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교화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한계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예고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귀환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이새날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66
  • 정책공방 20일… 선량들의 「성적표」

    ◎연구하고… 발로뛰고… 국감 「우등생의원」 누군가/민주 「장성4인방」 팀플레이 진가/국방위/세도비호 「1·3회」·「부화회」 폭로/박희부·김옥두/라면스프 맹독농약 제기 큰 반향/박주천 올해 국정감사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의원들의 질의경쟁이었다.여야나 노·소장의 구분,또는 당직보유 여부에 관계 없이 거의 모든 의원이 질의에 나섰다. 이번에 우등생으로 평가받은 의원들을 살펴보면 우선 현장을 발로 뛰는등 준비를 착실히 한 흔적이 역력했다. 교육위의 김원웅의원(민주당)은 작년에 이어 현장답사 결과를 바탕으로 방대한 분량의 교육백서를 발간,공부하는 의원상을 과시했고 이협의원(민주당)도 수십차례의 현장조사로 각급 학교의 교과서와 참고서 채택에 얽힌 비리를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노동환경위의 이해찬·신계륜·김말룡·원혜영의원(민주당)은 공동 현장답사를 통해 김포쓰레기 매립지와 한강수계 오염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감사장에서 역할분담을 통해 상세하게 해부,팀플레이를 보였다. 내무위의 정균환의원(민주당)은 인천의 각 구청을 직접 돌며 조사한 관내거주 경찰관의 납세영수증 실태를 제시해가며 세무행정의 잘못을 지적,세무비리관련 감사에서 단연 돋보였다.건설위의 최재승의원(민주당)도 건설부산하 4개공사 직원들에 대한 설문조사결과를 근거자료로 제시,감사 때마다 의원들은 비리의혹을 제기하고 수감기관은 부인함으로써 평행선을 달리던 구조적 건설부조리 관련논쟁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감사에서는 또한 여야가 한목소리로 정책감사를 강조,문제제기에서 한발 나아가 정책적 대안을 활발히 제시한 의원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외통위의 임채정·남궁진의원(민주당)은 북한개방론에 기초한 대북정책의 대안제시로 두각을 나타냈다.법사위의 이인제의원(민자당)은 판사의 교도행정 참여,검찰의 수사지휘권 강화,폭력단대책법 제정 등을 제시하는등 교화위주의 교도행정에 대한 대안을 많이 내놓았다.또 문체공위의 최재욱의원(민자당)은 전국체전의 종합평가제를 국제대회 관례와 예산절감 차원에서 메달평가제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고 교통위의 김진재의원(민자당)은 산업화와 관련,「물류유통 표준화」와 「물류전문대학설립」등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감사에서 이른바 「전문가의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던 것은 예년과 다름없는 현상으로 장성출신들인 국방위의 강창성·나병선·임복진·장준익의원이 대표적.「국방위 민주당 4인방」으로 통하는 이들은 총론적 국방정책(임복진),군수(나병선),무기획득(장준익),군기강(강창성) 등 분야별 전문성을 살린 예리한 질의로 감사를 주도한데다 때마침 발생한 장교탈영사건으로 군의 구조적 병폐가 노출,군출신으로서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의사출신인 보사위의 양문희(민주당)·주양자(민자당)의원도 때마침 페스트 방역문제가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전문성을 살린 기민한 대책제시로 주목을 끌었다.이밖에 조세관료출신의 장재식(민주당·재무위),체신고출신의 조영장(민자당·체신과학위),은행장출신의 유돈우(민자당·재무위),교통부 관료출신인 정영훈(민자당·교통위),전문경영인출신의 이명박(민자당·행정경제위),방송기자출신의 강용식의원(민자당·문체공위) 등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질의로 후한 점수를 얻었다. 이에반해 일부 의원은 한우물만 판 결과 우등생소리를 들었다.교통위의 김형오의원(민자당)은 고속철도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고속철도박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농림수산위의 박경수의원(민자당)도 이번에 『현장차원의 농촌문제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라는 평소의 이미지를 완전히 굳혔다. 이른바 「한건」을 올린 의원들 역시 이번 감사의 우등생들로 다른 의원들의 부러움을 샀다.건설위의 제정구의원(민주당)은 동아건설의 광범위한 뇌물공여비리의 폭로로,내무위 박희부의원(민자당)과 김옥두의원(민주당)은 인천 세무비리사건의 파장속에 비리비호세력인 「1·3회」와 「부화회」의 존재를 파헤쳐 각광을 받았다.감사 말미에는 보사위의 박주천의원(민자당)이 라면수프의 맹독성농약 첨가문제를 터뜨려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한편 문체공위의 박종웅의원(민자당)은 정치인에게는 「자살행위」라는 언론과 종교단체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사실상 가장 크게 주목됐다.그는 일부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중앙 일간신문사들의 소유구조와 양적 팽창주의의 문제를 감사의 도마위에 올렸고 민감한 종교단체의 재산등록문제도 거침없이 공론화,초선의원으로서의 순수성과 패기를 높이 평가받았다.
  • 단호한 「검찰권 행사」 주문/법사위(국정감사 초점)

    ◎“범죄정보국 신설·수사장비 강화” 촉구/초동수사부터 지휘권 확립 요구/“일과성 사정으로 부패척결 실패” 13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지존파 살인공장」,온보현 여인납치살해,수원 증인보복살인사건등 잇따르고 있는 대형 강력사건과 관련,공권력의 근본대책을 요구하는 여야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민자당의원들은 흉포화·지능화되고 있는 범죄에 비해 낙후된 수사·정보력의 쇄신을,야당의원들은 기업과 공직비리에 대한 단호한 검찰권행사등 범죄의 사회적 토양 제거를 집중 주문했다. ○…함석재의원(민자당)은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까지 전체 범죄발생률이 5% 줄었음에도 살인·강도가 12.7%,폭력사범이 6.8%나 느는등 강력사건은 급증하고 있다』면서 『특히 전체적으로 4.6% 줄어든 소년범죄에서 살인·강도는 27.4%나 늘어났다』고 심각성을 지적.함의원은 이어 『수원 증인보복살인사건은 교도소의 교화능력과 경찰의 공조수사에 허점을 드러냈다』면서 법정증인의 보호대책과 대형강력사건의 초동수사에서부터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확립할 것을 요구. 박헌기·김영일의원(민자당)도 『전국의 조직폭력배 가운데 주요관리대상인 2백여파 3천여명이 지난해말부터 수괴급의 잇단 출소로 세력을 재건하고 있다』면서 『범죄정보국의 신설,첨단수사장비의 도입등으로 정보능력을 강화하고 마약사범등 범죄조직의 자금원을 차단하라』고 촉구. ○…이인제의원(민자당)은 지난해 3월부터 폭력단대책법을 시행,민관협력의 총체적 치안력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을 예로든 뒤 폭력조직의 자금원에 대한 재산박탈제도,자금세탁행위 처벌법등의 마련등 법적·제도적 대책에 중점. ○…강재섭의원(민자당)은 『검찰이 새정부출범 뒤 부정부패의 척결과정에서 전시효과를 노린 일과성 사정으로 표적수사시비를 야기,구조적 부패척결에 실패했다』고 비판한 뒤 『정치적 중립성의 확보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공권력의 신뢰와 권위부터 확립하라』고 충고. 조홍규·조순형·장석화의원(이상 민주당)도 『올해들어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2.1배,집회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은 6·8배나 늘었다』고 「공안바람」을 비판한 뒤 『반면 상무대공사비리,한전 로비자금사건,노소영씨부부 외화밀반출사건등 재벌·권력 관련 사건은 소극 처리하는등 편향적인 검찰권 행사가 사회기강을 문란시켰다』고 목청.이들 의원들은 특히 『12·12같은 하극상 사건의 단호한 처벌을 위해 최규하전대통령을 소환조사하고 각종 정치자금의혹사건에 대해 엄정·중립의 검찰권을 행사,사회 저변의 반사회적 일탈동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유수호의원(신민당)은 신민당 각목사건에 대한 조직폭력배의 개입여부를 철저히 수사할 것을 주문. ○…김도언검찰총장은 답변에서 『조세·건축등 16개 분야 중하위 공직자의 고질적 비리를 집중단속하고 토착유지와 공직자의 유착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사정활동을 벌이는 등 범죄의 사회적 토양을 정화하겠다』고 밝히고 『24시간 기동수사지휘체제를 갖추고 전담서별 검사를 지정하며 4대 강력범죄에 대한 기획수사와 함께 감정·감식기능의 강화,검찰정보통신망의 구축등을 통해 강력사범을 척결해나가겠다』고 답변.
  • 「태국기사랑」 시리즈를 마치며/전문가 좌담(태극기를사랑합시다:끝)

