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교토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성남시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여직원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집값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기형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28
  • [약진하는 공기업] 에너지관리공단, 中企 에너지 절감 지원 동반성장 파트너로

    [약진하는 공기업] 에너지관리공단, 中企 에너지 절감 지원 동반성장 파트너로

    에너지관리공단은 새 나가는 에너지와 대기오염 잡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우선 동반성장을 위해 중소기업의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을 돕는다. 그동안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비용과 인력문제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분야다. 최근 4년간 7633개 사업장을 총 2만회 이상 방문해 26만 4000toe(석유환산톤, 1toe=4000㎾h) 에너지절감 잠재량을 발굴했다. 진단 비용조차 대기 어려운 중소기업에는 7년간 147억원을 지원해 에너지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에 이바지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산업통산자원부와 함께 교토의정서 발효 이후인 2005년 2월 이래 온실가스 감축사업(KVER project)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경기 부천과 군포, 용인시 등에 국내 1호 중소 사업장용 KVER 시범사업을 등록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는 연간 약 660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조사나 프로젝트 발굴도 돕는다. 2012년에는 해외 시장조사와 프로젝트 발굴에 약 11억원을 투입해 11개 중소기업의 해외 설비인증 획득을 도왔다. 변종립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공단의 에너지절감 노력이 각각의 회사엔 투자로, 사회 전반에는 동반성장의 문화로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동일본 대지진 3년 르포] “딸기 비닐하우스 재건으로 악몽 털었죠”… 年매출 1억엔의 꿈

    [동일본 대지진 3년 르포] “딸기 비닐하우스 재건으로 악몽 털었죠”… 年매출 1억엔의 꿈

    일본 남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하뉴 유즈루(20)는 미야기현 센다이시 출신이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 당시 그는 센다이의 한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하다 스케이트화를 벗지도 못한 채 간신히 밖으로 대피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아이스링크가 무너져 훈련을 계속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뉴 본인의 집도 큰 피해를 입어 가족과 함께 피난소에서 쪽잠을 자며 버텨야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전국 각지를 돌며 혹독한 훈련을 지속한 결과 하뉴는 쇼트프로그램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소치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올림픽 이후 하뉴는 “센다이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고 도와줘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며 포상금으로 받은 600만엔(약 6300만원)을 동일본 대지진 재해지역에 기부했다. 지난달 28~31일 ‘미야기현 복귀 투어’를 위해 국내 여행사 5곳의 관계자와 함께 방문한 센다이 시내 곳곳에서도 하뉴의 사진과 포스터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침 일본에 도착한 28일은 하뉴가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따낸 날이어서 신문과 방송은 관련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센다이 시민들도 “하뉴가 우승함으로써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활짝 웃는 센다이 시민들의 얼굴 한편에는 아직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뉴는 대지진의 피해를 극복하고 연거푸 금메달을 따냈지만 정작 미야기현은 아직도 대지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센다이역 근처의 한 세미나실에서 만난 미야기현 관계자들과 국내 관광업자들은 하나같이 앓는 소리를 했다. 미야기현 관광연맹의 호리 아카네(33·여)는 “대지진 이후 미야기현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큰 폭으로 줄었다”면서 “센다이 공항을 통해 일본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도 상당수는 휴가지를 미야기현 내로 잡지 않고 곧장 다른 현으로 이동하곤 한다”고 털어놨다. 국내 여행사 비코티에스의 민병일(39) 차장은 “도쿄나 교토, 오사카 등 한국에 많이 알려진 곳은 그나마 관광객 수가 많이 회복됐지만 미야기현을 비롯한 동북부 지역에는 여행 수요가 거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지진 이전의 미야기현은 본래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해 관광객의 발길이 끝이지 않던 곳이었다.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로 불리는 미야기현 마쓰시마는 260여개에 달하는 섬이 어우러내는 풍경이 아름다워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을 정도로 유명하다. 센다이역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위치한 아키우 온천 지역도 일본의 3대 온천 휴양지로 꼽히고 있다. 센다이의 명물인 규탄(소 혀 구이요리)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덕분에 2010년에 미야기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5만 9000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진이 발생한 2011년에는 4만 7000여명으로 급감했고 2012년과 2013년에도 연이어 7만 4000여명 수준에 머물며 좀처럼 대지진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의 경우에도 2010년에는 1만 6500여명이 미야기현을 찾았지만 2011년에는 5500여명, 2012년에는 4500여명, 2013년에는 7700여명으로 대지진 이전의 절반 수준을 밑돌고 있다. 실제로 미야기현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동안 다른 한국인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미야기현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큰 폭으로 감소한 가장 큰 이유는 방사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미야기현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현에 인접해 있어 아직도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불안감 때문에 일본산 수산물을 구매하지 않는데 일본에서 음식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수산물도 접하게 될 것 같아 찝찝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여행사 관계자들은 “미야기현에 간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여행사 박창흥(56) 이사도 “지인에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오늘은 서울이 센다이보다 방사능 수치가 높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사실 그날 센다이와 서울의 방사능 수치는 모두 정상 수준이었는데 한국인들은 당연히 센다이의 방사능 수치가 인체에 위험할 정도로 높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미야기현 관계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미야기현의 주요 관광지들은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로부터 100㎞나 떨어져 있고 현재 미야기현의 방사능 수치도 정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먹거리도 정부의 엄격한 검사를 거쳤기 때문에 안심하고 즐겨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센다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어느 정도 잊은 모습이었다. 센다이에서 가장 번화한 아오바도오리에는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로 회식을 하러 나온 직장인과 쇼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이들 중 대다수는 개의치 않고 초밥·회·구운 굴 등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를 목격한 국내 여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만약 미야기현의 방사능 문제가 아직도 정말 심각하다면 건강 문제에 예민한 일본인들이 센다이에만 100만명이나 살고 있을 리가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미야기현도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미야기현 마쓰시마에서는 마을 사무소에 방사능 측정기를 설치해 놓고 그 수치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미야기현 식당 곳곳에는 ‘식재료로 사용된 해산물은 방사능 수치 검사를 마친 안전한 식품’이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기자가 마쓰시마를 방문한 29일에는 미야기현 관광과에서 마쓰시마의 부흥을 기원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아직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미야기현 주민들은 이제 조금씩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야마모토에서 농사를 지으며 관광객을 상대로 ‘딸기 수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토 다쿠미(31)는 “2011년 쓰나미로 딸기 비닐하우스가 모두 무너졌을 때는 ‘이 마을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면서 “하지만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2012년부터 정부에서 돈을 빌려 비닐하우스를 재건해 이제는 매년 1억엔의 매출을 예상할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미야기현 관광과에 근무하는 야나기사와 히로시(48)는 “그동안 떠나갔던 관광객들이 올해는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추세”라며 미소를 지었다. 하뉴는 훈련장을 잃고 전국을 떠돌다 고베 지역에서 아이스쇼를 하던 중 ‘1995년 큰 지진을 겪었던 고베가 회복한 것처럼 센다이도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바라봤던 하뉴처럼 미야기현 주민들도 ‘멋진 복귀’를 꿈꾸고 있다. 센다이·마쓰시마(미야기현) 글 사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日帝, 9년간 6500여명을 산 채로 해부”

