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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수정 추기경, 강영훈 전 총리 애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11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강영훈 전 국무총리 빈소를 방문,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가톨릭 신자로 교회를 위해 오랜 시간 봉사해왔다. 염 추기경은 애도 메시지를 통해 “강 전 국무총리는 충실한 신앙인이셨다”며 “주교황청 한국 대사와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두 차례나 성공적으로 이끄는 한편, 본인이 신앙생활을 해온 중림동 약현성당이 1998년 화재를 입은 직후 성전복원위원장으로서 소실된 본당의 빠른 재건을 위해 봉사했다”고 회고했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의 품에 안긴 강 세례자 요한 전 국무총리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염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강영훈 前 국무총리 별세… 향년 94세

    강영훈 前 국무총리 별세… 향년 94세

    제21대 국무총리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강영훈 전 총리가 10일 오후 3시 7분쯤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94세.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던 강 전 총리가 오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강 전 총리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9월 남북 분단 45년 만에 최초의 남북총리회담을 성사시키며 우리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외유내강형 업무 스타일로 유명한 강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은 1988년 12월부터 2년간이었다. 평북 창성 출신인 강 전 총리는 1922년생으로 일제강점기 때 만주 건국대를 다니다가 학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광복 후에는 한국군 창군을 주도한 뒤 육군에 복무했다. 6·25전쟁 때는 국방부 관리국장과 육군 제3군단 부군단장을 지냈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회의 본부장, 군단장 등을 거쳐 1960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5·16 군사정변을 맞아 동참을 거부했다가 ‘반혁명 장성 1호’로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했다.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과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전두환 정부 때는 영국, 아일랜드, 로마교황청 대사 등을 지내며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을 거쳐 같은 해 개원한 제13대 국회에서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 의원을 지냈다. 초선 의원이던 강 전 총리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발탁돼 1990년까지 내각을 통할했다. 1990년 10월에는 홍성철 통일원 장관과 함께 우리 총리로는 처음으로 북한 평양을 직접 찾아가 주석궁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정·관계를 떠난 강 전 총리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맡아 대북 지원사업을 이끌었다. 이후 1993년에는 엑스포지원중앙협의회 회장과 대한에이즈협회 초대 회장, 1994년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장, 1996~2009년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 총재 등을 맡았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강 전 총리의 영정 사진 왼쪽 아래에는 그의 회고록 저서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가, 오른쪽 아래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세워져 있었다. 빈소 안팎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 등이 보낸 화환 40여개가 놓여 있었다. 발인은 14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 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3묘역이다.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장의위원장은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정원식 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지 세계화’ 펼쳐질까… 운명의 6월

    내구력·유연성 등 총체적 분석 통과 땐 세계적으로 인증 받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지(韓紙) 세계화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오는 6월 결정된다. 유럽 최고 권위 기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유럽 지류문화재 복원 종이로서의 한지 적합성 실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지가 유럽 지류문화재 복원 종이로 공식 인증을 받아 ‘한지 한류(韓流)’의 발판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19일 주이탈리아한국대사관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 따르면 유럽 지류문화재 복원 분야 대표 기관인 이탈리아 국립도서병리학연구소(ICRCPAL)는 지난해 8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한지의 유럽 지류문화재 복원 적합성 실험 결과를 6월 발표한다. 내구력, 유연성, 복원용 접착제와의 상호유용성 등 한지의 총체적 분석 결과가 나오는 것. 홍진욱 주이탈리아대사관 공사참사관은 “ICRCPAL의 실험 결과가 나오고 ICRCPAL에서 발간하는 ‘문화재복원 재료 가이드라인’에 한지가 등재되면 한지가 지류문화재 복원 종이로 세계적인 인증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규식 문화재보존과학센터장은 “ICRCPAL의 공식 인증은 지류문화재 복원에 한지가 일본 화지(和紙)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지류문화재 복원에서 한지가 점진적으로 화지를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일본 화지가 유럽 지류 문화재 복원에 99% 이상 활용되고 있다. 화지는 리베리아나 섬유로 만든 종이로, 1966년 피렌체 대홍수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리베리아나 섬유는 종이 작품이 찢어지거나 긁혔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섬유로 여겨졌다. 한지의 우수성은 이미 검증됐다. 2014년 초 주밀라노 총영사관이 이탈리아 굴지의 산업연구센터인 인노브허브와 함께 한지 적합성 실험을 진행한 결과 내구력, 유연성, 복원용 접착제와의 상호유용성 등 모든 항목에서 탁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내구성이 최대 8000년까지 지속 가능해 지류문화재 복원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바티칸의 교황청은 지난해 4월 ‘요한 23세 박물관’의 지구본을 복원하는 데 한지를 쓰기로 결정한 바 있다. 외교부와 국립문화재연구소는 ICRCPAL의 한지 실험 결과가 나오면 이탈리아에서 ICRCPAL과 한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지 세계화 프로젝트는 2014년 10월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교부가 문화재청에 양국 창조경제 아이템으로 한지를 제안하면서 추진됐다. 이듬해 4월 외교부는 ICRCPAL에 한지 분석 비용(3만 유로)을 조달하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ICRCPAL에 분석 시료인 한지 제공과 검증 관련 기술적인 부분을 협조하는 것으로 분업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교황 효과’ 꺾였나… 작년 천주교 영세자 감소