    ◎“「국민정신 구심점 찾기」 계기 마련”/국기·애국가 통한 청소년 선도 효율적/충효교육 강화… 도적성회복운동 함께/일선학교는 물론 공공기관도 적극 동참해야 □좌담 정여기 서울광희중교장 김성식 교육부 중등교육 장학관 김집 청소년연맹 총재 서울신문은 최근 일선학교와 민간부문에서 자생적으로 일고 있는 태극기사랑운동의 실상을 사례중심으로 9차례에 걸쳐 심도 있게 보도해 왔다.이는 우리사회에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치관혼란 현상은 국민적 구심점이 약해진데 따른 것이며 국기야말로 모든 계층의 부조화 요인을 한데로 조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상징물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때마침 올 1학기부터 일선학교를 중심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부르기,국기 제대로 달고 보관하기 등의 태극기사랑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터여서 서울신문사는 이에 호응,시리즈를 엮어 온 끝에 이번에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결말을 맺어 본다. ▲김집총재=우선 국민정신의 구심점을 찾기 위한 태극기사랑운동이 이제 어느 정도 궤도를 잡아가는 듯 합니다.현재 우리나라는 「지존파」연쇄살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심각한 정신적 혼란상황에 놓여 있습니다.대부분의 국민들은 청소년기의 교육이 잘못된데서 이런 일이 비롯됐다고 분석하지요. 그러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전에 각자 애국·애족심을 갖고 국민정신의 확고한 구심점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이를 위해 한국청소년연맹이 각급 학교와 협의,올초부터 시작한 태극기사랑운동이 대단한 호응속에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어 국민정신 구심점 확립운동의 작은 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식장학관=그렇습니다.구심점이 어느때보다도 필요합니다.지금 펼쳐지고 있는 태극기사랑운동을 청소년 선도의 좋은 방안으로 적극 활용해야할 것입니다.최근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흉악범죄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이 현재 놓여있는 환경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결손가정의 증가와 핵가족화를 비롯,불량비디오및 불량서적,환각물질 등의 범람은 전체국민의 3분의1에 이르는 1천3백만 청소년들을 도처에서 위협하고있습니다.따지고 보면 「지존파」도 이런 분위기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청소년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을 크게 위협할 것이 뻔하죠.이제야말로 모든 국민이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도에 나설 때인데 학교위주의 청소년지도는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이번 기회에 「사회의 학교화」를 목표로 모든 국민이 청소년문제를 곧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지역사회전체를 청소년 교육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정여기교장=우리나라 전체 복역자의 7.8%가 청소년입니다.30%선인 미국,20%선인 일본보다는 적지만 5%가 채 안되는 대만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지요. 대만의 성공적인 청소년선도의 열쇠는 사회전체에 널리 퍼져있는 충효사상입니다.중국은 또 중화사상에서 우러나온 자긍심이 큰 역할을 하고있지요.우리도 그러한 자긍심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그러기위해서는 우리민족의 희망찬 미래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야지요.이런 역할을 가장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 국기와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일선학교나 공공장소에서도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앞으로 태극기·애국가를 도덕성·윤리의식회복 문제와 연계시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나가야 합니다.이에 따라 우리 광희중학교에서는 올해 다양한 실험들을 전개해나가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이의 실질적 효과를 측정할 계획입니다.태극기사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을 하도록 해주고 애국심을 길러준 뒤 학생들의 행동변화추이등을 면밀히 지켜보아 앞으로의 학생지도 자료로 널리 활용할 계획입니다. ▲김총재=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범죄는 발생건수도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범죄자체가 대형화·흉포화하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청소년범죄예방의 모범적 나라인 대만을 직접 방문해 그곳 교육부장관등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더니 그들은 우리나라의 도덕과목에 해당하는 수신과목의 교육을 철저히 한다더군요.실제로 수신과목이 상급학교 진학의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우리도 본받아야할 점이지요. ▲김장학관=일선학교에 장학지도를 내려가보면 과거 유럽·미국과 일본등을 차례로 휩쓸었던 반달리즘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즉 기존의 도덕과 사회문화에 무조건 반기를 들고 자기위주로만 즐기는 풍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청소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40∼50대 세대는 과거 6·25전쟁기에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헐벗고 굶주렸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누리지 못했던 경우가 많습니다.여기서도 현재 잘못되고 있는 가정교육의 원인을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따라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야 자식도 역시 부모를 공경하게 된다는 부자자효의 정신을 되살려 가정에서부터 우선 도덕성회복운동에 나설때입니다. 아울러 효에 대한 포상제도를 널리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최근 일부대학에서는 효행표창을 받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특례입학의 혜택을 줄 것도 고려하고 있을 정도로 효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어가고 있습니다. ▲정교장=효사상과 아울러 충사상의 근간이 될 국기를 사랑하도록 하는데는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추상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면 오히려 과거 군사문화의 잔재니,권위주의 시대로의 복귀니 하는 등의 반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3·1운동 당시 온민족이 태극기를 들고 하나로 뭉쳐 일제에 항거했고 태극기를 품에 안고서 죽어갔다는 사실등 마음에 직접 와닿을수 있는 사례들을 발굴해 학생들에게 알려준다면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자연스레 유도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총재=그렇습니다.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중의 또다른 하나는 미국이 우주선 아폴로 17호를 발사할 때 우주선에 싣고갈 국기를 고르기 위해 세계 1백35개국의 국기를 모아 심사한 일이 있었습니다.이때 우리의 태극기가 그 아름다움이나 담긴 의미등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해 달까지 갔다가 온 적이 있었지요.이런 사례들을 묶어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김장학관=정부도 막연한 국기달기 권장방식에서 벗어나 태극기를 통한 청소년선도에 적극 동참할 것입니다. ▲김총재=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국민정신의 구심점을 찾아나가는 것인데 태극기를 통한 방법모색이 가장 효율적임을 이번 운동을 통해 재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교육지도층과 일선학교가 합심해서 범국민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정교장=우리 태극기는 국권침탈과 동족간 상쟁등 근현대사의 숱한 시련기속에서도 한시도 우리 국민과 떨어져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앞으로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태극기와 친해지고 존엄성을 느낄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연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안성 칠장사/청정 간직한 칠현산 기슭의 천년고찰(나들이)

    ◎1백m 은행나무길 초가을 운치 은은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칠장리 764에 위치한 칠장사는 건립된지 1천년이나 된 오래된 사찰인데다 공기가 맑고 경치 또한 아름다워 가족단위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적격이다. 죽산면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충북 진천방면으로 4㎞쯤 달리면 칠장사 이정표가 한눈에 들어온다.이곳에서 4㎞쯤 더 들어가면 병풍처럼 드리워진 칠현산 기슭의 울창한 숲사이로 칠장사의 지붕이 한폭의 그림처럼 모습을 나타낸다. 칠현산기슭에 있는 칠장사는 신라 진덕여왕 2년인 648년 자장율사에 의해 처음 창건된 뒤 고려 현종때의 국사인 혜소국사가 현종 5년인 1014년에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칠현산은 본래 아미산이라 불렸으나 혜소국사가 이 사찰에서 수도 도중 갑자기 나타난 일곱악인을 부처님의 힘을 빌려 교화시킨데서 유래돼 그 뒤부터 칠현산로 바뀌었으며 사찰 또한 칠장사로 불리게 됐다.특히 칠현산은 산세가 깊고 숲이 울창해 조선시대의 의적 임거정이 주 활동무대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절입구 우측으로 14기의 부도가 나란히 위치해 찾는이를 반기며 경내로 이어지는 1백여m에는 은행나무가 가르런히 심어져 운치를 더해준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대웅전 오른쪽에는 고려시대때 번창했던 사찰인 봉업사터에서 출토된 보물 983호인 봉업사 석불입상이 다소곳이 모셔져있다. 또 조선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종이 대웅전에 모셔져 있고 임목대비의 친필족자가 보관돼 있다.대웅전 좌측으로 1백여m쯤 올라가면 이 사찰에서 수도한 혜소국사비가 세워져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각종 풀 벌레소리가 요란히 들려 초 가을의 분위기를 더한다.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지역 특산물인 입장포도와 사과를 도로 곳곳에 설치된 특산물 직매장에서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 미결수 면회/교도관입회 금지/내년부터

    ◎기결수 감식 등 가혹 징벌 없애/행형법 개정안 내년부터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 대해서는 변호인 접견시 교도관이 대화내용을 듣거나 기록하지 못하게 된다. 또 기결수의 경우도 접견·서신금지,운동정지,감식 등 가혹한 징벌규정이 없어진다. 법무부는 1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행형법 개정안을 마련,올 정기국회에 제출,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법무부는 개정안에서 그동안 미결수에게 수형자에 관한 규정을 준용토록 한 현행 62조를 삭제하고 수형자와 미결수에게 적용되는 규정을 구분,미결수들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토록 했다. 개정안은 또 접견 및 서신에 관한 규정을 대폭 완화,친족이 아니더라도 교화에 필요할 경우 접견을 허용키로 했다. 이와 함께 재야 법조계로부터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는 입막음장치(일명 방성구)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수갑·포승·쇠사슬 등 호송장비의 사용방법은 법무부장관이 직접 정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이밖에 행형성적이 우수하거나 출소를 앞둔 모범수형자에 대해 관행적으로 실시중인 외부통근작업 및 개방시설 수용 등의 제도에 대해 근거규정을 신설,재소자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 수령목소리 흉봤다 이튿날 사형/“인권동토”북한의 실상/통일원보고서

