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교화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낙하산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문강사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옥살이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에든버러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95
  • 일상 속 수행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한다

    일상 속 수행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한다

    각박한 일상에서 희망을 찾고 수행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대규모 불교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다음달 15~21일 대구 동화사에서 전국선원수좌회와 선원수좌선문화복지회가 ‘간화선, 세상을 꿰뚫다’를 주제로 개최하는 제2회 간화선대법회와 오는 26~29일 밀교 종단인 진각종이 서울 진각종 총인원과 AW컨벤션센터에서 여는 제28회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서울총회. 간화선대법회가 대표 선지식들의 법석을 통해 ‘참 나’의 발견을 이끈다면 WFB 총회는 생활 속 수행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로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에선 초기 불교와 명상 등 다양한 수행이 범람하는 추세. 이런 상황에서 간화선 대법회는 한국불교가 유일하게 수행 전통을 오롯이 지켜오고 있다는 간화선 수행 가치의 확인과 세계화 가능성을 진단해 보는 행사로 주목된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을 비롯해 무여(봉화 축서사 선원장), 혜국(석종사 금봉선원장), 함주(법주사 총지선원 선덕), 지환(동화사 금당선원 유나), 현기(지리산 상무주암 수좌), 대원(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스님 등 한국 최고의 선지식 7명이 차례로 법석에 올라 법을 설한다. 2013년 4월 서울 조계사에서 ‘올바른 참선의 뿌리를 찾아서’란 주제로 열려 연인원 1만 4000여명이 운집했던 첫 회 간화선 대법회가 간화선의 연원과 본질에 대해 탐구했다면 이번 대법회는 간화선 세계화와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를 목표로 삼은 게 특징이다. 법회에선 최고 선사들의 수행체험담과 함께 도전과 극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참 나’의 이해, 간화선 수행법 지도가 이어진다. 특히 ‘스님들과의 대담’으로 현대인들에게 깨달음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간화선대법회 공동추진위원회는 “바쁜 일상 속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사는 현대인들이 삶의 본질을 묻고 직접 답을 들을 수 있는 자리”라면서 “일반인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린다”고 당부했다. 추진위는 특히 “눈으로 보고 배우는 지식으로 살아가며 물질에 마음 뺏긴 현대인들은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며 “부정적 마음을 긍정으로 돌리는 힘을 갖는 간화선 수행의 대법회는 종교를 초월한 법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진각종이 주최하는 제28회 WFB 서울총회는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기치로 내건 국제 행사. WFB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1990년, 2012년에 이어 세 번째다. WFB는 불교 종파를 초월해 국제사회에서의 불교 역할을 논의하기 위해 1950년 스리랑카에서 창립됐으며 2년마다 총회를 개최해 왔다. 이번 총회에는 50개국 불교대표 400여명, 국내인사 700여명이 참석한다. 공식행사는 27일 WFB 대표자회의(AW컨벤션센터), WFB 서울총회 개회식(진각종 총인원), 환영 만찬으로 시작한다. 축하연설에서 각국 WFB 지도자 10여명이 ‘생활의 불교화, 불교의 생활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28일에는 ‘봉사를 통한 생활불교의 실현’을 주제로 불교복지봉사포럼이 열리며 마지막 날인 29일에는 ‘현세정화와 밀엄정토’를 주제로 한 학술포럼과 폐회식 및 선언문 채택, 도라전망대, 판문점 문화답사가 마련된다. 판문점에서는 전 세계 불교지도자들이 세계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발원할 예정이다. 창종 70년을 맞는 진각종은 이번 총회를 계기로 진각종과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적인 생활불교로서의 종단 면모를 부각시키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진각종 통리원장 회정정사는 “WFB 총회는 시대의 난제를 직시하고 토론과 성찰을 통해 해결의 공감대와 실마리를 모색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면서 “한국불교가 유구한 불교전통과 폭넓은 불자층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러한 신행전통을 세계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세계불교의 주역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도소 담장 안… 한가위 온정 가득

    교도소 담장 안… 한가위 온정 가득

    단독주택서 1박 2일 가족 접견 추석 당일 수용자들 합동 차례 대전교도소 논산지소의 수용자 A씨는 교도소 청소와 잡무를 도맡으며 줄곧 성실한 생활을 해 오고 있다. 그러나 늘 미소를 머금은 얼굴 뒤에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뇌졸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서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논산지소는 추석을 앞두고 만남의 기회를 마련하기로 했다. 가족접견실에서 두 시간 남짓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최씨는 그 시간을 위해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그동안 성실히 일해 받은 작업 장려금을 모은 용돈이다. 법무부는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오는 23일까지 ‘추석맞이 교화행사’를 연다고 12일 밝혔다. 전국 30개 교정시설에서는 가족과 음식을 먹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가족 만남의 날’ 행사가 열린다. 교정시설 대강당이나 잔디밭 등에서 가족이 준비해 온 음식을 함께 먹으며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홍성교도소 등 21개 교정시설에서는 담장 밖 펜션형 단독주택에서 가족과 1박 2일을 함께할 수 있는 ‘가족 만남의 집’ 행사를 준비했다. 23개 교정기관은 가족접견실에서 수용자가 가족만을 만날 시간을 제공한다. 추석 당일인 오는 15일에는 전국 52개 교정시설의 수용자들이 합동 차례를 지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2016 공직열전] 법무부(상)

    [2016 공직열전] 법무부(상)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간판을 바꿔 단 적이 없는 부처는 법무부와 국방부 두 곳뿐이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법무부의 역할이 그만큼 정부의 고유·핵심 기능이라는 의미다. 법무부는 2실 3국 2본부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검사들, 그중에서 검사장급 고위 간부들이 대부분 부서장을 맡고 있다. 누구나 법무부 하면 언론 노출이 잦은 검찰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 법무부에서 검찰의 비중은 30%를 조금 넘는다. 외청 형태로 법무부의 지휘·통제·지원을 받고 있는 검찰(64개 기관 9910명) 외에도 교도소(56개 기관 1만 5385명), 보호관찰소(63개 기관 1521명), 소년원 및 치료감호소(29개 기관 1163명), 출입국관리소(46개 기관 1893명) 등 전국 단위의 고유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들을 산하에 두고 있다. 전체 인원만 3만명이 넘는다. 김현웅(57·사법연수원 16기) 장관을 보좌해 법무부를 이끄는 이창재(고등검사장급) 차관은 기획통이면서도 2011년 일명 ‘벤츠 여검사’ 사건 특임검사를 맡고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지낸 특수통이기도 하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균형 감각과 정확한 판단력 때문에 후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고 말했다. 신임 검사들이 임용 때 낭독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명문(名文) ‘검사선서’의 초안도 검찰과장 시절 이 차관의 펜 끝에서 나왔다. 검찰 농구동호회 회장이기도 하다. 법무부 전체 예산편성 및 인사·조직·성과관리 등을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은 권익환 검사장이 맡고 있다. 차기 검찰국장으로도 거론되는 권 실장은 2011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시절 저축은행 부실 비리 수사를 담당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의 단장으로 맹활약했다. 올 들어 형사사법 포털을 통한 신속한 사건 조회 및 약식사건 처리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범죄예방정책국은 그 이름대로 범법자의 재범 방지를 통한 범죄 예방이 핵심 기능이다.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보호관찰소와 소년범들을 관리하는 소년원,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등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정신질환 범죄자의 수용·치료·재활을 돕는 치료감호소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이상호(검사장) 범죄예방정책국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2차장 출신의 대표 공안통이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상사뿐 아니라 후배 검사·직원들까지도 따뜻하게 챙겨 인기가 많다. 최근엔 주취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명령제 도입, 빅데이터를 통한 범죄 징후 사전예측시스템 개발, 전자발찌 착용자 감독 관련 24시간 신속대응팀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권국은 수사·교정·보호·출입국관리 등에서 발생하는 인권 관련 정책 및 조사, 범죄피해자 지원 역할을 한다. 2006년 5월 천정배 법무부 장관 시절 신설돼 현재는 권정훈(차장검사급) 국장이 총괄하고 있다. 권 국장은 기획과 특수수사 분야 보직을 두루 맡아 왔고, 직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법무부·검찰 간부 중 드물게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최근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도시 취약계층에 대한 법률상담·소송대리 등을 지원하는 법률홈닥터 제도와 북한 주민의 인권침해 범죄의 가해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근거를 수집·보존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개소 등을 추진했다. 수형자의 교정·교화 및 사회 복귀를 위한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교정본부는 김학성 본부장이 이끈다. 현장과 기획 부서에서 두루 경험을 쌓아 온 교정 분야 베테랑이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4대악 중 하나인 성폭력·아동학대사범이나 묻지마 강력범죄의 원인인 주취사범에 대한 전문교육 및 상담을 강화해 가고 있다. 출입국심사와 국경 수호, 외국인 정책 컨트롤타워인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올 초 인천·제주공항 등에서의 외국인 불법 밀입국 문제와 진경준(49·연수원 21기) 전 본부장 뇌물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했다. 지난 5월 김우현 검사장이 ‘소방수’로 본부장에 취임한 이래 ‘경제활성화를 위한 외국 관광객 유치’와 ‘위험인물 등의 입국 방지를 위한 입국심사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화통한 성격인 김 본부장은 법무부 법무심의관과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 등을 역임한 법제 전문가다. 법무부 전체 공무원에 대한 비위 조사·처리 및 감사 업무를 담당한 감찰관실은 장인종 감찰관이 이끌고 있다. 장 감찰관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 국제기구 파견 경력이 풍부한 외사통이다. 겉은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비위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외유내강형이다. 감찰관실은 이달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주무 부서다. 대변인실은 김광수(차장검사급) 대변인이 총괄하고 있다. 온라인 등을 통한 효과적인 정책 홍보로 능력을 인정받아 2년째 대변인을 맡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법무부 검찰과·대검 정책기획과 출신의 기획통이면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등을 역임한 공안통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열린세상] 마약과의 전쟁/조환복 영남대 새마을대학원 초빙교수

