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Papa Pio XII)는 근위대장을 붙잡고 “이런 무장을 한 근위대가 탱크를 밀고 들어오는 나치 독일군대와 싸우면 근위병들이 다 죽을 것”이라며 무장을 해제하고 미늘창과 전통 복장을 들고 경비 임무를 서되, 독일군과 충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후 근위대는 교황청과 교황에 대한 경호경비 임무는 수행하되, 과도한 무장으로 오해를 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중세 군복과 미늘창을 들고 경비 임무를 수행해 왔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 ‘군용 소총의 롤렉스’ 무장...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물론 현재 국제질서에서는 이탈리아 내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바티칸 시국을 공격할 의지나 배짱을 가진 나라는 있을 수 없다. 바티칸을 공격하려면 이탈리아, 나아가 NATO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만큼 테러나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게 때문에 엄중한 경호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스위스 근위대는 중세 복장과 미늘창 뒤에 진짜 칼날을 숨기고 만일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교황청 근위대 병력은 135명이다. 근위대원들은 모두 스위스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174cm 이상의 건장한 체격과 강건한 체력,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인원들이다. 평상시 근무때는 미늘창을 들고 중세시대 군복, 그리고 흉갑을 걸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복장 안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 병영과 무기고에는 최신 장비들이 가득하며, 이들 장비와 현대적인 전술에 맞게 요인 경호와 근접 전투에 초점을 맞춘 엄격한 훈련이 매일 반복된다. 근위대는 1정당 1,000만원이 넘는 ‘군용 소총의 롤렉스’라고 불리는 스위스제 SIG550 소총과 P226 권총 등을 기본 무장으로 사용하며, 스위스 SIG와 독일의 H&K 등에서 생산되는 개인화기와 기관총 등을 갖추고 있다. 외곽 경비는 이탈리아군이 맡고 있지만, 영내 방어를 위해 대전차 미사일과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근위대원들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근접 경호 요원들(장교)이 교황을 모시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14일 서울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 주변의 건장한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경호 요원들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워낙 격 없이 다가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기에 이번 방한 기간 중 전례없는 고생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교황 방한]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교황 방한] ‘낮은 교황님’ 지키는 ‘세계최강’ 용병들...그들의 이야기

    전 세계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비종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성남공항에 도착해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은 로마교회의 주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높은 성좌의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줄곧 소박하고 검소하며 낮은 자세로 연일 파격 행보를 이어가며 전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은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 것이냐”라는 한 무신론자의 질문에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는 말을 남기며 무신론을 포함한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과 화해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그동안 가톨릭교회와 적대적이었던 이슬람 등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이렇듯 신의 대리인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도, 파격적이라 할 만큼 소탈하고 검소하게 살며 한 인간으로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살아서는 인간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죽어서는 신의 용서를 받지 못할 테지만,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 교황의 곁을 24시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계 최강의 용병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위스 근위대(Guardia Svizzera Pontificia)’, 정식 명칭 교황청 근위대(Pontificia Cohors Helvetica)가 그들이다.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을 지키게 된 사연 지금도 강대국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강소국이자 영세중립국가인 스위스와 스위스인들의 용맹함과 감투정신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전 유럽에 소문이 자자했다.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산악국가다. 마땅히 키울 수 있는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목축이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중계무역과 정밀 기계 가공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침이 잦아 이마저도 안정적으로 발전이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 발달한 것이 용병산업이었다. 산악지형이라는 험준한 환경에서 자라온 스위스 청년들은 별다른 훈련 없이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훌륭한 전사들이었고, 중세 스위스의 역사 자체가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의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와 다름없었기에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전투에 너무도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각 지방의 영주들은 필요에 따라 뭉치기도, 흩어지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접 영주에게 돈을 받고 군대를 빌려주는 거래도 자주 이루어졌는데, 영주가 돈을 받고 빌려주는 군대, 즉 용병들이 워낙에 용맹하다보니 인접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의 왕조나 지방의 힘 있는 영주들은 스위스 용병 단골고객이 되어 버렸다. 스위스인들은 용병이 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용맹함과 충성심, 그리고 의리는 스위스 용병을 국제 용병시장에서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스위스 용병들이 교황을 지키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16대 교황인 율리오 2세(Papa Giulio II)는 스위스 연방에 바티칸을 지킬 병력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스위스 연방이 15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면서 스위스 근위대가 탄생했다. 