    지난 달 29일 독일 베를린의 쾨르버 재단본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30만명 이상을 학살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초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선 중국 헤이룽장성에 남아 있는 일제 ‘731부대’의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일제의 만행과 731부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731부대가 생산한 살상용 세균 탓에 중국인 20만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정일성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은 ‘책과 인생’ 4월호에 기고한 ‘731부대의 인체실험 면죄 내막’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적시했다. 저자는 쓰네이시 게이치의 ‘사라진 세균전부대 관동군 제731부대’ 등 저작물과 그간 공표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731부대가 히로히토 일본왕의 칙령으로 1932년 창설됐으며, 반인륜적 생체실험이 종전 이후 도쿄전범재판소에 기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나선 미국이 세균전 자료 등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일본과 은밀한 뒷거래를 벌인 탓이라는 것이다.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남쪽 베이인허에 ‘관동군방역반’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부대는 패전 직전 1000개가 넘는 사람의 머리·팔·내장 표본을 인근 송화강에 갖다버리고 50명가량의 살아있는 인체실험자를 파묻는 방법으로 교묘히 은폐에 나섰다. 애초 연구소가 아닌 제재소를 짓는다는 소문을 내 인체실험자는 통나무를 뜻하는 ‘마루타’로 불렸다. 교토제국대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세균전문의 이시이 시로가 총책임자로 히로히토의 막내동생도 이 부대의 장교로 복무했다고 한다. 부대 규모는 군인 1200여명 등 한때 3560명까지 늘었고, 300~4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실험실을 갖췄다. “날마다 2~3명, 많게는 5명을 산 채로 해부했다”는 증언에 따라 9년간 희생자는 6500명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명단에는 이청천, 심득룡, 이기수, 고창률 등 독립운동가로 보이는 조선인 희생자의 이름도 담겨 있다. 저자는 “인체실험 기록을 미국에 넘겨주고 면죄부를 받은 가해자들은 의대와 국립연구소, 병원, 제약회사에서 전후 일본 의학계의 중진으로 우뚝 섰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사물 유람(현시원 지음, 현실문화 펴냄) 새롭고 멋진 신상품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너무나 평범해서 관심 밖에 놓여 있는, 그러나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물들에 대한 단상. 거리의 신호등부터 휴일 을지로 상점가의 주인공 삼색 셔터, 스스로 부르르 떨게 만들어진 커피숍의 진동 알림벨, 낯설고도 귀여운 한강의 오리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누군가 움직여 주길 기다리는 공원의 운동기구, 괴팍한 철근을 덮은 공사장의 가림막, 정치인의 홍보용 사진에 무료로 출연한 빗자루 등 동시대 인간사를 둘러싼 시각이미지를 살펴보고 뜯어본다. 현직 독립큐레이터인 저자의 독특한 안목을 따라가다 보면 내리는 결론, 세상에 쓸모 없는 사물은 없다. 246쪽. 1만 6500원. 작가의 붓(도널드 프리드먼 지음, 박미성·배은경 옮김, 아트북스 펴냄) 문학적 집필활동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간 작가-화가들에 대한 옴니버스 전기. 안데르센, 괴테, 예이츠, 귄터 그라스, 빅토르 위고 등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동서양 작가 100명이 남긴 아름다운 회화·드로잉·조각작품 200여점을 작가의 삶과 함께 소개한다. 변호사에서 소설가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가 커트 보네거트, 톰 울프 등 저명한 작가와 한 미발표 인터뷰, 수십년간 연구해 온 예술분야의 지식을 접목해 완성했다. 펜과 붓, 글과 그림은 표현 수단은 다르지만 예술적 감흥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문학과 예술의 근원 또한 같다는 점, 작가와 화가는 하얀종이 위에 짙은 자국을 만들고자 하는 본능을 공유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36쪽. 3만 5000원. 행복에게 길을 묻다(최창일 지음, 푸른길 펴냄) ‘스스로 행복해지기’가 어느 때보다 큰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이즈음 중견 작가 최창일이 행복한 삶을 위한 단상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행복과 동행하는 방법에 대해 작가는 “최선을 다해 감사하고, 배려와 지혜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노자를 인용한다. ‘내 인생에 미안하게 살지 않는 기술’,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의 비결’, ‘성공을 위한 조건’ 등 4장으로 나뉘어진 책은 행복의 길라잡이가 돼 줄 잠언들로 가득하다. “…행복의 시작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때 얻을 수 있습니다.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삶에 닥친 고통을 이길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산골 작업실에서 자연을 화폭에 담는 최성환 화가의 서정적 그림들이 책 갈피갈피에 곁들여져 지혜가 스민 글맛을 더욱 빛내준다. 169쪽. 1만 2000원. 미디어와 민주주의(제임스 커런 지음, 이봉현 옮김, 한울 펴냄) 미국인 3분의2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국적을 모르고 교토의정서의 성격을 알지 못한다.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다. 반면 TV시리즈 ‘24’로 고문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섹스 앤드 더 시티’로써 여성 역할과 기대에 대한 토론을 촉진한다. 미국 저널리즘의 이상과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영국 언론학자인 저자는 미국 저널리즘의 성격과 역할 분석을 시작으로 미디어의 역사와 문화·기술, 영국·덴마크·핀란드와 비교, 주요 관심사의 변천 등을 훑으면서 민주주의와 관계 탐구를 이어간다. 저자가 평생 천착한 연구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424쪽. 4만 3000원.
  •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 이노우에 도쿄신문 편집위원 “원전 위험성 기사 반영 못해 반성”

    ‘후쿠시마 원전사고 3년’ 이노우에 도쿄신문 편집위원 “원전 위험성 기사 반영 못해 반성”

    일본 도쿄신문의 이노우에 요시유키(59) 편집위원은 2012년 12월 후쿠시마 지국 발령을 자원했다. 교토대 지질학과 출신인 그는 과학기자가 되고 싶어 1977년 신문사에 입사했다. 입사시험 문제의 하나가 ‘원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그가 써낸 대답은 명료했다. “원전을 추진할 게 아니라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게 신문의 역할”이라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3주년(11일)을 앞두고 7일 만난 그는 “내가 기사를 잘 썼더라면 원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기자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부로 배치받기 직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나 일본에서도 반원전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반대론이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그는 “그후 일본은 원전 가동률이 가장 높은 시기를 맞지만 어떤 문제도 없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다”면서 “원전이 위험하다는 지식은 갖고 있었으나 그걸 지면에 반영하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뒤돌아봤다. 그는 “일본 정부가 3년 전 원전 사고 직후 후쿠시마 일대의 방사선량이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주민을 피난시키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었고, 그런 (정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피폭을 했다는 의식으로 인해 후쿠시마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기고] 온실가스 저감, 非이산화탄소가 돌파구다/문승현 환경부 Non-CO2온실가스저감기술개발사업단장

    [기고] 온실가스 저감, 非이산화탄소가 돌파구다/문승현 환경부 Non-CO2온실가스저감기술개발사업단장

    202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7억 7600만 tCO2e(온난화 효과를 유발하는 정도의 지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30%에 해당하는 2억 3300만 tCO2e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15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를 시행하고 기술개발 전략 로드맵도 올해 안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가 설정한 온실가스 저감목표는 한국에 있는 모든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쉽게 말해 현재 운행하는 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해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온실가스를 줄여나가야 할까. 산업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온실가스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다. 비(非)이산화탄소(Non-CO2) 저감이 바로 그것이다. 비이산화탄소 온실가스란 교토의정서에서 지정한 6개 온실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제외한 5개 가스(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와 최근에 추가로 지정된 삼불화질소를 통칭하는 용어다. 이산화탄소의 온난화 강도와 비교해 최소 21배(메탄)부터 최대 2만 3900배(육불화황)나 강하다. 따라서 이런 가스를 파괴했을 때 얻는 온실가스 저감 효과는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비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이지만 이산화탄소에 비해 기술적으로 줄이기가 쉽고 경제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산화탄소 저감이 포집-수송-저장(또는 전환)이라는 여러 가지 기술을 복합적으로 적용한 시스템 기술로 달성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비이산화탄소 저감은 연소, 촉매, 플라즈마, 흡수, 흡착, 분리막 등 다양한 단위기술 중 하나만 적용해도 가능하다. 온실가스 저감에서 상대적으로 비용 대비 효과가 큰 방안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현재 유엔에 등록된 온실가스 저감사업에서 비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산화탄소가 연료를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과는 달리 비이산화탄소는 환경기초시설이나 산업활동에서 많이 발생한다. 특히 한국은 전자, 자동차, 선박, 화학 등이 수출 주력산업이어서 향후 비이산화탄소 배출과 무역이 연계될 경우 우리나라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비이산화탄소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핵심기술 국산화가 그만큼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목숨을 건 학도병 탈출기… 첫 기록을 꺼내다