    ◎재판절차 없이 구금·고문 예사로/당·보위부·안전부등서 3중감시 북한주민들의 참담한 인권 실태가 통일원이 귀순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국제기구들의 조사결과 등을 종합해 펴낸 「북한의 인권실태」보고서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통일원이 9일 국회 외무통일위에 제출한 이 보고자료는 최근 국제사면위가 폭로한 북한내 정치범수용소 수용자들의 비참한 인권유린 상황도 재확인하고 있다. ▷자유권적 인권 침해◁ 공정한 재판절차없이 피의자를 구금하거나 고문 등 비인간적 처벌을 자행하고 있다.특히 김일성부자의 지시나 당정책을 어겼을 때 처벌의 가혹함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인민재판식 공개재판을 실시하기도 한다. 정치범 및 그 가족들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가혹해 「특별독재대상구역」이라는 수용소에 감금해 매일 12시간 이상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사례=83년 김일성신년사 발표를 집단 시청하던 중 한사람이 김이 쉰 목소리를 내자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꽥꽥 거린다」고 무심코 내뱉었다.그는 다음날 소리없이 불려가 특수처리대에 의해 사형당했고 그의 가족까지 추방당했다(90년 귀순자 이덕남증언). ▷사생활비밀과 자유침해◁ 당·국가안전보위부·사회안전부 등 3중 감시체제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사상동향을 철저히 감시하고 무단침입해 점검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비일비재하다.5호담당제를 통해 5호담당 지도원이 각 세대의 동태를 감시한다. ▲사례=평양시의 한 젊은 부부의 집이 유일사상 검열원의 김일성부자 초상화와 도서에 대한 불시검열을 받게 됐다.이 때 3살짜리 아기가 싼 오줌때문에 김일성노작 맨 앞장의 초상화가 젖어 있는 것이 발견되는 바람에 불경죄에 걸려 산간벽지로 추방됐다(89년 귀순자 고운기 증언). ▷평등권 침해◁ 해방이후 여러차례에 걸친 주민성분 조사를 통해 주민들을 3계층 51개 부류로 세분했다.이에 따라 특권,식량배급,교육뿐만 아니라 일반범죄에 대한 처벌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별대우가 적용된다. ▲사례=당정간부들은 직위에 따라 국가로부터 주택·가전제품·식료품 등의 일용품을 전용상점 등을 통해 보장받고 가족수와 관계없이아파트도 우선 배정된다.이들에게는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도 제대로 법적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하지만 일반 노동자는 방 한칸에 한 세대가 살림을 하는 것은 보통이며 남의 집에 임시로 방을 만들어 살림을 하는 사람도 많다(88년 귀순자 소영식 증언).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취업희망자의 의사보다는 당정기관의 조정·통제에 의해 이뤄진다. ▲사례=형제간이라도 직업때문에 어쩔수 없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생이 나이가 들어 군대에 나가게 됐을 때 형은 제대해 탄광으로 강제배치되는 등 형제간에도 군대갈 때쯤 헤어지면 다시 못만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90년 귀순자 신광호 증언). ◎북 「정치범수용소」 실태/탈출 기도자등 연15명 공개총살/하루 15시간 강제노역… 거의가 영양실조/「요덕」선 치료못받아 매년 40∼50여명 병사 북한이 정치범을 특별수용한 것은 지난 58년 연안파 숙청사건 연계자 및 그 가족을 교화소가 아닌 특정지역에 집단수용함으로써 시작됐다.북한식 수용소군도인 정치범수용시설을 북한당국은 「○○호 관리소」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주민들간에는 「특별독재대상구역」「종파굴」「정치범집단수용소」「유배소」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현재 수용소는 함남·함북·평남·평북·자강도 등 5개도에 12개소가 설치돼 있으며 수용인원은 20여만명으로 추정된다.도별로는 ▲함남에 요덕,단천,덕성 ▲함북에 온성(2개소),회령,화성,부령 ▲평남에 개천,북창 ▲평북에 천마 ▲자강도에 동신수용소가 있다.수용소의 면적은 각각 51∼2백50㎦로 5천명에서 5만명까지 수용되고 있다. 수용소는 통상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구분돼 수용자의 죄질에 따라 격리된다.완전통제구역은 반당·반혁명분자,종파분자,해외도주 기도자 등을 종신수용하며 혁명화구역엔 불순 북송교포,당정책위반자,자유주의 성향자 등이 수용돼 일정기간(1∼5년)이 지나면 심사결과에 따라 출소가 가능하다. 수용소의 경비는 삼엄해 각 수용소엔 3∼4m 높이로 2,3중의 외곽철책선과 탈주가 용이한 곳에는 고압전기철조망과 지뢰밭이 설치돼있다.감시망루에는 AK자동소총과 수류탄 및 기관총으로 무장한 감시원이 군견과 함께 외곽순찰을 하고 있다. 수용소에 들어가면 공민증을 압류당하고 친지면회및 서신연락금지 등 외부와접촉이 차단된다.이와함께 선거권등 기본권이 박탈되고 배급및 의료혜택은 물론 결혼및 출산도 금지된다.수용자들은 상오5시반까지 아침식사를 하고 작업준비를 완료한후 5인조로 짜여져 하오9시까지 작업을 한후 10시부터 학습교육을 받는다.하오6시에 담당 보위원이나 감독,인민반장 등이 할당된 작업결과를 중간점검하고 미달시는 연장작업을 시킨다.작업과 학습시간을 제외하고는 2명이상 모여다니지 못하며 수용자로 위장한 정보원을 잠입시켜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 수용소안에서의 식량배급은 형편없어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려있다.게다가 중노동에 시달려 폐렴,결핵,간염,페라그라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의사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요덕수용소의 경우 해마다 40∼50명이 병으로 사망한다. 밤 10시부터는 통행이 금지되는데 적발되면 1개월간 중노동에 처해진다.도주기도자나 보위원구타자등 매년 15명가량이공개총살된다. 정치범수용소외에 모든 시·군에 설치된 각종 노동교화소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주민들을 강제구금해 중노동을 시키고 있다.
  • 외국인 접촉·안전사고도 “반국가죄”/북,정치범 어떻게 다루고 있나