    [열린세상] 마약과의 전쟁/조환복 영남대 새마을대학원 초빙교수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취임 후 7주 동안 필리핀에서 마약사범 1916명이 사살됐다. 자수 용의자가 70만명에 이르고 전국 경찰관 16만명을 대상으로 마약 검사를 했다. 사실상 정부의 묵인하에 벌어지는 즉결처형에 대해 엄중한 인권침해라는 비난이 있지만 필리핀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약의 특성상 이와 같은 과격한 조치에도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과 3200㎞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시장이다. 국경선을 기준으로 양국 간 정상적인 교류 외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법 이민자와 마약이 끊임없이 넘어가고 북쪽에서는 마약대금과 총기류가 남하한다. 1980년대 후반 콜롬비아 카르텔의 붕괴와 함께 멕시코 카르텔이 미국행 마약 유통 과정을 장악하면서 멕시코는 물론 중미 전역이 마약 문제로 국가비상사태에 놓였다. 콜롬비아에서 6000달러에 거래되는 마약 1㎏이 미국에서는 도매가로 8만 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현재 미국으로 넘어가는 코카인의 90%가 멕시코를 경유하고 필로폰과 대마초의 최대 공급국도 멕시코다. 이러한 범죄조직의 수익에는 약 50만명이 연관돼 있으며 그 규모도 멕시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4%에 해당하는 약 300억 달러로 추정된다. 멕시코 연간 관광수입을 능가하고 원유수출 총액과 유사한 수준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상호 대립하며 현재 수십 개의 조직으로 나뉘어 미국으로 넘어가는 멕시코 전역의 유통 경로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중미 거의 모든 나라의 범죄조직과도 연계돼 있다. 2006년 취임한 멕시코 칼데론 전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군경을 동원해 마약조직 소탕에 나섰다. 그러나 2007년부터 8년 동안 멕시코에서 16만명 이상이 피살됐으며 이 중 34~55% 정도가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피살된 규모와 비교된다. 마약조직들은 중화기로 무장하고 경비행기와 심지어 소형 잠수함까지 운영한다. 멕시코 정부의 전면전에도 마약조직과 결탁한 부패한 지방정부와 경찰, 사법 당국과 제도의 미흡한 역량 등으로 마약 문제 해결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의 총기류 단속 등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미국에서 마약은 1960년대 젊은층의 반항의 상징처럼 된 적이 있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후 지난 40여년간 1조 달러를 투입했으며 내년 예산에 310억 달러를 책정했다. 현재 미국에서 각종 마약 사용자는 텍사스주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2700만명에 이르는데 마약 사용자 1인당 1000달러 이상을 지원하는 액수다. 상당한 논란에도 최근 미국에서는 대마초와 같은 연성 마약의 오락용 사용을 허용하는 추세이며 처벌 위주에서 건강회복과 교화 차원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미국 내 마약 수요가 있는 한 멕시코로부터의 마약 차단은 불가능하며 멕시코와 중미 국가에 대해서는 단기간이 아닌 30년 국가재건계획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약 문제에 관한 한 서방국가와 아시아 중동국가의 입장은 판이하다. 서방국가는 마약의 통제와 처벌을 점차 완화하는 반면 아시아 중동국가들은 처벌 위주의 강경한 입장이다. 마약사범에 대한 사형이 가능한 32개국 대부분이 아시아 중동국가다. 중국이 마약사범에 대해 극약처방을 내리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에게 다행인 점도 있다. 중국에서 마약 통제가 느슨해지면 한국이 중국행 마약의 경유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국 내 마약사범은 우려할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수년 내 마약청정국가 지위(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이하)의 유지도 위태롭다. 마약은 사회 암적 존재로서 정신건강을 해치고 가정과 사회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러나 필리핀과 같이 극단적인 정책으로 마약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청소년 시절부터 철저한 교육과 함께 질병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 탈종교화 시대, 종교가 설 자리는?

    탈종교화 시대, 종교가 설 자리는?

    대중이 종교를 멀리하고 떠나는 세상. 이른바 ‘탈종교화시대’에 종교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세계적으로 종교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지금, 종교의 의미와 역할을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실장 원철 스님)과 불광연구원이 다음달 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탈종교화시대, 종교의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주제로 개최하는 공동학술연찬회가 그것이다. 이번 연찬회는 최근 포교 정책 기조를 대폭 바꾸겠다고 선언한 조계종이 주관하지만 특정 종교에 국한하지 않는 범종교적 해법 모색 차원에서 마련된 첫 자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종교학자가 참여해 종교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할 계획이다. 발제자는 모두 각 종교에서 평소 소신 있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의 목소리를 높여 온 인물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명법 스님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정 원장은 ‘종교 이후의 사회적 영성’을, 김 소장은 ‘가톨릭 진짜 잘하고 있는가’를, 김 연구실장은 ‘교회 국경을 넘는 신자들, 종교 국경도 넘다-탈종교시대 새로운 종교성’을 발표한다. 명법 스님은 ‘위기의 한국 불교, 전통과 근대, 탈근대 가로지르기’를 발제한다. 발표가 끝난 뒤 지정토론자 없이 참석 대중 모두 참여하는 자유토론도 진행될 예정이다. 포교연구실과 불광연구원은 “종교인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무너지고, 개인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며 “그러나 탈종교화는 세속화에만 모든 원인이 있지 않은 만큼 연찬회에서 다각적인 검토를 할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중국을 위한 출구를 마련해야/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중국을 위한 출구를 마련해야/이지운 정치부 차장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얼마 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계단 상향 조정하고 나니 ‘느닷없이 왜 한국만 상향’하느냐는 기사들이 보도됐다. 한 고위 경제 관료는 사석에서 ‘사견’을 전제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에 대한 신용평가는 늘 안보 요인이 중요한 요소인데,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상황에서 미국을 선택한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얘기였다. 평가회사가 말해 주지 않는 한 알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드 문제가 여러 측면에서 들여다볼 대목이 있음을 알려 주는 분석이다. 사드 정국이 워낙 출렁이다 보니 도대체 중국이 어디까지 가려는지가 궁금해 ‘현장’의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돌려 봤다. 위치와 업무 내용에 따라 편차가 있었는데 현장에, 실무에 가까울수록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가장 극단적인 전망은 가장 ‘최전선’에 있는 중견 관료가 내놓은 것이었다. 그는 “중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할 때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현장에서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가 배어 나왔다. 이 관료의 입장에 동조하는 전문가들은 “사드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느낌은 ‘감정상의 문제’가 분명하다”고들 입을 모았다. 외교 분야 한 핵심 인사의 말과 맞춰 보니 실제에 가까운 진단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이 인사는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직후 “어느 때부터 중국과의 논의가 완전히 단절됐고, 이후 중국은 사드와 관련해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의 감정은 지난 6월까지는 완전히 틀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황교안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때가 6월 말이고, 시 주석과 중국은 황 총리에게 상당한 예우를 했다고 한다. 중국의 감정이 크게 틀어졌다면 황 총리를 아예 만나지 않았을 수 있고, 더더구나 예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상의 문제라면 관계 회복은 생각보다는 더 어려울 수도, 더 쉬울 수도 있다. 다만 얼마 전 베이징사범대 정부관리학원 마융(馬勇) 교수가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에 낸 글은 관계 개선의 단초를 보게 한다. 그는 ‘중국 외교의 과격 반응’이라는 글에서 “사드 문제는 한국으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부분이 있다. 중국이 사드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과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국 지도부가 관변 싱크탱크에 ‘한국과의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가 막 들려온 터였다. 사실이라면 다행이다. 사드를 둘러싼 현 국면에 가장 큰 변수가 생긴다면 아마 북한의 5차 핵실험일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했으므로 더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 핵의 ‘실전 배치’가 목표인 북이 핵무기를 정교화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대비하는 게 맞다. 북으로서는 지금 당장이야 중국의 ‘너그러움’을 거스를 이유가 없지만, 북이 원하는 상대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연말 미국 대선을 전후로 미국의 관심을 끌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정세가 4차 핵실험의 전후가 판이했듯 5차 핵실험은 그 분위기를 또 크게 바꿔 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5차 핵실험은 중국을 크게 곤란하게 할 수 있다. 그때 가서 ‘사드가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불러왔다’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이 곤란해지면 전체 상황이 엉키기 쉽다. 이른 감은 있으나 중국을 위한 출구 마련에 외교력을 모을 때다. jj@seoul.co.kr
  • 지독한 책사랑, 그 뒤엔 백성사랑