    목숨을 건 학도병 탈출기… 첫 기록을 꺼내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조국/윤재현 지음/나남/592쪽/3만 5000원 “꿈에 그리던 광복군이 된 것은 한없이 기뻤으나 장쑤성 린촨시에서 보낸 시간은 지루하고 무료했다. (중략) 시간을 뜻있게 보내기 위해 우리끼리 잡지를 만들기로 하고 몇몇 동료가 함께 나섰다. 이름은 ‘등불’로 정했다.”(225쪽) 3·1절 95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이 가슴 뛰는 단어를 떠올리며 세상에 나온 잡지 ‘등불’은 ‘장정’(김준엽)이나 ‘돌베개’(장준하) 등의 책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중국 민가의 개를 훔쳐 먹을 만큼 비참했던 광복군 간부 훈련반 시절 저자인 고(故) 윤재현 박사는 동료인 김준엽·장준하 등과 의기투합해 책을 펴냈다. 종이가 없어 속옷을 벗어 손으로 필사한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 보스턴칼리지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한 생물학자다. 유전변이 쥐를 다룬 그의 논문은 지금도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 세계적 과학저널에 인용될 만큼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가 해방 공간에 머문 시기는 불과 3년. 무장해제를 조건으로 가까스로 귀국한 광복군과 불순세력으로 내몰린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처지를 한탄하다 급작스럽게 미국행을 택했다. 1948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도미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저자는 19세에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유학 갔다. 하지만 침략 전쟁에 광분한 일제에 등떠밀려 1940년대 초 중국의 전장으로 향했다. 저자는 “‘일본군 입대’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 몸부리치다 온갖 좌절과 분노를 쏟아냈다”고 했다. 앞장서 학병 지원을 선전하고 다닌 당시 조선 최고 지식인들은 저주의 대상이 됐다. 이후의 삶은 광풍처럼 휘몰아쳤다. 용산 25부대 입영 이후 설원을 내달려 배치된 전장, 살아 있는 중국인을 창검으로 찔러 죽이던 훈련, 중국 변방의 비참한 조선인 술집 접대부들, 고문과 사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탈영, 2400㎞를 걸어 73일 만에 도착한 충칭의 임시정부. 이들을 맞은 건 백범 김구였다. 저자는 “위대한 혁명 영웅을 만나 감격과 기쁨에 또 한 번 목이 메었다”고 회상했다. 몸도 씻고 수염도 깎고 화톳불을 피워 이투성이 옷을 태운 저자 일행은 밤을 지새워 목놓아 조선의 옛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시 미군 정보기관인 OSS에 배속돼 특수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국내 침투가 임박한 1945년 8월 10일, 훈련 책임자로부터 일제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우리나라 최초의 학병 탈출기인 ‘사선을 헤매며’(1948)에 담겼다.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우사 김규식은 책 서두의 추천사에서 “심신상의 고통은 이루 기록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단 한 권 남았던 책은 보존 상태가 불량해 내용을 알아보기가 불가능했다. 저자의 조카인 김현주 광운대 교수는 1994년에 타계한 윤 교수를 대신해 ‘사선을 헤매며’와 임시정부 소개 책자인 ‘우리 임시정부’(1946), 소설 ‘동토의 청춘’(1979)을 엮어 책을 펴냈다. 책은 우리의 태만과 방종을 꾸짖는 고함 소리와 같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천국을 누비다…‘설국의 고장’ 日도호쿠 3현을 가다

    천국을 누비다…‘설국의 고장’ 日도호쿠 3현을 가다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등 일본의 3개 현은 혼슈의 동북 끝에 있다. 이 지역은 외진 곳인 데다 농업 외에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 변방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은 한적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 쾌적한 환경, 잘 다듬어진 아늑한 시골 풍광은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토교통성 동북운수국 국제관광과의 기무라 다카히로 전문관은 “이곳은 도시인들이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겨울왕국] 핫코다 설산서 5월까지 눈꽃 스키… 아오모리 시내선 벚꽃 만끽 겨울을 달궜던 설원(雪原)이 봄기운에 하루가 다르게 힘을 잃고 있다. 스키 마니아들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오모리시 핫코다(1584m) 산은 아직도 눈의 세계다. 아오모리는 연간 강설량이 426㎝에 이를 정도로 일본에서도 눈이 많은 지역이다. 하루 최대 적설량은 82㎝다. 여기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4~5도에 불과해 오랫동안 눈이 녹지 않는다. 일본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핫코다 산 자락에 자리한 스키장은 5월 중순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아오모리현 관광국제전략국 관광교류추진과의 사카모토 슈헤이는 “스키장은 아오모리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여서 4월이 되면 시내에서 벚꽃을 구경한 뒤 산에서 눈꽃을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정상부에서는 수빙(樹氷)이 반긴다. 수빙은 빙점 이하로 냉각된 짙은 안개가 나무에 달라붙어 형성된 하얀 얼음층으로 일명 ‘스노 몬스터’로 불린다. 말 그대로 기괴한 괴물이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설질(雪質)은 수분이 적은 데다 입자가 고운 스노 파우더여서 최상이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올 수도 있고 상급자의 경우 신고를 하면 수빙과 숲 속을 자유롭게 활강할 수도 있다. 인근에는 1954년 국민보양온천 1호로 지정된 스카유 온천이 있어 스키어들의 피로를 풀어 준다. 센닌부로(千人風呂)라는 혼욕 대욕탕이 유명하다. 아키타현 모리요시 산에 있는 아니 스키장은 슬로프가 삼나무와 너도밤나무 군락지 사이에 형성돼 있다. 눈을 이고 있는 삼나무의 푸른 잎과 알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너도밤나무의 앙상한 가지가 대비된다. 스키장 정상에서도 수빙을 구경할 수 있다. [설국열차] 스토브열차 속 난로에 손 녹이고… 내륙열차 창밖 설경 보며 맘 녹이고 아오모리현의 스토브열차와 아키타현의 내륙열차는 완행열차다. 나카사토와 고쇼가와라 역을 왕복 운행하는 스토브열차에 오르면 객실과 승무원 모두 1950~60년대 모습 그대로여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객실 가운데에는 석탄 난로가 설치돼 있어 오징어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종종 들려오는 신호등 소리도 한가하게 울린다. 내륙열차는 기타아키타시 다카노스역과 센보쿠시 가쿠노다테를 잇는 협궤 전철이다. 차창 사이로 아키타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쉴 새 없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열차는 연간 2억엔(20억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 명백을 잇고 있다. 두 열차가 고속철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빠름이 아닌 느림 때문이다.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풍토와 여유가 부럽다. 이와테현에 있는 히라이즈미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교 유적지다. 홋카이도·도후쿠 지방에서는 처음이고 일본 전체로는 16번째다. 히라이즈미 문화유산은 주손지 절(中尊寺), 모쓰지 절(毛越寺), 무료코인 유적지(觀自在王院跡) 등으로 이뤄져 있다. 주손지에는 일본 국보 1호인 곤지키도(色堂)가 보관돼 있다. 곤지키도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 48개 불상을 금으로 장식한 것으로 이곳을 통치했던 후지와라가의 1대손 기요하라가 1124년 만들었다. 불상에다 변하지 않는 금을 입혔으니 영원불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읽을 수 있다. 모쓰지는 2대손 모토히라가 건립한 사원으로 ‘정토의 세계’를 표현한 정원이 복원, 정비돼 있다. 무료코인 유적지는 3대손 히데히라가 교토의 뵤도인 사찰을 본떠 만든 사원으로 현재는 연못 터와 초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페스티벌] 메밀국수 먹기 대회선 추억 쌓고… 가마쿠라 축제선 소원빌며 情 쌓고 겨울은 관광 비수기다. 추워서 야외 활동을 하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북 3개 현은 아기자기한 축제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고 있다. 이와테현 하나마키시에서는 매년 완코소바(메밀국수) 대회가 개최된다. 56회째를 맞는 올해 대회는 지난 11일 열렸다. 하나마키의 메밀국수는 에도시대 도쿄로 가던 영주 남부토시나오가 완(椀)이라는 작은 그릇에 대접받은 메밀국수가 너무 맛있어 여러 차례 더 먹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대회는 소년부, 일반부, 여자부 등으로 나뉘어 완에 담긴 메밀국수를 누가 얼마나 먹는가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많이 먹는 것을 자랑하는 것보다 미련한 짓이 없다지만 친구, 부모들이 북과 함성을 울리며 열띤 응원전을 펼치자 대회는 달아올랐다. 보통 여자는 50그릇, 성인 남자는 70그릇을 먹는데 역대 최고 기록은 254그릇이라고 한다. 승패를 떠나 참가자들에겐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고 시에서는 메밀을 홍보하고 비수기 특수를 창출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남는 장사다. 아키타현 요코테시는 인구 10만의 소도시지만 가마쿠라 축제가 열리면 이틀 동안 3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다. 가마쿠라는 눈으로 만든 눈집으로, 안에 물신(水神)을 모시고 집안의 평화와 안녕,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한다. 축제는 400년이 넘었으며 관광객들은 시내 곳곳에 설치된 가마쿠라를 순회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아오모리 고쇼가와라시에서는 해마다 8월 다치네푸타 축제가 열려 지난해에는 13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높이 24m, 무게 19t에 이르는 대형 무사 인형 3개를 앞세우고 춤과 노래를 추며 시내를 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축제는 여름에만 반짝하지 않고 사시사철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시내에 다치네푸타 상설 전시관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까이서 다치네푸타를 볼 수 있으며 제작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글 사진 이와테·아오모리·아키타(일본)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동북 3현을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비행기로 센다이로 간 뒤 기차를 이용하거나 아오모리와 아키타 국제 공항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센다이는 아시아나항공이 월·수·금·일요일 주 4회 운항한다. 센다이공항에서 JR센다이역까지는 지하철로 25분 걸리며 센다이역에서 신칸센을 타면 이와테현 모리오카까지 44분 걸린다. 아오모리는 수·금·일요일, 아키다는 월·목·토요일 각각 주 3회 대한항공이 뜬다. 항공편수는 항공사 사정에 따라 조정되며 비행 시간은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주변 볼거리 아키타현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 기슭에 있는 유토온천은 역사가 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온천이 여러 개 있지만 학이 내려와 상처를 치유했다는 뽀얀 우유 빛깔의 쓰르노유 온천이 유명하다. 아오모리현의 오이라세 계곡은 울창한 수림에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흘러 봄부터 가을까지 트레킹하기에 좋다. 도와다 호수의 겨울 축제도 볼 만하다. 눈 조각상을 구경할 수 있으며 눈으로 만든 얼음집에서 술과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 [문화단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아카데미 강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다음 달 27일부터 5월 29일까지 10주간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제1기 국외문화재 아카데미’ 강좌를 개최한다. 국외 한국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강좌에는 유홍준 명지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정희두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상임이사,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응천 동국대 교수 등 명사들이 강연자로 나선다. 수강은 무료이며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매회 수강생 20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02)6902-0756.
  • 일본인 심금 울리는 윤동주 詩… 日서 추모 열기