    ◎사형·재산몰수등 무제한 처벌/시효없고 변호인이 “자백” 강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군도가 세계언론의 표적으로 떠오른 가운데 북한의 「반국가범죄」및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북한 인민들에게 가장 무섭고 가혹한 범죄로는 「반혁명범죄」,「반국가범죄」가 첫손에 꼽힌다.북한은 74년 북한형법 제2편에 「반혁명범죄」를 규정,김일성 유일지배체제 유지에 장애가 될 우려가 있는 모든 행위를 반혁명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이는 「반혁명분자들은 로동계급의 계급적 원쑤들이므로 무자비하고 철저히 처단해야 한다」며 반혁명범죄를 사법차원이 아닌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취급한 것. 북한측은 줄곧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이 「반혁명범죄」가 비인도적인 측면에서 대내외적으로 비난을 받게되자 87년 북한형법을 개정해 「반혁명범죄」를 삭제하는 대신 「반국가범죄」를 새로이 규정했으나 이 또한 「반혁명범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반국가범죄」는 주체사상에 따른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급적·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범죄의 구성요건이 지극히 추상적·다의적이며 유추해석을 사실상 무제한 허용,반금일성부자체제의 부정적 행위해 대해서는 무제한 처벌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더욱이 이 범죄는 형사소추시효도 적용받지 않는 데다가 사형·전재산몰수형등 가혹한 조항을 두고 있어 북한 인민들에게는 그 어떠한 법률보다도 위협적인 존재이다. 고씨를 비롯,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사상범들은 체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이 법에 따라 기약없는 「감방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북한은 정치범과 일반형사범을 구분,체제비판자등 이른바 「정치범」에 대해서는 재판을 허용치 않고 있으며 변호인 역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설득을 통해 죄를 자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반국가범죄」에는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식의 중벌위주의 형벌규정을 적용함으로써 일단 형을 선고받으면 노동교화소나정치범 수용소에 무한정 수감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법무부 특수법령과 성영훈검사는 『북한은 근대형사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와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면서 『국가이익및 집단이익에 반하는 행위는 물론 단순히 외국인과 접촉하거나 사업장 안에서의 단순사고도 반국가범죄로 처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더더욱 나쁘다.아예 「인권개념」이 없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의 인권은 초국가적·천부적인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당에 의해 부여되고 보장되는 「공민의 권리」에 불과하며 자유권보다는 당의 물질적 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수익권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주체사상의 중심체제 아래서는 개인의 존재는 부정될 수 밖에 없다며 인권개념을 왜곡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외국이나 국제기구의 인권보고서 등을 『파렴치한 내정간섭』으로 호도하는 과민반응을 보여 이번 북한의 정치범 수용실태를 첫 공개한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되고 있다. ◎“억류 고통 극복… 꼭 돌아오셔요”/고상문씨 부인 조복희씨 눈물의 편지 남편 고상문씨(46·당시 서울 수도여고교사)가 북한의 승호마을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돼 있다는 소식을 15년만에 들은 부인 조복희씨(43·은평구 갈현동)는 2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는 심정을 담은 편지 1통을 전달하며 남편의 귀환을 촉구했다. 조씨는 이날 『어제 전달한 남편의 송환을 촉구하는 진정서와 함께 꼭 이편지를 남편에게 전달하고 남편을 하루바삐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16절지 두장 분량으로 된 『현미아빠 보세요』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서 조씨는 꽃다운 28세에 결혼,10개월만에 남편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은뒤 15년의 세월이 지나 불혹을 넘긴 43세의 중년이 되기까지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편지 구석구석에 내비치고 있다. 『당신이 갖고다니며 사용하던 소형 트랜지스터와 함께 내 선물로 산 바바리코트 꾸러미가 집으로 도착한 후 나는 심한 환청과환상에 시달렸습니다.몇차례 병원생활을 하기도 했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이루는 긴 세월을 나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르면서도 우리의 딸 현미를 기르는 보람으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습니다』라고 적고있다. 조씨는 특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왜 안와,왜 편지 한장 없어」라는 질문을 계속 해오는 딸 현미를 더이상 속일 수 없어 중학교에 들어간 날 사실을 말해주자 「우리 엄마는 너무나 불쌍한 여자」라고 했다』면서 『그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고 그간의 회한의 세월을 담담히 소개했다. 조씨는 이어 『당신과의 생이별이란 사건은 내 인생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면서도 『당신의 핏줄 현미에게 아빠가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은 다시 나를 설레게 합니다』라며 그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남편의 무사귀가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을 보였다. 조씨는 편지 끝에 『당신도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라며 만나는 그날까지 남편의 건투를 비는 성숙한 아내의 마음씀씀이도 잊지않았다. 조씨는 이날 편지전달과함께 딸 현미양이 대통령앞으로 보내는 편지도 소개했다. 현미양은 이 편지에서 『아빠가 돌아오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펜을 들었다』면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계신 아빠의 귀환을 위해 힘써달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조씨의 편지를 국제적십자사나 북한적십자사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다.
  • 휴전후 4백40여명 납북… 생사불명/납북자 어디서 어떻게 지내나

    ◎동진호선원 12명 송환약속 7년째 “감감”/KAL 여승무원 「구국의 소리」 대남방송/87년피랍 이재환씨 “다국기업 횡포 연구”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전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휴전 이후 북한에 억류중인 납북자들의 생사와 근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통일원과 대한적십자사 등 관계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납북자 총수는 휴전이후만 따져도 최소한 4백40여명.이들 중 대다수는 생사확인조차 안되고 있으며 북한측은 상당수가 의거귀순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납북 억류자의 근황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분류된다.즉 ▲생사불명자▲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 수감자▲북한당국의 고문과 회유에 의해 대남선전방송 등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인사 등이다. 북한당국에 의해 체제홍보라는 악역이 주어진 대표적 납북자로는 지난 69년 납치된 대한항공 여객기의 일부 승무원들.당시 북한은 고정간첩 조창희씨(당시 42세)를 통해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등 51명을 태운 KAL쌍발 여객기를 공중납치했는 데 아직도 송환되지 않고 있는 탑승자 11명중 정경숙씨(49),성경희씨(48)등 여승무원 2명이 선전방송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85년 12월 독일유학중 입북,대남공작활동에 종사하다 자수한 오길남씨(52)의 증언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정씨와 성씨는 북한주민과 결혼해 북한이 남한내의 지하방송으로 위장하고 있는 대남방송인 「민민전」방송(일명 「구국의 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자신도 이 방송에 몸담고 있다 일가족과 헤어져 단신으로 북한을 탈출한 오씨에 따르면 현재 대남선전 방송에는 이들 외에도 제주도 출신 납북어부 양모씨(50)등 납북자 및 월북자 약 15명이 북한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7년 미국유학중 납북된 전민정당 전국구(12대)의원 이영욱변호사의 장남 재환씨(33세)도 북한당국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첩보가 있다.지난 88년 12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국회회담을 위한 제7차 실무접촉을 취재하기 위해 나온 북한측의 한 기자는 재환씨의 근황과 관련,『북한에서 다국적기업의 횡포 등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귀띔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처럼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납북인사들의 북한내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가장 최근인 지난 87년 1월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납치된 동진호 선원 12명의 경우 북한당국은 처음엔 조사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같은 달 김만철씨 일가가 귀순하자 느닷없이 간첩선이라고 우기며 송환을 거부한 뒤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은 이들 행방불명의 납북인사들이 북한당국의 회유나 강압에도 불구하고 「협조」를 거부했을 경우 이에 따른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북 정치범수용소는 “죽음의 땅”/「요덕」생활 강철환씨 증언

    ◎승호마을 「조총련」 간부 많아/기아에 쥐·지렁이 먹는 “지옥” 함남 요덕수용소에 수용됐다가 가까스로 풀려나 92년 1월 북한을 탈출한 강철환씨(26·한양대 무역학과 2년)는 1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지옥과 같은 곳이라며 치를 떨었다. ­승호마을 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나. ▲김정일의 동생 김평일을 따르다 소위 「곁가지」사건에 걸려 수용됐던 학교동창인 친구의 아버지가 그곳에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일이 있어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이 곳은 1급 정치범들이 수용되는 곳으로 한번 들어가면 못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조총련 교육회장을 지냈던 한학수등 재일교포 간부들이 많이 수용돼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수용소에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수용돼 있는가. ▲체제를 비난하는 「악질」정치범들은 승호 수용소에 주로 수용되고 그들의 가족이나 경미한 정치범들은 내가 있던 요덕수용소등에 보내진다.수용인원은 가장 많은 곳이 개천으로 4만명정도되고 승호도 6백명이라고 발표됐으나 실제는 그 10배는 될 것이다.92년에 함께 귀순한 안혁씨가 마람초대소에 있을때 납북자 7명이 같이 수용돼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국제사면위원회가 밝힌 승호수용소 수용자 가운데 재일교포 곽철과 손재석은 내가 아는 사람이다. ­수용소는 얼마나 되며 다른 수용시설은 없나. ▲승호마을과 같은 수용소가 12군데 더 있다.함북 온성에도 있었으나 89년 폐쇄됐다.66·77·88교화소로 불리는 일반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경제범 교화소가 있다. ­수용소 생활은 어떤가. ▲수용자는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고 수용소에 들어오면 나이에 따라 하루 강냉이 3백∼5백g과 소금만을 배급받고 강제노역에 시달린다.배가 고파 산나물이나 풀을 뜯어 먹고 쥐,개구리,도롱뇽을 잡아 먹기도 한다.겨울에는 그나마도 없어 흙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 먹는다.때문에 수용자의 90%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늑막염,폐렴,고환염등 질병에 걸린 사람도 수없이 많으나 치료도 받지 못한다.한마디로 지옥과 같은 곳이다. ­수용소내에서 또다시 감방등에 갇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아 정신이상증상이 생긴 사람들에 대한 감시가 철저하다.이들이 김일성부자에 대한 비난등을 마구 토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치범들이 수용소를 나오고 납북자들이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북한으로서는 체제유지를 위해 이들을 절대로 풀어줄수 없는 입장일 것이다.단 국제단체에서 수용소 모두에 대해 동시사찰을 실시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고 있는 이유는.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는 등 북한이 나쁜 쪽으로 변화되고 있는데다 감시는 더욱 철저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김일성 사후 앞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은 어떻게 될것으로 보는가. ▲인권유린의 바탕위에서만 유지가 가능한 북한체제의 성격상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본다. 수용소가 없는 북한의 존재는 상상할수도 없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조선 교육제도 변천사 한눈에/「태학지」 국역본 간행