    지독한 책사랑, 그 뒤엔 백성사랑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지음/서해문집/344쪽/1만 7000원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은 ‘철혈군주’였다. 정적과 형제들까지 가차 없이 죽였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해 태조 이성계의 뒤를 이은 실질적인 창업군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태종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끝없는 권력 투쟁, 숙청 작업은 어린 세종에게 숨 막히는 삶이었을지 모른다. 세종이 책을 탐독한 이유도 책이 유일한 현실 도피처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역대 조선의 국왕 가운데 대표적인 다독가(多讀家)이자 직접 책을 만들기도 한 탐서가(探書家)였다. 그의 책 사랑은 세종실록 20년 3월 19일 스스로 밝힌 “책을 보는 중에 그로 말미암아 생각이 떠올라 나랏일에 시행한 것이 많았다”라는 독백에서 오롯이 엿볼 수 있다. 명종실록 1년 6월 9일 기사에는 특진관 신영이 “세종은 지나치게 학문을 부지런히 하시어 심신을 손상하게까지 되시니 태종께서 서책을 거두도록 명하셨습니다. 우연히 구소수간(歐蘇手簡)이 어안(御案)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구양수(歐陽修)와 소식(蘇軾)의 서찰로 정회(情懷)를 쓴 것일 뿐 문의(文意)가 웅장하고 심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성심으로 학문을 좋아하셨으므로 천 번이나 읽으시어 지금껏 미담으로 전합니다”라고 밝힌다. 신간 ‘세종의 서재’는 그의 서재에 꽂혀 있던 애독서와 그의 시대에 그가 만든 책들을 선별해 소개한다. 마치 세종의 서재를 직접 둘러보며 그의 때 묻은 서책들을 엿보는 체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청년 세종이 100번, 1000번 읽었다고 회자되는 대표적인 애독서가 명종실록에 등장한 ‘구소수간’이다. 송나라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구양수(1007~1072)와 소식(1036~1102)이 주고받은 ‘척독’(짧은 편지)이다. 세종 스스로도 30번은 읽었다고 실록에 밝힌 책이다. 저자는 “구양수와 소식이 쓴 척독의 응축적, 미학적 문장이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가 왕위에 오른 후 경연(經筵)할 때 처음으로 선택한 ‘대학연의’(大學衍義)와 조선 법관의 필독서인 ‘당률소의’(唐律疏議), 원나라 최후의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 등도 즐겨 읽었던 책으로 소개된다. 세종이 편찬한 책 가운데 으뜸은 단연코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이다. 세종이 직접 서문을 썼다. 해례본의 ‘정인지 서(序)’에는 “소리가 있으면 글자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문자는 신묘하고 전환이 무궁해 표기하지 못할 소리가 없다” 등 훈민정음의 역사적 의의가 담겼다. 세종은 ‘우리 것’을 높이 평가한 주체적인 왕이었다. 조선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조선 풍토에 적합한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이라는 믿음에 조선의 처방전을 종합한 ‘향약집성방’, “풍토가 다르면 농법도 다르다”는 취지에 따라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의 실정에 맞는 농사법을 설명한 ‘농사직설’, 우리의 음악 기록을 펴낸 ‘세종실록악보’, 우리나라의 첫 전쟁사이자 동아시아 전쟁사를 다룬 ‘역대병요’, 우리나라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효자, 충신, 열녀의 행실을 논한 교화서인 ‘삼강행실도’ 등은 모두 세종의 독립적인 국가 경영론이 담겨 있는 책들로 꼽힌다. 세종 리더십 전문가인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세종에게 책은 존재 그 자체였다”면서 “그에게 책은 기능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그 무엇이었다”고 말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 실제 위치는 아직도 미스터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 실제 위치는 아직도 미스터리

    국립경주박물관은 2009년 경주공업고등학교 마당에서 나온 유물을 세척하다가 ‘흥’(興) 자가 새겨진 신라시대 수키와 조각을 확인한다. 경주공고가 배수로 공사를 하겠다며 문화재 조사도 없이 파헤친 400상자 분량의 흙더미에서 나온 것이다. ‘사’(寺) 자만 남은 기와 조각도 출토됐다. 신라 최초의 사찰 흥륜사(興輪寺)터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2009년 경주공고 출토 기와에 ‘대왕흥륜사’ 추정 글자 ‘삼국유사’에는 진흥왕이 ‘이 절에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대목이 보인다. 발견된 기와의 아래로 내려쓴 ‘흥’(興) 자 위의 글자는 ‘ㅗ’ 모양만 남았지만 경주박물관은 ‘王’(왕) 자로 추정할 수 있다고 봤다. 흥 자도 오늘날 쓰는 글자와는 조금 다르지만 부여 왕흥사터 기와의 ‘興’ 자와 거의 같은 모습이다. 삼국시대에 쓰던 한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대왕흥륜사’라고 새긴 기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흥륜사는 법흥왕이 즉위 22년(535) 천경림(天鏡林)의 나무를 베기 시작해 진흥왕이 즉위년(544) 완성했다. 신라 왕실이 중앙집권적 국가를 완성하고자 불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귀족 세력과 갈등을 빚은 끝에 이차돈의 순교라는 혼란이 빚어진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 중심에 신라 귀족이 신봉하던 토착 신앙의 성지(聖地) 천경림이 있고, 그곳에 세운 대찰(大刹) 흥륜사가 있다.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이 곧 부처’라는 개념을 체계화한다. 최초의 사찰을 ‘대왕흥륜사’라고 명명한 것부터가 그렇다. ‘흥륜’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치세를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전륜성왕은 부처의 법으로 세상을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존재를 말한다. 이후 불교로 일사불란해진 신라의 의식 체계는 삼국통일의 기반이 되었으니 흥륜사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1963년에 이미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흥륜사터’ 경주공고와 흥륜사터의 관계에 다소 혼란스러운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경주 흥륜사터’는 이미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보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흥륜사터는 경주공고에서 남동쪽으로 700~800m 떨어진 곳에 있다. 1980년대 흥륜사라는 이름의 새 절이 들어섰다. 아직도 규모 있는 절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원본이 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차돈의 순교비를 마당에 복원해 놓았다. 흥륜사의 법등(法燈)을 잇고 있는 것으로 자처하고 있다는 뜻이다. ●1976년 ‘영묘사’ 이름 새겨진 기와 출토… 미궁으로 1910년대 일본인들은 경주지역 절터를 조사하면서 지금의 사적지를 흥륜사터로 추정했다. 당시에도 경주 사람들은 일대를 ‘흥륜원’이나 ‘흥륜들’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976년 영묘사(令妙寺)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조각 5점이 출토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선덕여왕이 창건했다는 영묘사는 흥륜사와 더불어 전불시대(前佛時代) 칠처가람(七處伽藍)의 하나다. 철처가람은 신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될 수밖에 없음을 상징하는 일곱 절을 뜻한다. 영묘사터 발견은 반가운 성과였지만 흥륜사터의 실제 위치는 미궁에 빠졌다. 학계는 이후 경주공고 자리를 유력한 흥륜사터로 보기 시작했다. 우선 ‘미추왕릉 서쪽이자 금교의 동쪽’이라는 ‘삼국유사’의 내용과 부합한다. 금교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주공고 서쪽으로 형산강이 흐르니 다리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고려 충렬왕 33년(1307) 간행된 ‘호산록’의 ‘흥륜사대종명병서’(興輪寺大鐘銘幷序)에는 ‘1244년 이전 불타버린 절터에 다시 불전을 세우고 범종을 주조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경주공고에서는 신라시대 절터의 흔적과 함께 고려시대 유구도 노출됐다. ●‘칠처가람’의 하나인 영흥사터일 가능성도 여전 신라시대 지금의 형산강으로 가로막힌 서라벌의 서쪽지역은 수풀이 빽빽하게 들어찬 저습지였을 것이다. 천경림은 영묘사터와 경주공고를 모두 포괄할 만큼 범위가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주박물관이 확인한 경주공고 출토 유물 가운데는 ‘寺’(사) 자 바로 앞 글자가 ‘興’(흥)일 가능성이 있는 암키와도 있었다. 경주공고 자리가 흥륜사일 수도 있지만, 역시 칠처가람의 하나인 영흥사(永興寺)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뜻이다. 발굴 조사는 잊힌 역사를 재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는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dcsuh@seoul.co.kr
  • 지하철 승객 마음 위로하는 클래식 선율