이들의 진가는 1527년 5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를 침략할 때 발휘되었다. 당시 복잡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클레멘스 7세(Papa Clemente VII) 교황은 카를 5세의 대병력 앞에 무너졌고, 로마는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해 불타올랐다. 카를 5세가 클레멘스 7세를 잡기 위해 병력을 보내자 189명에 불과한 근위대는 수천 명의 병력에 맞서 교황을 탈출시켰다. 교황 근접 경호를 맡았던 40명을 제외한 나머지 149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했으며, 나머지 2명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신성로마제국군의 항복 권유와 대병력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이러한 충성심과 의리는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스위스 근위대가 교황을 지키는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21세기에 미늘창 든 군대? 바티칸에서 스위스 근위대를 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교황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근위병들이 현대적인 군복과는 거리가 먼 알록달록한 복장을 입고 있고, 심지어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투구를 쓰고 총 대신 미늘창을 들고 있으니 과연 저들이 어떻게 교황을 지키고 바티칸을 경비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세시대 복장과 미늘창을 든 병사들이 경비 임무를 맡는 이러한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겼다. 1943년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에 병력을 파견했는데, 이때 전차와 장갑차, 야포로 중무장한 부대가 교황령을 포위하고 점령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근위대는 즉각 소총과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임전 태세를 갖췄지만,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Papa Pio XII)는 근위대장을 붙잡고 “이런 무장을 한 근위대가 탱크를 밀고 들어오는 나치 독일군대와 싸우면 근위병들이 다 죽을 것”이라며 무장을 해제하고 미늘창과 전통 복장을 들고 경비 임무를 서되, 독일군과 충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후 근위대는 교황청과 교황에 대한 경호경비 임무는 수행하되, 과도한 무장으로 오해를 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중세 군복과 미늘창을 들고 경비 임무를 수행해 왔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 ‘군용 소총의 롤렉스’ 무장... 대전차 미사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물론 현재 국제질서에서는 이탈리아 내륙 한복판에 자리 잡은 바티칸 시국을 공격할 의지나 배짱을 가진 나라는 있을 수 없다. 바티칸을 공격하려면 이탈리아, 나아가 NATO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만큼 테러나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게 때문에 엄중한 경호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스위스 근위대는 중세 복장과 미늘창 뒤에 진짜 칼날을 숨기고 만일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교황청 근위대 병력은 135명이다. 근위대원들은 모두 스위스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174cm 이상의 건장한 체격과 강건한 체력,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인원들이다. 평상시 근무때는 미늘창을 들고 중세시대 군복, 그리고 흉갑을 걸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복장 안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 병영과 무기고에는 최신 장비들이 가득하며, 이들 장비와 현대적인 전술에 맞게 요인 경호와 근접 전투에 초점을 맞춘 엄격한 훈련이 매일 반복된다. 근위대는 1정당 1,000만원이 넘는 ‘군용 소총의 롤렉스’라고 불리는 스위스제 SIG550 소총과 P226 권총 등을 기본 무장으로 사용하며, 스위스 SIG와 독일의 H&K 등에서 생산되는 개인화기와 기관총 등을 갖추고 있다. 외곽 경비는 이탈리아군이 맡고 있지만, 영내 방어를 위해 대전차 미사일과 보병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근위대원들 가운데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근접 경호 요원들(장교)이 교황을 모시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14일 서울공항에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 주변의 건장한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경호 요원들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워낙 격 없이 다가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기에 이번 방한 기간 중 전례없는 고생길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전달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는 누구?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전달

    ‘교황 통역’ ‘정제천 신부’ 교황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제천(57) 신부는 지난 6월초 예수회 총장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로부터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으로 임명돼 9월부터 한국관구를 이끌게 됐다. 정제천 신부는 한국관구장에 임명된 뒤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렸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게 표면상 이유였지만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관련해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한국 내 수행비서 겸 통역을 겸한다. 교황청과 함께 교황의 빡빡한 일정 관리와 함께 눈과 귀, 입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정제천 신부는 입국장인 서울공항에서도 교황이 영접 나온 박 대통령과 인사할 때도, 세월호 참사 유족을 비롯한 다른 환영객들과 얘기를 나눌 때도 교황 곁을 지켰다. 또 공항에서 나와 숙소인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향하는 국산 소형차 쏘울에도 교황 옆에 나란히 앉아 눈길을 끌었다. 정제천 신부는 1990년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해 석·박사를 모두 이곳에서 땄다. 최근까지 예수회 양성 담당 및 하비에르 공동체 원장을 맡아 왔다. 정제천 신부는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직후에 “이 시대 성령의 도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는 착한 목자가 되시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교황의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위로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말씀해주시길”, “세월호 희생자 기억하고 있다, 정부는 잊어버린 것 같은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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