    ◎성균관,서울정도 6백년 기념… 상·하 2권으로/성적,경전강독·논문 실력등으로 평가/유생 언론자유·단체행동권 보장 “눈길” 우리나라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은 서울 정도 6백년과 맞물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성균관은 이를 계기로 성균관의 오랜 기록을 담은 「태학지」를 한글로 옮겨 간행했다.이 국역본 「태학지」는 조선왕조 유일의 국립대학격인 성균관의 학풍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국역본 「태학지」는 상·하권 2권으로 모두 1천4백43쪽.원본은 정조9년(17 85년)왕명에 따라 성균관 대사성 민종현이 편찬했다.조선왕조의 교육제도 변천사와 학술사상의 발전상을 유교전통의 춘추필법으로 엮었다.학교를 세우고 제도를 만든 제1권 건치로부터 제14권 부록까지 14권으로 이루어진 「태학지」는 성균관 소장의 전사본과 서울대 소장본이 남아있다. 이 「태학지」는 민족 주체정신의 산물로 평가된다.왜냐하면 청이 중국을 지배한 지 1백20여년이 지난 뒤에 편찬했음에도 청나라 교육제도는 한마디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는 민족교육의 주체성을 찾고 문화의 긍지를 기리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다만 동방의 학교 교육사를 유교가 동쪽에서 왔다(사문동래)는 관점에서 「태학지」를 서술했을 뿐이다. 「태학지」제6권 유생의 성균관 생활규범을 기록한 장보를 보면 정의를 구현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학풍을 역설하고 있다.예의도덕에 바탕을 둔 자율질서와 자치적 운영을 강조하는 가운데 언론의 자유와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대목이 나온다.태학생의 비판 기능 및 건의,진정,고발을 허용했는데 이는 정의심과 공론의 실체성을 전제로 했다.그래서 동맹휴학이나 수업거부 등을 통해 정당한 학생운동의 기풍도 길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현을 기리면서 유를 숭앙(숭유)하고 스승을 받드는(존사)일을 큰 덕목으로 열거했다.특히 제7권 교화에서는 물론 과거를 중시하면서도 학덕이 높은 선비에게 과시(과거)를 면제하고 벼슬을 주는 일(정초)에 더 큰 관심을 돌렸다.이것은 과거공부를 하는 선비 보다는 도덕을 닦는 선비를 더욱 존중한다는 숭유중도의 뜻을 표출한 것이다.과거로 입신 출세한 관료가 소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청렴을 존중하는 관료를 존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태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방법의 공정성과 경전강독 및 논문작성의 중요성을 교육방법으로 제시했다.이와 더불어 스승의 인격적 감화력이 태학생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실례로 곁들였고,사회가 요구하는 수신의 교육과목들을 훈회항목 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태학지」는 한마디로 조선왕조가 자랑하는 교육문화의 진수를 담았다.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수호한 조선시대 성균관의 학풍은 오늘날 대학들도 받아들여야 할 교육지침서일 수도 있다.국역본 「태학지」는 지난해 성균관이 특별한시 기구로 설치한 편찬사업회가 1년만에 완성한 것이다.
  • 에비야/박삼중 지음(화제의 소설)

    ◎조선인 귀·코 베어간 일 잔혹행위 고발 재소자 교화로 널리 알려진 지은이가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베어간 왜병들을 지칭하는 경계언어였던 에비야를 소재로 쓴 첫 역사소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희생된 조선 병사와 양민들의 수난사를 한 승려의 눈을 통해 추적,특히 풍신수길의 지시로 수 많은 양민들의 귀와 코를 도륙해간 일본인들의 잔혹행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박삼중스님이 우연히 풍신수길의 사당과 이총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수년간의 노고끝에 이총을 고국으로 봉환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삶과함께 5천원.
  • 교정일꾼들께 격려를 보낸다(사설)

    어느 사회에서든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일함으로써 사회를 밝고 환하게 이끌어가는 숨은 일꾼들이 있다.교도소안에서 재소자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그들을 교화하고 선도하는 교정직 공무원들이야말로 그런 직분을 수행하는 전형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서울신문사가 한국방송공사와 공동으로 주최한 제12회 교정대상시상식이 어제 열려 대상·본상·특별상·장려상등 17명의 수상자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다.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응달에서 사랑과 봉사의 희생정신으로 인간애를 꽃피운 수상자들에게 우리는 축하와 함께 존경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우리나라의 행형제도는 아직도 후진적이며 열악한 환경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한 어려운 여건에서 수상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재소자의 교화와 출소자의 선도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사람들이다. 교정직공무원들은 교도소안에서 근무하고 있으므로 흔히 「반수인」이라 불리기도 한다.재소자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무한한 고초와 인내를 필요로 하고있다.그런 삭막한 환경에서 일하는 교정직공무원들에 대해서 우리사회는 격려와 이해의 시선을 보내는데 매우 인색하였다.오히려 일부 비이에 대해서 질책과 매도를 퍼붓는데 더 열을 올려왔던게 사실이다.12년전 「교정대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숨은 봉사자들을 찾아 시상해온 것은 교정직공무원들의 사기를 높여주자는데 참뜻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대상을 받은 진주교도소 박상묵교위의 공적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생계가 어려운 재소자의 가족을 박봉을 쪼개 돕는가하면 출혈과다로 생명이 위독한 재소자에게 직접 수혈을 해줘 살려내기도 했다.참으로 고귀한 인간애와 희생정신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인가.현재 전국교도소에는 5만6천여명의 재소자가 있다고 한다.이들의 교화와 선도,사회복귀를 위한 기술훈련등은 물론 교도소가 맡아 해야할 일이다.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교정사업이 1만2천여 교정직공무원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사회 전체가 재소자들의 교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랑만이 재소자들의 굳어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출소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우리사회는 출소자를 전과자라해서 냉대하고 기피하는 현상이 심하다.교도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기능사자격증을 따가지고 나왔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출소자들이 사회에 복귀할수 있도록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들이 앞장서 직장을 알선해주고 뒷받침을 해줘야 할 것이다.재소자나 출소자나 우리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하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선도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 “응달비추는 갱생 등불”/서울신문사·법무부 제정 교정대상 시상

    서울신문사가 한국방송공사및 법무부와 공동으로 제정한 제12회 교정대상 시상식이 20일 상오 11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김두희법무부장관과 김택수법무부교정국장,이한수서울신문사장,홍두표한국방송공사사장등을 비롯한 각계인사,교도관가족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자로 선정된 진주교도소 박상묵교위가 상금3백만원과 부상을 받았고 본상을 차지한 수원교도소 이찬주교사등 4명과 특별상 수상자인 정동하씨(61·포항북부교회장로)등 4명은 상금 2백만원과 부상을 각각 받았다.또 대전교도소 임재근교사등 장려상 수상자 8명은 상금1백만원과 부상을 각각 수여받았다. 이날 교정직 수상자 가운데 비간부인 교사5명은 초급간부인 교위로 일계급 특진됐다. 이사장은 이날 식사에서 『자기 희생을 통해 불우한 재소자들에게 헌신적인 봉사를 다하고 있는 수상자들이야말로 사회를 밝고 맑게하는 등불이요 샘물』이라고 지적하고 『우리모두 갱생의 희망을 안고 사회에 복귀하는 재소자들을 보살피는데동참하자』고 당부했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대상▲박상묵 ◇본상▲면려상 이찬주▲성실상 안상건(55·안양교도소 교사)▲창의상 홍백의(54·서울소년감별소 보도주사)▲교화상 이상춘(55·서울성동구치소 교회관) ◇특별상▲박애상 정동하▲자비상 김성(53·청주풍주사 주지)▲자애상 박강조(50·공주중동천주교회 사회봉사단장)▲공로상 손경호(67·경북 도의회의장) ◇장려상▲면려상 임재근▲성실상 안승철(55·마산교도소 교위)▲창의상 김기옥(55·서울구치소 교사)▲교화상 홍철종(45·제주교도소〃)▲박애상 이진휘(69·군산성광교회 목사)▲자비상 이택익(42·조계종전국불교회관 사무국장)▲자애상 이희복(52·청송1보호감호소 교화위원)▲공로상 강석붕(62·대전강치과원장)
  • 황광철·광일 형제가 말하는 「요즈음 북녘」