    매월 1~2회씩 서울 지하철 6호선 일대 역사에서는 분주히 움직이는 승객들 사이로 앳된 얼굴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여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다. 중·고등학교 학생 오케스트라와 대학생 오케스트라 단원이 모여 문화 봉사활동을 하는 음악 봉사단 ‘메리오케스트라’(메리오케)가 그 주인공이다. 메리오케는 빈민층 아동을 위한 음악 교화 프로그램을 그린 영화 ‘엘 시스테마’를 보고 감명을 받은 경희대 학생들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여름 발족한 1기에 이어 올해 2기 메리오케에는 경희대 말고도 성신여대·홍익대·인하대·수원대 등에서 3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강서고·상일고·배문중 학생들과 멘토·멘티를 맺어 협연한다.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예술을 쉽게 접하고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들이 북적이는 지하철을 공연장으로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김재원 메리오케 대표는 “우리 주위의 일상적인 공간인 지하철에서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하철 이용객들이 연주를 들으며 ‘나는 소중한 관객’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며 “승객들이 발길을 멈춰 공연을 보고는 ‘잘 들었다’고 인사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김영란법 공식’ 외워라…재계 벼락치기 공부 중

    ‘수수액 x >100만원 또는 ∑x >300만원→3년 이하 징역’, ‘x <100만원 또는 ∑x <300만원→2x < 과태료 y <5x’.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 임원협의회를 대상으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20일 오전 7시 30분에 실시한 ‘부정청탁금지법과 기업의 대응전략’ 설명회에서 이처럼 복잡한 수식이 제시됐다. 말로 풀면 한번에 100만원, 연간 합계 300만원 초과 금품을 주고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한번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더라도 수수액의 2~5배 수준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정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일(9월 28일)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재계가 ‘열공’(열심히 공부) 중이다. 기업별 사내 법무팀은 김영란법 위반 시나리오를 만들고, 경조사비·외부 자문료 등에 관한 매뉴얼을 정비해 공유하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 간부에게 김영란법 세부 적용 범위 강의를 청한 데 이어, 이날 김앤장의 정교화 변호사를 초청해 설명회를 열었다. 김앤장을 비롯한 로펌들은 김영란법 관련 서비스를 발굴하며 때아닌 특수를 맞이했다. 설명회나 로펌 자문을 받은 뒤 김영란법 대응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짜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 법이 단순히 접대를 금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회사 내 업무 분장을 바꿀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어서다. 예컨대 김영란법에서 규정하는 ‘언론’이란 정기간행물사업자를 뜻해 기업들이 발간하는 사보·웹진도 이 범주에 많이 포함된다. 즉 홍보실 소속 사보 제작 직원도 언론사 기자들처럼 3만원 이상 식사, 5만원 이상 선물, 10만원 이상 경조사비를 제공받지 못하는 제재 대상이 된다. 한 광고회사 직원은 “여론 형성 기능이 없어 김영란법 예외 대상이 되는 정보간행물로 사외보 내용과 형식을 전환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면서 “김영란법 제정 뒤 화훼산업·축산업 위축이 우려됐는데 이러다 사외보를 인쇄하는 출판업계도 위축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별 설명회가 이어지면서 김영란법에 걸렸을 때 낼 과태료 수준을 가늠, 행동 기준을 정하는 ‘죄수의 딜레마’ 식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설명회에선 지방자치단체 건축 허가 심의위원 A에게 건설사 임원 B는 70만원짜리 양주를, 직원 C는 30만원짜리 상품권을, 다른 직원 D는 30만원어치 식사를 제공할 경우 A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B는 140만~350만원의 과태료를, C와 D는 60만~1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고 강의한다. 단, 안 걸리면 벌금도 과태료도 없다. 열공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이 과도한 접대·비리 관행을 잠재울지 기업들은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그래도 김영란법 직후 ‘접대 절벽’이 올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인터넷 기업 부장은 “공공기관 직원, 언론인, 교사와 그들의 가족까지 적용받는 데다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과 무관하게 금품수수만으로 처벌받는 법이기 때문에 검찰이 작심하면 기업이 방어할 수단이 거의 없다”면서 “무조건 첫 번째 적발 대상만 되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묶인 손을 벽에 거는 ‘비둘기자세’까지…” 통일硏 북한 고문 실태 공개

    주먹질과 발차기, 채찍질, 몽둥이질, 전기충격에서 성폭행, 강제낙태, 물고문까지…. 통일연구원은 18일 북한 교화소 등에서 자행되는 고문 실태를 공개했다. 이상신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 실태 관련 정책회의를 열고 ‘북한의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를 주제로 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 군 당국이 조사 및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단계마다 고문이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2013년 혜산 집결소(강제노동교화소)에 수감됐던 한 탈북자는 “그들은 나를 발로 차고 뭉둥이질을 했다. 나의 피부는 폭행으로 검게 변했다”면서 “그들은 나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방망이로 때렸다. 그러나 그들은 책임을 피하고자 나의 머리를 때리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북한의 형법도 분명하게 고문을 금지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찰 및 사법 시스템에서 폭력은 필수적인 부분”이라면서 “경찰과 수용소 관리인은 책임을 피하려고 죄수들이 다른 죄수의 고문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북한 ‘전거리 교화소’에서 한 여성 제소자가 상부에 불만을 표시하려고 하자, 교화소 관리자는 다른 제소자들이 그녀를 집단 폭행하도록 했다. 교화소 내 강제노동보다 더 힘든 것은 고정자세로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증언도 있었다. 2007년에 수감됐던 한 탈북자는 “그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게 해서 온종일 조금도 움직이지 말고 벽을 응시하게 했다. 내가 움직이면 그들은 벌을 줬다”고 진술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한겨울에 찬물을 붓거나 ‘비둘기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고문의 형태도 있다. 비둘기자세는 양손을 뒤로 묶고, 묶인 손을 벽 높은 곳에 걸어놓는 고문을 말한다. 한동호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북한 교화소 실태’라는 주제의 보고서에서 “강제송환 임산부의 경우 중국인 아이를 뱄다는 이유로 수감 전 강제낙태가 횡행한다”고 밝혔다. 한 부연구위원은 북·중 국경지대인 함경북도에 있는 전거리 교화소 실태와 관련해 “중국으로부터 강제송환된 탈북자들의 수감 비율이 높고 전체 수감인원은 3000~4000명”이라며 “35~60명 정도가 한 방에서 생활하며, 하루에 1~2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주원인은 영양실조와 질병”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염병이 발생하면 하루에 30~50명 이상이 사망한다”면서 “사체는 화장하고 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부연구위원은 평안남도에 있는 개천 교화소에 대해서는 “주로 중범죄자를 수감하는 시설로 수감인원은 3천~4천명”이라며 “하루에 3~4명 정도 사망하고, 사망 인원은 주로 영양실조”라고 밝혔다. 이어 “구타를 당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치료 없이 방치돼 사망한다”며 “교화소를 탈주하면 공개 처형된다”고 덧붙였다. 도경옥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북한인권: 변화와 지속성’을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리비아, 러시아, 중국에 파견된 북한 해외 노동자 사례를 수집한 결과,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현지에서 기본적인 근로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 역시 상당 부분 계획분이라는 명목으로 상납 되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애리아 일본 와세다대학 한국학연구소 사무국장은 ‘러시아 연해주·사할린 지역 북한 노동자 현황과 인권’을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2013년까지 러시아에 3만명 이상의 근로자는 파견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는 연간 200~3000달러를 벌지만, 북한 건설회사의 대표나 간부는 뇌물을 포함해 연간 5만~10만 달러를 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교화의 책임/손성진 논설실장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불행과 고통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못하는 마음,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다고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지나치지 않고 뛰어들어 구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성정(性情), 즉 본성에 관한 맹자의 성선설이다. 반대로 사람의 본성은 방종하므로 반드시 다투게 되어 질서가 문란해지니 교육과 예(禮)로써 교정해야 한다는 게 다 아는 순자의 성악설이다. 두 현인 중에서 누구의 말이 맞다고 할 수 없지만 교육과 환경이 사람을 더 선하거나 악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주차나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까지 일어나는 사회를 보면서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기 이전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자에 어떤 이와 주차 문제로 다투면서 사람은 본래부터 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무가내로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게 예의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악이 도사리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악을 선으로 바꾸는 것은 학교와 사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단독] 사잇돌대출, 3040이 많이 갈아탔다