    한국 천주교 신자 수는 565만 5504명으로 총인구(5267만 2425명)의 10.7%를 차지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31일 발표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신자는 전년보다 1.7%(9만 4500명) 늘어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2014년 신자 증가율이 2.2%로 급증한 이후 1년 만에 증가율이 줄었다. 지난 한 해 세례를 받은 영세자는 11만 6143명으로 전년 대비 6.9%(8605명) 감소했다. 영세자는 2010~2013년 감소세를 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2014년 반등해 5.0%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지난해 다시 감소세로 바뀌었다. 전체 신자 가운데 여성이 57.9%를 차지해 남성(42.1%)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50대가 19.1%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17.1%로 뒤를 이었으며 65세 이상 신자도 96만 1000여 명으로 전체의 17%를 차지했다. 반면 19세 이하 청소년 신자 수는 1년 전보다 약 2만 3000명 감소한 60만 3000여명으로 10.7%에 불과해 고령화 현상이 심화됐다. 성직자는 추기경 2명을 포함해 주교 38명, 한국인 신부 4909명, 외국인 신부 182명 등 총 5129명으로, 전년보다 145명 늘었다. 주일미사 참여율은 20.7%로 집계됐다. 한편 교황청이 발표한 2014년 교회 통계연감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12억 7228만 1000명으로 세계 총인구의 17.8%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보다 1835만 5000명이 늘어난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신자는 전 세계의 0.43%를 차지해 세계에서 44번째, 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단독] 駐이탈리아 대사 부부에게 세례한 교황

    [단독] 駐이탈리아 대사 부부에게 세례한 교황

    이용준 주이탈리아 대사 부부가 26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외국 대사 부부에게 교황이 직접 세례를 준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AFP와 dpa 통신 등은 이날 교황이 미사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김희라(스텔라)씨 등 세계 각국의 신자 12명에게 세례를 줬다고 전했다. 김씨가 바로 이 대사의 부인이며 이 대사 역시 이날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 대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주임 신부님이 추천을 해줬는데 교황께서 직접 결정을 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며 “한국과 한국 가톨릭계에 대한 교황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사 부부는 세례를 받기 위해 상당 기간 관련 교육을 받고 수료했으며 교황청 산하 한국신학원의 김종수 주임 신부가 교황에게 이들 부부의 세례를 추천했다고 한다. 이 대사는 “이번 세례로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보다 폭넓고 심도 있는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설교에서 교황은 부활절의 의미를 “사람을 자신 안에 가두는 절망을 던져 버리도록 하는 희망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는 안팎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며 “어둠과 공포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교황 부활절 메시지 “사랑으로 야만적 테러 맞서자” 난민 사태도 따로 언급