    일본인 심금 울리는 윤동주 詩… 日서 추모 열기

    “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16일 일본 도쿄 니시이케부쿠로의 릿쿄대학 교회. 전전날 폭설의 영향으로 강풍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250여명이 자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윤동주 시인의 69주기인 이날 일본에서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인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이 시인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열었다. 시인은 25세이던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과 도시샤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1943년 7월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건강이 악화되면서 1945년 2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릿쿄대학 출신으로 윤동주 시인의 사연에 감동을 받은 야나기하라 야스코를 주축으로 모임을 만들어 2008년부터 매년 윤동주 시인의 기일에 맞춰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행사는 매년 200~300명이 찾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이날 행사에서는 ‘아우의 인상화’, ‘햇빛·바람’, ‘자화상’, ‘사랑의 전당’, ‘쉽게 씌어진 시’, ‘서시’ 등 5편의 시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낭독했다. 또 일본·조선(한국) 근대사 전문가인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가 “역사연구자가 본 윤동주”라는 주제로 윤동주 시인의 창씨개명 여부와 독립운동 당시의 상황 등에 대해 강연을 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야나기하라는 “약 20년 전 윤동주 시인이 겪은 일을 알게 되면서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가 일본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도쿄에서 집필한 미작성 원고는 없는지 조사를 하고 윤동주 시인에 대해 많은 일본인에게 알리고 싶어서 이 행사를 치러 왔다”고 설명했다. 또 야나기하라는 “윤동주 시인이 겪은 아픔과 그의 시가 일본인들에게도 심금을 울리게 하는 면이 있다”면서 “나 같은 전후 세대는 과거의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윤동주 시인이 겪은 일을 비롯해 과거의 진실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한국인들에게도 제대로 인정을 받고, 양국 관계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씨줄날줄] 생체실험 박사 논문/최광숙 논설위원

    나치의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로 불린다. 독일 친위대 대위이자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 내과 의사이던 그는 끔찍한 인간 생체실험들을 자행했다. 쌍둥이를 하나로 꿰매 샴쌍둥이로 만들고, 푸른 눈을 만든다며 어린 아이의 눈에 화학약품을 넣었다. 아이의 생식기 교체와 마취 없이 간 꺼내기 등 그의 생체실험은 엽기 그 자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도 멩겔레 못지않은 ‘냉혈 의사’가 있었다.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다. 교토제국대 의과를 졸업한 의사인 그가 지휘한 731부대에서는 포로로 잡힌 중국군, 우리 독립투사, 여성과 어린이 등 모두 1만여명을 생체실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균전에 대비해 페스트균과 탄저균 등을 주입한 음식과 물을 포로수용소의 사람들에게 먹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도 콜레라균이 묻은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산 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겨 내기도 했고, 성병 연구를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강제로 매독·임질균을 감염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동상실험을 한다며 중국인을 발가벗겨 물벼락을 내린 뒤 추위에 저녁 내내 방치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교토대와 규슈제국대, 심지어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서 731부대 관계자 수십여명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쓴 논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극비 문서로 대량 보관돼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23명의 전범 중 20명이 의사였다. 하지만 마루타 실험에 나섰던 일본 의사들은 오히려 전후 의학계, 학계에서 유명인사로 출세했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쟁의학 범죄에 대한 단죄는커녕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의 역주행을 일삼고 있다. 731부대원들이 생체실험도 모자라 이를 바탕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실은 일본의 니시야마 가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에 의해 이번에 처음 드러났다. 그가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몰역사인식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과거사 연구에 우리는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일제 강점기 전문가를 비롯한 일본 전문가들을 긴 안목을 갖고 길러내야 한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일본 내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연대해서라도 과거의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야 일본의 억지 논리에 실증적으로 반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日731부대 관계자들, 교토대에서 박사학위”

    일본의 명문 국립대학인 교토(京都)대가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 구성원들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21일 한 일본인 학자의 논문에서 확인됐다. 니시야마 가쓰오(西山勝夫) 시가(滋賀)대 의대 명예교수는 2012년 ‘사회의학연구’라는 학술지에 실은 ‘731부대 관계자 등의 교토대학 의학부 박사 논문의 검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니시야마 교수는 교토대 도서관과 국회 도서관 등의 소장자료 목록을 검색한 결과 731부대 관계자 최소 23명이 1960년까지 교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확인된 논문 중에는 ‘특수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생균(독성을 약화시킨 생 바이러스) 건조 보존의 연구’, ‘약한 독성의 페스트균의 동결진공건조법에 의한 생존보존방법 연구’ 등 731부대의 생체실험 결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저작들이 포함됐다. 니시야마 교수는 논문에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연구에 종사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과정에서 교토대학과 관할 부처인 문부과학성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시야마 교수는 또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31부대 장교를 지낸 인사가 2차대전 종전 직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 제출한 의학박사학위 논문을 문부과학성이 인정한 사례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32년 만주 하얼빈 근교에 세워진 731부대(정식명칭 관동군방역급수부본부)는 정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포로로 잡힌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상대로 각종 세균실험과 독가스 실험 등을 자행한 일제 전쟁범죄의 상징이다. 731부대는 반인도적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전 당시 미국이 이 부대의 연구결과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부대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해 진상규명과 관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마루타 실험’에 박사학위 줬다

    일본 국립대학인 교토대가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 구성원들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21일 한 일본인 학자의 논문에서 확인됐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연구에 명문 국립대학과 관할 문부과학성이 개입된 것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니시야마 가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는 2012년 ‘사회의학연구’라는 학술지에 실은 ‘731부대 관계자 등의 교토대학 의학부 박사 논문의 검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논문에서 이 부대 관계자 최소 23명이 1960년까지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된 논문 중에는 ‘특수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생균(독성을 약화시킨 생 바이러스) 건조 보존의 연구’ ‘약한 독성의 페스트균의 동결진공건조법에 의한 생존보존방법 연구’ 등 731부대의 생체실험 결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저작들이 포함됐다. 니시야마 교수는 논문에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연구에 종사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과정에서 교토대와 관할 부처인 문부과학성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731부대 장교를 지낸 인사가 2차대전 종전 직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 제출한 의학박사학위 논문을 문부과학성이 인정한 사례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1932년 만주 하얼빈 근교에 세워진 731부대(정식명칭 관동군방역급수부본부)는 포로로 잡힌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상대로 각종 세균과 독가스 실험 등 이른바 ‘마루타 실험’을 자행했다. 2차대전 종전 당시 미국이 이 부대의 연구 결과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이시이 시로 부대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해 진상 규명과 관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사진에 가장 많이 담기는 세계 관광지 TOP 5…한국은?

    사진에 가장 많이 담기는 세계 관광지 TOP 5…한국은?