    [단독] 사잇돌대출, 3040이 많이 갈아탔다

    9개 시중은행에서 지난 5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사잇돌대출이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사잇돌대출 이용자들은 1인당 평균 1000만원을 빌리고 5년 만기(원금과 이자 균등분할상환)를 주로 선택했다.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연령층인 30~40대 대출 비중은 70% 가까이 됐다. 사잇돌대출은 중저신용자(4~7등급)들의 금리 부담을 낮추기 위해 시중은행이 서울보증보험(SGI서울보증)을 끼고 연 6~10%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금융 당국과 금융권은 사잇돌대출 초기 반응에 고무된 분위기이지만 상품 ‘롱런’을 위해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신용평가 체계를 세분화해 사고 위험성을 줄이는 게 가장 큰 과제다. 길게는 은행들이 자체적인 신용평가 역량을 키워 보증서 없이도 중금리대출 시장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신문이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9개 시중은행의 사잇돌대출 판매 실적을 분석해본 결과 1751명이 176억 5200만원을 빌려갔다.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은 약 1010만원이다. 대출 만기는 5년(71.8%)이 가장 많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리금을 곧바로 갚아나가는 구조라 만기를 최대한 길게 선택하는 분위기”라며 “이런 고객들은 자금상환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대출을 갚아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연령대별 비중은 40대(39.6%)가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28.8%), 50대(20.8%), 20대(6.2%) 순이었다. 대출 승인율은 48.4%였다. 상품 출시 이후 일각에서 “사잇돌대출 문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실제로는 대출을 신청한 두 명 중 한 명꼴로 자금을 빌려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카드론이나 저축은행 이용자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일부 민원이 제기됐지만 실제로는 다중채무자(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쓰는 사람)나 과다채무자가 아닌 경우에는 대출이 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저축은행업권(9월 이후)에 각각 5000억원씩 총 1조원 한도로 사잇돌대출 보증을 지원해줄 계획이다. 현재 속도를 감안하면 은행권 보증 한도는 10월쯤 모두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보증 측은 추가 한도 증액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서울보증이 철수하고 난 이후다. 시중은행들은 보증서 없이 중금리대출 상품을 취급하는 데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보증이 대출취급액에 대해 100% 보증해줘 떼일 위험이 없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중저신용자들은 기존 은행 고객들이 아니기 때문에 신용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자체 정보(DB)가 부족하다”며 “보증 없이 대출을 계속 취급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보증 역시 중저신용자 신용평가를 좀더 세분화하기 위해 금융당국 측에 ‘자동차보험 가입 내역이나 세금·과태료 등의 납부 내역 등 추가 자료가 필요하다’고 요청한 상태다. 서울보증 측은 “현재 사잇돌대출 신청자 중 40%가량은 신용도를 평가할 데이터가 아예 없다”며 “신용평가 모델을 정교화해야 부실 위험을 낮추고 중금리대출 시장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권의 시큰둥한 반응도 사잇돌대출 흥행에 걸림돌이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100% 보증서를 끊어주더라도 23%짜리 상품(신용대출)을 팔 때와 10~15%짜리 상품을 팔 때 마진이 같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소설 속 배경, 충정로 야마토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소설 속 배경, 충정로 야마토 아파트