    교황 부활절 메시지 “사랑으로 야만적 테러 맞서자” 난민 사태도 따로 언급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사랑으로 야만적 테러에 맞서고 고난을 피해온 난민을 포용하자’는 뜻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7일(현지시간) 오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부활 메시지 ‘우리비 엣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를 향해)’를 통해 “맹목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이라는 악에 맞서 싸우기 위해 사랑의 무기를 사용하라”고 말했다. 교황은 “오늘 부활한 예수는 세계 여러 곳에서 계속 피를 부르는 맹목과 야만의 폭력에 희생된 이들에게 우리가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교황의 이같은 발언이 최근 벨기에를 비롯해 터키, 나이지리아, 차드, 카메룬, 이라크 등에서 각종 테러 및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된 언급이라고 풀이했다. 교황은 앞서 성금요일에도 “테러와 이를 부추기는 근본주의는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교황은 “하느님은 사랑을 무기로 이기심과 죽음을 이겨냈다”면서 많은 이의 삶을 억누르는 악을 물리치기 위해 예수 부활의 희망을 전파하자고도 당부했다. 교황은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으로 거론되는 유럽 난민 사태를 둘러싼 유럽 각국의 갈등과 관련해서도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찾아온 이들, 전쟁, 굶주림, 빈곤, 사회 불의를 피해온 어린이를 포함한 난민과 이주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우리의 난민 형제자매는 너무나 자주 죽음을 맞고, 환영하거나 지원해야 할 이들로부터 오히려 거부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복잡하게 얽힌 난민사태의 진원으로 거론되는 시리아 사태도 언급했다. 그는 “오래 이어진 내전이 죽음, 파멸, 인도적 법률에 대한 무시를 불러일으켰다”며 “선의와 협력이 평화의 열매를 맺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의 건설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을 비롯해 예멘과 이라크, 리비아, 부룬디 등의 분쟁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이날 부활절 미사는 보안 당국의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됐다.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는 수년 전부터 교황청을 테러 대상으로 암시해온 데다가 지난 22일 브뤼셀에서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베드로 광장 주변의 출입자들을 수차례 검색하고 미사에 참석할 신자 수만 명이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출입구를 통과하도록 했다. 교황은 부활절 미사를 집전한 뒤 참석한 벨기에 국왕 부부를 접견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이용준 주이탈리아 대사 부부에 세례

    교황, 이용준 주이탈리아 대사 부부에 세례

    이용준 주이탈리아 대사 부부가 26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외국 대사 부부에게 교황이 직접 세례를 준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AFP와 dpa 통신 등은 이날 교황이 미사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김희라(스텔라)씨 등 세계 각국의 신자 12명에게 세례를 줬다고 전했다. 김씨가 바로 이 대사의 부인이며 이 대사 역시 이날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 대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주임 신부님이 추천을 해줬는데 교황께서 직접 결정을 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며 “한국과 한국 가톨릭계에 대한 교황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사 부부는 세례를 받기 위해 상당 기간 관련 교육을 받고 수료했으며 교황청 산하 한국신학원의 김종수 주임 신부가 교황에게 이들 부부의 세례를 추천했다고 한다. 이 대사는 “이번 세례로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보다 폭넓고 심도 있는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설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절의 의미를 “사람을 자신 안에 가두는 절망을 던져 버리도록 하는 희망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는 안팎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며 “어둠과 공포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예수가 사흘 뒤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부활절은 가톨릭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슬픔에 잠긴 유럽을 위로하고 나선 교황

    슬픔에 잠긴 유럽을 위로하고 나선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브뤼셀 테러로 슬픔에 잠긴 유럽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영국 BBC 등 외신은 이날 바티칸에서 열린 부활절 전야 기도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의 의미를 “사람을 자신 안에 가두는 절망을 던져 버리도록 하는 희망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은 이어 “어둠과 공포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면서 “슬픔이 가득한 우리 마음 속의 희망을 일깨우고 되살리는 것이 부활절의 의미”라고 말했다. 교황은 전날 성금요일 미사에서도 “테러와 만행에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모독행위”라고 비판했다.  부활 전야 기도회를 집전한 교황은 미사를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로 길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교황이 제대에 도착하는 순간 성당 안의 조명이 모두 켜졌다. 외신들은 이를 예수의 십자가 형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당시 암흑과 이후 빛의 회복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계속된 미사 동안 교황은 전 세계에서 도착한 12명의 성인 남녀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자 명단에는 한국인 김희(스텔라)씨도 포함됐다.  한편 전날 교황청의 최대 헌금자 중 한 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성 금요일 행사를 집전하는 동안 빈자들에 대한 교황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노숙자들에게 침구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교황, 부활절에 이용준 주 이탈리아 대사 부부 세례

    이용준 주이탈리아 대사 부부가 26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부활절 전야 미사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외국 대사 부부에게 교황이 직접 세례를 준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AFP와 dpa 통신 등은 이날 교황이 미사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김희라(스텔라)씨 등 세계 각국의 신자 12명에게 세례를 줬다. 김씨가 바로 이 대사의 부인이며 이 대사 역시 이날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 대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주임 신부님이 추천을 해줬는데 교황께서 직접 결정을 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며 “한국과 한국 가톨릭계에 대한 교황의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사 부부는 세례를 받기 위해 상당 기간 관련 교육을 받고 수료했으며 교황청 산하 한국신학원의 김종수 주임 신부가 교황에게 이들 부부의 세례를 추천했다고 한다. 한편 이날 설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활절의 의미를 “사람을 자신 안에 가두는 절망을 던져 버리도록 하는 희망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는 안팎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며 “어둠과 공포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예수가 사흘 뒤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부활절은 가톨릭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트위터 스타’ 교황, 즉위 3주년 날 인스타그램 데뷔