    세계에서 사진으로 가장 많이 담기고 있는 관광지는 뉴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로마, 바르셀로나, 파리, 이스탄불 순으로 확인됐다고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이 보도했다. ‘사이츠맵’(sightsmap.com)이라는 구글의 한 사이트의 열지도(heatmap)를 통해 공개된 이 순위는 전 세계 네티즌이 직접 사진공유 웹사이트인 ‘파노라미오’를 통해 공유한 데이터를 토대로 매겨진 것이다. 구글이 소유한 파노라미오는 사람들이 새롭게 올리는 사진 중 일부를 선정해 매달 말 구글어스와 구글맵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 웹사이트에 따르면 사진으로 가장 많이 담는 세계 관광지 상위 5곳 중에서 4곳이 유럽연합(EU)에 속한다. 미국 뉴욕에 이어 이탈리아의 로마,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프랑스의 파리, 터키의 이스탄불이 그것이다. 이 같은 정보가 공개된 지도를 보면 자신이 원하는 데로 분류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범위를 제한하면 가장 인기가 높은 지역은 노란색으로 표시되며, 순위가 내려갈수록 주황색, 붉은색, 보라색, 파란색 순으로 바뀌며, 커서를 해당 지역에 올려놓으면 지역별 순위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인기 명소도 확인할 수 있다. 예상대로 가장 사진에 많아 담기는 곳은 서울인데 그 중에서 경복궁과 남산 팔각정이 공동 1위의 사진 명소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 주룽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어 일본의 도쿄, 교토, 타이의 방콕 순이다. 우리의 서울은 아시아에서 9위, 세계에서는 132위로 확인되고 있다. 이 밖에도 북미에서는 세계 1위인 뉴욕에 이어 나이아가라 폭포,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하바나 순이며, 남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상파울루(브라질), 멕시코 시티, 이파네마(브라질 유명 리조트), 이구아수 폭포(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 순으로 나타났다. 사진=사이츠맵/파노라미오/구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輪’ 日 올해의 한자 ‘바퀴 륜’ 선정

    일본의 ‘올해의 한자’로 ‘輪’(바퀴 륜)자가 선정됐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12일 오후 교토 기요미즈테라에서 ‘輪’자가 전체 17만 290표 가운데 9518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199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올해의 한자’ 선정은 엽서와 팩스, 인터넷 등으로 한 글자짜리 올해의 한자를 모집한다. 기요미즈테라의 주지가 응모 수가 가장 많았던 글자를 대형 붓으로 써내리는 방식으로 발표한다. 일본의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 성공이 가장 큰 이유였고, 동북지방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팀 라쿠텐 이글스가 올해 일본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팀워크의 중요성과 응원의 연대(輪)로 감명을 줬다는 게 수상 이유라고 협회는 밝혔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런던 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획득 등의 영향으로 ‘金’(금)이 올해의 한자로 선정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첫 국립외교원 후보자 선발시험 수석 합격자 홍다혜씨 합격 수기

    첫 국립외교원 후보자 선발시험 수석 합격자 홍다혜씨 합격 수기

    “저 역시 앞서 합격한 선배들의 수기를 읽으며 공부 방향을 잡고 힘을 냈던 시절이 있습니다. 다른 수험생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학습 방법이 있으니 제 경험은 여러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제47회를 끝으로 내년부터 사라지는 5급 외무직 공개경쟁 채용시험인 ‘외무고시’를 대신해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이 첫선을 보였다. 이번 시험을 통해 통일부 공무원과 해외 유명 경영대학원(MBA) 출신 등이 외교전문 분야를 통해 합격하는 등 전문성을 갖춘 우수 인재가 충원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우수 외교 인력을 선발하고자 마련된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에서 전체 수석으로 합격한 홍다혜(24·일반외교 분야)씨는 “외교관이 되기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계실 모든 수험생분들을 응원한다”면서 조심스럽게 본인의 학습 방법 및 응시 경험을 소개했다.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은 세 관문으로 구성된다. 제1차 시험(필기)은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검정시험 대체 과목(한국사, 영어, 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이뤄져 있다. PSAT는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영역에서 응시자의 능력을 평가한다. 1차 시험 학습시 가장 중요한 점으로 홍씨는 “기출 문제를 철저히 분석하는 일”을 꼽았다. 홍씨는 학원에서 제공하는 PSAT 관련 강의로 기본기를 익힌 다음 기출문제를 지속적으로 풀면서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에 꼼꼼히 정리했다.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자료해석 영역은 매일 계산 문제를 풀면서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한 답을 구하는 연습을 반복했다. 홍씨는 “1차 시험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접하기보다는 기존에 풀었던 문제를 복습하면서 시험 감각을 유지하려 했다”면서 “시험일에 긴장하지 않도록 익숙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살피면서 안정감을 찾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전했다. 홍씨는 제2차 시험(필기)일에 전공평가 시험(국제정치학·국제법·경제학 과목으로 일반외교 분야 응시자에게만 해당)과 학제통합 논술시험(1, 2로 구성)을 봤다. 이 중 ‘학제통합 논술시험’은 기존 외무고시에서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에서 신설한 전형이다. 축적된 기출 자료가 없다보니 안전행정부 사이버 국가고시센터에 등록된 예제를 통해 예상 문제를 가늠해볼 수밖에 없었다. 홍씨는 “과거 외무고시의 2차 논술시험은 각 전공과목에서 다루는 여러 개념 및 쟁점을 따로 공부해도 됐지만 새로 생긴 학제통합 논술시험은 국제정치학, 국제법, 경제학 모두와 관련된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면서도 “세 과목이 함께 다룰 수 있는 주제를 궁리하는 중에도 각 전공과목 내용을 충실히 숙지하는 일은 기본이다.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짚었다. 그는 공부 모임을 통해 학제통합 논술시험 아이디어를 얻었고, 시험 직전에는 학원에서 만든 모의시험 문제를 구해서 대비했다. 특히 논술시험의 과목당 시간이 외무고시는 2시간이었지만,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은 1시간 30분으로 줄어 시간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처음 등장한 통합 논술시험 문제들 중 하나에 대해 홍씨는 다음과 같이 접근했다. “한 가지 현상을 세 전공과목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제가 봤던 학제통합 논술시험 2의 문제2를 풀 때 교토의정서 이행 단계와 교정적 조세(환경오염과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규제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걷는 세금)의 의미를 설명한 다음, 배출권 거래제도와 교정적 조세를 경제학적·국제법적 관점에서 비교·평가했습니다. 이어 (국제정치학 관점에서) 온실가스 감축 이행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입장 차이를 서술한 다음 현실주의적,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해결 방안을 적었습니다.” 마지막 제3차 시험은 면접 시험이다.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면접 방식은 외무고시와 같다. 홍씨는 “일주일에 2회씩 30분 단위로 다른 2차 시험 합격자들과 외국어토론 면접 등을 연습했다”면서 “외교역량평가 토의면접과 외국어토론 면접 등 집단토론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내세우기보다 구성원 간 협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팀워크를 발휘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역량면접 중 개인발표를 잘하기 위해 발표문 작성 연습 및 효과적인 말하기 연습을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함께 면접 시험을 대비했던 구성원들로부터 여러 지적을 받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홍씨는 수험생 시절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빡빡한 공부 일정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행여 체력이 떨어질까봐 비타민제와 영양보충제, 홍삼식품 등을 항상 곁에 두고 생활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그는 결국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에서 최종 합격했다. 그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도움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는 외교관이 되겠다. 언제나 상대방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과 나라에게 봉사하는 외교관이 되는 것이 내 꿈”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왜 고마인가

    고구려가 왜 고려가 되고, 고려가 왜 고마가 되었나. 고려(高麗)를 현대 일본어로 읽으면 고우라이다. 하지만 고려마을 일대에서는 고구려를 가리키는 고려를 ‘고마’로 읽는다. 60대 구지(宮司) 고마 후미야스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서기에 고구려라는 표현은 없다. 처음부터 일본에서는 고구려가 고려였던 셈이다. 또한 후대의 기록을 보면 읽는 방식도 고우라이가 아닌 고마였다는 것이다. 고려신사라는 이름의 신사는 오사카, 도야마, 가나가와 등 일본 전역에 산재돼 있다. 교토에는 고마테라라는 절이 있는데 고마란 이름이 붙은 절과 신사의 상당수가 과거 고구려에서 온 손님을 맞는 영빈관으로 쓰였거나 일본 땅에 고구려인들이 정착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고마 구지의 설명이다.
  • 해외여행 | 이시카와·도야마·니가타 일주-북쪽의 땅에서 만난 일본의 속살