    지난주의 미동 아파트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69년 미동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이 자리에는 1940년에 지어진 또 다른 아파트가 있었다. 건축역사학자인 김정동 교수의 ‘문학 속 우리 도시 기행 2’(2005·푸른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아파트의 이름은 경성대화숙(京城大和塾·게이조야마토주쿠)이다. 일제강점기 교원 및 사상범의 교화 단체로서 1941년 1월에 만들어진 또 다른 경성대화숙과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자까지 이름이 같다. 3층 목조의 이 경성대화숙이 있던 자리는 충정로의 당시 이름이던 죽첨정, 즉 다케조에초 3가 8번지였다. 원래는 식산은행의 독신자 아파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월북 문학가인 김남천(1911~1953)의 소설 ‘경영’(문장·1940.10)과 그 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맥’(춘추·1941.2)이 바로 이 아파트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로 인해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한국 최초의 소설을 꼽을 때 이 두 소설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이름은 ‘야마토 아파트’다.  소설 속의 묘사가 실재했던 건물을 얼마나 정확히 그리고 있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건물의 외형과 관련해서도 전해 오는 자료가 없는 듯하다. 한국보다 아파트 역사가 오래된 일본의 몇몇 사례 등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관동 대지진 후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동윤회(同潤會·도준카이)가 건립한 1920~30년대의 아파트들이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김남천 자신이 1947년 월북하기 전까지 경성대화숙 323호에 묵고 있었고, 소설 속의 여주인공 최무경 또한 야마토 아파트 323호에 거처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허구와 실제 간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하에 두 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문구에 기초해 이 아파트를 ‘복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 #61가구 입주한 복도형·임대용 3층 아파트  야마토 아파트는 죽첨정, 즉 다케조에초에 있는 3층 건물이다. 복도형 아파트고 승강기는 없다. 임대용 아파트이며 호텔은 아니어서 ‘한두 달 계실 손님에겐 방을 거절하라는’ 규칙이 있다. 아파트 주인은 여기에 살지 않으며 잠깐 와서 ‘장부나 검사해 보고는’ 다시 나간다. 독신자용 방이 36개, 두 칸의 가족용 방이 25개 있어서 총 61가구에 ‘일백이삼십 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다. 방세와 별도로 난방비, 전등료, 급수료 등을 받는다. ‘특약’, 즉 장기 계약해서 쓰는 택시와 용달 서비스가 있다.  1층에는 출입구 옆에 사무실, 구내식당, 공동 목욕탕, 당구장 등이 있다. 원래 목욕탕 옆에 이발소가 있었으나 길 맞은편에 원래 있던 이발소와 경쟁이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무실에는 직원인 최무경과 관리인인 강 영감의 책상이 있다. 금고가 있어서 지폐나 ‘소절수’(수표) 등을 보관한다. 강 영감이 수시로 ‘보일러 칸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반지하, 혹은 지하에 보일러실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구내식당에서는 산짱이라는 어린 소년이 주문을 받는다. 시멘트 바닥에 입식 테이블들이 놓여 있다. 라이스모논 카레, 하야시, 가케우동, 돔부리와 차 등을 서빙한다.  최무경의 방인 323호는 독신자를 위한 방으로 남향이다. 입구에는 신장과 천장 조명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방 안에는 서가, 침대와 침대 머리맡의 전기스탠드, 작은 탁자, 응접세트와 사무 탁자, 양복장, 기타 화병과 화분 등이 있다. 물이 나오는 취사장이 있고 최무경은 가스를 이용해 차를 끓인다. 냉방에 대한 언급은 없고 난방은 스팀을 이용한다. 침대와 취사장 부근은 모두 두꺼운 커튼을 쳐서 가려 놓았다.  거주자들을 위한 폐쇄적인 시설이기는 했으나 단순 주거 기능만이 아닌 상업 기능 또한 한 지붕 아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허구와 실제 사이에 걸쳐져 있는 건물이기는 하지만 야마토 아파트는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라고 판단된다. 심지어 최무경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이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다. 직주근접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집이 근처인 강 영감도 점심 ‘벤또’를 가지러 아침에 잠깐 집에 다녀올 뿐 ‘대개 언제나 이 아파트에서 잠자리를 갖는다’. 최무경은 이런 이유로 해서 퇴근 이후에도 업무를 위해 잠깐씩 사무실에 내려와야 하는 등 약간 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밥도 구내식당에서 자주 먹는다. 이처럼 여주인공의 집과 직장이 같은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약간의 긴장감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하나다.  #혼자가 된 여자, 자신의 삶 위해 이주한 아파트 여주인공 최무경은 야마토 아파트의 사무원이다. 그는 화동의 한옥에서 청상과부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와 함께 산다. 자기 직장인 야마토 아파트에도 방을 하나 두고 있는데, 옥살이 중인 좌파 지식인 애인 오시형이 조만간 보석으로 풀려날 경우를 대비해 얻어 둔 것이다. 당초 계획은 그와 결혼을 하는 것이었으나 양가의 반대가 있었다. 다행히 자기 어머니는 겨우 설득을 했으나 평양이 고향인 오시형 쪽에서는 지역 유지 집안과의 혼사설이 돈다. 오시형은 결국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그간 사상의 변화가 생겨 전향했고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돌아가고 만다. 한편 최무경의 어머니는 숨겨 놓았던 애인과 재혼한다. 결국 혼자가 된 최무경은 앞으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며 얻어 놓았던 야마토 아파트로 입주한다. 여기까지가 ‘경영’의 줄거리다. 그 후편인 ‘맥’은 줄거리상으로는 단순하지만 사상적으로는 복잡하다. 최무경의 옆방으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이관형이라는 사람이 논문을 쓰겠다는 핑계로 들어온다. 두 사람은 일종의 지적인 대화 상대가 된다. 최무경은 헤어진 자기 애인의 사상적 변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철학 공부를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철학과 사상에 대한 대화를 이관형과 나누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다원론에 입각한 오시형의 천황주의와 이관형의 허무주의가 대비된다. 마지막으로 오시형의 공판장에서 새로운 여인의 출현을 목격한 최무경은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음을 깨닫고 망연자실해진다.  김남천의 이 소설들은 ‘전향문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다루어진다. 오시형처럼 그 자신도 전향의 경력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한 문학 작업의 공백을 체험했다. 그가 자신의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이 두 소설의 배경으로 아파트, 그것도 당시 기준으로 매우 현대적인 최고급의 아파트를 무대로 삼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전향의 경험을 갖고 있으나 결국 좌파 지식인으로 남았고, 그 결과 월북해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던 작가의 소설치고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묘사에 과격성이 거의 없다. 일본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 그리고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상당한 근대적 인간들이다. 일제강점기판 무지개떡 건축인 야마토 아파트는 마치 조선이라는 식민지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별천지 같은 배라고나 할까. 그 안에서 최무경이 나누는 대화들도 당시 대부분 사람의 현실과는 무관하다. 최무경은 ‘음악회라면 하찮은 학생들의 연주회라도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던’ 사람이며, 그와 오시형, 허무주의자 이관형 모두에게 사상이란 삶의 체험이 아닌 관념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부유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역사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는 구도심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배경으로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허구와 실제 사이의 공간이 필요했고, 아파트가 바로 그 해답이었다. 반경 400m 내 들어선 금화장·경성대화숙·개명·성요셉· 미동 아파트 허구건 실제건 충정로 일대는 한국 근현대 아파트의 실험장이었다. 그 시작은 물론 1930년의 충정 아파트, 당시 도요다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소위 ‘문화주택’ 단지였던 금화장 주택지도 1920~30년에 지금의 경기대 뒤편인 금화산 일대에 자리잡았다. 그 후 1940년에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경성대화숙이 들어섰고, 1959년에는 지금의 현대 아파트 자리에 6층의 개명 아파트가 자리잡는다. 경성대화숙이 헐리고 그 자리에 미동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 1969년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약현성당 인근의 성요셉 아파트(1971), 마지막으로 1972년에 서소문 아파트가 세워졌다. 이 모두가 충정 아파트를 기점으로 반경 400m도 안 되는,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새로운 주택과 아파트들이 들어섰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시 도심에서 가깝다는 지역적 특징을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전차로 상징되는 편리한 교통이 그 열쇠였다. 최무경은 전차를 타고 애인 오시형이 수감 중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와 어머니와 살고 있는 집이 위치한 화동, 근사한 식당이 있는 본정(명동) 등 서울시내 안팎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한편 전차는 도시적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맞은편 캄캄한 언덕의 주택지에는 불빛이 빤짝거린다. 하늘에도 까만 호라이즌 위에 뿌려 놓은 듯한 별들. 마포로 가는 작은 전차가 레일을 째면서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 굽어보인다. 산뜻한 밤공기에 낯을 쏘이면서 천천히 가슴의 동계를 세어 본다.’ 여기 등장하는 전차는 서대문~마포 간을 운행하는 것이었다. 시발점인 서대문역은 현재 적십자병원이 있는 경교 인근이었다. 김구 선생이 머물던 경교장의 그 경교다. 경교장은 경성대화숙보다는 조금 이른 1938년에 지어졌고 원래 이름은 죽첨장이었다. 죽첨정과는 죽첨, 즉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 다케조에의 이름을 공유한다. 1936년에 제작된 대경성정도(大京城精圖)를 보면 최무경이 야마토 아파트에서 나와 전차를 탔을 역 또한 죽첨정역이었다. 야마토 아파트에서는 걸어서 1, 2분도 안 걸릴 정도로 가까운 위치였다. 그 바로 다음 역이 전차 시발점인 서대문역이었다. 구도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외도 아닌, 참으로 절묘한 위치가 지금의 충정로 인근 지역이었던 것이다. (* 경성대화숙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다케조에초 3가 8번지를 충정로 3가 8번지로 검색하면 미동 아파트가 아닌 다른 위치로 나온다. 한편 김정동 교수는 경성대화숙, 그리고 그 자리에 지어지는 다른 건물을 본 기억이 있으며 그것이 미동 아파트인 것으로 짐작한다고 적고 있다. 주소와 관련된 기록들이 어디에선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깊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깊이