    ◎“허기진 채탄공 막장서 쓰러지기 일쑤”/하루 13시간 작업… 가족과 얘기할 틈도 없어/전기·갱목 등 부족… 기계놀리고 사고 잇따라/청소년 탈선 날로 늘어… 12살짜리가 담배·도박 버젓이 동생과 함께 지난 6일 귀순한 황광철씨(20·탄광채탄공)는 13일 서울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북한 광부들은 언제 막장이 무너질 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채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동생 광일군(18)은 식량난으로 서너끼 굶는 것은 예사이며 이 때문에 어린이의 40∼50%가 구루병을 앓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동안 서울을 돌아본 인상은. ▲광철=차를 타고 다니며 유심히 길가를 살폈다.사람들 표정에 활기가 넘치고 차가 무척이나 많다.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판자촌이 밀집돼 있고 깡통찬 어린이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고 배웠는데 모든게 거짓말임을 새삼 깨달았다.몰래 여섯차례 가본 평양과 비교해볼 때 규모나 시설등 모든 면에서 상대가 안된다. ▲광일=형은 서울에 와서처음 양복과 넥타이를 입어봤다.나도 처음 구두를 신어본 탓인지 뒤꿈치가 아프다. 길거리가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복무성(인사성)이 밝고 친절했다. ○구두 처음 신어봐 ­어떻게 해서 채탄공으로 일하게 됐는가. ▲광철=북한에서의 직업은 부모성분에 따라 평생 좌우된다.지난 87년 어머니(51)가 협동농장에서 『왜정시절보다 살기 더 어렵다』며 식량을 훔친뒤 개천교화소에 수감되는 바람에 대학진학이나 군입대는 엄두도 못내고 탄광에서 일하게 됐다.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탄광기공학교에서 채굴방법등을 배운뒤 92년3월부터 함북 회령시 궁심동 궁심탄광에서 채탄공과 발파공으로 중노동에 시달렸다.아버지(56)도 이 탄광에서 경리과장을 지내다 어머니 때문에 채탄공으로 전락했으며 형(25)도 채탄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탄광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광철=1천2백명이 일하는 탄광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중노동과 굶주림의 연속이었다.말로는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일하게 돼있지만 12∼13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기일쑤이고 자고 깨나면 탄캐는 일이 전부이다.특히 부모나 형제와는 다른 갱도에 배치해 작업중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집에서도 서로 엇갈려 말조차 나누기 어렵다.작업복이 1년에 한벌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옷을 빨 때는 형과 번갈아 작업복을 바꿔 입기 일쑤이다.또 도시락을 못갖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휴식시간은 점심시간이 고작이고 그나마 30∼40분밖에 주지않는다.월급은 1백50∼1백80원을 받았으나 고작 중국제 운동화 한켤레를 살 정도이다. ○자고깨면 일… 일… ­그래 가지고는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을 텐데. ▲광철=궁심탄광의 경우 지하 2천4백m 사갱에서 일하는데 갱도를 팔때 갱목이 모자라 70㎝마다 세워야할 갱목을 2m 간격으로 설치해 사고가 잦다.전기도 부족해 2백20t 전압대신 1백70t만을 공급해 기계가동률이 3분의1에 그치고 있다.자연히 작업능률도 떨어져 개인당 하루채탄량 목표가 3.5t이지만 겨우 1∼1.2t밖에 케내지 못하고 있다.지난 91년에는 갱목을 빼다 막장이 무너져 4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쳤으며 갱내의 가스폭발로4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나 역시 92년6월 막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왼손 새끼손가락을 못쓰게 됐으며 발파공으로 일할때도 불량뇌관이 터져 오른쪽 눈에 파편을 맞았는데 다행히 실명의 위기는 넘겼다. ○주체사상 안믿어 ­학교에서의 주체사상 교육은. ▲광일=주체사상을 배워도 보통 14살이 되면 이를 믿지 않는다.국경에 인접한 지역이라 중국 조선족 상인이 많이 드나들어 남한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데 『남조선 어린이들은 대부분 거지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말하면 『남조선이 거지면 북조선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남조선을 따라 잡으려면 수십년이 더 걸린다』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자력갱생을 믿지 않았다.김일성의 신년사와 회고록을 학습하라고 하지만 모두 건성으로 들으며 집에 와서는 구석에 처박아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광철=신년사때마다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준다고 떠들지만 10년동안 구경도 못했다.인민학교때 1년에 두번 사탕을 주는 것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날에 그치고 있다.교과목이 15∼16과목에 달하지만대학에 진학하려면 반드시 김일성부자 혁명사와 혁명정책등 세과목의 성적이 뛰어나야 한다. ­청소년들의 생활은. ▲광철=북조선 학생들의 탈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평양의 당간부 자녀들이 집에서 디스코등 사교춤을 추다 적발돼 처형당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광일=북한에선 중학교 1학년인 12살쯤되면 담배를 피운다.아버지 담배나 꽁초를 주워 종이에 말아 피우곤 한다.집에서 갱냉이(옥수수)로 술을 몰래 담가 먹으며 화투나 중국제 트럼프로 놀이를 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 오락시간에는 TV나 남한방송을 통해 알게된 「홍도야 울지마라」 「최진사댁 셋째딸」 「독도는 우리땅」 「낙화유수」등의 남조선 노래를 선생들과 함께 부르며 춤을 추는 때도 가끔 있다. ­식량난이 극심하다는데. ▲광철=북한을 탈출하기전까지 두달반이나 식량배급이 중단됐었다.그 이전에도 하루 9백g인 식량을 절약미니,애국미니(이를 비꼬아 강압미로 부름)하며 갖은 명분을 붙여 6백50g만 주는데 그나마 쌀은 고작 10%에 지나지 않는다.그래서 산이나 들로 나가 쑥이나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일쑤이고 가을이면 들쥐잡이가 성행하곤 한다.군인들도 보초서기를 자원해 몰래 민가에 내려가 갱냉이등 식량을 훔쳐 먹고 겨울에는 땅속에 훔친 식량을 묻어놓고 꺼내 먹는다고 한다. ▲광일=얼마나 못 먹었는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11개월 생활하는 동안 키가 7㎝,몸무게는 11㎏이나 불었다.북한에서는 일년에 보통 키는 5㎝,몸무게가 3∼4㎏밖에 늘지 않았었다.보통 대분분이 서너끼 굶는 일이 예사여서 인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40∼50%의 어린이가 다리가 휘어지는 구루병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여동생도 제대로 먹지 못해 두살때까지 걷지를 못하는등 영양실조로 많은 고생을 했다.그래서 학교를 나가지 않고 엿장사와 비누장사를 해 생계에 보태곤 했는데 이 여동생을 두고온게 가슴이 아프다. ­중국과의 접경지에서 식량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광철=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하고있음을 잘 알고있는 지역이라 배급사정이 갈수록 나빠지면 이에 항의해 아우성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그럼에도 안전부 지도원들은 주민들의 소란을 함부로 억누르면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통제하고 있다. ­다른 생활필수품 사정은. ▲광철=물만 흔할 뿐인데 장마철에는 그나마 방목한 소들의 똥으로 오염돼 구하기가 쉽지 않다.치약이 없어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고 비누는 구경하기도 어렵다.화장지는 커녕 종이도 없어 화장실에 가서는 강냉이잎으로 대신 뒤처리를 한다.된장과 간장은 지난 84년이후 배급이 중단된 것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주민들 사이에는 『백성 굶어 죽이는게 인민대중식 사회주의냐』라는 비아냥소리가 나돌고 있다. ­탈출동기는. ▲광철=어머니가 개천교화소에 수감된이후 발전이 불가능하고 더이상 막장에서 인생을 끝낼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다.89년 아버지 주머니에서 1백원을 훔쳐 소형라디오를 산뒤 움막에서 혼자 남조선 사회교육방송과 모스크바 조선족방송을 들으며 남조선 사회를 동경해왔다.남조선 라디오를 들을 때 『민주화,언론의 자유,인권옹호』라는 말들이 나왔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난날에는 남조선 대학생의 시위상황을 TV로 지켜보면서도 『대학생들이 저렇게 옷을 잘입나』라는 의문을 품어왔다.또 북조선 기자들이 서울에 가서 임수경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잘 사는지를 알고 놀란 일이 있다. 하루는 아버지에게 남조선 사정에 대해 물어보니 『남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이 95년까지 1만달러에 달할 것이며 북조선은 이의 6분의1에도 안된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아버지도 이미 탄광의 경리과장 시절 소련에 벌목공으로 파견갔다 돌아온 사람들과 중국상인들로부터 들어 남한의 사정을 환히 알고 계셨다.남조선이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알고 기회를 엿보다 탈출했다.북조선을 탈출할때 아버지 신발안에 탈출사실을 알리는 쪽지를 써놓고 나왔는데 아버지기 지금 귀순사실을 아시면….(이때 부모생각으로 말을 잠시 잊지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국경인근 지역이라 중국상인들과 접촉이 많았을 텐데. ▲광철=하도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젊은 여자들이 몸을 파는 사례가 늘고있다.이들은 한결같이 빨간바지를 입어 몸을 팔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중국측 상인들이 이를보면 부채를 저으며 유혹하곤 한다.화대는 50원 가량이며 사탕 한봉지로도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또 풍기도 많이 문란해져 복면을 한 청년들에 의한 강간사례가 늘고 산부인과에는 소파수술을 받으려는 여자들이 줄을 서기도 한다고 들었다. ○가족 고통이 선봬 ­앞으로 남한에서의 생활은. ▲광철=남조선의 발전된 모습을 가족과 동포들에게 알리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가족들이 이미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이때 울먹였다)북조선에서는 중노동을 하지않는 지질기사나 측량기사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남한에서는 기회가 되면 건축설계사 공부를 하고 싶다. ▲광일=어려서부터 도구 만지는 일에 재미를 붙여왔는데 앞으로 자동차나 기계수리 전문가가 되고 싶다.
  • 평양 우라늄공장 출신 탈출자 김대호씨 증언