    해외여행 | 이시카와·도야마·니가타 일주-북쪽의 땅에서 만난 일본의 속살

    규슈도, 홋카이도도 아니고 니가타에 간다고 하니 주변 반응은 한결같이 시큰둥하다. “일본에 가겠다고?” 걱정이 앞선 이 정도 반응은 양반이다. “방사능 먹으러?”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말은 재밌자고 하는 농담일까? 잠시 망설였지만 가기로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앞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은 살짝 비장하게 시작됐지만 결국 일주일간의 여행은 싱거우리만치 즐거웠다. 이시카와에서 시작해 도야마를 거쳐 니가타까지 북상하면서 걱정은 완전히 잊었다. 태풍을 교묘히 피해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은 늘 그렇듯 친절했다. 평화스러운 풍광 이면에 어떤 불안이 잠재해 있는 걸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보고 마주한 일본은 평온하기만 했다. 내가 보지 못한 일본에 대해선 모른다. 어차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단, 이번 여정이 일본을 꿈꿀 때 기대한 모든 게 충족된 여행이라곤 말할 수 있다. 대자연을 엿보고, 건강하고 화려한 음식을 즐기며, 가장 일본다운 문화를 느꼈다. ●이시카와현에도시대의 유흥, 히가시 찻집 거리여행은 이시카와현에서 시작됐다. 이시카와현은 일본 금박의 99%를 생산한다. 금을 1만분의 1밀리까지 얇게 펴 금박을 만들 만큼 수공기술이 뛰어나다. ‘유노쿠니노모리’라는 전통공예마을에선 금박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염색한 천을 냇물에 길게 담가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이시카와의 고찰, 나타데라는 717년에 지어진 절이다. 바위산 중턱에 자리 잡았다. 그 주변을 사계절 내내 초목이 감싸 안는다. 나타데라를 거쳐 카쿠센 계곡으로 여정은 이어졌다. 그곳엔 1,300년 된 야마시로 온천이 있다.이시카와는 일본의 북알프스와 바다 사이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채 가장 일본적인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통만이 이시카와의 전부는 아니다.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는 현대미술관으로 명성이 높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도 있다. 내가 몇년 전 가나자와에 온 이유도 바로 이 미술관 때문이었다. 가나자와에선 전통과 포스트모던이 조화롭다.가나자와에는 히가시 찻집 거리가 있다. 에도시대의 거리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가나자와성 기준으로 동산(동쪽에 있는 산)의 찻집 거리라 해서 히가시(동쪽)라 부른다. 1820년경 만들어진 거리에서 200년 가까이 된 건물을 볼 수 있다. 일본어로 찻집(오차야)이라곤 하지만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은 아니다. 에도시대, 이곳에선 부유한 상인들이 게이샤를 불러 사케를 마시며 연회를 열었다. 히가시 찻집은 상류층의 사교장이다.시마찻집은 189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1층에선 게이샤들이 살았고, 2층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손님을 접대했다. 찻집을 밝히는 데 전기를 쓴다는 것과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을 빼면 189년 전 모습 그대로다. 시마는 히가시 거리에서 일본 정부가 유일하게 중요 문화재로 지정한 찻집이다. 에도 시대, 시마찻집이 지어질 당시에는 엄격한 규제로 인해 2층 건물을 짓는 게 쉽지 않았다. 당시 시마찻집은 히가시 찻집 거리에서 몇 안 되는 2층 건물 중 하나였다. 시마찻집 2층으로 올라가면 ‘손님방’과 ‘대기실’이 있다. 손님은 손님방에 앉아 있다가 대기실에서 게이샤의 공연을 봤다. 에도시대의 유흥이다.히가시 찻집 거리는 가장 가나자와다운 거리를 대표한다. 교토 기온에 버금가는 격식을 갖추었으니 가장 일본적인 거리다. 찻집의 가는 격자문은 히가시 찻집 거리의 트레이드마크다. 밤이 되면 게이샤가 연주하는 샤미센이나 북소리가 격자문 사이로 흘러나온다. 지금도 이곳에선 게이샤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게이샤들의 공연을 볼 수 없다면 대신 찻집 2층에서 히가시 거리를 내다보며 양갱을 곁들인 말차를 마시는 것도 좋다.일본인의 마음, 겐로쿠엔겐로쿠엔은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에 있는 정원이다. 일본 정원의 전형으로 불린다.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니 가히 국보급 정원이다. 이시카와현립 역사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겐로쿠엔 그림을 보면 600년 전 겐로쿠엔과 현재 모습이 거의 다르지 않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지나온 정원이다. 겐로쿠엔이란 이름은 중국 명원名園의 여섯 가지 조건에서 왔다. 중국에서 명원을 꼽을 때 정원의 광대함, 고요함, 고색창연, 인력, 수로, 조망성 등 6가지 조건을 살피는데, 겐로쿠엔은 이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얘기다.본래 겐로쿠엔은 가나자와 영주의 정원이다. 가나자와의 5대 영주인 쓰나노리가 성 맞은편 경사지에 작은 정원을 만든 게 시초이고, 12대 영주인 나리나가와 13대 영주 나리야스가 대규모 정원으로 개조했다. 겐로쿠엔은 한가운데 연못을 파고 주위에 정원을 조성했지만 겐로쿠엔에는 연못만 있는 게 아니다. 산이 있고, 폭포가 있고, 섬이 있다. 매화나무 숲도 있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양의 다리도 있다. 다리를 잇는 납작한 돌은 거북이 등 모양이다. 숲과 산, 물과 섬, 동물 등은 자연을 모방하고 축소한 결과다. 일본사람들은 겐로쿠엔을 ‘자연풍경식 정원’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엔 그 말이 의아했다. 자연을 모방하고 축소했으니 내 눈에는 겐로쿠엔 자체가 인공적이다. 단적으로 겐로쿠엔의 이끼를 관리하는 사람만 스물다섯명이다. 자연적으로 보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가꾼다는 역설이다.대대손손 가나자와의 영주들은 180년에 걸쳐 겐로쿠엔을 가꾸었다. 영주들은 겐로쿠엔을 통해 장수와 영겁의 번영을 염원했다. 나이든 분들이 연못을 배경으로 스탠드에 줄지어 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의 마음엔 아마 비슷한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상향 같은 정원에서 장수와 번영을 소망하는 마음이다. 스탠드의 저 분들 모두 건강하시기를.●도야마현북알프스의 산악협곡을 달리다지난 밤 숙소인 도야마현의 우나즈키 뉴 오타니 호텔은 깊게 파인 쿠로베 협곡에 면해 있다. 협곡 사이로 쿠로베강이 흐르고, 협곡 저편으로 우나즈키역이 보인다. 우나즈키역에서 출발하는 협곡열차를 타기 위해 이 깊은 산 속까지 왔다. 협곡열차는 ‘토롯코 열차’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졌다. 토롯코라는 이름은 광산이나 토목공사에 쓰이는 작고 지붕 없는 화물차를 말한다. 토롯코 열차는 북알프스에 둘러싸인 협곡을 달리는 산악관광열차다. 해발 224m의 우나즈키역에서 해발 599m의 게야키다이라역까지 20.1km를 1시간 10분 동안 달린다.토롯코 열차가 지나는 협곡은 일본 제일의 V자형 협곡으로 불릴 만큼 가파르다. 까마득한 두 개의 낭떠러지 사이에 놓인 붉은색 아토비키바시 철교를 따라 건너는 순간은 협곡열차의 하이라이트다. 이른 아침에 탄 열차가 산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는 점점 차가워진다. 가벼운 점퍼 하나를 걸쳤으니 한기를 피할 순 없다. 사진을 찍겠다고 완전히 오픈된 객차에 탄 것도 오산이다. 게야키다이라역까지 한 시간을 오르는 내내 차가운 공기에 몸을 떨면서도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기차를 타고 375m를 올라가는 동안 하차가 가능한 역은 쿠로나기역, 카네츠리역, 게야키다이라역 등 세 곳뿐이다. 카네츠리역 부근에는 만년설 전망대가 있고, 종착역인 게야키다이라역 부근에는 족욕장이 있다. 게야키다이라역에서 족욕탕까지 가다 보면 거대한 암석 밑을 지나는데 길을 만들기 위해 암석을 잘라냈다. 사람이 그 밑을 지나면 마치 당장이라도 사람을 삼킬 것 같은 모양이다. 아쉽게도 게야키다이라역에선 만년설을 볼 수 없었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도야마현청 관광국의 다가타씨가 스마트폰의 사진을 보여준다.“얼마 전 다테야마(다테산)에 다녀왔어요.”다테야마라면 백두산보다 더 높은 산이다. 해발 3,000m가 넘는다. 다테야마의 만년설을 보며 다가타씨처럼 언젠가 꼭 여기에 오를 거라고 다짐했다. 3,000m급 산에 올랐다 하니 다가타씨가 프로페셔널한 산악인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그녀는 4년 전 대학을 졸업한, 언제나 소녀일 것 같은 앳된 아가씨다.1732년의 산간마을, 고카야마 합장촌집의 외형이 합장한 손을 닮았다 해서 합장촌이라 불린다. 