    ‘트위터 스타’ 교황, 즉위 3주년 날 인스타그램 데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입성한다. 17일(현지시간) AFP와 CNN에 따르면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9일 프란치스코의 라틴어 표기인 ‘Franciscus’라는 아이디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19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미사가 거행된 날로, 교황이 자신의 즉위 3주년을 기념해 직접 인스타그램 데뷔일로 선택했다고 AFP가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문 계정(@pontifex)을 포함해 9개 언어로 된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어와 스페인어 계정 팔로어만 2000만 명이 넘는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기준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취임 나흘 만에 트위터에 등장했으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는 호소는 교황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4억 명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은 트위터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외신들은 평했다. 인스타그램을 창립한 케빈 시스트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권의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의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 ‘聖人’ 테레사 수녀

    ‘聖人’ 테레사 수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1910∼1997)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승인하기 위한 교황청 시성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열린다고 AF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의에서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시성식 날짜와 장소를 정할 예정이다. 시성식 날짜는 그가 선종한 하루 전날인 9월 4일이 유력하다. 장소도 인도 가톨릭 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여 테레사 수녀가 생전 활동하던 인도 콜카타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교계에선 바티칸에서의 시성식 진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에서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을 집전했을 때는 30만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가 몰렸다. 시복식은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하면 일정 기간 심사를 거쳐 복자로 추대하는 예식이다. 이후 최종적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다. 외신들은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이 바티칸에서 열리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대희년(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이 절정을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스만제국 스코페(지금의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는 인도 국적을 취득해 1950년 인도 콜카타에 사랑의 선교회를 세운 뒤 평생을 콜카타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1997년 87세로 선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나‘답게’ 가정·직장서 충실하면 모든 문제 해결돼”

    “나‘답게’ 가정·직장서 충실하면 모든 문제 해결돼”

    ‘답게 운동’ 발의… 평신도가 교회 구심점 “주교·사제들 소외 이웃 돕기 실전 고민, 교황 방한 때 평신도 배려… 홀대 없어” 한국천주교는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일군 자생 종교이다. 특이한 태동 역사를 갖는 한국천주교는 1만~2만명의 순교자를 낳았다. 그래서 한국을 찾았던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순교자의 땅’으로 불렀다. 순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신도들은 한국 교회를 떠받치는 바탕이다. 16개 교구 평신도 사도직단체협의회와 26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는 한국 평신도들의 구심체. 최근 연임된 권길중(76) 한국평협 회장을 지난 24일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연임 소감은. -2년 임기를 채우고 사퇴하려 했는데 회장단, 고문단 연석회의에서 재임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을 빈자리인 줄 잘 알고 있지만 하느님이 부르신 노릇으로 받아들여 편안한 마음으로 봉사하겠다. →지금 평신도들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교회에서 평신도는 가정,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삶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사제는 예수님이 맡겨 주신 미사와 7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을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이다. 평신도는 사제처럼 특별한 권한을 받진 못했지만 가장 밑에서 순명으로 봉사하는 사제들의 희생과 미사를 통해 예수님 사랑과 일치를 체험하고 봉사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에서 평신도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사제와 평신도의 소임,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라고 본다. 일부 군림하려 드는 사제들이 물의를 빚지만 대부분 공동체에서 큰 무리 없이 원활한 신행과 성사가 진행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평신도들만 별도로 만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교황 방한에 대한 감사차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들에게 평신도들을 잘 대우하라고 특별 당부한 것만 보더라도 세간의 한국 평신도 홀대 지적은 지나친 관측이라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한국 천주교에 어떤 변화의 흐름이 있는가.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신자 수가 많이 늘어났다. 서울대교구에선 교리반 신청자가 늘어 교실이 모자랄 정도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라’는 교황의 당부는 주교와 사제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지난해 주교회의에서 ‘우리도 가난하게 살자’고 결의한 주교들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사례들이 흔하다. 평신도들도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당장 4월 초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바자회를 열어 어려운 이웃돕기에 나설 것이다. →종교계에 들불처럼 번지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처음 발의해 확산시킨 주인공으로 알고 있다. 어떤 운동인가. -교황 방한 직전 평신도들과 만남의 자리가 있을 것이란 연락을 받았다. 교황에게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면서 한국사회의 분열, 혼란의 원인이 뭔지를 깊이 생각해 봤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 또 뭘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정체성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정과 직장에서 각자의 위치와 본분에 충실한다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7대 종단 지도자들과 일일이 만나 공동운동을 건의했는데 주저 없이 동의해 범종교계로 확산됐다. ‘답게 운동’을 중점적으로 실천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등 사회생활에서도 급속히 번지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다면. -많은 종교인들이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실제 삶은 허위인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가 아무리 분열되고 혼란스럽더라도 이웃사랑을 먼저 깨닫고 되돌려 준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외쳤던 예수님의 유언 같은 마지막 기도를 평생 신조로 삼아 살고 있다. 이제 종교인들이 그 말씀을 몸으로 구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춥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교황의 가르침