    북한 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 연합기업소 폐수처리반장으로 일하다 생활고와 차별대우를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중국을 거쳐 귀순한 김대호씨(35)는 12일 서울신문에 구술한 탈출기에서 북한이 체제수호를 위해 우라늄 증산을 독려하는 등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돼 있다고 증언했다. ◎“북 핵개발비 김일성 특별회계서 지출”/“통일은 핵으로 시작… 핵으로 마무리” 교시/“영변사업 성과에 만족” 김부자 TV 선물/“공해상 섬 날아갔다”… 핵무기 실험소문 여러차레 나돌아 지난 2월 2일 새벽 2시쯤.중국 땅의 따사로운 불빛이 두만강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이제 저 강만 건너면 지긋지긋한 북한을 탈출하게 된다.가슴이 뛰었다.주위는 쥐죽은듯 고요했다.순찰도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강변의 갈대숲을 헤치고 나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약간 전진했다가 5분동안 주위를 살피고 또 앞으로 나아갔다.회색 코트를 입어 눈에 잘 띄지않을 것이라는 점이 조금 위안이 됐다. 강을 건너며 31년전 길림성에서 살다 어머니의등에 업혀 북한으로 오던 생각이 문득 났다.일제때 만주땅으로 건너간 부모님은 탁아소에서 중국말을 먼저 배우고 있던 나를 내내 못마땅해 했다.부모님이 귀국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이런 나를 조국에서 떳떳이 키워보리라는 뜻에서였다.그러나 북한에서 살아온 지난 30년은 결코 떳떳하지 못했다.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생일날 “남행” 첫발 한편으로 저 강을 건너더라도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연길에 사는 친척의 전화번호는 갖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한다면….북한 관원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1시간만에 일단 중국 땅에 발을 딛는데 성공했다.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왔다.주위는 아직도 어두웠다.정신을 차리고 수첩을 꺼내 들었다.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때 심정을 이렇게 옮겨 놓았다. 「내 진정 사랑했어요 충성을 다했어요 하지만 그대는 사랑하지 않았어요… 아 북녘의 하늘아래 이내 짝사랑 원한으로 묻혔어요… 내 이젠 깨달았어요 늦게야 알았어요 나는야 이제라도 찾겠어요 진정한 사랑을」 85년 8월 제대한 나는 북한 원자력 공업부 산하 남천화학연합기업소의 건설을 맡았던 1248부대에서 복무했다는 이유로 우라늄 정광 생산공장인 평북 운전군 4월기업소에서 우라늄 폐수처리작업 노동자로 일하게 됐다.북한은 김정일의 지시로 1248부대의 제대자들을 4월기업소와 영변지구에 배치했던 것이다.이때부터 내 뜻과는 관계없이 핵원료 제조공장에 몸담게 되었다. 87년 9월에는 건설중이던 남천화학으로 옮겨 조업준비업무를 맡았다가 그후 남천화학의 폐수처리작업반장을 담당하게 됐다. 북한의 핵문제가 전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북한이 진정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나의 직책이 우라늄 정련공장의 폐수처리작업반장으로 핵무기 개발과정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북한이 옆 공장의 공정조차도 다른 부서 사람들이 알 수 없게 할 만큼 핵개발과정을 극비에 붙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4월기업소와 남천화학에서 9년동안 일하면서 북한이 우라늄증산을 독려하는등 핵무기 개발에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됐다. 북한은 평남 순천과 황북 평산 1월기업광산,황북 금천 월암광산등 3곳의 우라늄광산에서 우라늄을 캐내고 있고 다른 지역에도 탐사대를 두고 대대적인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평산과 금천광산에서 생산된 우라늄 원광은 남천화학으로 보내져 정련하게되고 순천광산의 광석은 4월기업소로 보내진다.4월기업소는 또 남천화학에서 정련하다 남은 찌꺼기를 다시 모아 재정련하는 일도 한다. ○안도의 심정 수첩에 두곳에서 정련된 우라늄은 다시 핵개발 시설이 집중돼 있는 평북 영변의 8월기업소와 12월기업소에 보내져 재정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8월기업소는 핵발전 동력원으로 쓰이는 순수한 우라늄 연료봉을 생산하고 12월기업소는 연료봉을 연소시켜 핵발전물질을 추출하는 일을 한다. 남천화학은 1천5백여명의 노동자가 있는 우라늄정광 생상공장과 501연구소,월암광산,1월광산,보조기업소인 67건설사업소,6월20일 농장등으로 구성돼 있고 총 노동자는 8천명이 넘는다. 남천화학은 파쇄,침출,추출,바나듐추출,폐수처리등 공정별로 나눈 11개 공장으로 편성돼 있고 우라늄뿐만 아니라 바나듐,라외듐,니켈,몰리브덴등도 생산한다.501연구소는 준박사(박사 아래를 지칭)인 소장아래 핵물리학을 전공한 1∼2급연구사 2백여명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67건설사업소는 직원들의 주택이나 공공건물을 짓는 일을 담당하고 6월20일 농장은 기업소의 부업농장이다. ○우라듐 증산 독려 남천화학의 설계상 우라늄 생산능력은 40만t이었으나 91년 6월 조업을 시작할 당시의 생산능력은 20만t이었다.그러나 설비는 갖춰 놓았어도 현재는 많이 생산할 때가 한달에 8∼10t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채광하는 데도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캐낸 원광을 원반할 차량의 기름이 없고 갈아 끼울 타이어가 없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여기에다 생산설비들이 우라늄추출 첨가제인 유산으로 인해 산화돼 정상가동을 못하는데다 노동자들의 직업병으로 생산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4월기업소 또한 많이 생산할 때가 한달에 1t정도로 두공장을 합쳐 1년 생산량이 1백여t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의 핵원료 생산과정이다.앞서 밝혔듯이 핵무기 보유여부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극히 위험한 단계에 와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4월기업소에 근무할 때 언젠가 극비문건으로 취급되는 김일성부자의 지시문을 본 일이 있다.거기에는 「원자력 공업을 자체의 기술과 설비 자재로 주체화해야 한다.원자력에서 조국통일을 시작해 원자력에서 조국통일을 총화(마무리)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원자력개발을 위한 자금은 「주석자금」으로 불리는,말하자면 김일성의 특별회계에서 지출된다. 3공병국이라는 원자력 건설담당부대는 김정일이 친위대라고 부른다.그만큼 김부자는 원자력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이 부대는 88년 10월 평북 대관군에 핵저장고를 건설했고 90년 10월에는 함북 화성군에 핵시험소를 건설하는등 핵시설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핵물리학자 수백 88년에는 김부자가 영변지구를 시찰한뒤 핵개발에 성과가 있었다고 매우 만족했다고 하며 핵기술자와 과학자들에게 「색테레비」를 선물로 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뒤에 핵무기 생산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도 생산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없다. 핵무기와 관련해서 이런 소문도 있다.「일본 도쿄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공해상의 섬이 북한의 핵실험으로 없어졌다」는 것이다.이것말고도 북한이 어디어디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북한의 핵개발 상황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이고 다시 내가 북한을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얘기하고자 한다. 91년 어느날 남천화학의 초급당 비서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너한테는 현재 그자리도 과분하다』는 말이었다.나는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나는 중국에서 태어난데다가 장인이 6·25때 치안대에 가담해 출신성분이 좋지 못한 관계로 나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껴왔던 것이다. 나의 장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끝에 남포 수산기지의 책임자로 자원하기로 했다.거기가서 당에 충성하면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이 수산기지는 남천화학이 자체 외화벌이를 위해 전복이나 해삼,대합조개등을 따 수출하는 사업체였다. 이곳으로 간 것이 결국은 나의 운명을 바꾸었다.한 무역회사의 간부에게서 미화 5천달러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일화 3백10만엔을 기지 운영자금으로 빌렸다가 종업원의 동생인 골동품 장수와 태권도 국장의 아들에게 그만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이 일로 해서 나는 체포령을 받아 쫓기던 끝에 두차례 감옥생활도 하고 강제노동도 했다.그후 교화소에 보내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짜 진단서를 만들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병원에서 나는 「여기서 일생을 망칠바에야 탈출하자」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뇌물주고 증명떼 인민위원회 2부의 관리에게 뇌물로 양복지를 주고 여행증명서를 얻어 친척집이 있는 두만강 하류 새별시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1월 7일 새벽1시.그곳 친척집에 머물다 첫머리에 쓴대로 두만강을 넘어가 중국 연길시의 친척집에서 두달동안 지냈다.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북한 밀정들이 탈북자를 손에 쇠줄을 꿰어 끌고 갔다」는둥 하는 별의별 흉흉한 소문을 다 들었다. 하루는 북한이 한 군관이 남방으로 가 남한에 귀순,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 소식을 듣고 나는 결심했다.나도 남한으로 가자.친척을 통해 귀순 경로에 대한 도움을 받고 중국돈 3천원을 품속에 넣은채 남행을 출발한 것은 4월 9일 새벽 5시.그날은 마침 나의 생일이었다. 남방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길림성 역전에 앉아 생일을 자축하는 소주잔을 들이키며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서른다섯번째 생일인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 대상에 박상묵 교위/제12회 교정대상 수상자 17명 확정