메밀밭에 둘러싸인 도아먀현의 고카야마 합장촌에 들어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마을이지만 민속촌이 아닌 실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이와세케는 300년 전 집으로 가로 26.4m 세로 12.7m 높이 14m에 달한다. 메이지 시대까지 35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이 집에서 살았다.합장촌의 집들은 못이나 쇠장식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밧줄을 엮어 지었다. 지붕을 엮는 데 사용한 억새는 10년마다 마을사람들이 전부 모여 함께 바꿔 준다. 합장촌은 세계문화유산이지만 민박도 할 수 있다. 온천을 즐기고, 합장촌에 묵으며 전통 화로인 ‘이로리’에 둘러앉으면 시간은 어느새 1732년으로 돌아간다. 합장촌 사람들은 3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travie info 토롯코 열차의 객차는 보통, 특별, 릴렉스, 파노라마 객차 등 4가지로 나뉜다. 보통 객차는 완전히 오픈되어 창문이 없고, 특별 객차는 좌석이 마주 앉은 채 고정되어 있다. 릴렉스 객차는 좌석의 방향을 앞뒤로 전환할 수 있다. 파노라마 객차의 천장은 유리다. 보통 객차 외에는 별도의 승차권을 사야 한다. 우나즈키에서 게야키다이라역까지 운임은 어른 1,660엔.●니가타현대원시림, 사사가미네 고원도야마를 떠나 니가타를 여행하다 보니 ‘설실雪室’과 만난다. 눈을 이용한 보관창고다. 쌀은 물론이고 무와 당근 같은 야채뿐만 아니라 와인도 설실에 보관한다. 니가타식 자연냉장 보관소인 셈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배경이 바로 니가타다.니가타는 일본 열도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우리나라 동해와 접해 있다. 바닷가를 따라 도야마에서 니가타로 이동하면서 동해 넘어 속초 같은 우리나라 도시를 그려 보았다. 에치고 나나우라 해안도로를 달리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 저 너머에 우리나라가 있다. 문득 여정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결국 니가타에서 예정보다 이틀 더 머물기로 한다. 니가타는 점점 ‘나의 도시’가 되어 간다.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는 니가타의 이와무로 온천에 있는 유모토야 료칸이다. 료칸의 오카미상이 너무 젊어 깜짝 놀랐다. 결혼을 하고 도시를 떠나 이곳에 와 오카미상이 되었다. 이와무로는 에도시대 중기부터 번성했던 온천이다. 기러기가 뜨거운 물에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온천을 발견했고, 이로 인해 이와무로 온천은 ‘기러기 온천’이라 불린다. 유모토야 료칸에 도착한 날 이와무로 온천 개장 3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열렸다. 벼룩시장에서 배낭과 책을 샀다. 배낭은 1,000엔, 책은 100엔이다. 배낭은 서울에서 10만원을 훨씬 더 주어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고, 책의 정가는 각각 3,500엔, 2,400엔이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사진이 있는 책들이다.대자연에 둘러싸인 니가타는 일본의 100대 명산 중 11개의 산을 가졌다. 해발 1,270m의 사사가미네 고원은 묘코 고원 서남쪽에 있다. 약초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수령 300년이 넘는 가문비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섰다. 여름철에는 산 아래보다 10도 정도 기온이 낮다.사사가미네 고원에선 여기저기서 ‘곰 주의’라고 쓴 팻말을 볼 수 있다. 아직 한국인 관광객이나 등산객은 물론이고, 외국인 방문객 자체가 없고, 인적조차 드물다. 어쩌다 마주치는 등산객은 달랑거리는 종을 배낭에 달았다. “곰이 종소리를 싫어해요.” 고원 사무소 안내인의 말이다.사사가미네 고원을 돌아볼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못 됐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사사가미네 숲에 푹 빠져 버렸다. 그곳에선 나무며 풀이며 바위, 숲 속의 모든 존재가 스멀스멀 살아 움직이고, 나무와 풀이 소리칠지도 모른다. 사사가미네 숲은 그런 곳이다.사진을 찍다 보니 일행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나만 남았다. 어디선가 심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곰 주의’ 팻말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 숲 가장자리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더니 내 앞을 후다닥 지나간다. 뭐지! 그 순간엔 정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휴…. 원숭이다. 잠시였으나 곰과 마주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난생 처음이다.향긋한 차 같은 사케 이마요츠카사 양조장외지인들에게 니가타는 눈, 쌀, 사케로 유명하다. 눈으로 인해 수질이 독특하고, 쌀이 좋고, 쌀맛이 좋으니 사케 맛도 좋아진다. 사케 양조만 놓고 보면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이를 증명하듯 니가타에만 94개의 사케 양조장이 있다. 일본 최고의 사케는 니가타의 쌀, 기후, 물, 양조술에서 온다. 고시노간바이, 구보타, 핫카이산 같은 니가타 사케는 언제는 일본 사케 탑 쓰리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이마요츠카사 양조장은 가업으로 이어 왔다. 매년 그해 생산한 쌀을 가지고 10월 초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사케를 만든다. 매년 12월 초순이면 그해 만든 첫 번째 사케를 맛볼 수 있다. 올해에는 1.8리터짜리 3만병 정도를 만들 예정인데 내년 6월이면 모두 팔릴 거라고 한다. 100년도 더 된 이마요츠카사 양조장 건물은 드라마세트장으로 사용될 정도로 분위기가 독특하다. 이마요츠카사 양조장에선 사케가 만들어지는 과정, 저장고에 관한 이야기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양조장 오너인 야마모토씨의 설명을 들으며 양조장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사케를 시음했다. 여기서 맛본 사케 중 한 가지는 매우 부드럽게 넘어간다. 향긋한 차 같은 사케다. 사케의 새로운 발견이다.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니가타한국에서 기자들이 왔다고 가나자와 TV와 니가타 신문사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왔다. TV 리포터가 묻는다. “가나자와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가나자와 같은 소도시는 복잡하지 않아 좋아요. 지방의 작은 도시이지만 도쿄나 오사카에도 없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이란 훌륭한 현대미술관도 있고요.” 어설픈 영어로 대답을 하면서 생각했다. 여기는 정말 뉴스거리가 없구나. 그만큼 평온한 도시다. 다음날 TV 속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을 위해 가나자와에 하루 더 있어야 했는데 일정이 허락지 않았다.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와 자연 속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 성정이 남다르다. 료칸 종업원들만 봐도 이를테면 교토의 료칸 종업원들이 친절하지만 엄격하다는 점에서 아주 프로페셔널하다면 도야마나 니가타의 종업원들은 아무래도 엉성하다. 그게 정겹다. 심지어 현청 공무원들 느낌도 소박한 게 남다르다. 때가 묻지 않은 공무원들이라 할까.다시 이시카와나 도야마, 니가타에 오고 싶다. 무엇보다 이번 겨울엔 스키를 타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니가타현에만 50개가 넘는 스키장이 있다. 내년 봄이나 가을엔 이시카와의 다테야마(해발 3,015m)에 오르고 싶다. 한라산이 1,950m, 백두산이 2,750m이니 다테야마는 아주 큰 산이다. 하지만 해발 2,450m까지 버스가 다닌다니 565m만 올라간다면 3,000m급 산에 오를 수 있다. 사사가미네 고원의 깊은 숲도 제대로 한번 걸어 보고 싶다. 단, 곰과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이시카와나 니가타에 다시 오고 싶은 이유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취재협조 니가타현청 www.enjoyniigata.com/korean 이시카와현청 www.hot-ishikawa.jp/korean 도야마현청 www.info-toyama.com/korean
  • 해외여행 | 교토 아라시야마 가을의 품격