    춥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교황의 가르침

    “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안드레아 토리니엘리·자코모 갈레아치 지음/최우혁 옮김/갈라파고스/272쪽/1만 3000원 2013년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민중 신학이 발달한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즉위 때부터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소외와 불평등을 가져오는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 ‘멈춰!’라고 소리치며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노인의 이야기는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증시는 조금만 하락해도 그에 관한 기사들이 폭주하는,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규제받지 않은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며 신자유주의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보수주의,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유명 웹진 ‘바티칸 인사이더’의 공동 운영자인 저자들은 그러나, 교황의 경제관이 가톨릭교회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질보다 사람을, 특히 가난한 자를 우선시하는 게 가톨릭 교리라는 것이다. 교황은 저자들과의 대담에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미사여구로 찬양할 것이 아니라 거리로 나아가 춥고 배고픈 이들을 돌보라”고 일갈한다. 즉위 3주년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중 조명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9월 교황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프랑스 금융전문가 에두아르 테트르가 교황의 경제 사상을 주제로 쓴 책 ‘교황의 경제학’(착한책가게)도 번역 출간됐다. 새달 10일에는 교황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 ‘프란치스코’가 국내 개봉한다. 지난해 12월 1일 세계 첫 시사회가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렸는데, 그 자리에는 노숙자, 난민 등 빈민층이 다수 초청됐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헨리 8세의 ‘화해’/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헨리 8세의 ‘화해’/박홍기 논설위원

    영국 헨리 8세(1491~1547)는 절대군주다.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은 파란만장한 영국의 왕이다. 여성 편력 탓에 왕비를 무려 6명이나 뒀다. 첫 번째 왕비인 에스파냐 공주 캐서린과는 정략결혼을 했다. 캐서린은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숨진 형 아더의 아내였다. 형수다. 캐서린과의 사이에 낳은 자녀 5명 가운데 딸 메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려서 사망했다. 헨리 8세는 아들을 간절히 원했다. 두 번째 왕비는 앤 블린이다. 캐서린 왕비의 시녀였다. 헨리 8세는 앤의 도도한 매력에 푹 빠졌다. 앤은 처음에는 왕의 청혼을 완강히 거절했다. 결혼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낳을 아들이 서자(庶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못 박았다.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원했다. 로마 교황청에 캐서린과의 이혼 승인을 요청했다. 교황청은 허락하지 않았다. 가톨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조당(阻?) 즉, 혼인 장애에 걸리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일부일처와 함께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혼인 원칙을 갖고 있다. 헨리 8세는 억지 이혼을 감행했다. 교황과의 결별이자 신권에 대한 대항이었다. 헨리 8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에 나섰을 때 반박하는 장문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후계자 욕심에 종교적 신념을 내팽개쳤다. 가톨릭 국가 전체와 적이 되는 위험마저 감수했다. 또 1534년 국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이라는 수장령(首長令)을 공표했다. 성공회가 영국 국교로 탄생한 것이다. 교황청은 헨리 8세를 파문했다. 앤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둘째를 낳았지만 딸이었다. 교황과도 등지면서 왕비의 왕관을 씌워줬지만 아들을 갖지 못했다. 헨리 8세의 앤에 대한 사랑도 식어버렸다. 결국 1536년 앤을 간통죄로 몰아 참수형에 처했다. 결혼도 무효화했다. 영국판 장희빈 격이다. 헨리 8세와 앤과의 사랑, 배신, 죽음, 음모, 종교, 외교 분쟁 등을 담은 영화가 ‘천일의 앤(1969)’, ‘천일의 스캔들(2008)’이다. 캐서린의 딸 메리는 영국 최초의 여왕 메리 1세(1533~1558)로 등극했다. 하지만 공포와 압제 정치 때문에 ‘블러디(피투성이) 메리’라고 불리고 있다. 앤의 딸은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다. 결혼을 권유할 때마다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대영제국의 기틀을 다진 처녀 여왕이다. 헨리 8세가 주궁(主宮)으로 삼았던 햄프턴 코트의 로열 채플에서 그제 가톨릭 미사가 열렸다. 15~16세기의 라틴어 성가가 울렸다. 헨리 8세가 교황청과 단교한 지 450여년 만이다. 성공회와 가톨릭 간의 화해다. 참 오랜 세월이 지나서다. 빈센트 니컬스 영국 추기경은 “매우 놀라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감정을 풀고 감싸 안는 화해의 참뜻을 곱씹어볼 만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검소한 프란치스코 교황, 멕시코에서도 경차 탄다