    1분에 1바퀴 도는 모터 끝에 달린 석탄 멈춰서서 보니 검은 흔적 움직임 보여 조각가 나점수(47)는 서른 즈음에 혼자 여행을 떠났다. 마치 순례자와 같이 최소한의 옷과 신발만을 챙겨 그가 간 곳은 중국 서쪽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의 자오허고성 유적지였다. 그 후 그는 두 번 중국을 횡단했고, 아프리카도 다녀왔다. 인간적인 가치에 관심을 두는 삶보다 돈의 가치에 종속된 삶을 강요하고 있는 이 시대에 문명의 시원(始原)을 찾아 나섰던 그 여행은 예술의 길에 대해, 즉 작가로서 실존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서울 평창동에 자리한 김종영미술관의 ‘오늘의 작가’전에서 그는 ‘표면의 깊이’라는 제목으로 예술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풀어놓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나무와 흙, 짚푸라기 같은 원초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전시 제목에 대해 “표면의 깊이란 부조리한 명제 같지만 표면은 깊이를 가진 것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렵다. 멈춰 서 들여다보는 시간 그 자체에도 깊이가 있다”고 덧붙인다. 재료의 선택과 작품의 유추 체계는 모두 여행을 통해 경험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사막에서 눈에 들어온 잡풀과 돌을 보면서 거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선 사소하지만 나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개입했던 물건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소한 것을 보지 못하면 거대한 것을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과 디테일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찬찬히 들여다봐야 의도를 얼핏이나마 알아챌 수 있다. 작품들은 건조하고 난해하게 보이지만 물질의 상태나 위치의 미세한 움직임은 모두 생의 경이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나무를 주재료로, 수만 번의 끌질로 만들어낸 거칠거칠한 표면을 지닌 나뭇조각, 흙을 말려 만든 입방체 구조물, 톱밥과 판자 등이 말없이 서 있거나 뉘어져 있다. 정지된 듯하지만 멈춰 서서 들여다보면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1분에 한 바퀴가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저속 모터의 끝에는 석탄 덩어리가 달려 있고 아주 천천히 검은 흔적을 남긴다. 멈춰 서서 보고 있어야 비로소 전시제목처럼 표면에 숨겨진 깊이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보이는 것에만 익숙하기 때문에 관객 상당수는 서둘러 보고 나가니 이 석탄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관객들은 정지된 줄 알았던 물체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큰 움직임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고, 큰 모습은 형상이 없는 것처럼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사이에 침묵과 같은 시간이 흐른다. 깨어 있는 정신으로 세계에 대응하는 것을 예도(藝道)라 한다.’(작가 노트 중) 그는 “예술이란 붙들 수 없는 것을 붙드는 것이며, 예술 자체가 하나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난해한 정의를 내리면서 “그다음은 관객이 읽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종영미술관은 고(故)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2004년부터 매년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를 ‘오늘의 작가’로 선정하고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시장미술이 주도하고 있는 작금의 미술계 문제점을 성찰하며 예술의 길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나점수 작가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며 “그는 작업을 통해 누구를 교화하거나 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실한 문제에 몰입하고 있다”고 평했다.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02)3217-6484.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모네·고갱·피카소… 유럽을 모은 마쓰카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모네·고갱·피카소… 유럽을 모은 마쓰카타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도쿄의 우에노 공원은 벚꽃 시즌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오래 된 나무들이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에는 넓은 호수와 판다로 유명한 동물원 외에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 등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우에노 문화지역’으로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공원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건축으로 1959년 6월 완공됐다. ●프랑스 보관 ‘마쓰카타 컬렉션’ 370점 1959년 반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근대식 교양교육의 상징이던 유럽 회화,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유난하게 좋아해서 많은 일본 자본가들은 20세기 초 유럽 현지에서 작품을 사 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와사키 중공업의 전신인 가와사키 조선소 대표이사였던 마쓰카타 고지로(1865~1950)다. 국립서양미술관이 상설 전시하고 있는 걸작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카타 컬렉션’을 만든 주인공이다. 메이지시대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한 마쓰카타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지에서 유럽미술품과 공예품, 유럽의 일본 열풍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우키요에(목판 풍속화) 작품을 수집했다. 도쿄에 서양미술을 보여 주는 미술관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 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 파기로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7년 세계 대공황 여파로 가와사키 조선이 파산하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사재를 내놓게 되면서 일본에서 담보로 잡혔던 작품들은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런던 수장고에 보관하던 작품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됐고, 프랑스에 보관하던 작품 400여점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 국민으로서 책임을 물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일본 정부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1951년부터 반환 노력을 펼친 끝에 1959년 반환이 결정됐다. 프랑스 정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는 한편 나머지 작품들도 공공을 위한 미술관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기증 반환’했다.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이 이때 일본으로 돌아왔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설계 일본 정부는 이미 사망한 소유주를 대신해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에게 도쿄의 우에노 공원 내에 환수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르코르뷔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르코르뷔지에의 단일 건물은 파리 근교 프아시에 있는 빌라 사부아에서 보듯이 평평한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건축물이 필로티(건물 하단부에 기둥을 세워 텅 비게 하는 구조)로 지탱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지상 3층, 지하 1층의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필로티로 지탱한 개방적인 공간과 나선형 복도, 자연 채광을 이용한 건축양식 등 곳곳에 르코르뷔지에의 개성이 녹아 있다. 정방형의 건축물을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그 하부의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이른다. 높은 천장에 삼각형 창문을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앙홀을 지나 지그재그로 난 경사로를 따라서 2층 전시공간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다. 르코르뷔지에는 평면과 단면의 모든 요소에 특유의 ‘모뒬로르’의 치수를 적용했다. 천장이 낮은 경우 유럽 성인 남자가 손을 뻗는 높이(2.26m)로 하고, 높은 경우엔 그 두 배, 더 높으면 그 세 배로 했다. ●日 국가 문화재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력 일본 정부는 르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에서 분리해 지진의 진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관 건물에 대규모 면진 장치를 설치했고 2007년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한 상태다. 중앙홀의 한 구석에는 미술관의 역사와 건설 당시의 미술관 모습,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들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본관의 1층과 2층이 상설전 공간이고, 지하는 기획전시 공간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쿠르베, 세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소장 작품 중 모네의 1916년작 ‘수련’은 마쓰카타가 모네의 지베르니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1922년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가 1959년 일본에 돌아왔다. 지오토, 루벤스 등 중세 후기 작품에서 18세기 말까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훌륭한 것이 꽤 많다. 이 밖에 피카소, 미로, 뒤뷔페, 폴록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외에 조각, 소묘, 판화 작품 컬렉션도 알차고 기획전도 매우 수준이 높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개관 90년된 ‘예술의 신전’ 日 도쿄도 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개관 90년된 ‘예술의 신전’ 日 도쿄도 미술관

      도쿄의 우에노공원을 찾은 것은 5월 하순의 토요일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공원 안쪽 어딘가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원래 목적 했던 국립서양미술관은 공원 입구쪽에 위치해 있는데 어디로 가는 것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국립서양미술관 개관 시간까지는 좀 여유가 있고, 궁금하기도 해서 사람들을 따라가 봤다. 공원 안 쪽에 위치한 도쿄도 미술관(東京都美術館) 앞에 줄이 뱀이 또아리를 틀듯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자쿠추 탄신 300년 기념전’(2016년 4월 22일~5월24일)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210분 이상 대기’라고 쓴 판을 들고 안내원들이 곳곳에 서서 확성기로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이채로웠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놀랍기만 했다. 자쿠추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대단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이토 자쿠추(1716~1800)는 동물, 식물, 야채, 그리고 불교화에 능통했던 에도시대 중엽의 화가다. 교토의 야채상 집에서 태어나 집안일을 도우면서 살다가 40세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중국이나 조선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모방만으로 자기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집중적인 자연관찰을 통해 터득한 미감을 바탕으로 세밀하고,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작품을 그렸다. ‘일본적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들을 남긴 화가의 탄신 300년을 기념해 미술관에서는 초기부터 만년까지의 대표작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이토가 교토의 쇼코쿠지에 기증한 ‘석가삼존상’ 3폭과 궁내청 소장의 ‘동식채회’ 30폭이 처음으로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였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갔다. 마침 그곳을 찾았던 때가 특별전시 마지막 주말이어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것이었다.  너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자쿠추의 전시는 관람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자쿠추라는 화가와 도쿄도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쿄도 미술관은 1926년 5월 1일 개관해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일본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기업가인 사토 케이타로(佐藤慶太)가 100만엔(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0억엔 이상)을 기부해 설립됐다. 개관 당시의 이름은 도쿄부 미술관. 개관 때부터 소장품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전람회와 신인공모전 등을 주관했다. 그런 이유로 개관 당시 미술가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미술관 건물은 근대 일본에서 양식건축의 대가로 맹활약했던 오카다 신이치로(1883~1942)가 설계했다. 오카다는 도쿄제국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과 도쿄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교육자이자 건축가다. 오사카시 중앙공회당(1917년), 도쿄의 가부기좌(1924년)와 메이지 생명관(1924) 등이 그가 설계한 건물로 모두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미술관 건물은 ‘예술의 신전’을 오르듯이 올라갔다가 다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 열린 공간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다. 조각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의 주변으로 공예 전시장, 사무실과 카페테리아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위층이 메인 공간인 회화갤러리다.  1975년 현재의 붉은 벽돌과 유리파사드가 조화를 이룬 미술관 건물이 들어선 이후 미술도서실을 운영하고 대규모 기획전을 열기 시작했다. 조각 작품을 제외한 현대미술 소장품이 1995년 개관한 도쿄도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되면서 다시 공모전 및 기획전 대관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2년 전시실을 전반적으로 리뉴얼하고 다양한 기획전과 문화예술교육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미술관 설립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토 케이타로의 이름을 딴 아트라운지도 이때 마련됐다.  6월 현재 이곳에서는 자쿠추전에 이어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 센터가 소장한 1906년에서 1977년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퐁피두센터 걸작전’이 열리고 있다. 피카소, 마티스, 들로네, 칸딘스키, 보나르 등 20세기 거장들의 회화, 조각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다음으로 올 가을 시즌에는 ‘반고흐와 고갱’전이 기다리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66년 전처럼… 거장의 건반, 전우를 울리다