    해외여행 | 교토 아라시야마 가을의 품격

    일본 헤이안 시대 귀족들은 가을이면 빼놓지 않고이곳 아라시야마를 찾았다.배는 느릿느릿, 강물은 푸르렀고,단풍으로 물든 산색은 화려했다.헤이안 귀족처럼 단풍 즐기기교토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시내에서 기차로 20분 떨어진 아라시야마다. 헤이안 시대(794~1192년) 귀족들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겼다. 일면 사치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그들의 문화는 일본의 전통을 이루는 원류가 됐다.아라시야마에서는 지금도 귀족풍의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호즈강 뱃놀이. 옛날 귀족들은 선상에서 연회를 열고, 시와 연주를 즐겼는데 이를 모방해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관광용 뱃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5월에는 20여 대의 배를 띄워 헤이안 시대를 재현하는 행사가 있어 절정에 이르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찬 배의 행렬을 볼 수 있다. 승선장에서 배를 타면 강을 따라 2시간 동안 16km를 유람하게 된다. 갈대밭을 지나 점점 짙어지는 단풍 군락지가 나오고, 운이 좋으면 물가에 나온 사슴이나 원숭이도 볼 수 있다. 하류로 갈수록 기암괴석이 많아 바위마다 붙은 별명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사자바위, 개구리바위 등은 자세히 봐야만 비슷한 점을 알 수 있다.배마다 3명의 사공이 배를 젓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배는 카누처럼 길쭉한 모양의 나룻배다. 한 명이 뒤에서 방향을 조정하면, 앞에서는 한 사람이 노를 젓고, 다른 한 사람이 장대로 강바닥과 바위를 밀어내며 속력을 낸다. 우리 배의 선임 사공은 70세가 넘은 할아버지였다. 무려 50년 동안 노를 저어 온 그는 “앞에서 5년, 뒤에서 10년은 해야 비로소 사공”이라고 말한다. 사공들은 바위마다 정확하게 짚어야 할 지점을 알고 있다. 어떤 바위들은 너무 오랫동안 장대로 짚이다 보니 깊이 패인 자국이 선명했다. 이들은 물길보다도 돌길을 지도로 삼는 것 같다. 때로는 바위 사이 좁은 협곡에서 급류를 만나 배도 흔들리고 솟구치는 강물에 옷이 흠뻑 젖기도 한다. 그래도 사공들은 여유만만, 배는 교묘하게 중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살이 잔잔해지는 하류에 오면 수상 편의점과 접선해 어묵 같은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살 수 있다.급류에 몸을 사리고, 단풍에 취하다 보면 2시간도 금방이다. 뱃놀이는 도게츠교 앞에서 끝난다. 150m가 넘는 도게츠교渡月橋는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인데, 가마쿠라 시대 가메야마 천황이 밤에 이 다리를 보고 마치 달이 건너가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리를 기준으로 상류는 호즈강, 하류는 가츠라강이라고 부른다. 도게츠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아라시야마역쪽으로 들어가면 거리를 따라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travie info토록코 열차 호즈강까지 이동시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먼저 토록코 열차를 탈 것을 추천한다. JR사가아라시야마역에서 내려 토록코 사가역으로 걸어가면 열차를 탈 수 있다. 토록코 열차는 흔히 볼 수 없는 증기기관차다. 무리진 단풍나무숲을 지나 20여 분 만에 토록코 카메오카역에 도착하는데, 객차마다 창문을 열 수 있어 상쾌하고, 사진 찍기에도 좋다. 운행시간┃3월1일~12월29일, 수요일 휴일 도록코 사가역 오전 9시7분부터 오후 5시7분까지 매시 7분 출발 토록코 카메오카역 오전 9시35분부터 오후 5시35분까지 매시 35분 출발 요금 어른 기준 600엔호즈강 뱃놀이 토록코 카메오카역 또는 JR우마호리역에서 하차해 39번 버스(300엔) 또는 도보로 승선장까지 이동한다. 운영시간 3월10일~11월30일 오전 9시~오후 2시 매시 정각, 오후 3시30분 출발/ 12월1일~ 3월9일 매일 오전 10시, 11시30분, 오후 1시, 2시30분에 출발 요금 어른 기준 3,900엔대숲의 바람, 사찰의 단풍아라시야마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덴류지天龍寺’를 비롯해 많은 사찰이 있다. 하지만 사찰보다 그 주위를 둘러싼 사가의 대나무숲과 소박한 매력의 노노미야신사가 더 인기가 좋은 듯하다. 이 대나무숲은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3대 대나무숲 중 하나다. 이준기,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 <첫눈>에도 등장했고, <게이샤의 추억>에도 스치듯 나왔다. 담양의 죽녹원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대숲이 더 촘촘하고 울창하며 규모도 크다. 가을 대숲은 숲 밖의 단풍과 대조돼 청량감이 한층 두드러진다. 가만히 서서 댓잎에 이는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마음마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노노미야신사는 대숲 중간 즈음에 있다. 일반적인 신사에 붉은 도리이가 있는 것과 달리 노노미야 신사의 도리이는 검다. 이점이 매우 특이했는지 유명한 소설 <겐지 이야기>의 작가도 ‘현목편’에서 노노미야의 검은 도리이와 섶나무로 엮은 울타리에 대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노노미야신사는 사랑을 이뤄 주는 신사라고 해서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남녀 간의 인연뿐만 아니라 직장, 학교 등에서의 좋은 인연도 빌 수 있다. 신사 안쪽에 참배를 드리는 곳이 있는데, 소원을 비는 방법이 따로 있다. 원칙은 두 번 경배 후 두 번 박수를 치고, 다시 한 번 경배하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그 다음 보시함에 동전을 넣고, 종 밑에 드리운 줄을 두 번 흔들어 소리를 낸다. 경배를 할 때는 두 손을 합장한 후 고개를 살짝 숙여야 한다.대숲을 빠져나와 작은 연못을 지나면 산속에 파묻힌 사찰 ‘조잣코지常寂光寺’가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인근에서 단풍을 보기 가장 좋은 절이다. 이 절은 1596년 일본의 유명한 시인이자 스님인 후지하라 테이카가 은둔하며 세웠다고 한다. 경내 건물과 탑이 계단을 따라 층층이 이뤄져 있어 유유자적한 느낌이 든다.<겐지 이야기>의 팬이라면 세이료지淸凉寺도 함께 둘러보도록 하자. 조잣코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현재는 절로 개조됐지만 <겐지 이야기>의 주인공 히카리 겐지의 실제 모델이었던 미나모토 노 토루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travie info아라시야마 찾아가기 고베, 신오사카, 교토 등지에서 한큐 전철과 JR기차를 이용하면 편하다. 한큐 전철을 이용할 경우 교토본선 가츠라역에서 아라시야마선으로 환승하면 7분 만에 한큐 아라시야마역에 도착할 수 있다. JR기차를 이용할 경우 교토역에서 JR사가노선으로 환승한 후 JR사가노아라시야마역에서 하차. 교토역에서 20분 정도 소요.☞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교토의 추천 단풍명소 Best 4절과 정원이 많은 역사도시 교토에는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밤에 보는 단풍은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더욱 극적이다. 주말에는 기모노를 차려 입은 교토 멋쟁이들이 늦은 밤까지 단풍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걸 볼 수 있다.기요미즈데라淸水寺매년 11월 중순부터 12월 초 단풍철이 되면 교토의 랜드마크 기요미즈데라가 늦은 밤 조명을 밝힌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된 15m의 본당 무대는 특히 유명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레이저와 멀리 교토타워의 불빛, 기요미즈데라의 늠름한 모습이 단풍 위로 펼쳐진다.고다이지高台寺거울처럼 명징한 호수에 비친 단풍으로 유명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 ‘네네(기타노만 도코로)’가 남편의 명복을 위해 지었는데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매력적이다. 경내에는 가을 정취에 어울리는 일본식 다도와 좌선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www.kodaiji.com난젠인南禪院교토 시내 동쪽 히가시산에 위치했다. 경내가 매우 넓고 아름다운데, 가메야마 천황이 불교에 심취해 거처를 이곳으로 옮긴 덕이라고 한다. 난젠인은 절 안에 있는 가메야마 천황의 정원이다. 작지만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철학자의 길난젠인에서 은각사로 향하다 보면 좁은 수로를 따라 난 평범한 길을 만날 수 있다. 이 길이 바로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가 걸어 유명해진 ‘철학자’의 길이다. 마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왔을 법한 도도한 고양이들과 그림 그리는 화가들, 조용히 걷는 잠재적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글·사진 Travie writer 도선미 취재협조 린카이 02-319-5876
  • [프로야구] ‘구조조정’ 두산… 김진욱 전격 경질

    [프로야구] ‘구조조정’ 두산… 김진욱 전격 경질

    2014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나선 프로야구 두산이 사령탑까지 전격 교체했다. 두산 구단은 27일 김진욱(왼쪽·53) 감독을 해임하고 송일수(오른쪽·63) 2군 감독을 제9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지난해 두산 지휘봉을 잡았던 김 전 감독은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하차했다. 김 전 감독은 부임 첫해 두산을 포스트시즌(PS)에 올려놓았지만 준플레이오프(PO)에서 롯데에 지면서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는 의구심을 샀다. 올해는 정규리그 4위로 PS에 오른 다음 준PO에서 넥센을 3승2패로 물리친 뒤 PO에서 LG를 3승1패로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삼성에 3승1패까지 거둔 뒤 3승4패로 역전당하며 우승을 내줬다. 이 과정에서도 김 전 감독의 지도력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선수단을 믿음으로 묶긴 했지만, 투수 교체의 기준이 흔들리고 팀을 하나로 묶는 데도 역부족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벌써 선수를 12명이나 떠나보낸 두산이 김 전 감독까지 경질하면서 리빌딩의 중심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누리꾼들도 상당히 놀라며 격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송 신임 감독은 1969년 긴데쓰 버펄로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포수로 활약하다가 1984년 역시 재일교포인 김일융의 전담 포수로 삼성에 입단, 3년 동안 국내 무대를 경험했다. 은퇴한 뒤에는 일본 구단에서 코치와 스카우트로 활동하다가 올해 두산 2군 감독에 부임했다. 구단은 송 감독을 발탁한 배경에 대해 “원칙과 기본기를 중시하면서도 경기 중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나 창의적이며 공격적인 야구를 구사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2군을 지휘하면서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송 감독은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던 터라 놀랐다”고 털어놓으며 “팬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멋지게 이기는 야구를 보여 드리는 것인 만큼 내가 가진 모든 열정과 능력을 남김없이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송 감독은 다음 달 1일 선수단 상견례를 갖고 코치진 구성과 앞으로의 선수단 운영 계획 등을 구단과 논의할 계획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위로