    검소한 프란치스코 교황, 멕시코에서도 경차 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멕시코에서 사용할 차량이 공개됐다. 멕시코 주재 교황청대사관과 현지 주교단은 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멕시코 방문기간 중 사용할 차량인 경차 피아트500l 등을 공개한 뒤 축복했다. 행사장에서 공개된 차량은 지프의 랭글러 3대와 닷지의 픽업 램1500 2대 등 5대와 피아트 500L 6대 등 총 11대다. 랭글러와 램1500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 행사장에서 이동할 때 사용할 오픈형 차량이다. 지프는 아예 지붕이 없고, 픽업은 니붕이 없는 짐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설치돼 있다. 색은 하얀 색깔로 통일됐고, 바람을 막기 위해 유리로 둥굴게 바람막이가 설치돼 있다. 교황청대사관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따라) 방탄유리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반 이동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용할 차량은 중남미에선 가장 덩치가 작은 경차 피아트 500L이다. 색깔만 화이트로 통일했을 뿐 피아트 500L은 특별히 개조하지 않았다. 교황청대사관과 주교단이 피아트 500L을 6대 준비한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할 도시의 수에 맞추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멕시코시티를 비롯해 에카테펙, 툭스틀라 구티에레스, 산크리스토발, 모렐리아, 후아레스 등 총 6개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부터 17일까지 멕시코를 방문한다. 남미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멕시코 방문을 앞두고 중남미 각국에선 신자들이 멕시코 몰려들고 있다. 사진=콰르토오스쿠로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교황청-英 성공회 450년 만의 화해

    교황청-英 성공회 450년 만의 화해

    “헨리 8세가 아마 격노했을지도 모른다.” 영국 가디언은 9일(현지시간) 이혼 문제로 교황청과 단교했던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궁전에서 무려 450년 만에 가톨릭 예배가 거행됐다는 소식을 전하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후 영국 런던 서부에 있는 햄프턴 코트 궁전 왕실 예배당에서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는 두 종교 간 화합을 의미하는 저녁 기도회를 함께 열었다. AFP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빈센트 니컬스 추기경이 행사에 앞서 “매우 놀라운 순간”이라며 “한 역사학자는 ‘헨리 8세가 무덤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300명가량이 참석한 예배에서는 15~16세기 라틴어 성가가 반세기 만에 울려 퍼졌다. 성공회의 리처드 샤르트르 주교는 “이 라틴어 성가는 종교개혁으로 유럽이 갈라지기 전까지 서유럽의 모든 교회에서 불리고 들렸던 곡”이라고 설명했다. 햄프턴 코트 궁전은 1514년 왕실 개인 교사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토머스 울시 추기경이 지었지만, 헨리 8세가 교황청과의 갈등 와중에 그를 실각시키고 자신의 소유로 했다. 1509~1547년 영국을 다스렸던 헨리 8세는 정략 결혼한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신청을 로마 교황청이 승인하지 않자 관계를 끊고 1534년 성공회를 탄생시켰다.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을 해산시키고 재산을 몰수했다. 이날 궁전 밖에서는 두 종교의 화합에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도들이 모여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멕시코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 변함없는 경차 사랑

    멕시코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 변함없는 경차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이 멕시코에서 사용할 차량이 공개됐다. 멕시코 주재 교황청대사관과 현지 주교단은 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멕시코 방문기간 중 사용할 차량인 경차 피아트500l 등을 공개한 뒤 축복했다. 행사장에서 공개된 차량은 지프의 랭글러 3대와 닷지의 픽업 램1500 2대 등 5대와 피아트 500L 6대 등 총 11대다. 랭글러와 램1500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 행사장에서 이동할 때 사용할 오픈형 차량이다. 지프는 아예 지붕이 없고, 픽업은 니붕이 없는 짐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설치돼 있다. 색은 하얀 색깔로 통일됐고, 바람을 막기 위해 유리로 둥굴게 바람막이가 설치돼 있다. 교황청대사관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따라) 방탄유리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반 이동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용할 차량은 중남미에선 가장 덩치가 작은 경차 피아트 500L이다. 색깔만 화이트로 통일했을 뿐 피아트 500L은 특별히 개조하지 않았다. 교황청대사관과 주교단이 피아트 500L을 6대 준비한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할 도시의 수에 맞추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멕시코시티를 비롯해 에카테펙, 툭스틀라 구티에레스, 산크리스토발, 모렐리아, 후아레스 등 총 6개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부터 17일까지 멕시코를 방문한다. 남미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멕시코 방문을 앞두고 중남미 각국의 신자들이 멕시코로 몰려들고 있다. 사진=콰르토오스쿠로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1000년 만에 교황과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가 만난다