    ◎본상/이찬주 안상건 홍백의 이상춘/특별상/정동하 김성 박강조 손경호/서울신문사·방송공사·법무부 제정 서울신문사가 한국방송공사·법무부와 공동으로 제정한 제12회 교정대상 수상자 17명이 10일 확정됐다. 영예의 대상은 27년동안 교정공무원으로 묵묵히 일해오면서 불우재소자 가족돕기와 무의탁 재소자 취업알선,생계곤란재소자 벌금대납,장기수형자 교화등에 힘써온 진주교도소 박상묵 교위(57)가 차지했다. 또 본상은 수원교도소 이찬주 교사(47)등 4명이,특별상은 포항북부교회장로 정동하씨(61)등 4명이,장려상은 대전교도소 임재근 교사(55)등 8명이 각각 차지했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과 부상이,본상과 특별상에는 상금 2백만원과 부상이,장려상에는 상금 1백만원씩이 각각 주어진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대상 ▲박상묵 ◇본상 ▲면려상 이찬주 ▲성실상 안상건(55·안양교도소 교사) ▲창의상 홍백의(54·서울소년감별소 보도주사) ▲교화상 이상춘(55·서울성동구치소 교회관) ◇특별상 ▲박애상 정동하 ▲자비상 김성(53·청주 풍주사 주지) ▲자애상 박강조(50·공주 중동천주교회 사회봉사단장) ▲공로상 손경호(67·경북도의회 의장) ◇장려상 ▲면려상 임재근 ▲성실상 안승철(55·마산교도소 교위)▲창의상 김기옥(55·서울구치소 교사) ▲교화상 홍철종(45·청주교도소 〃) ▲박애상 이진휘(69·군산 성광교회 목사) ▲자비상 이택익(42·조계종 전국불교회관 사무국장) ▲자애상 이희복(52·청송1보호감호소 교화위원) ▲공로상 강석붕(62·대전 강치과원장)
  • “북 방사능노출 환자 많아”/귀순자 3명 일문일답

    ◎어린이들 제대로 못먹어 키 안자라/주민 10%정도 남한방송 몰래 청취 북한을 탈출한 김대호씨등 3명은 9일 하오 2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에서는 가정환경이 불순한 사람에 대한 차별대우가 심한데다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어 탈출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탈출동기와 경로는. ▲(김씨)장인이 6·25때 치안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고 사회적 발전을 기대하지 못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됐다.그러던 차에 남포 수산기지의 책임자로 있을 때 차용한 거액의 외화를 사기당해 탈출을 결심했다.지난해 2월2일 두만강을 넘어 연변의 친척집에 숨어 있다 인민군 군관이 남한에 귀순해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순하게 됐다. (황군 형제)87년에 어머니가 협동농장에서 강냉이를 훔쳤다는 이유로 15년형을 선고받고 교화소에 복역하게 됐다.이 일로 사회적 냉대를 받게돼 탈출하기로 했다.작년 6월 5일 우리 형제는 두만강을 도강,친척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어느농촌집에서 일하며 숨어 있다가 남한 사회교육방송을 듣고 남한 배를 몰래 탔다. 중국에 있는 동안 탈북자를 북한 공안원이 코를 꿰어 체포해 갔다는 말을 들었다. ­북한의 핵시설은. ▲우라늄 광산이 평남 순천등 3곳에 있고 채광된 원석은 남천화학등 2곳의 정련공장에 보내진다.여기서는 순도 40%정도의 우라늄을 생산하는데 최근에는 원석 운반차를 움직일 휘발유가 없을 정도로 경제난에 시달려 생산량이 떨어지고 있다. ­직업병을 가진 노동자는 없나. ▲많은 노동자들이 방사능에 노출돼 간염·백혈구·감소증·탈모증·결핵등에 시달리고 있으나 변변한 치료시설도 없다. ­북한 주민들의 동향과 남한방송 청취정도는. ▲10%정도 된다.주민들의 남한 방송청취는 주파수를 고정시켜 버리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북한주민들은 강냉이도 못 먹는 현실을 한탄하며 속아 살았다고 불평하고 있다.어떤 사람들은 이씨왕조가 5백년을 갔는데 김부자도 5백년을 갈까 걱정이라고 숨어서 말한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황군 형제)북한에 있을 때는 키가못 먹어서 1백57㎝밖에 되지 않았고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였다.중국으로 탈출해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아이들은 두달이 지나도 걷지 못하고 구루병에 걸린 아이들도 40∼50%나 된다.2∼3개월이나 식량을 배급받지 못해 들쥐굴을 파 강냉이를 구하기도 한다.군인들이 보초를 서는동안 닭이나 돼지등을 도둑질하는 일도 흔히 있다.먹을 것은 물론이고 간장이나 된장,치약 칫솔 빨래비누도 귀하다.
  • 젊은이들 3D직종 기피 확산(북한 이모저모)

    ○근로의욕 고취 안간힘 ○…북한에서도 갈수록 신세대 청년들의 어렵고 힘든일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와관련,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최근호에서 탄광·농장·주택보수·벌목한 나무를 강을 이용,운반하는 일등 「기피직종」의 당세포비서들이 자신의 직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세대 청년들을 선도하고 신세대들의 자유화 바람과 수정주의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 이 신문에 의하면 당세포비서들은 직업에 불만이 많은 청년들이 주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계층임을 감안해 이들의 심리상태와 가정환경·지식·능력·취미·건강 등을 상세하게 파악한후 개인에게 적합한 교양방법을 마련해 교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또 기피직종의 경우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며 당은 이런 일꾼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일깨워 주고 모범사례를 적극 소개해 근로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는 것. ○콩이용 인조고기 생산 ○…북한은 최근 콩깻묵을 이용해인조고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 곡물공학연구소와 경공업과학원 식료기계연구소 학자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콩인조고기는 애벌기름을 짠 콩깻묵으로 만든느데 영양가가 높고 가공이 편리하며 저장하기도 좋다고 이 신문은 주장. 1백g당 열량값을 비교해 보면 돼지고기가 1백7㎉,쇠고기는 88㎉인데 비해 콩인조고기는 이들보다 훨씬 높은 1백34㎉라는 것. ○작문에 구어사용 권장 ○…북한은 최근 「인민학교」(국민학교)학생들의 감상문 쓰기에서 구어를 보다 많이 사용하도록 지도할 것을 일선 교사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평양에서 발행되는 잡지 「문화어학습」최근호에 의하면 이는 김정일이 「주체문학론」에서 『언어 형상에서 인민대중의 요구를 구현하자면 인민이 늘 쓰는 입말을 작품에 적극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 전과자(외언내언)

    얼마전 미국의 「3스트라이크 아웃법」이 화제가 됐었다.캘리포니아주정부가 야구의 「스리 스트라이크 아웃」규칙을 본떠 만든 법률이 그것.두차례이상 중죄를 저지른 범인이 또다시 중죄를 범할 경우 25년동안 집행유예를 허용하지 않고 종신형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상습누범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교정은 무의미하고 흉악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위해서는 「격리수용」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서 이법률이 채택됐다.전과자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의 경우 조선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고 경국대전은 전한다.절도를 3차례 한 자와 재범자는 모두 교수형에 처해 사회와 격리시켰던 것이다.이같이 예나 지금이나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과자들이 말썽이 되어온 것을 알 수 있다.지난 1일 발효된 「성폭력 특별법」이 성폭행 피의자를 중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도 성폭력범죄가 그만큼 많아 사회문제화돼 있기 때문이다.중형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전과자범죄가 해마다 급증하고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전과자대책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나 심각한 상황으로 서둘러야한다는 것이다.전국교도소의 기결수 가운데 60%가 전과자이고 누범비율은 80년 27.5%에서 90년 45.1%로 급격한 상승세다.이처럼 많은 범죄가 전과자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대책은 형벌및 보호감호처분 이외에는 뾰족한 게 없다는 데서 문제가 된다. 이래서는 안된다.우리가 미국의 「3스트라이크 아웃법」을 도입할 수 없다면 교화행정을 꾸준히 필 수 밖에 달리 방법이없다고 본다.교정분야에 집중투자가 있어야한다.교정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우선 문제다.교정전문가에 대한 처우가 좋아야하고 교정행정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어야한다.또 현행 보호감호제도 운영의 개선이 있어야하겠다.수형자를 보다 세분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범법행위를 미리 막는 노력 못지않게 재발을 방지하는 전사회적인 조치가 절실한 때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