    66년 전처럼… 거장의 건반, 전우를 울리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참석 최전방서 자주 쳤던 리스트 ‘위안’ 연주 “김정은에게 피아노 가르치고 싶다” 朴대통령 “자유·평화는 여러분 덕”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라는 영화를 보면 아무리 음악 문외한이라도 당장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영화는 피아노 거장 세이모어 번스타인(89)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피아노와 결혼해 일생을 살다시피 하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번스타인은 어릴 적 운명처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 순간을 영화에서 밝힌다. “어느 날 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피아노로 연주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잠에서 깬 어머니가 ‘너 왜 우는 거니’라고 물었고, 나는 ‘엄마, 어떻게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죠’라고 답했어요.” 영화 속 그 번스타인이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을 방문했다. 한밤중에 자신이 연주한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린 천부적 감수성의 소유자 번스타인은 살육의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1950년 입대한 그는 1951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미 8군 보병으로 6·25에 참전했다. 이날 행사는 ‘6·25전쟁 제66주년 국군 및 유엔군 참전 유공자 위로연’으로, 참전용사와 주한 외교사절 등 500여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6·25 당시 경기도 파주와 연천 등 최전방에서 100여 차례 피아노 공연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에 상처받은 전우들의 마음을 치유했던 번스타인은 이날 66년 만에 옛 전우들 앞에서 다시 한번 피아노를 연주해 감동을 줬다. 번스타인은 연주에 앞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박근혜 대통령님 만나서 영광입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1951년 4월 24일 새벽 5시 30분 인천에 도착한 날은 저의 23세 생일이었는데 이는 한국과 끈끈히 맺고 살라는 계시처럼 여겨졌으며, 동시에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전선에서의 연주는 두려움에 지친 병사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됐다”면서 “열화와 같은 기립박수와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전방에서 군인들을 위해 자주 연주했던 프란츠 리스트의 ‘위안’이란 곡을 이번에 7시간 동안 연습했다”며 ‘위안’을 연주했다. 앞서 이날 오전 번스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 가서 김정은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고 싶다”면서 “오직 농구에만 관심을 보이는 김정은이 교화되도록 첫 피아노 레슨을 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이날 위로연에서 박 대통령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용사님을 비롯한 참전용사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여러분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큰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지켜져 왔는지를 보여 주는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말했다. 위로연에서는 미국 정부 선정 한국전쟁 4대 영웅 중 한 명인 고(故) 김동석 대령의 딸인 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가 ‘아버지께 바치는 편지’를 낭독해 주위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글인 듯 그렸다… 조선후기의 속살

    글인 듯 그렸다… 조선후기의 속살

    문자를 축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서체추상 문자도(文字圖), 책을 비롯해 도자기와 문방구 등을 담은 그림인 책거리(冊巨里)는 정밀한 표현과 자유로운 상상력, 화려한 색채가 독특한 미감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우리 서화미술사에서는 아예 끼워 주지도 않았고 그림을 그린 사람을 모른다는 이유로 작품의 격조마저 평가절하됐던 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조선 후기의 아름답고 독창적인 문자도와 책거리를 보여 주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서예박물관의 재개관 기념 두 번째 전시로, 모든 예술의 토대였던 서(書)의 영역 확장에 방점을 찍으며 기획된 ‘조선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전이다. 조선시대 궁중화와 민화 중 책거리 병풍과 문자도 병풍 등 58점이 1, 2부로 나뉘어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한국을 대표하는 국공립·사립뮤지엄과 화랑, 개인 등이 소장한 걸작이 대규모로 한자리에서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정조 시기에 그려진 초창기 책가도 병풍(삼성미술관리움 소장, 개인 소장)과 책거리 병풍(서울미술관 소장, 개인 소장)을 필두로 궁중화원 이형록이 그린 책가도 병풍(국립박물관 소장)과 ‘백수백복도’(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자수책거리’(용인민속촌 소장), ‘제주도문자도’(제주대박물관 소장, 개인 소장) 등 20여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또 그동안 책거리의 걸작으로 알려진 장한종이 그린 ‘책가도’(경기도박물관 소장), 책만 가득한 ‘책가도’(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호피 장막 속에 책거리가 그려진 ‘호피장막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등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문자도와 책거리는 과감하고 거침없는 표현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꽉 짜인 공간 구성과 사물 배치가 만들어 내는 독자적인 조형언어, 색채미학은 현대미술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런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도 좋지만 작품 속의 다양한 사물을 통해 조선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끈다. 책거리에는 도자기, 자명종, 안경 등 청나라에서 건너온 이국적인 물건들과 상상 속의 동물과 과일들을 늘어놓았다. 사람의 얼굴을 한 새, 느닷없이 등장하는 신선들 등 문자도의 기이한 조합은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져 있다. 전시를 기획한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문자도와 책거리는 학문과 출세, 공부가 전부였던 조선사회 구성원들의 출세욕과 신분상승 욕구, 지적 허영, 고민과 희망, 인심과 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면서 “책거리와 문자도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조형언어”라고 설명했다. 책가도 열풍의 진원지는 정조시대 궁중이었다. 정조는 솜씨 좋은 궁중화원들이 그린 책가도를 어좌 뒤에 일월도 대신 놓고 “경들은 보이는가? 이것은 책이 아니고 그림이다”라면서 책 정치를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궁중에서 불어닥친 책가도 열풍으로 책거리 장르는 일제 강점기까지 200여년간 조선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다. 한자와 사물을 조합해 그린 문자도의 경우 조선에서는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여덟 글자를 표현한 유교문자도가 크게 유행했다. 왕실 중심의 지배층에서 조선왕조 500년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유교이념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교문자도를 의도적으로 성행시킨 결과였다. 조선 후기와 말기에는 문인사대부와 화원화가, 사자관 같은 직업작가들이 주도하던 조선의 미술계에 피지배층인 민(民)이 그림의 새로운 생산자와 소비자로 참여하게 된다. 일종의 미술시장이 형성되고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민중의 주문에 따라 그림이 생산되고 소비되기에 이른다. 정 교수는 “반상의 신분질서가 무너지던 시기에 민중들은 이상적인 세상이 도래하기를 희구하며 살아갔고, 무명화가들은 민이 꿈꾸는 미래를 은유적으로 문자도와 책거리에 담았다”며 “민간 문자도에는 교화와 욕망이 동전의 양면처럼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8월 28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임종룡 금융위원장 “보험사 자본 확충 천천히”

    임종룡 금융위원장 “보험사 자본 확충 천천히”

    ‘금감원장 압박’ 시달리던 업계는 ‘안도’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보험업계 새 회계기준 도입과 관련해 “국제 기준이 공식적으로 확정되면 제도 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보험업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의 ‘기준서’가 나오지 않은 만큼 제도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두르라”는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의 몰아치기에 내몰렸던 보험업계로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임 위원장은 10일 서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보험업 IFRS4 2단계 도입 영향 간담회’에서 “IFRS4 2단계 도입 시기나 방법과 관련해 불필요한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임 위원장은 “재무회계기준 변경이 보험사에 미칠 단기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는 세부 방안들을 검토,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시행되는 IFRS4 2단계의 핵심은 부채 규모를 ‘원가’에서 ‘시가’ 평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 부채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난다. 업계에선 최대 50조원 안팎의 충당금 부담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새 회계기준은 늦어도 내년 1분기쯤 확정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력이 더 정확히 산정될 수 있도록 지급여력비율(RBC)제도를 개선하고, 부채적정성평가제도를 정교화해 새 회계기준이 도입됐을 때 충격을 완화하기로 했다. 앞서 진 원장은 한달 전 보험업계 최고경영자(CEO)를 소집해 “올해부터 IFRS4 2단계 준비를 철저히 해 달라”며 2단계 시행 이전이라도 보험 부채를 단계적으로 시가 평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회계기준 변경만으로도 부채가 급증해 보험사들은 자본금 확충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3년 안에 더 쌓아야 할 자본금만 최소 30조원대로 추산됐다. 보험사들은 “국제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금감원이 IFRS4 2단계를 밀어붙이며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반발해 왔다. 임 위원장의 ‘속도 조절’ 발언은 보험업권의 이런 반발과 시장의 불안감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IFRS4 2단계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며 “임 위원장의 발언은 불필요한 불안 심리 확산 차단과 보험업계 달래기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