     11세기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분리된 뒤 처음으로 거의 1000년 만에 교황과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가 회동한다고 바티칸이 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이날 바티칸 교황청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의 발언을 인용해, 오는 12일 쿠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과 카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만남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기쁜 마음으로 양 교회의 수장의 만남을 알리며 양 교회 역사의 새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만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멕시코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잠시 쿠바에 들러 이곳을 찾은 카릴 총대주교와 조우하기로 하면서 성사됐다. 이들은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동방 정교회는 1054년 동서 교회 분리 때 로마 가톨릭과 결별한 기독교 종파다.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왔다.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이 대표적인 지역별 교구다.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옛 이름) 정교회는 1965년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등 화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식 때는 바르톨로메오 1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바티칸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러시아 정교회의 카릴 총대주교와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나 우크라이나 내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산됐다.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 교황의 최고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가톨릭교회를 비난해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목숨 내놓고 사랑하는 사우디 젊은이들

    목숨 내놓고 사랑하는 사우디 젊은이들

    성소수자, 이른바 LGBT(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세계 곳곳에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감내하며 지내고 있다. 이들에게 최악의 나라는 아마도 사우디아라비아일 것이다.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사랑해야 하니까 말이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에서는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인, 성폭행, 배교, 마약 매매 등 중범죄에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사우디는 여전히 태형은 물론 투석형, 참수형, 십자가형 등의 봉건적 형벌을 집행하는데 LGBT도 그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동성끼리 결혼하면 사형이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이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다. 이곳 사우디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동성혼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사우디 보안당국은 최근 수도 리야드의 한 아파트를 급습해 결혼식을 치르고 함께 살고 있는 네 명의 남성 커플들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사우디 뉴스 사이트 사브크(Sabq)에 따르면 한 커플은 불과 이틀 전에, 또 다른 커플은 일 주일 전에 결혼식을 치른 신혼 커플이었는데 이들 중 3명은 미혼, 1명은 유부남이었다. 또한 이들이 신혼집으로 쓰려던 아파트에서는 여러 벌의 여성 옷과 가방, 신발, 가발 그리고 모형 가슴이 발견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우디인은 이들 게이 남성들이 사형될 것이라고 했다. 사형이 가혹하다고 보지 않냐는 질문에는 “알라의 뜻이라면”이라고 답했다. 사우디는 쿠란(이슬람교 성전)에 따라 동성에게 성욕을 품는 것을 죄라고 여겨 매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해오고 있다. 이렇듯 사우디는 성(性)에 보수적일 뿐 아니라 엄격하게 다룬다. 권리 박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 박탈로 엄단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곳으로 일하러 오는 한국의 청년들이 한 번 쯤 ‘(동성의) 성추행을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다간 끌려가서 매를 맞는 이 나라에선 곱상한 남자가 성범죄에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우디 여성들이 아바야(검은 가운)로 전신을, 니깝이나 히잡과 같은 베일로 얼굴까지 가리고 다니기 때문에 사우디에 게이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주장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유연애마저 금기사항.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사우디인은 “쇼핑몰 같은 곳에서 여성의 전화번호를 따내어 몰래 만나기도 한다”며 “한번은 무타와(종교경찰)에게 걸렸는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서 풀려났다”고 했다. 어렵사리 연애를 이어간다 해도 결혼은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한다. 대가족을 이루는 사우디는 여성들이 결혼 전 다른 집안의 남성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데 집안의 여성들을 보호하고 집안의 명예 또한 지켜야 한다는 전통 때문이다. 이성과의 만남에 제약이 많다보니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동성과 더 가까이 하기도 한다. 남자같이 행동하고 동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여성을 아랍어로 보야(복수형 보야트)라고 부르는데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는 매우 낮다. 사우디 저널리스트인 유세프 알-까파리는 “가족의 관심과 진정한 사랑이 부족해서 여성들이 남성처럼 행동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현상을 저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교육”이라고 라디오에서 말한 바 있다. 자유기고가인 란다 알셰이크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 문제를 하루 빨리 다루어서 여성들이 좋은 가정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성적소수자를 포용하지 않고 있는 건 비단 이슬람 문화권 만의 얘기는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지난달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할 계획을 밝히며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소수의 인권 보호라는 이유로 다수의 인권을 짓밟고 전통적 가치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비록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들에게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교황청은 프랑스가 내정한 바티칸 주재 대사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다. 성과 관련해 진보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도 50개주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한 게 불과 반 년 전일이다. 사우디도 분명 변하고 있는 중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성적소수자들을 범법자 취급하지 않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사진 윤나래 중동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아랍 S다이어리] 목숨 걸고 사랑하는 중동의 性소수자들

    [아랍 S다이어리] 목숨 걸고 사랑하는 중동의 性소수자들

    성적소수자, 이른바 LGBT(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는 세계 곳곳에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감내하며 지내고 있다. 이들에게 최악의 나라는 아마도 사우디아라비아일 것이다.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사랑해야 하니까 말이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에서는 샤리아법(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인, 성폭행, 배교, 마약 매매 등 중범죄에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사우디는 여전히 태형은 물론 투석형, 참수형, 십자가형 등의 봉건적 형벌을 집행하는데 LGBT도 그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동성끼리 결혼하면 사형이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이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다. 이곳 사우디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동성혼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사우디 보안당국은 최근 수도 리야드의 한 아파트를 급습해 결혼식을 치르고 함께 살고 있는 네 명의 남성 커플들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사우디 뉴스 사이트 사브크(Sabq)에 따르면 한 커플은 불과 이틀 전에, 또 다른 커플은 일 주일 전에 결혼식을 치른 신혼 커플이었는데 이들 중 3명은 미혼, 1명은 유부남이었다. 또한 이들이 신혼집으로 쓰려던 아파트에서는 여러 벌의 여성 옷과 가방, 신발, 가발 그리고 모형 가슴이 발견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우디인은 이들 게이 남성들이 사형될 것이라고 했다. 사형이 가혹하다고 보지 않냐는 질문에는 “알라의 뜻이라면”이라고 답했다. 사우디는 쿠란(이슬람교 성전)에 따라 동성에게 성욕을 품는 것을 죄라고 여겨 매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형을 집행해오고 있다. 이렇듯 사우디는 성(性)에 보수적일 뿐 아니라 엄격하게 다룬다. 권리 박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숨 박탈로 엄단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곳으로 일하러 오는 한국의 청년들이 한 번 쯤 ‘(동성의) 성추행을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다.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다간 끌려가서 매를 맞는 이 나라에선 곱상한 남자가 성범죄에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우디 여성들이 아바야(검은 가운)로 전신을, 니깝이나 히잡과 같은 베일로 얼굴까지 가리고 다니기 때문에 사우디에 게이들이 많이 생겨난다는 주장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유연애마저 금기사항.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사우디인은 “쇼핑몰 같은 곳에서 여성의 전화번호를 따내어 몰래 만나기도 한다”며 “한번은 무타와(종교경찰)에게 걸렸는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서 풀려났다”고 했다. 어렵사리 연애를 이어간다 해도 결혼은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한다. 대가족을 이루는 사우디는 여성들이 결혼 전 다른 집안의 남성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데 집안의 여성들을 보호하고 집안의 명예 또한 지켜야 한다는 전통 때문이다. 이성과의 만남에 제약이 많다보니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동성과 더 가까이 하기도 한다. 남자같이 행동하고 동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여성을 아랍어로 보야(복수형 보야트)라고 부르는데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는 매우 낮다. 사우디 저널리스트인 유세프 알-까파리는 “가족의 관심과 진정한 사랑이 부족해서 여성들이 남성처럼 행동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현상을 저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교육”이라고 라디오에서 말한 바 있다. 자유기고가인 란다 알셰이크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 문제를 하루 빨리 다루어서 여성들이 좋은 가정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성적소수자를 포용하지 않고 있는 건 비단 이슬람 문화권 만의 얘기는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지난달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할 계획을 밝히며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소수의 인권 보호라는 이유로 다수의 인권을 짓밟고 전통적 가치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비록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들에게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교황청은 프랑스가 내정한 바티칸 주재 대사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다. 성과 관련해 진보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도 50개주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한 게 불과 반 년 전일이다. 사우디도 분명 변하고 있는 중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성적소수자들을 범법자 취급하지 않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사진 윤나래 중동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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